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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사생활(창비시선 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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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쪽 | A6
ISBN-10 : 8936422707
ISBN-13 : 9788936422707
바람의 사생활(창비시선 270) 중고
저자 이병률 | 출판사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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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1월 2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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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시리즈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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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 <좋은 사람들>, <그날엔>이 당선되어 등단한 이병률의 두 번째 시집. 풍경의 갈피들과 삶의 쓸쓸함에 대해 천착함으로써 아름다운 작품세계를 선보여온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한층 더 성숙한 시적 절제와 감성을 선보인다. 첫 시집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 이후 3년 만에 펴낸 이번 시집에는 일생에 걸친 사랑과 이별, 기다림, 인연의 어긋남, 침묵, 풍경이 적막하고 쓸쓸하고 아름답게 녹아 있다.

총 4부, 58여 편의 시가 수록된 이번 시집은 비장하고 도저한 그리움과 기다림이 가득차 있다. 시인은 가닿을 수 없는 것들과 쉽게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애착을 보여준다. 시인의 깊은 사유와 통제를 거치며 절제된 감성의 시세계로 확장되며, 시집 곳곳에서 모호하고 쉽게 상을 잡을 수 없는 진술들을 담아내었다.

저자소개

목차

제1부ㆍ아직 얼마나 오래 그리고 언제
봉인된 지도
나비의 겨울
무늬들
저녁의 습격
아주 넓은 등이 있어
잠시
고양이 감정의 쓸모
아무것도 그 무엇으로도
점심
아직 얼마나 오래 그리고 언제
뒤돌아보기보다는

저녁 풍경 너무 풍경
탄식에게

제2부ㆍ거인고래
사랑의 역사
외면
묵인의 방향
한 사람의 나무 그림자
거인고래
달에게 보내는 별들의 종소리
견인
절벽 갈래 바다 갈래
파도
독 만드는 공장의 공원들은
피의 일
여전히 남아 있는 야생의 습관
황금포도 여인숙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바람의 사생활
시취

제3부ㆍ꽃들의 계곡
뒷모습
물의 말
동유럽 종단열차
아무것도 아닌 편지
소년들
꽃들의 계곡
관계의 사전

미행
섬광이다
순정
장미의 그늘
인디안 써머
아무도 모른다
약속의 후예들

제4부ㆍ서쪽
검은 물
당신이라는 제국
한뼘 몸을 옮기며 나는 간절하였나
강변 여인숙
서쪽
어두운 골목 붉은 등 하나
희망의 수고
내 일요일의 장례식
동백 그늘
별의 각질
돼지
시장 거리
대림동

해설 | 신형철
시인의 말

책 속으로

출판사 서평

책 속 한 문장

  • 박순미 님 2007.09.13

    아마도 불을 봤으리라 한번 등을 보이면 다시는 돌이키지 못할 만경창파의 연(緣)이 있음도 알았으리라 아마도 그 일로 짜게 울다 갔으리라

회원리뷰

  • 이별과 작별의 차이 | ph**iplee | 2009.06.28 | 5점 만점에 4점 | 추천:5
    ...
     
     

    아마도 마음이 닫혀 있어서였을 것이다.

    시를 읽고 있는 동안 줄곧 마음이 눈을 따라잡지 못했다.

    시어가 맥을 추지 못하고 행과 연이 따로 놀았다.

    그러면서도 책을 덮지 못했다.

    호승지벽이 일어서도 그랬겠지만 내가 시를 너무 쉽게 읽으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빈집으로 들어갈 구실은 없고 바람은 차가워 여관에 갔다

    마음이 자욱하여 셔츠를 빨아 널었더니

    똑똑 떨어지는 물소리가 눈물 같은 밤

    그 늦은 시각 여관방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옆방에 머물고 있는 사내라고 했다

     

    정말 미안하지만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왜 그러느냐 물었다

    말이 하고 싶어서요 뭘 기다리느라 혼자 열흘 남짓 여관방에서 지내고 있는데 쓸쓸하고 적적하다고

     

    뭐가 뭔지 몰라서도 아니고 두려워서도 아닌데 사내의 방에 가지 않았다

    간다 하고 가지 않았다

     

    뭔가를 기다리기는 마찬가지,

    그가 뭘 기다리는지 들어버려서 내가 무얼 기다리는지 말해버리면

    바깥에서 뒹굴고 있을 나뭇잎들조차 구실이 없어질지도 모른다

     

    셔츠 끝단을 타고 떨어지는 물소리를 다 듣고 겨우 누웠는데 문 두드리는 소리

    온다 하고 오지 않는 것들이 보낸 환청이라 생각하였지만

    끌어다 덮는 이불 속이 춥고 복잡하였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전문 62~63쪽

     

    외로움이 커지면 연(緣)의 도래를 기다리게 되기도 하지만

    두려워서 그러는 건 아니라고 하면서도

    시인은 행여 엮이게 될지도 모를 인연이 싫어서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보는 것이다.

     

    시집의 해설을 쓴 신형철이 말하는 바

    헤어짐에는 자신이 어찌 해볼 수 없이 멀어지게 되는 이별(離別)과

    자기 스스로 애써 갈라서고자 해서 헤어지게 되는 작별(作別) 두 종류가 있는데

    작별이 선택이고 결단의 결과라는 점에서 이병률은 작별을 지어내는 시인이라 말하고 있다.

     

    「별의 각질」,「관계의 사전」,「꽃들의 계곡」,「아무 것도 아닌 편지」,「동유럽 종단열차」 등

    옮겨 적고 싶은 작품마다 행이 길어서

    대신 ‘시인의 말’ 중에서 한 구절을 적는다.

    시인의 그리움이라는 것의 한 단면을 들여다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덧붙여서…….

     

    *****

    스친 자리가 그립다. 두고 온 자리가 그립다. 거대한 시간을 견디는 자가 할 일은 그리움이 전부. 저 건너가 그립다. (…) 다리를 놓아 서로 그리워하는 것들의 맥을 잇는 일이 시 쓰는 일과 다르지 않다는 걸 안다. 건널 수 없는 대상을 이제 건널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되니 그것만으로도 가뿐하며 고맙다. 어차피 날 수는 없는 일.  – 시인의 말 중에서

     

    조석으로 한강 하류의 다리 놓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일었던 생각이라는데

    물을 가로질러 일어서는 다리로 갈라진 땅이 서로 만나게 되는 것처럼

    그가 쓰는 시와 글이 소외와 소요의 세상에서 소통의 가교가 되어주기를 빈다.

     

  • 바람이 들려주는 시 | ch**oo23 | 2007.06.22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바람이 들려주는 시  바람은 한곳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그래서 바람이다. 하지만 바람이 스치...
     

    바람이 들려주는 시


     바람은 한곳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그래서 바람이다. 하지만 바람이 스치고 지나간 자리의 여운은 그 머무름의 시간보다 긴 듯 하다. 이병률시인의 「바람의 사생활」은 그 찰나의 순간에 송두리째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나를 흔들어대었다. 내 안에 어떤 울림을 만들어 놓더니 여기저기 숨어있는 시의 언어들이 몇 차례나 숨을 멈추게 했다. 그렇게 나는 바람이 들려주는 시에 온 감각이 정지해버린 듯 마음을 기울이게 되었다.



    그리움을 밀면 한 장의 먼지 낀 내 유리창이 밀리고

    그 밀린 유리창을 조금 더 밀면 닦이지 않던 물자국이 밀리고


    갑자기 불어 닥쳐 가슴 쓰리고 이마가 쓰라린 사랑을 밀면

    무겁고 차가워 놀란 감정의 동그란 테두리가 기울어져 나무가 밀리고

    길 아닌 어디쯤에선가 때 아닌 눈사태가 나고


    몇십 갑자를 돌고 도느라 저 중심에서 마른 몸으로 온 우글우글한 미동이며

    그 아름다움에 패한 얼굴, 당신의 얼굴들

    그리하여 제 몸을 향해 깊숙이 꽂은 긴 칼들


    밀리고 밀리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 이름이 아니라

    그저 무늬처럼 얼굴처럼 덮였다 놓였다 풀어지는 손길임을


    갸륵한 시간임을 여태 내 손끝으로 밀어보지 못한 시간임을

                                                                 - 무늬들 (p.14) -


     개인적으로 이 시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시이다. 여기서 그리움은 유리창과 그 유리창의 물 자국으로 번져 표현되고, 그 그리움의 두께는 유리창에 낀 먼지로 보여 지고 있다. 밀어도 잘 밀리지 않을뿐더러, 밀린다고 해도 먼지 낀 유리창에 남는 손자국이며 물 자국들이 아쉬움과 미련의 마음 같다. 마음 줄을 따라 손끝이 아려져옴을 느낀다. 밀어도 밀어도 밀리지 않는 그 무수한 그리움들 때문이다. 손끝으로도 만져지지 않는 안타까운 그리움들 이건만,  괜시리 손끝만 자꾸 부딪쳐본다.


                                                           


    자리를 보고

    터를 다져 집을 짓고

    마당에 심은 나무가 꽃을 틔워 천지에 떨어뜨리고
    세월이 집을 데리고 가서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벌판이 되는 일


    피의 일


    먼 길을 떠나 몸 누일 곳을 찾아

    두리번거려 찾은 못에 땀 젖은 옷 벗어 걸고

    이곳은 어디쯤일까 하는 현기증으로

    이건 누구의 냄새일까 하는 궁리로 잠을 못 이루고

    잠시 세월을 데리고 갔다가

    애써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떠난 곳으로 돌아오는 일


    피의 일


    당신을 중심으로 돌았던

    그 사랑의 경로들이

    백년을 죽을 것처럼 살고 다시 백년을 쉬었다가

    문득 부닥친 한 목숨에게

    뼈가 아프도록 검고 차가운 피를 채워 넣는 일

                                              - 피의 일(p.56) -


     자리를 잡고, 터를 잡고, 쉼 없이 두리번거리다가 비로써 찾아든 중심. 아마도 그 중심으로 모든 감각과 시간이 한곳으로 집중되고 쏠리게 되는 것이 사랑일 것이다. 마치 지구에는 원심력이 있듯 사랑에는 너라는 중심이 있다. 그러다 ‘당신을 중심으로 돌았던 사랑의 경로’를 이탈하는 날에는 원심력을 잃은 물체가 밖으로 튕겨나가듯 마음 또한 어디론가 튕겨져 나갈 것이고, 사랑했던 시간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을 뜨겁던 붉은 피 대신 ‘검고 차가운 피’를 채워 넣으며 보내게 될지 모를 일이다. 이 시에는 이러한 ‘피의 일’이 곳곳에 흐르고 있다. 



    며칠째 새가 와서 한참을 울다 간다 허구한 날 우는 새들의 소리가 아니다 해가 저물고 있어서도 아니다 한참을 아프게 쏟아놓는 울음 멎게 술 한잔 부어줄걸 그랬나, 발이 젖어 멀리 날지도 못하는 새야


    지난날을 지껄이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술을 담근다 두 달 세 달 앞으로 앞으로만 밀며 살자고 어두운 밤 병 하나 말갛게 씻는다 잘난 열매들을 담고 나를 가득 부어 허름한 탁자 닦고 함께 마실 사람과 풍경에 대해서만 생각 한다 저 가득 차 무거워진 달을 두어 곰 지나 붉게 생을 물들일 사람


    새야 새야 얼른 와서 이 몸과 저 몸이 섞이며 몸을 마리워하는 병 속의 형편을 좀 들여다 보아라                                  

                                                                                 - 아직 얼마나 오래 그리고 언제 (p.28) -


     가만히 곱씹어 읽다보면 어느새 내 곁에 새 한 마리 찾아와 앉아 있는 듯 하고, 또 때론 내가 시인의 새가 되어주고 싶어진다. ‘몸이 마리워하는’사람들끼리 함께 술한잔 부딪히면서 두런두런 이야기나 나눠야겠다. 살자고, 그래도 또 살아내자고 말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밀어내듯’ 앞으로 앞으로 밀며 살다보면 언젠가 붉게 생을 물들일 날도 있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새벽 네시나 됐을까

    이마 한가운데로 한 방울 물이 떨어져 잠에서 깬다

    며칠째 계속되는 비 탓에

    기와도 빗물을 다 막아내지는 못하겠나보다

    자리를 옮기고 냄비를 가져다놓으니

    똑 똑


    잠들 만하면 떨어지고

    잠들 만하면 떨어지는 빗소리가

    앓은 소리를 낸다

    소리를 줄이려 마른 수건을 가져다 담그자

    냄비 가득 증명할 수 없는 냄새가 나고

    거꾸로 누워 천장에 눈을 맞추니

    꼭 내 얼굴을 닮은 얼룩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한숨 자고 일어나도 여전히 시린 이마

    안 풀리는 일들이 꿈으로 닥쳐온다 했는가

    돌아다보고 돌아다보느라 늦게 일어나

    늦은 약속에 나갔다 돌아와도

    여전히 시린 이마

    내가 나에게 뭐라 말을 거느라

    이마 위로 떨어뜨린 그 서느런 최초의 한 방울

                                                        - 물의 말 (p.70) -


     나도 모르게 이마를 짚어 본다. 내 이마위에 물 한 방울 똑-떨어진 듯한 느낌이 든다. 갑자기 이마가 정 가온데가 시려온다. 그 끝을 따라 마음까지 시리다. 여기서 한 방울 물의 똑-소리는 자아의 노크이다. 지금 시인은 자꾸만 말 걸어오는 내면의 울림 때문에 잠 못 이루고 있다. 그 ‘안풀리는 일들’이 무엇이 길래, 이토록 시인을 뒤척이게 하는것인지. 그 ‘앓는 소리’가 시끄러워 ‘마른 수건을’담궈도 보고 애써 소리를 외면하려는 듯 자세도 바꾸어 보지만 별다른 소용은 없는 듯 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내 안에 그 어떤 울림이 내는 소리니까 말이다.  그것은 살아있는 동안 늘 마주하게 될 ‘시선’이며, 늘 듣게되는 ‘말’일 것이다.

     

     


     책의 뒤 표지에 소설가 ‘김훈’은 자신은 시를 쓸 수 없으니 보통말로 써야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보통말로도 써내려갈 재주가 없으니 그냥 조용히 눈을 감는다. 그리고 바람의 소리에 귀 기울여, 바람이 들려주는 시에 나를 맡긴다. 감정의 덩어리들이 하나 둘 쭈뼛쭈뼛 고개를 든다. 그리움이 내게 말을 걸어오고, 미련과 아쉬움, 그 어떤 알 수 없는 외로움이 밀려온다. 바람이 지나간 자리마다 일렁이는 파장에 마음결이 흔들리고, 수십 번 옷깃을 바로잡아 보지만 또 흔들리고 만다. 해설에 덧붙인 ‘신형철’의 말처럼, 정말 살아있는 것은 때로 휘청거리곤 하는가보다. 그렇다면 새삼 또 존재의 이유를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시인의 말처럼, “스친 자리가 그립다. 두고 온 자리가 그립다. 거대한 시간을 견디는 자가 할 일은 그리움이 전부, 저 건너가 그립다.”


    어쩜 시인은 마음들을, 이렇게 감각적인 언어로 풀어낼 수 있을까? 그래서 시인은 시인인가 보다. 내가 ‘시인’이 되지 못하고 ‘보통 사람’이 될 수 밖게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혼자된 이의 노래 | qu**tz2 | 2006.11.27 | 5점 만점에 4점 | 추천:0
    이 땅에서 스물 다섯 번째 맞이하는 나의 생일날, 텅 비어버린 집을 외면한 나는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때마침 나를 위해 준비된듯한 빈자리를 만났고, 시간에 몸을 맡긴 체 나는 책장을 넘긴다. 그 날 난 바람의 매서움이 익숙해지는 계절에 너무도 잘 어울리는 시인을 만났다. 코트의 깃 한껏 세운 체 어느 누구의 목소리도 외면하며 제 갈 길을 갈 것만 같은 인물이 써 내려간 세상을 일부러 아름다워 보이려 들지 않았지만, 어쩌면 그래서 더욱 푸근하게만 느껴지는 언어들. 시를 위한 언어가 따로 존재하진 않는다는 사실을 그의 시를 읽는 내내 생각했다. ...

    이 땅에서 스물 다섯 번째 맞이하는 나의 생일날, 텅 비어버린 집을 외면한 나는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때마침 나를 위해 준비된듯한 빈자리를 만났고, 시간에 몸을 맡긴 체 나는 책장을 넘긴다.

    그 날 난 바람의 매서움이 익숙해지는 계절에 너무도 잘 어울리는 시인을 만났다. 코트의 깃 한껏 세운 체 어느 누구의 목소리도 외면하며 제 갈 길을 갈 것만 같은 인물이 써 내려간 세상을 일부러 아름다워 보이려 들지 않았지만, 어쩌면 그래서 더욱 푸근하게만 느껴지는 언어들. 시를 위한 언어가 따로 존재하진 않는다는 사실을 그의 시를 읽는 내내 생각했다.

     

    첫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봉인된 지도>를 읽는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그의 외로움은 실로 오래 되었음을 지구가 지금보다 더욱 긴 일년을 가졌고, 낮과 밤의 바뀌는 속도가 현재의 2배에 달하던 어느 날부터 그의 그리움은 시작되고 있었다. 다시 돌아온 당신의 입에서 절망이 튀어나오는 것을 보고서도, 기다림을 포기하기 보다는 일년 삼백육십오일, 하루 스물네 시간이 되기만을 기다리는 한 사내의 묵묵함. 어쩌면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의 것이 아니었다. 허락하지 않은 이들이 끊임없이 그의 마음을 두드릴 때면 그 역시 아니 흔들릴 수 없었다. 혼자된 이에게는 치명적인 사람의 냄새, 둘 혹은 그 이상이 만들어낸 정겨운 흔적에 그는 한없이 약해진다. <나비의 겨울>, <저녁의 습격> 등 이어지는 시들이 가진 제목을 바라보며 나는 홀로 남겨진 인간이 느껴야 하는 감정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삶은 그리움만으로 살 순 없는 것이라 하던데, 차라리 새로운 사랑을 찾아 떠나는 것이 조금은 더 현명한 태도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으로부터 그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그의 세상은 타인의 힘을 통해서만이 비로소 완벽해질 수 있다. 비록 상대가 나를 향해 증오의 칼날을 겨눌지라도, 이빨의 기운을 믿어 나를 물어 온몸 가득 뒤집히는 소유가 일어난다 할지라도(<탄식에게>) 간혹 자신도 알기 힘든 감정들에 시달리기도 하는 그이지만, (<>에서 엿볼 수 있는 그의 모습은 무얼까? 상대가 멀어지기만을 바라면서도 인연의 끈을 놓지 않는 그의 모호한 태도란), 결국 그가 살고 있는 세상은 미움보다 이 더 강렬함을 지닌 공간이다. 돈을 받으러 간다던 친구는 몸이 불편한 부부에게 자신의 돈을 내어주는(<외면>) 공간에서 그는 자신을 죽이고파 했던 한 사람이 잘 살고 있을지 마음을 쓰고야 만다(<묵인의 방향>). 인간이라서 어쩔 수 없는 감정들, 그 감정들로 인해 자신이 인간임을 증명 받는 그. 그에게 필요한 것은 삶이 아니다. 결론이 죽음일지라도, 그 죽음이 차갑지 않다면 그것 역시 그가 꿈꾸는 것이다. 식어가는 그 순간에 느끼는 따스함을 꿈꾸는(<견인>) 그의 모습에서 나는 지독한 외로움을 읽어낸다.

     

    자고로 사람은 자기 중심적인 존재. 내 상처가 너무 커 타인의 아픔을 읽지 못한 지도 꽤나 오랜 시간이 흐른 내 인생을 그의 언어로, 그의 시로 적셨다. 혼자면 어떤가? 눈을 들고 고개를 돌리면 들려오는 건 죄다 사람의 목소리인 것을 쓰디쓴 소주로 내 자신을 현혹한다 하여도 결국 우린, 쓸쓸하다 할지라도 박하게도 흐벅지게도 살아야만 하는 존재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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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자
지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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