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로폰네소스 전쟁의 기운이 여전히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시절 태어난 플라톤에게 스승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아마도 전쟁으로 망가진...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기운이 여전히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시절 태어난 플라톤에게 스승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아마도 전쟁으로 망가진 세상만큼이나 그의 마음을 공허하게 만들어주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정치가의 꿈을 가지고 있었던 그에게 철학이라는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던 스승의 지난 삶을 추억하는 것에 플라톤은 적지 않은 사명감을 느꼈던 듯 하다. 오늘날 소크라테스와 관련된 많은 부분이 플라톤의 기록으로부터 기인하는 것 역시 이를 증명해준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향연, 크리톤, 파이돈, 프로타고라스 등 플라톤의 글에는 소크라테스가 여지없이 등장한다. 물론 기록이라고 하는 것이 적는 이의 주관이 어느 정도 개입될 수 있지만, 플라톤이 택한 대화체 방식의 기술은 마치 눈 앞에서 벌어지는 대화를 그대로 지면에 옮겨 놓은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심지어 자신은 함께하지 못한 스승의 마지막 대화에 관한 기록마저도 파이돈을 통해 생생해 복원한다.)
이 기록은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대화는 항상 상대방의 대화를 경청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는 점에서 상대방에 대한 존중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렇게 소크라테스는 하나의 질문을 던지고, 이로 인해 상대방은 자신이 방금 내뱉은 말에 대해 의문을 가지기 시작한다. 그것은 한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확고한 사고 체계의 붕괴를 동반한다. 하지만 소크라테스의 대화는 교육이라고 볼 수 없다. 그는 결코 스스로 무언가를 내뱉지 않으며, 이로 인해 상대방은 자신의 입술을 통해 진리를 발설하게 된다. 그렇기에 소크라테스의 대화에서는 상하가 존재할 수 없다. 그것은 말 그대로의 대화이다. 그것도 아주 유익한…
그 유익함을 배가하는 것은 다름 아닌 주제의 다양성이다. 삶과 죽음, 법과 진리, 사랑 등. 다소 추상적일 수도 있는, 하지만 이들은 분명 인간의 삶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주제들이다. 소크라테스는 이들 주제에 대해 끊임없이 사고했으며, 상대방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보다 단단히 구축해나갔다. 상대방의 사고를 유연하게 받아들이면서도 그는 자신의 것에 대해서는 단호했다. 그렇기에 그는 자기 자신을 학문을 위해서라면 죽을 수도 있는 철학자로 규정지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죽음은 소멸이 아니었다. 그는 죽음으로서 세상의 모든 악과 부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고, 오히려 그보다 먼저 세상을 살다 간 위인들과의 조우를 꿈꿀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는 자신의 죽음 앞에 슬피 우는 이들을 질책했고, 태연함을 넘어선 환희로 죽음과 마주할 수 있었다.
오늘날과 같이 사고할 틈이 없을 정도로 바쁜 사회에서 소크라테스와 같은 인간은 아마도 존재감을 가지기 힘들었을 것이다. 오히려 살기 위해서라면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현대인들 속에서 소크라테스는 그 기인함으로 인해 상처만 입었을지도 모른다. 현대인은 대화에,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데 익숙하지 못하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가 고대 그리스에서 출생했다는 사실은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다행이 아닌가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