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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션들(보르헤스전집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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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8쪽 | A5
ISBN-10 : 8937401762
ISBN-13 : 9788937401763
픽션들(보르헤스전집 2) 중고
저자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 역자 황병하 | 출판사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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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9월 1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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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5점 만점에 4점 zoo*** 2020.07.08
5 상태가 아주 좋습니다. 5점 만점에 5점 choinv*** 2020.07.02
4 책 내용은 깨끗하지만, 겉표지엔 얼룩과 접힘 자국이 있네요. 보통은 이 정도의 상품을 '최상'이라고 하진 않은데, 그렇지 않나요?? 5점 만점에 3점 cur*** 2018.03.15
3 약간의 변색이 있지만, 상태는 좋습니다:) 5점 만점에 5점 jesusn*** 2015.12.14
2 잘받았습니다^^ 5점 만점에 5점 kimse*** 2015.09.21

이 책의 시리즈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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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목차

1부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 서문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떼르띠우스 알모따심에로의 접근 삐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 원형의 폐허들 바빌로니아의 복권 허버트 쾌인의 작품에 대한 연구 바벨의 도서관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 2부 기교들 서문 1956년의 후기 기억의 천재 푸네스 칼의 형상 배신자와 영웅에 관한 논고 죽음과 나침반 비밀의 기적 유다에 관한 세 가지 다른 이야기 끝 불사조 교파 남부 작품 해설 작가 연보 작품 연보

책 속으로

출판사 서평

책 속 한 문장

회원리뷰

  • 픽션들 | my**ak | 2020.07.23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세르반테스 이후 스페인어권에 최고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단 한 편의 장편소설을 남기지 않고&n...

    세르반테스 이후 스페인어권에 최고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단 한 편의 장편소설을 남기지 않고  ‘픽션’으로 명칭한  단편을 통해서 자신이 추구하고 갈망하는 모든 것을 치밀하게 완성했다.

     보르헤스 문학에 핵심이자 독자들에게 첫번째 출밤점으로 간주되는 두 번째 단편집 ‘픽션들’(1944)은  자아와 시간의 문제를 열일곱 편의 단편으로 빚어냈다.

     200여페이지에 분량속에 죽음,영원,시간, 관념에 세계를 때로는 탐정기법으로 추적해나가며 가짜 사실주의 가짜 참고문헌과 각주, 가짜전기라는 구조를 통해 독자들에게 충격적이면서도 흥미로운 세계를 펼쳐보인다.


    이 책이 전세계 지성인들에게 안겨준 지적 충격은 현존하는 문학에 이성주의의 한계를 향해 픽션이라는 장르를  무한한 사유의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새로운 소설 기법을 도입했다는 점이다.
    ‘픽션들’은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가치체계의 전복을 통해 세계의 질서를 재정의하고 글쓰기와 언어 자체에 대해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물음을 던진다.

     

    독자들은 보르헤스가 창조한 미로속으로 들어가 도서관을 헤매다가 복권을 손에 넣게 될지모른다. 손에 넣었던 복권을 다시 확인하는 순간 도플갱어와 맞딱 뜨리게 되는  꿈같은 체험을 하게 될것이다. 

    그에 문장속 곳곳에 숨어있는 상상력에 유희들은 마치 세상을 비추는 거울 같아서 질서 정연해보였던 세상이 굴절되고 왜곡되어 보일지 모른다. 

    독자들과 숨박꼭질하듯 보르헤스는 단몇줄에 문장속에 세상을 다른 관점으로 읽는 재미를 느끼게 만들어  보르헤스에 기발한 상상력에 회로 그가 창조해낸 미로속으로 빨려들어가게 될것이다.


  •  저의 글을 처음 접하신 분이면 이루 말할 필요가 없겠으나 이미 한번 보신 분들에게 있어 저의 글이란 범접하기 힘든 ...
     저의 글을 처음 접하신 분이면 이루 말할 필요가 없겠으나 이미 한번 보신 분들에게 있어 저의 글이란 범접하기 힘든 현대 미술 같은 느낌으로 기억되시리라 충분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의 글을 찾아 주시고 게다가 다시 한 번 책장을 넘겨주신 것에 대해 소설가로서 뿌듯함을 느낀다랄까요.
     
     저의 취향이랄지 글을 쓰는 스타일은 결코 독특하다거나 희귀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적어도 제가 살고 있는 남미의 문학이라는 것이 종종 이런 식일 때가 많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더운 지방의 토양에서 나온 글들과 저기 러시아 지방의 글을 비교할 때 오히려 반대의 결과가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토스트예쁜스키 씨의 글 중에 <죄와 벌>만 하더라도 보는 내내 끈적끈적한 열기 같은 것을 느끼실 수 있지 않습니까? 마치 아르헨티나의 기후 처럼요. 하지만 오히려 저의 글은 러시아에서 빤쓰만 입고 밖에 나갔다가 추워서 바로 쏙 들어오는 듯한 쿨함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
     
     <픽션들> 중에 가장 으뜸인 것은 역시 ‘바벨의 도서관’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를 모르던 분이 얘기를 나누던 중에 바벨의 도서관이 어쩌고 하시는 걸 들은 적이 있습니다. ‘아, 이런 식으로 소설이 소설가를 먹어버릴 수도 있는 걸까’ 살짝 배앓이를 했지만 뭐 인세가 그런 식으로 들어오지 않나 만족했습니다. 허나 저자로서 추천해 드리고 싶은 단편들은 바벨의 도서관 보다는 ‘삐에르 메나르’나 ‘허버트 쾌인’의 이야기들입니다. 이유야 뭐 마음에 드니까 마음에 드는 것이라 할 수 있겠으나 이런 식의 작업들이 얼마나 재미있느냐에 대해서는 직접 해보지 않고서는 모를 것입니다. 물론 비슷한 식의 작업들은 많이 해보셨을 거라 생각됩니다. 기본적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인공된 가상의 글일테니까요. 하지만 저의 작업들은 이러한 작업을 다시 반대로 돌림으로써 거울이 거울을 마주보게 하는, 유한하지만 무한한 공간이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두 인물에 대한 단편이 형식이나 양식적으로 이를 직접 표현해 본 것이라면 내용면에서 볼 때 ‘복권’, ‘도서관’, ‘정원’이나 ‘푸네스’가 있겠습니다.
     
     어떤 분들은 저를 5차원이라며 놀리기도 합니다.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제가 쓴 글은 글일 뿐이지 저의 퍼스날리티를 반영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죠. 그리고 여기서 중요, 저는 5차원이라는 말을 굉장히 싫어합니다. 5차원이라는 단어 안에는 상당히 과학 용어 같은 느낌이 들어있기 때문이죠. 저는 분명히 문학상(정통 문학상)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 기회를 빌어 말씀드리자면 요새 과학이 철학을 넘어섰네 뭐네 하며 인문학의 위기를 거론하시는 데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인 경우입니다. 제일 나쁜 것들이 통섭하자고 외치는 것인데 그런 분들께 삐에르 메나르의 돈키호테를 추천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아, 물론 그분의 책을 구하기 어려우시다면 세르반데스의 돈키호테를 사셔도 됩니다. 근데 헤깔릴 수 있으니 저자 부분을 삐에르 메나르로 수정해 주세요. 그래야 보실 때 오독의 위험이 없습니다.
     
     저는 과학의 입장이 아닌 문학의 입장에서 우주라는 풍경을 이 픽션들에 담아보려 노력해보았습니다. 이런 과정 중에 5차원의 개념과 비슷한 시간과 공간의 뒤엉킴과 대칭들이 엿보였을텐데요 사실 저는 대칭과 가벼운 시간적 혼란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당부하고 싶은 말은 저의 작품을 보실 때 너무 심각해 지지 마시라는 겁니다. 제가 글도 잘 쓰고 상도 탄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면에 있는 저의 진지한 놀이란 복잡한 퍼즐 같은 것일 뿐 이럴수록 편하게 즐기시는 게 서로 좋다는 생각입니다.
     
    정릉에서, 2012
  • 나에게 보르헤스, | ba**rani | 2009.01.31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보르헤스에 관한 고백, 책의 옆면에는 빨간 날짜 도장이 찍혀 있어서 2003년에 구입한 책임을 증명하고 있다. 벌써 5년, ...

    보르헤스에 관한 고백,

    책의 옆면에는 빨간 날짜 도장이 찍혀 있어서 2003년에 구입한 책임을 증명하고 있다. 벌써 5년, 아니 6년째가 되어가는 나의 보르헤스는 지난 몇 해 동안 들춰졌다가 읽혔다가 또 잠재워졌다가 읽혔다가를 반복하는 중이었다. 그러니까 읽긴 읽는데 몇 장을 넘기지 못하고, 읽고는 있는데 마음을 끌지는 못하고, 그런 식이었다.

    이렇게 된 데는 민음사의 보르헤스 전집의 판형이 구식인데다가 오래된 활자체도 한몫했지만, 결정적으로 수많은 주석들이 원인이었다. 낯선 이름과 고유명사들에 어쩌면 이렇게도 많은 주석들을 붙여 놓은 것인지 한 줄 한 줄이 고역이었다.

    그런데 나는 지금 책을 다 읽고, 보르헤스에 푹 빠진 기분이다. 어쩌면 이렇지?

    이렇게 지루한 책에 빠졌다고 말하는 것이 일종의 문학적 허세(?)로 보일 수 있겠다 싶은데도 불구하고 사실이 그렇다는 거다.

    책을 읽고 나서 누군가는 느끼게되는 감정의 방식에 감동과 감탄 딱 두 방식이 있다면 후자의 범주에 속하는 완벽한 책이다.

    어떻게 이런 방식을 고안해냈지? 책 속의 단편들은 그 모두에 의미가 있고, 그 모두가 새롭고, 이렇게 풍부한 사유의 존재인 보르헤스는 천재다.

    멀었다 멀었어. 현대의 인기 작가들도, 그 착상이 기발한 작가들도 보르헤스를 따라오려면 멀었다. 숱한 모방이 존재했겠고 나 역시 그런 모방 속에서 감탄으로 허우적거렸음이 분명했을텐데도 보르헤스는 전혀 다른 감탄이다.

    아, 난 왜 지난 5년을 허비했을까. 

  • Ficciones :: Jorge Luis Borges 이렇게 오래 손에 붙잡고 있었던 책이 또 없다. 어디까지나 난독증 때문...
    Ficciones :: Jorge Luis Borges

    이렇게 오래 손에 붙잡고 있었던 책이 또 없다. 어디까지나 난독증 때문이긴 하지만 뒤숭숭한 시국 탓에 바깥을 전전하느라 더 그랬다. 처음에는 그야말로 이해를 못해서 끙끙대며 읽다가, 나중에는 완전히 매료되어 같은 문장을 암기하듯 읽고, 종반에는 현실 세계에서 도피하듯이 빠져들었다. 겨우 덮을 수 있었던 건 수록된 마지막 단편에서 비루한 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랄까. 보르헤스는 그걸 가르쳐주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얼마나 보잘 것 없고 미약한 존재인지를. 그래도 구성하는 모든 것 하나하나가 전부 가치 있다고 보듬어주어 얼마나 고마운지를. 그의 우주에서 나는 한없이 겸허해지다가도 한없는 자괴에 빠지기도 했고 한없이 자신감을 갖다가도 한없는 절망을 느끼기도 했다. 그렇게 냉탕과 온탕을 오가다가 겨우 조금, 아주 조금 그 우주의 비밀을 알 것 같았다. 아, 이게 사람의 길인가 보구나, 하고.

    솔직히 그의 책을 문학적으로든 주석적으로든 그가 의도한 그대로 읽어낼 자신은 없다. 문장 하나를 수십번을 읽어도 완전한 독해는 한 10년쯤 후에나 가능할 것 같다. 그런 주제에 그의 책에 대해 글을 쓰자니 참 송구스러운 노릇이지만, [삐에르 메나르 <돈키호테> 의 저자] 에서처럼 '읽기' 는 시대에 따라 달리 읽혀질 수 있다는 그의 너그러움에 편승하여 주제넘게나마 개인적 소회에 가까운 감상, 혹은 기억을 남겨본다. 보르헤스의 팬이시라면 나의 오독에 한숨을 내쉬게 될지도 모르지만,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놓은 작가만큼 모쪼록 넓은 마음으로 [미로에서 길을 잃었지만 한쪽 길을 택해 걸어가는 이의 또 하나의 행보] 정도로 너그러이 읽어주셨음 좋겠다. (이런 점에 있어 포스트모던은 나같이 모자란 독자에게 너무도 편리한 양식이 아닐 수 없으니, 다시 한번 그 영역을 확장해준 보르헤스에게 무한한 감사를.)

    먼저 언급한 [삐에르 메나르 <돈키호테> 의 저자] 에 대해 좀더 메모하자면, 보르헤스는 '모든 역사는 반복되지만 시대에 따라 그 양상은 달라진다' 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요즘 같은 시국에 읽어서 그런지, '역사는 반복된다' 는 말이 이처럼 가슴이 와닿는 때가 없다. 그런데 같은 일이 반복되어도 꼭 같은 일이 반복되지는 않는다. 변증법적 진화가 타당성을 얻는 부분이랄까. 그래서 미래는 항상 희망적이고 좀더 다양해지고 또 더 다양해진다. 그런데 이 다양함은 언제나 뭉뚱그려져 양분화 된다. 즉, [끝없이 두갈래로 갈라지는 길들] 로서의 무궁한 다양함인데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을 때는 항상 두개의 길만 보게 되는 것이다. 가령 100명의 사람이 보수와 진보의 길을 놓고 각각 50명씩 한쪽 길을 선택해 갈라졌다해도 또 앞서 만나는 길에서 그 50명은 25명씩 나뉘어질 것이고, 또 다음 길에서 그 반으로 나뉘어져 결국 언젠가는 혼자서만 끝없이 갈림길에 들어서게 된다. OX 퀴즈도 아니건만, 갈림길을 선택한 개개인은 모두 자신이 O의 길에 들어섰다 믿고 X의 길로 들어섰을거라 생각되는 다른 99명의 길을 쉽게 인정치 않는다. 그들이 지나간 길을 자신이 되풀이해 지나갈 수도 있다는 걸 깨닫지 못한 채 말이다.

    그러나 최대한 단순화 하여 양분시키는 것만이 세상의 질서를 바로 잡는 것이라 사람들은 쉽게 믿는다. 바이너리가 시시하다 싶으면 혈액형이니 별자리니 하며 갯수를 늘려보기도 하지만 프레임은 여전하고 다양성은 그 안의 포로가 되고만다. 어쩌면 사람은 자신이 처음 들어섰을 때의 길만 겨우 기억하고 그 뒤로 계속 갈라지는 길을 맞으며 점점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잊어버리게 되는 것은 아닐까. 자신이 선택한 길이 옳다고 믿고 싶으면서도 혼자서는 알 수가 없어 처음 50명으로 갈라섰을 때의 연대를 그리워 하게 되는 건 아닐까. 혹은 아예 스스로의 선택권을 내버린 채 다른 사람이 택한 길로 따라 들어서고만 있는 것은 아닌지. 다양함이 존중받자면 소통의 부재와 고독의 감내가 따르고, 다양함이 압축되자면 진화는 더뎌지거나 진정한 진실이 왜곡될 수 있다. 그럼 어떻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질서를 유지하며 다양함을 추구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보르헤스는 [무질서가 답이다] 라고 내놓은 것 같다. 어차피 사람은 존재론적으로 유일하기 때문에 이미 다양성이 확보되고, 그렇기에 이 다양성을 양분화하거나 특정 갯수로 나누는 것은 존재 부정이나 다름없다. 차라리 다양성을 확장하여 많은 가능성을 쏟아내는 것이 진화(혹은 진실)에 더 근접할 수 있다고 역설하며, 이미 인류는 그런 길을 걸어왔는데 인정하고 있지 않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이미 지나온 과거, 즉 역사에 '절대' 란 있을 수 없다. 많은 다양함이 한두가지로 '정리' 되었을 뿐이다. [바빌로니아의 복권] 을 통해 역사가 그동안 얼마나 날조되어 왔는가를 은유하며, [배신자와 영웅에 관한 논고], [유다에 관한 세가지 다른 이야기], [끝] 의 이야기로 '우리가 알고 있었던 게 전부가 아니라 또 다른 가능성도 있지 않았을까' 에 대한 예시를 제시한다. 그는 세상에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지, 시시각각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수많은 이야기가 생산 되어지고 있는데 어째서 역사는 한가지만을 기록하는가 하는 질문으로 그동안 외면 되어왔던 무궁한 다양성에 관해 환기시킨다.

    끝없이 갈라지는 길에 대한 선택은 어쩌면 우연일 수도 있다. 어느 환경에서 태어나 어떤 교육을 받고 어떤 정보만을 접했느냐에 따라 지금 자신이 서있는 길이 정해지기도 한다. 그럼 그 강제적인 설정으로 인한 자신의 길이 '진실' 이라 우긴다면, 그거야말로 무지한 오만이 아닐까? 그만큼 자신을 선택받은 존재라고 단언할 수 있는가? 물론, 그렇다고 '내 길은 진실이 아니다' 고 끝없는 무력감에 사로잡혀 주저앉을 필요는 없다. 그저 계속, 계속 길을 선택하고 또 선택하여 앞으로 나가는 것만이 일이다. [바벨의 도서관] 에서의 은유처럼 '신이 될 수 있는 완전한 책' 이 어딘가에 존재할지도 모르지만, 영영 찾지 못하더라도 찾아나가고 길을 선택하며 이야기를 쏟아내는 것이 사람이 걸어온 길이며 앞으로 갈 길이다. 진실을 찾는 것, 되고 싶은 무언가가 되려하는 것, 그 모든 것이 앞으로 계속 선택하고 찾아 나가지 않으면 이룰 수 없다. 진실은 어딘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그 지나온 과정 중에 있는 것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적어도 개인의 진실만큼은 그 안에 있다.(※ [알모따심에로의 접근], [죽음과 나침반])

    고작 요만큼만을 얻기 위해 이토록 짧은 인생을 고생했는가 하고 한탄과 허무에 젖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나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에 그나마 위안을 받게될 것이다. (※[원형의 폐허들]) 인간이 죽음의 비밀을 끝끝내 못푸는 것은 어쩌면 죽는 그 순간에 모든 것을 깨우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비밀의 기적]) 역설적으로 '누구나 죽는다' 는 인간의 한계는 결국, 무질서한 다양성 속에서 인간 사이의 연대와 소통의 끈이 되는 것은 아닐런지. 많은 것을 배우고 연구하는 지식인도, 현대의 문화에서 괴리되어 있는 오지인도 모두 '절대적' 인 것을 추구하거나 믿는다. 그 '절대적' 인 것의 속성은 어쩌면 '단 하나의' '같은 것' 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한계' 를 가진 인간으로서 추구하는 속성마저 같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소통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다만 두 개로 갈라진 길만 볼 것이 아니라 끝없이 두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 을 신의 눈으로 내려다 볼 수 있는 혜안을 길러야만 비로소 그 소통이 통할 것이며, 그것이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최상의 길일 것이다.

    우리는 같은 것을 꿈꾼다. 다만 다양화의 압축, 양분화로 그것이 다른 양 호도되고 있을 뿐이다. (※[불사조 교파]) 이상적인 세상은 이미 우리 안에 있다. 모든 일에는 결과가 없고 오로지 연속성을 가진 과정만 있기 때문이다.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떼르띠우스]) 그런데 그렇게 다르면서도 같은 우리가 왜 서로를 향해 칼을 들고 싸워야만 하는가. (※[남부]) 존중만으로도 연대가 가능한 것을, 왜 자신의 길만이 O의 선택이라고 세상에 강요하며 혼자만의 '천일야화' 를 꿈꾸는가. 나만 잘살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미로로 된 정원 전체를 보지 못할뿐더러 우연으로 세워진 자신의 위치에서 더이상 앞으로 가지 않고 정체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 자리에서 아무리 아는 게 많다 자신이 옳다 떠들어댄들 그는 결국 죽음의 순간, 저너머의 '진실' 을 접할 때 때늦은 후회만 하게 될뿐이리라. (※[칼의 형상])

    써도 써도 끝이 없다. 그의 글에서, 문장에서 느끼고 생각한 바를 다 적자면 이 공간 갖고는 턱없이 부족하다. 일개 독자인 내가 이러할진대 얼마나 많은 작가들이 그에게 영향을 받았을까. 나는 심지어 호러 작가로 유명한 H.P 러브크래프트나 영화 [매트릭스] 에서조차 보르헤스를 느낄 정도였다. 시대가 낳은 또 하나의 천재지만 더이상 새로울 게 없다는 겸허함과 동시에 글쓰기에 대한 자부감, 뚜렷한 철학에 깊은 감화를 받았을뿐더러 문학의 귀천을 가리지 않고 작가의 기준을 두지않는 너그러운 호방함에 나같은 사람도 글을 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기마저 했다. 아무리 같은 주제로 글을 쓴다한들 사람이 유일성을 가진 이상 그게 같은 글이 될 수 있겠느냐는 그의 말에 얼마나 많은 글쟁이들이 위로를 받았을런지. [※[허버트 쾌인의 작품에 대한 연구], [바벨의 도서관]) 그런 그 앞에서 기본적인 자기 회의와 성찰을 해보지 않는다면 차마 어디 가서 글을 쓴다, 책을 읽는다고 말할 수 없으리라.
  • 기억보다 중요한 것 | yi**2 | 2007.11.02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기억보다 중요한 것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기억의 천재 푸네스』   1. 푸네스는 기억의 천재이다.시간은 ...

    기억보다 중요한 것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기억의 천재 푸네스』

     

    1. 푸네스는 기억의 천재이다.
    시간은 인간의 기억력을 통제해 왔다. 때문에 인간은 시간과 기억에 관한 수많은 욕망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그것을 극복하고자 다양한 시도를 해오고 있다. 그렇다면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만큼 정말 행복하고 편할 수 있을까? 여기 푸네스라는 인물은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다. 그는 말에서 떨어져 전신마비 상태가 되는 불의의 사고를 당한 이후 완벽한 지각력과 기억력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이것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고 오히려 몸을 움직일 수 없는 것 정도야 (완벽한 기억력과 지각력을 얻게 된 것에 비하면) 아주 작은 대가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기까지 한다. 우리의 몸은 원래 하나의 감각이 마비되면 다른 감각이 더 발달되기 마련이다. 때문에 몸에 관한 모든 감각이 마비된 푸네스는 상대적으로 시간에 대한 기억력과 사물에 대한 지각력이 극대화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의 기억력은 너무나 완벽해서 하루 전체를 모두 기억할 수 있었고 또 그것을 돌이켜보는 데 꼬박 하루 전체가 걸릴 정도였다. 이런 완벽한 기억력의 원천은 아이러니 하게도 망각이었다. 그는 사고 전까지 '보면서도 보지 않고, 들으면서도 듣지 않고, 그래서 모든 것, 거의 모든 것을 잊어버리(183)'면서 살았다. 그런 그가 완벽한 기억력을 갖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모든 기억은 '망각'에서 비롯되는 것이니 말이다.
    그는 결코 잠을 잘 수 없었다. '나의 꿈은 마치 당신들이 깨어 있는 상태와 똑같다(184)'는 푸네스의 말은 그가 잠을 잘 수 없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보르헤스 자신이 이 작품을 불면증에 관한 긴 은유라고 하였는데 그것은 이 부분에서 명확하게 표출된다. 잠을 잘 수 없다, 즉 깨어있다라 함은 항상 무엇인가를 인지할 수밖에 없는 상태를 가리킨다. 그러나 그의 인지력은 문제가 있었다. 그는 정말로 단지 '인지'밖에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인지를 넘어선 그 이상은 그로서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푸네스가 잠을 잘 수 없었던 이유는 인류의 상상력을 압도하고 획일화 시켜버린 서구문명에 대한, 서구문명이 만들어낸 현실에 대한 열기나 압박감(188) 때문이라고 서술되고 있다. 그들, 서구인들은 남아메리카의 황량한 한 변두리에서 불행한 푸네스 위로 수렴되는 이러한 느낌과 고통들을 알리 없는 사람들이다. 중남미인 푸네스는 서구문명식으로 재단된 현실에 대한 압박감으로 오늘도 잠들지 못한다.

     

    2. 푸네스는 아리스토텔레스적이다.
    '우리들은 푸네스가 일반적인, 그러니까 플라톤적 생각들을 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187) '나는 그가 사고를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심이 들곤 했다. 사고를 한다는 것은 차이점을 잊는 것이며, 또한 일반화를 시키고 개념화를 시키는 것이다. 푸네스의 풍요로운 세계에는 단지 즉각적으로 인지되는 세부적인 것들밖에 없었다.'(188)

     

    푸네스는 사고할 수 없다. 그는 철저히 아리스토텔레스적 인간이다. 즉, 현실이란 개인적 경험으로만, 개별적 인지의 총합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이었다. 그에게 플라톤적인 일반화란 불가능하다. 그는 의미심장한 말 한마디를 던진다. '나의 기억력은 마치 쓰레기 하치장과도 같지요.'(184) 여기서 보여지는 것처럼 그는 모든 것을 완벽하게 인지하고 그대로 똑같이 재현해 낼 수 있는 대단한 기억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결코 일반화하거나 취사선택해서 정리해 낼 수는 없었다. 그는 나름대로 자신의 기억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그래서 자연수들에 대한 끝없는 용어를 창출하고 모든 기억의 영상들을 분류해 놓는 목록 등을 작성하고자 그만의 독창적인 언어 체계를 만들기까지에 이른다. 그러나 그는 실패하고 만다. 그 작업은 끝이 없을 것이고, 또한 해보았자 쓸모 없는, 결코 완성될 수 없는 일(186)이란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만의 새로운 체계를, 언어를 만드는 것은 애당초 성공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언어란 기본적으로 소통을 위한, 그 사용자 사이의 사회적 약속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설령 실재와의 필연성은 없다 하더라도 말이다. 자기만의 언어는 소용이 없다. 소통이라는 언어의 기본 역할을 해낼 수 없는 언어란 결국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인간의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명제는 푸네스에게도 어김없이 적용된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세상과 단절한 채 자기만의 세계에 침잠하며 살아가지만 어쩔 수 없는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사람이었으며, 매우 고독하고 예민한 관찰자, 불행한 중남미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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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문학은 사고작용이다.
    글을 읽고 쓰는 행위는 사고 작용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사고란 단순한 인지와 기억의 차원과는 다른 것이다. 한마디로 온갖 것이 다 들어있는 쓰레기 하치장에서 목적에 알맞은 것을 취사선택하여 통합 정리할 수 있는 능력이 '사고작용'이다. 그러나 푸네스에겐 이러한 능력이 없? 그는 통합적인, 플라톤적 사고능력이 없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사고 작용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문인 글 쓰기 읽기 과정을 연상해보자. 작가는 세상의 모든 것들에서 영감을 얻어 그 중 특수한 어떤 소재를 포착, 글을 쓰게 된다. 작가들이 써내려 가는 내용 중에서 진정으로 작가 자신이 새롭게 만들어낸 것은 사실 없다. 모두 존재하는 것들에 기반해서, 이를테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라든가 자연현상이라든가 책 등을 통해 알게 된 내용들에 토대를 두고 글을 쓰게 된다. 그 글의 내용 또한 작가 자신이 지금까지 경험했던 수많은 직간접 경험들이 무의식적으로 녹아 들어가게 마련이다. 결국 작가 혼자만의 완전한 창작은 없다는 것이다. 독자 또한 마찬가지이다. 독자는 독서를 하면서 작가가 보여준 텍스트를 새롭게 취사선택, 사고하는 작용을 작가처럼 반복하게 된다. 그 글을 선택하는 행위에서부터 해석하는 독서의 모든 행위까지. 작품은 고정 불변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독자는 작가와 똑같은 역할을 다시 한번 하게 되는 것이고, 독자에 따라 작품은 새로운 모습으로 수없이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푸코는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인식론은 문제가 있다'고 하였다. 인식에는 여러가지 방법과 논리가 있을 수 있고 그것은 결코 합리성이라는 한 가지 방법으로 획일화될 수 없다. 다양한 인식에 기반한 새로운 사고력은 그래서 중요하다. 사고할 수 있다는 것은 단순한 인식보다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게 해준다. 사고력은 그래서 필요하다.

     

    4. 허구에 대한 허구
    쓰레기 하치장에서 무엇인가를 집어내어 그것을 자기만의 언어와 사고로 배합하는 일련의 사고 능력은 문학에 그대로 적용된다. 이 소설에서는 문학을 함에 있어 취사선택해야 하는 소재 선택의 과정과 글을 해석할 수 있는 사고력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보르헤스는 이를 허구적 글쓰기의 형식을 빌려 비틀어서 드러내었는데, 이 작품 '기억의 천재 푸네스'만 보더라도 이상해 보이는 장치들이 곳곳에 등장한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허구의 인물을 실존 인물들이 설명하고 있다든가, 있지도 않은 인물에 대한 태연스런 설명 등 소설이라는 허구 속에 또 하나의 허구가 삽입되어 있다. 이렇게 익숙한 틀을 깨는 과감한 형식과 주변성에 대한 관심, 고정관념을 깨는 내용들은 포스트 모더니즘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는 허구적 글쓰기를 통해 소설이란 형식을 빌려 문학의 본질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하였다고 알려지고 있다. 때문에 이 소설집 자체가 글쓰기에 대한 소설, 소설에 대한 소설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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