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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 비용
| 규격外
ISBN-10 : 1190292092
ISBN-13 : 9791190292092
살림 비용 중고
저자 데버라 리비 | 역자 이예원 | 출판사 플레이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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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3월 2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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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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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와 나이가 가하는 제약에서 빠져나와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소설가 데버라 리비, 작품 속 등장 인물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실제 삶에서도 자유로운 여성이 되기로 결심하다 『알고 싶지 않은 것들』에 이은 데버라 리비의 자전적 에세이 3부작의 둘째 권. 50대에 들어선 지은이가 이혼한 시점을 배경으로 사회가 여성, 특히 어머니라는 존재를 두고 멋대로 품은 망상과 이들에게 가해 온 억압을 예리하게 파헤친다. 그 과정에서 문학과 영화, 조각 등 여러 분야에서 활약한 앞선 세대 여성 작가들과 교감하는 한편 젊은 여성 세대에 희망과 연대를 표한다.

이 자전적 이야기의 메시지는 “아직 쓰이지 않은 주연급 여성 캐릭터”를 발견해야 한다는 것이다. 『살림 비용』은 그런 캐릭터를 작품에서 형상화하려는 작가의 고민을 공유하는 에세이며, 나아가 지은이 자신이 현실에서 그런 여성이 되고자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담은 기록이다. 전작에 이어 번역가 이예원이 간결하면서도 암시적인 지은이의 산문을 생명력 넘치는 우리말로 재탄생시켰고, 책 말미에는 소설가 백수린의 ‘후기’ 「나로 존재하는 수고로움」과 강영숙, 강화길, 최은미의 ‘추천의 글’을 수록해 한국어판에 생생한 숨결을 더했다.

저자소개

저자 : 데버라 리비
Deborah Levy
1959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태어나 1968년 가족과 함께 영국으로 이주했다. 극작가이자 시인으로 활동하다가 1988년 첫 단편집 『오필리아와 훌륭한 발상』Ophelia and the Great Idea, 1989년 첫 장편 소설 『아름다운 기형들』Beautiful Mutants을 냈고, 『지리 삼키기』Swallowing Geography, 1993, 『사랑받지 못하는 자』The Unloved, 1994, 『빌리와 여자 아이』Billy and Girl, 1996를 연달아 출간했다. 긴 공백기를 지나 2011년에 장편 소설 『헤엄치는 집』Swim-ming Home을 출간했고, 이 작품으로 2012년 맨부커상 후보에 올랐다. 2013년에는 프랭크 오코너 국제 단편 소설상과 BBC 국제 단편 소설상 후보에 오른 단편집 『블랙 보드카』Black Vodka를 내놓았고, 이를 전후로 절판되었던 초기작들이 재출간되었다. 2016년에는 장편 소설 『핫 밀크』Hot Milk로 맨부커상과 골드스미스상 후보에 올랐다. 같은 해 단편 「스타더스트 네이션」Stardust Nation이 안제이 클리모프스키Andrzej Klimowski에 의해 그래픽 노블로 각색되기도 했다. 장편 소설 『놓치는 게 없던 남자』The Man Who Saw Everything로 2019년 부커상 후보에 올랐다.
왕립 셰익스피어 극단과 BBC 라디오를 위해 희곡 작품을 쓰고 각색했으며,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유명한 정신분석 사례인 일명 ‘도라’ 및 ‘늑대 인간’ 사례를 극화했다. 초기 희곡 작품들은 『리비: 희곡들 1』Levy: Plays 1로 엮여 출간되었다.
2013년 젠더 정치를 삶의 영역으로 되돌리는 자전적 에세이 시리즈인 ‘생활 자서전’living autobiography 3부작의 첫 책으로 『알고 싶지 않은 것들』을 펴냈다. 2018년에는 둘째 권인 『살림 비용』을 출간해 고든번상 쇼트리스트에 올랐다. 프랑스에서 이 두 작품으로 2020년 메디치상 해외 문학 부문 후보에 올랐고, 심사 위원이 전원 여성으로 구성되는 페미나상 해외 문학 부문에서 수상했다. 두 작품 모두 셀린 르루아C?line Leroy가 번역했다. 3부작 마지막 책이 될 『부동산』Real Estate(가제)은 2021년 출간 예정이다.

역자 : 이예원
문학 번역가. 데버라 리비의 『알고 싶지 않은 것들』, 사뮈엘 베케트의 『머피』, 조애나 월시의 『호텔』, 주나 반스의 『나이트우드』, 앨리 스미스의 『겨울』과 『호텔 월드』, 제니 페이건의 『파놉티콘』과 그래픽 노블 『아이 러브 디스 파트』, 『리얼리스트』, 『빈센트』, 『바늘땀』, 그림책과 어린이책을 한국어로 옮겼고 김숨, 이상우, 천희란의 단편 소설 및 황정은의 『계속해보겠습니다』와 『디디의 우산』(근간)을 영어로 옮겼다.

후기
백수린
2011년 경향신문 신춘 문예로 등단했다. 소설집 『폴링 인 폴』, 『참담한 빛』, 『여름의 빌라』, 중편 소설 『친애하고, 친애하는』, 짧은 소설집 『오늘 밤은 사라지지 말아요』, 산문집 『다정한 매일매일』을 출간했으며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문맹』,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여름비』와 몇 권의 그림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목차

1 빅 실버
2 폭풍
3 그물
4 노란빛 나날
5 중력
6 전기 신체
7 검고 푸르스름한 어둠
8 공화국
9 방랑하는 밤
10 내가 지금 있는 곳 X
11 집 안을 오가는 발소리
12 모든 것의 시작
13 우윳빛 은하
14 반가운 기별들

후기 나로 존재하는 수고로움??백수린
추천의 글 174

책 속으로

21쪽 남자와 아이의 안위와 행복을 우선 순위로 두어 오던 가정집이라는 동화의 벽지를 뜯어낸다는 건 그 뒤에 고마움도 사랑도 받지 못한 채 무시되거나 방치되어 있던 기진한 여자를 찾는다는 의미다. 33쪽 더는 사회와 혼인 관계로 얽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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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남자와 아이의 안위와 행복을 우선 순위로 두어 오던 가정집이라는 동화의 벽지를 뜯어낸다는 건 그 뒤에 고마움도 사랑도 받지 못한 채 무시되거나 방치되어 있던 기진한 여자를 찾는다는 의미다.

33쪽
더는 사회와 혼인 관계로 얽히지 않은 몸이 된 나는 이제 다른 무엇 또는 누군가로 전환해 가는 과정에 있었다. 그런데 그게 무엇 또는 누구인 걸까? 용해되는 동시에 재조립되고 있는 것만 같은 이 기묘한 느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단어는 마음을 열어젖혀야 한다. 마음을 닫게 만드는 단어는 누군가의 존재를 무화했을 가능성이 크다.

78~79쪽
그래, 내가 아는 여자 중에 여성성이라는 유령을 복원시키고자 하는 이는 몇 되지 않았다. 게다가, 유령이 뭔데? 여성성이라는 유령은 허상이자 망상이자 사회적 환상이다. 연기하기에 매우 까다로운 인물이며, 그 역할(희생, 감내, 고통의 와중에도 발랄함을 잃지 않기)을 연기하다 끝내 이성을 잃고 만 여자도 수두룩했다. 그런 이야기라면 결단코 다시 듣고 싶지 않았다.

100쪽
가부장제의 가면이 기형적이고 도착적이라는 걸 남자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에게 가면은 상처로부터 자기를 보호해 주는 유용한 수단이다. 가면에 장식이 많이 붙을수록 그는 여자와 아이와 다른 남자를 위압하면서도 이성적인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 무엇보다도 가면은 다른 남자들의 눈에 낙오자로 비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부터 그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남자가 성공적인 사람으로 간주되는 이유가 여자들을 (가정에서, 일터에서, 침실에서) 진압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라면, 사회는 이런 측면에서 실패하는 것을 위업으로 여겨야 마땅하다.

106쪽
아버지가 세계에 나아가 해야만 하는 일들을 할 때, 우리는 그게 아버지가 응당 해야 할 몫이라며 용인한다. 어머니가 세계에 나아가 해야만 하는 일들을 할 때는 어머니가 우리를 버렸다고 느낀다. 이리도 모순되고 사회의 가장 강력한 독기를 머금은 잉크로 쓴 메시지를 어머니가 용케 견뎌 내는 게 가히 기적이다. 그러니 이성을 잃지 않을 수가 있나.

160~161쪽
여자가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기 위해 자기 이름을 지워 버린 사회의 서사와 결별할 때, 그가 맹렬한 자기 혐오에, 미칠 것만 같은 고통에, 눈물이 멎지 않는 회한에 빠지리라는 게 사회 통념이다. 이런 것이 여자를 위해 마련된, 그가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 손에 쥘 수 있는 가부장제의 왕관에 박힌 보석들이다. 눈물지을 순간이 넘치는 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아무런 가치도 없는 그 보석들에 손을 뻗느니 검고 푸르스름한 어둠을 두 발로 통과해 지나는 편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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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가부장제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 불안하면서도 흥분되는 새로운 삶에 대한 묘사, 앞선 세대와 후속 세대 여성들에게 보내는 연대의 손길까지, 자유로워지고자 고군분투하는 여자들에게 바치는 이야기 ◈ 『알고 싶지 않은 것들』에 이은 데버라 리비의 ‘...

[출판사서평 더 보기]

가부장제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 불안하면서도 흥분되는 새로운 삶에 대한 묘사,
앞선 세대와 후속 세대 여성들에게 보내는 연대의 손길까지,
자유로워지고자 고군분투하는 여자들에게 바치는 이야기

◈ 『알고 싶지 않은 것들』에 이은 데버라 리비의 ‘생활 3부작’ 둘째 권
◈ 『가디언』 선정 ‘21세기의 책 100권’
◈ 2020년 프랑스 페미나상 해외 문학 부문 수상
◈ 소설가 백수린의 ‘후기’, 강영숙, 강화길, 최은미의 ‘추천의 글’ 수록

“남자와 아이의 안위와 행복을 우선 순위로 두어 오던 가정집이라는 동화의 벽지를 뜯어낸다는 건 그 뒤에 고마움도 사랑도 받지 못한 채 무시되거나 방치되어 있던 기진한 여자를 찾는다는 의미다.”

2013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영국 소설가 데버라 리비는 자전적 에세이 『알고 싶지 않은 것들』을 발표했다. 처음 출간되었을 때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에 대한 하나의 응답’이라는 부제가 붙기도 한 이 책에서 리비는 밝히지 않은 상처를 안은 채로 여성 작가의 자아라는 문제를 성찰했다. 활발히 소설 집필을 이어 가던 와중 그는 이 자전적 에세이를 ‘생활 자서전’(living autobiography) 3부작으로 확장했고 2018년에 둘째 권인 『살림 비용』을 출간했다. 『살림 비용』은 출간 후 “회고록이자 페미니즘 선언”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가디언』이 뽑은 ‘21세기의 책 100권’ 중 하나로 이름을 올렸고, 2020년에는 『알고 싶지 않은 것들』과 함께 프랑스어로 번역되어 심사 위원이 전원 여성으로 구성되는 페미나상의 해외 문학 부문에서 수상하기도 했다. 그리고 전작 『알고 싶지 않은 것들』에 이어 이번에도 이예원 번역가의 작업으로 플레이타임에서 『살림 비용』 한국어판이 출간되었다.
50대에 들어선 지은이가 이혼한 직후 시점에서 시작되는 『살림 비용』은 사회적 보호를 빌미로 사회가 여성, 특히 어머니라는 존재를 두고 멋대로 품은 망상과 이들에게 가해 온 억압을 예리하게 파헤친다. 그 과정에서 지은이는 문학과 영화, 조각 등 여러 분야에서 활약한 앞선 세대 여성 작가들과 교감하는 한편 젊은 여성 세대에 희망과 연대를 표한다. 또 “타고난 초현실주의자”라는 평가답게 현재와 과거를 공존시키는 형식 실험을 통해 향수에 붙들리지 않고서 독자들을 새로운 삶으로 데려가고 있기도 하다.
이 자전적 이야기를 통해 그가 던지는 메시지는 “아직 쓰이지 않은 주연급 여성 캐릭터”를 발견해야 한다는 것이다. 『살림 비용』은 그런 캐릭터를 작품에서 형상화하려는 작가의 고민을 공유하는 에세이며, 나아가 지은이 자신이 현실에서 그런 여성이 되고자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담은 기록이다.
『살림 비용』은 『알고 싶지 않은 것들』에 이어 번역가 이예원이 한국어로 빚었다. 번역이 출발어를 도착어로 ‘옮겨 쓰는’ 행위임을 독창적인 문체로 증명해 온 옮긴이 덕분에 간결하면서도 암시적인 지은이의 산문이 생명력 넘치는 우리말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또 『알고 싶지 않은 것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책 말미에 소설가 네 명의 ‘후기’와 ‘추천의 글’을 수록했다.
2020년 현대문학상을 수상한 백수린은 ‘후기’ 「나로 존재하는 수고로움」에서 옥상 수도 동파와 할머니에 대한 기억을 매개로 가부장제 바깥에서 살림을 꾸려 가는 여성 작가의 분투라는 주제를 자신만의 색채로 변주하고 있다. 지은이 못지않게 새로운 여성 등장 인물을 모색하고 실험해 온 소설가 강영숙은 『살림 비용』이라는 텍스트의 요체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추천사를 기고했고, 한겨레문학상과 젊은작가상 등을 수상한 강화길은 지은이의 문장을 통해 에밀리 디킨슨, 버지니아 울프 같은 선배 여성 작가들을 다시 만나며 다진 각오를, 2021년 현대문학상 수상 작가 최은미는 “시간과 공간을 넘어 공동의 장에서 맞닿”는 언어의 기쁨을 담은 추천사를 보내 왔다. 지금 한국에서 가장 활발히 창작 활동을 벌이고 있는 여성 작가들의 문장은 『살림 비용』 한국어판에 더욱 생생한 숨결을 불어 넣어 주고 있다.

“다른 재능을 가진 새로운 주인공들을 찾을 때였다.”
50대에 들어선 여성 작가 데버라 리비,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되고자 과거에 작별을 고하다

2013년에 출간한 『알고 싶지 않은 것들』에서 40대의 데버라 리비는 “인생살이가 어지간히 고되고 내 신세와 전쟁하며 어디로 가야 할지 통 보이지 않아 막막해” 하다 에스파냐의 마요르카로, 이를 경유해 어린 시절을 보낸 아파르트헤이트 시기의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시간) 여행을 떠난다. 5년 후 발표한 후속작인 『살림 비용』에서 50대에 들어선 그는 20여 년간 함께한 남편과 막 이혼한 상태다. 하지만 전작에서와 마찬가지로 자세한 경위를 설명하지는 않는다. 대신 그는 가부장제의 손아귀에 붙잡혀 있었던 지난날 입은 손실을 헤아리며, 현실에서나 픽션에서나 새로운 여성성을 빚고 지어야 할 필요를 성찰한다.
이혼을 겪고 허름한 아파트로 이사한 다음 새로운 살림을 시작하는 여정을 기록한 이 책에서 지은이가 경험한 일화들과 회고하는 과거들은 가부장제에서 여성의 지위, 여성성의 문화적 정의를 중심으로 연결된다. 그는 종종 일상의 경험에서 관찰과 생각을 이어 나가다 젠더 관계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빛나는 문장으로 매듭짓는다.
세심한 관찰자인 지은이의 시야에 들어온 남자 상당수가 가부장제의 충실한 수호자다. 젊은 여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는커녕 말이 너무 많다며 무시하는 중년 남자, 와이프를 이름으로 부르지 않고 ‘와이프’라고만 지칭하는 기혼 남자, 부인을 절대 쳐다보지 않는 남편, 처음 만난 여자에게 시중을 요구하는 남자, 자신만이 세상의 주연이며 화젯거리여야 한다고 굳게 믿는 무수한 남자. 때로는 여자들마저도 가부장제에 중독돼 다른 여자를, 그리하여 자기 자신을 맹렬히 혐오하기에 이른다.
여자들은 가정에서 “손수 짓고 꾸린 가정집에서 정작 스스로는 겉도는 느낌과 대면”하며, 일터에서는 “21세기 이곳에서도 여자들의 신체는 하이힐과 짧은 치마 차림으로 일터에 오는 것이 곧 임파워먼트라고 우기는 여러 남자 상사에게 상상적으로 소유되고” 있다. 그렇기에 한 명의 작가이자 생활인, 엄마이자 딸인 지은이는 “다른 재능을 가진 새로운 주인공들을 찾”는 것이 무엇보다도 시급한 과제라고 느낀다.

“그래, 내가 아는 여자 중에 여성성이라는 유령을 복원시키고자 하는 이는 몇 되지 않았다. 게다가, 유령이 뭔데? 여성성이라는 유령은 허상이자 망상이자 사회적 환상이다. 연기하기에 매우 까다로운 인물이며, 그 역할(희생, 감내, 고통의 와중에도 발랄함을 잃지 않기)을 연기하다 끝내 이성을 잃고 만 여자도 수두룩했다. 그런 이야기라면 결단코 다시 듣고 싶지 않았다.” (78~79쪽)

한 대담에서 지은이는 『살림 비용』이 자신의 가장 정치적인 책이라고 밝혔다. 이는 이 책이 젠더 정치라는 첨예한 쟁점을 소재로 삼고 있고, 나아가 지은이 자신이 생활을 통해, 글쓰기를 통해 가부장제가 지어낸 이야기에서 발을 뺀 주연급 여성 등장 인물을 빚고자 단호히 결심했음을 생생하게 드러내 주기 때문일 것이다. 가부장제는 우리(특히 여성)를 상징적으로 보호해 줄지도 모르지만 그 대가로 우리는 사회의 정상성 서사에 종속된다. 그리고 『살림 비용』은 무엇보다도 여성성이라는 사회적 가면을 벗고자 결심한 여성들의 용기를 북돋는 책이다.

혼란스럽고도 기진맥진해 있으면서도
유머와 활력으로 가득한 새로운 시작

이혼 후 그는 정신없이 바쁘다. 두 딸과 함께 다른 집으로 이사하면서 과거의 삶 및 기억과 작별을 고해야 하고 살림(생계와 가사 모두)을 도맡아야 하며 그러는 와중에도 글쓰기를 이어 가야 하기 때문이다. 지은이가 인용하는 키르케고르의 말마따나 “인생은 뒤로만 납득될 수 있다. 하지만 살기는 앞으로 살아야 한다”.
이 새로운 삶은 온통 불안정하다. 하나의 삶에서 다른 삶으로 옮겨 가다 보니 리듬과 규모가 완전히 달라진다. 자신의 생활비를 벌어야 할 뿐 아니라 두 딸을 양육해야 하기에 집 안과 밖을 오가며 끊임없이 분주히 움직여야 한다. 딸들과 이사 온 언덕 위 아파트는 낡은 것도 모자라 난방과 배관마저 말썽이다. 가장 치명적인 변화는 좁은 아파트로 이사하는 바람에 글 쓸 공간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서점을 운영하는 친구 실리아의 호의로 헛간을 빌려 그곳을 집필실 삼는다. 그가 절절한 깨달음으로 고백하듯 “자유는 결코 공짜가 아니다. 자유를 쟁취하고자 분투한 사람치고 그에 수반하는 비용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살림 비용』은 이처럼 새로운 시작에 관한 책이다. 그 과정은 고되기 그지없고 낙담의 연속이다. 하지만 아무리 힘겹더라도 새로운 삶은 언제나 묘한 흥분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그래서 지은이의 글에는 뜻밖에도 유머와 활력이 가득하다. 그는 친구의 조언을 듣고 침실 사벽을 노란색으로 칠하지만 이성을 잃을 지경이 돼 다시 하얗게 되돌린다. 이른 아침에 나이트 가운 차림으로 세면기 배관을 혼자 수리하다 샤먼이 된 기분을 느끼고는 그에 대한 고찰에 빠져든다. 전기 자전거를 구입해 로드 레이지에 휩싸인 채로 도로를 질주한다. 비가 퍼붓는 날 저녁에 닭을 사고 자전거로 언덕 위를 오르다가 하필 가방이 열려 내용물이 죄다 바닥에 쏟아지고 닭은 로드킬까지 당한다. 그럼에도 그 닭을 요리해 딸과 친구, 딸 친구들과 왁자지껄한 저녁 시간을 보낸다.
이 일화들은 독특하기보다는 살림을 책임지게 된 여성이라면 종종 겪는 공통적인 경험이다. 소설가 백수린이 ‘후기’에서 말하듯 지은이의 경험을 읽고 있으면 그를 “조용히 응원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이런 고군분투가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글을 쓸 자유, 가부장제 바깥에서 다른 형태의 공동체를 꿈꿀 자유, 누구누구의 아내나 엄마가 아니라 내 이름으로 존재할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내가 기꺼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라는 사실에 공감하면서. 이렇게 자신의 경험을 매개로 지은이는 독자들에게 “아무런 가치도 없는” 가부장제의 “보석들에 손을 뻗느니 검고 푸르스름한 어둠을 두 발로 통과해 지나”자고 초대하고 있다.

앞선 세대와 대화하고 젊은 세대에 연대를 표하다
스스로를 주연으로 여기고 살아가고자 하는 여성들을 위한 책

중년에 이른 지은이의 경험과 관계는 앞선 세대와 후속 세대를 잇는 연결 고리가 된다. 세대별로 여성의 삶과 생각에 차이가 생기는 건 당연하지만 이를 인식하는 것만큼이나 우리는 세대 간의 연대 가능성을 확보해야 하며, 이들 모두를 각자 삶의 주연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살림 비용』에는 주어진 역할을 거부한 여성들의 이야기가 종종 등장한다. 삶에서 또 책으로 지은이와 관계 맺은 이 여성들이 이 책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
먼저 어머니가 있다. 이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의 사망까지 겪은 지은이는 이를 계기로 어머니란 존재를, 그리고 자신의 어머니를 반성적으로 회고한다. 거의 모든 인간에게 어머니는 자신과 가장 가까운 존재며,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우리는 어머니를 무시하고 조롱한다. 우리는 우리가 어머니를 미워하더라도 어머니는 우리를 이해해 주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며, 어머니가 자기 자신의 모습에 가까워질 때면 우리를 버렸다고 여긴다. 자신도 어머니가 된 지은이는 사회가 어머니에게 요구하는 역할이 그토록 모순적임을 이제는 이해하며, 특히 자신의 어머니가 “삶에 있어 나보다 용감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어머니를 회상하는 대목들은 이 책에서 가장 강렬하고도 가슴 아픈 부분으로, 책 말미에 지은이는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말을 걸어 감사 인사를 전하면서 자신은 어머니보다 더 가차 없이 살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지은이에게 영감을 주는 여성 작가들(그뿐 아니라 새와 식물 같은 비인간 존재들)이 있다. 그는 “여성 억압의 역사가 얼마나 만연하고 강도 높으며 불가사의한지” 폭로한 시몬 드 보부아르의 사유와 삶을 성찰하며, 어머니라는 존재가 “우리가 만난 사람 중에서 언제나 가장 희한하고 제정신이 아닌 사람”일 수밖에 없음을 지적한 마르그리트 뒤라스에게 끊임없이 돌아간다. 「누런 벽지」를 쓴 샬럿 퍼킨스 길먼은 “남자와 아이의 안위와 행복을 우선 순위로 두어 오던 가정집이라는 동화의 벽지를 뜯어낸다는” 이 책의 전체 모티프를 선취한 소설가다. 또 지은이는 조각가 바버라 헵워스와 루이즈 부르주아의 사진을 냉장고 문에 붙여 두고 “손수 발명한 형상을 조각의 형태로 침착하게 다듬는 과정에서 두 사람이 보여 준 특유의 주의력”을 닮길 열망한다.
다른 한편 그는 젊은 여성들이야말로 “내 이야기에 딱 맞는 독자”라고 상상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젊은 여성은 모두 새로이 시작하기로 용기 낸 이들이다. 이 책의 주제 의식을 요약하는 첫 장면에서 지은이는 콜롬비아의 한 레스토랑 옆자리에서 스무 살 전후의 여자가 “자유를 누릴 ‘자기’부터 확보하려 고군분투”하고 있음을 눈치챈다. 지은이에게 자신의 글을 읽어 봐 달라고 요청한 재능 넘치는 제자는 다른 용감한 여자들처럼 “자기 가정집의 벽지를 뜯어내고 그 자리에 드러난 헐벗은 벽돌 사이로 손을 집어넣은” 참이다. 인터뷰를 위해 탑승한 프랑스행 유로스타의 옆 좌석에는 청소년기의 지은이처럼 “머리 스타일로 많은 걸 표현하고” 있는 젊은 여자가 탄다. 무엇보다도 “삶에 미치고 삶에 열광하는” 10대 딸과 그 친구들이 있다. 지은이는 이들이 “세계를 구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렇게 지은이는 앞선 세대와 대화하고 후속 세대를 독자로 상상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책에서 여성들은 세대별로 분리된 존재보다는 자기 삶에서조차 각자를 조연으로 머물도록 만든 사회를 거슬러 스스로를 주연으로 이해하고 살아가고자 하는 존재로 이해된다. 그러므로 ‘추천사’를 쓴 강영숙을 말처럼 “『살림 비용』은 젊은 여성들을 위한 글, 새롭게 시작하는 여성들을 위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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