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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상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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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규격外
ISBN-10 : 899311983X
ISBN-13 : 9788993119831
조선상고사 중고
저자 신채호 | 역자 김종성 | 출판사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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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28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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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rmfjseofj rhosg ckstmqslek 5점 만점에 5점 jnl*** 2020.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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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하루만에 도착했어요! 감사합니다:) 5점 만점에 5점 tldkqh*** 2020.09.07
82 상태도 매우 좋고 새책같아요 5점 만점에 5점 apfhel*** 2020.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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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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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폐되었던 고대사의 진실을 담아내다! 『조선상고사』는 독립운동으로 10년 실형을 받고 뤼순감옥에서 투옥 중이었던 신채호가 1931년 6월부터 10월까지 《조선일보》에 '조선사'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글을 엮은 책이다. 지난 1천 년 간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축소되고 은폐되었던 고대사의 진실을 담았다. 원문을 현대어로 바꾸고 오류를 바로잡는 한편 해설과 주석을 별도로 추가해 고대사의 참모습을 보여주어 독자들의 쉬운 이해를 도왔다.

이 책은 단군, 기자, 위만, 삼국으로 이어지는 기존의 역사인식 체계를 부정하고 대단군조선, 삼조선, 부여, 고구려로 이어지는 새로운 역사인식 체계를 수립한다. 또한 신라의 중심에서 서술된 《삼국사기》를 비판하며 하나의 민족이라는 관점에서 신라, 백제, 가야를 균등한 시각에서 기록한다. 이는 불완전한 역사를 제대로 서술하고자 하는 신채호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며 이제까지 《삼국사기》로 소외됐던 백제에 대해서 자세히 알게 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저자소개

저자 : 신채호
역사가이자 언론인이며 독립운동가다. 본관은 고령(高靈)으로 1880년 충청남도 대덕군에서 출생했다. 호는 단재(丹齋), 가명은 유맹원(劉孟源)이다. 어려서부터 조부에게 한학을 배웠으며 18세 때 성균관에 입학하여 26세가 되던 1905년 성균관박사가 되었다. 그해 《황성신문》의 기자가 되었고, 이듬해 《대한매일신보》의 주필이 되었다. 1907년 항일비밀결사인 신민회에 참여했고 시론, 논설 등을 쓰며 애국계몽운동과 항일언론운동을 펼쳤다. 또한 〈독사신론〉을 포함한 역사관계 논문과 다수의 영웅전을 써서 민족의식과 독립정신 고취에도 힘썼다. 1910년 신민회 동지들과 중국 칭다오로 망명한 후 민족교육과 항일운동에 전념하는 한편 답사와 저술 등을 통해 상고사 연구에 힘썼다. 1919년 상해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했으며, 1927년 신간회 발기인으로 활약했다. 1928년 4월 무정부주의동방연맹대회에 참석한 그는 5월, 타이완에서 체포되어 다롄으로 이송되었다. 1930년 10년형을 선고받고 뤼순감옥으로 이감되었으며, 1936년 옥중에서 뇌일혈로 순국했다.

역자 : 김종성
성균관대학교 한국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사학과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월간 《말》 동북아 전문기자와 중국사회과학원 근대사연구소 방문학자로 활동했다. 또 문화재청 산하 한국문화재재단이 운영하는 《문화유산채널》(구 《헤리티지채널》)의 자문위원과 심사위원으로 활동했다. 《오마이뉴스》에 〈김종성의 사극으로 역사 읽기〉와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등을 연재하고 있으며 웅진씽크빅의 《생각쟁이》에도 글을 실었다. 《문화유산채널》에 명사 칼럼을, 《민족 21》 등에 역사 기고문을 연재했다. 삼성경제연구소 Seri CEO에서 기업인들에게 한국사를, 삼성인력개발원에서 외부 강사로 삼성 신입사원들에게 역사를 강의했다. 기독교방송(CBS)의 〈김미화의 여러분〉과 교통방송(TBS)의 〈송정애의 좋은 사람들〉(구 〈오지혜의 좋은 사람들〉)에서 역사 코너에 출연했고, 지금은 불교방송(BBS)의 〈아름다운 초대〉에 출연하고 있다.
저서로 《역사 추리 조선사》, 《당쟁의 한국사》, 《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패권 쟁탈의 한국사》, 《신라 왕실의 비밀》, 《조선 노비들》, 《조선을 바꾼 반전의 역사》, 《왕의 여자》, 《한국사 인물통찰》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발해고》 등이 있다.

목차

제1편 총론

제2편 수두시대
제1장 고대 조선 총론| 제2장 대(大)단군왕검의 건국 | 제3장 수두의 전파와 문화의 발달

제3편 삼조선 분립시대
제1장 삼조선 총론 | 제2장 조선 분립 이후의 신조선 | 제3장 삼조선 분립 이후의 불조선 | 제4장 삼조선 분립 이후의 말조선 | 제5장 삼조선 붕괴의 원인과 결과

제4편 열국쟁웅시대(중국과의 격전시대)
제1장 열국 총론 | 제2장 열국의 분립 | 제3장 한무제의 침입 | 제4장 계립령 이남의 두 신생국

제5편(一) 고구려의 전성시대
제1장 1세기 초반 고구려의 국력 발전과 그 원인 | 제2장 태조대왕·차대왕 두 대왕의 문치 | 제3장 태조대왕·차대왕의 한족 축출과 고토 회복 | 제4장 차대왕의 왕위 찬탈 | 제5장 차대왕의 피살과 명림답부의 집권 | 제6장 을파소의 재상직 수행

제5편(二) 고구려의 중쇠(中衰)와 북부여의 멸망
제1장 고구려의 대(對)중국 패전 | 제2장 고구려와 선비족의 전쟁

제6편 고구려·백제의 충돌
제1장 고구려·백제 관계의 유래 | 제2장 근구수왕의 무공과 고구려의 위축(백제의 해외정벌) | 제3장 광개태왕의 서진정책과 선비족 정복 | 제4장 장수태왕의 남진정책과 백제의 천도

제7편 남방 제국의 대(對)고구려 공수동맹
제1장 4개국 연합군의 전쟁과 고구려의 퇴각 | 제2장 백제의 북위 격퇴와 해외식민지 획득

제8편 삼국 혈전의 개시
제1장 신라의 발흥 | 제2장 조령·죽령 이북 10개 군의 쟁탈 문제 | 제3장 동서(同?) 전쟁

제9편 고구려의 대(對)수나라 전쟁
제1장 임유관 전투 | 제2장 살수 전투 | 제3장 오열홀·회원진 양대 전투와 수나라의 멸망

제10편 고구려의 대(對)당나라 전쟁
제1장 연개소문의 서쪽 여행과 혁명 | 제2장 요하 전쟁 | 제3장 안시성 전투

제11편 백제의 강성과 신라의 음모
제1장 부여성충의 위대한 전략과 백제의 영토 개척 | 제2장 김춘추의 외교와 김유신의 음모 | 제3장 부여성충의 자살 | 제4장 신라·당나라 군대의 침입과 백제 의자왕의 체포 | 제5장 백제 의병의 봉기(부여복신의 역사) | 제6장 고구려의 당나라군 격퇴와 백제 의병의 융성(부여복신의 역사) | 제7장 부여복신의 죽음과 고구려의 내란

책 속으로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 시간적으로 전개되고 공간적으로 펼쳐지는 정신적[心的] 활동 상태에 관한 기록이다. 세계사는 세계 인류가 그렇게 되어온 상태에 관한 기록이고, 조선사는 조선 민족이 그렇게 되어온 상태에 관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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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 역사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 시간적으로 전개되고 공간적으로 펼쳐지는 정신적[心的] 활동 상태에 관한 기록이다. 세계사는 세계 인류가 그렇게 되어온 상태에 관한 기록이고, 조선사는 조선 민족이 그렇게 되어온 상태에 관한 기록이다. 무엇을 ‘아’라 하고 무엇을 ‘비아’라 하는가? 깊이 파고들 것 없이 쉽게 말하면, 주관적 입장에 선 쪽이 ‘아’이고 그 이외는 ‘비아’다. _ 21쪽, 〈제1편 총론〉 중에서

기원전 10세기경부터 대략 오륙백 년간은 대단군 조선의 전성시대였다. 《수문비고》에서는 청나라 직예성 영평부에 있었던 고죽국도 조선 종족이라고 했다. 고죽국 왕자인 백이·숙제 형제는 왕위상속권을 헌신짝처럼 버렸다. 그들은 오늘날의 섬서성에 있었던 주나라를 여행하다가 무왕에게 반전론을 열렬히 역설했다. 이 외에, 양자강·회수 유역으로도 조선인들이 대거 이주하여 소왕국을 많이 건설했다. 그중에서 서나라 언왕이 두각을 보이고 인의를 실천하니, 중국 36개국이 서나라에 조공을 바쳤다. 이상은 조선 본국이 아닌 식민지에서 나온 한두호걸의 행적이다. _ 113쪽, 〈제2편 수두시대〉 중에서

기존 역사서에서는 삼조선 분립 사실을 빠뜨렸을 뿐 아니라 삼조선이란 용어를 단군·기자·위만의 세 왕조로 잘못 해석했다. 삼조선은 신·불·말, 세 한이 분립한 것으로, 신한은 대왕大王이고 불한과 말한은 부왕(副王)이었다. 삼한이 삼경에 각각 주재하며 조선을 통치했다는 점은 제2편에서 이미 설명했다. 삼조선은 삼한이 분립한 뒤 이들을 구별하기 위해, 신한이 통치하는 곳은 신조선, 말한이 통치하는 곳은 말조선, 불한이 통치하는 곳은 불조선이라 했던 것이다.(중략) 한(韓)은 국명이 아니라 왕의 칭호였다. 삼한은 삼조선을 나누어 통치한 세 명의 대왕이고, 삼조선은 삼한 즉 세 왕이 각각 통치한 세 지방이었다._ 121~122쪽, 〈제2편 삼조선 분립시대〉 중에서

위씨가 망한 뒤에 한나라는 진번·임둔·현토·낙랑 네 개 군을 설치했다. 4군이 어디에 있었는가 하는 문제는, 삼한의 연혁에 관한 문제에 뒤지지 않는 조선 역사상의 쟁점이다. 만반한·패수·왕검성 같은 위씨의 근거지는 지금의 해성·개평이었다. 지금의 개원 이북은 당시에는 북부여 땅이었다. 지금의 흥경 동쪽은 고구려 땅이었다. 지금의 압록강 이남은 낙랑 땅이었다. 지금의 함경도 내지 강원도는 동부여 땅이었다. 따라서 이 네 지역 밖에서 한사군을 찾아야 한다. 그러므로 한사군은 요동반도 안에서 찾아야 한다. _ 193쪽, 〈제4편 열국쟁웅시대〉 중에서

조선 역사에서 바다 건너에 영토를 둔 때는 백제 근구수왕과 동성대왕의 두 시대뿐이다. 동성대왕 때는 근구수왕 때보다 훨씬 더 넓었다. 《구당서》 〈백제 열전〉에서는 백제의 영토에 관해 말하면서 “서쪽으로 바다 건너 월주(越州)에 도달하고 북쪽으로 바다 건너 고려에 도달하며 남쪽으로 바다 건너 왜국에 도달한다”고 했다. 월주는 지금의 회계(會稽)다. 회계 부근이 모두 백제의 소유였다. 《문헌비고(文獻備考)》에서 “월나라왕 구천의 옛 도읍을 둘러싼 수천 리가 다 백제 땅”이라고 한 것도 이것을 가리킨다. ‘고려’는 당나라 사람들이 고구려를 지칭하는 명사였다. 고구려의 국경인 요서의 서쪽 즉 지금의 봉천성 서부는 백제의 소유였다. 《만주원류고》에서 “금주·의주·애혼 등지가 다 백제”라고 한 것은 바로 이를 가리킨다. ‘왜’는 지금의 일본이니, 위에서 인용한 《구당서》의 구절에 의하면 당시의 일본 전역이 백제의 속국이었음이 분명하다. 백제는 이 같은 해외 식민지들을 언제 잃었을까? 성왕 초년에 고구려에 패하고 말년에 신라에 패해 국세가 약해졌으니, 이때 해외 식민지를 거의 다 잃었을 것이다. _ 320~321쪽, 〈제7편 남방 제국의 대(對)고구려 공수동맹〉 중에서

후세 사람들은 살수 전투가 거의 전적으로 을지문덕의 작전이었던 것처럼 말한다. 또 을지문덕이 고작 수천 명의 병력으로 수나라 수백만 대군을 격파한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멸망 당시에 고구려의 상비군은 30만 명이었다. 그러니 영양대왕의 전성기인 을지문덕 당시에는 30만 명이 넘었을 것이다. 또 “왕이 직접 수군을 거느렸다”고 한 광개토태왕릉비문이나 “고구려가 거란과 함께 우리의 해상 경비병들을 죽였다”고 한 수양제의 선전포고문에서는 고구려 수군의 존재가 드러난다. 따라서 수군도 대략 수만 명에 가까웠다고 볼 수 있다. 30여 만 명 중에서 몇 만 명은 남방의 백제와 신라를 막는 데 투입되고, 그 나머지 20여 만 명이 수나라에 맞서 싸우는 전사가 되었을 것이다. 수륙대원수는 당연히 영양대왕이었다. _ 394쪽, 〈제9편 고구려의 대(對)수나라 전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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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 이 책은 우리 고대사의 참모습을 찾고자 노력한 신채호의 역작, 현대적 해설과 주석으로 새롭게 탄생하다! 《조선상고사》는 독립운동으로 10년 실형을 받고 뤼순감옥에서 투옥 중인 신채호가 1931년 6월부터 10월까지 《조선일보》에 〈조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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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우리 고대사의 참모습을 찾고자 노력한 신채호의 역작,
현대적 해설과 주석으로 새롭게 탄생하다!
《조선상고사》는 독립운동으로 10년 실형을 받고 뤼순감옥에서 투옥 중인 신채호가 1931년 6월부터 10월까지 《조선일보》에 〈조선사〉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글을 엮은 것으로, 신채호가 순국한 지 12년이 지난 1948년에 출간되었다. 단군시대부터 백제부흥운동까지를 다루고 있으며, 제1편 총론, 제2편 수두시대, 제3편 삼조선 분립시대, 제4편 열국쟁웅시대(중국과의 격전시대), 제5편(一) 고구려의 전성시대, 제5편(二) 고구려 중쇠와 북부여의 멸망, 제6편 고구려·백제 충돌, 제7편 남방 제국의 대(對)고구려 공수동맹, 제8편 삼국 혈전의 개시, 제9편 고구려의 대(對)수나라 전쟁, 제10편 고구려의 대(對)당나라 전쟁, 제11편 백제의 강성과 신라의 음모 등 모두 11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조선상고사》 원문은 지금의 우리말과 큰 차이가 있어 내용을 이해하며 읽는 것이 쉽지 않다. 또한 신채호의 기억력에 의지한 부분이 많아 연도나 명칭 등에 오류가 다소 있다. 이 책은 《조선상고사》 원문을 현대어로 바꾸고, 명백한 오류를 바로잡는 한편, 원문에 없는 해설과 주석을 별도로 추가함으로써 독자들이 보다 쉽고 정확하게 신채호의 글을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 출판사 서평

지난 1천 년간 역사가들이 감추고 축소한
우리 고대사의 진실을 규명하다!
신채호는 ‘역사는 역사 이외의 다른 목적 때문에 기록해서는 안 되지만’ 우리 상고사는 ‘작자의 의도에 따라 많은 사실 관계가 달라진’ 불완전한 역사라 규정한다. 특히 묘청이 유교도 김부식에 패배한 이후 이 땅에는 유교도가 득세하게 되었으며, 그 영향으로 중국을 높이고 스스로를 낮춰 역사를 서술하는 경향이 지배하게 되었다고 단언한다. 이는 신채호가 ‘유교도 김부식’과 그가 서술한 《삼국사기》를 비판하는 주된 이유다. 또한 “내란의 빈발과 외적의 출몰이 우리나라 고대사를 쓰러뜨리고 무너뜨렸다”는 안정복의 의견에 대해 “내란이나 외환보다는 조선사를 기록하는 사람들의 손에 의해 조선사가 쓰러지고 무너졌다”고 밝힌 까닭이기도 하다. 이에 신채호는 그 당시 “현존하는 서적들을 갖고 장단점을 파악하고 대조”하여 1천 년 이상 역사에서 의도적으로 배제되거나 축소된 우리 고대사를 바로잡고자 했다. 신채호가 《조선상고사》에서 《삼국사기》에서는 찾을 수 없는 단군의 시대를 많은 부분 할애해 서술하고, ‘대중국 투쟁’의 선봉에 선 고구려의 역사를 중요하게 기록한 것 등은 ‘작자의 의도로 사실 관계가 달라진 불완전한 역사’를 제대로 서술하고자 한 그의 의지가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대단군조선, 삼조선, 부여, 고구려로 이어지는
새로운 역사인식 체계를 수립하다!
《조선상고사》에서 신채호는 단군, 기자, 위만, 삼국으로 이어지는 기존의 역사인식 체계를 부정하고, 대단군조선, 삼조선, 부여, 고구려로 이어지는 새로운 역사인식 체계를 설립했다. 훼손된 단군의 시대를 재조명함으로써 고조선이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이었음을 명확히 규명했으며, 동부여와 북부여의 역사를 서술함으로써 두 나라를 우리 민족의 근원으로 포함시켰다. 한사군이 한반도 북부에 존재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한사군은 한반도가 아닌 요동반도에서 찾아야 한다’고 일축했다.
신채호의 새로운 역사인식 체계는 삼국시대 서술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신채호는 김부식의 《삼국사기》처럼 신라 중심으로 서술된 상고사를 개탄하며, 그 대신 하나의 민족이라는 관점에서 고구려와 백제, 가야, 신라 등의 역사를 균등히 기록하고자 노력했다. 《삼국사기》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된 백제가 《조선상고사》에서는 부여와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로 중요하게 서술된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다.

‘역사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
일제강점기, 한국사 연구를 통해 독립투쟁을 계속하다!
“역사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에 관한 기록이다”는 《조선상고사》의 머리말 격인 총론에 나오는 명제다. 신채호는 계속해서 “‘비아’를 정복하여 ‘아’를 드높이면 투쟁의 승자로서 미래 역사의 주도권을 잡게 된다. 반면에 ‘아’가 파멸되어 ‘아’가 ‘비아’에게 바쳐지면 투쟁의 패자로서 역사의 흔적 정도로 그치고 만다”고 강조한다. 즉, “조선 민족이 그렇게 되어온 상태(아와 비아와 투쟁해온 상태)에 관한 기록”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신채호는 우리 역사를 우리 민족인 ‘아’가 ‘비아’인 다른 민족과의 투쟁의 과정으로 인식했다. 이와 같은 ‘역사는 투쟁의 과정’이라는 인식은 일제강점기 당시, 신채호가 행한 다양한 독립투쟁 활동의 사상적 근간이었다. 또한 신채호는 《조선상고사》를 통해 “기대와 달리 승자가 아니라 패자가 되는 사람들이 항상 생겨나는” 까닭을 역사로 살펴봄으로써 ‘지금’을 경계하고 ‘훗날’을 준비하고자 했다. 신채호에게 한국사 연구는 독립투쟁의 또 하나의 방편이었던 셈이다. 이와 같은 신채호의 역사 인식과 시대 인식이 담겨 있는 《조선상고사》는 복잡한 국제정세 속에 현재와 미래를 고민하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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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

회원리뷰

  • 모든 학문이란 나를 찾고자 하는 욕구의 발현이다. 과학과 그 언어인 수학, 철학과 문...

    모든 학문이란 나를 찾고자 하는 욕구의 발현이다. 과학과 그 언어인 수학, 철학과 문학, 예술과 역사가 모두 그것을 추구한다. 나도 그렇다. 그 탐구의 여정에 또 하나의 빼어난 길잡이를 붙여 주신 신채호 선생님께 감읍한다.

    한 장 한 장 읽으면서 이것이 바로 '천재'로구나 하는 감탄을 거듭했다. 또한 천재가 해야 할 일이란 바로 이런 게 아니겠는가 생각했다. 일제의 침략에 맞서 민족의 독립을 위해 좌고우면, 생각만 아니라 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을 미루거나 피하지 않은 분, 자신의 재능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 지 알고 실천하신 분이었다. 사료를 구하기도 어려울 옥중에서 많은 것을 기억에 의지하면서도 아득하고 광대한 고대사를 이렇게나 논리적으로 서술할 수 있었다는 건, 실로 천재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으리라. 따라서 그의 천재는 나와 우리 민족의 천재이기도 하며 인류의 그것이기도 하다.

    “역사란 무엇이뇨? 인류 사회의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 시간부터 발전하며 공간부터 확대하는 심적활동의 상태의 기록이니 세계사라 하면 세계 인류의 그리 되어 온 상태의 기록이며, 조선사라 하면 조선 민족의 그리 되어 온 상태의 기록이니라.”
    하신 말씀 안에 왜 그 많은 역사적 기록들이 소실되었으며 남은 역사들마저  곳곳에서 같은 사실을 다르게 전하고 있는지에 대한 답이 들어있다. 철저하게
    我들의 관점과 의도로 기록되고 남겨진 역사들을 지금의 我는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해야 할 지를 알려주셨다.

    토기보다 중요했던 빗살무늬가 왜 세계 곳곳의 고대 문명에서 유사한 형태로 발견되었겠는가? 어딘가에서는 야자수를, 멀리 떨어진 곳에서는 소나무를 보면서 보고 있는 我와 보여지는 非我의 다름이 무언지를 거듭거듭 생각하다가 마침내 찾지 못한 나와 같은 我들은 무수히 많았으며 여전히 많지 않겠는가? 나를 찾기 위해 내가 아닌 것들을 지워버리려 했던 역사는 결국 나를 찾는 길을 더욱 험하게 만들어 놓았다. 코스모스를 향해 99.99% 동일한 유전자의 긴 팔을 더욱 늘려가는 호모사피엔스는 이제 그들의 역사를 쓸 줄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작은 눈을 키워준 또 하나의 명저에 대한 깊은 감사와 함께 책을 덮으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진실로 무엇이뇨? 어디서 왔고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느뇨? 내 곁에 나 아닌 것은 또 무엇이뇨?"
  • 이 책을 읽으면서 비로소 한국인이 되었다. 사대에 쩔어 있는 가면을 벗고 진짜의 모습을 보았다. 역사의 오물을 어찌 다 걷어 ...

    이 책을 읽으면서 비로소 한국인이 되었다. 사대에 쩔어 있는 가면을 벗고 진짜의 모습을 보았다. 역사의 오물을 어찌 다 걷어 낼 수 있겠는가마는 우리의 인식은 바꿀 수 있다. 신채호를 사랑하겠다. 나는 그의 광 팬이 되기로 했다. 위안부 문제가 이슈가 되고 있다. 각자의 마음에 이 책을 꽂아드리고 싶다.

    우리 후손이 해야할 일은 그의 미진했던 역사찾기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악마가 다시금 이빨을 드러내고 있다. 의식의 향상이 있었야 한다. 다같이 일어서야 한다. 우리의 터전을 잃으면 삶도 박살나기 때문이다.

    이 책 만큼 나를 뿌듯하게 해준것은 없었던것 같다. 그렇다고 이 나라에서 나에게 해꽂이 할 사람이 있을까? 있다면 더이상 이 나라에 살 이유가 없겠지.

  • 조선상고사 | wn**ldud | 2015.01.17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조선상고사   역사란 무엇인가? 조선상고사를 저술한 신채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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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상고사

     

    역사란 무엇인가? 조선상고사를 저술한 신채호는 역사를 아와 비아와의 투쟁이라고 한다. 주관적인 ‘아’가 있으면, 대립적인 ‘비아’가 있기 마련이다. ‘아’에 대한 ‘비아’의 접근이 빈번해질수록 ‘비아’에 대한 ‘아’의 분투도 더욱 더 맹렬해진다. 아와 비아의 투쟁이 시간적으로 전개되고 공간적으로 펼쳐지는 정신적 활동 상태를 따라서 역사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아’가 역사적인 ‘아’가 되려면 두 개의 속성이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첫째는 시간성으로 ‘아’의 존재는 시간적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둘째는 공간성으로, ‘아’의 영향력이 공간적으로 파급되어야 한다

     

    같은 행위일지라도, 어느 것은 ‘아’가 되고 어느 것은 ‘아’가 되지 못하는 것일까? 김석문이 지동설을 지오다노 부르노 보다 300년 먼저 주장했다고 해서, 그러한 사실이 ‘아’가 될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아니다. 브루노의 학설은 유럽 각국의 탐험 열기를 이끌고 신대륙의 발견을 앞장서게 만들었지만, 김석문의 학설은 그렇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결국, ‘아’의 성립 요건은 시간성과 공간성을 갖추어야 하는 것이며, 인류의 것이라 할지라도 사회적 행위일 때만 역사적 행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개인적인 행위가 역사적인 기록이 될 수 없듯이, ‘아’ 역시도 ‘비아’가 되지 않으려면, 시간과 공간에서 파급력을 갖추어야 한다. ‘아’는 주관적 입장에 선 쪽이라고 신채호 선생은 서술하는데, ‘아’를 단순히 계급, 국가, 민족에 한정해서는 안 된다. ‘아’는 배타성을 갖춘 것(계급, 국가, 민족)을 갖춘 것 뿐만 아니라, 인류의 공존까지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아’는 주관적 입장에 선 쪽 이기 때문에, 이것은 ‘아’의 입장은 어디까지나 주관적 입장에 그칠 뿐 객관적 입장이 될 수 없음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신채호 선생은 ‘아’ 속에 ‘아’와 ‘비아’가 있으면, ‘비아’ 속에서도 ‘아’와 ‘비아’가 있음을 강조했다. 이것은, ‘아’와 ‘비아’와의 공존을 인정한 것이다. 조선상고사는 민족주의적 사관에 입각해서 쓴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이라는 ‘아’를 설정해서 쓴 저술이므로, 신채호 선생을 단순히 민족주의자라고 여겨서는 안 된다. 그는 민족주의라기보다는 무정부주의자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조선상고사는 우리민족인 ‘아’에 대해서 어떻게 서술하였는가? 신채호 선생은 과거 고대사에 대해 사라진 사료에 대해 아쉬워했다. 역사란 승자의 역사라는 말이 있듯이, 승자들이 ‘아’가 되어버리면, ‘비아’에 대한 기록들을 날조 및 생략하거나, 언급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생긴다. 이러한 세태에 대해서 비판하면서, 신채호 선생은 묘청의 서경천도 운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이다. 사대파 김부식이 자주파 묘청을 숙청하고, <삼국사기>를 편찬한 것은 고대사를 정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고대사를 청소하기 위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이 책에서는 과거 고조선 시대부터, 우리가 알고 있는, 고구려, 백제, 신라라는 삼국시대 역사를 다루고 있는데,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기 전까지의 역사가 서술되며 미완성으로 종료된다. 이 책은 ‘아’가 되어 서술하지 않은 것과 그에 따라서 ‘비아’로 남게 된 역사를 재조명하고 있다. 또한 신채호 선생의 개인적인 평가와 역사에 대한 총론을 담고 있다.

     

    앞서서 신채호 선생이 인정했듯이, ‘아’가 되더라도 ‘비아’와 함께 공존해야지, ‘비아’에 대해 날조하거나, 생략해서는 안 된다. 그런 고대사의 모습을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신채호 선생은 고구려 및 백제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소서노를 최초의 여왕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러한 주장이 흥미롭다. 소서노가 죽은 뒤 두 아들인 비류와 온조가 미추홀과 위례성을 도읍으로 정하고 새롭게 백성들과 살아간다. 우리는 소서노가 고구려의 시조인 주몽의 부인 인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주몽의 친자식인 유리왕의 어머니인 예씨가 나타나게 되자, 비류와 온조는 소서노와 함께 떠나게 된다. 신채호 선생은 소서노를 단순히 두 자식의 어머니로만 여기지 않고 왕으로 본 여러 가지 이유를 설명한다.

     

    첫째로, 소서노의 지위가 단순히 왕의 어머니에 그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둘째로, 소서노의 죽음이 정치적인 죽음이었고 그것이 도읍 천도의 원인이었다는 점이다. 셋째로 소서노가 죽을 당시에 소서노와 온조의 관계가 안 좋았다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고대 동아시아에서는 자기 거처보다는 부모의 사당을 먼저 세우는 것이 상식이었다. 이런 상식을 위반한 인물은 통치자의 정당성을 얻기 힘들었다. 하지만, 온조는 이러한 상식을 위반한 채 소서노가 죽자마자 도읍을 옮기고 새로운 궁궐을 지었다. 이러한 종합적인 요소를 볼 때, 신채호 선생은 소서노가 우리 역사상 최초의 여왕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또 다른 부분을 들면서 이 독후감을 막을 내리려 한다. 신채호 선생의 연개소문이라는 인물에 대한 평가이다. 신채호 선생은 혁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과 연개소문이라는 개인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서술한다.

     

    P464

    연개소문의 공적에 대한 평가

    기존 역사가들은 ‘성공했나 실패했나’ 또는 ‘흥했나 망했나’라는 기준으로 사람의 우열을 판단하거나 유교적 윤리관으로 사람의 시시비비를 판단했다. 연개소문의 경우에는, 본인은 성공했지만, 불초한 자식들이 유업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그래서 춘추필법을 흉내 내는 사람들은 연개소문을 배척하고 연개소문을 흉적으로 몰며 모독과 치욕을 가했다.

     

    혁명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역사적 진보의 의의를 가진 변화를 수반하는 것이다. 역사란 것은 어느 날 때고 변화하지 않는 경우가 없으니, 어느 날 어느 때고 간에 혁명 없는 순간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전체 역사를 다 혁명의 역사라고 해야 하지만, 역사가들은 혁명이란 어휘를 특히 중시하여 문화적, 정치적으로 시대를 구획할 만한 진보적 의의를 가진 인위적 대변혁을 혁명이라고 정의한다. 이런 의미의 정치적 혁명가를 찾자면, 우리 조선 수천 년 역사에서 이런 사람은 몇 명 되지 않을 것이다. 한양의 이씨가 송도의 왕씨를 대체한 것과, 이씨 조선의 이시애, 이괄 등이 반란을 일으킨 것은 외형상의 성과 다르지만 두 가지 다 정권찬탈을 위한 행위에 불과하다. 이런 것들은 내란이나 역성이라고 부를 수 는 있어도 혁명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하지만 연개소문은 다르다. 그는 봉건 세습적인 호족 공화제를 타파하고 정권을 한 곳에 집중함으로써 분권적인 국면을 통일적인 상태로 바꾸었다. 또 반대파는 군주든 호족이든 불문하고 죄다 소탕했다. 그는 영류왕을 비롯해서 수백 명의 관료들을 주살했다. 또한 침략해온 당태종을 격파했을 뿐 아니라, 이를 추격하여 중국 전역을 진동시켰다. 그는 혁명가의 기백을 가지는 데 그치지 않고, 혁명의 능력과 지략까지 갖추었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그는 죽기 전에 지혜롭고 유능한 사람을 자기의 후계자로 만들지 못했다. 그래서 조선 만대의 행복을 유지하지 못했다. 불초한 자식들에게 대권을 맡기는 바람에 결국 성과를 무너뜨리고 말았다. 그는 야심은 많았지만 덕은 부족했던 것 같다. 하지만 역사 기록이 없는 탓에 오로지 적국의 붓으로 전해지는 기록만을 갖고 연개소문을 논평해야 하기 때문에, 그에 관한 사실의 전말을 종합적으로 파악할 수는 없다. 점 하나로 전모를 논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노예적인 사대주의 역사가들은 좁쌀과 팥알처럼 작은 자기 눈알에 보이는 대로 연개소문을 수백 년간 혹평해왔다. 그들은 ‘신하는 충성으로써 군주를 섬겨야 한다’는 불완전한 도덕률로 그의 행위를 탄핵하고 ‘대국을 섬기는 소국은 하늘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노예적 심리로 그의 공적을 부인했다. 이런 식으로 역사 인물의 시체를 한 점 살도 남지 않도록 씹어버린 것에 대해 나는 통한한다.

  • 우리 역사가 한반도 이남으로 축소되고 국한 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일제의 제국주의 식민지 시기를 거쳤기 때문에?...

    우리 역사가 한반도 이남으로 축소되고 국한 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일제의 제국주의 식민지 시기를 거쳤기 때문에?

    이씨 조선의 사대주의 때문에?(고조선 역시 조선이기에 '이씨 조선'이라 적음)

    '통일'운운 하며 당나라와의 협잡으로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키고 한반도로 만족한 신라 때문에?

     

    앞서 적은 여러 '때문에'들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어찌 해볼 수 없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일어난 일이다.

    하지만 그 온갖 '때문에'를 핑계 삼아 '투쟁하는데' 게을렀던 이유로 현재의 억압되고 강요된 역사관과 민족관에 갇히게 되었다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다.

    우리는 국사를 배운다. 정말 '간신히' 배운다

    그 간신히 배우는 수준이라는 게 결국 '문제에 답을 적기 위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우리 역사를 가장 멋드러지게 흐트린 세력은 우스꽝스럽게도 한국인 사학자들이다

    일본 제국주의 식민사관에 입각한 연구와 조사, 학설과 이론을 철저하고 흔들림 없이 발전시켜 온 것이 흔히 '주류'라 불리는 사학자들인 것이다

     뭘 모르는 나도 그들의 문제 하나 정도는 지적할 수 있다. 고등학교 때 배운 '삼국시대'인 이유가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다.

    그 이유는 "'고구려', '백제', '신라'는 연맹왕국 단계를 지나 강력한 왕권을 구축했기 때문에 '국가'로 인정되지만 '가야', '옥저' '삼한' 등은 연맹왕국 수준에 머물렀기에 삼국에 포함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납득할 수 없는 이유인데도 그때는 시험에 나오는 문제에 답을 적기 위해 외우고 다녔으니 웃음만 난다.

     

    기원 전, 100~200년 사이에 절대적인 왕권을 구축한 국가가 전 세계에 몇 개나 될까?

    그 나라들이 하나같이 자신들의 '국가' 성립을 부정하고 나선다면 얼마나 우스울까?

    가까운 예로 중국을 들어보면 노자가 '도덕경'을 적었던 시기 그러니까 '소국과민(所國寡民)'을 외치던 때에도 그들은 '국가'였다

    이제 국사 교과서의 이론이 얼마나 터무니 없는지 느껴지기 시작했을까?

     

    학교에서 배웠던 우리 역사 '국사(國史)'에는 신채호가 주장하는 혹은 증명하고 있는 역사를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우리 역사가 이렇게까지 축소되고 왜곡되어 있다는 것을 '현실'로 마주하고 나면 그 몸서리쳐짐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른다.

     

    우리 역사에는 유난히 외침이 잦고, 전쟁이 많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그 오랜 역사 속에 세워지고 스러진 나라의 흔적, 즉 역사의 부재를 설명하기 어렵다고 신채호는 말한다. 오히려 그 역사의 흔적을 없이 한 것은 전 왕조를 미워한 다음 왕조가 전 왕조의 것이라면 기록에서 건축까지 하나 남김 없이 부수고 흩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다.

    가까운 예로 지난 해 춘천에서 발굴된 '선사 유적지''레고랜드'에 밀려 방치되고 훼손되어 가는 일을 들 수 있다

    '수천 년의 역사가 확실하지도 않은 수백 억의 수익에 밀려 지워지는 나라' 그것이 우리의 역사 의식이고 현황이다.

     

    <조선상고사>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 책은 철저하게 역사를 고증하고 있는 책이다.

    결코 민족주의자나 국수주의자의 편협한 시각이나 아전인수 격의 가져다 붙이기, 작위적인 해석을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어떤 사학자보다 더 합리적인 결론을 이끌어 내고 있으며 그것을 위한 노력으로 여러 사서의 내용을 비교하고 검증하여 신뢰도가 가장 높다고 '확신하는' 사료를 선택하고 있다

    우리 역사에 유리한 자료라도 그것이 합리적이지 않다면 유보하거나 채택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그런 점에서 신채호 선생이 제대로 된 사료도 갖춰지지 않은 중국에서 집필을 하고, 뤼순감옥에서 숨을 거둔 일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시중에 <조선 상고사>는 여러 권 출간되어 있다.

    역사의 아침의 <조선 상고사>는 가장 최근에 번역, 발간된 것으로, 한자가 낯선 세대를 배려한 듯 본문에 한자의 표기가 적고, 한자어를 풀어 적어 이해를 도우려는 시도를 하고 있으며, 역자주가 많고 상세해 신채호 선생의 착각이나 오류를 바로 잡기도 하고 부족한 사료를 더하기도 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같은 이유로 불편함도 느껴지는데

    첫 째로 한자의 표기를 지나치게 지양한 탓에 의미를 파악하기 어렵게 한 점. 더하여 한자말로 적지 않아도 될 부분을 한자말로 적어 이해를 어렵게 한 점.

    둘 째로 양력 표기에 치중해 음력으로 표시된 본문의 내용을 여러 차례 바꿔 혼란을 야기한 점.

     

     231쪽 주 86 : <조선상고사> 원문에서는 "기원 121년 정월"이라고 했다. 이것은 신채호가 음력을 양력으로 환산하는 과정에서 실수를 범한 결과다

     -> 본문을 '서기 1212월에서 3월 사이'로 고쳤는데, '정월'이라는 표현은 '음력'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양력으로 환산하는 과정'을 거쳤다고 볼 수 없을 것 같다. 이런 이유로 본문의 음력 표기를 모두 양력으로 고친 점은 지나쳤다고 본다.

     

    셋 째로 본문 속 '오류'로 보이는 내용을 여러 차례 고쳐 적은 점(스스로도 확증하지 못한다는 주의 내용을 보면 결코 본문을 바꿀 일이 아니라 주에 설명으로 적는 것으로 그쳤어야 했다).

     303쪽 주 111 : '서진'이라는 표현이 원문에는 '북진'으로 되어 있다. 신채호는 고구려가 몽골이나 중국을 공격하는 것을 북진이라고 했다. 하지만 고구려의 입장에서 볼 때 그것은 서진이나 서남진이었다. '북진'이란 표현은 한반도 남부에 사는 사람의 관점을 반영한 것이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북진'대신 '서진'으로, '남북''서남'으로, '북수남진''서수남진'으로 표기했다.

     - >가장 지나치다고 여겨지는 부분이다. 역자는 '북진''한반도 남부에 사는 사람의 관점'이라고 보지만 고구려가 비록 북쪽에 있다고 해도 고구려의 영역보다 더 북쪽으로 중국의 대륙과 여러 민족, 국가가 있던 것이 사실이고 고조선의 영역 역시 고구려의 영역보다 넓었다고 봐야 한다면(부여의 영역을 포함하므로) '북진'이라는 표현은 자연스럽다고 본다. 오히려 '서진'이나 '남진'이라고 고쳐 적는 것이 우리의 인식을 가두는 일이라고 보여진다.

     339쪽 주 147 : <조선상고사> 원문에는 "아들"로 표기되어 있다.(본문에서는 역자가 '사촌형제'로 표기) 무령왕이 동성왕의 아들이라는 이야기는 <삼국사기> <백제 본기>무령왕 편에 근거한 것이다. 중략 <일본서기><웅략천황>에 따르면, 무령왕은 동성왕의 아들이 아니라 개로왕의 아들이라고 했다

     - ><일본서기>의 기록 하나만으로 본문을 고쳐 "아들"에서 "사촌형제"로 적은 것은 지나치다. 설사 그 근거가 '동성왕과 무령왕의 나이 차이가 그리 많지 않았음'이라고 해도 그것 역시 검증되지 않은 추측에 불과하므로 여기서는 저자의 의도를 따라 "아들"로 적었어도 괜찮았을 것이다.

     

    넷 째로 부가 설명이 본문의 흐름을 끊는 페이지에 배치된 점(이어지는 문장을 읽기 위해 적게는 한 페이지 많게는 서너 페이지를 오가는 수고를 끼쳐서는 불편함이 효용보다 크다).

    다섯 째로 연령과 연도 오탈자가 두 차례 이상 있었던 점.(심지어 주에 설명을 달고 고쳐 적는 부분이었다는 것에서 이해할 수 없다고 느꼈다).

     2417~8번째 줄 : 20년 봄 정월, 일식이 있었다. 3, 태조가 별궁에서 훙서했다. 나이 109세였다.

     -> <조선상고사> 원문에는 119.

     태조대왕이 차대왕에게 왕위를 넘겨준 것이 146년 태조 제위 94, 100세 되던 해였다. 차대왕 20년 봄이기에 태조가 죽은 건 19년 후다

     390쪽 주 207 : <조선상고사> 원문에서는 "기원 6016"이라고 했다. 수양제는 604년에 즉위했으므로, 이것은 틀린 연도다. (중략) 양력으로 환산하면 611414일이 된다.

     - ><조선상고사> 원문에는 6116월이라고 되어 있다. '대업 7'이라며 본문에 적고 주에 604년에 즉위했다고 했으니 단순히 더해도 611년인 것을 주에 설명으로 달면서 601년으로 적은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인쇄과정의 오탈자라고 할 수 있겠지만, 역시 이해하기 어렵다.

  •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 단재 신채호 - 최근에 이 말보다 대한민...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단재 신채호 -


    최근에 이 말보다 대한민국을 완벽히 설명하는 말은 없을 것이다. 국사과목이 필수과목에서 선택과목이 되어버리고 자라나는 세대들은 3.1운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야스쿠니 신사참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고 잘못된 역사관으로 이루어진 책이 교과서로 채택되고 이른바 지도자층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식민지 근대화론을 옹호하는 그런 대한민국... 신채호 선생이 지하에서 땅을 치며 울고 계실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사회를 이끌어나갈 계층중에 하나일터 작금의 이 실태를 보고도 그저 한탄만 할 뿐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전혀 모르는 어찌보면 어리숙한 사람 중 한명일 것이다. 

    올바른 역사관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다음세대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하는 것인지 모르면서 신세한탄만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더욱 이 책을 읽어봐야 한다. 누구보다 대한민국의 역사에 대해 그리고 올바른 역사관에 대해 노력하신 신채호 선생의 책을 말이다.


    이 책은 국사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유명한 책이다. 솔직히 나는 이 책이 마치 신라시대 화랑세기마냥 이름만 남고 책은 존재하지 않는 그런 류의 책이라 생각했다. 신채호 선생이 옥중에 저서하신 책이고 일본검열이 존재하는 치명적 시기였기 때문에 그 분의 올바른 뜻을 전해주는 원본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엮은이 역시 그 점을 우려하며 말했다. 검열로 인해 삭제된 부분이 있어 그 부분은 그대로 담아둔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조선상고사는 앞서 말한것처럼 신채호 선생이 옥중에 계실때 지필하신 역사책이다. 놀랍지 않은가? 저서를 옥중에서 그것도 소설 같은 부류가 아닌 그 어떤 책보다 고증과 사료가 필요한 역사책을 말이다. 

    신채호 선생의 지식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 책의 구성은 단군시대부터 백제 부흥 운동까지를 담고 있다. 그야말로 상고시대의 역사를 다룬 것이다. 역사는 기록에 의한 것인데 상고시대의 기록은 우리나라에는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그나마 고려시대로 들어서야 사료들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역사 다큐에서도 상고시대에 관해 많이 다루지 못한다. 그걸 증명할 사료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이 의미가 있다.

    그러나 엮은이가 말했듯이 이 책은 신채호 선생의 기억에 의존하는 부분이 크다. 때문에 사료에 대한 신빙성을 생각해보며 읽어야 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의 핵심은 역사를 말하는 본편이 아닌 앞에 등장하는 총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총론을 읽으면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며 인식해야하는지 신채호 선생의 구구절절한 말씀이 담겨져 있다. 특히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역사는 아와 비아의 끊임없는 투쟁'이라는 부분이 무엇보다 가슴에 깊이 다가왔다. 

    역사는 신채호 선생의 말씀처럼 역사가의 인식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보고 평가를 해야 한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


    우리의 역사는 반만년 아니 그 이상일 수 있는 깊고 오래된 역사이다. 그러나 그런 역사가 마치 기억의 단편들만 존재하는 것처럼 부분들만 존재한다. 더욱이 그렇게 남아있는 역사들을 제대로 보지 않으며 사람들마다 편협한 시각으로 역사를 대한다. 

    역사는 그래서는 안된다. 제 3자의 시선, 보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봐야지 거기에 주관적인 시각이 들어가버리면 역사는 그 시대의 역사가 아닌 그 사람만의 역사로 바뀌어버린다. 

    그래서 우리는 이 책을 더욱 읽어야 한다. 올바른 역사관이 무엇인지 그것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나를 비롯해서 내 주위에도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서 잘못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먹고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역사를 등한시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그런것마저 역사로 기록된다는 것을 우리는 잘 모르고 있다. 

    지금이라도 올바른 역사관을 인식하고 살아가보자.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애쓰신 많은 분들의 깊은 뜻을 아로새기며 살아가보자.

    지하에서 우리는 지켜보시는 많은 선조들의 눈물과 땀을 우리는 잊지 말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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