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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건축 중국건축 일본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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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0쪽 | 규격外
ISBN-10 : 8934970979
ISBN-13 : 9788934970972
한국건축 중국건축 일본건축 중고
저자 김동욱 | 출판사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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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2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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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책 상태 아주 깨끗하고 좋습니다! 5점 만점에 5점 jksbmn7*** 2019.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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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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닮은 듯 다른 한국, 중국, 일본의 건축이야기! 동아시아 삼국의 건축을 섬세하게 비교하고 그 아름다움을 톺아보는 건축 미학 에세이 『한국건축 중국건축 일본건축』. 이 책은 우리나라의 전통 건축을 동아시아의 범주 안에서 가능한 객관적인 시각으로 들여다보려고 시도했다. 우리 건축의 형성에 큰 영향을 준 중국 건축과의 공통점과 차이를 찾아보고 우리와 비슷한 전개 과정을 밟아온 일본 건축과 비교해보면서 한국 건축의 핵심을 찾아본다.

한중일 건축에서 나타나는 차이점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지붕과 난방시설이다. 유럽의 건물이 벽체의 외관 디자인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동아시아는 부드러운 곡선의 처마에 집중했다. 곡선도 처마뿐 아니라 넓은 지붕면 자체가 완만한 곡면이다. 이런 공통점 아래 제각각 특징도 있다. 중국 예원정자의 경우 꾸밈이 강하고, 날아오를 듯 지붕이 휘어져 있다면, 일본 신사지붕은 다소 밋밋한 곡선이다. 반면 한국의 문묘대성전은 기둥을 일직선상에 나란히 세우지 않고 가운데 쪽을 안쪽으로 살짝 휘어지게 해 건물 전체가 곡선을 이루게 한다.

또한, 우리의 난방이 구들이라면, 중국은 캉, 일본은 고다츠이다. 한반도에서 3-6세기에 흔히 보이던 구들과 비슷한 모습의 난방시설이 일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습기가 많고 상대적으로 따스한 기후 조건으로 구들은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이렇듯 한·중·일 난방시설은 어떻게 해서 서로 다르게 발전했는지 흥미진진하게 살펴본다.

저자소개

저자 : 김동욱
저자 김동욱은 고려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기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명예교수로 있으며 한국건축역사학회 회장,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건축물이 지어진 역사적 배경과 시대의 흐름에 관심을 가지고 건물의 외형보다는 당시 지식인들의 건축에 대한 생각, 건축을 짓는 데 참여한 장인들의 기술, 물질적인 여건 등을 통해 시대의 건축을 입체적으로 파악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 책은 한중일 건축의 공통점과 차이에 대한 섬세한 비교를 통해 동아시아 문화의 상호 교류가 이루어낸 눈부신 성과를 재조명하고 서로 간에 문화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쓰여졌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 《개정 한국건축의 역사》《조선시대 건축의 이해》《도산서당 선비들의 이상향을 짓다》《한국건축공장사연구》《실학 정신으로 세운 조선의 신도시 수원화성》《18세기 건축사상과 실천》《종묘와 사직》《창덕궁 깊이 읽기》(공저) 《영건의궤-의궤에 기록된 조선시대 건축》(공저) 등이 있고 주요 논문으로는 <조선 초기 경복궁의 공간구성과 6조대로> <현륭원의 입지선정과 원침계획에서 정조의 역할> <18세기 구 수원읍내 주민구성과 주택규모> 등이 있다.

목차

머리글
프롤로그 · 상호 교류를 통해 이루어낸 동아시아 건축의 성취

1. 나무로 짓는 집의 이점
왜 돌이나 벽돌이 아니고 나무였나?
기둥과 보로 집 짓기
단층과 중층
높이에 대한 도전
조선시대 목구조 기술의 쇠퇴
소나무에 편중된 조선 후기 건축
톺아보기 1 · 동아시아의 특이한 건물들

2. 부드러운 곡선의 미학, 지붕
3차원 곡선의 지붕은 어디서 왔을까?
한중일의 기와
무거운 짐을 진 지붕
송·원 이후 중국 건축의 지붕 변화
12세기 이후 일본에서 지붕의 변모
고식을 간직한 조선시대의 지붕 구조
처마 곡선의 득과 실
지붕의 장식
톺아보기 2 · 용마루가 없는 집, 무량각

3. 천변만화하는 목조건축의 백미, 공포와 화반
공포와 화반, 문화 교류의 징표
중국에서 공포의 출발
봉정사 극락전의 공포와 화반
공포가 전해주는 13, 14세기 동아시아 문화 교류의 양상
조선시대의 공포-포 식과 익공 식
화반에 나타난 조선 장인의 낙천성
톺아보기 3 · 원조만이 누릴 수 있는 자유, 중국의 공포

4. 고인돌에서 천상의 세계까지, 석조물
화강석의 문화
고대 석조 무덤의 상징성
석탑의 나라
돌로 재현한 목조의 세부-불국사 석축
천상의 세계를 구현한 영암사 석축
빛과 그림자의 물결-종묘 정전 월대
왕릉 정자각의 석조물
톺아보기 4 · 중국, 일본에 남아 있는 석탑

5. 구들과 확산과 좌식 생활, 난방시설
구들의 탄생
일본에 건너간 구들의 운명
전면온돌로 발전
온돌과 좌식 생활
좌선과 방바닥 구조
온돌과 마루의 위대한 결합
상류층에서 하층민까지
톺아보기 5 · 여러 가지 난방 방식

6. 바람이 불어오는 문, 창호
고대 동아시아 판문과 살창
중국에서 여닫이 창호의 발달
일본에서 미닫이 창호의 보급
부석사 무량수전의 들어열개 창
대청의 출입문-세살청판분합
톺아보기 6 · 창호지 이야기

7. 휘황찬란한 아름다움, 채색과 조각의 세계
중국 건축의 채색과 장식
고대 한반도와 일본열도의 채색과 조각 장식
폭발적인 장식의 유행-모모야마 스타일
고려·조선시대 건축의 채색
조선시대 건축의 조각 장식
톺아보기 7 · 동아시아인들이 사랑한 용 장식

8. 엄정성과 역동성 사이, 공간 배치와 누각
중국 건축의 배치 원리
지세를 중시한 9세기 이후 한반도와 일본의 건축
선종 사원의 중국식 배치 원리
조선시대 산지 사찰의 외부 공간
건축 배치의 정점-누각
톺아보기 8 · 주택에서 보는 외부 공간의 이모저모

에필로그 누각에 올라 바람을 느끼고 싶다
미주
참고문헌

책 속으로

살림집에까지 처마 곡선을 살리려고 한 자세가 극단적으로 나타난 것이 서울 가회동 북촌마을의 집들이다. 북촌마을 주택은 대개 1930년대에 와서 서울의 주택이 부족해지자 큰 집터를 잘게 쪼개서 작은 집을 여럿 지어 팔 목적으로 지은 소위 집 장사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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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집에까지 처마 곡선을 살리려고 한 자세가 극단적으로 나타난 것이 서울 가회동 북촌마을의 집들이다. 북촌마을 주택은 대개 1930년대에 와서 서울의 주택이 부족해지자 큰 집터를 잘게 쪼개서 작은 집을 여럿 지어 팔 목적으로 지은 소위 집 장사 집이다. 처마는 집 규모에 비해 과다하게 곡선을 이루었고 거기다 함석 차양까지 덧달아서 한층 휘어오르는 느낌을 강하게 했다. 한국 건축의 처마 곡선은 확실히 이웃한 나라들의 처마보다 멋이 있다. 그런데 세상일은 역시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는 법이어서 이런 멋진 처마를 유지하는 데 적지 않은 수고가 따랐다. 집 지을 때의 수고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고 이를 유지 관리하는 데도 지속적인 손길을 필요로 했다. 제일 큰 문제는 건축이란 것이 시대 흐름에 발맞추어 끊임없이 변화해나가는 것인데 그 부분에서 뒤처진 점이다. 집 짓는 과정에서 경제성이 큰 비중을 차지해나가는 역사적 흐름 속에서 한국 건축이 처마 곡선을 유지하느라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한국의 처마 곡선을 단지 아름답다고만 말하고 있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제2장 <부드러운 곡선의 미학, 지붕>에서

한국 건축의 개설서류에서 말하는 바로는 한국 건축의 공포 형식은 고려 말부터 있었던 주심포 식과 다포 식이 있고, 여기에 16세기 이후에 익공 식이 추가되는 것으로 이야기된다. 그런데 여기서 약간의 혼란이 발생한다. 왜냐하면 주심포 식과 익공 식은 둘 다 기둥 위에만 공포가 짜여지는 점에서는 동일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또 어떤 건물은 이것을 주심포 식으로 분류해야 할지 익공 식으로 해야 할지 구분이 모호한 경우가 제법 있다. 그 때문에 종종 한 건물을 두고 이를 주심포 식이라고 설명하는 책도 있고 익공 식이라고 적은 책도 나와서 혼란을 일으킨다. 내 생각으로는 시간 개념을 도입해서 보간포작을 갖춘 다포 식은 고려 말부터 조선 말까지 줄곧 존재해온 형식으로 보고, 기둥 위에만 공포가 짜여지는 것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 약 200년 동안은 주심포 식으로 존재하다가 16세기 이후로는 익공 식으로 대체된 것으로 정리하면 혼란이 없어질 듯하다. 더 나아가서 건축 형식의 분류를 공포만을 대상으로 해서 구분하는 방식에서 탈피해서 건물의 전체 짜임 방식에서 새로 출발할 필요도 있지 않나 생각된다. 앞으로의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제3장 <천변만화하는 목조건축의 백미, 공포와 화반>에서

박석은 얇은 돌이라는 뜻인데, 주로 넓은 궁궐 마당을 덮는 데 쓰이고 제사 지내는 사당에도 마당이나 임금이 지나는 길 위를 덮는 데서 볼 수 있다. 돌은 가로 세로 30~40센티미터 정도 크기이고 두께는 15센티미터 정도 된다. 돌은 규산염광물로 이루어진다고 하며 화강암은 실리카, 즉 규소와 산소의 화합물인 이산화규소를 다량 함유하고 있는데 그 색상은 기본적으로 희다. 따라서 이런 흰빛을 띤 화강석 표면을 너무 곱게 다듬어서 바닥에 깔게 되면 빛이 반사되어 눈부시게 되고 또 빗물이라도 표면에 남아 있으면 미끄러질 우려도 있다. 요즘 우리 주변에 이런 불편한 돌 표면이 적지 않다. 조선시대 석공들은 이런 문제를 잘 알고 있었던 듯해서 박석 표면을 일부러 거칠게 두었다. 박석의 크기도 일정하게 하지 않고 모양새도 제각각이다. 얼핏 보면 부실 공사이거나 일을 대충하고 마무리를 치밀하게 완성하지 않은 듯 보이지만 그 결과를 두고 보면 어느 것이 더 옳았는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석공들의 가슴에 담긴 천연스러움이 느껴진다. 완벽한 마무리에 매달리지 않고 재료가 갖는 속성을 숙지하여 가장 사람들에게 편안한 아름다움을 제공해주려는 미학이 담겨 있다.
-제4장 <고인돌에서 천상의 세계까지, 석조물>에서

일본의 옛 수도 교토의 서북쪽 교토시와 경계를 이루는 곳은 행정구역상 오츠현이다. 이곳은 5, 6세기경 한반도에서 건너간 고구려, 백제 사람들이 집단을 이루어 거주하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오츠현립박물관에는 한반도인과 관련된 유물이 상당수 전시되어 있기도 하다. 이 박물관 밖에 가면 큼직한 지붕을 씌운 야외 전시물이 눈에 띠는데 바로 이 지역에서 발굴된 외줄고래의 유적이다. 1 대 1 크기로 그대로 재현해놓은 유적은 길이가 약 4미터 정도 되며 약간 구부러진 고래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한반도에서 3~6세기에 흔하게 보는 구들 유적과 동일한 모습이다. 오츠는 7세기 중엽 임신년에 일어난 반란 사건으로 유명한 곳이다. 임신의 난이라고 하는 672년에 일어난 이 사건은, 텐치 천황이 죽고 한반도 이주 세력의 지지를 받으며 이곳을 근거지로 새로운 정치를 펼치려는 황태자에 대해서 아스카를 근거지로 삼은 구세력이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난은 반란에 충분한 대비를 하지 못한 황태자의 패배로 끝나고 일본의 정치 중심은 다시 아스카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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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동아시아의 독특한 건축유산에 대한 탐미적인 상상, 한중일의 건축을 세밀하게 비교하고 그 아름다움의 속살을 톺아보다 왜 세계에서 볼 수 없는 부드러운 3차원의 지붕 곡선이 동아시아에서 나타나는 것일까? 한옥의 자연스러운 처마 곡선은 단지 아름답기...

[출판사서평 더 보기]

동아시아의 독특한 건축유산에 대한 탐미적인 상상,
한중일의 건축을 세밀하게 비교하고 그 아름다움의 속살을 톺아보다


왜 세계에서 볼 수 없는 부드러운 3차원의 지붕 곡선이 동아시아에서 나타나는 것일까? 한옥의 자연스러운 처마 곡선은 단지 아름답기만 한 것일까? 한중일의 난방시설인 온돌과 캉과 고다츠는 어디가 어떻게 다를까? 공포?包의 원조인 중국 건축물이 보여주는 천변만화함은 어디서 연유한 것일까? 후시미성과 오사카성 등 일본 건축은 언제부터 극단적인 화려함을 뽐내게 되었을까? 마루에서 유식游息하던 선비와 고래 위를 거닐던 승려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동아시아 삼국의 건축을 섬세하게 비교하고 그 아름다움을 다시 톺아본 미학 에세이!

동아시아의 독특한 건축유산에 대한 탐미적인 상상,
한중일의 건축을 세밀하게 비교하고 그 아름다움의 속살을 톺아보다


여기에 세 건축물이 있다. 하나는 중국 상해 예원豫園의 정자, 또 하나는 일본 이즈모시의 이즈모타이샤出雲大社, 마지막은 한국 서울의 문묘 대성전. 이 세 건축물은 서로 다른 듯 닮아 있다. 중국 예원의 정자가 꾸밈이 강하고 날아오를 듯 지붕이 휘어져 있다면 일본 이즈모타이샤의 지붕은 약간 밋밋한 곡선을 보여준다. 이에 반해 한국 문묘의 대성전은 기둥을 일직선상에 나란히 세우지 않고 가운데 쪽을 안쪽으로 살짝 휘어지게 만들면서 건물 전체가 곡선을 이룬다. 이 책은 우리나라의 전통 건축을 동아시아의 범주 안에서 가능한 객관적인 시각으로 들여다보려고 시도한 것이다. 특히 우리 건축의 형성에 큰 영향을 준 중국 건축과의 공통점과 차이를 찾아보고, 또한 우리와 비슷한 전개 과정을 밟아온 일본 건축과 비교해보면서 한국 건축의 핵심을 찾아보려는 시도다.

부드러운 처마 곡선이 가져다준 득과 실

동아시아의 목조건물은 지붕이 건물에 비해 크고 하나같이 곡선을 이루고 있다. 동아시아 건축에서 지붕은 특별한 존재였다. 유럽의 건물이 벽체의 파사드, 즉 외관에 디자인의 초점을 맞춘 것과 대조된다. 이런 지붕 형식은 유럽이나 인도에도 존재하지만 동아시아 사람들에게는 그 의미가 남달랐다. 곡선도 단순히 처마만 곡선을 이룬 것이 아니다. 건립 시기가 오랜 건물의 경우에 지붕 곡선은, 처마는 물론 용마루, 내림마루 등 지붕의 윤곽을 이루는 모든 선들이 곡선으로 되어 있고 심지어는 넓은 지붕면 자체가 완만한 곡면을 그린다. 잘 눈에 띄지 않지만 처마의 곡선은 양 끝이 위로만 치켜 올라간 것이 아니고 앞뒤로도 곡선을 그리게 되는데, 가운데 부분이 안쪽으로 휘어지고 양 끝은 바깥쪽으로 휘어진다. 처마가 양 끝에서 위로 올라간 것을 앙곡이라고 하고 바깥쪽으로 휘어진 것을 안허리곡이라고 부른다. 앙곡과 안허리곡 탓에 지붕은 그야말로 3차원의 곡선을 이룬다.
한국의 경우에는 살림집에까지 처마 곡선을 살리려고 했다. 그것이 극단적으로 나타난 것이 서울 가회동 북촌마을의 집들이다. 북촌마을 주택은 대개 1930년대에 와서 서울의 주택이 부족해지자 큰 집터를 잘게 쪼개서, 작은 집을 여럿 지어 팔 목적으로 지은 소위 집 장사 집이다. 이런 집들은 비좁은 대지에 집을 최대한 압축시켜 방을 여럿 만들고 구조도 전통적인 방식을 흉내 내면서 간략하게 처리해 지었다. 그런데 이런 열악한 집에서 특별히 눈에 띄게 돋보이도록 한 부분이 지붕 처마이다. 처마는 집 규모에 비해 과다하게 곡선을 이루었고 거기다 함석 차양까지 덧달아서 한층 휘어오르는 느낌을 강하게 했다.
북촌마을 한옥의 지붕 처마는 조금 과장된 측면이 있지만 이것이 일반인들에게 한국 건축의 처마에 대한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세상일은 역시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는 법이어서 이런 멋진 처마를 유지하는 데 적지 않은 수고가 따랐다. 집 지을 때의 수고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고 이를 유지 관리하는 데도 지속적인 손길을 필요로 했다. 제일 큰 문제는 건축이란 것이 시대 흐름에 발맞추어 끊임없이 변화해나가는 것인데 그 부분에서 뒤처진 점이다. 집 짓는 과정에서 경제성이 큰 비중을 차지해나가는 역사적 흐름 속에서, 한국 건축이 처마 곡선을 유지하느라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한국의 처마 곡선을 단지 아름답다고만 말하고 있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포 식과 주심포 식과 익공 식은 어떻게 구분되는가?

우리 문화유산을 다룬 책들에는 주심포 식이나 다포 식 같은 용어들이 자주 나온다. 그러나 독자들 중에는 이 용어들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주심포 식과 다포 식을 구분하는 기준은 ‘공포’다. 공포란 밖으로 길게 내민 처마를 지탱할 목적으로 기둥 위에 짜여지는 작은 재목들의 총칭이다. 공포는 단일 부재가 아니고 ‘주두’라는 기둥 위에 놓이는 넓적한 받침재와, 앞과 옆 방향으로 팔처럼 뻗은 ‘첨차’라는 부재들과, 이들을 연결해주는 ‘소로’라는 작은 연결재로 이루어진다. 공포와 공포 사이에는 ‘화반’이라는 받침재가 놓인다.
동아시아 건축에서 공포가 차지하는 비중은 자못 크다. 특히 목조건축은 속성상 기둥이나 창문, 지붕 같은 부분에서 다른 건물과 구분되는 독창성이나 차이점을 만들어내기가 어렵다. 이렇게 볼 때 공포는 기술자들이 자신의 창의력이나 재주를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각 시대에 따라 표현 방식에 차이가 생기고 유행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곳도 공포다.
한국 건축의 개설서들에서는 고려 말부터 주심포 식과 다포 식이 있었고, 여기에 16세기 이후에 익공 식이 추가되는 것으로 주로 기술한다. 그런데 여기서 약간의 혼란이 발생한다. 왜냐하면 주심포 식과 익공 식은 둘 다 기둥 위에만 공포가 짜여지는 점에서는 동일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또한 어떤 건물은 이것을 주심포 식으로 분류해야 할지 익공 식으로 해야 할지 구분이 모호한 경우가 존재한다. 이 때문에 한 건물을 두고 이를 주심포 식이라고 설명하는 책도 있고 익공 식이라고 적은 책도 나와서 혼란을 일으킨다.
이 책에서 저자 김동욱 교수는 시간 개념을 도입하여 ‘보간포작補間包作(기둥 사이에 놓이는 간포)’을 갖춘 다포 식은 고려 말부터 조선 말까지 줄곧 존재해온 형식으로 보고, 기둥 위에만 공포가 짜여지는 것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 약 200년 동안 주심포 식으로 존재하다가 16세기 이후로는 익공 식으로 대체된 것으로 구획 정리를 한다. 나아가 건축 형식의 분류를 공포만을 대상으로 해서 구분하는 방식에서 탈피해 건물의 전체 짜임 방식에서 새로 출발할 필요가 있다는 문제 제기를 던진다.

동아시아인들이 사랑한 용 장식

한중일 동아시아 삼국은 수천 년간의 문화 교류를 통해 건축에서 다양한 영향을 서로 주고받았다. 동아시아 건축에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공통적 요소는 ‘용’이다. 중국에서는 이미 6,000년 전 유적인 산서성의 반파半坡 유적에서 용의 형상이 새겨진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후로 용은 중국의 제반 기물이나 건축에 등장했다. 중국 건축학자 러우칭시樓慶西에 의하면 자금성 태화전 한 건물에 묘사된 용이 무려 1만 2,654곳이라고 한다. 중국 건축에서 용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 보여주는 사례다.
우리나라도 용 장식으로는 중국에 버금간다. 용의 발톱은 보통 넷이나 다섯을 그리는데, 넷 발톱은 제후, 다섯 발톱은 천자를 나타낸다. 그런데 경복궁 근정전 천장에 매달린 용의 발톱은 7개나 된다. 뿐만 아니라 서민들이 즐겨 찾던 작은 절들에서도 용 장식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불전 중앙 기둥 상부에 있는 ‘안초공’이라는 돌출한 부재는 바깥은 용 머리로 조각되고 내부는 꼬리로 다듬어지며, 충량이라는 대들보에 걸쳐지는 측면 들보는 전체를 용 몸통으로 채색하고, 들보에 걸쳐지는 충량 끝도 용 머리로 새긴다. 해남 대흥사 천불전이나 화성 용주사 대웅보전을 비롯해 18세기 이후에 지어진 사찰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일본은 중국이나 우리나라에 비해 용 장식이 많지는 않지만 볼만한 용 그림들이 적지 않다. 압권은 교토 선종 사원 법당의 천장 그림이다. 묘신지妙心寺 법당은 직경 12미터가 넘는 천장 전체에 구름 사이 용이 채색화로 그려져 있다. 쇼코쿠지相國寺 법당의 운룡도도 유명하다. 이곳의 용 그림은 넓은 건물 천장 전체를 하나의 화폭으로 삼고 커다란 용이 눈을 부릅뜬 모습인데, 실내에 들어온 사람들의 움직임을 따라 용의 눈동자가 계속 따라다니는 듯한 시각적 효과를 준다.

한반도에서 건너간 구들은 왜 사라졌을까?

한중일 건축에서 나타나는 차이점 중 흥미로운 것은 난방시설이다. 우리의 난방시설이 구들이라면 중국은 캉, 일본은 고다츠다. 일본 오츠시립박물관에는 4미터 가량의 외줄고래(난방시설의 일종) 유적이 재현돼 있는데, 한반도에서 3~6세기에 흔히 보이는 구들과 동일한 모습이다. 오츠는 7세기 중엽 임신년에 일어난 반란 사건으로 유명한 곳이다. 임신壬申의 난이라고 하는 672년에 일어난 이 사건은, 텐치 천황이 죽고 한반도 이주 세력의 지지를 받으며 이곳을 근거지로 새로운 정치를 펼치려는 황태자에 대해서 아스카를 근거지로 삼은 구세력이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난은 반란에 충분한 대비를 하지 못한 황태자의 패배로 끝나고 일본의 정치 중심은 다시 아스카 지역으로 옮겨가게 되었으며, 이 사건 이후 오츠 지역에 뿌리내린 한반도 이주 세력은 정치적 힘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이 지역에서 활발히 조성되던 구들 시설도 자취를 감추었다.
일본에서 구들이 사라지게 된 데는 습기가 많고 상대적으로 따스한 기후 조건 탓도 있다. 구들은 실내의 습기 제거에 도움이 되지만 불을 넣지 않는 여름철에는 구들 내부에 습기가 차서 벌레가 끓거나 구들 벽이 쉽게 무너지는 결함을 안고 있다. 더군다나 오츠 지역은 비와코라는 큰 호수를 끼고 있어서 다른 곳보다 습기가 많은데다가 겨울철 기온도 한반도처럼 한랭하지 않다. 결국 이러한 기후 조건과 정치적인 요인이 동시에 작용하여 한반도 이주민에 의해 만들어지던 구들이 사라진 것이다.

엄격한 중국 공간, 자연스러운 한국 공간, 실내에 집중된 일본 공간

중국에서 나타나는 건축 공간 개념을 간단히 요약하면 ‘중축대칭中軸對稱 방정엄정적方正嚴正的 군체조합群體組合’이라 할 수 있다. ‘중축대칭’이란 중심축선상에 대칭으로 건물이 배열되는 것을 말하고, 전체적으로는 모든 건물들이 네모반듯한 틀 안에 엄격하고 바른 모습으로 여러 군체들이 조합을 이룬 것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이 표현에 가장 어울리는 건축물은 북경의 자금성이다. 과연 자금성은 중요한 전각들이 중심축선상에 일렬로 배열되고 나머지 무수한 전각들이 모두 한 방향으로 네모반듯한 질서 안에 수렴되어 군체群體가 조합을 이루었다고 할 만하다.
반면에 한반도에서는 일찍부터 산에 의지해서 생활하는 습성이 보편화되었다. 4, 5세기경 불교 전파 초기에는 절이 도성 주변에만 지어졌지만 7, 8세기경이 되면 성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이 과정에서 산의 지리 조건에 맞는 집 짓는 방식이 자리를 잡아갔다. 여기서는 굳이 중심축상에 건물을 배치할 필요도 없었고 또 그렇게 하기도 어려웠다. 자연히 건물 배치는 지세에 의존해서 불규칙하면서도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달라져갔다. 9세기는 이런 변화가 뚜렷이 정착된 시기이다. 부석사를 비롯해서 해인사, 화엄사, 통도사 같은 이름난 절들이 대개 이 과정에서 산의 지형 조건에 맞춘 건물 배치를 갖추어나갔다.
일본의 밀교 사원은 이름난 산악에 의지해서 수행처를 형성해왔으며 따라서 산지의 지형에 따른 건물 배치가 나타났다. 교토 북쪽 히에이잔比叡山 엔랴쿠지延曆寺나 나라 남쪽의 고야산高野山 등이 대표적인 수행처였다. 이들 사원은 정치적인 사건에 휘말려 소실을 거듭하는 바람에 본래의 모습을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지형 여건에 맞춘 건물 배치를 취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일본의 경우는 불전 내부를 내진과 외진으로 구성하고 때로는 내내진으로 세분하는 등 불전 자체의 실내 분할을 통한 다양한 기능 수용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 반면 건물 상호간의 배치 관계와 같은 외부 공간 구성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한 경향을 보인다.

누각에 올라 바람을 느끼고 싶다

자연과의 조화에 배려를 아끼지 않은 우리 장인들의 노력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건축은 누각 건물이다. 화왕산 깊은 골짜기에 있는 창녕의 관룡사는 지금도 찾아가기가 수월치 않지만 일단 이 절에 가서 원음각이라는 누각에 오르면 절을 찾느라 애쓴 피로가 한순간에 날아가는 듯하다. 눈앞에는 씩씩한 기상을 지닌 경상도의 산들이 펼쳐지고 어디선가 부는 시원한 바람은 솔향기까지 담아서 공해에 찌든 폐부를 맑게 청소해준다. 동아시아 어디를 가도 이런 건축의 감흥은 맛보기 어렵다.
20세기에 들어와 서양의 근대적 합리주의가 절대적인 가치를 인정받으면서 건축에서도 전체적인 틀보다는 규격화되고 정확하게 계산된 세부가 중시되고 합리성이 존중되었다. 그러나 21세기로 넘어가면서 이런 근대주의적 이념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다양한 얼굴을 가진 세부를 인정하고 이를 전체가 포용하는 것에 가치를 두려는 시도들이 나타나고 있다. 주변 환경을 고려하고 이웃한 사물들과 조화를 이룬 건축에 주목하는 움직임 또한 일어나고 있다. 이렇듯 한국 건축이 지닌 가치가 새삼 주목되는 여건 속에서 자못 기대가 커진다. 독자제현들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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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

회원리뷰

  • ϻ요즘 들어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사람들이 많다. 중국과 일본을 가면 자연스레 두 나라의 건...

    ϻ요즘 들어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사람들이 많다. 중국과 일본을 가면 자연스레 두 나라의 건축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분명 한옥과 비슷한 듯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구체적으로 그 차이가 어디에 있는 건지 그 답을 알지 못한 채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오곤 했다.
    우리에게 건축이란 무엇일까. 건축을 생각하면, 건물이 떠오른다. 그리고 저마다 자신에게 익숙한 건물들이 머리에 스칠 것이다. 그런데 그 건축물들 가운데 가장 잘 모르는 것이 있다면, 바로 우리나라 건축물이 아닐까. 우리나라 전통 건축물에 대해 잘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고궁, 사찰을 종종 다니며 종종 해설을 들었지만 좀처럼 우리나라 건축물에 대해 설명할 자신이 없다.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 건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 한옥은 어떤 것일까? 우리나라 한옥은 동아시아 다른 국가들과 어떻게 다를까?

    내가 『한국건축 중국건축 일본건축』을 읽은 이유는 호기심 때문이었다. 한옥 건축만의 특징을 알고 싶었다. 건축 분야에 대한 관심은 원래 많은 편이었고, 타전공 수업인 '서양건축사'와 '실내건축디자인사'등을 듣기도 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건축 혹은 동양 건축을 제대로 다룬 수업은 듣지 못했다. 우리나라 건물은 어떤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져 왔는지 그 맥락이 궁금했다. 단순히 하나의 건축물에 대한 해설이 아니라, "한옥의 흐름"을 이해하고 싶었다. 이따금 해외 여행을 갈 때면, 이 호기심은 높아졌다가, 귀국과 함께 사그라들었다.

     


    꽤 오랫동안 묵어 있던 호기심에 불을 붙인 건, <알쓸신잡2>였다. 
       

     

     


     <알쓸신잡 2>의 유현준 교수는 첫 여행지 안동에서 우리나라 한옥 건축의 지붕에 대해 설명한 부분을 인상 깊게 보았다. 한옥 지붕의 부드러운 곡선이 알고 보면 우리나라 기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설명과 함께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아름다움'이 우리의 생활과 닿아 있다는 이야기를 확인하며, 우리나라 건축의 맥락을 확인하고 싶었다. 이렇게 우리나라 한옥에 담긴 이야기를 잘 정리된 책을 찾다가 알게 된 책이 바로 『한국건축 중국건축 일본건축』이었다.


    『한국건축 중국건축 일본건축』은 우리나라, 중국, 일본의 건축 특징을 정리한 책이다. 보통 건축에 대해 다룬 책은 건축물 하나하나에 집중한다. 혹은 건축물이 밀집되어 있는 공간에 주목한다. 『한국건축 중국건축 일본건축』은 기존의 건축 관련 책과 사뭇 달랐다. 건축물이란 콘텐츠보다 건축물들이 계속 바뀌어온 컨텍스트에 집중한 책이기 때문이다. 책 제목이 『한국건축 중국건축 일본건축』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만약 왕궁, 사찰, 고택에 집중했다면 '건축'이 아니라, '건축물'이라고 했을 것이다. 건축이란 두산백과(네이버 검색)에 따르면 "사람이나 물품 ·기계설비 등을 수용하기 위한 구축물의 총칭으로, 용도라는 목적성에 적합하여야 하며, 적절한 재료를 가장 합리적인 형식을 취하여 안전하게 이룩되어야 하는데, 그 요소는, 예술적 감흥을 목표로 하는 공간형태, 진실하고도 견실한 구조기술, 편리성과 유용성으로서의 기능이다."라고 한다. 건축물은 건축의 일부이며 건축을 이루는 것들은 우리의 생각보다 더욱 포괄적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다. 『한국건축 중국건축 일본건축』은 단순히 한국 건축, 중국 건축, 일본 건축을 나열하여 비교하는 책이 아니라 국가마다 비슷한 듯 다른 건축물이 만들어졌던 이유에 주목한다. 그리고 그 이유를 건축 자재, 기후, 역사적 배경, 각국의 특징을 함께 정리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우리나라, 중국, 일본 건축물을 비교한 책을 기대한 사람이라면 실망할 수 있다. 하지만 건축에 대한 책을 조금 들여다본 사람은 건축의 컨텍스트를 다룬 책만이 풀어낼 이야기가 얼마나 흥미로울지 알 것이다. 
      
    『한국건축 중국건축 일본건축』은 건축을 다룬 책이며 동시에 동아시아 역사를 다룬 책이라 할 수 있다. 만약 동아시아 역사를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읽는다면 조금 더 쉽게 책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동아시아 사를 잘 모른다해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기초적인 역사 지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건축의 시작은 대부분 "중국"에서 시작되었다. 중국에서 만들어진 축조 기술이 한반도를 거쳐 섬 나라 일본에 전해지는 과정을 밟는다. 그리고 각 지역에 적합한 방식으로 건축물을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유현준 교수가 방송을 통해 설명한 지붕의 곡선미라고 할 수 있다.


    건축의 경우에도 중국식의 대칭적인 배치 원칙을 따르지 않고 한반도의 지리적 조건을 살려 자연에 어울리는 건물의 배치나 형태를 취하려고 노력하였다. 이런 자세는 건축의 세부에 까지 확대되어 고려의 건축은 중국과는 일정한 차이를 지닌, 개성이 뚜렷한 형태를 갖추었다.

     

    이처럼 중국의 건축 방법을 들여왔지만, 이를 완벽하게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것으로 변형하는 과정에서 각 국가는 개성있는 건축물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이 과정이 가능했던 이유에 대해 저자는 "고대 동아시아 문명의 특징은 활발한 문화 교류, 그중에도 사람들이 직접 왕래하는 인적 교류를 통한 문화 교류"를 꼽았다. 한국과 중국, 일본은 10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활발한 교역을 하였다. 문화 교류를 통해 우수한 기술이 전해지고, 발전하였다. 여기서 중국의 왕조가 어떤 입장을 취했느냐에 따라 한반도의 건축 문화는 영향을 크게 받았다. 명나라와 청나라가 다른 나라와 문화교류에 소극적인 입장을 취하자, 조선 역시 다른 나라와의 문화 교류에 대해 폐쇄적인 입장을 취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유교의 문화적 영향력 하에 있었기 때문에 화려하거나 웅장한 건축 기술이 발전하지 못했다. 조선 시대에서 실용적 기술들이 높이 평가를 받지 못했는데, 건축도 다르지 않았다. 그 결과 조선시대 건축은 이전 시대에 이루어온 건축 축조 기술을 보다 아름답고 완결성 있는 단계로 격상하였으나 500년간 이 단계에 멈추었다는 점은 아쉬운 점이다.

     

    ϻ
    동아시아에 목조 건축이 발전한 이유

    서양 건축물은 돌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대부분 성은 거대한 암석을 쪼개어 쌓아 올린 투박한 형상을 가지고 있거나, 정교하게 조각한 석조 건축물들이 눈에 띈다. 나는 서양의 목조 건축물이 좀처럼 생각나지 않는다. 반면에 동양 건축물은 석조 건축물도 있지만, 나무가 핵심 소재인 목조 건축물이 많다. 왜 동양 건축물은 목조로 만들어진 것이 많을까? 왜 돌로만 만든 건축물은 많지 않을까?

     

    저자는 비교적 짧은 건축 시간, 부드러운 나무의 속성이 보다 다양한 건축물을 만들 수 있게 한 점, 신전과 같은 건물을 필요로 하지 않은 문화적 속성 등을 꼽았으며, 동양 건축의 시작을 열었던 중국인들의 건축에 대한 세계관이 깊이 반영된 결과였다.  "1,000년 지속하는 집을 지을 수 있다. 그러나 100년 후에 누가 살게 될지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조화를 이룬 한정된 집에, 이를 감싸는 즐겁고 안락한 장소를 만들면 충분하다."라는 글에서 알 수 있듯이, 동양에서 보편적인 건축 개념은 오늘날 건축 개념과 달랐다. (이 부분을 읽으며, 그래서 우리나라는 30년만에, 50년만에 재건축을 하는 아파트를 원하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아주 잠깐 했다.)


    동양에선 대부분 단층 건물을 지었지만, 현대적 건축 재료인 철근과 콘크리트가 나오기 전까지 돌보다는 나무가 고층의 건물을 짓기에 부족함이 없었으며, 거대한 규모의 건축물도 충분이 만들 수 있었음을 한중일 건축물을 통해 짚어준다. 아쉽게 그 터만 남아 있지만, 황룡사 9층 목탑의 위용은 경주 타워로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동양은 목조 건축을 이용해 시대의 필요성에 맞게, 시대의 미적 기준에 맞게 다양한 형태의 건축을 시도했다. 아쉬운 점은 1,000년을 지속하는 돌을 이용한 서양의 건축물과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은 동양의 수많은 목조건축물을 충분히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이 아쉽다.

     

    목조 건축이 주를 이루었던 동양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건 지붕이었다. 서양 건축물만의 독특한 입면만큼이나, 동양 건축에서 지붕의 곡선은 굉장히 상징적이다. 한중일 지붕은 비슷해보이는 것 같지만 조금씩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다. 그중에 일본의 지붕 구조가 독특하다. 일본은 온난한 기후와 잦은 지진으로 인해 중국과 우리나라와 다른 지붕 구조를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건축은 횡방향에서 기둥을 붙잡아주는 대신에 상부의 무거운 지붕이 내려 누르는 힘을 가지고 기둥의 안정화를 꾀했다. 따라서 지붕을 가볍게 하면 오히려 위에서 눌러주는 힘이 적어져서 구조적으로 불안정해질 우려를 느꼈을 수도 있다."  중국과 우리나라는 지붕에 많은 양의 흙을 올리고, 암기와와 수기와를 이용하는 반면에 일본은 이 두 가지 기와를 합쳐 지붕에 자신만의 기와를 얹었다. 처음에는 일본 건축의 주요 특징으로 시작되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기둥을 일직선상에 나란히 세우지 않고 가운데 쪽을 안쪽으로 살짝 휘어지게 하는 것은 철근 콘크리트로 집을 짓는 현대건축에서는 상식적으로 도저히 생각하기 어려운 것이지만, 과거의 목조건축 세계에서는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 원인은 안쪽으로 휘어진 지붕 처마의 곡선과 건물의 벽면이 서로 자연스러운 조화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한 데 있다. 그만큼 과거의 건물에서 지붕의 곡선은 평면 자체를 변화시킬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했다.

     

    특히 동아시아 3국 중에 우리나라 건축물에서 지붕에 부여하는 의미 정도가 남달랐다. 그리고 가장 아름다운 지붕의 곡선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아름다운 지붕 곡선을 가지게 된 과정은 마냥 아름답지 않다. 우리나라의 지붕이 아름다운 이유는 고려시대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같은 형태의 지붕을 고집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리나라 건축은 고려시대나 조선 말이나 지붕 구조에서 혁신적인 변화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해도 좋을 듯하다."라고 말한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다른 형태를 시도하거나 혁신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조선시대의 문화 자체가 다양한 건축 기법을 시도할 만큼 대규모 건축물을 짓는 일이 적었고, 그런 일을 시도하는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반면에 같은 시기의 일본은 전국시대가 막을 내리고 막부 시대가 들어섬에 따라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공고화하기 위해 화려한 성을 축조하였고, 이 시기에 일본 건축은 꽃을 피웠다. 오사카성의 화려함에서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한국 건축의 처마 곡선은 확실히 이웃한 나라들의 처마보다 멋이 있다." 우리나라 건축물이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중국 지붕이나, 일본 지붕에는 없는 단아하고 기품 있는 멋이 살아있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 아름다움을 높이 평가할 줄 알았다. 저자는 그 정도가 지나쳤다고 했지만, 그 지나침 덕분에 아름다운 처마 곡선을 볼 수 있으니 마냥 나쁘게 볼 수는 없다. "우리나라에서 처마 곡선에 큰 의미를 부여해왔다는 사실은 일반 살림집까지 지붕 처마에 곡선을 살렸다는 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궁궐이나 종교 시설이라면 모를까 살림집 지붕까지 곡선을 살린다는 것은 정체성으로 보아서 좀 지나쳤다고 생각된다." 실제로 창덕궁의 아름다운 처마 곡선과 같은 결을 가진 건축물을 북촌에서 확인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북촌의 건축물들은 1900년대 초반에 지어졌는데도 창덕궁처럼 아름다운 처마 곡선을 가지고 있다. 덕분에 우리나라 건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미에 대한 기준은 유현준 교수가 방송에서 말했듯이 과학적인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을 수 있지만, 그 아름다움의 기준을 당대 사회에서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후 세대가 어떻게 이해했는지에 따라 건축 문화가 형성될 수 있다. "치마 곡선은 각 지역의 풍토나 강우량 같은 자연 요소에도 영향을 받지만 건물의 용도나 건축주의 사회적 신분에 따라서도 많은 차이를 나타낸다."라는 저자의 말을 보면, 건축은 과학적 요소와 함께 사회적 요소 그리고 인문학적 요소가 결합된 융합 학문이란 생각이 강하게 든다.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지붕을 약 500년의 시간을 들여 완성할 필요가 있었는지, 그 가치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다르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마냥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세상일은 역시 얻은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는 법이어서 이런 멋진 처마를 유지하는 데 적지 않은 수고가 따랐다."라는 저자의 말처럼 우리는 아름다운 지붕을 얻는 대신 더 많은 것을 500년간 잃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건축에 있어서 뜻 깊은 족적을 남긴 왕이라고 하면, 임진왜란 이후 궁을 다시금 지었던 광해군이나, 수원화성을 축조한 정조외에 잘 떠오르지 않는다. "건축이란 것이 시대 흐름에 발맞추어 끊임없이 변화해나가는 것인데 그 부분에서 뒤처진 것"은 아쉽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 석조 건축물 살펴보기

    동양 건축의 대표적인 특징은 목조 건축이지만, 석조 건축 역시 함께 발달했다. 사람이 주거하는 공간을 만든 건 아니지만, 생활 공간 곳곳에 석조 건축물을 세웠다. 그 중에서 화강암을 이용한 건축물이 많이 있다. 하지만 화강암으로 만들었지만, 돌의 투박함을 그대로 표현하기 보다 석조 건축물에서 찾을 수 있을 정도의 섬세하게 조각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석조 건축 흔적은 우리의 선조들이 나무를 다루는 능력 만큼, 돌을 다루는 능력도 대단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서양에서 자주 사용했던 대리석과 달리, 단단한 화강암은 다루기 힘들었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화강암은 어디까지나 부재료로 머물렀고, 주재료는 나무였다.
    화강암을 이용한 건축물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박석'이었다.

     

    박석은 궁궐 마당을 덮는 일종의 보도 블록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돌을 다루는 능력으로 볼 때, 반듯반듯하게 동일한 모양으로 맨질맨질한 형태로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종묘의 박석을 보면 굉장히 투박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 이유에 대해 저자는 '화강암'이 가진 속성을 들어 설명했다. 화강암은 성분상 빛을 반사하는 속성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동일한 형태로, 맨질맨질하게 다듬으면 지나치게 눈 부실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다소 투박한 형태로 만들었다. 하지만 궁에 가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이 투박한 돌판에서도 굉장히 눈부시다. 지금이야 기술이 좋아져서 화강암이라고 할지라도, 사람들이 눈부심을 강하게 체감하지 않도록 다듬는 기술이 발전했다. 가령 표면을 거칠게 하거나, 오히려 돌의 태도를 낮게 설정하는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과거에는 그럴 수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경복궁과 창덕궁을 비롯한 궁의 정전이나, 종묘에서 볼 수 있는 박석이 더 아름답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단지 눈에 보이는 건축물로 돌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과시했던 건 아니다. 이미 오랜시간부터 한반도의 돌 사랑은 남달랐다. 그 기원을 고인돌에서부터 찾는 저자의 혜안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해외에 나가면 그 고마움을 한 가득 느끼는 '온돌'을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백제를 통해 온돌 문화가 일본에 전해졌지만 발전하지 않았던 이유는 전해진 지역의 기후와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홋카이도 지역에 전해졌다면 어땠을지 궁금해진다. "전통적으로 온돌방의 실내는 바닥이고 벽이고 천장이고 전체를 종이로 싸바르는 것이 원칙이었다. 바닥은 두터운 장판지를 깔고 벽과 헌장은 흰 도배지를 바르는데 창문틀이나 기둥도 모두 종이로 감싸서 실내에서는 종이 외에는 다른 것이 전혀 보이지 않도록 했다. 반면에 마루 쪽은 원재료를 그대로 노출시키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리고 구들과 온돌방의 실내를 감싸는 형태와 대청마루를 그대로 노출시키는 원칙을 고수한 이유가 궁금해졌다. 그리고 온돌이 보편화됨에 따라 부엌의 위치, 문의 높이가 달라진 점도 흥미로웠다. 저자는 뛰어난 온돌 문화도 좋지만, 이로 인해 "실내 전면에 온돌이 보급되면서 방바닥에 앉아서 생활하는 소위 좌식 생활이 정착되었다. 즉, 실내에 의자나 침대가 들어설 여지가 사라진 것이다. 이것도 전면온돌 도입이 가져다준 커다란 변화 "가 생긴 점도 함께 알려준다. 우리나라 건축의 우수성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문화의 융성이 불러온 또 다른 면을 함께 비교한 점이 흥미로웠다.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멋이 담긴 가구들도 있지만, 우리나라는 가구가 발전한 편은 아니었고 그 이유 중에 하나가 온돌로 보편화된 좌식 생활에 있다는 점도 함께 배울 수 있었다.

     


    중국과 일본과 비교하며 찾은 우리나라 건축美

    비교는 문화를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다. 중국 건축과 일본 건축과 공통점과 차이점을 함께 다루어 우리 나라의 문화만의 특성을 살린 저자의 통찰은 결국 우리나라 건축의 아름다움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물론 우리나라 건축의 아름다움만 배운 건 아니었다. 우리나라가 지금의 문화를 일구며 놓친 점이 무엇인지 확인하며 동양 건축안에 우리나라 건축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 건축의 공포는 반드시 이런 원칙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하면서도 불규칙한 세부들이 조합을 이루는 경우가 흔하다. 또 동일한 형태의 공포를 다른 건물에서 반복하는 경우도 거의 볼 수 없다. 화반의 경우에는 기능이나 형태가 단순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 변형이나 개성을 드러낸 창작이 훨씬 자유로운 속성을 지니고 있다." 중국과 일본에선 두공이라고 부르는 공포와 화반은 지붕의 곡선미와 다른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동양 건축의 대표 요소다. 단지 국가마다 다른 양상을 보일 뿐만 아니라 건물마다, 이 건물을 만든이의 개성을 담아낸 흔적이다. 내가 우리나라에서 알고 있는 건물 설계자는 경주 불국사를 세운 김대성이나 도산 서원을 기획안 이황이 전부다. 건축가들의 역량을 충분히 인정하지 않았던 문화로 인해 수많은 건축가들은 건물주 뒤에 자신의 이름을 감추었다. 앞으로 화반을 보며 이름을 남기지 않았지만 아름다운 건물로 우리에게 이야기를 건네는 과거 건축가들의 마음을 헤아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16세기 인문학자 화담 서경석이 쓴 글 중에 <줄 없는 거문고에 새긴 글>이 있다. 글의 요체는 "소리를 통하여 듣는 것은 소리 없음에서 듣는 것만 같지 못하며, 형체를 통하여 즐기는 것은 형체없음에서 즐기는 것만 같지 못하다"에 있다. 줄을 튕겨 듣는 거문고 소리보다 줄 없는 거문고에서 오히려 그 미묘함을 체득하고 형체를 보는 것보다 형체가 없는 것을 즐기므로 오묘함을 얻는 다는 말이다. 같은 맥락에서 눈에 보이는 목적이나 용도에 한정한 건물이 아니고 용도가 정해지지 않으면서 그 용도를 무한히 만들어내는 데 누각의 존재 이유가 있는 듯하다."

     

    『한국건축 중국건축 일본건축』은 이따금씩 놀러가는 궁궐을 더 자랑스럽게 아름답게 감상할 수 있는 지적 토대를 만드는 시간이었다. 다시 한번 고궁투어를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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