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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역자들  친일문인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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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2쪽 | | 153*225*32mm
ISBN-10 : 118654256X
ISBN-13 : 9791186542569
부역자들 친일문인의 민낯 중고
저자 장호철 | 출판사 인문서원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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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월 1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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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폐와 말살’을 넘어 ‘왜곡’의 단계에까지 이른
친일문학사에 대한 기억 투쟁

“부끄러운 그들의 이름, 잊으면 우리의 이름이 된다.” 2차 세계대전 후 프랑스는 조국을 배반하고 나치에 협력한 문학·예술인에 대해서는 어떠한 탄원이나 구명운동도 받아들이지 않고 부역자를 숙청하였다. “그들이 도덕과 윤리의 상직적 존재”라고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35년 동안 일제의 식민 지배를 받았지만 그에 부역한 단 한 명의 문인도 단죄하지 못했다. 그 후 그들은 일말의 참회도 없이 해방된 독립 조국의 과실까지 아낌없이 챙겼다. 각종 문학단체의 대표를 역임하며 문화훈장을 받고, 나아가 문학상으로 기려지고 있기도 하다.

과거의 행적은 모두 어디로 사라졌는가? 그들은 왜 민족과 역사 앞에 친일을 하였는가? 저명한 친일작가는 문학사에 획을 그은 작품들로 인해서, 잊힌 친일작가는 문학사에서 중요하지 않다는 이유로 친일의 기록이 문학사에 온전히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저명하기에 또 잊혔기에 더욱더 일제 강점기 그들의 삶과 행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친일작가의 혐의는 식민 지배 시기 일본 제국주의를 찬양하고 전쟁을 미화한 데 그치지 않는다. 작가들은 조국의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떠밀면서 국가(일본)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라고 선동했으며, 여자정신대가 후방의 여성들에게 허락된 유일한 애국의 길이라고 주장하였다.

저자소개

저자 : 장호철
한국전쟁 이후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다. 그 세대의 특징은 1960년대의 가난과 70년대 산업화·도시화의 한복판을 지나왔다는 점인데 다행스럽게도 배를 곯으며 자라지는 않았다. 대신 대학물을 먹었고, 그것을 초등학교나 중학교 졸업으로 학력을 마감한 옛 친구들에게 갚아야 할 빚으로 생각하고 있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공부하고 1984년 안강여고에 임용된 뒤, 순심고, 지보고, 의성여고, 안동여고에서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다가 2016년에 구미고에서 퇴임하였다. 《오마이뉴스》 블로그 ‘이 풍진 세상에’를 운영하면서 같은 지면에 기사 200여 편을 포함, 모두 1천여 편의 글을 썼다. 때로 지독한 회의에 빠지기도 하지만, 글쓰기를 세상을 향한 말 걸기인 동시에 자기 삶을 성찰하는 과정이라 여기고 있다. 2018년 말 《오마이뉴스》의 블로그 서비스가 종료되면서 ‘이 풍진 세상에’를 티스토리(https://qq9447.tistory. com/)로 옮겨 이런저런 글을 쓰며 살고 있는 이유다.

목차

추천사 친일문학을 아직도 따져야 하는 이유 (임헌영)
글머리에 ‘문학’을 가르치면서 느낀 갈증
01 이광수 피와 살과 뼈까지 일본인이 되려 했건만
02 김기진 황민문학으로 투항한 계급문학의 전사
03 김동인 ‘문필보국(文筆報國)’의 전범
04 김동환 일제에 엎드려 ‘웃은 죄’
05 김억 친일부역도 ‘오뇌의 무도’였나
06 김종한 덧없는 이미지와 서정성
07 노천명 여성 화자를 앞세운 친일시들
08 모윤숙 영욕을 오간 ‘렌’의 선택
09 박영희 ‘문학도 이데올로기도’ 모두 잊힌 문인
10 서정주 “친일은 하늘 뜻에 따랐다”
11 유진오 헌법 기초자로 기억되는 친일부역자
12 이무영 총독상을 수상한 농촌소설가
13 이원수 ‘고향의 봄’에서 ‘지원병 형님’까지
14 정비석 낙원 일본을 칭송하던 『자유부인』의 작가
15 주요한 ‘야스쿠니의 신’이 되도록 천황을 위해 죽으라
16 채만식 조선 사람은 ‘닛본징’이 되어야
17 최정희 ‘군국’의 어머니와 ‘황군’ 아들
18 최남선 죄과는 다섯 가지나 ‘나는 무죄다’
19 이인직 이완용의 비서로 한일병합 주도
20 윤해영 ‘선구자’는 일제에 포섭된 만주 ‘개척자’
21 장덕조 ‘총후봉공’ 제일선에 섰던 역사소설가
22 유치진 연극사 거목의 지난날은 비루했다
23 최재서 ‘천황에게 봉사하는 문학’ 완성
24 백철 친일부역하고도 한국 문화비평의 대들보
25 이석훈 일본인 이상의 일본인을 꿈꾼 작가
26 김용제 ‘시의 칼’로 동포를 찔러댄 시인
27 정인택 국책 선전으로 시종한 황국신민
나머지 문인들
글을 마치며 친일문인 기념문학상에도 ‘기억 투쟁’이 필요하다

책 속으로

친일파 옹호란, 사상사적으로 민주주의의 비효율성을 강조하고 쿠데타를 노골적으로 지지하며 나아가 부추기기도 하는 극우파적인 이데올로기다. 인종 편견, 신앙 편견, 약소국 억누르기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무력 침략을 감행해도 좋다는 파시즘적 가치관을 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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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옹호란, 사상사적으로 민주주의의 비효율성을 강조하고 쿠데타를 노골적으로 지지하며 나아가 부추기기도 하는 극우파적인 이데올로기다. 인종 편견, 신앙 편견, 약소국 억누르기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무력 침략을 감행해도 좋다는 파시즘적 가치관을 고수한다. 친일파가 ‘친미파, 독재권력 옹호, 민주화운동 반대, 평화통일 반대, 개혁과 개방 반대, 노동자·농민 등의 관점이 아닌 재벌과 상류층 이익 옹호, 사회복지보다 성장 일변도의 신화 옹호, 해외 파병 지지, 국가보안법 지지, 미국의 대북 강경정책 지지, 일본의 대북 강경책 지지, 박근혜식 국정교과서 지지, 이명박·박근혜 등 지지, 태극기 부대 등’으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한 귀결일 터이다. 따라서 촛불혁명과 친일문학은 너무나 궁합이 안 맞고, 남북 민족화해와 평화의 시대와도 걸맞지 않다. - 「추천사」(문학평론가 임헌영)
친일 인사가 스스로 자신의 행위를 참회한 예도 드물지만, 후손이 선대의 친일 행위를 사죄한 것은 처음이 아니었나 싶다. 김동환의 삼남 김영식은 부친이 친일문인으로 지목된 것에 대해 ‘아무런 이의가 없다’며, 역사적 평가에서 공과가 교차된 선친의 행적은 그 분야에서 일하는 후배들에게 분명 교훈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경찰 총경으로 은퇴한 김영식은 반민특위 김상덕 위원장의 후손들을 직접 만나 사죄하기도 했으며, 민족문제연구소 회원이 되었다고 한다.
- 04 김동환, 일제에 엎드려 ‘웃은 죄’

문인들의 친일 행위를 들여다보면 일정한 시기를 지나면서 이들의 반민족적 일탈이 매우 위태위태하게 치달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 상황을 본인이 얼마나 체감하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원색적이고 노골적인 자기 부정과 굴욕의 수사들 너머에 최소한의 민족적 정체성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다.
노천명 역시 예외가 아니다. 친일에 대한 변명이나 해명도 따로 보이지 않으니, 일말의 갈등이나 번뇌조차도 상정해 볼 수 없다. 정말 그는 친일부역, 그 반민족적 선택을 전폭적으로 수용했던 것일까. 노천명의 친일은 일본의 패망이 다가오는 시기까지 일관되게 이루어졌다.
- 07 노천명, 여성 화자를 앞세운 친일시들

“애국문학자가 제작한 위대한 문학 작품은 그 한 자 한 구절이 포탄이며 전선 장병이 목말라하며 후방의 국민에게 요청하는 비행기이기 때문에 우수한 문학자를 결전하(決戰下) 생산 각 부분에 계속 투입하고, 그들에게도 생산 수량 전임제랄까, 일정한 기간 내에 국가가 요청하는 우수한 문학 작품을 생산시키자.”(「결전문학의 수립을 위해(決戰文學樹立の爲めに)」, 『문학보국』 1944년 8월호)
- 12 이무영, 총독상을 수상한 농촌소설가

그는 또 농촌 생산 현장의 ‘총후보국’을 독려하면서 지식인의 분발도 촉구하였다. 「지식인」(『동양지광』 1942년 7월호)에서 과거에는 ‘숨쉬는 편리한 농기구’ 정도에 지나지 않던 농민이 ‘열렬한 국가의식’ 아래 새로 태어났다고 칭송하였다. 그는 ‘놋쇠제품 헌납운동’에 참여하고, 쌀 절약을 위해 모내기 때에도 도시락을 싸 오고, 생산 확충을 위해 밤잠도 안 자며 가마니를 짜는 등의 모습을 보여 주는 농민과 견주어 이제 간신히 시국에 눈을 뜬 지식인으로서 부끄럽다고 자책하기도 하였다.
- 14 정비석, 낙원 일본을 칭송하던 『자유부인』의 작가

1943년 4월에 최재서는 『전환기의 조선 문학(轉換期の朝鮮文學)』을 발간하였다. 그는 자서(自序)에서 “먼저 가 버린 아들 강의 영전에 이 책을 바친다”면서 “네가 죽었을 때 나는 막 태어난 『국민문학』을 너의 추억과 함께 키워 가기로 결심했다”고 고백한다. 그 자신이 “일본 국가의 모습을 발견하기에 이르기까지의 혼의 기록”이라고 하였으니, 이 책은 황국신민 최재서의 ‘국가 정체성 발견 기록’이라 할 만하다.
- 23 최재서, ‘천황에게 봉사하는 문학’ 완성

여기에 실린 단편 소설 「선령(善靈)」(『국민문학』 1944년 5월호)은 「고요한 폭풍」(1941) 이후 주인공 박태민의 정신 생활을 그린 작품이다. …… 어느 날, 한 시인이 그의 연재소설에 대해 시비를 걸면서 “아부하는 꼴이란 볼 만하더군!” 하고 냉소하자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주먹을 휘둘러 그를 때려눕힌다. 착잡한 심리 상태가 민족적 양심을 지적한 시인에 대한 폭행으로 폭발한 것이다. 그는 권고받은 문학대회에 출석하는 대신 만주로 떠난다.
임종국은 이 작품의 주인공 박이 ‘이미 이성을 상실해 버린 친일파들의 자화상’이라고 지적한다. 짙어지는 ‘패전의 음영’에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자신들의 선택에 대하여 ‘자기혐오’에 사로잡혔다는 것이다. 그것은 영혼을 팔던 이들 부역 문인들의 본능적 자기방어일지도 모른다.
- 25 이석훈, 일본인 이상의 일본인을 꿈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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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저자 장호철은 30년 동안 국어 과목을 가르치고 교단을 떠나면서 느낀 마음속의 짐 때문에 이 책을 집필하였다. 한국 현대 문학사의 장을 연 유명한 문인들에 대해서 가르칠 때마다 일제에 협력하여 민족을 배반한 그들의 ‘과(過)’를 함께 가르치지 못하였다...

[출판사서평 더 보기]

저자 장호철은 30년 동안 국어 과목을 가르치고 교단을 떠나면서 느낀 마음속의 짐 때문에 이 책을 집필하였다. 한국 현대 문학사의 장을 연 유명한 문인들에 대해서 가르칠 때마다 일제에 협력하여 민족을 배반한 그들의 ‘과(過)’를 함께 가르치지 못하였다는 점 때문이다. 이에 저자는 친일파 연구의 고전이 된 고 임종국 선생의『친일문학론』과 민족문제연구소에서 펴낸 『친일인명사전』(전 3권)을 넘나들면서 부역문인들의 친일 작품 목록과 내용들을 인물별로 꼼꼼히 정리하였다.
친일파, 친일문인에 대하여 이야기하다 보면 그와 함께해 온 임정 100년, 독립 100년의 역사를 따로 떠올리게 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친일문인의 일제 강점기 행적이 독립운동가의 삶과 따로 떨어진 시대의 이야기가 아니며, 이후 독립된 국가를 세우기 위한 반독재, 반쿠데타 민주주의운동과도 무관하지 않음을 그들의 삶 전체를 통해 느낄 수 있다. 또한 남한 현대사에서 친일문인들이 ‘메인 스트림’에서 밀려나지 않고 전 생애를 주류로 살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북한에서도 해방 후 승승장구한 역사적 사례를 통해 ‘분단’이라는 민족사의 비극이 현대사를 얼마나 왜곡하고 굴절시켜 왔는지를 알 수 있다.
그들의 삶을 친일 이전과 이후, 그 뒤 다시 변절한 이후까지를 온전히 그려내는 작업은 역사를 제대로 자리매김하는 시작이며, 이후 분단된 남북의 한국 근현대 문학사를 총체적으로 완성하는 미래를 향한 첫 발걸음이다.

부역문인들의 삶과 친일 행적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하다

“《매일신보》에 창씨개명으로 히가시 후미히토(東文仁)가 된 소설가 김동인의 친일 논설 「반도 민중의 황민화」가 실린 1944년 1월 16일 새벽, 베이징 주재 일본총영사관 감옥에서 민족시인 이육사(李陸史, 1904~1944)가 숨졌다. 이튿날인 1월 17일, 가야마 미쓰로(香山光郞) 이광수는 ‘축 입영(入營)의 노보리(깃발)’와 ‘센닌바리(천인침)’를 찬양한 「학병 보내는 세기의 감격?입영기(入營旗)」라는 글을 《매일신보》에 발표하였다. 이틀 후인 1월 19일, 마쓰무라 고이치(松村紘一)가 된 시인 주요한이 《매일신보》에 「천인침(千人針)」을 발표하였다.”
기억하지 못하는 민족에게 독립과 해방을 위해 몸을 던진 민족시인의 삶과 친일문인들의 삶이 마치 별개의 경로로 전개되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기실 이들의 삶과 문학은 이렇듯 동시대에 엇갈리고 있었다. 지난 시대의 역사지만 우리가 친일부역의 역사와 문학을 공부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들은 어떻게 친일부역의 길로 들어섰는가? 일제 말기에 조선의 지식인들이 대일 협력에 대거 나서게 되는 계기는 대체로 만주사변(1931) 직후, 중일전쟁(1937) 직후, 태평양전쟁(1941) 개전 이후 등 세 단계로 나뉜다. 나름대로 국제 정세를 치밀하게 분석하고 있던 조선 지식인들이 일제의 침략전쟁이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는 세 사건 직후에 결정적으로 무너진 것이다. 이들은 일제가 선전한 ‘대동아공영권’ 또는 ‘아시아·태평양 체제’의 구축이 불가항력이라고 ‘오판’하였다. 이로써 보듯이 그들의 친일은 “그때 태어났다는 것, 그때 살았다는 것 자체가 친일이 될 수도 있”는 정황론의 문제가 아니다. 그들은 변절 이후 친일 문필 활동은 물론, ‘호국신사 어조영지 근로봉사’나 ‘군복 수리 근로’ 등에 동참하고, ‘저축 강조의 결전 대강연회’, ‘순국영령방문단’, ‘대동아전 1주년 기념 국민시 낭독회’ 등에 부지런히 참여하였다.
또한 그들의 친일은 그저 일제의 프로파간다에 이용당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해방되는 그날까지 동족을 향해 친일과 순종을 강요하고 징병과 학병을 위한 선전·선동에 매진하였다. 친일작가 정인택은 1945년 8월에 조선문인보국회 소설부회 간사장을 맡음으로써, 박영희는 1945년 8월 1일 조선문인보국회 평론부 회장으로 선출됨으로써 마지막 친일부역의 역사를 완성하였다. 최남선은 해방되던 해에 「특공대의 정신으로 성은에 보답합시다」라는 글을 통해 “대동아의 전쟁은 하늘을 대신하여 불의를 치는 싸움”이라며 “조선 동포도 대동아 민중으로서” 특공대 정신으로 거룩한 사업에 참가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김동인은 1945년 8월 15일 해방되는 날까지도 일본의 패망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당일 오전 10시 조선총독부 정보과장 겸 검열과장을 만나 ‘시국에 공헌할 새로운 작가단’을 만들 수 있게 도와줄 것을 부탁하였다.
해방 이후 그들의 행적은 더욱 화려하다.
이처럼 친일에 대한 그들의 주장은 단순하게 학도병에 지원하라는 식의 구호에 그치는 게 아니라, 자발성으로 끌어내는 확고한 이데올로기의 구조를 갖췄으며,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소멸되지 않기에 계속하여 이식·번식하고 증가하였다. 최재서는 일본정신에 바탕을 둔 국민문화를 건설하기 위하여 ‘국민문학론’으로 전환할 것을 촉구하였으며, 박영희는 평론의 형식으로 일제의 각종 정책에 적극적으로 호응하면서 조선인과 조선 문인이 가져야 할 자세와 ‘국민문학’, ‘전시문학’의 이론적 바탕을 제공하였다.
이 책에 등장하는 친일작가는 모두 27명이다. 임종국 선생의 『친일문학론』에 실린 28명 가운데 21명(이광수·김기진·김동인·김동환·김억·김종한·노천명·모윤숙·박영희·유진오·이무영·정비석·주요한·채만식·최정희·최남선·최재서·백철·이석훈·김용제·정인택)과 민족문제연구소에서 펴낸 『친일인명사전』의 6명(윤해영·서정주·이원수·유치진·장덕조·이인직) 등이다. 김문집과 장혁주, 정인섭, 조용만 등 16명은 일반에 낯설거나 덜 알려진 이들이라서 책 끝에 ‘나머지 문인들’로 모아 간단히 소개하는 것으로 갈음했다. 저자는 그들의 친일 행적을 밝히는 자료들을 제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양한 장르의 문인들이 어떻게 친일부역의 길을 걸어갔는지를 생애와 작품을 연결하여 입체적으로 재구성하였다.

이 책의 특징

마지막이자 첫 ‘친일문학론’ 수업
학생들과 함께하는 문학 수업에서처럼 저자는 친일작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생애와 문학사적 위치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들이 현재 문학사에서 어떻게 기억되고 있는지, 나아가 변절의 순간에 어떠한 사건들이 있었는지에 대해서 꼼꼼하게 소개하고 있다. 학생들과의 문학 수업에서 할 수 없었던 ‘친일문학론’ 강의를 글쓰기를 통해 더 많은 독자들과 함께하고자 한 저자의 노력이 담겨 있다.

기억을 통해 앞으로
친일문인들의 행적에 대하여 최근까지 검증된 자료를 바탕으로 실증적으로 분석하였다. 실제로 발표된 지면 도판을 확인하고 친일작품 인용문을 읽다 보면, 그들의 행적이 어떻게 민족을 배반하고 역사를 왜곡하였는지 안타깝고 씁쓸한 마음으로 공감할 수 있다. 또한 저자는 국내에 세워지고 있는 친일문인들의 동상과 기념관을 직접 답사하고, 그들이 현재 어떻게 기려지고 있는지, 그에 대하여 시민단체를 비롯한 친일의 역사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활동하고 있는지를 그려내었다. 이를 통해 친일 청산이 결코 미뤄질 수 있는 일이 아니며 기억을 통해서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독자들에게 전하고 있다.
변절 이전과 이후, 그리고 해방 이후의 삶까지
해방 이후 친일문인들의 행적까지 추적함으로써 전 생애에 걸쳐 문학사적 공과를 온전히 그려내고자 하였다. 친군부, 친쿠데타로 이어지는 변신의 모습을 통해 작가로서의 자기 부정이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 신생 대한민국에 대한 헌신으로 포장된 지식인의 기회주의적 모습과 여전히 각 장르의 원로로 대우받는 모습을 통해 청산하지 못한 굴절과 왜곡의 역사를 담아내었다.

친일문인 기념문학상에 대한 성찰
글을 마무리하면서 저자는 친일문인 기념문학상에 대하여 일침을 가한다. 학계조차 친일 문제 연구를 외면하고 과거 친일에 연루된 언론이 이 문제를 호도하면서 그 대중적 논의 구조마저 차단되는 상황에 이르렀으며, 무분별한 기념사업과 함께 ‘공익보다는 사익, 주관적·집단적 이익 몰이 등이 기념사업의 주축’이 되어 버렸다고 비판한다. 이것이 ‘은폐와 말살’을 넘어 ‘왜곡’의 단계에까지 이른 친일문학사에 대한 기억 투쟁에 나서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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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

회원리뷰

  • 부역자들, 친일문인의 민낯   ...

    부역자들, 친일문인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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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호철 지음 인문서원 2019.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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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일문인, 목에 걸린 가시처럼 늘 답답했고, 죄인처럼 쉬쉬했다. 동시에 누가 함부로 친일문인으로 재단할 수 있나. 국가의 공식적인 기관에서 객관적인 기준과 평가를 바탕으로 만인이 인정하는 결과를 발표해야 온당하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임종국 선생의 친일문학론과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을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고 저자 장호철은 밝히고 있다. 다른 시각으로 연구한 내용은 없었는가. 답답하고 우려스러운 마음으로 읽었다. 친일인사가 스스로 자신의 행위를 참회한 예도 드물지만, 후손이 선대의 친일 행위를 사죄한 일은 아마 처음이리라. 김동환의 삼남 김영식은 부친이 친일문인으로 지목된 것에 대해 아무런 이의가 없다, 역사적 평가에서 공과가 교차된 선친의 행적은 그 분야에서 일하는 후배들에게 분명 교훈이 될 것이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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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이 밝힌 친일문학인들이 다룬 글을 분석해 보면 그 내용은 대체로 영미 英美는 귀축 鬼畜이라고 비난하거나, 대동아공영권 강조, 생활 풍습 등 일본화 계도, 천황 찬양, 일어 사용(국어화) 주장, 학병 권유, 창씨개명 선전, 내선일체 선동, 동조동근 同祖同根 수용 등이다. 는 변명의 여지라도 있지만, 부터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견해이다. 이러한 기준으로 살펴보면, 우리 현대문학사에서 이름을 남긴 대다수의 문인이 친일문인이었다는 사실이다. 부끄럽고 서글픈 역사적 사실이다. 문인들은 두뇌가 명석하여 대세의 흐름에 순응한 것인가. 아님 문약 文弱해서 쉽게 변절한 것인가. 일제에 저항하며 고초를 겪고, 생명을 잃은 문인들은 소수에 불과한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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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창시절에 교과서에 실린 작가 대다수가 친일문인이다. 이광수, 최남선, 김동인, 김동환, 김억, 노천명, 모윤숙, 서정주, 유진오, 이원수, 정비석, 주요한, 채만식, 유치진, 최재서, 백철 등이다. 이광수와 최남선은 일제에 항거한 작가였다가 식민지 후반에 친일로 돌아선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당대 최고의 작가가 민족을 배신하는 행위에 수많은 고뇌를 했으리라. 총독부에 협조함으로써 대가로 받을 수 사회적 지위, 또는 풍요로운 경제적 이득이었을까. 그들도 가정의 가장으로서 궁핍한 삶을 살고 싶지는 않았던 것일까. 정말로 일본어를 국어로 사용하고, 일본인들의 생활 풍습을 배워서 일본과 조선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굳게 믿었을까. 천황의 자식으로서 나라를 위해 청년들을 죽음으로 내모는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을까. 작가로서 작품 활동을 하지 못하고 지하에서 숨어 지내야 하는 고통을 견디기 어려웠을까. 자신의 문학적 천재성이 발휘되지 못하는 것이 억울했을까. 궁금한 점이 너무나 많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보통 사람은 대세에 잘 적응하는 존재다. 그들도 멸망해버린 조선에 대한 기대를 버린 것이 아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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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당시 일본제국주의에 합병된 조선은 스스로의 힘으로 재기할 수 없다고 스스로 단념한 것은 아닐까. ‘일본이 그렇게 빨리 패망할 줄 몰랐다.’라고 여류소설가 최정희가 말한 고백이 그들의 심리적 기저를 알 수 있는 핵심이 아닐까. 민족의 지식인으로서 처음에는 일제에 저항하다가 한 세대가 지나는 30여 년이 흐르자 그들의 마음속에 싹튼 현실참여’, ‘현실적응’, ‘대체불가’, ‘독립 불가능이란 참담한 의식이 솟아난 것은 아닐까. 대외 명분으로 조선 민족을 계몽하고 삶의 질을 높이며, 미국과 영국이라는 서양 세력에 대동아공영제로 맞서야 한다는 논리가 통한 것이 아니었을까. 일본, 중국, 조선이 힘을 합쳐 서구 세력에 대항해야 한다는 논리가 통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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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일문인들의 행태는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기화로 더욱 강화되고 내선일체을 실질적으로 믿고 행한 것이다. 우리 힘으로는 일제의 식민지에서 벗어날 희망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이육사, 한용운 같은 분들은 일제와 타협하지 않고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위해 싸우다가 결국 목숨을 잃고 말았다. 해방 후 일본식민지 세력의 청산에 실패한 것이 우리의 잘못이다. 친일문인들이 이후에도 승승장구하는 일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프랑스 드골 정부가 나치에 협조한 인물을 철저히 조사하고 처벌한 것을 역사적 교훈으로 새겨야 한다. 친일문인들이 행한 이후의 행적과 변명은 참으로 뻔뻔하고 반민족적인 행위였다. 이후의 정권에도 협조하며 자신의 문학적 명성을 이어간다는 사실이 전형적인 기회주의자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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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으면 읽을수록 불편하고 분노가 치밀었다. 동시에 시대적 상황에 잘 순응한 유능한 인간이었음을 씁쓸하게 인정해야 하는 일이 더 고통스럽다. 역사는 순환한다. 현재도 비슷한 일이 없다고 할 수 있겠는가. 어느 시대건 권력과 금력의 양지를 찾는 지식인이 있으며, 고난의 들판을 맨몸으로 가는 소수의 진정한 선각자도 있다. 역사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불행한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는다. 친일문인들의 행태를 통해 현재의 자신을 바라본다. 나는 어떤 행보를 해야 하는가. 죽어도 살아 있는 사람이 있고, 살아 있어도 죽은 사람이 있다. 나의 조상들은 식민지 시대에 무엇을 하였는가. 나는 친일파의 자손인가. 나의 누구인가.

  • 이 책을 읽기전에는 솔직하게 친일관계에 대하여 직접 겪어본 세대가 아니라서 그런지 몸으로 직접적으로 와닿는 부분이 없었다읽기전...

    이 책을 읽기전에는 솔직하게 친일관계에 대하여 직접 겪어본 세대가 아니라서 그런지 몸으로 직접적으로 와닿는 부분이 없었다
    읽기전에는 그저 옛날사람들의 싸움이 현재까지 이어온 필연같은 관계일거라고 생각했다.
    가끔식 TV에서 정신대 문제로 일본에게 보상과 사과를 요구하는 방송을 보았을때도 실제적으로 체험한 부분이 아니라
    그저 남일처럼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나서는 남에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되면서 어서빨리 나 말고도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이 책에 나오는
    27명의 친일문인들에 민낯을 알려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직도 어린친구들은 학교에서 이 책에 나온 문인들의 작품에 대하여 읽고 공부하고 암기하는등 쉽게 얘기하자면 정신적인
    부분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런 친일에 관련된 문인은 친일에 대한 댓가를 치러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다.
    일본이 우리나라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자신들의 속국인것럼 마음대로 주무르던 시절이 아닌 이제는 우리가 일본을 앞서는
    상황이 뒤바뀐 상황에서 과거에 문제를 다시 꺼내어서 우리나라를 아주 어렵던 시절과 힘들던 과거를 만들었던 이유와 문제를
    거론해서 지난시절에 과오를 다시금 해결해야 하는 문제도 다루어야 한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서 심각함을 느낄수 있었다.
    이 책에 거론된 27명의 문인들은 자신들의 문학을 일본으로 바꾸는 것도 모자라서 온 국민을 일본에게 가져다 받친다는 언어를
    일삼는등 자신들이 지식인의 대표라는 입장을 망각하고 자신들이 살고자 나라를 팔고 국민의 정신까지 좀먹게 만들은 문제는
    시간이 지난 지금에라도 다시 꺼내어서 시시비비를 다루어서 친일을 했던 문인은 그 시절에 호사를 누렸던 만큼의 벌을 받게하고
    뒤 늦게 찾아진 독립 유공자에게는 다시 자신들의 위치를 회복시켜줘야 하는등 과거시절부터 문제로 가져온 시절에 문제를
    이제서라도 해결을 해서 상과 벌에 대한 기준을 정하고 다시금 결정을 해야 한다는 것을 책을 읽는내내 머리속을 멈도는것을 알수 있었다.
    지식인이라는 자신들의 본분을 잊고 중심을 지켜야 하는 입장에도 자신들이 살고자 나라를 팔고 마음을 훔치고 여론을 움직이는 행동까지
    했다는 것에서는 더이상에 용서와 해결을 봐야한다고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를 팔았던 이완용 같은 인물이 앞으로 나오지 않도록 이 책에 거론된 친일문인들을 모두 찾아내서 앞으로 미래에
    태어난 후손들을 위해서 올바른 판단을 하고 다시 자료를 찾아서 재결정하는 단계를 다시 꺼내야 된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이 책에 거론된 27명의 친일문인들중에 유명한 문인도 있고 생소한 문인도 있지만 제일중요한 것은 이 사람들이 자신들의 지식으로
    그 시절에 호사를 누리고 지금도 그 자손까지 혜택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나니 정말로 지나온 과거라고 무시할것이 아니라
    제대로 평가하고 판단하는 기회를 이 책으로 다시 결정해보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책을 읽는내내 해 보았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자신의 정신들만 일본이라는 나라에 판것도 모자라 우리나라 국민의 정신까지 모두 일본에 팔아버릴려고 한것은
    어떤 벌을 내려도 달게 받아야 할정도로 크나큰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저자의 말처럼 다시 생각해보는 기억 투쟁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는 기회가 되었다

  •    얼마 전, 해방 후 반민특위가 국민을 분열시켰다는 제1야당 원내대표의 발언으로 논란이 일자 반민특위(反...

       얼마 전, 해방 후 반민특위가 국민을 분열시켰다는 제1야당 원내대표의 발언으로 논란이 일자 반민특위(反民特委)가 아니라 반문특위(反文特委)였다고 해명하는 일이 있었다. 여기서 언급된 반민특위는 1948년부터 1949년까지 일제강점기에 친일파의 반민족행위를 조사하고 처벌하기 위해 설치했던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反民族行爲特別調査委員會)’를 약칭하는 말이다. 반민특위의 설치 목적에 따라 친일파의 반민족행위를 조사하고 처벌하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친일 세력과 이승만 대통령의 비협조와 방해로 반민특위의 활동은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고 오히려 친일 세력에게 면죄부를 부여하는 결과를 초래하였으며 한국전쟁 후 이들이 한국의 지배세력으로 군림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이 때문에 사회 정의가 무너져 사람들의 가치관이 혼란에 빠졌으며, 사회에 이기주의와 부정부패 등이 횡행하는 토대를 제공하였다는 것이 학계의 평가이다. 「반민족행위처벌법」은 1951년 2월에 폐지되어 친일파를 처벌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현재로서는 완전히 사라진 상태이지만 2005년에 친일반민족행위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설립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親日反民族行爲眞相糾明委員會)’에서는 「일제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의거하여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한 인물은 총 1,006명이며, 위원회는 2009년 11월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과 친일행적을 담은 총 25권 분량의 『친일반민족진상규명 보고서』를 발간하였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 후 30여년을 강단에서 교편을 잡고 2016년에 퇴임을 한 장호철 선생님께서 故 임종국 선생님의 『친일문학론』과 민족문제연구소에서 펴낸 『친일인명사전』을 바탕으로 27명의 친일문인들과 일반에게는 덜 알려진 16명의 문인들의 친일행적을 상세하게 기술한 『부역자들, 친일문인의 민낯』이 시의적절하게 출간되어 관심을 가지고 읽어보았다. 이광수나 김동인 그리고 서정주 같은 문인들은 그동안 언론을 통해 친일문인이라는 정도는 알고 있었으나 『부역자들, 친일문인의 민낯』에 기술된 그들의 행적은 책을 읽는 사람조차도 얼굴이 화끈거리고 오글거릴 정도이다. 쪽수가 430페이지에 이르고 내용이 방대하여 일일이 구체적으로 언급할 수는 없겠으나 대표적인 몇몇 문인들의 말과 글을 통해 대충 미루어 짐작해볼 수는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가야마 미쓰로(香山光郞)로 창씨개명한 춘원(春園) 이광수(李光洙)는 1940년 9월,《매일신보》에 기고한 글에서 “나는 지금에 와서는 이러한 신념을 가진다. 즉 조선인은 전연 조선인인 것을 잊어야 한다고. 아주 피와 살과 뼈가 일본인이 되어 버려야 한다.”고 적었다.(p.30) 히가시 후미히토(東文仁)로 창씨개명한 금동(琴童) 김동인(金東仁)은 1939년 『삼천리』6월호에 기고한 「북지 전선을 향하여」라는 제목의 글에서 “조선 민중에게 성전(聖戰)의 참 의의와 병사들의 노고를 보고하여 조선 민중의 몽매함을 깨닫게 할 중대한 사명과 의무가 우리들 조선 문사(文士)에게 있다.”고 하며 문필보국(文筆報國)에 앞장섰다.(p.52) 시라야마 아오키(白山靑樹)로 창씨개명한 파인(巴人) 김동환(金東煥)은 1942년 『삼천리』1월호「총,1억 자루 나아간다」에서 “일본이여, 일본이여, 나의 조국 일본이여 어머니여. 어머니여, 아세아의 어머니 일본이여 주린 아이 배고파서, 벗은 아이 추워서 젖 달라고 옷 달라고 10억의 아이 우나이다, 우나이다”라고 기고하였다.(p.68) 김동환과 재혼한 소설가 최정희 역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어 있는데 김동환의 셋째 아들이 2002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연 학술심포지엄에서 ‘부친의 친일죄과’를 민족 앞에 사죄한 사실은 특기할 만하다. 친일인사가 스스로 자신의 행위를 참회한 예도 드물지만 후손이 선대의 친일행위를 사죄한 것은 처음이 아닌가 싶다고 저자는 평가한다. 이밖에도 일제에 부역한 「사슴」의 시인인 노천명(盧天命), 현란한 변신의 진수를 보여준 모윤숙(毛允淑), 친일은 하늘의 뜻이라고 하였던 「마쓰이 오장 송가(松井伍長頌歌)」의 미당(未堂) 서정주(徐廷柱), 눈부신 친일 활약을 펼치며 천황을 위해 죽으라던 「불놀이」의 주요한(朱耀翰) 등 국어 교과서에서 자주 보고 들어왔던 문인들이 줄을 잇고 있는데 저자의 말마따나 최초의 신체시(新體詩) 「해(海)에게서 소년에게」를 쓴 최남선, 최초의 신소설「혈의 누(血の淚)」를 쓴 이인직, 최초의 현대시 「불놀이」를 쓴 주요한, 최초의 현대소설 「무정」을 쓴 이광수 그리고 최초의 현대번역시집인「오뇌(懊惱)의 무도(舞蹈)」의 김억(金億) 등 우리나라 신문학의 첫 장을 연 사람들의 대부분이 친일파였다는 사실이 서글퍼진다. 비록 일제강점기 동안 일본에 부역한 문인들을 포함한 친일인사들을 민족의 이름으로 단죄하지는 못하였으나 역사는 반복된다는 사실을 직시하여 부끄러운 과거의 경험에서 교훈을 얻어야할 것이다. 친일문인들의 민낯을 마주하고 싶은 분들의 일독을 권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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