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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예술가소설의 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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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규격外
ISBN-10 : 1187756407
ISBN-13 : 9791187756408
한국 예술가소설의 지형 중고
저자 황경 | 출판사 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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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월 1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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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예술가소설의 성좌들

“마르쿠제에 의하면 예술가소설은 예술과 생활이 분열될 때, 주변에 동화되지 않는 고유한 의식이 고개를 내밀 때, 그때야 비로소 생성 가능한 서사 형식이라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예술가소설은 태생적으로 작가와 현실의 대립과 불화를 바탕으로 작동하며, 삶과 현실의 압력 속에 놓인 예술가의 예민한 자의식을 그대로 투영하면서 당대 문학의 장(場) 안에서 예각화된다. 문학장의 구조적 변동이 문학 관념의 변화를 야기하듯 예술가소설에 나타나는 현실과 예술의 이항 대립적 구도 또한 시대적 문맥에 따라 그 강도와 양상을 달리한다. 사회?정치적 변혁기나 이데올로기적 전환기에 밀도 있는 예술가소설이 부상하는 것은 아마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한국 예술가소설에 나타난 문제의식은 문학과 정치, 예술성과 사상성,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의 대립 구도 속에서 길항해 온 우리 근대문학의 특징적 국면과 연결된다. 지금 우리는 그 이분법적 구도 자체가 무화되거나 무의미한 시대를 살고 있지만, 근대문학의 형성 이래 그것은 언제나 우리 문학의 중심 화두였고, 논쟁과 갈등의 진원지였다. 이는 어쩌면 우리 문학이 문학 밖의 현실에 대한 교섭과 계몽의 책무를 벗어나서 무작정 예술이라는 이름의 유토피아로 나아갈 수 없는 혹은 나아가지 못하게 막는, 어지러운 현실과 역사를 살아야 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욱이 우리의 근대문학은 문학 외적 현실에 대한 규정력과 계몽의 역할에 치중해 왔고, 문학의 언어로 현실을 번역하고자 하는 미학적 태도에 강박되어 왔다. 시대의 운명, 시대의 얼굴이 곧 자신의 얼굴이라고 믿는 우리 문학사의 계몽적 전통은 현실에 대한 요청으로부터 벗어나는 심미적 가상의 상태를 쉽게 수락하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문학에 자주 결락되어 있는 것은 심미와 탐미, 환상을 향한 예술적 욕망이며, 예술의 자율성과 절대성에 대한 옹호와 추구라 할 수 있다.”(이상 저자 황경의「책머리에」)
저자 황경은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현대소설을 전공했다.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일본 규슈대학교 방문연구원 등으로 활동했다.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에서 국어사전과 한국현대장편소설사전 편찬 작업에 참여했다. 대표 논문으로「최인훈 소설에 나타난 예술론 연구」 등이 있으며, 『시와 이야기가 있는 우리 역사』(공저)를 썼다.

저자소개

저자 : 황경
서울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현대소설을 전공했다.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일본 규슈대학교 방문연구원 등으로 활동했다.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에서 국어사전과 한국현대장편소설사전 편찬 작업에 참여했다.
대표 논문으로「최인훈 소설에 나타난 예술론 연구」(박사 학위 논문) 등이 있으며, 『시와 이야기가 있는 우리 역사』(공저)를 썼다.
현재 고려대학교와 한경대학교에 출강하고 있다.

목차

005 책머리에

011 한국 예술가소설의 맥락―예술과 현실의 길항 관계를 중심으로
1. 머리말 2. 미의 절대성과 반윤리의 미학 3. 재현적 서사의 부정과 소설의 운명 4. 예술(가)의 욕망과 소멸의 형식 5. 맺음말

032 존재론적 자아 탐구의 여정―허준의「습작실에서」「속 습작실에서」「잔등」
1. 개인적 실존 탐사와 자기 비평의 논리 2. 절연과 유폐의 형식, 그리고 고독의 사상 3. 여로의 형식과 제삼자의 정신 4. 자기부정과 개방의 정신 5. 허준 문학의 존재 방식과 그 의미

059 회화적 추상과 소설의 형식―최인훈의「하늘의 다리」
1. 머리말 2. 반리얼리즘의 서사 지향과 논리 3. 회화적 추상과 소설의 형식 4. 역사철학적 상상력과 리얼리즘의 서사 5. 맺음말

086 이청준 소설에 나타난 예술적 주체의 죽음과 소설론의 상관성
1. 머리말 2. 자기 구제의 형식, 글쓰기의 기원 3. 현세적 사실 증거의 욕망과 예술적 주체의 죽음 4. 허구와 현실 사이의 미망, 소설의 운명 5. 맺음말

112 무숙자의 상상력과 육체의 서사―김훈론
1. 머리말 2. ‘서늘한 중심’―역사의 외부 혹은 허무주의 3. ‘집중된 중심’―생의 직접성과 자연사의 욕망 4. 무숙자의 상상력과 예술의 존재 방식 5. 맺음말

135 신성의 추구와 반역사주의의 논리―정찬의 소설가소설
1. 머리말 2. 신성의 추구와 샤먼, 예술의 원형적 얼굴 3. 기억과 회귀의 형식, 예술적 초월의 방법론 4. 권력의 본질에 대한 탐구와 반역사주의의 논리 5. 맺음말

163 1990년대 소설가소설의 윤리 의식 연구―?숨은 꽃」「카프카를 읽는 밤」「우리 시대의 소설가」
1. 머리말 2. 탈이데올로기의 시대와 소설(가)의 절망 3. 문학의 물신화와 소설(가)의 존재 방식 4. 소설(가)의 죄의식과 문학의 윤리 5. 맺음말

192 탐미주의적 절대미를 향한 동경과 이방의 비애―김문집의 일본어 소설 『아리랑 고개』
1. 창작집 『ありらん峠』와 김문집 문학의 이면 2. 1930년대 문단과 비평가 김문집 3. 절대미(絶對美)를 향한 동경과 ‘모발 미학’의 논리 4. 식민지 지식인의 내면 의식―아비의 부재와 이방의 비애 5. 김문집 소설의 문학사적 의미

219 유진오 문학의 조선주의와 근대주의―일제 말기의 소설 『창랑정기』 『화상보』
1. 머리말 2. 탈이념화의 방식과 ‘조선’의 발견 3. 전통과 근대, ‘조선’을 보는 두 개의 시선 4. 실력 양성론과 조선적 근대화의 추구 5. 맺음말

244 나도향 소설의 사랑에 대한 고찰―『청춘』 『어머니』「지형근」
1. 머리말 2. 절대적 사랑의 추구와 그 논리 3. 애정 윤리의 이중성과 갈등 구조 4. 고립된 개체 의식과 모성의 상관성 5. 나도향 소설의 존재 방식과 의미

272 임화 문학사론의 구도와 시각
1. 임화 ‘문학사론’의 안과 밖, 문학의 정치성과 그 의미 2. 임화 문학사론의 향방, 이식과 생장의 변증법 3. 임화 문학사론의 한계, ‘과학적 문학사’의 도식성 4. 임화 문학사론 이후, 그리고 시인의 운명

책 속으로

문학장의 구조적 변동이 문학 관념의 변화를 야기하듯, 근대 예술가소설에 나타나는 현실과 예술의 이항 대립적 구도 또한 시대적 문맥에 따라 그 강도와 양상을 달리한다고 할 수 있다. 사회정치적 변혁기나 이데올로기적 전환기에 밀도 있는 예술가소설이 부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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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장의 구조적 변동이 문학 관념의 변화를 야기하듯, 근대 예술가소설에 나타나는 현실과 예술의 이항 대립적 구도 또한 시대적 문맥에 따라 그 강도와 양상을 달리한다고 할 수 있다. 사회정치적 변혁기나 이데올로기적 전환기에 밀도 있는 예술가소설이 부상하는 것은 아마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김수영의 작시(作詩)가 곧 메타시(詩)가 되었던 시대적 정황은, 최인훈이나 이청준에게도 유사하게 적용된다. 혁명의 환희와 쿠데타로 인한 좌절감에서 배태된 양가적 감정은 부조리하고 모순된 현실을 반영하는 재현적 리얼리즘을 거부하고, 새로운 문학적 상상력과 소설의 형식을 창출해야 한다는 강한 책무감으로 이어진다. 최인훈과 이청준의 일련의 예술가소설은 이런 맥락에서 창작되며, 이들은 공히 예술과 문학으로써 모순된 현실을 넘어서고자 하는 작가적 의지와 모색을 ‘자기 반영적 서사’를 통해 표출하고 있다. 현실과 길항하는 예술 세계로의 침잠은 그러므로, 최인훈과 이청준의 예술가소설에서 비로소 설득력을 얻는다. 최인훈은 순수예술의 형식으로서의 추상회화에서 그의 문학의 길을 실험하고, 이청준 또한 현실과 유리된 장인적 예술에서 예술가의 현실 대항 논리를 탐색한다. 김동인의 예술지상주의 혹은 반리얼리즘의 문학론은 이처럼 1960년대의 최인훈과 이청준에 이르러 변주된다.(p.30)

허준 소설은 전체가 마치 한 편의 성장소설처럼 읽힌다. 지식인의 정신적인 변화, 갱생의 과정이 작품 전반에 걸쳐 순차적으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자신의 삶의 존재 방식을 모색하는 지식인의 여로가 허준 소설의 서사 형식이라고 할 수 있는데, 1930년대 후반기의 문학사적 구도 속에서 그의 작품을 평가하거나, 해방 공간의 문학사 속에서 그의 작품 세계를 논의할 때, 허준 문학의 특성이 온전히 드러나지 않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같은 맥락에서, 그의 소설을 심리소설이나 모더니즘 소설이라는 틀로 접근할 경우에도, 허준 문학의 전반적인 의미를 포착하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허준 소설의 의의는 문학을 통해서 자기 존재의 의미를 밝히고 추구하려 했던 진지하고 성실한 실존적 개인, 작가 허준의 정신세계와 현실의 대응 방식을 보여 주는 데 있다.(p.57)

“우리 자손들은 모두 천사가 되는 것일까”라는 물음은 이러한 맥락에서 도출된 것으로, 벤야민의 ‘역사의 천사’가 그러하듯「하늘의 다리」의 최인훈 또한 과거를 향해 서서, 현재와 과거 사이에 놓인 “이 거리의 내력을 앓지 않으면 안” 된다는 잠정적인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원시’와 ‘문화’ 사이에 놓인 그 공백을 메우지 못한다면, 결국 인류는 쌓여 가는 파멸의 잔해들을 보면서도 진보의 폭풍 앞에 속수무책인 ‘역사의 천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최인훈의 역사적 상상력은 이처럼, 폐허처럼 파편화된 기억의 잔해들을 모아서 과거의 역사들을 복원하고 해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어떤 절박한 책무감과 결합되어 있다.(p.83)

예술의 자율성과 완전성에 대한 추구는 어쩌면 모든 예술가의 욕망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가)은 태생적으로 현실과 불화하며, 예술(美)의 완성은 때로 예술가의 목숨을 요구하기도 한다. 토마스 만의「베니스에서의 죽음」이나 서머싯 몸의「달과 6펜스」가 보여 주는 예술가의 죽음은 이러한 의미의 죽음이다. 이청준의 소설「줄광대」도 이와 유사한 예술가의 죽음을 묘사한다. 현실을 향한 눈과 귀가 닫히고 생각이 땅에 머무르지 않아야만 비로소 만나는 예술의 경지, 그것이「줄광대」가 보여 주는 예술의 세계이다. 그러나 이청준의 소설 미학은 현실과 유리되는 절대적 미에의 경도를 추수하지 않는다. 그가 생각하는 문학의 자리는 ‘미학과 사회학’ 사이, 그 경계의 어름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p.110)

김훈 문학의 일관된 특징 중의 하나는 삶과 죽음의 문제를 다루면서도 죽음에 대한 비극적 인식도 통탄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의 문학은 오히려 삶의 자연성에 대한 수락과 순응을 통해 어떤 달관과 체관의 경지로 나아간 것처럼 보인다. 화택(火宅) 앞에서 두려움에 떨던 어린 소년은 노회한 ‘견자(見者)’의 음성으로 삶과 죽음의 ‘본래 그러함’을 얘기한다. 그러나 깨달음은 소설의 몫이 아니다. “연못 속에 뿌리를 내리고 수백 년을 피고 지는 왕버들”의 수동적인 자연성은 또한 우리 인간의 것이 아니다. 강인한 턱 선과 젖니와 걸음걸이로 유전되는,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생물학적 씨내림의 법칙”이 지속되는 한, 우리는 안쓰러운 시선으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더듬고 방황하고 되짚어 보며, 새로운 꿈을 꾸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인간 운명의 비극성은 생로병사의 자명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명성을 뚫고 나아가려는 인간의 부단한 욕망과 행위로부터 솟아난다.(pp.133-134)

자성적 소설가소설의 형식으로 이어지는 정찬의 소설 쓰기는 우리 소설사에 유례가 없는, 문학의 말과 언어에 대한 집요한 통찰과 엄중한 윤리 의식을 보여 준다. 그의 소설은 도저한 완전주의자의 목소리로 “의로움의 탑은 오직 의로움의 돌로 쌓아졌을 때 이룩될 수 있다”고 주장하며, 거짓된 언어, 훼손된 말이 아닌 절대적이고 무결한 ‘말의 원형’으로 회귀할 것을 요청한다. 이 과정에서 정찬 소설의 특징적 경향이라 할 수 있는 신성의 추구와 반역사주의의 논리가 제기되거니와, 끝없는 권력욕과 권력에의 연쇄로 파악되는 불완전한 인간, 불완전한 역사는 배제되고 모든 상대적인 가치와 진리, 이념 또한 부정된다.(p.161)

1980년대 문학의 중심축이 ‘광장’에 있었다면 1990년대 문학은 사인화된 ‘밀실’의 문학으로 이동했다고 평가되거니와, 1990년대 소설가소설의 부상은 이러한 한국소설사의 변화와 그대로 조응한다. ‘광장’에서 ‘밀실’로 옮겨 간 문학사적 변화의 기저에는 요컨대 1980년대와 1990년대를 가르는 사회?정치적 변화와 그로 인한 반성적 현실 인식이 개입한다. 사회주의의 붕괴와 그로 인한 탈이데올로기적 시대 상황이 전면화되면서 ‘광장’의 문학을 지탱하던 공동의 가치 체계들이 무력화되고 한편으로 자본과 상업적 물신주의의 위력이 예술과 문학의 영역으로 파급되는 시대가 1990년대였다면, 1990년대 소설가소설은 이처럼 달라진 현실에 대한 성찰과 모색의 과정에서 등장한 일종의 과도기적 형식이었다고 할 수도 있다. 주목할 것은 1990년대 소설가소설이 문학의 타락과 훼손을 우려하면서 치열한 문학의 윤리와 작가 의식을 스스로에게 각인하고자 하는, 일종의 자기 검열과 깨달음의 형식으로 요청되었다는 사실이다.(pp.190-191)

?아리랑 고개」「여자 조리와 내 청춘」「소변과 영원의 여성들」 등의 작품에서 소설의 주인공은 대개 조선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유학생이며 현실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상 성격의 소유자로 그려진다. 그들은 학업에 열중하지 못하거나 혹은 포기하고, 여성의 털을 수집하거나 여성의 조리에 집착하며, 혹은 여성을 그린 우키요에를 수집하는 일에만 광적으로 몰두한다. 주목할 것은 이 소설 속의 주인공들이 한결같이 아비 부재의 현실을 살아가는 일종의 ‘고아’라는 사실이다. 프로이트가 말하는 페티시즘이 거세 불안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김문집 소설의 주인공들은 전형적인 페티시스트로 형상화되어 있는 셈이다. 그들은 조선인이고, 일본 유학생이며, 실제로 부모가 죽었거나 혹은 의절하였으며, 그들의 삶을 지탱하는 유일한 출구는 자신이 어떤 절대의 미를 추구하고 있다는 자존감이다.(pp.217-218)

일제 말기 유진오의 문학이 문제적인 것은 그의 문학이 당대의 현실을 냉철하게 주시하면서 그 시대에 실현 가능한 계몽적 태도와 의미를 찾고자 했다는 사실과 관련된다. 예컨대 일제 말기 유진오의 문학은 사실 수리의 방식으로 조선적 현실을 인정한 지점에서 나름의 적합한 대응 논리를 모색한다. 소설「기차 안」에 삽입되어 있는 유다의 후일담은 이런 측면에서 흥미롭다. 여기서 유다가 스승을 팔고 안락한 삶을 살았다는 설과 죄의식에 사로잡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설은 모두 안이한 결론으로 부정된다. 대신 “판 것은 판 것이므로 일단 스승을 판 유다는, 설령 예기치 못했다고 하더라도 스승의 책형(?刑)을 끝까지 바라보았을 터”라는 해석이 제시된다. 덧붙여 이러한 해석적 태도를 “근대인의 날카로운 지성”으로 설명한다. 이는 일제 말기 유진오의 문학과 그 자신의 존재 방식에 대한 하나의 비유처럼 읽힌다.(p.242)

나도향의 소설에 나타난 사랑의 문제는 그가 활동했던 1920년대라는 시대적 조건을 고려하지 않고는 온전히 이해될 수 없다. 감수성이 풍부한 이십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그의 전 작품이 창작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그의 소설에 미만해 있는 떨림과 눈물, 사랑에 대한 압도적인 동경을 미숙한 청년의 감상으로만 치부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식민지라는 시대적 상황이 일제 하 문인들의 의식 세계를 지배하는 일차적인 조건이었다면 그들의 현실은 근본적으로 암울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전근대와 근대의 요소가 첨예하게 자리바꿈을 시작하던 근대문학 초창기의 우리 문인들은 삶의 비전과 방향을 놓고 심각한 고민에 직면하였다. 서구적인 근대화를 향한 개화의 이상과 실력 양성의 논리가 희망의 한줄기였다면, 삼일운동의 실패 이후 등장한 1920년대 초기의 문인들에게는 그것마저 수용되지 않았다.(pp.269-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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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이 책은 대체로 소설로 쓴 소설론, 소설로 쓴 예술론이라는 관점에서 그에 부합하는 작품들과 작가들을 분석한 논문들로 구성되었다. 다소 예외적이지만 나도향이나 유진오, 임화를 다룬 글들도 함께 묶었다. 문학이란 언제나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존재론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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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대체로 소설로 쓴 소설론, 소설로 쓴 예술론이라는 관점에서 그에 부합하는 작품들과 작가들을 분석한 논문들로 구성되었다. 다소 예외적이지만 나도향이나 유진오, 임화를 다룬 글들도 함께 묶었다. 문학이란 언제나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존재론적 자기 성찰의 반영적 산물이라 할 수 있고, 그들의 문학도 이러한 본질적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예술가소설의 지형에서 그리 멀리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마르쿠제에 의하면 예술가소설은 예술과 생활이 분열될 때, 주변에 동화되지 않는 고유한 의식이 고개를 내밀 때, 그때야 비로소 생성 가능한 서사 형식이라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예술가소설은 태생적으로 작가와 현실의 대립과 불화를 바탕으로 작동하며, 삶과 현실의 압력 속에 놓인 예술가의 예민한 자의식을 그대로 투영하면서 당대 문학의 장(場) 안에서 예각화된다. 문학장의 구조적 변동이 문학 관념의 변화를 야기하듯 예술가소설에 나타나는 현실과 예술의 이항 대립적 구도 또한 시대적 문맥에 따라 그 강도와 양상을 달리한다. 사회?정치적 변혁기나 이데올로기적 전환기에 밀도 있는 예술가소설이 부상하는 것은 아마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한국 예술가소설에 나타난 문제의식은 문학과 정치, 예술성과 사상성,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의 대립 구도 속에서 길항해 온 우리 근대문학의 특징적 국면과 연결된다. 지금 우리는 그 이분법적 구도 자체가 무화되거나 무의미한 시대를 살고 있지만, 근대문학의 형성 이래 그것은 언제나 우리 문학의 중심 화두였고, 논쟁과 갈등의 진원지였다. 이는 어쩌면 우리 문학이 문학 밖의 현실에 대한 교섭과 계몽의 책무를 벗어나서 무작정 예술이라는 이름의 유토피아로 나아갈 수 없는 혹은 나아가지 못하게 막는, 어지러운 현실과 역사를 살아야 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욱이 우리의 근대문학은 문학 외적 현실에 대한 규정력과 계몽의 역할에 치중해 왔고, 문학의 언어로 현실을 번역하고자 하는 미학적 태도에 강박되어 왔다. 시대의 운명, 시대의 얼굴이 곧 자신의 얼굴이라고 믿는 우리 문학사의 계몽적 전통은 현실에 대한 요청으로부터 벗어나는 심미적 가상의 상태를 쉽게 수락하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문학에 자주 결락되어 있는 것은 심미와 탐미, 환상을 향한 예술적 욕망이며, 예술의 자율성과 절대성에 대한 옹호와 추구라 할 수 있다.
임화는 시인이었으나 시인으로서 죽지 못했다. 그는 문학과 정치, 문학과 현실의 경계를 지우고 그 사이를 넘나들다가 끝내 ‘미제 스파이’라는 죄명과 함께 정치적으로 처형되었다. 임화는 문학을 단지 문학으로 대면하지 않고, 현실 대응의 도구이자 문학 운동의 차원에서 사유했다. 최인훈 식으로 말하면, 임화는 ‘광장’의 시인이자, 고향 마을의 재판정으로 소환되는 소설 『서유기』의 독고준과 닮아 있다. 임화는 처형되었고, 독고준은 사면되었다. 임화는 문학의 말과 현실이 하나임을 믿었고, 추구했고, 독고준은 현실을 떠나 말이 만드는 말의 공간, 문학이라는 그만의 ‘밀실’로 귀환했다. 어쩌면 이것은 이 땅에서 문학을 행위했던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의 운명의 두 얼굴이며, 우리 문학과 정치의 지형도라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호명한 작가와 작품들은 임화의 길과 독고준의 길 사이 그 어름에서 방황하고 갈등하면서 문학의 본질과 정향을 치열하게 사유하고 있다. 그들의 소설은 소설 안에서 문학과 예술의 길을 직접적으로 탐문하는 자기 반영적 성찰의 서사로서 우리 문학이 걸어왔던 고뇌와 모색의 지점들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라 할 수 있다.
―저자 황경

[책속으로 이어서]
임화는 현실적 실천을 문학적 실천으로 옮기려 했고, 문학은 현실에 갇혀 현실을 넘어서지 못했다. 문학의 힘은 그러나 문학적 실천을 현실적 실천으로 바꾸려는 무수한 상상력의 움직임에 의해 생성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익숙하고 일상적인 현실로부터 벗어나 ‘인식론적 문턱’을 넘어서는 비약과 도약의 어떤 지점에서 문학과 문학사는 불연속적인 새로움을 창출한다. 문학의 사실주의는 그러므로 문학의 언어 안에서 새롭게 구성되는 사실주의이며 변화하는 사실주의이다. 그것이 한바탕의 놀이, 유희로 마감된다 할지라도 어차피 문학은 현실에서 결핍된 것들의 호명이며, 오지 않은 모든 것들의 이름으로 지속된다. 그런 의미에서 임화가 요청했던 ‘민족문학’은 아직 오지 않았거나, 다시 새롭게 와야 할 민족문학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또한 임화 문학사론이 고착되어 있던 계몽성과 사상성과 정치성의 강박증을 덜어 낸 지점에서 비로소 가능할 수 있다. 우리의 문학과 문학사는 그러나 여전히 발전과 진보를 향한 계몽과 근대의 와중에 있다.(p.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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