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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굴뚝청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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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5
ISBN-10 : 8976829425
ISBN-13 : 9788976829429
철학과 굴뚝청소부 중고
저자 이진경 | 출판사 그린비(그린비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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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3월 17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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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8 정말 희소한 책입니다 5점 만점에 5점 testb*** 2020.08.14
487 깨끗한 책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5점 만점에 5점 jfk121*** 2020.08.11
486 빠르게 받았어요 감사해요 5점 만점에 5점 tdcy*** 2020.08.03
485 주문한 다음날 바로 도착했구요 책 상태도 최상이었고 포장도 꼼꼼히 해주셔서 깨끗한 상태로 잘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5점 만점에 5점 napu*** 2020.07.28
484 잘받아보았구요. 감사합니다~ 5점 만점에 5점 wsc*** 2020.07.24

이 책의 시리즈

책 소개

상품구성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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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근대에서 포스트모더니즘(탈근대)에 이르기까지의 주요 철학사상을 개괄적으로 정리한 철학사로, 그동안 대학 신입생들의 철학 입문서로 사랑받아왔다. 이번 증보판은 7년 만에 저자가 초판에서 미흡했던 점들을 대폭적으로 손본 것이다.

이번 증보판의 가장 큰 특징은 두 개의 독립된 텍스트가 한 권으로 묶여 있다는 것이다. 기존의 텍스트와 별개의 스토리 구조를 가지면서도 또한 조화를 이루는 도판 텍스트를 함께 배치하였다. 여기에는 공장, 병원, 감옥, 과학, 종교, 침략, 강탈, 적, 친구 등을 주제로 한 그림, 사진 등의 작품이 망라되어 있다.

저자소개

저자 : 이진경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했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서구의 근대적 주거공간에 관한 공간사회학적 연구」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연구자들의 코뮤넷(코뮨들의 네트워크) ‘수유+너머’에서 〈수유너머 N〉(www.nomadist.org)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으며, 박태호라는 이름으로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기초교육학부 교수로 강의하고 있다.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으로 사회구성체논쟁에 개입하면서 책을 쓰기 시작했고, 사회주의 붕괴 이후 근대성에 대한 비판적 연구를 시작해 그 첫 결과물로 『철학과 굴뚝청소부』를 발표했다. 이후 자본주의와 근대성에 대한 이중의 혁명을 꿈꾸며 쓴 책들이 『맑스주의와 근대성』, 『근대적 시·공간의 탄생』, 『수학의 몽상』, 『근대적 주거공간의 탄생』, 『이진경의 필로시네마: 탈주의 철학에 대한 10편의 영화』, 『역사의 공간』 등이다.
또 맑스, 푸코, 들뢰즈·가타리 등과 함께 사유하며 쓴 책으로 『철학의 외부』, 『노마디즘』, 『자본을 넘어선 자본』, 『미-래의 맑스주의』, 『외부, 사유의 정치학』 등이 있다.

목차

서론
1. 포스트모던 '시대정신'
2. 철학의 경계
3. 경계읽기와 '문제설정'

제1장 철학의 근대, 근대의 철학
1. 데카르트:근대철학의 출발점
2. 스피노자:근대 너머의 '근대' 철학자

제2장 유명론과 경험주의 :근대철학의 동요와 위기
1. 유명론과 경험주의
2. 로크:유명론과 근대철학
3. 흄:근대철학의 극한
4. 근대철학의 위기

제3장 독일의 고전철학:근대철학의 재건과 '발전'
1. 칸트:근대철학의 재건
2. 피히테:근대철학과 자아
3. 헤겔:정점에 선 근대철학

제4장 근대철학의 해체:맑스, 프로이트, 니체
1. 맑스:역사유물론과 근대철학
2. 프로이트:정신분석학과 근대철학
3. 니체:계보학과 근대철학
4. 근대철학 해체의 양상들

제5장 언어학과 철학 '혁명':근대와 탈근대 사이
1. 언어학과 철학
2. 훔볼트:언어학적 칸트주의
3. 소쉬르의 언어학적 '혁명'
4. 비트겐슈타인:언어게임과 언어적 실천

제6장 구조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근대 너머의 철학을 위하여
1. 구조주의와 철학
2. 레비-스트로스와 구조주의
3. 라캉:정신분석의 언어학
4. 알튀세르:맑스주의와 '구조주의'
5. 푸코:'경계허물기'의 철학

결론:근대철학의 경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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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예를 들어 내가 사기를 당한다고 할 때, 사기를 당하는 ‘내’가 없다면 사기를 당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무엇을 생각할 때, 회의론자 말대로 내가 잘못 생각할 수도 있고, 혹은 무엇을 생각하는지 불명확할 수도 있지만,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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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내가 사기를 당한다고 할 때, 사기를 당하는 ‘내’가 없다면 사기를 당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무엇을 생각할 때, 회의론자 말대로 내가 잘못 생각할 수도 있고, 혹은 무엇을 생각하는지 불명확할 수도 있지만, ‘생각하고 있는 나’가 없다면 대체 생각한다는 게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 하는 것입니다. 의심하는 것도 마찬가지지요. 의심하는 ‘나’가 없다면 의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회의론자들이 의심한다는 사실이야말로 ‘의심하는 사람’(회의론자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만큼은 회의론자들조차 반박할 수 없을 만큼 확실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그는 자신의 철학에서 ‘제1원리’로 제시합니다. (37쪽)

그러나 흄은 인과관계란 ‘연접된,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붙어 있는 두 인상(현상)의 관계에 대한 습관적인 판단’이라고 합니다. 예컨대 나무를 비비면 불이 붙는다는 것은 그런 경우를 자주 보다보니 생긴 습관이라는 겁니다. 그렇지만 그게 언제나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영화 「불을 찾아서」에서 주인공이 배운 대로 나무를 맞대 세워 비벼대지만 불은 붙지 않습니다. 그를 따라온 여인이 비비자 불은 다시 붙지만, 어쨌거나 나무를 비비면 불이 붙는다는 건 언제나 반드시 타당한 결론은 아니라는 겁니다. 다만 자주 일어나는 일이라서, 불이 붙을 것이란 판단을 하는 습관이 형성되어 있을 뿐이라는 거지요. (127쪽)

맑스는 ‘인간’이란 개념 자체를 해체합니다. 그는 ‘인간’이란 포이어바흐처럼 사랑이나 의지를 본질로 하는 존재로 정의될 수 없으며, 데카르트처럼 ‘이성’과 ‘정념’을 가진 존재로 정의될 수도 없다고 하죠.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이 갖는 수많은 특성 중 몇 가지를 추출해서 인간의 본질이 그거라고 선언하는 데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식이라면 사람마다 인간은 다르게 정의될 수 있을 겁니다.
맑스가 보기에 정말로 중요한 것은 실제로 존재하는 개인들이 어떤 사회적인 특징을 갖고 있으며, 그것이 어떻게 변하는가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단적으로 말합니다. 인간은 사회적 관계의 총체라고 말입니다. (215쪽)

결국 ‘나’ 혹은 ‘자아’라고 부르는 존재는 단일하고 일관된 성격을, 통일성을 갖지 않는다는 게 분명해집니다. 간단히 말하면 ‘주체’는 서로 대립되며 상충하는 부분들로 분열되어 있다는 거죠. 최소한 서로 대면하지 못하는 의식과 무의식, 서로 충돌하며 싸우는 거시기와 초자아로 나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주체란 통일적인 중심이 아니라 매우 이질적인 ‘복합체’이고, 자명한 출발점이 아니라 하나의 ‘결과물’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인간’이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며, ‘주체’란 (초자아라는) ‘타자’가 요구하는 규칙을 받아들여 행동함으로써 구성되는 결과물이란 것이지요. 이로써 근대철학의 지반이 해체되는 또 하나의 경로가 그려집니다. (2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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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데카르트에서 들뢰즈로 향하는 근대철학의 여정, 25년 넘게 사랑받은 철학 입문서의 바이블을 만나다 두 사람의 굴뚝청소부가 청소를 마치고 내려왔다. 한 사람은 얼굴이 더러웠고, 한 사람은 깨끗했다. 과연 누가 세수를 하게 될까? 답은 얼굴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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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에서 들뢰즈로 향하는 근대철학의 여정,
25년 넘게 사랑받은 철학 입문서의 바이블을 만나다
두 사람의 굴뚝청소부가 청소를 마치고 내려왔다. 한 사람은 얼굴이 더러웠고, 한 사람은 깨끗했다. 과연 누가 세수를 하게 될까? 답은 얼굴이 깨끗한 사람이다. 상대방의 얼굴을 보고서, 자기도 더러우리라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근대철학의 목표는 바로 (인식)주체와 (인식)대상이 일치하는 인식(이것이 근대철학이 말하는 ‘진리’다)에 도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굴뚝 청소부의 예처럼 인식하는 주체와 인식되는 대상으로 양분되면 인식된 것이 사실과 일치하는지의 여부를 확인할 길이 없게 된다. 그렇다면 진리란 불가능하단 말인가?

진리에 도달하려는 근대철학자는 이런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 난국을 빠져나가기 위해 여러 가지 탈출구를 찾아내려는 근대철학자들의 시도, 근대철학의 다양한 흐름과 사상은 이런 식으로도 이해될 수 있다. ‘철학’과 ‘굴뚝 청소부’라는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가 하나의 제목에 담긴 이유는 굴뚝청소부의 딜레마를 통해 근대철학의 내부와 외부에 있는 경계들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근대철학의 딜레마,
주체와 대상은 영원히 일치할 수 없는가?

이 책은 근대에서 포스트모더니즘(탈근대)에 이르기까지의 주요 철학사상을 개괄적으로 정리한 철학사다. 그러나 단순히 주요 철학자들의 사상을 요약 정리해 놓은 개론적 성격의 입문서는 아니다. ‘근대철학의 경계들’이란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근대철학이 자신과 중세철학 사이에 만드는 경계를 통해, 그리고 탈근대적 문제설정이 근대철학을 넘어서려 하면서 만들어낸 경계를 통해 철학의 역사를 이해하려고 한다. 더불어 각각의 시대 내부에서 다양한 흐름과 철학자들의 사고들이 상충하면서 만들어낸 경계들을 살펴봄으로써 근대는 무엇이며, 탈근대는 또 무엇인지, 그리고 근대를 벗어난다 함은 무엇을 뜻하며, 근대를 벗어나려는 시도가 타당하다면 그 ‘벗어남’을 위해선 무엇이 필요한지, 즉 탈근대적으로 사고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요구되는지를 천착하고 있다. 요컨대 이 책은 현실 사회주의 붕괴 이후 사고방식의 근본적인 전환이 요구되는 시점에서 근대성을 뛰어넘어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하기 위한 필요에서 나온 책이다.

저자는 먼저 데카르트에서 비롯되는 근대철학이 신으로부터, 그리고 동시에 대상으로부터 주체를 분리시킴으로써 성립하지만, 주체와 대상의 이분법 위에 구축됨으로써 필연적으로 빠지게 되는 딜레마를 서술하는 것으로 논의를 시작한다. 이 딜레마는 인식주체와 인식대상을 나누고 양자가 일치하는 게 진리라고 한다면 어떤 지식이나 인식이 진리인지 아닌지는 결코 확인할 수도, 보증할 수도 없다는 난점을 가리킨다(앞서 말한 굴뚝청소부의 딜레마가 바로 그것이다). 이 딜레마는 중세철학에서는 나타나지 않고 근대철학에만 고유하게 나타난다. 중세에서는 세계가 어떻게 존재하는가, 나라는 존재는 무엇인가 하는 따위의 문제는 창조론이 설명해 주고, 무엇이 진리인지는 계시론이 보증해 주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교회와 성직자의 말에 따르면 충분했으니까.

이어서 저자는 유명론과 근대철학의 긴장관계를 살펴봄으로써 근대의 주체철학이 어떻게 동요하고 위기에 빠지는지, 근대철학을 재건하려 했던 독일의 고전철학이 결국 어떻게 근대철학을 종말에 이르게 하는지, 맑스, 프로이트, 니체가 근대철학을 어떻게 해체하며, 이후 이들의 개념과 방법이 현대철학자나 이론가들에 의해 어떤 식으로 사용되는지를 살펴본다. 그런 다음 언어학을 중심으로 근대와 탈근대 사이의 철학 사상들을 살펴보는데, 소쉬르의 언어학적 혁명의 의미와 난점은 어떠한 것인지, 구조언어학의 난점을 비트겐슈타인이 어떻게 해결하는지를 논의한다. 그리고 이어서 근대 너머의 철학을 구조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를 중심으로 살펴보는데, 레비-스트로스, 라캉, 알튀세르, 푸코가 근대철학의 경계를 어떻게 넘어서며 이들 각각의 한계는 어떠한 것인지를 논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들뢰즈와 가타리를 다루며 근대철학에서 탈근대철학에 이르는 철학사의 흐름을 정리한다. 저자 특유의 논리적이고도 쉬운 설명으로 들뢰즈와 가타리의 철학적 개념어들과 문제의식을 풀어내고 있어, 이 장은 처음 이들의 철학을 접하는 독자들에게 훌륭한 안내서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도판 텍스트와 본문 텍스트의 긴장,
상이한 속도와 리듬 속에서 새로운 사유를 떠올리다

독자들은 『철학과 굴뚝청소부』라는 한 권의 책을 읽으며 두 개의 스토리를 따라가게 된다. 본문 텍스트의 스토리와 도판 텍스트의 스토리가 그것이다. 별개의 스토리 구조를 갖는 도판 텍스트를 본문의 텍스트와 병치시킴으로써 두 텍스트의 긴장과 조화 속에서 새로운 사유가 촉발될 수 있게끔 하였다. 총 81개의 도판과 주석은 12개의 그룹으로 묶이는데, 각각의 철학이 그 위로 펼쳐지며 나름대로 사유의 선을 그리는 그런 소재들로 구성되어 있다. 도판 텍스트는 어느날 사유에게 다가온 것, 사유가 만나는 것, 그리고 사유하면서 사용한 모든 것, 요컨대 사유가 소재로 삼는 모든 것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여기에는 공장, 병원, 감옥, 과학, 종교, 침략, 강탈, 적, 친구 등을 주제로 한 그림, 사진 등의 작품이 망라되어 있다.

각각의 도판과 주석은 본문과 연관지어서 보아도 좋고, 그것만 따로 떼어내 보아도 좋다. 필자가 ?이 책의 주장을 의심하라?고 에필로그에서 권한 것처럼, 독자들은 각각의 도판들을 보면서, 아니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주위의 사물들을 보면서 나름의 사유들을 펼쳐갈 수 있을 것이다. 도판 텍스트는 독자들을 그러한 사유의 길로 안내하는 훌륭한 길잡이 역할을 할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본문 텍스트와 도판 텍스트 사이의 상이한 속도와 리듬, 상이한 방식의 서술들 사이에서 독자들 나름의 사유가 촉발될 수 있으리라고, 그리하여 좀더 다양한 사유와 토론이 생성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물론 결과가 의도와 부합하는가의 여부는 내가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다. 다만 새로운 사유의 선들이 그 사이에서 흘러나오길, 그리하여 새로운 사유가 그 텍스트를 가로질러 흘러넘치길 소망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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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

회원리뷰

  • 여러 학자들에 대해 언급 하지만 그 중에서도 들뢰즈의 부분을 적어본다, 차이의 철학의 들뢰즈,,, 들뢰즈의 생각을 가지고...

    여러 학자들에 대해 언급 하지만 그 중에서도

    들뢰즈의 부분을 적어본다,

    차이의 철학의 들뢰즈,,,

    들뢰즈의 생각을 가지고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멈추지 않고, 늘 변화 하는 삶에 대해서,,

     

    <차이와 반복>에서 생선,, 접속, 변이로서 차이의 개념을 정의혀고 했다. ‘의미의 논리를 해명하고자 한다.

    의미란 무엇인가?

    의자와 사물 그 안에 있는 것이 아ᅟᅵᆫ라, 사물들이 서루 접속하면서 만들어지는 것으로 본다. 즉 과정중, 고정이 아니라 변이, 변화의 측면이다. 사물과 구별되는 <사건>이란 개념은 생성과 변이의 관점에서 둘 사이의 의미에 접근하는 길을 보여준다.

     

    사물의 상태가 어떤 고정된 지점에서 대응하는 것이라면 생성되기는 두 지점사이어딘가에서 발생합니다.

    사건이란

    사물의 만남, 접속에 속한 것이고, 만나는 사물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사물들의 만남을 통해 어떤 의미가 발생할 때, 그것을 들뢰즈는 사건이라 정의한다

    예를 들면, 어떤 이웃항들과 연결되는 가에 따라 의미가 변화된다. 공이 발과 만나면 축구공이 되고, 공이 네트와 만나면 배구공이 된다.

    이처럼 하나이 사물이 이웃항과 접속하면서 어떤 의미를 갖게 될대, 그것을 사건화된다고 하고, 이렇게 복수의 사물을 하나의 계열로 연결하는 것을 계열화 한다고 합니다.

    , 하나의 사물은 계열화 되는 선이 달라짐에 따라 다른 사건이 되는 것이다.

     

    사실과 사건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가는 계열화의 선이 달라짐에 따라 사실들은 전혀 다른 사건들이 된다.

    예를 들면, 하나의 시신을 둘러 싸고 만들어 지는 살인 사건의 용의자에 대해 이러한 사건은 얼마든지 반복이 됩니다. 개개의 사건들을 하나로 묶어줄 수 있는 이런 사건의 집합을 이념적 사건이라고 부른다.

    <이념적 사건>에 포함되는 모든 사건은 항상 어떤 <차이>를 포함학 있다. 모든 사건들은 우발적이고 우연적인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 동일성도 차이의 반복이 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 사물들은 많은 사건, 다양한 의미로 개방되어 있지 않다. 그것은 계열화를 지배하는 어떤 힘들 때문이다. , , 권력이 있다.

    시신--피가 있다면 살인계열화 할 수 있다.

    상식이란 언어로 다양한 계열화의 가능성을 제한하여 어느 하나로 계열화하게 만든다.

    양식에 반하는 계열화를 통해서 양식의 힘과 대결하고 그것을 무력화시키는 것을 들뢰즈는 역설이라고 정의한다.

    상식(양식)과 역설이란 개념을 통해 들뢰즈가 제안하고 있는 <의미의 논리>라고 하고, 기존의 것을 변이 시키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사건성을 강조하는 철학을 <사건의 철학>이라고 한다.

     

    들뢰즈는 욕망을 긍정합니다.

    욕망이란 무엇을 하고자 하는 의지이고, 힘은 할 수 있다. 이다. 힘이 있다고 아무거나 하지 않는다. 힘이 있다고 해서 우린 아무곳에나 사용하지 않습니다. 욕망이란 모든 활동을 생산하는 추동력 즉, 욕망과 힘이 하나이다.

     

    프로이드와 다르게 들뢰즈는 모든 욕망은 사회적이라고 하였다.

    즉 욕망이란 라는 주체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그것들의 관계에 있다.

    , 사물들의 계열화를 통해 욕망은 특정한 배치에 속한다. 예를 들면, 자본주의 배치안에 들어가면 화폐에 대한 욕망이 생겨날 수 밖에 없다.

    배치 내지는 관계 안에 들어오는 것들을 특정한 욕망으로 끌어들입니다. 이를 영토화라고 한다. 욕망이 어떤 상태를 유지하고 그 상태의 동일성응지속하려는 힘이 될대, 욕망이 특정한 조건속에서 권력이 되는 것이다.

    배치란 개념에서 계열화 되는 순서를 바꾸는 것만드로도 배치가 변화된다. 어떤 새로운 항의 추가, 제거, 대체, 혹은 순서의 변경 등을 통해 기존의 배치를 다른 것으로 변환시키는 지점을 <탈영토화>라고 한다.

    혁명은 기존 관계를 전복하여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들뢰즈, 가타리의 개념을 사용하면 기존에 주어진 배치를 전복하여 다른 배치로 변환시키는 것이다.(새로운 배치는 자신을 유지하는 힘을 갖지만, 동시에 또다른 배치로 변환될 수 있는 탈영토화 첨점을 갖고 있다.)

    탈주선을 그린다고 이야기 하는데, 기존의 배치안에서 고정되있는 것을 벗어나 새로운 가치나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욕망의 이론을 종종 탈주의 철학이라고 명명한다.

    혁명은 의무가 아니라 욕망이며, 혁명은 욕망의 억압이라는 부정적 과정을 통해 이루질 수 없으며, 긍정적 과정으로 진행되어야 함.

    들뢰즈의 철학은 정착민(정채진 한곳에 붙박혀 사는 사람들), 유목민(한 곳에 붙박히지 않고 여로 곳을 이동하며 사는 사람들)중 유목민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의 가치, 하나의 스타일, 하나의 영토에 머물지 않고 반대로 그것들로 벗어나는 탈영토화 운동속에서 사는 방식이다.

    들뢰즈는 탈영토화 운동을 향해, 자기와 다른 것들과 만나면 자신을 이전의 자신과 다른 것으로 만다는 운동을 향해 열려 있을 때, 노마디즘이라한다.

    노마디즘은 새로운 영토를 만들거나 거기에 자리잡는 태도(재영통화)가 아니라, 머물고 있는 곳이 어디든 항상 떠날 수 있는 태도(탈영토화)를 말한다.

     

    들뢰즈의 기계주의에서 기계란,

    기계의 의미는 다른 것과 접속하여 어떤 흐름을 절단하여 채취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모든 것

     

    사물은 무엇인가? 배치안에서결정, 배치에 따라 달라짐

    주체는 무엇인가? ‘는 항상-이미 주체인 게 아니라, 배치안에서 어떤 위치를 부여받았는가에 따라 주체가 되기도 하고 주체가 되지 못하기도 하다.

    진리란, 조건에 따라 현실적인 유효성을 갖는 지식이 무엇인지 물어야 하며, 그것이 우리 삶에 어떻게 작용할 것인지 물어야 한다. 진리란 무엇인가?가 아니라 어떤 진리인가 물어야 한다.

     

    이 세계는 다양한 지식들이 진리의 형식으로 관여하면서 만들어지고 변형되는 우리 자신의 삶이다.

     

  • 철학과 굴뚝 청소부 | hy**117 | 2013.10.03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철학과 굴뚝청소부   대학교 때 한번 읽어보았었는...
    철학과 굴뚝청소부
     
    대학교 때 한번 읽어보았었는데, 다시 읽고 싶어서 읽게 된 책이다. 근현대 철학에 대해 잘 정리되어 있다고 입소문이 나 있는 책이다. 저자의 필명은 이진경인데, 본래이름은 박태호이며 현재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양학부 교수이다. 본래이름보다 필명이 유명한 특이한 케이스라고 생각한다.
     
    서론
     
    요즘 시대는 하나의 사조 사상에 의해 지배되는 세상이 아닌 포스터모던한 세상이라고 이야기한다. 근대에서 벗어나는 시대인데, 그 의미는 무엇인지, 왜 벗어나야하는지, 어떻게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고민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철학은 이전 것을 넘어서는 것인데, 넘어서기에는 3가지의 단계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당시의 지배적인 사상을 넘어서는 것, 두 번째는 철학적 흐름을 넘어서는 것, 세 번째는 하나의 시대를 지배하는 특정한 사고방식을 넘어서는 것이다. 철학이 바뀌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경계설정이 필요한데, 경계설정은 어떤 방식으로 문제를 보는가에 따라 매우 다른 답을 얻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경계설정을 위한 적절한 질문이 매우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1. 데카르트 근대 철학의 출발점
     
    철학에서 근대란 무엇인가 혹은 철학적 근대란 무엇인가 질문한다. 다른 질문으로 근대이전의 중세는 어떤 시대인가. 중세는 세상과 인간은 신이 창조하였고, 진리는 신이 보증한다. 그러나 회의론자들은 인간의 이성적 사고를 믿을 수 없고 모든 것을 믿을 수 없으며, 진리도 확실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에 중세철학의 거인 아우구스티누스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제를 들어서 회의론자들이 절대 의심할 수 없는 나 자신이 있음을 주장한다. 이런 것이 가능한 것은 인간의 영역을 초월한 신이 내려주신 것이며, 신과 진리의 증거로 삼는다.
    중세가 끝나갈 무렵 수많은 과학적 증거와 지식들이 쌓이며, 신학의 한계가 오게 된다. 상징적인 사건으로 이탈리아 철학자 브루노와 갈릴레이의 예를 들었는데, 결국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을 통해, 신에게서 독립한 인간의 이성의 중요성을 확실히 하게 된다. 데카르트가 사용한 명제도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제이다. 스스로 방법론적 회의론자가되어 끊임없이 의심하다가 결코 의심할 수 없는 자신의 존재를 보게 된다. 아우구스티누스와 동일한 명제이지만 전혀 다른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이성적 사고는 신에게서 부여된 것이 아닌 내제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신에게서 독립한 것이다. 데카르트의 철학에 의하면, 자신을 인정하는 순간, 스스로 주체와 주체가 인식하는 개체가 나누어지게 되며, 개체를 이해하여 진리에 도달하는 방법론을 고민하게 된다.
     
    신으로부터 주체를 독립시키자마자 발생한 문제는 주체는 진리를 인식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었고, 이에 대해 데카르트는 두개의 실체인 '연장'과 '사유'를 주장한다. 이원론이다. 연장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물질을 상징하고, 사유는 생각하는 성질을 의미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말했듯이, 사유가 연장에 우선하며, 유물론이기보다는 관념론에 가깝다. 인식하는 정신과 인식되는 대상이 별개의 존재라면 우리는 어떻게 인식할 수 있는가? 데카르트는 세 가지를 제시하였는데, 첫 번째는 이성의 타고난 완전성을 주장한다. 수학에서 알 수 있듯이 현실에서는 존재가 불가하지만 인간이 분명이 완전한 것을 알고 이해하고 있다. 이러한 완전한 사고는 신으로부터 받은 것이라고 주장하며, 신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는다. 두 번째는 과학의 발전을 통해 대상적 진리, 즉 객관적 진리를 인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경험적 사실은 불완전하지만 수학을 도입하여 과학적으로 기술할 경우, 객관성을 확보하게 되어 대상을 인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데카르트 자신도 데카르트 평면을 도입하여 기하학을 좀 더 분명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했다. 근대에서 과학은 매우 중요한 학문으로 취급받는다. 세 번째는 윤리학이다. 정신과 육체의 통일이 중요한다. 정신은 이성을 대변하고 육체는 감정을 대변한다. 이성으로 육체를 통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데카르트는 윤리학을 강조한다. 신이나 성직자가 없어도 인간은 스스로 살아가야하므로, 윤리학을 강조하였으며, 윤리학적 계몽주의의 선구자였다.
     
    데카르트 철학으로부터 세 가지의 분과가 성립된다. 존재론, 인식론, 가치론 이다. 이전에는 모두 신에 의해서 보증을 받았지만, 이제는 주체 스스로 해야 한다. 존재론은 나라는 존재가 어떠한 존재인가 생각해야 하고, 나는 어떻게 인식할 수 있는가 내가 인식한 것인 정말 참인가 어떻게 보증할 수 있는가 에 대해 고민해야하며, 신에게 기대지 않고 생각하는, 가치있는 삶이란 어떤 삶인지 다시 생각해야한다.
     
    2. 스피노자 : 근대 너머의 '근대' 철학자
     
    데카르트와 스피노자
    데카르트와 스피노자의 철학을 비교하고 있다. 데카르트의 중요한 철학적 원리인 존재론, 인식론, 윤리학에 대해서 반대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데카르트는 주체와 대상으로 구분하고 주체라는 인간이 세상의 중심이고 대상은 수동적이라고 이야기한다. 스피노자는 실체와 양태로 구분하면서 실체는 모든 변화의 원인을 의미하고, 양태는 실체가 현실세계에 나타나
    는 모습이라고 한다. 데카르트에서 대상이었던 자연은 스피노자에 의한 인간과 서로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자연의 일부라고 이야기한다. 스피노자에게 자연은 스스로의 원인으로 '능산적 자연'이면서 동시에 양태로 드러나는 '산출되는 자연'이기도 하다.
     
    실체는 속성들을 통해 '표현된다'. '표현된다'라는 말에는 존재한다라는 뜻과 인식된다 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즉 데카르트에게 있었던 '일치'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옳은 것을 옳다고 말하는 진리의 기준은 무엇인가? 진리라고 대답한다. 빛과 어둠의 기준은 빛이다. 이미 알고 있어야 질문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진리를 알아야 질문할 수 있다. 모르는데 어떻게 질문이 성립하나 이야기한다. 진리에 이르는 것은 목적이 아니라 출발점이라고 이야기한다. 스피노자의 윤리학에서는 인간의 정신의 육체의 관계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인간은 육체와 영혼으로 나누어지지만 서로 합일적이라고 이야기한다. 서로 합일 시키려는 힘을 코나투스라고 한다. 정신의 힘은 육체가 어떤 상태냐에 따라서 그에 맞추어서 변한다. 그것은 무의식과 연결되어 있다. 데카르트에서 욕망은 통제해야할 대상이지만 스피노자에게는 인간의 본질이며 억압하므로써 통제할 수 없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욕망을 만드는 조건을 바뀌는 것이 억압보다 나은 방법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스피노자의 사상은 데카르트와 동시대의 사상이지만 근대를 벗어난 탈근대의 사상이라고 이야기한다.
     
    제 2부 유명론과 경험주의
     
    1. 유명론과 경험주의
     
    실재론과 유명론의 논쟁을 다루고 있다. 실재론은 중세를 지배했던 논리로써 플라톤의 사상의 이데아를 신으로 바꾼 개념이다. 아름다움, 악마 등이 실재한다는 것이다. 유명론은 이런 것은 단지 개념일 뿐이며 여러 사물들의 공통된 특징을 묶어놓은 것 뿐이라는 것이다. 실재론의 대표적인 사상가로 에우리게나, 안셀무스, 기욤드 샹포라는 사람이 있고, 유명론은 로스켈리우스, 아벨라르두스, 오컴이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스콜라철학은 새로운 지식들이 계속 발견되면서 기존의 실재론을 계속 고집할 수 없었으며, 유명론과 절충하는 방식으로 한발 물러서게 된다. 오컴은 신학적인 부분에서 실재론은 맞지만 이성부분에서는 유명론이 맞다고 주장하여 신학을 합리적인 철학에서 분리하여 철학과 신학을 분리하게 된다. 유명론은 경험주의로 연결된다.
     
     
    2. 로크 - 유명론과 근대철학
     
    로크는 경험주의를 하나의 사조로 만든 사람이다. 그는 갈릴레이, 뉴턴, 호이겐스 등이 이룩한 과학혁명의 경험하면서 사고를 키웠다. 로크는 진리에 이르는데 과학이 중요한 역할을 하며, 과학에 이르는 길로써 경험과 관찰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데카르트는 경험과 관찰은 불확실하다고 이야기하고 이성의 본유관념이 진리에 이르는데 중요하다고 주장한 반면, 로크는 경험이나 관찰에 의하지 않는 신학적인 우주론은 과학에 방해될 뿐이라고 말한다. 로크가 보기에 완전한 개념은 신이 준 것이 아니고 타고난 것도 아니며, 경험에서 추출된 것이라고 말한다. 보편은 개별에서 추상된 것에 보편적인 이름을 붙인 것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로크는 데카르트가 지적한 경험의 불완전성 문제에 부딪힌다. 두 가지 문제가 있는데 하나는 실체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진리의 문제이다. 실체는 무엇인가. 인식의 불변적인 주체가 있으며 정신적인 실체가 있음을 이야기한다. 물질과 정신의 실체 둘 다를 받아들이게 된다. 두 번째는 진리이다. 제 1성질은 주체와 상관없이 받아들여지는 성질이다. 가령 태양은 하나다 라는 명제는 주체와 상관없이 성립한다. 그러나 춥다 덥다 등의 경험은 주체에 따라 달라진다. 이러한 성질을 제 2성질이라고 한다. 제 1성질은 사물의 본유성질로 속하게 되면서 반유명론적 주장을 하게 된다. 모순인 것이다.
    버클리는 주교였다. 그래서 그렇게 과학에 큰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버클리는 정신이라는 실체만 존재하며, 정신이 자각하는 것만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즉 물질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오직 지각된 것 뿐이다. 즉 유명론보다는 관념론으로 치우친다. 흄은 불확실한 것을 비판적으로 검토했다. 그에 따르면 철학은 7가지 관계가 있는데, 유사관계, 양적관계, 질적관계, 반대관계는 확실하지만, 동일관계, 시간공간의 관계, 인과관계는 확실하지 않다고 말한다. 문제는 인과관계이다. 과학에서 인과관계는 핵심이다. 과학은 성립하지 못하고, 나라는 존재도 항구적이나 불변적이지 않음을 말하면서, 진리의 인식은 불가능하다는 근대철학의 경계점인 회의주의를 갖게 된다. 진리를 인식하기는 힘들고, 받아들이는 사람의 믿음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진리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모든 것이 변한다는 것이 변하지 않는 사실이지 않는가. 그러므로 현상세계에서 진리를 인식하려는 시도는 실패하기 마련이라고 생각한다. 그보다 어떤 사실을 받아들이는 사람, 사회, 국가의 태도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즉 받아들이는 각각의 주체(변하기 쉬운)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다.
     
     
    제 3부 독일의 고전철학
     
    1. 칸트 - 근대철학의 재건
     
    주체의 능력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인간은 무엇을 바랄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하고 세 개의 비판서로 남긴다.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 비판, 판단력 비판. 경험은 모두 다르므로 경험을 살피지 말고 경험 이전의 것 즉 선험적인 것에서 찾아야한다고 말한다. 칸트에서 의해서 제시되는 새로운 개념은 감성 (감각기관과 관련), 지성 (감각기관으로 들어온 정보를 판단), 이성 (하나의 원리로 통일하려는 노력) 세 가지이다. 진리는 선험적 종합판단으로부터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인간은 경험하는 것은 다를 지라도 경험하는 원리는 동일하다. 대표적인 선험적인 원리가 시간과 공간이다. 도덕철학은 신에게서 독립한 인간의 행동원리로 제시한 것으로, 각각의 인간의 보편타당한 의지를 따르라고 이야기한다. 칸트가 주장한 것은 계율주의이며, 선하기 때문에 계율을 지키는 것이 아니고 계율은 지키기 때문에 선하다고 말한다. 그의 철학의 한계로써 진리는 주관의 형식으로 정의되는데, 선험적 허위, 선험적 허구일 가능성도 그의 철학원리 속에 내포되어 있다. 범주를 나누는 기준이 애매모호하다. 독단론에 빠질 위험이 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칸트 철학에 대해서 개괄적으로 살펴볼 수 있어서 매우 좋았다. 인간의 정신에 대해서 이렇게 깊이 있게 고찰했다는 자체가 일단 대단하고 생각한다. 역사상 인간 정신 진보에 중요한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2. 피히테: 근대철학과 자아
     
    칸트의 비판에서 시작한다. 칸트가 말한 '사물 자체'는 논리적으로 성립할 수 없다고 말한다. 사물 자체가 인식되지 않는 무엇이라면 사물 자체가 있다는 것은 어떻게 인식했는가? 따라서 피히테는 주체와 대상을 연관지우고 통일시키는 원리를 자아로 정립한다. 자아는 모든 정신적 활동을 이루어주는 절대적인 근거이다. 다른 근거는 없다고 말한다. 두 번째로 자아는 비아, 즉 대상을 정립한다. 세 번째는 자아는 자아 안에서 가분적 자아에 대해 가분적 비아를 반정립한다. 비아는 대상이 갖는 다양성을 뜻한다면 자아는 하나로 묶는 통일성을 의미한다. 피히테는 자아의 무제한적 자유를 강조한다. 피히테 철학에 다시 불거지는 문제는 자아가 비아를 정립하지만, 비아를 제대로 인식하는지는 별개의 문제라는 점이다. 사람마다 다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발견은 불일치에서 시작하는데, 피히테의 말에 따르면 대상과의 불일치를 생각할 수 없다. 진리의 봉쇄가 일어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본인의 생각으로, 결국 인식과 인식대상의 불일치가 계속해서 나타나는 근원적인 문제이다. 그러나 완전히는 알 수 없어도 대체로는 (확률적으로) 일치하는지 여부를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살아가고 있다. 인식과 인식대상의 문제는 차라리 확률론적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든다. 그 확률은 사람마다 경우마다 다르다.
     
    3. 헤겔 정점에 선 근대철학
     
    저자도 그렇게 말했지만, 헤겔하면 변증법이 떠오른다. 헤겔의 사상은 매우 복잡하고 난해하며 범위가 매우 방대하다고 말한다. 그의 사상은 칸트로 부터 시작하는데, 피히테와 셸링을 비판적으로 취했다고 한다. 헤겔도 피히테처럼 현실과 주체를 분리시키지 않으려고 했다. 특히 셸링을 받아들여 주체와 객체의 동일성을 '절대자'라고 말하였다. 자기가 객체이기도 한 주체를 설정한 것이다. 이를 절대자, 혹은 절대정신이라고 말한다. 자연철학을 중시한 셸링과는 달리 그는 중요한 것은 정신이라고 말한다. 이 정신이 외화(소외)되어 자연, 사회, 역사가 되었다고 말하는데, 특히 정신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사회와 역사를 다루었다. 역사는 절대정신의 실현이라는 목적을 향해서 발전해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정신에서 대상으로 다시 정신으로 돌아가는 원환운동, 다른 말로 '부정의 부정'을 통해 변증법으로 설명하고 있다. 즉 주관과 객관은 통일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변증법적 운동을 통해서 통일되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즉 정신은 단계상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헤겔의 사상은 스피노자의 사상을 강하게 받았다고 설명한다. 스피노자는 객체와 주체를 분리하지 않고, 실체와 양태의 개념으로 나누어서 실체는 하나이고 실체와 양태는 결코 일치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고, 진리와 진리의 기준을 미리 갖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헤겔은 지식의 평가는 진리를 기준으로 하는데, 이 기준은 지식이 제공한다. 모순처럼 보이지만, 진리는 자신이 갖고 있는 기준 자체를 돌이켜 검사 혹은 정정해 가는 과정일 수밖에 없다고 말하며, 진리는 바로 '정신자체의 내적인 관계'라고 말한다. 진리는 관계이다. 헤겔사상에서 또 다른 딜레마가 나온다. 진리가 정정하는 과정에서 계속 바뀐다면, 헤겔이 말한 '바뀐다'는 것도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본인은 모든 것은 변한다 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에서 헤겔의 이러한 모순은 사소해 보였다. 그러나 헤겔은 이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자신의 시점에서 절대정신이 완성된다고 독단을 해버린다. 그는 변화는 목적으로 환원되어, 그 자체가 절대적이라고 말한다. 독단론으로 흐르지 않고 열린 결말을 두었다면 오히려 더 나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제 4부 근대철학의 해체 - 맑스, 프로이트, 니체
     
    근대의 문제 설정에 있어서, 맑스, 프로이트, 니체는 근본적인 '의심의 대가'였고, 근대 철학의 해체에 중요한 전환을 마련한다. 1950년 대까지, 3H (헤겔, 후설, 하이데거)에 의해 유럽의 지적 풍토를 지배했는데, 현상학과 실존주의를 통해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지만, '구조주의'가 생기면서 새로운 흐름이 생성된다.
     
    1. 맑스 - 역사유물론과 근대철학
     
    드디어 맑스이다. 그에 대한 많은 얘기를 들어왔지만, 그의 사상의 간접적으로라도 읽어보지 못했는데, 이제야 읽는다. 맑스는 '실천'이라는 개념을 철학에 끌어들였으며, 이를 통해 근대철학의 문제설정을 넘어섰다고 저자 이진경은 평가한다. 맑스가 실천이라는 개념을 본격적으로 사용한 것은 '독일 이데올리기'의 부록에 실린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라는 글에서였다. 첫째 '대상'으로의 실천을 이야기한다. 포이어바흐는 대상이나 현실을 고정적인 개체로 파악하는데, 생활과정과 실천과정에서 파악해야한다고 말한다. 같은 개체이더라도 사용방식, 실천 경험에 따라서 다른 물건이 되고 만다. 둘째는 어떤 대상에 대한 지각을 단지 감각기관을 통한 관조하는 행위로만 파악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맑스는 지각이란 수동적인 과정이 아니라 지각이나 감성을 대상과 목적을 갖는 '활동' 혹은 '실천'이라고 말한다. 능동적인 과정이다. 실천적 맥락과 무관하게 어떤 대상을 지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셋째는 진리의 문제이다. 인간이 대상적 진리를 가질 수 있는가의 문제는 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실천의 문제라고 말한다. 즉 진리의 문제는 현실성과 힘을 입증하는 문제로 진환시킨다. 영원한 진리를 확보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현실성과 타당성을 살펴야한다고 말한다. 넷째는 계몽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계몽주의는 그 특징상 가르치는 사람과 가르침을 받는 사람으로 나누는 이분법이 존재하므로, 비판하며, 환경은 인간에 의해 변화하며, 교육자 자신도 교육받아야한다고 말한다. 근대의 유물론에 대해서 실천과 현실성에 타당성을 두는 '역사유물론'을 주장하게 된다.
    맑스는 인간이라는 개념 자체를 해체했다. 근대의 출발점으로써의 주체는 변하지 않는 사랑이나 의지, 이성이나 정념 을 갖는 존재이지만, 이는 인간이 갖는 수많은 특징 중의 하나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 수많은 특징은 사회적 관계에서 온 것이므로, 인간은 사회적 관계의 총합으로 보는 것이 인간에 대한 보다 나은 개념이라고 말한다. 역사도 마찬가지로 사회적 관계에 의해 정의되며, 주체도 목적도 없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공산주의는 경향을 말하는 것이지 목적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맑스는 당시 상황보다 너무 앞서가는 사상가여서, 스스로 근대적 사고 방식, 과학주의, 철학적 유물론으로 회귀 혹은 갖혀 있는 부분이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후에 실천의 개념을 더욱 탈근대적으로 발전시킨 사람은 비트겐슈타인이라고 말한다.
     
    2. 프로이트 - 정신분석학과 근대철학
     
    프로이트는 철학자가 아니지만 근대철학을 해체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왜냐하면 무의식이라는 개념 때문이었다. 근대에서 주체는 의식적 주체이며 통일성을 갖고 있고, 투명하며, 중심성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프로이트가 무의식의 개념을 제공하면서, 인간의 정신에는 인간에 의식되지 않는 무의식이 있음을 수많은 임상 사례를 통해서 제시한다. 정신은 의식과 무의식으로 나누어지는데, 무의식은 다시 이드와 초자아로 나누어지는데, 이드는 쾌락원칙에 따라서 움직이며, 초자아는 사회적 질서, 도덕적 질서가 내면화된 것이라고 말하며, 자이는 둘 사이를 조화하여 금지된 것을 피하면서 쾌락을 추구하도록 작용한다고 말한다. 특히 초자아는 원래 내 것이 아니고 내가 따라야할 타자라고 말한다. 결국 주체는 통일적인 중심이 아니라 이질적인 복합체이며 출발점이 아니라 결과물이라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3. 니체 - 계보학과 근대철학
     
    니체의 철학을 접근하기 위해서는 그의 '질문방식'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존의 철학적 질문은 본질을 묻는 질문이었다. 선이란 무엇이고 악이란 무엇인가 진리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들 말이다. 그러나 니체는 다르게 질문한다. 어떤 것이 선한 것이고 왜 선한 것인가 라고 물으며 선 이라는 말속에 담겨진 '의미'를 찾으려고 했다. '의미'를 찾는다는 것은 주어진 대상을 점령하는 '힘'을 찾는 것이다. 힘은 지배적인 힘과 피지배적인 힘이 있으며 의지는 힘들 간의 관계를 만들어 낸다. 니체는 이 의지를 '권력의지'라고 불렀다. 힘에는 능동적인 힘과 반작용적인 힘이 있고, 의지는 긍정적인 의지와 부정적인 의지가 있다고 분류하였다. 긍정적인 의지와 부정적인 의지의 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가치평가'라고 하였다.
    대상이나 개념에 감추어진 힘을 찾기 위해서는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디에서 연유하는지를 찾는 것이 '계보학'이다. 니체는 힘과 권력의지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대상의 의미와 가치를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비판철학'을 만들어 내었다. 자명하고 확실한 것에 대해서 니체는 자명하고 확실한 것은 없으며, 다만 그것을 찾으려는 의지라고 말한다. 이를 '진리의지'라고 말한다. 즉 근대적인 주체개념은 권력의지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라고 말한다. 진리는 없고 진리의지만 있다고 말한다.
     
    4. 근대철학 해체의 양상들
     
    맑스와 프로이트, 니체는 서로 다른 방법으로 근대철학을 해체한다. 이 세 사람의 사상이 주가 되어, 근대철학의 핵심개념인 자명한 주체와 진리는 없음을 확인한다. 주체는 진리탐구의 시작이 아니고 여러 가지 요소의 결과물이고 이질적인 복합체임을 알게 되었는데, 주체의 사고와 행동은 여러 가지 요소를 고려하는 동태적인 방법으로 파악해야함을 의미한다. 이들 개념은 현대철학자들에 의해 근대철학을 넘어서는 강력한 개념으로 작용한다.
     
    어쨌든 주체는 불완전하고 진리는 찾을 수 없음을 이야기한다. 개인적으로, 신으로부터 벗어난 이후, 명백한 후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기반을 다지는 작업이므로 매우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인간은 신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신학이 나타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면서, 신에 대한 개념을 너무 차단해버린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든다. 부정적으로 보면 인간의 오만함의 시작이다.
     
     
     
    제 5부 언어학과 철학혁명
     
    1. 언어학과 철학
     
    서구의 현대철학은 언어학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고 말한다. 상당히 정당한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모든 철학적 사유는 언어를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해당언어가 없으면 해당 생각을 할 수 없다. 저자는 철학적 확실성은 문법의 환상이라고 말한다. 이에 논리실증주의자들은 수학적인 기호와 같은, 어떤 편견도 배제된 일관되고 명확한 언어를 만들자고 주장한다. 언어마다 사고를 제한하는 규칙이 서로 다르게 내장되어 있으며, 언어를 연구할 경우, 인간의 삶과 사고에 대해서 알 수 있게 된다.
     
    2. 훔볼트 - 언어학적 칸트주의
     
    훔볼트의 언어와 철학에 대한 사유를 요약하고 있다. 첫째는 언어는 통일적 유기체라고 생각했다. 하나의 단어는 다른 단어와 연결지어져서 문장을 형성한다. 그들은 유기적인 관계에 있다. 둘째, 언어는 정신적 활동이다. 언어는 분절된 음으로 인간의 사상을 표현하는 영원한 활동이다. 언어는 사유로부터 독립되어 있지만, 사유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셋째 모든 언어는 하나의 세계관이다. 모든 언어는 현실세계를 사고로 전환시키는 각각의 고유한 방법이 있다. 모국어는 세상을 보는 안경인 것이다. 넷째 동일한 민족의 언어에는 비슷한 종류의 주관성이 있다. 외국어를 습득하는 것은 상이한 세계관을 흡수하는 것이다. 다섯째, 주체의 활동은 사유 속에서 대상을 형성한다. 이 견해는 칸트의 '대상은 주관이 형성하는 것이고, 판단은 주관의 작용'이라는 주장과 일치한다. 훔볼트는 언어는 주체들이 그 위에서 사고하는 일종의 '선험적 구조'라고 주장한다. 어떠한 사고도 언어를 빌리지 않으면 불가능하며, 모국어에 내장된 세계관 속에서 행해진다. 언어는 세계를 변화시켜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세계를 영유하고 전유하는 방식이며 내적 조직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사고가 언어의 규칙에 제약되는데, 언어의 규칙은 문법이고, 문법을 일반화한 것이 논리학이다. 즉 논리학은 문법적 규칙을 일반화하고 사고 규칙으로 정립한 것이라고 말한다. 언어가 달라지면 문법이 달라지므로 논리학도 달라질 수 있음을 저자는 조심스럽게 주장한다. 즉 언어에 따라서 다른 논리학의 성립이 가능한 것이다.
     
    언어가 아니면 정말 생각할 수 없을까 꼭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꿈을 꾼다. 꿈은 메세지이다. 그곳은 말보다는 이미지로 설명한다. 즉 그림이나 화면이나 음악이나 춤이나 맛이나, 표정이나 행동을 통해서 생각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표현할 수 있다. 즉 말로는 표현할 수 있는 다른 형태로 생각을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3. 소쉬르의 언어학적 혁명
     
    소쉬르 언어학의 기본 명제
    보통 언어나 기호는 지시체를 반영하는데, 소쉬르는 유사관계나 일치관계는 없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소쉬르의 견해를 다섯 가지로 요약하였다. 첫째, 언어학의 대상과 특징으로서, 언어활동은 랑그와 파롤이 있는데, 랑그가 대상이다. 파롤은 발화 (소리)를 의미하여, 랑그는 언어학적 규칙이며, 문법은 규칙의 일부이다. 언어학의 대상은 랑그이다. 랑그는 사회적규칙을 따르며 일종의 제도이다. 두 번째, 기호와 지시체는 자의적이다. 기호는 두 가지로 구성되는데 표시하는 것 (기표)와 표시되는 것(기의)로 구성되고 둘 사이의 관계는 자의적이다. 셋째, 공시성과 통시성이다. 공시정이란 어떤 기호를 사용하는데 동시적으로 갖추어야 할 조건이고, 통시성이란 언어가 격은 역사적 변화로써 역사성과 유사하다. 언어학의 중심은 통시성보다는 공시성이다. 넷째, 문장의 형식으로 '결합관계'와 '계열관계'이다. 단어가 연관되어 연쇄를 이루는 관계를 결합관계라고 하며, 문장의 가로축이다. 계열관계는 문법상 대체될 수 있는 관계에 있는 단어들을 의미하며 문장의 세로축이다. 다섯째, 기호의 가치가 다르다. 강아지와 개새끼는 의미는 같지만 가치는 다르다.
     
    소쉬르 혁명의 효과
    소쉬르는 혁명이란 말을 쓰지 않았지만, 그는 철학적 혁명을 이루었다고 한다. 체계적인 구조를 이루고 있는 언어와 그 언어를 사용하는 개개의 주체와의 관계를 제시하였다. 소쉬르는 사고나 판단은 개개의 주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의 의미체계, 다시 말하면 구조 속에 이미 선험적으로 내포되어 있으며 주체는 그에 따른다고 말한다. 주체는 자기가 말하고 받아들이는 행위의 중심이 아니라 언어라는 주체 외부에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언어는 다수의 주체들이 동일하게 사용하는 기초를 제공하며 동일하게 사고하고 판단하는 근거를 제공한다. 일종의 선험적 구조이다. 언어는 주체 외부의 선험적 구조이다. 소쉬르는 구조라는 말을 쓰지 않았지만, 구조주의의 창시자가 된다. 소쉬르의 언어학에는 내적인 모순이 있는데, 구조의 불변의 모순이다. 기호들 사이에 관계가 달라지면 의미는 동일하지만 가치가 달라질 수 있다. 즉 저자는 기호의 의미는 구조 안에서 고정된 것이 아니라 체계화된 기호의 망 속에서도 기호의 의미나 가치는 얼마든지 가변적일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즉 근대적 측면과 탈근대적 측면을 동시에 갖고 있는 것이다.
     
    구조언어학의 기착지
    소쉬르의 언어학은 '프라하학파'들에 의해 더욱 발전된다. 특히 야콥슨이 대표적인 인물인데, 그는 기호의 구조를 인간의 기호사용능력으로 환원하였다. 즉 주체의 외부에 두었던 선험성을 다시 인간의 능력이라는 주체 내부로 들여온다. 그는 유사성 연관이 파괴된 유형과, 인접성 연관이 파괴된 유형의, 두가지 유형의 실어증을 예로 들었다. 또한 그는 소통의 요소로 여섯가지 (발신자, 수신자, 상황, 정언, 접촉, 코드)를 정의하고 언어학의 과학주의를 강조하였다. 야콥슨은 소쉬르 언어학의 근대적 주체철학과 과학주의를 강화시켰다.
     
     
    4. 비트겐슈타인 - 언어게임과 언어적 실천
     
    구조 언어학에 따르면 기호를 통해서 의미에 닿기가 힘들다. 예를 들면 치즈라는 말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커드로 만들어진 음식이라고 한다면 커드는 무엇인가 음식은 무엇인가 만들다는 무엇인가, 그 뜻을 다 이해해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는데, 그러면 모든 단어를 공부해야 언어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가 언어를 배우는 것과 다르다.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탐구에 의하면 단어는 정해진 고유의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용법과 상황에 따라서 달라진다고 말한다. 상황에 따라서 실천을 통해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언어를 배우기 위해서는 단어를 알아야하고 단어를 사용하는 규칙을 배워야한다. 비트겐슈타인은 실천을 통해서 단어를 몰라도 규칙을 배울 수 있고, 규칙을 몰라도 단어를 배울 수 있다고 말한다. 이를 비트겐슈타인은 언어게임이라고 말한다. 생활형태가 달라서 실천이 달라지면 언어게임이 달라지고 같은 단어로 말을 하지만 소통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진리나 지식에 대해서 그는 '확실하다는 믿음'이라고 말한다. 특정한 언어게임 속에서 정의되는 실천을 위한 믿음에서 출발한다고 말한다. 특정한 언어게임에 의해 정당화하는 믿음에서 진리는 출발한다고 말한다. 비트겐슈타인의 '실천'개념은 맑스의 '실천'개념처럼 근본적이고 중심적이다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제 6부 구조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 - 근대너머의 철학을 위하여
     
     
    1. 구조주의와 철학
     
    현대철학에는 다양한 흐름이 있지만, 근대의 문제 설정과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이 구조주의라고 말한다. 그래서 저자는 현대철학의 설명으로 구조주의와 포스트 구조주의를 선택하였다. 구조주의는 넓은 의미로 사회구조를 가정하고 반복적으로 다양한 현상을 만들어낸다는 전제 위에 다수의 현상들 근저에서 구조를 찾아내려고 시도하는 것이고, 좁게는 구조 언어학이라고 말한다. 다양한 것들의 근저에 있는 구조를 보편적이고 무의식적인 수준에서 찾으려는 시도가 있었다. 포스트 구조주의는 구조주의와 연속성을 갖고 있지만, 그 한계를 해체하고 넘어서려는 시도이다.
     
    2. 레비 스트로스와 구조주의
     
    구조언어학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레비 스트로스는 자기의 연구방법에 대해서 네 가지로 언급한다. 첫째, 음운론은 의식적인 언어현상의 연구로부터 무의식적인 하부구조로 옮겨간다. 둘째, 각각의 항을 독립된 실체로 연구하는 것을 거부하며 항과 항의 관계를 분석의 기초로 삼아야 한다. 셋째, 음운론은 체계의 개념을 도입한다. 넷째, 음운론은 일반적인 법칙의 발견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모든 문화에 공통된 질서를 찾아내고자 시도하였다. 레비스토르스는 두 개의 인류문화의 보편적 질서를 제시하는데, 하나는 근친 상간의 금지의 법칙이다. 자연적인 인간으로부터 문화적인 인간으로 건너오는 가장 근본적인 법칙을 근친상간의 금지를 이야기하였다. 이 법칙을 통해서 성적인 결합의 금지와 허용이 생기게 되고 동물의 세계와 대비된다. 이를 바탕으로 자연과 사회, 자연과 문화, 인간을 관통하는 보편적인 사고 질서를 찾고자 하였다. 그가 주목한 것은 원주민들에게서 흔히 사유방식인 마술적, 주술적 사고방식이다. 레비-스트로스는 이를 '야성적 사고'라고 하였다. 이는 오늘날에도 우리가 공유하는 근원적이고 무의식적인 사고방식, 일차적 사고방식이라고 말한다. 레비-스트로스의 사상은 모든 인간에 공통적인 어떤 선험적인 구조를 발견하고 구성한다는 점에서 칸트적이며 근대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역사주의에 대해, 해석하는 입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주관적이기 때문에 과학적이지 않다고 비판한다. 그는 또한 토템이나 주술을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매도하는 것에 대해 정열적으로 반박한다. 그래서 그의 사상에는 반서구적인 반문명적인 부분이 있다. 저자는 이를 과학적인 이성을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계몽주의의 이분법적인 비판으로 보았지만, 이분법을 넘어서 공통된 하나의 기초를 찾지 못했음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이번 장에 삽입된 삽화나 그림을 통해서, 노예가 되어야했었던 원주민, 흑인, 서구인에 의해 강탈된 신대륙을 예로 들며, 서구 중심적인 살인, 문명파괴, 종교의 전도 등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였다.
     
     
    3. 라캉 - 정신분석의 언어학
     
    현대로 넘어오면서 계속해서 눈이 휘둥그레지는 이야기들의 연속이다. 레비 스트로스의 이야기도 놀라움이 이었는데, 라캉도 상당한 충경을 준다. 그의 이야기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서 시작한다. 그는 미국식 정신분석학을 거부하는데, 표준적인 자아로 발전해가는 임상심리학으로 바뀌어져서 프로이트 본래의 의미가 변색되었다고 말한다. 라캉은 '무의식'이 생물학적 존재인 인간을 인간의 자식으로 변환시키는 메커니즘이라고 말한다. 특히 오이디푸스기를 이야기하며 인간이 되기 위해 억압해야할 최초의 것이라고 말한다. 욕망을 금지하고 사회적 법과 규칙 속으로 들어오게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이러한 억압을 통해서 무의식이 발생하게 된다. 라캉은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언어와 마찬가지로, 무의식의 기표는 기의를 그대로 보여주지 않고 기의를 이해하려면 기표들 간의 연관 속에서 해석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기표가 기의에 닿지 않고 끊임없이 미끄러진다'고 표현한다. 무의식이 구조화되어 있다면, 그것은 나란 개인으로부터 독립적인 질서와 체계를 갖고 있다는 뜻이며, 이 질서가 개개인에게 내면화되는 메커니즘을 의미하며 개개인이 질서로 편입되는 메커니즘을 '타자의 담론'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무의식은 '타자의 욕망'이라고 말한다.
    라캉은 욕구와 요구와 욕망을 구별한다. 욕구는 성욕, 식욕처럼 가장 일차적인 충동이다. 요구는 사회적 질서와 언어적 질서가 허용하는 범위에서 일어나는 것이고, 이를 벗어나면 욕망이 된다. 욕망은 정상적으로 채워질 수 없으므로 끊임없이 치환된다. 욕망의 환유연쇄이다. 욕망 중 매우 중요한 것은 타자로부터의 인정욕망이다. 라캉은 무의식은 타자의 욕망이라고 말한다. 나는 나에 의해서가 아니고 타자의 욕망에 의해서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누구나 어떤 지위에 가면 그에 걸맞게 행동하려고 한다. 왕의 지위 왕비의 지위, 신하의 지위에 가면 그렇게 행동하려고 하는데, 이는 왕을 쳐다보는, 왕비를 쳐다보는, 신하를 쳐다보는 사람이 그렇게 하기를 요구하기 때문에 그에 부응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즉 타자의 욕망에 의해서 나를 거기에 맞추려고 행동한다. 왕이지만 신하처럼 행동하면 부자연스럽고, 신하이면서 왕처럼 행동하면 부자연스럽다. 부자연스럽게 보는 시선이 외부에 있고, 부자연스럽게 보이지 않으려고 자신을 억압하며 행동하게 만든다. 결국 나 혹은 자아라는 주체는 어떤 중심성도 통일성도 갖고 않으며, 오히려 타자의 담론, 타자의 욕망으로서 무의식의 결과물이라고 말한다. 모든 사람은 기존의 질서를 받아들여 자기 것으로 동일시하고 거기서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한다.
     
    이글을 읽으면서 매우 그럴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만의 만족을 위해서 사는 것은 쉽지 않은 것 같다. 주위사람의 기대에 부응하면서, 그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행동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4. 알튀세르 - 맑스주의와 구조주의
     
    알튀세르는 구조주의와 맑스주의를 접합시키려고 했던 사람이고 한다. '이중적인 기획'을 이야기하였는데, 하는 인식론적 기획으로서 과학이고, 다른 하나는 역사이론적 기획으로서 이데올로기론에 관한 것이다.
    맑스를 위하여, 과학을 위하여
    첫째로 그는 맑스주의 역사유물론을 과학으로 정립하고자 하였다. 1940년-50년 대를 지나오면서 소련의 많은 과학자들은 권력에 의해서 부르주아로 몰려 죽게 되며, 이로 인해 맑스주의에 대한 과학자들의 신뢰를 상실한다. 이에 대해 알튀세르는 과학은 과학으로 추구되어야하며, 맑스주의의 역사유물론도 이데올로기가 아닌 과학으로 취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맑스주의는 프롤레타리아의 이해를 반영하는 계급적 이데올로기에 불과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런 관점에서 '맑스로 돌아가자'라는 슬로건을 제창한다. 인간이란 사회적 관계의 총체로 인간을 '생산양식'와 연관지어 대상을 정립하려고 한다. 그는 맑스주의의 중요한 성과의 하나로 헤겔의 총체성 개념에 대한 비판이라고 한다. 헤겔은 총체는 모순이라고 말했는데, 알튀세르는 역사과학이 다루는 역사적 사정과 정세는 근본 모순으로 환원될 수 없는 복잡성을 갖는다고 말한다. 맑스주의의 이론이 과학으로 될 수 있는 이유에 대해 설명한다. 이론에 대한 이론을 통해서 맑스주의가 과학이 되는 것은 경험주의나 실증주의에 주장하듯이 실재와 이론의 짝을 짓고 실재를 통해서 '검증'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현실대상과 지식대상의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는 지식대상인 개념들 간의 관계에 의해 정의되어야한다고 말한다. 즉 개념을 구성하는 다른 개념들 간의 일관성이 있으면 된다고 말한다.
     
    둘째로, 알튀세르는 이데올리기에 대해 새로운 개념을 쌓게 되는데, 이데올로기를 '대중들의 무의식적인 표상체계'라고 정의하는 것이다. 표상이란 무엇인가를 떠올리게 해주는 개념이나 상상, 판단의 체계를 의미한다고 한다. 표상체계는 의식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으로 일어난다. 즉 원래 맑스주의에는 없는 무의식의 개념을 도입하는 것이다. 대중적인 표상체계인 이데올로기 속에서 개개인이 어떻게 주체로 만들어지는지 설명한다. 이데올로기 없는 주체는 없으며, 이데올리기 없는 실천도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데올로기는 무의식과 마찬가지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 않고 변형시키거나 왜곡시켜 보여준다. 알튀세르는 현실은 결코 투명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는 철학은 최종심급에서는 이론에서의 계급투쟁이라고 말하며, 계급투쟁이 그의 이론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이데올로기에 소속된 사람은 자신의 그 이데올로기를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를 그래도 따르게 된다. 잘못되었다고 하더라도 그대로 따르게 된다. 이데올로기는 상상적 관계의 표상으로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나 현실관계를 보여주지 않고 '그럴 것이다'라는 왜곡된 관계를 보여준다. 즉 비현실적 관계를 있는 그대로의 현실적인 관계로 오인하게 한다. 이데올로기에 빠져있는 본인은 그것을 못 느낀다. 이데올로기는 개인을 항상-이미 호명을 하고 그에 걸맞는 역할을 하도록 요구한다. 그 요구를 수행하면서 주체화된다. 이것이 이데올로기 속에서 개개인이 주체화되는 메커니즘이다.
     
    5. 푸코 - 경계허물기의 철학
     
    푸코의 사상은 크게 세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고 말한다. 첫째는 고고학으로 대변되는 시기로 다양한 지식을 둘러싼 관계들의 역사를 살폈다. 진리요 과학이라고 평가되는 지식에 의해 가려진 침묵의 소리를 들으려고 했다. 둘째는 담론의 질서, 감시와 처벌, 성의 역사 1의 시기로 계보학이라는 연구를 주로 하던 시기이다. 셋째는 성의 역사 2, 성의 역사 3의 시기로 권력과 자아의 관계가 중요한 문제가 된다. 푸코의 사상의 가장 큰 특징은 정상과 비정상, 동일자와 타자, 내부와 외부 사이에 만들어진 경계를 허무는 것이다. 광인과 정상인의 구별 기준은 무엇인가를 질문하면서 그 기준은 분명하지 않고 역사상 계속 바뀌어 왔고, 특정 집단의 판단에 의한다고 말한다. 근거 기준이 매우 일관적이지 못하고 불안정한가 보여주면서 그 경계는 의미 없음을 설파한다. 무너트리는 것이다. 그 기준은 권력과 연결되어 있다. 권력의 근거는 지식이다. 지식은 권력의 도움을 받고 권력은 지식의 도움을 받는다. 경계를 구분하는 기준은 바뀌어왔다. 이성의 동일자를 상대화시키고 이성과 비이성의 경계가 역사적으로 달라질 수 있음을 말한다. 그 경계선을 만들어내고 유지하려는 힘이 있는데, 바로 권력이다. 권력은 지식과 연결되어 있고, 발현될 수 있는 물질적 장치, 제도적 장치가 사회에 존재한다. 푸코는 사회는 거대한 감옥이라고 말한다. 결국 개개인이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질 주체가 되는데 권력의 작동이 필수적이며 권력없는 주체는 생각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권력을 통해 각자는 어떻게 자아를 구성해가는가 이 작업을 윤리학이라고 말한다. 푸코는 사회제도 권력 등에 대해서 자아가 구성되는 것을 매우 수동적으로 보았다. 이에 비해 들뢰즈는 욕망하는 생산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긍정적 의지로 권력에 저항하고 대항하여 적극적인 자아를 구성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알면 바꿀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일상생활에 빠져 살다보면 이를 인지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이를 알려준 철학자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알면 바꿀 수 있다. 주의 깊게 인식하고 대처방법을 찾는다면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
     
    6. 들뢰즈와 가타리 : 차이의 철학에서 노마디즘으로
     
    드디어 마지막 장이다. 들뢰즈는 철학사를 전공한 철학자이고 가타리는 정신의학자였다. 둘은 공동작업을 하여 책을 발표하였다. 둘의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들뢰즈의 '차이의 철학'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들뢰즈는 '차이'라는 단어를 철학적 개념으로 정립하고 사유의 중심적인 고리로 만든 사람이다. 어떤 두 사물을 인식할 때, 다른 것에 견주어서 차이를 생각하면 서 인식한다. 가령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라고 말한다면 동물과는 다른 인간의 특성을 얘기하는 것으로 차이를 보고 있는 것이다. 이때, 사회적이지 않은 인간은 인간이 아닌가 질문할 수 있다. 왜냐하면 다양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동일성의 시각에서 보면 사회적이지 않은 사람은 잘못된 사람들이고 고쳐야할 사람이다. 그러나 차이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차이가 있는 사람은 차이가 있게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 차이를 받아들이는 방식에는 두 가지 있는데, 관용과 인내로써 차이를 받아들이는 부류가 있으며, 상대의 차이를 인식하고 받아들여 자신이 변하려고 하는 사람이다. 들뢰즈는 차이를 인식하고 받아들여 새롭게 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차이와 연결된 중요한 개념은 반복이다. 반복은 되풀이되는 것이다. 언뜻 동일하게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미세한 차이가 존재한다. 들뢰즈는 질료로서의 차이를 개념화하기 위해 '강밀도'라는 개념으로 차이를 정의하고 차이를 포함하는 반복을 특이성이라는 개념으로 표시하고, 반복의 공간을 다루기 위해 특이점의 분포로 규정되는 미분적인 장의 개념을 이용한다.
     
    차이의 개념을 통해서 의미의 개념을 설명한다. 의미에 대해서 구조주의자들은 고정되고 객관적인 어떤 것을 이야기하고, 현상학자들은 통상적인 의미에 대해서는 판단을 멈추고 '지향성'을 가지고서 주관의 내부에서 의미를 찾는 것에 반해서, 의미란 사물들이 서로 접속해서 만들어지는 것이고, 고정된 것이 아니고 사물들의 접속에 따라서 쉽게 생성 변이되는 것으로 여긴다. 사물들 간의 생성과 변이를 통해서 의미를 만들어내고 이를 '사건'이라고 정의한다. 하나의 사물이 이웃항과 접속을 하면서 의미관계를 갖게 되는데 이를 '계열화'라고 말한다. 계열화를 통해 정의되는 사건의 개념은 접속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차이의 개념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사건을 구성하는 항목이 많을수록 계열화할 수 있는 방법이 무한이 많아지지만 현실세계는 그렇게 않고 한정된 몇 가지 스토리만 만들어진다. 이는 계열화를 지배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양식이나 상식이라고 말한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68년 혁명을 계기로 사람이 욕망이 혁명과 동일한 관계에 있음을 이야기한다. 프로이트는 욕망의 근원은 성욕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이들은 이를 오해라고 이야기하며, 모든 욕망은 사회적이며 가족적 투여에 대해서 일차적이라고 이야기한다. 욕망은 계열화와 연결되는데, 내가 어떤 계열화에 놓여지는가에 따라 다른 욕망의 지배를 받는다. 배치 내지 관계는 그 안에 들어오는 것들을 특정한 욕망으로 끌어들인다고 말한다. 이를 영토화라고 말한다. 불변성, 항속성, 동일성을 갖는 구조라는 말과는 달리 배치라는 개념은 계열화되는 순서만 바꾸어도 쉽게 변할 수 있다. 즉 가변성이 있다. 새로운 항의 추가, 제거, 변경 등을 통해 기존의 배치를 다른 것으로 변환시키는 것을 '탈영토화의 첨점'이라고 말한다. 이를 탈주라고 말한다. 결과적으로 혁명은 욕망의 억압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욕망이 발동하여 작동 고무하게 하는 것, 그것이 혁명을 진정한 힘을 갖고 추동하게 만드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노마디즘
    일단 들뢰즈와 가타리 챕터는 모두 읽었고, 몇 페이지 분량의 결론을 남겨두고 있다. 한곳에 머물지 않고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노마디즘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노마디즘은 정착하지 않는 유목주의이다. 유목민과 정착민을 대조하여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인식을 설명하고 있다. 정착민은 선이 점에 종속되어 있는 반면, 유목민은 점이 선에 종속되어 있다고 말한다. 점이란 지점, 혹은 목적지이고, 선은 결론이다. 유목민은 다 쓴 땅을 버리고 떠나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불모의 땅에 머물면서 새로움을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유목민은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어쨌든 낡은 가치를 벗어내고 새로움, 삶의 창조를 추구하는 점에서 유목민은 정착민과 구별된다.
     
    기계주의
    들뢰즈와 가타리는 일반화된 의미로 '기계'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기계는 다른 것과 접속하여 어떤 흐름을 절단하여 채취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통상적인 생명과 기계의 구분을 초월하여 모든 것을 기계로 환원한다. 기계는 어떤 것과 접속하는지에 따라서 다른 기계로 바뀌고 어떤 배치를 따르는지에 따라 본성이 다른 기계가 된다. 근대철학에서 말하는 대상은 변함없는 본성이 아니고 관계에 따라서 끊임없이 변하고, 주체도 나의 배치가 계열화가 달라지면 다른 성질로 바뀌어 버린다. 그래서 자아는 단일한 본질도 고정된 경계도 갖지 않은 일종의 허구라고 말한다. 진리에 대해서도 더럽고 불완전한 현실과 동떨어진 어떤 고결하고 순수한 진리가 있는 것이 아니며 조건에 따라서 현실적인 유효성을 갖고 우리에 삶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여 생각해야한다고 말한다.
     
    결론: 근대 철학의 경계들
     
    지금까지 했던 이야기들을 간단히 정리 언급하고 있다. 이 많았던 이야기를 이렇게 몇 페이지로 줄이는 것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데카르트로부터 시작된 근대철학의 논의에서, 주체의 통일성과 중심성을 가정하며 개념적 연역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이 때는 과학주의와 계몽주의가 주요한 관심주제였다. 그러나 대상간의 일치를 보증할 수 없으므로 인간이 진리의 인식이 가능한지 수많은 논의가 있게 된다. 로크의 경험론, 칸트의 선험적 주체, 피히테, 헤겔의 절대적 주체, 절대정신 등의 개념이 그것이다. 그러나 완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가, 맑스, 프로이트, 니체로 넘어오면서 근대철학의 기초는 완전히 무너지게 된다. 주체의 통일성과 중심성은 시작이 아니고 주변과 사회와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형성되는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근대철학의 경계를 넘으려는 새로운 시도는 언어학에서 나타났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철학적 사유는 언어를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언어의 구조가 사유에 영향을 주게 된다는 사조가 나타나고 이를 구조주의라고 한다. 소쉬르, 훔볼트, 레비-스트로스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 과정에서 어떤 무의식적인 공통된 구조를 찾으려는 시도가 생긴다. 하지만 약간 다른 개념으로, 개별적 차이를 찾으려는 시도도 생긴다. 차이를 강조하고, 변화를, 변이를, 역동적인 유목을 추구하는 입장이 생기는 것이다. 푸코와 들뢰즈, 가타리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중요한 지식으로, 사회적 생산양식과의 관계 속에서 주체 생산방식에 대한 개념적이고 역사적인 방법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주체가 시작이 아니고 결과라면, 어떻게 이런 결과에 이르게 된 것일까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차별화된 개개의 주체는 어떻게 형성되는지 살펴보는 것은 매우 필요한 연구라는 생각이 든다.
     
     
    보론 : 근대적 지식의 배치와 노마디즘
     
    인문학의 위기에 대한 분석으로 시작을 하고 있다. 이는 단지 주체의 무능력이라기 보다는 인문학 생산자의 기존 능력이 통하지 않는 사태이며 좀 더 근본적인 분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을 살펴보면서 근현대시대를 개괄적으로 고찰한다. 근대에서 신은 사라지지 않고 이름만 바뀐 형태로 계속 나타난다고 말한다. 특히 신을 근본으로 하고, 주체, 대상, 진리라는 삼각형으로 나타는데, 이 세 가지의 개념은 계속 다른 부분, 정신, 육체, 계몽 혹은 인간, 자연, 과학 혹은 의사, 환자, 치료 혹은 군주 ,인민, 대표, 혹은 인간, 상품, 가치 등의 개념으로 이름이 바뀐 상태에서 새로운 개념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틀은 강력하게 서구의 근대사상을 지배해왔다. 그러나 맑스, 니체, 프로이트, 스피노자, 레비-스트로스, 알튀세르, 푸코, 라캉, 하이데거, 데리다, 들뢰즈, 가타리, 네그리 등에 의해서 해체되고 탈주된다. 근대의 사상의 영토들이 균열이 생기고 무너지면서 탈영토화가 진행된다.
    역사적으로 지적 생산, 담론 생간의 조건 및 징후적 사실들을 역사적으로 살펴본다. 세계대공황은 대량생산과 금욕적 소비에서 발생한 사건이라면, 뉴딜은 대량생산, 대량소비라고 말한다. 이는 포드주의 체제와 연결된다. 그러다가 1960년대 말 그 한계가 드러나고, 노동자 없는 노동 자동화가 진행된다. 또한 서서히 정보화가 진행되면서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네트워크가 생성된다. 사회적 네트워크에는 개인보다는 집합적 지성이 존재한다. 생활의 유동성이 생기고, 사고의 유동성도 증가한다. 이러한 사회적 기반하의 인문학의 위기는 새로운 방식의 사유를 향한 새로운 출발점이라고 이야기 한다. 이 '위기'속에서는 질문의 방식도 달리하고 연구의 방식도 바뀌어야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 중에서 몇 가지 고려해야할 사항을 언급한다. 저자의 환상, 도서관-환상 혹은 책의 환상, 전문성의 환상, 동양의 환상, 이들은 과거와는 달리 환상이라 말한다. 개인의 독창적 창조는 없다. 생산은 네트워크의 영향을 받아서 생성되고 소비되는 것이다. 탈영토성은 강화되며, 학제간 연구를 넘어서 학제 변환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즉 노마디즘이다. 필생을 건 하나의 화두를 들고, 다양한 영토를 가로지르면서 새로운 종합을 하고, 지식의 생산 및 이용하는 지식의 유목적 방식이 필요함을 이야기 하면서 끝맺는다.
     
    근 1년 가까이 조금씩 이 책을 읽으면서 독서일기를 작성하였다. 학부 때 선배들의 권유로 옛 버전의 책을 읽었었는데, 그때는 무슨 내용인지 이해하기 매우 힘들었지만, 독서일기를 적어가면서 책을 읽으니 시간이 지나도 다시 내용을 떠올릴 수 있었고, 내용의 이해를 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헤겔까지만 하더라도 뭔가 답답하고 어려운 느낌이 있었다면, 맑스와 니체로 넘어오면서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왔고, 라캉이나, 푸코에 오면서 약간의 전율이 있었다. 이렇게 깊이 있게 사회의 내면의 모습을 쉬운 말로 설명하는 것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특히 모든 사회의 근본 구조를 탐구하려는 구조주의가 인상적이었다. 그런 생각을 가끔 했었다. 내가 일상적으로 보는 이 사회, 너무 쉽게 지나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뭔가 의미있는 정보나 신호들이 있을 텐데, 내가 못보고 지나치는 것은 아닐까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구조주의 부분을 읽으면서 이미 꽤 깊게 생각한 사람이 있다는 것에서 동질감을 느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추가적으로 좀 더 구조주의에 대한 책, 라캉이나 푸코에 대한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 철학과 굴뚝청소부 | su**est | 2011.08.02 | 5점 만점에 4점 | 추천:0
    서론에서 저자는 독자적인 사상가로 남기 위해 세가지 '넘어서기'를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첫째는 당시에 지배적인 어떤 사...
    서론에서 저자는 독자적인 사상가로 남기 위해 세가지 '넘어서기'를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첫째는 당시에 지배적인 어떤 사상을 넘어서는 것, 둘째는 새로운 사상은 하나의 흐름을 넘어서는 것,
    셋째는 하나의 시대를 지배하는 특정한 사고방식을 넘어서는 것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저자가 말한
    넘어서기가 어떤 상황을 말하고있는지가 눈에 잡힐 듯 보인다.
    이제까지 보아왔던 철학사와는 사뭇 다르다.
    특히나 눈에 띄는 것은 본문과는 별개로 각 장마다 수록된 도판이다.
    이제까지 보아오던 사진이나 그림이지만 저자는 이 도판들을 설명하며 의미심장한 물음들을 남긴다.
    당연히 그럴 것이다라고 생각했던 우리의 생각을 뒤집는 기발하고도 정곡을 찌르는 질문들이
    어쩔때는 본문내용보다 더 마음에 남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그리고 그동안 어렵게 독파한 몇 권의
    책들이 이 책을 읽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슬픈 열대, 광기의 역사를 그저 눈 가는대로 읽었다면
    이 책을 통해 뒤늦게 의미를 파악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 철학과 굴뚝청소부 | lo**lykek | 2009.01.02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스피노자와 데카르트,   첫째, 데카르트의 철학은 신을 대신해서 '주체'라는 이름표를 단 인간이 세계의 중심에 ...

    스피노자와 데카르트,

     

    첫째, 데카르트의 철학은 신을 대신해서 '주체'라는 이름표를 단 인간이 세계의 중심에 서게 됩니다. 자연은 이 주체가 정복하고 지배하며 이용해야할 세계가 됩니다. 그리고 자연에대한 과학적 지식은 여기에 필요한 정보를 줄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데카르트의 철학은 '반자연주의'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스피노자가 데카르트와 자신의 경계를 정하는 지점 중 하나는 바로 이곳입니다. 그가 보기에 자연은 단지 수동적인, 그래서 지배되어야만하는 대상은 아니었습니다. 데카르트적인 관점에대비해서 스피노자는 자연 자체가 수동적인 것이지만, 동시에 능동적이고 활기있는 것임을 주장하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것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이것이 스피노자가 설정한 중요한 문제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둘째, 스피노자는 두개의 실체를 가정하는 데카르트를 비판하고 실체는 오직 하나만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개념이나 지식은 실제대상과 전적으로 다른 것이어서 양자가 일치하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취합니다. 양자가 일치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양자는 단일한 실체의 속성이어서 애초부터 일치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입니다.어떤 판단이 올바른지 아닌지를 알려면 진리를 미리 갖고 있어야한다는 역설까지 지적합니다 "진리가 진리와 허위의 기준이다"라는 것이지요

     

    셋째, 데카르트가 보기에 인간에게는 자연적인 요소가 남아있는데 -육체가 그것이지요- 이 때문에 인간은 결코 이성적이지만은 않게 됩니다. 따라서 데카르트로서는 인간의 이러한 성격을 이성에의해 억제하고 통제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그의 도덕론의 원칙이지요 이러한 의미에서 데카르트의 윤리학은 정확하게 계몽주의의 기반을 마련했다고 할 수 있는 요소를 분명히 가지고 있습니다.

    이해 반해 스피노자는 감정이나 욕망 정념등을 이성에 의해 억제하고 억압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을뿐만 아니라 옳은 것도 아니라고 봅니다. 오히려 스피노자는 인간이 자연과 다른 어떠한 것이 아니라 자연의 일부임을 분명히 합니다. 따라서 스피노자는 계몽주의적인 유리학과는 애초부터 다른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스피노자의 자연주의

     

    스피노자의 '신'이란 개념은 종교적인 절대자가 아니라 바로 자연 안에있는 변화를 만들어내는 요인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걸 흔히 범신론 이라고 합니다.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개체들은 양태로서 존재합니다 실체의 변용된 모습인 양태로서 말입니다. 그래서 "개체의 본질은 양태다"라고 스피노자는 말합니다. 그리고 이 양태들 이 개체들 전체를 싸안고 있으며 그것들 전체를 만들어내는 원인이 바로 실체인 거지요 따라서 스피노자가 보기엔 실체란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입니다.

    스피노자는 실체는 자기원인이라고, 즉 그 자체의 원인에 의해 존재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실체는 자연 안에 있는 "무언가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힘"을 가리킬 따름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자연안의 생산적인 힘 그것이 바로 실체인 것이지요.

     

     

    진리와 공리

    실체는 속성들을 통해 표현된다. 실체가 속성들로 표현된다는 말은 실체가 속성을 통해서 '인식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즉 이 두 가지 속성 모두 실체가 갖는 본질을 '표현'하기에 그것을 통해 우리는 실체를 인식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인식에 이르려면 이미 '진리'를 가지고 있어야한다.

    이는 어떤 인식도 진리라고 생각되는 것에 대한 믿음에서 출발한다고 하는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입장과는 비교가 된다.

     

    무의식의 윤리학

    정신적 힘은 육체가 어떤 상태에 있느냐에 따라 그에 맞추어 변하며 반대로 정신적 상태에 따라 육체가 맞춰 변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육체와 정신을 합일시키고 일치시키는 무의식적인 힘이 바로 '코나투스'지요

    이 코나투스가 정신과 관련되면 '의지'라고 불리고, 육체와 정신에 동시에 관련되면 '욕망'이라고 불린다고 합니다.

     

    한편 스피노자는 이 욕망이라는 것이 타자에 의존한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욕망 역시 하나의 "양태"로서 타자에 의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다시 해석하면, 인간의 욕망은 다른 인간과의 특정한 관계속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욕망이 이처럼 타자와의 관계속에서 만들어진다는 말은 인간의 욕망이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데카르트처럼 이성에의해 욕망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게 아니라 인간관계를 바꿈으로써, 즉 욕망을 만들어내는 조건을 바꿈으로써 욕망자체를 전환시키는게 훨씬 더 현실적으로 중요한 게 됩니다.

     

     

     

    코기토<cogito>라는 말은 '생각하다'를 뜻하는 라틴어 cogitare의 1인칭 형태입니다. 즉 '나는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이 cogitare는 영어에서 생각하는 것과 관련된 단어들, 예컨대 cognition, recognize와 같은 단어들의 어원이 되는 단어들입니다. 철학에서 '코기토'라고 말할 때 그것은 데카르트의 코기토를 가리키는데, 이 말은 '코기토 에르고 숨'이란 문장을 한 단어로 줄여 부르는 말입니다. 그 뜻은 알다시피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플라톤과 기독교의 교리를 종합해서 믿음과 이성을 종합하려고 했으며, 이로써 중세철학의 전체를 기초지운 사람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주장은, 도식적으로 말하자면, 플라톤 철학의 '이데아' 자리에 '신'을 놓고 플라톤의 철학을 따라 기독교의 교리를 전개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로써 '신'이란 개념에 각한 철학이 만들어집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개념에 도움을 받아 새로이 중세철학을 집대성한 사람이 바로 토마스 아퀴나스 입니다. 그가 체계화한 이 철학을 흔히 '스콜라 철학'이라고 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인식의 목표는 신과 영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서 이성의 출발점은 '계시진리'였습니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이해하려면 믿어라' 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뒤에 스콜라 철학에서는 '믿기 위해선 이해하라'는 명제로 바뀝니다> 따라서 그에게는 믿음을 위한 요구를 확립하는 것이 바로 이성의 의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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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회의론은 기독교적 신앙과 이념이 지배적 위치를 확고히 하는 데 매우 불편한 걸림돌이었습니다.

    회의론자들은 감각에 주어진 것에대해 '믿을 수 없다'고 합니다.

    우리의 감각은 확실한 것, 불변의 진리를 줄 수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추리조차도 믿을 수 없다고 회의를 합니다. 곧 이성의 사고를 믿을 수 없는데, 이성의 사고규칙인 추리를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는 것이죠. 추리를 믿는 것은 이성에대한 믿음을 전제한 것이기때문입니다. 이런 식으로 그들은 모든 것을 의심하며, 확실한 것은, 진리는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들을 물리칠 묘안을 생각해냅니다. 즉 회의론자들의 그 수많은 의심에도 불구하고 결코 의심할 수 없는 것을 찾아내려고 합니다. 그게 바로 코기토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제입니다.

     

    그는 여기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렇게 존재하는 '나' 그리고 그렇게 존재하는 '나'가 여럿이 있는데 그들이 모두 인정하는 지식 예를 들면 2+2=4와 같은 수학적 지식은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확실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같은 이유로 모든 사람이 긍정하는 도덕적 지혜또한 확실한 지식이며 진리라고 합니다.

     

    그는 이제 '이 확실한 판단들은 대체 어떻게 가능한가?" 즉 "진리는 어떻게 가능한가?"라고 묻습니다. '확실한 것'이 단지 나라는 개인 안에만 존재하는 거라면, 즉 개인적 특성에서 연유하는 거라면 그것은 진리일 수 없다고 말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확실한 것은 그것이 개인 아닌 다른 확실한 것에 의존하기때문이라는 겁니다.

     

    결국 아우구스티누스는 확실한 판단, 즉 진리는 초인간적인 것, 인간을 넘어서는 어떤 근원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그는 이것을 인간의 내면적 교사인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요컨대 '확실한 지식'은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가르친 것이라는 거죠, 코기토처럼 확실한 지식을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라는 신이 확실하고 완전한 존재가 분명히 존재하고 있음을 증명할 수 있다고 합니다.

     

     

     

     

     

     

    데카르트의 문제 설정.

    데카르트는 스스로 회의론자가 됩니다. 즉 확실한 것에 이르기 위해 의심 회의 라는 방법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방법적 회의'라고 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경우 신에대한 인식을 목표로 믿음을 공고히 하고자 했던 것과 달리 데카르트는 코기토를 통해서 신이 아니라 확실한 지식에 이르고자 했던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에게는 이 확실한 출발점을 그리스도 혹은 신이 제공해주었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합니다. 반면 데카르트에게는 그걸 누가 주었는가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인간이, '나'라는 자아가 자신의 능력으로써 확실한 것을 생각할 수 있다는 사실이며, 확실한 지식에 도달할 수 있는 이 능력이 인간 자신에 내장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내 안에 있는 이 확실한 지식에 이르는 능력을 데카르트는 '타고난 관념' 즉 본유관념 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에게 중요한 것은 이 본유관념이 어디에서 연유하는가가 아니라 그것이 인간의 이성안에 '내장되어있다'는 사실입니다.

     

    데카르트에게는 '나'라는 존재의 연원이 바로 내가 생각한다는 사실임을 확인해주는 출발점이요 그래서 나 혼자만의 힘으로 확실한 지식에 이를 수 있게 해주는 출발점이었던 것입니다.

     

    '주체'는 확실한 지식에 이르기 위한 출발점을 뜻합니다. 그것은 사고를 가능하게 하는 사고의 기초며 지식을 가능하게 하는 지식의 기초입니다. 즉 모든 지식과 사고의 기초요 출발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주체'를 출발점으로 삼은 이후의 근대 철학을 '주체 철학' 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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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은 인간이 대상과 분리되고 주체가 대상으로부터 떨어졌을 때, 인식하는 주체가 인식되는 대상과 일치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라는 문제입니다. 다시 말해 벌에대해 내가 알고있는 것이 실제로 살아있는 벌과 일치하는지 아닌지를 어떻게 보증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로써 주체가 대상을 올바로 인식할 수 있는가라는 '인식론'의 문제가 대두됩니다.

     

    주체가 신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었던 건 '나'라는 주체가 진리에 이를 능력이 있다는생각 때문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막상 주체를 독립시켰더니 진리에 이를 능력이 없다는게 되면 얼마나 우스운 꼴이 됩니까? 결국 그건 독립할 능력이나 자격도 없으면서 신에게서 도망친 꼴이 되는 셈이죠. 그래서 데카르트로선 그리고 이후의 근대 철학으로선 진리를 인식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게 가장 중요하고 절실한 문제가 됩니다 '진리'야말로 '주체'에서 출발한 근대철학이 어떻게든 도달해야할 '목표였던 것입니다.

     

    주체는 근대철학의 출발점이요. 진리는 그 목표점 입니다.

     

    데카르트는 두개의 실체가 있다고 가정합니다. '연장'과 '사유'가 그것입니다.

    변함없는 불변적인 본질이 바로 '실체'입니다. 이는 다른 변화를 만들어내지만, 다른 것에 의존하지는 않는 영원한 특징을 뜻합니다.

     

    연장은 물질, 물체의 가장 중요한 특징인데. 어떤 공간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뜻합니다.

     

    사유는 한마디로 생각하는 성질입니다.

     

    이처럼 데카르트의 철학은 두개의 실체를 가정하고 있다는 뜻에서 '이원론'이라고 합니다.

     

    정신이 육체나 물질보다 우선한다는 뜻에서 데카르트의 철학은 관념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성이란 주체의 완전성과는 다른 차원에서 대상세계를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는가? 과학의 발전을 통해 대상적 진리, 즉 객관적인 진리를 인식할 수 있다.

    요컨대 과학을 통해 진리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은 데카르트 이래 근대 철학 전반을 사로잡았던 일종의 믿음 이었습니다. 이젠 오직 참된 지식만이 정당화될 수 있으며, 오직 과학적 지식만이 참된 지식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근대에는 어떤 지식도 자신이 과학적임을 입증할 수 있을때에야 비로소 존재할 권리를 얻게 됩니다.

     

    데카르트에 의하면 자연을 지배하기 위해서는 자연을 알아야하듯 우리가 우리 자신의 육체를 지배하고 통제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의 육체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육체에 작용을 미치고, 육체에서 파생하는 감정과 정념을 규제하고 그 힘을 조절하려면 감정과 정념에대해 알아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정념론이라는 책을 씁니다.

     

    이성이 아무리 옳다고 하더라도 육체가 제멋대로라면 인간이 신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은 정당화되기 어렵다는 문제가 당연히 제기됩니다. 그래서 그에게는 "어떻게 육체를 이성적으로 통제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다루는 도덕론이 중요하게 됩니다.

     

    결국 가급적 이성에 의해 통제되는 상태를 위해서 제멋대로인 육체를 통제하고 욕망을 억제하라는 것이 그의 도덕론의 요체였던 것.

     

     

     

     

    주체가 인식한 것이 대상과 일치하는지 아닌지, 다시 말해 진리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보증하느냐의 문제가 발생한다.

    인식주체와 인식대상을 나누고 양자가일치하는게 진리라고 한다면 어떤 지식이나 인식이 진리인지 아닌지는 결코 확인할 수도 없고 보증할 수도 없다는 난점을 가지게 된다. 그게 일치하는지 아닌지 확인해주는 제 3자-예를 들면 신-가 없다면 근대 철학으로선 이 딜레마를 벗어나는게 불가능합니다. 주체가 신에게서 벗어남으로써 발생한 근대 철학의 '원죄'인셈입니다

     

     

     

    이러한 견해는 극단적으로는 유아론, 즉 '내가 알고 있는 것만이 진리이고 진리는 주관적이다.'라는 견해로 나가기도 하는데 이렇게 되면 데카르트가 주체를 신에게서 떼어내었을 때와의 생각과는 달라지는 것이 된다. 이는 사실 대상과 일치하는진리를 하나로 확정하지 못한다는 딜레마에서 기인하는 것이며, 그 딜레마의이면인 셈이다.

     

     

     

     

     

  •     철학에 근대를 열다; 데카르트 신학과 교회의 지배 아래 있던 철학을 '나'라는 주체로...

     

     

    철학에 근대를 열다; 데카르트
     신학과 교회의 지배 아래 있던 철학을 '나'라는 주체로 전환한 계기를 마련한 것은 데카르트였다.

     주체의 통일성과 중심성을 가정하여 개념적 연역의 출발점을 마련한
     주체철학이자, 인간의 삶은 이성의 빛에 의해 계몽되어야 한다는 '계몽주의'의 특질도 가지고 있다.

     

     새로운 난관에 봉착한 근대철학_
     주체와 대상간의 일치를 보증할 수 있을까?
     이는 근대철학의 근원적 딜레마로 이후 철학에 있어 다양한 흐름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 흐름의 하나로 로크!
     본유관념과 실체를 유명론의 입장에서 비판하여 '경험주의'라는 흐름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유명론과 근대철학은 해소하기 힘든 긴장관계에 있었고
     이는 흄에 이르러 극한으로 치닫게 된다.
     바로 근대철학의 딜레마를 극한으로 밀고 나가 근대철학의 출발, 목표를 와해시키기에 이르러

     근대철학은 위기라는 진단(diagnosis)을 받게 된다.

     

     근대철학의 위기에 긴급 처방(prescription)한 것은 칸트였다.
     그는 모든 주체들에게 공통된 보편적 사고구조 즉 '선험적 주체'라는 기초를 통해
     그들이 보편적 판단에 이를 수 있음을 밝혔다.
     바로 '주체-객체의 동일성'으로 피히테의 '자아' 혹은 헤겔의 '절대정신'이든 스스로를
     기초짓도록 하여 딜레마의 해소를 겨냥하지만
     그 결과는 딜레마 이전과 자신의 이론에 대한 정당화라는 또 하나의 한계를 가지게 된다.

     

     

    근대적 경계 자체를 월경하려는 시도들
     실천이란 개념으로 그 경계선을 허물고 한계를 넘어서려 했던 마르크스,
     무의식이란 개념으로 근대철학의 지반을 해체시킨 프로이트,
     가치와 권력의지 개념으로 새로운 문제 설정을 정립하려 했던 니체가
     등장하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그리고 언어학을 경유해 철학의 한계를 넘으려는 시도도 중요해진다.
     칸트주의와 유사한 입론을 발전시키려 했던 훔볼트,
     주체의 작용으로 이해되던 의미나 판단이 주체 외부에 있는 언어구조에 속한 것이라는 소쉬르.

     

     때로는 동일성 때로는 차이의 철학을
     푸코는 차이가 동일성 안에, 타자가 동일자 안에 포섭되고 동일화하는 양상을 근대사회의
     역사를 통해 보여주었고
     들뢰즈/가타리는 차이 자체의 개념을 더 확대해 동일자의 권력, 동일성의 매커니즘에서
     벗어나는 탈주의 방법을 발전시키려 했다.
     일견 달라보이는 이들의 접근 방식은 결국 동일한 분제 의식 주변에서 서로에 대해
     보완적인 의미를 갖는 셈이다.
     
     

    흐름을 또 다른 흐름의 물줄기를 낳고

     레비-스트로스는 서구라르 동일자에 의해 '미개'라는 침묵 속에 갇히고 '야만'이란 이름으로
     억압되었던 타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을 촉구한 '타자성의 사유'
     라캉은 상은 상징계의 외부에 존재하며 잠정적 봉합의 형태로 고정되는 상징계를
     변환시키는 실재계의 이론을 발전시키지만 차이들이 '불가능한 것'이라는
     가능성의 잔여 형태에 머물고 있다는 점이 한계로 남는다.

     알튀세르 역시 에피쿠로스의 철학을 적극 수용하면서
     필연성이 아닌 '우발성의 유물론'을 제시한다.
     
     

    노마디즘의 시대를 더듬다; 철학의 변주곡은 지금도 계속된다!

     근대철학은 단순히 전근대-근대-탈근대의 시간적 배열의 연속선상에 머무는 개념에 지나지 않는다.

     동일성과 불변성, 항속성 연속성에 대한 철학의 경향이
     그 안에서 끊임없이 변주되고 있는 것이다.
     아도르노는 근대는 시간적 범주가 아닌 어떤 질적인 상태로 '근대철학'이란 단어보다
     '근대적 문제설정'이 더 개념적으로 근대철학의 다양한 시도들을 하나로 묶어주는데 적합하다 하였다.
     사고의 흐름은 단선적이고 불연속적인 것이 아니며
     경계를 넘어서려는 노력의 흐름은 기존의 경계를 살피는데서 나오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것은 지금도 간헐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학계에서의 '학제간 연구(interdisciplinary)'
     즉 기존의 존재하는 지식의 경계,

     지적 생산과 재생산의 영토들을 가로지르면서
     새로운 방식으로 지식을 창안하고 또 다시 탈영토화하는
     들뢰즈/가타리의 노마디즘에서 새로운 살핌의 방향을 찾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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