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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익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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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2쪽 | 규격外
ISBN-10 : 8968177317
ISBN-13 : 9788968177316
나를 익게 하소서 중고
저자 서숙자 | 출판사 한국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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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2월 1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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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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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과 멋을 주제로 형상화하기 위해서는 ‘자기 익히기’에 기울이는 인간적인 보다 인간적인 최선이 필요하다. 귀하게도 그 ‘최선의 최상화(最上化)’가 바로 서숙자 님 수필의 표정이자 내용이다. 잘 익은 과일과도 같은.
그뿐만 아니라, 그의 수필에는 인간미와 인간성 회복, 나아가 그 유지에 최선을 다하는 보다 진한 사랑과 자기 비움이 있고, 보다 절실한 완숙에의 기다림과 기도가 있다.
해서, ‘완숙完熟을 위한 최선’을 형상화한 그의 수필들은 언제나 공감과 감동으로 읽힌다.

저자소개

저자 : 서숙자
한남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영시 전공으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남대·인천시립대 등 여러 대학에서 영어영문학 강사를 지냈다. 2007년 협성대 문예창작과 강사로 ‘수필창작 개론’을 강의한 바 있다.
1997년《창작 수필》로 등단, 『그 바람은 멈추지 않는다』, 『수필이 나를 쓰다』, 『바람의 무게』 등 다수의 공저가 있고 각 문예지에 기고하고 있다. 제9회 창작수필 문학상, 제28회 편지글 최우수 서울시장상을 수상했고 주민센터에서 주부들의 독서토론을 지도했다. 한국문인협회, 창작수필 문인회, 한국수필가협회 회원이다.

목차

책을 내면서
축하의 글

1장 강으로 간다

어머니의 춤
공감
행복한 미소
모심慕心
내 삶의 지휘자
베고니아 피는 골목
봄비를 기다리며
손이 미운 여자
메멘토 모리
강으로 간다

2장 흔들리는 까치 둥지

가벼운 돌
하늘로 향한 창
진보라 저고리
키다리 아저씨의 1분 의식
그만큼 행복한 날이
오베르 언덕에서
흔적
갖고 싶은 열쇠
싸락눈 내리는 강가에서
흔들리는 까치 둥지

3장 꽃사과나무

하얀 손수건
호박 예찬
순수의 땅, 프로방스
아, 푸른 영혼의 노래여
지금 이 순간
꽃길을 걸으며
어느 소년의 매형
나이 드는 기술
갈색 고양이
꽃사과나무

4장 채송화를 좋아하세요

마음을 담은 상자
문 없는 채소가게
성묘
참새 방앗간에서
양, 아낌없이 주고 간
소리 없는 절규
멘델스존을 들으며
비둘기의 비상
쥐눈이콩의 기적
채송화를 좋아하세요

5장 가을, 나무처럼

시와 꽃과 하늘을 사랑한 아버지
조선 여인 닮기
산세베리아의 남은 날
그곳에 가보고 싶다
장미가 아름다운 이유
제라늄
예절 공부
상처
맑게 살라
가을, 나무처럼

6장 자작나무 숲속에 서 있고 싶다

꽃 그림자 너울대던 방
겨울이 빨리 왔으면
영춘화
아주 오래된 집
고향이 그리운 나무
여행, 그 설레는 출항
같은 하늘 아래
위대한 만남
강마을 연가
자작나무 숲속에 서 있고 싶다

7장 나를 익게 하소서

진이와 정아에게
내가 그 안에, 그가 내 안에
피장파장
벌곡 일기

눈물 어린 계절
사랑받은 미니 문방구
금강
아름다운 변신
나를 익게 하소서

책 속으로

[머리말] 수필 마당에 들어선 지 20여 년이 지났습니다. 늘 알차고 진솔한 수필을 쓰고 싶었지만, 나 자신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에 자괴감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두 번 책을 묶을까 하다가 세상에 내놓기가 부끄러워 그만 접곤 했습니다...

[책 속으로 더 보기]

[머리말]
수필 마당에 들어선 지 20여 년이 지났습니다. 늘 알차고 진솔한 수필을 쓰고 싶었지만, 나 자신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에 자괴감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두 번 책을 묶을까 하다가 세상에 내놓기가 부끄러워 그만 접곤 했습니다.
머뭇거리는 동안 갈고 다듬어 천착하여 쓴 글은 아닙니다. 맛없는 비빔밥 같지만 세월은 가뭇없이 흘러 이젠 설익은 글이나마 엮을 나이가 된 것 같습니다. 고인 물을 퍼내고 나면 새 물이 샘솟듯 새로 쓰는 글은 인간미 나는 글로 채우고 싶습니다.
수필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나 같은 평범한 사람도 보고 느낀 체험을 자유롭게 써 내려감으로써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해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덧붙인다면 글을 쓰는 동안 어떤 욕망이나 노여움, 약점, 불안 등, 살면서 느끼는 부정의 감정이 긍정으로 변하여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그러므로 나 자신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의 일상, 사소한 사물, 풀 한 포기라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다 사랑이고 아름답다’라고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공감 능력의 확장이라고 할까요. 가치 있고 매력 있는 문학 장르로 여겨집니다. 고뇌와 좌절, 슬픔과 외로움마저 사랑해야 할 만큼 짧고 소중한 인생살이를 어떻게 수필로 승화시킬지 고민할 때 행복해집니다.
이렇듯 친근한 수필이지만 쓰기는 점점 더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수필은 아무나 쓸 수 있지만 아무렇게나 쓰면 안 된다고 합니다. 상상력과 인문학적 시선으로 폭넓은 사색과 자기성찰을 게을리하지 않음으로써 격이 높아야 합니다. 주제, 문맥, 문장, 자기화, 의미화가 잘 갖춰지고 무엇보다 자신을 낮추며 감동을 주는 글이어야 한다고 배웁니다.
1997년 처음 뵈었을 때부터 ‘삶의 진실을 써라’, ‘수필가가 아닌 수필 문학가가 돼라’고 지도해주시는 오창익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 책에 수록한 70여 편 중 단 한 편이라도 수필문학다운 글이 있다면 교수님께 대한 보답이며 저도 만족할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질정叱正을 바랍니다.
언제 수필집 나오느냐고 채근하며 진심 어린 격려를 해 주신 창작수필 글 벗님들과 지인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책이 나오기까지 정성을 다 해주신 한국문화사와 사랑하는 가족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나를 찾아가는 이 길을 계속 걸어가겠습니다. 창밖엔 아직 겨울이 머물고 있습니다. 따스한 봄날을 기다립니다.
2019.1. 쇼팽 피아노 협주곡을 들으며
서 숙 자

[본문 발췌]
어머니의 춤
어머니의 전화 목소리에 생기가 넘친다. 노인센터에서 배운 춤 동작을 익히고 있는 중이란다. 목소리만 들어도 몸과 마음 상태가 가벼워 건강이 전보다 한결 좋아지신 것 같다.

2년 전 어머니는 눈앞에서 아버지의 심장이 멎는 순간을 보는 고통을 겪었다. 오전에 야외예배 다녀오신 후 소화가 안 되고 땀이 많이 나는 것 외엔 별다른 증세가 없었다. 어머니는 여느 때처럼 저녁식사 준비 중이었는데 TV를 보던 아버지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숨을 거두셨다. 아버지는 늘 자신은 건강하다면서 오히려 어머니의 허약함을 걱정하셨다. 믿어지지 않는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장례를 치른 뒤 어머니는 그만 몸져 누웠다. 갑작스러운 사별의 충격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 하는 것 같았다. 아버지를 깊이 의지하고 살아온 터라 슬픔과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모든 의욕을 잃고 만 것이다. 냉장고 음식은 일주일이 지나도 그대로였고 깔끔하던 집안은 어수선했다. 점점 기력이 약해지고 누워있는 날이 많았다.
그러던 중 자식들 성화에 못 이겨 오랜만에 늘 다니던 미장원에 가셨다. 몰라볼 정도로 초췌해진 모습에 놀란 미용사는 머리 모양을 정성스레 매만져주고는 집에만 계시지 말고 노인센터에 가서 춤을 배워보라고 권유했다. 우울한 기분이 싹 가시고 잠도 잘 오고 마음이 즐거워질 거라면서.
우두커니 혼자 집에만 있지 말라는 주위 분들의 충고에는 별 관심 없다가 미용사의 말에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교회 가는 일 외에 자식 키우며 살림밖에 모르던 어머니, 그것만이 취미이자 특기인 어머니에게 춤을 추라니 가당한 말인가.
가끔 어머니는 옛날을 회상하며 얘기하셨다. “그땐 참 좋았어. 학교 사택에서 살던 때야. 점심시간이면 텃밭에서 연한 상추와 쑥갓을 솎아 대소쿠리에 담고, 양념장도 맛있게 만들어 놓고 기다리지. 대문 안으로 아버지와 너희가 크게 웃으며 나란히 들어오면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 꿀맛같이 점심 식사를 하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곤 했단다.”라고 말씀하시는 어머니의 얼굴은 복숭아꽃 빛이었다. 그 시절 아버지는 전주사범학교 영어 선생님이었고 언니와 난 같은 학교에 다녔다.

이제 어머니는 홀로 살아야 한다. 자식들도 제 갈 길 가고 남편도 곁에 없다. 사는 즐거움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사람들과 어울려야 하고 뻣뻣한 팔다리를 움직이며 춤이라도 배워야 한다. 어머니가 춤을 추다니! 다른 사람처럼 느껴진다. 어깨춤 한 번 들썩이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춤은 어울리지 않지만 어머니는 낯설고 먼 길을 나서고 있다. 첫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처럼.
20세기 영국의 거장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는 정신과 육체의 결합을 춤으로 비유한다. ‘춤을 추는 동안 육체는 영혼을 즐겁게 하고, 즐거운 영혼은 춤추는 이의 눈을 빛나게 한다. 밤나무의 꽃과 가지와 뿌리가 하나이듯이 춤추는 동안 영혼과 육체는 하나다.’라고.
춤추는 어머니의 혈관 속엔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흐르리라. 이 사랑은 꺼져가는 자신의 모습을 지아비가 원치 않음을 알기에 무너져 내리는 육체를 일으켜 세우고, 두렵고 외로운 영혼을 끌어안는 힘이 될 것이다. 희미해진 잿더미에서 불씨를 살리려 안간힘을 쓰는 처절한 호흡이 되리라.
오늘도 어머니는 아버지 사진 앞에서 춤춘다. 두 팔을 부드럽게 움직인다. 허리를 좀 흔들고, 한 바퀴 돌고, 조금씩 뛰고 사뿐사뿐 발길을 옮긴다. 온몸이 땀범벅이다. 땀은 처절한 눈물이 되고 눈물은 다시 슬픔을 씻어준다.
사진 속 아버지의 해맑은 미소를 바라보며 후회·용서·그리움의 언어를 전한다. 가을이면 향기로운 국화 화분을 들고 오던 모습, 소박한 밥상이지만 “당신이 해주는 반찬은 다 맛있어요.”라고 추켜세우던 모습, 걱정거리가 있어도 “괜찮아요. 다 잘 될 걸!”이라고 안심시키던 모습을 그린다.
일제의 억압과 6·25전쟁의 소용돌이치는 세월, 생사를 같이하며 2남 4녀 자식을 먹이고 가르치면서 울고 웃던 그분에게 어머니는 삶의 존엄하고 긴 서사시를 무언의 춤으로 바친다. 언어로 표현하지 못 할 때 몸을 움직여 춤을 추는 것, 몸짓은 언어보다 앞선다고 하지 않는가.
부부가 60여 년 함께 사는 동안 어찌 좋은 일뿐일까. 큰 갈등은 없었다 해도 떠난 뒤엔 후회가 남는 법. 어머니는 외출할 때 정장正裝을 고집하는 아버지를 못마땅해 하셨다. “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며칠 전 일이야. 외출하면서 새 와이셔츠를 꺼내 입으시려 해서 못 입게 한 게 후회가 되는구나. 그냥 입고 나가게 할 것을, 아꼈다 나중에 입으시라고… 천년만년 살 것도 아닌데…”라며 끝내 말끝을 흐린다. 나는 “자책하지 마세요. 아버지는 늘 어머니가 무슨 일을 하든지 ‘잘했군! 잘했어!’하셨잖아요. 포장도 뜯지 않은 와이셔츠 안고 춤 한번 멋지게 춰 보세요.”라고 위로했다.
나는 춤을 출 줄 모른다. 정말이지 춤을 잘 추는 사람이 부럽다. 하지만 내가 추는 것 그 이상으로 만족한다. 노구老軀를 이끌며 홀로서기 연습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는 어머니가 자랑스럽다.
슬픔은 사라지고 마지막 날까지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이 멈추지 않기를 바란다. 언젠가 어머니가 하늘나라 올라가신 후에도 눈부신 한 마리 백조가 되어 우아한 춤으로 아버지의 눈을 기쁘게 하리라 믿는다.

바람에게 속삭인다. 일렁이는 촛불을 끄지 말아 달라고…. 소낙비에 애원한다. 가녀린 나비의 날개를 꺾지 말아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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