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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예술을 엿먹이다
256쪽 | A5
ISBN-10 : 8992309511
ISBN-13 : 9788992309516
평론 예술을 엿먹이다 [반양장] 중고
저자 로저 킴볼 | 역자 이일환 | 출판사 베가북스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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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11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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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 잘 받았습니다.감사합니다 5점 만점에 5점 ssk7*** 2020.09.25
216 잘 받았습니다 책 상태가 좋네요 5점 만점에 5점 psh5*** 2020.08.28
215 빠른 배송과 깨끗한 책, 저렴한 가격까지. 감사합니다~~~ 5점 만점에 5점 cur*** 2020.08.25
214 내용에는 없지만 책 사용감이 굉장히 많습니다.. 책 커피자국, 찍힘자국, 헐럼거림 등.. 이런거를 표기 안해주셔서 굉장히 불편하네요.. 5점 만점에 1점 dkd*** 2020.08.25

이 책의 시리즈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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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만 번지르르한 예술 평론은 가라! 미술비평은 어떻게 거장 화가들을 능욕했는가 『평론, 예술을 엿먹이다』. 저명한 예술비평가이자 에세이스트인 저자는 이 책에서 학구적인 예술사의 본질이 페미니즘, 후기식민주의 연구, 마르크시즘, 포스트모더니즘, 정신분석 등 학계의 여러 가지 정치적 도구로 사용되고 있는 것에 대하여 비판한다. 일곱 명의 거장 화가들과 그들의 걸작들이 오늘날 몇몇 예술비평가와 철학자들에 의해서 터무니없이 재해석되고 그들의 진보적 이념의 환상에 끼워 맞추어지는 모습들을 재기발랄한 문체로 폭로하고 있다. 예술 또는 예술 감상을 위한 평론과 해석과 의미 부여의 필요성을 근원적으로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예술 감상은 예술작품을 차분하게 받아들이고 느끼고자하는 노력이어야 함을 강조한 책이다.

저자소개

저자 : 로저 킴볼
저자 로저 킴볼(Roger Kimball)은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비평가 가운데 한 사람. 종종 사회적 이슈에 관해서도 뼈대 있는 논평을 함으로써 여론을 주도하는 지식인이다. 베닝튼 칼리지 및 예일대학교에서 철학 및 고전희랍어를 전공한 킴볼은 1990년대 <종신終身 급진주의자: 정치가 어떻게 고등교육을 부패시켰나 (Tenured Radicals: How Politics Has Corrupted Higher Education> 라는 저서를 발표함으로써 일약 명성을 얻었고 이후 줄곧 미국 예술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아울러 킴볼은 문학, 예술, 문화비평을 주로 다루면서 ‘예술과 지적인 삶’을 표방하는 뉴욕의 인기 높은 월간 저널 뉴 크라이티리언(The New Criterion)을 이끄는 편집장으로서도 유명하다. 예술계와 비평계에서의 왕성한 참여와 활동 이외에도 미국 내 여러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가하면, 뉴욕의 씽크탱크인 맨해튼정책연구소 (Manhattan Institute for Policy Research) 이사회의 일원으로 활약하고 있으며, 롤스턴 칼리지(Ralston College), 세인트 존즈 칼리지(St. John's College) 및 트랜잭션 출판사(Transaction Publishers)의 이사를 겸직하고 있기도 하다. 저서로 <대장정大長征: 60년대 문화혁명은 어떻게 미국을 바꾸어놓았나 (The Long March: How the Cultural Revolution of the 1960s Changed America)>, <현실에 맞선 실험들: 포스트모던 시대를 맞은 문화의 운명 (Experiments Against Reality: The Fate of Culture in the Postmodern Age)>, <예술의 전망: 인기인들의 시대, 전통의 과제는 (Art's Prospect: The Challenge of Tradition in an Age of Celebrity)> 등이 있으며, 2012년 6월 말에 <영속성의 부침浮沈: 기억상실 시대의 문화와 혼란(The Fortunes of Permanence: Culture and Anarchy in the Age of Amnesia)>를 펴낼 예정으로 알려져 있다.

역자 : 이일환
역자 이일환은
1955년 경북 상주 출생.
서울대학교 문리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동 대학 석사 및 박사 (에즈라 파운드).
풀브라이트 스칼라십으로 UC 버클리 수학.
예일대 방문교수.
2011년도 Who's Who International 판 인명사전 등재.
저서: <욕망과 즐거움 사이>, <알레고리와 아이러니 사이>
역서: <이념과 문학>, <칸토스>, <현대미국시와 시론>

목차

도판 목록
(1) 쿠르베 「사냥감」
(2) 로스코 「무제無題」
(3) 사전트 「에드워드 달리 보이트의 딸들」
(4) 루벤스 「술 취한 실레누스」
(5) 호머 「만류灣流」
(6) 고갱 「죽은 자의 혼이 지켜보다」
(7) 고흐 「한 켤레의 신발」
원전에 대한 노트
저자 서문
서론 : 평론, 예술을 '엿먹이다'
제 1 장 쿠르베 정신분석하기
제 2 장 마크 로스코 만들어내기
제 3 장 사전트 공상소설화하기
제 4 장 루벤스 취하게 하기
제 5 장 윈슬로우 호머 현대화하기
제 6 장 고갱 물신화하기
제 7 장 반 고호 벗겨 보이기
에필로그
감사의 글
역자의 말

책 속으로

┃ 예술은 스스로를 작동시키는 진리다. ┃ 정치적 올바름의 보다 깊은 효력은 어떤 유의 예술사가(藝術史家)가 주장하는 특정한 분파에서 -페미니즘, 마르크시즘, 정신분석 등등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예술을 비예술적 어젠더에 종속시키려는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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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은 스스로를 작동시키는 진리다.

┃ 정치적 올바름의 보다 깊은 효력은 어떤 유의 예술사가(藝術史家)가 주장하는 특정한 분파에서 -페미니즘, 마르크시즘, 정신분석 등등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예술을 비예술적 어젠더에 종속시키려는 결연한 노력에서 나타난다. 정치적 올바름이 가장 심한 파멸을 초래하는 것은 바로 여기에서다. 시각적인 것을 이념적인 것으로 대체시키면서, 그것은 예술을 본질적으로 비(非)미학적이고 탈(脫)미학적인 드라마의 소품으로 전락시켜 버린다.

┃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은 단순히 학문 교육이라는 면에서의 배신이 아니라 문화에 대한 공격, 이 세상과 이 세상 속에서의 우리의 위치를 바라보고 가치를 재는 방법에 대한 공격이다.

┃ 예술사의 궁극적 동기인 존재이유는, 위대한 예술 작품들과 시각적으로 직접 맞닥뜨리는 데 있다. 다른 것들은 머리말이나 후기일 뿐, 메인 이벤트를 떠받치기 위한 발판에 지나지 않는다. 메인 이벤트는 예술에 대하여 배우는 것이라기보다, 직접 예술을 경험하는 것이다.

┃ 예술적 생산에 진정성이란 기준을 적용할 수 없게 되는 순간부터, 예술의 총체적 기능은 역전된다. 제식(祭式)에 기반을 두는 대신, 예술은 다른 행위, 즉, 정치에 기반을 두기 시작하는 것이다. - 발터 벤야민

┃ 예술을 언어의 바다에 익사시켜 버리려는 유혹은 위험한 직업적 왜곡 이다. 비평가들은 자기 학식을 떠벌리기도 좋아하지만, 자신들의 말소리도 마찬가지로 좋아한다. 예술작품이 그들에게 이 두 가지를 다 뽐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니 그 얼마나 편리한가!

┃ 그렇다고 내가 예술작품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온갖 종류의 문화적, 사회적, 역사적 요소들이 개입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요소들은 개입될 수 있고, 실제로 흔히 그렇게 개입된다. 그러나 생생한 기운의 중심은 작품 자체가 되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우리가 갖게 되는 것은, 예술사가 아니라 일종의 자서전 또는 정치적 설교가 되어버리고 만다.

┃ 현재의 예술 비평에 기름을 붓고 있는 저 유행성 급진주의는, 삶의 다른 영역에서 유행하는 급진주의들과 마찬가지로, 새끼를 잡아먹음으로써 살찐 동물과 같다. 늘 그런 식이었다.

┃ 대부분의 훌륭한 예술은 비평가를 일종의 결혼 중매자, 관람자와 예술작품 사이의 중간자로 왜소화시켜버린다. 그것이 겸허한 진실이다. 흔히 비평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위는, 소개만 하고 자리를 비켜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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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예전에는 대학들이 진정한 예술의 감상을 진작시키고 학생들로 하여금 인류의 풍요로운 예술 유산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서 예술사를 가르쳐왔다. 그러나 오늘날 -이 신랄하고 도전적이며 위트에 넘치는 작품이 폭로하는 것처럼- 학생들이 예술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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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대학들이 진정한 예술의 감상을 진작시키고 학생들로 하여금 인류의 풍요로운 예술 유산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서 예술사를 가르쳐왔다. 그러나 오늘날 -이 신랄하고 도전적이며 위트에 넘치는 작품이 폭로하는 것처럼- 학생들이 예술사 강의에서 배울 수 있는 거라곤 거장들의 마스터피스를 통한 미학이 아니라,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미명 하에 평론가와 이론가들이 강요하는 그들만의 자의적 해석과 지적 허세이기가 십상이다. 루벤스의 위대한 걸작 「술에 취한 실레누스」를 항문성교에 관한 알레고리라고 갖다 붙이는가 하면, 쿠르베가 남긴 저 유명한 사냥 그림들을 ‘거세에 대한 불안’의 사이코드라마라고 부르기도 하고, 고갱의 「죽은 자의 혼이 지켜보다」를 ‘여성의 몸에 새겨진 억압’의 일례라고 둘러대거나, 호머의 「만류」가 인종차별주의의 비주얼 인코딩이라고 억지를 써야만 직성이 풀리는 일부 평론가들의 행태는, 그야말로 거장 예술가들을 능욕하는 것이요 예술적 창조 행위를 ‘엿먹이는’ 정치적 의도에 다름 아닐 것이다.
저명한 예술비평가요 에세이스트인 저자는 학구적인 예술사의 본질이 어떤 식으로 점차 (페미니즘, 후기식민주의 연구, 마르크시즘, 포스트모더니즘, 정신분석 등) 학계의 여러 가지 급진적 문화정치의 볼모로 붙잡히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일곱 명의 거장 화가들과 그들의 걸작들이 오늘날 몇몇 예술비평가와 철학자들에 의해서 터무니없이 재해석되고 그들의 진보적 이념의 환상에 끼워 맞추어지는 역겨운 모습이 저자의 재기발랄한 문체로 여지없이 폭로된다. 상아탑에서 이루어지는 예술사 교육의 배후로부터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예술계 전반으로 흘러넘치고 있는 ‘협잡과 사기’가 이 책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물론 저자는 예술 또는 예술 감상을 위한 평론과 해석과 의미 부여의 필요성을 근원적으로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예술의 메인 이벤트는 예술작품을 차분하게 받아들이고 느끼고자 노력하는 것이어야지, 정치적 올바름에 의한 분류나 평가나 ‘억지 쓰기’여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독자들이 이 책을 끝낼 즈음이면, 인류의 문화와 문명을 키워낸 소중한 근원을 다분히 정치적 의도로써 무자비하게 더럽히는 이 예술 ’엿먹이기’에 대한 강렬한 해독제 또한 발견하게 될 것이다.

추/천/의/말

“예술 감상의 메인 이벤트는 예술작품에다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거나 정치적 올바름에 의해서 예술작품을 평가한다든지 (심지어) 등급을 매기는 일이 아니라, 예술작품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고 머리와 가슴으로 함께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이것을 잊거나 무시할 때 평론과 예술사는 한낱 정치적 설교가 되고 말 것이다.
당신이 예술을 ‘살기로’ 작정했다면 이 책으로 예술의 본질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스스로의 마음을 다잡고 결의를 굳건히 하라고 권하고 싶다. 혹은 당신이 미학이나 예술사 혹은 예술평론에 뜻을 두고 있다면, 이 책에서 그 학문이나 활동의 출발점이 어디이며 예술의 중심에 무엇이 놓여 있는지를 다시금 되새기는 계기를 얻어야 할 것이다.”
- 김태호/ 서울여자대학교 미술대학 교수
전 소마(Soma)미술관 운영위원장

“로저 킴볼의 이 탁월한 책은 데리다, 푸코 같은 이들이 예술사에 가한 치명적인 상처를 치유하는 복구작업이다. 그의 논리는 대단히 설득력 있다. 그의 정교한 이론은, 자신들의 정치적 어젠더로써 예술 작품을 얽어 매려는 이론가들과 평론가들의 신빙성에 효과적인 공격을 가한다.”
- 필립 드 몽트벨로/ 전 메트로폴리턴 미술관 관장

“예술사를 전공하는 학생으로서 감히 말하거니와, 대학생들을 위시하여 예술에 관해 눈곱만치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 예술작품에 대한 어떤 해석이 건전하고 의미 있는 것인지를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 토드 리처드슨/ 아마존 서평에서 발췌

출/판/사/리/뷰

만약 당신이 숲속에서 먹을 것을 찾아다닐 생각이라면, 독버섯을 알아볼 수 있는 안내서를 들고 가려고 생각할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당신이 오늘날의 예술사 학계라는 관목 숲으로 들어가게 될 때, 『평론, 예술을 '엿먹이다'』를 들고 간다면 유익하다는 것을 쉽사리 알게 될 것이다. 당신이 예술평론이라는 분야에 존재해온 많은 독버섯과 가짜 식용 버섯을 알아내고 피하게 되는 데 이 책이 분명히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니까 말이다.
저자의 말마따나 이 책은 예술사가 근본적으로 ‘정치적 개입의 한 형태’라는 관점에 대해 통렬한 반격을 가하는 책이다. 다시 말해 예술사 공부에 스며들어가 있는 정치적 올바름이란 독에 대한 해독제, 또는 적어도 그에 대한 대안을 주려는 것이다. 물론 저자라고 해서 모든 예술작품에 대한 평론의 필요성을 아예 부정하자는 것은 아니다. 예술에 대한 일반 대중의 이해를 위해서 평론은 절대로 필수불가결함을 인정하면서도, 미사여구로 무장한 이론가, 평론가들의 정치적 의도 때문에 예술과 평론 사이의 관계가 ‘주객전도’ 현상을 일으키고 있는 현실을 질타하려는 것뿐이다.
창작 행위를 하는 거장 화가들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아니, 심지어는 화가 자신이 적극적으로 해명하거나 부인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의 작품에다 성적인 의미, 인종주의적인 해석, 포스트모더니즘의 의도 따위를 억지로 갖다 붙이는 그들의 안하무인격 태도야말로 거장들을 (예술을) “엿 먹이는” 행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일상생활의 무게에 눌려 예술을 접하기도 어렵고 이해하기는 더욱 난감한 보통 사람들이 그러한 자의적 해석을 보게 되면 이에 영향을 받아 순수한 감상이 불가능할 터이고, 그렇다면 예술가의 창작은 과연 무엇이 되겠는가?
예술을 본질적으로 비(非)미학적이고 탈(脫)미학적인 드라마의 소품으로 전락시키는 이런 평론의 독소를 없애는 방법은? 먼저 그런 ‘예술 능욕’이란 문제점을 인정하고, 자의적인 해석을 추구하기보다 눈과 가슴을 먼저 열고 작품 자체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예술의 참뜻이 무엇이냐에 관해서는 수많은 이론의 여지가 있겠지만, 그와는 상관없이 먼저 창작의 결과물을 마주 대하고 느껴보는 것으로 ‘예술 감상’ 혹은 ‘예술 누리기’의 회복이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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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

회원리뷰

  • 정부미의 추억 | su**ell | 2012.08.26 | 5점 만점에 4점 | 추천:0
    대학시절, 미대에 다니던 친구 세 명과 함께 서울 방배동에서 겨울방학을 보낸 적이 있었다. 단독주택의 차고를 개조하여 월세로...
    대학시절, 미대에 다니던 친구 세 명과 함께 서울 방배동에서 겨울방학을 보낸 적이 있었다.
    단독주택의 차고를 개조하여 월세로 놓은 곳이니 난방이 될 리 없었고, 도로 쪽으로는 홑겹 유리 미닫이문이 셔터문 안쪽에 설치되어 있을 뿐이었다.  바람이 세차게 부는 밤이면 문 틈새로 황소바람이 들어오고 덜그럭거리는 소리에 잠을 설치곤 했지만 우리는 하나뿐인 연탄난로 주변에 모여 기타를 치며 목청껏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안주도 없이 깡소주를 들이키기도 했다.  친구들은 그곳이 마치 로마시대의 지하묘지처럼 음산하다며 '카타콤'이라고 불렀었다.
     
    술도 못 마시고 전공도 전혀 달랐던 나는 물과 기름처럼 좀체 섞이지 못하였다.  그들로부터 가끔 그림 그리는 법을 배우고 안주감으로 라면을 끓여주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캔버스에서 살아나는 갖가지 형상들과 붓을 잡은 손의 유연한 움직임이 그저 신기한 듯 쳐다보는 재미에 나는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밤이 늦도록 이젤 앞에 앉아 골똘한 생각에 잠기곤 하던 그들과 달리 나는 밤이 깊었다 싶으면 으레 냉기가 도는 침대에 들어가 눈을 붙였다.  그리고 매일 아침 추위에 뻣뻣하게 굳은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풀어준 후, 간신히 고양이 세수를 마치면 서둘러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곤 했다. 
     
    그때 같이 지내던 친구 중 한 명은 미술대학으로 유명한 H 대를 다니다가 1학년말 작품 전시회에 걸렸던 자신의 작품에 문제가 있어 학교로부터 퇴학 처분을 받고 이듬해 D 대학 천안 캠퍼스에 재입학 했었다.  당시 그는 전시회 작품으로 정부미 포대를 똑 같이 그렸다고 했다.  그런데 그렇게만 그리면 뭔가 밋밋한 느낌이 들어서 '정부미'를 '전부미'로 바꾸었다고 했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전두환 정권이었던 당시의 사정은 예술이든, 언론이든 무제한의 자유가 주어지지는 않았다.  공안정국의 삼엄한 분위기는 예술작품이라고 해서 검열의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친구는 그 바람에 학교에서 제적을 당했고, 교수님과 학교 당국에 호소도 해 보았지만 허사였다고 했다.  그림에 재능이 많았던 친구는 D대학을 졸업하였고 지금은 미술 관련 모 사단법인의 이사장이 되었다.
     
    시대를 막론하고 예술사의 평가는 언제나 평론가와 그 시대의 권력자의 몫이었다.  당사자인 작가의 목소리는 언제나 무시되기 일쑤였고, 의식 있는 평론가의 항변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21세기인 지금도 통치자의 입맛에 맞지 않는 예술작품은 법의 잣대로, 또는 평론가의 자의적인 해석에 의해 처벌되거나 불이익을 받는다.
     
    이 책은 예술사에서 평론가의 부당한 해석을 작품을 예로 들어 낱낱이 파헤치고 있다.  쿠르베, 마크 로스코, 사전트, 루벤스, 윈슬로우 호머, 고갱, 반 고흐 등의 작품이 당시의 평론가에 의해 어떻게 평가받았는지 살펴보는 것은 일반 독자에게도 유익한 일이 될 것이다.  부당한 평론가는 정권의 시녀 역할을 하는 언어 폭력범이 될 수도 있음이다.김태호 교수는 추천사에 이렇게 적고 있다.
     
    "미술이든 음악이든 혹은 다른 예술의 영역이든, 당신이 에술을 '살기로'작정했다면 이 책으로 예술의 본질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스스로의 마음을 다잡고 결의를 굳건히 하라고 권하고 싶다.  혹은 당신이 미학이나 예술사 혹은 예술평론에 뜻을 두고 있다면, 이 책에서 그 학문이나 활동의 출발점이 어디이며 예술의 메인 이벤트가 무엇인지를 다시금 되새기는 계기를 얻어야 할 것이다."     
  • 평론, 예술을 엿먹이다 | ki**o1 | 2012.08.17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비평가들 중에도 억지 끼워맞추기의 대가가 있는 모양이다. 거장 화가들의 걸작을 자기 마음대로 재...

     
      비평가들 중에도 억지 끼워맞추기의 대가가 있는 모양이다. 거장 화가들의 걸작을 자기 마음대로 재해석하고, 급진적이고 정치적인 이념(페미니즘, 마르크시즘, 포스트모더니즘, 정신분석 등)을 억지 끼워맞추는데도 이들을 실력있는 비평가로 인정하고 있다는 아이러니한 이야기. 『평론, 예술을 엿먹이다』라는 책에서 이같은 아이러니한 사실을 알게되었다.

      사실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제목 때문에 쉽게 생각하고 읽기 시작한 책인데, 무려 40페이지 정도에 달하는 서론에 처음부터 등장하는 생뚱맞은 용어들과 잦은 줄표(-) 때문에 정말 힘들게 시작했지만, 이후에 나오는 거장들의 걸작을 따로 설명하는 부분부터는 술술 읽히는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처음보다는 수월하게 읽혀졌다.

      책에서 인용하는 작품은 고작 일곱 점이다. 그런데 고작 일곱 점만으로도 이렇게 책 한 권이 써진다는 것은 신기할 것이다. 하지만 비평가들의 논문이 얼마나 황당한 것인지를 알면 쉽게 이해갈 것이다.

      비평가들이 사용한 도구는 주로 직업적 왜곡. 쉽게 말하면 그림을 글로 해체해버리는 것이다. 자신들의 알량한 학식을 도구로 활용하여 정말 그런 것처럼 재단해버린다. 뭐 이정도까지는 별 문제가 안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비평가들은 전문가들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 결과로 나온 최종 해석은 작품과는 영 딴판이 되어 버린다. 이를테면 책 표지에 등장하는 <존 싱어 사전트>의 작품 <에드워드 달리 보이트의 딸들>은 본래 풍요로운 보이트 집안의 가족 초상화인데 심한 언어 유희와 그림 중 일부 소제에 대한 억지 끼워맞추기식으로 이 작품의 주제를 '생물학적 그리고 예술적 생식'으로 주장하는 것이다.

      그림을 안다는 것은 참 어렵다. 사실 평범한 사람들이 전시회에 가서 명화를 감상하고 그림에 담긴 뜻을 알아내기란 정말 어렵다. 나 역시 그래서 전시회나 미술관에 가기 전에 작품에 대한 일반 해설을 먼저 찾아보곤 하지만 전문적인 예술평론가들의 해설은 접해본 적은 없다. 그래서 만약 이 책을 읽어보지 않고 이 책에서 주장하는 전문가들의 논문만 읽었다면 나 역시 그들이 말하는 것을 비판없이 받아들였을 것 같기 때문이다.

      작품은 있는 그대로 보고 느껴지는대로 느끼는 것이란다. 눈으로 보는 것이지 글로 읽는 것이 아니란다. 그래서 이면에 있는 것까지 읽으려 하다보면 작품의 이면이 아니라 오히려 왜곡된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뭐 난 비평가가 아니니 그럴 걱정은 없다.

      책을 읽다보니 이 책에서 소개하는 작품들이 모두 가운데 몰려있었다. 컬러 인쇄 때문에 가운데로 몰아둔 것 같은데 그래도 아쉽다. 꼭 그렇게 몰아야 한다면 책의 앞 부분에 두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 평론, 예술을 엿먹이다. | ru**sylph | 2012.08.09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여행을 가면 제일 먼저 박물관과 미술관같은곳을 방문하는 아빠의 영향으로.. 꽤 미술관을 많이 다닌 편이다. 여러규모의 미술관을...
    여행을 가면 제일 먼저 박물관과 미술관같은곳을 방문하는 아빠의 영향으로.. 꽤 미술관을 많이 다닌 편이다. 여러규모의 미술관을 다녀봤는데.. 확실히 큐레이터가 안내를 해줄때 무엇인가 더 그림을 이해하는 느낌이 들고.. 내가 이 그림을 감상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건 사실이였다. 그래서 미리 평론가의 글을 찾아보고 미술관을 찾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미술비평이라는 것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볼 기회가 되었다. 윈슬로우 호머가 그림을 설명해달라는 부인에게 보낸 편지..

    "내가 그린 그림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든 묘사나 해석을 해야만 한다는 사실이 매우 유감이네요. 이 그림의 주제는 그 제목에 들어 있습니다. "

    이 편지를 읽고 그동안 내가 얼마나 남의 시선으로 예술작품을 바라보려고 했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어쩌면 나는 조지디키가 예술작품을 정의했던 이야기중에 하나인..

    "대중은 그들에게 전시된 대상을 어느 정도로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는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사람들의 집합이다. "

    라는 말에 집착하여 예술작품을 보기보다는 이해할 준비만 잔뜩 한것이 아닐까? 어쩌면.. 이 책에 등장한 평론에서 느껴지는 지적허영심이 나에게도 있었던거 같다. 특히 나 역시 반고흐미술관을 찾기전에 [A pair of shoes]에 대한 하이데거의 이야기를 읽었기 때문이다. 머리로 외운 이야기를 친구에게 주절주절 하기는 했지만 내 마음으로 느꼈거나 머리로 이해한 것은 아니였다. 그래서 이 책이 더 재미있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예술작품을 감상하는건 미적경험을 낳는다는 말도 있다. 거기에 좀 더 포커스를 맞추어 학문이 아니라 감성으로 느껴보는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으며 조금 아쉬웠던 것은.. 도판을 한 곳에 모아놓은 것이다. 덕분에 책을 읽는 내내 그림을 보러 왔다갔다를 반복해야 했다는.. ㅎ
  • 평론, 어디까지... | sy**seo | 2012.08.07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그 작품을 보는 순간 느끼는대로 느끼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러...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그 작품을 보는 순간 느끼는대로 느끼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확실히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서 그 작품을 감상한다면 내가 모르던 부분들을 많이 알게 되는 경우가 있다.
    미술사조의 변천에 따라서 그 작품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가, 작가는 이 작품을 어떤 상황에서 그리게 되었는가, 작가가 표현하고자 한 것은 무엇인가....
    이런 것들을 알기 위해서는 미술 작품을 감상하기 전에 공부를 하는 것도 도움이 되고, 전시회장을 갈 때에 도슨트 운영 시간을 이용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예술 작품보다 더 장황한 배경설명이나 평론들이 그 작품을 돋보이기 위해서 만들어 낸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현대 미술작품에서는 더욱 그런 경우를 많이 접하게 된다.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이 1917년 뉴욕 독립미술가전에서 'R.Mutt'라고 사인한 남성 소변기를 <샘>이란 작품명으로 출품했던 '마르셀 뒤샹'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이 작품이 전시회에서는 거절을 당했지만, 기존의 예술 개념을 깨뜨린 '개념예술'이란 새로운 장르를 개쳑했다는 것이다.
    <샘>이란 예술 작품 하나만으로도 예술, 그리고 평론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 출처 : Daum 검색)
     
    평론이 어떻게 예술 작품을 '엿 먹이'는가를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로는, 그럴듯하게 예술 작품들을 과대 포장하는 것이다.
    실제로는 별 의미가 없는 작품을 천재의 작품인양 평가하기도 하고, 미적, 성적인 면에서 역겨울 정도인 작품을 이것은 예술 작품이니까 하면서 미화시키기도 하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거장들을 범하는 것이다. 어떤 작가와 작품에 대해서 위대하다고 생각해 왔던 기존의 생각을 공격하거나 희석시키거나 때로는 전복시키고자 하는 평론을 쓰는 것이다.
    이런 평론은 예술 작품에 대한 책을 몇 권만 읽어 보아도 쉽게 접할 수 있는 경우에 해당할 것이다.
     
     
    " <평론, 예술을 '엿먹이다'>는 예술사가 근본적으로 '정치적 개입의 한 형태'라는 관점에 대해 반격을 하고자 하는 책이다." 고 저자가 말하듯이 예술 작품이 평론가들에 의해서 어떻게 능욕당하고 있는가를 (평론계가 예술을 '엿먹이는'가를) 이야기한다.
    저자인 킴볼은 우리들에게 잘 알려진 7명의 화가들의 작품이 평론가들의 능숙한 글솜씨, 화려한 미사여구에 의해서 어떻게 평가되었는가를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서 설명해 주고 있다.
    쿠르베, 마크 로스코, 사전트, 루벤스, 윈슬로우 호머, 고갱, 반 고흐에 대해서 그가 알고 있는 '엿먹이는' 평론의 사례를 이들 화가의 이야기와 함께 설명해 주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좀 아쉬운 점이 있다면, 화가들의 작품에 대한 평론 이야기이니, 그에 해당하는 작품이 함께 실려야 이해가 빠르겠으나, 작품 사진은 책의 중간에 몇 장이 한꺼번에 몰려서 실려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책의 내용을 읽으면서 그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책 장을 다시 그 부분으로 펼쳐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이 책에서 언급된 작품 중에는 폴 고갱의 <죽은 자의 혼이 지켜 보다>가 있다.
     
     
    " '예술가 고갱'은 그 어디에도 없다. 폴락 교수는 페미니스트적 논박을 하기 위해 예술을 버렸고, 아이젠만 교수는 다양한 도착적 환상을 위해 예술을 버렸다. 둘 다 참으로 말도 안 된다. 그들에게 영향력만 없다면, 그들의 글으 그저 웃어 넘기면 그만 일 텐테 말이야. 바른 말이지, 그들은 완전 혐오스럽다. " (p. 221)
    폴락 교수와 아이젠만 교수가 폴 고갱의 <죽은 자의 혼을 지켜보다>에 대해서 어떤 평론을 썼는가는 책 속에 담겨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각인 페미니스트적인 관점에서 또는 도착적 환상에서 이 작품을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이 작품을 그린 폴 고갱의 생각과 어느 정도 일치하는가는 염두에도 없는 듯하다. 그러나 그들은 유명 평론가들이기에 그들의 이런 평론은 그대로 작품을 이해하는 바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오류적 평론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 것인지는 감상하는 사람들이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로 남겨지게 된다.
    빈센트 반 고흐의 <한 켤레의 신발>도 하이데거의 평에는 반 고흐가 실제로 이 그림을 그린 것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철학적 시나리오에 그의 그림을 끌어 들이는 사례가 되는 평론이다.
     
     
    하이데거라는 철학자의 드높은 변주곡들은 반 고흐의 예술과는 별반 관계가 없는데도 사람들은 그의 평론에 귀기울일 수도 있으니...
    저자는 이 작품에 대한 데리다의 평을 '말장난', '요점없는 추상화 볶음 요리'라는 표현까지 쓰게 된다.
    그러나 예술 작품에 대하여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나 감상을 하는 사람들은 이런 평론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럴듯하게 표현하는 그들의 허튼 소리와 얼토당토 않은 평(글)을 그 평론을 쓴 사람의 인지도만을 믿고 그렇게 생각해 버리게 되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다.
    예술 작품들, 그리고 문학 작품들을 대하면서 그 작품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아무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때에 따라서는 작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시대사조에 따라서 작품들이 엉뚱한 평가를 받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 (...) 예술이란 이름 아래 창조되는 모든 작품 또는 행위를 정지적 올바름이라는 그럴싸한 핑계로 '엿먹이는' 수많은 이론가들이나 철학자들에게도 일침을 가하는 " (추천사 중에서) 그런 책이 필요하기도 한데, 그런 의미를 가진 책이 < 평론, 예술을 '엿먹이다'> 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번역한 '역자의 말'을 읽어 보면 이 책을 쓴 킴볼 역시 " 좌파, 페미니즈, 포스트모더니즘, 성적 정체성 같은 관점에서의 해석들이 난무하는 데 대한 반작용이기는 하겠지만, 킴볼은 반대로 너무 우파적, 보수적으로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 킴볼의 태도는 듣기에는 참으로 좋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로 순수할 때에만 진정한 가치를 지니는 말이 된다. " (p. 254)
    어쩌면 좋을 것인가?
    킴볼은 예술 작품의 이해에 있어서 교수들이 자신의 생각을 사람들에게 주입시켜서, 감상자들이 스스로 예술 작품을 감상하고 이해하는데에 오류를 범하는 것을 걱정하고, 평론가들의 평이 자신들의 생각에 지나치게 좌우되는 것을 염려했는데,
    역자는 오히려 그런 저자의 생각들이 너무 한 방향으로 쏠리지는 않았는가를 또 걱정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훌륭한 예술 작품이나 문학작품에는 훌륭한 해석들이 존재하며, 그 해석은 그 작품들을 대하는 우리들에게 더 큰 감동을 준다는 말을 한다.
    여기에서 내 생각을 말하자면, 훌륭한 작품들에는 그 작품에 대한 해석이 올바르다면 우리들에게 더 큰 감동을 줄 수도 있겠지만, 그 해석 자체에 어떤 사심이 들어가 있다면 우리들이 작품을 대하는데 큰오류를 가져 오게 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그런 평론은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다 읽고 내려놓는 마음은 경쾌하지가 않다. 그동안에 평론이 작품을 위한 평론이 아닌, 평론을 위한 평론, 작품을 치장하기 위한 평론이라는 생각을 가진 적이 있었기에 이 책을 읽으면서 평론에 대한 불신이 더 가중되는 것이다.
    어떤 작품을 대할 때에 내가 느끼는 그것이 곧 내가 그 작품을 올바르게 감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 정치적 올바름이 어떻게 예술을 파괴하는가? (How Political Correctness Sabotages Art) &...
    정치적 올바름이 어떻게 예술을 파괴하는가?
    (How Political Correctness Sabotages Art)
     
     
    최근 개인적으로 미술계에 관한 관심이 커지는데다 제목이 하도 도발적이어서 읽고 싶었던 책이다. 일찍이 다른 책들을 통해서 시장논리에 입각한 예술가(집단)와 비평가 간의 유착관계에 대해 알아온 터라 기대도 크고 어떤 내용일지 무척 궁금했었는데, 쉽지 않은 책이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The Rape of Masters'라는 제목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예술사에 엄청난 업적을 이루었다고 상까지 받으며 추앙받는 일부 미술 평론가들의 해석(비평)이 거장들의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작품의 의도를 왜곡하고 폄하하는 '강간'과 다름없다는 점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다.
     
    저자 로저 킴볼(Roger Kimball)은 일부 비평가들의 지나치게 작위적으로 확대해석되거나 특정한 의도로 재해석된  것들을 니체의 '인간은 질병에 논박을 하는 게 아니라 질병에 저항을 하는 것'이라는 말을 인용하며 그 역시 '저항'하는데, 그 과정에서 반박의 논리나 어조가 지나치게 직설적이어서 독자들에게 충분히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을까 하는 괜한 우려가 드는 것도 사실이다. 비평가 집단과 저자 사이에서 균형 잡힌 시각을 유지하기 위해 독자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은 윈슬로우 호머의『만류』나 존 싱어 사전트의『에드워드 달리 보이트의 딸들』 등 이 책에서 다루는 화제작들부터 직접 자신의 힘으로 천천히 감상해보는 것이 아닐까 싶다.
     
    길을 잃은 예술평론에 저자가 내놓은 해답은 간단하다. 예술작품 그 자체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비평은 죽었다'고들 한다. 평론가들의 해석은 일반 대중은 물론이고 예술계에서도 외면당하고 있는 현실이다. 에프라임 키숀은 자신의 저서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에서 현대예술이 저지르고 있는 최대의 죄악으로 관객을 무시하거나 경멸하는 태도를 꼽은 바 있다. 로저 킴볼의 견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정치적 올바름이)시각적인 것을 이념적인 것으로 대체시키면서 그것은 예술을 본질적으로 비미학적이고 탈미학적인 드라마의 소품으로 전락시켜버린다. (p. 16)'고 꼬집었다. 게다가 그 대책 없는 난해함에 정신병원을 언급하는 것도 두 사람의 공통점이라면 공통점이다.
     
    고흐의『한 켤레의 신발』에 구구절절 달린 어렵다 못해 기괴한 해석에 참다못한 저자의 화가 그대로 분출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한국어판의 제목이 격한 것도 사실이다. 허나, 예술이 온갖 정치적 도구에 휘둘리고 있는 갑갑한 현실을 보다 못한 그도 예술 작품을 이해하는 데 있어 문화적, 사회적, 역사적 요소를 전혀 개입시키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주장은 간단하고 명확하다. 예술 작품을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먼저, 또 가장 많이 고려해야 할 대상은 어떤 경우에도 작품 그 자체라는 점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푸코나 데리다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인물들의 의견과 정면으로 부딪치고, 이미 기득권이 되어버린 유명 비평가들과도 날 선 대립을 해야 하는데, 거듭 말하지만 그것은 오롯이 독자의 몫이자 선택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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