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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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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0쪽 | 규격外
ISBN-10 : 8994940235
ISBN-13 : 9788994940236
훈민정음의 길 중고
저자 박해진 | 출판사 나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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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1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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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의 길 - 혜각존자 신미 평전』은 지은이가 12년의 문헌조사와 사찰 순례를 통하여 역사 속에서 사라졌던 훈민정음 창제의 핵심 편집인이었던 조선 초기의 고승 혜각존자 신미스님의 생애와 업적을 완벽하게 재구성한 결과물이다. 한편 지은이는 이 책에서 훈민정음의 역사와 함께 간경도감에서 간행된 언해 불전(佛典)의 간행 내력, 범종, 원찰의 중창과 신창에 대한 기록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정리했다. 특히 세종이 강력한 왕권으로 경복궁에 지은 내불당의 건립 내력과 반대 상소를 일괄, 정리한 것은 최초의 성과다.

저자소개

저자 : 박해진
저자 박해진은 강원도 태백 출생. 대학에서 국어국문학 전공. 1984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 1987년부터 1997년까지 종근당 홍보실과 동방기획 PR부장을 거쳤다. 1998년부터 지금까지 고건축 사진작가로 활동하며 숭례문, 창덕궁 인정전, 경복궁 근정전, 덕수궁 중화전, 수원 화성 팔달문, 여수 진남관 등 국보·보물의 해체 보수, 조사의 기록을 전담했다. 2002년 속리산 대웅보전 해체의 인연으로 혜각존자 신미를 만나 스님의 발자취를 찾고, 훈민정음 연구에 몰입했다. 『훈민정음의 길 - 혜각존자 신미 평전』은 훈민정음과 함께 걸어가야 할 자드락길의 첫머리다. 세종과 함께 훈민정음으로 조선의 아득한 미래를 연 혜각존자 신미. 스님과 함께 걸어갈 수 있다면, 그 길의 다음은 없다. 멈출 수 없으므로, 길을 떠난다. 그 이름은 훈민정음과 함께 하는 주인되는 나그네.
지은이는 단청의 명장으로 활동한 한석성을 인터뷰,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단청』(한석성·신영훈·김대벽·박해진 공저, 현암사, 2004)으로 정리했다. 바둑평론가로도 활동하며 동아일보 주최의 국수전 50년 역사를 정리한 『국수산맥』(2007, 동아일보사)을 펴냈다. 사진집으로 『선암사의 건축』(2007, 선암사), 『오래된 궁궐, 새로운 궁실』(대목장 신응수 도편수 작품집, 2008) 등이 있다.

목차

머리말ㆍ11

1 꽃잎 속의 훈민정음 혜각존자의 집안과 출가
훈민정음 창제의 주역, 혜각존자 신미 예문관 대제학 이행의 외손자 김수성 19 | 아버지의 돌이킬 수 없는 불충과 불효 20 | 회암사에서 함허당을 은사로 출가 22 | 신미, 함허당의 정법을 잇다 25 | 함허당, 대 자암에서 왕실 불사 주관 26 | 세종, 선교 양종으로 사찰 혁파 29 | 신미, 속리산에서 정진하다 31 | 신미, 대장경에서 길을 찾다 35
미래로 준 세종의 선물, 훈민정음 훈민정음 창제를 위한 세종의 고뇌 37 | 세종, 효령대군의 추천으로 신미를 만나다 39 | 조선의 긴 어둠 털어낸 훈민정음 40 | 신미의 법통에 대한 가설 42

2 꽃피는 훈민정음 세종과 훈민정음
훈민정음 창제 신숙주, 훈민정음 창제 때 일본에 있었다 47 | 1443년 12월 30일, 훈민정음 창제 발표 48 | 정음청, 훈민정음 관련 부서 49 | 최만리 등 훈민정음 반대 상소 50 | 세종, “너희들이 운서ㆍ사성ㆍ칠음을 아느냐” 56 | 훈민정음 보강을 위한 1차 초수 행행 58 | 복사꽃 날리는 초수행궁과 훈민정음 61 | 세종의 안질과 훈민정음 - 제2차 초수 행 행 65 | 소헌왕후의 어머니, 한 많은 생을 접다 67 | 광평ㆍ평원대군, 이른 꽃잎 떨구 다 69 | 신숙주ㆍ성삼문ㆍ손수산, 운서 자문 위한 요동행 71 | ‘사가史家의 대전’,『치 평요람』완간 74 | 1차 완성된 『용비어천가』75 | 집현전의 수장, 최만리 별세 78 | 김수온,『의방유취』 간행 참여 80
소헌왕후의 국상과 불사 소헌왕후, 세종과의 이별 82 | 수양ㆍ안평대군, 소헌왕후를 위한 금니 사경 84 | 세종, 불교를 믿는 무지한 임금 86 | 양주 회암사와 효령대군 미륵신 90 | 시학의 달인, 천 봉 만우 92 | 소헌왕후를 위한 사경 불사 95 | 성균관에 모셔도 부족하지 않은 신미 97 | 빗속으로 떠난 소헌왕후 98 세계 유일의 문자해설서, 『훈민정음訓民正音』 세종어제御製 훈민정음 서문 102 | 정인지 서문 104 소헌왕후를 위한 대자암 불사 대자암을 불태우란 말이냐 106 | 내가 이미 불교를 좋아하는 임금이다 108 | 정창손, “집안이 도륙되는 한이 있어도…” 110 | 대자암에서 7일 동안 베푼 전경회 | 113 『석보상절』ㆍ『월인천강지곡』ㆍ『용비어천가』 편찬 세종의 명으로『석보상절』편찬 시작 114 | 최항 등,『용비어천가』 주해 완료 118 | 수양대군, 꿈에 어머니를 뵙다 119 | 안평대군의 「몽유도원도」120 |『용비어천가』와 종묘제례악 123 |『석보상절』의 편찬과 용문사 불사 125 |『동국정운』 편찬, 조선의 표준 한자음 설정 129 |『용비어천가』와 『석보상절』 완간 131 | 일천 강을 비추는 달, 『월인천강지곡』133 | 조선의 『불소행찬』, 『월인천강지곡』 완간 139 | 세종, 선시禪詩를 통한 국정 구상 140 | 세종, 훈민정음으로 경서 번역 지시 142 | 세종, 왕세손 책봉 143 | 수양대군, 용문사에서 경찬 법회 144 |『동국정운』 편찬 배포 145

3 아픔 속의 훈민정음 세종과 경복궁 내불당
내불당, 파격의 불사 세종의 마지막 불사, 경복궁 내불당 151 | 세종, 나를 겁주려는 것이냐 155 | 영의정 황희, “결단을 내리소서” 163 | 내가 경복궁을 떠나겠다 169 | “요망한 신미의 목을 베소서” 173 | 세종, 반대 물리치고 내불당 공역 시작 175 | 세종, 임영대군의 집으로 이어 177 | 황희, 중재에 나서다 179 | 성균관을 비우고 떠난 유생들 180 | 세종, 경복궁으로 돌아와 『동국정운』 간행 182 | 경복궁 내불당 창건 마무리 183 | 세종, 9악장의「찬불가」 찬술 185 | 세종, 내불당 낙성식과 법연을 베풀다 189 | 김수온 의 내불당 조성 의궤儀軌,『사리영응기』 192 | 내불당 반대 상소ㆍ상언 일람 195 ‘해동요순’ 세종, 조선을 품에 안고 가다 사간원, 김수온을 물어뜯다 197 | 절집의 일은 신미와 상의하라 199 | 대군의 집으로 떠도는 세종 201 | 세종, “복천사를 나의 원찰로 삼으라” 204 | 세종, 신미를 침전으로 맞아들이다 205 | 명나라 사신의 생떼 209 | 함허당의 『현정론』과 안견의 「몽유 도원도」210 | ‘해동요순’ 세종, 조선을 뜨다 214

4 밀려나는 훈민정음 문종과 혜각존자
세종의 국상과 대자암ㆍ복천사 중창 불사 문종, 왕위에 오르다 219 | 정창손, 대자암 중창 불사 반대 223 | 문종, 글로써 불교 에 대한 입장을 밝히다 224 | 수양대군, 칼을 갈다 228 | 세종의 묘호와 담양군의 죽음 231 | 세종의 유훈과 신미의 법호 232 | 대자암 중창 낙성식, 수양대군의 부상 235 | 세종, 영릉에 들다 239
혜각존자 법호, 반대로 들끓는 조정 세종의 유훈으로 신미에게 내린 법호, 혜각존자 241 | 하위지, 법호 반대의 선봉에 서다 242 | 박팽년, 혜각존자의 옛일을 들추다 246 | 신미, 나라에 무슨 도움이 됩니 까 249 | 문종, 박팽년을 파직하다 251 | 사간원, “신미는 한 개의 깎은 대가리” 254 | ‘혜각존자慧覺尊者’를 ‘혜각종사惠覺宗師’로 바꾸다 257 | 신숙주, 신미를 ‘간승’으로 몰고 가다 259 | 혜각존자 법호 반대 상소ㆍ상언 일람 261 | 대자암 불사 정지, 정음청 혁파 263 | 문종, 복천사 중창 강행 266 | 훈민정음의 산실 정음청 혁파 압박 268 | 세종을 위한 복천사, 대자암 불사 지원 270

5 흔들리는 훈민정음 단종과 수양대군의 대립
문종의 국상과 어린 왕 단종 문종, 쓸쓸한 궁궐에서 아프게 떠나다 279 | 12세의 어린 왕, 단종 281
수양ㆍ안평대군, 골육상쟁의 서막 안평대군, 온 세상에 충직한 신하가 없다 284 | 문종, 현릉에 들다 286 | 정음청 혁파와 명나라로 떠난 수양대군 289 | 사욕을 채우기 위한 대토목 공사 291 | 사간원, 김 수온ㆍ김수화를 엮다 292 | 금강산 유점사 143칸 전소 294 | 내불당 혁파 논쟁 295
계유정난, 경쟁 아닌 골육상쟁 살아서 죽을 것인가, 죽어서 살 것인가 297 | 수양대군, 영의정에 오르다 299 | 몽유도원도 속으로 사라진 안평대군 300 | 이징옥, 반란을 일으키다 301 | 수양대군, 정난공신 포상 302 | 단종, 내불당 혁파 문제로 시달리다 303 |『직해동자습直解童子習』ㆍ『홍무정운역훈』 편찬 308 | 세조, 왕위 찬탈 311
사육신, 그 피의 회오리 세조, 『역경』을 정밀하게 보라 315 | 삼봉 정도전의 『불씨잡변佛氏雜辨』 316 | 꽃잎처럼 스러져간 훈민정음의 협찬 학자들 318 | 난신의 처자식들, 노비로 흩어지다 324
단종ㆍ의경세자의 죽음과 불사 세조, 신미에게 대장경 인출을 맡기다 327 | 노산군, 붉어서 아픈 지는 꽃 329 | 세자(덕종), 도원으로 떠나다 332 | 김수온, 명나라로 떠나다 338 | 17세의 단종, 영월에서 사사되다 339 | 의경세자를 위한 불사 341 |『월인석보』 편찬 시작 342 | 정 인지, 『월인석보』 편찬 반대 345 | 마무리된 대장경 인경 불사 348 | 정인지, 거듭 『월인석보』를 물고 늘어지다 352

6 길 위의 훈민정음 세조와 혜각존자
미완의 완전한 문헌, 『월인석보』 완간 신미,『월인석보』 편찬 매진 357 | 미완이며 완전한 불전, 『월인석보』의 서문 361 | 정인지, 부여로 외방종편 366 | 세조, 『치평요람』ㆍ 『의방유취』 교정 지시 367 | 효령대군, 경기도 지평 용문사에 종 시주 370 | 겸예문직兼藝文職, 문풍 진작과 인재 양성 372 |『몽산화상법어약록언해』 간행 373 | 혜각존자 신미ㆍ김수온의 모친상 376
간경도감과 훈민정음 불전佛典 언해 신미, 훈민정음 불전 간행 구상 378 | 세조, 혜각존자와 함께 『능엄경』언해 서원 382 | 불경언해의 국책 기관 간경도감 설치 384 | 역경사에 우뚝 솟은 보탑, 활자본 『능엄경언해』 385 | 흥천사종은 ‘능엄楞嚴의 종’ 391 | 모든 언해의 규범, 목판본 『능엄경언해』 393 | 불사를 통한 국정운영 395 |『명황계감』과 『묘법연화경』 언해 397 | 최항,『명황계감』 언해 마무리 402 |『선종영가집언해』 간행 404 | 의학 관계 언해서의 효시,『식료찬요』 411
세조, 복천사로 혜각존자를 만나러 가다 세조, 보은 속리산 복천사로 내려가다 414 | 혜각존자, 복천사에서 세조를 맞다 418 | 세조, 온양 온정에 가다 422 | 김수온, 출가를 원하는 상소 423 | 세조, 한 달 만에 경복궁으로 돌아오다 424
『금강경언해』 ㆍ 『반야바라밀다심경언해』 ㆍ 『아미타경언해』 간행 『금강경언해』 간행 426 |『반야바라밀다심경언해』 간행 428 |『불설아미타경언 해』 간행 430 | 김시습이 남긴 『월인석보』의 편찬 내력 432

7 탑 속의 훈민정음 원각사 신창과 오대산 상원사 중창
혜각존자, 오대산 상원사 중창 자성왕비 윤씨, 오대산 상원사 중창 발원 435 | 세조, 원각사 창건 437 | 원각사 창건 공역 시작 438 | 세조, 혜각존자에게 편지를 쓰다 441 | 조선의 명필 강희안, 붓을 놓다 443 | 세조와 혜각존자의 「오대산 상원사 중창 권선문」 444 | 최항, 「원각사종명」을 찬하다 446 『원각경언해』 간행, 원각사 완공 한국불교 소의경전, 『원각경언해』간행 451 | 원각사 완공과 낙성 경찬회 454 | 세조, 『주역』과 경서 구결에 집중 458 | 묘각왕사 수미의 입적과 『벽암록』간행 462 | 세조, 성균관에서 『주역구결』 반포 463 | 세조, 오대산 상원사 순행 464 | 강희맹, 「금강산서기송」을 올리다 466 | 『능엄경』을 읽지 않은 어세공ㆍ유진 파직 467 | 세조, 오대산 상원사 낙성 개당식 거행 469 | 세조, 강원도를 순행하고 환궁 474 | 일본 국왕에게 보낸 세조의 편지 474 | 김수온, 발영시ㆍ등준시에서 장원 477 | 원각사 백 옥불상 조성 479 | 의약서를 통한 훈민정음 보급, 『구급방언해』 481
신의 솜씨로 빚은 만다라, 원각사 10층 석탑 조선시대 최고의 석탑, 원각사 10층 석탑 483 | 조선 불교건축과 조각 예술의 정수 488 『목우자수심결언해』 ㆍ 『사법어언해』 간행 선의 이론서, 『목우자수심결언해』 간행 491 |『사법어언해』 간행 493
낙산사ㆍ유점사의 중창과 신창 조선 전기의 가장 큰 국란, ‘이시애의 난’ 495 | 혜각존자에게 강릉부 산산 제방 하 사 496 | 세조, 낙산사ㆍ유점사 중창과 수리 498
세조의 마지막 불꽃, 경서 구결 세조, 『주역구결』의 보완과 경서 구결 501 | 최항의 「경서소학구결」 발문 504 | 세조, 파란만장한 생을 접다 506 | 세조, 자나깨나 훈민정음 걱정 508

8 미궁 속의 훈민정음 예종과 혜각존자
숭불주 세조, 광릉에 들다 혜각존자, 세조의 국상 불사 총괄 511 | 정권의 주도권 싸움이 빚은 ‘남이의 옥사獄事’ 512 | 숭불주 세조, 광릉에 들다 515 | 영릉, 여주로 천장 517
낙산사 중창, 광릉의 원찰 봉선사 창건 학열, 불교 탄압의 중심에 놓이다 519 | 학열, 안동 관아에서 상원사 동종을 옮겨오다 521 | 낙산사종 주성 524 | 예종, 혜각존자와 학열을 푸대접하다 526 | 조선시대 의 대표 범종, 봉선사종 주성 528 | 봉선사 완공과 김수온의 「봉선사기奉先寺記」 529 | 한층 강화된 ‘도승度僧의 법’ 532 | 예종, 짧게 왕위에 있다 떠나다 534 | 정희 대비의 수렴청정을 도운 전언典言 조씨 536

9 길 밖의 훈민정음 성종과 혜각존자
성종 대의 왕실 불교 경복궁 밖으로 뜯겨 나간 내불당 539 | 영응대군 부인, 현등사 석탑 불사 543 | 혜각 존자의 막내 동생 김수화 543 | 간경도감 혁파의 선봉, 대사간 김수녕 544 | 대왕대비ㆍ인수왕비의 맞불, 정인사 중창 546 | 신빈 김씨와 밀성군의 원찰 묘적사 중창 547 | 광평대군 부인, 밭과 노비 절에 보시 548 | 덕종과 예종의 원찰 정인사 완공 550 | 조정 신료, 신미ㆍ학열을 압박하다 551 | 성종, 간경도감을 없애다 552 | 영릉의 원찰, 보은사(신륵사) 중창 554 | 여주 신륵사 중창 반대 556
혜각존자 신미의 회향과 적멸 혜각존자의 동생 김수경, 청주목사 부임 560 | 정희대비, 양주 회암사 중창 562 | 혜각존자ㆍ학열에게 역마驛馬를 주다 567 | 사간원, 혜각존자를 물고 늘어지다 570 | 훈민정음 협찬 학자, 최항 별세 573 | 혜각존자, 평해군 백암산에 머물다 575 | 글로써 충성한 신숙주, 세조 곁으로 가다 578 | 성종의 어머니 소혜왕후,『내훈內訓』편찬 580 | 대왕대비, 수렴청정을 거두다 581 | 홍문관과 사가독서제 부활 582 | 보은사 주지 강탈한 학미 583 | 김수온, 조정에 둘 수 없다 585 | 인수대비, 봉선사에서 금자 사경 강행 586 | 김수온, 살아온 날들의 비망록을 올리다 587 | 성종, 탄일 축수재를 없애다 588 | 혜각존자의 제방을 물고 늘어지다 589 | 숭불의 김수온, 성균관 행사에 들지 못하다 590 | 낙산사 옛길과 앞바다의 금표 문제 592 | 집현전의 수장, 정인지 별세 595 | 신미와 학열 등을 파렴치한으로 몰고 가다 596 | 혜각존자 신미, 적멸에 들다 597 | 김수온, 대문장가의 생애를 접다 602 | 성종, 세종이 기획한 『두시언해』 완간 606 | 학조, 원각사에서 패악질을 당하다 608 | 학조, 『금강경삼가해』 ㆍ 『남명집언해』 간행 608 | 간경도감에서 활약한 한계희 별세 610 | 성종, 봉선사 세 조 어진 참배 612 | 세조의 측근 강희맹 별세 612 | 정희왕후 윤씨, 온양행궁에서 별 세 613 | 학열, ‘요승’으로 몰려 입적 615 | 조선 초기 3대 명필 성임 별세 617 | 학조, 『불정심경 언해』 간행 617 | 인수대비, 『오대진언 언해』 ㆍ 『영험약초 언해』 간행 619 | ‘조선왕실의 미륵’ 효령대군, 91세로 별세 620 | 지경, 복천사ㆍ유점사의 불상 도둑질 621 | 정희왕후의 유훈, 해인사 대장경 판당 등 중수 622 | 전 정인사 주지 설준, 살해당하다 624 | 성종, 도승의 법을 엄격히 하다 625 | 성종, 조선왕조의 체계 잡고 승하 627 | 학조,『육조법보단경 언해』등 간행 629 | 학조, 해인사에서 대장경 인출 632 | 학조, 직지사에서 입멸 632 | 안동 광흥사의 『훈민정음해례본』 636

마무리
혜각존자 신미와의 대화 638
혜각존자 신미대사 행장 641 참고문헌 657 주 664 찾아보기 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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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1443년 세종이 기획, 창제한 훈민정음은 조선의 아득한 어둠을 밝힌 혁명이다. 혜각존자 신미는 기록되지 않은 혁명의 핵심 편집인이다. 우주로 피워 올린 꽃, 훈민정음 속에는 깨달은 이의 땀과 눈물과 고통이 녹아들어 있다. 훈민정음 창제 사실의 앞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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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3년 세종이 기획, 창제한 훈민정음은 조선의 아득한 어둠을 밝힌 혁명이다. 혜각존자 신미는 기록되지 않은 혁명의 핵심 편집인이다. 우주로 피워 올린 꽃, 훈민정음 속에는 깨달은 이의 땀과 눈물과 고통이 녹아들어 있다. 훈민정음 창제 사실의 앞과 뒤가 은밀한 힘에 의해 잘려나가듯 혜각존자의 자취 또한 역사의 행간 속에서 홀연, 사라졌다. 571년이 지난 오늘, 지은이 박해진은 신미스님의 발자취를 남김없이 찾아 다시 세웠다. 훈민정음은 하늘·땅·사람이 함께 하는 소통의 만다라, 9층 목탑이었다. 이 땅에 훈민정음으로 온 역경불, 혜각존자. 신미는 ‘바른 소리〔正音〕’로 나그네를 떠나 주인으로 거듭나는 ‘해탈의 법문法文’ 훈민정음을 미래로 선물했다. 훈민정음은 세종과 신미가 마련한 ‘따뜻한 밥상’이었다.

■ 새로 쓴 훈민정음의 역사
『훈민정음의 길 - 혜각존자 신미 평전』(814쪽)은 전 세계 문자의 우뚝한 봉우리인 소리문자 훈민정음(한글) 창제의 비밀과 교육, 확산의 역사를 새롭게 조명한 책이다. 집현전 학자 중심의 훈민정음 창제사에서 한 걸음 더 나가 역사의 뒤편으로 밀려나고, 삭제된 훈민정음 창제의 핵심 인물인 혜각존자 신미스님의 적을 남김없이 찾아내 균형을 잡았다.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역사서, 15세기에 간행된 학자의 개인 문집, 훈민정음 연구서와 논문, 현장 답사를 통해 확인하고 검증해 낸 자료를 작은 부분도 빠뜨리지 않고 시간의 흐름에 맞게 생생하게 풀어냈다. 1,374개의 주註는 실증적 자료 조사의 결과물이다.
이 책은 세종이 총괄 기획한 훈민정음 창제 과정의 비밀, 창제 이후 최만리 등과의 갈등, 보완과 연구·교육, 문종과 신료와의 갈등, 수양대군과 조정의 충돌(계유정난·사육신의 난), 세조의 불교와 유학을 아우른 보급과 확산, 예종과 성종대의 내리막길 등 훈민정음의 길을 일관성 있게 종합, 정리한 것이다.

■ 훈민정음, 세종과 혜각존자 신미가 피워올린 우주의 꽃
저자는 그 어느 역사서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은 훈민정음의 역사, 세종과 집현전 학자의 창제가 아니라 신미 스님이 훈민정음 창제에 깊이 관여했음을 사료를 통해 소상히 밝힌다. 신미의 행장行狀을 정리한 비문碑文도 남아 있지 않으나 흩어진 기록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냈다. 신미가 나고, 출가하고, 정진했던 곳을 순례하며 가닥을 잡아나갔고 『조선왕조실록』 속의 신미 관련 기사를 남기지 않고 확인했고 세종이 치열하게 훈육했던 집현전 학자들의 문집 속으로 넘나들어 숨은그림찾기를 해냈다.
세종의 일, 문종의 일, 효령대군· 수양대군·안평대군의 일, 정인지· 최만리·최항·신숙주·성삼문·박팽년 등 집현전 학자의 일, 신미·학열·학조·김수온의 일은 다른 듯하나 훈민정음訓民正音과 겹쳐 있음을 밝혀낸다. “훈민정음은 신미가 쌓아올린 9층 목탑이다. 그러나 이 목탑은 살아남으려는 자들의 반대와 압박에 휘말려 흔적도 없이 잘리고, 뜯겨 나갔다. 상량문上樑文은 고사하고, 기둥 하나 남아 있지 않았다.”고 안타까워한다. 그리고 기어이 정음正音의 탑을 섰던 그 자리 그 모습대로 중수重修하기 위해 집중, 이 땅에 살아남은 훈민정음으로 기록된 문헌, 관련 논문과 연구서를 읽고 중요한 의미를 찾아냈다.
“문자는 단순한 조합이 아니다. 문명과 철학의 조합, 철저한 정치의 산물이다. 뜻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삶은 죽은 것이다. 삶의 의미와 국가의 존재가 말 속에 있다. 세종의 절대 의지로 밀어붙인 훈민정음의 창제는 혁명이었다. 훈민정음은 철저하게 백성과 뜻을 함께하는 바른 소리였다. 바른 소리는 바른 세상을 연다. 세종은 왼쪽 눈이 실명의 위기에 놓인 상황에서도 온 몸을 던져 훈민정음 창제에 몰두했다.”
그러나 세종의 생각과 계획, 상상했던 일의 앞과 뒤를 온전하게 읽고자 해도 『조선왕조실록』 속의 훈민정음 관련 기사, 특히 창제 과정에 대한 기록은 앞과 뒤가 잘려 나가 읽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1443년(세종 25) 12월 30일의 첫 기사와 1446년(세종 28) 9월 29일 반포된 『훈민정음해례본』에는 너무도 간단명료하게 요약되어 창제 초기의 비밀을 읽어낼 수 없으며 정인지의 서문에 신미의 이름도 남아있지 않았다. 동시대를 함께 살았던 많은 학자의 문집에도 정황은 비슷했다.

■ 신미가 훈민정음 창제에 깊게 관여한 증좌와 법맥法脈의 단초
는 『월인천강지곡』·『석보상절』·『월인석보』, 함허당의 『금강경오가해설의』·『현정론』, 이능화의 『조선불교통사』에서 찾아냈다. 신미와 동생 김수온이 명문장으로 이름을 떨칠 수 있었던 것은 이두吏讀와 구결口訣에 정통했고, 삼재三才의 대가인 외할아버지 이행의 훈습에 힘입었다. 신미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로 이어지는 불교사에서 뛰어난 학승이자 선승인 함허당涵虛堂 득통기화得通己和를 은사로 깨달음[훈민정음]으로 들어가는 길을 찾아냈고, 참된 해탈의 경계를 열었다. 스승의 저술을 통해 불전佛典과 논서論書를 읽고, 새긴다. 신미는 현등사 보합태화루에서 당부한 스승의 말을 잊지 않았다.
“선의 등불이 밝혀져 있는 한 세상은 밝게 돌아간다. 눈보라가 치건, 큰 비가 내리건 불씨만은 꺼뜨리지 말라. 부처님의 말씀이 이 등불 속에서 타오르고 있다. 또한 잊지 말라. 너의 보임처補任處는 문자에 있다.”
신미는 옆길로 빠지지 않고 속리산 법주사에서 평생의 도반인 수미守眉를 만나 함께 대장경에 몰입한다.

■ 세종은 꿈꾸는 최고의 언어, 새로운 문자인 훈민정음을 창제
하기 위해 불교계에서 이두와 구결, 범어梵語에 정통했던 신미를 적극적으로 참여시켜 균형을 잡았다. 1446년(세종 28) 3월 24일, 세종의 여인 소헌왕후 심씨는 피안으로 건너가며 훈민정음의 빠른 전파를 바라고 있었다. 세종은 이단으로 내몰린 불교를 적극 수용, 각종 불전을 훈민정음으로 새기며 왕후가 피안으로 무사히 건너가기를 기원했다.
세종은 훈민정음 창제 뒤 두 개의 바퀴를 굴렸다. 신미와 동생 김수온,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은『석보상절』과 『월인천강지곡』의 편찬에 매진했다. 불교를 통한 훈민정음의 교육이었고, 확산이었다. 한쪽에서는 최항·신숙주·성삼문·박팽년·이개·강희안를 중심으로 『용비어천가』와 『동국정운』의 편찬에 매진했다.

■ 세종은 경복궁에 내불당內佛堂을 창건, 신미의 훈민정음 창제의 협력에 화답
했다. 세종은 승하하기 며칠 전 신미를 침전으로 맞아 들여 설법을 들었다. 세자(문종)에게 신미를 ‘선교종도총섭禪敎宗都摠攝 밀전정법密傳正法 비지쌍운悲智雙運 우국이세祐國利世 원융무애圓融無? 혜각존자慧覺尊者’에 봉하라는 유훈을 남기고, 1450년(세종 32) 영릉英陵에 들었다. 문종은 국상을 끝내고 ‘훈민정음으로 나라를 돕고 세상을 이롭게 했다[祐國利世]’는 뜻이 담긴 법호法號를 신미에게 내렸다. 순간 정국은 가마솥처럼 펄펄 끓었다. 박팽년과 하위지가 반대의 선봉에 섰다. 대소신료는 선종과 교종의 모든 승려를 아우르는 지도자의 자리에 오른 혜각존자 신미를 ‘간승姦僧’과 ‘요승妖僧’으로 몰아붙였다. 밤낮을 잊은 채 법호를 거두라고 문종을 압박했다. 세종이 내린 법호는 철저하게 무시당했다. 소장파 유신은 자신의 꿈을 펴기 위해 왕권에 도전했다. 공공연하게 세종의 호불好佛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신미는 황폐해져 가는 조선 불교를 바로 세울 수 있는 왕사王師에 버금가는 자리를 말없이 수용했다. 결코 명리를 위한 선택은 아니었다.
문종이 일찍 세상을 뜨게 된 것도 냉정하게 보면 지병 때문만은 아니었다. 고명대신들은 어린 단종을 등에 업고 그들의 세상을 만들려고 했다. 훈민정음은 봄과 겨울이 떨어진 듯 이어져 있었고, 여름과 가을이 탯줄을 자르듯 강하고 붉게 떨어져 있었다. 한자漢字의 앞은 강풍을 동반한 눈보라로 강건했고, 훈민정음의 뒤는 봄 산등성이의 꽃잎보다 모호했다.
수양대군은 혜각존자 신미와 함께 세종을 보필하며 훈민정음의 원리를 궁구하던 날을 잊지 않고 있었다. 피로 세운 조선, 그 피의 얼룩을 문치文治로 씻어낸 아버지 세종. 부왕이 온 정성을 다해 창제한 훈민정음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할아버지 태종이 썼던 ‘칼’을 당겨오지 않을 수 없었다. ‘계유정난’과 ‘사육신의 난’을 통해 반대 세력을 잘라내고 왕위에 올랐다. 훈민정음의 연꽃은 비정非情 속에서 피어나고 있었다.

■ 세조도 훈민정음에 대한 신념은 확고했다.
간경도감刊經都監을 설치, 불전 언해사업에 공력을 집중했다. 신미를 스승으로 모시고 『월인석보』·『능엄경』· 『묘법연화경』·『원각경』·『아미타경』·『금강경』·『반야바라밀다심경』·『선종영가집』·『몽산화상법어약록』·『목우자수심결』·『사법어』·『육조법보단경』 등의 빛나는 훈민정음 언해본을 간행했다. 언해 불전은 세조와 신미가 엮어낸 금상첨화의 결과물이었다.
혜각존자 신미의 동생 김수온은 왕실 주관의 모든 불사를 기문記文으로 남겨 조선 초기 불교사의 지평을 넓혔다. 세조의 어보가 찍힌 혜각존자의 시권詩卷인 『사한전방詞翰傳芳』의 간행 기록을 찾아냈다. 혜각존자 신미의 입적 이후 불전 언해의 맥은 끊어졌다.
학조學祖가 왕실의 후원을 받아 『금강경삼가해』·『육조법보단경』·『진언권공』 등을 언해하며 미완의 나침반을 붙들고 있었음을 확인했다.

보은 속리산 복천암과 가평 운악산 현등사, 양주 천보산 회암사, 승주 조계산 송광사, 오대산 상원사, 양주 봉선사, 합천 가야산 해인사, 해남 월출산 도갑사, 여주 봉미산 신륵사, 고양 대자암 터를 오르내리며 오롯이 혜각존자의 행적과 세종이 기획하고, 창제한 훈민정음의 앞과 뒤를 연결하는데 집중했다.
그리고 결론짓는다. “훈민정음은 조선의 어둠을 밝히는 새벽별이었다. 수천년을 넘나들던 말과 생각과 사상의 물무늬를 한 곳으로 모아 또 다른 미래로 흘려보내는 발원수發願水였고, 감로수甘露水였다. 혜각존자와의 만남은 ‘항상 그곳에 있는 깨달은 이’의 가피였고, 장맛비와 같은 홍복弘福이었다. 신미는 훈민정음을 통해 중생의 고통 속으로 들어갔다. 불전 언해를 통한 훈민정음의 보급은 탁류를 거슬러 맑고 넓은 소통의 바다로 들게 하는 보살행이었다. 훈민정음은 세종과 신미, 수많은 선각자의 피와 땀이 어린 결과물이었다.”며 “세종은 단 한번도 자랑하지 않았다. ‘오직 만물의 뜻을 열어 놓고 천하의 모든 일을 이룩하리라[開物成務]’는 생각을 실천에 옮긴 제왕이었다. 혜각존자는 부처의 말씀을 정확하게 마음에 새기고 실천할 수 있다면 한 줄의 글을 쓰지 않아도 행복했고, 한 마디 말하지 않아도 적멸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다.”

■ 혜각존자 신미의 최초의 종합 평전
『훈민정음의 길 - 혜각존자 신미 평전』은 지은이가 12년의 문헌조사와 사찰 순례를 통하여 역사 속에서 사라졌던 훈민정음 창제의 핵심 편집인이었던 조선 초기의 고승 혜각존자 신미스님의 생애와 업적을 완벽하게 재구성한 결과물이다.

■ 조선 초기 불교사의 재조명
한편 지은이는 이 책에서 훈민정음의 역사와 함께 간경도감에서 간행된 언해 불전(佛典)의 간행 내력, 범종, 원찰의 중창과 신창에 대한 기록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정리했다. 특히 세종이 강력한 왕권으로 경복궁에 지은 내불당의 건립 내력과 반대 상소를 일괄, 정리한 것은 최초의 성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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