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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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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0쪽 | 양장
ISBN-10 : 8934981369
ISBN-13 : 9788934981367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양장본 HardCover) [양장] 중고
저자 린이한 | 역자 허유영 | 출판사 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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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2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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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외형 상세 미선택 낙서 미선택 얼룩 미선택 접힘 미선택 낙장(뜯어짐) 미선택 찢김 미선택 변색 미선택 제본불량 미선택 부록있음 [중고 아닌 신간입니다.]

2.내형 상세 미선택 낙서 미선택 얼룩 미선택 접힘 미선택 낙장(뜯어짐) 미선택 찢김 미선택 변색 [출간 20180425, 판형 128x188(B6), 쪽수 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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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시리즈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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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사랑이라면 어째서 이토록 폭력적일까? 2017년 4월 27일, 데뷔작을 출간한 지 두 달 남짓, 스물여섯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작가 린이한. 작가가 자살한 후 부모는 작가가 스스로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소설을 쓴 것이라고 폭로하고 유명 강사를 가해자로 지목했다.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은 린이한의 데뷔작이자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소설로, 열세 살 소녀 팡쓰치가 쉰 살의 문학 선생님 리궈화에게 5년에 걸쳐 상습적으로 성폭행당하며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탈출구도 없이 고통에 길들여지는 과정을 담고 있다.

팡쓰치와 류이팅은 어린 시절부터 모든 것을 함께한 영혼의 쌍둥이이다. 고등학교 졸업반인 이팅은 어느 날, 낯선 산 근처의 파출소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그곳으로 찾아간다. 그곳에는 정신 나간 표정으로 콧물과 침을 흘리는 쓰치가 있었다. 경찰은 산에서 쓰치를 '발견'했다고 했다. 소설은 쓰치의 일기를 통해 이팅이 지난 5년 동안을 재구성하면서 시작된다.

열세 살까지 팡쓰치의 세상은 단짝친구인 류이팅과 책으로 가득했다. 문학작품을 권해주고 함께 읽어주는 이원 언니를 만나면서 이팅의 세상은 한 뼘 더 커지는 듯했다. 새로 이사온 유명 문학 강사 리궈화가 그 세상으로 틈입하기 전까지는. 리궈화는 글 쓰는 법을 가르쳐주겠다며 쓰치를 자신의 집으로 불러 강간했다. 그리고 5년 동안 쓰치를 상습적으로 성폭행하면서 길들였다.

리궈화가 단단히 세워놓은 언어로 만든 감옥 속에서도 쓰치는 성장하고 조금씩 강해졌다. 한발만, 딱 한발만 더 내디디면 되는지도 모른다. 그녀가 사는 사회가 그의 공범이 아니라면, 가장 친한 친구라도 그녀의 고통을 알아봐주었다면, 어른들이 자신이 만든 세상에 대한 책임을 느끼고 그녀의 편에 서주었다면 말이다. 쓰치의 엄마는 자신이 왜 딸에게 성교육을 해야 하는지조차 알지 못했고, 단짝 친구 류이팅은 쓰치를 비난했으며 이원에게는 쓰치를 도울 힘이 없었다.

저자소개

저자 : 린이한
린이한(林奕含)

대만 타이난(臺南)에서 태어났다. 유복한 집안에서 성장했고, 2009년 대입자격고사에서 전국 수석을 차지하며 화제를 모았다. 타이베이 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했지만 2주 만에 우울증이 악화되어 휴학했다. 세 번의 자살 시도 뒤에 2012년 대만정치대학 중문과에 다시 입학했지만 3년 후 또다시 우울증이 악화되어 휴학했다. 2017년 2월 스물여섯 살의 나이로 발표한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이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다시 한 번 화제를 모았지만 그로부터 두 달 뒤인 4월 27일 자신의 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후 작가의 부모는 주인공 팡쓰치가 열세 살부터 유명 문학 강사에게 상습적인 성폭행을 당했다는 소설의 내용이 작가의 실제 이야기에 바탕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가해자로 지목된 강사는 이 같은 내용을 부인했다. 2017년 대만에서 출간된 책에 실린 작가 소개는 다음과 같다.

‘타이난에서 출생. 전공이나 학력은 없다. 모든 신분 가운데 가장 익숙한 것은 정신병 환자라는 것. 두 가지 꿈이 있다. 하나는 소설을 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오에 겐자부로의 말처럼 책벌레가 독서 애호가가 되었다가 다시 지식인이 되는 것이다.’

역자 : 허유영
허유영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와 동 대학 통번역대학원 한중과를 졸업하고,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쉽게 쓰는 나의 중국어 일기장》이 있고, 옮긴 책으로 《나비탐미기》 《검은 강》 《삼체:2 부 암흑의 숲》 《가오자린의 인생은 끝나지 않았다》 《햇빛 어른거리는 길 위의 코끼리》 외 다수가 있다.

목차

1_ 낙원
2_ 실낙원
3_ 복락원

작가 후기
옮긴이의 말_ 누가 팡쓰치의 낙원을 빼앗았나
서평_ 롤리타인, 롤리타가 아닌: 21세기판 소녀의 모험
서평_ 성에 관한 모든 폭력에는 사회라는 공범이 있다

책 속으로

선생님이 말했다. “이건 선생님이 널 사랑하는 방식이야. 알겠니?”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선생님이 틀렸다고. 나는 성기를 막대사탕으로 착각하는 어린아이가 아니라고. _43페이지 여학생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리궈화가 느꼈던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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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말했다. “이건 선생님이 널 사랑하는 방식이야. 알겠니?”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선생님이 틀렸다고. 나는 성기를 막대사탕으로 착각하는 어린아이가 아니라고.
_43페이지

여학생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리궈화가 느꼈던 기쁨, 희열, 안도감을 영어 선생은 절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마음속에서 〈청평조〉의 태평한 노랫가락이 파도처럼 넘실댔다. 한 남자를 향한 최고의 존경은 그를 위해 자살하는 것이다.
그를 위한 자살인지, 그로 인한 자살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_72페이지

‘그가 내 사춘기를 찢어버렸지만 나도 내 사춘기를 찢어버릴 수 있어. 그가 한 것처럼 나도 할 수 있어. 내가 나를 버린다면 그는 나를 다시 버릴 수 없을 거야. 어차피 우리가 먼저 선생님을 사랑한다고 했어.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 네게 뭘 하든 상관없잖아. 안 그래?’
_94페이지

그가 말했다.
“글을 쓰고 싶다면 남다른 사랑도 해봐야 하는 거야.”
그녀가 또 웃었다.
“핑계.”
그가 말했다.
“당연히 핑계가 있어야지. 핑계가 없다면 너랑 내가 어떻게 살겠니? 안 그래?”
리궈화는 내심 그녀의 수치심이 좋았고 그녀의 몸에서 씻기지 않는 도덕성이 좋았다.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다면 방백을 통해 그녀의 수치심이 바로 그의 부끄러움 모르는 쾌락의 정점이라고 분명히 얘기할 것이다.
_100페이지

리궈화가 부조를 손으로 가리켰다.
“원숭이와 사슴이 각각 ‘벼슬’과 ‘봉록’을 의미한다는 건 알고 있지?”
또 수업이 시작되었다. 수업 시간에는 가르치지 않고 수업 시간이 아닐 때는 틈만 나면 가르치려 드는 남자였다.
_139페이지

“네가 나중에 돌이켜 생각했을 때 행복한 추억이라면 더 바랄 게 없어. 나중에 좋은 남자를 만나면 내 곁을 떠나렴.”
쓰치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정말로 이걸 자비라고 생각하는 걸까? 내게 이런 일을 하면서 내가 누군가와 또 연애를 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 걸까? 내가 세상에 찢긴 여자들이 있다는 걸 모른 척하고 학교에서 다른 남자의 손을 잡고 운동장을 돌아다니길 바라는 걸까?
날마다 잠드는 게 두려울 정도로 그의 꿈을 꾸지 말라고 내 머리에 명령하는 걸까? 좋은 남자가 나 같은 여자를, 나 자신조차 받아들일 수 없는 여자를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_156페이지

선생님은 자주 말했다.
“네가 좋아하는 사람도 널 좋아한다는 건 신이 만든 기적이야.”
신이 왔었나 보다. 그와 아내와 아이가 함께 사는 집에, 쓰치와 부모님이 사는 집의 아래층에.
_155페이지

“새로 만나는 애가 끝내줘. 아주 훌륭해. 동시에 두 명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몇 살이냐고?”
그는 그저 웃기만 할 뿐 대꾸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열여섯 살 미만이라는 의미다. 자신에게 몰려드는 선망의 눈길에 리궈화가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수학 선생이 큰 소리로 말했다.
“세상에 늙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어?”
리궈화가 말했다.
“우린 늙겠지만 애들은 안 늙어.
_166페이지

쓰치가 말했다.
“선생님, 나 같은 학생이 많아요?”
“한 명도 없었어. 네가 처음이야. 나랑 너는 닮은 점이 있어.”
“뭐가 닮았는데요?”
“난 사랑에 결벽증이 있어.”
_172페이지

정신이 들고 난 뒤 평소처럼 다급하게 옷을 입었다. 평소에는 손으로 뒤통수를 받치고 노곤하게 선잠을 즐기던 리궈화가 그날은 침대에서 내려와 그녀를 끌어안고 엄지로 그녀의 귀밑머리를 만지작거렸다. 두피에서 그의 거친 숨결이 느껴졌다. 밭은 숨을 내뱉으며 그녀의 머리 냄새를 맡고 있었다.
그녀를 놓아주기 전 그가 짧게 말했다.
“넌 날 너무 아껴. 그렇지?”
너무 로맨틱했다. 쓰치는 겁이 났다. 사랑과 너무 닮아서…….
_174페이지

“가끔은 선생님이 어떻게 내게 그럴 수 있었는지 모르겠어요. 난 그때 정말 어렸는데.”
침대에 누워 있는 리궈화는 대답할 말을 생각하는 건지, 대답을 할까 말까 고민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드디어 그가 입을 열었다.
“넌 어렸지만 나는 아니었으니까.”
_242페이지

“뭐 이런 세상이 다 있어요? 어째서 피해자가 입 다무는 걸 교양이라고 해요? 어째서 남을 때린 사람이 텔레비전 광고에 나오죠? 정말 실망스러워요. 언니에게 실망한 건 아니에요. 이 세상이든 인생이든 운명이든 아니면 신이라고 부르든 뭐라고 부르든 정말 형편없어요.
요즘은 소설을 읽다가 인과응보 해피엔딩으로 끝나면 울음이 나와요. 세상에 아물 수 없는 고통이 있다는 걸 사람들이 인정했으면 좋겠어요. 아픈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이 제일 싫어요. 이 세상에 한 사람을 완전히 파멸시키는 고통이 있다는 걸 사람들이 인정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모두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같은 서정적인 결말이 싫어요. 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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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이게 선생님이 널 사랑하는 방식이야.”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지 마세요. 언젠가는 나를 놓아주겠다고도 말하지 마세요. 열세 살 그날 이후, 나는 한 뼘도 자라지 못했습니다.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은 열세 살 소녀 팡쓰치가 쉰 살의 문학...

[출판사서평 더 보기]

“이게 선생님이 널 사랑하는 방식이야.”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지 마세요.
언젠가는 나를 놓아주겠다고도 말하지 마세요.
열세 살 그날 이후, 나는 한 뼘도 자라지 못했습니다.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은 열세 살 소녀 팡쓰치가 쉰 살의 문학 선생님 리궈화에게 5년에 걸쳐 상습적으로 성폭행당하는 이야기이다. 이를 눈치챈 어른도 있고, 힘겨운 고백을 들은 친구도 있었으며 가해자를 도운 사람까지 있었지만 아무도 팡쓰치에게 손을 내밀어주지 않는 이야기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탈출구도 없이 고통에 길들여지는 소녀의 이야기이다. 오직 명문대 합격만 바라보며 달리는 기형적 교육제도, 성교육에 무관심한 부모, 가해자의 당당함, 사회의 싸늘한 시선…. 작가 린이한은 세상의 팡쓰치들이 처한 현실을 고통스러울 정도로 정밀하게 그려냈다. 대만의 서평지 <오픈북>에서 ‘올해의 좋은 책’으로, 중국 최대의 서평 사이트 더우반에서 추천도서로 선정되었다. 이 책이 출간된 후 대만 사회 전체가 들끓었으며, 출간 후 석 달이 못 되어 작가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또 한 번 충격에 휩싸였다. 그로부터 얼마 후, 린이한의 부모는 이 이야기가 작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쓰였다고 폭로하고 가해자를 지목했다. 가해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빗발쳤지만, 지목된 강사는 혐의를 부인했고 결국 불기소처분되었다.

“그런데 왜 제가 선생님한테 미안하다고 해야 해요? 선생님도 나한테 미안해요?”
팡쓰치, 고통에 길들여지다

열세 살까지 팡쓰치의 세상은 단짝친구인 류이팅과 책으로 가득했다. 문학작품을 권해주고 함께 읽어주는 이원 언니를 만나면서 이팅의 세상은 한 뼘 더 커지는 듯했다. 새로 이사온 유명 문학 강사 리궈화가 그 세상으로 틈입하기 전까지는. 리궈화는 '글 쓰는 법을 가르쳐주겠다'며 쓰치를 자신의 집으로 불러 강간했다. 그리고 5년 동안 쓰치를 상습적으로 성폭행하면서 길들였다. 리궈화가 단단히 세워놓은 언어로 만든 감옥 속에서도 쓰치는 성장하고 조금씩 강해졌다. 한발만, 딱 한발만 더 내디디면 되는지도 모른다.
그녀가 사는 사회가 그의 공범이 아니라면, 가장 친한 친구라도 그녀의 고통을 알아봐주었다면, 어른들이 자신이 만든 세상에 대한 책임을 느끼고 그녀의 편에 서주었다면 말이다.

“난 네가 행복할 줄 알았어.”
류이팅, 방관하다

이팅과 쓰치는 동네 사람들이 모두 인정하는 '영혼의 쌍둥이'였다. 둘은 함께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상처를 나누었다. 입만 열면 고전을 줄줄 읊는 리 선생님이나 키 크고 멋진 이웃집 오빠를 동경하는 것도 함께였다.
어느 날, 리 선생님이 쓰치와 이팅에게 작문을 가르쳐주겠다며 두 소녀를 교대로 자신의 집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이팅에게는 즐거운 나날이었지만 어쩐지 쓰치에게 비밀이 생긴 것만 같다. 마침내 쓰치가 무거운 입을 열고 3년 동안 당한 일을 털어놓았을 때 이팅은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쓰치가 잃은 것이 무엇인지, 자신이 평생 안고 살아야 하는 짐이 무엇인지도. 그래서 쓰치를 비난했다. 훗날 이팅은 생각한다. '나만이라도 쓰치를 더럽다고 비난하지 않았더라면….'

“나를 지켜주고 아껴준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왜 날 때려요?”
쉬이원, 학대받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었다. 대부호의 아들이자 잘생기고 명석한 첸이웨이를 일등 신랑감으로 꼽던, 동네 중매쟁이를 자처하는 리씨 아주머니는 그와 자신의 딸 사이에 혼담이 오가자 재빨리 쉬이원을 그에게 소개했다. 첸이웨이는 자신이 진정한 사랑을 만나지 못했노라고 했고 이원은 그 말을 믿었다.
그래서 비교문학 박사과정을 밟던 중 학업을 그만두고 그와 결혼했다. 첸이웨이는 다정한 남편이었다. 술을 마시지 않고 그녀를 무자비하게 때리지 않을 때는. 팡쓰치와 류이팅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이 이원의 유일한 기쁨이었지만, 곧 그 역할마저 리궈화에게 빼앗긴다.
쓰치가 보내는 SOS 신호를 가장 먼저 알아챈 사람도 이원이었다. 그러나 이원은 자신의 고통에 매몰되어 쓰치의 고통을 돌아보지 못했다.

[줄거리]
팡쓰치와 류이팅은 어린 시절부터 모든 것을 함께한 '영혼의 쌍둥이'이다. 고등학교 졸업반인 이팅은 어느 날, 낯선 산 근처의 파출소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그곳으로 찾아간다. 거기에는 정신나간 표정으로 콧물과 침을 흘리는 쓰치가 있었다. 경찰은 산에서 쓰치를 '발견'했다고 했다.
소설은 쓰치의 일기를 통해 이팅이 지난 5년 동안을 재구성하면서 시작된다. 5년 전, 쉰 살의 문학 강사 리궈화는 열세 살의 팡쓰치를 자신의 집으로 유인해 강간했으며, 그 후에도 상습적인 성폭행으로 쓰치를 길들였다. 강사로 유명세를 얻은 20년 동안 리궈화는 수많은 소녀들을 취하고 버리기를 반복했다.
모든 것이 너무나 쉬웠다. 입시위주의 교육은 매년 새로운 수강생을 공급해주었고, 강간당한 소녀들은 수치심을 자신의 것으로 여겼으며 세상은 든든한 그의 공범이었다. 심지어는 여성인 동료 강사마저 여학생들을 그에게 차로 실어날랐다.
한편, 5년 전 이웃집 오빠 첸이웨이와 결혼한 이원은 두 소녀에게 책을 권하고 읽어주며 가깝게 지낸다. 비밀을 안고 조용히 시들어가는 쓰치에게 처음 주의를 기울인 것도 이원이었다. 그리고 이원 언니가 더운 날에도 짧은 소매를 입지 못하는 것을 가장 먼저 알아챈 사람 역시 쓰치였다.
이원은 남편의 무자비한 폭력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리궈화의 성폭력이 더욱 교묘하고 치밀해지면서 쓰치는 완전히 입을 닫고 만다. 쓰치의 엄마는 자신이 왜 딸에게 성교육을 해야 하는지조차 알지 못했고, 단짝 친구 류이팅은 쓰치를 비난했으며 이원에게는 쓰치를 도울 힘이 없었다.

이것이 사랑이라면 어째서 이토록 폭력으로 느껴질까?
이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선생님은 어떻게 저토록 떳떳할 수 있을까?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은 고통의 기록이다. 인물들은 섬세한 언어 속에서 저마다 비밀을 간직한 채 괴로워한다. 언어는 단단히 정제되어 그 깊이를 가늠할 수조차 없다. 책 말미에 실린 서평에서 작가 장이쉬안은 '쓰치에게는 폭력에 저항하는 문명이 있었지만 문명은 야만을 당해내지 못했다'고 일갈한다.
이 책은 어쩌면 팡쓰치가 자신만의 문명, 즉 '언어'로 자신이 처한 폭력적 상황을 제목처럼 일종의 '낙원'으로 받아들이려다 실패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낙원을 누릴 수 없기는 다른 여성들도 마찬가지이다.
이팅은 친구의 고통을 방관하다 마침내 마음의 문을 열지만 너무 늦었고, 젊고 발랄하던 이원은 서서히 무너져간다. 팡쓰치에 앞서 리궈화에게 지속적으로 성폭행당한 샤오치는 결국 인터넷 게시판에 그의 행각을 폭로하지만 싸늘한 비웃음만 살 뿐이다. 다른 어른들은 어떤가.
어린 여학생을 차례로 섭렵한 것을 자랑하는 학원 강사들, 명문대 합격만이 모든 것인 교육 환경, 성교육에는 무관심하면서도 성적 순결을 강요하는 가정 분위기, 가정폭력을 눈치채고도 모른 척하는 이웃들….
작가 린이한은 성폭력을 비롯해 오늘날 여성들이 마주한 크고 작은 비극을 소설 곳곳에 복선처럼 깔아두었다.

“고통스러운 경험은 말하기가 힘들다. 이 세상에 문학이 있어 다행이다.” _린이한

2017년 4월 27일, 스물여섯 살 젊은 작가 린이한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데뷔작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을 출간한 지 두 달 남짓, 소설이 베스트셀러 행진을 이어가던 무렵이었다. 생전에 린이한은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선생님을 모델 삼아 소설 속 리궈화를 묘사했다고 밝혔다.
소설 속 어른들은 가해하거나 방관하고, 심지어 가해자를 돕는다. 사회학자 차이이원은 서평을 통해 이렇게 지적한다. '소설 속에서 가해자는 리궈화와 첸이웨이다. (중략) 하지만 가해자의 가장 중요한 협조자는 바로 무형의 '사회'이다. 리궈화는 똑똑했다.
이 사회가 성폭력을 발견했을 때 가해자 편에 선다는 사실을 그는 잘 알았고, 이 사실을 이용해 수많은 '사랑'을 얻었다. 팡쓰치든 궈샤오치든, 아니면 그 뒤에 줄서서 기다리고 있는 소녀들의 사랑이든. 그가 그럴 수 있도록 허락한 것은 바로 사회였다.'
그리고 그녀가 자살한 후 그녀의 부모는 이 책이 그녀 자신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것이라고 폭로하고 유명 강사 천싱(陳星)을 가해자로 지목했다. 대만 사회는 충격에 휩싸였고 가해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빗발쳤지만, 결국 천싱은 불기소처분되었다. 생전에 가진 인터뷰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니 성공했다고 말하지만 나는 진심으로 나 자신이 쓰레기라고 여겨졌다. 책 속의 리궈화는 지금도 계속 가르치고 있으니까. 길에서 그의 이름이 적힌 광고판을 볼 수 있으니까. 그는 죽지 않았고 앞으로도 죽지 않을 거니까. 그래서 이 책의 성공을 논할 수가 없다.” 2018년 4월 27일은 린이한 작가의 1주기이다. 작가가 소설에서 이원 언니의 입을 빌려 말했듯 우리는 그저 모르는 척, 이런 일이 일어난 적 없는 척하고 살 수 있다. 그러나 기억할 수도 있다. 이제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저자의 한마디]
“고통스러웠지만 쓸 수밖에 없었다. 이 세상에 소녀를 강간하며 희희낙락하는 사람이 없는 척할 수 없었기 때문에. 쓰면서 두려웠다. 누군가 나의 책으로 이 사회에 살고 있는 팡쓰치를 소비해버릴까 봐, 그녀들이 더 상처입을까 봐.”
-린이한

[역자의 한마디]
상처는 시간이 흐를수록 희미해지지만 린이한의 고통은 8년 동안 점점 더 깊어져 결국에는 그녀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 그녀는 결혼을 앞두고 매일 여덟 시간 넘게 집필에 매달려 이 소설을 완성했다. 결혼식 전날에도 한밤중에 화장실에 숨어서 원고를 썼다고 고백했다.
개인적인 감정을 최대한 배제한 언어로 사실을 전달하고자 했던 그녀의 노력이 오히려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아름다운 문장들의 행간에 꾹꾹 눌러 담긴 고통의 깊이를 감히 헤아릴 수조차 없다.
린이한은 세상을 떠났지만 팡쓰치의 비극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이제는 우리가 린이한을 대신해 팡쓰치들을 안아줄 차례다.
_허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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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얀 백지 위에 실린 '실화를 바탕으로 쓰다'라는 단 한 줄의 문장이 유난히도 묵직하게 다가왔다. 차라리 그저 허구였다면, 이...

    하얀 백지 위에 실린 '실화를 바탕으로 쓰다'라는 단 한 줄의 문장이 유난히도 묵직하게 다가왔다. 차라리 그저 허구였다면, 이 이야기가 실화가 아니고 저자가 투영되지도 않았더라면, 그러면 마음이 조금 더 편했을까 싶지만 역시 그래도 고통스러웠을 거라는 결론이 났다. 실화가 아닌 허구였더라도, 어딘가에는 있는 이야기일 것이기에, 누군가는 현실의 팡쓰치가 되어 살아갈 것이기에. 그리고 다시 실화가 될 수박에 없기에 여전히 마음은 편하지 않았을 것 같다.

    열세 살의 어린 여학생 팡쓰치는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학원의 인기 강사 리궈화에게 성폭행을 당해왔다. 공부를 가르쳐준다는 명목으로 시작된 폭행이었다. 교묘한 말로 어린 학생들을 유인한 그는 소년들을 처참하게 유린한 뒤 언제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행동을 포장해왔다. 사랑이라는 말로 끊임없는 세뇌를 당한 소녀들은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의 섹스를 하면서도 애써 괜찮다는 위로를 스스로에게 건넸다. 성에 대한 이야기를 금기시하는 사회의 분위기에 선뜻 입을 여는 것도 쉽지 않았으며, 팡쓰치는 그 속에서 서서히 망가져가기 시작했다.

    피해자는 모든 시선을 감매하고 스스로 쌓아올린 자책 속에서 망가져가고 움츠러드는데, 가해자는 아무런 가책도 없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당당하게 자리를 지킨다. 쉰 살의 그가 그토록 많은 소녀들을 유인하고 유린했는데도 당당할 수 있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왜 비난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가 받아야 하는지. 리궈화에게는 든든한 방패막이 되어주는 사회가 팡쓰치에게는 왜 날카로운 창이 되어 돌아가는지. 붉은 생채기에 힘들어하는 어린 소녀를 제대로 바라봐 줄 사람 하나가 없다는데, 끝내 그는 평온한 결말을 맞이한다는 게 참 끔찍하고 역겹고 화가 나서 이 책을 읽어내는 게 고통스럽고 힘들게만 느껴졌다.

    이 소설은 낙원, 실낙원, 복락원의 순서로 이루어져 있다. 팡쓰치의 낙원이 사라지고 다시 복원되는 그런 형태를 띠고 있지만, 결말은 그다지 행복하지 않다. 죄를 지은 리궈화만이 여전히 잘 살아가는 게 결코 행복한 결말이라고 볼 수는 없으니까. 아름다운 제목에 아름다운 문장 속에서 이야기는 전혀 아름답지 않다. 너무 참혹해서 차마 보는 게 힘들 정도다. 쉰 살의 늙은 남자가 사욕을 채우기 위해서 어린 소녀들을 강간하는 것은 너무도 끔찍하게만 다가온다. 그나마 팡쓰치와 서로의 감정을 공유했던 이원을 보면서, 자랑스러운 딸이라고 늘 말하던 팡쓰치의 부모님이 조용히 거처를 옮기는 걸 보면서 너무 씁쓸하고 슬펐던 것 같다. 특히 이 이야기가 실화를 바탕으로 쓰였다는 것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읽어봤으면 하는 책이다. 우리의 현실에는 소설 속의 팡쓰치와 같은 사람이 너무도 많다는 걸 생각해봤으면 하는 소설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경험을 하고 상처를 지닌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고 치유가 됐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힘겨운 시간을 거쳐 이 소설을 출간한, 지금은 세상에 없는 작가에게도 위로가 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이 소설 작가도, 팡쓰치도 안타깝고 안쓰러워서 여러모로 마음이 무거웠던 소설이다.

     

     

  • 낙원, 실낙원, 그리고 복락원이라는 구조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열세 살 소녀 팡쓰치에게 있었던 일을 말하고 있다. 문...
    낙원, 실낙원, 그리고 복락원이라는 구조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열세 살 소녀 팡쓰치에게 있었던 일을 말하고 있다. 문학을 통해 고통스러운 경험을 말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작가 린이한은 소녀가 겪는 혼란스러운 감정선을 너무나 잘 나타내고 있다. 혼자서 겪어내야 했던 고통과 사랑이라는 겉포장으로 인해 느꼈던 혼란스러움, 스스로 가해자를 사랑할 것을 강요해야만 했던 팡쓰치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팡쓰치와 거울처럼 닮은 존재인 이팅은, 변해버린 쓰치에게 가시돋친 말을 하기도 한다. 취향도 생각도 비슷했던 쓰치가 자신에게서 멀어지고, 동경의 대상이었던 선생님과 가까워지는 모습에 질투를 하기도 한다. 이팅은 쓰치에게, 우리는 자라면서 상처를 받아본 적이 없다고, 지금 넌 행복해보이면서 또 고통스러워보인다고 말한다. 이팅이 쓰치에게 했던 그 어떤 말보다도 이 말이 가장 쓰치에게 상처를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은 어린 시절의 우리가 바라본 것처럼, 아름다운 것으로만 가득찬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은 분명히, 누군가를 완전히 파멸시킬 정도의 고통이 존재하는 공간이다. 어쩌면 쓰치가 느낀 것처럼 이 세상의 곪아터진 상처가 이 세상 자체보다 클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분노를 할 수 밖에 없었던 점은, 작가가 이야기한 것처럼 소녀는 매순간 상처받고 있지만, 악인은 고고하게 높은 곳에 있다는 점이다. 세상이 피해자에게 화살을 돌리는 현실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가해자에게도, 가해자에게 공범이 되어주는 사회에게도, 언젠가 이 분노의 감정을 잊어버리고 또 살아갈 나에게도 화가 났다. 
      돌이키기엔 너무 늦어버렸지만, 그래도 쓰치에게는 이팅과 이원이 있었다. 이팅과 이원에게 무어라고 비난하고, 죄책감을 안겨주고 싶지는 않다. 사과하고 자책해야할 사람은 그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쓰치를 열 세살의 시간 속에 버렸고 나는 열세 살 이후의 쓰치를 잊어버렸어요. 거기 누워서 쓰치를 기다릴 거예요. 쓰치가 나를 따라올 수 있도록, 쓰치 곁에 있을 거에요."라는 이팅의 말 속에는 쓰치를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곁의 좋은 사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함께 하지 못하고 한 인간의 욕망 때문에 고통을 감내해야했던 쓰치의 상황이 너무 안타까웠다.
      우리는 세상에 존재하는 팡쓰치들을 외면하기도 하고, 동정하기도 하고, 쉽게 비난해버리기도 한다. 작가 린이한이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을 쓴 이유는 아마도, 더이상 그들을 외면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지금도 힘들어하고 있을 많은 팡쓰치들의 손을 잡아주어야하지 않을까. 


  • 아무말 없이 당신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싶습니다.


     책을 읽은지 꽤 시간이 지났지만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 몇 번을 망설였다. 처음 그녀의 글을 접했을 때는 너무나 문학적이어서 눈이 시릴 정도로 아름답다고 생각했으나 책 말미에 그녀의 인터뷰를 보고 나서는 '아름답다'는 말이 그녀에게 독이 되는 말 같아 살그머니 그 단어를 마음 속에 집어 넣었다. 그녀가 쓴 이야기가 자전적인 소설이 아니라 그녀가 지은 이야기라면 마음이 답답하지 않았을까. 사마천이 궁형을 당하고 <사기>를 써내려가듯 그녀는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에 자신을 투영한다. 대만의 신예작가라고 불리던 진이한은 책을 출간 후에 얼마되지 않아 목숨을 끊어버린다.


    열세 살 소녀인 팡쓰치와 류이팅은 둘도 없는 친한 친구 사이다. 공부를 비롯해 문학적으로 감수성이 풍부했던 그녀들은 이원과 교류하면서 문학을 더 깊이 이해한다. 팡쓰치와 류이팅은 룸메이트로서 같이 살고 있고,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는 국어강사 리뤄화는 '논술'을 알려준다는 명목 아래 팡쓰치에게 접근한다. 좋은 학교를 가기 위해 이름있는 선생님에게 배우기를열망하는 학부모와 아이들의 기대로 리뤄화는 가르친다는 명목아래 자신의 팡쓰치와 류이팅을 1:1로 불러 개인 수업을 시작한다. 중산층의 가정으로 평범하게 사는 것 같은 그들의 실상은 마치 낚시를 하듯 공부를 잘 하고 싶어서 따르는 아이들을 이용해 리뤄화는 팡쓰치를 비롯해 여자 학생들에게 서스럼없이 다가가 욕심을 채워나간다.


    무자비한 폭력으로 몸이 무서진 팡쓰치는 리뤄화가 자신에게 말한 '사랑한다'는 말을 끌어안고 생채기난 마음을 덮어버리려고 노력하지만 잃어버린 마음은 계속해서 나락으로 떨어져 나간다. 이팅에게는 팡쓰치는 사랑한다고 고백을 하게되고, 아무것도 모르고 리궈화를 동경하는 이팅은 팡쓰치를 오해하게 된다. 서서히 이팅과 팡쓰치는 멀어지게 되고, 서로의 마음을 주고 받았던 이원과도 벽을 치게 된다. 쉰 살의 리궈화는 자신의 연륜과 경력을 막 자라나는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싹둑 잘라버린다. 국가와 사회, 가정에서, 아이들의 열망이 리궈화 같은 괴물이 살 수 있도록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선생으로서 자격이 없는 그에게 권한과 지위를 넘겨주고 칭송을 받는 그는 뒤편으로는 여학생을 맘껏 유린하며 세상에서 가장 좋은 남편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누구도 쓰치의 마음을 돌아보지 않고, 오직 누구보다 앞서기를 바라는 부모와 이팅, 이원까지도 그녀에게 든든한 방패막이 되어주지 못했다. 오해로 멀어졌던 이팅이 어느 날, 전화를 받게 되고 몸과 마음이 부서진 쓰치를 보게되고, 쓰치의 방에서 일기를 발견하면서 그동안 그녀의 행적에 대해 알게 된다. 쓰치가 나락으로 떨어질 무렵 이원 역시 남편 첸이웨이의 폭력에 허물어진다. 결혼하기 이전에 폭력의 조짐이 있었음에도 주변에서는 그의 폭력성을 모른 척 했고, 다시 되살아나는 폭력을 부인인 이원이 모두 몸으로 견뎌내야 했다. 그 누구도 그들을 잡아주지도, 막아주지도 않는 사회. 문학적으로 지식과 감정이 풍부했던 그들은 그렇게 폭력의 중심이 되어 몸이 부서져 버리고, 마음도 곪아버렸다.


    가장 마음이 아팠던 장면은 그들의 사건을 알고도 부모들이 앞장서서 리뤄화 같은 이를 몰아내려고 하는 노력 보다는 자신의 딸아이가 잘못을 해서 그렇게 몸이 만신창이가 되었다는 부모들의 시선이다. 쓰치의 부모역시 쓰치를 비난하지 않았지만 자랑스러워하던 딸이 더 이상 자랑스럽지 않았을 때 그들은 서둘러 몸을 피하는 것처럼 빠르게 자신들의 거처를 옮겨 버렸다. 무방비한 사회와 부모들의 욕심이 늙은 사내의 욕심이 그렇게 그들을 망가뜨렸음에도 그들은 아무런 타격없이 당당하게 사회의 일원으로서, 선생님으로서 지낸다.


    동화였다면 리궈화는 저렇게 당당하게 서 있지 못했을텐데 현실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수면의 잔잔함만 흐르고 만다. 아무런 파동없이 그렇게 가해자는 잘 살아가고 있다. 고통스러운 마음과 죽고 싶을 정도로 잔인한 시간은 사건을 겪은 피해자들에게만 오롯하게 남았다. 치유해줄 수 없는 사회와 사람들의 인식, 개선되지 않는 문제들이 산적해 있고, 지금도 계속해서 많은 쓰치들이 무자비하게 폭력을 당하고 쓰러진다. 여전히 현재형인 상황들. TV를 틀면 여전히 많은 쓰치들이 그들의 힘을 당하지 못해 울고 있다. 쓰치와 이원은 각기 다른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지만 힘없이 저항하지 못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닮아있다. 첸이웨이의 폭력을 알고 있기에 자신의 딸을 그에게 붙여놓는 대신 이원에게 소개시켜 주고, 공부를 잘 하라며 쓰치와 이팅에게 리궈화를 붙여준 그들의 부모 역시 가해자다.


    나라면 어땠을까. 나 또한 쓰치처럼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사랑이라고 이름부르던 행위들이 몸 속 깊이 가시같이 찔러오고, 그것을 견뎌내지 못한 쓰치는 정신조차 놓고 만다. 쓰치와 이원이 겪는 고통이 글 속에 세밀하게 그려져 있어 읽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책 말미에 그녀의 생전 인터뷰가 실려있다. 그녀의 자전적인 소설. 세상은 그녀가 소설 속 인물인지 물었으나 진이한은 아니라고 답했다. 아닌지 맞는지 무엇이 중요할까. 그녀가 죽은 후 대만에서는 법이 만들어지고, 쓰치와 같은 이들의 목소리가 한데 모아졌다고 한다. 더 이상 여자라서 여자이기 때문에 겪는 폭력이 없어졌으면 좋겠다. 성폭력을 당했음에도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고,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한 번도 배려되지 않는 사회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한걸음씩 나아가야 하는 걸까?무엇이 잘못 되었는지를 계속해서 질문하고 되새기고, 또 되새긴 소설이었다. 그 어떤 말을 해도 서걱거리는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 그들을 만난다면 그들의 잘못이 아니기에 따스한 손길로 괜찮다, 괜찮다하며 보듬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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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소녀는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리뤄화가 일부러 시시에게 글을 가르치지 않고 내버려두었다는 걸 알았다. 아는 게 많은 사람들이 어떤 일을 저지르는지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p.63


    사악함이란 이처럼 평범한 것이고, 평범한이란 이처럼 쉬운 것이다. - p.93


    쓰치는 연애가 시작되기 전 탐색기를 거쳐야 한다는 걸 알지 못했다. 교문 앞에서 작은 쪽지가 끼워진 음료수를 건네고, 탐색기가 끝나면 남학생이 일본 영화에서처럼 허리를 90도로 구부리고 고백을 한다. 고백을 하고 나면 손을 잡을 수 있다. 풀밭에 나란히 앉아 손가락이 손가락을 더듬고 붉은색 육상 트랙에 둘러싸인 초록색 운동장이 하나의 우주가 된다. - p.135


    "딸기가 나오지 않는 계절에는 이걸 못 먹겠구나 생각하면 너무 아쉬워서요. 하지만 레몬 케이크는 일년 내낸 있죠, 난 영원한 게 좋아요. 학생 때 옆자리 친구와 친해지고 나면 혼자 속 앓이를 했어요. 그 친구가 내 옆자리에 앉지 않았더라도 나랑 친해졌을까 싶고, 또 그런 생각을 하는 내가 부끄럽기도 하고요. - p.177


    "순진한 사람을 나쁘게 만드는 능력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건 사악한 자신감이에요. 아마 나도 어딘가 이상하다고 느꼈을 거예요. 하지만 그런 감정조차 옮지 않다고 속으로 다짐한 후로는 그런 감정을 느끼지 않았어요." 기세 좋게 말하던 그녀의 목소리에 다시 힘을 풀렸다. "하지만 가장 사악한 건 아무것도 모른채 스스로 추락하는 걸 내버려두는 걸 거예요." - p.193


    나는 밑바닥이 보이지 않을 만큼 깊은 화산 분화구를 내려다보면서 뛰어내리고 싶고 또 화산이 불출하는 욕망을 갖고 싶어해. -p.233


    세상에 해결될 수 없는 고통이 있다는 걸 사람들이 인정했으면 좋겠어요. - p.261


    가끔, 나와 B의 집에서 깨어났을 때 혼자 서 있는 나를 발견해. 과도를 소매 안으로 숨기려고 애쓰고 있어. 나는 추악함을 잊을 수 있지만 추악함은 나를 잊지 않을 거야. - P.336


    '천사를 기다리고 있는 소녀'야. 내가 세상에서 제일 상처받길 바라지 않는 사람이 바로 너야. 이 세상에 너보다 더 행복해질 자격이 있는 사람은 없어. 너를 솜사탕 백 개만큼 포근하게 안아줄게. - P.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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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로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쉽게 동정하고 공감하는 것 같으면서도, 타인이 느끼는 고통의 반조차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 고통의 깊이가 얼마나 될지 가늠하지도 않고 입을 연다. 입을 통해 나온 말이 타인에게 어떤 비수로 꽂아질지도 모른 채.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을 읽고 나는 이 책에 대해 어떤 말을 꺼내야할지 고민했다. 한 가지 분명했던 것은, 나는 그동안 타인의 고통에 쉽게 동정하고 공감하는 척을 해왔다는 것이다. '안타깝다' 라는 말로 타인의 고통을 그대로 묻어버렸다. 나의 기준으로 타인의 고통을 짓밟았고 그것이 얼마나 무자비하고 폭력적인지 알지 못했다.

      이와 비슷한 성폭행 사건을 접했을 때 우리가 가장 흔히 하는 질문이 있다. 어째서 부모에게 말하지 않았을까? 어째서 고통스러운 관계를 지속했을까? 이 소설은 쉽게 내뱉는 질문들이 얼마나 무지하고 폭력적인지 보여준다. (p.343 '옮긴이의 말' 중에서)

      작가 린이한의 자전적 소설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은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에 벌어지는 무자비한 폭력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열세살 소녀 팡쓰치의 낙원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포장한 어른들에 의해서 짓밟힌다.

      류이팅과 팡쓰치는 집을 떠나 타이베이의 같은 학교로 진학할만큼 절친한 사이다. 입학한 첫 해 쓰치는 집에 잘 들어오지 않고 이팅은 그런 쓰치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다. 어느날, 경찰서에서 쓰치가 산에서 발견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이팅은 경찰서로 달려간다. 쓰치는 곧 가오슝의 한 병원에 입원하고, 이팅은 쓰치에 대한 걱정을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리고 우연히 이팅은 쓰치의 일기장을 보게 된다. 자신들의 선생님이었던 리궈화 선생이 5년동안 쓰치를 성폭행했다는 사실이 고스란히 적혀있었고, 이팅은 충격을 금치 못한다.

      이건 선생님이 널 사랑하는 방식이야. 알아듣겠니? 날 원망하지 마. 넌 책을 많이 읽었으니 아름다움이란 자기 혼자만의 것이 아니란 걸 알거야. 넌 정말 아름다워. 하지만 모든 사람의 것일 수 없으니 내가 가질 수밖에. 넌 내거야. 넌 선생님을 좋아하고 선생님도 널 좋아해. (p.90)

      아직 사랑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팡쓰치는 리궈화 선생의 행동에 대해 이해하려고 한다.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에 이뤄졌던 그 폭력이 사랑 그 자체이고, 아름다운 것이라고 머릿속에 각인시킨다. 그리고 자신도 선생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스스로 되새긴다. 어린 팡쓰치가 이런 태도를 지닐 수 밖에 없던 이유에는, 팡쓰치를 알고 있는 어른들 중 그 누구도 팡쓰치가 기댈 곳 하나 만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팡쓰치뿐만 아니다. 리궈화 선생에 의해 사랑으로 포장된 폭력을 겪은 쿠키, 궈샤오치도 팡쓰치와 다를 것이 없었다. 쿠키는 남자친구에게, 궈샤오치는 부모님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자 돌아오는 것은 가해자에 대한 분노와 처벌이 아닌, 피해자에 대한 질책이었다.
      작가 린이한은 이 소녀들을 통해 우리 사회의 문제점에 대해 꼬집어낸다. 가해자보다 피해자를 향한 시선이 먼저인 사회에 대해서 말이다. 어쩌면, 이 세 소녀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쉽게 꺼내지 못한 데는 그들이 스스로를 파먹도록 만들고 있던 우리 사회의 분위기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러니까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에 폭력을 저지르고 있었던건 리궈화 선생만이 아니라 그의 외모와 지위를 보고 오히려 피해자를 질책했던 궈샤오치의 부모님과 그저 방관했던 아파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세상에 아물 수 없는 고통이 있다는 걸 사람들이 인정했으면 좋겠어요. 아픈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이 제일 싫어요. 이 세상에 한 사람을 완전히 파멸시키는 고통이 있다는 걸 사람들이 인정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모두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같은 서정적인 결말이 싫어요. (p.267)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에서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에 벌어지는 다른 형태의 무자비한 폭력은 팡쓰치와 닮은 쉬이원에게서도 일어난다. 첸이웨이와 결혼한 쉬이원은 팡쓰치가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처럼, 그의 폭력 속에서 점차 약해진다. 첸이웨이가 술을 마시고 돌아오면 그녀에게 가해지는 손찌검으로, 그녀는 한없이 작아지고 두려워한다.

      첸이웨이가 이원의 마음속에 두려움이라는 이름의 작은 짐승을 기르고 있고, 그 짐승이 이원의 마음을 휘젓고 다니며 모든 감각의 울타리를 향해 수시로 달려들고 있었다는 걸 이팅은 한참 후에야 알았다. 그건 고통의 몽타주였다.(p.33)

      팡쓰치의 말대로 세상에는 아물 수 없는 고통이 있다. 우리는 사랑의 무게를 너무 가볍게 여겼던 것은 아닐까. 타인을 사랑한다는 우리들의 착각 속에서 오히려 타인을 고통 속으로 밀어넣고 있지는 않았는지에 대해 계속 곱씹어본다.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에 벌어진 폭력들을 타인의 문제들로만 여기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은 우리들에게 질문한다.

      세상 그 어떤 팡쓰치든 소비되어버릴까 봐 두려워요. 그녀들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아요. 엽기적이고 선정적인 소설로 보여지는 건 원치 않아요. 매일 여덟 시간씩 글을 썼어요. 쓰는 동안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언제나 얼굴은 눈물범벅이 되었죠. 다 쓰고 난 뒤에 보니 가장 무서운 건 내가 쓴, 이 가장 무서운 일이 정말로 일어났던 일이라는 사실이에요. (p.338 '작가 후기' 중에서)

  • ϻϻ물을 머금은 솜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ϻ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을 ...

    ϻϻ물을 머금은 솜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ϻ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을 읽고 난 뒤, 느낌이었다. 무력감이 나를 엄습했다. 축 처지는 느낌, 움직이고 싶지만 움직일 수 없고 한없이 움츠러드는 느낌. 마치, 내가 물에 젖은 솜이 된 것 같은 느낌. 그런 느낌이었다. 감정 뒤에는 "평생 동안 난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을 잊지 못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내가 세세한 내용을 다 기억하지 못할 수는 있어도, 책을 읽으며 느낀 감정들이 내 몸에 너무나 생생히 남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영원히.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을 단번에 읽었다. 읽기 시작한 순간.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다음 이야기가 더 궁금한 책도, 재미있는 책도, 아름다운 책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운 책이다. 놓을 수 있다면 멈추고 싶었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저자에게 소설을 쓰는 것이 선택의 몫이 아니듯, 나에게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을 읽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멈추는 건 나의 몫이 아닌 것 같았다. 눈과 손은 계속 움직였다. 그렇게 약 3시간을 오로지 이 책을 읽는 데 집중했다. 올해 내가 읽은 그 어느 책보다 가장 집중해서, 단번에 읽은 소설이었다.

     

     

     


    낙원

     

    "아무런 괴로움이나 고통이 없이 안락하게 살 수 있는 즐거운 곳"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고난과 슬픔 따위를 느낄 수 없는 곳이라는 뜻에서, 죽은 뒤의 세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소설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 그 어디에도 낙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낙원이란 단어의 뜻과 정반대인 지옥과 같은 현실을 쓴 소설이다.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은 13살 때부터 18살 때까지 아이를 문학 교사가 상습적으로 폭행 및 성폭행했지만, 가해자는 어떤 처벌도 받지 않고 오히려 피해자의 삶이 점점 망가져 가는 모습을 담고 있다. 교사에게 폭력 및 성폭행을 당한 4명의 피해자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썼다는 사실에, 출간과 동시에 대만 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소설 발표 후 2달 뒤 작가가 자살한 뒤 사회에 다시 한번 큰 충격을 더했다. 대만 대입 자격고사에서 전국 수석을 차지할 만큼 수재였던 그녀가 3번의 자살 시도를 할 만큼 영혼을 갉아먹었던 폭력이 바로 소설 속 주인공이 당한 폭력과 동일하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이 작가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쓴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유명 문학 강사에게 지속적인 폭행 및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후, 가해자로 지목된 강사는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았다.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의 선생님, 리궈화처럼.

     

    존 밀턴의 서사시이자 저서인 《실낙원·복낙원》 속에서 실낙원은 인간이 타락하여 낙원을 잃게 되는 과정을 그린 서사시이고, 복낙원은 인간이 다시 낙원으로 회복되는 과정을 담은 서사시다. 이와 동일한 이름을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에서도 등장한다. '낙원' 장은 쓰치가 당한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이팅의 위치가 쓰치가 가고 싶지만 돌아갈 수 없다고 느끼는 공간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장에서 이팅은 자신의 분신이자, 쌍둥이와 다름없었던 쓰치와 왜 멀어지게 되었는지 알게 된다. 그 과정을 적나라하게 밝힌 부분이 '실낙원' 장이다. '실낙원' 장은 이 소설의 이야기 대부분을 차지한다. 쓰치가 왜 자신이 '낙원'이 아닌 곳에 존재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곳으로 자신을 내몬 리궈화 선생과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었던 사회적 구조가 이야기 속에 촘촘히 담겨 있다. 끝으로 '복낙원'은 모든 사실과 진실을 알게 된 이팅과 이원이 '쓰치'가 홀로 감당했을 고통을 느끼며, 마치 쓰치처럼 '낙원'에서 추방된 것처럼 느껴진다. "이 아파트에 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한 인생일 거라고……."고백하는 말을 언뜻 보면 마치 쓰치와 함께 이팅과 이원이 멀어지는, '실낙원 2'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두 사람이 '쓰치'가 느꼈을 고통을 함께 느끼는, 그 아픔을 깊이 이해하는 공감대가 쓰치를 낙원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것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이었다. 아무 잘못도 없이 리궈화 선생이 속삭이는 잔혹한 언어를 통해 스스로 자신을 일상 속에서 추방했던 '쓰치'가 낙원으로 돌아오기 위해 간절히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짧은 '복낙원'에서 보여주고 있다. 

     

    "며칠 동안 생각했지만 방법은 하나뿐이다. 선생님을 사랑하는 것. 좋아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내게 무엇을 하든 상관없지 않을까? 생각을 바꾸면 된다. 선생님을 사랑해야 한다. 안 그러면 내가 너무 고통스러우니까."

     

    열세 살 소녀에게 강간은 사랑이라고 믿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사실로, 일평생 그녀의 존재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는 고통으로 낙인이 찍힌다. 자신에게 어떤 잘 못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스스로 죄인이라고 낙인을 찍은 채, 스스로 평범한 일상과 거리를 가지고, 서서히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그 거리는 돌이킬 수 없이 벌어진다.  여기에서 쓰치가 느끼는 낙원, 이상적 공간은 '평범한 일상'이다. 자신이 성폭행을 당하지 않았으면 누릴 수 있는 평범한 일상 그 자체다. 난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을 읽으며, 난 분노와 공포를 넘어 속이 뒤틀리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도가니》, 《다크 챕터》, 《베어 타운》 등과 같이 살인과 다를 바 없는 성폭행을 저지르는 극악무도한 인간이 등장하지만, 그 인간이 어떤 처벌도 받지 않고, 피해자만 생이 망가지는 모습만 나오기 때문이다. 극적인 반전은 소설 속에서도 소설 밖에서도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단지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비밀이 5년 동안 말할 수 없었던 사실이 자신의 절친인 이팅과 이웃집에 살던 이원에게 전해지게 될 뿐이다. 그것도 그녀의 입에서 나온 고백이 아니라, 그녀가 그동안 비통하게 써 내려간 일기를 통해서 알려진다. 이미 자신 스스로 말할 수 있는 단계를 지나쳐버리고 나서 전해진다. 그 일기를 이팅과 이원이 읽을 수 있을 때, 쓰치의 영혼은 그녀의 몸에서 떠나버렸다. 그리고 되돌아온다는 것은 기적이 될 만큼, 어떤 것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 된 이후에, 너무 늦게 진실이 밝혀진다.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은 ‘성’에 대한 암묵적 침묵이 당연시 여겨지는 사회와 그런 분위기가 당연시 여겨지는 것에 대해 동조, 침묵한 채 어떤 문제의식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가할 수 있는 문제를 문학적으로 고발한다. 성폭력 피해자에게 서슴없이 가하는 말이 어떻게 그들의 마음속을 헤집어 놓는지 말한다.

     

    “댓글 하나하나가 비수가 되어 그녀에게 날아와 꽂혔다.
    사람들은 타인의 고통에 대해 일말의 상상력도 없었다.”

     

    쓰치말고 리궈화에게 성폭행을 당한 아이에게 쏟아지는 비난에 잠재된 무의식적 토대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들었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조차 없는 사회가 낯설지 않았다. “그럴 만하니까, 당한 거야”, “꽃뱀처럼 먼저 꼬리쳤을 거야.”, “창피한 줄도 모르고 어떻게 그런 걸 말해?” 라는 말들이 생경하게 느껴진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 비록 이 말을 신문 기사 댓글에서 찾아보기 힘들지만, 이런 생각이 사라지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그저 익명의 대중에게만 이런 생각이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다.

     

    "성교육이라니? 성교육은 성이 필요한 사람한테나 하는 거야. 교육이라는 게 다 그렇지 않니?"

    그때 쓰치는 알았다. 이 이야기에서 부모의 자리는 영원히 비어 있다는 것을. 그들은 수업에 무단결석해놓고 아직 수업이 시작되지 않았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부모님이, 가정이 아이를 조금도 지켜줄 수 없었다. 스스로 낙원에서 걸어 나갈 때까지 그 사실조차 알아채지 못했다. 성에 대해, 성폭력에 대해 편협한 시각을 가진 사회에선 친구도, 이웃도, 학교도 성폭행 피해자 스스로까지. 그 누구도 낙원에서 쫓겨나듯 도망치는 쓰치에게 “네 잘 못이 아니야. 이곳에서 떠날 사람은 네가 아니야.”라고 말해주지 못했다. 정확하게 말해주어야 한가는 생각조차 가지지 못했다. 쓰치는 이 비틀어진 사회의 모습을 고발하고 싶었다. 터져 나오는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싶어 했던 그녀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신, 자신이 쏟고 싶은 말을 속으로 삼키고 이원이 가정 폭력을 당하는 모습에 분노하며 토해낸 말을 읽는 순간 마음이 쓰라렸다. 이원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겪고 있는 폭력에 대한 목소리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뭐 이런 세상이 다 있어요? 어째서 피해자가 입 다무는 걸 교양이라고 해요? 어째서 남을 때린 사람이 텔레비전 광고에 나오죠? 정말 실망스러워요. 언니에게 실망한 건 아니에요. 이 세상이든 인생이든 운명이든 아니면 신이라고 부르든 뭐라고 부르든 정말 형편없어요. … (중략) … 그런 긍정적인 사고가 얼마나 세상에 영합하는 비열한 결말인지! 그런데 내가 그것보다 더 원망하는 게 뭔지 알아요? 차라리 내가 세속에 영합하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차라리 내가 세상의 이면을 본 적도 없는 무지한 사람이면 좋겠어요."

     

    소녀를 얼마나 잔인한 폭력하에 무방비하게 방치했는지가 선명하게 보여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그 소녀의 약점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바로 가해자라는 사실에 분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리궈화가 “성을 금기시하는 사회 분위기가 그에게는 최고의 방패였다. 여학생을 강간해도 세상은 그게 그녀의 잘못이라고 했다. 심지어 그녀 자신조차 자기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죄책감 때문에 그녀는 그의 곁으로 되돌아왔다. 죄책감은 아주 오래된 순수 혈통의 양치기 개였다. 어린 학생들은 온전히 걷는 법을 배우기도 전에 일어나 뛸 것을 강요당하는 어린 양이었다.”라는 속마음을 통해서 이 비정상적인 사회의 생리가 명확하게 보여준다. 이 점이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이 훌륭한 작품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왜냐하면 순간 치밀어 오르는 분노의 감정이 리궈화 한 사람에게 전가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은 특별한 소설이자, 훌륭한 소설이다. 성폭행과 폭력은 흑과 백이 명확하게 드러난 문제다. 이보다 더 극명하게 선악의 이분법의 잣대를 가지고 갈 수 있는 주제도 없다. 하지만 그건 피해자와 가해자 개인만을 두고 보았을 때 일이다. 시야를 넓혀서 바라보면, 성폭력 문제를 흑과 백으로 바라볼 때 놓치는 것이 많다는 걸 이 소설은 작품 자체로 보여준다. 만약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이 이분법으로 이야기 서사를 그렸다면, 난 이 작품을 읽고 난 뒤에 이토록 무거운 감정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이 소설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서사와 그 주변 사람들의 서사를 함께 끌고 나가면서 성폭행에 무방비한 사회 구조와 비열하고 더러운 인간의 욕망과 성폭행으로 무너진 한 개인의 참담한 심정을  너무도 아름다운 문장들로 세공하여 보여준다.
     
    그저 자신의 비틀어진 욕망을 실현할 수단 그 이상도 이하의 의미도 아니었던 그 잔혹한 폭력이 사랑으로 포장되는 건 충격적이다. 하지만 그 잔혹함이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에선 잔혹한 모습 그대로 나타나지 않는다. 참 아름다운 문장들이 오가는 틈새에서 잔인한 폭력성이 묻어 나온다. 사랑이라는 말로 포장한 리궈화의 위선, 그 위선을 알지만 그 위선을 인정하는 순간 생을 포기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쓰치의 생각이 작품 속에서 교차되어 나타나는 대목들은, 사실적이기보다 문학적이다. 그런데 그 문학적인 표현이 현실과 동떨어지게 만드는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현실 속에 빠져들게 만든다. “인생에 대한 의욕, 삶에 대한 열정, 둥그렇게 뜨고 있던 커다란 눈, 아니면 그 무엇이든, 누군가 밑에서부터 그녀의 몸속으로 파고 들어와 모든 걸 비틀어놓았다. 허무주의도 아니고 도가에서 말하는 '무無'도 아니고 불교의 '무'도 아니었다. 그건 수학의 0이었다.” 이 표현을 통해 열세 살 스승의 날에 있었던 처음의 경험과 5년 동안 셀 수 없이 많았던 잔혹한 폭력이 그녀의 몸과 생각과 마음 그리고 영혼 전부를 갉아 먹어버린 걸 너무나 잘 보여주었다. 자칫 자극적인 문장은 성폭행을 다룬 작품에서 작품 자체가 가십처럼, 피해자에게 또 다른 상처를 가할 여지가 많다. 그리고 감정의 호소로 이 문제를 볼 수 있는 가능성 자체를 닫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은 그렇지 않다. 작품은 문제의 심각성과 문제 자체를 문학적 표현으로 잘 드러낼 수 있다는 걸 스물여섯 살의 작가는 자신의 글로 보여주었다.

     

    이 소설은 끝에 희망을 보여주지만, 그 희망이 옅어 보이게 만드는 잔혹한 진실이 소설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책을 읽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쓰치의 이야기를 읽는 것을 멈추면 안 될 것 같았다. 그 느낌은 "아니. 우린 앞으로 행복하고 즐겁게 살 수 없어. 정직한 사람은 행복하게 살 수 없어."라는 이원이 이팅에게 말하는 어조와 같이 단단하고 담담하게 내 마음을 감쌌다. 그녀의 이야기에만 집중하고 싶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끊지 않고 끝까지 읽고 싶었다. 글 속에 내 다짐을 부추기는 직접적인 표현은 어디에도 없었다. 하지만 문장과 문장 사이에 작품을 손에서 떼놓을 수 없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이 작품은 작품 자체만으로 높이 평가 받아 마땅한 작품이지만, 작가의 죽음으로 더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 사실이 성폭행 피해자들이 자신의 억울함을 자살로 세상에 고발하는 모습과 오버랩되어 보이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린이한이 어떤 심경으로 죽음을 선택했는지 모른다. 어쩌면 그 사실은 중요할 수 도 있고,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작품과 작가의 말을 통해 짐작할 수 있지만, 그 생각은 다음번에 생각할 거리로 남겨두고자 한다. 다만 린이한이라는 작가가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에서 보여주기까지 그녀 안에서 얼마나 많은 감정과 언어들이 태어나고 죽어갔는지 그 과정을 직접 들을 수 없다는 것이 마음 아프다. "작가인 나처럼 여러분도 쓰치를 동정하고 그녀에게 공감해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이 그녀 편에 서주길 바랍니다."라는 해석을 바라던 그녀는 침묵한 채 세상을 떠났고, 이제 그녀가 쓴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만 남았다는 사실이 더더욱 마음 아프다. 그리고 어딘가 쓰치와 같은 삶을 살고 있을 소녀가 있다는 점이 소설이 아닌, 현실이라는 점이 마음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팡쓰치가 이 사회를 견디기는 너무나 힘겹다고. 자신의 죽음이 마지막이길 바란다고. 이 세상 어딘가에서 살아갈 팡쓰치가 죽음을 선택하지 않길 바란다고. 그리고 다시는 팡쓰치가 낙원에서 스스로 추방을 하지 않도록 만드는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이것만 생각하기에도 벅찬, 가슴 먹먹해지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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