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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장성과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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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2쪽 | B6
ISBN-10 : 8932908508
ISBN-13 : 9788932908502
만리장성과 책들 [양장] 중고
저자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 역자 정경원 | 출판사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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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3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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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 세계 문학을 말하다!

20세기 문화사에 새로운 장을 연 위대한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ouis Borges)의 대표 에세이집. 『만리장성과 책들』은 1956년 아르헨티나 국민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작품 세계에서도 대표작이라고 할 만큼 보르헤스 문학의 정수로 평가받고 있다. 정경원 교수의 번역으로, 세상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이 돋보이는 원문의 맛과 멋을 그대로 살려냈다.

이 작품에는 버클리로 시작하여 스피노자, 쇼펜하우어 등에 위대한 철학자들의 사상에 대한 철학적 사유, 다양한 종교에 대한 식견, 실명(失明)을 계기로 이루어진 새로운 글쓰기 형식의 시도 등 보르헤스 문학의 핵심이라고 평가받을 만한 모든 것들이 담겨 있다.

『만리장성과 책들』은 방대한 두 가지 사업, 즉 만리장성을 쌓는 한편 서책들을 모두 불태워 과거를 말살시켜 버린 중국의 진시황에 대한 사유에서부터 글이 시작된다. 35편의 글이 담겨져 있는 에세이집을 통해 철학 사상과 종교를 포괄하는 그의 방대한 지식과 매력적인 글을 따라가다보면,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이있는 사유에 빠져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양장본>

이 책의 Tip!
이 책은 1938년 사고로 인해 실명에 가까운 상태에서도 출간된, 보르헤스의 대표작입니다. 이후에도 그는 평생 책 읽기를 멈추지 않았고 아무도 생각해낸 적 없는 새로운 글쓰기 방식을 만들어냈습니다. 보르헤스만의 글쓰기로 정수를 평가되고 있는 글들이 담겨있는 에세이집입니다.

저자소개

지은이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ouis Borges
1899년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났다. <유년 시절을 온통 아버지의 서재에서 보냈다>고 회상할 정도로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성장했다. 정규 교육 대신 가정교사에게 배웠으며, 영국계 개신교도인 할머니로 인해 영국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으며 영어와 스페인어를 함께 익혔다.
1914년 부친의 눈 치료를 위해 스위스 제네바로 이주한 보르헤스는 범신론, 불교, 그노시스주의 등을 접하게 되고, 프랑스 문학과 독일 문학을 섭렵하며, 라틴어까지 깨치게 된다. 1921년 아르헨티나로 귀향하지만 상이한 공간적 간극과 시간적 변모는 보르헤스를 주변적 위치에 처하게 하였다. 이러한 경험은 그로 하여금 자신이 속한 세계의 안팎을 동시에 바라볼 수 있도록 해주었는데, 자기 현실로부터의 이러한 <탈중심성>은 보르헤스 문학의 핵심 요소 중 하나로서, 그가 자신만의 소설 이론을 형성해 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 준 시발점이 된다.
1924년 전위주의 잡지 『마르틴 피에로』를 창간하고, 아르헨티나 문단에 울트라이스모Ultraismo를 소개한다. 그 무렵 그는 울트라이스모와 향토적 정서가 결합된 시집들과 여러 편의 에세이집을 펴낸다. 그러던 중 1938년 사고로 머리에 부상을 입고, 이후 거의 실명에 가까운 상태로 평생을 살게 된 보르헤스는 평생 한 번도 장편소설을 쓰지 않은 채, 새로운 형식의 단편소설들을 써낸다. 그만의 독특한 <책에 대한 책 쓰기> 방식과 철학적이며 형이상학적인 주제들이 녹아 있는 작품들은 보르헤스를 라틴 아메리카의 <마술적 리얼리즘>의 선구자,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의 거장으로 평가받게 했다.
그 외 대표적인 저서로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열정』, 『정면의 달』, 『영원한 장미』 등의 시집, 『불한당들의 세계사』, 『픽션들』, 『알렙』, 『셰익스피어의 기억』 등의 소설집과 『심문』, 『영원의 역사』등의 에세이집이 있다.

옮긴이 정경원
한국외국어대학교 스페인어과를 졸업하고 멕시코 국립자치대학교에서 중남미 문학을 전공하며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 교환 교수, 한국외국어대학교 교무처장, 세계문학비교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외국대학교 중남미 연구소 소장으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라틴아메리카의 문학과 사회』, 『세계의 시문학』, 『라틴아메리카 문화의 이해』, 『라틴아메리카 문학사 I, II』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낸시 케이슨 폴슨의 『보르헤스와 거울의 미학』 등이 있다.

목차

만리장성과 책들
파스칼의 구
콜리지의 꽃
콜리지의 꿈
시간과 J. W. 던
창조와 P. H. 고스
아메리코 카스트로 박사가 우려하는 것들
서글픈 우리의 개인주의
케베도
돈키호테에 어렴풋이 나타나는 마술성
너대니얼 호손
상징으로의 발레리
에드워드 피츠제럴드에 관한 수수께끼
오스카 와일드에 대하여
체스터턴에 대하여
맨 처음의 웰스
『비아타나토스』
파스칼
존 윌킨스의 분석적 언어
카프카와 그의 선구자들
도서 예찬에 대하여
키츠의 나이팅게일
수수께끼들의 거울 두 권의 책
1944년 8월 23일자의 메모
윌리엄 벡퍼드의 『바테크』에 관하여
『보랏빛 대지』에 대하여
누구인가로부터 아무도 아닌 것으로
어느 전설의 형상들
알레고리에서 소설로
버나드 쇼에 관한(를 지향하는) 주석
한 이름이 일으킨 반향의 역사
수치스러운 역사
시간에 대한 새로운 반론
고전에 관하여
에필로그

옮긴이의 말
연보

책 속으로

출판사 서평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대표 에세이집 『만리장성과 책들』이 정경원 교수의 번역으로 열린책들에서 출간되었다. 일반인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방대한 독서를 한 보르헤스이기에 그의 작품들은 번역이 쉽지 않은 것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 번역자인 정경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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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대표 에세이집 『만리장성과 책들』이 정경원 교수의 번역으로 열린책들에서 출간되었다. 일반인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방대한 독서를 한 보르헤스이기에 그의 작품들은 번역이 쉽지 않은 것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 번역자인 정경원 교수는 수차례 수정 작업을 거치면서 원문의 맛과 멋을 살려 내고자 4년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번역에 공을 들였다.
『만리장성과 책들』로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이 책은, 보르헤스가 그간 여기저기에 발표한 글들 가운데 35편을 엄선해 담은 에세이집으로 1952년 출간 당시 <또 다른 심문Otras inquisiciones>이란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이 책에서 보르헤스는, 25세의 나이에 문단의 정상에 오른 문인들의 작품 세계를 준엄하면서도 재치 있게 파헤쳐 세간의 주목을 끌었던 『심문Inquisiciones』을 출간할 때와는 달리 50대에 이른 원숙한 문인의 모습을 보여 준다. 그 결과 보르헤스는 『만리장성과 책들』로 1956년 아르헨티나 국민문학상을 수상한다. 문단과 학계에서는 이 책에 대해, 실험적인 사유와 글쓰기 실험을 시도하던 시기들을 지나 보르헤스 작품 세계의 온전한 기반이 마련되었다고 보며 보르헤스 문학의 정수로 평가한다.
실제로 『만리장성과 책들』에는 버클리를 필두로 스피노자, 쇼펜하우어 등 다양한 철학자들의 사상에 대한 철학적 사유, 다양한 종교에 대한 식견, 그리고 실명(失明)을 계기로 한 새로운 글쓰기 형식의 시도와 이로 인해 갖게 된 <시간>과 <공간>, <언어>에 대한 새로운 인식 등 보르헤스 문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이 책은 콜리지, 호손, 피츠제럴드, 와일드, 체스터턴, 웰스, 케베도, 세르반테스, 카프카 등등 빼곡히 늘어선 문학사의 숲을 자유자재로 넘나들고, 고대 및 중세 철학은 물론 버클리, 스피노자, 쇼펜하우어 등 범신론과 불교, 기독교까지를 포괄하는 그의 매력적인 글들로 가득하다. 따라서 이 책 속에 담긴 글들을 따라가노라면, 보르헤스가 느꼈을 책 읽기의 즐거움과 사유의 기쁨을 함께 느끼며, 그만의 독특한 시간관과 언어관이라는 날줄과 씨줄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이후 어떤 문학을 직조해 낼지 가늠하게 된다.

문화사에 새로운 길을 열었던 보르헤스!

라틴 아메리카의 <마술적 리얼리즘>의 선구자,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의 거장으로 평가되는 보르헤스, 사실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20세기 최고의 문인이다. 그는 1938년 사고로 머리에 부상을 입고 패혈증을 앓은 후 거의 앞을 볼 수 없는 상태로 평생을 살았다. 그렇지만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책 <읽기>를 멈추지 않았고 지금까지 그 누구도 본 적 없는 새로운 <글쓰기> 방식, 즉 <에스크리투라escritura>라고 하는 그만의 독특한 텍스트들을 창조해 냈다.
보르헤스 작품 세계의 놀라움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는 일반인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방대한 독서량을 토대로 시간의 파편화, 중심의 해체, 작가의 죽음, 상호 텍스트성, 메타 픽션과 같은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형성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러한 보르헤스의 문학 이론이 서구의 이분법적 사고방식의 한계를 지적한 자크 데리다의 해체주의와 서구의 전통적인 사고의 틀을 해체하고자 했던 미셸 푸코의 이론의 출발점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보르헤스는 백과사전적 지식을 자랑하는 이탈리아의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 터키가 낳은 세계적인 소설가 오르한 파무크 등등 오늘날 수많은 문인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만리장성과 책들』 또한 반실명 상태에서 출간되었으며, <작가와 독자는 텍스트를 매개로 하나일 수 있다>라는 당시로선 혁명적인 사고를 토대로 작품에 독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하는 보르헤스식 글쓰기를 통해 <메타크리티시즘>을 완성한다.

패러디, 농담, 유머로 세상을 뒤집어 바라본 보르헤스,
거장들의 작품이 빼곡히 들어찬 문학의 숲에서 그는 과연 무엇을 보았을까?


오랜만에 국내에 소개되는 보르헤스의 작품 『만리장성과 책들』은 35편마다 보르헤스만의 엉뚱하고 기발한 생각들로 가득하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만리장성을 사유하는 보르헤스는 호손, 체스터턴, 와일드, 쇼 등 거장들의 작품을 심문대에 올려놓기도 하고,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와 중세의 유명론까지 끌어와 문학에서 새로운 연결 고리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것들을 결합하고, 비틀기, 패러디, 언어유희와 같은 형식을 통해 기이하고 정상적이지 않은 상황을 만듦으로써 세상에 대한 통찰을 가능하게 하는 보르헤스의 문학 사상은 그 기저에 시간과 공간이라는 두 축을 새롭게 전제하고 있다. 과거-현재-미래라고 하는 단선적인 시간 개념을 해체하고, 「에드워드 피츠제럴드에 관한 수수께끼」에서 11세기의 오마르 하이얌과 19세기의 에드워드 피츠제럴드를 연결했던 것과 같이 과거의 전혀 다른 공간 속에 존재했던 두 사실들을 단숨에 이어 버린다.
이러한 보르헤스식 시간법 속에서 공간들은 고정된 형태를 잃게 마련이다. 이는 지금 우리가 현실이라고 믿는 것이 과연 현실인지, 내가 꿈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과연 꿈인지 다시 질문하게 만든다. 일상적인 것과 일상적이지 않은 것, 정상과 비정상, 나와 나 아닌 것의 모든 <경계>들을 <해체>하는 그만의 수법은 이제까지의 사고를 모두 뒤엎어 버린다.

중국 역사에서 최초의 통일 왕조를 이룩한 진나라의 시황제에 대한 보르헤스의 사유에서부터 이 책은 시작된다. 만리장성을 쌓고, 서책들을 불태워 버리고, 불로의 영약을 구하려고 했으며, 자신의 이름에 <시(始)>라는 이름을 붙여 새롭게 태초의 시간을 시작하고자 했으며, 어떻게 해서든 문자와 나침반을 처음 만들어 낸 전설적인 군주 황제(黃帝)를 닮고자 하는 마음에 스스로를 <황제>라 불렀던 시황제. 시황제의 행동들은 모두 죽음을 정지시키기 위한 <마술적 방책>일 수 있다. 그러나 보르헤스는 말한다. 과거를 지워 버리려고 했던 시황제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과거는 절대 소멸될 수 없다>고. <모든 세상사는 언젠가 반복되기 마련인바, 과거를 지워 버리려는 시도 역시 그 반복되는 세상사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p. 124)
불멸과 영원한 시간성의 개념은 이 책 곳곳에서 발견된다. 대표적인 글이 수 세기의 시간을 뛰어넘어 동일한 소재를 공유하는 쿠빌라이 칸과 콜리지의 이야기를 다룬 「콜리지의 꿈」이다.

당시 콜리지는 엑스무어 부근의 한 농장에 칩거 중이었다고 한다. 몸이 좀 좋지 않아 수면제를 한 알 복용한 그는 마르코 폴로에 의해 서방 세계에까지 널리 알려진, 황제 쿠빌라이 칸이 세운 궁전을 묘사한 퍼처스의 글을 읽은 뒤 곧 잠이 들어 버리고 말았다. 그런 콜리지의 꿈속에서 그가 우연찮게 읽었던 문장들이 싹을 틔우더니 자라나기 시작했다. 잠결에 그는 일련의 시각적 이미지들과 그 이미지를 정확하게 형상화하는 시어들을 인지하게 되었다. 몇 시간 후, 잠에서 깨어난 콜리지는 꿈속에서 자신이 3백 행에 달하는 시를 지었거나 누군가로부터 그 시들을 부여받았다고 믿게 되었다. 그는 그 모든 행들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고, 현재 그의 작품 일부분을 이루고 있는 그 시구들을 그대로 되살려 적을 수 있었다. 느닷없이 손님이 찾아와 옮겨 쓰기를 멈추는 바람에 나중에 나머지 부분은 기억해 낼 수 없었지만. 콜리지는 <모호하나마 내가 본 것들의 전반적 형태는 기억해 냈다. 하지만 파편적으로 떠오른 여덟 개 혹은 열 개 정도의 시구를 뺀 나머지 모두는 마치 물 표면에 돌멩이를 던졌을 때 나타나는 잔상처럼 사라져 버렸고 나는 적잖이 놀라고 실망했다. 아! 마지막 부분은 미처 기억해 내지도 못했는데!>라고 했는데, 스윈번은 콜리지가 복원해 낸 부분은 영시 사상 최고의 걸작이며, 누군가 그 시를 분석해 낼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존 키츠의 은유에 따르면) 무지개라도 풀어낼 수 있는 사람일 거라 했다. -- pp. 34~35

더욱 놀라운 것은 콜리지보다 5세기 전, 쿠빌라이 칸은 꿈을 꾸고 꿈에서 본 성을 실제로 지었다고 하니, 이런 연쇄가 계속된다면 수백 년 후의 누군가가 같은 꾸게 되지 않으리라고 말할 수 있을까…….
꿈이 현실이 되고, 현실은 다시 누군가의 꿈이 되었다가 현실이 되는 이 기막힌 이야기는 초인적 존재가 이를 수행하고 있다고밖에는 믿을 수 없다. 실제로 이 책에서 보르헤스는 <나는 거의 무한한 문학이 한 사람 안에 내재되어 있다고 믿어 왔다. 그 한 사람은 칼라일이기도 했고, 요하네스 베커이기도 했으며, 휘트먼이기도 했고, 라파엘 칸시노스 아센스인가 하면 드퀸시이기도 했다>(p. 33)고 말한다. 그러나 무한한 문학을 창조하는 사람이 오직 한 사람이기 위해서는 시공간을 초월할 수 있는 존재여야 한다. 그래서 보르헤스는 「콜리지의 꽃」에서 바로 이 한 사람이 <성령>임을 다른 사람의 입을 빌려 말하기도 한다.

1938년 경, 폴 발레리는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문학의 역사는 작가들의 역사나, 작가의 생애나 작품의 전개 과정 속에서 발생한 사건들의 역사가 아니다. 그것은 문학의 생산자 혹은 소비자로서의 《성령(聖靈)》의 역사이다. 유일무이한 그 단 하나의 작가를 논하지 않고는 문학의 역사는 결코 이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성령에 대하여 이런 식의 견해가 피력된 것은 이때가 처음이 아니다. 1844년에도 콩코드 마을의 한 작가가 이런 언급을 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세상 모든 책들은 오직 한 작가가 집필한 것 같다. 그 모든 책들의 중심에 일종의 통일성이 존재하는 것을 볼 때, 모든 책들이 전지한 한 작가의 작품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 p. 26

시간의 무한성은 공간의 무한성과 분리될 수 없다. 특히 「파스칼의 구」에서는<도처에 중심이 있고 그 어느 곳에도 언저리가 없는 그런 무한 구체>라고 하는 우주에 관한 파스칼의 정의가 실은 선대의 사람들에 의해 사용된 적이 있었음을 보여 준다. <신은 중심으로부터 그 어느 방향으로 기운을 뿜어내도 그 기운이 균등하게 미치는 아주 둥근 구형의 덩어리 같은 것이다>(p. 18)라는 파르메니데스, <우리가 신이라 부르는, 중심은 모든 곳에 있으나 원주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지적 구체>(p. 20)라고 하는 라블레의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에 나오는 우주의 이미지, 르네상스 시대의 조르다노 브루노의 우주 형성에 관한 사상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무한 구체에 대한 개념을 통해 보르헤스는 <파스칼에게 감동을 준 것은 조물주의 위대함이 아니라 천지창조의 위대함이었던 것>임을 강조하며, 창조주의 놀라운 능력이 아닌, 창조라고 하는 그 순간의 위대함과 그 순간의 영원함을 말한다.
시간과 공간의 연속을 부정하고 기존의 관념을 비틀어 버리는 이러한 보르헤스의 수법은 그래서 많은 경우 꿈과 연결된다. 「어느 전설의 형상들에서」는 보르헤스는 부처의 일평생 또한 한차례의 유희 또는 한 번의 꿈이라고 본다.

싯다르타는 자신이 태어날 나라와 부모를 선택한다. 싯다르타는 자신을 혼돈 속으로 빠뜨릴 네 사람을 창조하고는 또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이 네 사람이 지니는 의미를 해석해 내도록 만든다. 이 모든 과정을 싯다르타의 꿈으로 본다면 이 모든 이야기는 그럼직해 보인다. 아니 어쩌면 (나병 환자와 승려가 꿈속의 인물에 불과하다고 보는 데서 더 나아가) 싯다르타마저도 누구인지 모를 이가 꾼 꿈속의 형상에 불과하다고까지 생각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어차피 대승 불교적 시각에서 보면, 이 세상도, 불자들도, 열반도, 윤회도, 부처도 하나같이 비현실일 뿐이니까 말이다. -- pp. 270~271

꿈과 현실의 모호한 경계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모든 것이 비현실일지도 모른다고 보는 허무주의적 사고는 실제로 보르헤스의 모든 작품에서 감지할 수 있다. 그러나 보르헤스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한발 더 나아가 언뜻 보아 이러한 절망스러움이 동시에 은밀한 위로가 되기도 한다는 점을 일러 준다.

우리의 운명은 (스베덴보리와 티베트 신화에 나오는 지옥과는 달리) 비현실성 때문에 공포스러운 게 아니다. 운명이 공포스러운 건 운명이란 것이 돌이킬 수 없는데다, 빠져나올 수도 없기 때문이다. 시간은 나를 이루고 있는 본질이다. 시간은 강물이어서 나를 휩쓸어 가지만, 내가 곧 강이다. 시간은 호랑이여서 나를 덮쳐 갈기갈기 찢어 버리지만, 내가 바로 호랑이이다. 시간은 불인 까닭에 나를 태워 없애지만, 나는 불에 다름 아니다. 세상은 불행히도 현실이다. 나는 불행히도 보르헤스이다.
-- p. 337
그 외에도 『만리장성과 책들』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형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니라 사실상 스스로 자신의 영혼을 경이롭게, 그리고 자발적으로 떠나보냄으로써 죽게 되다고 보는 다소 파격적인 「비아타나토스」, 수많은 다른 언어로 소통이 불가능한 상황을 넘어설 수 있는 통일된 기호의 발명을 꿈꾸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존 윌킨스의 분석적 언어」 등 <천일야화>를 능가하는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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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리뷰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란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나는 어지럼증과 함께 심한 두근거림을 느낀다. 보르헤스가 그려내는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란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나는 어지럼증과 함께 심한 두근거림을 느낀다.

    보르헤스가 그려내는 비상식적인
    세계는 우리가 익숙히 알고 있던 세계를 송두리째 갈아 엎는다. 아무리 애를 써 봐도 머리 속에서 지울 수 없는 시간의 연속성과 공간의 절대성이 보르헤스의 필치 앞에선 엿가락처럼 휘어졌다 이내 사라져 버리고 만다. 보르헤스를 읽는다는 것은 친모와의 안녕을 고함과 동시에 바로 계모를 받아 들여야만 하는 충격적 상황과 마주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보르헤스의 충격은 그 내용에만 있는게 아니다. 나는 프로이트를 읽으며 독일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후회한 적이 있는데 마찬가지로 보르헤스를 읽고 있으면 나의 모국어가 스페니쉬(Spanish)가 아니라는 사실에 절망하게 된다(보르헤스는 아르헨티나인이며 아르헨티나는 스페인을 공용어로 한다).

    독자를 절망 속으로 빠뜨리는 건 보르헤스의 모호한 알레고리이며 동시에 그 알레고리 앞에서 갈팡 질팡,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마는 번역이다. 우리는 이렇게 알레고리와 번역의 사이에서 두 번의 절망을 맞는다. 이제 이 절망들은 보르헤스 포기를 종용하는 암묵적 메시지가 된다. 
    평생 단편만을 고집하여 결코 두꺼운 법이 없는 보르헤스의 책들은, 그렇게 우리 손을 떠나 영영 찾을 수 없는 바벨의 도서관에 보관된다.

     
     


    보르헤스 세계의 특징은 상호 반영을 통한 이미지의 무한 복제다. 쉽게 마주보고 있는 거울을 생각하면 된다. 거울이 서로를 비추며 무한의 이미지를 반복하듯이 보르헤스는 '세상의 만물이 그려진 지도', '모든 책이 씌인 책' 등으로 세계를 언어화 한다. 만물이 그려진 지도라든가 모든책이 씌인 책은 그 자체가 전체이면서 동시에 부분일 수 밖에 없는 패러독스를 잉태하므로 그의 문학은 '나는 아무것도 아닌 동시에 모든 것'이라든가 '돈키호테를 읽고 있는 돈키호테' 같은 기이한 불확실성을 마음껏 유희한다. 보르헤스는 이 책의 열 번째 챕터 '돈키호테에 어렴풋이 나타나는 마술성'의 마지막을 칼라일의 말을 인용하며 이렇게 마무리 짓는다.
     
    1833년에 칼라일은 말했다. 우주의 역사라는 것은 모든 이들이 쓰고 읽고 이해하기 위해 애쓰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그런 그들 스스로가 묘사되어지고 있는 무한으로 이어지는 성스러운 한 권의 책이라고.

     
     
    <듀안 마이클>


    보르헤스의 또 다른 특징은 끊임없는 이야기와 인용 그리고 그에 따른 방대한 주석이다. 보르헤스는 엄청난 독서가였다. 39세에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는 사고를 겪은 뒤 거의 실명 상태로 지내왔음에도 그는 책 읽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가 살아 생전에 읽었던 책은 거의 2만권에 달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보르헤스의 글엔 엄청나게 많은 인용구와 책과 작가들이 등장한다. 마치 20세기의 '세헤라자드'가 된 듯이 보르헤스는 이야기 속에 이야기를 끼워 넣고 책 속에 책을 삽입하며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그리고 어김없이 방대한 주석이 뒤따른다.
     
    주석이란 보통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역자나 편집자가 추가하지만 보르헤스의 경우 작자인 자기 자신이 많은 양의 주석을 추가한다. 독자는 이처럼 방대한 주석 앞에서 비선형적 독서를 경험한다. 우리는 여타의 책을 읽어 나가듯 정해진 순서에 따라 편안히 책장을 넘길 수 없다. 독자는 본문을 읽은 뒤 주석을 찾고 때때로 이를 따라 다음장으로 이동하지만 이내 끊어진 본문을 찾아 다시 앞장으로 돌아와야 한다. 이것은 현대의 하이퍼텍스트를 닮아 있다. 특정한 줄거리의 탐색없이 'Back', 'Forward'를 연발하며 정보를 탐색하듯이 보르헤스의 독자들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야기 조각을 찾아 부유한다.


     
     

    <에셔>
     
     
     '만리장성과 책들'은 보르헤스의 산문집이다. 일기를 암호로 쓰는 사람이 없듯이 보르헤스의 산문은 그의 소설보다 훨씬 직접적이고 구체적이다. 뿐만 아니라 보르헤스 문학의 원형과 그 원형이 창조되기까지의 과정을 되짚어 볼 수 있기에 그 동안 그의 소설을 읽으며 불편해 했던 독자들은 한층 더 가까이 보르헤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쉽다'라고는 감히 말할 수 없다. 방대한 독서, 무한의 지식, 그리고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 차원의 비평들. 인간이란 딱 아는 만큼만 보이기 마련인데 설령 이름이 익숙한 오스카 와일드나 나다니엘 호손을 평했다 한들 이제 막 지식의 걸음마를 시작한 우리네 눈 높이에 보르헤스의 사상이 그 털끝 만큼도 보일리 만무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이 책을 읽었으나 읽었다고 말할 수 없고 그렇다고 읽지 않았다고도 말할 수 없는 지금의 내 심정과, 이렇듯 얼렁 뚱땅 글을 마쳐야만 하는 내 무력함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
  • 만리장성과 책들 | cs**v | 2011.04.08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작가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1986)/정경원 옮김 작품 :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열기>, <...
    • 작가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1986)/정경원 옮김
    • 작품 :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열기>, <정면의 달>, <영원한 장미>, <불한당들의 세계사>, <픽션들>, <심문>, <알렙>, <세익스피어의 기억>, <모래의 책>, <칠일밤> 등
    • 1st reading : 2011.3.7
    시황제는 자신의 제국이 덧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 제국에 장벽을 둘러치려 했고, 책들이 성스럽다는 것을 알았기에, 즉 책들이 우주 혹은 각 개인의 양심이 가르쳐 주는 모든 것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책들을 없애 버리려 했을 것이다. 장서를 불태우는 것과 만리장성을 축조하는 행위는 비밀리에 서로를 무효화시키는 작용일지도 모른다.(15)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여러 작가들에 의해 언급되었던 보르헤스에 대해 호기심이 생겨 그의 책들을 찾아다 놓았다.
    나의 경우는 어떤 작가가 눈에 들어오면 우선 그의 책들을 찾을수 있는데까지 헌책방을 뒤져서라도 내옆에 있어야 마음이 놓이는 아주 고약한 성격이다. 그중 한권이라도 절판되거나 구할수 없을 경우에는 마치 연재소설이나 만화의 어느 한권이 빠진 것처럼 읽다만 것같은 생각이 들어서다.
    그럼에도 그토록 책을 찾고나서는 당장이라도 읽어야 할텐데 잠시 미루어 두게 된다.
    이런경우는 나자신도 이해가 가지 않지만 어쨌든 책을 모두 갖추었다는 일종의 안심이 가져다 주는 여유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책들의 방대함에 어느 책부터 손을 대야할지 잠시 지켜보고 싶은 그런 면도 없지 않아 있다.
    그러다 약 일여년간의 시간이 흐르면서 한권의 책을 꺼내 읽게 된다.
    이책은 여러 책들과 그 작가에 대한 그의 평론이 아주 흥미롭다.그의 독특한 문장들과 난해함이 가져다 주는 혼돈 속에서 어떤 알수 없는 표현하기 힘든 쾌감을 느꼈다. 나로서는 도저히 감히 표현하기도 어려운 작품에 대한 심오한 견해와 작가들의 특성을 너무도 잘 파악하고 있다는 것에서 놀라움과 동시에 책을 읽는 내내 나를 주눅들게 했다.
    사실 그가 언급한 작품을 읽지 않고 읽어서 그런지 나는 미쳐 파악하지도 못한 것들을 언급하고 있어서 아쉬웠다.
    그가 언급한 책들을 다 읽고 나서 다시 본다면 조금 더 느낌이 와닿을 거라는 생각이든다. 그러자면 얼마나 많은 책을 읽어야 하는지 아득하다.
    그동안 책을 읽고 이곳에 써왔던 것들이 나를 무색하게 했다. 사실 비교하는 것 자체가 감도 안되지만.
    그가 언급한 수많은 거의 읽지 않았던 책들을 찾아보니 약 20여권이나 된다.
    이렇게 한권의 책에서 20여권의 가지를 치다니 내게는 책으로 만리장성을 쌓게 될것 같다. 
    그중 나의 이목을 끌었던 작가들은 토머스 드퀸시(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 이탈노 칼비뇨(나무위의 남작), 비오이 카사레스(모렐의 발명, 러시아 인형), 체스터튼(목요일이었던 남자), 윌리엄 벡퍼드(바테크), 조지웰스(마술가게) 윌리엄 허드슨(보랏빛 대지)등이였다.
    그중 조지웰스는 보르헤스가 도서관의 책들중 가장 마음에 든, 제일 처음 읽은, 생애 마지막으로 읽게 될 책들인 <타임머신>, <달나라에 간 최초의 인간>, <원반이야기>, <닥터모로의 섬>이라고 했는데 이 책들도 내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최근에 바다출판사에서 보르헤스가 작품들을 추려내서 바벨의 도서관 10권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책을 읽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듯이 책이 나와서 출판사에 감사인사라도 하고 싶다. 앞으로 계속 출간될 것이라 하니 기대가 된다.(참고로 출판사와는 아무 연고가 없습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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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세상 모든 책들은 오직 한 작가가 집필한 것 같다.
    그 모든 책들의 중심에 일종의 통일성이 존재하는 것을 볼때, 모든 책들이 전지한 한 작가의 작품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에머슨)/에세이집 제 2권 8장 (27)
     
    쇼펜하우어는 이미 실제의 삶과 꿈은 동일한 책 속의 서로 다른 책장에 불과하다며, 그 책을 순서대로 읽는 것은 실제의 삶을 사는 것이고, 여기저기 건너뛰며 읽는 것은 꿈을 꾸는 것이라고 했다.(50)
     
    사람은 자신의 영혼 속에 가을 숲 속의 색깔들보다도 더욱더 다채롭고 훨씬더 무한하며 뭐라 이름 붙일 수 없는 색깔들이 들어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온통 서로 뒤섞여 변해버린 그 수많은 색깔들조차도 신음소리와 고함소리 같은 임의의 메커니즘에 의해 제각각의 색깔을 또렷히 드러낼수 있다고 생각한다.(106)
     
    오스카 와일드는 허허벌판 위에 세워진 도시들을 떠오르게 하고, 그가 누린 영광은 형벌과 옥살이와 직결된다.
    체스터턴의 값진 작품은 늘 악몽이 되어버릴 여지를 갖고 있다. 악마적인 것과 공포가 그 안에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체스터턴이 유년을 되살리고 싶어하는 어른이라면, 와일드는 온갖 불운과 불행에도 불구하고 변함없는 순수함을 지켜가는 어른이다.(154)
     
    그리 짧은 단편이 아니라면, 플롯은 그저 하나의 구실이거나 출발점에 불과하다. 플롯은 작품의 전개에는 중요할지 모르지만 독서의 즐거움을 위해서는 그리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165)
     
    우리 인간이, 태초의 시간에 존재하고 싶지 않다는 열망으로 스스로를 파괴시켜 버린 어떤 신의 파편일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하게 되었다. 세계사는 바로 그 파편들의 암울한 번민이다.(177)
     
    세상은 한권의 책을 위해 존재하며, 우리 모두는 마법 책을 구성하고 있는 한 문장이거나 한 단어, 혹은 한 글자이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 책이야말로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것으로, 세상 그 자체이다.(208)/도서예찬에 대하여
     
    문장은 인간과 책의 전형이다. 선혈이 낭자하고 이별로 가득함에도 불구하고 <보랏빛 대지>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얼마되지 않는 행복한 책들 가운데 하나이다.(254)
     
    책은 독자와 나누는 대화고 독자의 목소리에 부과되는 억양이며 그의 기억 속에 남겨진 변화무쌍하고 지속적인 이미지들이다. 독자와의 대화는 무한히 이어진다.
    한권의 책은 단순히 한 권의 책에 그치지 않는다라단순하면서도 충분한 이유때문에 문학은 고갈되지 않는다. 한권의 책은 소통이 단절된 물건이 아니다. 책은 하나의 관계이자 수많은 관계들의 축이다.(283-284)
     
    때때로 나 자신이 불행하다는 생각이 들곤 했지만, 그것은 혼동과 착각에 기인한다. 내가 나자신을 다른사람으로, 나른 누군가로 생각했던 것뿐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내가 입었다 벗어버린 옷가지에 불과할 뿐이었으니까.(쇼펜하우어가 에두아르 그리제바흐에게 남긴말. 295)
     
    우리 동네의 적막한 밤거리를 거닐 때마다 밤이 우리를 참으로 행복하게 해준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추억과 마찬가지로 고독은 나른하고 잡다한 일상을 잊게 해주기 때문이다. 사랑이나 우정의 상실때문에 슬퍼질 때면 잃은 것은 단지 원래부터 내가 소유하지 않았던 것들뿐이라고 생각해 본다.(317)
     
    나는 딱히 행선지를 정하고 싶지 않았다. 최대한의 가능성을 부여했던 것이다.  어느 길로 가야 한다는 의무감때문에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억누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보니 최악의 상태, 즉 발길 닿는 대로 가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321)
     
    거리를 따라 나지막한 집들이 들어서 있었고, 그걸 보면서 제일 먼저 떠오른 느낌은 궁핍해 보인다는 느낌과 행복감이었다. 그곳은 아주 가난하지만 정말 아름다운 마을이었던 것이다. 나지막한 집들 가운데 유난히 튀는 그런 집은 한채도 없었다.
    아름드리 무화과나무가 길모퉁이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고, 집집의 대문들은 밤을 이루고 있는 바로 그 재료로 만들어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322)
     
    한 시인의 영광은 적막한 도서관에서 그 책을 접하는 각 세대, 익명의 독자들이 느끼는 감동의 유무에 달려 있는 것이다. 문학이 야기하는 감정은 아마도 영원할 것이다.
    고전은 한 국가나 몇몇 국가, 오랜 세월이 마치 그 책 속에 담긴 것은 하나 같이 사려 깊고 , 운명적이며, 우주처럼 심오하고 무한한 해석이 가능하기라도 하다는듯이 읽기로 결정한 그런 책이다. 고전은 무슨 대단한 장점을 지닌 책이 아니다. 그것은 각세대의 사람들이 온갖 이유때문에 넘치는 열의와 알수없는 공경심을 갖고 읽게 되는 그런 책이다.(342)/고전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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