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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을 끓이며(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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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규격外
ISBN-10 : 8954637779
ISBN-13 : 9788954637770
라면을 끓이며(양장본 HardCover) [양장] 중고
저자 김훈 | 출판사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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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9월 3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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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시리즈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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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이 기록한 세상과 내면의 지난한 풍경들. 김훈 산문집『라면을 끓이며』. 오래전에 절판된 후 애서가들이 헌책방을 찾아 헤매게 한 김훈의 전설적인 산문《밥벌이의 지겨움》,《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바다의 기별》에서 기억할 만한 최고의 산문들만을 가려 뽑고, 그 후 새로 쓴 원고 400매 가량을 합쳐 묶어낸 책이다.

축적해온 수많은 산문들 가운데 꼭 남기고 싶은 일부만을 남기고, 소설보다 낮고 순한 말로 독자들에게 말을 걸고픈 그의 바람이 담긴 최신 글들까지. 이 책은 김훈의 지난날을 다섯 개의 주제로 구성해 간명하고 정직한 그의 문체로 덧댈 필요도 덜어낼 수도 없는 김훈의 세계를 펼쳐낸다.

그의 가족 이야기부터 기자 시절 거리에서 써내려간 글들과 최근에 도시를 견디지 못하고 동해와 서해의 섬에 각각 들어가 새로운 언어를 기다리며 써내려간 글에 이르기까지, 김훈의 어제와 오늘이 고스란히 담겨있어 여전히 ‘먹고살기의 지옥을 헤매고 있’는 보통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김훈 산문의 정수’가 담겨있다.

저자소개

저자 : 김훈
저자 김훈은 1948년 서울 출생.
2000년까지 여러 직장을 전전.
소설 『칼의 노래』, 산문 『풍경과 상처』 외 여럿.

목차

1부 밥

라면을 끓이며 _11
광야를 달리는 말 _32
바다 _48
밥 1 _70
밥 2 _74
남태평양 _76
갯벌 _94
국경 _98
공 _122
목수 _127
줄 _131
목숨 1 _137
목숨 2 _142

2부 돈

세월호 _153
돈 1 _178
돈 2 _182
돈 3 _186
신호 _191
라파엘의 집 _195
서민 _197
러브 _201
불자동차 _205
소방관의 죽음 _215

3부 몸

바다의 기별 _223
여자 1 _232
여자 2 _238
여자 3 _243
여자 4 _247
여자 5 _251
여자 6 _256
여자 7 _262
손 1 _267
손 2 _278
발 1 _283
발 2 _289
평발 _293

4부 길

길 _299
바퀴 _303
고향 1 _307
고향 2 _317
고향 3 _327
쇠 _332
가마 _343
셋 _349
까치 _353
꽃 _357
잎 _361
수박 _365
11월 _370
바람 _374

5부 글

칠장사_ 임꺽정 379
연어_ 고형렬 391
1975년 2월 15일의 박경리 397

작가의 말 410

책 속으로

* 짙은 김 속에 얼굴을 들이밀고 뜨거운 국물을 마시면, 콱 쏘는 조미료의 기운이 목구멍을 따라가며 전율을 일으키고, 추위에 꼬인 창자가 녹는다. 슬프다, 시장기의 근원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_「라면을 끓이며」 * 울진의 아침바다에서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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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짙은 김 속에 얼굴을 들이밀고 뜨거운 국물을 마시면, 콱 쏘는 조미료의 기운이 목구멍을 따라가며 전율을 일으키고, 추위에 꼬인 창자가 녹는다.
슬프다, 시장기의 근원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_「라면을 끓이며」

*
울진의 아침바다에서 나는 살아온 날들의 기억으로 가득 찬 내 마음의 쓰레기들이 부끄러웠다. 파도와 빛이 스스로 부서져서 끝없이 새롭듯이 내 마음에서 삶의 기억과 흔적들을 지워버리고 새롭게 다가오는 언어들과 더불어 한 줄의 문장을 쓸 수 있을 것인지를, 나는 울진의 아침바다에서 생각하고 있었다.
아, 나는 한평생 단 한 번도 똥을 누지 못한 채, 그 많은 똥들을 내 마음에 쌓아놓아서 이미 바위처럼 굳어졌다.
울진 바다에 비추어보니, 내 마음의 병명은 종신변비였다. 바다가 나의 병명을 가르쳐주었다. 나에게 가장 시급한 처방은 마음에 쌓인 평생의 똥을 빼내고 새로워지는 것이리라.
울진 바다에서 나는 바다의 불가해한 낯설음에 압도되어서 늘 지쳐 있었다. 수평선 너머로부터, 내가 기다리는 새로운 언어는 날아오지 않았고, 내가 바다 쪽을 바라보는 시간은 날마다 길어졌다. 나는 조금씩 일했고 많이 헤매었다. 나의 일은 글을 쓰는 것이었는데, 일보다 헤매기가 더욱 힘들었다.
바다에 나갔던 새들이 숲으로 돌아갔고, 나는 방으로 돌아왔다.
책상 위에는 원고지의 무수한 빈칸이 펼쳐져 있었다. _「바다」

*
전기밥솥 속에서 밥이 익어가는 그 평화롭고 비린 향기에 나는 한평생 목이 메었다. 이 비애가 가족들을 한울타리 안으로 불러모으고 사람들을 거리로 내몰아 밥을 벌게 한다. 밥에는 대책이 없다. 한두 끼를 먹어서 되는 일이 아니라, 죽는 날까지 때가 되면 반드시 먹어야 한다. 이것이 밥이다. 이것이 진저리나는 밥이라는 것이다. _「밥 1」

*
모든 밥에는 낚싯바늘이 들어 있다. 밥을 삼킬 때 우리는 낚싯바늘을 함께 삼킨다. 그래서 아가미가 꿰어져서 밥 쪽으로 끌려간다. 저쪽 물가에 낚싯대를 들고 앉아서 나를 건져올리는 자는 대체 누구인가. 그 자가 바로 나다. 이러니 빼도 박도 못하고 오도 가도 못한다. 밥 쪽으로 끌려가야만 또다시 밥을 벌 수가 있다. _「밥 1」

*
나는 근로를 신성하다고 우겨대면서 자꾸만 사람들을 열심히 일하라고 몰아대는 이 근로감독관들의 세계를 증오한다. 나는 이른바 3D 업종으로부터 스스로 도망쳐서 자신의 존엄을 지키는 인간들의 저 현명한 자기방어를 사랑한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근로감독관들아, 제발 인간을 향해서 열심히 일하라고 조져대지 말아달라. 제발 이제는 좀 쉬라고 말해달라. 이미 곤죽이 되도록 열심히 했다. _「밥 1」

*
나에게 여행은 세계의 내용과 표정을 관찰하는 노동이다. 계절에 실려서 순환하는 풍경들, 노동과 휴식을 반복하면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들, 지나가는 것들의 지나가는 꼴들, 그 느낌과 냄새와 질감을 내 마음속에 저장하는 것이 내 여행의 목적이다. _「남태평양」

*
돌아와서 책상 앞에 앉았다. 연필을 들면 열대의 숲과 바다가 마음속에 펼쳐진다. 숲을 향하여 할 말이 쌓인 것 같아도 말은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들끓는 말들은 내 마음의 변방으로 몰려가서 저문다.
숲속으로 들어가면 숲을 향하여 말을 걸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태어나지 못한 말들은 여전히 내 속에서 우글거린다. _「남태평양」

*
공사중인 집의 처마 끝에 매달려 못질을 하는 젊은 목수는 그 아름다움으로 나를 주눅들게 한다. 그러나 누구의 삶인들 고달프고 스산하지 않겠는가. 나무통이 좁아서 뿌리가 비어져나온 옥수수를 들여다보면서 나는 새로운 슬픔으로 지나간 슬픔을 위로한다. _「목수」

*
그 붉은 어둠의 먼 곳으로부터 어선들은 모습을 드러낸다. 피곤한 노동의 땟국으로 칠갑이 된 어선들은 찢어진 어기漁旗를 펄럭거리며 포구로 돌아오는데, 피곤은 곧 삶인 것이어서, 그래서 그 피곤을 별도로 언급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_「줄」

*
딸아이가 공부를 마치고 취직해서 첫 월급을 받았다. 딸아이는 나에게 핸드폰을 사주었고 용돈이라며 15만 원을 주었다. 그 아이는 나처럼 힘들게, 오직 노동의 대가로서만 밥을 먹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진부하게, 꾸역꾸역 이어지는 이 삶의 일상성은 얼마나 경건한 것인가. 그 진부한 일상성 속에 자지러지는 행복이나 기쁨이 없다 하더라도, 이 거듭되는 순환과 반복은 얼마나 진지한 것인가. _「목숨 1」

*
생명의 아름다움은 본래 스스로 그러한 것이어서 사람이 입을 벌려 말할 필요는 없을 터이지만, 지난해 4월 꽃보라 날리고 천지간에 생명의 함성이 퍼질 적에 갑자기 바다에 빠진 큰 배와 거기서 죽은 생명들을 기어코 기억하고 또 말하는 것은 내가 아직도 살아 있기 때문이다. 나는 단지, 겨우 쓴다.
_「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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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먹고산다는 것의 안쪽을 들여다보는 비애悲哀” 김훈 산문의 정수 소설가 김훈의 산문이 출간되었다. 오래전에 절판되어 애서가들로 하여금 헌책방을 찾아다니게 한 김훈의 전설적인 산문『밥벌이의 지겨움』『너...

[출판사서평 더 보기]

“먹고산다는 것의 안쪽을 들여다보는 비애悲哀”
김훈 산문의 정수


소설가 김훈의 산문이 출간되었다.
오래전에 절판되어 애서가들로 하여금 헌책방을 찾아다니게 한 김훈의 전설적인 산문『밥벌이의 지겨움』『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바다의 기별』에서 시대를 초월해 기억될 만한 산문들을 가려 뽑고, 이후 새로 쓴 산문 원고 400매가량을 합쳐 엮었다.
이 책에는 그의 가족 이야기부터 기자 시절 그가 거리에서 써내려간 글들, 최근에 도시를 견디지 못하고 동해와 서해의 섬에 각각 들어가 새로운 언어를 기다리며 써내려간 글에 이르기까지, 김훈의 어제와 오늘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여전히 원고지에 육필로 글을 쓰고, 자가용에 몸을 싣는 대신 자전거를 타고 두 발로 바퀴를 굴려 세상을 나아가는 그가 기록한 세상과 내면의 지난한 풍경들. ‘밥벌이의 지겨움’ ‘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 등 길이 회자되는 김훈의 명문장들을 읽는 기쁨과 함께, 국가가 국민을 지켜주지 못하는 시대에 진영 논리에 휩싸여 악다구니를 벌이는 권력가들에게 그가 ‘슬프고 기막혀서’ 써내려간 글, 여전히 ‘먹고살기의 지옥을 헤매고 있’는 보통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김훈 산문의 정수’가 이 책에 있다.

“나는 오랜 세월 동안 소외된 노동으로 밥을 먹었다.”
아, 밥벌이의 지겨움!!
우리는 다들 끌어안고 울고 싶다.”


책의 표제글이 된 「라면을 끓이며」는 매 해 36억 개, 1인당 74.1개씩의 라면을 먹으며 살아가는 평균 한국인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이자, ‘거리에서 싸고, 간단히, 혼자서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세상에는 식사와 사교를 겸한 번듯한 자리에서 끼니를 고상하게 해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거리에서 밥벌이를 견디다가 허름한 분식집에서 홀로 창밖을 내다보면서, 혹은 모르는 사람과 마주앉아서 끼니를 해결하는 사람들도 있다. ‘목구멍을 쥐어뜯는’ 매운 국물들을 빠르게 들이켜고는 각자의 노동과 고난 속으로 다시 걸어들어가야만 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엔 더 많다.
“있건 없건 간에 누구나 먹어야 하고, 한 번 먹어서 되는 일이 아니라 때가 되면 또다시, 기어이 먹어야 하므로” ‘한 달 벌어 한 달 살아가는’ 이들에게 라면은 뻔하고도 애잔한 음식이다.

나는 오랜 세월 동안 라면을 먹어왔다. 거리에서 싸고 간단히, 혼자서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음식이다. 그 맛들은 내 정서의 밑바닥에 인 박여 있다.
모르는 사람과 마주앉아서 김밥으로 점심을 먹는 일은 쓸쓸하다. 쓸쓸해하는 나의 존재가 내 앞에서 라면을 먹는 사내를 쓸쓸하게 해주었을 일을 생각하면 더욱 쓸쓸하다. 쓸쓸한 것이 김밥과 함께 목구멍을 넘어간다.
이 궁상맞음을 비웃어서는 안 된다. 당신들도 다 마찬가지다. 한 달 벌어 한 달 살아가는 사람이 거리에서 돈을 주고 사먹을 수 있는 음식은 뻔하다.
라면이나 짜장면은 장복을 하게 되면 인이 박인다. 그 안쓰러운 것들을 한동안 먹지 않으면, 배가 고프지 않아도 공연히 먹고 싶어진다. 인은 혓바닥이 아니라 정서 위에 찍힌 문양과도 같다. 세상은 짜장면처럼 어둡고 퀴퀴하거나, 라면처럼 부박浮薄하리라는 체념의 편안함이 마음의 깊은 곳을 쓰다듬는다.
이래저래 인은 골수염처럼 뼛속에 사무친다. _본문에서

김훈의 밥 · 돈 · 몸 · 길 · 글

이 책은 김훈의 지난날을 이룬 다섯 가지의 주제에 따라 5부로 구성되어 있다. 밥, 돈, 몸, 길, 글. 이 다섯 개의 주제는 그의 문체처럼 간명하고 정직하다. 그 무엇도 덧댈 필요도, 덜어낼 수도 없는 이 단독한 세계 안에 김훈이 있다.

그는 「손1」에서 “나는 손의 힘으로 살아가야 할 터인데 손은 자꾸만 남의 손을 잡으려 한다”라고 썼다.
이 책은 자꾸만 남의 손을 잡으려드는 안쓰러운 손으로 현실의 얽히고설킨 관계들을 겨우 버티어내는 그와, 홀로 집필실에서 연필 쥔 손에 힘을 준 채 글을 써내려가는 그가 느껍게 만나는 자리이다.

지난날 한 인터뷰에서 김훈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글을 쓸 때 어떤 전압에 끌린다. 전압이 높은 문장이 좋다. 전압을 얻으려면 상당히 많은 축적이 필요하다. 또 그만큼 버려야 한다. 버리는 과정에서 전압이 발생한다. 안 버리면 전압이 생길 수 없다.”

이 책을 엮는 과정에서 그는 많은 글들을 버리고, 새로이 문장을 벼렸다. 그가 축적해온 수많은 산문들 가운데 꼭 남기고 싶은 일부만을 남기고, 소설보다 낮고 순한 말로 독자들에게 말을 걸고픈 그의 바람이 담긴 최근의 글들까지 빼곡하게 들어찬 이 책엔 독자를 단숨에 사로잡을 고압전류가 흐른다.
김훈 문장의 힘은 버리고 벼리는 데서 온다. 이 책은 김훈이 축적해온 삶 위에, 가차 없이 버리고 벼린 그의 문장의 힘이 더해져, ‘김훈 산문의 정수’를 읽는 희열과 감동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산문집이다.

◈ 책속으로 추가

*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다 다치거나 망가져 있는 사람들이었다. 시대가 인간에게 가하는 고통을 피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 망가진 사람들의 내면에 끝끝내 망가질 수 없는 부분들은 여전히 온전하게 살아남아 있었다. 뿌리 뽑히고 거덜난 삶 속에서 삶에 대한 신뢰를 발견하는 일은 늘 눈물겹다. _「고향 1」

*
혼자서 늙어가는 내 초로의 봄날에 자전거를 타고 섬진강 물가를 달릴 적에, 새잎 돋는 산들이 물에 비치어 자전거는 하늘의 길을 달렸다. 아, 이 견디기 어려운 세상 속에는 또다른 세상이 있었구나! 이 별 볼 일 없는 생애는 어찌 그리도 고단했던가. _「잎」

*
춥고 어두운 겨울이었다. 희망이란 없었다. 이쪽저쪽으로 나눌 수 있는 일은 아닐 테지만 사람들은 두 그룹으로 나뉘었다. 포기한 사람과 아직 포기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나는 아마도 포기한 사람 쪽에 속해 있었던 것 같다. 그때 나는 스물일곱의 청춘이었다.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도, 이 세상에 더이상 희망이란 것이 부재한다는 것을 현실로 인정하고 있었다.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들, 존재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들을 향해 필사적인 손짓을 보내고 있었다. _「1975년 2월 15일의 박경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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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

회원리뷰

  • 김훈의 산문집을 두 번째 읽는다. 처음 읽은 것은 이 책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바다의 기별>이었다. 상당히 인상적...

    김훈의 산문집을 두 번째 읽는다. 처음 읽은 것은 이 책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바다의 기별>이었다. 상당히 인상적으로 읽은 산문집이었는데 기억을 더듬으면 몇 개 남는 것이 없었다. 이런 현상은 다른 산문집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김훈의 아버지 김광주(정협지의 작가)에 대한 글과 기억은 아주 엇갈려 있었다. 왜 김승옥은 떠오르고, 김광주는 왜 잊고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아마도 김승옥에 대한 나의 기억이 더 강렬해서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대체적으로 나의 기억이나 그의 이미지는 이번 산문집을 읽으면서 꽤 많이 바뀌었고, 다른 산문집으로 다시 눈길이 간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다른 작가의 글에서도 늘 있어 왔다.

     

    이번에 느낀 것은 그의 글이 딱딱하다는 것보다 그가 파고드는 사물의 이치가 상당히 흥미로웠다는 것이다. 현상을 보이는 그대로 적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있는 이치를 파고든다. 라면 하나를 끓이는 일부터 못을 박는 일까지 일상에서 큰 고민 없이 행하는 모든 것을 그는 그냥 그대로 넘어가지 않는다. 이번에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연장에 대한 그의 애착이다. 재미난 에피소드 중에는 치과 의사의 도구에 매혹되어 치대에 갈까 하는 생각을 했다는 것도 있다. 포철에 가서 용광로를 본 것이나 도기를 만드는 곳에서 불과 물과 흙의 상호작용에 대해 적은 글은 깊은 사유와 통찰이 없다면 쉽지 않은 글이다.

     

    밥, 돈, 몸, 길, 글. 이렇게 5부로 나누어 편집되었다. 이전에 나온 세 권의 산문집에 새롭게 쓴 글이 합쳐져서 나왔다. 세월호의 글은 지금도 그 아픔과 고통이 그대로 느껴질 정도고, 이것을 두고 벌인 정치판의 추악한 행위들은 아직도 치가 떨린다. 밥과 돈에 대한 연작들은 아주 현실적이라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여자 연작은 은유와 풍자와 현실 비판 등을 곁들여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남성들을 질타한다. 특히 여자를 물화해서 잘 표현했다가 반전처럼 뒤집는 글솜씨는 읽는 재미를 듬뿍 안겨주었다.

     

    소방관 서형진 씨의 죽음을 다룬 글은 그들의 노력과 희생에 다시금 숙연해졌다. 사고 후 일상으로 돌아온 풍경을 보여줄 때 삶의 냉혹함을 깨닫는다. 어릴 때라면 분노하였겠지만 그들의 일상은 또 다른 문제이다보니 그냥 넘어간다. 아들의 군 입대를 둘러싼 글은 이 시대 한국을 살아가는 수많은 청춘의 마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래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모나 청년들은 애국이란 허상에 자신의 몸을 받칠 수밖에 없다. 정치인들의 서민 코스프레를 질타하는 그의 논리는 우리 정치의 한계이자 모순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나도 이제 서울로 상경한지 거의 30년이 되었다. 고향이란 단어는 나의 어린 시절 살던 곳을 의미한다면 상경하기 전 그곳일 것이다. 지금도 명절 등에 내려가면 낯익은 건물과 바뀐 풍경 속에서 기억과 추억을 더듬는다. 서울 토박이 김훈도 북촌의 기억을 더듬지만 일상적인 감상으로 이야기를 풀어내지 않는다. 이 고향 이야기가 남대문 방화로 이어지고, 그 방화를 저지른 노인의 과거를 알려줄 때 개발독재의 진한 그림자가 엿보였다. 그가 새롭게 정착한 일산의 눈부시고 급속한 변화는 오랫동안 그곳을 다닌 나에게도 낯선 모습이다. 단순히 이야기가 아닌 역사 사실을 찾아 같이 묶어 풀었기에 더 깊이 공감한다.

     

    셋이란 숫자를 보면 삼위일체니 고스톱 등이 먼저 떠오르는데 그의 글은 개인과 개인의 관계로 깊이를 더한다. 까치집과 김해의 비행기 사고를 묶어 풀어낸 글은 세월호의 침몰 같은 물리학적 깊이로 나아가지 않아 조금 아쉬웠지만 삶의 불가해성을 인지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고전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는 글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고, 이것이 가장 멋지게 드러나는 대목 중 하나가 소설 <임꺽정>과 칠장사를 묶은 글이다. 고형렬의 연어에 대한 글은 아주 매력적인데 실제 재간된 것을 읽는 나에게는 아주 힘든 책읽기였다. 1975년 2월 15일의 박경리 선생을 본 기억은 그 시대의 한 모습을 아주 인상적이면서도 강렬하게 보여주었다.

  • 라면을 끓이며 | km**e | 2016.12.29 | 5점 만점에 4점 | 추천:0
      김훈의 에세이이다. 말과 글이 낮고 순하다는 느낌이다. 일상 속에서 만나는 모든 작은 것들에 대한 단상을 솔...
     

    김훈의 에세이이다. 말과 글이 낮고 순하다는 느낌이다.

    일상 속에서 만나는 모든 작은 것들에 대한 단상을 솔직하고 담담하게 쓰고 있다.

     

    목숨 

    태어난 모든 것은 사라진다. 생자필멸(生者必滅)인 것이다. 생로병사는 생, 로, 병, 사가 따로따로 떨어져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한 덩어리로 포개져서 흘러가는 것이 인생이다.


    어머니

    군대에 있을 때 어머니로부터의 편지. 어렵고 힘들 때는 너보다 더 어려운 이 어미를 생각해라. 고지의 겨울은 맹수에게 물어뜯기는 듯이 추웠다. 그날 밤 나는 보초를 서면서 고난을 따스함으로 바꾸어 놓는 엄마의 온도와 엄마의 눈물의 힘을 생각했고 자라나는 고비에서 치솟는 반항기로 엄마를 속썩인 패악을 뉘우치면서 가슴이 아팠다.


    까치

    까치들은 개털을 물어다가 둥우리의 안쪽을 꾸미는 내장재로 쓴다.


    사람이 개를 마구 대하면 개도 사람을 마구 대한다.


    군에 갈 아들

    나는 너를 기르던 세월 속에서 내가 치러야 했던 가혹한 노동과 날이 밝도록 일해야 했던 수많은 밤의 고난을 생각했다. 세금을 원천징수 당하고, 34.5개월의 병역을 치르고, 예비군, 민방위 훈련에 참가하고 교통규칙을 지키고 전기를 정략하고 쓰레기를 줄이고...... 시간외 노동을 밥 먹듯이 하면서도 나라가 시키는 대로 끝까지 머리 숙여 모든 일을 다 해온 세월은, 지금 견딜 수 없이 허망하다.

    본수대

    봉수대는 가장 높은 봉우리에 설치하는 것이 아니라, 마을에서 가깝고, 인접 봉수대와 교신이 편리한 야트막한 봉우리에 자리잡는다. 낮게, 멀리 그리고 바르게 보이는 곳이 봉수대의 명당이다.


    고독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본래 혼자일 뿐

  • 라면을 끓이며 외 합 50편의 단편집. 그중 <광야를 달리는 말>과 <세월호>가 가장 나았다. 정작 ...

    라면을 끓이며 외 합 50편의 단편집.

    그중 <광야를 달리는 말>과 <세월호>가 가장 나았다.

    정작 제목으로까지 정한 <라면을 끓이며> 는 별로다.

     

    [발췌]

     

    *나는 라면을 먹을 때 내가 가진 그릇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비싼 도자기 그릇에 담아서, 깨끗하고 날씬한 일회용 나무 젓가락으로 먹는다. -라면을 끓이며-

     

    *나는 내 아버지와 그의 시대를 긴 글로 써보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나의 시도는 여러 번 실패하였고 지금은 파지만 쌓여 있지만, 새가 알을 품듯이 나는 그 생각을 품고 있다. 내가 실패를 거듭하는 까닭을 나는 안다. 내 아버지의 삶의 파탄과 광기, 그의 꿈과 울분과 절망의 하중을 내가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신산한 기억들을 나는 겨우 몇 자 쓰려 한다. 아버지는 63년을 살고 기세하였다. 나는 이제 아버지보다 더 오래 살고 있다. 나는 젊은 날의 내 아버지가 때때로 내 가엾는 아들처럼 느껴진다 -광야를 달리는 말-

     

    *70년대의 기라성같은 청년작가 김승옥이 단편소설 <무진기행>을 발표했을 때, 아버지는 문인 친구들과 함께 우리집에 모여서 술을 마셨다. 그들은 모두 김승옥이라는 벼락에 맞아서 넋이 빠진 상태였다. 그들은 김승옥이라는 녀석의 놀라움을 밤새 이야기하면서 혀를 내둘렀다. 새벽에 아버지는 이제 우리들의 시대는 갔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광야를 달리는 말-

     

    *물곰국은 아침에 먹어야 제맛을 알 수 있다. 아침에, 뱃속이 비고 허전해서 축축한 위안이 필요할 때, 딱딱한 음식을 넘기거나 소화시킬 만큼 뱃속이 아직도 일상으로 옮겨오지 못했을 때, 사람의 마음이 밤에서 낮으로 아직 이행하지 못한 그 어슴푸레한 아침나절에 물곰국은 가문 땅에 단비 내리듯 이 썰렁한 창자 속으로 스며든다. 물곰국은 인간의 창자뿐 아니라 마음을 위로한다. 그 국물은, 세상잡사를 밀쳐버리고 우선 이 국물에 몸을 맡기라고 말한다. 몸을 맡기고 나면 마음은 저절로 몸을 따라가는 것이라고, 위안의 기능을 갖는다는 점에서, 물곰국은 하나의 완연한 세계를 갖는다. 이런 국물은 이 지구상에 울진 말고는 없다. 물곰의 살은 모든 짐승의 고기가 갖는 육질의 짜임새가 없다. 물곰의 살은 근육도 아니고 국물도 아닌 그 완충의 자리에서 흐느적거리나. 그 살은 씹어 삼키는 살이 아니라 마시는 살이다. 이 완충의 흐느적거림이 인간을 위로한다....

    물곰국으로 아침을 먹고나서, 나는 식당 수족관에 갖힌, 살아 있는 물곰을 오랫동안 들여다보았다. 물곰은 동작이 느렸고 얼굴 표정은 매우 비논리적이었다. 느린 동작으로 흐느적거렸으며 재빨리 방향을 바꾸지 못했다. U턴해서 뒤로 돌아설 때는 회전 반경이 컸다.... -바다-

     

    *예수님이 인간의 밥벌이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하늘을 나는 새를 보라. 씨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거늘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먹이시느니라라고 하셨다지만, 나는 이 말을 믿지 못한다. 하느님이 새는 맨입에 먹여주실지 몰라도 인간을 맨입에 먹여주시지는 않는다. --

     

    *돌아와서 책상 앞에 앉았다. 연필을 들면 열대의 숲과 바다가 마음속에 펼쳐진다. 숲을 향하여 할 말이 쌓인 것 같아도 말은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들끓는 말들은 내 마음의 변방으로 몰려가서 저문다....나는 사전에 실린 그 많은 개념어들의 상당 부분을 이해하지 못한다. 겨우 그 뜻을 짐작하는 단어도 고삐를 틀어쥐고 부리지는 못한다. 그 단어들은 낯설어서 근본을 알 수 없고 웃자라서 속이 비어 있다. 말이 아니라 헛것처럼 느껴진다. -남태평양-

     

    *이 여자아이가 또 여자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또 여자아이를 낳을 것이다. 나는 이 진부하게 순환되는 삶의 일상성 속에서 기적과도 같은 경이를 느꼈다. 삶은 느리고도 길게 계속되는 것이고, 무사한 그날그날 속에서 젖을 토하던 아이가 다 큰 여자로 자라는 것이다. -목숨-

     

    *장모님은 여러 가지 병이 겹쳐진 노환으로 2년쯤 입원해 있다가 세상을 떠났다. 불가피한 자연현상이었다. 유언에 따라 시신은 화장되었다. 소각로는 엘리베이터식이었다. 소각에 두 시간이 걸렸다. ‘소각 완료라는 글자에 불이 켜지고 소각로 문이 열렸다....그 글자는 추호의 모호성이 없었다. 그 글자는 운명의 선명한 모습을 단지 네 글자로 증거하고 있었다. 소각이 완료된 것이었다. 종말은 선명했고, 가벼웠다. 삶의 종말은 참혹하게도 명석했다. 그 흰 뼛조각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죽음의 보편성과 생명의 개별성에 관해서 생각했다. 나의 생각은 생명의 개별성에 걸려서 좌초되었다. -목숨2-

     

    *슬픔과 분노에 오랫동안 매달려 있는 것은 경제 살리기에 해롭다는 것이 그 혐오감의 주된 논리였다. 세월호에서 놓친 골든타임이 경제회복의 골든타임으로 살아났고 거기에 이념의 날라리들이 들러붙기 시작했다....정당한 슬픔과 분노를 벗어던져야만 먹고살기 좋은 세상이 된다는 말은 시작의 논리도 아니고 분배의 정의도 아니다. 그것은 정치적인 속임수일 뿐이다. 법치주의가 살아 있어도 법이 밥을 먹여줄 리는 없고, 밥은 각자 알아서 벌어먹어야 하는 것인데, 법치주의를 포기해야만 밥을 벌어먹기가 수월해진다면 이 가엾은 중생들의 밥은 얼마나 굴욕적인 것인가......슬픔과 분노는 특별히 재수가 없어서 끔찍한 재앙을 당한 소수자의 불운으로 자리매겨졌다. 그 소수의 고통을 사회적으로 표출하는 것은 다수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고 다수가 먹고사는 일에 해로운 결과가 된다고 힘센 목청을 가진 언설의 기관들이 힘을 합쳐서 소리질렀다. 소리질러서 낙인찍었고, 구석으로 몰아붙였다. 그렇게 해서 4.16의 슬픔과 분노는 특별히 재수없어서 재난을 당한 소수자의 것, 우는 자들만의 것, 루저들만의 것으로 밀려났다.....그 바다에서 하얀 손목들이 새순처럼 올라와서 대통령의 한복 치맛자락을 붙잡고, 친박 비박 친노 비노 장관 차관 이사관 들의 바짓가랑이에 매달려 우는데, 그 바다는 국가가 없고 정부가 없고 인기척이 없는 무인지경이었다. 손목들은 사람 사는 육지를 손짓하다가 손목들끼리 끌어안고 울었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기진하였다 -세월호-

     

    *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품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만져지지 않는 것들과 불러지지 않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건널 수 없는 것들과 모든, 다가오지 않은 것들을 기어이 사랑이라고 부른다. -바다의 기별-

     

    *삶은 풍화이며 견딤이며 또 늙음이다. 살아서 무엇을 이룬다는 일도 그 늙음과 견딤 속에서만 가능하다. 삶은 그림보다 무겁고, 그림보다 절박하고, 그림보다 힘들다. 그리고 삶은 그림보다 초라하다. 그림보다 꾀죄죄하고 그림과는 비교할 수 없이 훼손되어 있는 것이 삶의 올바른 풍경이다. -여자6-

     

    *음악은, 그리고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인간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결핍의 소산인 것만 같다. 스스로의 결핍의 힘이 아니라면 인간은 지금까지 없었던 세계를 시간 위에 펼쳐 보일 수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모든 상상력은 스스로의 결핍에 대한 자기확인일 뿐이다. --

     

    *일산은 넓은 들이다. 곡릉천, 창릉천 두 개울이 흘러서 한강 하구에 닿는데, 신석기 유물들은 대부분 이 두 하천 유역에서 출토되었다니, 이 개울이 사람들의 수만 년 터전임을 알 수 잇다....1990년에 시작된 신도시 개발사업으로 일산은 천지개벽했다. 황무지에서 농경지로, 농경지에서 신시가지로의 격변의 과정이 불과 60년 안에 이루어졌다. -고향3-

     

    *꽃은 식물의 성적인 완성이며, 존재의 절정이다. 그래서 꽃은 스스로 자지러진다. 꽃에는 그리움이 없다. 꽃은 스스로 아무것도 그리워하지 않으면서, 그 꽃을 바라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눈앞에 보이는 대상을 그리워하게 한다. --

     

    *11월은 사소하게 바스락거리던 것들이 모두 사라진다. 11월에는 이런 하찮고 가벼운 것들의 무거움에 마음을 다치기 십상이다... 11월에는 있음과 없음 사이에서 길을 잃기 십상이다... 11월에 연애를 하고 있는 내 친구는 말했다. “11월에 사랑하는 사람들아, 길에서 떨지 말고 골방으로 들어가서 살을 부벼라라고.

  • 밥벌이의 삶에 대해. | ju**su19 | 2016.09.08 | 5점 만점에 4점 | 추천:0
    아직 살아 있는 나는 죽어가는 그를 바라보았고, 그는 마지막 망막의 기능으로 아직 살아있는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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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살아 있는 나는 죽어가는 그를 바라보았고, 그는 마지막 망막의 기능으로 아직 살아있는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의 마지막 망막에 비친 살아 있는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마지막 망막에 비친 살아 있는 나의 모습은 어떠한 것이었을까. 죽어가는 그와 마찬가지로,
    한줌의 공기나 바람은 아니었을까. 그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무서웠다.
    (중략)
    딸아이가 공부를 마치고 취직해서 첫 월급을 받았다. 딸아이는 나에게 핸드폰을 사주었고
    용돈이라며 15만 원을 주었다. 첫 월급으로 사온 핸드폰을 나에게 내밀 때, 딸아이는 노동과 임금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고, 그 자랑스러움 속에는 풋것의 쑥스러움이 겹쳐 있었다.
    그때 나는, 이 진부한 삶의 끝없는 순환에 안도하였다.

     

    ..

     


    나는 근로를 신성하다고 우겨대면서 자꾸만 사람들을 열심히 일하라고 몰아대는 이 근로감독관들의 세계를 증오한다.
    나는 이른바 3D 업종으로부터 스스로 도망쳐서 자신의 존엄을 지키는 인간들의 저 현명한 자기방어를 사랑한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근로감독관들아, 제발 인간을 향해서 열심히 일하라고 조져대지 말아달라.
    제발 이제는 좀 쉬라고 말해달라. 이미 곤죽이 되도록 열심히 했다.

     

     



    본문 中


    '라면을 끓이며'란 이 산문집은 '김 훈'씨의 여러 산문집들 중, 독자들 기억에 남는 최고의 산문들만 뽑아
    출간한 책이라고 한다. 역시 기대만큼 삶을 바라보는 그의 시각이 굉장히 세밀하고 사실적이라 놀랍다.
    이 산문집은 그의 가족 이야기서부터 동해와 서해의 섬, 여행 등을 통해 만난 보통 사람들의 삶 구석구석을
    헤집어 풀어 내고 있다. 서민들의 사실적이고 세부적인 표현들은 왜이렇게 나약하고 슬픈 것인가.
    서민들의 삶을 그는 '먹고산다는 것의 안쪽을 들여다보는 비애'로 말한다.

    한국인이라면 한 평생 죽는 날까지 때가 되면 반드시 먹어야 하는 것이라면 '밥'일 것이다.
    그리고 대체식품인 라면이 있다.
    라면을 얼마나 먹나 싶었는데, 한국인들은 매 해 36억 개, 1인당 74.1개씩의 라면을 먹으며 살아간다고 한다.
    평균으로 잡았으니 서민들은 더 많은 양의 라면을 먹을 것이다. 어마어마하다.
    밥 대신 뜨거운 라면국물을 들이키고 일터로 나간다는 뜻이 아닌가.
    그의 산문집 제목으로 뽑힌 '라면을 끓이며'는 서민의 삶을 대변하는 것이고, 그래서 많이 쓸쓸하다.

    삶의 고단함을 깨닫는 시기는 바로 밥벌이의 역할이 되고서부터가 아닐까 싶다.
    서민들은 선택권 없이 흙수저로 태어났고, 오직 노동의 대가로서만 밥을 먹고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진부한 일상 속에서 행복과 기쁨을 찾아내고 있다.

    그는 분단된 한반도 남쪽에 선택하거나 기획한 의도없이 태어나 불신 가득한 정치정서 속에서 살아가는
    서민들에게 닥친 세월호 참사에 대해 개탄을 금치 못했다. 고통은 늘 고통당하는 계층에게만 책임져야
    하는 현실에 쓸쓸해 한다. 그것은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자꾸만 공회전하는 그의 아버지 시대와 별반
    다를게 없는 시대적 답습에 대한 괴로움이다. 그의 세월호 참사에 대한 글을 읽을 때 많이 괴로웠다.
    작가의 시대적 사명감을 가지고 그는 힘들지만 펜을 들었다. (아래 인용문 참조)

    생명의 아름다움은 본래 스스로 그러한 것이어서 사람이 입을 벌려 말할 필요는 없을 터이지만, 지난해
    4월 꽃보라 날리고 천지간에 생명의 함성이 퍼질 적에 갑자기 바다에 빠진 큰 배와 거기서 죽은 생명들을
    기어코 기억하고 또 말하는 것은 내가 아직도 살아 있기 때문이다. 나는 단지, 겨우 쓴다.



    산문집 챕터 2부에서 '돈'에 대한 산문은 이런 어그러진 한국사회의 모습을 담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밥벌이의 주체가 된 돈의 행방은 깨끗하지 못하다.

    관심있게 읽은 산문은 '몸'에 관한 챕터부문이다. 이제는 사라져가는 아날로그식 글쓰기에 대한 그의
    고집이 나는 아름답게 보인다.
    또한 진정한 아름다움에 대한 그의 관찰은 외모지상주의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반성의 시간을 갖게 한다.
    특히 여자의 몸에 대한 관찰은 아름다운 20대에서 꽃을 피우지만(가장 아름다울 시기니까) 나이먹은
    아줌마의 아름다움도 그 밀도에서 전혀 뒤지지 않음을 설명한다.

    서민들의 애환에 대한 밀도있는 산문집을 읽었다.
    많이 속상했고, 많이 아팠지만 다 풀어낸 듯 해 시원한 기분이 든다.
    마지막 챕터 '글'이란 산문 중에 박경리씨의 생전 모습을 써준 글은 당시 젊은 기자였던 저자의 성품까지
    보여져 글에 대한 신뢰감이 쌓인다.

    서민들의 세밀한 일상의 관찰력이 빛나는 산문집이다.

  • 막힘이 없다. | wf**ever | 2016.08.12 | 5점 만점에 4점 | 추천:0
    가장 처음 읽었던 김훈 선생님의 책이 무엇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가장 유명한 <칼의 노래>는 읽었고, <현...

    가장 처음 읽었던 김훈 선생님의 책이 무엇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가장 유명한 <칼의 노래>는 읽었고, <현의 노래>도 읽었고, <남한산성>도 읽은 기억이 있다. <저전거여행>은 1편만, <밥벌이의 지겨움>도 읽은 기억이 있다. 하지만, 어떤 책이 처음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처음 읽은 책을 가리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다만, 어떤 책을 처음으로 읽었기에 이토록 선생님 글에 빠져드는가가 궁금했을 뿐이다.

     

    광화문 교보문고가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 전, 반나선형의 입구 계단 끝자락에서 선생님의 사인회가 있었다. <칼의 노래>를 가지고 가서 사인을 받았더랬다. 그때 들었던 선생님의 목소리가 나의 머릿속에 남아 있다. 어떤 이야기였는지, 무슨 말씀을 하셨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그 낮고 굵은 음성만이 나의 기억에 남아있을 뿐이다. 얼굴과 글과 목소리가 일치되는 느낌이었달까... 그 모습이 너무도 완벽해 보여서, 그 완벽한 느낌이 고스란히 음성과 함께 나의 기억에 남았다.

     

    제목이 멋있었다. 너무나도 친숙한 라면이라는 것에, 그것을 끓이며 선생님은 어떤 느낌을 갖고 계셨을까, 그것은 또 어떻게 표현이 되었을까, 하는 궁금증도 커졌었다. 선생님의 글은 그저 막힘이 없어 보인다. 글의 내용처럼 연필로 꾹꾹 눌러 써내려 가는 힘도 느껴지고, 문장이 글이 되게 하기 위해 지우고 썼다를 반복하셨을 수고라고 해야하나, 노력이나 고민같은 것들도 느껴진다. 하지만, 완성된 글을 읽는 독자는 그저 그 글들에 막힘이 없음을 강하게 느낄 뿐이다. 무엇보다 글을 이루는 문장들이 짧고, 그 명료함에서 느껴지는 힘과 전달력은 강하다.

     

    말은 길어질수도 명료함을 잃는 것 같다. 글도 같아 보인다. 문장이 길어질수록 글은 방향을 잃고 방황한다. 글을 쓸 기회가 많지 않은 세상이다. 숫자로 이루어진 데이터들을 분석하는 일들을 주로 하는 직업이다. 그 분석한 결과들에 대한 글을 쓰기도 한다. 매번 느끼는 결론은, 쓰면 쓸수록 글쓰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말로 누군가를 설득하는 것도 어렵지만, 내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일은 더 쉽지 않다. 말은 늘어나고, 글을 길어진다. 돌이켜보면, 쓸데없는 말들과 글들이 너무 많다. 말과 글의 홍수 속에서 피곤함을 느낀다.

     

    이 책에는 선생님이 생활하시면서 접한 소소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간혹 소소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역시 단문들로 막힘이 없다. 남성적이며 굵고 시원한 느낌이다. 나의 생각은 언제쯤 명료해질 것이며, 나의 말과 글은 언제쯤 방황을 끝낼 것인가. 라면을 끓이진 않지만, 모니터 앞에서 키보드를 두드리며 생각에 잠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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