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로가기

KYOBO 교보문고

샤랄라 견과 선물 증정
교보문고 북데이
  • 교보아트스페이스 5-6월 전시
  • 손글씨스타
  • 손글쓰기캠페인 메인
  • 손글씨풍경
  • 교보 손글씨 2019 무료 폰트
박현채 평전
* 중고장터 판매상품은 판매자가 직접 등록/판매하는 상품으로 판매자가 해당상품과 내용에 모든 책임을 집니다. 우측의 제품상태와 하단의 상품상세를 꼭 확인하신 후 구입해주시기 바랍니다.
312쪽 | A5
ISBN-10 : 8984316229
ISBN-13 : 9788984316225
박현채 평전 [양장] 중고
저자 김삼웅 | 출판사 한겨레출판사
정가
16,000원
판매가
8,900원 [44%↓, 7,100원 할인]
배송비
2,600원 (판매자 직접배송)
19,000원 이상 결제 시 무료배송
지금 주문하시면 2일 이내 출고 가능합니다.
더보기
2012년 10월 16일 출간
제품상태
상태 상급 외형 상급 내형 상급
이 상품 최저가
6,000원 다른가격더보기
새 상품
14,400원 [10%↓, 1,600원 할인] 새상품 바로가기
수량추가 수량빼기
안내 :

중고장터에 등록된 판매 상품과 제품의 상태는 개별 오픈마켓 판매자들이 등록, 판매하는 것으로 중개 시스템만을 제공하는
인터넷 교보문고에서는 해당 상품과 내용에 대해 일체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교보문고 결제시스템을 이용하지 않은 직거래로 인한 피해 발생시, 교보문고는 일체의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중고책 추천 (판매자 다른 상품)

더보기

판매자 상품 소개

※ 해당 상품은 교보문고에서 제공하는 정보를 활용하여 안내하는 상품으로제품 상태를 반드시 확인하신 후 구입하여주시기 바랍니다.

* 본문 밑줄, 낙서 없고 사용감 없음
* 종이 미세변색 / 표지내부에 테이프 붙였다가 뗀 흔적 

판매자 배송 정책

  • 힘내라 우리국민! 힘내라 대한민국! 코로나-19 종식 기원 이벤트! - 19000원 이상 주문시 무료배송 - 코로나로 힘들어하는 우리국민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을 보탭니다. 1. 토/일, 공휴일을 제외한 영업일 기준으로 배송이 진행됩니다. 2. 단순변심으로 인한 구매취소 및 환불에 대한 배송비는 구매자 부담입니다. * 1월21일(화) 오후 ~ 1월 27일(월) 주문건은 1월 28일(화)부터 배송

더보기

구매후기 목록
NO 구매후기 구매만족도 ID 등록일
141 완전히 새책과 다름없습니다 고맙습니다 5점 만점에 5점 2417*** 2020.05.29
140 책 잘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5점 만점에 5점 like63*** 2020.04.04
139 잘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5점 만점에 5점 lcs9*** 2020.03.17
138 책들이 모두 깨끗하고 잘 받았습니다. 5점 만점에 5점 chi*** 2020.02.10
137 정말 깨끗한 새책입니다. 포장도 깔끔하게 해주시고 잘 받았습니다. 5점 만점에 5점 heo4*** 2020.01.14

이 책의 시리즈

책 소개

상품구성 목록
상품구성 목록

경제학은 어떻게 시대의 모순에 맞서는가? 시대의 모순과 대결한 불온한 경제학자의 초상을 그린『박현채 평전』. 이 책은 1970~1980년대, 당대 한국 사회의 중요한 이슈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자신의 생각을 펴온 대표적인 실천적 지식인, 박현채의 치열했던 삶과 사상을 한데 묶어 그 역사적 의의를 재조명한 것이다. 식민지 시대에 태어나 폭압적 군사정권 시기를 거친 박현채의 다채로운 삶을 전반적으로 다루고, 학계의 평가와 사후 그를 추모하기 위해 벌였던 사업 등에 관한 소개를 덧붙였다.

자신이 갈고닦은 경제학을 통해 현실에 뛰어들어, 군사 정권의 폭압과 남북 분단의 모순을 뛰어넘고자 했던 경제학자 박현채의 이야기를 통해 경제학자로서 그가 지향했던 자립의 경제학 의미를 읽을 수 있다. 나아가 경제가 삶의 중심 화두가 된 오늘날의 우리에게 경제학은 어떻게 시대의 모순에 개입하는지에 대한 가르침을 전한다.

저자소개

저자 : 김삼웅
저자 김삼웅은 1943년 전남 완도에서 태어났고, 고려대학교 정책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독립운동사 및 친일반민족사를 연구해왔고, 한국 근현대 인물들의 삶과 사상을 탐색하는 평전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제7대 독립기념관장,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이사,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 자문위원, 단재신채호선생기념사업회 이사 등을 지냈다. 현재는 신흥무관학교 100주년 기념사업회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친일정치 100년사』, 『한국 현대사 바로잡기』, 『을사늑약 1905년, 그 끝나지 않는 백년』, 『단재 신채호 평전』, 『백범 김구 평전』, 『약산 김원봉 평전』, 『장준하 평전』, 『죽산 조봉암 평전』, 『리영희 평전』, 『김대중 평전』, 『노무현 평전』 등이 있다.

목차

발간의 글_ ‘한겨레역사인물평전’을 기획하며(정출헌|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점필재연구소 소장)
머리말_ 박현채, 불운한 시대의 불온한 경제학자

1장 격동의 시대, ‘소년 투사’로 성장하다
암울한 식민지 시대, 면서기의 아들로 태어나다|좌익 친척들과 해방을 맞이하다|독서회를 조직, 사회주의 서적에 심취하다|어른 못지않은 사회의식으로 무장한 소년

2장 프롤레타리아를 꿈꾸던 청년 박현채
17세 소년, 빨치산 되다|목숨을 내걸지언정 그 길을 가야겠으니|소년들로 구성된 돌격중대 문화부 중대장 생활|원칙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대꼬챙이|임무 수행 도중 경찰에 체포되다

3장 ‘지식 보따리상’의 길에 들어서다
자신의 과거를 숨겨야만 했던 빨치산 출신 대학생|농연 연구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딛다|거침없는 성격, 전임 박차고 보따리 장사로|인혁당 사건에 연루, 감옥에서 한 해를 보내다|‘간첩 지식인’, 지식의 날개를 펴다|대중에 의한, 대중을 위한, 대중의 경제를 구상하다

4장 ‘박현채학’의 중심, 민족경제론
『민족경제론』, 경제사상에 단비를 뿌리다|관념적 이론을 넘어, 역사와 운동을 향하여|‘금서’의 딱지가 붙었음에도 동시대와 호흡한 명저|민족이 곧 민중이고, 민중이 바로 민주주의다

5장 피로 물든 시대, 목숨을 건 외침
인간성 회복을 위한 경제이론을 추구하며|엉뚱한 사건에 연루, 다시 옥고를 치르다|5ㆍ18 민주항쟁 전야, 심상치 않은 광주에서|광기의 시대, ‘농민 조직화’를 주장하다|왕성한 필력, 멈추지 않는 학문적 열정

6장 경제평론가에서 경제사상가로 거듭나다
사회구성체 논쟁의 시대가 열리다|경제사상가의 반열에 올라, 논쟁을 전개하며|즐기던 술ㆍ담배도 줄이고 글쓰기에 전념하다|유토피아를 꿈꾸며, 공동체주의를 향하여

7장 왕성한 저술 활동으로 이론을 펼치다
무크지의 시대, 단골필자로 등장하다|민족의 한이 서린 지리산을 답사하다|민중문학으로 관심을 확장시키다|‘한길역사강좌’의 인기 강사로 자리매김하다|고은, 리영희 등의 지식인ㆍ문인들과 막역한 교우

8장 6월항쟁의 격랑 속에서
저항적 지식인들, 출판계로 몰려들다|지식인들의 산행 모임 ‘거시기 산악회’ 참여|사유의 영역과 폭이 넓어진 ‘논설의 생산 공장’|분단에서 농어촌 문제까지, 시대의 화두를 아우르며

9장 외골수 지식인, 고난 끝에 날개를 달다
보상 바라지 않는 삶을 생활신조 삼아|줄탁동시, 박현채와 조정래의 만남|조선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취임하다|글쓰기에 대한 한결같은 열정을 보이며|민족민주운동을 바탕으로 한 한국 현대사 집필

10장 자서전 집필을 뒤로한 채 영면하다
해외 여행길 올라 중국 견문록 쓰기도|자서전 집필, 그의 말년을 갉아먹다|치열하게 살아온 민족경제학자, 세상을 떠나다|사후의 추모에서 이어진 기념사업들|후진에 남긴 ‘민봉학’의 과제들

주석|주요 저술 및 참고문헌 목록|박현채 원고 목록|연보|찾아보기

책 속으로

소년 박현채의 시대 인식에는 남다른 측면이 있었다. 공직자임에도 불구하고 남로당과 관계를 맺었던 아버지, 그리고 이념가인 친척들 곁에서 성장하면서 생산직 노동자들에게 애정을 갖게 되고 그쪽으로 자신의 장래를 설계한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우수한 인재들...

[책 속으로 더 보기]

소년 박현채의 시대 인식에는 남다른 측면이 있었다. 공직자임에도 불구하고 남로당과 관계를 맺었던 아버지, 그리고 이념가인 친척들 곁에서 성장하면서 생산직 노동자들에게 애정을 갖게 되고 그쪽으로 자신의 장래를 설계한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우수한 인재들이 거의 사무직을 택하는 데 비해 박현채는 어린 나이에도 생산직 노동을 선호했다.
그는 생산 활동을 하는 계급에게 기대를 거는 것이 역사의 진보 편에 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간에 읽은 관념적 영웅전의 결론으로서 노동자의 편을 택했던 것이다. 이런 고민 가운데 박현채는 좌파 서적들을 탐독하기 시작했으며 마르크스주의 글 읽기 운동에 참여한다. 이런 선택은 학교에서의 독서회 활동으로 이어진다. (31~32쪽)

박현채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50년 10월 자발적으로 입산하여 빨치산 광주 지구 부대원이 된다. 17살의 소년 빨치산이 되어 2년여 동안 활동하고도 용케 살아남았지만, 그는 이로 인해 평생 이마에 좌파의 낙인이 찍힌 채 살아가게 된다. 박현채는 회고록에서 자신의 빨치산 입산과 활동, 하산 과정을 남겼다. 또한 작가 조정래(趙廷來, 1943~)는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10권에서 그의 빨치산 활동을 모델 삼아 ‘소년 전사’ 조원제를 그려냈다. 조정래는 박현채와 지리산, 백아산 등 그의 활동 무대를 동행하여 취재한 후 현실감 넘치는 문장으로 ‘소년 전사’를 묘사했다. (47쪽)

박현채의 『민족경제론』은 수난을 겪었지만 그럼에도 고전의 반열에 오르게 되고, ‘민경’이라는 약칭으로 불리면서 대학생들의 필독서가 되었다. 1970~1980년대 리영희, 송건호 등의 일련의 저서와 함께 청년들의 ‘의식화’를 위한 저작이 된 것이다. 진보 진영에는 시대의 복음서였지만 보수 세력에게는 저주의 금서였다. 이들 작품은 많은 청년들에게 폭압과 질곡의 시대를 극복하게 하는 정신적 자양분이 되었다. (111쪽)

박현채는 흔히 좌파, 즉 사회주의 이념가로 분류된다. 본인도 1990년대 초반, 동구 사회주의권의 붕괴를 지켜보면서 큰 충격을 받고 정신적인 좌절을 겪었다고 한다. 20세기에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대립하고 있을 때 그가 사회주의적인 지향을 보인 것은 분명하다. 그의 많은 글들에서도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지향성이 다분히 엿보인다. 하지만 박현채 사상의 핵심은 현실 자본주의와 사회(공산)주의를 뛰어넘는 이데올로기로서 공동체(코뮌) 정신이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공동체론, 공동체 운동’은 박현채에게 대단히 중요한 주제였다. (157쪽)

‘민중’은 박현채의 자아이자 사상이고 이념이자 이상이었다. 백성ㆍ인민ㆍ국민ㆍ민중이라는 때마다 달라지는 용어와는 상관이 없었다. 이 땅의 주인이면서도 수탈을 강요당해온, 그러면서도 이 땅을 지켜온 사람들의 총칭이었다. 그는 민중의 해방을 위해서 빨치산이 되었고, 반체제 지식인이 되었고, 민족경제학자가 되었다. 늘 억눌리고 짓밟히고 쫓기고 궁핍에 시달리면서도 추구해온 가치였다. (173쪽)

민족ㆍ민주ㆍ민중ㆍ자주ㆍ민생의 담론이 담긴 민족경제론을 자신의 실천 가치로 삼은 박현채는, 전사이면서 학자였다. 기존의 상식과 상투성을 벗어던지고, 맨살로 역사의 현장, 지성의 광장에 우뚝 섰다. 그가 서울대 재학 시절 스스로에게 붙였던 ‘민봉(民峯)’이라는 호를 달아, 그가 이룬 성과를 ‘민봉학(民峯學)’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그는 후학들에게 많은 과제를 남겼다. (252쪽)

[책 속으로 더 보기 닫기]

출판사 서평

경제학은 어떻게 시대의 모순에 맞서는가 현실을 넘어서 자립의 경제학을 꿈꾼 어느 거인의 초상 1980년대의 지식인 및 학생들에게 ‘사회구성체 논쟁’은 시대의 모순을 해명하려는 화두였다. 폭압적인 군사 정권 아래서 당대의 주요 모순을 규명하려는 논쟁...

[출판사서평 더 보기]

경제학은 어떻게 시대의 모순에 맞서는가
현실을 넘어서 자립의 경제학을 꿈꾼 어느 거인의 초상

1980년대의 지식인 및 학생들에게 ‘사회구성체 논쟁’은 시대의 모순을 해명하려는 화두였다. 폭압적인 군사 정권 아래서 당대의 주요 모순을 규명하려는 논쟁이었기에, 진보 진영의 상당수가 직간접적으로 이 논쟁에 뛰어들었다. 그 시발점을 만든 이가 바로 박현채였다. 그야말로 동시대의 핵심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이슈메이커였던 셈이다.
이슈메이커로서 박현채의 저력은, 그가 당대의 모순을 회피하지 않고 직면한 데에서 비롯되었다. 유신 체제에서 대학생들은 그의 『민족경제론』을 발판 삼아 당대의 문제들에 대한 시야를 열어나갔고, 책은 시대의 필독서로 자리 잡았다.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이 발표했던 ‘대중경제론’ 역시 박현채의 개입을 통해 탄생한 작품이다. 그는 자신이 갈고닦은 경제학을 통해 현실에 뛰어들려 했고, 그것이야말로 그에게는 경제학의 목적이자 학술적 실천이었던 것이다.
경제가 삶의 중심 화두가 된 우리 시대의 관점에서 본다면, 박현채를 되돌아보는 것은 경제학이 어떻게 시대의 모순에 개입하는가를 되짚어보는 작업이다. 군사 정권의 폭압, 해외 독점자본의 전방위적 압력, 그리고 남북 분단의 모순을 넘어서려 했던 경제학자로서 그가 지향했던 자립의 경제학은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시대의 우리에게도 큰 울림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한국 현대사의 대표적 지성 박현채에 대한 최초의 평전
1970~1980년대의 한국 지성사를 논할 때, 박현채(朴玄埰 , 1934~1995)는 반드시 거론되어야 할 인물이다. 그는 당대 한국 사회의 중요한 이슈들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자신의 생각을 펴온 대표적인 실천적 지성이다. 폭압적 군사정권 시기에 그가 집필한 『민족경제론』(1967)은 지식인과 학생들의 필독서로 자리 잡았으며, 1971년 대선에서는 김대중 대통령 후보의 경제정책인 ‘대중경제론’의 토대를 구축하는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또한 1980년대 한국 지성계를 뒤흔든 사회구성체 논쟁에 불을 지핌으로써, 당대의 핵심 모순에 대한 지식인들의 논의를 끌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당대에 미쳤던 지대한 영향에 비해 동시대에 그에 대한 논의는 다소 주춤한 듯하다. 어린 시절 일본어로 서구 사상, 특히 좌파 사상을 받아들였으며, 사회과학 특히 경제학에 중심을 둔 그의 포지션상 고담준론의 용어들과 수치로 표현되는 데이터를 근거로 자신의 생각을 펼쳐나간 측면이 있기에, 그의 글은 지금의 독자들이 읽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또한 박현채를 언급할 때 가장 먼저 거론되는 ‘민족경제론’에 붙은 ‘민족’의 의미가 지금의 우리에게는 다소 낡게 다가오는 것 또한 현실이다.
그러나 한국 현대 지성사를 조망할 때 박현채는 반드시 되짚어봐야 할 거목이다. 평전 전문 필자라 해도 과언이 아닌 김삼웅은 박현채 생전에 직접 강연을 들으러 다니기도 했으며, 그의 저서들을 검토하고 박현채의 지인 및 가족들을 만나 교감한 끝에 이번 평전을 내놓았다. 박현채의 치열했던 삶과 사상을 한데 묶어 그 역사적 의의를 되살려보았다.

박현채, 불운한 시대의 불온한 경제학자
박현채는 누구인가? 1934년 태어난 박현채는 어릴 적부터 박헌영과 함께 활동한 이모부, 사회주의운동을 한 당숙 등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한다. 주변 친인척들의 영향으로 박현채는 자연스럽게 민족 해방과 사회주의운동을 접하게 된다. 학창 시절 마르크스의 사상에 심취해 있던 박현채는 17세가 되던 해 빨치산으로 입산하여 광주 지구 부대원이 된다. 소년돌격중대 문화부 중대장으로 발탁되어 활동하다 화순경찰서에 체포된 후 부모님의 노력으로 가까스로 석방될 수 있었다. 다시 학업에 집중한 끝에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에 입학하여 1950년대 후반까지 안병직, 정윤형, 전철환 등 후진국연구회 서클을 만들어 공부를 하기도 한다. 서울대 대학원 이론경제학과에 다니면서 한국농업문제연구회 연구원으로 들어간 박현채는 이후 비판적 농업경제학자들과 아시아적 생산양식의 문제, 원조경제의 본질, 자본주의 세계경제하에서 국민경제의 독자적인 존재 가능성 등을 검토하기 시작한다. 1964년에는 인혁당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했으나 이후 국민경제연구소를 설립하여 본격적으로 경제학자의 길에 들어선다. 도서출판 한길사와 ‘한길역사기행’, ‘한길역사강좌’ 등을 통해 ‘지리산과 민족사’에 대한 강연을 하기도 하고, 『태백산맥』을 연재 중인 조정래를 만나 자신의 지리산 체험을 구술하고 함께 답사하며 소년 전사 조원제를 묘사하는 데 생생한 정보를 전달한다. 『박현채 평전』에서는 식민지 시대 태어나 폭압적 군사정권 시기를 거친 그의 다채로운 삶을 전반적으로 다루고 학계의 평가, 사후 그를 추모하기 위해 벌였던 사업 등을 소개한다.

지금 우리가 박현채를 되돌아보는 의미
어릴 적부터 좌파 친척들의 영향을 받아 사회주의 사상에 몰두했던, 그리고 마르크스의 서적에 심취했던 박현채는 왜 ‘민족’이라는 문제를 자신의 화두로 삼았을까? 박현채는 흔히 좌파로 분류된다. 실제로 그가 남긴 수많은 글들에서도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본인도 동구 사회주의권의 붕괴를 보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박현채의 궁극적 고민은 시대적 모순을 고민한 데에서 비롯되었다. 박정희의 유신 체제와 전두환의 5공 체제 시절, 비판적 지식인들은 직장에서 쫓겨나거나 사회 활동을 억압당했고, 아첨하는 이들과 기회주의자들만이 풍미했다. 그는 이런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당대의 주요 모순을 고민하면서 민족과 분단의 문제를 자신의 화두로 삼은 것이다. 당대의 모순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진정한 민족해방, 낡은 것의 청산을 통한 민주주의의 실현, 민족 분단 상황의 극복에 의한 통일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한편 박현채 사상의 핵심은 현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뛰어넘는 이데올로기로서의 공동체 정신이었다. 그가 지향했던 공동체 문화는 지금 우리에게도 고민해볼 만한 화두라 할 수 있다. 물론 세계화 시대에 ‘민족’은 일견 낡은 화두처럼 보일 수 있지만 여전히 금융위기와 외환위기로 경제위기를 반복해서 겪고 있고, 분단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지금, 그가 지향했던 자립적 공동체로서의 국가는 우리에게 의미 있는 화두일 것이다.

|본문 요약|

소년 빨치산에서 경제학자로

1~3장에서는 박현채의 어린 시절부터 한국농업문제연구회(농연)의 연구원으로 재직하기까지를 담았다. 박현채는 암울한 식민지 시대, 면서기의 아들로 태어나 박헌영과 함께 활동한 좌익 친척들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자연스레 사회주의 사상과 민족해방운동을 접했다. 이런 환경적 영향으로 부모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17살에 빨치산에 가담하여 소년들을 주축으로 조직된 돌격중대 문화부 중대장으로 활동한다. 이때의 삶은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에 등장하는 소년 전사 조원제로 그려지기도 한다. 빨치산 활동 중 경찰에 체포되어 일상으로 돌아온 그는 학업에 전념하여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에 진학한다. 이후 서울대 대학원 이론경제학과에 다니면서 농연의 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자신의 학문적 기틀을 만들어간다. 이처럼 소년 빨치산이 경제학자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이 엄혹한 시대 상황과 함께 기술되고 있다.

시대를 통찰하는 경제평론가의 삶
4~6장에서는 ‘박현채학’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민족경제론부터 1980년대 가장 뜨거운 논쟁 중 하나였던 사회구성체 논쟁까지 경제평론가로서의 박현채의 삶을 담았다. 박현채의 민족경제론은 당시 박정희가 자립경제론을 내세우면서도 비자립적인 재벌 중심의 경제성장을 추구한 데 대한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나아가 1960년대 민족 자주성과 민중적 삶의 회복에 대한 자각에서 출발해 1970년대 유신 독재 시기의 민주화운동 및 1980년대 민중운동에 중요한 실천적 가치를 제공했다고 평가받는다. 이렇게 박현채의 민족경제론은 한국 경제사상사에 큰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특히 1971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선거에서 발표한 대중경제론의 기반을 마련하기도 했다. 아울러 한국과 한국 자본주의의 근본적 성격을 논하고 당대의 모순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던 사회구성체 논쟁이 당시 얼마만큼의 파급력을 갖고 있었는지 소개한다.

실천적 경제학자의 마지막 모습
7~10장에서는 말년의 박현채의 모습을 담았다. 우선 1989년 조선대학교에 자리 잡기 전까지 20년간 재야 경제학자로 활동하며 1970~1980년대 군사정권의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사회변혁운동에 앞장섰던 실천적 경제학자로서의 삶에 주목한다. 박현채는 조선대학교 교수를 지내면서 생활의 안정을 찾기 시작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글쓰기에 대한 열정만은 한결 같아 수많은 저서를 남겼다. 말년에는 조정래 부부와 해외여행을 다녀오면서 중국 견문록을 남기기도 했으며, 죽음의 순간까지 자서전 집필에 몰두했으나 끝내 마치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 그의 갑작스런 죽음은 가족들뿐만 아니라 동료와 후학들에게도 충격이었다. 사후 ‘고 박현채 10주기 초모집ㆍ전집 발간 위원회’가 구성되어 추모집이 간행되는 등 그의 사상과 일생을 추모하기 위한 추모 사업이 진행되었는데 마지막 장에서는 이런 박현채 사후의 내용을 담고 있다.

[출판사서평 더 보기 닫기]

책 속 한 문장

회원리뷰

교환/반품안내

※ 상품 설명에 반품/교환 관련한 안내가 있는 경우 그 내용을 우선으로 합니다. (업체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교환/반품안내
반품/교환방법

[판매자 페이지>취소/반품관리>반품요청] 접수
또는 [1:1상담>반품/교환/환불], 고객센터 (1544-1900)

※ 중고도서의 경우 재고가 한정되어 있으므로 교환이 불가할 수 있으며, 해당 상품의 경우 상품에 대한 책임은 판매자에게 있으며 교환/반품 접수 전에 반드시 판매자와 사전 협의를 하여주시기 바랍니다.

반품/교환가능 기간

변심반품의 경우 수령 후 7일 이내, 상품의 결함 및 계약내용과 다를 경우 문제점 발견 후 30일 이내

※ 중고도서의 경우 판매자와 사전의 협의하여주신 후 교환/반품 접수가 가능합니다.

반품/교환비용 변심 혹은 구매착오로 인한 반품/교환은 반송료 고객 부담
반품/교환 불가 사유

소비자의 책임 있는 사유로 상품 등이 손실 또는 훼손된 경우(단지 확인을 위한 포장 훼손은 제외)

소비자의 사용, 포장 개봉에 의해 상품 등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예) 화장품, 식품, 가전제품 등

복제가 가능한 상품 등의 포장을 훼손한 경우 예) 음반/DVD/비디오, 소프트웨어, 만화책, 잡지, 영상 화보집

소비자의 요청에 따라 개별적으로 주문 제작되는 상품의 경우 ((1)해외주문도서)

디지털 컨텐츠인 eBook, 오디오북 등을 1회 이상 다운로드를 받았을 경우

시간의 경과에 의해 재판매가 곤란한 정도로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 정하는 소비자 청약철회 제한 내용에 해당되는 경우

1) 해외주문도서 : 이용자의 요청에 의한 개인주문상품이므로 단순 변심 및 착오로 인한 취소/교환/반품 시 해외주문 반품/취소 수수료 고객 부담 (해외주문 반품/취소 수수료는 판매정가의 20%를 적용

2) 중고도서 : 반품/교환접수없이 반송하거나 우편으로 접수되어 상품 확인이 어려운 경우

소비자 피해보상
환불지연에 따른 배상

- 상품의 불량에 의한 교환, A/S, 환불, 품질보증 및 피해보상 등에 관한 사항은 소비자분쟁해결 기준 (공정거래위원회 고시)에 준하여 처리됨

- 대금 환불 및 환불지연에 따른 배상금 지급 조건, 절차 등은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리함

판매자
saboni70
판매등급
특급셀러
판매자구분
일반
구매만족도
5점 만점에 5점
평균 출고일 안내
2일 이내
품절 통보율 안내
6%

바로가기

최근 본 상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