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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영 Zero 영(소설, 향 1)(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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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장
ISBN-10 : 1160261539
ISBN-13 : 9791160261530
0 영 Zero 영(소설, 향 1)(양장본 HardCover) [양장] 중고
저자 김사과 | 출판사 작가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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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28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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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시리즈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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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누구를 잡아먹을 것인가? 시종일관 ‘나’의 입장에서 서술되는 자기고백적 서사로 이루어진 일인칭소설 『0 영 ZERO 零』. 주인공인 나는 식인食人의 세계관을 지니고 있다. 나에게 이 세계란 누군가를 잡아먹지 않으면 잡아먹히는 필연적인 승부의 세계다. 그렇기에 나는 도시에서 가장 쉽고 싸고 안전한 데다 감정까지 지닌 재화인 인간을 적절히 이용하여 이 세계에서 살아남고자 한다.

나는 모든 것이 찰나로 스쳐 지나가는 도시에서 아무도 죽지 않는 사냥, 그리고 피가 없는 전쟁을 계속해나가며 이 세계의 공허함을 폭로한다. 인생은 영원히 되풀이될 수밖에 없는 포식과 피식의 과정일 뿐이며, 세간의 소문과는 달리 교훈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고 선언하는 나는 이 세계의 무의미함과 가치 없음을 깨닫게 하는 맹독성의 구원자이다.

나는 개화, 문명화된 도시의 식인종으로서 사냥감을 찾아 헤매고, 세련되고 우아한 태도로 은밀하고도 사소한 방법을 통해 타인의 삶을 불행에 빠뜨린다. 남자친구, 동료, 제자, 가족 등 주위 사람들을 향한 악마적인 나의 시선을 따라 우리의 시선도 함께 이동하다가, 나의 내밀한 고백에 경악하면서도 우리는 어느새 타당성과 합리성을 찾고자 하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불온한 세계를, 다시금 낯설게 인지하게 될 것이다.

저자소개

저자 : 김사과
1984년 서울 출생. 2005년 「영이」로 창비신인소설상을 수상하며 등단. 소설집 『02』 『더 나쁜 쪽으로』, 장편소설 『미나』 『풀이 눕는다』 『나b책』 『테러의 시』 『천국에서』 『N.E.W.』, 산문집 『설탕의 맛』 『0 이하의 날들』이 있다.

목차

1부 09
2부 97
텅 빈 세계, 맹독성의 구원자 ― 김사과 × 황예인 대화 189

책 속으로

성연우는 나에 대한 비난을 이어갔다. 내가 그간 그에게 행했다고 주장하는 온갖 정신적인, 무형의 공격들, 오만하며 고압적이기 짝이 없는 세상을 향한 시선, 그의 주변 사람들에 대한 지속적인 무례를 포함한 온갖 무례, 더럽고 무가치한 협잡, 도대체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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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연우는 나에 대한 비난을 이어갔다. 내가 그간 그에게 행했다고 주장하는 온갖 정신적인, 무형의 공격들, 오만하며 고압적이기 짝이 없는 세상을 향한 시선, 그의 주변 사람들에 대한 지속적인 무례를 포함한 온갖 무례, 더럽고 무가치한 협잡,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펼치는지 모르겠는 역겨운 장난질들, 무엇보다도 나와의 만남을 통해서 인간에 대한 엄청난 회의에 빠져들었다고, 경악과 충격, 배신감과 모멸감 등등에 대해서 횡설수설 주절대는 그는 돌아버린 말년의 니체를 떠올리게 하는 데가 있었다. _13p

흥미로운 것은 그가 온몸으로 풍겨내는 바로 그 느낌, 그것이 정확히 그가 나를 비난하는 이유였다는 것이다. 그는 내가 멀쩡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알면 알수록 무섭고 위험하며 수상하고 알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미안하게도 그가 설명하는 인간상은 누가 봐도 나보다 그에게 훨씬 더 적절해 보였다.
거울을 좀 보시죠, 성연우 씨? _17p

본론으로 돌아와서, 단도직입으로 이야기의 클라이맥스로 돌격하자면, 나 알리스 청이 불쌍한 피터 슐츠, 아니 그때까지는 아직 김명훈이었던, 선생님들도 멍훙 킴 정도로밖에 부르지 못했던 정말로 불쌍한 우리의 명훈이의 구원자가 되어줬다는 것이다. 나도 나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 몰랐다. 나는 그저, 정말로 명훈이가 좀 안되어 보여서 손을 뻗은 것뿐이다. 30-31p

인간은 기본적으로 식인食人하는 종족이다. 일단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 윤리와 감정에 앞서서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무슨 말인고 하니, 세상은 먹고 먹히는 게임이라는 것이다. 내가 너를 잡아먹지 않으면, 네가 나를 통째로 집어삼킨다. 조심하고, 또 경계하라. _46p

누군가 나에게 성공한 식인종으로서, 예비 식인종들에게 해줄 말, 나누어줄 지혜 같은 것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할까? 하하! 솔직히, 사람을 잡아먹는 데 지혜 따위 필요 없죠. 그리고 식인종이 뭐 특출난 종족이 아니다. 식인종 또한 식인종에게 잡아먹힌다. 세기의 식인종도 다른 식인종에게 잡아먹히는 순간 쫑 나고 마는 것이다. 그게 다다.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부지런히 머리를 굴리고, 몸을 움직여야 한다. 그게 전부예요, 여러분. _56p

만약 내가 예술가가 되었다면, 그럴 만한 재능이 나에게 있었다면, 꽤 잘해나가지 않았을까? 아니 대단한 성공 가도를 달렸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에겐 별로 그런 야망은 없다. 재능도 없는 데다가 정말이지 아무 야심이 없다. 나는 나의 이 소박하고 평화로운 세계가 좋다. 나만의 완벽한 세계. 이따금 흥미로운 손님을 초대하여 잔치를 열고, 취하고, 춤을 추고, 춤을 추다가…… 12시가 땡 치면 모든 것이 현실로 돌아오는……. _84p

하지만, 알다시피,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모든 것은 네가 어떻게 하는가에 달렸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죄다 네 탓이라는 말이다. _102p

하지만 이게 전부 다 너의 의지 덕분이라는 것, 너의 미친 장난 덕분이라는 것을 안다. 그 장난을 빼면 너는 시체지. 아무것도 없어. 아무것도. 너는 영혼이 없어. 이해해? 젠장 어떻게 이해하겠어, 영혼이 없는데……. 너는 완전히 제로야. 완전히 텅 빈…… _166p

결과적으로 내가 그에게 저지른 악행은 없다. 그가 주장하는 모든 것은 본인의 망상이다. 그 어디에 학대의 증거가 있는지? 나는 바람을 피운 적도, 술에 취해 꼬장을 부린 적도, 그의 사생활을 침해한 적도 없다. 그가 스스로 굴러떨어진 것이다. 나의 유일한 잘못이라면 그가 티타늄 재질이기를 바랐던 것뿐. 정말이지 그게 잘못이라면 잘못이다. 하지만 말이죠 여러분……. _115p

안다. 성연우는 절대 나를 괴롭히지 못한다는 것을.
나는 앞으로 아주 잘 살아갈 것이라는 것을.
내 인생은 앞으로도 잘 흘러갈 것이라는 것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하여, 세간의 소문과 달리 인생에 교훈 따위 없다는 것. 인생은 교훈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0. 제로.
없다.
아무것도 없다.
지금 내가 응시하는 이 텅 빈 허공처럼 완벽하게 깨끗하게 텅 비어 있다. _19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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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도시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포식자들의 속삭임 은밀하게 일어나는 투명한 학살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계가 텅 빈 ‘제로’라는 것에 대하여 작가정신 〈소설, 향〉은 1998년 “소설의 향기, 소설의 본향”이라는 슬로건으로 첫선을 보인 ‘소설향...

[출판사서평 더 보기]

도시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포식자들의 속삭임
은밀하게 일어나는 투명한 학살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계가 텅 빈 ‘제로’라는 것에 대하여

작가정신 〈소설, 향〉은 1998년 “소설의 향기, 소설의 본향”이라는 슬로건으로 첫선을 보인 ‘소설향’을 리뉴얼해 선보이는 중편소설 시리즈로, “소설의 본향, 소설의 영향, 소설의 방향”이라는 슬로건으로 새롭게 시작하고자 한다. ‘향’이 가진 다양한 의미처럼 소설 한 편 한 편이 누군가에는 즐거움이자 위로로, 때로는 성찰이자 반성으로 서술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시리즈의 문을 여는 첫 작품은 김사과 작가의 『0 영 ZERO 零』이다.
전위적인 서사, 파격적인 형식으로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를 낯설게 인지하게끔 만드는 작가 김사과. 폭력과 범죄, 자본과 권력이 매섭게 휘몰아치는 양상을 극한까지 밀어붙이며 거칠 것 없이 파멸까지 나아가는 에너지로 가득 차 있던 ‘김사과 월드’는 이제 이 세계의 균열과 모순이 어디로부터 비롯되었는지를 더욱 확장된 시야로 비추며, 새로운 환상이 작동하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음을 선언한 바 있다. 이번 『0 영 ZERO 零』에서 김사과가 선보이는 것은 더욱 사소하고, 더더욱 은밀해서 명확히 짚어내고 명명할 수조차 없는 폭력이다. 그리고 그 폭력이, 특수한 악惡함이 평범성으로 전환되는 도시의 익명성에 숨어 소리 없이 이 한 사람의 생 전체를 휘감고 무너뜨리는 방식에 대해서다.
『0 영 ZERO 零』의 주인공인 ‘나’는 타인을 먼저 잡아먹지 않으면 잡아먹히고 만다는 식인食人의 세계관을 지니고 있다. ‘나’에게 살아남기 위한 조건이란 내가 누군가에게 먹잇감이 되어 망가지기 전에 먼저 타인을 내외면적으로 망가뜨리는 것뿐이다. 한쪽이 포식자가 됨에 따라 다른 한쪽이 피식자가 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승부의 세계에서 ‘나’는 사소하고도 은밀한 행위들을 통해 사람들을 불행에 빠뜨림에 따라 살아남고자 한다. 마치 세계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 듯한 태도로 이 세계의 부질없음과, 그러므로 오로지 삶의 소소한 즐거움을 위해 타인을 사용할 것을 제안하는 ‘나’의 목소리는 마치 독자를 향한 유혹의 밀어蜜語처럼 소설 곳곳에서 울려 퍼진다.
이번 김사과의 『0 영 ZERO 零』에는 김사과와 황예인 평론가의 대담이 수록되었다. ‘더 나쁜 쪽으로’ 진화한 김사과의 문제적인 인물과 폭력적인 일상사에 대하여 보다 열린 지평에서 논의하는 기회로, 선과 악, 진실과 거짓을 가르는 이분법적인 해석보다는 ‘나’의 세계를 둘러싼 역학 관계와, 식인하는 세계관 내에서 악이 곧 구원이 되는 아이러니에 대해 사유한다.

작가정신 〈소설, 향〉
소설, 향香을 담다 : 소설, 반향響을 일으키다 : 소설, 향向하다

[줄거리]
‘나’는 남자친구 성연우에게서 이별 통보를 받는다. 4년 남짓한 교제 기간 동안 ‘나’의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행위들로 인해 겪어온 괴로움을 토로하는 그 앞에서 나는 커피숍 안의 다른 손님들을, 그리고 방금 커피숍으로 들어선 남자를 의식하고 있다. 마치 사람들이 관객처럼 자신과 성연우의 이별 상황을 관망하고 있는 듯하지만 이 모든 상황을 본인이 설계했다는 견자見者적 인식으로 세상을 받아들이며 결백한 여자친구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한다.
이런 방식으로 ‘나’의 삶은 이루어진다. 누군가를 잡아먹지 않으면 잡아먹힌다는 식인食人의 세계관을 지닌 ‘나’는 사소하고 은밀한 방식들로 주위 사람들의 삶을 하나둘씩 몰락시켜 나간다. 추락이 더욱 완벽할 수 있도록 과도하게 타인의 위상을 드높이고, 타인의 불행을 커튼 삼아 자신의 불행을 가리며, 마치 장난감을 가지고 놀듯 타인을 가지고 놀다가 흥미가 떨어지면 밖으로 치워버린다. 암, 자살, 강제 입원 등 하나둘씩 몰락해가는 주위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나’에게 남은 것은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누구를 잡아먹을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헤어진 남자친구 성연우에게 ‘나’는 전화를 한 통 받는다. ‘나’가 타인을 향한 협잡을 어떻게 꾸며왔는지, 세상을 향해 내보이는 순진무구한 태도가 얼마나 인공적인지, ‘나’의 정체가, 실체가 무엇인지 간파한 듯 그간 ‘나’가 꾸며온 악행을 폭로하는 그의 발화 사이로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온다. “하나하나 차근차근 따져보라구. 네가 성연우를 가지고 논 것 같아, 아니면 그 반대인 것 같아?” 그리고 내 앞에 ‘나’의 사냥감이었던 박세영이 나타난다. ‘나’의 완벽한 희생자로서 이미 치워버린 줄 알았던 박세영이 악마의 형상으로 눈앞에 나타나자 ‘나’는 가면을 내려두고 내면의 악을 마구 쏟아내기 시작한다.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부지런히 머리를 굴리고,
몸을 움직여야 한다. 그게 전부예요, 여러분.”

한낮 도심의 한가한 스타벅스에서 주인공인 ‘나’는 남자친구인 성연우와 이별 중이다. 성연우는 ‘나’가 “오만하며 고압적이기 짝이 없는 세상을 향한 시선, 그의 주변 사람들에 대한 지속적인 무례를 포함한 온갖 무례, 더럽고 무가치한 협잡,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펼치는지 모르겠는 역겨운 장난질들”을 일삼는다며 비난을 성급하게 늘어놓지만, 정작 그 앞에서 ‘나’가 의식하고 있는 것은 그가 말하는 비난의 내용이 아닌 자신과 성연우의 모양새가 외부의 시선에 비치는 방식이다. 마음속으로는 성연우를 조롱하면서도 마치 연극 속의 주인공이 대사를 읊듯 순진하고 무결한 인물을 연기하는 ‘나’는 현재의 모든 상황을 자기의 주도권하에 주조해간다고 생각하며 완벽하게 스스로를 치장한다.

나는 스스로도 믿기지도 않을 정도로 맑고 또 차분한 목소리로 그에게 사과하기 시작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겠지만, 미안하다고, 아마도 연애라는 관계에 대해서 내가 많이 서툴렀던 것 같다고, 하지만 그것은 내 본심만은 아니었다고, 오빠를 향한 내 마음은 진심, 그것만은, 꼭 믿어달라고…… (18p)

『0 영 ZERO 零』의 주인공인 ‘나’는 식인食人의 세계관을 지니고 있다. ‘나’에게 이 세계란 누군가를 잡아먹지 않으면 잡아먹히는 필연적인 승부의 세계다. 그렇기에 ‘나’는 도시에서 “가장 쉽고 싸고 안전한” 데다 감정까지 지닌 재화인 인간을 적절히 이용하여 이 세계에서 살아남고자 한다. 독일 문학을 전공한 명문대 출신의 프리랜서 번역가이자 독립문학잡지의 편집위원이라는 타이틀, 그 타이틀을 통해 타인으로부터 얻는 맹목적인 신뢰, 이 세계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는 듯한 견자見者적인 태도, 이 모든 것들이 합쳐져 ‘나’는 “개화, 문명화된 도시의 식인종”으로서 사냥감을 찾아 헤매고, 세련되고 우아한 태도로 은밀하고도 사소한 방법을 통해 타인의 삶을 불행에 빠뜨린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식인食人하는 종족이다. 일단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 윤리와 감정에 앞서서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무슨 말인고 하니, 세상은 먹고 먹히는 게임이라는 것이다. 내가 너를 잡아먹지 않으면, 네가 나를 통째로 집어삼킨다. 조심하고, 또 경계하라. (46p)

도시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포식자들의 속삭임
은밀하게 일어나는 투명한 학살들

‘나’의 사냥 행위, 즉 먹잇감을 찾아 헤매고 덫을 놓으며 결국 그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리는 전반의 과정이 아주 사소하고도 은밀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타인에게 ‘나’는 쉽사리 간파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나’가 자처하는 것은 바로 구원자이다. ‘나’는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 이주한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친구 ‘김명훈’을 만나는데, 99퍼센트 백인으로 채워진 학급에서 명훈은 적응하지 못하고 그의 삶에서 ‘완벽한 바닥의 시점’에 위치하고 있다. 이런 명훈에게, ‘나’가 다가선다. 타인과 관계를 맺게 하고 자신만의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주는 ‘나’의 모습은 일면 명훈을 돕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나’의 이러한 행위는 타인의 더 완벽한 추락을 위한 하나의 실험과 다름없다. 명훈의 자살, 즉 명훈의 ‘피식’을 통해 연쇄먹이사슬을 연상하듯 주변 사람들의 포식 단계를 짚어가며 ‘나’가 하는 생각은 “하나의 인간이 견딜 수 있는 고통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하는 것이다.

명훈이 아버지와 명훈이는 산 채로 먹혔다. 독일이라는 음침한 나라가 꿀걱 삼켜버렸다. 아니면, 마리아 슐츠 씨가 잡아먹은 건가? 그리고 마리아 슐츠 씨는 토마스 슐츠 씨한테 잡아먹혔다. (...)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즉, 누구를 잡아먹을 것인가? (46-47p)

‘나’의 교양 강의 수업을 듣는 학생 ‘박세영’에게도 마찬가지다. ‘나’는 명훈 이후 세영에게 다시 한번 구원자의 역할을 맡기로 하지만 ‘나’의 구원적 행위란 “자신에게 미래가 없음을 인정하지 않”는 밀레니얼 세대인 세영에게 재능이 빛을 발할 수 없는 길을 안내함으로써 길을 잃게 하는 것이다. ‘나’는 친밀한 친구로, 좋은 선배이자 선생으로, 그리고 유순함을 지닌 여자친구로 보이지 않는 투명한 학살을 이어가며 사냥감들에게 은밀하게 속삭인다. 당신의 인생이 망가지는 것은 “내 탓이 전―혀 아니”라고.

진실된 자기 고백, 혹은 거짓 농락
더 ‘나쁜 쪽으로’ 진화한 김사과의 인물

『0 영 ZERO 零』는 시종일관 ‘나’의 입장에서 서술되는 자기고백적 서사로 이루어진 일인칭소설이다. ‘나’는 내밀한 속마음을 털어놓듯 우리에게 끊임없이 속삭인다.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서는 먼저 잡아먹어야 한다.’ ‘행복과 불행은 모두 당신의 선택에 달렸다.’ ‘타인을 이용해 평범하고 소박한 수준에서 행복을 바라는 건 상식적인 수준의 요구다.’ 오로지 삶의 소소한 즐거움을 위해 타인을 사용할 것을 제안하는 ‘나’의 목소리는 마치 독자를 향한 유혹의 밀어蜜語처럼 소설 곳곳에서 울려 퍼진다. 남자친구, 동료, 제자, 가족 등 주위 사람들을 향한 악마적인 ‘나’의 시선을 따라 우리의 시선도 함께 이동하다가, ‘나’의 내밀한 고백에 경악하면서도 우리는 어느새 타당성과 합리성을 찾고자 하며, 이윽고는 직접적으로 사냥감이 되기 전에 먼저 사냥꾼이 될 것을 제안하는 ‘나’와 우리의 거리는 이미 좁혀져 있다. “김사과 소설을 읽을 때의 가장 큰 쾌감은 이상한 인물을 생상하게 체험하는 데서 온다”는 황예인 평론가의 말처럼 우리는 ‘나’와 동질감을 느끼기도 하고, 순식간에 위화감을 느끼기도 하면서 선과 악, 진실과 거짓 사이에서 끊임없이 혼동하며 소설 속에서 헤매고, 또 헤매게 된다. 너도 사실은 그렇게 느끼지 않느냐고, 나도 너랑 같은 평범한 사람이라는 ‘나’의 속삭임을 듣는 채로.

세상 사람들이 다 내 불행을 바란다. 그것은 진실이다. 어쩌면 세상에 대한 유일한 진실이다. 김지영 선배는 미친 것이 아니라 진실을 말했다. 좀 더 정확하게 서술하자면, 사람들은 누군가 각별한 타인의 불행을 바란다. 각별한 타인의 불행을 커튼 삼아 자신의 방에 짙게 드리워진 불행의 그림자를 가리고자 한다. _123p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한마디로 죄다 네 탓이라는 말이다.”
선善도 악惡도 교훈도 없는 세계, 이 세계는 텅 빈 ‘제로’다

‘나’는 모든 것이 찰나로 스쳐 지나가는 도시에서 ‘아무도 죽지 않는 사냥’, 그리고 ‘피가 없는 전쟁’을 계속해나가며 이 세계의 공허함을 폭로한다. 인생은 영원히 되풀이될 수밖에 없는 포식과 피식의 과정일 뿐이며, ‘세간의 소문과는 달리 교훈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고 선언하는 ‘나’는 이 세계의 무의미함과 가치 없음을 깨닫게 하는 ‘맹독성의 구원자’이다. 김사과 소설의 특성이 독자들을 작품 속 세계에 깊숙이 끌어들여 독자로 하여금 작품 내외의 경계를 허무는 것인 만큼 우리는 김사과의 이번 소설을 통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불온한 세계를, 다시금 낯설게 인지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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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

회원리뷰

  • 0 영 zero 零 | et**amus | 2020.04.07 | 5점 만점에 4점 | 추천:0
    주인공인 '나=알리스'의 이야기가 일인칭 형식으로 이야기 되는 소설이다.첫 장면에서 성연우라는 남자친구에게 카페에서 이별 통보...

    주인공인 '나=알리스'의 이야기가 일인칭 형식으로 이야기 되는 소설이다.

    첫 장면에서 성연우라는 남자친구에게 카페에서 이별 통보를 받는 '나'는 언뜻 굉장히 나약하고, 잘못된 사람처럼 비쳐진다. 그런 이별 장면을 카페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르는 체하면서 듣고 있다.

    이별 통보를 하고 카페를 박차고 나가는 성연우를 '나'는 쳐다보기만 한다.

    이야기는 잠시 '나'의 어린시절 독일에서의 생활로 이어진다. 멋진 동양 꼬마 아이인 '나'는 모든 아이들의 인기를 얻는다. 그 무렵 같은 학교로 전학 온 한국인 남자 아이 '김명훈'을 내가 찌질이의 삶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 '나'는 명훈이를 찌질이의 삶에서 벗어나게 해 주면서 우월감을 느낀다.

    세월이 흘러 명훈이는 커밍아웃을 하고 잘지내던 남자친구를 놔둔 채 자살을 하고, 나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한국에서 유명한 대학의 교수로 지내면서 내 경쟁 상대 이민희의 대타 교수가 되고, 그 과정에서 박세영이란 제자와 만나 또 한 번 '나'를 우쭐대게 하는 계획을 세우게된다.

    이야기는 점점 '나'의 악마적 본성을 드러내는 과정으로 흘러가고, 내 유일한 가족인 '엄마'를 정신병동에 가두고 엄마가 죽기를 기다린다.

    1부에서 강력한 악마였던 '나'는 2부에서는 반전의 모습을 보인다. 그리하여 마지막에 '0'이라는 문장을 남기며 이야기는 끝이난다.

    사이코패스를 다루었다고 하기엔 너무 미약하고, 그렇다고 '無'의 의미를 다루었다고 하기에도 어딘가 미약해 보이는 이야기였지만, 읽는 내내 이 이야기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것을 계속 생각하게 했던 소설이다. 그러나 답은 명확하게 말할 수가 없던 소설이었다.


    p. 183
    0. 제로.
    없다.
    아무것도 없다.
    지금 내가 응시하는 이 텅 빈 허공처럼 완벽하게 깨끗하게 텅 비어있다.

  • "0 영 ZERO 零" 책표지를 보고 책제목을 보고 소설에 ...

    "0 영 ZERO 零"


    0 영 ZERO 零



    책표지를 보고 책제목을 보고 소설에 내용을 조금씩 가늠하고는 한다.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책에 관심을

    가지는 첫번째 단계가 아닐까.하지만 이책은 무수히 많은 의미를 부여하며

    영이라는 무의미...등등 어떤 내용일까 갈피를 잡을수가 없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걸까.분명 책속에는 저자에 생각과 의미가 분명히

    들어가있다.그다지 긴 소설인 장편소설이 아닌 그렇다고 짧은 단편소설도

    아니다.중편으로 이루어지 이소설은 금방 읽어내려가는 순삭소설이지만

    끝에 남겨되는 마지막 여운은 많은것을 부여하는 그런 소설이란 생각이든다.

    같은 책을 읽더라도 그책에 의미는 읽는자에 따라 달라지고 반대로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의미가 있다고한들 그책을 마주대하는 독자에 입장에서

    다른 해석으로 남을수도 있다.아무리 좋은 소설이라고 주변에서 칭찬일색인

    책들이라 할지라도 나에게는 무의미한 가치로 다가올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책은 그런 의미에서 참 많은 여운을 남기면서 오래토록 기억속에 

    남는 책이 될꺼 같다는 생각이 든다.소설이라는 장르는 허구로 이루어진

    가상에 이야기를 전제로 한다.하지만 이소설은 허구인들 현실속에 가능함을

    내비치는 현실과 가상을 넘나드는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글로써 자신이 쓴 책속으로 독자를 완벽하게 끌어들일수 있는 힘을

    가진 작가는 그리 많지 않다.독특하고도 특별한 소재를 이야기하는것

    같지만 그 내면에는 절대적인것이 아닌 사실 그대로에 날것인 인간에 내면속

    선과 악...그리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비수를 꽂는것같은 

    날카로움을 안겨주는 소설속으로 들어가보자.




    그저 평범한 도심 그곳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나라는 철저한 1인칭 화자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소설속에서 남자친구 성연우는

    나에게 이별을 고하고 있다.사랑하다 헤어지는게 남여에 관계라지만 

    이들에 이별은 특별함이 엿보인다.4년이라는 시간동안 사랑이라는 관계로 맺혀진 

    그들이지만 성연우는 이기적이면서 그런 행위들로 괴로웠던 상황들을 이야기하며

    나에게 이별을 고한다.내심 무심하듯 하면서 주변에 사람들은 그들에 

    대화속으로 들어와있다.남들의 불행에 귀가 쫑긋하고 관심이 가는 세상사람들의

    호기심은 나를 자극한다.성연우에게 마음속으로는 온갖 악담을 퍼붓고 있는

    나는 놀랍게도 세상에 이런 천사가 있을까 싶을정도에 온화하고 냉정한 목소리로

    남자친구에게 자신을 치장하고 주변사람들에게 자신은 이런 여자라고 과시라도

    하듯 세상 가녀픈 여자다운 면모를 보이려 노력하는 연극배우속 여주같은 모습으로

    나를 철저히 숨긴다.하지만 세상은 누군가를 잡아먹지 않으면 잡아먹히는 그런

    세상으로 나에게 존재한다.그렇게 내가 죽지 않기 위해 조금씩 조금씩

    주변 사람들을 갉아 먹으며 무너지게 만들며 살아왔다.어느것하나 모잘것없이

    살아온 나이기에 이런 식인세상에 인간세상에서 나는 스스로를 지키며 살아올수

    있었다.하지만 새로운 이야기에 반전은 자신이 그렇게 주변사람들을

    서서히 약점을 잡고 피라미드식 먹이사슬처럼 무너뜨리며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어느순간 그것이 반대인 상황은 아닌가하는 설정속에서 

    나라는 존재가 식인의 세계에 적응한것이 아니라 타인들이 자신을

    그렇게 훈련시키며 살아온것은 아닌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식인하는 종족이다.일단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

    윤리와 감정에 앞서서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무슨말인고 하니 세상은 먹고

    먹히는 게임이라는 것이다.내가 너를 잡아먹지 않으면 네가 나를 

    통째로 집어삼킨다.조심하고 또 경계하라....


    P.46




    철저히 세상속에 살아가면서 게임을 하듯 살아가는 사람들을 잡고 먹는 포식자로서의

    충실한 한 인간인것처럼 말하는 나는 어느 순간 반문을 가지며 누가 누구를 먹잇감으로

    생각한것이며 포식자였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진다.소설은 읽는 내내 무미건조한듯

    덤덤하면서도 세상을 다른시선으로 바라보듯 이야기하는 나라는 1인칭 화자는 

    이 세상을 악으로 바라보는듯 이야기하지만 결국엔 선도 악도 교훈도 없는 세계

    바로 제로인 세상이라고 말한다.솔직히 이 소설이 무엇을 말하는것인지 이해했다고

    생각하면 거짓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이해를 했다고 생각하는 찰나에 또

    미궁속으로 스며들고 멍했던 순간과 마주하기도 했다.김사과라는 작가가 원하는것이

    소설속으로 철저히 스며들어 빠져들기를 바라는것이 아닐까.그렇다면 제대로 

    성공했다는 생각이 든다.마지막 장을 덮으면서도 많은 생각속에서 길을

    찾아 헤매이는 미로속같은 책이란 생각이 드는 책이었다.이글을 쓰면서도

    어쩌면 아직도 미로속을 헤매이는지도 모른다.소설을 읽어야만 자신만에 답안지를

    작성할수 있을 소설로 남겨두고 싶다.당신에 답안지를 작성하고 싶다면 

    소설을 꼭 읽어보시길 바래본다.

  •           "네가... 네년이 얼마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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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가... 네년이 얼마나 해괴한 짐승인가 그것은 오래전에 눈치를 챘건만...."

     

     

     

     
    작가정신의 소설, 향은 중편소설을 다룬 시리즈다.

     

    그 첫 번째 소설이 김사과의 0 영 ZERO 零 이다.

     

     

    영국 형사 드라마 루터엔 알리스라는 범죄자가 나온다.

    천재적 두뇌를 가진 알리스는 부모를 살해하고 강도가 든 것처럼 꾸며놓았지만 예리한 루터에게 발각되고 만다.

    감쪽같은 연기와 알리바이로 무장했지만 범인에 대한 감각이 예리한 루터에게 꼼짝없이 발각된 알리스는 그로부터 루터의 주변을 돌며 루터에게 방해되는 것들을 제거하고 다닌다.

     

     

    이 책 속의 알리스를 보며 루터의 알리스가 떠올랐다.

    물론 이 책 속의 알리스는 이상한 나라의 알리스가 될 수도 있다.

     

     

    독특하다고 생각하며 읽었지만 어쩌면 우리 마음속에 깊이 묻어 두었던 악마적 기질을 끄집어 낸 이야기랄밖에.

     

     

     

     


    (너같이 무가치한 인간을 본일이 없어.) 네가 가진 지적인 능력을 오로지 타인들이 불행하도록, 그 불행을 기원하고 실행하는 데 바치고 있어. 그러는 가운데, 너는 너의 그 악행의 얼룩을, 네 끔찍한 감정과 상상의 찌꺼기를, 증거 없는 범죄의 흔적들을 죄다 나라는 인간 쓰레기통에 처박았어.

     

     

     

     

    주변인들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되고, 나보다 잘나가는 사람을 불행으로 이끄는 알리스.

    그녀는 언제나 웃음과, 넉넉함과, 상냥함과, 자제함으로써 사람들 앞에서 항상 매력적인 사람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그녀의 실체는 교묘함이다.

    교묘하게 흘리는 말과, 표정, 행동으로 완벽하게 보이는 사람들을 흠집 내고, 주변 사람들로 하여금 그 사람을 피하게 만드는 묘한 재주를 부린다.

     

     

    완벽하게 보이지만 완벽하지 않은 여자.

    남의 상처에 눈물을 흘리지만 속으로 웃는 여자.

    상냥하지만 악마 같은 여자.

    모든 관계를 자신이 컨트롤할 수 있다고 믿는 여자.

    그리고 그렇게 되도록 교묘함을 흘리는 여자.

     

     

    꾹꾹 눌러 담았던 악마적 기질을 맞닥뜨린 기분이었다.

    나에게도 알리스 같은 친구가 있었다.

    모두의 중심에 서야 직성이 풀리고, 모두의 관심을 받아야만 살아있음을 느끼고.

    자기보다 관심을 더 받는 친구를 쳐내야만 하는 운명을 가진 그런 친구.

     

     

    알리스를 대하면서 그 친구가 떠오른 건 내가 세영이나 성연우의 기분을 알기 때문이다.

    어딜 가나 그런 사람은 무리에 한 명 꼭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의 감정을 초토화 시키고 자기는 아무 잘 못 없다는 표정으로 무심한 듯 모두에게 잘못의 화살을 던져버리는.

     

     

    알리스를 통해 느꼈던 카타르시스는 아마도 내 속에 내재되어있던 나도 당하고만 살지 않을 거야!라는 외침이 아니었을까.

    독특한 주인공을 만난 기쁨이 있는 소설이다.

    뭐 이런 애가 다 있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런 애는 의외로 주위에 한 명 꼭 있다.

    당하기 전까지는 그 진의를 알지 못하는.

    당하고 나서도 그 진의를 믿지 못하는.

    그런 사람.

     

     

    첫 시작부터 매력적인 주인공으로 시작 한 소설, 향.

    앞으로 만나게 될 이야기들도 기대가 된다.

     


  • 0 영 ZERO 零 | na**hj | 2019.12.22 | 5점 만점에 4점 | 추천:0
    조금은 낯선 소설이다. 책 전체에 깔려있는 건 폭력과 파멸이다. 한낮 도심의 스타벅스에서 나는 성연우에게 이별을 통보받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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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은 낯선 소설이다. 책 전체에 깔려있는 건 폭력과 파멸이다.

    한낮 도심의 스타벅스에서 나는 성연우에게 이별을 통보받는다.

    독일 문학을 전공한 명문대 출신의 프리랜서 번역가이자, 독립 문학잡지의 편집위원인 나는

    그와 4년 넘게 연인 관계였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성연우는 나의 무책임과 이기심에

    괴로웠다고 울부짖는 그는 이별을 종용한다.

    그럼에도 나는 마치 결백하다는 태도를 취하며 가여운 여자친구 역할을 완벽하게 해낸다.

    이런 태도야말로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나는 내가 먼저 잡아먹지 않으면 잡아먹히고 만다는 세계관을 지내고 있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선 작은 사소한 것들로 시작하여 그들을 파멸로 이끈다.

    오로지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서 부지런히 머리를 굴리고 행동할 뿐이다.

    인간의 약한 감정을 교묘하게 이용해서 내가 살아갈 방법을 찾을 뿐이다.

    내가 가진 타이틀도 타인을 덫에 걸리게 하는데 훌륭한 도구가 된다.

    그 타이틀을 이용해 박세영이라는 어린 제자에게 보이지 않는 폭력을 가하며

    서서히 불행한 삶으로 떠밀고 있다. 곧 파멸에 이르는 그녀를 보기 위해서.

    책에 깊숙하게 들어찬 불행의 기운 때문이었을까. 한 권을 다 읽기가 힘들었다.

    화자인 '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그렇게까지 살아야 하는지.

    나와는 반대의 성향을 지닌 '나'를 끝까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까지 파멸을 추구하면서 얻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단지 살기 위해서 그런 것이라면 '나'의 내면 깊숙한 곳에 박힌 악의 근원을 뿌리뽑고 싶었다.

    비록 이 세상이 동화처럼 아름다운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공허하지만은 않다고 항변하고 싶다.

    이 세계에는 선도 악도 교훈도 없이 텅 빈 제로라는 주장에 반박하고 싶다.

    당장 이 우울함에서 빠져나와야겠다. 적어도 내가 사는 세상은 암흑이 아니니깐.

  • 김사과 『0 영 ZERO 零』 | dr**park | 2019.12.09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김사과 작가의 존재는 진작 알고 있었지만 어이없는 편견으로 그동안 김사과 작가에 대해 단단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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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사과 작가의 존재는 진작 알고 있었지만 어이없는 편견으로 그동안 김사과 작가에 대해 단단히 오해를 했었다는 걸 깨달은 지는 얼마 안 됐다. 부끄럽지만 나는 그동안 김사과라는 이름과 더불어 너무나도 어린 나이에 등단을 하고 꾸준한 작품 발표를 화려한 이력을 두고 작가를 등단 당시 유행했던 인터넷 소설가 정도로 오해를 했던 것이었다. 예전에도 밝힌 바 있지만 나는 오랫동안 귀여니 이후 나와 동갑인 소설가가 한국 문단에 나타나는 순간을 기다려 왔었는데 이미 김사과 작가가 자신의 작품세계를 확실하게 구축하며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고 있음에도 엉뚱하게도 새로운 작가를 마냥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심지어 어린 나이에 등단하여 자신만의 색을 뚜렷하게 발산하며 꾸준하게 작품 발표를 해온 이 천재적인 작가의 매력에 빠진 계기는 엉뚱하게도 소설이 아닌 팟캐스트를 통해서였다.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읽어주는 어느 팟캐스트의 코너에서(창비 라디오 책다방 26회) 김사과 작가는 그야말로 끼를 뽐내며 남다르게 자신의 작품을 읽어 주었던 것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김사과 작가의 소설보다 인간 김사과의 매력에 먼저 빠졌었다.

     

      모든 꽃이 활짝 피어나지는 않지만, 모든 꽃은 반드시 진다. 꽃이 시드는 모습은 피는 장면만큼 아름답지는 않지만 그 추함의 인상적임에 있어 개화를 능가한다. 꽃병에 갇힌 채, 서서히 생기를 잃어가는. 조금씩 탁하게 변해가는, 탄력을 잃어가는 꽃잎, 죽음에 가까워지는 냄새. 처음 봤을 때 드물게 생생한 들꽃이었던 세영이는 활짝 피어날 가능성으로 가득했다. 나는 나의 탁월한 발견에 감탄하며 서둘러 꽃봉오리가 가득 맺힌 꽃 무더기를 꺾어 꽃병에 꽂았다. 그리고 차갑고 투명한 물에 약간의 독을 섞었다. 꽃봉오리는 활짝 피어나는 대신 정지된 채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얼어버린 듯, 정지된 채 시간이 흐르고, 꽃봉오리는 제대로 피어보지도 못한 채 죽음으로 향한다. 어쩌면 내년을 기약하며? 하지만 뿌리가 없는걸? 안타까운가? 하지만 봄이 오면 사방이 꽃 천지다. 얼마든지 피어나게 할 수 있다. 얼마든지 꺾어서 커다란 화병 가득 빽빽하게 채워넣을 수 있다. 세영이는 그런 존재에 불과했다. 드물게 독특하고 매혹적인 꽃이지만, 값과 노력을 지불하면 얼마든지 그 비슷한 것을 사다가 꽂아놓을 수가 있다. 그럴 수 있다. 얼마든지. 아니, 그래야 한다.

     

      도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는 한가? p.83-84

     

     우선 제목부터가 김사과 답다는 감탄을 절로 들게 한다. 『0 영 ZERO 零』(이하  『제로』), 도대체 이 책 제목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소설의 내용이나 분위기가 쉽게 유추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제목을 부르는 것부터 일단 머뭇거리게 만들다니 역시 보통이 아니다. 본격적인 이야기가 막힘없이 술술 읽히지만 화자의 시선을 그대로 따라가면서도 도무지 그 의중을 파악하지 못하며 헤매고 마는대서 작가의 무시무시한 내공에 또 감탄해버리고 만다. 누군가를 잡아먹지 않으면 잡아먹히고 마는 세계관을 가지고 주위 사람들을 지배하고 잠식해가는 주인공을 보며 동의할 수 없는 인물에 이해는 물론이고 연민의 감정조차 들지 않지만 곱씹어 보게 되는 문장들을 수시로 만나면서 밑줄을 긋게 되는 아이러니는 또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주인공의 시선을 따라가면서 전 남자친구 성연우, 독일에 살 때 만났던 같은 반 김명훈, 주인공이 선택한 그녀의 제자 세영이, 독립잡지 멤버들(김지영 선배, K, Y, 이민희), 그리고 엄마와의 관계에서 인간의 허영과 이기심의 괴상한 민낯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이토록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비유들의 향연이라니 반하지 않을 수가 없다. 책을 다 읽고 난 후 혼자 오래 곱씹고 음미하고 싶은 소설들이 있는가 하면 많은 사람들과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들어보고 싶은 소설들이 있는데 김사과 작가의 『제로』는 후자에 해당하는 소설이다. 내가 즐겁게 읽은 만큼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 궁금해지고 많은 해석들을 듣고 싶어진다.

     

      세상 사람들이 다 내 불행을 바란다.

     그것은 진실이다.

     어쩌면 세상에 대한 유일한 진실이다. 김지영 선배는 미친 짓이 아니라 진실을 말했다.

     좀 더 정확하게 서술하자면, 사람들은 누군가 각별한 타인의 불행을 바란다.

     각별한 타인의 불행을 커튼 삼아 자신의 방에 짙게 드리워진 불행의 그림자를 가리고자 한다. p.120

     

     『제로』는 작가정신에서 리뉴얼된 '소설향'시리즈의첫 번째 작품으로 중편소설에 맞는 판형과 디자인으로 눈도장을 확실하게 찍은 것은 물론이고 김사과 작가를 시작으로 앞으로 발표될 작품들의 화려한 작가진(윤이형, 김이설, 김엄지, 임현, 정지돈, 정용준, 오한기, 조해진, 백수린, 최수철, 함정임 등)으로 기대감을 증폭시킨다. 소설만큼이나 부록으로 수록된 김사과 작가와 황예인 평론가의 대화도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는데 작가의 근황, 작가가 들려주는 소설과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좋았던 소설을 더 좋게 만들어 주었다. 앞으로 이어질 작가정신의 '소설향'시리즈에 대한 기대와 김사과 작가의 앞으로의 행보에 대한 기대도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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