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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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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쪽 | A5
ISBN-10 : 8971991542
ISBN-13 : 9788971991541
북학의 중고
저자 박제가 | 역자 안대회 | 출판사 돌베개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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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2월 24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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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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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근대를 꿈꾼 사상가 박제가의 개혁 개방론이 담겨 있는 고전. <북학의>는 18세기 조선의 대표적인 개혁사상가 박제가의 저술로서, 일반에 알려진 것처럼 선진적인 중국의 문물을 배우자는 단순한 주장만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18세기 조선의 현실에 대한 뼈아픈 자각과 통찰의 지적. 위치에 봉착한 조선 사회의 현실과 미래에 대한 통렬한 자기 부정의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다. 조선시대에 씌어진 어떠한 저서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강렬한 변화에의 욕구와 개혁의 논리가 잘 드러나 있다.

저자소개


저자 박제가
어려서부터 글씨를 잘 썼고, 그림을 잘 그렸으며, 특히 시와 문장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였다. 신분적으로 서얼이었던 그는 같은 서얼 출신인 이덕무�유득�?성대중 등과 폭넓게 교유하면서 예술적 능력을 심화시키고 학문의 깊이를 더해갔으며, 박지원�홍대�?강세황�체제� 등 진보적인 학자, 문인들과도 교유하였다. 박제가는 18세기 후반 시단에서 최고의 명성을 누린 참신하고 예리한 감각의 시인이자 문기(文氣) 넘치는 문인화가(文人畵家)로서 그 명성이 국내뿐만 아니라 중국에도 널리 알려졌다. 개혁 사상가로서 박제가는 현실을 파악하는 예리한 시각,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탁월한 혜안의 소유자였다. 27세 때 국가와 사회를 향한 경세제민(經世濟民)의 관심을 본격적으로 드러내면서 경세학(經世學)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박제가는 18세기 후반의 학자로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국제적 시각을 갖춘 인물이다. 그는 생애 모두 네 차례의 연행(燕行)을 통해 조선의 현실에 관한 객관적 시각을 얻었다. 중국어를 잘 구사한 박제가는 연행에서 중국의 저명한 학자, 예술가들과 교유하였다. 박제가가 쌓아놓은 중국 학계, 예술계와의 인맥은 훗날 많은 조선 학자들의 교유를 위한 밑거름이 되었다.

이후 박제가는 영평현령 등의 직책을 수행하였으나, 대부분의 시간을 검서관으로서 왕명에 따라 서책을 간행하는 일에 종사하였다. 1786년에 「병오년 정월에 올린 소회」[丙午所懷]를 정조에게 바쳐 그의 개혁 구상을 펼쳤고, 1798년에는 [북학의]를 바쳤다.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박제가는 적극적이고 강한 어조로 시급하게 개혁을 실천할 것을 요청하였고, 그때마다 기득권층으로부터 집요한 공격을 받았다. 1800년 정조가 급서하자 보호자가 사라진 박제가는 1801년 첫딸의 시아버지인 윤가기의 옥사에 연루되어 의금부에 구속되었다. 모진 고문에다가 처형을 요구하는 자들이 많아 그는 사지에 내몰렸다. 다행히도 대왕대비의 구원으로 함경도 종성으로 유배를 갔고, 1804년에 석방이 되어 그 다음해 4월 25일에 죽어 경기도 광주 엄현(징峴)에 묻혔다.

역자 안대회
역자는 박제가의 시와 산문을 좋아하여 오랜 동안 가까운 곳에 그의 저서를 두고 보아 왔으며, 열린 사회를 향한 그의 지적 행보에 흥미와 관심이 깊어 [북학의]의 번역을 하게 되었다. 충남 청양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였다. 문학박사이며, 현재 영남대학교 한문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에 [18세기 한국 한시사 연구](1999), [한국 한시의 분석과 시각](2000), [조선 후기 시화사](2000), [윤춘년과 시화문화](2001) 등이 있고, 역서에 [소화시평](小華詩評)(1994), [선집 한서열전](1997), [궁핍한 날의 벗](2000) 등이 있다.

목차


.책머리에 ... 5

.서문1 : 서명웅 ... 9
.서문2 : 박지원 ... 12
.서문3 : 박제가 자서 ... 16

.북학의 내편 ... 21

.북학의 외편 ... 131

.진소본 북학의 ... 211

.열린 사회를 위한 개혁 개방론, 박제가의 <북학의> ... 281
.박제가 연보 ... 299
.찾아보기 ... 301

책 속으로

출판사 서평

박제가는 조선이라는 사회를 총체적으로 해부하고 진단하여 그 환부를 도려내려는 근본적 개혁을 꾀한 사상가이다. 조선 왕조의 사상적 기저인 주자성리학이라는 틀을 완전하게 폐기하고 현실에 바탕을 둔 사회 발전의 틀을 새롭게 정립하려 했던 그는 당시로서는 매...

[출판사서평 더 보기]

박제가는 조선이라는 사회를 총체적으로 해부하고 진단하여 그 환부를 도려내려는 근본적 개혁을 꾀한 사상가이다. 조선 왕조의 사상적 기저인 주자성리학이라는 틀을 완전하게 폐기하고 현실에 바탕을 둔 사회 발전의 틀을 새롭게 정립하려 했던 그는 당시로서는 매우 불순한 사상가였다. [북학의]*역시 18세기 후반 위기에 직면한 조선 왕조의 만성적 질병을 치유하려는 의도에서 씌어진 책으로, 도덕적 우위의 학문이 권위를 행사하던 시대 풍조에 반하여 물질적 풍족을 적극적 추구의 대상으로 전환한, 당시로서는 다분히 이단적인 책이었다.

[북학의]의 내용은 폭이 매우 넓다. 상업과 유통에 대한 중시, 수레와 배·백돌 이용, 도로망의 확충, 기술과 기계의 도입 강조, 효율성의 제고를 중시한 정책, 도량형의 표준화, 사회의 개방화 등등이 그것이다. 박제가는, 국가적으로는 부국강병의 방안을 제시하였고, 개인의 생활로는 가난의 탈피와 문명의 지향을 추구하였다. 이를 위해 강력한 개혁 개방론을 펼쳤는데, 이는 현실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외국을 모델 삼아 이루고자 했던 '내부로부터 개혁'의 열망이었다.

[북학의]를 꿰뚫고 있는 사상적 특징은 기존 사회에 완강하게 고착된 폐쇄성·봉건성 해부와 파괴라 할 수 있다. 박제가는 [북학의]에서 지배층인 유자(儒者)의 도태까지 주장하는 혁명적 발언을 하는 등 지식인들의 인식 전환을 요구하는 전투적 주장을 쏟아내었다. 미봉책이 아니라 근본적인 개혁을 요구했던 것이다. 개혁 군주 정조(正祖)는 이러한 박제가의 울타리가 되어주었으나, 보수적 유자들은 서얼 출신의 탁월한 개혁 사상가 박제가를 눈엣가시처럼 여겨 호시탐탐 제거의 기회를 노렸다. 결국 정조가 급서(急逝)하자 박제가는 고립무원의 처지가 되어 사지로 전락하는 운명에 처했고, 뒤이은 19세기는 정국의 경색과 주체적 개혁의 실종으로 연결되었다. 그리고 박제가의 강력한 개방 요구와는 반대로 쇄국의 방향으로 나아갔던 조선은 외세의 침략과 함께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누락 없는 원문 반영, 충실한 번역으로 만들어낸 정본 [북학의]
현재 [북학의]는 총 세 부분(내편, 외편, 진소본)**으로 구성되어 전하고 있다. 내편이 중국 여행을 통해서 확인한 문명세계에 대한 보고가 주축인 반면, 외편은 [북학의] 이론을 설명하는 논설이 주축으로, 심화된 사상을 기반으로 직설적인 개혁 주장을 펼치고 있다. 정조에게 바친 '진소본 북학의'는 앞서 지은 [북학의] 가운데서 농업에 관한 내용을 간추리고 일부 글을 추가하여 상소문과 함께 바친 것이다. 이 '진소본'에는 경세문자의 백미라 일컬을 만큼 빼어난 산문 「병오년 정월에 올린 소회」가 실려 있다.

남아 있는 필사본들과 기출간 번역본들의 현황은 아래와 같다.
필사본 : [북학의]는 조선시대에는 간행되지 않은 채 필사본으로 전해져 읽혔다. 필사본으로서 가장 신뢰할 만한 텍스트는 통문관 주인 이겸로(李謙老) 씨 소장본인데, 이 책은 내편과 외편 2책으로서 저자 친필고본(親筆藁本)이다.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이 귀중한 책은 그러나 현재 그 종적이 묘연한 상태여서 접할 수가 없다. 그 외의 필사본들로는 숭실대학교 기독교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북학의] 내외편과 국사편찬위원회 간행본 등이 있는데, 모두 이겸로 씨 소장의 친필고본을 저본으로 필사한 것들이다. 이외에도 접근이 용이한 자료로 여강출판사와 아세아문화사에서 영인한 필사본이 있고, 국립도서관을 비롯한 몇 곳의 도서관에 [북학의]가 소장되어 있다.

기출간 번역본 : 이미 출간된 [북학의] 번역본 중에서 학술적으로 검토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는 2종이 있다. 그 하나는 북한의 학자 홍희유�갉걸粟� 의하여 1955년 평양의 국립출판사에서 간행된 책이다. 이 번역은 전반적으로 오역이 적고 문장이 매끄러우나, 내편을 위주로 외편의 주요 내용만을 번역한 것이어서 [북학의]의 전모를 볼 수 없다. 다른 하나는 남한에서 1971년에 이익성(李翼成)에 의하여 을유문화사에서 간행된 [북학의]이다. 처음으로 전역이 이루어진 이 번역본이 종래에는 가장 널리 이용되었으나, 오역이 적지 않고 외편과 진소본 사이의 내용 차이를 구별하여 번역하지 않았으며, 번역 내용도 학계의 연구 성과를 반영하지 못한 한계가 있다.

안대회 역 [북학의] : 이번에 출간된 안대회 번역본은 국사편찬위원회 간행 필사본을 저본으로 하고 여러 영인본을 모두 대조·교감하여 원본의 모습을 복원함으로써 가장 많은 내용을 빠짐없이 수록한 정본이라 할 수 있다. 번역 측면에서도 기출간본들 가운데 가장 충실한 책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18세기 조선 민중들의 살림살이를 보여주는 자료적 가치
박제가의 [북학의]에서는 18세기 조선의 현실과 민중들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통사 속에서는 잡히지 않는 백성들의 구체적인 생활 모습과 고단한 살림살이 하나하나가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어 조선 후기사에 관심 있는 일반인과 청소년들에게 매우 읽을 만한 자료이다. 아래에 몇 가지를 예시한다.

1) 사신 행차길 1만 리를 도보로 따르는 사람들의 행색과 고통
1만 리가 되는 길을 사람으로 하여금 도보로 따라가게 강요하는 일은 오직 우리나라에만 존재한다. 그런데 도보로 따라가게 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는다. 또 반드시 그들로 하여금 좌우를 떠나지 못하고 빠르거나 느리거나 간에 말과 똑같이 보조를 맞추게 한다. 그러므로 중국에 들어가는 마졸(馬卒)은 모두 죄수의 머리처럼 봉두난발을 한 채 마른 땅 진창을 가리지 않고 마구 다닌다. 다른 나라에 보이는 부끄러운 꼴로 이보다 심한 것은 없다. 또 그들은 너무 과도하게 땀을 뻘뻘 흘리거나 숨을 헐떡거려도 감히 쉴 수가 없다. 온 나라 안의 종이나 역부(役夫)의 질병은 모두 여기에 그 근본 원인이 있다. (본문 32∼33p)

2) 짐을 싣는 배에 물이 항상 그득한 모습
배는 물에 빠지는 것을 면하자는 도구다. 그런데 지금 나무를 정밀하게 깎지 못하기 때문에 틈에서 새어드는 물이 배에 항상 가득하다. 배를 탄 사람의 정강이는 냇물을 건너는 것처럼 젖어 있다. 배 안에 고인 물을 퍼내느라고 날마다 한 사람이 그 일에만 힘을 쏟는다. 그래서 곡식은 배에 그대로 실을 수가 없다. 배 안에 볏짚으로 가마를 만들어 곡식보다 배가 넘게 쌓고 그 위에 곡식을 싣는다. 그래도 밑에 깔린 곡식은 물에 젖어 썩을 염려가 생긴다. 또 가을과 겨울철에는 뜸을 구비하지 않기 때문에 서리를 그대로 맞는다. 그 고생됨이 천태만상이니 배를 타는 즐거움이란 전혀 없다. 뜸이 있는 배라 하더라도 짧아서 배의 고물이나 이물은 가릴 것이 없다. 비라도 내리면 배는 비를 저장하는 용기 꼴이다. (본문 39∼40p)

3) 당시 백성들이 거주하는 집의 모습
우리나라는 1천 호(戶)가 사는 마을이라도 반듯하여 살 만한 집을 한 채도 찾아볼 수가 없다. 평평하지 않은 언덕에다가 다듬지도 않은 나무를 세우고 새끼줄로 묶어 기둥과 들보로 삼는다. 그것이 기울든 똑바르든 불문하고 흙손을 사용하지도 않고 손으로 진흙을 바른다. 문에 틈이라도 생기면 개가죽을 베어 못으로 박아 놓으니 그 못에 옷이 찢기기 일쑤다. 혹은 짚을 머리 땋듯이 땋아서 그 틈에 붙이기도 한다. 구들장은 울퉁불퉁하여 앉고 누우려면 늘 몸이 기운다. 불을 때면 연기가 방안에 가득하여 숨이 꽉 막힐 지경이다. 문창에 종이가 찢어지면 헤진 보선으로 막아버린다. (본문 69p)

4) 한심한 과거시험장
유생이 물과 불, 짐바리와 같은 물건을 시험장 안으로 들여오고, 힘센 무인들이 들어오며, 심부름하는 노비들이 들어오고, 술 파는 장사치까지 들어오니 과거 보는 뜰이 비좁지 않을 이치가 어디에 있으며, 마당이 뒤죽박죽이 안 될 이치가 어디에 있겠는가? 심한 경우에는 마치로 상대를 치고, 막대기로 상대를 찌르고 싸우며, 문에서 횡액을 당하기도 하고, 길거리에서 욕을 얻어먹기도 하며, 변소에서 구걸을 요구 당하는 일이 발생한다. 하루 안에 치르는 과거를 보게 되면 머리털이 허옇게 세어지고, 심지어는 남을 살상(殺傷)하는 일이나 압사(壓死)하는 일까지 발생한다. (본문 155p)

5) 이불 한 채 없는 농촌의 비참한 생활
우리나라의 가난한 백성은 모두가 아침저녁 먹을거리조차 없는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다. 열 가구가 사는 마을에는 하루 두 끼를 해결하는 자가 몇 집 되지 않는다. 이른바 어려울 때를 대비해 준비한 곡물이란 것도 옥수수 몇 자루나 마늘 수십 개를 그을음으로 검게 탄 초가집 벽에 달랑 달아 놓은 것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시골의 농부들은 한 해에 무명옷 한 벌도 얻어 입지 못한다. 남자나 여자나 태어난 이래 침구가 무엇인지 구경조차 못하고, 이불 대신 멍석을 깔고 그 곳에서 아들과 손자를 기른다. 아이들은 10세 전후가 될 때까지 겨울도 없고 여름도 없이 벌거숭이로 다닌다. 그러니 이 천지 사이에 가죽신이니 보선이니 하는 것이 있는지조차도 모른다. 한둘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그러하다. (본문 140∼141p)



저자 소개
저자 박제가
어려서부터 글씨를 잘 썼고, 그림을 잘 그렸으며, 특히 시와 문장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였다. 신분적으로 서얼이었던 그는 같은 서얼 출신인 이덕무�유득�?성대중 등과 폭넓게 교유하면서 예술적 능력을 심화시키고 학문의 깊이를 더해갔으며, 박지원�홍대�?강세황�체제� 등 진보적인 학자, 문인들과도 교유하였다. 박제가는 18세기 후반 시단에서 최고의 명성을 누린 참신하고 예리한 감각의 시인이자 문기(文氣) 넘치는 문인화가(文人畵家)로서 그 명성이 국내뿐만 아니라 중국에도 널리 알려졌다. 개혁 사상가로서 박제가는 현실을 파악하는 예리한 시각,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탁월한 혜안의 소유자였다. 27세 때 국가와 사회를 향한 경세제민(經世濟民)의 관심을 본격적으로 드러내면서 경세학(經世學)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박제가는 18세기 후반의 학자로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국제적 시각을 갖춘 인물이다. 그는 생애 모두 네 차례의 연행(燕行)을 통해 조선의 현실에 관한 객관적 시각을 얻었다. 중국어를 잘 구사한 박제가는 연행에서 중국의 저명한 학자, 예술가들과 교유하였다. 박제가가 쌓아놓은 중국 학계, 예술계와의 인맥은 훗날 많은 조선 학자들의 교유를 위한 밑거름이 되었다.

이후 박제가는 영평현령 등의 직책을 수행하였으나, 대부분의 시간을 검서관으로서 왕명에 따라 서책을 간행하는 일에 종사하였다. 1786년에 「병오년 정월에 올린 소회」[丙午所懷]를 정조에게 바쳐 그의 개혁 구상을 펼쳤고, 1798년에는 [북학의]를 바쳤다.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박제가는 적극적이고 강한 어조로 시급하게 개혁을 실천할 것을 요청하였고, 그때마다 기득권층으로부터 집요한 공격을 받았다. 1800년 정조가 급서하자 보호자가 사라진 박제가는 1801년 첫딸의 시아버지인 윤가기의 옥사에 연루되어 의금부에 구속되었다. 모진 고문에다가 처형을 요구하는 자들이 많아 그는 사지에 내몰렸다. 다행히도 대왕대비의 구원으로 함경도 종성으로 유배를 갔고, 1804년에 석방이 되어 그 다음해 4월 25일에 죽어 경기도 광주 엄현(징峴)에 묻혔다.

역자 안대회
역자는 박제가의 시와 산문을 좋아하여 오랜 동안 가까운 곳에 그의 저서를 두고 보아 왔으며, 열린 사회를 향한 그의 지적 행보에 흥미와 관심이 깊어 [북학의]의 번역을 하게 되었다. 충남 청양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였다. 문학박사이며, 현재 영남대학교 한문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에 [18세기 한국 한시사 연구](1999), [한국 한시의 분석과 시각](2000), [조선 후기 시화사](2000), [윤춘년과 시화문화](2001) 등이 있고, 역서에 [소화시평](小華詩評)(1994), [선집 한서열전](1997), [궁핍한 날의 벗](200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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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

회원리뷰

  • 북학의 | ca**anon | 2010.12.09 | 5점 만점에 4점 | 추천:0
    “우리나라는 모든 분야에서 중국에 미치지 못한다. 그러므로 문화가 발달한 중국의 북방으...
    “우리나라는 모든 분야에서 중국에 미치지 못한다. 그러므로 문화가 발달한 중국의 북방으로 가서 선진문물을 배워야한다. 이것이 ‘북학의’이다.”
    ‘책만 보는 바보(이덕무와 그의 벗들 이야기)’를 읽고 이덕무에 대해서도 매력을 느꼈지만 그의 벗들의 글들도 읽어 보고싶은 마음이 생겼다. 특히 벗들 중 한명인 박제가에게도 많은 매력을 느꼈는데 이덕무와 함께 청나라 여행 후 쓴 ‘북학의’를 언젠가는 봐야겠다고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기회가 왔다.
    자칫하면 박제가가 ‘청의 문화 즉 중국의 문화가 우수한 것이고 조선은 한참 모자라다 무조건 중국의 선진문화를 배우고 따라야한다.’ 이런 사대주의에 빠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사실 ‘북학의’에서 여자들의 복장이 모두 몽고의 의복 제도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느니 중국의 비단과 우리나라의 무명을 비교하며 세우는 논리들을 읽고있자니 실망스럽기도 했다. 이 책의 저자는 박제가가 예술가인의 면모를 보여주는 거라면서 기술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미적 아름다움과 인간다운 삶의 추구도 필요하다는 것을 제시한다고 하지만 난 그 부분은 동의 할 수가 없었다.
    박제가 자신의 의견을 기록한 ‘북학의’ 외편에서의 조선의 상황과 중국의 상황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조선의 가난한 백성은 하루 두 끼를 해결하는 자가 거의 없으나 중국의 가난한 백성이라 해도 곡식을 보관하는 광을 여러 칸 가지고 있으며 비단옷을 입고 농사꾼들도 옷을 벗지 않고 가죽신을 신고 다니며 소가 전대를 차고서 밭일을 한다고 기록되어있다.
    박제가의 여러 주장이 조선의 지배층들이 수용하지 않은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것 같기도 하다. 그들도 청나라에 가봤을 것이고 중국의 백성들이 조선의 일반 백성들과 다르게 풍요로운 생활을 한다는 것도 봤을 것이다. 그런데 개혁해야겠다고 생각하지 못한 이유는 자신들이 속해 있지 않아서 이지 않았을까? ‘책만 보는 바보’를 보면 박제가도 서자 출신이나 바로 자신이 서자 집안의 시작이라는 것에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으며 겉모습으로 그의 집안 사정을 상상 할 수 없었다는 내용을 보면 그도 이덕무만큼 사정이 어려웠던것 같다. 그런 삶을 살다가 중국의 백성들의 모습을 보니 기가 찰 수밖에.
    박제가는 천재임에 틀림없다. 지나가는 수레, 잠시 탄 배, 심지어 길거리의 말똥을 주워담는 모습을 보고 어느 누가 조선에 필요한 것이며 그것의 원리, 만드는 법들을 자세히 기록해 가난한 조선을 바꾸려고 했을까? 보통 사람들은 사치가 심해져 간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많았고 그 당시 검소를 최고라고 할 정도의 미덕으로 생각했는데 박제가는 조선은 반드시 검소함으로 인해 쇠퇴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비단옷을 사치의 상징으로만 생각했으나 그의 논리에서는 비단옷을 입으면 비단을 짜는 베틀이 있어야 하고 비단을 짜는 여자는 기술이 있어야 한다. 조선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기술이 전해지지 않는다고 했다. 어느 누가 이런 논리를 펼칠수 있을까? 현재까지 우리들 사상에 중요하게 자리 잡혀 있는 풍수설은 옛부터 아무런 근거가 없음을 여러 선비들이 상세히 논했다고 한다. 하지만 특히 조선시대에는 자기일이 잘되고 못됨을 부모님의 묘지의 위치나 상태로 점칠 정도 심했다고 한다. 나에게도 풍수설의 영향인지 조상님의 묘지는 좋은 곳이어야 하고 상태가 안 좋으면 꺼림직 하겠다. 그는 과감하게 비판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절대로 굽히지 않아 주위에 적들이 많았다고 하지만 주위 시선 신경안쓰고 옳지 않은 것은 잘못을 따지며 고쳤던 박제가. 천재임에는 틀림 없었지만 시대를 잘못탔던 위인. 하지만 어느 시대에 태어났어도 시대가 그를 못 맞췄을듯한 그래서 그는 더욱더 나를 안타깝게 한다.
  • 죽은 학문을 거부하다 | qu**tz2 | 2004.06.17 | 5점 만점에 4점 | 추천:0
    박제가. 그의 이름은 조선 후기 실학에 대해 언급할 때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북학의>는 그 저서의 내용보다도 상공업을 중...
    박제가. 그의 이름은 조선 후기 실학에 대해 언급할 때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북학의>는 그 저서의 내용보다도 상공업을 중시한 ‘북학파’라는 명칭으로 우리에게 더 친숙하기도 하다. 분명 우리 역사의 중요한 일부분을 이루고 있음에 틀림없는데, 국사 시간에 얼핏 주워들은 것을 제외한다면 우린 그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는 듯 싶다. 뛰어난 학문적 소양을 지녔으나 서얼이라는 출신성분(?) 때문에 출세할 수 없었던, 하지만 운 좋게도 규장각 검서가 되어 자신의 개혁사상을 펼친 인물. 어쩌면 이것이 내가 그에 대해 아는 전부일지도 모르겠다. <북학의>는 1778년 이덕무와 함께한 중국행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저술된 책이다. 당시 중국은 오랑캐로 일컬어지던 청나라에 의해 통치되고 있었고, 소중화 사상으로 인해 조선은 청나라의 문화를 업신여기는 형편이었다. 하지만 박제가의 눈에 청국의 문화는 실용적인 측면에 있어서 조선의 그것보다 훨씬 뛰어났다.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생활, 형식만을 중시하는 태도로 인해 감수해야만 하는 불편함 등이 조선의 문화에는 너무도 많았던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박제가는 <북학의>를 지었다. 이는 한 나라의 문화 전반에 대한 고찰서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청국의 문화를 수용하는 것은 당시 지배적인 흐름이었던 성리학적 질서에 반하는 행위였다. 어쩌면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박제가의 사상은 이미 당시로서는 가히 파격적인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단순히 보고 들은 것을 그대로 적었다고 이야기하기에는 그 자세함의 정도가 심각할 지경이었다. 단순히 ‘이것이 좋다’를 뛰어넘어 청의 것과 조선의 것을 비교하는 속에서 결론짓는 그의 설명 방식은 이미 사변적인 성리학의 울타리를 훌쩍 뛰어넘은 것이었다. 수레, 성(城어), 벽돌 등이 왜 좋은지 그 이유를 비교에 입각하여 설명하고, 이것들을 만드는 방식까지 정교하게 설명해내는 그의 능력은 나에게 놀라움을 불러일으킬 뿐이었다. 어쩌면 이는 서얼이라는 그를 제약하는 신분으로 인해 가능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에게 있어서 양반의 체통을 지키며 사는 삶은 아무리 노력해도 닿을 수 없는 선이었으면서도 동시에 지양해야 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그는 신분적 제약으로 인한 구속을 받으면서도 동시에 자유로울 수 있었다. 이는 그의 사상을 조금 더 급진적으로 만드는데 기여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당장의 가난도 타파하지 못하면서 성리학 이외의 학문을 등한시하는 당시 양반의 태도를 그는 비판한다. 타국의 언어를 익히는 것은 천한 것이라며 역관에게 무조건 위임하는 당시의 현실이 타국과의 외교관계에 있어서 적지 않은 제약을 가져다줌을 그는 분명히 이야기한다. 과거제도를 부정하는 그의 태도 역시 실로 날카롭다. 당시 과거는 인재를 등용하는 것이 아니었다. 시험만을 위한 공부에 충실하다면 그 외의 것들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해도 관직에 오를 수도 있었다. 시험장에서의 감독 체제 역시도 허술했기에, 부정, 비리에 의해 관직에 등용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인재를 선발하지 못하는 과거제도는 그에게 있어서 무용지물에 다를 바 없었다. 이러한 비판을 바탕으로 그는 사농공상 모두가 중요함을 이야기한다. (이러한 논리 하에 그는 청국의 다양한 농사기구, 구황작물에 대해 중요성을 부여할 수 있었다.) 이 대목은 당시의 양반제 자체에 대한 부정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랬기에 정조는 박제가를 ‘왕안석’에 비유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과감한 개혁을 시도했던, 하지만 당대 사회에서 받아들여지기엔 너무도 급진적이었던 인물인 왕안석에 비유될 정도로 박제가의 개혁 사상은 혁신적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혁신적인 개혁을 통해 안정적인 당시의 국제정세 속에서 부국강병을 실현하길 원했던 박제가였지만, 정조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인해 그의 개혁사상은 완성을 보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그는 세도정치의 혼탁한 상황의 희생자가 되고 만다. 인재를 알아보지 못한 시대적 타락은 이미 망국의 한을 예견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에게도 한계는 있다. 그의 개혁적 성향은 당대에는 심히 급진적이었을지 모르나 오늘날의 관점에서 본다면 여전히 성리학적인 틀을 벗어나지 못한, 봉건적 성향을 보여준다. 한족의 국가가 성립했던 땅에 건국된 청이기에 비록 오랑캐의 나라이긴 하지만 한족의 영향을 어느 정도는 받았을 것이라고 그는 전제한다. 그렇기에 그에게 있어서 청국의 문화를 수용하는 것은 오랑캐의 것을 수용하는 것이기 보다는 주자의 영향을 조금은 받아 성립했을 문화를 수용하는 것일 수 있었다. (그의 역사관은 사림의 기자 조선을 그대로 받아들인 듯한 부분도 없지 않다. p108 참조) 더불어 그의 개혁 모델은 지독히도 청국에 치우쳐져 있다. 어쩌면 이는 <북학의>가 청국 방문으로부터 비롯되었기 때문에 생기는, 태생적인 한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영역에 있어서 조선의 것은 청의 것에 비해 뒤쳐진다고 파악하는 것은 자칫 잘못하면 사대주의로 오해받을 수도 있는 여지가 있는 듯 하다. 실학은 기존의 이론에 치우친 학문과는 달리, 현실에 기반한 학문이었다는 점에서 부국강병을 위한 기틀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실학이 당시 사회에 의해 폭넓게 수용되지 못함으로 인해 실학은 말 그대로 실학, 즉 학문으로 머무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사상은 충분히 개혁적이었으며, 후대 개화파의 원류가 된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여느 학자보다도 섬세한 눈을 지닌 듯한 박제가, 그의 무서운 집착(?)이 낳은 <북학의>는 이와 같은 이유 때문에 단 한권의 책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 역사 시간에 무조건 외우기만 했던 낯익은 책의 제목에 은연중에 손이 갔다. 제법 딱딱한 책일거란 막연한 생각과 달리 각각의 ...
    역사 시간에 무조건 외우기만 했던 낯익은 책의 제목에 은연중에 손이 갔다. 제법 딱딱한 책일거란 막연한 생각과 달리 각각의 꼭지들을 읽으면서 매우 유쾌했다. 몇 백년 전 사람이 어떻게 이런 사소한 것에 까지 관심을 가졌을까 그의 꼼꼼한 관점에 탄복이 절로 나왔다. 사대주의 관점으로 중국을 바라보았다기 보다는 중국의 선진 문물을 보고 내 나라에도 이런 것들이 빨리 들어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애정이 행간 곳곳에 묻어 났다. 어딘가를 여행 하면서 난 얼마나 꼼꼼히 보고 다녔는지 얼마만큼 생각하고 느끼고 다녔는지 이 책을 보면서 나를 돌아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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