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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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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쪽 | A5
ISBN-10 : 8976828011
ISBN-13 : 9788976828019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중고
저자 고미숙 | 출판사 그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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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1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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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0 깨끗하고 좋은 책, 잘 받았습니다. 고맙습니다^^! 5점 만점에 5점 ksw5*** 2019.11.29
759 좋아요~~~~~^^ 5점 만점에 5점 chy2*** 2019.11.25
758 책 잘 받아봤습니다 상태가 너무 좋아요! 5점 만점에 5점 sah1*** 2019.11.23
757 잘받았습니다~감사합니다~ 5점 만점에 5점 lupea*** 2019.11.01
756 좋은 책 고맙게 잘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5점 만점에 5점 ssk*** 2019.10.31

이 책의 시리즈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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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만난 공부, 호모 쿵푸스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는 '공부'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책이다. 기존에 우리가 갖고 있던 공부에 대한 편견을 깨고 공부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정립하였으며, 새로운 공부 방법을 통해 인생역전할 수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저자는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이전과는 차별화된 공부의 의미와 실험적인 공부 방법을 제시한다.

이 책은 근대 이후 축소된 공부의 의미에서 벗어나 '앎의 즐거움'과 '배움의 열정'에서 공부를 시작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고전에서 배운 지혜와 고전을 응용한 공부법을 제시하여 근대적 공부를 넘어선 새로운 공부의 세계로 안내한다. 또한 여러 인물들의 일상생활 공부를 함께 살펴보며, 공부가 우리 삶에 기여하는 구체적인 현장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저자는 수단으로서의 공부가 아니라 공부가 삶이 되는 공부를 이야기한다. 일상의 모든 순간을 앎의 자원으로 삼는, 즉 삶을 위한 공부가 진정한 공부라고 강조하고 있다. 지식의 사적 소유를 해체하고 배움과 가르침의 경계가 사라진 공부, 오직 배움의 열정만으로 공부해서 남에게 퍼주는 공부의 목적을 제시하는 책이다.

☞ 호모 쿵푸스(Homo Kungfus)
단순히 머리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 전체를 온몸으로 공부한다는 의미에서 다시 정립된 '공부하는 인간'이다. 호모 쿵푸스에게 공부는 쿵푸(功夫)처럼 온몸으로 배우는 공부, 앎에 대한 열정과 배움의 기쁨으로 인생의 모든 순간을 학습하는 공부이다.

저자소개

저자 : 고미숙
저자 고미숙은 고전평론가. 1960년 강원도 정선군 함백 출생. 가난한 광산촌에서 자랐지만, 공부를 지상 최고의 가치로 여기신 부모님 덕분에 박사학위까지 무사히 마쳤다.대학원에서 훌륭한 스승과 선배들을 만나 공부의 기본기를 익혔고, 지난 10여년간 지식인공동체 ‘수유+너머’에서 좋은 벗들을 통해 ‘삶의 기예’를 배웠다.덕분에 강연과 집필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2011년 10월부터 ‘수유+너머’를 떠나 <감이당>에서 활동하고 있다. 감이당은 ‘몸, 삶, 글’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인문의역학’을 탐구하는 ‘밴드형 코뮤니타스’다.

목차

책머리에

프롤로그 _ ‘세 개의 절망과 하나의 희망’이 있는 풍경

1부 학교, 공부에 대한 거짓말을 퍼뜨리다
1. 학교, 공부를 독점하다
2. 거짓말 하나―공부에는 때가 있다?
‘학번 공화국’ | 아줌마들의 ‘원초적 본능’ | 대학로와 ‘종삼’이 통하는 길 | 공부엔 때가 있다!
3. 거짓말 둘―독서와 공부는 별개다?
제갈량과 허생 | 책과 패스트 푸드 | 독서는 고리타분해!
4. 거짓말 셋―창의성만 있으면 만사 OK?
시설과 서비스로 승부한다 | 렛잇비!―자율성에 대한 심각한 오해

2부 고전에서 배우는 ‘미-래’의 공부법
1. 새로운 지도 그리기
2. ‘앎의 코뮌’에 접속하라!
‘유년기’라는 함정 | 학교와 ‘코뮌’의 차이 | 꿈은 이루어진다! | 공부는 ‘네트워킹’!
3. 암송과 구술―아는 만큼 행복하다!
「변신」과 「오감도」 | 암송의 힘 |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 | 구술, 리더십과 유머의 원천
4. 독서로 인생역전!―호모 부커스(Homo Bookus)
책과 우리 시대 | 책과 몸―찰떡궁합 |책과 연애, 그 은밀한 접속 | 오래된 미래, 도래할 과거 | 고전, 우정의 메신저
5. 글쓰기는 신체를 어떻게 단련시키나
공부의 최종심급, 글쓰기 | 서곡 | 차이를 구성하라 | 일이관지(一以貫之) | 지전능변(知典能變) | 글쓰기와 운명

3부 인생의 모든 순간을 학습하라-“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1. 평생의 일대사
2. “천지에 가득한 책의 정기”
3. 몸과 일상, 문명의 거처
자폐증 앓는 사회 | 사랑, 이보다 훌륭한 텍스트는 없다! | 질병과 죽음―최고의 스승 | 운명애(Amor fati)를 터득하라! | “네가 먹는 음식이 바로 너다!”
4. 스승, 배움의 전령사
스승과 친구 | 감염과 촉발 | 천하를 그대 품안에 | 덧달기 1: 공부의 달인들 | 덧달기 2: ‘공부와 밥과 우정’이 있는 풍경
5. 공부는 어떻게 혁명과 조우하는가?
고향은 없다! | ‘가장 억압받고, 가장 소외되지 않은’ | 유목 혹은 마법의 변신술

에필로그 _ 공부해서 남 주자!

인물 찾아보기

책 속으로

출판사 서평

이 책은 기존에 우리가 갖고 있던 공부에 대한 편견을 깨고 공부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정립하여, 새로운 공부 방법을 통해 인생역전할 것을 말한다. 공부란 단순히 머리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공부하는 것, 암송과 구술을 통해 소리로써 타인들과 공...

[출판사서평 더 보기]

이 책은 기존에 우리가 갖고 있던 공부에 대한 편견을 깨고 공부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정립하여, 새로운 공부 방법을 통해 인생역전할 것을 말한다. 공부란 단순히 머리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공부하는 것, 암송과 구술을 통해 소리로써 타인들과 공명하고 스승과 친구를 만나 함께 공부하는 것이다. 돈과 출세 등 다른 목적을 위한 것은 공부가 아니고, 일상의 모든 순간을 앎의 자원으로 삼는, 삶을 위한 공부가 참다운 공부라고 말한다. 지식의 사적 소유를 해체하고, 배움과 가르침의 경계가 사라진 공부, 오직 ‘배움의 열정’만으로 공부해서 남에게 퍼주는 공부의 목적을 강조한다.


“삶을 위한 공부, 남을 위한 공부”
― 공부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책,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공부는 평생의 일대사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주위의 모든 것과 접속하면서 무언가를 학습한다. 내면을 살펴봐도 그렇다. 무언가를 배우고 싶다는 것, 그것은 인간의 자연스런 본능이다. 그러나 근대 이후 공부는 학교에서 하는 것, 특별히 어떤 자격증이나 전문성을 위해 하는 것으로 축소되어버렸다. ‘호모 쿵푸스’(Homo Kungfus)란 이런 축소된 공부가 아니라 일상 전체를 온몸으로 공부한다는 의미에서 다시 정립된 ‘공부하는 인간’이다. 호모 쿵푸스에게 공부는 단순히 머리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쿵푸(功夫)처럼 온몸으로 배우는 공부, 앎에 대한 열정과 배움의 기쁨으로 인생의 모든 순간을 학습하는 공부이다. 이 책은 기존에 우리가 갖고 있던 공부에 대한 편견을 깨고 공부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정립하고, 새로운 공부 방법을 통해 인생역전할 것을 주장한다.
이 책의 지은이 고미숙(연구공간 수유+너머 연구원)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이전과는 다른 공부의 의미, 실험적인 공부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고전학교’를 비롯하여 ‘토요서당’, ‘일요서당’ 등의 청소년 프로그램 등 고전을 응용한 공부, 그와 함께 공부하는 사우(師友)들의 일상생활 공부를 함께 풀어내 공부가 우리 삶에 기여하는 구체적인 현장 또한 보여준다.


<공부에 대한 선입견을 깨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공부를 하는가? 욕망의 심층에서 대답하면 보통은 부와 명예, 출세와 성공이라는 답이 나올 것이다. 여기서 공부는 미래의 행복을 위해 억지로 하는 ‘수단으로서의 공부’, 자격증과 학벌을 위한 ‘경쟁’, ‘입시지옥’ 등이 말하듯 그다지 즐겁지 않은 일이다. 공부가 성적으로 귀결되는 이런 공부가 문제가 있다는 건 누구라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런 현상을 불러일으킨 무의식적 전제, 근대 이후 우리에게 뿌리박힌 공부에 대한 편견이다. 이 책은 이런 편견에서 벗어나 ‘앎의 즐거움’, ‘배움의 열정’에서 시작할 것을 얘기한다. 공부란 그 자체로 기쁨이자 삶이므로.

선입견 ① 공부에는 때가 있다
8세, 13세, 16세, 19세. 각급 학교 입학 연령이다. 제도 교육은 이렇듯 같은 나이대의 아이들을 한 장소에 모아 놓고 일정 기간 교육시킨다. 이러한 연령별 학습은 공부란 그 나이 때만 하는 것으로, 즉 “공부에는 다 때가 있다”는 말을 반복하게 한다. 그러니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누구나 ‘지겨운 공부에서 해방’된 것처럼 생각하고 더이상 공부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공부가 외부의 자극을 끊임없이 받아들이면서 무언가를 배우고 스스로 향상시키는 과정이라면, 학교에 입학하지 않은 아동 때부터 성인이 되었을 때까지 때를 가리지 않고 공부해야 한다. 오히려 삶에 대해 통찰할 만한 시야가 열린 성인이 되었을 때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나아가 이 선입견의 더 큰 문제는 이로 인해 노인과 청년 등 세대 간이 같이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청년은 젊음의 열정으로, 노인은 지금껏 쌓아온 연륜과 경험으로 서로의 공부에 힘과 자극을 줄 수 있다.

선입견 ② 공부와 독서는 별개다
제도 교육 안에서의 독서는 공부와 다르다. 교과서나 참고서가 아니면 기껏해야 논술을 위한 다이제스트가 독서의 범주에 해당할 뿐이다. 이런 독서 실태는 대안학교에서도 다를 바 없다. 마치 공부는 여러 활동·경험을 통해서만 얻어진다는 듯, 동아리 활동이나 봉사활동 등에 매진하고, 독서에는 도통 무관심하다. 이런 실태는 학교식 공부법이 독서는 개인의 취미나 교양의 영역이고, 공부는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지식을 배우는 것이라는 이분법을 밑바탕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을 읽지 않고서 깊이 있는 문제의식을 만들기란 쉽지 않다. 한 주제에 대한 깊이 있는 주장, 삶에 대한 정리된 의견과 통찰은 무엇보다 책에서 얻을 수 있는 법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켜 왕성한 질문을 쏟아낼 수 있는 것은 독서로부터 비롯된다.

선입견 ③ 창의성은 자율성에서 비롯된다
‘창의성이 곧 경쟁력이다’, ‘어릴 적부터 창의성을 길러야 한다’ 등 1990년대 중반 이후 교육에 관한 창의성 담론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학생이 자율적으로 공부하도록 하는 교육법이 성행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교육 당국은 교육의 내실을 기하기보다는 건물, 외관 등의 시설 투자나 엄격한 학사 시스템 등 교육 여건에만 매달리게 되었다. 그러나 학생들에게 자율성을 보장한다고 해서 저절로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주변에 널린 광고와 인터넷, 동영상 등에 시각을 빼앗겨 수동적인 사고를 할 가능성이 더 크다.
무엇보다 문제는 학생들에게 요구하는 ‘창의성’이란 게 새로운 유행을 선도하는 기획력, 신상품 개발의 아이디어 등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창의성’의 이름에 값하자면, 기존의 삶의 지도를 다른 방식으로 그려내는 것이라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가령 “돈 없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스스로 몸을 돌볼 능력을 터득해 병원 없이도 살 수 있는 사회는 불가능한가?”와 같이 삶의 문제를 다르게 접근할 수 있는 상상력 말이다. 이런 상상력은 자율적으로 놓아둔다고 저절로 생겨나지 않는다. 교육 현장의 강도, 학생들의 능동적 참여, 토론을 통해 스스로 생각을 바꿔 나가겠다는 의지 등이 더 중요하다.


<우리는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가?―새로운 공부법을 제안하다>

이 책은 수단으로서의 공부가 아니라 공부가 삶이 되는 공부를 말하고 있다. 근대 사회는 공부를 학교에서만 하는 것, 성적으로 평가받는 것으로 가둬둠으로써 머리로만 하는 공부, 자신만을 위한 공부로 축소시켰다. 이렇게 공부가 삶과 유리된 상태를 벗어나려면, 전혀 새로운 공부법이 필요하다. 이 책에서는 고전에서 배운 지혜, 고전을 응용한 공부법을 새롭게 제시하여 근대적 공부를 넘어 새로운 공부의 세계로 인도한다.

1. 소리 내어 암송하라
암송이나 낭송은 묵독과 달리 소리를 내서 공부하는 방법이다. 자신의 목소리를 통해 타인과 공명하고, 자신의 귀로 들리는 소리를 통해 학습하는 이 방법은 머리와 몸을 함께 훈련하는 공부법이다. 암송을 제대로 하려면 목(발성기관)을 활발하게 움직여야 하고, 오장육부 특히 신장에서 기운을 끌어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암송은 배운 것을 타인과 나누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여러 사람이 둘러 앉아 다 함께 리듬을 타야 즐거운 공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공부법의 가장 큰 장점은 잘 외우는 사람이든 잘 못 외우든 사람이든 서로를 소외시킬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뛰어나면 뛰어난 대로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소리를 합치면 되기 때문이다. 근대 교육의 문제점 중 하나는 공부가 지식의 사적 소유로 연결된다는 점이다. 이에 반해 암송은 타자와 나누면 나눌수록 더 효과적인 공부법이므로 누군든, 언제든지 시작할 수 있다.

2. 사람들 앞에서 구술하라
암송과 더불어 중요한 공부법 하나가 구술이다. 구술이란 어떤 상황이나 문맥을 서사적으로 재현하는 능력이다. 구술을 잘 하는 사람을 보면, 대상을 장악하는 힘, 대상과의 관계에서 새로운 국면을 연출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요즘 학생들은 대상을 즉흥적이고 파편적인 단어와 구절을 나열하는 수준이다. TV와 인터넷, 동영상 등 시각적 스펙터클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럴수록 정보와 정보를 연결하는 이야기를 푸는 훈련이 요구된다. 그리고 구술 능력을 리더십으로 연결된다. 상황을 언어로써 풀어내는 능력, 한마디로 썰을 잘 푸는 사람 곁에 사람들이 모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3. 책을 읽어라
공부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독서이다. 초야에 묻혀 있던 제갈량이 유비의 삼고초려로 세상에 나오자마자 천하를 쥐략펴락할 수 있었던 것도 오로지 독서의 힘이다. 책을 읽으면서 세상을 경륜하고, 천하고금의 이치를 꿰뚫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책에는 세상의 이치와 삶의 지혜가 담겨 있으므로 책을 읽으면 그 지혜를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 다산 정약용이 말했듯이, 독서란 ‘세상을 경륜하는 것은 물론 귀신과 통하고 우주를 지탱하는’ 위대한 공부이다. 이것만 있으면 세상에 두려울 게 없다. 이 세상의 모든 책이 내 인생의 자신이 될 테니까 말이다(105쪽).
그리고 책 중에서는 생사를 가로지르는 원대한 비전이 담긴 책, 한 시대의 통념에 맞서 치열하게 투쟁한 책, 마주칠 때마다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책을 읽어야 한다. 『주역』처럼 우주의 비의가 담겨 있는 책, 성경이나 불경처럼 인간의 존재론적 물음을 탐구하는 책, 『돈키호테』나 『열하일기』처럼 삶의 지혜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책 등등 원대한 비전과 눈부신 지혜로 가득 찬 고전을 읽어야 한다.

4. 앎의 코뮌을 조직하라
앎의 코뮌이란 일종의 공부 네트워크이다. 제도나 시스템에 의해 작동하는 학교와 달리, 코뮌은 구성원들이 앎을 찾아 능동적으로 결합한 공동체라 할 수 있다. 여기엔 직업도, 나이도, 당파도 필요 없다. 오로지 앎의 열정에 따라 스승을 만나고 벗과 함께 공부하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근대 이전의 학인들은 스승을 찾아 천릿길을 마다 않고 걸어갔으며, 그 길에서 만난 벗들 즉 도반과 함께 가르침을 얻었다.
스승을 찾아 만나고 벗과 함께 공부하는 것이 오늘날 역시 가능하다. 지금 우리가 선 자리를 배움터로 전환하면 되기 때문이다. 가령 대학에서는 교수를 중심으로 세미나를 조직해서 함께 공부하면 된다. 대학 밖에서도 멋진 스승들을 만날 수 있고, 인생 길목마다 나를 이끌어줄 만한 존재는 계속 출현하기 마련이다. 청소년들도 마찬가지이다. 책 읽고, 토론하고, 그와 더불어 다른 활동을 할 수 있는 동아리를 조직하면 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앎에 대한 열정’ 하나뿐이다.

5. 일상에서 공부하라
인생의 모든 순간이 공부거리이다. 생의 굽이마다 찾아오는 역경, 삶과 죽음의 문제, 일상생활과 시시각각 변하는 감정까지 다 공부의 자원이다. 근대 이후 앎은 가시적이고 합리적인 세계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자신의 몸과도 나아가 일상과도 분리되었다. 그러나 일상의 순간들을 공부하지 않고서 지혜롭게 헤쳐 나가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지식을 특정 영역에만 한정한 채 공부를 하면, 머리에는 지식이 가득하지만 일상에서는 쓸모없는, 배운 것이 아무런 소용 없는 꼴이 되기 십상이다.
근대 이전의 학인들은 자연을 탐구하고 여기에서 얻은 지혜로 일상을 또 탐구했다. 공부란 이렇게 저 너머의 세계에 가두지 않고 지금 발 딛고 있는 현장과 매끄럽게 닿아야 하는 것이다. 자연에서 공부하기 어려운 현대인들은 문명을 자연 삼아 탐구할 수 있고, 이를 통해 구체적인 현장에서 공부의 자원으로 삼을 수 있다. 문명과 일상의 모든 것을 공부의 자원으로 삼는다는 것은 공부가 다른 어떤 것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삶 그 자체라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의 삶을 치열하게 고민함으로써 자신을 바꿔나가는 공부, 어떤 결과를 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순간순간 충만하게 만들기 위한 공부가 진짜 공부인 것이다.
일상의 모든 순간이 공부가 되면, 거기에는 배움과 가르침의 경계가 사라진다. ‘배움의 흐름’ 속에서는 가르치고 배운다는 ‘행위’는 있을지라도 더이상 배울 게 없을 만큼 많이 아는 사람도, 아무것도 줄 게 없는 모자란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연암이 말했듯이, 성인이란 남을 가르치고 훈계하는 존재가 아니라, 남보다 앞서 부지런히 배우는 존재였다(175쪽). 위대한 스승의 가르침이란 배움의 열정 그 자체이다. 그러므로 학교의 억압적 구조, 교실의 붕괴를 걱정하는 모든 선생님들, 사교육비를 벌기 위해 애쓰면서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다그치는 모든 부모들도 먼저 공부해야 한다. 그러면 공부에 대한 열정이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감염될 것이다.


<공부의 목적―공부해서 남 주자!>

이 책이 제시하는 새로운 공부법의 핵심은 지식의 사적인 전유를 해체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교육과 공부의 문제는 자본주의가 사적 소유에 기반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만의 전문 지식, 자신만의 부와 영달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앎이란, 천지에 떠도는 정보의 흐름, 말의 길들에서 어떤 한 부분을 특정한 방식으로 구성한 것이다. 때문에 그것은 한 개별 인간의 두뇌에서 나오는 산물이 아니라, 두뇌들의 네트워크, 특별한 집합적 관계의 산물이다. 한마디로, 앎은 원천적으로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전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공부의 목적은 천지에 가득한 지혜의 흐름을 세상 곳곳으로 옮겨주는 데 있다. 무언가를 배우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가르치면서 배우는, 알면 아는 대로 모르면 모르는 만큼 서로가 서로에게 배운 것을 나누어 주어 함께 성장하는 것이다. 공부를 통해 삶 전체가 바뀌는 인생역전의 순간이 바로 여기에 있다. 공부해서 남 주자!

[출판사서평 더 보기 닫기]

책 속 한 문장

  • 홍신애 님 2010.01.17

    공부를 통해 삶을 통찰하는 힘이 생길 때 비로소 존재의 근원적 소외를 극복할 수 있다.

회원리뷰

  • 공부에는 때가 있다? | ju**su19 | 2011.11.03 | 5점 만점에 4점 | 추천:0
    학문하는 묘리는 다른 것이 없다. 모르는 것이 있다면 길 가는 사람을 붙들고라도물어야 한다. 어린 종이라도 나보다 한 자를 더...

    학문하는 묘리는 다른 것이 없다. 모르는 것이 있다면 길 가는 사람을 붙들고라도
    물어야 한다. 어린 종이라도 나보다 한 자를 더 안다면 그에게 배울 것이다.
    옛날 순임금은 밭을 갈고 씨를 뿌리며 그릇을 굽고 물고기를 잡는 것에서
    임금 노릇을 하는 데 이르기까지 어느 것도 남에게서 배워오지 않은 것이 없었다.

    공자는 말하기를 자기가 어려서 미천했기 때문에 상일에 아주 익숙했다고 했으니,
    그 역시 밭 갈고 씨를 뿌리며 그릇 굽고 물고기 잡는 따위의 일일 것이다.
    비록 순임금이나 공자와 같이 거룩하고 재주 많은 분도 물건을 보고서 기교를 생각해내며
    일에 당해서 기구를 만들자면 시일도 부족하고 지혜도 모자랐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순임금과 공자가 성인이 된 것도 남에게 묻기를 좋아해서 배우기를
    잘한 데 지나지 않는다.


    -박지원 '연암집' 북학의서 에서



    부처님도 제자들에게 자신은 스승이 아니라, 길을 함께 가는 벗일 뿐이라 했다.
    즉, 스승이 친구처럼 마음 속의 깊을 것을 나눌 수 없다면 스승이 아니고,
    친구 또한 스승처럼 배울 것이 없다면 친구가 아니란 뜻이다.

    '공부의 달인' 호모쿵푸스,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공부를 어떻게 하면 남들보다 잘할 것인가..
    정도로 시작했다면 저자의 내공에 부끄러워졌을 것이다.
    일상의 모든 순간이 공부가 되어야 한다.
    누구에게든 배울 수 있고 누구든 가르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작가는 공부를 해서 남에게 나누어야 진짜 내것이 된다고 강조한다.

    요즘 초.중.고등학교에서는 오로지 입시열풍.. 대학 하나의 목표만으로 준비하는
    집단으로 비쳐진다. 그러기 위해서 학교의 억압적 구조는 필수가 되버렸다.
    부모들은 과목에 점수 하나라도 올리기 위해 학원으로 아이들을 내몰고,
    자연스럽게 연달아 교권의 붕괴가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배움의 극치로 달린다고 할 수 있을까?
    진정한 학문의 원칙이 사라졌기에 배움의 열정이라 치부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가장 두뇌가 활발히 회전할 10대의 아이들은 왜 공부의 즐거움을 모르는 것일까.
    저자는 그것은 먼저 교사가 공부에 미쳐있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공부의 즐거움을 전달하지
    못하는 것이라 말한다. 자신은 공부를 좋아하지 않으면서 학생들에게 공부를 하라고 한다면?
    그것 자체가 억압이고 명령이다.

    부모도 마찬가지다. 사교육비를 벌기 위해 갖은 고생은 하면서 왜 자기 자신은 공부를
    하지 않는 것인가. 부모가 앞장서서 공부를 해야 한다.
    부모가 아이와 학문적 대화에 뒤쳐져있으면 아이들은 부모를 그저 돈만 대주는 사람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아이와 인생의 길동무로 존경을 받는다면 가장 싸게, 가장 밀도 있게 정을 주고 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배움과 가르침은 하나다.
    존재하는 동안 끊임없이 공부하자.
    그것이 공부의 달인이 되는 길인 것이다.


  • 공부의 달인 호모쿵푸스 | in**27 | 2011.08.23 | 5점 만점에 3점 | 추천:0
    사실, 이것저것 다 읽는 잡식스타일인지라 분야를 가리지는 않치만, 자기계발서나 이런 인문학쪽 관련된 책을 멀리하는건 사실이다....
    사실, 이것저것 다 읽는 잡식스타일인지라 분야를 가리지는 않치만, 자기계발서나 이런 인문학쪽 관련된 책을 멀리하는건 사실이다.  게다가 뭐 딱히 읽어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 스타일인지라 내 돈 주고 이런 책을 사서본다는건 생각해보지도 않았던것 같다.  그런데, 이책이 책으로 이야기와 인생을 논하는 우리 모임의 지정책이 되다보니, '그럼 어디 한번 읽어봐?'라는 느낌으로 집어들었다.  게다가 "고미숙"씨에 대한 평가도 주위에서 나름 괜찮은 거 같아서 읽어 보기로 했는데.......  그리고, 읽고 토론을 하긴 했는데, 역시 그 토론때도 말했지만, "아, 내 스타일은 아닌가 보다." 이러고 있다.
     
    책 속의 글은 나쁘지 않다.  그녀의 글속 어투도 나쁘지 않다.  그런데도 나는 공감을 못하는 부분이 몇몇군데 보였고,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는 이야기들도 많았다.  특히나 고전 읽기를 강요하는 듯한 부분에 나는 반감이 있었고, 그 부분에 대해 다른분들과 얘길 나눴더니, 어떤분들은 공감은 어떤분들은 그렇게까지 깊이 느끼지 못했다고 하신분들도 있었다.  한권의 책으로 여러사람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내가 깨닫지 못하는 부분을 알게 되는거 같아서 참 멋진 일인듯 하다.  이책 역시도 내가 알아내지 못한, 미처 느끼지 못한 부분들에 대해서 얘길 듣다보니 '아하~'하는 느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이책이 그렇게 와 닿치 않고, 큰 점수를 줄 수 없으니, 역시 모든 사람이 백점이라고 해도 내가 읽고 별로면 어쩔 수 없다는 느낌은 어떻게 안되나 보다.
    그래도, 교사로 재직중인 사람이 이책을 청소년들이 보면 괜찮을 듯 하다 하니, 어쩌면 그런 건 좋치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책 내용을 거론하기엔 그저 말 그대로 인생 자체는 공부라는 계속 공부를 해 나가야 한다는 그런 의미랄까.  중,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에 들어가 모든것을 손놔 버리는 우리나라 교육현실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 세대간의 간극을 공부라는 것으로 메꿀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리고, 고전에 대한 풍부한 지식으로 고전을 찬양하는 이야기도 나온다.  어떤건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어떤건 전혀 이해되지 않기도 하고........
     
    괜스레 이책은 리뷰쓰기도 좀 쉽지 않은게 아무래도 토론을 하고 난 뒤끝이기에 더 쓸 말이 없어져 버린 느낌이 든다.  게다가 어쩌면 내가 이책에 대한 깊이를 좀더 느끼지 못해 더 할말이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간만에 만한 인문학 관련책이라 머리가 좀 제대로 안 돌아 가는 느낌이 든다.  아아, 내 수준의 한계가 느껴지는 기분이란.......

  • 최근 몇 년간 꾸준히 책을 읽다보니 주변에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듣게 된다. 과거에는 나...
    최근 몇 년간 꾸준히 책을 읽다보니 주변에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듣게 된다. 과거에는 나 역시 책을 가까이 하지 않았다. 1년에 10권이 채 되지 않는 정도의 책만 읽었는데, 대부분 밥벌이에 필요한 책이나 베스트셀러, 또는 주변 지인들이 추천하거나 선물하는 책만 읽고 말았다. 책을 본격적으로 가까이하게 된 처음 계기가 무슨 거창한 '진리'를 탐구하려 하거나 '공부'를 통해 나 자신을 스스로 돌아보고 우주를 이해하고자 한 것도 아니었다.
     
    약 9년 전부터 개인적으로 사업을 크게 벌였는데 5년 정도 진행하거나 손실과 부채가 감당할 수 없게 늘어나 포기하게 되는 과정에서 그동안 가까웠던 비지니스 파트너들과 크게 분쟁이 벌어졌다. 술도 마시지 못하고 유흥과 오락에도 큰 취미가 없었던 내가 좌절하거나 미치지 않으면서 나를 지킬 수 있는 방법으로 선택한 것이 책을 읽는 것이었다. 그것도 미친듯이... 그랬기 때문에 처음 고른 책도 인문학이나 경제경영 분야가 아니라 자연과학이나 소설이었다.
     
    1년 정도 자연과학과 소설을 중심으로 책을 읽다보니 스스로 차분해질 수 있는 여유도 생기고 책 읽는 습관도 만들어져서 분야를 조금씩 넓혀갔다.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서평이나 독후감, 널리 인정받는 책, 존경할 만한 분들이 추천하는 책 등 자연과학과 소설 뿐 아니라 인문학, 사회과학, 경제경영 등으로 확대해 나갈 수 있었다. 어느 정도 독서가 생활로 자리잡으면서 나 자신이 누구인지, 인간이란 무엇인지, 사회나 국가 인류가 어떻게 생겨먹은 것인지 등 드디어 '진리'에 대한 '공부'에 욕심이 나기 시작했고 작년 3월 법정스님이 돌아가신 후 스님의 유고집 중 <아름다운 마무리>를 읽다가 스님의 정신과 세계관이 알고 싶어졌다. 그 이후 여름부터 법정스님 유고집을 차례로 읽기 시작했고 스님의 <내가 사랑하는 책들>에 들어있는 책을 순서대로 읽기 시작하면서 내 나름대로 독서의 계획을 세우기 시작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부족하지만) 나름 열심히 책을 읽어온 가운데 내가 깨달은 점은 아직도 내가 많이 부족하다는 것과 평생에 걸쳐 '책 읽기'를 죽을 때까지 계속하고 싶다는 것이다...^^
     
     
    이 책은 지난 달 공부모임 진행 중 한 여성 참석자로부터 소개받았다. 지난 주 공부모임 세미나 교재가 장회익 교수의 <공부의 즐거움>과 장회익, 최창덕 교수의 <이분법을 넘어서>였는데 이 책도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어 별도로 읽게 된 것이다. 
     
    지난 1980년 대에 한국사회에는 '전쟁같은 노동'이라는 시구와 노래가사가 있었다. 성장과 개발만을 전국가와 국민의 구호로 삼아 숫자와 규모와 덩치만 키우던 개발독재 대한민국은 1960~1980년 대에 노동자를 '노예'처럼 다루고 착취해왔던 것이다. 21세기 들어 '전쟁같은 노동일'이 한국에서 100% 사라졌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엄청나게 줄어들었다.
     
    그런데 20세기 말부터 왜 우리 어린 학생들은 '전쟁같은 공부'를 하고 있는가? 성적과 시험공부에 스트레스 받은 중,고등학생들이 꾸준히 자살하는 가운데 이제는 카이스트 대학생 마저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생로병사에 대한 통찰력을 일깨워주지도 않고 독서를 장려하지도 않는다. 우리 학생들은 존재의 근원이나 행복의 조건, 개인과 사회와 민족과 국가와 세계의 연관관계, 자연과 우주의 진리, 올바른 삶이나 도덕적인 삶에 대한 고민에 대해 어디서 도움을 받아야 하나? 그리고 왜 '공부'는 '학교' 다닐 때에만 하는 것이고 '졸업'하면 공부에 담을 쌓는가? 대학이나 대학원을 졸업하면 그 순간부터 이 세상에 대해 모두 알게 되는 것일까? 아니면 필요하지 않은 것인가? 도대체 우리는 왜 살고 있는 것일까? 이 책은 그런 질문과 문제의식에 대해 이야기한다.
     
    1부. [학교, 공부에 대한 거짓말을 퍼뜨리다]에서 현대 국가체제의 옹호자들과 학교가 '공부'에 대해 퍼트린 거짓말을 폭로한다. 학교가 사회에 제도로써 설립된지 200년 남짓할 뿐이다.(한국의 경우 겨우 60년 정도) 그 이후 학교는 '공부'를 독점하였고 학교가 내세우는 세 가지, 즉 '공부는 때가 있다', '독서는 공부와 별개다', '창의성만 있으면 된다'가 거짓말임을 밝혀낸다.
     
    2부. [고전에서 배우는 '미-래' 공부법]에서 파괴되고 짓밟혀진 '공부'를 제대로 일으키기 위하여 저자는 '새로운 지도'를 그리자고 제안한다. 그것은 '앎의 꼬뮌'과 '암송과 구술', 그리고 '독서'와 '글쓰기'이다. 암송과 구술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공부에 어떤 변화와 힘을 가져다 줄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며, 고전에 대한 독서가 학생들과 사람들의 삶을 풍족하게 할 것임을 알려준다.
     
    3부. [인생의 모든 순간을 학습하라 -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에서 공부를 위한 스승과 친구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돈과 출세 등 다른 목적을 위한 것은 공부가 아니며, 일상의 모든 순간을 앎의 자원으로 삼는, 삶을 위한 공부가 참다운 공부라고 말한다.
     
    저자는 기존에 우리가 갖고 있던 공부에 대한 편견을 깨고 공부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정립해줌으로써 공부란 단순히 머리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공부하는 것, 암송과 구술을 통해 소리로써 타인들과 공명하고 스승과 친구를 만나 함께 공부하는 것임을 일깨워준다. '앎의 즐거움', '배움의 열정'에서 시작된 공부의 의미를 찾고, 무엇을 배우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가르치면서 배우는, 서로가 서로에게 배운 것을 나누어 주며 함께 성장하는 공부의 목적을 알게 해줄 것이다.
     
    이 책은 저자 자신의 체험과 현재 운영 중인 사례를 바탕으로 이전과는 다른 공부의 의미, 실험적인 공부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고전학교’를 비롯하여 ‘토요서당’, ‘일요서당’ 등의 청소년 프로그램 등 고전을 응용한 공부, 그와 함께 공부하는 사우(師友)들의 일상생활 공부를 풀어내 공부가 우리 삶에 기여하는 구체적인 현장 또한 보여준다. 
     
     
    '공부'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접근법은 참신하고 의미가 있어 보인다. 저자를 통해 다시 한 번 제도교육의 문제점과 한계를 알게 되었고 그곳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향과 방법론 또한 이 책에서 얻을 수 있었다. 내가 직접 얼마나 접근하여 실천할 수 있는지는 나중에 검증되겠지만...
     
    저자는 현재 한국의 교육 현장에서 발생하고 있는 '대학과 교실의 붕괴', 사교육의 기승, 교육당국의 무능, 학보무들의 본능, '공부'에 대한 왜곡된 사회문화의식과 현상 등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그리고 진정한 인간의 삶과 행복을 찾고 이루기 위해 학습과 공부의 의미를 되살리기 위해 가능한 방향과 방법을 제시하고 직접 실천하는 모습도 아름다워 보인다. 대다수의 학생들이 의무교육 제도에 의해 학교에 다닐 수 밖에 없는 현실적인 조건에서 저자는 뜻이 맞는 사람들과 힘을 합하여 올바른 '공부'를 위해 제도권 밖에서 '꼬뮌'을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라는 주장은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도 들었다.
     
    그렇지만 이 책은 '위험한' 면도 가지고 있다. 가장 큰 위험성은 '공부 만능주의'에 가까운 공부에 대한, 독서에 대한 과도한 강조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아는 만큼 행복하다'라고 말하지만 행복에는 '많이 아는 것'만이 지름길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제시할 수는 없지만 동양이나 서양의 고전 속에는 반드시 '지행일치'에 대한 내용이 있을 것이다. 공부의 내공이 높고 '썰을 잘 푸는' 사람이 꼭 리더가 되는 것은 아니다. 공부를 강조하기 위해서 쓴 표현이라고 하기에는 '인생역전'이라는 단어는 심했다. 저자가 의도하는 내용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그 단어가 주는 느낌은 일반 독자들을 엉뚱한 방향으로 유도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그런 면에서는 책의 제목 - 공부의 달인 - 도 다분히 상업적으로 보인다.)
     
    예로 부터 실천이 따르지 않는 배움과 학식은 자신을 망칠 뿐 아니라 주변 사람도 망칠 가능성이 높고 한 나라와 민족도 망칠 수 있다. 한국의 경우만 하더라도 일제시대와 해방 후, 군사독재 시대와 지금까지 고전을 많이 읽고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 과연 올바른 삶, 행복한 삶을 살았던가 싶다. 오히려 공부를 많이하고 실천이 부족한 사람들은 일제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등 부정한 권력에 몸을 담아 민중들을 탄압하고 착취하는데 앞장섰을 뿐이다. 즉, '아는 것이 힘'이 될 수 있지만, 그 힘이 선하고 올바르게, 참되고 모두에게 베풀어지려면 인간성과 세계관, 끝없는 자기 성찰과 실천이 따라주어야 할 것이다. 아니 오히려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공부나 앎보다 그런 것들이 앞서야 하지 않을까? 저자는 공부와 독서와 '많이 아는 것'에 대해 장점만 강조할 뿐 단점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 책 속의 문장 : 
    - 10대와 60~70대가 함께, 지속적으로 어울릴 수 있는 활동이 무엇이 있을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라. 단연코 공부 밖에는 길이 없다. ... 노인은 원숙한 시야를 바탕으로, 청년은 젊음의 역동적 기운으로 서로의 빈 곳을 채워주면 된다. 그리고 일단 공부가 시작되면, 세대 차이는 자연스럽게 소멸되어 버린다. 그러고 보면, 공부야말로 노화를 방지하고 노년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는 최고의 비결이 아닐까? (p.47)
     
    - 스승, 도반, 청정한 도량으로 이루어진 앎의 '꼬뮌'. 꼬뮌이란 기성의 권력과 습속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삶을 구성하고자 하는 이들의 자유롭고 창발적인 집합체 혹은 네트워크를 말한다. 스승을 만난다는 것은 바로 그 꼬뮌에 접속한다는 뜻이다. 그럼 왜 그토록 스승을 찾아 헤매었던가? 스승을 만나야만, 그 '꼬뮌'에 접속해야만, 지리멸렬하던 공부가 단번에 도약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p.81)
     
    - 암송은 형식 자체가 집합적 관계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지식의 사적 소유라는 주술에 걸려들지 않는다. 한두 사람이 튀는 것보다 다 함께 리듬을 타야만 즐거운 공부가 가능한 까닭이다. 그렇기 때문에 암속의 배치 속에선 뛰어난 사람과 열등한 사람이 서로를 소외시킬 필요가 없다. (p.92)
     
    - 그렇기 때문에 구술 능력은 리더쉽으로 연결된다. 사실 리더쉽의 많은 부분은 상황을 '언어화하는' 능력이다. 어떤 상황에서 그걸 하나의 주제로 엮을 수 있고, 그것이 사람들에게 동의를 얻어낼 수 있을 때 그는 그 그룹의 지도자가 된다. 한번 주변을 살펴보라. 어떤 그룹이든 헤게모니를 장학하고 있는 이는 '썰을 푸는' 인간이다. (p.102)
     
    - 왜 고전을 읽어야 하는가? 고전은 그 자체로 하나의 우주이자 매트릭스이기 때문이다. <주역>처럼 실제로 우주의 비의가 담겨 있는 것도 있고, [불경]이나 <성경>처럼 인간의 존재론적 물음을 탐구하는 것도 있고, <돈키호테>나 <열하일기>처럼 삶의 지혜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것도 있다. 한 인간이 평생 겸험할 수 있는 시공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하지만, 고전이 있기에 그 협소한 시공간을 넘어 아득한 역사의 궤적을 조망할 수 있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비전을 탐구할 수도 있다. (p.117)
     
    - 고전이 말하는 공부법은 "인생의 순간들을 학습하고 지식, 기술, 경험을 서로 나누어 가지고, 서로 도와주는 순간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교육망 형성이 바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과제"(이반 일리히 <학교없는 사회>)라는 '탈학교'의 전망과 아주 행복하게 조우한다. (p.146)
     
    - 돌이켜보면, 저 1970~80년대의 노동자들은 온갖 탄압과 고난 속에서도 책을 읽고 사유를 했다. (중략)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객관적 상황은 말할 나위 없이 좋아졌지만, 노동자들은 더 이상 책을 읽지 않는다. 세계를 사유하지도, 변혁을 꿈꾸지도 않는다. 실존적 고뇌에 대해서는 잊은지 오래다. 그럼, 우리시대의 노동자들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다만 노동조합의 일원이 되었을 뿐이다. 가족의 품에서 임금과 노동조건, 휴가를 얻기 위해 싸우는 평범한 중산층이 되었다. (p.200)
     
    [ 2011년 5월 10일 ] 
  •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 ma**28 | 2010.02.08 | 5점 만점에 4점 | 추천:0
    1부 학교, 공부에 대한 거짓말을 퍼트리다. 1. 학교, 공부를 독점하다 2. 거짓말 하나-공부에는 때가 있다 &nb...

    1부 학교, 공부에 대한 거짓말을 퍼트리다.


    1. 학교, 공부를 독점하다


    2. 거짓말 하나-공부에는 때가 있다


      10대와 6,70대가 함께, 지속적으로 어울릴 수 있는 활동이 대체 무엇이 있을 수 있는지를. 어떤 스포츠, 어떤 취미활동도 불가능하다. 고로, 단연코 공부밖에는 길이 없다.공부야말로 노화를 방지하고 노년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는 최고의 비결이 아닐까?

      누가 더 잘하고 못하고가 뭐가 중요하겠는가. 공부란 궁극적으로 자기를 넘어서는 것일진대, 거기에는 우와 열이 있을 수 없다. 그저 자기가 선 자리에서 한 걸음씩 나갈 수만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할 따름이다. 밥을 먹고 물을 마시듯 꾸준히 밀고 나가는 항심과 늘 처음으로 돌아가 배움의 태세를 갖추는 하심. 공부에 필요한 건 오직 이 두 가지 뿐이다.


    3. 거짓말 둘-독서와 공부는 별개다


      독서야말로 골방에 앉아서도 혹은 초야에서 밭을 갈면서도 천하고금의 이치를 한눈에 꿰뚫을 수 있는 최고의 비결이다.

      솔직히 말해 영어보다 더 간단명료한 언어체계가 어디 있는가. 그걸 인정한다면, 영어를 오히려 국경과 인종을 넘어 전지구적 연대를 모색하는 도구로 적극 활용해야 하지 않을까

      입시의 중압감만 떨쳐버린다면, 중고등학교 시절 동서고금의 웬만한 고전은 다 섭렵할 수 있을테고, 장담하건데, 그것만으로도 허생이나 제갈량에 버금가는 카리스마를 키울 수 있다. 분명!


    4. 거짓말 셋-창의성만 있으면 만사 OK?


    2부 고전에서 배우는 '미-래'의 공부법


      필요한 건 다만 두려움없는 용기와 지칠 줄 모르는 끈기 뿐. '노하우'는 책과 우정!


    1. 새로운 지도그리기


    2. '앎의 코뮌'에 접속하라


      자기가 선 자리를 제도적 울타리가 아니라, 스승을 만나고 벗을 부르는 배움터로 전환해야 한다.

      고전시대에 좋은 부모란 자식에게 훌륭한 스승을 찾아주는 존재였다.

      세미나를 지식의 향연이자 음식의 향연이 되게 하는 것

      뇌의 존재이유는 '네트워킹'하는 데 있다고 한다. 네트워킹을 하지 못하면 신경망이 점차 끊어져 결국 치매나 죽음에 이른다는것. 공부 역시 마찬가지다. 스승과 벗을 찾아가는 네트워킹을 멈추지 않는것, 그것이 공부다.


    3. 암송과 구술-아는만큼 행복하다


      토요서당-놀토때마다 초중고생들이 함께 모여 <논어>와 고전시가, 현대시 한 편씩을 암송하는 프로그램이다.

      암송은 신체 전체의 기운을 활발하게 소통시킨다.

      암송은 정말, 힘이 세다.

      외국어를 익히는 데 좋은 방법은 그 나라 말로 된 수준높은 작품을 하나 골라 주구장창 소리내어 암송하면 된다.

      그런 글은 뜻만 좋은 게 아니라, 음성적 질 역시 탁월하다. 실제로 주파수나 음질 자체가 다르다고 한다.

      어린애가 글을 읽으면 요망스럽게 되지 않고 늙은이가 글을 읽으면 노망이 들지 않는다. 귀해져도 해이해지지 않고 천해져도 제 분수를 넘지 않는다. 어진 자라 해서 남아돌지 않고 미련한 자라 해서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연암집>

      책이나 영화, 기타 다른 자료를 접한 다음, 그걸 재현해보라고 하면 그 학생의 지적 수준이 그대로 드러난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거꾸로, 말하기를 훈련하면 보는 것과 아는 것의 지평을 넓힐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누구든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할 떄는 두 가지를 욕망하게 된다. 하나는 자기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기를, 또 하나는 자기의 말이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기를, 이게 인지상정이다.

      어떤 그룹이든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이는 '썰을 푸는'인간이다. 상황을 언어화함으로써 사람들에게 그 상황을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만약 새로운 말과 이야기로 세상을 보는 눈을 홀라당 뒤집을 수 있다면? 바로 그게 혁명이다.

      진정한 유머는 무엇보다 사건과 사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차이와 간극을 관찰하는 힘이 있어야 한다. 그럴 때 그의 말 속에는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깨는 기발한 착상들이 쏟아져 나오게 되고 그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웃음을 야기하게 되는 것이다.


    4. 독서로 인생역전-호모 부커스


      사랑의 패턴은 삶의 패턴과 나란히 함께 간다. 사는 건 엉망인데, 사랑은 멋지게 되는 경우는 없다. 절대! 따라서 삶에 대한 통찰력이 없이 누군가를 지속적으로 사랑을 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장금이 - 책에 대한 사랑이 두 사람의 운명적 만남을 가능케 해준 셈. 또 그녀는 언제 어디서나 스승을 만나고, 친구들과 깊은 우정을 나눈다. 말하자면, 그녀는 늘 어디서건 앎의 코뮌에 접속한다. 그녀의 사랑은 늘 그것들과 함께 간다. 사랑은 삶의 모든 과정을 멈추게 하고, 결국에는 죽음이라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사랑들과 함께 가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관계 속으로 진입해 들어가는 존재론적 표현인 것이다.

      가장 좋기로는 <서유기>,<수호지>,<홍루몽>,<옥루몽> 등과 같은 장편을 도스토예프스키나 톨스토이, 푸르스트나 보르헤스 등 사상적 깊이를 갖춘 서양소설과 함께 읽는 것이다. 소설적 재미도 맛보고 동시에 사유의 힘도 기를 수 있기 때문이다.

      고전은 눈이 아니라 소리로 만나야 한다. 그래야 기질이 바뀌고 내공이 쌓이는 법이므로

      <희망의 인문학>의 저자 얼쇼리스-빈민들이 진정 박탈당한 것은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통찰할 수 있는 정신적 자산이었다. 한 번도 지적 풍요로움을 경험해본 적이 없다보니 늘 충동에 내몰리게 되고, 그러다 보면 범죄와 마약의 수렁에서 헤어날 길이 없는 것이다.

      독서는 결코 선택이나 취미가 아니라 필수며, 특히 고전 읽기를 하지 않는다면 그 공부는 말짱 도루묵이다.

      고전읽기를 위해 친구를 부르는 일은 이 팍팍한 레인을 벗어나 친밀성의 공간을 구성하는 첫번째 발걸음이다.


    5. 글쓰기는 신체를 어떻게 단련시키나


      평생 배움의 길을 가고자 한다면, 먼저 간절히 염원하라. 자신의 인생을 바꿔줄 스승(아니면 도반)을 만나게 해달라고.

      차이를 구성하라-"기존연구와 다른 주장이 뭐야?","너 자신의 눈으로 자료를 보라","너 자신의 고유한 문제를 설정하라","차이를 구성하라는 것"

    "호리의 차이가 천리의 어긋남을 빚는다."

      대상이나 방법론이 무엇이건 지식인이라면 일단 자신이 던진 물음과 '온몸으로'마주하는 훈련부터 해야한다. 과녁을 향해 달려가는 화살처럼 말이다. '화살-되기'

      일이관지

      지전능변


    3부 인생의 모든 순간을 학습하라-"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1. 평생의 일대사


      적어도 공부라고 하면 존재 자체가 특별한 경지에 도달하는 과정이어야 하지 않을까


    2. "천지에 가득한 책의 정기"


    3. 몸과 일상, 문명의 거처


      이성 간이건 가족 간이건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선 공부를 해야한다.

      남을 웃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스스로 잘 웃는 것이다. 타인의 말과 행동에 적극적으로 반응해주는 것, 그것은 늘 명랑한 웃음으로 표현되게 마련이다. 따라서 웃음에는 반드시 좋은 관계들이 전제된다.

      "죽음은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가 존재하는 한 죽음은 우리에게 있지 않으며, 죽음이 오면 우리는 존재하지 않기 떄문이다.

      운명이 궁금하냐? 그럼 네 몸을 잘 관찰해봐. 네 몸의 동선과 습관,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내는 관계와 활동, 그게 바로 너의 운명이야

      사주를 보는 것은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한 후에 마지막으로 화룡정점으로서 보겠다 할 떄 영감을 작동합니다.


    4. 스승, 배움의 전령사


      그렇기 때문에 순임금가 공자가 성인이 된 것도 남에게 묻기를 좋아해서 배우기를 잘 한 데 지나지 않는다<연암집>

      성인이란 남을 가르치고 훈계하는 존재가 아니라, 남보다 앞서 부지런히 배우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 위대한 스승들이 제자들에게 전수하고 싶었던 건 어떤 구체적 이념이나 원리라기보다 배움의 열정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계몽이 아니라 촉발, 훈계가 아니라 감염

      공부하면 이 다음에 훌륭한 사람이 되고, 뭔가를 얻게 될거라고 말해선 안된다. 공부하는 그 순간, 공부와 공부 사이에 있다는 바로 그것이 공부의 목적이자 이유여야 한다. 고로 공부는 존재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5. 공부는 혁명과 어떻게 조우하는가?


    에필로그-공부해서 남주자.


      미꾸라지 되기-그럼 공부는 뭣 때문에 하냐고? 남들에게 퍼주기 위해서다. 얼마나 많이 퍼줄 수 있느냐가 나의 내공을 결정하다. 최고의 경지에 오르게 되면 '공부의 달인'들처럼 퍼준다는 생각조차도 없이 퍼주게 된다. "다만 힘차고 유유히 장강과 대해를 헤엄쳤을 뿐인데, 그 기운으로 다 죽어가는 뱀장어들을 살려낸 미꾸라지"처럼 말이다. 고로, 공부해서 남주자!

  • 호모쿵푸스 | ro**ar | 2010.01.29 | 5점 만점에 3점 | 추천:0
    공부하지 않으면 행복하다 말할 수 없고, 공부하지 않으면 존재한다 말할 수 없다.     "호모쿵푸스(...

    공부하지 않으면 행복하다 말할 수 없고, 공부하지 않으면 존재한다 말할 수 없다.

     

     

    "호모쿵푸스(Homo Kungfus)"란? 공부를 머리가 아닌 몸으로 하는 '공부의 달인'을 뜻한다. 쿵푸 하듯이 앎에 대한 열정으로 몸을 단련하고 일상을 바꿔 나가는 존재이다. 자의식을 넘어서는 공부, 일상이 혁명이 되고 혁명이 곧 구도(종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의 경지)가 되는 공부이다. 호모쿵푸스(Homo Kumgfus)에서 말 하고자 하는 것은 학교의 제도 비판을 위한 것도 아니고, 사회 구조적 배열에 이미 존재하거나 앞으로 존재할 사람들에 안타까운 시선을 토로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공부하는 잘못된 것에 대해 지적하고, 그것에 대해 바로 알고, 올바른 태도를 갖자고 말하고 있다.

     

    이 책은 공부의 잘못된 개념을 변질이란 표현을 빌어 독설들을 마구 쏟아낸다. 또한 그것의 사회적 분위기와 변화를 정탐하고 관조(觀照)하여 근본적인 문제인 공부란 무엇인가? 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開陳, 주장이나 사실을 밝히기 위하여 의견이나 내용을 말하거나 글로 씀.)하고 있다. 작가는 30년 전 자신이 겪은 고등학교 입시 상황을 입시전쟁으로 표현하고 있고, 그것은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계속된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그 동안의 세월에 공부라는 개념이 상투적으로 확대되고 재생산 되어 온 것과 지금도 반복 되어가는 것을 비판하는 것이다. 30년이라는 세월은 많은 것을 변화하게 하고 변혁 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 입시를 치열함 그리고 전쟁 그 자체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것들은 결국, 살아남으려는 경쟁력을 키우고, 특목고를 거쳐 아이비리그로 유학을 가기 위해 공부는 성적을 올리기 위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험을 봐야 하고 이 시험은 대학을 가기 위한 시험이 되고 그 다음엔 취직을 위한 시험이 되고, 취직한 다음엔 승진을 위한 시험을 봐야 하는데, 이 시험들은 공부의 잘못된 개념에서 나온 것 이다. 기업은 그 네임벨류(Name Value)에 맞는 질 좋은 스펙(spec, specification의 줄임 말, 사전적 의미는 제품의 명세/사양이란 뜻이며, 요즘은 개인의 다양한 경험과 능력을 줄여서 말한다.)을 요구하고, 학생은 취업을 위해 기업이 요구하는 스펙을 갖추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험을 봐야 하는데, 학교는 학생에게 시험을 보기 위한 공부만을 제공 한다. 이런 사회적 현상을 변질로 보고 공부에 대한 그릇된 개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공부란 무엇인가? 라는 철학적인 물음을 통해 변질된 공부의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데 그 중 공부는 스펙을 갖기 위한 실존적 수단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고, 그 시기와 때가 있다는 것들이다. 학교가 사회적 지휘를 획득하려는 수단에 불과한 변질된 개념들을 양성하고, 그 생명력을 이어가는 이 시대의 학교와 사회적 분위기를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맹목적인 분위기를 바로 알리기 위해 공부의 의미, 공부의 목적, 공부로 인한 효과를 설명하고 그리고 공부에 대한 개념을 자의적이지만 타당하게 설명하고 있다.


     

     작가가 말하는 공부의 의미는 "사회적 구조를 벗어나 삶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는 것"이다. 우리는 탄탄한 사회적 구조 속에 이미 살고 있고 어떡하든 그것을 뛰어넘을 만한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학교에서 교육받고 훈련된 맞춤형 인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근대적 기반의 사회 구조와 조직의 역할에 맞게 생산된 spec을 갖춘 구성품이며, 그 역할을 벗어나거나 거부하면 낙오자 또는 실패자로 인식된다. 이렇게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모든 관념과 습속(습관이 된 풍속)이 근대성에서 연원(사물의 근본, 본원)하는 것이라면 탈 근대를 통해 벗어나면 된다고 말한다. 그러한 근대적 관념과 사조를 읽어낼 수 있는 것은 공부(앎, knowledge)에 있고, 사유에 기초한다. 그렇게 되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고, 새로운 가치관이 형성되고, 맞춤형 구성품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근대적인 사조를 뛰어 넘어서라고 한다. 탈 근대를 위한 방법에는 인터넷이나 첨단 테크놀러지, 전위적인 예술의 사조를 빌어 근대의 습속을 벗어나거나 전복하는 것, 그리고 고전을 소개하고 있다. 그 중 작가는 고전이야 말로 진정 "미-래"적인 것이다. 라고 정의 하는데 "미래"는 영원히 오지 않는 시간 이다. 그러나 아직 오지 않았지만 곧 도래할 시간이라는 의미로 미-래를 정의하고 있다. 고전이란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거울과도 같아서 자신의 위치를 깨닫게 해주고, 자신이 잊고 살아온 것을 깨닫게 해주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 가야 할지를 계획하게 하고,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억압 받는 사유가 아닌 자유로운 사유를 하게한다. 결국, 근대적 구조를 넘어서기 위한 정신적 사유의 DNA가 재 편성되는 것이다. 그러한 사유와 행동에서 나오는 삶을 그리는 것이 작가가 말하는 진정한 호모쿵푸스(Homo Kumgfus)의 전략이다.

      

    작가는 배움을 위해 커뮤니티를 강조하는데 그것을 "코뮌"으로 정의한다. 코뮌이란 기성의 권력과 습속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구성하고자 하는 이들의 자유롭고 창발적인 집합체 혹은 네트워크를 의미한다. 스승을 만나는 것은 바로 그 코뮌에 접속한다는 것이다. 즉, 공부는 살아가는 가는 동안 꾸준히 학습하기 위함인데 그 스승이 바로 코뮌이라는 것이다. 작가는 출세하려는 사람들은 외로운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출세 할 수록 왕따가 된다고 하는데 그것은 권력과 돈을 열심히 좇아 살다 보니 친구들을 잊고 사니까 외롭다고 말하고 있다. 갖은 자의 여유와 편안함을 생각했던 나에게 책을 덮은 후에도 계속해서 곱씹어 생각하는 대목이다. 나의 주변을 잊고 살아 왔기에 더욱 그러했다.

     

    작가에게 있어서 행복과 존재의 키워드는 앎(knowledge)이다. 인간의 조건은 삶과 행복에 있는데 그것들의 생기를 부여하는 것은 오직 앎(knowledge)뿐이라고 3단 논법으로 단순하고 명쾌하게 정의했다. 즉,"공부하지 않거나 행복하지 않거나", "행복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로 말하고 있는데 바로 이 대목에서 공부에 대한 작가의 철학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공부하지 않으면 행복하다 말할 수 없고, 공부하지 않으면 존재한다 말할 수 없다.는 해석을 통해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구체적이고, 자의적인 사변을 문학적 색체와 철학적 논리로 독설하듯 비판하였다.


     

    사람들이 이 책을 읽는 동안 작가가 문제 제기한 잘못된 현실을 각인 시키기 위해서 독설가의 컨셉을 설정했다. 책을 읽는 동안 정신 없이 퍼부어대는 문체들은 순간 작가가 말하는 의견들에 대해 나 스스로 역 반응을 보이다가도 결국 그 의견에 동의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어 버리는데...... 이것은 철학적 논리의 강점과 독설을 이용한 것이다. 작가는 과히 문학적 프레임을 갖은 철학가이다. 철학은 앎에 관한 학문이지 않은가? 소크라테스가 광장에서 앎에 관해 외치는 소리와 같이 고미숙 작가는 종이 위에 앉아 조용히 문체를 통해 그것을 외치고 있었다. 결국, 공부란 앎(knowledge )에 관한 문제이다.

     

    철학적 논리와 문학적 감성의 표현을 통해 호모쿵푸스(Homo Kumgfus)는 탄생 했다. 고미숙 작가는 호모 쿵푸스를 통해서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의 존재론적 사유와 "공부해서 남 주자"는 실천으로 실존적 공부와 행위를 제시하고 있다. 또 작가는 지식보다 태도가 앎에 대한 올바른 자세라고 말하고 있다. 코뮌과의 교류를 통해 배움의 스승들을 만나고, 배움에 있어서 자세를 낯추고, 마음을 비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미 습득한 지식에 갇혀 새로운 흐름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태도가 올바르면 지식은 교정된다. 그렇지 못하면 잘못된 태도를 통해 나름의 논리로 끝까지 고수하기 때문이다. 다수의 동의를 얻기 보다는 이기적인 논리가 되는 것이다. 나는 이런 사람들을 여럿 보았다.

     

    진정한 공부는 결과 보다는 과정을 통해 교훈을 얻고 깨닫기 위함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을 둘러싼 삶에 대해 끈임 없이 앎에 대한 궁금으로 가득 찰 것과 자신의 인생이 앎으로 인해 행복과 존재의 영역을 넓혀갈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작가의 주장이 타당한 이유는 "어떤 견해가 타당 하려면 제기하는 논쟁과는 무관하게 가능한 한 다수의 동의를 얻을 수 있다"는 것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가 말하고 있는 것 모두는 경험한 사실에서 기인하였고, 호모쿵푸스(Homo Kumgfus)』에서 제기하는 표현과 철학적 논리는 다수의 동의를 얻기에 충분하다.

    나는 고미숙 작가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의 견해도 상당 수 들어 보았고, 그들의 이유 역시 타당하였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어떤 사실에서 개념을 만드는 순간. 그들은 여러 측면 중의 하나를 포착하는 것에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때 통상적으로 전체를 파악했다는 착각에 빠져든다. 전체적 이라고 규정된 개념 조차도 사실은 전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리로 호모쿵푸스(Homo Kumgfus)』의 내용들을 반박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호모쿵푸스는 변질된 공부의 개념을 상투적으로 확대 재해석되는 사회적 분위기를 자신의 고유한 문제로 설정하고, 견해에 있어서 차이를 구성하고, 하나의 논리로 관통하는 길을 열어 보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소크라테스의 논리적 산파와도 같은 작가의 논리는 타당하다.

     

    작가는 공부의 최종심급인 글쓰기를 통해 담론을 생산할 수도 있고, 코뮌의 리더도 될 수 있다고 했다. 글이란? 자신의 정체와 삶의 특이성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도구라는 것이다. 세상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고, 그 글을 읽는 사람들의 동의를 얻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온 우주를 text(본문, 원문)로 보라는 것과 그 text를 사랑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 다양한 context(문맥, 정황, 배경)를 읽어내거나 오류를 발견하고, 새롭게 재 구성하여 세상에 다시 내놓을 수 있다. 그리고 대상이나 방법론이 무엇이건 지식인이라면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에 대해서 반성적 사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작가는 글쓰기를 위한 기존의 여러 서적과 방법론들을 철저하게 비판하고 오히려 그것들로 인해 희망은 없고, 사유는 경직되고, 특히 테크닉에 의존하는 치명적 오류를 범하게 된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소개한다. 첫째는 고전강독, 둘째는 소리 내어 읽기, 셋째는 독후감 쓰기 이다. 이 방법을 통해 얻어 질 수 있는 효과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시각적으로 분별조차 안 되는 문장들이 소리를 거치면서 마치 실타래가 풀리듯 자연스럽게 그 의미를 드러냈다. 공부란 오직 시각에 의지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깨진 것이다."  자신의 경험을 진솔하게 글로 표현하고 있으며 그 진솔함은 나의 기억에 남게 되었다.

     

    나를 포함한 이 책을 읽는 사람들 모두는 공부의 의미를 알고 있다. 그러나 자신도 모르게 사회적 분위기와 타성에 젖어 공부라는 의미를 어떻게 말하고, 공부하고 있는가? 변화하는 시대에 맞게 개념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말은 오히려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본질은 변하지 않는 것이며, 변해서도 안 되는 것이지 않겠는가? 가치를 생성하고 부여한다고 하여 본질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읽은 후 공부라는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내가 전시회를 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부(앏, knowledge)하고자 하는 태도였다. 사회적 정의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구체적인 정의를 파악하고, 그것의 역사와 개념들을 조사하고, 분석하여 나만의 정의를 내리고 또한 코뮌과의 접속을 통해 배움의 교류와 길을 가고 있다는 것 말이다. 이러한 결과는 나를 성숙하게 하고, 정적인 태도와 사유를 벗어나게 하고, 무엇보다도 세상에 대해 자신을 길러주고있다.

    내가 속한 사회적 구조를 뛰어 넘을만한 도구는 역시 공부(앏, knowledge)를 통한 탈 근대이다. 그리고 이 책이 공부의 뜻과 실체가 다른 것으로 구분하여 쓰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일으켰으면 하는 작가의 바램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다만 아쉬움이 있다면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가 학교의 비판적 논리에 가리워져 많은 사람들에게 호모쿵푸스(Homo Kumgfus)는 학교비판이라는 책으로 각인될까 염려된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공부에 관한 존재론적 사유와 논리, 실존적 대안이 자칫 학교 비판의 독설의 그림자에 가려지는 것이 말이다. 사회적 정의에 민감한 이들에겐 비판적 색채만 노출될 것이고, 그것에만 반응하여 호모쿵푸스(Homo Kumgfus)의 진정한 의미는 놓치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호모쿵푸스(Homo Kumgfus)』를 읽고 학교의 시회적 제도에 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싶다면 이반 일리히의 학교 없는 사회를 읽어 볼 것을 권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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