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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의 고해
| 규격外
ISBN-10 : 1155400445
ISBN-13 : 9791155400449
정약용의 고해 중고
저자 신창호 | 출판사 추수밭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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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16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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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 잘 받았습니다. 많은 정보 얻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제언: 플라스틱 안쓴는 패킹 연구해보세요! 종이봉투/종이테이프 등 5점 만점에 5점 four*** 2021.09.07
128 엄청 꼼꼼하게 포장되어 배송이 왔습니다. 중고 구매는 처음인데 새 책 배송과 다름 없습니다~ 배송도 목요일에 주문해서 토요일에 도착했습니다. 감사합니다. 5점 만점에 5점 tnduds1*** 2021.09.06
127 감사합니다????? ? 5점 만점에 5점 dom*** 2021.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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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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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의 고해』는 정약용의 〈자찬묘지명〉을 지금 새로 풀어쓴 책입니다. 〈자찬묘지명〉이란 스스로 쓴 자신의 묘지명으로, 정약용의 자서전과 마찬가지인 글입니다. 그동안 정약용의 〈자찬묘지명〉은 독자들이 다가갈 수 없는 전문서나 또는 여러 유언/묘지명을 엮은 책에 요약되어 공개된 게 전부였습니다. 《정약용의 고해》는 정약용의 〈자찬묘지명〉 가운데 집중본을 대중교양서로서 최초로 소개를 시도한 도서입니다.

저자소개

저자 : 신창호
저자 신창호는 고전학자이자 교육학자이다. 고려대학교에서 교육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사서四書의 수양론을,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중용中庸의 교육론을 연구했다.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수를 거쳐 현재 고려대학교 교육학과에서 후학들에게 한국 교육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고려대학교 입학사정관실장, 교양교육실장 등을 역임했고, 현재는 한국교육철학학회 회장으로 봉사하고 있다.
고전을 오늘날의 시선으로 되짚어보고 지금 여기에 적용하려는 저술 작업에 열정을 쏟고 있다. 극소수만이 누리는 박제된 영역이 아니라 일상에서 시민들과 함께 호흡하는 인문학이라는 화두를 고민하며, 고려대학교 평생교육원 동양고전특강을 비롯해 각종 시민대학과 자유교양 강좌 등에서 고전과 인문학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일생에 한번은 논어를 써라》를 비롯해 《공자가 청춘에게》, 《공부 그 삶의 여정》, 《함양과 제찰》, 《길 위의 인문학》(공저), 《톨스토이의 서민교육론》, 《유교 사서의 배움론》, 《대학, 유교의 지도자교육철학》, 《유교의 교육학 체계》, 《한글논어》, 《한글맹자》, 《한글대학중용》, 《나는 무엇인가》, 《마흔은 어떻게 단련되는가》 등 20여 종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진시황평전》(공역), 《공자평전》, 《노자평전》(공역), 《관자》(공역) 등이 있다.

목차

머리말 정약용의 고해를 열며

1부 나 선비의 아들 열수
나의 죽음 이후를 쓰다
살얼음 위를 걸었던 삶
나의 뿌리와 이파리
내가 딛고 서 있는 터전
나의 학문이 시작된 때
성호를 좇다 | 이가환을 그리다 | 이승훈을 소개하다
나의 벗, 나의 성균관
중용을 고민하다 | 다시 중용을 고민하다 | 나는 유학을 공부했다

2부 나 임금의 신하 약용
나의 임금을 받들다
임금께서 시험하시다 | 옥사에 휘말리다 | 임금께 인재를 추천하다 | 나의 벗, 나의 적 이기경
나의 아버지를 여의고, 나의 임금을 받들고
임금께 화성을 올리다 | 임금께서 아버지를 받들다 | 임금의 눈과 귀가 되다 | 임금께서 아버지의 휘호를 올리다 | 임금께 상소를 올리지 못 하다 | 임금께 넘치는 은혜를 받다 | 꽃이 피었던 어느 날을 돌아보다 | 임금께서 상방검을 내리시다
천주교와 마주하다
조선에 온 주문모 | 거듭된 천주교 박해 | 소인배들의 모함으로 좌천되다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성은을 받다
임금께 책을 올리다 | 백성을 기르고 폐단을 막다 | 역병을 통해 앞날을 내다보다 | 교화와 형정 으로 다스리다 | 소인배들의 시기를 받다
하늘이 무너지다

3부 당신 유배지로 떠난 다산
유배의 여명
새 임금께서 오시다 | 거듭 누명을 쓰다
유배의 시작
유배, 강진 시절
유배지에서 이 땅의 근간을 궁리하다
육향의 제도 | 사람을 가르치는 세 가지, 향삼물 | 현실에 적용되는 여섯 가지 공부
유배 이후, 회상의 길목에서

4부 나 유학자 여유당
내 사유의 흔적
나는 시경을 이렇게 읽었다
시경의 핵심과 작법, 육의 | 올바름의 갈구, 시 | 지도자에게 보내는 간절한 호소, 오성과 육률
나는 서경을 이렇게 읽었다
위작을 밝히다 | 삶에 대한 기준, 홍범 | 홍범의 아홉 가지 규범 | 제왕의 법칙, 황극
나는 역경을 이렇게 읽었다
미래를 맞이하는 마음가짐 | 역을 다시 해석하다
나는 예기를 이렇게 읽었다
떠난 이를 기리기 위해 정성을 다하는 법
나는 악경을 이렇게 읽었다
오성과 팔음 | 악을 다시 해석하다
나는 춘추를 이렇게 읽었다
하늘을 받들고 본받다, 춘추의 도 | 춘추를 다시 해석하다
나는 논어를 이렇게 읽었다
구체적인 일상의 말, 논어 | 예에서 인으로, 논어의 영향 | 논어를 다시 해석하다
나는 맹자를 이렇게 읽었다
타고난 덕의 배양, 왕도 | 맹자를 다시 해석하다
나는 중용을 이렇게 읽었다
충실한 삶의 실천, 중용 | 중용을 다시 해석하다
나는 대학을 이렇게 읽었다
사람답게 산다는 것, 대학 | 대학을 다시 해석하다 | 공감하고 배려하는 것, 인의 실천
나는 이렇게 써왔다
보다 나은 나라를 위한 실천, 경세유표
백성을 아끼고 섬기기 위한 실천, 목민심서
억울한 사연을 살피기 위한 실천, 흠흠신서
나는 다만 이렇게 써왔다

종장 다시 나, 정약용
정약용 〈자찬묘지명〉 원문
참고문헌

책 속으로

《도덕경》은 바라보는 이에 따라 다르게 풀이된다. 허나 어느 《도덕경》이라도 첫머리는 ‘선비[士]’와 인간의 길을 제대로 걷는 사람으로 시작한다. 선비로서 나를 정돈하기 위해 호를 지으면서 그것에 스스로를 투영해보았다. 그리고 내가 갔던 삶과, 내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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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경》은 바라보는 이에 따라 다르게 풀이된다. 허나 어느 《도덕경》이라도 첫머리는 ‘선비[士]’와 인간의 길을 제대로 걷는 사람으로 시작한다. 선비로서 나를 정돈하기 위해 호를 지으면서 그것에 스스로를 투영해보았다. 그리고 내가 갔던 삶과, 내가 가려 했던 삶에 대해 반추한다. _살얼음 위를 걸었던 삶 중에서.

이에 나는 《기중가도설起重架圖說》을 지어 올렸다. 활차滑車와 고륜鼓輪은 작은 힘으로 큰 무게를 옮길 수 있는 도구였다. (중략) 드디어 수원 화성이 만들어졌다. 임금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다행히도 기중가를 쓸 수 있어 4만 냥이나 줄였구나.” _임금께 화성을 올리다 중에서

봉은사에서 경전을 읽으며 과거 공부를 하던 시절이니 돌이켜보면 아련하다. 자부 이승훈은 황인점의 서장관이 된 아버지를 따라 북경에 가기로 결심했다. 이 여행은 열렬히 천주교를 연구하던 이벽과 셋째형 약종, 그리고 나의 주선에 의한 것이었다. 북경으로 떠나기 전에 이벽은 자부를 찾아가 간절히 부탁했다._이승훈을 소개하다 중에서

임금께서 앉아 계신 바로 앞에서 붓을 뽑자, 땅이 평평하지 않다고 하시면서 당신께서 계신 자리 위에 시축을 올려놓고 쓰도록 명하셨다. 내가 머리를 조아리며 감히 나아가지 못 하자, 여러 번 앞으로 나오도록 명하셨다. 할 수 없이 임금께서 거하시던 자리로 나아가 붓을 휘둘렀다. 임금께서는 가까이 보시고는, “잘 쓴다!”라고 칭찬하셨다. 내가 임금께 받은 것이 이와 같았다. 이와 같이 넘치게 받았다.
(중략) 그날 (귀양을 떠나는 내게) 이렇게 이르셨다. “길을 떠나는 순간부터 다시 살아서 한강을 넘어올 방도를 모색하도록 하라.”_꽃이 피었던 어느 날을 돌아보다 중에서

내가 조용히 나아가 말했다. “신근봉臣謹封이라고 쓰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자 채제공이 눈짓으로 주의를 주며, 함부로 말하지 말도록 눈치를 줬다. 이때 민종현과 심이지가 바로 물었다. “어째서, 그렇게 써야 하는가.”
내가 대답했다. “(중략) 지금 우리 여러 신하들이 임금의 명을 받들어 옥책 등을 만들어 대전大殿에 올리려고 합니다. 그러면 대전은 그 효성으로 태비와 태빈께 바치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지금 대전에게 어떻게 신이라 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채제공이 가만히 듣더니 “아주 좋다”고 말했다._임금께서 아버지의 휘호를 올리다 중에서

“전하실 말씀을 하실 때에 안색이 몹시 그리워하고, 말씀하시는 뜻 이 따스하고 정성스러웠는데, 좀 특이한 일이었습니다.” 서리가 나간 뒤 마음이 울컥하고 편하지 못 했다. 그 다음날부터 임금의 옥체가 편하지 않았다.
6월 28일, 임금께서 승하하셨다. 바로 그날 밤에도 서리를 보내 서 적을 하사하시며 이것저것 물으셨는데, 그것이 영원한 작별이 되었다. _하늘이 무너지다 중에서

나에게 닥칠 화색禍色이 점점 짙어지고 있음을 직감했다. 날로 사정은 급해졌다. 처자식을 고향마을 마현리로 돌려보내고, 홀로 한양에 머물면서 시세를 살피고 있었다. 겨울에 임금의 상복을 마친 뒤에는 한강 가의 소내로 아주 돌아왔다._유배의 여명 중에서

하루는 시름에 젖어 있는데 꿈에서 노스승이 이렇게 꾸짖었다. “소무蘇武는 19년 동안 참았는데, 지금 그대는 19일의 고통도 참지 못하는가?” (중략) 감옥에 있었던 날을 계산해보니 19일이었다.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어, 감옥살이와 귀양살이 한 날을 계산해 보니 또 19년이었다. 그러니 인생에서 막힘과 트임이 정해진 삶이 없다고만 할 수 있겠는가? (중략) 그리고는 드디어 혼연히 기꺼워했다_ 유배 이후, 회상의 길목에서 중에서

춘추시대에는 상을 당했을 때 그 기간이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두예司隷(224~284)가 은나라 고종이 아버지 소을小乙의 상을 치르면서 오두막에서 3년 동안 말하지 않았던 사실을 두고, 천자가 상을 치르는 집에 대해 이런저런 말을 하면서 그 기간을 짧게 하려는 잘못을 저질렀다. 말은 그럴 듯하게 꾸며 놓았지만, 나는 그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_ 나는 춘추를 이렇게 읽었다 중에서

나는 《목민심서》를 통해 목민관을 옹호하거나 관청의 입장에서 지방 행정의 원리를 논의하고자 하지 않았다. 다만 무엇보다도 백성의 편 에 서서 목민관이나 관청의 횡포, 부정부패 등에 대해 폭로하고 고발 하며 탄핵하고 경계해야 한다는 점을 호소했을 따름이다. _백성을 아끼고 섬기기 위한 실천, 목민심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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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정약용은 왜 자신의 묘지명을 스스로 써야 했을까? 정약용은 무덤 속에 묻었던 글에 무엇을 남겼을까? “나는 다산으로 불리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의 인생을 정리한 글, 자찬묘지명 정약용의 마지막 고백으로 그와 정조의 시대, 그리고 그의...

[출판사서평 더 보기]

정약용은 왜 자신의 묘지명을 스스로 써야 했을까?
정약용은 무덤 속에 묻었던 글에 무엇을 남겼을까?


“나는 다산으로 불리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의 인생을 정리한 글, 자찬묘지명
정약용의 마지막 고백으로
그와 정조의 시대, 그리고 그의 삶에 다가가다
출판사 서평

허름한 방에 초로의 사내가 앉아 있다. 한때 그는 어디서든 중심에 서 있는 게 당연했다. 한국에서 논문에 가장 많이 인용된 철학자였고,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물을 올린 공학자였다. 마흔에 이미 국무총리까지 지낸 유능한 관료이기도 했다. 하지만 빛나던 순간은 찰나와 같았고, 추락은 길었다. 그는 이십 년을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다음에야 세상으로 돌아왔다. 갇혀 지낸 생을 꼽아보니 삶의 3분의 1이나 차지했다. 검은 머리카락보다 흰 머리카락이 많아진 그는 더 이상 천재도 무엇도 아니었다. 다시 만난 바깥 또한 그가 알던 세상이 아니었다. 젊은 사자와 같았던 동지들은 옛사람으로 사라졌다.
과거는 마치 어제와 같은데, 고개를 돌려보니 육십이다. 환갑을 맞았지만 감히 자신의 예순한 번째 생일이 기념되리라 기대하지 못 한다. 대신 그는 낡은 정장 차림으로 홀로 앉아 오래된 카메라 앞에 앉아 있다. 그는 환갑을 맞아 자신의 영정을 스스로 촬영하고자 한다. 그는 그 기록에 무엇을 담고 싶었던 것일까.

정약용이 남긴 자신의 삶, 〈자찬묘지명〉
대중교양서로 최초 소개!


《정약용의 고해》는 정약용의 〈자찬묘지명〉을 지금 여기 우리의 눈높이에 맞춰 새로 풀어쓴 결과입니다. 〈자찬묘지명〉이란 스스로 쓴 자신의 묘지명으로, 정약용의 자서전이나 마찬가지인 글입니다. 그동안 정약용의 〈자찬묘지명〉은 독자들이 다가갈 수 없는 전문서나 또는 여러 유언/묘지명을 엮은 책에 요약되어 공개된 게 전부였습니다. 《정약용의 고해》는 정약용의 〈자찬묘지명〉 가운데 집중본을 대중교양서로서 최초로 소개하는 시도입니다.

그렇다면 ‘정약용 지음 신창호 옮김’으로 표기해야 하나 이 책은 ‘신창호 지음’으로만 설명됩니다. 선비가 쓰는 글의 참뜻은 글줄이 아니라 행간에 숨어 있기 마련입니다. 〈자찬묘지명〉을 충실히 번역하고자 시작된 글은 한 선비가 죽음을 직시하는 순간까지 행간에 감춰뒀던 말을 끄집어내는 과정에서, 어느 순간 지은이와 옮긴이의 목소리가 겹쳐지게 되었습니다. 저자와 비슷한 연배에 이른 정약용의 고백에 저자가 동화된 것입니다. 그만큼 정약용이 직접 들려주는 그의 삶은 굴곡지고 먹먹했지만, 누구나 깊이 공감할 만한 생의 절절함이 있습니다. 이제부터 또 다른 정약용들을 위해 정약용이 남긴 고해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나는 나의 삶을 연민한다”
고해苦海에서 고해告解하다


그래도 우리는 정약용을 모른다
정약용은 익숙한 이름입니다. ‘다산학’이라고 지칭되는 빼어난 학문적 성취를 거둔 유학자이자, 성호 이익에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실학자입니다. 화성 축조에 참여한 공학자였고, 정조에게 상방검을 받은 비밀공작원이기도 했습니다. 법의학자이자 수사관이었으며, 40대에 이미 정승에까지 오른 관료였습니다. 그리고 천주교 배교자로, 혹은 독실한 천주교도로 엇갈리게 해석되기도 합니다. 그는 격정이자 혼돈이었으며, 18세기 조선 그 자체였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는 대중문화에서 수없이 변주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조선의 셜록 홈즈로 그려질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런 다양한 ‘정약용’들을 보며 한 가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목민심서》를 비롯한 그의 저술은 대부분 말년에 이룬 성취입니다. 정약용은 일흔다섯 해를 살았지만 우리에게 낯익은 정약용의 얼굴은 30대, 정조와 함께 활동했던 극히 짧은 시기에만 집중되어 있습니다.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조차 중년 무렵에 이뤄진 것입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정약용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집니다.
널리 알려진 정약용의 네 얼굴이 있습니다. 강퍅한 인상을 가진 작자 미상의 초상, 무속적 색채가 짙은 초의선사가 그린 초상, 단아한 인상의 장우성 화백 표준 영정, 신지식인과 같은 모습의 김호석 화백 새 영정입니다. 하지만 정약용은 자신이 외가의 피를 진하게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그의 외조부는 우리에게 귀기 서린 초상으로 알려진 윤두서입니다. 실제로 그는 20년 가까운 유배생활을 이겨내고 고향으로 돌아왔을 정도의 강골이었습니다. 어쩌면 정약용은 상상과는 다르게 선이 굵은 인상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정약용이 세상을 떠난 지는 올해(2016년)로 세 갑자(180년)밖에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는 천 년 전 사람인 것처럼 자신이 남긴 수많은 흔적들 속으로 자신의 모습을 감췄습니다. 그래서 정약용은 지금까지도 해석이 분분한 ‘문제적 인간’이고, 수다쟁이 같이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냈지만 우리는 그의 삶 가운데 지극히 일부분만 알고 있을 뿐입니다.
다행히 정약용은 회갑을 맞아 자신의 고해와 같은 삶을 스스로의 목소리로 정리해 남겼습니다. 《자찬묘지명》입니다. 이 책은 바로 그에 대한 이야기, 정약용 본인이 직접 들려주는 정약용의 삶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정약용은 왜 자찬묘지명을 썼을까?
‘자찬묘지명’은 스스로 쓴 자신의 묘지명을 가리킵니다. 묘지명은 친인척이나 지인들이 써주는 것이 관례입니다. 그래서 자찬묘지명은 묘합니다. 자서전도, 유언도 아니지만 그 모두를 포함합니다. 예부터 선비들은 삶을 새롭게 정돈하고자 할 때 죽음을 직시하며 스스로를 다스렸습니다. 그럼에도 ‘자찬묘지명’이 마치 정약용의 글만을 가리키는 고유명사처럼 받아들여지는 까닭은, 그의 개인사가 곧 18세기 조선사를 관통하기 때문이고, 그의 자찬묘지명 자체가 가진 독특함이 두드러지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바로 속삭이듯 써내려간 솔직함입니다. 그는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자리에서조차 끝내 삼켜야 했던 말과 반드시 해야만 하는 말들 사이에서 맴도는 번민까지 그대로 드러냈습니다.
그가 자찬묘지명을 썼던 다른 선비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그의 처지일 것입니다. 환갑에 이르러서야 유배지에서 돌아온 그를 다독여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누군가에게 묘지명을 기대하는 것도 감히 바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지금으로 비유하자면, 그는 환갑잔치 대신 자신의 영정을 셀카로 찍는 초로의 노인과 같았습니다. 정약용은 어떤 심정으로 스스로의 묘지명을 적어 내려갔을까요.

고해를 건너는 생의 독백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정약용의 호는 ‘다산’입니다. 강진에서 그가 거했던 곳의 이름 또한 다산초당이지요. 그러나 얄궂게도 정약용의 《자찬묘지명》에서는 다산초당에서의 시간이 그저 지나가는 식으로만 짧게 언급되었습니다. 그가 《자찬묘지명》을 썼을 때가 예순이었으니 다산초당에서의 시간은 그의 인생에서 3분의 1을 차지합니다. 그럼에도 그는 자서전이나 마찬가지인 글에서 무심한 척 그때를 흘려보냅니다. 대신 아주 짧은 기간이었던 정조와의 교류를 비중 있게 다룹니다.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예뻤던 그때를 수없이 반추하며 모진 시절을 버텼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그의 학문을 일컬어 ‘다산’학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바탕이 된 저술들을 묶은 다음 정약용 스스로는 ‘여유당’전서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만약 정약용을 지금 여기로 소환할 수 있다면, 정약용은 어떤 이름으로 불리기를 원할까요. 정약용은 이에 대해 어떤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자찬묘지명》에는 간접적으로 그 심정이 드러나 있습니다.
그가 고향으로 돌아온 다음 지은 호인 여유당은 《도덕경》에 나온 “여혜與兮, 약동섭천若冬涉川, 유혜猶兮, 약외사린若畏四隣”에서 따온 것으로, 겨울에 살얼음 냇가를 건너듯 삼가하고 두려워하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두려워하라 함은 역설적으로 두려워하지 말라는 뜻도 됩니다. 진정으로 두렵다면 냇가를 가로지르지 못 하기 때문입니다. 두렵지만 그럼에도 나아갈 수밖에 없는 발걸음, 나아감에도 항상 두려워하는 마음. 정약용은 차밭에서 시절을 관조하듯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발걸음을 뗄 수밖에 없을 때의 용기를 고백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요.

나에게 보내는 고해성사
“그럼에도 어제를 딛고 내일을 살아가리라”

그렇게 살얼음판을 걸으며 생의 한 갑자를 버틴 이가 자신의 인생을 반추한다면 이런 심정일 것 같습니다. 바로 스스로에게 건네는 고해성사입니다.
고해는 세 가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바로 고백과 연민, 그리고 용서입니다. 정약용은 《자찬묘지명》에서 이렇게 밝힙니다.

“내 나이 예순이다. 나의 인생, 한 갑자甲子 60년은 모두 죄에 대한 뉘우침으로 지낸 세월이었다. 이제 지난날을 거두려고 한다. 거두어 정리하고 생을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

누구나 자신의 삶을 정면으로 직시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대개는 그 무게에 짓눌려서 적당히 외면하게 됩니다. 정약용 또한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유배지에서 빈손으로 돌아온 다음, 반생 가까이 흘려보낸 삶이 억울하고 또 헛돈 생은 아니었을지 의심이 갔을 것입니다. 정약용은 〈자찬묘지명〉에서 삶의 의미를 간절하게 찾으면서도 그런 의심 또한 부정하지 않습니다. 대신 반생 가까이 갇혀 지냈던 자신의 삶에 용서를 구하며 다독입니다. 정약용은 정조와의 추억을 비중 있게 다루지만, 그렇다고 남은 삶을 버티기 위해 자신의 가장 찬란했던 과거와 그리운 친구들을 소환하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임금님과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고 동화처럼 끝내지 않고, 방대한 저술활동을 집요하게 소개하며 그 이후에도 꾸역꾸역 나아가야 하는 자신의 삶을 긍정했습니다. 그렇게 고해苦海를 건넜으면서도, 그럼에도 남은 생에 최선을 다하고자 어떤 원망도 냉소도 하지 않고 다만 스스로에게 고해告解성사를 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정약용의 《자찬묘지명》을 새롭게 풀어낸 결과이지만 정약용의 묘나 죽음과 관련된 사진은 단 한 장도 일부러 삽입하지 않았습니다. 정약용은 무덤에서 삶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난중일기》, 《징비록》, 《한중록》에 이은
정약용이 직접 전하는 생생한 그때의 역사

이 책은 인물사로서 18세기를 조망하는 데에도 탁월한 성취가 있습니다. 먼저 정약용의 삶을 《자찬묘지명》을 통해 들여다보면 당대 인물들이 모조리 소환됩니다. 앞서 밝혔듯이 그의 외증조부는 윤두서이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윤선도가 나옵니다. 그의 자부는 조선 최초의 신부인 이승훈이며 다시 이가환, 성호 이익과 연결됩니다. 채제공과는 사돈지간이 되며 혜경궁 홍씨와는 배우자의 집안과 연결됩니다. 〈황사영백서〉로 유명한 황사영은 그의 조카사위입니다. 그 스스로는 퇴계 이황의 학통을 이어 받았으며 정조의 눈이자 칼로 활동했습니다. 화성 행차에서부터 신유박해에 이르기까지 이들과 얽히면서 그가 겪은 크고 작은 사건들은 하나 같이 18세기 이후의 한국사 방향을 결정지은 굵직한 역사들입니다. 이를 정약용이 자신의 눈으로 목격하고, 자신의 입으로 전합니다. 《난중일기》나 《징비록》, 《한중록》 못지않은 개인의 역사 증언인 셈입니다.
지금까지도 논란이 된 천주교와 관련된 언급들도 있습니다. 그는 《자찬묘지명》에서 자신이 천주학에 관심을 가졌음을 부정하지 않지만, 상당 부분을 자신이 어떤 유학 경전을 읽었으며 어떤 저술활동을 했는지를 설명하는 데 할애했습니다. 시절이 엄혹했기 때문이라고만 보기에는 그가 남긴 공부와 집필의 흔적들이 간절합니다. 유학을 공부하고 저술활동에 몰두하는 데에서 유배지에서의 공백을 메우고, 삶의 의미를 찾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자찬묘지명》을 통해 스스로를 유학자라고 선언했다는 것이 이 책이 품은 뜻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저술에 대한 재미있는 언급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그는 미래를 예견이라도 한 것처럼 《목민심서》가 세상 사람들에게 확대해석되어 크게 평가받는 것을 경계합니다.

그때를 살았던 정약용이
지금을 사는 정약용들에게

우리 모두는 후회 없는 삶을 꿈꾸지만, 삶이란 뒤돌아 하는 후회의 연속이 쌓이고 쌓인 것입니다. 그리고 늙어간다는 것은 이러한 미련을 인정하고, 자신의 역사와 화해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삶에 있어 스스로에 대한 죄인이고, 또 다른 정약용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삶을 용기 있게 직시한 다음 스스로에게 털어 넣고 용서를 구하는 고백과, 오늘까지 잘 버텨왔고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고 다독이는 화해가 아닐까 합니다. 마치 환갑의 정약용처럼 말입니다.
이 책이 오늘을 힘껏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위로와 용기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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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약용의 고해 ] 신창호 지음의 이책은 시작  순서 부터가 예사 롭지가 않다. 부제로 스스로에게 건네는 생...

    [정약용의 고해 ] 신창호 지음의 이책은 시작  순서 부터가 예사 롭지가 않다. 부제로 스스로에게 건네는 생의 마지막 고백이라는 < 자찬 묘지명> 을 바탕으로 그의 삶을 복원 하려는 시도이고 일인칭 화자 시점을 활용해서 마치 살아 있는 정약용 선생이 수백년 뒤의 우리 후손 들에게 담담 하게 애기 하여 내려가는 서간체 같은 느낌도 든다.  

     

    그의 호 다산 이라는 말과 정약용이라는 이름은 역사첵에도 자주 오르 내리며, 조선 중기 정조 시설의 수원 화성 축조에서부터 수많은 실사 구시 정신으로 깃들어 있다. 음악에서 의학에 이르기까지의 방대한 저작과 지식 , 관료로서의 거의 한평생 살다고 다른 세력으로부터으 모함으로 가게된 유배 생활에서의 고뇌등 , 어쩌면 일생을 잘 살아온 유학자의 면모를 가감없이 드러내지만 한편으론 당시 중국으로 건너온 천주교의 영향과 , 그의 자부인 이승훈의 영향을 어느 정도는 받았으리라는 것 또한 짐작 할수 있다.

     

    하지만 , 당대의 서구 문물과 기존 유교적 질서들 사이에서의 갈등은 그리 쉽지 않은 정리로 남은 것 만은 분명한 듯 하며 , 스스로의 묘지면을 지으며 마지막 고백에서 어제의 자신과의 화해 하는 대목은 매우 인상적이다.

     

    " 내 나이 예순이다 , 나의 인생 한 갑자 60년은 모두 죄에 대한 뉘우침으로 지낸 세월이었다. 이제 지난갈을 거두려고 한다. 거두어 정리 하고 생을 다시 시작 하려고 한다. 진정으로 올해 부터 빈틈없이 촘촘하게 네 몸을 닦고 실천하며, 저 하늘이 나에게 던지는 지상의 명령 , 나의 본분이 무엇인지 돌아 보면서 여생을 마치리라 "  -p10

     

    우리들 스스로를 돌아 보아도 일생에 비겁해 지지 않은 적이 과연 몇번씩이나 있었겠는가 , 하물며 , 그 엤날 1801 년도 신유 박해 시기에 천주교도인 것 만으로도 못숨을 부지 하기 어려운 시절에는 자신의 종교적 양심을 기키는 것 조차 어려운 일이 었을 터이다.

     

    유배지에서의 그의 생활을 담담이 써낸 강진 시절의 이야기만 하여도 , 억울한 누명을 쓴채로 수년을 혹은 수십년을 지난한 세월을 견뎌낸 것은 바로 그의 학문자 적인 정신의 힘 이 아니 었을가 .

     

    유학자 여유당으로서 시경과 서경 , 역경 악경, 춘추 , 논어 맹자 , 중용, 대학에 이르기 까지 섭렵 하지 않는 학문 분야가 없었던 그의 지식 쳬계 에서는 오늘날 그가 살아서 더 공부 했더라면 , 그야말로 백년에 한번 혹은 오백년에 한번 나올 수 있는 대 학자의 면모를 볼 수 있지 않았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후대에 들어서 국가 경영에 관한 전반적인 제도를 시대에 구애 받지 않고 , 기준을 세우고 대강의 줄거리를 만들어 새롭게 건설할 목적으로 쓴 [ 경세유표] ,와  백성들을 아끼고 섬기기 위한 실천서 < 목민심서> 를 지어낸 것은 제대로된 잣대와 법률 , 그리고 형평성으로 억울하거나 배척 되는 백성들이 없게 하려는 그의 깊은 뜻이 담겨저 있는 대표적인 저작물이다.  마지막으로 한사람이라도 억울한 백성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만들어낸 < 흠흠 신서 > 또한 형벌에 대한 혹은 법률에 대한 기준 잣대를 바로 세우기 위한 방편의 하나이다.

     

    1762년  (청 건륭, 영조 38년) 임오년 에 태어난 다산이 1822년 ( 도광 , 청 선종 , 순조 22년 ) 에 이르기 까지  한갑자를 지낸온 세월 앞에서의 자신에게 부치는 한편의 편지 와도 같다고 할까 , 그의 고해를 들어 보면서 , 과연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지난온 세월들에게 자신 스스로에게 이러한 고해의 시간과 공간의 기회마저 줄 여유가 없지는 않았을까 고민을 해본다.

     

    인간사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듯이 , 사회적 동물로서 여러 사람들과 소속되어 있고 어울려 살아 가는바 , 예날이나 지금이나 인간의 근본 정리와 원칙들은 변함이 없는듯 하다고 생각하는  < 책력거 99 > 였습니다.

     

  • 정약용의 고해 | md**ksu | 2016.03.05 | 5점 만점에 4점 | 추천:0
    우리나라 사람들이 존경하는 역사 속 인물 중에서도 정약용은 몇 손가락에 안에 들 만한 인물이다. 그가 그렇게 많은 이들의 존경...

    우리나라 사람들이 존경하는 역사 속 인물 중에서도 정약용은 몇 손가락에 안에 들 만한 인물이다. 그가 그렇게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는 이유는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조선의 실학자로서 현실에 도움이 되는 수많은 건축물들을 생각해냈고 수많은 저서를 통해 다양한 생각을 후대에 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스스로의 삶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정조의 총애를 받으며 승승장구했지만 인생의 후반기를 유배지에서 보냈기에 아마 자신의 삶에 대한 생각이 남달랐으리라. 이 책에서 그런 그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데, 정약용의 <자찬묘지명>, 즉 스스로 지은 묘지명을 풀어 설명한 것으로 정약용의 자서전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4부에 걸쳐 정약용의 삶과 생각을 읽으면서 문득 나는 훗날 나의 삶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는 정약용과 비교할 정도의 인물이 아니다. 그렇기에 더 많은 회한과 아쉬움이 넘쳐날지도 모른다.

     

    분명한 건 한 가지 있다. 나는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것. 정약용은 천주교인이기도 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유학자로서의 면모도 강하다. 아니 어쩌면 유학자로서의 면모가 더 강한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마지막 4부에서 자신이 읽은 유학 경전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세세하게 들려준 것인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이 책에서 나의 마음을 뒤흔든 것은 그의 이런 고백이었다.

     

    나의 삶은 모두 그르침에 대한 뉘우침으로 지낸 세월이었다. 이제 지난날을 거두고자 한다. 거두어 정리하고 일생을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 (p.238)

     

    정약용과 같은 인물이 일생을 그르침에 대한 뉘우침으로 보냈다면 나 같은 사람은 어떻게 삶을 보내야 할까? 어떤 고해를 해야 할까? 아마 하루 종일 반성하고 용서를 빌며 살아도 부족할 것이다. 그런 내게 정약용은 이렇게 말한다. 지난날을 거두고 다시 시작하라고.

     

    그래, 지나간 삶의 아픔을 끝없이 곱씹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고통과 후회를 딛고 다시 나아가는 것, 새롭게 시작하여 새로운 삶을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다산은 내게 그렇게 속삭인다.

  • 『정약용의 고해』를 읽고 | my**3 | 2016.03.04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신창호 저의 『정약용의 고해』를 읽고 ‘다산 정양용’ 하면 모를 사람이 없을 정도 조선조의 유명한 실학자이다. 그 누구보...

    신창호 저의 정약용의 고해를 읽고

    다산 정양용하면 모를 사람이 없을 정도 조선조의 유명한 실학자이다.

    그 누구보다도 활동이 많았던 앞서 나갔던 학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책자에는 그 학자를 안내하고 소개하는 정도이다.

    이 책처럼 자신이 직접 저자가 되어서 고백하는 경우는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닌가 생각을 해본다.

    아주 특별한 기획으로서 우선 저자의 특별한 기획에 찬사를 보낸다.

    이 책을 보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시간으로 정약용에 대해서 확실한 기억의 시간으로 각인되리라고 확신해본다.

    저자는 정약용의 '자찬묘지명'을 지금 여기 우리의 눈높이에 맞춰 새로 풀어썼기 때문이다.

    정약용이 스스로 쓴 자신의 묘지명을 바탕으로 그가 하고 싶었지만 끝내 삼켰던 말에 귀를 기울이고자 한 결과이다.

    표지에는 "나는 다산으로 불리고 싶지 않았다"라는 도발적인 문구가 삽입된다.

    단순하게 호기심을 자아내고자 한 게 아니라 그가 무덤에 남긴 고백이 실제로 그렇다.

    지금까지 다양한 분야에 대해 그 많고 많은 지식을 다 갖고 있었던 천재였던 것으로 알고 있었던 그러나 불행하게도 인생의 많은 부분을 귀양지에서 보내야만 했던 그렇게 운이 좋은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자신의 묘비명을 스스로 써야만 했는지도 모른다.

    우리들에게 매우 귀에 낯이 익은 이름이지만 이런 면에서는 아주 생소한 면이면서 애매모호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한 모습을 직접 자신의 모습을 직접 자신의 모습과 시대 상황을 스스로 털어놓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마음속으로 쏙쏙 다가오면서 들어오는 것은 왠 일 일까?

    역시 사람의 마음은 다 똑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같은 마음이 되어 진다는 것이다.

    스스로에게 자신의 힘들고 헛된 삶을 고해성사하면 용서를 구하면서 위로하고자 한다.

    그러면서도 더 나은 내일을 살아가고자 한다는 멋진 마무리가 눈과 귀에 선하다.

    역시 최고 멋지고 대단한 인물이다.’ 라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참으로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동안 막연하게만 알고 있었던 다산 정약용 실학자에 대한 지식에서 실질적인 인물의 면모에 대해서 알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정약용 자신이 말하고 싶었던 자신의 삶과 자신의 시대 모습을 그대로 들을 수 있어서 실질적인 역사 공부와 함께 내 자신이 당시의 한 사람으로 돌아가서 생활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가까운 시간에 박물관에 가서 정약용에 관련한 유물이나 그림 등을 다시 확인하거나 도서관에 가서 관련 책자 등을 살펴보면서 정약용 선생에 대한 모든 자료 등을 점검해보는 시간도 가져보아야겠다는 다짐도 하였다.

    어쨌든 좋은 책을 만나서 내 자신이 매우 행복한 시간과 함께 자신감을 갖는 시간이 되었고, 주변 사람들에게 소개할 수 있게 되어 즐거웠다.

  • 정약용의 고해 | ne**iner | 2016.03.03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적이 없던 내가 몸에 조금씩 아픈곳이 생기고 나이가 들어가고 또 예기치 못했던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자연스...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적이 없던 내가 몸에 조금씩 아픈곳이 생기고 나이가 들어가고 또 예기치 못했던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자연스럽게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주변의 물건들을 소박하게 정리하는것을 시작으로 죽음을 언제 올지 모르는 일로 생각해 보면서 살고 있는 지금 정약용의 고해를 만났다.

    저자는 이 책을 정약용이 적양용에게 전하는 독백이라고 말하며 생의 고해를 거친 삶과 회한을 담담하게 인정하며 스스로에게 털어놓는 고해성사라고 말한다.

    그 당시의 60갑자면... 지금 우리 시대는 언제쯤일까? 80살정도?

    내 나이 80정도 되면 내 삶을 돌아보며 정약용과 같은 고해를 할 수 있을까?

    우리가 평생 이루지 못할 엄청난 일을 해낸 사람도 우리와 같은 성정의 사람으로 고뇌하고 번뇌하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뉘우쳤다고 하니, 내 삶을 돌아보기가 겁나기 까지 하다.

    한참 정약용에 글에 빠져있을때 정약용의 책은 무조건 보았다.

    남양주에서 목민심서 영어판을 받아서 보려고도 했다. 영어가 짧아 읽지는 못했지만,

    아직은 너무 젊은 나이에 나는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미리미리 준비하려 하는데

    나의 노년에 나도 이처럼 나의 묘지명을 기록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고해에는 고백과 용서가 전제되어 있으며 저자는 정약용의 예순에 기록한 자찬묘지명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던 정약용과는 다른 정약용을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방대한 글 속에 묻힌 그의 민낯을 보고 싶었다. 인간은 자신의 죽음을 자각하는 순간부터 스스로에게 솔직해진다. 정약용은 나이 예순에 이르러 스스로의 삶을 어떻게 바라봤을까. 삶의 의미를 어디에서 찾았을까. 죽음을 가늠했을 무렵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스스로에게 무슨 고백을 털어놓고 싶었을까.” <p. 7>

    글을 읽으면서 나는 내 삶을 이렇게 돌아보며 정리할 수 있을까?

    저자의 정약용에 대한 질문이 눈길을 잡는다.

    사는데 바빠 나 자신에게 못해봤던 질문들, 이 책을 통해 정약용을 만나면서 내 자신에게도 질문해 보고 싶어진다. 나는 나의 삶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나의 삶의 의미를 어디에서 찾는가. 라는 질문을 내 자신에게 하면서 책을 읽어갔다.

    책을 읽기만 했지 가계도에 대해 생각하지 못했는데 가계도를 한눈에 보기 좋게 그려놓자 정약용이 더 선명하게 다가오는것 같았다.

    1부에서는 나 선비의 아들 열수라는 제목으로 글을 시작한다. 자시의 뿌리 가족, 터전, 자신의 학문의 시작등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2부에서는 나 임금의 신하 약용

    정약용과 정조의 대화들을 보면서 가슴이 뜨거워짐을 많이 느꼈다.

    3부에서는 유배지로 떠난 다산으로 유배지에서의 삶을 그리고 있다.

    4부에서는 나 유학자 여유당으로 자신의 공부에 대해 다시 해석하였다.

    마지막 장에서는 다시 나, 정약용으로 돌아와 정리한다.

    “이렇게 나의 모든 것을 돌아본 지금, 다시 나를 고백한다. 나는 건륭연가, 1762년 임오년에 태어났다. 그리고 지금 도왕연간인 1822년 임오년을 다시 만났다. 나는 한 갑자를 다시 만난 시간을 견뎠다. 나의 삶을 모두 그르침에 대한 뉘우침을 지낸 세월이었다.

    이젠 지난날을 거두고자 한다. 거두어 정리하고 일생을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 진정으로 올해부터 빈틈없이 촘촘하게 내 몸을 닦고 실천하며, 저 하늘의 밝은 명령, 나의 본분이 무엇인지 돌아보면서 내게 주어진 삶을 나아가고자 한다.“<p.238>

    나도 60갑자에 내 삶을 돌아보아야 겠다.

    그리고 그 이전에 지금 현재의 삶을 최선을 다해 살고 빈틈없이 촘촘하게 내 몸을 닦고 실천하며, 하늘의 명령, 나의 본분이 무엇인지 돌아보면서 살아가야겠다.

  • [역사] 정약용의 고해 | ji**037 | 2016.03.01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스스로에게 전하는 생의 마지막 고백'이라는 부제가 붙은 정약용의 고해는 정약용 스스로 자신의 묘비명을 쓴 '자찬묘지명'의 해...

    '스스로에게 전하는 생의 마지막 고백'이라는 부제가 붙은 정약용의 고해는 정약용 스스로 자신의 묘비명을 쓴 '자찬묘지명'의 해석이라고 볼 수 있다.

     

     

     

    학창시절 처음 세계사를 공부하기 시작할때,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유명 미술품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사실에서도 계속 언급되는 '다빈치'는 내겐 우리의 '철수'쯤으로 여겨졌다. 참으로 수많은 다빈치가 있구나 했는데, 모두 동일 인물이란 사실에 얼마나 놀랐던지...

     

     

     

    조선시대 세종대왕께서는 한글도 창제하시고, 농사직설도 내셨으며, 정간보도 만드셨다고 하니 그 위대함이 더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우리 조선시대의 인물인 정약용 또한 유학자로서의 삶, 과학자로서의 삶, 민생을 위한 삶, 건축가로서의 삶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으니 참으로 대단한 인물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인생의 많은 부분을 유배생활로 보내고, 천주교 박해에 대상이 된 집안의 가족들이 많아 그가 그렇게 많은 위업을 달성한 것은 참으로 대단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모든 삶을 우리가 보기는 어렵지만, 그가 스스로 쓴 자신의 묘지명으로 우린 조금이나마 그에대한 일생을 좀 더 쉽게 접할 수 있을 것이다. 자서전이자 유언이자 자신에게 쓴 고백이자 용서라고 표현된 이 책은 각 부의 시작에 정약용의 그림, 글도 곁들여져서 박물관의 해설사에게서 듣는 느낌이었다.

     

     

     

    평소 막연하게 대단한 인물이지만 정조의 사랑을 너무 지나치게 받아 타인에게선 존경보다는 질시를 받은 인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정약용의 삶과 그의 생각이 얼마나 그 당시로서는 깨이고 앞서갔는지 다시 한 번 알게 되었다.

     

     

     

    마지막 4부에서의 유학자로서의 정약용 스스로를 고백하는 내용은 유학에 대해서 잘 알지 못 하는 내게 요점정리와도 같은 장이었다.

     

    천재의 일기를 훔쳐본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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