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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육 평전(양장본 HardCover)
| 규격外
ISBN-10 : 8937491192
ISBN-13 : 9788937491191
김육 평전(양장본 HardCover) [양장] 중고
저자 이헌창 | 출판사 민음사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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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 28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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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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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법과 동전 통용책으로 17, 18세기의 경제 성장을 일군 개혁가 김육
제도 개혁이 절실했던 시대의 부름을 받아
그가 소신 있게 추진한 조선의 위대한 성취를 살펴본다 대동법, 동전 통용책 등 17~18세기 조선 최대의 정책 업적을 이룩한 인물, 김육의 평전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일찍이 12세 때부터 경세제민의 뜻을 품었던 김육은 70대에 정승의 자리에 올라 충청도와 전라도에 대동법을 시행하며 그의 오랜 소신을 관철시켰다. 무수한 역경에도 좌절하지 않고 학문을 연마하며 정책 이념을 정립했던 김육은 말년까지 자신의 이상을 소신껏 추진하여 조선 후기의 경제와 사회 발전에 밑바탕이 되었다. 탁월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김육을 다룬 저작은 많지 않았다. 김육이라는 인물을 집중적으로 다룬 평전은 이 책이 유일하다. 김육은 부국강병의 실패, 정책 구현 역량의 부족, 구조적 부정부패 등 조선 왕조의 약점을 극복했다. 제도 개혁이 절실했던 시대의 부름을 받아 자신의 인생을 바쳐 이상을 실현한 것이다.

저자소개

저자 : 이헌창
1955년에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3년부터 경기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1993년 고려대학교 경제학과로 옮겨 지금까지 재직 중이다. 경제사학회와 한국고문서학회의 회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民籍統計表의 해설과 이용방법』, 『한국경제통사』, 『조선시대 최고의 경제발전안을 제시한 박제가』, 『경제ㆍ경제학』이 있다. 편저는 『류성룡의 학술과 사상』, 『조선후기 재정과 시장: 경제체제론의 접근』 등이 있다. 이외에도 경제사, 사상사, 정치사 등의 분야에서 여러 논문을 발표했다.

목차

책을 펴내며 4

1장 김육과 조선 왕조 시대
1 위대한 정치가 김육, 오늘날 관료와 정치인의 귀감 13
2 김육의 졸기 19
3 김육의 생애를 보여 주는 풍부한 기록들 23
4 김육이 자라고 활동한 조선 중기 27
5 유학의 정책 이념 30
6 조선 전기 조세 제도의 개관과 대동법 36
7 조선 왕조의 정치 체제와 통치 원리 45

2장 역경 가운데 정진하고 경세제민의 뜻을 키운 생애 전반부
1 기묘명현의 후손으로 태어나다 81
2 김육 가문의 당색 85
3 김육의 두 스승 91
4 소년 시절 품은 경세제민의 포부 99
5 임진왜란과 가정의 곤경 101
6 김육의 효성과 가문 의식 104
7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다 111
8 김육과 후손의 조호익 현창 사업 114
9 성균관 태학생 시절의 활동 118
10 계축옥사로 관직의 포부를 접다 123
11 김육과 허균 129
12 가평군 잠곡에서의 10년간 농민 생활 133
13 김육이 농사짓고 살던 잠곡의 현 위치는 어디인가 140
14 김육과 인연이 있는 지역 143
15 김육의 재산루가 정약용과 마에마 교사쿠와 인연을 맺다 147
16 김육의 생활 자세와 처신 151

3장 관직에 나아가 경륜을 펼친 생애 후반부
1 인조반정으로 관직 진출의 길이 열리다 156
2 김육이 역임한 관직과 조선 왕조의 관료, 정치인 양성 체제 162
3 김육이 생각한 국정 과제 172
4 지방관으로서의 활동과 업적 175
5 인조 대 중앙 관료로서의 활동과 업적 197
6 인조 대 외교 활동과 업적 221
7 효종 즉위 직후 정치 지형의 변화와 김육의 부상 2 25
8 효종의 신임을 얻어 충청도 대동법과 동전 통용책의 시행을 관철하다 271
9 충청도 대동법의 시행과 정착 307
10 경기도 대동법의 개정 논의와 양전, 그리고 『전제상정소준수조획』 324
11 동전 주화의 통용을 위한 공헌 330
12 시헌력의 시행 357
13 김육의 군사 제도 개혁안과 사회 질서 구상 365
14 효종의 북벌 정책과 김육의 견제, 그리고 산당의 2차 정계 진출 388
15 전라도 대동법의 시행 결정과 대동미 해운 방안의 모색 403
16 활발한 저술 및 출판 활동과 인쇄 사업의 공헌 421
17 김육과 이순신 431
18 왜 김육은 업적이 많고 탁월할까 438

4장 김육 사후의 정책과 그 한계
1 김육의 사후 평가 445
2 김육 사후 정치 지형의 변화 458
3 김육 정책의 계승과 영향 498

5장 김육의 사상과 그 특성
1 개방적 박학의 유학자인 김육 539
2 경제 합리적 제도 개혁론 553
3 김육의 안민 부국론과 산당의 안민 지상주의론 566
4 김육의 법치 국가관과 산당의 예치 국가관 577
5 민족적 자아의 형성 594
6 북학 사상의 선구 599
7 근세 실학의 선구자이자 실천자로서 김육 601
8 경제 성장과 근대화의 지향 608
9 도덕 지상주의 주자학이 우세해진 원인 611

6장 김육 정책 활동의 역사적 의의와 교훈
1 조선 왕조사를 결정한 기본적 요인인 정책사 617
2 17~18세기 정책 결정 기구와 김육 622
3 김육과 조선 중기 정책 업적 628
4 김육 정책의 역사적 의의 630
5 우리는 김육과 조선 왕조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나 642
6 김육의 정책 활동이 오늘날 국가적으로 갖는 의미 645

김육 연보 647
주 653
찾아보기 680

책 속으로

김육은 『소학』을 공부한 12세 때부터 ‘경제’의 뜻을 초지일관하게 가지고 관철하여, 그의 졸기에 ‘경제’를 임무로 삼았다고 기록되었다. 그렇다 해도 김육의 경세제민 업적을 12세 때의 『소학』 공부만으로는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 김육은 광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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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육은 『소학』을 공부한 12세 때부터 ‘경제’의 뜻을 초지일관하게 가지고 관철하여, 그의 졸기에 ‘경제’를 임무로 삼았다고 기록되었다. 그렇다 해도 김육의 경세제민 업적을 12세 때의 『소학』 공부만으로는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 김육은 광해조 정치에 실망하여 농촌에 들어가 10년간 농사일을 하면서 살았다. 이것이 『소학』 공부를 통해 얻은 경세제민의 포부를 구체화하도록 도와주었다. 그리고 임진왜란 때 겪은 힘든 삶도 쓴 약이 되었을 것이다. -101쪽

김육이 잠곡에서 10년간 농민 생활을 통해 농촌 실정을 소상히 파악하게 된 체험은 훗날 경제 정책을 중시하고 그 구체적 방안을 수립하는 데에 유용한 자산이 되었다. 김육은 농사짓던 곳의 지명인 잠곡, 그리고 독서하던 초가삼간인 회정당을 호로 삼았으니, 농민 생활 체험을 소중히 간직했다. 1768년 영조는 「어제종덕신편서」에서 김육은 저명한 정승〔名相〕이며 잠곡에서 ‘주경야독’을 하면서 경륜의 뜻을 품었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기묘명현의 후손으로서 광해군 때의 깨끗한 처신은 김육의 명망을 높이고 출세하는 데에도 자산이 되었다. -140쪽

김육은 13세 때에 임진왜란을 만나 피난길에도 항상 옷소매 속에 있는 책을 외우면서 다녔으며, 숨을 거두면서 마지막으로 손자에게 “독서에 힘쓰거라.”라는 말을 남겼다. 제사 지내는 자세, 가족에 대한 태도 등은 앞서 서술했다. 이러한 생활 자세는 김육이 행장에서 묘사한 스승 조호익과 닮았고, 필자가 『논어』를 통해 상상하는 공자의 모습과 닮았다. -154쪽

김육은 음성 현감, 안변 도호부사, 충청 감사 및 개성 유수 등 지방관으로도 활동하여 모두 치적을 쌓았다. 경관으로도 성실하고 인상적인 활동을 했다. 1636년 이후 중국에 사신으로 여러 차례 다녀왔는데, 이에서 견문을 넓혔을 뿐만 아니라 외교에서도 명성을 쌓았다. 김육이 효종 때에 정승에 올라 국정을 주도하며 소신의 정책을 추진할 수 있게 되었다. 김육이 효종 대에 경세제민의 업적을 성취할 수 있었던 것은 인조 때에 경관으로서 정책 역량을 쌓고 지방관으로서 다스리는 경험을 넓히고 중국 사절로서 견문을 넓혔기 때문이다. -169쪽

김육은 관료 간 협력 역량을 최대로 끌어올린 인물이었다. 김육은 사교적이지 않은 강직한 성품으로 정치적 거래를 하지 않았고 세력을 규합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확고한 소신에 입각한 추진력을 가지고 정파를 초월해 관료 간 협력의 역량을 끌어올리고 공명정대하게 인물을 밀어주고 비판했기 때문에, 정치력을 발휘했다. -443쪽
김육은 투철한 유가이면서도 공리를 적극 추구하여 경제 합리적 정책과 제도 개혁을 추진했다. 그는 민생 안정과 재정 충실화를 동시 달성하는 정책을 적극 개발했고 상업에 우호적이었고 외국 선진 기술의 도입에 적극적이었다. 김육은 경제 성장의 지향성을 가진 사상을 가지고 정책을 추진했던 것이다. 대동법은 과세의 공평화, 효율화로 생산에 긍정적 자극을 낳고 공인의 시장 조달을 통해 시장을 성장시킨다. 동전 주화 제도도 경제의 효율화와 시장의 성장을 낳는다. 대동법과 동전 주화 제도는 17~18세기 경제 성장을 낳은 중요한 제도 개혁이었다. -609쪽

오늘날 우리 사회는 퇴계, 율곡, 정약용 등과 같은 대학자를 높이 받들고 있으나, 김육처럼 정책 업적을 가진 조선 시대 인물에 대하여 그에 상응하는 평가를 하지 못했다. 그래서 김육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학문을 발전시킨 인물과 정책 업적을 쌓은 인물에 대한 균형감을 가진 관심과 평가는 조선 왕조의 이해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정치와 정책 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6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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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김육의 업적은 곧 조선 경제사의 업적 대동법과 동전 통용책 대동법은 조세 제도를 공평하고 효율적으로 만든 획기적인 개혁이었다. 이는 토지 결수에 따라 정량의 쌀로 조세를 납부하는 방식으로, 기존에 공물을 납부하던 방식의 여러 문제점을 해결했다....

[출판사서평 더 보기]

김육의 업적은 곧 조선 경제사의 업적
대동법과 동전 통용책

대동법은 조세 제도를 공평하고 효율적으로 만든 획기적인 개혁이었다. 이는 토지 결수에 따라 정량의 쌀로 조세를 납부하는 방식으로, 기존에 공물을 납부하던 방식의 여러 문제점을 해결했다. 지방 관부의 불법적인 징세, 방납인과 관리에 의한 중간 수탈 등을 해결했다. 농지 소득에 따른 조세 기준을 확립함에 따라 조세 징수가 공평해졌고, 납세자들의 부담 또한 덜해졌으며, 조세 부과 기준이 명확해지고, 재정은 충실해졌다. 대동법은 민생 안정, 재정 충실화, 그리고 시장 발달을 통해 왕조의 부흥에 이바지한 최대 사업이었다고 할 만하다.
대동법은 토산물의 수탈을 막아 생산을 촉진했다. 물품 화폐, 금속 화폐로 납부된 대동세로 공물을 조달하게 되면서 시장 또한 성장했다. 김육이 끊임없이 건의하고 추진했던 동전 통용책은 대동법의 확대 시행과 맞물려 조선 후기의 경제 성장에 밑거름이 되었다. 이렇듯 조선의 경제 발전 과정에서 김육의 공로는 빼놓을 수 없다.
저자인 이헌창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서울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같은 대학에서 경제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경제사학회, 한국고문서학회의 회장을 역임하는 등 경제사 분야의 권위자로 손꼽힌다. 이 책에서 저자는 조선에서 가장 유의미한 성과를 거둔 경제 정책을 시행한 김육에 대한 평가와 함께 조선 경제사를 개괄한다.

경제의 뜻을 끝까지 관철시킨
소신과 뚝심의 개혁가 김육

김육의 졸기에 드러나듯이, (김육은) “평생 경제를 자신의 임무로 삼았다.”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가고 출세한 사람은 거의가 경세제민을 임무를 삼았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평생 경제를 자신의 임무로 삼았다.”라고 『조선왕조실록』에서 평가받은 인물이 드문 점에서, 국가를 잘 다스려 인민을 구제하려는 김육의 사명감 내지 책임 의식은 각별했다. 그래서 김육은 관직에 연연하지 않고 대동법 등 소신의 정책 수행에 정치 생명을 걸었다.
-본문 중에서

김육은 어린 나이에 『소학』을 읽고 깊이 감명을 받아 경세제민의 뜻을 품고, 숨이 다할 때까지 이 뜻을 줄곧 지켰다. 지방 관리로 있으면서 경제 정책을 수없이 건의했고, 이후 정승으로서 이 정책을 추진하고 시행했다. 대동법과 동전 통용책 등 조선 후기의 경제 발전과 사회 발전을 가져온 빛나는 정책들은 이렇듯 김육의 소신에 힘입은 바가 컸다.
김육은 여러 정책을 건의하고 추진하면서 당파의 이해가 아닌 본인의 소신과 철학을 따랐다. 오로지 민생 안정이라는 큰 뜻을 가지고 이를 위한 제도 개혁에만 온 힘을 쏟은 것이다. 김육은 강직한 성품으로 정파를 초월해 정치력을 발휘했다. 공방을 거치며 대립했던 인사들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고, 다른 당색을 가진 관료 간의 협력을 이루기도 했다. 뚝심 있는 소신과 정파를 초월한 정치력은 김육을 조선 왕조 최대의 정책 업적을 이룩한 인물로 만들었다.

김육의 생애-
10대에 임진왜란으로 부모를 잃고
30대에 벼슬의 뜻을 꺾었던 김육
70대에 정승에 올라 뜻을 펼치다

김육은 다사다난한 생애를 보냈다. 12세 때에 일찍이 경세제민의 포부를 품었으나, 13세 때에 임진왜란을 맞는다. 이 전란 중에 부모를 잃고 죽을 고생을 했다. 집안을 일으키고, 자신의 포부를 실현시키기 위해 관직에 나서고자 노력했으나 광해군 대에 벌어진 계축옥사로 꿈을 이루기 어려워졌다. 이후 벼슬의 뜻을 꺾고 경기도 가평군 소재의 잠곡으로 낙향해 10년 동안 농사를 짓고 살았다. 40대 중반에 이르러서 다시 벼슬길에 오를 수 있었다. 중앙 관부의 요직뿐 아니라 지방관, 사신 등 다양한 경험을 쌓기 시작했다. 이윽고 70대에 정승의 자리에 올랐고, 우의정에 부임하자마자 대동법의 확대 시행을 추진하는 등 그동안 갈고닦아 왔던 자신의 소신을 펼치며 경제와 문화 영역에 여러 업적을 남겼다.
많은 역경을 겪으면서도 김육은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사상과 신념을 구체화했다. 젊은 시절의 경험은 오히려 그가 펼친 소신과 업적의 토대가 되었다. 김육은 전란을 겪고, 은거하며 농사를 짓고 살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민생 안정을 위한 정책 실현을 소명으로 삼았다. 김육이 이러한 소명을 위대한 업적으로 이뤄 낼 수 있었던 것은 특유의 부지런함과 정신력이 동력이었다. 잠곡에 은거하던 10년 동안에도 학문에 정진하며 경륜을 쌓았고, 지방관으로서 일하면서도 풍부한 저술과 출판 활동을 하며 자신의 사상을 공고히 했다. 김육이 후대에 남긴 정책 업적은 이렇듯 꾸준한 노력이 맺은 결실로 평가된다.
김육은 1658년 9월 4일 79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이날 비변사 회의에서는 전라도 대동법과 대동미를 저장하는 태안의 창고 설치에 관한 논의가 있었다. 김육은 마치 이 회의의 결과를 듣기 위해 기다린 것처럼 이날 저녁까지 버티다가, 회의의 결과를 듣고 난 후 숨을 거두었다. “직무에 온 힘을 쏟다가 쓰러져 죽기”를 바란다던 김육은 실제로 마지막까지 대동법의 완수에 힘을 쏟았다.

개방적 자세로 다양한 학문을 포용한
근세 실학의 선구자, 실천자

김육은 다양한 학문에 개방적인 자세로 접근하여 조선 후기의 과학 기술 발달에도 이바지했다. 명분과 의리에 매달렸던 주자학자들과 달리 박학(博學)을 추구했으며 ‘오랑캐’로 간주되었던 청나라의 문물뿐 아니라 서양의 문물에 대해서도 개방적이었다. 선진 기술과 과학을 도입하고, 전문성을 갖춘 기술 관료를 양성하기 위해 힘썼다. 시헌력의 도입은 대표적인 성과였고, 중국의 수차, 수레, 직기의 도입을 추진하기도 했다.
김육이 공헌한 대동법은 근세적 조세 국가의 성립에 이바지했고, 동전 통용책을 비롯한 화폐 제도는 시장의 발전을 일구었다. 또한 승지로 있을 때 주장한 서울 하천의 정비 사업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사회 간접 자본의 구축으로 볼 수 있다. 조선 왕조가 경제 성장을 위한 사회 간접 자본의 구축에 유능하지 못했던 것에 비추어 보면 김육의 존재는 매우 귀중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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