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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의 명문가
353쪽 | A5
ISBN-10 : 8925531712
ISBN-13 : 9788925531717
조용헌의 명문가 중고
저자 조용헌 | 출판사 랜덤하우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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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월 13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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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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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카리스마와 불굴의 리더십으로 역사의 등대가 된 아홉 곳의 명문가 이야기 『조용헌의 명문가 | 한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위하여』. 분단과 싸움, 통일된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대한민국. 우리에게는 찢겨진 역사만 있는가?「5백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 「조용헌 살롱」등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인 조용헌은 희망을 잃어가는 한국 사회에 역사의 등대가 된 아홉 곳의 명문가 이야기를 내 놓으면서 우리에게 희망을 말한다.

저자는 우리 역사 속에서 혼란과 분열의 시기에는 어김없이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발현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전작「5백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에서와 마찬가지로 조선 500년과 근세를 관통하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발휘했던 대한민국 명문가들에 대해 다룬다.

전편과 다른 점이라면 명문가 사람들이 보여주었던 행동양식과 그들의 드라마틱한 역사에 더 집중하여 그려낸다는 점. 명문가 사람들 중 권력을 가졌던 자들은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힘을 썼고, 권력이 약했던 자는 향토공동체의 안위와 내실을 기하는데 기여하였다. 바로 ‘한국형 노블레스 오블리주’인 것이다. 전편보다 더욱 풍부하면서도 생동감 있게 한국의 명문가들을 이야기한다.

저자소개

저자 : 조용헌
저자 조용헌은 전남 순천에서 태어나 원광대학교 대학원에서 불교민속학을 전공하여 불교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스무 살 무렵부터 한국과 중국, 일본의 사찰과 고택을 답사하며 수많은 기인, 달사들과 교류를 가져왔다. 이들 재야 고수들과의 만남을 통해 천문, 지리, 인사에 관한 동양강호학의 3대 과목을 한국 고유의 문화 콘텐츠로 자리매김하는 데 주력해왔으며, 동양적 전통 이데올로기를 통해 서구적 가치관에 함몰되어가는 한국의 문화적 미와 전통을 복원하는 작업에 전념하고 있다. 저명한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는 저자는 현재 「조선일보」에 ‘조용헌 살롱’을 인기리에 연재하고 있다. 저서로 「조용헌의 사찰기행」, 「조용헌의 小說」, 「5백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 「조용헌의 사주명리학 이야기」, 「방외지사」, 「조용헌의 고수기행》, 「조용헌 살롱」, 「그림과 함께 보는 조용헌의 담화」 등이 있다.

사진 : 백종하
사진삽도인 백종하는 1963년에 태어나 중앙대학교 사진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80~90년대 농촌을 기록한 <비탈>, 해인사 고려팔만대장경을 기록한 <고려팔만대장경>, 禪 풍경의 <경계>, 禪 풍경의 <흐름> 등 네 번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이십여 번의 단체전에 참가했다. 국립현대미술관, 강원도청, 고토갤러리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우리 문화와 전통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재해석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으며 「월간 동화」에 정기적으로 글과 사진을 기고하고 있고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현재 (주)예진디자인의 연구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목차

머리말

도덕적 카리스마로 마음을 얻다 _논산의 명재 윤증 고택
일생 동안 벼슬길에 오르지 않은 ‘백의정승’, 윤증|뜻을 이룰 수 없으니 벼슬이 무슨 소용인가|대과급제 47명을 배출한 종학당|文으로 덕을 쌓고, 實로써 양민을 돌보다|민간 구휼사업인 의전과 의창제도를 실행하다|동학과 전쟁도 피해간 적선지가(積善之家)

천문과 지리의 이치를 빌려 인재를 낳다 _경주 양동마을 경주손씨 대종택, 서백당
영남 지역에 고택이 많이 남은 이유|조선시대의 비버리힐즈, 양동마을|지리가 사람의 길을 열다|서백당 산실이 낳을 마지막 인물|한 그루의 나무에 새겨진 깊은 뜻|선대의 품위와 가풍을 대물림하다

나라를 위해 칼을 들고, 민족혼을 위해 붓을 들다 _전남 담양군 창평면 고씨 집안
대한민국 오피니언리더의 산실|근대 한국 우파 정치의 발원지인 상월정|중용의 도로써 격랑의 시간을 헤쳐 나가다|일제의 자본시장 침탈을 막았던 창평상회|가문과 국가의 원수를 갚기 위해 분연히 일어서다|3부자 불천위를 받은 명문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살아 있는 전설 _우당 이회영과 형제의 일가
정승 열 명을 배출한 삼한갑족(三韓甲族)|전 가족이 마차를 타고 만주로 망명하다|헤이그 특사 사건과 고종 중국 망명 계획|신흥무관학교를 세우다|한국은 우당 집안에 빚을 졌다…

수백 년 내력의 가풍이 만든 인재 _인동장씨의 수재 집안
학벌 좋은 대한민국 신명문가|케임브리지대와 런던대의 두 아들|인재를 만드는 DNA|강골 기질과 아이큐가 결합하여 인재를 낳다|독립운동, 민주투사 그리고 교육투자

풍수도참의 명당에서 기운을 얻고 덕망을 쌓다 _정읍 평사리 강진김씨 고택
음택은 회문산, 양택은 평사낙안|사람이 집 짓고 살기에 가장 좋은 명당 중의 명당|자유로운 사상의 조류 속에서|공동체의 평안을 지상과제로 알았던 집안|기러기가 내려앉은 땅에 자리 잡은 집|전란도 피해간 덕망의 십승지

세속을 벗고 인간의 자존을 지킨 진정한 선비의 가문 _안동 고성이씨 종택, 임청각
영남풍류의 전형을 보여주는 고택|오벽(五癖)을 지녔던 풍류가객 허주 이종악|버리고, 또 버리고, 다시 버리다|선대의 넋은 몇 줄의 글로 남고|구한말 아홉 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민족혼의 탯줄|시대를 앞서는 정신이 머무르는 곳

국가 수호의 정신을 이어온 왕가의 집안 _전주이씨 광평대군파 고택, 필경재
조상의 얼과 후손의 몸이 함께 사는 집|인조반정의 공신집안|수도 방위와 호국의 가풍|외국의 사절들에게 한국의 멋을 알리는 명소

문화재 보존으로 독립운동을 한 명문 _간송 전형필과 간송 집안
무인에서 상인으로 변신하다|성북동 시대의 서막을 열다|문화재를 보는 감식안|금싸라기 땅을 팔아 사디 대접을 사다|김한태와 간송|간송학파가 형성되다|문화의 맥을 이어가는 보기 드문 집안|차라리 내가 어려울지언정|간송미술관의 딜레마

책 속으로

출판사 서평

<5백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에 이은 7년 만의 후속작 다시 ‘시대의 정신’에 불을 지피다! 무엇이 명문가를 만드는가? 도덕적 카리스마와 불굴의 리더십으로 역사의 등대가 된 아홉 곳의 명문가 이야기 현재 한국은 찢어지고 분열되었지만,...

[출판사서평 더 보기]

<5백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에 이은 7년 만의 후속작
다시 ‘시대의 정신’에 불을 지피다!

무엇이 명문가를 만드는가?
도덕적 카리스마와 불굴의 리더십으로
역사의 등대가 된 아홉 곳의 명문가 이야기


현재 한국은 찢어지고 분열되었지만, 이를 통합하는 방법이나 대안은 나오지 않고 있다. 정(正)이 있으면 반(反)이 있고, 그 다음에는 합(合)이 나온다고 배웠는데 어찌 우리는 정 · 반만 있고 합이 없는가?
이 책을 쓴 이유는 이러한 문제의식에 대한 필자 나름대로의 모색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우리나라 집안들은 분열된 우리 사회를 통합시키는 데 모범이 되는 명문가들이다. ‘난리 났을 때 영웅이 나온다’는 말도 있는 것처럼, 명문가는 혼란기에 생겨난다고 본다. 혼란기에 역사의 검증을 받는 법이다. 또한 분열된 혼란기에 중론을 모을 수 있는 집이 명문가의 역할이기도 하다. 이렇게 나라가 찢겨진 상황에서야말로 제대로 된 명문가가 필요하다.
_<머리말>에서

다시 발현될 '시대의 정신'을 기다리며
우리의 역사 속에서 혼란과 분열의 시기에는
어김없이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발현되었다!

19세기 후반 이후 현재에 이르는 한국 근세 100년의 역사는 인간으로서의 품위와 자존을 지키기에는 너무나도 굴곡이 많고 가팔랐다.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했던 이들의 집안은 거의 대부분이 풍비박산 났고, 그게 아니면 친일로 지탄을 받았다. 해방 이후에는 좌익이 아니면 우익에 걸렸고, 또 다시 독재 정권이라는 장애물에 걸려 상처를 입었다. 이 격랑의 세월을 거치는 동안 자존심 강하고 타협할 줄 모르는 많은 사람들이 이데올로기와 탄압의 뭇매를 맞고 스러져갔다. 빠른 속도로 자본시장이 재편되면서 부의 구도도 변했다. 그리고 ‘민간 구휼’과 ‘교육’, ‘국난 극복’에 몸을 사리지 않았던 우리의 수많은 명문가들도 명멸해갔다.
「조용헌의 명문가」는 저자의 문명(文名)을 있게 한 역작 「5백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2002년 1월 출간)에 이어 7년 만에 펴내는 후속작이다. 전작에서와 마찬가지로 조선 500년과 근세를 관통하며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 Oblige를 발휘했던 대한민국 명문가들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하지만 전작이 명문가를 만드는 요소와 원칙에 비중을 두었다면, 후속작 「조용헌의 명문가」는 명문가 사람들이 보여주었던 행동양식과 그들의 드라마틱한 역사를 그리는 데 천척하고 있다. 때문에 보다 풍부한 이야기를 담고 있고 그만큼 생동감이 있다.

풍부한 인문학적 정보와 기록되지 못한 역사의 발굴
사건과 인물, 향토문화를 통해 들여다본 당대의 역사적 기상도
「조용헌의 명문가」가 조명하는 또 하나의 굵직한 틀은 책에서 거론하는 명문가들이 태동하고 성장하던 시기에 발생한 크고 작은 역사적 사건들과, 당대의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인물들이다.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 속에서 각종 사화와 당쟁을 거치는 동안 힘의 균형이 어디에 쏠렸는가에 따라 권력의 구조 역시 재편된다. 집권 세력의 인물들은 중앙에 진출해 주류의 역사를 형성했고, 벼슬길이 끊겨 귀거래(歸去來)를 한 이들은 향토문화를 육성했다. 현재 영남 지역에 고택이 많이 남은 이유 역시 조선후기 150년 동안 영남의 남인들이 정계에서 배제되었던 역사적 사건을 들 수 있다. 정계에 진출했던 기호지방의 노론에 비해 영남의 남인들은 집안 보존과 관리에 더 철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우리나라 명문가들의 덕행은 권력의 유무와 상관없이 실천되었다. 권력을 가진 자는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힘썼고, 비교적 권력이 약한 자는 향토공동체의 안위와 내실을 기하는 데 기여했다. 여기서 ‘한국형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발견할 수 있다. 우리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전통이 특권층의 한계를 넘어 보다 확산되어야 하는 근거 역시 여기에 있다.

풍수도참의 관점에서 바라본 명문가의 조건
또한 저자는 사주명리학의 대가답게 풍수도참의 관점에서 명문가의 탄생 조건을 설명하는 데에도 비중을 둔다. 우리나라 명문가들이 풍수적인 길지에 터를 잡은 데에는 우리나라 선비들의 학문과 사상의 흐름에 그 이유가 있다. 선비들은 젊은 시절에는 ‘유가(儒家)’를 선호하지만 세상의 험한 꼴을 겪다가 50대를 넘어서면 ‘도가(道家)’를 지향했고, 도가는 공통적으로 풍수도참과 지형지물법에 밝았다. 하지만 저자는 ‘지리’에 ‘인물’과 ‘덕행’이 더해졌을 때 비로소 명문가가 탄생했다고 본다. 조선시대에는 길지라고 소문난 땅이 여러 곳 있었다. 웬만큼 재산을 모은 집안들은 너나없이 이 길지에 터를 잡았다. 그렇다고 그 집안들이 모두 명문가가 되고 모두 역사적 명맥을 유지한 것은 아니다. 동학과 6.25를 겪는 동안 많은 집안이 거꾸러졌다. 하지만 평소에 덕행을 쌓았던 명문가들은 혼란의 역사 속에서도 살아남았다. 명당을 만드는 것은 결국 사람의 몫이었던 것이다.

서구사회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전통
희생과 용기를 담보로 한 서구사회 귀족의 특권의식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왕위계승 문제가 발단이 되어 시작된 백년전쟁이 한창이던 1347년, 영국의 왕 에드워드 3세는 프랑스 북부의 조그마한 항구도시 칼레 함락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몇 년 동안 끈질기게 저항해온 칼레가 드디어 백기를 든 것이다. 에드워드 3세는 항복 의사를 전하는 칼레의 시민대표에게 자비를 베푸는 대신 여섯 명의 목숨을 대가로 내놓으라고 말한다. 이에 칼레에서 가장 부유한 시민이었던 외스타슈 생 피에르가 스스로 희생양이 되기를 자처한다. 그의 행동에 용기를 얻은 사람들이 하나둘 나섰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지원자가 일곱 명이 되었다. 이에 생 피에르는 다음 날 장터에 가장 늦게 나온 사람이 빠지는 것으로 하자고 의견을 낸다. 다음 날, 생 피에르를 제외한 여섯 명이 장터에 모였다. 시민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생 피에르를 향해 야유를 보냈다. 하지만 생 피에르의 아버지가 나타나 아들의 죽음을 전한다. 생 피에르는 나머지 여섯 사람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게 하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에드워드 3세는 ‘칼레의 시민들’을 돌려보낸다.

‘특권층의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이 거론될 때면 가장 많이 예시되는 역사적 사건이 위에 언급한 ‘칼레의 시민들’이다.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의 2천 년 역사를 지탱한 힘이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철학에 있었다고 말한다. 로마의 귀족은 평상시에는 호사를 누리며 군중 위에 군림하지만 전쟁이 나면 대열의 선두에 서서 군대를 이끌었다. 로마의 귀족은 용기와 희생이라는 덕목을 행동으로 보여줌으로써 비로소 사회지도층이라는 지위를 획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고대 로마에서 시작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통은 유럽 사회를 관통하는 핵심 윤리였다. 유럽 사회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전통은 미국으로 옮겨오면서 새로운 양상을 띤다. 귀족 계급이 따로 없었던 미국 사회에서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특권층의 책무가 아니라 시민의 당연한 의무로 받아들여졌으며, ‘기부’라는 형태로 부의 사회적 환원을 실행함으로써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실현된 것이다.

한국형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재발견
기근에는 창고를 열고, 국난이 닥쳤을 땐 분연히 일어서다!

서구사회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전통을 바라보며 분통을 터뜨리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소위 ‘사회지도층’이 보이는 도덕적 해이가 위험 수위에 달해 있고, 계층 간의 갈등은 갈수록 심화되는 까닭이다. 게다가 지금 우리 사회는 ‘분열’이라는 지독한 열병에 걸려 있다. 과연 우리 사회를 통합할 ‘시대의 정신’은 영원히 소멸되고 만 것인가?
이 책의 저자 조용헌은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과거와의 대화를 시도한다. 그리고 그는 역사의 위기 때마다 흔들리지 않는 의지와 도덕성으로 만인의 등대가 되었던 명문가들의 흔적을 추적하며 이 시대의 희망을 탐색한다.

도덕성과 리더십, 불굴의 용기를 지녔던 대한민국의 명문가
1. 논산 명재 윤증 집안
논산의 윤증 고택 사랑채에는 담장이 없다. 그만큼 투명하고 숨길 것이 없었다. 명재는 자기관리에 철저했으며 후손들이 허례허식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각별히 신경을 썼다. 또한 서민들의 생계에 피해를 주지 않도록 철저히 단속했으며, ‘종학당’이라는 사립 교육기관을 세워 후학 양성에 힘썼다. 종학당은 문중의 후손뿐만 아니라 주변의 학생들에게도 개방되었다. 그리고 교육을 시키면서 노동력의 손실에 대한 대가로 오히려 장학금을 지불했다. 이런 적선이 있었기에 윤증 집안은 동학과 6.25를 겪으면서도 피해를 입지 않았다.

2. 경주 양동마을 경주손씨 집안
조선시대의 비버리힐즈라고 할 수 있는 양동마을에는 경주 손씨 집안의 종택인 서백당이 있다. 경주 손씨 집안은 후손 교육이 각별하여 우리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뛰어난 인물을 많이 배출한 가문으로 유명하다. 오늘날까지도 계승되고 있는 이 집안의 가풍은 우리의 전통적인 가치관을 보전하는 씨암탉 역할을 하고 있다.

3. 전남 담양 창평고씨 집안
교육과 민간 구휼, 국난 극복이라는 명문가의 조건을 전방위적으로 갖추고 있는 보기 드문 집안이다. 일제의 자본시장 침탈을 막기 위해 창평상회를 세워 민간대출과 생필품 공급에 힘썼으며, 근대 교육을 위해 학교를 세웠다. 그리고 임진왜란 때는 3부자(父子)가 전쟁터에 나가 전사했으며, 일제 강점기에는 또 다시 3부자가 조국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

4. 우당 이회영 형제 일가
정승을 10명 가까이 배출한 삼한갑족(三韓甲族)이었으며, 3만 석의 갑부였던 우당 이회영 일가는 을사늑약이 이루어지자 분을 이기지 못하고 가산을 전부 정리하여 일가족 전체가 만주로 향한다. 그곳에서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독립운동을 위한 인재를 양성했으며, 물심양면으로 독립운동을 지원한다. 그동안 가세는 기울고 식구들의 고생은 말이 아니었다. 살아 돌아온 이는 6형제 중 다섯째인 이시영뿐이었다. 환국한 이시영은 공항에서 회한의 눈물을 쏟았다. 저자는 말한다. 한국은 우당 집안에 빚을 졌다고.

5. 인동장씨 집안
귀족 계급이 사라지고 난 이후 가문의 명예를 드높이는 가장 큰 요소는 ‘학벌’이 되었다. ‘부’가 있어도 ‘문’을 갖추지 못하면 졸부에 그친다. 인동 장씨 집안은 ‘학벌’로 신명문가의 대열에 든 수재 집안이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3선 국회의원인 장재식 씨의 두 아들인 케임브리지대학의 장하준 교수와 런던대학의 장하석 교수를 들 수 있다. 이 집안에는 수재와 천재가 수두룩하다. 이 집안의 신명문가 DNA는 가문의 오랜 가풍과 내력이 만든 것이다.

6. 정읍 평사리 강진김씨 집안
명당 중의 명당에 자리 잡은 강진 김씨 집안의 규당 고택. 저자는 풍수도참설에 근거하여 이 집안의 기운을 살핀다. 하지만 명당은 하늘이 만들지만, 역사는 사람이 만드는 것. 이 집안 사람들 사이에 대대로 내려온 지상과제였던 ‘공동체의 평안’이 명당과 명문가를 만든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7. 안동 고성이씨 집안
영남을 대표하는 양반 집안이었다. 낙동강 상류에 자리 잡은 99칸의 대저택 대문 앞에는 낙동강을 오르내릴 수 있는 유람선의 접안시설까지 갖추고 있었다. 이런 집안이 일제 강점기에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만주로 향했다. 집안의 자손들이 독립운동을 하는 바람에 그 후손들은 고아원에서 자라야만 했다. 초대 임시정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이 바로 임청각의 종손이다.

8. 전주이씨 광평대군파 집안
서울에서 500년 내력을 지닌 유일한 고택인 필경재는 이 집안의 종택이다. 인조반정에 중요한 역할을 해 인조반정 이래로 300년 동안 조선의 주류집안 위치를 지켜왔다. 북쪽에서 내려오는 외적의 침입을 방지하기 위해 북한산성 축조를 주도했던 집안이기도 하다. 지하철 창동역과 녹천역은 이 집안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집 뒤에 남아 있는 13만 평의 묘지에 700여 기의 조선시대 묘지가 예법에 맞게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어 묘지박물관이라고 할 만하다. 이 집에 얽힌 재미있는 역사적 사건들을 전주이씨 광평대군파 18대 종손 이병무 씨의 입을 통해 듣는다.

9. 간송 전형필 집안
간송은 ‘문화재 보존’이라는 독특한 방법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구한말 10만 석 재산을 가진 갑부 중의 갑부였던 간송 집안은 일제 강점기에 뿔뿔이 흩어진 문화재를 구입하는 데 재산을 고스란히 썼다. 문화재 소장이라는 한 길만 팠기에 전란을 거치면서도 책을 잡히지 않았고, 문화재 역시 오늘날까지 보전할 수 있었다. 이와 더불어 우리나라 문화ㆍ예술사의 구심점이 되었던 간송학파에 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분열과 혼란의 시기를 통합할 시대의 정신을 기대하며
분열된 우리 사회를 통합할 이 시대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좌파니 우파니, 보수니 진보니 하는 이념적 노선들이 서로 충돌하고 있다. 계층 간의 분열도 심화되고 있다. 여기에 IMF를 능가하는 경제 한파까지 닥쳤다. 한국 사회는 지금 여러 가지 위기에 직면해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위기가 처음 닥친 것은 아니다. 이보다 더한 일도 겪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갈기갈기 찢어진 사회를 통합하는 위대한 정신이 발현되었다. 명문가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무엇이 명문가를 만드는가?’
7년 전 「백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를 펴내며 던졌던 저자의 이 질문은 지금도 유효하다. 그리고 이 질문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물음과 맥을 같이한다. 분열과 혼란의 시기에 이 사회를 통합할 ‘시대의 정신’을 기대한다는 저자의 말처럼 이 책이 우리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전통을 되살리는 데 일조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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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

회원리뷰

  • 조용헌의 명문가 / 조용헌 | no**nd2 | 2010.01.04 | 5점 만점에 4점 | 추천:0
    많은 명문가와 역사적 인물과 만날 수 있어서 반가웠다. 재미있게 써진 책이다. 명문가로서 적선(積善)과 도덕성의 중요함을 강조...

    많은 명문가와 역사적 인물과 만날 있어서 반가웠다. 재미있게 써진 책이다. 명문가로서 적선(積善) 도덕성의 중요함을 강조한다. 고적하고 단아하게 느껴지는 고택의 사진을 보는 만으로도 마음이 저절로 안정되는 같다. 언젠가는 저자처럼 고택여행을 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古宅이 가진 상징성과 고택을 보면서 자라는 자손들에게 교육의 효과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고택을 기준으로 名門家를 선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저자도 인정하듯이 전쟁이나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인해 고택을 보유하지 못할 명문가도 분명히 다수 존재하기 때문이다. 과연 재력이 명문가의 1 요건이 되는가?

     


    명문가를 논하면서 풍수적 측면도 함께 설명한다. 하지만 음택과 양택을 구분했어야 한다. 양택이라면 거주했던 사람만 대상이 되며 집에 살고 있지 않은 다른 친족들은 양택의 영향력 하에서 제외된다. , 서백당과 외손발복은 의미가 없으며 고택에 살지 않은 자손은 고택과 관련된 명사에서 제외되어야 한다. 명당이라는 용어가 다수 제시되는데 고택이 명당이라는 증표는 전혀 제시되지 않는다. 좋은 사격으로 명당을 추측해 수는 있지만 정확한 장소는 찾기 어렵다. 물론 책을 읽는 독자들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도록 명당에 대한 전문가적인 설명이 의도적(?)으로 누락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奇山
  • 일본의 침탈과 광복을 전후 한 숙청 그리고 6.25전쟁과 정경유착을 야기하던 정권들. 이 과정 속에서도 수백년을 이어온...

    일본의 침탈과 광복을 전후 한 숙청 그리고 6.25전쟁과 정경유착을 야기하던 정권들. 이 과정 속에서도 수백년을 이어온 명문가가 간간히 명맥을 이어오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혼란스러웠던 근대사에서 살아 남을 수 있었던 명문가들은 명문가답게 모든 기득권을 포기한 채 국가를 위해서 독립운동에 사활을 걸었고 경제적으로 많은 시련을 겪을 수 밖에 없었던 우리 나라의 암울했던 근현대사.

     

    미처 알지 못했던 위대했던 우리 나라의 명문가들과, 국가와 민중을 위한 그들만의 깊은 사상 그리고  솔선수범하는 책임감있는 활동들로 목숨까지도 기꺼히 버릴 수 있었던 고결함.

     

    이런 것들을 새삼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책입니다.

    삼한갑족이라고 불리우는 명문가.   천석군, 만석군도 아닌 십만석군들의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행하던 모습들. 그 과거의 역사에 의해서 우리 대한민국이 분명히 존재하게 되었음을 생각하게 합니다.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등..외세의 침입에 맞서 의병활동은 신분여하를 떠난 모든 백성들의 활동이었음이 분명하지만, 기득권이라는 물리치기 힘든 유혹을 기꺼이 뿌리치고, 당대는 물론 2, 3대까지 순결을 할 수 있었던 모습들에서 새삼 현실을 돌아보게 만듭니다.

     

    바로 우리 나라의 현실을 말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국가대표격인 현재의 부자는 소위 재벌기업으로 잘 알려져 있지요.

    이것이 과거 역사에서라면 내놓으라 하는 명문가, 부자라고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생각해 봅니다. 누가 말하기에 앞서 선듯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기보다는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후 이것이 발각되어 사회적 여론이 불리해 질 듯 하면,

    이를 잠재우기 위해서 행하는 사회기부행위.

    이것으로 과연 그들은 얼마나 존경을 불러 일으킬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인 태도가 우선되어야 하는것이 아닐까요.

    똑같이 기부를 하더라도 시기적으로 어떤 형식으로 하는가가 중요한 것이겠지요.

    어차피 빼앗길 거 면피용으로 좋은일 하는 듯한 모습을 연출하기 위한 행위가 아니기를 바라지만,

    현실속에서의 몇몇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부자들의 태도는 영락없는 기회주의자적인 모습이 보임이 안타깝습니다.

     

    이 책을 통해서 소개된 몇몇 명문가들을 찾아 답사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굳히게 합니다.

    그리고 결연한 의지와 고결함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되지요.

    또 명문가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 과연 무엇이었을까 하는 데 촛점을 맞추고 이 책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음은 기본이고,

    자식과 자손들에게 그 사상이 그대로 전달될 수 있는 교육 시스템이 갖추어 졌으며,

    자기를 생각하는 이기주의 보다는 애민사상이 중요한 근간임을 알게 합니다.

     

    이기주의적인 생각으로는 쉽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행하기 쉽지 않습니다.

    사회와 국가, 그리고 주변 이웃들에게 책임감있는 모습으로, 이웃과 타인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만 사랑을 실천하는 모습의 하나로써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더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부자가 된 이후부터 시작하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부터 하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중요하겠지요.

     

    책에서 소개된 명문가들의 희생과 봉사에 대해서 깊은 경의를 표하며

    현재 보이지 않는 곳에서 행하고 있는 사랑의 나눔과 기부행위에 감사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세계적으로 모범을 보이고 있는 빌게이츠나, 워런버핏의 어마한 기부행위,

    성룡의 거액의 사회환원 의지를 보며 존경을 표하고 싶습니다.

     

    "자식이 능력이 뛰어나다면 재산을 물려주지 않아도 성공할 것이며,

    만일 능력이 없다면, 가진 재산을 허되게 쓰게 내버려 둘 수 없어서 기부하고자 한다."

     

    이제는 바로 나의 차례입니다.

  •     오랜 전통을 지닌 명문가들이 가치있는 이유.     작년 10월. 그러니...

     

     

    오랜 전통을 지닌 명문가들이 가치있는 이유.

     

      작년 10월. 그러니까 가을 하늘이 높다랗게 치솟아 있고 들에는 누런 벼들이 바람에 넘실거릴 무렵에 문화 유적 답사 카페를 통해서 2박 3일 '구석 구석 백제 문화 특별 답사' 를 갔었다. 대학교 1학년때 처음 가입해서 답사를 참여한 이래로 꽤 몇해가 지났는데도, 역사와 답사에 대한 나의 사랑이 그윽하고, 오랜만에  생긴 연휴에 가보고 싶었던 백제 유적지를 답사한다기에 냉큼 신청을 했다. 주변 사람들을 꼬셔봤지만 유적 답사란 말에 다들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었다. 정말로 막상 혼자 거기 참석을 해보니 내가 가장 막내였다. 이제는 어디가서 막내를 잘 하지 않는데 여기는 언제가도 막내였다. 그분들이 하시는 말씀이 "젊은 사람이 벌써 부터 우리같은 사람과 절 쫓다니고 그럼 어째 , 한 10년뒤에 다녀!" 라고 하셨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난 10살때부터 이런걸 좋아해버렸는데.

     

      백제 유적 답사지를 쭉 돌다가 논산에 다다랐다. 저 멀리서 어느 기풍있고 넓직하면서도 장독대가 엄청나게 많은 한 기와집이 눈에 띄었다. 우리 코스에는 들어있지 않았지만 논산 현지 문화 해설자분이 꼭 가봐야 한다고 우리를 그 집으로 안내했다. 그곳은 다름 아닌 '논산의 명재 윤증 고택'이였다. 20여차레나 벼슬 자리를 끝까지 마다했던 옳곧음의 상징 같은 분의 살아있는 집이 바로 그곳이였다. 그 기억과 가슴에 남은 흔적이 사라지기도 전에 이 책 <조용헌의 명문가>를 만났다. 그것도 가장 첫 머리에 곳곳을 구석구석 둘러봤던 곳이 너무나도 자세하게 있었다. 어찌나 반가운지 나도 모르게 "나 여기 가봤어!"를 연일 외쳐 대었다. 보면 볼수록 반가운 책이다.

     

      조용헌. 그는 누구인가. 불교학을 전공하여 어릴때 부터 세계의 사찰과 고택 답사를 하면서 서구적 가치관으로 몰락해가는 한국의 전통과 미를 복원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시는 분이다. 이미 그의 이름을 딴 '사찰기행' 이나 '사주 명리학' 같은 책들을 발행하여 이쪽분야 관심있는 사람들에겐 전문적이고 객관적인 지식을 선물해주고 있다. 이번에 만나게 되는 <조용헌의 명문가>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즉 높은 사회적 신분에 걸맞는 도덕적인 의무를 다하는 전통 있고 존경받는 집안을 우리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소개된 책이다.

     

     

     

      앞에서도 설명한 윤증 고택의 전망 감상을 배려한 유난히 높은 마루, 천문과 지리의 이치를 빌렸던 경주 양동마을 경주손씨 대종택이 물(勿)자 형국에서 가장 핵심적인 자리인것,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살아있는 전설인 우당 이회영과 형제 일가들의 독립투쟁, 간송 전형필이 전재산을 모두 빼앗긴 문화재 유적 되찾기에 사용했던 것 등. 셀 수 없는 사건들과 셀 수 없는 흔적들 그리고 아름다움이 온  책을 뒤덮고 있다. 저자가 얼마나 한국, 이 나라를 사랑하는 가가 여실히 잘 나타나는 책이 아닐 수 없다. 치욕의 역사 근세 100년 때문에 그동안 전통을 지켜오던 명문가들이 많이 사라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을 안타까워 하고, 아시아 국가가 서구에 밀리는 것이 바로 이 '노블레스 오블리주' 때문인 것 같다라고 비판도 아끼지 않는다. 그런면에 있어서 무조건 칭찬하지도 무조건 비판하지 않는 글들이 오히려 더 맘에 든다.

     

      특히나 전혀 알지 못했던 역사의 흔적들을 아주 많이 찾아주었다. 자주 놀러다니더 명동길의 '명동 우당길'이 바로 우당 6형제들을 기리기 위함이였고, 양동마을이 조선의 베버리 힐즈같은 곳이였다는 것도 그렇다. 마치 계속 눈에 이물질이 많아 안보이는 상태로 삐뚫어진 길을 올바른 길처럼 걸어가다가 누군가가 눈에 끼인 먼지들을 말끔이 씻어준 기분이다. 상류층, 양반들이라고 해서 모두가 다 횡포를 부리고, 백성을 나몰라라 한 것은 아니였구나 하는 안도감마저도 생긴다. 이런 집안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현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특히나 간송 선생님이 일본에게 넘어갈 뻔 했던 국보급 보물들을 지켜내었던 것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아무리 엄청난 부자 집안이라고 해도 나라를 위해 그렇게 하기는 거의 힘들 것이다. 아니, 현재도 그런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책의 내용 답게, 꼼꼼하고 섬세하며 전통있는 글들로 가득 메워저 있어서 독자들이 우리나라를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기분을 만들어준다. 나 뿐만 아니라 많은 독자들이 우리에게도 이런 멋진 문화들과 전통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오늘 뉴스에서 국회의원들은 악법이니 어쩌니 여전히 멱살잡고 떠들어 대고 있어서인지  어려운 일에 가장 먼저 발벗고 나서고, 용기와 신뢰를 먼저 보여주었던 '노블레스 오블리주 '  명문가들이 무척이나 그리워진다.

  • 조용헌의 명문가 | bl**dlee33 | 2009.03.02 | 5점 만점에 4점 | 추천:0
    조용헌의 명문가           조용헌의 새 책이 나왔다. 7년전...

    조용헌의 명문가

     

     


     

     

     

    조용헌의 새 책이 나왔다. 7년전에 쓴 [5백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를 잇는 [조용헌의 명문가]. 책 제목에 저자 이름을 적어 놓은 것은 아마 이제 [조용헌]이라는 이름이 출판시장에서 네임밸류를 가지기 때문일거다. 편리를 위해 [5백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를 1권이라 하고 [조용헌의 명문가]를 2권이라 하자.

     

     

     

     


     

     

     

     

    1권에는 열 다섯 집안이 소개되고 2권은 아홉 집안이 소개된다. 역사적 깊이로 따지자면 1권이 더한거 같고 현대인이 접하기에는 2권이 더 가깝다. 저자는 1권에서 명문가의 기본 요건이 "고택"을 유지하고 있는 집안이라 판단했는데, 거기에 더해 몇 가지 공통점을 따져 1. 역사성 2. 도덕성 3. 인물 을 들었다. 그리고 두 권의 책에서 뽑은 명문가의 핵심을 "노블리스 오블리주"로 잡았다. 오늘날 소위 잘 나가는 집안이라고 부를 수 있는 많은 부를 축적한 집안들이 외국에 비해 부족한 부분이 사회적 책임에 관한 부분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주"가 찢어진 한국사회를 통합하는데 일조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책을 썼다고 했다.

     

     


     

     

     

     

    2권에서는 총 아홉 집안이 소개되는데 나의 관심을 끈 가문은 [문화재 보존으로 독립운동을 한 명문가_간송 전형필과 간송 집안], 그리고 [수백년 내력의 가풍이 만든 인재_인동 장씨 수재 집안]이다. 이 두 집안은 익히 들어 익숙한 집안이다. 새로이 인식하게 된 집안이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살아있는 전설_우당 이회영과 형제의 일가]다.

     

     


     

     

    [문화재 보존으로 독립운동을 한 명문가_간송 전형필과 간송 집안]. 10만석의 부자. 우리 문화재가 일본이나 외국으로 나가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사재를 털어 수집한 이가 간송 전형필이다. 도자기 만드는 곳에 몸담고 있고 서양 문화보다 우리 문화에 더 관심을 두어 너무 익숙한 인물이다. 책의 순서로 보자면 제일 마지막이자만 나의 관심이 첫째 가는 곳이어서 가장 먼저 읽어 내린 집안이다. 간송의 집안 내력과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그 많은 재산을 물려 받는 과정, 우리 문화재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 그리고 문화재 수집에 도움을 준 이들, 오늘날 간송미술관이 명맥을 유지하고 그 후손들이 살아가는 모습들이 많지 않는 분량에 세세히 담겨 있다.

     

     

     

    [수백년 내력의 가풍이 만든 인재_인동장씨의 수재 집안]. 최근에 가장 주목받는 경제학자로 장하준을 꼽을 수 있다. 신자유주의 경제를 비판하고 한국 경제에 대해 조언을 아끼지 않으며 몇 권의 주목 받는 저서를 낸 그는 우리가 가장 주목하는 경제학자 중 한 사람이다. [나쁜 사마리아인들], [쾌도난마 한국경제], [사다리 걷어차기] 등이 그의 저서다. 장하준이 인동 장씨다. 집안을 두루 살필 것도 없이 장하준의 할아버지를 기준으로 그 후대들만 따져도 인물들이 널렸다. 독립운동을 한 이도 많고 한국전쟁 참전은 필수다. 해방 이후에는 자유당 정권에 대항해 투쟁을 했고 유신정권에도 저항을 했다.  나라가 어려울 때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일에 두려워 하지 않는 집안이다. 한편으로 교육을 게을리 하지 않아 학자로 성공한 이들이 부지기수다. 대부분의 형제, 자매, 그리고 그 후손들이 한 자리 한다. 장씨 집안의 역사는 조선조 양반 제도가 없어진 이후에 전개된 한국 근현대사에서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는가를 잘 보여준다.

     

     

     

    조용헌의 명문가. 이 책은 저자가 우리 민족은 분열은 잘 하면서 통합이 잘 안 되고, 문제에 대한 대안은 나오지 않고합의 도출도 하지 못하는데 우리 민족이 원래부터 못난 민족이었는지, 아니면 용렬한 족속이라 그런 것인지 하는 의문에서 출발했다. 난세에 영웅 난다고 분열된 혼란기에 중론을 모을 수 있는 것이 명문가의 역할이고 그래서 제대로 된 명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쓴 책이다. 결론은? 우리에게도 명문가가 있다. 오블리스 노블리주를 이야기 할 수 있는 명문가가 존재한다. 사회의 귀감은 널리 알려 본을 받게 하고 반성하게 하고, 다시 한 번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시야를 넓혀 집안을 다스리는 본보기로 삼아도 좋을 듯 하다.

  • 조용헌의 명문가 | ng**75 | 2009.02.27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지금 이 시대에 명문가라고 불리울수 있는 집안이 과연 얼마나 될까?과거 조선시대에 높은 벼슬을 ...

     

     

    지금 이 시대에 명문가라고 불리울수 있는 집안이 과연 얼마나 될까?
    과거 조선시대에 높은 벼슬을 한 선비들은 아마 자기 집안이 명문가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적으로 집안이 몰락하기도 했을것이고
    사람들의 지탄을 받을 만한 일을 하면서 예를 들면 일제시대에 일제에 협력하면서 집안을 유지하는 것 등 명문가들은 점차 사라져간거 같다.
    그렇다면 현재 이 시대에는 명문가라고 불리울 가문은 없는 것일까?
    만약 있다면 어떤 기준을 통해 그들을 명문가로 부를것인가가 궁금해졌다.
    단순히 돈이 많다고 해서 우리나라 재벌들의 가문을 명문가로 칭하지는 않으니 말이다.
    명문가라면 모르긴 몰라도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그런 가문이 진정한 명문가일테니 말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9개의 가문을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는 명문가라 일컬을 수 있는 물증 한 가지로 고택(古宅)의 여부를 들고 있다.
    수십 칸의 고택을 현재까지 보유하고 있는 집안들에서는 역사성과 도덕성을 볼 수가 있고
    학문과 인품이 훌륭한 인물이 배출되었다는걸 알 수 있으며 재력이 뒷받침 되었다는걸 볼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고택들은 명당자리에 위치해 있는데 풍수에 대해 잘 안다고 말할수가 있는 것이다. 물론 고택이 남아있지 않다고 해서 명문가가 아니라는건 아니다. 언제나 예외도 있는 법이니 말이다.


     

      

     

    이 책에 나오는 9개의 가문중 나의 흥미를 끄는 가문은 우당 이회영 일가이다.
    우당 이회영 선생의 집안은 너무도 유명한 가문이라고 할 수 있다.
    전 재산을 팔아 만주로 가서 신흥 무관 학교를 세우고 독립운동에 힘쓴 가문으로써 
    내가 볼때 이회영 선생의 집안은 진정한 명문가가 아닌가 생각한다.
    전 재산을 나라를 위해 내놓는다는게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니까.
    일제에 협력해 가문을 지키고 부를 확장시킨 인물들도 상당히 많으니 말이다.
    이회영 집안의 후손들이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잘 모르지만
    최근 친일파 후손들이 국가에 재산 반환 소송을 하는 걸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명문가라고 칭하는 것은 아무래도 주관적 가치라고 생각한다.
    저자가 명문가라고 부른 이유는 이 집안들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기때문일 것이다.
    명문가는 지금과 같이 살기 힘든 세상에서 더욱더 빛나는거 같다.
    많은 가문들이 명문가를 자처하고 또 명문가로 대접받고 싶어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명문가에 알맞는 모습을 보여줘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집안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
    과연 우리 집안은 어떤 집안일까?
    생각해보니 우리 집안에 대해 아는게 별로 없는거 같다.
    우리 집안은 명문가라고 불릴정도는 아닌 듯하다.
    명문가라면 내가 모를리가 없을테니 말이다.
    저자의 바람대로 이 책에 나왔든 나오지않았든 많은 명문가들이 
    찢어진 한국 사회를 통합하는 데 일조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진정한 명문가라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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