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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의사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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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2쪽 | A5
ISBN-10 : 8986270870
ISBN-13 : 9788986270877
어느 의사의 고백 중고
저자 알프레드 토버 | 역자 김숙진 | 출판사 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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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0월 28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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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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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윤리에 대한 내용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이다.

저자소개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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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출판사 서평

헤르메스의 지팡이로 균형을 잡은 의학의 고민 다섯 살 때부터 병든 어머니의 간호를 도맡아 하고, 여섯 살 무렵부터는 아버지의 왕진에 규칙적으로 동석해 어서 커서 너도 훌륭한 의사가 되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 고등학생 때는 가벼운 수술에 참여하는 게 ...

[출판사서평 더 보기]

헤르메스의 지팡이로 균형을 잡은 의학의 고민
다섯 살 때부터 병든 어머니의 간호를 도맡아 하고, 여섯 살 무렵부터는 아버지의 왕진에 규칙적으로 동석해 어서 커서 너도 훌륭한 의사가 되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 고등학생 때는 가벼운 수술에 참여하는 게 허락될 정도로 저자는 의사라는 소명을 아주 일찍부터 시작한 행운아였다. 수련의는 임상의학의 메카 메이요 클리닉에서, 그리고 하버드 의대와 보스턴 시립병원 등을 거치면서 동기생들 중에서 가장 먼저 교수가 된 그야말로 탄탄대로의 인생이었다. 그러다 마흔 살에 어머니의 죽음을 맞고 그는 본격적으로 철학에 몰두하기 시작한다.
평생을 의사로서 살아온 저자의 좌절감은 간단하다. 과학의 잣대가 너무 무거워진 의학에서 본래 의학의 출발선에서 동등한 잣대였던 철학의 무게로 균형을 잡아주자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주장한다. “사람들의 의학에 대한 기대는 양면적이다. 그들은 의료 행위가 과학적이기를 원하면서도, 동시에 자신들을 돌보게 될 사람이 단지 전문 기술인이 아니라 인도적인 의사이기를 바란다.”
저자는 수많은 죽음들을 지켜보면서 덮어두었던 임상 경험들을 하나씩 꺼내 철학적인 반성을 시도했다. 의학의 신 헤르메스의 지팡이로 가벼운 일화들을 하나씩 풀어놓으면서, 의료를 행하는 이들이 고민해야 할 구체적인 항목들을 깊이있게 성찰했다.
이 책은 환자를 보살피는 일에 점점 무관심해지고 있는 의료 시스템과 싸워야 하는 의사로서의 좌절감에 대해, 철학자로서 의료관계자들이 처한 곤경의 뿌리라고 생각하는 윤리적 문제들에 대한 갈등에 대한 이야기다. 병을 앓는 환자들은 반색할 이야기들이고, 치료를 행하는 이들은 읽고 같이 고민해야 할 내용이다.
병을 앓는 경험은 니체를 비롯하여 많은 철학자들의 성찰 과제였다. 모든 것들이 그러하듯이 묵은 과제를 옳다 그르다 이분법으로 해결하기보다는 저자의 주장처럼 보다 본질적인 접근으로 풀어야 할 수밖에 없다. 특히 고달픈 의대 초년생들에게 기초 과학만 가르칠 게 아니라 제대로 된 철학적 과정을 거쳐야 된다고 주장한다. 고통의 체험이나 삶과 죽음의 경계 등은 철학적 성찰이 없으면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 본문 소개

주치의는 이제 전설이 되었다. 의사들이 점차 급격하게 기업적 운영의 부분이 되어 불가피하게 진료 기계처럼 되어가고 있다는 경향 때문만이 아니라, 의사-환자의 관계 자체가 변화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의료에서 가장 기본적인 단위인 그런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관계를 탐구하고자 한다. 의료인의 지배적인 윤리의 바탕을 탐구한다는 것은 결국, 아프다는 것은 무엇이며 건강이 회복되도록 돕는 데 있어 의사나 간호사들의 역할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병에 걸린 우리를 온전히 회복시켜 주는 것과 관계되는 윤리적 책임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
나는 엘렌을 만나기 전까지는 죽은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엘렌은 내 해부용 시체였다. 그녀는 끔찍한 냄새가 났고 내가 예과 시절에 해부했던 고양이보다 좀더 인간적일 것도 없었다. 죽음과 친숙해짐은 첫 주에 해부실에서 시작되었다. 종종 비인간화 과정이라고 일컬어지는 시체를 해부하는 실습은, 머리칼과 옷에 계속 따라다니는 냄새와 같이 살고, 우리가 해부학적 수준으로 축소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움과 함께, 많은 이들에게 충격적인 경험이다. 의학적 객관화의 세계로 인도하는 이런 사회화는, 죽음조차도 우리 탐구의 단지 또 다른 대상일 뿐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런 면밀한 관찰은 의학 교육의 모든 면에서 볼 수 있는 것이며, 죽은 이로부터 중증이나 경증 환자를 추론하는 것도 가능하게 한다. 고통의 전체적 연속은 과학적인 견지에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었고, 우리가 인간을 다룬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가장 특수한 형태로였다. 전문적인 학문의 대상으로서이다.

……………………
질병의 경험이 비인간화되고 있다. 환자의 자아의 손상에 대해 당면한 과제는 그 정체성의 완전한 감각을 회복시키는 것이다. 의료 과학자는 "질병으로서의 환자"에 만족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환자를 위해 애쓰는 의사는 고통받는 인간 전체로서의 환자의 모습에 무관심할 수 없다. 의료에서 인간관계의 분석은 환자를 "증례"로, 질병이 있는 실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런 질병을 경험하는 존재인 고통받는 인간으로 보는 관점에 기반해야 한다. 병을 앓음은 우리의 자아 자체에 변화를 일으키며, 자신의 몸에 대한 우리의 근본적인 관계도 변화된다. 아픈 사람은 손상으로 인해 자유를 잃는다. 환자가 회복을 위해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고 따라서 자신의 자유를 손실함은, 결과적으로 취약성을 증가시키고 자기 이미지의 약화를 불러오는 것이다. 우리는 첫번째 원칙으로 아픈 사람의 인간성을 인식하는 의료윤리를 채택해야 한다.

……………………
아버지가 들려주셨던 2차 대전 이야기들 중에서, 아버지를 가장 도덕적으로 고민하게 했던 상황은, 부다페스트의 유태인들이 아직 강제이송과 집단수용소의 공포에 휘말리기 조금 전에 아버지에게 이송된 어느 헝가리인 장교의 경우였다. 그 남자는 응급 수술이 필요했고 아버지는 수술을 성공적으로 시행하여 그 이교도의 생명을 구해주었다. 그 환자의 정치적 성향 면에서 볼 때 유태인을 괴롭히는 역할을 하리라는 것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지만, 아버지는 그 사람의 수술과 치료에 조금의 거리낌 없이 자신의 모든 의학적 능력을 발휘하셨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회복된 그 환자는 아버지의 동포들을 일제 검거하는 역할에 투입되었고, 개인적으로 몇 명의 유태인들을 살해했다. 그는 떠도는 헝가리 파시스트 집단을 이끌었는데, 그들이 하는 일은 죽음의 수용소를 향한 열차를 피해 남아 있던 불운한 유태인들을 잡아서 즉결심판으로 머리에 총알을 박아 다뉴브 강에 던져버리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자신의 입장의 아이러니에 고통을 받으셨고, 선택의 여지가 없었음을 설명하셨다. 자신의 환자를 최선을 다해 치료했지만 그것이 언제나 옳은 방향으로 결과하지는 않는다는 갈등에 아버지의 불안이 있었다. 나는 그저 듣고만 있었다.

……………………
응급 구조사들이 도착하여 응급 소생술을 실시했다. 그녀는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나중에 전화해보니, 그녀는 목이 부러지고 후두가 절단되어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이미 사망해 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21살의 음대생이었고, 옆자리에 탔던 변호사와 곧 결혼할 예정이었다. 그날 밤 나는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다가 니체의 영원회귀와 관련된 서두 부분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쿤데라는 다음과 같이 썼다. "영원회귀가 가장 무거운 짐이라면, 우리의 삶은 그 찬란한 가벼움 속에서 그에 대항할 수 있다." 쿤데라의 냉소가 나를 압도했다. 우리는 영원회귀를 믿지 않기 때문에, 책임은 우리를 빠져나간다. 세상의 모든 것은 미리 용서되며, 그러므로 모든 것이 냉소적으로 허용된다. 몇 달 후, 나는 이 사건에 대해 문의를 해보았다. 경찰에 이름을 적어주긴 했으나 그들은 나를 찾지 않았었다. 이 사건에 다시 궁금증이 일어나 문의를 해보았을 때쯤에는 벌써 판결이 끝난 후였다. 법원 직원은 다음과 같이 읽어주었다. "그 사건은 불법 좌회전과 음주운전에 의해 발생한 것입니다." 처벌은 미미했다. 관련된 모든 사람이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나도 그렇다.



♧ 저자 및 역자 소개

저자 알프레드 토버Alfred Tauber
현재 보스턴 의대 교수이자 철학 교수, 그리고 의사 직을 겸하고 있다. 존경받는 의사 집안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부터 규칙적으로 아버지의 왕진을 따라다녔고, 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맹장수술을 돕기도 하는 등 어릴 적부터 의사로서의 삶을 조금씩 준비해 왔다. 그는 하버드, 메이요 클리닉, 보스턴 시립병원 등에서 의사로서 일했고 동기생 중 가장 먼저 교수로 임명되는 등 엘리트 코스를 밟다 마흔 살에 어머니의 죽음을 맞고 철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저술한 다른 책으로는 『헨리 데이빗 소로우와 앎의 도덕적 측면』, 『다양성의 세대』(스캇 H. 폴도스키와 공저), 『면역학적 자아』등이 있다.

옮긴이 김숙진
1975년에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를 졸업하고 번역가로 활동중이다. 전공수업 강의실에서보다 철학동아리 방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대학생활을 했다. 번역한 책으로는 《21세기에 풀어야 할 과학의 의문 +21》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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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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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딸아이가 아팠다. 아픈 딸아이를 들쳐 업고 찾은 응급실에서 영락없이 밤을 새우면서 보니 익숙한 광경은 되풀이 되었다. &n...

    딸아이가 아팠다. 아픈 딸아이를 들쳐 업고 찾은 응급실에서 영락없이 밤을 새우면서 보니 익숙한 광경은 되풀이 되었다.

     

    응급실 문이 열리고 어떤 사람이 비틀거리면서 들어오면 뭔가 모자란 것 같은 의사가 맞이한다. 그이는 몇 마디 질문을 던지고는 자리를 잡아 준다. 환자는 침대에 털석 눕고, 보호자는 밖으로 뛰어나가 접수를 해야 한다. 접수하지 않으면 진찰이니 치료는 없다(이건 병원이 비인간적이어서가 아니라 환자의 이름이 전산망에 오르지 않으면 처방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환자와 보호자가 두리번거리며 몇 분을 기다리면 아까보다 훨씬 나은 것 같은 의사가 찾아와 또 몇 마디 물어본다. 간호사가 이어서 찾아와서는 피를 뽑고 '링겔'을 달아주고, 엑스레이 찍으라고 말해주고... 또 기다린다.

    문제는 이 기다림이 길어질 때가 많다는 것이다. 아무도 설명해 주지 않고 아무도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다. 지나가는 의사에게 말을 붙여봐야 설명해주는 사람은 없다.

    응급실에서 한 시간쯤 기다리다 보면 부아가 치밀기 시작한다. 슬쩍 간호사실에 가서 물어 본다. 선생님 언제 오시냐고. '기다리세요'

    아이는 아파서 끙끙대고, 이 지경이 되도록 내버려둔 죄책감에 안절부절 못할 판에 얄밉게 내뱉는 '기다리세요'는 좋은 핑계거리가 된다. '얼마나 기다렸는데 니가 이렇게 구느냐!'

     

    내 딸도 마찬가지. 도착하니 해열제부터 대뜸 놓구는 기다리란다. 응급실 당직은 한 시간이나 지나서 겨우 만났고, 그 다음 하는 말은 또 검사를 받아야 한단다. 아픈 아이에게 무슨 검사!

    검사를 받을 때까지 또 몇 시간이 가고, 그 검사를 해석하는데 또 몇십분이 가고, 다른 검사를 받을 때까지 기다리는데 또 몇 시간이 가고, 그 검사 결과를 또 몇 시간 기다리고...

     

    결국 옆 침상의 보호자는 언성을 높이고 병원을 박차고는 나갔다. 잠시 바람을 쐬고 돌아오는 길에 보니 엑스레이 촬영실에서는 보호자와 촬영기사가 삿대질을 하며 싸우고 있고 청원경찰이 둘 사이에 서있다. 하루에 한번은 있는 언짢은 상황. 무시당한 환자와 피곤한 의료진이 겪는 곤욕.

     

    -------------------------

    응급실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의 경우 처음 만나는 사이다. 응급실로 찾으면서 낯익은 의사를 만날 기대 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고(그래서 나도 소아과 후배에게 결국 청탁을 했다. 딸아이가 아프니 전화좀 해 달라고. 전화라도 해 주면 조금 친절하지 않겠냐고), 자기가 돌보는 환자를 응급실에서 만나고 싶은 의사도 없을 것이니까.

    응급실의 당직 의사들은 이 처음 만나는 환자를 책임져야 한다. 그에게 알맞은 진단을 붙이고 그를 돌볼 수 있는 좋은 '다른' 의사를 찾아서 연락해 주어야 하고, 그때까지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 그런데, 이 일은 쉽지 않다.

     

    돌봐야 할 환자는 줄줄이 들어온다. 호출한 외과 의사는 어딘가에 (수술실, 경우에 따라서는 숙직실 침상에) 숨어있고, 화가 난 보호자가 소리를 지르고 있다.

     

    의사들의 책임은 어디까지일까? 환자를 다른 의사에게 의뢰하는 것으로 의사의 책임은 다 하는가? 별로 대단하지 않은 병으로 찾은 환자에게 의사는 얼마나 친절해야 하는가(감기로 열이나서 '링겔이나 맞으러' 온 젊은 남자는 응급실에서 돌봐야 할까)?

    -------------------------------------------

    오늘날 의료윤리가 '자율성(autonomy)'를 무슨 주문처럼 읊조린다해도 의료윤리의 핵심은 의사의 책임에 있다. (사실 자율성에 대한 도덕적 교훈도 의사의 책임과 관련되고 있다. 자율성을 존중하라는 책임). 그러나 환자는 자율성을 요구할 수 없는 처지에 있다. 의사의 결정과 존재는 환자에게 얼마나 절대적인가.

    응급실을 찾은 내 선택이 올바른 것이었는지는 의사가 어떤 진단을 내리는지에 의해 알게 된다. 지금 아픈 이 아이를 입원 시켜서 낫게 할 지는 의사가 입원 여부를 어떻게 결정할지에 달려 있다. 내 판단과 내 아이의 병이 내 앞에 있는 내 10년 후배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의사들은 이 지위를 즐기지 않는 것 같다. 그렇지만 이 지위가 의사들이 휘두르는 무기가 된다. '보호자 분의 항의는 이유가 없는 것이라니까요!'라는 의사의 쌀쌀맞은 태도로. 물론 의사들은 자신에게 이런 지위가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래서 더 날카로운 무기.

     

    이 책은 의사의 책임에 관한 책이다. 환자와 의사의 입장에 좁힐 수 없는 간극이 있다는 점에서 책임은 더욱 무겁다. 그리고 이 책임은 온전히 의사의 것일수밖에 없다. 제도, 환자의 무지 그리고 상황이 책임 완수를 어렵게 하지만 그렇다고 그 책임이 되물려지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이 짐을 다할 것인가?

     

    저자는 이 문제를 레비나스의 관점에서 접근한다. 흔히 '타자 윤리학'이라고 부르는 레비나스는 우리가 타인의 생각과 존재에 대해 어떻게 안다고 말할 수 있는지 질문했다. 그리고 이 알 수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레비나스는 얼굴이라는 어휘를 사용했다), 타인이 우리의 책임이라고 말한다.

     

    환자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의사의 현실이다. 환자의 경험은 어떤 것으로 환원할 수 없다. 의학적 지식은 환자의 경험을 분류하려 하지만. 경험이 없는 의사들은 그 분류를 끝까지 밀어붙이고, 능숙한 의사는 그 차이를 반영할뿐이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영원한 타자일수밖에 없는, 환자를 자신의 입장에서 보지 말라고 요구한다. 당신, 당신의 의학지식과 환자는 도저히 동일시할 수 없는 것이라고. 그리니 당신 눈앞에 있는 환자를 유일무이한 존재로 보라고.

     

    물론 응급실의 어리숙한 인턴이나 일주일째 잠을 못자고 있는 일년차에게, 게다가 이들은 의학지식의 융단폭격을 받고 있는 중이니!, 이런 충고는 너무 고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충고해야 한다. 그리고 이들은 언제고 그 충고가 얼마나 절절한 충고인지 깨달을 것이다. 그리고 제대로 반응할 것이다. 물론 너무 늦지 않길 바랄 뿐이다.

    ----------------

    딸아이는 모두가 예상했던 대로(아무도 바라지는 않았지만) 뇌척수막염에 걸렸다. 입원 병동에 올라가 사흘 내내 칭얼댔고, 별로 해 줄 것이 없으니 집에 가서 돌보는 것이 낫다는 의학적 조언을 듣고 집에 왔다. 아직도 머리는 아프다지만 잘 놀고, 아마 사흘 쯤 후엔 뛰어 다닐 게다.

    그런데, 나는 이 아이가 얼마나 아픈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척수액 검사를 위해 뚫었던 척수막과 척추를 둘러싼 근육은 얼마나 아픈지 상상할 수도 없다. 이 아이를 보면서 그렇게 눈물을 흘리던 애 엄마의 심정은 아주 조금만 이해할 수 있을 뿐이다.

    병원의 레지던트들에게 내 딸 아이의 증상은 흔하디 흔한 meningitis의 증례에 불과했고, 엄마를 울게 했던 모든 증상 역시 교과서에서 볼 수 있는 별로 특이한 것도 아니었다. 주말을 앞두고 해 줄 것이 별로 없는 환자를 퇴원시키는 것은 효율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 역시 보호자로서는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저자의 지적은 이 차이를 극복하는 첫 단계에 관한 것이리라.

    너와 다르다. 의학지식과 다르다. 네가 마주한 이 환자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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