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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전 -책머리 작은 점얼룩외 깨끗/실사진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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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6쪽 | B6
ISBN-10 : 8971993359
ISBN-13 : 9788971993354
예수전 -책머리 작은 점얼룩외 깨끗/실사진 참고하세요 [양장] 중고
저자 김규항 | 출판사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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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4월 13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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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저렴하고 좋은 책 감사합니다.^^ 5점 만점에 5점 tayf*** 2020.01.15
115 책 외형은 깨끗하였고, 중고라서 감안 하는 부분이지만 몇몇 문구에 형광팬으로 줄이쳐져 있는게 조금 아쉽네요 ㅠ 5점 만점에 5점 rer*** 2020.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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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저렴한 가격에 빠른배송 감사합니다 5점 만점에 5점 pnin*** 2020.01.04

이 책의 시리즈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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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예수를 훔쳐내다! 'B급 좌파' 김규항의 『예수전』. 10여 년간 우리 '안'과 '밖'의 권력을 향해 날카롭고 신랄한 목소리를 높여온 저자가, 시대의 흐름에 따라 거대 권력 집단으로 변화해버린 한국교회 속에서 화석으로 변해버린 역사의 예수를 훔쳐내 민중의 언어로 되살려내고 있다. 예수로부터 오늘날 우리 삶과 사회를 변혁할 수 있는 힘을 끌어낸다.

이 책은 2,000여 년 전 로마의 압박 속에서 가난하고 고통스런 삶을 살았던 민중의 편에 서서 그들이 새로운 세계를 꿈꾸도록 인도한 예수를 통해 우리 시대의 진정한 '혁명'을 꿈꾸고 있다. 예수의 시대 속에서 우리 시대가 안고 있는 근본적 문제에 대한 놀라울 정도로 정확한 진단과 통찰을 발견해낸다.

저자는 우리가 아는 예수는 교리가 만들어낸 가짜일 뿐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지배자들이 자신의 권력을 유지시키기 위해 정치적으로 만들어낸 예수가 교리의 바탕이 되었으며, 그것이 오늘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아울러 예수를 인간으로 되살려낸다. 지배자들에 맞서 세상이 바뀔 것이라는 믿음을 끝까지 버리지 않고 하느님 나라 운동을 설천한 예수를 만날 수 있다. 나아가 예수를 인간으로서 온전히 이해한다면 근본적으로 새로운 세상이 가능하다는 꿈을 심어준다. 양장본.

저자소개

저자 : 김규항
1962년생. 전라도에서 태어나 직업군인 아버지를 따라 전국을 떠돌며 지역갈등이나 계급구조, 대중의 습속 따위 사회 문제에 대해 많은 정서적 자극을 받았다. 1980년대 초 한신대를 다니며 나름의 사회의식을 갖게 되었고, 예수를 만났다. 1990년대 초까지 서울영상집단과 민중문화운동연합에서 활동했다. 1998년 『씨네21』의 ‘유토피아 디스토피아’로 글쓰기를 시작했다. 일상의 체험에서 우러나온 소재와 얽히고설킨 현실의 본질을 꿰뚫는 직관, 그리고 비판과 성찰이 공존하는 그의 글은 꾸준히 독자들의 공감을 사 왔다.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문장은 글의 내용과 별개로 읽는 이에게 깊은 인상을 준다. 그의 글이 비타협적으로 느껴지는 건, 그가 정직하게 일하면서도 인간적 위엄을 유지하기 힘든 사람들 편에서만 글을 쓰기 때문이다.
2000년 홍세화 진중권 들과 함께 극우 집단주의와 싸우는 사회문화 비평지 『아웃사이더』를 만들어 편집주간을 지냈고, 2003년엔 사람이 아니라 상품으로 키워지는 한국 아이들을 응원하는 어린이 교양지 『고래가 그랬어』를 만들어 발행인을 맡고 있다. 지은 책으로 『B급 좌파』와 『나는 왜 불온한가』 등이 있다. 아이들과 이야기하기, 자전거, 타악기 연주를 좋아한다. 교리 속에 화석화된 예수를 되살려 내고, 그로부터 오늘날 우리의 삶과 사회를 변혁할 수 있는 힘을 끌어내고자 하는 이 책은 그가 오래전부터 가장 힘써 고민해 온 내용을 담고 있다. 그는 이 책이 수많은 ‘나의 예수전’으로 거듭나길 소망한다.

목차

머리말
제1장
제2장
제3장
제4장
제5장
제6장
제7장
제8장
제9장
제10장
제11장
제12장
제13장
제14장
제15장
제16장

책 속으로

출판사 서평

‘역사의 예수’ 담론은 예수가 더 이상 교회의 전유물이 아님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그것은 소수의 성서 전문가들의 비밀 영역이었고, 점차 교회의 영향권 안으로 포섭되었다. 신학자도 성직자도 아닌 김규항 선생의 『예수전』은 예수가 더 이상 교회와 소수...

[출판사서평 더 보기]

‘역사의 예수’ 담론은 예수가 더 이상 교회의 전유물이 아님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그것은 소수의 성서 전문가들의 비밀 영역이었고, 점차 교회의 영향권 안으로 포섭되었다.
신학자도 성직자도 아닌 김규항 선생의 『예수전』은 예수가 더 이상 교회와 소수 성서 연구자들의 독점물이 아님을 보여 주었다. 그는 소위 성직자와 성서 전문가만의 비밀 영역이던 ‘역사의 예수’를 훔쳐 내 자기 자신과 대중에게 돌려준다. 그의 빼어난 통찰력과 필력으로.
그는 ‘지금 여기’에서의 우리의 삶을 성찰하고 예수를 이 성찰의 자리로 초대한다. 이 자리에서 예수는 우리를 배우고 우리는 예수를 배운다. 그의 『예수전』은 이렇게 예수와 우리 사이의 대화를, ‘지금 여기’라는 삶의 현장에서의 대화를 중계한다.
―김진호(제3세계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


● 왜 지금 예수인가 ― 김규항, 예수의 삶을 다시 읽다

제도권 글쓰기를 시작한 이후 10여 년을 한결같이 우리 안팎의 권력을 향해 날 선 비판을 해 온 ‘B급 좌파’ 김규항. 그가 오랜 시간 준비해 온 『예수전』을 펴냈다.(이 책은 칼럼집이 아니라 저자가 본격적인 단행본으로 집필한 최초의 책이기도 하다.) 그의 엄격한(?) 시사 칼럼들만 보아온 독자들이라면 조금은 낯설 수 있는 소재다. 요즘 같은 시국에 한가로이 ‘예수’ 타령이라니. 정치사회적 혁명의 전망이 그 어느 때보다 아득해진 지금, 그도 별수 없이 내면의 수양이나 하기로 변심한 것일까.
그러나 이 책은 기독교인만을 위한 책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 진정한 ‘혁명’을 꿈꾸는 사람들모두를 위한 것이다. 이 새로운 혁명은 사회구조적 변화뿐 아니라 나 자신의 마음을 바꾸는 것을 포함한다. 김규항은 예수에게서 그 단초를 찾아보자고 제안한다. 2,000년 전 팔레스타인 인민들의 편에 서서 새로운 세계를 꿈꾸게 했던 그 청년 말이다.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는 ‘새로운 세상의 꿈’과 함께 찾아왔다. 개항기에 서학은 ‘새로운 세상’을를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평등’과 ‘자유’의 이념을 무섭게 전염시켰다. 1970~80년대에는 이러한 흐름이 남미 해방신학의 영향을 받은 서남동, 안병무 등의 민중신학론을 통해 지배적인 신학으로 유통된 바 있다. 한국 민주화운동의 역사에 기독교가 막대한 영향을 끼쳤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한국 교회는 이후 친미, 반공, 배타적 민족주의, 가부장주의 등을 기반으로 성장하여 보수화했고 신도 수 1천만 명이 넘는 거대 권력으로 변신했다. 실제로 그들은 사회 여론을 형성하고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막대한 자본과 기득권으로 언론의 감시와 비판마저 무력화하는 교회는 우리 시대의 새로운 ‘성역’인 셈이다.
이 책은 권력 집단으로 전락해 버린 한국 교회에서 ‘예수’를 구해내려는 시도이며, 나와 세계를 바꾸기 위한 새로운 동력을 찾아내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저자의 안내를 따라 예수의 시대를 읽어 나가다 보면, 우리 시대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정확한 진단과 통찰을 발견할 수 있다.


● 예수, 잔치를 열어 혁명을 하는 사람

이 책의 중심이 되는 문제의식은 ‘과연 예수는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이다. 저자는 오늘날 우리가 아는 예수는 교리의 주인공, 교리가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라고 단언한다. 지배계급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정치적으로 만들어 낸 예수가 기독교 교리의 뼈대가 되었고 오늘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예수는 갈릴래아 나자렛 사람이라고 저자는 힘주어 말한다. 갈릴래아 사람들은 가난했다. 지배계급과 로마의 압제 속에서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다. 예수가 갈릴래아 사람이라는 것은 그가 고통받는 인민들과 함께하는 메시아로 예고된 사람이라는 뜻이다.

“오늘날 대개의 사람들은 예수가 정말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떻게 활동했으며 무엇을 꿈꾸었는지 왜 죽임을 당했는지 따위는 모조리 생략한 채, 그를 단지 교리의 주인공으로만 기억한다. 정말 예수는 단지 교리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그 고단한 삶을 살았단 말인가? 이성으로든 신앙으로든, 예수를 ‘갈릴래아에서 온 사람’으로 보느냐 ‘교리 속에서 온 사람’으로 보느냐 하는 것은 예수의 정체성을 선택하는 결정적인 지표가 된다.”

이 책은 예수를 교리로 덧칠되지 않은 구체적인 인간으로 되살려 낸다. 예수는 고통받는 모든 사람을 아파하고 그들을 고통에 빠뜨린 지배계급과 사회체제에 불같이 분노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모든 권위와 허위와 위선을 깨부수려 했다. 로마와 그에 결탁한 세력이 멋대로 독점한 성전의 권위를 대놓고 무시했다. 성전은 이미 그 신성한 의미를 잃은 지배세력의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예수는 말했다. 하느님은 인민의 삶 속에서 인민과 직접 만나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는 분이라고.
예수는 심지어 로마 세금 징수업자 밑에서 일하며 온 인민의 미움을 샀던 세리를 제자로 삼기까지 했다. 예수는 세리를 로마의 앞잡이가 아니라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 일을 하는 인민으로 보았다. 예수는 그런 행동을 통해 지배세력의 위선을 비판한 것이었다. 예수는 가진 자들이 하느님의 명령이라는 이름으로 강제하는 율법 또한 부정했다. 가난에 신음하는 인민들에게 율법이란 도저히 지킬 수 없는 강제 조항들이었기 때문이다.
예수는 거리낌 없이 세리들, 죄인들과 어울려 시끌벅적하고 유쾌한 식사를 했다. 그의 식사는 파격이었다. 하지만 예수의 그런 천박한 식탁에서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인민들은 비로소 ‘인권’을 되찾았다. 예수는 경건한 사람들의 양식이었던 단식 또한 거부했다. 예수의 별명은 “먹보요 술꾼이며 세관들과 죄인들의 친구”였다. 그는 하느님 나라의 주인공은 바로 사회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고통에 신음하는 이웃들이라고 믿었고, 그들과 함께 잔치를 여는 것이 하느님 나라의 운동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 예수가 꿈꾼 나라 ― 자본주의를 넘어서야 가능한 ‘이웃 사랑’

예수는 세상이 바뀔 거라는 믿음을 버리지 끝까지 버리지 않았다. 지배계급이 예수를 적대시하고 끝내 죽일 수밖에 없었던 본질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은 세상이 바뀌는 것을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가 바리사이인들을 비난했던 이유는 하느님 나라 운동을 가장 교묘하게 반대했던 세력이 바로 그들이었기 때문이다. 바리사이인들은 지금으로 말하면 ‘양심과 양식을 갖춘 시민사회 세력’이다. 학식과 경제력에 사회의식까지 갖춘 사람들인 것이다. 그런데 왜 예수는 그들을 꺼려했을까? 그것은 그들이 입으로는 변혁과 진보를 외치지만 속으로는 누구보다 변혁과 진보를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언제나 현실이 변화되어야 한다고 말하며 스스로 그런 변화를 위한 노력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그 노력은 대개 현실의 근본적인 변화가 아니라 현실의 외피를 덜 추악하게 만드는 일에 머문다. 그들은 오히려 현실의 근본적인 변화를 좇는 모든 노력들을 ‘비현실적’이라고 냉소한다. 그들은 ‘NGO’, ‘시민운동’, ‘개혁 운동’, 그리고 ‘실현 가능한 진보’, ‘최소한의 상식의 회복’ 따위 간판과 표어를 걸고 활동한다. 인민들은 탐욕스럽고 불의한 지배세력을 혐오하지만 양식과 윤리로 무장한 그들을 신뢰하고 존경한다. 그래서 그들, 오늘의 바리사이인들은 사회적으로 강력한 영향력과 설득력을 가지며, ‘진정한 변화를 막기 위한 변화’라는 그들 본연의 임무를 지속하게 된다.”

저자에 따르면 오늘의 바리사이인들은 자본주의의 모순과 병폐를 가장 잘 알면서도 그 체제가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들이다.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탐욕과 이기심으로 점철된 보수 기득권 세력이 아니라 오히려 자본주의의 비인간성을 끊임없이 지적함으로써 대중들로부터 양식을 가진 지식인으로 통하는 사람들에 의해 견고하게 유지된다.
예수는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 나가는 것이 더 쉽다’고 했다. 저자는 이 말이 ‘부자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이라 단정한다. 설령 정당한 방법과 노력으로 얻은 부라 하더라도 하느님 나라의 기준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부끄러운 것이라는 뜻이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고 ‘무소유’를 명했다. 영적 자유를 위한 “무소유의 추구는 하느님 나라의 사회구조를 이루는 근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 사회의 빈곤이나 기아가 대개 식량이나 재화가 모자라서 생겼다기보다는 고르고 정당하지 못한 분배의 결과라는 것을 안다. 힘을 가진 소수가 지나치게 많이 갖고 많이 먹기 때문에 힘없는 다수가 모자라고 배고픈 것이다. 그래서 무소유의 추구, 자발적 가난의 추구는 하느님 나라의 가장 기본적인 태도다. 내가 덜 가지려 할 때 나보다 가난한 사람이 조금이라도 더 갖게 된다는 것, 그래서 결국 모두 고르게 갖게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가진 사람은 오로지 가난한 사람, 즉 이미 가난하거나 자발적 가난을 실천하는 사람뿐이다.”

기득권과 자본의 힘으로 예수를 팔아 더 큰 권력과 자본을 챙기고 있는 오늘날 보수 개신교 교회의 모습은 그래서 예수의 사상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시민들의 수도를 자기 소유인 양 하느님께 통째로 봉헌하겠다는 한 정치인의 언행은 오늘날 교회가 예수 사상의 본질을 얼마나 왜곡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었다.
예수의 기본 정신은 ‘이웃 사랑’이다. 저자는 자본주의에 종속되어 살아가면서 예수의 정신을 본받겠다고 하는 것은 그러므로 모순이라고 말한다. 예수가 자본주의와 공존할 수 없는 이유는 자본주의가 가진 자들만을 위한 ‘악의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구조 안에서 예수가 말한 ‘나눔’의 사상은 구현이 불가능하다.

“자본주의는 예수의 이웃 사랑과 적대적인 사회체제이며, 그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서려는 사회주의 기본 정신이 예수의 이웃 사랑에 닿아 있다는 건 분명하다. 예수의 이웃 사랑은 ‘사회주의를 반대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를 넘어서는 어떤 것’이다. 진정한 기독교인은 ‘선량한 자본주의가’가 아니라 ‘특별한 사회주의자’인 것이다.”


● 오병이어와 치유 이적의 진정한 의미

예수가 행한 무수한 이적들은 과연 실재했던 일일까? 예수의 이적이야말로 메시아로서 예수와 기독교의 위대성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과 그 비과학성이야말로 기독교의 치명적 약점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서로 치고받는다. 하지만 저자는 그런 주장들이 모두 부질없다고 일갈한다.

“그 이적이 과학적 사실이라는 걸 입증한다고 해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만일 예수가 물 위를 걸은 게 사실임을 입증하면 모든 사람이 예수를 존경하고 신앙하게 되는가? 우리는 예수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마술사’라서 존경하고 신앙하는 게 아니다. 그 이적에 가르침과 깨달음이 담겨 있지 않다면, 그 이적이 우리의 삶에 변화와 감동을 줄 수 없다면 아무리 놀랍고 신비스러운 이적이라 해도 단지 구경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병든 사람을 어루만지는 행위로써 고치는 이른바 치유 이적. 예수는 복음을 설파한 공생애 기간 동안 수많은 치유 이적을 행하였다. 하지만 당시엔 랍비들을 포함해 예수 말고도 치유 이적을 행하여 명성을 얻은 사람들은 많았다. 예수가 그들과 다른 점은 모든 이적들 앞에서 철저하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데 있다. 그는 단 한 번도 자기가 병을 고쳤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저 ‘당신의 믿음이 당신을 구원했다’고 할 뿐이었다. 치유 이적의 속뜻은 이렇다.

“예수의 치유 이적에서 치유란 물론 병을 고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하게는 인민들과 하느님의 관계를 치유하는 것이다. 치유 이적은 인민들과 하느님의 관계를 치유하는 것이다. 치유 이적은 인민들과 하느님의 관계를 파괴하고 왜곡한 위선의 체제를 무너트리는 사건, 즉 인민들과 하느님의 관계를 회복함으로써 하느님이 그들의 편이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사건이다. 다시 말해서, 치유 이적은 그 자체로 하느님 나라의 편린이다.”

예수가 빵 다섯 개와 두 마리 물고기로 5,000명이 넘는 장정들을 배불리 먹였다는 ‘오병이어’ 이적은 예수의 모든 이적 가운데 부활과 더불어 가장 널리 회자된다. 사람들은 이 이적 앞에서도 과학적이냐 아니냐를 놓고 왈가왈부한다. 그것은 이적의 본질은 외면한 채 현상만을 놓고 떠드는 소리들일 뿐이다. ‘오병이어’ 이적은 우리에게 진정한 ‘나눔’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는 대개 나눔을 나와 내 식구가 배불리 먹고 남는 걸로 불쌍한 사람을 돕는 적선이나 자선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불쌍한 사람을 돕기 위해선 먼저 내가 부자가 되어야 한다는 이상한 논리가 횡행한다. (…) 물론 당장의 적선이나 자선이 금세 굶어 죽을 사람을 살리거나 구할 수 있다. 그러나 그건 긴급한 조처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는 걸 우리는 정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그가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 말하자면 나눔은 세상을 ‘나눔의 체제’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또 그런 변화를 위한 실천이며 행동이다. 그리고 그런 나눔의 원리로 작동되는 세상이 바로 하느님 나라다. 예수는 그 사실을 ‘오병이어의 이적’이라는 장엄하고 서정적인 광경으로 보여 준다.”

예수는 자신의 이적을 통해 사람들이 이적 자체가 아니라 그 속에 담긴 “믿음과 소통”을 이해하기 되길 바랐다. 하느님은 가진 자들의 편이 아니라 억압받고 무시당하는 바로 자신들의 편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를 간절히 원했던 것이다. 그것이 예수의 수많은 이적이 담고 있는 속뜻이다.


● 부활의 진정한 의미 ― 새로운 세상이 가능하다는 믿음

부활은 ‘인간’ 예수의 행적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이다. 과학적으로,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에 저자는 예수의 부활이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 사건이라고 말한다. 예수를 떠났던 제자들이 어느 순간부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의 사상을 전하기 시작한 것이 그 가장 극적인 증거라고 한다.

“우리는 예수의 제자들이 그랬듯, 내 삶 속에서 예수가 부활하게 함으로써 영원한 목숨을 얻을 수 있다. (…) 남보다 많이 가진 것을 자랑스러워하던 사람이 이 순간 그런 삶을 부끄럽게 여기고 자발적 가난을 선택한다면 예수가 그 안에서 부활한 것이다. 권력을 얻은 후에 낮고 약한 사람들 편에 서겠다던 사람이 이 순간 스스로 권력을 잃어 낮고 약한 사람들을 섬기는 삶을 살기 시작한다면 예수가 그 안에서 부활한 것이다. ‘옳다는 건 알지만 현실이’,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좀더 경제적 안정을 얻고 나서’라고 되뇌며 제 삶의 틀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던 사람이 이 순간 고통스러운 삶의 현장으로 새처럼 훌쩍 날아오른다면 예수가 그 안에서 부활한 것이다.”

예수는 못 배우고 가진 것 없어 고통받는 인민들과 평생 함께한 사람이었다. 예수가 그들에게 보여준 것은 잘못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행동하는 삶이었다. 예수는 부활을 통해 그들이 하느님 나라의 구현을 위해 스스로를 변화시킬 것을 당부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예수의 부활이 무엇을 말하는지 정확히 이해해야 하는 이유는 예수가 말하는 ‘믿음’이 신앙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느님의 의지와 행동에 거리낌 없이 참여하는 것”, 즉 “근본적으로 새로운 세상이 가능하다는 꿈”을 가리키는 말이다.

“꿈을 잃은 사람에게 아무런 희망이 없듯, 이상주의가 사라진 세상, 모든 사람이 불가능한 것에 대해 꿈꾸길 중단하고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해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는 세상엔 아무런 희망이 없다. (…) 예수는 우리에게, 현실에 대한 비평에는 능하지만 새로운 세상의 창조에는 한없이 무력한, 여전히 좌파를 자처하면서도 새로운 세상에 대한 신념과 벅찬 희망이 아니라 지독한 우울과 무력감의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에게 당부하고 또 당부한다. ‘하느님이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일에 당신이 함께하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믿음을 가지세요.’”

2,000년 전의 예수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믿음’을 가지라고 간절히 말한다. 고단했던 사내 예수의 삶을 한 줄 한 줄 읽어 나가며 이 책의 저자가 독자에게 전하려 하는 말도 아마 같을 것이다. “근본적으로 새로운 세상이 가능하다는 꿈”을 꾸자는 것. 그리고 그것이 바로 예수라는 인간을 온전히 이해하는 일이라는 것. 좀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와 함께 “먹고 마시며” 믿음을 갖게 되기를 저자는 꿈꾼다. ‘역사적 예수’ 연구의 개척자이기도 했던 슈바이처 박사는 “예수전을 쓰는 것처럼 그 사람의 참된 자신을 드러내는 방법은 없다”는 말을 남겼다. 저자 또한 이 책의 독자들이 각자 「마르코복음」을 다시 읽으며 저마다 ‘나의 예수전’을 써 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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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

  • 박순석 님 2009.11.03

    목숨이란, 살아 있다는 것이란 진정 무엇인가?

회원리뷰

  • 예수는 나사렛 사람으로,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이다. 그는 2005년 전 베들레헴에서 태어나, 서른에 광야로 나와 말씀을 전하다...
    예수는 나사렛 사람으로,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이다. 그는 2005년 전 베들레헴에서 태어나, 서른에 광야로 나와 말씀을 전하다, 서른셋에 십자가 위에서 죽었다. 그는 메시아인가? 적어도 유대 민족에게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내게도, 예수는 메시아가 아니다.

      내게 있어서 예수는 '기쁜 소식[福音]을 전하는 자'이다. 그가 전하는 기쁜 소식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하나님의 나라를 지금의 기독교인들이 믿듯이 내세에 세우지는 않았다. 예수는 그가 살아가던 2000년 전 세상의 땅 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려 했다. 그가 믿었던 하나님의 나라란 어떤 것인가.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형제자매로 살아가는 나라이다. 아이들이 사자들과 뛰놀고, 독사굴에 손 넣고 장난쳐도 물지 않는 나라(사자와 독사굴은 인간 세상에 대한 명백한 비유다). 예수는 그가 믿는 하나님의 나라를 말씀으로 전하고 몸으로 실천했다. 그리고 그 말씀과 실천 덕택에, 그는 서른셋에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

      니체는 <반그리스도>에서 예수를 한 사람의 데카당으로 보았다. 니체에게 있어 데카당이란 '사회의 질서에 反하는 자신의 신념을 위해 죽음을 택하는 자'이다. 헬레니즘의 질서에 반하는 데카당으로 그리스 민족에게 소크라테스가 있듯이, 헤브라이즘의 질서에 반하는 데카당으로 유대 민족에게는 예수가 있다. 예수는 금기와 허위로 가득 찬 유대교의 교리를 반대했다. 그가 믿었던 하나님의 나라는 교리를 넘어선 곳에 있었다.

      예수를 십자가에서 끌어내리고 그의 머리 뒤에 걸린 휘황한 후광을 벗겨내고 보면, 그는 한 사람의 초라한 나사렛 청년에 불과하다. 광야로 나오기 전까지 그는 목수였다. 예수는 그 초라한 청년의 모습으로 세상에 나와, 그 모습을 통해 말씀을 전하고, 그 모습 그대로 십자가에서 죽었다.

      예수는 우리를 저 머나먼 천국으로 인도하는 목자가 아니다. 그리고 인간은 예수를 통해 죄를 회개해야만 하는 죄인들이 아니다. 나는 집을 떠나왔을지는 모르나 탕아가 아니고, 길을 잃었을지는 모르나 어린양이 아니다. 나는 내 어깨 위에 놓인 수고로운 짐을 예수에게 부려놓기 위해 그를 만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내가 믿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지표이자 동반자로서 예수를 만나려 한다. 그렇다면 지표로서의 예수, 신앙의 대상인 절대자가 아닌 동반자로서의 예수가 내게 지니는 의미는 무엇인가?

     

      기독교인이 아닌 나에게 예수가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타인에 대한 사랑이다. 예수는 사랑이 필요하나 사랑받지 못했던 사람들을 사랑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 사람들을 사랑받지 못하게 만드는 모든 것들과 싸웠다. 예수의 사랑은 대상 없는 공허한 추상적 관념이 아니다. 그는 인류 전체를 긍휼히 여기는 위대한 구원자가 아니었다. 예수는 그가 살던 세상에서 사랑받을 가치가 없다고 여겨지던 사람들만을 사랑했고, 존중받을 가치가 없다고 여겨지던 사람들만을 존중했다. 예수의 분노는 언제나 그가 행하고자 했던 사랑과 존중을 불가능하게 하는 것들에게로만 향했다.

      '진보'란 보다 나은 세상을 향한 변혁이다. 진보를 바라는 자는 그가 몸담고 있는 세상이 왜, 그리고 어떻게 잘못되어 있는가를 반드시 알아야만 한다. 내가 살아가는 21세기의 세상은 전지구적 자본주의 사회다. 자본주의가 우리에게 약속하는 것은 개인의 욕망을 무제한으로 실현할 수 있는 자유다. 이 자유의 실현을 위해 자본주의는 인간의 모든 가치를 교환가치로 바꾼다. 결국 자본주의 사회의 자유란 모든 것을 돈으로 살 수 있는 가능성에 다름 아니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이기심에 삼투하는 방식으로 확산된다. 자신의 욕망을 최대한으로 실현하는 것이 최선의 가치라고 가르쳐지는 사회. 자본주의적 자유는 평등과는 이율배반의 적대관계에 있다. 자본주의 사회는, 그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네 욕망을 실현할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평등을 헌신짝처럼 버려라'라고 속삭이는 사회다. 그러나 한 사회가 구현할 수 있는 행복의 최대치란 그 사회의 물적 토대의 최대치에 비례한다. 누군가가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덜 행복해지거나, 심지어는 더 불행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인류의 이상향은 사회적 공동체 속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공동체만이 '인간다움'이 발현하는 유일한 장소이기 때문이다(이것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명제의 眞意다). 인간이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타인에 대한 배려가 필수적이다.  예수가 이러한 배려의 밑바탕에 두었던 것이 바로 타인에 대한 사랑이었다고 나는 믿는다. 또한 예수가 믿고 바라던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의 땅에서 인간의 손으로 이룬 공동체적 이상향이라고 나는 믿는다. 근대의 모든 이념은 인간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했으나,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까지 발전하지는 못하였다. 인간의 공동체적 이상향을 위한 정신적 토대로서의 타인에 대한 사랑. 이것이 기독교를 버린 지금까지도 내게 여전히 영향을 미치는 예수의 의미이다.

  • 한 인물이 떠났다....

    한 인물이 떠났다.

    떠나고 나서 본 그이는 우리가 알던 이가 아니었다.

    떠난 이에게 드리는 메마른 헌사로서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를 보내고 나서야 그를 얻었다.

    화해와 용서를 말한 그는 떠났고

    분열된 세상을 통합해내야 할 우리는 남았다.

     

    2000년 전에도 사랑과 용서를 말하고 떠난 이가 있었다.

    그는 살아 있는 동안 고향에서 대접 받지 못했고

    적이 아닌 동족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

    그러나 그가 펼치려 했던 하늘의 뜻은 멸하지 않아

    땅과 인종의 경계를 넘어 세상 밖으로 널리 퍼졌다.

     

    저자는 『마르코복음(The Gospel According to Mark)』을 읽은 것에 대해

    예수의 말과 행적을 담은 네 개의 복음서 가운데

    쓰여진 시기가 가장 이르고 종교적 첨가가 적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책에 쓰인 저자 자신의 견해보다는 그런 견해가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

    다시 말해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이의 모습을 함께 봐줄 것을 당부했다.

     

    *****

    우울한 현실 속에서도 자신을 함부로 부리지 않고 '이건 아닌데' 라고 되뇌며 조용히 실마리를 모색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책은 바로 그들을 위한 것이다. 예수가 그들에게 실마리를 제공할 것이다. 예수는 우리에게 올바로 살기 위해 고통과 헌신을 감수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삶을 즐기라고 더 많이 행복하라고 말한다.

    - 「머리말」중에서, 10~11

     

    책을 다 읽고 나서 처음으로 돌아가 머리말을 다시 읽었다.

    그러고 보니 변화가 무쌍하다는 세상은 변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인간과 짐승을 확연히 구분 짓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해야 할 정도로

    세상에 늘어가는 것은 짐승의 원초적 욕망을 닮아가는 사람들이었다.

     

    2000년 전, 예수를 울린 그 땅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벌어졌다.

    예수가 로마를 미워했을 것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

    그러나 예수가 참회하라고 힐책하고 저주한 것은 예루살렘 사람들,

    성전 주변에서 하늘의 뜻을 어기고 살아가는 자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끝내 예수를 버리고 예수를 죽였다.

    "호산나!" 라는 환영의 소리를 듣고도 그들은 "죽여라!" 라고 소리쳤다.

     

    그들은 하늘의 뜻을 말하던 이들이었다.

    하늘의 뜻에 따라 살아야 한다고 말하던 이들이었다.

    그러나 실은 그들은 하늘의 뜻에 따라 사는 이들이 아니었다.

    하늘의 뜻을 팔아 기득권을 지키고

    욕망을 채울 수 있다면 이웃도 민족도 아랑곳하지 않는 이들이었다.

    그곳에 하늘의 뜻은 그곳에 없었다.

     

    하늘의 뜻이 오해되기는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하늘의 뜻이 시퍼렇게 살아있고

    그 하늘의 뜻을 전하는 소리들도 쟁쟁하건만

    하늘의 뜻은 이 땅에서 임할 곳을 못 찾고 헤매고 있다.

     

    *****

    사람 밖에서 사람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도리어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 7 15, 119

     

    저자가 말하는 것은 2000년 전에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일들이지만

    기실은 하나하나 오늘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다름 아니다.

    선지자 예수가 걸어간 길과 쉬었던 곳은 먼지 이는 사막이었고 바람 찬 광야였다.

    '의인들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들을 부르러 왔다' 고 한 예수의 마음은

    힘 있고 가진 것 많고 걱정 없는 사람들에게 있지 않았다.

    그의 마음은 헐벗고 가난하고 지쳐있는 사람들의 곁에 있었다.

     

    저자가 예수의 말로 비판하는 오늘날의 바리사이인들은 '완고한 마음'을 가진 이들이다.

    그 '완고한 마음'으로 사회의 변화를 가로막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적대적이되 체제를 흔들 생각까지는 하지 않는 거짓 얼굴을 가진 자들이고

    마몬을 비판하면서 마몬에 취해있기를 한사코 거부하지 못하는 두 얼굴의 사람들이다.

     

    수 혼자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

    예수가 전하는 하늘의 뜻만으로도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오직 한 가지,

    하늘의 뜻을 제대로 받아들이고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뿐이다.

    그러니 가야 할 길은 아직도 한참 남았다. 

     

  • 처음 이 책을 광고매체를 통해 접했을 때는 좀 부정적인 시각이 많았다. 인문학으로 분류되어야 하는 것이 종교 코너에도 와있고 ...

    처음 이 책을 광고매체를 통해 접했을 때는 좀 부정적인 시각이 많았다. 인문학으로 분류되어야 하는 것이 종교 코너에도 와있고 어떤 서점에서는 인문학 코너에도 보이는 현상 때문이었다. 과거 도올 김용옥선생님의 사해사본에 관련된 책(제목이 갑자기 기억이 안나네..ㅋㅋ)을 읽으면서 앞으로 성경이나 예수님에 관련된 생애를 인문학적인 접근으로 설명하거나 주장한 책을 읽는 것이 별로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끌리는 호기심에는 어쩔 수 없어 (인간의 호기심이란 정말 무섭다. 불꽃을 향해 달려드는 나방 같지 않은가?) 퇴근길에 매장에 들러 생각보다는 조금 작은 책을 구입하게 되었다.

    이 책은 진보성향의 사회학자? 김규항선생님이 카톨릭에서 주로 읽을 수 있는 마르코복음(신약성서의 마가복음)을 본문으로 기재하고 거기에 너무(too) 긴 주석을 달아 예수 그리스도의 당시 생각을 엿보아 우리에게 전해 주는 느낌이 드는 책이다.

    책의 서문을 보면서 이 책이 전형적인 기독교적인 사고관을 가지고 쓰여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약간은 비판적인 태도로 처음부터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더욱이 표지 서문 끝나고 바로 이어지는 장에 이스라엘과 요르단 서안으로 이어지는 지도를 그리고 있다는 점은 이전의 기독교를 주제로한 인문학 서적을 보는 듯 했다.

    하지만, 1장부터 시작되는 마르코복음을 해석하고 음미하는 저자의 눈길과 태도를 보면서 나의 비판성향을 점점 글에 대한 몰입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먼저 저자는 마르코복음에서 나오는 갖가지 이적과 설명 불가능한 현상이 정말 역사적인 사실인가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완전히 배제하고 그 사건이 가지는 의미에 주목하여 당시 예수그리스도가 느꼈을 생각과 태도에 집중하고 있다.

    당시 이스라엘을 통치하던 로마와 바리새인, 사두개인, 그리고 전통과 지배세력에 모두 억압된 삶을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갈릴리 사람들의 느낌을 전하면서 예수님이 왜 갈릴리사람으로 어린시절을 보내야 했으며 열두 제자의 의미와 그 시대의 사회가치관들을 적절히 설명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물론 이러한 설명이 당시 상황에 대한 설명을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자본주의의 양극화와 물질만능주의의 탐욕적인 세태를 꼬집고 더불어 사회주의가 붕괴한 원인과 한계,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의 의미를 통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비판적으로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일타 이피다. ㅋㅋ)

    더불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가 인간적인 관점과 생각으로 범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내 안의 것이 새로워지지 않는다면 결코 세상 속에서 이루기 어려운 것임을 알게 해준다. 당시 예수님도 이전 것을, 특히 지배세력과 당시의 가치관을 완전히 뛰어넘기를 원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의 이기주의와 대적해야 하는 입장이 될 수 밖에 없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비록 카톨릭 성서이기는 하지만 마르코복음을 완독하면서 예수 그리스도 당시의 상황에서 태도와 행적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길 수 있었고, 그 분의 인간적인 고뇌와 그 안에서도 성취하려는 목적을 위해 나아가는 모습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이 물론 나에게 백퍼센트 완전히 공감을 형성하고 있지는 않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이 책을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의 비판보다는 책을 읽으면서 몰입한 감동과 느낌이 훨씬 더 커졌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중에 꼭 다시 한번 내 서가에서 꺼내 읽어볼 만한 책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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