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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현대사 산책.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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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규격外
ISBN-10 : 8959064246
ISBN-13 : 9788959064243
북한 현대사 산책. 2 중고
저자 안문석 | 출판사 인물과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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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3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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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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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보는 북한 현대사의 모든 것! 남북의 역사는 대결의 역사가 주를 이루어 왔다. 그런 대결의 역사가 실제로 시작된 것은 정부 수립 훨씬 이전인 1945년이다. 해방의 해에 벌써 대결이 시작되었다. 처음엔 남북을 각각 점령한 미국과 소련이, 그 이후에는 남한과 북한이 서로 확연히 다른 길을 가게 되었다. 이념적으로 완전히 다른 당을 세워나가고, 찬탁과 반탁으로 나뉘면서 대결의 길을 가게 된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1945년이 이후 한반도의 상황을 대부분 규정해버렸다.

『북한 현대사 산책』은 안문석 교수가 원고지 5,500매 분량으로 집필한 책으로, 북한 현대사를 사건과 사실, 기록을 바탕으로 생생하게 펼친다. 북한의 대표적인 역사서인 《조선통사》, 《조선전사》 등과 《김일성 선집》, 《김일성 저작 선집》, 《인민의 지도자》, 《김정일 위인상》 등 북한 자료의 진위를 정밀하게 파악하며 통찰력 있게 북한 현대사를 분석하고, 남한의 학자들의 논문과 단행본, 조선인민군의 수기를 통해 균형 잡힌 시각과 안목으로 왜곡되고 잘못된 사실들을 바로잡았다.

저자소개

저자 : 안문석
저자 안문석은 1965년 전라북도 진안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고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1993년 KBS 기자로 입사해 사회부, 통일부, 국제부, 정치부 등을 거쳤고 정치부 외교안보데스크로 외교·안보·북한 문제를 총괄했다. KBS 재직 중 영국으로 유학해 요크대학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워릭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반도 문제와 관련된 일을 하다가 공부의 필요성을 느꼈고 공부하다가 재미가 붙어 박사학위까지 받게 된 것이다.
한반도 문제와 국제정치를 깊이 파고 싶은 생각으로 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2012년부터 전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국제정치를 가르치고 있다. 동북아시아의 국제질서가 주요 관심사이고, 그 연장선상에서 북한을 포함한 동북아시아 주요 국가들의 외교정책을 관찰하고 있다. 북한의 대외관계, 북한의 내부 권력관계, 국제정치이론, 한국의 외교정책, 미국의 외교정책 등을 주제로 연구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그동안 쓴 책으로는 『글로벌 정치의 이해』, 『오기섭 평전』, 『이제 만나러 갑니다』, 『김정은의 고민』, 『북한이 필요한 미국, 미국이 필요한 한국』, 『노무현 정부와 미국』 등이 있다. 「북미 불신 구조의 형성 원인과 극복 방안」(『한국동북아논총』, 2016년 9월), 「A Nuclear South Korea?」(『International Journal』, 2014년 3월), 「How Stable is the New Kim Jong-un Regime: a Revolution in North Korea」(『Problems of Post-Communism』, 2013년 1월) 등 북한과 국제정치 관련 논문을 국내외 저널에 계속 발표하고 있다.

목차

머리말 · 4

제1장 6·25 전쟁 발발 : 1950년
전쟁을 위한 준비 15 · 스탈린의 조건부 승인 18 · 마오쩌둥의 소극적 동의 21 · 북한의 전면 공격과 미국의 신속한 개입 23 · 왜 서울에서 3일간 머뭇거렸는가? 26 · 중국의 참전 31 · 미국은 왜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았는가? 35 · 북한의 작전권 이양 39 · 총정치국을 설치하다 42 · 김일성과 박헌영의 갈등 44 · 무정에게 책임을 전가하다 47
조선인민군 특무상사의 1950년 · 52

제2장 휴전의 모색 : 1951년
김책은 왜 죽었을까? 57 · 중국과 미국이 휴전을 추진하다 61 · 이승만의 휴전 협상 반대 66 · 토사구팽 박일우 69 · 소련파 거두 허가이의 몰락 73 · 조선노동당 당원 배가운동 77
헝가리 기자가 본 1951년 · 80

제3장 수령의 탄생 : 1952년
개인숭배의 시작 85 · 군 장교의 전면 재교육 90 · 증산운동과 여성보잡이운동 93 · 농업집단화의 전조 96 · 행정구역 개편 99 · 터덕거리는 휴전 협상 102 · 인민들의 살아남기 투쟁 106
헝가리 의사가 겪은 1952년 · 109

제4장 휴전과 재건 : 1953년
박헌영 숙청 115 · 전 사회적 사상 단속 119 · 휴전의 성립 121 · 미국의 이승만 제거 계획 125 · 정전 체제와 평화 체제 128 · 전쟁이 남긴 상흔 131 · 김일성 권력의 공고화 134 · 사회주의 기반 강화 137 · 중공업 우선, 경공업·농업 동시 발전 전략 139 · 통일전선 사업 142
민주선전실장의 1953년 · 146

제5장 사회주의 본격화 : 1954년
경제 복구 3개년 계획 착수 153 · 농업협동화로 본격 사회주의화 155 · 농업협동화에 반대하는 사람들 159 · 개인 상공업의 협동화 162 · 군 장교 양성 체계화 163 · 제네바 회담 실패 165 · 북한식 철자법 공포 170 · 국내파를 당 요직에 앉히다 172
김일성종합대학 교수 황장엽의 1954년 · 175

제6장 주체사상이 싹트다 : 1955년
마르크스-레닌주의 교육 강화 179 · 김일성 중심의 공산주의 역사 181 · 박헌영 재판 184 · 박헌영은 미국의 간첩이었는가? 188 · 주체사상의 맹아 192 · 정치적 색체가 약화된 문학 196
평양시 당위원장이 본 1955년 · 200

제7장 김일성 반대파의 도전과 실패 : 1956년
스탈린 비판과 ‘수령’ 칭호 실종 205 · 김일성으로 권력 집중 208 · 외교의 다변화 210 · 8월 종파사건 213 · 최창익은 어떤 인물인가? 215 · 연안파와 소련파 숙청 219 · 조선인민군 8만 명 감축 222 · 초등의무교육 실시 225 · 지방인민회의 선거 227 · 농업협동화 반대 운동 229 · 천리마운동의 시작 231
조선인민군 정치장교가 본 1956년 · 234

제8장 전 사회적 사상 검증과 숙청 : 1957년
집단지도 체제 239 · 소련의 반당그룹 축출과 중국의 정풍운동 241 · 전방위 사상 검증과 김두봉의 퇴진 245 · 김영주의 부상 250 · 연안파의 우군, 중국군 철수 합의 251 · 소련파는 소련으로 255 · 김두봉 출당과 숙청 본격화 257
동독 건축가가 본 1957년 · 261

제9장 경제발전의 본격화 : 1958년
평양 건설과 ‘평양속도’ 267 · 인민경제발전 5개년 계획의 완성 270 · 중앙 숙청 총괄, 지방 숙청 시작 272 · 당대표자회와 당대회 274 · 군에 불어닥친 숙청 회오리 277 · 군에 대한 통제 강화 280 · 권력투쟁에서 사상투쟁으로 283 · 중국군 철수 285 · 평양외국어학원 개원 289 · 첫 자동차 ‘승리 58’ 생산 291
탄부의 1958년 · 294

제10장 전 사회의 감시 체제 : 1959년
어린 김정일의 활약 299 · 거대 예비군 노농적위대 출범 302 · 제2차 화폐개혁 304 · 5호담당제 실시 306 · 천리마작업반운동으로 사상의식 개조 308 · 공작기계 새끼치기 운동 312 · 교육 체계 전면 개편 314 · 재일 동포의 입북 316
소련파 고위 관료의 1959년 · 321

주 · 324
연표 · 329
찾아보기 · 333

책 속으로

무기와 장비를 갖추고 소련과 중국의 동의까지 받은 북한은 6월 12일부터 38선 10~15킬로미터 지점으로 병력을 이동시키기 시작했다. 명목은 훈련이었다. 이동은 6월 23일 완료되었다. 전선에 배치된 전력은 7개 사단과 1개 전차여단이었다. 전차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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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와 장비를 갖추고 소련과 중국의 동의까지 받은 북한은 6월 12일부터 38선 10~15킬로미터 지점으로 병력을 이동시키기 시작했다. 명목은 훈련이었다. 이동은 6월 23일 완료되었다. 전선에 배치된 전력은 7개 사단과 1개 전차여단이었다. 전차는 T-34 258대였다. 당시 남한군은 38선에 4개 사단, 서울에 1개 사단이 배치되어 있었고 전차는 1대도 없었다. 공격 명령은 6월 23~24일에 하달되었고, 공격은 6월 25일 새벽 38선 전역에서 시작되었다. 소련의 군사고문단은 작전 준비가 제대로 안 되어 있기 때문에 7월에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문제는 장마였다. 7월이면 장마철이었다. 그래서 조선인민군 총참모부의 의견에 따라 6월 말에 공격을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제1장 6·25 전쟁 발발」(본문 23~24쪽)

북진통일을 지향하는 이승만에게 휴전회담은 있을 수 없었다. 북한이 남침하는 순간 38선은 사라진 것이고 북진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 휴전 협상이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했다. 더욱이 협상을 한다면 공산주의자들을 상대한다는 것인데, 그에게 공산주의자와의 협상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해방 직후부터 이승만은 공산주의자와 협상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소련을 비롯한 공산주의 세력은 한반도를 적화하겠다는 생각밖에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과 민족 문제를 논하는 것은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또, 이승만은 다시 휴전이 된다면 북한은 언제든지 남침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차제에 북진해서 통일을 완성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제2장 휴전의 모색」(본문 66쪽)

한미가 상호방위조약 체결에 합의함에 따라 8월 8일 존 덜레스(John F. Dulles) 미 국무장관이 남한에 와서 변영태 외무장관과 함께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가조인을 하고 변영태 장관이 미국을 방문해 10월 1일 조약에 정식 조인했다. 한미 간의 상호방위조약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진 후 휴전 협상도 마무리되었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타결되었다. 공산 측은 미국인 3,314명, 한국인 8,186명 등 모두 1만 2,764명의 포로를 보내주었다. 유엔 측은 북한인 6만 9,000여 명, 중국인 5,000여 명을 송환하고, 한국인 7,800여 명과 중국인 1만 4,500여 명은 송환하지 않고 중립국송환위원회에 넘겼다. 중립국송환위원회는 인도가 의장국을 맡고, 스위스·스웨덴·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의 대표들로 구성되었다. 휴전협정 서명은 이승만은 빠진 채 유엔군 사령관 마크 클라크,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김일성,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 펑더화이가 했다. 그때 3자가 서명해 만들어낸 휴전 상태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제4장 휴전과 재건」(본문 123~125쪽)

1956년 1월에 북한 권부의 역학 관계에서 소련파는 힘을 잃게 되었으며, 만주파의 헤게모니하에서 국내파는 어느 정도 힘을 얻고, 연안파도 일부 배려를 받는 상태가 되었다. 당중앙위원장은 김일성, 부위원장은 최용건·박금철·박정애였고, 정치위원은 김일성·김두봉·박정애·김일·최용건·박금철이었다. 김두봉만 연안파였고, 나머지는 김일성의 측근들이었다. 조직지도부장 한상두는 국내파, 간부부장 리효순은 갑산파, 공업부장 백홍권과 상업재정협동단체부장은 순수 테크노크라트였다. 당 검열위원장 림해와 내각 농업성 부상 박훈일은 연안파였다.……이렇게 나오기 시작한 ‘주체’는 주체사상의 맹아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를 거치면서 주체사상으로 체계화되어 북한 체제의 핵심 이념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제6장 주체사상이 싹트다」(본문 195~196쪽)

‘8월 종파사건’은 주동자 몇 사람에 대한 처벌로 끝나지 않았다. 신변의 위험을 느낀 윤공흠, 서휘, 리필규, 문화선전부 부상 김강 등이 압록강을 넘어 중국으로 망명했다. 전원회의 첫날 회의장을 빠져나와 김강의 차를 탄 이들은 밤을 이용해 압록강가에 도착했다. 낚시질을 하는 몇 사람이 있었는데, 마침 그중 한 사람이 윤공흠과 안면이 있었다. 그를 통해 거룻배를 한 척 구해 압록강을 건넜다. 중국과 소련이 ‘8월 종파사건’의 내용을 전해 듣고 간섭하기 시작했다. 9월 15~27일 열린 중국공산당 제8차 전국대회에 소련 대표로 부수상 미코얀이 참석했다. 마오쩌둥은 미코얀에게 사건의 내막을 조사하기 위해 공동 대표단을 파견하자고 제의했다. 미코얀은 흐루쇼프에게 건의하고, 흐루쇼프도 동의해 중국의 국방부장 펑더화이와 소련의 미코얀이 북한에 파견되었다. 「제7장 김일성 반대파의 도전과 실패」(본문 2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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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사실과 기록을 바탕으로 집필한 가장 객관적인 북한 현대사! 북한 현대사의 모든 것, 70여 년의 사건과 사실을 생생하게 읽는다! “1945년 해방부터 2016년 제5차 핵실험까지 북한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군사 등을 한눈에...

[출판사서평 더 보기]

사실과 기록을 바탕으로 집필한
가장 객관적인 북한 현대사!

북한 현대사의 모든 것,
70여 년의 사건과 사실을 생생하게 읽는다!
“1945년 해방부터 2016년 제5차 핵실험까지
북한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군사 등을 한눈에 보다”


우리에게 북한은 무엇인가? 원수인가, 동포인가? 그런데 보수 정부 10년의 언행을 보면 북한을 원수로 보는 것 같다. 대북 전단 살포를 금지하면 대화하겠다는 북한의 요구를 묵살하고 대결 국면으로 가더니, 북한이 2016년 1월 제4차 핵실험을 하고 장거리로켓을 발사하자 개성공단마저 중단시켰다. 보수 정부는 대화하자고 말로는 했지만 대화를 위해 북한이 요구한 어느 것 하나도 들어주지 않았다. 그래놓고는 대화를 제의했는데 북한이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남북한이 각각의 정부를 세운 이후 제2공화국 11개월과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을 제외하고 60여 년 동안은 그런 식으로 북한을 대해왔다.
어떻게 하면 북한이 발가벗은 채 손들고 나오게 만들 것인지, 어떻게 하면 북한이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 하도록 할 것인지 골몰해왔다. 가진 것 없이 자존심만 남은 북한은 “굶을지언정 무릎 꿇진 않겠다”는 태도를 견지해왔다. 그러니 남북의 역사는 대결의 역사가 주를 이룰 수밖에 없었다. 그런 대결의 역사가 실제로 시작된 것은 정부 수립 훨씬 이전인 1945년이다. 해방의 해(年)에 벌써 대결이 시작되었다. 처음엔 남북을 각각 점령한 미국과 소련이, 그 이후에는 남한과 북한이 서로 확연히 다른 길을 가게 되었다. 이념적으로 완전히 다른 당을 세워나가고, 찬탁과 반탁으로 나뉘면서 대결의 길을 가게 된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1945년이 이후 한반도의 상황을 대부분 규정해버렸다.
전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안문석 교수가 원고지 5,500매 분량으로 북한 현대사를 전5권으로 집필했다. 국내 최초로 북한 현대사를 사건과 사실과 기록을 바탕으로 가장 객관적으로 집필한 것이다. 수많은 자료에서 사실(史實)을 찾아내서 기자의 눈과 학자의 눈으로 북한 현대사를 꿰뚫고 있다. 북한의 대표적인 역사서인 『조선통사』, 『조선전사』 등과 『김일성 선집』, 『김일성 저작 선집』, 『인민의 지도자』, 『김정일 위인상』 등 북한 자료의 진위를 정밀하게 파악하고 통찰력 있게 북한 현대사를 분석했다. 또한 남한의 학자들의 논문과 단행본, 조선인민군의 수기를 통해 균형 잡힌 시각과 안목으로 왜곡되고 잘못된 사실들을 바로잡기도 했다.

북한 현대사 70여 년을 탁월한 안목으로 꿰뚫다

『북한 현대사 산책』 제1권 : 해방과 김일성 체제 (1945~1949년)
북한의 1940년대는 김일성의 역사라 해도 좋을 만큼 그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그는 민주기지론을 제기하고, 북한을 사회주의화한 뒤 남한으로 확산시키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는 정부 수립 이후 국토완정론을 제시하고, 이를 실현하려고 전쟁을 일으켰다. 1945년을 깊이 보면 아쉬움이 많다. 소련이 태평양전쟁에 뒤늦게 참전해 북한에 들어오게 된 것이 답답하고, 미군 대령 2명이 한반도 위에 그은 선 하나로 분단이 되었다는 것도 원통하다. 패전국 독일이 분단된 것처럼 패전국 일본이 분할 점령되었어야 했는데, 한반도가 나뉘었다는 것도 분한 일이다. 하지만 1940년대 한국 현대사의 아픈 점은 남북한의 핵심 인물들이 통일의 기회를 마련하지 못하고 오히려 분단을 도모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좌우 합작을 이루고 통일임시정부를 마련하는 길을 찾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이 있었다. 여운형과 김구다. 하지만 힘이 없었다. 먹을 것이 많은 데로 몰리는 것이 정치의 생리 아닌가. 이들 곁엔 먹을 것이 많지 않았다. 결국 둘 다 권총을 맞고 한국 현대사의 뒤안길로 처연히 사라져갔다. 하긴 이들보다 먼저 간 이가 있었다. 현준혁이다. 누구보다 철저한 공산주의자였던 그도 민족주의자 조만식과 협력하다가 총을 맞았다.

『북한 현대사 산책』 제2권 : 전쟁과 사회주의 건설 (1950~1959년)
북한의 1950년대는 전쟁, 김일성 권력 공고화, 숙청, 종파투쟁, 독자성 추구의 역사였다. 하지만 민족의 단일성과 동질성이라는 측량하기 어려운 가치를 잃었고, 북한 사회의 다양성이라는 어느 것에 못지않은 가치도 상실했다. 1953년 휴전은 우여곡절의 과정을 거쳐 이루어졌다. 이승만은 반대하고, 김일성과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 펑더화이, 유엔군 사령관 마크 클라크가 협정에 서명했다. 한반도 통일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제네바 정치 회담은 당시 세계를 지휘하던 인물들이 모두 모였지만 아무런 소득 없이 막을 내렸다. 그렇게 굳어진 정전 체제가 지금도 한반도를 규정하고 있다. 한편 김일성 세력의 중공업 우선 정책에 대해 연안파와 소련파 가운데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김일성 개인숭배에 대해서도 반감을 품은 세력들도 있었다. 북한의 1950년대 후반은 김일성 세력이 이들 반대파에 대한 제거 과정의 시기이기도 했다. 1961년 제4차 당대회에서 김일성 세력이 승리를 선언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북한 현대사 산책』 제3권 : 주체사상과 후계체제 (1960~1979년)
북한의 1960∼1970년대는 전제정치 체제와 세습 체제를 완성하는 시기였다. 1960년대에는 김일성 유일사상 체계와 김일성 유일지도 체계를 세웠고, 1970년대 중반에는 김일성이 주장하는 여러 혁명 이론과 대중지도 방법 등이 보태져 ‘김일성주의’가 되었다. 김일성 유일체제 형성 과정은 김정일 후계체제 구축 과정과 동전의 양면이었다. 유일체제를 만들어가면서 김정일 후계체제를 구축해갔다. 그래서 김정일은 김일성 유일체제 형성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아버지를 세우는 것은 곧 자신을 세우는 것이었다. 갑산파를 비롯한 유일체제 반대 세력에 대한 숙청을 주도한 것도 김정일이었다. 김일성 개인숭배 작업을 지휘한 것도 김정일이었다. 1960년대 중후반에는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와 수교를 확대하면서 비동맹 외교에 적극성을 보였다. 하지만 깊이와 폭에서 한계가 많았다. 북한의 관심은 북한식의 사회주의 체제를 세우는 데에만 있었다. 그것이 북한의 현실이었다. 그 핵심에는 물론 김일성이 있었다. 김일성 주변에는 가산제 국가 체제하에서 권력과 부를 분여받은 항일빨치산 세력들이 있었다. 이들에게는 김일성 유일체제가 바람직했고, 김정일의 권력 승계도 나쁘지 않았다.

『북한 현대사 산책』 제4권 : 김정일과 고난의 행군 (1980~1999년)
북한의 1980∼1990년대는 권력 이양기이면서 체제 위기의 시기였다. 1980년 김정일이 대중에게 공개되면서 후계자로 확정되어 군권과 국가기관을 장악했다. 김일성의 권력은 김정일로 서서히 옮아갔다. 김정일은 국가기관을 중심으로 권력을 이어받으면서 1983년에는 중국을 방문해 중국의 지도부와 대면 교류도 시작했다. 1990년에는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에 선출되고, 1991년에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에 올라 군권을 장악했다. 1990년대의 북한 경제는 훨씬 어려워졌다. 1990년대 중반에는 특히 식량난이 극심했다. 배급 체계는 붕괴되고 주민들은 식량을 구하기 위해 장마당으로, 산으로, 심지어는 중국으로 가야 했다. 굶어죽는 사람도 많았다. 북한 당국은 ‘고난의 행군’을 외치며 주민들의 희생과 악전고투를 요구했지만, 당국의 장악력은 떨어지고 사회 이완 현상은 점점 심해졌다. 서구와 중국의 지원으로 위기를 겨우 넘길 수 있었다.

『북한 현대사 산책』 제5권 : 김정은과 북핵 위기 (2000~2016년)
북한의 2000∼2010년대는 변화의 시기였다. 실리사회주의를 추구하거나 남북 관계와 북미 관계에 진전도 있었다. 2000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북정상회담으로 은둔의 세계에서 탈출했다. 그 자신도 그렇게 말했다. 분단 이후 첫 남북정상회담은 김정일을 은둔에서 벗어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중요한 합의도 이끌어냈다. 남과 북이 이야기하는 통일 방안이 유사한 점이 있음을 확인하고 그 방향에서 통일 논의를 해나가기로 한 것이다. 남북이, 그것도 남북의 정상이 통일 방안을 놓고 진지하게 논의한 것은 처음이고, 합의도 처음이다. 하지만 김정은 정권 이후 세 차례의 핵실험은 한반도를 전쟁의 공포로 몰아넣고 남북 관계를 경색시켰다. 2016년 북한은 ‘자강력 제일주의’를 부쩍 강조했다. 자신의 능력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는 것이다. 김정은이 생산 현장에서 이를 지속적으로 강조했다. 1960년대의 자력갱생과 같은 모토다. 자력갱생은 주민의 노력 동원에 이용되었고, 외부와의 교류를 방해했다. ‘자강력 제일주의’도 같은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이 농후했다.

미국은 왜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았는가?

미국은 전쟁 시작 전부터 핵무기 사용을 고민했다. 미국 대통령 해리 트루먼도 기자회견에서 핵무기를 사용할 수도 있다고 말했고, 더글러스 맥아더 사령관도 핵무기 사용을 주장했다. 전쟁 시작 당시 미국은 약 300개의 핵무기를 갖고 있었고, 소련은 20개 정도에 불과했다. 더욱이 소련은 전쟁의 직접 당사국이 아니었다. 전쟁에서 핵무기 사용이 필요하고 소련보다 핵전력이 크게 우위를 보이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실제 핵무기의 사용 가능성은 매우 높았다. 하지만 미국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왜일까? 첫째, 제3차 세계대전에 대한 우려다. 둘째 유럽 국가들, 특히 영국의 반대다. 셋째 실제 핵공격의 목표물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넷째 도덕적 부담이다.

인민경제복구발전 계획

북한은 1953년 8월 당중앙위원회 제6차 전원회의에서 인민경제복구발전 3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1954년에 북한은 당초의 방침대로 인민경제의 모든 부문에서 6·25 전쟁 전 수준을 회복하고 질적인 측면에서도 ‘제 기술에 토대하여 제발로 걸어나갈 수 있는 튼튼한 밑천을 마련하는 것’을 3개년 계획의 주요 과업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농업협동화를 통해 황폐화한 논밭과 파괴된 관개시설을 복구하고, ‘중공업 우선, 경공업·농업 동시 발전’ 정책을 추진했다. 농업협동화는 1956년에 전면적으로 추진되어 그해 말까지 80.9퍼센트가 조합에 가입하고, 1958년 8월에 모든 농민이 조합원이 되어 농업협동화가 완성되었다.

박헌영은 미국의 간첩이었는가?

박헌영은 김일성과 경쟁·협력 관계를 유지하면서 북한 정권에 참여해오다가 6·25 전쟁을 승리로 이끌지 못하면서 갈등이 심화되어 재판을 받고 사형되는 운명을 맞았다. 그가 재판에서 받은 죄목 중 ‘미 제국주의자들을 위한 간첩 행위’와 ‘공화국 정권 전복 음모 행위’는 논란이 있다. 박헌영이 미국의 간첩으로 전쟁 중에 미국에 비밀정보를 제공해 북한 정권을 약화시켰다는 죄목은 북한이 박헌영 처벌에 따른 후유증을 최소화하기 위해 회심의 일타로 준비된 것이었다. 다시 말해 박헌영이 미국의 간첩이 아닐 가능성이 많다.
첫째, 남한 주재 소련 영사 아나톨 샤브신이 박헌영의 서울 활동을 일일이 체크하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의 간첩 활동을 했다는 북한의 주장은 선뜻 믿기 어렵다. 둘째, 박헌영은 전쟁 중 시종일관 미국과 싸우는 데 적극적이었는데, 이는 미국의 간첩이라면 취하기 어려운 태도다. 셋째, 중국의 기록에 마오쩌둥이 ‘박헌영이 미제 간첩이 아니다’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한 대목이 있다. 따라서 간첩 혐의는 한국 공산주의 역사의 주역이면서 남조선노동당 세력이라는 지지 기반을 갖고 있던 박헌영을 효과적으로 숙청하기 위해 김일성 세력이 만들어낸 것이다.

8월 종파사건

8월 종파사건은 북한에서 진행된 유일한 반김일성 운동이다. 주도 세력은 최창익, 서휘, 상업상 윤공흠, 황해남도 당위원장 고봉기 등 연안파와 박창옥·박의완·김승화 등 소련파, 리필규·류축운·오기섭 등 국내파였다. 이들은 1956년 8월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김일성을 위원장에서 물러나게 하겠다고 발표했다. 윤공흠은 김일성의 개인숭배가 당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공격했다. 김일성의 독재적인 당 운영도 비판했다. 누구도 공개적으로 말하지 못하던 것을 대놓고 거론하며 맹공을 가했다. 인민들은 헐벗고 굶주리고 있는데, 정부는 군수공업 중심의 중공업 우선 정책을 펴고 있는 데 대한 비판도 했다. 김일성 세력이 이를 두고 볼 리 없었다. 윤공흠은 단상에서 끌려내려왔다. 그에 대한 출당 논의가 이루어졌다. 반대한 사람은 서휘뿐이었다. 반김일성연합에 있던 이들도 침묵했다. 서휘와 리필규도 출당되었다. 최창익과 박창옥은 당직을 박탈당했다.

노농적위대 출범

노농적위대가 창설된 것은 1959년 1월이다. 1958년 10월 중국군이 완전철수하면서 전력의 보완이 필요한 상황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북한이 실제 공장이나 기업소에 준군사조직을 구성하고 현역 장교를 배치한 것은 1956년부터다. 1956년 5~8월 병력 8만 명 감축을 실시하면서 장교들에 대한 선별 작업도 동시에 진행했는데, 이 과정에서 나이 든 장교들을 산업 현장의 군사지휘관으로 배치한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산업 현장의 예비전력을 체계화·조직화해서 노농적위대라는 이름으로 발족시켰다.
노농적위대의 임무는 평시에는 사회질서를 확립하고, 당과 혁명 이념을 고수하며, 국가와 인민의 재산을 보호하고, 국경선·해안선 경비와 간첩·파괴 활동을 방지하는 것이다. 전시에는 전력 확대에 기여하고 향토를 사수하는 것이다. 창설 초기에는 제식훈련과 각개전투 훈련 정도의 초보적인 군사훈련만 했지만, 점점 훈련 수준이 높아져 병과별 훈련, 정규군과의 합동훈련 등도 하게 되었다. 부대 편제도 중대, 대대, 연대 등 정규군과 유사한 체제를 갖고 있었다. 지휘관은 직장 또는 지역당의 당위원장이 맡고, 부지휘관은 지역의 사회안전부 책임자가, 참모장은 지역당의 군사부장이 맡았다.

▣ 추천사

사드 배치, 북핵 위기, 대북전단 살포, 개성공단 폐쇄, 3대 세습, 전 세계의 유일한 분단국가 등은 한반도의 어두운 그림자들이다. 21세기 평화와 협력의 시대에 우리는 왜 아직도 남과 북으로 나뉘어 총을 겨누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야 한다. 이 책을 통해 남과 북이 서로 협력하는 시대 분위기를 만드는 길을 찾아야 한다.
- 정세현 (제29대, 제30대 통일부 장관)

어떻게 3대 세습이라는 전대미문의 국가가 형성되었을까? 도대체 어떻게 지금까지도 김일성 일가가 절대 권력을 휘두르며 왕정국가를 통치할 수 있을까? 누구나 갖게 되는 의문이다. 이 책에 그 답이 있다. 우리 삶의 안정을 끊임없이 흔들고 위협하는 불량국가 북한, 그 북한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원한다면 이 책을 권한다.
-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이 책은 사료를 바탕으로 사실에 입각해서 객관적으로 서술했다는 점이 장점이다. 기자 출신답게 글은 막힘이 없고, 학자답게 이론과 실제를 접목한 지점에서 글에 신뢰감을 준다. 특히나 북한 현대사 70년을 꿰뚫고 있는 안목과 인식은 여타 북한 관련 책들과 차별성을 갖는다.
- 권홍우 (『서울경제신문』 논설위원)

[책속으로 추가]

북한은 1958년 평양 건설에서 이렇게 큰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이 표준화·공업화·기계화 덕분이라고 선전했지만, 대부분은 시민들의 노력에 의한 것이었다. 북한이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1958년 한 해 동안 평양 건설에 동원된 시민이 113만 5,000명에 이른다. 이들은 작업 기준량의 300~400퍼센트씩 일을 했다. 토목 작업만 200만 제곱미터 넘게 했고, 12만 6,000제곱미터의 골재를 채취했다. 6만 제곱미터의 콘크리트를 만들어냈고, 4만 제곱미터에 이르는 부재를 생산해냈다. 수도관 부설공사도 1만 4,000여 미터나 했다. 일정 정도 표준화·공업화·기계화의 공헌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이러한 대규모의 노력동원과 시민들의 노력이 1958년 평양 건설과 ‘평양속도’를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다. 「제9장 경제발전의 본격화」(본문 268~270쪽)

어느 날은 김정일이 황장엽에게 공업전람관을 가보자 했다. 거기서 김정일은 기술적인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질문했다. 황장엽도 과학이나 공학 전공이 아니어서 통역을 하느라 힘이 들었다. 황장엽이 기술적인 문제에 왜 그렇게 관심이 많으냐 물었다. 김정일의 답은 “아버님께서 관심을 갖고 있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였다. 김일성이 좋아할 만한 데에 관심을 쏟고 좋아할 만한 일을 골라서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모습은 이후 당 선전선동부에서 활동하면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김정일은 항일빨치산투쟁 당시 김일성과 동료들의 활약상을 영화나 연극으로 만들어 북한 사회에 ‘빨치산 정신’을 전파하는 데 주력했고, 이것이 김일성을 만족시켰다. 이는 그가 삼촌 김영주를 밀어내고 후계자가 되는 데 큰 기여를 하기도 했다. 「제10장 전 사회의 감시 체제」(본문 300~3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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