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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더 무브(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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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규격外
ISBN-10 : 1185430881
ISBN-13 : 9791185430881
온 더 무브(양장본 HardCover) [양장] 중고
저자 올리버 색스 | 역자 이민아 | 출판사 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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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 7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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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온 더 무브 (최상-양장-알마) -과학자의 생애-올리버 색스 자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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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시리즈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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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의사이자 작가, 올리버 색스의 진솔한 기록 『온 더 무브』는 우리 시대의 위대한 지성이자 의학계의 큰 별 올리버 색스의 자서전이다. 그가 타계 직전에 남겼다고 하는 이 책에는 그가 추구했던 모험과 삶의 생생한 기록들이 오롯이 담겨 있다. 사람과 지적 탐구에 대한 애정과 열정, 성정체성에 대한 고뇌와 죄의식, 환희와 절망, 유대감과 깨달음, 자신에게 영향을 준 작가들과 과학자들과의 우정 등, 더없는 솔직함과 유머로 써내려갔다.

모터사이클과 속도에 집착했던 젊은 날로 시작하는 이 회고록은 휴식을 모르는 에너지와 열정으로 넘쳐난다. 오랜 세월 세상으로부터 잊힌 질환과 그 환자들을 만나 삶의 진로를 결정하고 환자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고자 결정한 이후, 대륙과 대양을 넘나들면서 뇌, 의식, 정신의 비밀과 인간 존재의 본질을 파헤쳐나간 파란만장한 인생의 궤적을 만나게 된다.

저자소개

저자 : 올리버 색스
저자 올리버 색스 Oliver Sacks (1933~2015)은 1933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옥스퍼드대학 퀸스칼리지에서 의학 학위를 받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샌프란시스코와 UCLA에서 레지던트 생활을 했다. 1965년 뉴욕으로 옮겨가 이듬해부터 베스에이브러햄병원에서 신경과 전문의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후 알베르트아인슈타인의과대학과 뉴욕대학을 거쳐 2007년부터 2012년까지 컬럼비아대학에서 신경정신과 임상 교수로 일했다. 2012년 록펠러대학이 탁월한 과학 저술가에게 수여하는 ‘루이스 토머스 상’을 수상했고, 모교인 옥스퍼드대학을 비롯한 여러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5년 안암이 간으로 전이되면서 향년 82세로 타계했다.
올리버 색스는 신경과 전문의로 활동하면서 여러 환자들의 사연을 책으로 펴냈다. 인간의 뇌와 정신 활동에 대한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쉽고 재미있게 그리고 감동적으로 들려줘 수많은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뉴욕 타임스》는 이처럼 문학적인 글쓰기로 대중과 소통하는 올리버 색스를 ‘의학계의 계관시인’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지은 책으로 베스트셀러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비롯해 《뮤지코필리아》 《환각》 《마음의 눈》 《목소리를 보았네》 《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웠다》 《깨어남》 《편두통》 등 10여 권이 있다. 생을 마감하기 전에 자신의 삶과 연구, 저술 등을 담백한 어조로 서술한 자서전 《온 더 무브》를 남겨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역자 : 이민아
역자 이민아는 이화여자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올리버 색스의 《깨어남》 《색맹의 섬》 《마음의 눈》을 비롯해 《어제가 없는 남자, HM의 기억》 《해석에 반대한다》 《맹신자들》 《정자전쟁》 《얼굴의 심리학》 《손의 신비》 《허울뿐인 세계화》 《창조자들》 《시간의 지도》 《수집》 등 다수가 있다.

목차

온 더 무브
둥지를 떠나
샌프란시스코에서
머슬비치
손 닿지 않는
깨어남
산 위의 황소
정체성의 문제
시티아일랜드
여행
뇌와 의식의 재발견


감사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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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어릴 적 2차 세계대전 중에 기숙학교로 보내진 나는 무력하게 갇혀 있다는 느낌에 움직임과 힘을, 마음껏 움직여 다닐 수 있는 초자연적인 힘을 갈망했다. _11쪽 열두 살 때 한 통찰력 있는 교사가 생활기록부에 “색스는 멀리 갈 것이다. 너무 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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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2차 세계대전 중에 기숙학교로 보내진 나는 무력하게 갇혀 있다는 느낌에 움직임과 힘을, 마음껏 움직여 다닐 수 있는 초자연적인 힘을 갈망했다. _11쪽

열두 살 때 한 통찰력 있는 교사가 생활기록부에 “색스는 멀리 갈 것이다. 너무 멀리 가지만 않는다면”이라고 적었는데 그 염려가 그리 틀리진 않았다. 어렸을 때 화학실험을 한답시고 집 안이 유독 가스로 가득 차도록 ‘너무 가곤’ 했어도 다행히 집을 홀랑 태워먹지는 않았다. _16쪽

“여자 친구가 많은 것 같지는 않더구나.” 아버지가 말했다. “여자애들 좋아하지 않니”
“여자애들, 괜찮죠.” 나는 대화가 여기서 끝나기를 바라며 대답했다.
“혹시 남자애들을 선호하니” 아버지는 물고 늘어졌다.
“네, 그래요. 하지만 그냥 느낌뿐이에요. 뭔가를 ‘해본’ 적은 없어요.” 그러고는 두려운 마음으로 덧붙였다. “엄마한테는 말씀하지 마세요. 받아들이지 못하실 거예요.”
하지만 아버지는 말했다. 다음 날 아침 어머니가 격노한 얼굴로 내려왔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이었다.
“가증스럽구나.” 어머니가 말했다. “너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해.” 어머니는 그대로 방을 나갔고 며칠 동안 나에게 한마디도 걸지 않았다. 다시 말을 시작했을 때도 당신이 한 말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다시는 이 일 자체를 거론하지 않았다). 어머니와 나 사이는 예전 같지 않았다. 모든 면에서 그토록 열린 마음으로 나를 지지해주던 어머니였지만 이 문제에서만큼은 가혹하고 완고했다. 아버지처럼 《성경》을 즐겨 읽던 어머니는 《시편》과 《아가雅歌》를 좋아했지만 《레위기》의 무시무시한 구절에 사로잡힌 듯했다. “너는 여자와 동침함 같이 남자와 동침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 _18~19쪽

나는 ‘예-아니요’를 묻는 지식 시험에는 형편없었지만 에세이라면 물 만난 고기였다. _28쪽

옥스퍼드대학교 의예과에서 한 해부학과 생리학 공부는 실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환자들을 만나고, 환자들 이야기를 경청하고, 환자의 경험과 곤경 속으로 들어가려고(또는 최소한 상상하려고) 애쓰고, 환자들을 염려하고, 환자들을 책임지는, 이 모든 것을 다 처음부터 배워야 했다. 환자들은 진짜 문제를 아주 고통스럽게 겪는(그리고 종종 중대한 기로에 선) 저마다 절절한 사정을 지닌 진짜 사람들이었다. 그렇기에 의료 행위는 단순히 진단과 치료에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며, 훨씬 더 중대한 문제에 직면하기도 한다. 삶의 질 문제를 물어야 하는 상황이 있고, 심지어는 생명을 이어가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인가를 물어야 하는 상황도 있다. _50쪽

나는 낮과 밤에 각각 다른 자아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낮이면 흰 가운 입은 친절한 올리버 박사님으로 살다가 일몰이 오면 모터사이클용 가죽 복장으로 갈아입고서 익명의 존재가 되어 늑대처럼 병원을 빠져나가 길거리를 배회하거나 타말파이어스 산의 굽잇길을 타고 올라가 달빛 내리는 길로 스틴슨비치나 보데가 만까지 달렸다. 이 이중생활에는 내 중간 이름, 울프Wolf가 아주 유용했다. 톰과 바이크 친구들하고 어울릴 때는 울프, 동료 의사들에게는 올리버였으니 말이다. _96쪽

사람들은 내가 19세기 선구자들의 저술도 토론해야 한다고, 우리가 지금 환자들한테서 보는 것을 그 시기에는 어떻게 진단하고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아야 한다고 말하면 짜증을 냈다(내 생각에는 그런 반응이었던 것 같다). 그들은 내 생각을 의고주의로 받아들였다. 가뜩이나 시간도 부족한데 그런 “폐기” 문헌들을 들여다보느니 더 건설적인 일을 찾아보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투였다. 이런 태도는 우리가 읽는 많은 논문들에도 암묵적으로 반영되었다. 5년 이상 지난 문헌을 인용하는 논문이 거의 없는 것이다. 마치 신경학에는 역사가 없다는 듯이.
이야기로 생각하고 역사적 맥락으로 사고하는 내게는 이런 풍조가 몹시 실망스러웠다. 화학에 빠진 어린 시절에 나는 화학의 역사, 화학 이론의 진화사, 내가 좋아하는 화학자들의 생애를 다룬 책이라면 마다 않고 탐독했다. 그런 내게 화학은 역사가 흐르고 사람이 있는 세계이기도 했다. _121~1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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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이 시대의 위대한 의사이자 작가, 올리버 색스 그가 써내려간 진솔하고 뜨거운 삶의 기록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의 저자 올리버 색스, 타계 직전 그가 남긴 감동의 자서전 2015년 2월 19일, 《뉴욕 타임스》 지면에 올리버 색스의 특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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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위대한 의사이자 작가, 올리버 색스
그가 써내려간 진솔하고 뜨거운 삶의 기록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의 저자 올리버 색스, 타계 직전 그가 남긴 감동의 자서전
2015년 2월 19일, 《뉴욕 타임스》 지면에 올리버 색스의 특별 기고문이 실렸다. 2005년 눈에 발병했던 흑색종이 간으로 전이된 사실과 자신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전하는 글이었다. 이 글에서 그는 자신의 심경을 이렇게 토로했다.

“두렵지 않다고는 못할 겁니다. 하지만 감사하는 마음이 가장 큽니다. 나는 사랑했고 또 사랑받았습니다. 많은 것을 받았고 일부는 되돌려주었습니다. 나는 읽고 여행하고 생각하고 썼습니다. 세상과 소통했고, 특히 여러 작가와 독자와 소통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나는 이 아름다운 행성에서 의식 있는 존재, 생각하는 동물로서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 자체가 내게는 크나큰 특권이자 모험이었습니다.”

그로부터 2달 후인 4월 그의 자서전 《온 더 무브》가 출간되었다. 그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특권이자 모험”이라고 부른 자신의 전 생애가 담긴 회고록이었다. 그리고 그해 8월 30일, 올리버 색스는 수많은 이들의 안타까움과 애도를 뒤로 하고 눈을 감았다. 향년 82세였다.

모험과 호기심으로 점철된 중단 없는 삶의 열정
“나는 모든 신경학이, 세상 모든 것이 일종의 모험이라고 믿습니다.” 우리 시대의 위대한 지성이자 의학계의 큰 별 올리버 색스. 그가 타계 직전 남긴 자서전 《온 더 무브》는 올리버 색스가 추구한 끝없는 모험, 중단 없이 나아가는 삶의 뜨겁고 생생한 기록이다. 모터사이클과 속도에 집착했던 젊은 날로 시작하는 이 회고록은 휴식을 모르는 에너지와 열정으로 넘쳐난다. 오랜 세월 세상으로부터 잊힌 질환과 그 환자들을 만나 삶의 진로를 결정하고 환자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고자 결정한 이후, 대륙과 대양을 넘나들면서 뇌, 의식, 정신의 비밀과 인간 존재의 본질을 파헤쳐나간 파란만장한 인생의 궤적이 오롯이 담겨 있다.
사람과 지적 탐구에 대한 애정과 열정, 성정체성에 대한 고뇌와 죄의식, 환희와 절망, 유대감과 깨달음, 자신에게 영향을 준 작가들과 과학자들과의 우정 등, 더없는 솔직함과 유머로 써내려간 《온 더 무브》는 무한한 호기심과 예리한 통찰력으로 인간과 세상을 읽고 이해하고 또 기록해나간 색스의 진면목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 “걷잡을 수 없는 연상 정신을 지닌 터무니없는 모험가, 신경학의 모든 것과 세상의 모든 것을 일종의 모험으로 여기는 열정가의 생생한 자화상”은, 너무나 인간적이기에 오히려 화성인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그의 특별함이 유독 빛을 발하는, 그가 세상에 전하는 마지막 선물이다.

존재의 연약함에 대한 진솔한 고백과 인간에 대한 긍정
올리버 색스는 스스로를 수줍음 많은 성격에다 사람 얼굴을 잘 알아보지 못하는 얼굴맹이며, 육체는 ‘몸짱’이지만 마음은 소심하고 불안 많고 내성적이고 수동적이라고 평한다. 거기다 부모님에게 늘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꼈고, 지적으로도 친구들에 비해 뒤떨어진다고 생각했다. 이런 모자람과 결함(이라고 세상이 말하는 것들)은 민감한 지점에서 그를 옥죄고 힘겹게 한다. 예컨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안 어머니가 던진 “가증스럽구나. 넌 태어나지 말았어야 해”라는 말은 그의 내면에 죄의식으로 주입되어 거의 평생을 따라다니며 억압으로 작용한다. 또 우여곡절 끝에 출간한 《깨어남》에 대해 시인 위스턴 휴 오든이 “걸작”이라는 찬사를 보냈을 때도 “이것은 전적으로 ‘문학적인’ 평가일 텐데 《깨어남》에 일말이라도 ‘과학적’ 가치가 있을까? 그렇기를 바랄 따름이었다”라며 자신의 책과 글에 대해 미심쩍어하고 의학계의 평가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불안해한다.
그는 동성애자였고 ‘대중적인’ 작가였으며 마약중독자였다. 그러나 올리버 색스는 바로 이 존재의 연약함에서부터 생명의 문을 활짝 열어젖힌다. 그가 맨 처음 의사로서 스스로를 자각하기 시작한 것은 “진짜 문제”를 지닌 “진짜 사람”들을 임상에서 만나면서였다. “옥스퍼드대학교 의예과에서 한 해부학과 생리학 공부는 실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환자들을 만나고, 환자들 이야기를 경청하고, 환자의 경험과 곤경 속으로 들어가려고(또는 최소한 상상하려고) 애쓰고, 환자들을 염려하고, 환자들을 책임지는, 이 모든 것을 다 처음부터 배워야 했다. 환자들은 진짜 문제를 아주 고통스럽게 겪는(그리고 종종 중대한 기로에 선) 저마다 절절한 사정을 지닌 진짜 사람들이었다. 그렇기에 의료 행위는 단순히 진단과 치료에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며, 훨씬 더 중대한 문제에 직면하기도 한다. 삶의 질 문제를 물어야 하는 상황이 있고, 심지어는 생명을 이어가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인가를 물어야 하는 상황도 있다.”
이는 실연의 아픔을 잊고자 마약에 의존하며 의사와 중독자로 살았던 4년간의 이중생활에서 빠져나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임상을 시작하자마자 상태가 호전되었고, 환자들에게 매료되어 최선을 다하면서 기쁨을, 무엇보다 주체성과 책임감을 느끼면서 서서히 마약중독에서 벗어났다. 어쩌면 이것은 자신의 결핍과 결함을 환자들의 고통과 동일시한 결과일지 모르며, 더 나아가 인간의 나약함이라는 공통된 근원에 대한 자각에서 우러난 연민과 공감의 결과일지 모른다. “내게는 흥미롭지 않은 환자, 가치 없는 환자가 없습니다. 그들은 도처에, 생생하고 또렷이 존재합니다. 뭔가 새로운 것을 가르쳐주지 않는 환자, 나도 모르던 내 감정을 일깨우고 새로운 흐름의 사고를 불러일으키지 않는 환자는 지금껏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그는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향했고 거기에서 인간에 대한 긍정을 발견했다. 극심한 편두통에 시달리거나 기억이나 색을 잃어버리거나 몸에 대한 지각을 상실하거나 파킨슨증으로 몸이 얼어붙어버린 사람들이 있었다. 가장 기본이 되는 일상과 사회관계를 영위할 수 없는 이들에게 그는 최대한 삶다운 삶을 되돌려주고자 했다. 그는 그것이 의사와 의료의 핵심임을 깨달았다. 그들의 다름이 ‘이상’이 아니라 특별함이며, 이 남다름이 배제와 회피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어우러져 살아야 할 인간 그 자체임을. 여기에서 우리 역시 색스에게서 깨우침을 얻는다. (환자를 포함하여) 나름의 “진짜” 문제를 가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저마다 개성과 열정을 지닌 자유로운 영혼, 독립적인 인간임을. 우리 모두가 사랑하고 또 사랑받아야 할 소중하고 존엄한 존재라는 사실을.

투명한 지성, 따뜻한 휴머니티
첫 책 《편두통》(1970)을 시작으로 《깨어남》(1973) 《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웠다》(1984)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1985) 《목소리를 보았네》(1989) 《화성의 인류학자》(1995) 《색맹의 섬》(1997) 《엉클 텅스텐》(2001) 《오악사카 저널》(2002) 《뮤지코필리아》(2007) 《마음의 눈》(2010) 《환각》(2012) 그리고 자서전 《온 더 무브》(2015)에 이르기까지 올리버 색스의 글쓰기는 ‘의학계의 시인’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경이롭고 경탄스럽다.
‘세상 모든 것이 모험’이었기에 그는 언제나 무엇에든 호기심과 관심이 충만했고, 예리한 관찰자이자 진심으로 경청하는 청자였으며,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연상 능력을 지닌 창조적인 사람이었다. 어릴 적 매료된 화학과 생물학을 비롯하여 의학, 해부학, 생화학, 생리학, 신경의학으로 이어지는 지적 탐구, 모터사이클과 수영과 스쿠버다이빙과 역도 같은 육체적 도전, 인간 사회와 자연계에 관한 질문과 이해에서 그는 타고난 여행가이자 모험가이며 탐험가였다. 이 모든 것들에서 색스는 흔히 극한까지 파고들었고, 아주 ‘멀리’까지 나아갔다.
무엇보다 올리버 색스는 어떤 편견이나 경계 없이 활짝 열려 있는 사람이었다. 그 자신 동성애자이자 마약중독자라는 ‘사회적 약자’ ‘소수자’ ‘이단자’로서 지탄과 비난, 죄의식과 자기파괴에 직면했지만 거기에 매몰되거나 굴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꺼이 그런 점을 온전히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그리하여 ‘예외성’을 ‘보편성’으로 승화시켜냄으로써, 인간과 세상에 대한 더욱 큰 이해와 긍정으로 나아갔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서평을 쓴 한두 사람은 나를 ‘기이한’ 또는 ‘이국적인’ 질환을 전담하는 사람으로 보았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그 반대였다. 나는 내가 다룬 병례들이 ‘전형적인 사례’라고 보았다.” 이는 궁극적으로 인간애에 가닿았다. “나는 사랑에 빠져도 보았고 빠져나오기도 했다. 어떤 면에서는 내 환자들과 사랑에 빠졌다고 할 수 있었을 것이다(이는 사물을 꿰뚫어보는 눈을 주는 그런 종류의 사랑이었으며, 어쩌면 이것이 인간애일지 모르겠다).”
올리버 색스의 글은 그의 삶과 꼭 닮아 대단히 투명하고 진솔하며, 또 소설만큼 드라마틱하면서 무척이나 인간적이다. 이는 신경심리학의 창시자 A. R. 루리야의 “소설식 구조에 극적인 힘과 감정이 모두 살아 있는 병례사”에 큰 영향을 받았다. “그는 사람이 살아 있는 풍부한 병례사들이 자신의 탁월한 신경심리학 논문들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믿었다. 고전적 접근법과 소설적 접근법, 과학과 이야기를 결합시키고자 했던 루리야의 노력은 곧 나의 노력이 되었다. 루리야 스스로 ‘작은 책’이라고 칭하던 저서는 내 인생의 방향과 목표를 바꾸어 《깨어남》만이 아니라 내가 쓴 모든 책의 원형이 되었다.” 여기에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또는 영향받은 이야기꾼으로서의 기질과 능력이 더해졌다. “어머니도 그랬지만, 환자들의 인생사 전체에 대한 강렬한 관심이 아버지를 환상적인 이야기꾼으로 만들었다. 아버지의 병원 이야기를 어린 우리 형제들은 넋을 잃고 들었고, 이것이 마커스 형과 데이비드 형 그리고 내가 부모님의 뒤를 이어 의학의 길을 걷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올리버 색스에게 호기심은 곧 지적 탐구로 이어졌고 지적 탐구는 글과 책이 되었고 글과 책은 그의 삶 자체가 되었다. 이처럼 색스에게 글쓰기는 삶과 온전히 하나였다. 그의 글이 쉬우면서 깊이 있고, 흥미진진하면서 통찰력 넘치는 것은 이 ‘언행일치’ 덕분이라 할 수 있다. 열네 살 때부터 쓰기 시작한 일기가 1,000권이 넘어갔고, 이 일기는 때때로 바로 책의 원고가 되었다. 또 부모님과 이모, 친구, 동료, 그리고 여러 작가나 과학자와 무수히 주고받은 편지는 삶의 동력이자 지적 성장의 원천이 되었다. 예컨대 신경심리학자 A. R. 루리야,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 생화학자 제럴드 에덜먼, 생물학자 프랜시스 크릭, 시인 위스턴 휴 오든 등과의 서신 교환은 그의 지적 여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곤 했다.
일기 또는 자기 자신에 관한 병례사의 확장판이라 해도 무방할 이 자서전은 이러한 올리버 색스 글쓰기의 매력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명쾌하고 적나라하고 단도직입적이며, 거기에 유머와 자기풍자라는 ‘균형감각’까지 갖추어서 그야말로 빠져들게 만든다. 색스의 삶이 인습과 통념을 거부하고 우상파괴적이었던 만큼이나 그의 글쓰기 또한 파격이었다. 때문에 여러 차례 기고를 거절당했고, 전문적이지 않다는 비난이나 평가절하, 무시를 당했다. “그동안 나는 ‘대중적’ 글쓰기를 하는 사람으로 자처해왔고 또 그래 보였다. 만일 누군가가 대중적이라면 바로 그 사실 때문에 그 사람은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그런 풍토와 편견을 이겨냈고, 지금 우리가 익히 보고 인정하듯 그가 옳았음을 세상에 또렷이 증명해 보였다.
장대익 교수는 추천사에서 “색스의 따뜻한 의학”이라는 표현을 썼다. 단순한 '사례연구case study'를 뛰어넘어 ‘병례사case history'를 지향하는 이야기들에서 색스는 휴머니티의 진수를 선보였다. “나는 의료적 오만과 기술이 철저하게 인간성 위에 군림하는 현실을 목격했다. (…) 그런 요양원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도 일상적인 생활, 주체성, 존엄성, 자존감, 어느 정도의 자율성이 있는 의미 있는 삶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무시되거나 회피되었다. ‘간호’는 오로지 기술적이고 의료적인 차원의 행위일 뿐이었다.” 의학이 ’의료‘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 전체‘를, 그를 둘러싼 ’모든 것‘을 다루어야 한다는 사실을 색스만큼 뚜렷이 인식하고 보여준 사람은 드물다.
저명한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올리버의 생일에 바쳐, 1997년》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소철과 사랑에 빠진 이 남자 / 오토바이 광고의 주인공이 되어도 좋았을 이 남자 / 다중다양성의 왕 / 힙! 해피 버시데이 / 프로이트 옹이 해낸 것을, 그의 정신과 심리를, 능가한 당신. // 한쪽 다리로 서고 편두통 앓고 색을 잃고 / 화성에서 깨어나 모자를 생각한 / 올리버 색스 / 여전히 인생을 극한까지 밀고 나가는 이 남자 / 당신이 헤엄쳐 간 자리에는 돌고래들이 뒤를 따르고.”

마치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올리버 색스는 2008년의 한 대목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대, 세상을 이롭게 할 명예로운 일을 했노라. 다 용서했으니 집으로 돌아오라.”

어쩌면 이때 그는 어렴풋이나마 “이 아름다운 행성”과 작별을 고할 날이 머지않았음을 예감했는지도 모른다. 인습을 거부했던 탁월한 의사이자 인간 존엄을 최고의 가치로 추구했던 작가 올리버 색스. 그는 인간에 대한 크나큰 긍정, 그리고 위대한 지성과 휴머니티의 지표를 제시한 우리 시대의 진정한 거인이었다.

올리버 색스 저작 목록

《편두통Migraine》(1970)
《깨어남Awakenings》(1973)
《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웠다A Leg to Stand On》(1984)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The Man Who Mistook His Wife for a Hat》(1985)
《목소리를 보았네Seeing Voices》(1989)
《화성의 인류학자An Anthropologist on Mars》(1995)
《색맹의 섬The Island of the Colorblind》(1997)
《엉클 텅스텐Uncle Tungsten》(2001)
《올리버 색스의 오악사카 저널Oaxaca Journal》(2002)
《뮤지코필리아Musicophilia》(2007)
《마음의 눈The Mind's Eye》(2010)
《환각Hallucinations》(2012)
《온 더 무브: 올리버 색스 자서전On the Move: A Life》(2015)
《Gratitude》(2015)

책속으로 추가
샌프란시스코에서 보낸 2년 동안 나는 하얀 인턴 가운을 짐승 가죽옷으로 갈아입고는 바이크에 올라타 떠나는, 나름대로 무탈한 주말 이중생활을 해왔다. 그 이중생활이 이제 한층 더 어둡고 위험해졌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UCLA의 환자들에게 헌신했다. 그러나 모터사이클을 타지 않는 주말이면 가상 여행(대마초나 나팔꽃씨나 LSD로 떠나는 마약 여행)에 몰두했다. 이것은 누구와도 나누지 못할, 누구에게도 말 못 할 비밀이었다. (…)
이것이 내 몸에, 어쩌면 내 뇌에 무슨 짓을 하는지 거의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머슬비치와 베니스비치에서 암페타민 과용으로 몇 사람이 죽었다. 나는 그저 운이 좋아 심장발작이나 심장마비가 오지 않았을 뿐이었다. 목숨 갖고 불장난을 하면서도 나는 그 사실을 의식하지 못했다.
월요일 오전이면 (휘청휘청, 수면발작에 가까운 상태로) 직장에 돌아왔다. 내 생각인지는 모르지만, 아무도 내가 주말 동안 성층권에 들어갔다 왔음을, 아니 감전된 한 마리 쥐로 전락했었다는 사실을 알아보지 못했다. 사람들이 주말에 뭐하고 지냈느냐고 물으면 ‘멀리’ 좀 다녀왔다고 대답하곤 했다. 그게 얼마나 ‘멀리’였는지, 어떤 의미의 ‘멀리’였는지, 그들은 짐작도 못 했으리라. _150~151쪽

1966년 10월, 임상을 시작하자마자 내 상태가 호전되었다. 나는 환자들에게 매료되었고, 환자들에게 마음을 다했다. 임상에서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고 환자를 치료하는 기쁨을 느끼기 시작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기쁨은 수련 중인 레지던트였을 때는 부정당했던 주체성과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러자 마약은 덜 찾고 정신과 상담 때는 더 열린 마음으로 임할 수 있었다.
1967년 2월에 한 번 더 약에 취해 조증 상태가 되었다. 이번의 황홀경은 (역설적으로 그리고 이전의 경험들과는 달리) 창조적인 쪽으로 향해, 내가 해야 할 일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보여주었다. 편두통에 관한 제대로 된 책을 쓰고 어쩌면 그다음으로 다른 책들도 써보자고. 그것은 그저 너도 할 수 있다는 식의 모호한 감정이 아니라 앞으로 신경학 연구 작업과 저술에 초점을 둔 아주 명확한 지침이었다. 이 깨우침은 약에 취해 있을 때 왔지만 날아가지 않고 그대로 내 안에 남았다. _187쪽

레니 이모는 내가 신경학회 학술대회에서 논문을 발표한다는(학술계로 진입하는 나의 첫 출격) 소식에 뛸 듯이 기뻐했지만 이렇게 덧붙였다. “네가 육중한 몸집을 만들겠다고 또다시 운동하고 있다는 소식은 썩 기쁘지 않구나. 너는 정상일 때 딱 보기 좋은 녀석이란 걸 왜 몰라.”
두 달 뒤 이모에게 우울증 앓았던 이야기를 전했다. 그러자 이모가 편지했다. “사람이면 누구나 우울증을 앓는 때가 있다는 건 나도 알아. 하지만 이젠 앓지 마렴. 너한테 네 편이 얼마나 많은데. 두뇌에 매력에 외모에 유머감각에, 게다가 너를 믿어주는 우리 패거리까지.”
이모가 내 편이 되어준다는 사실은 아주 어릴 때부터 무척 중요한 문제였다. 부모님은 나를 믿어주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나 스스로도 나에 대한 믿음이 약했기 때문이다. _207쪽

환자들에게 엘도파를 투약했을 때 이들의 ‘깨어남’은 신체만의 깨어남이 아니었다. 그들의 지적 능력, 지각 기능 그리고 감정까지 깨어났다. 이처럼 전면적인 깨어남 또는 살아남은 1960년대를 지배했던 신경해부학의 인식과 상충했다. 이 분야에서는 우리 뇌 안에 운동 기능, 지각 기능, 정서 기능을 담당하는 영역이 따로 존재하며 이 영역들이 상호작용하지 않는 것으로 보았다. 내 안의 해부학자는 이 개념에 굴복하여 이렇게 생각했다. “이럴 리가 없어. 이런 ‘깨어남’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야.”
그러나 내가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한 것은 그런 깨어남이었다. _219~220쪽

루리야는 신경심리학neuropsychology의 창시자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학자다. 하지만 그는 사람이 살아 있는 풍부한 병례사들이 자신의 탁월한 신경심리학 논문들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믿었다. 고전적 접근법과 소설적 접근법, 과학과 이야기를 결합시키고자 했던 루리야의 노력은 곧 나의 노력이 되었다. 루리야 스스로 “작은 책”(《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는 단 160쪽으로 이루어진 책이다)이라고 칭하던 저서는 내 인생의 방향과 목표를 바꾸어 《깨어남》만이 아니라 내가 쓴 모든 책의 원형이 되었다. _224쪽

어머니의 여러 환자와 제자로부터 어머니에 대한 선명하고 익살스럽고 자애로운 기억을 직접 듣는 일, 그들의 시선을 통해 의사이고 교사이며 또 이야기꾼인 어머니를 바라보는 일은 무엇보다 감동적이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 또한 의사이자 교사이며 또 이야기꾼이라는 사실이 새삼 떠올랐다. 이 공통점이 지난 세월 어머니와 나를 얼마나 더 가깝게 만들어주었는지, 또 우리 관계에 어떤 깊이를 더했는지. _240쪽

위스턴의 편지를 읽고는 울음이 터졌다. 위대한 시인으로부터 피상적인 인사치레나 공치사 한마디 없이 내가 쓴 책이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은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전적으로 ‘문학적인’ 평가일 텐데 《깨어남》에 일말이라도 ‘과학적’ 가치가 있을까? 그렇기를 바랄 따름이었다. _249쪽

살면서 일어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훑고 지나갔다. 대부분이 좋은 기억이었다. 고마웠던 일들, 여름날 오후의 기억들, 사랑받았던 일들, 선물 받았던 일들, 그리고 나도 무언가를 되돌려줄 수 있어서 감사했던 기억들. 또 내가 좋은 책 한 권, 훌륭한 책 한 권을 썼다는 생각도 스쳐지나갔다. 떠오르는 모든 생각이 과거시제로 쓰이고 있었다. “삶의 마지막에 떠오르는 모든 생각이 고마운 생각이게 하라”는 위스턴 휴 오든의 시구가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다. _267쪽

다리 사고는 내게 사람의 몸과 몸을 둘러싼 공간이 뇌 안에 어떻게 구획되어 있는지, 사람의 사지 하나가 손상되었을 때, 특히 그 손상으로 운동 능력과 신체의 자유를 상실하는 경우에 이 중추적 지도가 어떻게 심각하게 교란될 수 있는지를 가르쳐주었다. 사고가 아니었다면 그 사실을 몸으로 배우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번 사고를 통해 또한 내가 연약한 존재, 죽을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몸으로 느꼈다. 나는 어느 모로 보나 연약한 사람이 아니었고 죽음의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해본 사람도 아니었다. 모터사이클 타던 젊은 시절에는 겁이라고는 몰랐다. 오죽하면 친구들이 자기가 불사신인 줄 아는 놈이라고 했을까. 낙상 사고로 죽을 고비를 넘긴 뒤로 내 인생에는 조심과 두려움이 깃들었고, 지금까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내내 함께하고 있다. 무사태평 인생이 유비무환 인생이 되었다고 해야 할까. 이로써 내 청춘이 막을 내리고 중년이 시작되는구나 느꼈다. _270쪽

내 환자들이 ‘깨어남’을 겪던 시기에, 병원 바로 옆에 살면서 때로는 하루에 열두 시간, 열세 시간씩 일하던 시기에 나는 의학의 핵심이란 어떤 것인지 많이 생각했다. 내 환자들은 언제든 나를 찾아올 수 있었고, 거동이 다소 자유로운 몇 사람은 일요일 아침에 찾아와 함께 코코아를 마시기도 했다. 내가 길 건너에 있는 뉴욕식물원으로 산보를 데려가는 날도 있었다. 그들의 약물치료 상황과 흔히 불안정한 신경학적 상태를 점검하고 살피는 것이 내 역할이었지만, 또한 그들이 처한 육체의 제약 속에서나마 가능한 충만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나는 최선을 다했다. 몸이 굳은 채로 오랜 세월 병원 안에 갇혀 살아온 이들에게 삶다운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치료를 맡은 의사로서 해야 할 핵심 역할이라고 느꼈다. (…)
나는 의료적 오만과 기술이 철저하게 인간성 위에 군림하는 현실을 목격했다. 환자들을 몇 시간씩 방치하거나 심지어 육체적?정신적으로 학대하는, 고의적이고 범죄 수준의 태만이 횡행하는 곳들이 있었다. 한 ‘장원’에서는 환자가 고관절 골절상을 입고 끔찍한 고통을 호소하면서 소변이 질펀한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데 직원은 본체만체하고 있었다. 그런 태만은 없지만 아주 기본적인 의료 조치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요양원들도 있었다. 그런 요양원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도 일상적인 생활, 주체성, 존엄성, 자존감, 어느 정도의 자율성이 있는 의미 있는 삶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무시되거나 회피되었다. ‘간호’는 오로지 기술적이고 의료적인 차원의 행위일 뿐이었다. _275~276쪽

동료 신경의들의 무시하는 듯 냉랭한 분위기는 달라지지 않았고 거기에 이제는 일련의 의혹까지 더해진 듯했다. 그동안 나는 ‘대중적’ 글쓰기를 하는 사람으로 자처해왔고 또 그래 보였다. 만일 누군가가 대중적이라면 바로 그 사실 때문에 그 사람은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모두가 그랬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동료들 중에는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가 고전적 이야기 형식 속에 신경학의 세계를 깊이 있고 상세하게 심어넣은 충실하고 훌륭한 책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의학계 전반의 분위기는 여전히 침묵이었다. _317쪽

아버지는 처음에는 신경의 전공을 고려했다가 “더 실질적”이고 “더 재미있을”것이라고 판단하여 일반의를 선택했다. 아버지는 사람들과 그들의 삶을 더 깊이 만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했다.
사람에 대한 이처럼 강렬한 관심은 마지막까지 변함없었다. 아버지의 연세가 아흔이 가까웠을 때 데이비드 형과 나는 은퇴하시라고 간곡히 말씀드렸다. 최소한 왕진이라도 그만하시면 좋겠다고. 아버지는 환자의 가정을 방문하는 것이 의료의 “핵심”이라면서 나머지 활동은 조만간 다 정리하겠다고 답했다. 아흔부터 거의 아흔넷까지 아버지는 한 소형 택시와 계약해서 주간 방문진료 활동을 지속했다. (…)
아버지는 사람을, 환자들의 몸 상태 못지않게 그들 내면의 사정까지 이해하려 했으며, 그렇게 속 깊이 이해하지 않고는 몸도 치료할 수 없다고 믿었다(아닌 게 아니라 사람들은 아버지가 환자들 몸속만이 아니라 냉장고 속까지 훤히 꿰고 계신다는 이야기를 종종 했다).
아버지는 흔히 환자들에게 병을 치료하는 의사일 뿐 아니라 사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친구가 되어주었다. 어머니도 그랬지만, 환자들의 인생사 전체에 대한 강렬한 관심이 아버지를 환상적인 이야기꾼으로 만들었다. 아버지의 병원 이야기를 어린 우리 형제들은 넋을 잃고 들었고, 이것이 마커스 형과 데이비드 형 그리고 내가 부모님의 뒤를 이어 의학의 길을 걷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_395~396쪽

괌 방문은 인간적 차원에서도 아주 중요하다고 느꼈다. 뇌염후증후군 환자들이 수십 년 동안 병원에 방치되어 살아가고 가족에게 버림받은 경우도 적지 않은 데 반해, 리티코보딕 환자들은 끝가지 가족과 공동체의 일원으로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몸이나 정신이 병든 이들을 보이지 않는 곳에 보내놓고 없는 척하며 살려는 우리 ‘문명’ 세계의 의학, 우리 사회의 관습은 얼마나 야만적인가? _411쪽

내가 의대생이던 1950년대 중반에는 학과에서 배우는 신경생리학과 신경질환을 겪는 환자들의 현실 사이에 메울 수 없을 간극이 존재하는 듯했다. 신경학은 한 세기 전 브로카 (1824~1880, 프랑스의 내과의?외과의?해부의: 옮긴이)가 정립한 임상해부학적 방법론을 그대로 따르고 있었다. 뇌에서 손상 부위를 찾아 그 영역과 증상의 상관관계를 밝히는 이 방법론에 따르면 가령 언어장애는 브로카언어영역의 손상과 상관관계가 있으며, 마비는 운동영역의 손상과 상관관계가 있는 식이다. 뇌는, 각각 특정 기능을 담당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상호 연결돼 있는 작은 부위들의 집합체 또는 모자이크로 여겨졌다. 뇌가 하나의 총체로서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었다. 내가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쓰던 1980년대 초반에는 나의 사고 역시 이 모델을 기반으로 했고, 따라서 신경계는 기능별로 고정불변의 영역이 ‘사전에 할당’되어 있는 것으로 간주했다.
이 모델은 예컨대 실어증을 겪는 사람의 손상 부위를 찾아내는 데는 유용하게 쓰였다. 하지만 이 모델로 학습과 훈련의 효과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평생에 걸쳐 재구성되고 개정되는 기억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적응 과정의 신경 가소성은 어떻게 설명이 되는가? 의식은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 풍부함은? 그 일체성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그 흐름은? 그리고 수많은 의식의 장애에 대해서는? 사람 개개인의 개성과 자아는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신경과학은 1970년대와 1980년대를 거쳐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그 발전에는 요컨대 일종의 개념적 위기 또는 개념적 공백이 존재했다. 신경학에서 아동발달, 언어학, 정신분석에 이르기까지 다기한 분야에서 축적해온 방대한 데이터와 관찰 기록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일반이론이 없었던 것이다. _445~446쪽

그날 저녁, 제리와의 저녁식사를 마치고 걸어서 호텔로 돌아가는 길, 나는 황홀경 같은 기쁨에 빠져 있었다. 아르노 강 위에 떠 있는 달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느껴졌다. 몇 십 년 동안 갇혀 있던 인식론적 절망감에서 해방된 기분이었다. 피상적이고 부적절한 컴퓨터 비유의 세계로부터 풍성한 생물학적 의미로 충만한 세계, 뇌와 마음의 실재와 부합하는 세계로. 에덜먼의 가설은 마음과 의식을 최초로 전면적으로 아우른 이론이자, 개체와 자율성을 말하는 최초의 생물학적 이론이었다.
“살아서 이 이론을 들을 수 있다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1859년 《종의 기원》이 나왔을 때 지금 나처럼 느낀 사람은 또 얼마나 많았겠는가. 자연선택이라는 개념은 놀라운 발상이었지만 생각해보면 또 명백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였다. 마찬가지로 에덜먼이 그날 저녁 이야기한 것을 이해하고 나니 뒤늦게 생각이 들었다. “이 생각을 왜 나는 하지 못한 것인가! 나는 대체 얼마나 멍청한가!” 토머스 헉슬리(1825~1895, 영국의 생물학자. 올더스 헉슬리의 할아버지: 옮긴이)가 《종의 기원》을 읽은 뒤에 했던 이 말이 바로 내 생각이었다. 갑자기 모든 것이 그렇게 쉬워 보일 수가 없었다. _455쪽

뇌졸중이나 여타 부상에서 회복하고 재활하는 활동 또한 이와 비슷하게 이해할 수 있다. 여기에는 어떤 규칙도 없다. 미리 정해진 길도 없다. 모든 환자가 각자 자신의 운동 패턴과 지각 패턴을 발견하거나 만들어내야 하며, 직면한 문제에 대해 스스로 해법을 찾아내야 한다. 여기에 도움을 주는 것이 바로 섬세한 치료사의 역할이다.
넓은 의미에서 볼 때 신경다윈주의는, 우리 스스로 원하건 원하지 않건, 저마다 독자적으로 자기를 계발하며 평생에 걸쳐 각자의 특성에 맞는 길을 개척하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운명임을 암시한다. _459~460쪽

2005년 12월, 내 인생에 갑자기 암이 등장해 극적으로 그 정체를 드러냈다. 시야 한 부분이 갑자기 하얘지더니 반맹이 되어버린 오른쪽 눈. 진단은 흑색종이었다. 십중팔구는 얼마간에 걸쳐 서서히 자라나서 이 시점에 시각이 가장 예리한 망막 중심의 작은 부위인 중심와中心窩 가까이까지 잠식했으리라. 흑색종이 워낙 악명 높은 병인지라 진단이 나오는 순간 나는 사형선고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안구 흑색종은 상대적으로 양성인 편이라고 의사가 바로 이어서 말해주었다. 전이되는 경우도 드물고 완치율도 높다고.
방사선요법에 이어서 레이저 치료까지 수차례 받았다. 일부 부위가 계속 재발했기 때문이다. 18개월 지속된 1차 치료 기간 동안 오른쪽 눈의 시력은 거의 하루 단위로 실명 상태에서 정상 시력 상태를 오락가락하며 요동쳤고, 그럴 때마다 공포에 사로잡혔다가 안도했다가는 다시 공포에 사로잡히는 감정의 극단을 오갔다.
이런 요동치는 증상을 그나마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망막(과 시력)이 종양과 레이저 광선에 조금씩 갉아 먹히면서 일어난 다양한 시각 현상에 매료된 덕분이었다(그러지 않았다면 일상생활은 더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레이저요법과 더불어 일어나는 극심한 위상학적 일그러짐, 색깔의 왜곡 현상, 암점blind spot이 영리하게도 자동적으로 채워지는 현상,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는 색과 형태, 눈을 감은 뒤에도 사물과 장면이 계속 지각되는 현상, 그리고 그중에서도 특히 (흑색종으로 인해) 점점 커져가는 암점 속에 출몰하는 갖가지 환각들 …. 필시 나의 뇌 또한 내 오른쪽 눈 못지않게 분주했으리라.
앞을 볼 수 없다는 것도 두려웠지만 그보다 더 두려운 것은 죽음이었다. 그래서 흑색종하고 일종의 흥정을 했다. 꼭 그래야겠다면 눈을 가져가라. 하지만 나머지는 남겨다오. _465~466쪽

어렸을 때 사람들은 나를 보고 먹물쟁이라고 했는데, 잉크 먹물 쏟고 묻히기는 지금이나 70년 전이나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열네 살 때부터 쓰기 시작한 일기장이 현재 1,000권에 육박한다. 늘 들고 다니는 작은 수첩형 일기장에서 큰 책만 한 것까지 모양도 크기도 가지각색이다. 나는 꿈속이나 밤중에 생각이 떠오를 경우를 대비해 항상 머리맡에 공책을 놔두고, 수영장이나 호숫가, 해변에도 웬만하면 한 권 놔둔다. 수영은 생각이 굉장히 활발해지는 활동이어서 특히 완성된 문장이나 단락으로 떠오르면 곧바로 나가서 써놔야 하기 때문인데, 이렇게 글을 완성하는 경우가 드문 일은 아니었다. (…)
내가 쓰는 일기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닐뿐더러 나 스스로 지난 일기를 꺼내 읽는 것 또한 좀처럼 없는 일이다. 오히려 일기는 내가 자신과 단둘이 대화하기 위해 필요한, 자신과의 대화에 필수적인 형식의 글이라고 하는 편이 맞다. _4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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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

회원리뷰

  • 맨처음 접한 올리버 색스의 책은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였다. 내가 심리학과 뇌과학에 관한 책을 관심있게 읽고 있다는 것을 아는 딸아이가 아마존을 검색해서 찾아내 전해준 생일 선물이었다. 아무래도 제목이 재미있어서 선택한 듯 보였지만 가끔 자신도 모르는 새 꽤 날카로운 직관을 발휘하고는 하는 아이의 선택이 흥미로워 찬찬히 읽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을 들여 느리게 들여다 볼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우선은 내 선물로 사주긴 했지만 정작 제목이 주는 궁금증을 견디다 못해 아이가 책을 먼저 집어들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나의 일천한 영어 실력 또한 의학전문용어가 꽤 등장하는 데다 고풍스럽기 그지없는 그의 영국식 영어 표현이 녹록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참 묘한 일이었다. 고전적인 영국식 영어에 익숙치 않는 변변치 않은 실력에도 불구하고 색스의 시적인 표현력, 무언가 조금씩 결여되어 결코 평범치 않은 환자들에 대한 그의 깊은 이해력과 균형있는 시선, 인간 존재 깊숙한 곳을 들여다보는 섬광같은 통찰력, 명시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행간 어디엔가 어렴풋이 숨어 있는 듯한 무뎌진 아픔의 흔적 같은 것들이 무척이나 마음을 끌여당겼고 또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그의 표현을 빌어보자면 ‘나의 내면 깊은 곳의 무언가(something deep inside me)를 끌어내는’ 느낌이었다. 뇌과학 분야의 전문가이자 임상의로서 사람들을 관찰하고 경험한 얘기들을 비교적 담담하고 객관적으로 전달하는 에세이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문학적인 글 못지 않은 페이소스를 불러 일으키는 그의 문장에 깊이 매료되었고, 짤막한 장들을 하나씩 읽어나갈 때마다 매번 많은 생각들이 요동치는 자극을 받았다.


    내가 왜 그다지도 그의 책들에게서 특별한 매력을 느낄 수 있었는 지를 깨닫게 된 것은 그가 생애의 마지막 순간에 남긴 ‘온 더 무브’를 읽으면서였다.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예견한 상태에서 뉴욕타임즈에 기고했던 일종의 유언을 그의 사망기사와 함께 읽으며 나는 망연자실했었다. 그의 책을 읽으며 걷잡을 수 없이 펼쳐지는 생각들을 정돈해서 언젠가는 서툰 영어로나마 그에게 직접 독자의 편지를 써보리라고 맘 먹고 있었기에, 그가 더 이상 살아서 무언가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이 못내 아쉬워 집어든 것이 그의 유작인 바로 이 책이었다.


    나 뿐 아니라 많은 독자들이 그에게서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몇 가지 배경이나 인지상정을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은 일일 것이다. 나와는 달리 우아한 정통 영국식 영어를 제대로 구사하는 대단한 지식인이자 교양인이긴 하지만, 어쨌건 그도 미국이란 사회에서 조금은 거리를 두고 살아가야 하는 별 수 없는 이방인이었다는 점, 그리고 그런 이방인으로서 미국 서부의 대자연의 위세에 무릎꿇은 경험이 있었다는 점, 겉으로는 영국 중산층 엘리트로서 부족함이 없어뵈던 그이지만 자신의 정체성 문제와 가족력으로 인한 내면의 아픔을 지녔다는 점 등이다. 특히 그의 개인사 및 가족사적 경험들은 그가 환자들을 자신과 분리된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고, 그토록 끈질기게 정신적인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지닌 평범치 않은 삶의 방식에 대해 깊은 존중의 자세를 보이며 거기서 끝내 어떤 의미를 찾아내려 애쓰던 노력들이 경지가 너무 높아 헤아리기 힘든 박애주의적인 행동으로 비춰지기 보다는, 보다 인간적이고 진정성 있게 다가오던 이유일 것이다. 


    형의 정신적인 장애를 바라보며 느끼던 괴로움, 동시에 그런 장애로 인해 별스러운 형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분리시키기 위해 달아나고 싶었던 그의 갈등이 결국 자신의 고향인 영국에서 멀리 미국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게 한 몇 가지 이유 중의 하나였지만, 한편으로는 형과 함께 있어주고 최선을 다해 도와주지 못한 채 달아나기에 급급했던 마음에 대한 회한과 부채의식이 역설적으로 환자들을 향한 그의 태도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한 완전하지 못했던 인간이 자신의 불완전함에 대한 부채의식을 타인을 향한 연민으로 발전시켜온 삶의 행로에 대해 숙연한 감동이 일었고, 동시에 기대와 호기심을 느꼈다. 불완전함이라는 괴물이 인간의 내면을 잠식하고 황폐화시키는 대신 보다 나은 삶을 향한 에너지로 승화시켜낸 한 사람의 생애에 대한 감회와 기대감 같은 것이었다. 어쩌면 더 이상 한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만 같은 심리적 공허에 사로잡혀 있던 내게 일종의 구원의 길을 제시하기를 바래서 였는지도 모르겠다. 무지에서 오는 낙관이 아닌, 모든 것을 다 알고 받아들인 후에도 여전히 이 불완전한 인간 존재와 삶의 의미에 대한 경외와 믿음을 저버리지 않을 수 있는 희망 같은 것이 내가 그의 글을 읽으며 찾고 싶은 구원인지도 모르겠다.


    http://essencebooks.blogspot.kr/2017/02/on-move.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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