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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청년문고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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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쪽 | A5
ISBN-10 : 8972780219
ISBN-13 : 9788972780212
역사란 무엇인가(청년문고 21) 중고
저자 E.H.카아 | 역자 곽복희 | 출판사 청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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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4월 1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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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빠르고 좋네요. 감사합니다. 5점 만점에 5점 arc*** 2019.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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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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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이론에 대해 알기 쉽게 풀어낸 책이다.

저자소개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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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책 속 한 문장

회원리뷰

  • 역사학의 고전 | ll**ings | 2004.12.28 | 5점 만점에 4점 | 추천:0
    1.역사가와 사실 19세기는 희망의 시기였다. 과학혁명과 산업혁명으로 이어져 오면서 인간의 이성에 대한 신뢰는 그 어느때보다...
    1.역사가와 사실 19세기는 희망의 시기였다. 과학혁명과 산업혁명으로 이어져 오면서 인간의 이성에 대한 신뢰는 그 어느때보다도 높았다. 저마다 자기 일에만 힘쓰라. 그러면 신의 보이지 않는 손이 보편적인 조화에 대해서 보살펴 줄 것이다. 이렇듯 빠르게 그러나 조화롭게 변화하는 사회속에서 인간이 이성으로서 해결할 수 없는 사실이란 것은 없었으며, 또한 없을 것으로 보였다. 따라서 ‘내가 바라는 것은 오직 사실이다. 인생에 필요한 것은 오직 사실 뿐이다’라는 식의 논리가 통할 수 있었으며 이는 역사학에도 영향을 미쳐, 1830년대의 랑케이후 역사가의 임무는 그것이 진정 어떠하였는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실증주의자들은 사실숭배를 더욱 발전시켜 우선 사실을 확인하고 다음에 결론을 끌어내라고 주장했다. 사실은 스스로 말하며, 사실은 아무리 많아도 지나치지 않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당시에 너무나도 절대적인 것이어서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는 자문할 필요조차 없었다. 즉, 역사의 사실은 보다 높은 것을 향해 나가, 틀림없이 무한한 진보를 스스로가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나 먼저 사실을 정확하게 입수하고 그 이후에 사실로 하여금 말하게 하라는 19세기의 역사는 의무이지 미덕이 아니다. 정말 이런 유의 일이라면 역사학의 보조과학인 고고학, 금석학, 고전학, 연대학 등에 의뢰할 수 있는 것이다. 역사가들에게 공통된 이른바 기초적 사실은 역사가들이 사용하는 원료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이지 그것이 역사 그 자체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19세기의 역사관은 상식적인 수준의 역사관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인간이 과거에 경험한 사실이 모두가 반드시 역사적 사실이 되는 것도 아니고, 인간의 모든 과거 경험 사실이 역사가에 의해 역사적 사실로 다루어 지는 것도 아니다. 시이저가 루비콘 강을 건넜다는 사실과 김교수가 3일전 택시를 타고 출근했다는 사실은 다 같이 과거의 사실이지만 그 의미에 있어 현격하게 차이가 날 수 있다. 사실은 그 자체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가 말을 걸어올 때만 말을 한다. 어떠한 사실에 발언권을 줄 것인가, 그리고 어떠한 순서와 맥락에 따라 이야기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역사가이다. 역사적 사실로서의 지위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해석의 문제이며 해석이라는 요소는 역사의 모든 사실 속에 들어가기 마련이다. 또한 역사적 사실이 그 지위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한 명의 역사가의 해석에 동의하고 찬동하는 다른 역사가들의 해석이 뒤따라야 한다. 역사가에게 있어 사실이란 결코 생선가게의 생선이 아니라 망망대해의 고기이며, 역사가는 자기의 구미에 맞는 고기를 잡을 바다의 구역과 구체적인 고기잡이 도구를 선택하게 된다. 따라서 역사상의 사실은 ‘순수한’ 형태로 존재하지도 않고, 또한 존재할 수도 없기 때문에 결코 순수한 것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 수 없다. 역사의 사실은 기록자의 마음을 통해서 항상 굴절되기 마련이다. 즉 역사가들이 살고 있는 시대에서 역사가들이 선험적으로 결정을 한다. 따라서 역사책을 읽을 때 일차적 관심은 그 책에 실린 사실보다 그 책을 쓴 역사가에 두어져야 한다. 그러나 이렇듯 역사서술에서의 역사가의 역할을 강조하다 보면, 결국 객관적 역사란 것이 전연 배제당하게 된다. 곧 역사란 역사가가 만들어 낸 것으로 돼 버리고 만다. 결국 이렇게 되면 완전한 회의주의에 빠지게 되어, ‘어린아이의 글자맞추기 같아서 아무것이나 마음에 드는 말을 이어붙이기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되어 버린다. 이것이 어떤 실용적 목적을 위한 역사지식의 추구로 이어져 사실을 짓밟아 버리는 경우는 그 폐혜가 엄청나다. 그러면 19세기의 경제발전후에 대공황과 1, 2 차 세계대전을 치룬 20세기 중엽인 지금 사실에 대한 역사가의 의무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앞의 19세기의 역사관이 사실에 치우친 과거편향의 역사관이라면 역사를 역사가의 주관적인 산물이라고 보는 뒤의 실용주의적 견해는 현재편향의 역사관이라고 할 것이다. 역사가는 사실의 천한 노예도 아니고, 포악한 주인도 아니다. 역사가와 사실의 관계는 평등의 관계이고 서로 주고 받는 관계이다. 뿐만 아니라 역사가는 현재의 한 부분이고, 사실이라는 것은 과거에 속해 있기 때문에, 현재와 과거는 서로 상호작용한다. 역사가와 역사적 사실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 사실을 갖지 못한 역사가는 뿌리없는 존재로 열매를 엊지 못하며, 역사가가 없는 사실은 생명없는 무의미한 존재이다. 따라서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의 부단한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다. 2.사회와 개인 우리가 태어나자마자 세계는 우리에게 작용하기 시작해서 우리들을 단순한 생물적 단위로부터 사회적 단위로 바꾸어 놓는다. 역사시대든 선사시대든 어느 단계를 막론하고, 모든 인간은 하나의 사회 속에 태어나서 태어난 직후부터 사회에 의하여 형성된다. 그가 사용하는 언어도 개인적인 산물이 아니라 자기가 자라나는 집단에서 받은 사회적 획득물이다. 언어와 환경은 다 같이 그의 사상의 성격을 결정짓는 데 기여한다. 곧 그의 가장 최초의 관념을 타인들에게서 받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 밖에 서 있는 추상적인 개인이라는 개념을 쓸 경우에는 과거나 현재 어느 것도 참되게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역사가의 지식은 그 혼자만의 개인적인 소유물이 아니다. 아마도 많은 세대, 많은 나라의 국민들이 그의 축적에 참여했을 것이다. 그 행위가 역사가들의 연구대상이 되고 있는 과거속의 당사자들도 진공 속에서 행동하는 고립된 개인이 아니었다. 그들은 과거와의 관련과 자극 속에서 행동했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역사를 상호작용의 과정, 곧 현재의 역사가와 과거 사실과의 대화라고 말했다. 이제 이 방정식의 양 쪽에 있는 개인적인 요소와 사회적인 요소의 비중을 검토하고자 한다. 역사가는 어디까지가 단독의 개인이고, 어디까지가 자신의 사회 및 시대의 산물인가? 역사적 사실은 어디까지가 단독의 개인에 관한 것이고 어디까지가 사회적인 사실인가? 요컨대 역사가는 한 개인이다. 다른 개인들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하나의 사회 현상으로서, 자기가 속해 있는 사회의 산물인 동시에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그 사회의 대변인이다. 바로 이러한 자격으로 역사가는 역사적 과거의 사실들에 접근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가를 연구하기에 앞서 우선 그의 역사적, 사회적 환경을 연구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우리는 가끔 역사의 과정을 가끔 움직이는 행렬이라고 말한다. 이 행렬 속에서 역사가는 단지 한구석에 끼어서 터덜터덜 걸어가고 있는 또 하나의 보잘 것 없는 인물일 뿐이다. 만약 행렬이 휘어져 우로 돌고, 좌로 돌고, 때로는 거꾸로 되돌아간다면 행렬 각 부분간의 상대적인 위치도 항상 변하기 마련이다. 행렬이 움직여 나감에 따라 새로운 전망, 새로운 시각이 끊임없이 나타난다. 따라서 행렬속에 있는 역사가는 자기가 참여하는 행렬의 지점에서 과거에 대한 자신의 시각을 결정한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1848-1849 년의 독일 혁명의 암담한 실패와 굴욕에 깊은 환멸을 느꼈던 몸젠은 현실주의적 정치라는 명칭과 개념이 처음 나타났던 1850년대에 저술활동을 하면서, 정치적 포부 실현이 좌절됨으로써 생겨난 혼란을 일소해 줄 강력한 인물을 찾게 되었고 시이저를 이상화하게 된다. 또한 19세기 중엽부터 1914년에 이르기까지 영국의 역사가들은 역사적 변화라는 것을 보다 나아져 가는 진보로 밖에 볼 수 없었으며, 그후 1920년대부터 그들은 변화가 장래의 공포와 결부되고, 보다 못해지는 것으로 보게끔 되었다. 따라서 역사가가 문제에 접근하는 입장을 파악하지 않고서는 그의 연구를 충분히 이해할 수 없으며, 역사가의 입장 자체는 사회적, 역사적 배경에 뿌리를 박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역사적인 사실은 악한 존왕이나 착한 엘리자베드 여왕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며, 역사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개개인의 성격과 행동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공산주의의 기원과 성격을 분석하기보다는 그것이 칼 마르크스의 두뇌의 소산이라고 말하며, 볼셰비키 혁명의 깊은 사회적 제요인을 연구하기보다는 니콜라스 2세의 우매와 독일의 금력에 돌리며, 1, 2 차 세계대전에서도 국제체제의 근본적인 붕괴결과를 보기보다는 빌헬름 2세나 히틀러의 개인적인 악덕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우리의 복잡한 사회에 이를 적용한다는 것은 유치하기도 하지만 도저히 불가능하다. 첫째, 인간을 사회와 동떨어진 개인으로 구분할 수 있다는 그들의 발상자체가 틀렸다. 설혹 구분을 하더라도 그러한 개인조차도 자기가 충분히 의식하거나 기꺼이 시인한 동기에 의해서만 행동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무의식적인 동기나 시인하지 않은 동기에 대한 통찰을 배제하는 것은 한 눈을 억지로 감고 일을 하겠다는 태도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역사가 신의 섭리, 세계정신, 자명한 천명 등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역사는 상당한 정도로 숫자의 문제다. 역사가는 보통의 상황하에서라면 불만을 품은 한 농부나, 한 촌락에 관한 일을 알 필요는 없을 것이지만, 수천 개의 촌락의 수백만 명의 농부들은 역사가가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즉, 우리가 효과적인 역사운동에 다수의 추종자와 같이 소수의 지도자를 말하더라도 다수가 운동의 성공에 긴요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리고 역사적 사실이 소수의 의도에 의해서 이루어 졌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보이지 않는 손’이나 ‘이성의 간계’에서와 같이 역사적 사실은 무엇인가 아무도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역사과정을 뒤바꿔 놓는 성질이 있다. 그 이전에는 약 백년 동안 조그만 국지전밖에 없다가 1914년 이후로 우리들은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었다. 그렇다고 해서 19세기 후반의 75년간에 비해서 20세기 초반에 전쟁을 원한 개인이 많았다거나 평화를 원한 개인이 적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결국 역사란 현재를 대표하는 역사가와 과거를 대표하는 역사적 사실속의 개인이라는 추상적인 고립된 개인들 사이의 대화가 아니라 오늘의 사회와 어제의 사회 사이의 대화이다. 과거는 현재에 비추어 볼 때에만 비로소 이해될 수 있고, 또한 현재도 과거에 비추어 볼 때에만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 3.역사와 과학과 도덕 역사가 과학이 아니라는 것은 영어 사용세계에서 나타나는 특유한 용어상의 문제다. 유럽의 기타 용어에서는 science에 해당하는 말 속에 어김없이 역사가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우선 사실을 수집하라, 그리고 나서 이를 해석하라는 역사의 귀납적 방법은 과학적인 것이며, 이것을 뒤집을 만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떤 대상의 과학적 방법을 통한 이해의 증진을 과학이라고 볼 때, 역사는 하나의 과학이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갈릴레오와 뉴턴 이래로 ‘법칙’이라는 말은 영광의 구름에 싸여 전해졌다. 자연과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사회과학도들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기들의 연구에 ‘법칙’을 도입했다. 그러나 20세기초 양자물리학을 비롯한 현대물리학의 개념으로 보면 자연과학이 말해주는 법칙도 하나의 확률을 가진 개연성에 불과할 뿐이며 보편적인 존재법칙이라는 것은 의심되기 시작됐다. 사회과학에서도 20세기의 양 대전을 치루면서 사회의 발전을 이야기하는 법칙이라는 것은 회의되었다. 법칙이라는 것은 논박을 받아 반증될 수 있는 하나의 가설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개연적이고 부분적인 가설들을 검증해야 하며, 발전적인 수정의 여지가 항상 남아 있도록 잠정적인 근사치에 만족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가설체계로서의 과학에서도 발전은 있다. 예를 들어 막스 베버가 프로테스탄티즘과 자본주의와의 관계를 진단한 것을 이제 법칙이라고 말할 사람은 없지만, 이 가설에 자극받아 시작된 연구들이 진전됨에 따라 어느 정도 수정되기는 했지만 위의 두 운동에 대한 우리들의 이해를 넓혀 준 것만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역사를 과학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논거를 차례로 검토해 보자. 첫째, 그들은 역사는 특수와 개별을 다루고 과학은 일반과 보편을 다룬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세상에 명칭 이외에 보편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같은 명칭을 가진 사물도 그 하나하나는 모두가 개별적이고 단일하기 때문이다. 지질학상 똑같은 두 개의 지층이 있을 수 없고, 동종이라고 해도 똑같은 두 마리의 동물이 있을 수 없다. 이렇듯 우리가 언어를 사용한다는 그 자체가 역사가로 하여금 과학자와 마찬가지로 일반화를 불가피하게 만들고 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과 2차 세계대전은 매우 다른 것이고, 또한 양자가 모두 특수하지만 역사가들은 양자 모두 전쟁이라고 부른다. 일반 역사를 읽는 사람들이 전쟁이라는 역사가들의 표현에 동의한다면 그들도 벌써 역사가와 마찬가지로 일반화의 상습자들이다. 즉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현재의 자기에게 가까운 다른 역사적 상황에 적용해 보게 되며, 이는 과거와 현재의 이해라는 역사학의 본질에 가깝다. 따라서 일반화가 역사와 거리가 멀다는 이야기는 타당하지 못하며, 오히려 역사는 일반화 위에서만 생장할 수 있으며, 역사가를 역사적 사실의 수집가와 다르게 해 주는 것도 일반화라고 봐야 할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역사는 특수한 것과 일반적인 것과의 관계를 취급하는 것이다. 역사가에게 있어서의 사실과 해석을 분리시킬 수 없듯이, 특수와 일반도 서로 떼어 놓을 수 없으며, 또한 두 가지 중의 하나만을 위에 놓을 수도 없다. 둘째, 그들은 역사는 아무런 교훈도 가르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위에도 언급했지만 일반화는 역사로부터의 교훈을 얻기 위한 것이다. 곧 어떤 한 경우의 사건에서 얻어낸 교훈을 다른 경우의 사건에 적용한다는 것이다. 우리들이 일반화를 시도할 때에는 의시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이러한 일을 하려는 것이다. 나 자신의 소비에트연구에서도 프랑스혁명과 1848 년의 혁명, 1871 년의 혁명을 참조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실제 러시아 혁명을 실현시킨 사람들은 그 이전의 혁명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렇게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다는 것이 과거에서 현재로의 일방적인 과정일 수만은 없다. 과거에 비추어 현재를 배운다는 것은 동시에 현재에 비추어 과거를 배우는 것이기도 하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상호관계를 통해 서로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북돋운다. 셋째, 그들은 역사는 예견할 수 없다고 한다. 물리학자들조차 사건발생의 개연성만을 다룬다고 이야기 하는 현대 물리학의 상대성이론의 경우는 접어 놓더라도, 중력의 법칙이 저 특정한 사과가 확실히 땅에 떨어지리라고 보증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사과를 따서 광우리 속에 집어 넣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역사가도 불가피하게 일반화를 하게 되며, 이를 통해 비록 개별적인 예측은 아닐지라도 미래 행동을 위한 타당하고 유용한 일반적인 지침을 마련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가는 특정할 예측을 할 수 없다. 왜냐면 특정한 것이란 특수한 것이고, 거기에는 우연적인 요소가 끼어들기 때문이다. 결국 역사가와 자연과학자들은 근본적으로 서로 다르지 않다. 넷째, 그들은 역사에서 인간자신이 객체도 되고 주체도 되기 때문에 정확한 관찰이 불가능하고 주관적일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역사학을 포함한 사회과학은 그 모두가 주체와 객체를 엄격히 분리하는 인식론-이런 인식론은 현대 자연과학에서조차도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과는 양립될 수 없다. 왜냐면 인간은 주체인 동시에 객체이고 연구자인 동시에 연구대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찰자와 관찰대상, 사회과학자와 그의 자료, 역사가와 역사적 사실과의 상호관계는 연속적인 것이며 부단히 변화한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역사와 사회과학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역사에는 종교와 도덕이 개입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진지한 천문학자가 신을 믿을 수 있듯이 진지한 역사가도 역사적 사실을 설명하는 데 있어 신의 조화력에 의존하지 않고 풀어나갈 수 있으며 동시에 그 자신이 신을 믿을 수 있다. 즉, 과학이라는 조커없는 트럼프 놀이를 하는 것과 신을 믿는 것은 별개다. 역사와 도덕의 문제를 보자. 우리들의 법정은 살아서 활동하는 실체들에 대한 재판을 위한 법정이고, 그 밖의 사람들은 이미 그들 시대의 법정에 출두했기 때문에 두 번 다시 유죄와 무죄의 판결을 받을 수는 없는데도 불구하고 어떤 역사가들은 이러한 사실을 잊고 그들을 고발한다. 헨리 2세의 경우처럼 공적인 문제에 그의 도덕적인 비행이 영향을 크게 끼치지 않은 경우에 그의 도덕성을 문제 삼는 것은 의미가 없으며, 아인시타인이 사생활에서 설혹 모범적이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그의 과학적 업적에는 조금의 손상도 없다. 그렇다고 개인적인 도덕이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며, 역사가들은 개인의 사생활을 공적인 행위에 대해서만 문제 삼는다는 것이다. 역사가는 재판관은 아니며, 사형선고를 내리기를 좋아하는 재판관은 더욱 아니다. 개인에 대한 도덕적 단죄는 집단이나 사회에 좋은 알리바이를 제공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란 하나의 투쟁과정이어서 그로부터 나타나는 결과는 우리들이 그것을 좋게 판단하든, 나쁘게 판단하든 직접 혹은 간접으로 어떤 집단을 위해 다른 집단을 희생시켜 성취된다. 엥겔스의 말에 따르면 역사는 모든 여신들 가운데서도 아마도 가장 잔인한 여신일 것이다. 전쟁에서 뿐만 아니라 ‘평화적인’ 경제발전에서도 이 여신은 시체의 산을 넘어 승리의 전차를 몰고 달린다. 예컨대 누구나 1780 년 경부터 1870 년 무렵에 걸친 영국의 산업혁명을 아마 아무런 이의없이 커다란 진보로 취급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토지로부터 쫓겨나 비위생적인 공장에 수용된 농민들과 착취당한 부녀자와 아동들은 진보를 위해서 불가피한 희생이었다고 말한다. 이상에서 역사가 과학이라는 주장을 했다. 나는 역사가와 지질학자의 틈이, 지질학자와 물리학자의 틈보다 더 깊다거나 메꾸기 어렵다고 보지는 않는다. 역사가와 자연과학자는 설명을 구하는 근본목표로 대상에 대한 인간의 이해증진을 목표로 하고, 근본절차로 귀납적 가설체계를 절차로 한다는 점에서 같다. 역사가는 다른 과학자와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왜?’라고 묻는 동물이다. 4.역사에서의 인과관계 역사가는 끊임없이 ‘왜?’라고 물으며 어떤 대답을 찾는다. 이러한 역사가들의 노력으로 역사가 원인과 결과라는 정연한 연쇄를 정리함으로써 얻어질 수 있다는 것이 널리 인정되어 왔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역사의 ‘법칙’이라는 말이 이미 통용되지 않게 되었고, 심지어 ‘원인’이라는 말도 유행에 뒤떨어 진 것이 되었다. 오히려 ‘원인’이라는 말 대신에 ‘설명’, ‘해석’, ‘상황의 논리’, ‘사건의 내적논리’ 등이 사용되고 있다. ‘1917 년 러시아에서 왜 혁명이 일어났는가?’라는 물음에 단 한 가지 원인만 들어서 답하는 수험생이 있다면 그는 운이 좋아야 3등급을 받을 것이다. 역사가들이 원인을 말할 때 한 사건에 대해 여러 가지의 원인을 들게 된다. 즉 역사가는 러시아의 군사적인 계속적 패배, 전쟁의 중압 밑에서의 러시아 경제의 붕괴, 볼셰비키 당원들의 효과적인 선전, 농업문제 처리에 있어서의 짜르 정부의 실패, 가난하고 착취받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페트로그라드 공장지대로의 집중, 레닌과 같은 결단성 있는 인물 등을 들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에 수험생이 위의 역사가가 한 대로 한 다스 정도의 원인을 열거했다고 한다면 그는 2등급을 받기는 하겠지만 1등급은 못받을 것이다. 이 원인들은 장기적인 것이건 단기적인 것이건, 정치적, 경제적, 사상적, 개인적인 것이건 원인들을 닥치는 대로 모아 놓은 것처럼 되어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역사가라면 자기가 작성한 여러 원인의 목록을 앞에 놓고, 이 목록을 정리하고, 여러 원인들의 상하관계를 결정하고, 궁극적으로 어떤 원인이 곧 원인중의 원인인지 밝혀내려 할 것이다. 모든 역사적 논의라는 것이 어떤 원인을 우위에 놓을까 하는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앙리 포앙카레가 과학은 다양성을 향하여 그리고 통일성과 단순성을 향하여 동시에 전진한다고 했는데 이 말은 역사에도 해당된다. 그런데 역사에서 원인과 결과를 이야기하는 데 있어 두 가지의 매력적이지만 마음이 내키지 않는 길목이 있다. 그걸 살펴보자. 그 하나는 역사에서의 필연성이라고 말하는 ‘헤겔의 간계’이다. 결정론이라고도 하는 이것은 모든 일에는 하나 또는 몇 가지의 원인들이 있으며, 그 하나나 몇 가지의 원인들에 어떤 변화가 없는 한 변화가 결과에 아무런 변화도 주지 않는다는 논리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결정되어 있지 않은 인간이란 사회 밖에 존재하는 개인처럼 하나의 추상에 불과하다. 모든 일에 원인이 있다는 공리는 우리들의 주위에서 진행되는 일들을 이해하기 위한 인간 능력의 전제조건이다. 역사가의 경우에도 일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인간행위에는 원칙적으로 밝혀낼 수 있는 원인이 있다고 믿고 있다. 만일 이러한 전제가 성립되지 않는다면 일상생활과 마찬가지로 역사도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원인을 연구하는 것이 역사가들의 특수한 직능이다. 그렇다고 해서 역사가가 자유의지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자유의지에서 나온 행동에는 원인이 없다고 하는 당치도 않은 가설을 거부한다는 것 뿐이다. 역사가들이 불가피성이라는 말을 쓸 때 그것은 조금 과장된 말로서 여러 요인의 결합관계가 사람들로 하여금 그러한 사건을 기대하게 할 만큼 압도적으로 강했다는 데 불과하다. 따라서 ‘불가피하다’는 말보다는 ‘개연성이 높았다’라고 쓰는 것이 더 현명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불가피성에 대해서 ‘만약’이라는 질문을 계속 해대면서 가상학파가 반대를 한다. 그들은 장미전쟁은 불가피했는가라는 물음은 넘어가지만 러시아 혁명은 불가피했는가라는 물음을 물고 늘어지면서 불가피성을 거부하려 하고 있다. 이것은 러시아 혁명이 아직도 그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으로 남아있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현대 역사가들의 두통거리라 할 수 있겠다. 다른 하나는 역사에서의 우연이라고 말하는 ‘클레오파트라의 코’이다. 역사는 어느 모로나 우연의 연속이고, 우연의 일치에 의해 결정된 전적으로 우발적인 원인의 소치라고 밖에는 볼 수 없는 사건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영국에서도 20 세기에 들어서면서 불안과 공포의 분위기가 짙어져 갔고 1914 년 이후에는 그것이 더욱 현저해 졌는데, 영국에서의 역사가들이 역사에서의 우연의 중요성을 새삼스레 강조하고 나온 것이 바로 이 시기였다. 이것은 역사적 사건이 융성과정이 아니라 퇴락과정에 있는 집단이나 국민에게서 강조되는 이론이며 시험의 결과가 운이라고 믿는 열등생에게나 있을 법한 이론이다. 그러나 역사에 있어서 이러한 우연적 요소의 침입을 막아 보려 한 최초의 인물은 몽테스키외인데, 그에 의하면, 만일 어떤 전투에서 우연히 져서 국가가 멸망했다면 단 한번의 전투로도 국가가 망해 버릴 만한 일반적인 원인이 있다. 즉 어떤 일을 운이 나빴다고 기술하는 것은 그 원인을 캐내는 귀찮은 의무로부터 벗어나려 할 때 즐겨쓰는 방법이다. 진지한 역사가라면 지금까지 우연한 것으로 다루어 오던 것을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라, 보다 합리적으로 설명될 수도 있고 보다 광범한 사건의 틀 속에 집어 넣어서 의미를 밝힐 수도 있다. 앞에서 역사가는 사실을 선택해서 역사적 사실을 만들어 낸다고 했는데, 역사적 원인도 이와 같다할 것이다. 역사가와 원인의 관계는 역사가와 사실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이중의 상호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원인은 역사과정에 대한 그의 해석을 결정하는 동시에, 그의 해석은 원인의 선택과 정리를 결정한다. 역사가는 과거의 경험, 즉 자기의 손에 미치는 범위에 한해서 원인을 찾아내려고 하며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컸다든가, 레닌이 일찍 사망했다 든가 하는 식의 우연에 대해서도 동일한 기회가 주어질 수 있다. 역사란 역사적 의의라는 관점에서 본 선택의 과정이다. 역사는 현실에 대한 인식적 태도에서 뿐만 아니라 인과적 태도에서도 선택체계라고 할 수 있다. 역사가는 사실의 무한한 망망대해에서 자기 목적에 의미있는 것을 골라내는 것처럼, 원인과 결과에 대해서도 같은 방법으로 골라낸다. 이때 그는 합리성에 의해서 선택을 하게 되는데 합리적 원인은 다른 나라, 다른 시대, 다른 조건에서도 잠재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유효한 일반화이며 그로부터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것을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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