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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와 처벌 (커버외피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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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5
ISBN-10 : 8930032486
ISBN-13 : 9788930032483
감시와 처벌 (커버외피없음) [양장] 중고
저자 미셸 푸코 | 역자 오생근 | 출판사 나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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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7월 1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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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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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의 탄생과정을 심층적으로 고찰하다! 『감시와 처벌』은 처벌의 종류와 감시방법, 감옥의 탄생과정을 심층적으로 고찰한 책이다. 감옥과 처벌의 내면적, 외형적 변화를 통해 근대 이후의 행형사법제도와 권력의 관계를 규명하고 있다. 저자는 보다 정교해진 행형기술이 사회전체를 통제하고 조종하는 국가관리술로 발전했음에 주목하며, 감옥, 소년원 등에서 주로 활용됐던 복종, 시간표에 의한 인력관리, 규율에 대한 강조가 군대, 학교, 병원, 공장 등 사회전체에 적용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저자소개

목차

역자서문

제1부 신체형
제1장 수형자의 신체
제2장 신체형의 호화로움

제2부 처벌
제1장 일반화한 처벌
제2장 유순해진 형벌

제3부 규율
제1장 순종적인 신체
ㆍ분할의 기술
ㆍ활동의 통제
ㆍ발생의 구조
ㆍ힘의 조립

제2장 효과적인 훈육방법
ㆍ위계질서적 감시
ㆍ규범화한 제재
ㆍ시험

제3장 팜옵티콘 감시체제

제4부 감옥
제1장 환전하고 준엄한 제도
제2장 위법행위와 비행
제3장 감옥체계

책 속으로

출판사 서평

책 속 한 문장

  • 황성식 님 2012.12.14

    사형이 하나의 신체형인 것은, 사형이 단지 생존권의 박탈이 아니라 계산될 수 있는 고통의 점진적 증가의 기회와 종결이라는 점에서이다. p.67

회원리뷰

  • [서평] 규율권력과 자발적 복종 <감시와 처벌 : 감옥의 탄생> 미셀 푸코 저, 오생근 역, 2001. 11., ...

    [서평] 규율권력과 자발적 복종 <감시와 처벌 : 감옥의 탄생>

    미셀 푸코 저, 오생근 역, 2001. 11., 464쪽, 나남출판


    "손에 2파운드 무게의 뜨거운 밀랍으로 만든 횃불을 들고, 속옷 차림으로 노트르담 대성당의 정문 앞에 사형수 호송차로 실려 와, 공개적으로 사죄할 것" 다음으로 "상기한 호송차로 그레브 광장에 옮겨진 다음, 그곳에 설치될 처형대 위에서 가슴, 팔, 넓적다리, 장딴지를 뜨겁게 달군 쇠집게로 고문을 가하고, 그 오른손은 국왕을 살해하려 했을 때의 단도를 잡게한 채, 유황불로 태워야 한다. 계속해서 쇠집게로 지진 곳에 불로 녹인 납, 펄펄 끓는 기름, 지글지글 끓는 송진, 밀랍과 유황의 용해물을 붓고, 몸은 네 마리의 말이 잡아끌어 사지를 절단하게 한 뒤, 손발과 몸은 불태워 없애고 그 재는 바람에 날려 버린다."(23쪽)


    <감시와 처벌>의 첫 문단은 위와 같이 시작한다. 18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실재했던 유죄판결문 중 일부이다. 현대인으로서는 매우 충격적인 장면이다. 실재했던 판결문은 프랑스 부르봉 왕조의 루이 15세를 암살하려다 미수에 그친 다미엥이라는 사람에 대한 것이다.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기 전 18세기 후반에 일어난 일이다.

    한반도에서도 20세기 이전의 형벌방식은 비슷했다는 주장이 있다. 조선시대 대역 죄인에 대한 능지처참형이 바로 그것이다. 성삼문 등 사육신이나 수많은 사화와 민란의 주인들이 받은 형벌을 그 비교 대상으로 삼는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능지처참형이 18세기 프랑스의 다미엥이 받은 거열형과 비슷했을까. 하지만 구체적이고도 악랄하게 형벌을 집행한다는 측면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유사하지만 프랑스 지배자들이 조선의 지배자들보다 더 참혹했던 것이다. 서구인들의 과거 신체형은 한국인(동양인)의 상상을 넘는 공포 그 자체였다. 푸코는 이를 ‘지극히 화려하고 호화스런 의식’이라고 역설적으로 표현하였다.

    왜 이런 처벌을 내렸을까. 지배체제에 그리고 권력에 감히 도전하지 말라는 경고이다. 누구도 왕권이라는 권력에 도전하면 그런 처벌을 받을 것이라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민중의 반란을 사전에 방지하고자 하였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극약처방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극악한 신체형이 18세기 후반 이래 전반적으로는 감옥에 범죄인을 감금하여 교정하는 자유형으로 바뀌었다. 범죄를 저질러도 이제 더 이상 신체에 손을 대지 않는다. 감옥이라는 공간에 감금한 다음 규율을 통해 교육하여 새로운 인간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형벌의 목적이 되었다.

    (물론 이런 규정은 서구인들이 같은 서구인 범죄자들을 대하는 경우에 대한 것이다. 서구인들이 강제로 식민지로 삼은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대륙의 식민지에 대해서는 18세기 유럽의 잔인한 형벌체제를 그대로 유지했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경우도 일제강점기를 거쳐 20세기 말 전두환-노태우 군사정권 시절까지만 해도 공공연하게 고문과 구타가 존재했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탈북자에 대해서는 국정원의 고문과 악행이 여전하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것은 합리적 계산에 의거하여 효과적인 징벌의 원칙을 적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원칙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러 원칙이 있다. 이들 원칙 모두가 언뜻 보아도 매우 합리적이다. 첫 번째 원칙인 '양의 최소화 원칙' 하나만 보자.

    "범죄는 그것이 이익을 가져오는 것이기 때문에 발생한다. 범죄에 대한 그런 생각에, 그것보다 어느 정도 큰 형벌의 불이익을 결부시키게 되면 범죄는 저지르고 싶지 않은 행위가 될 것이다." (148쪽)

    가혹한 형벌을 신체에 부과하지 않아도 범죄인이 형벌의 불이익을 생각하여 범죄를 억제할 수 있을 정도면 충분하다. 오히려 그 이상의 처벌을 하려다 보면 범죄인은 완전범죄를 노릴지도 모른다. 그러면 범인 잡기만 어려워진다. 그것은 결국 범죄인이 권력을 농락하는 꼴이 된다. 그러니 이러한 원칙은 고도의 계산이 따른 것이다. 일종의 심리학이 동원된 것이다.

    사람을 진짜 다룰 줄 아는 사람은 강압적인 물리력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지적이고 관념적이어야 한다. 예컨대, 계량화를 통한 비용-효과분석을 형사정책에도 동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근대 이성의 합리주의적 사고가 아닌가. 이런 사고의 결과가 바로 신체형에서 감옥이라는 새로운 제도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형벌제도의 발달 때문에 권력은 그와 관련된 여러 가지 학문이 발달시켰다. ‘일망감시시설(팝옵티콘 panopticon)’, 즉 교도관 한명이 여러 죄수를 감시할 수 있는 시스템은 관리의 효율성을 불러 일으켰다. 건축학, 광학은 이 시스템을 바탕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재판 과정에서 죄인의 죄를 측정하기 위한 심리학, 병리학의 발달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즉, 권력은 자신이 필요한 학문만을 발전시키는 경향이 있다.

    새로운 감옥의 탄생은 단순한 형벌제도의 변화가 아니다. 푸코는 이 변화가 18세기 말부터 본격화된 인간과 사회를 합리적으로 관리하고 통제하는 '규율사회'의 건설이라는 측면과 밀접하게 관련된 것으로 본다.

    감옥은 그 규율사회의 하나의 전형일 뿐이다. 푸코에 의하면 “규율사회는 감옥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서 발견”된다. 학교, 병원, 군대, 공장 등 주요한 사회기관 모두는 알게 모르게 공통적으로 인간의 신체에 관한 과학적인 관리법을 적용하여 예속적이고 복종적인 인간을 만들어 내는 곳이다.

    푸코가 말하는 근대국가, 근대사회의 핵심은 바로 ‘복종하는 인간’이다. 사회의 시스템이 사람들을 자유로운 존재로 만들지 않는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사람, 사회가 규격화한 사람만이 ‘쓸모 있는 사람’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쓸모 없는 사람’, ‘이방인’, ‘사회부적응자’, ‘이탈자’, ‘범죄자’가 된다. 사회체제에 복종하는 사람으로 키워지고, 그렇지 않으면 도태된다. 어떤 경우에는 사회가 설정한 정상의 기준에서 일탈한 광인이 되어 ‘사회의 쓰레기’가 된다.

    “쓰레기가 되고 싶지 않으면 인간들이여 사회의 규율에 따르라.” 이것이 푸코가 주장하는 근대사회의 핵심이다.


    푸코가 관찰한 바로는 이러한 규율사회의 전형은 군인에서 시작되었다. 18세기 후반 탄생한 상비군들은 과거와는 다른 오합지졸이 아니었다. 이들의 신체는 길러졌고,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신체에서 ‘반항(저항)할 수 없는 인간’이 탄생하였다.

    "18세기 후반이 되자, 군인은 만들어지는 그 어떤 것이 되었다. 사람들은 틀이 덜 잡힌 체격, 부적격한 신체를 필요한 기계로 만들면서 조금씩 자세를 교정시켜 나갔다. 계획에 의거한 구속이 서서히 신체의 각 부분에 두루 퍼져나가 각 부분을 마음대로 지배하여, 신체 전체를 복종시켜, 신체를 언제든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러한 구속은 습관이라는 무의식적인 동작을 통하여 암암리에 그 작용을 계속하게 된다. 요컨대 '농민의 몸가짐을 추방해' 버리고, 대신에 '군인의 몸가짐'을 심어준 것이다." (204쪽)

    이런 시스템을 만들어 가는 것을 푸코는 하나의 정치(기술)로 보았다. 이 정치(기술)은 단지 신체를 표적으로 강건한 인간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분명 신체의 지배를 넘는 어떤 목적이 있다. 그럼, 그것이 무엇일까. 그렇다. 신체의 지배를 통해서 정신을 지배하는 것이 정치(기술)의 ‘최종 목적’이다.

    이 기술의 요체는 강제 지배가 아니다. 통제되고 있는 사람이 통제되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지 못하고 스스로 자기 의지를 토대로 통제된다. 자기의 내적인 욕망에 의해 스스로 순종적인 신민이 되어 권력의 그물코 속에 자기를 걸어 두는 것이라고. 우리는 스스로 기는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것도 우리가 원해서 말이다.


    “끊임없는 판단과 검사를 통해 인간 행동의 객관화와 자료화가 달성되며 이것이 근대 인간과학의 탄생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고”까지 푸코는 주장하면서 <감시와 처벌>을 마무리한다. "개인은 특별한 규율적 권력 기법이 생산한 실재"라는 것이다. 이 명제는 근 현대를 추동한 서양적 합리주의의 동역학에 대한 푸코적인 바깥으로부터의 사유가 도달한 한 극점으로서, 나중에 수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감시와 처벌>에서 제기하는 푸코적 권력론과 담론 이론의 통찰은, 권력과 지식은 서로 반대항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근대 이후 권력과 지식이 서로 갈수록 정교하게 얽혀가게 된다는 것이다. 합리성을 주창한 계몽주의의 득세 이후, 보다 세련된 권력일수록 스스로 진리와 객관성을 자임하고 채택하는 형태로 진화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진리나 합리성의 이념 자체가 '일정한 권력효과를 동반하면서 사용되는 말의 흐름과 쓰임으로서의 담론'인 것이다.


    서구인들은 자기의 기독교적 문화나 가치관과 다른 아시아, 아프리카나 중동 이슬람세계를 정복할 때 처음에는 군사력 같은 물리력에 의존했다. 그러나 물리적 강압만에 의한 지배가 오래 지속되기는 어렵다. 약소국의 시민들이 강국의 가치관과 문화를 부러워하고 자신의 것을 오히려 부끄러워할 때 강대국의 헤게모니가 뿌리내리기 시작한다. 강대국의 관점과 자신들의 시각을 약소국 주민들이 동일시할 때 강국의 지배는 거의 영속화된다. 결국 동양에 대한 서양의 지배는, 부정적인 동양관과 긍정적인 서양관을 동양인들 자신이 자발적으로 수용할 때 완성되는 것이다.

    예컨대 '오리엔탈리즘'은 동양(Orient)에 대한 어떤 이미지나 관점을 총칭한 것으로서 대부분 부정적인 요소들, 즉 동양이 미신적이고 퇴영적이며 후진적이라는 등의 이미지들로 채워져 있다. 동양이 이런 방식으로 채색되면 서양의 이미지는 당연히 그 반대가 된다. 즉, 서양적인 것은 과학적이고 진보적이며 선진적이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오리엔탈리즘이란 용어 자체가 서양 여러 나라들이 제국주의적 경략에 여념 없던 시절 서양인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쓰여졌다는 사실이다.


    일본제국주의의 식민강점기 그리고 미국제국주의의 미군정기와 한미동맹 체제는 ‘한국식 오리엔탈리즘’을 심어놓았다. 바로 식민지근대화론과 같은 식민사관과 군사작전권의 영구적인 포기, 그리고 각종 보수적 집회와 종교행사에 도배되는 성조기를 통해 서구인들의 ‘오리엔탈리즘’이 한국인들(특히 기득권층과 노인세대) 사이에 광범위하게 뿌리 깊게 새겨져 있음을 보여준다.


    [ 2017년 1월 1일]
  • 『감시와 처벌』은 근대 사회의 특성을 보여주는 모델로써 감옥을 제시한다. 이 책의 저자인 푸코는 이성과 계몽사상으로 대변되는 ...
    『감시와 처벌』은 근대 사회의 특성을 보여주는 모델로써 감옥을 제시한다. 이 책의 저자인 푸코는 이성과 계몽사상으로 대변되는 근대 사회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동학을 규율에 있다고 본다.
      이 책은 감옥을 감시 처벌의 기구로 설정하고 감옥에서 비롯된 근대 사회의 모델이 가정, 학교, 군대, 공장 등으로 이어지면서 사실상 인간의 이성과 자유를 주장하던 근대 사회가 감시와 규율이 지배하는 사회로 이해한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를 제시하기 위해 푸코는 계보학적 방법으로 근대 사회와 감옥의 관계를 기술하고 그 내부에 인간의 신체로 침투하는 미시권력에 대한 설명을 전개한다.
      여기서 푸코는 근대 사회로의 이행이 필연적인 역사의 과정이거나 역사의 진보라는 인식을 배제하고 있다. 즉, 기존의 인과적인 방식으로의 서술이 아닌 시간적․ 공간적 변화에 따라 사회 속에 존재하는 권력들과 담론들의 충돌과 역학 관계의 변화 과정을 기술하면서 근대 사회의 모델이 왜 감옥인가를 설명한다. 즉, 감옥 체제의 완성은 근대 사회의 완성과 일맥상통한 것이다.
      감옥은 보이지 않는 권력이 작동하고 그 권력에 순응하는 근대적 주체를 양산하는 미시 권력의 담론의 장이라고 볼 수 있다. 근대적 주체는 근대사회의 틀에 적합한 주체로 규율과 훈육으로 만들어진다. 근대적 주체를 만들기 위해 사회의 권력은 지속적으로 이성/비이성(또는 광기), 선/악, 정상/비정상으로 차별화하고 배제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근대적 주체라는 규격화된 모델이 형성되는 것이다.
      푸코는 벤담의 원형감시감옥(일망감시시설)을 미시권력 작동의 궁극적인 접점으로 보고 있으며 인간의 일상생활과 권력의 여러 관계의 작동을 보여주는 제도인 것이다.
     
      “<원형 감시장치>는 보는 것-보이는 것이라고 하는 하나의 대립된 사태를 분리하는 기계장치로서 그 원형건물의 내부에서 사람들은 완전히 보이지만 결코 볼 수 없고 중앙부의 탑 속의 사람들은 일체를 보지만 결코 보이지는 않는다.”
     
      즉, 원형감시감옥의 구조는 권력을 가진 자가 수형자들은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수 있지만 수형자들은 그들을 감시하는 권력자를 볼 수 없다. 그러나 수형자들은 보이지 않는 권력자가 그들을 감시하던 감시하지 않던 항상 권력의 가시권 안에 있음을 인식하게 되며 더 나아가 스스로 자신을 감시하는 권력을 생산한다.
       이쯤에 이르러 권력은 지배하는 권력이 아닌 생산하는 권력으로 기능이 역전된다. 권력은 국가권력과 지배권력만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분산되어 존재하는 모든 권력을 의미한다. 즉, 근대 사회는 관리체제로 이루어진 훈육 사회이며 규율이 강요되는 사회인 것이다.
     그러나 몇 가지 궁금한 점이 있다.
     어떠한 강제, 규율, 관리에 의해서 만들어진 근대적 주체를 주체라고 설명할 수 있는가라는 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또한, 이러한 규율 사회에서 형성된 근대적 주체들이 체제 순응적이기만 한 것인지, 덧붙여 자율적인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주체들의 투쟁이나 변혁의 시도는 가능하지 않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남기고 있다.
  • 감시와 처벌 | po**po | 2012.06.14 | 5점 만점에 4점 | 추천:0
    감시와 처벌. \   ...
    감시와 처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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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화된 사회. 이 사회 속에서 우리는 진정으로 자유롭다고 생각하는가. 여러 사회 철학자 루소, 로크, 홉스의 사회계약론의 이야기처럼, 우리는 권력 지배 계층의 요구와 감시가 아닌, 우리의 필요에 의해 우리 스스로가 모여 이 사회를 형성 했다고 믿는가, 현대의 모든 자본주의의 근본적 뿌리 안에서 우리가 철학적 개념적 사상의 물을 잘 주어서 나무의 가지가 생기고 질서유지와 사회 혼란의 방지 같은 열매를 맺었다고 생각하는가.
    하지만, 우리는 그 열매를 과연 따 먹어 본 적이 있는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가 그 나무를 자라게 했다고 자신할 수도 없으며, 우리가 물을 주었다고도 자신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 열매는 우리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애매모호하다. 할머니가 들려주시던 옛날이야기의 한 장면처럼 남의 집에 뿌리가 박혀 있는 감나무가 우리 집 담벼락을 어슬렁어슬렁 넘어와 우리 집 마당에 열매를 맺은 감나무를 바라보며, 우리는 그저 멍하니 열매를 바라만 보며, 열매가 탐스럽다고 느끼고 있다. 진정한 열매는 가질 수 없지만, 그 열매의 겉모습만 보며 기뻐하고 있는 것이다.
    열매는 권력의 실제다. 우리가 진정으로 가질 수 없는 자유의 모습이다. 우리는 그러한 열매를 지니고 살아가고 있다. 칼로 껍질을 까보면 속은 벌레로 가득 차있는 그러한 열매. 우리는 이렇듯 잘 싸여진 포장 안에서 어떤 권력의 꿈틀거림도 눈치 채지 못하고 자유로운 시민사회를 이룩했다고 기뻐해 왔다.
    푸코는 칼로 이 열매의 껍질을 벗긴다. 아주 낱낱이 벗긴다. 그리고 우리에게 껍질조차 남지 않은 진정한 열매를 바라보며, 우리 시대의 공포를 이야기한다.
    시대의 발전에 따른 시민의 인권의 의식적 향상을 이루었다고 착각하는 상황을 철저히 부순다. 프랑스의 혁명, 인권선언문의 발표가 인권 의식의 시작이라는 것을 부순다. 지금 현대의 감옥, 처벌 등의 우리가 규정했다고 믿는 여러 법과 법칙들로 우리의 진정한 사회를 구축해 나가고 있는 것이나 발전이 아닌, 단순히 권력 지배계층의 농락일 뿐이라는 것이라고 푸코는 솔직하게 진술한다. 이 사회를 유지하고 지켜나가는 것은 어찌 보면 다수의 시민이 아닌 소수의 현대 자본주의의 권력가라고 일지도 모른다고 이야기 한다. 그들의 이러한 질서유지가 아름다운 것이 아닌 우리 시민들에게는 또 다른 사회적 공포라고 그는 경고한다.
    인권의식이 발전은 처벌의 완화로 이어진다. 우리의 사상적 발전은 감옥의 현대화에 기여로 이어진다. 이 두 가지 명제를 사실이 아니라고 푸코는 주장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새로운 권력 지배층에 의한 소리 없는 지배 속에서 우리는 자유로운 삶을 누린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를 푸코는 감옥의 탄생과 시대에 따른 처벌의 변화를 가져와 이야기 하고 있다. 1부 신체형에서부터 제 4부 감옥까지. 푸코는 처벌과 규율 그리고 감옥을 이야기한다. 감옥의 역사를 단순히 나열한 것이 아닌, 이 책에 쓰여 있는 것처럼, 근대정신과 새로운 재판 권력과의 상관적인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감시와 처벌은 시대의 권력이 시민 지배를 어떻게 행하여 왔으며, 권력의 정체와 그 정체의 전략과 방법을 분석해내 이야기 하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이야기는 권력의 시대흐름의 변화의 양상이며, 권력에 대한 철학적, 이론적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통해 그는 이 사회의 지배계층의 교묘한 속임수를 날카롭게 지적해 내고 있다.
    나는 지금부터 지난번 독서 감상문과는 다르게, 현대 우리 사회 속에서 행해지는 권력 주체의 감시와 처벌을 찾고, 그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지배당하는지 이야기 하고 그 속에서의 공포심을 경각하려고 한다고 한다.
    첫 번째, 최근 가장 사회적 빅 이슈로 떠올랐던 민간인 사찰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2010MBC의 시사 고발 프로그램인 PD수첩에서는 대통령을 비방하는 동영상을 제작했다는 이유로 국무총리실의 집중 조사를 받은 김종익 한마음 대표의 사건을 집중 보도했다. 이 보도를 시작으로 청와대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사찰 이야기는 집중조명을 받게 되었다. 국무 총리실에서 한국노총의 간부를 미행한 사건 역시 밝혀지면서, 사찰의 범위와 수위에 대한 논란이 시작 되었다. 이는 국가 권력의 부정적 권력 행사이며, 권력의 오용이고 남용이다. 이는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 부정 사찰이 일부 정치적 색깔을 지닌 연예인들에게 까지 접근되어, 몇몇의 연예인이 이 때문에 피해를 보았다는 주장과, 그에 따른 사실 확인이 진행되어지고 있다는 보도와 뉴스도 접할 수 있었다. 우리들은 우리 눈으로 보이지 않는 권력의 실재를 확인 할 수 있었다. 민주주의 평등사회라고 외치는 이 사회에서도 분명히 권력지배층과 피지배계층의 두 분류로 나뉘어져, 우리가 끝없이 지배층의 감시에 경각심을 느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 해주고 있다.
    그리고 트위터와 페이스북등 소셜 네트워크를 통한 정치적 발언에 대한 제한과 더 큰 책임감을 둠으로써 우리의 자유적 정치적 의사 표명도 어려워 졌으며, 공개된 인터넷 공간이라는 곳에서 함부로 우리는 지배적이고 주도적인 권력에 대한 비판적 발언조차 자유롭지 못하고 감시를 받고 있다. 이 역시 감시의 주체가 존재하고, 미디어 매체를 통제하는 권력에 의해 피지배적 존재인 시민들이 그에 따른 처벌을 받을 수 있음을 이야기 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도 감시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완벽히 부정할 수는 없다.
    마지막 예시로, 요즘 언론 매체의 공정성을 지키기 위한 언론 노조인들의 파업진행을 통해 우리는 매스 미디어 매체 파업 등을 통해 언론 장악을 통한 국가 권력의 시민 통제가 가능함을 예상할 수 있다. 왜곡보도와 편파보도, 정부 옹호 보도와 같은 비판적 시각의 언론 매체의 역할을 망각한 채, 마치 권력의 대변인 같은 역할을 행해 나가는 매스미디어들의 역할 망각은 국민의 상황파악 능력과 정권 비판적 시각을 눈멀게 만들어 간다. 이것은 권력주체들의 시민통제를 유이하게 만드는 또 다른 방법으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5.18광주 민주화 운동의 보도, 광우병 촛불 시위 보도, 노무현 탄핵관련 보도, 한미 FTA 관련 보도, 한반도 대운하, 4대강 사업 관련 보도 등 문제 되어지는 왜곡 편파 보도가 어렵지 않게 발견되어지고, 이것은 또 다른 사회적 이슈를 일으켜 온다.
    이렇듯 몇몇의 사례에서 지금 현재 우리에게 존재하는 자유라는 권리를 약탈하고 표현하지 못하게 막음으로써 억압해 나가는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권력의 일면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권력은 우리에게 어렵지 않게 접근해 오고 있다. , 내면화의 개념이다. 우리는 이렇듯 권력에 본의 아니게 익숙해지고. 그것은 권력의 교묘한 규율과 훈련을 통해 일반시민들을 점점 더 다루기 쉬운 존재로 만들어 간다.
    권력이 일반 시민들 내면에 침투해 우리 사회 속에서 권력의 행사가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일반 시민들을 상대로 한 지식과 정보역시 그러한 권력의 관계 속에서 생성되어진다. 그렇기에 완전히 순수하고 본질적인 지식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도 어렵지 않다. 모든 지식은 권력 주체의 계획 밖에서 벗어나 발전할 수 없으며, 생성조차 힘들어 지기 때문이다. 이것은 지식을 만들어가는 몇몇의 조건들이 권력이라는 관계 속에 깊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식을 바탕으로 감옥은 탄생하였고, 감옥의 탄생과 현대 사회까지 이르는 모든 시민사회의 활동은 바로 권력주체에 의한 속임과 수법일 뿐이다. 근대 국가는 개인을 존중해주지만, 오히려 과거보다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 운영에 편리한 완제품형 인간들을 만들어 나가고 있던 것이다.
    권력의 내재화를 통한 효율적 감시와 처벌은 우리 일반 시민들의 자유를 뺏어나간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의 권리를 완벽히 되찾고 진정한 권리와 권력의 주체로서 두발로 당당히 서있을 수 있을까. 아니면 소리 없는 권력의 움직임에 가만히 모르는 척 앉아 있어야 할지는 끝없이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다.
  • 감시와 처벌 | po**po | 2012.06.11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철학자 미쉘 푸코. 90년대 우리나라에 부르디외, 보드리야르, 들뢰즈 등과 함께 프랑스 철학의 물결을 불러일으킨 사람이다. 프랑스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철학자이며 사르트르 이후의 최고의 철학자라고 칭송받는 푸코. 그가 집필한 책으로는 감시와 처벌, 광기의 역사, 지식의 고고학, 성의 역사 등이 있다. 읽을 때마다 감탄하게 되는 그의 철학적 사상을 엿볼 수 있는 책들이 많이 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라고 묻지 말아 달라고 하면서 자신의 직업과 사회적 위치에서 자유로웠던 사람. 동성연애자였으며, 에이즈로 자신의 생을 마감한 사람. 그는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뒤에 정신의학에 흥미를 가지고 그 이론과 임상을 연구하는 한편, 정신의학의 역사를 연구, 무의식적 문화의 체계를 분석하였으며 그것을 바탕으로 많은 책들을 발간하였다. 푸코의 책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에게 어떻게 지성인이라는 호칭을 붙일 수 있을까. 프랑스를 여행하는 친구에게 여행 선물로 푸코의 책을 선물해 준적이 있다. 언젠가 사회과목 선생님께서 프랑스 사람들이 사랑하는 철학자가 푸코라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여행을 다녀온 친구는 많은 프랑스의 휴양지에서 푸코의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나는 푸코의 책을 심도 있게 읽어본 경험이 없었다. 위대한 사람의 위대한 생각을 읽거나 듣는 것은 나에게는 크나큰 행복이기에 지친 대학 생활 속에서 이번 기회에 나는 푸코의 책 ‘감시와 처벌’을 읽어 보기로 했다. 또 다른 이유는 대학 생활 역시 감시와 처벌 속에 존재 한다고 생각하는 나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1757년 3월 2일, 국왕을 살해한 범인 다이앙에게 판결이 선고 되었다. 그레브 광장으로 끌고 가 그곳에 세워질 사형대 위에서 그의 가슴, 팔, 허벅지 그리고 종아리의 살점들을 발갛게 달군 집게로 떼어내고 그의 왼손은 국왕을 살해하고자 했을 때의 단도를 잡은 모습 그대로 유황불에 태우고 살점들이 떨어져 나간 곳에는 용해된 납과 끓는 기름, 불타는 송진 그리고 밀랍과 용해물을 붓고, 몸은 네 필의 말이 끌게 하여 네 조각을 내어 팔다리와 몸뚱이는 불에 태워서 재로 만든 뒤에 바람 속에 날려 보내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우리는 지금 이 판결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당시의 인권 의식이 지금 현대 사회의 인권 의식에 비해 현저히 낮았음을 느낀다. 하지만, 이 형벌은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것이었다. 국왕을 살해한 범인을 다루는 형벌은 지독히 잔인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 이었을 것이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형벌을 진행함으로서 다시는 그러한 일들이 재발하지 않고, 그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던지는 효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형벌의 잔인함의 차이. 그것이 푸코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핵심적 이야기 일까? 우리 인권 인식의 차이의 변화를 이야기 하려는 것일까? 현대의 사형 제도는 약물 주입을 통해 안락사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다미앙의 판결과는 다른 비공개 형식이다. 우리는 이것이 현대사회 시민의 인권 의식의 향상에 의한 결론이라고 이야기 한다. (물론, 사형제도 자체를 비판하고 비인권적 처사라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도 많이 존재한다.) 하지만, 현대에도 공개 처형은 존재한다. 북한의 인민재판, 중국의 사형 집행이 그 예이다. 현대 사회인들의 인권 의식의 향상이 이루어 졌다고 이야기하기 힘든 현대 사회의 이면이다. 우리는 뉴스를 통해 소식을 접하면서, 이와 같은 처벌과 처형이 ‘옳지 못하다’라고 이야기 한다. 하지만 우리가 지니고 있는 인권 의식이 전 과거 인식보다 진보되어졌다고 이야기 하기는 어려운 측면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인권’의 개념은 ‘정당하다’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 푸코는 감시와 처벌이라는 책 속에서 형벌 제도의 변화를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러나, 그 변화를 단순히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형벌 제도의 변화를 통해 시대의 권력이 어떠한 방법으로 개인을 통제하고 속박하여 왔는지, 개개인이 권력의 지배 속에서 어떻게 변화하여 왔는지 이야기 해 주고 있다. 그가 포커스를 맞춘 것은 이 책의 부제인 ‘감옥의 탄생’ 인 것처럼 18세기 후반에 감옥제도의 탄생과 그 제도가 일반화되고 보편화 되면서 어떤 규칙과 규정이 질서를 지배하고 그 지배하에 나타난 규율적인 사회가 어떻게 만들어 졌는지에 대해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감옥의 탄생. 예전에 나는 제레미 벤담의 공리주의를 심도 있게 읽어본 경험이 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이 것이 공리주의의 핵심 개념이다. 그곳에서 감옥의 운영. 즉, 판옵티콘의 개념을 알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벤담의 원형감옥이다. 원형으로 둘러쌓인 감옥에서 정 가운데 밝은 불빛으로 탑을 하나 세우고 죄수들을 감시하면, 최고 효율의 감옥 운영이 완성되는 것이다. 간수가 탑 위에서 죄수들을 감시하지 않아도 죄수들은 간수들의 부재를 확인할 수 없으니, 그들은 늘 ‘감시당한다’ 라고 생각하게 되는 원리 이다. 이렇듯, 늘 감시당한다는 가능성은 그들의 생각 속에서 내면화되어져 점점 당연함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푸코는 감옥 제도를 눈에 보이지 않는 권력이 이루어지는 전형적인 예로 이야기하면서, 제레미 벤담의 판옵티콘에 있어서 ‘내면화’의 개념에 주목한다. 권력의 지배는 피지배적 존재들에게 내면화 되어져 가는 것이다. 이러한 권력의 행사가 감옥제도에 한정되는 것이 아닌, 우리 사회 전체에 이입되어져서, 현대 사회를 규율적 권력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까지 작용하게 되는 감옥과 같은 사회로 만들어 간다고 보았다. 과거에는 권력 지배층의 권력 행사가 민중과 대중에게 폭압적이고 강압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공개처형과 잔인한 처벌과 같은 외형적인 형태로 처벌이 이루어져 갔다. 하지만,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권력 지배층의 권력 행사가 민중과 대중에게 질서와 규율을 스스로 내면화시킴으로서 폭압적이고 강압적인 권력의 행사의 필요성이 없어진 것이다. 푸코는 형벌제도가 18세기까지의 공개 처벌과 가혹한 처벌에서 계몽주의 시대의 인간주의적 개선 그리고 현대의 감옥의 탄생으로 변화하였지만, 이러한 변화는 프랑스 혁명 이후 인권선언문 발표로 인한 인권의식의 발전이나 개선에 의한 것이 아니라 권력의 작용에 있어서 일반 시민들을 길들이는 방식의 변화에 그치는 것이 전부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의 양식은 현대 사회로 다가올수록 조금 더 은폐되어지고 다방면에서 일반시민들에게 침투되어졌으며, 이것은 현대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내면화 되어졌다고 이야기한다. 지배계급의 권력은 이제 보이지 않는 형식으로 현대 시민 사회의 모든 생활 영역에서 우리의 정신, 신체 모든 것을 감시하고 통제해 나간다. 한마디로 사회를 감옥으로 규정지어 놓고 감시가 용이한 공간에 사람들을 묶어놓고 관리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일어나는 일들이다. 우리는 권력의 교묘하고도 부드러운 장난질에 속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학교의 교실은 선생님이 학생들을 모두 한 번에 잘 관찰할 수 있도록 배치되어지고, 선생님의 시선에 있어서 학생들은 감시를 당하게 된다. 학생들은 서로가 무엇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선생님은 학생들의 작은 행동까지도 모두 관찰 할 수 있게 된다. 권력의 눈은 피지배계급의 모든 것을 놓치지 않고 감시하게 되는 것이다. 결론은, 역사의 발전도 아니고, 인권의 발전 역시 아니며, 혁명의 계기를 통한 변화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단지 지배계급의 지배방식이 달라진 것이고, 이것은 피지배계층에게 스스로 내면화 되어져 우리는 지배계급의 권력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지배질서에 순응하며 살아가고 있다. 과거에 시계가 존재하지 않았을 때는 지각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현대에서는 시계가 존재함으로 인해 시간개념이라는 것이 생겼고 따라서 지각이라는 개념이 생겨났으며, 이에 따른 감시와 처벌이 생겨나게 되었다. 예전에는 처벌 받지 않는 것들이 비일상적인 일탈로 규정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것이 현대 자본주의 체제의 질서이다. 자본주의 체제에 있어서 권력의 주체들이 그들에게 어긋나는 것들을 일탈로 규정하고 피지배적 계층들에게 일탈에 대한 값으로 즉, 처벌로 그들의 권력을 행사해 나가는 것이다. 예전에는 동네에 바보가 한 두명 있었다. 그들은 아이들과 재밌게 놀고, 마을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함께 살아갔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는 그러한 사람들을 정신 병원에 격리 시켜놓고 그들을 비일상적인 존재로 일탈의 주체로서 격리 시켜 나간다. 예전에는 일상적으로 포용할 수 있었던 사람이 현대는 제제와 처벌의 대상으로 변해가는 한 예이다. 또 다른 예로는 예전에는 부모의 묘나 조상의 묘를 집 주변에 두는 경우가 많았다. 이것은 우리 사회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가 그리 크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는 납골당, 추모공원의 조성 같은 것으로 죽음과 삶을 분리 시켜 놓았다. 죽음이라는 존재는 자본의 합리성에 반행하는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처럼 현대자본주의에서는 자본의 합리성에 반하는 것을 일상에서 끊임없이 배제하고, 배제시킨 것에 대해 처벌 행위로 다룬다. 그리고 그것을 일탈 행위로 규정하고, 현대 시민들에게 일탈을 해서는 되지 않는 일이라고 스스로 내면화 시키며, 권력의 주체들은 현대 자본주의의 합리성을 효율화 시키고 합리화 시키는 것이다. 이제 권력은 감시를 통해 통제하고, 사회적 효율성을 높이며, 그러한 공간적 구조를 통해 권력이 원하는 질서를 만들어 간다. 더 나아가 권력의 이와같은 통제와 감시가 원활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 일정한 기준을 정립한다. 권력은 지식의 도움을 받아 정상과 일탈을 구분하는 기준을 만들어 일탈을 통제하며 규제한다. 그 규제는 다양한 공간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시간의 영역에서는 지각과 결석이 일탈로, 행위의 영역에 있어서는 부주의와 태만이, 태도에 영역에 있어서는 무례와 반항이, 언어의 영역에 있어서는 수다나 건방짐이, 신체에 관한 영역에 있어서는 버릇없는 자세나 적절치 못한 동작이나 불결함이 일탈로 규정지어 진다. 이는 일상생활의 가장 작은 부분까지 권력이 침투한 것이다. 그들이 규정한 정상적인 질서에 적응하지 않거나 반항하는 사람들은 규율의 감시, 처벌, 개선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기준이 우리 현대 사회에서는 선과 악의 구분의 기준이 되어진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의 모티브 소설 ‘조지오웰의 1984년’ 의 세계가 멀지 않았음을 느끼게 한 책이다.   ...
    철학자 미쉘 푸코. 90년대 우리나라에 부르디외, 보드리야르, 들뢰즈 등과 함께 프랑스 철학의 물결을 불러일으킨 사람이다. 프랑스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철학자이며 사르트르 이후의 최고의 철학자라고 칭송받는 푸코. 그가 집필한 책으로는 감시와 처벌, 광기의 역사, 지식의 고고학, 성의 역사 등이 있다. 읽을 때마다 감탄하게 되는 그의 철학적 사상을 엿볼 수 있는 책들이 많이 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라고 묻지 말아 달라고 하면서 자신의 직업과 사회적 위치에서 자유로웠던 사람. 동성연애자였으며, 에이즈로 자신의 생을 마감한 사람. 그는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뒤에 정신의학에 흥미를 가지고 그 이론과 임상을 연구하는 한편, 정신의학의 역사를 연구, 무의식적 문화의 체계를 분석하였으며 그것을 바탕으로 많은 책들을 발간하였다. 푸코의 책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에게 어떻게 지성인이라는 호칭을 붙일 수 있을까.
    프랑스를 여행하는 친구에게 여행 선물로 푸코의 책을 선물해 준적이 있다. 언젠가 사회과목 선생님께서 프랑스 사람들이 사랑하는 철학자가 푸코라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여행을 다녀온 친구는 많은 프랑스의 휴양지에서 푸코의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나는 푸코의 책을 심도 있게 읽어본 경험이 없었다. 위대한 사람의 위대한 생각을 읽거나 듣는 것은 나에게는 크나큰 행복이기에 지친 대학 생활 속에서 이번 기회에 나는 푸코의 책 감시와 처벌을 읽어 보기로 했다. 또 다른 이유는 대학 생활 역시 감시와 처벌 속에 존재 한다고 생각하는 나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175732, 국왕을 살해한 범인 다이앙에게 판결이 선고 되었다. 그레브 광장으로 끌고 가 그곳에 세워질 사형대 위에서 그의 가슴, , 허벅지 그리고 종아리의 살점들을 발갛게 달군 집게로 떼어내고 그의 왼손은 국왕을 살해하고자 했을 때의 단도를 잡은 모습 그대로 유황불에 태우고 살점들이 떨어져 나간 곳에는 용해된 납과 끓는 기름, 불타는 송진 그리고 밀랍과 용해물을 붓고, 몸은 네 필의 말이 끌게 하여 네 조각을 내어 팔다리와 몸뚱이는 불에 태워서 재로 만든 뒤에 바람 속에 날려 보내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우리는 지금 이 판결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당시의 인권 의식이 지금 현대 사회의 인권 의식에 비해 현저히 낮았음을 느낀다.
    하지만, 이 형벌은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것이었다. 국왕을 살해한 범인을 다루는 형벌은 지독히 잔인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 이었을 것이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형벌을 진행함으로서 다시는 그러한 일들이 재발하지 않고, 그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던지는 효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형벌의 잔인함의 차이. 그것이 푸코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핵심적 이야기 일까? 우리 인권 인식의 차이의 변화를 이야기 하려는 것일까?
    현대의 사형 제도는 약물 주입을 통해 안락사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다미앙의 판결과는 다른 비공개 형식이다. 우리는 이것이 현대사회 시민의 인권 의식의 향상에 의한 결론이라고 이야기 한다. (물론, 사형제도 자체를 비판하고 비인권적 처사라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도 많이 존재한다.) 하지만, 현대에도 공개 처형은 존재한다. 북한의 인민재판, 중국의 사형 집행이 그 예이다. 현대 사회인들의 인권 의식의 향상이 이루어 졌다고 이야기하기 힘든 현대 사회의 이면이다. 우리는 뉴스를 통해 소식을 접하면서, 이와 같은 처벌과 처형이 옳지 못하다라고 이야기 한다. 하지만 우리가 지니고 있는 인권 의식이 전 과거 인식보다 진보되어졌다고 이야기 하기는 어려운 측면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인권의 개념은 정당하다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
    푸코는 감시와 처벌이라는 책 속에서 형벌 제도의 변화를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러나, 그 변화를 단순히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형벌 제도의 변화를 통해 시대의 권력이 어떠한 방법으로 개인을 통제하고 속박하여 왔는지, 개개인이 권력의 지배 속에서 어떻게 변화하여 왔는지 이야기 해 주고 있다. 그가 포커스를 맞춘 것은 이 책의 부제인 감옥의 탄생인 것처럼 18세기 후반에 감옥제도의 탄생과 그 제도가 일반화되고 보편화 되면서 어떤 규칙과 규정이 질서를 지배하고 그 지배하에 나타난 규율적인 사회가 어떻게 만들어 졌는지에 대해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감옥의 탄생. 예전에 나는 제레미 벤담의 공리주의를 심도 있게 읽어본 경험이 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이 것이 공리주의의 핵심 개념이다. 그곳에서 감옥의 운영. , 판옵티콘의 개념을 알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벤담의 원형감옥이다. 원형으로 둘러쌓인 감옥에서 정 가운데 밝은 불빛으로 탑을 하나 세우고 죄수들을 감시하면, 최고 효율의 감옥 운영이 완성되는 것이다. 간수가 탑 위에서 죄수들을 감시하지 않아도 죄수들은 간수들의 부재를 확인할 수 없으니, 그들은 늘 감시당한다라고 생각하게 되는 원리 이다. 이렇듯, 늘 감시당한다는 가능성은 그들의 생각 속에서 내면화되어져 점점 당연함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푸코는 감옥 제도를 눈에 보이지 않는 권력이 이루어지는 전형적인 예로 이야기하면서, 제레미 벤담의 판옵티콘에 있어서 내면화의 개념에 주목한다. 권력의 지배는 피지배적 존재들에게 내면화 되어져 가는 것이다. 이러한 권력의 행사가 감옥제도에 한정되는 것이 아닌, 우리 사회 전체에 이입되어져서, 현대 사회를 규율적 권력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까지 작용하게 되는 감옥과 같은 사회로 만들어 간다고 보았다.
    과거에는 권력 지배층의 권력 행사가 민중과 대중에게 폭압적이고 강압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공개처형과 잔인한 처벌과 같은 외형적인 형태로 처벌이 이루어져 갔다. 하지만,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권력 지배층의 권력 행사가 민중과 대중에게 질서와 규율을 스스로 내면화시킴으로서 폭압적이고 강압적인 권력의 행사의 필요성이 없어진 것이다.
    푸코는 형벌제도가 18세기까지의 공개 처벌과 가혹한 처벌에서 계몽주의 시대의 인간주의적 개선 그리고 현대의 감옥의 탄생으로 변화하였지만, 이러한 변화는 프랑스 혁명 이후 인권선언문 발표로 인한 인권의식의 발전이나 개선에 의한 것이 아니라 권력의 작용에 있어서 일반 시민들을 길들이는 방식의 변화에 그치는 것이 전부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의 양식은 현대 사회로 다가올수록 조금 더 은폐되어지고 다방면에서 일반시민들에게 침투되어졌으며, 이것은 현대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내면화 되어졌다고 이야기한다.
    지배계급의 권력은 이제 보이지 않는 형식으로 현대 시민 사회의 모든 생활 영역에서 우리의 정신, 신체 모든 것을 감시하고 통제해 나간다. 한마디로 사회를 감옥으로 규정지어 놓고 감시가 용이한 공간에 사람들을 묶어놓고 관리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일어나는 일들이다. 우리는 권력의 교묘하고도 부드러운 장난질에 속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학교의 교실은 선생님이 학생들을 모두 한 번에 잘 관찰할 수 있도록 배치되어지고, 선생님의 시선에 있어서 학생들은 감시를 당하게 된다. 학생들은 서로가 무엇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선생님은 학생들의 작은 행동까지도 모두 관찰 할 수 있게 된다. 권력의 눈은 피지배계급의 모든 것을 놓치지 않고 감시하게 되는 것이다.
    결론은, 역사의 발전도 아니고, 인권의 발전 역시 아니며, 혁명의 계기를 통한 변화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단지 지배계급의 지배방식이 달라진 것이고, 이것은 피지배계층에게 스스로 내면화 되어져 우리는 지배계급의 권력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지배질서에 순응하며 살아가고 있다. 과거에 시계가 존재하지 않았을 때는 지각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현대에서는 시계가 존재함으로 인해 시간개념이라는 것이 생겼고 따라서 지각이라는 개념이 생겨났으며, 이에 따른 감시와 처벌이 생겨나게 되었다. 예전에는 처벌 받지 않는 것들이 비일상적인 일탈로 규정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것이 현대 자본주의 체제의 질서이다. 자본주의 체제에 있어서 권력의 주체들이 그들에게 어긋나는 것들을 일탈로 규정하고 피지배적 계층들에게 일탈에 대한 값으로 즉, 처벌로 그들의 권력을 행사해 나가는 것이다.
    예전에는 동네에 바보가 한 두명 있었다. 그들은 아이들과 재밌게 놀고, 마을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함께 살아갔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는 그러한 사람들을 정신 병원에 격리 시켜놓고 그들을 비일상적인 존재로 일탈의 주체로서 격리 시켜 나간다. 예전에는 일상적으로 포용할 수 있었던 사람이 현대는 제제와 처벌의 대상으로 변해가는 한 예이다.
    또 다른 예로는 예전에는 부모의 묘나 조상의 묘를 집 주변에 두는 경우가 많았다. 이것은 우리 사회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가 그리 크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는 납골당, 추모공원의 조성 같은 것으로 죽음과 삶을 분리 시켜 놓았다. 죽음이라는 존재는 자본의 합리성에 반행하는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처럼 현대자본주의에서는 자본의 합리성에 반하는 것을 일상에서 끊임없이 배제하고, 배제시킨 것에 대해 처벌 행위로 다룬다. 그리고 그것을 일탈 행위로 규정하고, 현대 시민들에게 일탈을 해서는 되지 않는 일이라고 스스로 내면화 시키며, 권력의 주체들은 현대 자본주의의 합리성을 효율화 시키고 합리화 시키는 것이다.
    이제 권력은 감시를 통해 통제하고, 사회적 효율성을 높이며, 그러한 공간적 구조를 통해 권력이 원하는 질서를 만들어 간다. 더 나아가 권력의 이와같은 통제와 감시가 원활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 일정한 기준을 정립한다. 권력은 지식의 도움을 받아 정상과 일탈을 구분하는 기준을 만들어 일탈을 통제하며 규제한다. 그 규제는 다양한 공간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시간의 영역에서는 지각과 결석이 일탈로, 행위의 영역에 있어서는 부주의와 태만이, 태도에 영역에 있어서는 무례와 반항이, 언어의 영역에 있어서는 수다나 건방짐이, 신체에 관한 영역에 있어서는 버릇없는 자세나 적절치 못한 동작이나 불결함이 일탈로 규정지어 진다.
    이는 일상생활의 가장 작은 부분까지 권력이 침투한 것이다. 그들이 규정한 정상적인 질서에 적응하지 않거나 반항하는 사람들은 규율의 감시, 처벌, 개선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기준이 우리 현대 사회에서는 선과 악의 구분의 기준이 되어진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의 모티브 소설 조지오웰의 1984의 세계가 멀지 않았음을 느끼게 한 책이다.
     
     
     
     
  • 감옥의 탄생 | lm**3 | 2010.10.03 | 5점 만점에 4점 | 추천:0
    이 책은 꽤 오래된 책이지만 지금까지도 그 자료의 가치는 충분한 것 같다. 내가 ‘감시...

    이 책은 꽤 오래된 책이지만 지금까지도 그 자료의 가치는 충분한 것 같다. 내가 ‘감시와 처벌’을 알게 된 것은 감옥에 대한 어느 리포트를 쓰고 있었을 때였는데, 이 책의 부제가 ‘감옥의 탄생’인만큼 평소에 접할 수 없었던 철학적인 내용과 실제 감옥 사례가 나와 만족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미셸 푸코하면 ‘푸코의 진자’라는 책만 떠오르는데, 그것이 검색해보니 미셸 푸코의 책이 아니었다. ‘장미의 이름’으로 유명한 움베르트 에코가 쓴 또 다른 책이 바로 ‘푸코의 진자’였고 그 책은 어렵기로 악명 높은(?) 책이었다. 거기에 나오는 푸코가 미셸 푸코와 연관 있는지는 알 길 없지만 미셸 푸코 본인이 쓴 책 중 가장 유명한 책이 이 감시와 처벌이다. 그 외에도 ‘비정상인들’ ‘담론의 질서’등을 쓴 것을 보니, 그의 관심사를 대충 읽어 내릴 수 있었다.

    감시와 처벌은 생각보다 재미있는 책이다. 저자가 프랑스인이기 때문에 책의 사례도 상당부분 자국의 내용을 다루고 있다. 첫 번째 챕터는 감옥이 등장하기 이전의 처벌 행태를 보여준다. 나는 감옥이란 원시시대부터 등장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감옥은 어느 정도 사회체제가 갖춰졌을 때 등장하는 거였다. 그래서 이전에는 ‘신체형’이라 하여 죄수 본인의 신체에 제재를 가하는 방법이 일반적인 처벌이었다. 고통을 느끼면 반응한다. 상당히 원초적인 이러한 방법은 생각보다 심각한 부작용을 낳게 되는데, 분명 죄를 지어 처벌받는 인간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이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보다, 순간적으로 감정적인 판단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왕권체제에서 계몽된 자아를 가지기 시작하자 죄인에 대한 처벌도 신체형에서 감옥 형으로 옮겨 간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와 같은 처벌 방식보다 진화된 처벌이다. 죄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그의 사상을 지배하는 일종의 정신적 형벌인 감옥은 그 역시도 초기엔 허술했다. 감옥의 방보다 죄수가 넘쳐나서 본래의 기능을 다하지 못한 때도 있었고, 단두대 처형이 한창일 프랑스 대 혁명기의 감옥은 호화스러울 때도 있었다. 그러나 감옥은 사라지지 않고 더욱 진화한다. 감옥에서 무의미하게 시간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죄인을 감화하는 역할을 하기위해 일과표가 생긴다. 탈출을 막기 위한 건축, 죄인의 분석을 위한 심리학도 같이 발달하게 되어 감옥은 그 자체로 새로운 사회 체계를 만든다.

    이러한 감옥의 형태는 ‘판옵티콘(Panopticon)’으로 절정에 달했다고 할 수 있다. 최대한 효율적으로 감시할 수 있는 방법, 그것은 또한 죄인이 가진 인권의 최소한도 보장하지 않는다는 위험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감시와 처벌’이 중요한 이유는 대상이 감옥에만 한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죄수는 사회로 돌아가기 위해서 재학습하는 과정을 거친다.

    현대의 사회도 사회구성원들을 끊임없이 재학습시킨다. 그리고 ‘예비 죄수’가 될 수 있는 수많은 구성원들을 감시하려한다. 그렇다면 인간의 존엄성, 자유라는 권리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그것이 이 책을 읽고 많은 사람들이 되찾아야 할 의무이다. 그러나 나 역시 사회의 순진한 죄수가 되어 그 시스템을 따르고 있다는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감옥과 죄수, 사회와 인간의 관계는 서로 공생관계일수도, 적대 관계일 수도 있다는 아이러니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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