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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하게 참 철없이(창비시선 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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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쪽 | A6
ISBN-10 : 8936422839
ISBN-13 : 9788936422837
간절하게 참 철없이(창비시선 283) 중고
저자 안도현 | 출판사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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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 21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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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시리즈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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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집 <연어>로 잘 알려진 안도현의 아홉 번째 시집. 2004년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를 펴낸 이후 4년 만의 시집으로, 시인이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어왔던 아름다운 소재들을 뛰어난 감성으로 노래하며 잃어버린 추억과 풍경들을 되살려낸다.

특히, 음식을 통해 편안하고 따뜻했던 공동체의 원형을 복원함으로써 사람들이 서로를 아끼는 고운 마음의 세계를 고스란히 살려낸 점이 돋보인다. 조용하고 정성스럽게 밥을 짓던 어머니의 손길처럼 잔잔히 마음의 양식을 만드는 시인의 시들이 총 3부로 나누어 그려지고 있다.

<무말랭이>
외할머니가 살점을 납작납작하게 썰어 말리고 있다
내 입에 넣어 씹어먹기 좋을 만큼 가지런해서 슬프다
가을볕이 살점 위에 감미료를 편편 뿌리고 있다

몸에 남은 물기를 꼭 짜버리고
이레 만에 외할머니는 꼬들꼬들해졌다

그해 가을 나는 외갓집 고방에서 귀뚜라미가 되어
글썽글썽 울었다

저자소개

목차

제1부
공양
가을의 소원
독거
월식
세상의 모든 여인숙
명자꽃
빗소리
기차
고니의 시작(詩作)
공부
사라진 똥
탁족도(濯足圖)
곡비
고양이뼈 한 마리
조문(弔文)
기러기 알
구절초의 북쪽
목판화

제2부
수제비
무말랭이
북방(北方)
물외냉국
닭개장
갱죽
안동식혜
진흙메기
건진국수
예천 태평추
돼지고기 두어 근 끊어왔다는 말
염소 한 마리
스며드는 것
무밥
콩밭짓거리
민어회
물메기탕
병어회와 깻잎
통영 서호시장 시락국
전어속젓
눈 많이 온 날
매생이국

제3부
백석(白石) 생각
허기
산가(山家) 1
산가(山家) 2
수련
응답
금낭화
둥근 방
칡꽃
나비의 눈
곡선들
겨울 삽화
오래된 발자국
쇄빙선
눈길
숭어
식구
물 건너는 자작나무
검은 리본

발문│박형준
시인의 말

책 속으로

어릴 때, 두 손으로 받들고 싶도록 반가운 말은 저녁 무렵 아버지가 돼지고기 두어 근 끊어왔다는 말 정육점에서 돈 주고 사온 것이지마는 칼을 잡고 손수 베어온 것도 아니고 잘라온 것도 아닌데 신문지에 둘둘 말린 그것을 어머니 앞에 툭 던지듯이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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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두 손으로 받들고 싶도록 반가운 말은 저녁 무렵 아버지가 돼지고기 두어 근 끊어왔다는 말
정육점에서 돈 주고 사온 것이지마는 칼을 잡고 손수 베어온 것도 아니고 잘라온 것도 아닌데
신문지에 둘둘 말린 그것을 어머니 앞에 툭 던지듯이 내려놓으며 한마디, 고기 좀 끊어왔다는 말
가장으로서의 자랑도 아니고 허세도 아니고 애정이나 연민 따위 더더구나 아니고 다만 반갑고 고독하고 왠지 시원시원한 어떤 결단 같아서 좋았던, 그 말 ― 「돼지고기 두어 근 끊어왔다는 말」부분

부엌에서 밥 끓는 냄새가 툇마루로 기어올라온다

빗소리는 왜 와서 저녁을 이리도 걸게 한상 차렸는가

나는 빗소리가 섭섭하지 않게 마당 쪽으로 오래 귀를 열어둔다

그리고 낮에 본 무릎 꺾인 어린 방아깨비의 안부를 궁금해한다 ―「빗소리」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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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잊었던 추억과 풍경들로 차려낸 따스한 시의 밥상! 수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안도현 시인이 아홉번째 신작시집 <간절하게 참 철없이>를 출간했다. 지난 2004년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를 펴낸 이후 4년 만이다. 이번 시집에서 그는 오랫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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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었던 추억과 풍경들로 차려낸 따스한 시의 밥상!
수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안도현 시인이 아홉번째 신작시집 <간절하게 참 철없이>를 출간했다. 지난 2004년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를 펴낸 이후 4년 만이다. 이번 시집에서 그는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어왔던 아름다운 소재들을 뛰어난 감성으로 노래하며 우리가 잊었거나 잃어버린 추억과 풍경들을 되살려낸다.
특히 먹거리(음식)라는 소재를 끌어와 아름다운 추억의 향기로 가득 채운 2부의 시편들은 각별한 주목을 요한다. 이 시들은 음식을 통해 편안하고 따뜻했던 옛 공동체의 원형을 복원함으로써 사람들이 서로를 아끼며 기리는 고운 마음의 세계를 고스란히 살려낸다. 살림의 매개가 되는 다양한 음식들은 저마다 풍요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끊임없이 불안에 떨어야 하는 현대의 속도전과 사뭇 거리가 먼 느리고 여유로운 행보를 생각게 한다. 시인은 조용하고 정성스럽게 밥을 짓던 어머니의 손길처럼 잔잔히 마음의 양식을 만든다. 그리고 다양한 음식의 추억과 이야기를 읽는 독자로 하여금 오래전에 상실했던 시간들을 되찾게 한다.

이 세계를 복원하고 공동체험을 환기시키는 시의 힘
이번 시집의 특장은 박형준 시인의 면밀한 분석과 애정이 담긴 발문 ?구름과 길과 기억을 버무린 음식의 시학?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에 따르면 안도현 시인은 이 집단, 저 집단, 그 집단의 철학이 아닌, 이 땅의 말씀을 시로 펼친다. 그래서 물과 바다가 우리와 형제지간이며, 우리가 할 일은 현대문명의 속도에 휩쓸리지 않고 모천으로 회귀하는 연어처럼 되돌아가 자연의 지혜와 조화되는 길을 찾아야 함을 깨닫게 해준다. 그렇다고 그 느낌과 생각을 선언적으로 강조하거나 극적인 구성으로 부풀리지도 않는다. 그저 고요하고 잔잔하게 어루만져 끝내 따스해지도록 만들 뿐이다. 손맛으로 밥상을 풍요롭게 일구었던 어머니, 그 밥상에 곡물을 대던 아버지처럼 말이다.
시인은 한 대담에서 자신이 음식시편을 쓴 내력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음식이라는 것은 기본은 미각이지만 음식을 보기 위해서는 시각이 필요하고, 후각도 필요하죠. 음식을 씹을 때는 청각도 필요합니다. 모든 감각의 총결집체가 음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음식에는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욕망이 한데 엉켜 있지요.”(『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2007년 11·12월호) 시인의 고백에서 알 수 있듯, 음식은 기억과 관계가 있다.

경북 북부지방 여자들은 음력 정월이면 가가호호 식혜를 만드는데, 찹쌀을 고들고들하게 쪄서 엿기름물에 담고 생강즙과 고춧가루 물로 맛을 내 삭힌 이 맵고 달고 붉은 음식을 특별히 안동식혜라고 부른다

안동식혜를 담아온 사발에는 잘 삭은 밥알이 동동 뜨고 나박나박 썬 무와 배도 뜨고 잣이나 땅콩 몇알도 고명처럼 살짝 뜨는데, 생전 이 음식을 처음 받아본 타지 사람들은 고춧가루에서 우러난 불그죽죽한, 그 뭐라 필설로 형용할 수 없이 야릇한 식혜의 빛깔 앞에서 그만 어이없어 ‘아니, 이 집 여인의 속곳 헹군 강물을 동이로 퍼내 손님을 대접하겠다는 건가?’ 생각하고는 입을 다물지 못한다 ― 「안동식혜」부분

이처럼 유년시절의 훼손되지 않은 공동체에 대한 그리움은 음식을 통해 형상화된다. 이렇게 각자가 자신의 삶에서 망각하고 있던 자신의 추억과 사람에 대한 새로운 환기를 이끌어내는 힘, 그것이 이번 안도현 시집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인의 독특한 시선과 깊은 몽상에 도달하게 되면 우리는 각자의 체험이 얼마나 유사한지, 혹은 공동체험이라 부를 수 있는 경이로운 지대가 존재할 수 있음을 불현듯 깨닫게 되는 것이다.

추억이 담긴 음식은 잘못된 지구화시대를 향한 아름다운 저항
오늘날 세계에서 초강대국의 경제 전략은 상상을 초월한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에 해당하는 식욕이 굴지의 거대기업이 생산한 농산물에 의존하는 형편이다. 녹색혁명이라는 허울 좋은 수사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우리는 이미 잘 안다. 유전자조작곡물로 전 세계의 밥상을 거머쥐려 하고, 패스트푸드 인스턴트식품으로 현대인을 속도전으로 내몬다. 우리가 손끝으로 눈길로 혀로 천천히 음미하는 먹을거리들은 기계화된 농업국가의 전략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있다.
이런 거창한 정세의 변화에 시인은 반응한다. 하지만 그 반응이 한낱 구호로 전락하지 않는 것은 그가 좀더 뿌리 깊고 은근한 전략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뛰어난 음식시편을 구사한 대표적인 시인은 백석을 들 수 있다. 우리는 이제 북의 l음식을 시 안에 차려낸 백석에 호응하는, 남쪽 음식을 아름답고 뛰어난 시로 일궈낸 안도현이라는 시인을 얻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안도현의 음식시편은 매우 래디컬한 정신에 더듬이를 대고 있다. 오래전 백석의 시세계가 그러했듯이 안도현 역시 가장 전통적인 정서의 표출을 가장하여 가장 근본적인 문제의 진단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시인의 진단은 의사의 것처럼 단정적이지 않다.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게 하는 힘이 사랑하는 마음의 함양과 추억으로의 회귀에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드높임과 파고듦에는 사람에게 갖는 무한한 신뢰가 배어 있다. 상대를 믿지 못해서 생기는 다변이 없이 오래 묵은 장맛처럼 그의 시는 천천히 깊게 여운을 남기며 퍼진다. 그리고 편안함을 준다. 이 편안함을 이끌어내기 위해 시인이 부릅뜬 눈으로 지새웠을 밤들을 생각하거나, 그가 지켜보고 있었을 시간을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독자는 특별한 감동을 얻을 수 있다.

빗소리에 비벼지는 밥 짓는 연기, 시인은 밥 끓는 냄새에서 모두들 먹여살리는 공경심을 느끼고 “낮에 본 무릎 꺾인 어린 방아깨비의 안부”마저 궁금해한다. 인간이 모든 것을 움직이고 다스릴 수 있다는 오만함이 아니라 인간이 살려면 인간에게 희생하는 것들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행간에서 읽을 수 있다. 그 바탕에는 모든 것이 서로를 돕고 아름답게 연대되어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편안히 읽어가다 어느새 깊은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는 시편들
실감나게 입 안에 감기는 맛을 선사하는 음식시편 외에도 시인은 잊었던 첫사랑(?명자꽃?)이나 사물과 자연의 여백과 향기(?공양? ?칡꽃?), 허공의 깊이(?나비의 눈?), 길과 삶에 대한 깊은 사유(?조성오 할아버지?) 등을 아련한 울림으로 형상화해낸다. 그가 호명해내는 추억들을 따라 읽다보면 시집제목처럼 ‘간절하게 참 철없이’(?에천 태평추?) 그리워했던 기억들이 떠오르고 아리고 아름다운 풍경을 다시금 음미할 수 있다. 안도현의 시를 통해 우리는 나직이 내면으로 스며드는 회복과 치유의 풍경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시를 사랑하는 많은 독자들이 안도현의 작품은 즐겨 찾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는 독자와 같은 눈높이에서 추억의 시간여행을 떠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언제든 시인은 독자들을 태우고 말을 몰아가면서 자연스럽게 그가 보았던 세상과 추억 속으로 이끌어간다. 그 여행에서 독자는 단순한 추억의 기록이 아닌 삶의 주름을 어루만지게 되고 새로운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번 시집에 선보인 작품들이 주는 편안함은 손쉬운 화해의 몸짓이 아니다. 섣불리 삶의 깨달음을 노래하지도 않는다. 거기엔 삶과 인간사의 근원적인 물음과 대답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이미 사라져 없거나 죽어 보이지 않는 사람들, 기억과 풍경, 그리고 음식에 담긴 혼을 불러내고 부활시킴으로써 현대인들이 진정 회복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따스하고 편안한 시세계로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한편, 밀도높은 완성도로 말미암아 당대의 한국시사의 한 획을 긋는다고 평가될 만하다. 시인은 수준 높은 시적 경지를 보여줌과 동시에, 아무 생각 없이 쉽게 시를 집어든 사람까지도 깊은 시적 세계로 자연스레 빠져들게 하는 흔치 않는 장인적 솜씨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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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
안도현 시인이 ‘구름의 독거’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겠다. 빈 술잔은 채워주고 불쑥 떠나는 것들에겐 자기 살을 덜어주고 그러다 덜컥, 달라하지도 않은 숨결이며 노래며 심장 속 눈빛까지 다 내어주게 되는 일을 시인 역시 마다하지 않기 때문. ‘곡진함’이라는 말이 아직도 어울리는 자리가 있다면 드물게 남은 이러한 시의 마음 앞일 것이니. 안 보이는 곳까지 사무치게 바라보는 이 지독한 마음의 병이 시업이라면, 병든 자리 참 좋다. ‘길을 달려왔으나 정작 길을 데리고 오지는 못했다는 자책이 물소리 되어 발목을 묶는’ 이런 풍경을 시가 아니라면 어디에서 얻어 우리가 물속 깊이 젖을까. 잊었던, 혹은 잃었던 풍경들을 섬세하게 복원하며 시인이 읊조리는 노래들엔 감각의 깊이가 내장된 안 보이는 풍경들 가득하다. 무 명태 오이 갱죽 간장게장 시락국…… 별별 소소한 풍경들이 차곡차곡 쟁여진 시의 밥상 앞에서 한참을 놀다보니 ‘눈맛’ ‘손맛’ ‘입맛’이 모두 새로워진다. 추억이라고 믿었던 추억까지도 새로워진다. 햐! 시가 아니라면 도대체 어디서 이런 즐거움을 얻을까. ― 김선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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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

회원리뷰

  •  
     
    안도현 시인의「우리가 눈발이라면」은 2009년에 개편된 중학교 국어교과서에서
    <금성 (윤희원 외)>중학교 1학년 1학기 국어 교과서에 실린 시입니다.
    이 글은 안도현 시인의 시집인『간절하게 철없이』에 대한 리뷰가 아니라,
    안도현 시인의 작품 중에 한 편인「우리가 눈발이라면」에 대한 생각을 담았습니다.
     

     
    우리가 눈발이라면   
    안도현 
     
    우리가 눈발이라면
    허공에서 쭈빗쭈빗 흩날리는
    진눈깨비는 되지 말자
    세상이 바람 불고 춥고 어둡다 해도
    사람이 사는 마을
    가장 낮은 곳으로
    따뜻한 함박눈이 되어 내리자
    우리가 눈발이라면
    잠 못 든 이의 창문가에서는
    편지가 되고
    그이의 깊고 붉은 상처 위에 돋는
    새살이 되자
     

     
     * 목연 생각 : 안도현 시인은 2010학년도 1학년 교과서에  
    많은 작품이 실린 시인 중에 한 명입니다.
    이 시외에도 <살구꽃 지는 날>, <연탄 한 장>, <제비꽃에 대하여>,
    <철길> 등이 실려 있으니까요.
     
    그 중에서 내게 가장 친근감이 느껴지는 시가
    이 시 <우리가 눈발이라면>입니다.
    2001년에 개정된 7차교육과정에서도
    1학년 국어 교과서에 실려 있어서 10년간 보았기 때문이지요 *^^*
     
    그런 인연과 관계 없이
    이 시가 좋았습니다.
     
    진눈깨비는 가난하고 힘들게 사는 사람들을
    더욱 힘들게 만드는 존재이고,
    함박눈은 그들을 따듯하게 보듬는 존재겠지요.
    시인은 진눈깨비가 아닌 함박눈이 되어서
    이런저런 고민으로 잠 못 드는 이의 창문을 통해
    편지가 되어 위로하고
    새살이 되어 상처를 치료하자고 했습니다.
     
    이 시를 가르치면서
    어려운 사람을 배려하는 그 마음이
    눈물겹도록 고마웠지요.
    지금의 세상이 너무도 살벌하니
    이 시의 삶이 더욱 그리웠는지 모르겠습니다.
     
    언제 우리는 따뜻한 세상에서 살게 될까요?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강부자 고소영이 아닌
    서민을 위하는 세상이 어서 오기를 바라면서
    이 시를 다시 읽었습니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 들어선 이후 급격히 우경화가 되더니
    도종환 시인이 민주당 의원이 되었다고 그의 작품을 교과서에 빼니 마니 논란이 일더군요.
    안도현 시인의 작품 역시 그런 논란이 일지도 모르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려면 어떻습니다.
    세월이 흐르면 역사는 시비를 분명하게 기록할 테니까요.
    빌건대 안도현 시인은 김지하 시인이 걸은 길을 걷지 않게 되기를 빕니다.
     
    * 안도현(1961~ )  : 시인.  경북 예천에서 태어남. 원광대 국문학과 졸업.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뒤 작품 활동을 하고 있음.
    시집 <서울로 가는 전봉준>, <모닥불>, <외롭고 높고 쓸쓸한>,
    <그리운 여우>,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 <간절하게 참 철없이> 등과
    동시집 <나무 잎사귀 뒤쪽 마을>을 펴냄.
     
    * 자료 출처 : 2010학년도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이 배우는 국어교과서와
      <그대에게 가고 싶다, 2002년, 푸른숲>에 실려 있으며, 
      감상은 저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     몇몇 이웃님들이 말씀하시길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할 때가 있다면, ...
     
     

    몇몇 이웃님들이 말씀하시길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할 때가 있다면, 사계절이 뚜렷한 아름다움이라고 하신 게 생각난다. 특히나 가을이 주는 풍요로움과 넘치는 감성을 설명해 뭣하랴. 때론 주체할 수 없는 감정선의 대혼란기(?)처럼 가을이, 청명한 하늘이, 스산한 듯 이는 바람이 사람의 마음을 뒤숭숭하게 만든다, 는 불평의 소리 또한 없지 않지만, 그마저도 바람에 나뒹구는 낙엽이 귀엣말을 하는 것 마냥 혹은 수북이 쌓인 낙엽 위를 걸을 때만 만끽할 수 있는 아련하면서도 아릿한, 그런 기분 좋은 속삭임마냥 사람들은 예의 그 사치스러운 불평을 즐기며 만끽하는 게 아닌가 싶다.


    나에게 가을이란 어떤 의미일까. 깊이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적어도 나에게 이것 하나만은 명징하게 말해주는 셈이다. 내가 아직까지도 설익은 독자에 지나지 않음을 여실히 증명해주는 것 같다고 할까. 봄에는 너무 싱그러워서, 여름에는 너무 더워서, 겨울에는 너무 추워서, 라는 얼토당토않은 핑계를 대며 기피하고 등한시한 시를 가을이 가까워지면서부터 그리워하는 까닭이다. 앞으로도 여전히 설익은 독자래도 매해 깊어가는 가을마다 시 한 수 마음에 담을 수 있다면 그만큼 기쁜 일도 없을 것 같다고, 다시금 얼치기 같은 핑계를 내뱉어본다.


    *

    『간절하게 참 철없이』는 시집이다(?). 그렇다고 시집인 것만은 아니다. 만약 지난 시간들 속에 여기저기 너부러져있는 기억들을 아주 촘촘한 그물로 한데 그러모을 수 있다고 한다면, 안도현의 이 시집은 그보다 더 디테일한 무엇이다. 가령, 어린 날 동네를 시끌벅적하게 뛰어다니다가 점심때가 되어 집으로 간 아이가 방에 들어서면서 마주하게 되는 군침 도는 점심밥상 같다고 할까. 그보다 점심밥상 위를 살포시 감싸고 있는 ‘밥보(밥보자기)’를 보면서 온갖 맛있는 상상에 빠져들 수 있는 잠시잠깐의 숨고르기 같다고 할까. 시라는 진수성찬을 살포시 덮고 있는 ‘시보’를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들춰내는 호기심 많은 소년이 된 듯했다.


    저녁 먹기 직전인데 마당이 왁자지껄하다


    문 열어보니 빗줄기가 백만대군을 이끌고 와서 진을 치고 있다


    둥근 투구를 쓴 군사들의 발소리가 마치 빗소리 같다


    부엌에서 밥 끓는 냄새가 툇마루로 기어올라온다


    왜 빗소리는 와서 저녁을 이리도 걸게 한상 차렸는가


    나는 빗소리가 섭섭하지 않게 마당 쪽으로 오래 귀를 열어둔다


    그리고 낮에 본 무릎 꺾인 어린 방아깨비의 안부를 궁금해한다

    ∥「빗소리」_ p21∥


    눈을 감고 오래도록 상상해본다. 아주 어린 날, 여름방학을 맞아 찾아간 외가에서 때 아닌 ‘백만대군’이 쳐들어와 마루에 하염없이 걸터앉아 심심함에 몸서리치던 때를 기억 아니 상상해본다. 비의 장막이 쳐지고 밥 짓는 냄새가 알싸하게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마당 쪽인지, 비의 장막 너머 아련한 산이며 논이며 밭의 풍경 쪽인지, 이도저도 아닌 아예 부엌 쪽으로 코만 뻐끔하게 열어뒀는지 모른다. 방아깨비의 안부보다 낮 동안 비닐하우스 안에서 성글게 익어가는 참외의 달달한 맛이 궁금했었는지도 모른다.


    외할머니가 살점을 납작납작하게 썰어 말리고 있다

    내입에 넣어 씹어먹기 좋을 만큼 가지런해서 슬프다

    가을볕이 살점 위에 감미료를 편편(片片) 뿌리고 있다


    몸에 남은 물기를 꼭 짜버리고

    이레 만에 외할머니는 꼬들꼬들해졌다


    그해 가을 나는 외갓집 고방에서 귀뚜라미가 되어 글썽글썽 울었다.

    ∥「무말랭이」_ p45∥


    무말랭이라는 말을 언제 처음 ‘알아’듣게 되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그보다 여전히 나는 오그락지, 하고 말하기를 좋아한다. 시인처럼 나도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 ‘오그락지’를 보며 눈물 글썽일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집에 일 년 내내 빠지지 않고 항상 냉장고에서 제 맛으로 익어가는 것, 늘 밥상 위에 올라 나를 폭식하도록 꾀어내는 반찬이 바로 오그락지다. 엄마는 나 때문에 다른 식구들은 그다지 즐겨하지 않는 오그락지를 일 년 내내 마련하신다. 꼭 무를 직접 썰어 베란다 화초들 사이에 잘 말려낸 탓인지 아직은, 시인처럼 슬프지 않고 향긋한 맛이라 더없이 행복하다.


    태평추는 채로 썬 묵에다 뜨끈한 멸치국물 육수를 붓고 볶은 돼지고기와 묵은지와 김가루와 깨소금을 얹어 숟가락으로 훌훌 떠먹는 음식인데 눈 많이 오는 추운 날 점심때쯤 먹으면 더할 수 없이 맛이 좋았다 입가에 묻은 김가루를 혀끝으로 떼어먹으며 한번도 가보지 않은 바다며 갯내를 혼자 상상해본 것도 그 수더분하고 매끄러운 음식을 먹을 때였다

    ∥「예천 태평추」부문_ p59∥


    예천에 가본 적도 그곳에서 태평추를 먹어본 적도 없다. 하지만 일명 ‘묵국’이라고 불리는 음식이 대구에도 있다. 태평추처럼 ‘뜨끈한 멸치국물 육수’‘묵은지와 김가루와 깨소금을 얹어 숟가락으로 훌훌 떠먹는 음식’을, ‘볶은 돼지고기’는 없지만 아무렴 어떨 묵국을 종종 먹는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 옆 서문시장에 즐비한 일명 ‘할매 포장마차’에서도 많이 먹었던 기억이 난다. 얼마 전 추석 때도 큰고모가 묵을 손수 해 오셔서 성큼성큼 잘라 푸짐하게 먹었던 게 아직도 선명하다. 밥까지 말아먹어서 그런지 내게는 ‘갯내’보다 ‘논내’며 ‘상수리숲내’가 더 짙게 남아 있다. 물론 ‘수더분하고 매끄’럽게.


    어릴 때, 두 손으로 받들고 싶도록 반가운 말은 저녁 무렵 아버지가 돼지고기 두어 근 끊어왔다는 말

    정육점에서 돈 주고 사온 것이지마는 칼을 잡고 손수 베어온 것도 아니고 잘라온 것도 아닌데

    신문지에 둘둘 말린 그것을 어머니 앞에 툭 던지듯이 내려놓으며 한마디, 고기 좀 끊어왔다는 말

    가장으로서의 자랑도 아니고 허세도 아니고 애정이나 연민 따위 더더구나 아니고 다만 반갑고 고독하고 왠지 시원시원한 어떤 결단 같아서 좋았던, 그 말


    남의 집에 세들어 살면서 이웃에 고기 볶는 냄새 퍼져나가 좋을 거 없다, 어머니는 연탄불에 고기를 뒤적이며 말했지


    그래서 냄새가 새어나가지 않게 방문을 꼭꼭 닫고 볶은 돼지고기를 씹으며 입 안에 기름 한입 고이던 밤

    ∥「돼지고기 두어 근 끊어왔다는 말」_ p62∥


    어린 날, 세 들어 살았을 적에, 엄마가 ‘고기 볶는 냄새 퍼져나가 좋을 거 없다’고 말씀하신 적도 없고, 그렇다고 아빠가 ‘고기 좀 끊어왔다는 말’도 들어본 기억이 없다. 다만, 종종 ‘신문지에 둘둘 말린 그것을’ 아빠도 엄마도 종종 들고 왔던 것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그런 날, 내가 좋아했었는지 어땠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적어도 작은 방안이 어딘지 모르게 따숩고 정겨웠던 환했었던 것 같은 느낌은 여전하다. 그것이 아빠 혹은 엄마의 ‘반갑고 고독하고 왠지 시원시원한 어떤 결단’처럼 느끼기엔 난 너무 어렸었다.


    한 3분쯤 마당귀 두드리다 가는 빗소리 데리고 살까


    까치발, 까치발로 크는 상사화 옆에 살까


    풀어놓은 다람쥐 불러들여 도토리 던져주며 살까


    땅에다 혼자 혀를 박고 있는 삽 한 자루 되어 살까


    짐승의 발소리 하르르 알아맞히는 고사리 되어 살까

    ∥「허기」_ p79∥


    어쩌면 아무리 진수성찬의 밥상 앞에 만날 삼시세끼 잘 챙겨먹는다고 한들, 삶의 허기까지 채워질까. 물론 잘 먹고 건강하게 사는 것이 삶의 전부인 사람이라면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나, 대개가 물질문명의 병폐니 어찌나 하는 시시껄렁한 소리로 위안을 삼지 않더라도 그 허기가 무엇인지 알고 있음을 안다. 그 무엇이란 조금은 두려운 마음일지도 모른다. 또 오랫동안 멀리 떨어져 살은 탓에 부대끼지 못해 이미 쇠약해져버린 오성에 대한 슬픔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삶의 허기를 오롯이 만족할 만큼 채우거나 대체할 순 없다하더라도 조금은 살살 달랠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

    『인생은 지나간다』에서 구효서가 추억의 통로로 삼은 것은 사물이었다. 그 사물들 중에는 이미 ‘지나간 것’도 있었으며 다분히 아직도 ‘지나가는 것’도 있었다. 신기한 것은 아직 실체가 없는, 미래의 사물 또한 ‘지나간 것’ 혹은 ‘지나가는 것’의 익숙한 것을 통해 그 낯설음을 상쇄시킨다. 이와 마찬가지로, 안도현은 아주 상다리 으스러질 정도로 푸짐하게 음식을 차렸다. 추억의 통로임과 동시에 지난 생을 반추하고, 지금 지나고 있는 생을 잠시 쥐어본다. 그리곤 지금을 찬찬히 돌이켜 보면서 허기진 삶을 배불리 먹이고픈, 시인 홀로 감당할 수 없을지도 모를 그런 욕심쯤을 거뜬하게 부리는 듯하다.


    덧붙여, 이젠 배곯을 시절도 아니고 그런 처지도 아니지마는 어쩐지 이 시집을 보노라면 허기가 지는 듯하다. 그 허기란 끼니를 챙겨먹지 못한 배고픔 따위가 아니라 잃은 것, 잊은 것에 대한 애달픔 같기도 하고, 어린 시절 천진하리만치 단순하고 해맑았던 내 미각에 대한 그리움 같기도 하다. 시인이 이렇듯 진수성찬을 차려 놓았는데, 눈으로 우걱우걱 먹는 일만 했음에도 여전히 허기가 지는 건 왜 일까. 숭늉 대신 비저 나오려는 눈물인지 콧물인지를 훌쩍 삼켜보는 서글픔이어라. 그런 밤이어라.


    《이 시집에 나오는 그물로 낚고픈 자글거리는 햇살 같은 말》

    욜랑욜랑, 우묵하게, 나박나박, 도닥도닥, 오슬오슬, 싸리울, 허청허청, 오글오글, 하르르, 차랑차랑

  • 간절하게 참 철없이 | ja**on4548 | 2009.03.04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어제, 개강 첫 강의를 가면서 책을 두 권 챙겨들고 갔다. 3시간, 3시간 해서 여섯 시간 연강이지만, 첫날이라 간단한 소...

    어제, 개강 첫 강의를 가면서 책을 두 권 챙겨들고 갔다. 3시간, 3시간 해서 여섯 시간 연강이지만, 첫날이라 간단한 소개만 하고 끝낼 거였기 때문에, 중간에 3시간 쯤 비는 걸 계산해서. 그런데 어쩌다보니 집에 돌아오는 지하철 타기도 전에 책 두 권을 다 읽어버렸다. 책 없이 타고 올 지하철 50분이 막막해서 걱정을 하는데 '아, 사서 읽으면 되지!'하는 생각이. 이 책이 바로 까딱 지루했을 뻔한 나의 50분을 살려준 은인, 아니 '은책(恩冊)'이다.

     

     

    싸리꽃을 애무하는 산(山)벌의 날갯짓소리 일곱 근

     

    몰래 숨어 퍼뜨리는 칡꽃 향기 육십평

     

    꽃잎 열기 이틀 전 백도라지 줄기의 슬픈 미동(微動) 두 치 반

     

    외딴집 양철지붕을 두드리는 소낙비의 오랏줄 칠만구천 발

     

    한 차례 숨죽였다가 다시 우는 매미울음 서른 되

                                                      - '공양' 전문

     

    책을 열자마자 첫 시부터 어찌나 좋던지, 지하철 안이라 입밖으로 소리내어 읊지는 못했지만 속으로 한 자 한 자 따라 읽으며 행복해했다. 누구에게 바치는 '공양'인지 모르겠지만, 자연은 어쩜 이렇게 아름다운 공물들을 내어놓았는지! 내가 보고 듣고 맡고 즐겼으니, 세상이 내게 바치는 공양이라 생각해도 될까? 갑자기 남부럽지 않은 왕이라도 된 기분이다.

     

    산 위에 홀로 앉아 '잠시 전투기 과자를 깨물어 먹다가 뱉으며, 너무 딱딱하다고, 투덜거리는' 구름, 남의 집 마당에 '백만대군을 이끌고 와서 진을 치'는 빗줄기, 옆집 '누나의 속옷이 받아낸 붉디붉은 꽃잎'을 떠올리게 하는 명자꽃, '마치 붉은 노을을 국자로 퍼다 먹는 듯하던 닭개장', '쇠기러기 그림자가 간을 치고 가는' 서러운 갱죽, 뭔가 대단한 짓거리를 하다가 꾸중을 듣는 것같은 이름 콩밭짓거리...이 모든 것들이 '간절하게 참 철없이' 그립고 그립게 만드는 시집이었다.(갱죽이나 콩밭짓거리는 이름조차 처음 들어봤지만 말이다.)

     

    띠지에 '잊었던 추억들로 차려낸 따스한 시의 밥상'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2부에 실린 시들이 바로 그 '밥상'이다. 위의 닭개장이며 갱죽이며 콩밭짓거리도 그 밥상을 차린 음식들이었고, 그 외에도 많은 음식들이 잔뜩 차려져 있어, 하루 종일 굶은 내 배 속을 요동치게 만들었더랬다. 대부분은 내게 낯선 음식들이지만, 시인이 그려놓은 모습으로도 그 음식의 맛과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했다.

     

     

    어릴 때, 두 손으로 받들고 싶도록 반가운 말은 저녁 무렵 아버지가 돼지고기 두어 근 끊어왔다는 말

    정육점에서 돈 주고 사온 것이지마는 칼을 잡고 손수 베어온 것도 아니고 잘라온 것도 아닌데

    신문지에 둘둘 말린 그것을 어머니 앞에 툭 던지듯이 내려놓으며 한마디, 고기 좀 끊어왔다는 말

    가장으로서의 자랑도 아니고 허세도 아니고 애정이나 연민 따위 더더구나 아니고 다만 반갑고 고독하고 왠지 시원시원한 어떤 결단 같아서 좋았던, 그 말

                                               - '돼지고기 두어 근 끊어왔다는 말' 부분

     

    한 집의 가장이 신문지에 둘둘 싼 고기 덩어리를 마루에 툭 던져 놓으며 "고기 좀 끊어 왔소"하는 장면이 내 삶에는 없지만, 티비 드라마를 통해 봤던 모습이 마치 내 유년 시절의 기억인 양 떠오른다.(나는 엄마 손 잡고 함께 정육점 가서 고기 사왔던 기억이 대부분.) '두 손으로 받들고 싶도록 반가운 말'이었다니, 그 말이 들리는 저녁이면 얼마나 행복했을까. 이 시집에 차려진 밥상은 부모님과 같이 먹어보고 싶다. 아마 엄마 아빠의 기억 속에서 차려지는 음식들 보태면, 상다리가 부러지겠지?

     

    참 따스하고, 맛깔스럽고, 정답고, 향긋한 시집이다. 만한전석 부럽지 않은 '시의 밥상'!

  • 입에 감기는 시의 맛. | ch**oo23 | 2008.03.17 | 5점 만점에 4점 | 추천:0
      입에 감기는 시의 맛.   ‘연탄재 함부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

     

    입에 감기는 시의 맛.

     


    ‘연탄재 함부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너에게 묻는다」)’는 안도현 시인의 물음에 가슴이 뜨끔했던 기억이 있다. 나뿐만 아니라, 짧지만 긴 여운을 주는 이 시구는 많은 이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을 것이다. 그렇게 안도현 시인은 연탄불의 따스함으로 대중에게 다가왔고, 우리는 그의 곁에서 군불을 째며 따스한 그의 시를 사랑하게 되었다.


    <간절하게 참 철없이> 에서도 안도현 시인만의 따스함을 느낄 수 있다. 잊어버린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시의 풍경에서 아련한 시간의 기억을 되짚어가게 한다. ‘모든 음식에는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욕망이 엉켜있다.’는 시인의 말처럼, 2편에 수록된 음식시편들은 잊었거나 의식하지 못했던 것들을 수면위로 끄집어냄으로써, 때로는 없는 추억과 기억까지도 만들어 내어 시인과 감성의 공감을 이루게 한다. 이러한 대리적 체험과 상상의 즐거움에서 얻어지는 감정을 환기는 우리가 시를 읽고, 문학을 사랑하는 이유다.


    안도현 시에서는 ‘시가 어렵다’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그의 시는 과장스럽거나 까탈스럽지 않다. 특별히 힘주어 말하지도, 구지 어렵게 돌려 말하지 않는다. 이러한 따스함과 편안함이 안도현 시가 대중의 사랑을 받는 이유일 것이다. 물론 시의 대중성과 예술성을 놓고 안도현의 시가 상업적으로 변했다는 비판도 없지 않으나, 문학작품은 대중을 떠나서 존재 할 수 없다. 또 예술성과 대중성을 이분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안도현 시’하면 떠오르는 고정적 이미지를 벗어나는 문학적 변모와 발전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시골 서점 책꽂이에 아주 오랜 시간 꽂혀 있는 시집이 있다

    출간된 지 몇해째 아무도 펼쳐보지 않은 시집이다

    시인이 죽은 뒤에도 꼿꼿이 그 자리에 꽂혀 살아 있다

    나는 그 시인의 고독한 애독자를 안다

    본문은 펼쳐 읽지 못하고 제목만 뚫어지게 바라보던

    날마다 시집 귀퉁이만 밟아보다가 돌아서던 그를 안다

    햇볕의 발자국을 가진 사람을 안다

                                         - 오래된 발자국(p.93) -


    안도현 시인에게 내 서재의 한자리를 내어주고, 오래도록 눈을 맞추며 살 수 있기를 바란다. 그가 내 마음에 새겨 놓은 따스한 발자국이 오래도록 남았으면 좋겠다. 시와 함께 ‘참 철없이’ 살고 싶다. 시를 쓰는 이 땅의 모든 시인들에게 고마워 할 일이다.


  • 돼지고기 두어 근 | kj**09 | 2008.03.13 | 5점 만점에 4점 | 추천:0
    그이의 글은 따뜻하다. 몇 달 전 그이가 티브이 나와 둥그런 얼굴에 유음 많은 목소리로 시 한 편 읊는 걸 보고 참 다감한 사...

    그이의 글은 따뜻하다. 몇 달 전 그이가 티브이 나와 둥그런 얼굴에 유음 많은 목소리로 시 한 편 읊는 걸 보고 참 다감한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했던 적 있다.

     

    그럼에도 난 그이의 책과 가까워지지 않았다. 목적의식적으로 살다보니 심적 여유가 많이 부족했던 모양이다. 알게 모르게 그의 글을 여기(餘技)로 여기지 않았나 싶다.

     

    역시 오늘도 그 잔상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는데. 신경림의 시집을 여러 번 들었다 놨다 하고서야 그이의 시집을 택했다. 그리고 이렇게 가슴이 참 따뜻하다.

     

    키 작은 골목 안 쪽으로 왁자지껄 아이들 소리가 달려들고, 비지찌개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코끝에선 여태 가시지 않은 고 냄새가 한사코 마중 나온다.

     

    시란 그런 것인가. 알싸한 추억이 몽실몽실 피어오르는 싯구 안으로 걸어 들어가도 좋은 참 따스한 봄날 늦지 않은 저녁. 그이의 시 하나 소개하고 총총히 잠에 든다.

     

     어릴 때, 두 손으로 받들고 싶도록 반가운 말은 저녁 무렵
    아버지가 돼지고기 두어 근 끊어왔다는 말
     정육점에서 돈 주고 사온 것이지마는 칼을 잡고 손수
    베어온 것도 아니고 잘라온 것도 아닌데
     신문지에 둘둘 말린 그것을 어머니 앞에 툭 던지듯이
    내려놓으며 한마디, 고기 좀 끊어왔다는 말
     가장으로서의 자랑도 아니고 허세도 아니고 애정이나
    연민 따위 더더구나 아니고 다만 반갑고 고독하고 왠지
    시원시원한 어떤 결단 같아서 좋았던, 그 말

     

     남의 집에 세들어 살면서 이웃에 고기 볶는 냄새 퍼져나가
    좋을 것 없다, 어머니는 연탄불에 고기를 뒤적이며 말했지

     

     그래서 냄새가 새어나가지 않게 방문을 꼭꼭 닫고 볶은
    돼지고기를 씹으며 입 안에 기름 한입 고이던 밤

     

         - 〈돼지고기 두어 근 끊어왔다는 말〉, 안도현

    아버지가 끊어온 돼지고기 두어 근에 두둑하게 배 채운 난, 입맛을 다셨다. 언제 다시 이 날이 올는지 손꼽느라 스르륵 잠이 드는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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