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치게 소유에 사로잡힌 현대인들에게 법정 스님이 전하는 깨우침의 이야기 『무소유』. 법정 스님의 이야기에 담긴 삶의 지혜는 종교를 넘어서 우리의 삶에 깊숙이 닿은 일상적인 것들을 포함한다. 이 책은 법정스님이 세상과 인생에 대해 쓴 지적 통찰의 글을 하나로 묶어서 소개한다. 소유와 집착에 대한 섬광같은 깨달음을 기록한 <무소유>를 비롯하여 <가을은>, <오해> 등 35 편의 주옥같은 수필들을 만나보자.
☞ 북소믈리에 한마디! 법정 스님은 화장지를 절반으로 잘라서 쓰고, 종이 한 장도 허투루 버리지 않았던 청빈한 삶을 살았다. 그는 여러 저서들에서 얻어진 인세를 전부 어려운 이웃에게 나누어 주어, 정작 자신이 중병에 걸렸을 때 치료비를 절에서 빌려 써야 할 정도였다. '말하고', '행하는' 것이 일치했던 법정 스님의 삶 자체가 우리에게 더욱 가치 있는 법문으로 다가온다.
저자소개
저자 법정
목차
1. 복원 불국사 2. 나의 취미는 3. 비독서지절 4. 가을은 5. 무소유 6. 너무 일찍 나왔군 7. 오해 8. 설해목 9. 아파트와 도서관 10. 종점에서 조명을 11. 흙과 평면 공간 12. 탁상 시계 이야기 13. 동서의 시력 14. 회심기 15. 조조할인 16. 나그네 길에서 17. 그 여름에 읽은 책 18. 잊을 수 없는 사람 19. 미리 쓰는 유서 20. 인형과 인간 21. 녹은 그 쇠를 먹는다 22. 영원한 산 23. 침묵의 의미 24. 순수한 모순 25. 영혼의 모음 26. 신시 서울 27. 본래무일물 28. 아직도 우리에겐 29. 상면 30. 살아남은 자 31. 아름다움 32. 진리는 하나인데 33. 소음기행 34. 나의 애송시 35. 불교의 평화관
책 속으로
인간의 역사는 소유사처럼 느껴진다. 보다 많은 자기네 몫을 위해 끊임없이 싸우고 있다. 소유욕에는 한정도 없고 휴일도 없다. 그저 하나라도 더 많이 갖고자 하는 일념으로 출렁거리고 있다. 물건만으로는 성에 차질 않아 사람까지 소유하려 든다.
...
전국서점 스테디셀러 - 183쇄 (330만부 판매) 돌파! 제1회 독서대상, 한국출판문화상, 청소년도서선정 등 7개 부문 수상 및 선정도서
“시간을 잘 쓰면 살고, 무가치하게 쓰면 죽는 것이다.”
신년 정초부터 용산 참사, 연쇄 살인사건 등으로 새해가 얼룩지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의 의식 속에 어두운 그림자를 남길 뿐이며, 시간을 잘 살리는 일이 못 됩니다. 우리는 시간 속에서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하는데 시간을 잘 쓰면 살고, 무가치하게 쓰면 죽는 것입니다. ―법정 스님 길상사 동안거(冬安居) 해제 법회에서 (2009.2.9)
군 생활 중에 헤르만 헤세와 법정 스님의 책을 참 많이 읽었습니다. 이분들의 글에서 느껴지는 구도와 같은 삶의 자세에 대한 동...
군 생활 중에 헤르만 헤세와 법정 스님의 책을 참 많이 읽었습니다. 이분들의 글에서 느껴지는 구도와 같은 삶의 자세에 대한 동경도 있었던 것 같고, 군대라는 곳이 워낙 그런 곳(?)이다 보니 정신머리를 붙들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기에 더 글에 몰입했던 게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속세에 흔들리지 않는 삶의 자세를 동경하던 20대 청년은 조금씩 닳고 닳아가고 있지만(ㅠㅠ), 오랜만에 법정 스님의 글을 읽으면서 여전히 마음을 설레게 하는 지점들을 찾을 수 있었기에 아직 타락하진 않았구나 하고 홀로 위안을 삼아봅니다. 수려한 표현보다 간결하고 쉬운 말을 쓰면서도 독자의 마음에 와닿고, 글을 쓴 저자의 성정까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는 게 좋은 산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죠.
시대의 흐름에 맞춰 약간의 변주를 가할 뿐, 1970년대에 발표한 이 글과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는 메시지를 담은 다양한 책과 글이 여전히 많다는 생각에 잠시 씁쓸해지기도 했습니다. 인간의 본성(그게 아니라면 집단의 속성)은 어쩔 수 없는 걸까요? 나를 지키기 위해선 세상과의 접촉을 줄여야 하는 걸까요?
그리고 왜 난초에 대한 마음은 집착이고, 장미에 대한 마음은 애착인가요? 가르침을 주시옵소서.
양손가득 무소유를 한 꾸러미씩 들고 서점을 나오면서도 참으로 기분이 이상했다. 절판된 <무소유>를 한껏 소...
양손가득 무소유를 한 꾸러미씩 들고 서점을 나오면서도 참으로 기분이 이상했다. 절판된 <무소유>를 한껏 소유했다는 것 때문이 아니라, 어제 이 책을 발견하고 오늘 이렇게 사들고 나선다는 사실에 기시감까지 느껴졌다. 근교의 언니 네에 온 김에 도스또예프스끼 보급판이 있을까 하고 서점에 들렀었다. 결국 원하던 책을 발견하지 못하고, 엉뚱한 책만 사들고 나오다 카운터에 쌓여 있는 <무소유> 양장본과 문고본을 발견했다. 의아해서 새로 출간됐냐고 묻자 그렇다는 대답이 들려왔다. 그렇게 서점을 나와서도 이상해 <무소유>의 출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지인에게 문자를 보냈다. <무소유>가 출간됐다고, 서점에 쌓여 있는 걸 봤다고, 이제 구입하면 되겠다고.
그러나 지인의 반응은 뜨악했다. 지금 장난 하냐고, 온라인 서점에도 없고, 일반서점에도 없는 <무소유>를 어디서 봤냐는 답장과 함께 책이 있으면 당장 구입해 달라고 했다. 이미 버스를 타고 언니 네를 향하고 있었고, 서점도 문 닫을 시간이라 분명 <무소유>를 봤다고 하소연 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래도 믿는 눈치가 아니라 서점에 전화해서 재고가 넉넉히 있는지, 내일 몇 시에 문여는 지까지 물어보았다. 서점 주인은 책이 넉넉히 있으니 아무 때나 천천히 오라는 답변을 해주었다. 그럼에도 지인은 오후까지 책이 남아있다는 보장이 어디 있냐고 다그쳐대 할 수 없이 아침 일찍 서점에 가 양장본 6권, 문고본 5권을 구입했다. 6만원이 훌쩍 넘는 책 가격을 보면서 '이건 법정 스님의 뜻이 아니야!'란 생각을 하면서도 손에 쥐어진 책을 보며 흡족해 하던 찰나, 갑자기 이런 심부름을 시킨 지인에 주눅 들어 부랴부랴 책을 사들고 나온 내가 어이가 없었다. 아니, <무소유>를 발견해 그 소식을 알려주었을 뿐인데 왜 그렇게 안달복달해서 나까지 초조하게 만들었냔 말이다!
책이 무거워 집에 가는 내내 투덜거렸지만, 이번 기회에 양장본과 문고본을 한 권씩 마련해서 내심 뿌듯했다. 고등학교 때 언니에게 <무소유>를 빌려 읽어서 언제고 '다시 읽어보마.' 했던 것이 법정 스님이 입적하시고 유언에 따라 책이 절판되자 그제야 조바심이 났다. 재출간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래도 감감 무소식이라 이내 시큰둥해져 버렸다. 그런데 막상 책을 보니 생각이 달라져 구입하고 싶은 마음이 동하는 걸 보고 책에 대한 소유욕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럼에도 왠지 쉽게 읽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책장에 고이 모셔 두었다. 하지만 시선이 <무소유>에 닿을 때마다 내게 남겨진 숙제인 듯 찜찜한 건 마찬가지였다. 결국 책을 구입한지 이틀 만에 초조함을 이기지 못해 책을 꺼내들었고, 마치 법정 스님이 내 옆에 계신 양, 흐트러진 자세를 바로잡고 꼿꼿한 자세로 정독했다.
책은 읽을 때마다 그 느낌이 다르다곤 하지만, 열여덟 살에 읽은 <무소유>와 서른 살에 읽은 <무소유>는 세월의 흐름만큼이나 긴 강을 건너온 기분이었다. 기억 속에 사라진 이야기가 다시 살아난 것 같았고, 흐리멍덩한 이미지들은 선명해지고 있었다. 읽은 책을 다시 읽는 다는 것은 지워진 이야기를 다시 살려내는 거라 생각했는데, <무소유>를 읽는 동안에는 법정 스님의 성품이 더 또렷하게 다가왔다. 젊은 시절에 썼던 글이라서 그런지 글 속에 풍기는 스님의 이미지와 최근의 모습을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미 <무소유> 안에도 날카로운 시선과 카랑카랑한 성품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을 발견했다. 단지 덜 무르익어 조심스러웠을 뿐, 세월의 흐름과 함께한 참선이 스님의 성품을 단단하게 해주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책을 읽는 내내 괜히 질책당하는 기분이 들면서도 그 대상이 오로지 나뿐이더라도 싫지 않았다. 질책을 당하는 읽기였다면 분명 불편했어야 마땅한데 오히려 마음이 편한 것도 이상했다. 아무래도 질책 당할 것이 많은 내 자신을 오랫동안 방치하다 <무소유>를 통해 제대로 임자를 만났다는 기분이 들었나보다.
책에 메모지를 붙이는 작업과 짧은 느낌을 남기는 작업에도 숭고하리만큼 정제 된 행동을 보였다. 책에 대한 경건의 표현인지, 법정 스님에 대한 존경의 시선인지 헷갈릴 정도로 메모지를 덕지덕지 붙이면서도 이 모든 내용을 기억해 보겠다고 애쓰는 내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났다. 그럼에도 그 작업을 멈출 수 없었던 것은 너무 좋은 글귀가 많았고, 나의 환경에 따라 다른 울림으로 다가온다는 것이 신기했다. 분명 열여덟의 나는 이 문장을 읽었을 때 별 감흥 없이 지나쳤겠지만, 현재 서른의 나에게 특별하게 다가옴을 느꼈기에 더 간직하고 싶었다. 종교와 사상, 인생철학이나 배움을 떠나 한 사람의 뜻이 깃든 책 앞에서 한껏 낮아지고 만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드러내기 위해 골프를 취미로 삼는 사람들 앞에 '오늘 나의 취미는 끝없는, 끝없는 인내다.'라는 글부터 시작해 '진짜 양서는 읽다가 자꾸 덮이는 책이어야 한다.'로 건너가 '우리는 미워하고 싸우기 위해 마주친 원수가 아니라, 서로 의지해 사랑하려고 아득한 옛적부터 찾아서 만난 이웃들이다.'라며 문장이 점점 깊어질 때면 스님이 말한 양서의 정의처럼 자꾸 읽기를 멈추고 덮기를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카랑카랑한 스님의 사유를 나눠 받으면서 범접할 수 없는 거리감을 느끼곤 했는데, 내 마음에 와 닿는 문장들 앞에서는 스르르 무너져 성큼성큼 다가가고 말았다. 그러면서 '우리들의 소유 관념이 때로는 우리들의 눈을 멀게' 하고, '언젠가 한 번은 빈손으로 돌아갈'거란 생각을 가진 스님을 닮아가고자, 혹은 삶의 본보기로 삼고자하는 거창한 뜻이 있어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아님을 알게 되었다. 단지 나를 질책할 누군가 필요했고, 질책 가운데서 현재의 내 상황을 돌아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족하다는 무언의 절망어린 반항이 내제되어 있는지도 몰랐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고 나자 <무소유>를 읽기 전부터 겁냈던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내가 변화해야 한다고, 내 삶의 방향을 통째로 바꿔야 한다는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올곧은 분으로 인식되어 있어서인지 그분의 글 앞에서도 지레 겁을 먹었나보다. 법정 스님의 사유를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도 없고, 내가 수용할 수 있는 부분만 수용하며 이런저런 생각을 해도 그것만으로도 충분한데, 순식간에 따라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혼란스럽게 한 것 같다. 그것은 책을 읽는 자세로서도, 스님의 뜻에 합한 좋은 생각도 아니며, 글의 깊이에 동조하며 나와 다름을 받아들이는 것에 의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질을 흐리는 나의 자세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도 걱정이 앞섰지만, 조금씩 본질을 찾아가니 책 속으로 빠져들 수 있어 그 과정도 감사하게 다가왔다.
한 꼭지가 끝날 때마다 글을 쓴 연도가 나왔는데, 약 30년 전후로 쓴 글들이라 놀라웠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다는 베스트셀러를 떠나 지금 읽어도 낯설지 않은 현실에 씁쓸하기도 했고, 오래전에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안목에 감탄했다. 보통 사람이 살지 못한 정제된 삶을 사는 것, 그러면서도 보통인 우리와 부대끼며 다르지 않는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책 제목이 <무소유>라 이 책을 소장하는 여부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았지만, 앞에서도 말했던 것처럼 법정 스님의 사유에 나를 대입해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렇다보면 '소유'에 대한 정죄뿐만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성찰들이 곳곳에 드러나 있음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고, 왜 이 책이 그토록 사랑받는지, 많은 사람들이 법정 스님을 존경하는지를 여실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평범함에서 나오는 진리. 그것을 너무 잘 이끌어 내셨기에 그 분 앞에 숙연해지는 마음 또한 감추고 싶지 않다.
무소유
법정 스님 지음
범우사
무소유 신드롬이 뜨거웠던 시절은 한참 지났지만, 나는 지금에서야...
무소유
법정 스님 지음
범우사
무소유 신드롬이 뜨거웠던 시절은 한참 지났지만, 나는 지금에서야 이 책, 『무소유』를 읽어보게 되었다. 읽어볼까, 하고 여러 번 고민해보았지만 조금은 두려웠던 것 같다. 내가 이 책을 읽고 제대로 깨달을 수 있을까? 법정 스님의 가르침을 조금이라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 그러
다가 이번에 학교에서, 국어과와 관련하여 학생들의 진로 진학에 도움이 되고 개인의 특기 신장 및 심화학습을 위해 목적으로 신설한 문학기행을 가게 되었는데, 우리의 목적지 중에서 법정 스님이 마지막까지 기거하셨던 절 '길상사'와 '한용운 생가'가 있었고 따라서 문학기행캠프를 진행하기 위해서 회당 2시간씩 3회에 걸쳐 실시된 사전수업에서 법정 스님의 이 책 『무소유』를 다루어 공부하게 되었다.
그리고 느꼈다. 얇은 책이여서 금방 읽을 줄 알았는데 말 한마디 한마디 무게가 내게는 좀 버거워서 조금만 읽어도 내 머릿속과 마음속이 법정 스님의 말씀으로 가득차는 듯 한 그런 느낌이 들었다. 길상사에 가서 법정 스님이 남긴 매우 적은 물건들을 보며 법정 스님의 무소유 정신을 좀 더 잘 느낄 수 있었다.
꾸준히 오래 팔리는 책으로 법정스님의 수필집 '무소유'를 맞춤법과 교정부호를 손질해서 양장본으로 꾸민 책으로 어렵고 잘 쓰이지 않는 한문을 한글로 쉽게 풀어 고쳐 썼다. 손바닥만한 문고본에 글만 다닥다닥 붙여 실은 기존 판과 달리, 한 편이 끝날때마다 충분한 여백을 두고 책크기도 4·6배 변형판으로 키우고 삽화로 이철수의 판화를 실은 구성이 산뜻하다.
이 책에서 인상깊었던 여러 글 중에서도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역시 '무소유'라는 글이였다. 모든 것을 가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쓸모없는 것은 소유하지 않는다는 법정 스님의 가르침은 나는 지금 별로 필요없는 물건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 와 같은 질문을 나 스스로에게 던져보게 하였다. 쓸모없는 물건에 대한 집착으로 가득차있는 나이지만 아직은 나는 그 분의 가르침을 듣고 깨달음을 알기에는 아직도 많이 부족한 듯 하다. 나중에 나이가 들고 나서 이 책을 다시 본다면 느끼는 것이 많이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책에서 다루는 고색창연한 불교 신앙을 오늘의 이 현실, 끊임없이 사랑과 증오의 사상으로 갈 등을 일으키는 이 세계로 끌어내온 것인데, 이는 내게는 다소 어렵게 느껴졌고, 그래도 그 중에서 청소년인 내가 이해할 수 있던 부분도 간간히 찾아볼 수 있었다.
법정 스님의 글들은 대부분 짤막하여 일상의 삶이나 세속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일반인에게 와닿는 것은 이 새롭게 발견하는 불교의 현대적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리라~ 여기에서 다루어지는 불교는 체념과 도피, 초속과 허무라고 표현되는 마냥 어렵기만 한 내용이 아니라 참여하고 괴로워하며 비판하고 사랑하는 불교의 모습이라고 정리해 주고 있다. 그것은 이 세계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경이롭게 바라보고 자기 삶의 확대로 체득하려는 적극적인 자세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