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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 인생론 참회록(개정판)(세상을 움직이는 책 32)(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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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5
ISBN-10 : 8982031324
ISBN-13 : 9788982031328
톨스토이 인생론 참회록(개정판)(세상을 움직이는 책 32)(양장본 HardCover) [양장] 중고
저자 톨스토이 | 역자 박병덕 | 출판사 육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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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1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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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내형 상세 미선택 낙서 미선택 얼룩 미선택 접힘 미선택 낙장(뜯어짐) 미선택 찢김 미선택 변색 [출간 20120915, 판형 152x223(A5신), 쪽수 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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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톨스토이 인생론.참회록-개정판 [중고 아닌 신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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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 인생론 참회록』은 우리 시대 가장 탁월한 대문호 톨스토리의 인생록을 담아낸 책이다. 서양 근대 철학과 고대 사상을 집대성한 전기를 만나볼 수 있다. 우리 시대의 위대한 작가 톨스토이 그가 세상을 떠난지 100년이 지난 지금도 이 세상을 밝혀주는 주옥같은 작품들과 그의 인생론, 참회록을 수록했다.

저자소개

목차

톨스토이의 생애와 작품

인 생 론
서론(緖論)
제1장 인생의 근본적 모순
제2장 인생의 내면적 모순
제3장 학자들의 오류
제4장 인생의 목적
제5장 그릇된 가르침
제6장 현대인의 의식 분열
제7장 인간 생활과 동물 생활의 혼동
제8장 그릇된 가르침에 의한 분열과 모순
제9장 참된 생명의 탄생
제10장 이성(理性)에 의한 인생 완성의 법칙
제11장 지식의 그릇된 방향
제12장 그릇된 지식의 원인
제13장 사물의 인식
제14장 참된 인간 생활
제15장 동물적 자아의 행복의 부정
제16장 동물적 자아는 인생의 도구이다
제17장 영(靈)의 탄생
제18장 이성적 의식은 무엇을 요구하는가
제19장 이성적 의식의 요구에 대한 확인
제20장 자아와 이성은 양립하는가
제21장 자아를 이성에 종속시켜라
제22장 사랑이란 이성적 의식에 따르는 자아의 활동이다
제23장 사랑의 감정
제24장 생활의 행복과 참된 사랑
제25장 사랑은 참된 생명이다
제26장 참된 생활을 방해하는 것
제27장 죽음의 공포
제28장 육체의 죽음
제29장 인생에 관한 그릇된 사고방식
제30장 생명의 본질
제31장 죽은 사람의 생명
제32장 죽음에 대한 미신
제33장 이 세상에서의 삶
제34장 죽음은 생명의 시작이다
제35장 육체의 고통

참회록
제1장 어린 시절의 추억
제2장 나의 젊은 시절
제3장 결혼 전후의 생활
제4장 인생 여정(人生旅程)
제5장 학문과 인생
제6장 선현(先賢)들의 인생관
제7장 인생의 네 가지 길
제8장 대중(大衆) 속에서 발견한 진리
제9장 세 가지의 새로운 인식
제10장 새로운 삶의 발견
제11장 만인(萬人)을 위한 삶
제12장 신(神)으로의 복귀
제13장 인간의 궁극적 사명 : 영혼의 구원
제14장 환멸을 주었던 여러 가지 종교 의식
제15장 진정한 신앙
제16장 진리를 찾아서
나의 참회에 대한 꿈의 계시
결론
첨언 1
첨언 2
첨언 3
작품 해설
연보

책 속으로

출판사 서평

우리 시대의 가장 탁월한 대문호 톨스토이! “서양 근대 철학과 동양 고대 사상을 집대성한 위대한 전기” 이 책은 출간당시 엄격한 검열로 출판이 금지되었지만 ‘그 진실함과 설득력에 있어서 놀라운 작품!’이라고 이반 투르게네프가 극찬 한 책...

[출판사서평 더 보기]

우리 시대의 가장 탁월한 대문호 톨스토이!
“서양 근대 철학과 동양 고대 사상을 집대성한 위대한 전기”

이 책은 출간당시 엄격한 검열로 출판이 금지되었지만
‘그 진실함과 설득력에 있어서 놀라운 작품!’이라고
이반 투르게네프가 극찬 한 책!

우리 시대의 위대한 작가 톨스토이 그가 세상을 떠난지 100년이
지난 지금도 이 세상을 밝혀주는 주옥같은 작품들

모든 인간은 신의 뜻에 의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 그리고 신은 어떤 사람이든지 스스로 자신의 영혼을 타락시킬 수도 있고 구원할 수도 있게 창조했다. 인간이 삶에서 갖는 사명이란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다.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려면 신의 뜻에 따라 살아야 한다. 인생을 운명에 맡기고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위기에서도 바른 인생관으로 어려운 운명을 뚫고 나가는 그들의 힘은 바로 참된 신앙에서 온다. 인생이란 끊임없이 더 큰 행복에 도달하려는 영혼의 순례이다. 인생의 목적은 궁극적으로 행복에 있다. 인생이란 운명에 맡기고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더 큰 행복으로 개척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 톨스토이의 생애와 작품

레오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Leo Nikolayevich Tolstoi)는 1828년 8월 28일, 모스크바 200㎞ 남쪽 야스나야 폴리야나(Yasnaya Polyana)에서 니콜라이 일리치 톨스토이 백작의 4남 1녀 중 4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니콜라이 톨스토이 백작은 1812년의 나폴레옹 전쟁에 참가했던 퇴역 육군 중좌(中佐)로서 너그럽고 호탕한 성격의 소유자였으며 그의 어머니 마리아 니콜라예비치나는 명문인 보르콘스키 공작가의 딸로서 신앙심이 두텁고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태리어 등에 능통한 교양이 높은 여성이었다.
톨스토이에게는 니콜라이, 세르게이, 드미트리 등 세 형과 여동생 마리아가 있었다. 그의 어머니 마리아는 그가 두 살도 채 되기 전인 1830년에 딸 마리아를 낳고 세상을 떠났으며 그의 아버지 니콜라이도 또한 그가 9세 때인 1837년 뇌일혈로 세상을 떠났다.
부모를 잃은 톨스토이는 세 형과 누이동생과 함께 카잔에 있는 숙모의 집으로 옮겨 그녀의 보살핌을 받았다. 그녀는 헌신적인 애정으로 그들을 돌보아 주었다.
1844년 16세가 되었을 때 톨스토이는 형 세르게이와 드미트리가 공부하고 있던 카잔 대학에 입학하여 동양어학을 공부했다. 처음에는 외교관이 되려고 했으나 이듬해 5월 진급 시험에 낙제하여 법과로 옮겼다. 그러나 이미 외교관의 꿈을 잃은 톨스토이는 방탕한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특히 그들을 돌보아 주고 있던 숙모는 선량한 부인이었지만 화려한 사교계를 좋아하여 그들에게 일찍부터 사교계에 진출하기를 권했다. 그리하여 톨스토이는 대학생의 신분이면서도 상류 사회의 사교계로 나갔지만 그곳에서 요구되는 프랑스풍의 우아한 태도와 대화가 어쩐지 서먹서먹했다. 내성적 성격을 타고난 그는 자신의 세련되지 못한 용모에 대해 무척 괴로워했다.
그리하여 그는 사교계를 떠나 공부에 열중하려 했지만 결국 대학 생활에 환멸을 느끼고 대학 생활 3년째인 1847년에 대학을 중퇴하게 되었다. 그가 받은 정규 교육은 이것뿐이었다. 대학을 중퇴한 후 그는 유산 분배에 의해 자기에게 분배된 야스나야 폴리야나로 돌아와 정식으로 지주(地主)가 되었다. 야스나야 폴리야나는 아름다운 숲으로 둘러싸인 곳이었으며 톨스토이에게는 유년 시대뿐만 아니라 생애 전체를 통해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는 곳이다. 19세의 젊은 영주(領主)는 정의감에 불타 농노(農奴)들의 생활 개선을 위해 노력했으나 농노들의 불신감과 적대감으로 인해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이 실패는 그의 의욕이 컸던 만큼 그에게 심한 충격을 주었다. 이듬해인 1848년, 그는 모스크바로 가서 도박에 몰두하는 등 방탕한 생활에 빠졌다. 당시 그는 그의 숙모에게 ‘나는 일도 하지 않고 공부도 하지 않고 아무런 목적도 없는 방탕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사교계에 빠져 매우 방탕해졌습니다.’라는 편지를 보낼 정도였다. 그러나 마침내 이러한 방탕한 생활을 청산하고 대자연의 품에서 문학에 눈을 뜨게 되는 계기가 그에게 찾아왔다. 코카서스의 포병 연대에 근무하고 있던 맏형 니콜라이가 휴가를 얻어 집에 왔다가 귀대하는 길에, 그를 데리고 간 것이다. 그의 갑작스런 입대는 일종의 도피로서, 그는 일기에 이렇게 쓰고 있다.
‘나는 생애의 가장 좋은 몇 해를 목표도 즐거움도 없이 헛되이 보냈으며 도박으로 인한 부채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코카서스로 도망쳤다. 나는 화를 잘 내며 세련되어 있지 않고 방자하고 편협하고 소심한 인간이다.……또한 결단력이 없고 불안정하며 자존심이 강하고 나태하며 나의 생활에는 일관성이 없다. 나는 선(善)을 사랑한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명성을 사랑한다.’
톨스토이의 이러한 고백은 자신의 혼란 상태를 잘 나타내고 있다.
결국 그는 지원병으로서 사관후보생이 되었다. 그리하여 1852년, 그는 산지(山地) 토벌 전투에 참전했다. 그 해 그는 군복무 중에 <유년 시대>를 탈고하여 당시 제1의 문예지(文藝誌)였던 ≪현대인≫ 9월호에 익명으로 발표하여 호평을 받았다.
데뷔작의 호평에 힘을 얻은 톨스토이는 <습격>, <크리스마스의 밤>, <도박자의 수기> 등을 차례로 썼다. 1953년 7월 23일의 일기에는 ‘일, 일이다! 일을 하고 있을 때는 얼마나 큰 행복을 느끼는가!’라고 고백하고 있다.
1853년 크리미아 전쟁이 발발하자 이듬해인 1854년, 그는 코카서스와 작별을 고하고 포병사관으로서 세바스트뽀리 방위전에 참전했으며 이때의 자신의 체험을 기록한 것이 <세바스트뽀리>이다. 그동안 그의 명성은 날로 높아져 갔다. 그는 당시 일기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게는 문학만 있으면 그만이다. 나의 천직은 문학이다. 나는 일생동안 글 쓰는 일을 계속하리라.’ 그는 그때 이미 문학을 그의 천직으로 삼을 것을 결심했던 것이다.
1855년 그가 뻬쩨스브르크로 돌아오자 그는 투르게네프 등 잡지 ≪현대인≫ 주위의 문인들로부터 재능 있는 신진 작가로서 따뜻한 영접을 받았다.
1856년 3월, 크리미아 전쟁이 끝나자 톨스토이는 11월에 제대하고 영지(領地)인 야스나야 폴리야나로 돌아왔으나 이듬해 1월, 프랑스와 스위스, 독일 등으로 처음 유럽 여행을 떠났다. 그때 그는 파리에서 기요틴에 의한 사형 집행 광경을 보고 심한 충격을 받기도 했으며, 스위스에서는 음악가에 대한 부유한 자들의 조소를 보고 서양 문명에 대해 회의를 품기도 했다. 그 해 8월, 그는 다시 야스나야 폴리야나로 돌아와 ‘시적 즐거움’을 발견하는 한편 농업에 열중하면서 농노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온힘을 기울였다. 이때부터 교육 사업에 대한 그의 열의는 일생 동안 변치 않았으며 농노 자녀들을 위해 학교를 세우고 ≪야스나야 폴리야나≫라는 교육 잡지를 발행하기도 했다. 이때의 작품에는 <세 개의 죽음>, <가정의 행복> 등이 있는데 이 작품들은 이미 미래의 문호 탄생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그 무렵 맏형 니콜라이는 결핵으로 독일에서 요양 중이었다. 1860년 7월, 톨스토이는 형 니콜라이의 병문안 겸 서구의 초등교육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 독일로 여행을 떠났다. 니콜라이의 병세는 날로 악화하여 9월 20일, 마침내 그는 세상을 떠났다. 어린 시절부터 존경하고 사랑했던 형 니콜라이의 죽음은 톨스토이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으며 모든 인생의 환영(幻影)을 파괴하고 그를 인생의 본질로 끌고 들어갔다. 그리하여 그는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1861년, 그는 야스나야 폴리야나로 돌아와 농사 중재 재판소원(農事仲裁裁判所員)으로 임명되어 농노 해방 운동에 참여했으며 농민의 이익을 위해 투쟁했다. 이때부터 관헌(官憲)들이 ‘자유주의적 경향을 가진’ 톨스토이를 감시하기 시작했으며 1862년 7월, 톨스토이가 요양 차 사마라로 가 있는 동안 관헌들은 야스나야 폴리야나의 저택과 학교를 수색하기도 했다. 이 무렵 그는 자선 사업의 위선을 비방하는 투르게네프와 심하게 대립하여 두 사람의 긴 불화가 시작되었으며 이 불화는 1878년까지 계속되었다.
34세 때인 1862년, 그는 궁정 의사의 딸인 18세의 소피아 안드레예브나와 결혼했다. 결혼을 계기로 톨스토이의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었다. 톨스토이 자신도 그 당시를 회상하여 “결혼 생활의 행복이 나를 삼켜 버렸다.”고 말하였다. 그는 행복한 결혼 생활 속에서 작품 활동에 전념했다. 그의 첫 장편소설 ≪전쟁과 평화≫를 쓴 것도 이 무렵이었으며 ≪안나 카레니나≫를 쓴 것도 이 무렵이었다. 이 동안에도 그는 농민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활동하기도 하고 사마라 지방의 기근 구제 사업에 헌신하기도 했다.
그러나 행복한 결혼 생활이 10여 년 지난 1873년부터 1875년 사이에 그는 3명의 자녀와 자기를 길러 준 숙모를 잃었다. 그는 다시 심각한 인생의 고뇌에 빠졌다. 그리하여 그는 철학과 학문에서 그 해답을 찾고자 했지만 구할 수 없었다. 이후 그는 자살에 대한 충동을 수없이 느꼈다. 결국 그는 소박한 민중의 삶에서, 즉 원시 기독교적인 종교에서 구원의 길을 발견했다. 이 무렵의 인생의 고뇌를 그린 것이 <참회록>이다. 이 무렵 톨스토이는 1882년에 발표한 <참회록>을 비롯하여 <교의신학비판(敎義神學批判)>, <요약 복음서>, <교회와 국가> 등 일련의 종교 논문을 발표했으며, <바보 이반> 등 많은 민화를 발표하여 ‘신과 인류에게 봉사하는’ 구도자로서의 면모를 나타냈다. <참회록>이 ≪러시아 사상≫에 발표되자 그로 인해 ≪러시아 사상≫은 판매금지 당했다. 톨스토이는 <참회록>을 발표한 이후 이른바 ‘톨스토이즘’에 충실한 활동을 계속했으며 1885년에는 자신의 사유 재산을 부정하여 소피아 부인과 대립함으로써 불화의 원인이 되었다.
1904년 노일전쟁이 일어나자 그는 <반성하라>를 발표하여 도덕적인 입장에서 전쟁에 반대했으며 1905년 러시아 혁명 때에는 정부 측과 혁명 측 어느 편에도 서지 않고 무저항주의자로서 폭력을 행사하는 자들을 비난하기도 했다.
1908년 8월 28일, 그의 탄생 80주년을 기념하여 세계적인 규모의 축제가 열렸다. 그러나 만년의 톨스토이는 세계적인 명성과 업적에도 불구하고 구도자로서의 자기모순과 소피아 부인과의 가정적 갈등으로 인해 괴로워했다. 그는 그토록 사랑했던 야스나야 폴리야나에서 더 이상 살아갈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몇 번 가출할 것을 결심했으며 가출했다가 중도에 되돌아온 일도 있었다. 1910년 10월 29일 새벽, 마침내 그는 ‘남은 인생의 마지막 날들을 고독과 평온함 속에서 살기 위해’ 야스나야 폴리야나를 뒤로 하고 의사 마고비츠키와 3녀 알렉산드라와 함께 가출을 결행했다. 11월 7일, 그는 82세를 일기로 리야잔 우랄 철도의 작은 역 아스타포보 역에서 영면했다. 유해는 야스나야 폴리야나 영지(領地)에 묻혔다.

≪인생론≫에 대하여

≪인생론≫은 톨스토이가 58세 때인 1886년 가을부터 1887년 여름에 걸쳐 쓴 노작이다. 즉 ≪전쟁과 평화(1863~1869)≫와 ≪안나 카레니나(1873~1877)≫를 쓰고 ≪부활(1899)≫을 쓰기 전의 톨스토이의 ‘위기’라고 불리던 때에 쓴 작품이다.
그는 ≪참회록≫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다.
‘5년 전부터 나는 때때로 무언가 매우 기묘한 일을 체험하기 시작했다. 의혹과 생활이 정지되어 버리는 것 같은 순간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등을 전혀 알 수 없게 되어 버린 순간이 갑자기 나를 덮친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회의에 사로잡힌 채 갈팡질팡했다. 나는 곧 그곳에서 빠져나와 이전의 생활로 돌아갔지만 그 후 이러한 의혹은 더욱 빈번하게 떠올랐을 뿐만 아니라 항상 나의 내부에 남아 있었다. 생활의 정지는 항상 무엇을 위해? 그리고 그 다음에는?이라는 동일한 의문의 형태로 나타났다. 그러한 의혹은 마치 먹물처럼 뚝뚝 떨어져 내 가슴 속을 검게 물들였다.’(≪참회록≫ 제3장)
‘나의 생활은 정지했다. 나는 숨을 쉬고 먹고 마시고 잠을 자지만 그곳에는 참된 생활이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나를 충족시키는 합리적인 욕구가 아니기 때문이었다.’(≪참회록≫ 제4장)
인생에 대한 이러한 철저한 회의는 곧 톨스토이즘 혹은 톨스토이 주의라고 불리는 확고한 신념으로 바뀌어 그 신념의 일단이 ≪인생론≫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 ≪인생론≫을 집필했던 1886년 8월 초순, 톨스토이는 어떤 가난한 과부를 위해 건초를 운반해 준 일이 있었다. 그때 그는 마차에 다리를 다쳤는데 그 상처가 악화하여 의외로 심각해져 40도의 고열과 구토, 심한 고통을 일으켰다. 이 병은 어쩌면 톨스토이의 생명을 거의 앗아갈 정도로 몹시 위중했다.
그 무렵 어떤 출판사의 기자였던 안나 콘스탄티노프나 지테리프스(후에 그의 친구인 체르토코프의 부인이 됨)라는 여성이 이것을 알고 톨스토이에게 위로의 편지를 보내 왔다. 그것은 단순한 위로의 편지가 아니라 그녀 자신의 인생관, 생사관을 쓴 긴 편지였다.
톨스토이는 이에 회신을 하기 위해 편지를 썼다. 이 편지가 가필에 가필이 반복된 후 독립된 논문이 되어 불후의 명작인 ≪인생론≫이 되었다고 한다.
이 저작은 톨스토이의 많은 작품들 중에서도 명저로서 유명한 반면에 난해하기로도 이름난 작품이다.
톨스토이는 이 작품에서 ‘인생이란 행복하게 되려는 욕구이며 그러한 노력 속에 인생의 의의가 있다.’고 전제해 놓고 동물적 개인의 행복은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참된 행복을 설명하고 있다. 참된 행복, 즉 참된 생명은 동물적 자아를 이성적 의식에 종속시키는 활동, 즉 사랑의 활동에 의해 얻어질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인간의 참된 생명은 죽음에 의해 소멸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통은 인간을 참된 생활로 인도하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요소라고 설명하고 있다.
즉 행복이야말로 인생의 목적이며 인간은 모두 이 목적을 향해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면 인생의 이 목적을 어떻게 하면 달성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에 대해서 톨스토이는 사랑에 의해 가능하다고 대답하고 있다. 그는 사랑은 이성의 활동이며 인간은 이 이성, 즉 신의 활동인 사랑에 의해 선한 목적을 향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며 그것이 인생이라고 말하고 있다.

1888년 말 ≪인생론≫이 발간되자 러시아 검열위원회는 ‘이 책은 신의 말이 없고 인간의 이성만을 강조하여 교회와 교의에 불신을 일으키므로 무조건 판매 금지’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하여 종무원(宗務院 : 제정 러시아 정교회 최고 기관)은 ≪인생론≫의 발행을 금지시키고 인쇄소에 있던 책 600부를 모두 몰수했다.

≪참회록≫이 발표된 것이 1882년이었고 ≪인생론≫이 발표된 것이 1887년이었다. 톨스토이 자신은 ≪참회록≫을 끝내면서 이것의 제2부를 쓸 예정임을 밝혔다. 그런데 그가 말한 제2부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인생론≫인 것이다. 그러나 작품 내용의 성질상, 그리고 독자의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하여 본서에서는 ≪인생론≫을 앞에 실었고 ≪참회록≫을 뒤로 하였다.

≪참회록≫에 대하여

≪참회록≫은 톨스토이가 51세 되던 해인 1879년부터 54세 되던 해인 1882년 사이에 쓴 작품으로 톨스토이의 많은 작품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작품 중의 하나이며 다른 모든 사상가, 철인들의 참회록, 고백록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작품의 하나이다. 이 ≪참회록≫ 속에는 1870년대 후반기, 즉 ‘톨스토이의 위기’라고 불리는 시대의, 오직 자살 이외에는 다른 길이 없었던 그의 내적 고뇌가 적나라하게 나타나 있다. 그러나 그의 위기는 1870년대 후반에 들어서 비로소 그를 덮친 것은 아니다. 의식적 생활의 첫발을 내디딘 순간부터 그의 생활은 넓은 의미에서 위기의 연속이었으며 1870년대 후반의 그것은 끊임없이 물결치는 그의 영혼의 가장 높은 파도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유년 시대부터 톨스토이에게는 그의 도덕적인 면의 최초의 특징이 나타났다. ‘이상에 대한 갈망’이 그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이상은 다종다양했으며 항상 변했다. 그의 이상들은 한결같이 ‘전체냐 아니면 무(無)냐’를 추구하는 그의 열정적인 영혼을 만족시켜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때로는 형 세르게이가 그의 이상이 되었던 일도 있으며, 또 맏형 니콜라이가 그의 이상이 되었던 일도 있었다. 또한 그는 막연하게 ‘만인의 행복’을 동경한 일도 있었으며 그의 사상이 서서히 회의적인 경향을 띠게 되었을 때에는 외적 세계의 실재를 의심하고 세계의 무의미함과 공허함을 추구한 일도 있었다. 그러나 유년 시대가 끝날 무렵 이 이상들은 더욱 분명해졌으며 ‘선으로의 진로 탐색’과 ‘만인의 행복으로의 진로 탐색’으로 나타났다.
그는 이상 세계와 현실 세계 사이의 수많은 모순에 부딪쳤으며 때로는 심각한 의혹의 심연에 빠지기도 했다. 그리하여 현실 세계는 그의 마음을 자극하여 인생의 모순의 해결을 향해 매진하도록 그를 채찍질했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현실 세계에 대한 자신의 욕망을 제거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에게는 서로 모순되는 자기의 이상과 현실 세계를 어떻게 조화시켜야 하느냐 하는 의문이 생겨났다. 그는 현실 세계에 대한 그의 욕망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그가 방종과 혼란의 몇 년을 보낸 것도 그의 이상과 현실 세계 사이에서의 악전고투의 감정을 봉쇄해 버리기 위해서였으며 코카서스의 은둔 생활로 들어간 것 또한 같은 이유에서였던 것이다. 톨스토이가 코카서스의 원시적인 대자연의 품에 안기자 그의 영혼은 무한한 힘의 근원인 대자연의 품속에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그의 내적 욕망, 즉 진리에 대한 욕구, 인생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그의 갈망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그 후 그는 인생의 모든 문제 해결을 향해 돌진했다. 톨스토이 자신도 ‘나는 항상 인생의 의의를 탐구하기 위해 돌진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삶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일기에서 ‘삶의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그러나 그 변화는 외적 조건의 소산이어서는 안 되며 영혼의 소산이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실로 ≪참회록≫은 그의 삶의 전환점이었다. ‘그는 그의 생의 전반부의 작품들은 쓰지 않고도 견딜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이 ≪참회록≫을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참회록≫은 태어나지 않을 수 없었던 작품이다.’라고 비평가들은 말하고 있다.

■ 연 보

□ 1828년
ㆍ 8월 28일 모스크바 200㎞ 남쪽 토라시 부근의 야스나야 폴리야나의 영지에서 출생. 나폴레옹 전쟁에 참가했던 퇴역 육군 중령인 아버지 니콜라이 이리치 톨스토이 백작과 보르콘스키 공작가 출신인 어머니 마리아 니콜라예비치나 사이에서 4남으로 태어남.
□ 1830년(2세)
ㆍ 어머니, 딸 출산 후 죽음.
□ 1837년(9세)
ㆍ 1월, 톨스토이 일가 모스크바로 이사.
ㆍ 6월, 아버지 뇌일혈로 노상에서 죽음.
□ 1841년(13세)
ㆍ 세 형과 누이동생과 함께 카잔에 있는 고모(아버지의 누이동생)의 집으로 옮김.
□ 1844년(16세)
ㆍ 9월, 카잔 대학 동양어학과에 입학.
□ 1845년(17세)
ㆍ 5월, 진급시험에 낙제.
ㆍ 8월, 법률 학과로 옮김.
□ 1847년(19세)
ㆍ 4월, 대학교육에 만족하지 못하고 중퇴, 영지로 돌아와 농사 관리에 종사. 농노의 생활 개선에 힘썼으나 실패함.
□ 1848년(20세)
ㆍ 10월, 모스크바로 옮겨 방탕한 생활을 함.
□ 1849년(21세)
ㆍ 다시 영지로 돌아가 지주 생활을 함.
ㆍ 가을, 농민의 자제들을 위해 학교를 세우다.
□ 1851년(23세)
ㆍ 4월, 코카사스 지방으로 들어감.
□ 1852년(24세)
ㆍ 1월, 사관후보생으로 입대, 산지 토벌 전투에 참가.
ㆍ 9월, 잡지 ≪현대인≫ 제9호에 중편소설 <유년시대>를 발표하여 호평을 받음. 단편소설 <습격>을 씀.
□ 1853년(25세)
ㆍ 크리미아 전쟁 시작. 단편소설 <도박자의 수기>를 씀.
□ 1854년(26세)
ㆍ 중편소설 <소년시대> 탈고. 포병사관으로서 세바스트뽀리 방위전에 참가.
□ 1855년(27세)
ㆍ 단편 <산림 벌채> 탈고. 전기(戰記) <1854년 12월의 세바스트뽀리>를 씀.
ㆍ 크리미아 각지를 돌아다님.
ㆍ 11월, 뻬쩨스브르크로 돌아와 투르게네프 등 잡지 ≪현대인≫ 주위의 문인들과 사귐.
□ 1856년(28세)
ㆍ <1855년 8월의 세바스트뽀리>, 단편소설 <눈보라>, <2인의 경기병>, <지주의 아침> 등 발표.
ㆍ 11월, 군에서 제대.
□ 1857년(29세)
ㆍ 프랑스, 스위스, 독일 등으로 최초의 유럽 여행을 떠남. 서구의 물질문명에 의혹을 품고 귀국. <르뜨에른>, <아르베리뜨>, <청년 시대> 발표.
□ 1859년(31세)
ㆍ ≪현대인≫ 잡지의 동인에서 탈퇴. 창작활동을 멀리하고 야스나야 폴리야나에 학교를 세우고 농민의 자녀들 교육에 힘씀. 이때 ≪야스나야 폴리야나≫라는 교육 잡지 발행. <세 가지 죽음>, <가정의 행복> 발표.
□ 1860년(32세)
ㆍ 여름에 독일, 프랑스, 이태리, 영국, 벨기에 등을 여행.
□ 1861년(33세)
ㆍ 5월, 귀국. 농지조정원으로서 농노해방 실시에 참가. 지주와 농민 사이의 분쟁 해결을 위해 노력, 농민의 이익을 위해 싸움.
투르게네프와 다투고 절교 상태에 들어감.
□ 1862년(34세)
ㆍ 9월, 모스크바 궁정 의사 베루스의 딸 소피아 안드레예브나(18세)와 결혼. <국민 교육에 대하여> 발표.
□ 1863년(35세)
ㆍ 6월, 장남 세르게이 출생. <진보와 교육의 정의>, <코사크> 발표. <전쟁과 평화> 착수.
□ 1864년(36세)
ㆍ 10월, 장녀 다찌야나 출생.
□ 1865년(37세)
ㆍ <전쟁과 평화> 일부를 발표.
□ 1866년(38세)
ㆍ 5월, 차남 이리야 출생.
□ 1869년(41세)
ㆍ 5월, 3남 레프 출생.
ㆍ 12월, <전쟁과 평화> 6권 발행.
□ 1872년(44세)
ㆍ <초등 독본>, <코카사스의 포로> 발표.
□ 1873년(45세)
ㆍ 장편 <안나 카레니나> 착수. 일시 중단했던 교육활동 재개. 사마라 지방의 기근으로 인한 난민 구제 사업에 헌신.
ㆍ 11월, 4남 삐요트르 생후 1년 반 만에 죽음.
□ 1874년(46세)
ㆍ 4월, 5남 니콜라이 출생.
□ 1875년(47세)
ㆍ 2월, 5남 니콜라이 죽음.
ㆍ 딸 우르울라 출생하자마자 곧 죽음.
□ 1877년(49세)
ㆍ <안나 카레니나> 초판 발행.
□ 1878년(50세)
ㆍ 4월, 투르게네프와 화해.
□ 1879년(51세)
ㆍ 평론집 <교회와 국가> 발표.
□ 1880년(52세)
ㆍ <참회록> 착수.
□ 1881년(53세)
ㆍ 3월, 도스토예프스키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요약 복음서> 발표.
□ 1882년(54세)
ㆍ 3월, <러시아 사상>에 <참회록> 발표. 이로 인해 <러시아 사상>은 판매금지 당하다.
□ 1883년(55세)
ㆍ 8월, 투르게네프 사망.
□ 1884년(56세)
ㆍ 6월, 3녀 알렉산드라 출생.
<나의 신앙은 무엇인가> 탈고.
□ 1885년(57세)
ㆍ 소피아 부인에게 저작권을 양도함. 부인의 편집에 의해 저작집 12권 발행. <사랑이 있는 곳에 신이 있다>, <바보 이반>, <두 노인> 등 발표.
□ 1886년(58세)
ㆍ 1월, 6남 알렉세이 죽음. <이반 이리치의 죽음>, <어둠의 힘> 등을 발표. <인생론> 착수.
□ 1887년(59세)
ㆍ 육식을 끊음. <빛이 있는 동안 빛 속을 걸어라>, <인생론> 등을 발표. <크로이젤 소나타> 착수.
□ 1888년(60세)
ㆍ 막내아들 이반 출생.
□ 1889년(61세)
ㆍ<크로이젤 소나타>, <악마> 발표. <부활> 착수.
□ 1891년(63세)
ㆍ 9월, 1880년 이후의 저작권 포기.
□ 1893년(65세)
ㆍ <노자> 번역에 몰두. <종교와 국가>, <기독교와 애국심> 발표.
□ 1894년(66세)
ㆍ <카르마>, <신의 고찰> 발표.
□ 1895년(67세)
ㆍ 막내아들 이반 죽음. <주인과 하인> 발표.
□ 1897년(69세)
ㆍ 가출할 것을 결심하고 유서를 썼으나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 1898년(70세)
ㆍ <예술이란 무엇인가>, <신부 세르게이> 발표.
□ 1899년(71세)
ㆍ <부활> 발표.
□ 1900년(72세)
ㆍ <산송장>, <죽이지 말라> 등 발표.
□ 1901년(73세)
ㆍ 2월, 소설 <부활>로 종교회의를 거쳐 러시아 정교회로부터 파문을 당하다. <신앙의 자유를 인정하라> 발표.
ㆍ 여름, 병으로 크리미아로 요양을 떠남.
□ 1902년(74세)
ㆍ <종교론>, <지옥의 부흥> 발표.
□ 1903년(75세)
ㆍ <무도회의 밤>, <셰익스피어론>, <세 개의 의문> 등 발표.
□ 1904년(76세)
ㆍ 러일전쟁이 시작됨. <반성하라>를 발표하여 전쟁에 반대함.
ㆍ <유년 시대의 추억>, <하지 무라드> 발표.
□ 1905년(77세)
ㆍ <불타>, <세계의 종말> 발표.
□ 1906년(78세)
ㆍ <신의 일과 인간의 일>, <파스칼>, <러시아혁명의 의의> 발표.
□ 1907년(79세)
ㆍ <진정한 자유를 인정하라>, <우리의 인생관>, <서로 사랑하라> 발표.
□ 1908년(80세)
ㆍ 톨스토이 탄생 80년을 기념하여 많은 톨스토이론이 발행됨. 각지에서 톨스토이 80년 기념 행사가 거행됨.
□ 1909년(81세)
ㆍ 1월, 유언장 작성. <사형과 기독교>, <고골리론>, <아이들의 지혜> 발표.
□ 1910년(82세)
ㆍ 7월 22일, 유언장 작성. 이것이 최후의 합법적인 유언장이 됨.
ㆍ 10월 28일 새벽, 자신의 신념과 실생활 사이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부인에게 이별의 편지를 써 놓고 3녀 알렉산드라와 의사 마고비츠키와 함께 야스나야 폴리야나를 버리고 방랑의 여행길을 떠남.
ㆍ 10월 31일, 폐렴 발병, 리야잔 우랄 철도의 작은 역 아스타 포보에서 내림.
ㆍ 11월 3일, 최후의 감상을 일기에 기록.
ㆍ 11월 7일 오전 6시 5분, 아스타 포보역장 관사에서 영면. ‘진리를 …… 나는 …… 사랑한다 …… 왜 저 사람들은 ……> 이것이 그의 최후의 말이었다.
ㆍ 11월 9일, 야스나야 포리야나의 영지 안에 매장.
ㆍ 유고로서 <인생의 길>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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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톨스토이 | c3**6c | 2019.09.15 | 5점 만점에 4점 | 추천:0
     레오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Leo Nikolayevich Tolstoi)는 1828년 8월 28일, 모스크...


     레오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Leo Nikolayevich Tolstoi)는 1828년 8월 28일, 모스크바 200㎞ 남쪽 야스나야 폴리야나(Yasnaya Polyana)에서 니콜라이 일리치 톨스토이 백작의 4남 1녀 중 4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니콜라이 톨스토이 백작은 1812년의 나폴레옹 전쟁에 참가했던 퇴역 육군 중좌(中佐)로서 너그럽고 호탕한 성격의 소유자였으며 그의 어머니 마리아 니콜라예비치나는 명문인 보르콘스키 공작가의 딸로서 신앙심이 두텁고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태리어 등에 능통한 교양이 높은 여성이었다.
    톨스토이에게는 니콜라이, 세르게이, 드미트리 등 세 형과 여동생 마리아가 있었다. 그의 어머니 마리아는 그가 두 살도 채 되기 전인 1830년에 딸 마리아를 낳고 세상을 떠났으며 그의 아버지 니콜라이도 또한 그가 9세 때인 1837년 뇌일혈로 세상을 떠났다.
    부모를 잃은 톨스토이는 세 형과 누이동생과 함께 카잔에 있는 숙모의 집으로 옮겨 그녀의 보살핌을 받았다. 그녀는 헌신적인 애정으로 그들을 돌보아 주었다.
    1844년 16세가 되었을 때 톨스토이는 형 세르게이와 드미트리가 공부하고 있던 카잔 대학에 입학하여 동양어학을 공부했다. 처음에는 외교관이 되려고 했으나 이듬해 5월 진급 시험에 낙제하여 법과로 옮겼다. 그러나 이미 외교관의 꿈을 잃은 톨스토이는 방탕한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특히 그들을 돌보아 주고 있던 숙모는 선량한 부인이었지만 화려한 사교계를 좋아하여 그들에게 일찍부터 사교계에 진출하기를 권했다. 그리하여 톨스토이는 대학생의 신분이면서도 상류 사회의 사교계로 나갔지만 그곳에서 요구되는 프랑스풍의 우아한 태도와 대화가 어쩐지 서먹서먹했다. 내성적 성격을 타고난 그는 자신의 세련되지 못한 용모에 대해 무척 괴로워했다.
    그리하여 그는 사교계를 떠나 공부에 열중하려 했지만 결국 대학 생활에 환멸을 느끼고 대학 생활 3년째인 1847년에 대학을 중퇴하게 되었다. 그가 받은 정규 교육은 이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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