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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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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쪽 | | 129*205*12mm
ISBN-10 : 8932030545
ISBN-13 : 9788932030548
한 문장 중고
저자 김언 |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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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8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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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새책같아요새책같아요 5점 만점에 5점 sean*** 2019.06.22
64 정말 최상급중고 책이네요 믿고 사도 되겠어요 5점 만점에 5점 pkbn*** 2019.01.12
63 새책이네요. 거의. 혹시나 하고 사봤는데요. 아주 질이 좋아요. 전성원 작가 특유의 문장을 볼 수 있어 좋아요. 이 책을 통해 더 많은 책을 읽을수 있을거 같네요. 5점 만점에 5점 msind*** 2018.04.29
62 완전 새책이에요! 하루만에 도착했습니다 감사합니다~ 5점 만점에 5점 pr*** 2017.02.03
61 빠른배송 최고!책상태도 최고! 5점 만점에 5점 je880*** 2016.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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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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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언의 다섯번째 시집 『한 문장』은 제목에서 기대되는 바와는 달리 하나의 완결된 의미를 만드는 데에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 오히려 현실의 의미 체계를 뛰어넘는 시도와 현실을 가득 채운 의미 체계를 공동(空洞)으로 만드는 지속적인 반복의 기록이 고스란히 담겼다. 동시에 언어의 감옥, 답습되는 틀에 갇힌 말을 떠나 언어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나서는 김언의 시 세계를 엿볼 수 있다.

저자소개

저자 : 김언
1998년 『시와사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숨쉬는 무덤』 『거인』 『소설을 쓰자』 『모두가 움직인다』, 산문집으로 『누구나 가슴에 문장이 있다』 등이 있다.

목차

1부
지금 /있다 /있다 /고향 /저것이 가을인가? /결정 /불변 /중 /폭발 /균열 /그 생각 /중지하는 사람

2부
어원 /북방의 말 /내가 말하는 동안 /내가 없다면 /판결 /유리창 /추모식 /자유의지 /인상 /이미지 /한계 /나와 이것 /당신과 그것 /그것 없이도 /나와 저것

3부
고용 /친구 /물 /가족 /부음 /모닥불 /모습 /가족 /응시 /사이 /만남 /방 /참치 /하지 못한 말 /물 한 잔의 시간 /물 한 잔의 시간에 담긴 물 한 잔의 노트

4부
한 문장 /자존 /혀를 통해서 /화근 /색청 /밀실과 털실 /그렇군요 그렇지요 /열매 같은 것들 /등록 /장래희망 /너로 인해 /절망 /불청객 /싸움 /마음 /강철보다 단단한 밤하늘을 별은 어떻게 운행하는가? /어디까지가 자연인가? /왕이 되어가다 /호위견 /완제품

해설
시적 언어 기원론ㆍ남승원

책 속으로

[시집 속으로] 그 생각을 하려니까 혀끝이 간질간질하다. 그 생각을 들으려니까 귓속이 근질근질하다. 그 생각을 만지려니까 내 손이 먼저 떨고 있다. 그 생각이 무언가? 그 생각이 무엇이기에 알아서 벌벌 떨고 있는 내 발이 움직이지 않는 걸까? 땅바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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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속으로]
그 생각을 하려니까 혀끝이 간질간질하다. 그 생각을 들으려니까 귓속이 근질근질하다. 그 생각을 만지려니까 내 손이 먼저 떨고 있다. 그 생각이 무언가? 그 생각이 무엇이기에 알아서 벌벌 떨고 있는 내 발이 움직이지 않는 걸까? 땅바닥에 붙은 것처럼 꿈쩍도 하지 않는 발바닥을 떼려고 하니까 그 생각이 먼저 와서 녹는다. 언제 얼음이라도 얼었냐는 것처럼 녹고 있는 물을 얼마나 더 녹여야 그 생각이 바뀔까? 만질 수 없는 물을 더 만질 수 없는 물로 옮겨 가는 생각을 얼마나 더 만져야 손이 멈출까? 방금 전까지 벌벌 떨고 있던 손을 다른 손이 붙잡고 거두어간다. 둘 다 떨고 있기는 마찬가지인 손을 끝까지 다독이려는 그 말도 혀끝에서 몰래 떨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내 귀는 그 말을 삼키려고 아직도 열려 있고 떨고 있다. 어떤 말이 와서 쾅 하고 닫힐 때까지.
―「그 생각」 전문

나는 못 한다. 너도 못 한다. 그 역시 포기하고 있다. 좌절하기 위해서 내가 있다. 실패하기 위해서라도 네가 있다. 그걸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그가 있음을 증명하는 방식으로 내가 있다. 내 말이 있고 너의 말이 있고 그걸 받아서 써 내려가는 누군가의 날랜 손놀림이 있다. 그 손과 함께 내 손이 있다면 일부라도 있다면 네 손 역시 독창성에서 한없이 자유로운 범사가 되리라. 범사의 일부를 이루는 고유한 익명이 되리라. 눈과 함께 내리는 눈의 일부를 받아 적는 여러 사람의 손이자 단 한 사람의 손놀림. 비와 함께 내리는 비의 전부를 받아쓸 수 없는 단 한 사람의 손이자 모든 사람의 기록으로 비가 온다. 눈이 내린다. 내가 없다. 그럼 누가 있겠는가.
―「내가 없다면」 부분

[뒤표지 글]
책머리에 당신이 있다. 말머리에도 당신이 있고 나는 꼬리표를 뗐다. 얼마나 기다려야 도착하는가. 말 한마디의 이동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다 바꾸는 일일 텐데, 얼마나 움직여야 당신이 도착하는가. 당신에게 도착한 날부터 그걸 헤아리느라 책을 덮지 못하고 있다. 말을 떼지도 못하고 있다. 문이 열리고 닫히기를 몇 번이고 거듭한 후에야 당신이 들어왔다. 나는 잠에서 깼다. 긴 잠이 아니면 짧은 잠이라도 하룻밤이 다 소요되는 당신의 방문. 당신의 도착. 당신의 기척. 당신의 웃음. 당신의 있음과 그리고 없음. 있다가 없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없음. 영원히 없으므로 발견되지 않는 책에서 처음으로 당신이 시작한 말도 그래서 없음이다. 영원히 함께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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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김언이라는 이름에 부여된 시적 운명 시의 밖을 꿈꾸는 시작(詩作) 김언의 다섯번째 시집 『한 문장』이 문학과지성 시인선 2018년 첫 책으로 출간됐다. 시인은 첫 시집 『숨쉬는 무덤』(천년의시작, 2003)에서부터 기존의 관념에 갇힌 ‘시’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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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언이라는 이름에 부여된 시적 운명
시의 밖을 꿈꾸는 시작(詩作)

김언의 다섯번째 시집 『한 문장』이 문학과지성 시인선 2018년 첫 책으로 출간됐다. 시인은 첫 시집 『숨쉬는 무덤』(천년의시작, 2003)에서부터 기존의 관념에 갇힌 ‘시’의 경계 밖으로 향하는 작업에 집중하며, ‘시’가 아닌 시를 자아내고 있다. 끊임없이 바깥을 볼 것을 강조하는 그의 시 세계는, 이러한 특징 때문에 딱 한 가지로 정의하기 어려우면서 동시에 영원히 실패해도 계속해서 써볼 수밖에 없는 부단한 시도로 점철되어 있다.
이번 시집 『한 문장』은 제목에서 기대되는 바와는 달리 하나의 완결된 의미를 만드는 데에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 오히려 현실의 의미 체계를 뛰어넘는 시도와 현실을 가득 채운 의미 체계를 공동(空洞)으로 만드는 지속적인 반복의 기록이 고스란히 담겼다. 동시에 언어의 감옥, 답습되는 틀에 갇힌 말을 떠나 언어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나서는 김언의 시 세계를 엿볼 수 있다.

금세 사라져버리고 마는 ‘지금’
길을 잃은 말들이 놓인 진공 상태

지금 말하라. 나중에 말하면 달라진다. 예전에 말하던 것도 달라진다. 지금 말하라. [……] 지금은 변한다. 지금이 절대적이다. 그것을 말하라. 지금이 되어버린 지금이. 지금이 될 수 없는 지금을 말하라. 지금이 그 순간이다. 지금은 이 순간이다. 그것을 말하라. 지금 말하라.
―「지금」 부분

시집 『한 문장』은 “지금 말하라”는 강력한 목소리로 시작한다. 말은 바로 지금이 지나가기 전에 나와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지금 말하라’는 말은 가능한가? 지금이 기준이지만, 우리가 ‘지금’이라고 말하는 바로 이 순간에도 시간은 흐르고 계속해서 지금은 과거가 된다. 기준이 되는 시점이 달라지는 시간의 운동성 속에 ‘말’이 놓여 있다. 시를 이끄는 이 운동성은 언어로, 말로 점철된 시 세계를 만들면서도 거듭해서 독자를 진공의 상태로 끌어간다. 이를 두고 문학평론가 남승원은 시인이 “승패 여부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대결의 무효”를 주장하고 있다고 말한다. 즉, 누가 이기고 졌음을 계산을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방향으로 시인이 의미 구조를 재편한다는 것이다. 「중」 「균열」 등의 시에서도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이 같은 특징은 “지금의 자리만 차지하고, 더 이상 의미를 축적해나갈 수 없는 독자들을 ‘지금-의미’ 그 자체 안으로 불러들인다”.

손을 씻고 나오는 사람도
그 물에 다시 손을 씻는 사람도 한 문장이다.
나는 얼마나 결백한가 아니면 얼마나 억울한가
아니면 얼마나 우울한가의 싸움 앞에서
앞날이 캄캄한 걱정 스님의 말씀도 한 문장이다.
옆에서 듣고 있던 격정 스님의 말씀도 한 문장이다.
“흥분을 가라앉혀라.”
―「한 문장」 부분

표제작의 제목인 “한 문장”만 놓고 본다면, 절대적 지침으로서의 한 문장으로 나아가는 여정 혹은 하나로 수렴되는 방향성을 예상하기 쉽지만 정작 김언의 시는 그렇게 읽히지 않는다. “자연이 말하는 방식”도 “내가 말하는 방식”도 모두 한 문장이다. 나를 넘어 “이곳의 날씨”와 “저곳의 풍토”도 한 문장이다. 많은 말들을 계속해서 쏟아내고 덮고, 덮은 것들을 다시 덮기 위해 다시 문장을 쏟아내면서, 오히려 ‘한 문장’의 의미는 모호해지고 만다. 너무 많은 것은 사실 없는 것과 같다는 것을 증명하듯 ‘한 문장’의 의미는 다시 질문을 만드는 방식으로 열려버린다.
이에 더해 흔히 인생의 통찰을 주기 위해 권위를 지닌 자의 한 말씀을 인용한다는 친숙한 원리를 김언의 시와 비교해보자면, 시의 말미에서 ‘스님의 말씀’이 갖는 의외성은 몹시 특징적이다. “앞날이 캄캄한” 스님의 이름은 ‘걱정’이다. “흥분을 가라앉혀라”라고 말하는 스님의 이름은 ‘격정’이다. 시 「한 문장」은 시가 점점 고조되어가는 지점에서 언어유희로 긴장감을 끊어놓으며, ‘한 문장’의 의미를 전혀 알 수 없는 상태로 만든다. 문장이 중첩되면서 시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방향을 잃게 만드는, 알던 길도 놓치게 만드는 방식과 마주할 때 김언의 시를 읽는 재미는 배가된다.

텅 빈 공간을 채우는 끝없는 가능성
아직 도래하지 않은 말을 찾는 시인의 여정

사실상 공백으로 비워진 ‘한 문장’은 뚜렷한 목표를 갖고 있지 않은 동시에, 그럼에도 말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기 때문에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한다.

나는 내 의지로 거기 있다. 거기서 헤어 나오질 못하고 있다. 순전히 내 의지로 조종당하고 있다. 순전히 내 의지로 사경을 헤매고 있고 순전히 내 의지로 기적에서 깨어났다.

[……]

순전히 내 의지로 버스는 출발했고 비행기는 멈춰 있다. 순전히 내 의지로 무관하고 무의미하고 무성의하고 어쩐지 축제 같다. 아침마다 오는 발기의 순간도 순전히 내 의지로 감퇴했다. 짜릿하게.
―「자유의지」 부분

이 시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사건들, 이를테면 ‘모르는 명단에 내가 껴 있는 것’ ‘기차가 오고 비행기가 멈추는 것’ 등은 누군가의 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시인은 사건이 모두 “내 의지로” 일어난 일임을 주장한다. 내 의지와 무관한 행위들을 ‘의지’라는 단어와 나란히 놓음으로써, 시 안에서 의지라는 단어는 무력화된다. 나의 의지가 향하는 방향이 비어버린 자리에서 시인은 “어쩐지 축제 같다”고 고백한다. 무(無)가 되어버린 공간은 김언에게 ‘축제’이다. 기존의 정해진 틀 밖으로 나아가는 자유로움과 새로운 언어를 만날 가능성은 답습되는 의식 체계가 사라진 뒤에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금 말하라’는 김언의 외침은 ‘나를 지배하는 언어’를 벗어나 아직 오지 않은 말을 찾고자 하는 시집의 시적 여정을 알리는 시작과도 같았다. 무한한 가능성 속에서 자유로운 글쓰기에 몸을 맡긴 김언의 시적 여정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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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

회원리뷰

  • 한 문장 | si**v1213 | 2018.08.12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그 생각을 하려니까 혀끝이 간질간질하다. 그 생각을 들으려니까 귓속이 근질근질하다. 그 생각을 만지려니까 내 손이 먼저 떨고 ...
    그 생각을 하려니까 혀끝이 간질간질하다. 그 생각을 들으려니까 귓속이 근질근질하다. 그 생각을 만지려니까 내 손이 먼저 떨고 있다. 그 생각이 무언가? 그 생각이 무엇이기에 알아서 벌벌 떨고 있는 내 발이 움직이지 않는 걸까? 땅바닥에 붙은 것처럼 꿈쩍도 하지 않는 발바닥을 떼려고 하니까 그 생각이 먼저 와서 녹는다. 언제 얼음이라도 얼었냐는 것처럼 녹고 있는 물을 얼마나 더 녹여야 그 생각이 바뀔까? 만질 수 없는 물을 더 만질 수 없는 물로 옮겨 가는 생각을 얼마나 더 만져야 손이 멈출까? 방금 전까지 벌벌 떨고 있던 손을 다른 손이 붙잡고 거두어간다. 둘 다 떨고 있기는 마찬가지인 손을 끝까지 다독이려는 그 말도 혀끝에서 몰래 떨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내 귀는 그 말을 삼키려고 아직도 열려 있고 떨고 있다. 어떤 말이 와서 쾅 하고 닫힐 때까지.
    ---「그 생각」중에서

    나는 못 한다. 너도 못 한다. 그 역시 포기하고 있다. 좌절하기 위해서 내가 있다. 실패하기 위해서라도 네가 있다. 그걸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그가 있음을 증명하는 방식으로 내가 있다. 내 말이 있고 너의 말이 있고 그걸 받아서 써 내려가는 누군가의 날랜 손놀림이 있다. 그 손과 함께 내 손이 있다면 일부라도 있다면 네 손 역시 독창성에서 한없이 자유로운 범사가 되리라. 범사의 일부를 이루는 고유한 익명이 되리라. 눈과 함께 내리는 눈의 일부를 받아 적는 여러 사람의 손이자 단 한 사람의 손놀림. 비와 함께 내리는 비의 전부를 받아쓸 수 없는 단 한 사람의 손이자 모든 사람의 기록으로 비가 온다. 눈이 내린다. 내가 없다. 그럼 누가 있겠는가. ---「내가 없다면」중에서
  • 한 문장 | su**ell | 2018.08.02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한 문장. 언뜻 간단하다고 여길 수 있으나 겪어본 사람은 안다. 핵심을 담아 간결하게 표현하기란 꽤 어렵다는 것을...

      한 문장. 언뜻 간단하다고 여길 수 있으나 겪어본 사람은 안다. 핵심을 담아 간결하게 표현하기란 꽤 어렵다는 것을. 그리고 그 한 문장으로 상대에게 자신이 생각한 바를 그대로 온전히 전달하기란 보기보다 어렵다.
      사실 어떤 문장은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기도 하다. 그렇다 보니 한 문장은, 한 문장으로 끝나지 않을 때가 많다.

     


      「지금」이라는 시에서 시인은 나중에 말하면 달라진다며 “지금 말하라.”라고 강조한다. 그런데 시간은 잡아둘 수 없으므로 ‘지금’이란 것은 늘 변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변하기 전에, 지금 말하는 것이다.
      이 시를 읽고 나니 전하지 못한 말들이 하나 둘 떠올랐다. 고마움의 말일 수도 있고, 상대방의 무례함에 대한 속 시원한 한방일 수도 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이제 와서 말하기에는 이게 또 무척 애매하더라. 그때의 ‘지금’과 현재의 ‘지금’ 사이에 생겨버린 이 엄청난 간극이라니!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같은 문장인데도, 이제는 어딘가 다른 느낌을 주는 그 말들. 결국은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채, 오늘도 마음속 어딘가를 무수히 배회하는 중이다.

     


      나는 슬퍼하고 있고 슬퍼지고 있고 슬프고 있고 그래서 슬프다. 사이사이 다른 감정이 끼어든다. 영원히 지속될 것처럼 기쁨이 있고 환희가 있고 절망이 있고 분노가 있고 비굴함이 있고 순식간이 있고 나는 다 빠져나왔다. 다 빠져나와서 빠져 있다. (「있다」부분)


      왠지 알 것 같은 기분에 고개를 끄덕였다. 슬픔이 주를 이루게 되더라도 그 안에서는 다양한 명도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이다. 자신이 슬프다는 걸 알면서도, 미묘하게 다른, 혹은 깊이가 다른 슬픔이 저 멀리 파도처럼 밀려오고 있음을 감지하기도 한다. 그와 동시에 다른 감정이 때때로 찾아오기도 하는데, 원래 같은 일이나 상황도 수용하는 사람에 따라 느껴지는 것들이 다 다를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게다가 하나의 일도 다각도로 바라볼 수 있는 만큼, 복잡한 감정이 생겨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나뭇잎이 푸르고 있다. 짙푸르고 있다. 진푸르고도 있다. 간혹 연푸르고도 있는 나뭇잎이 올라가면서 더 푸르고 있다. 올라가면서 가늘고 있는 나뭇가지가 더 올라가면서 가늘고 있다. 여름 한창을 가늘고 있다. 여름이 가늘고 있다. 낮이 가늘고 있다. 한낮이 사라져 있다. 온데간데없이 있다. 부지런히 도착해 있다. (「있다」전문)


      이번의 시 제목 역시 ‘있다’이다. 점점 푸름이 가득해지는 초여름, 산을 지나치며 이렇게 다양한 초록색이 존재할 수도 있구나, 감탄한 적이 있는데 이 시는 마치 그때를 떠올리게 한다. 이름 모를 나무들과 풀의 수만큼 다양하게 있었던 푸름. 자연은 늘 경이로운 데가 있다.

     


      한편「나와 이것」, 「당신과 그것」, 「그것 없이도」, 「나와 저것」이라는 시에서는 마치 시리즈처럼 이것, 그것, 저것이라는 대명사가 연이어 등장해 나름의 흥미를 자극한다.
      나와 함께 다니는 ‘이것’, ‘그것’ 없이 못 사는 당신, ‘저것’과 싸우는 나. 그리고 시인은 “그것 없이도 죽음이 온다. 그것 없이도 삶이 온다. 그것 없이도 시간을 보낼 수 있다.(p.49)”고 하는데 과연 이 대명사들이 지칭하는 것들이 뭘까 궁금하기만 하다. 스무 고개하듯 다른 문장을 통해 유추해보며 이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해본다. 오히려 구체적으로 지정해두지 않아서 읽는 사람이 자신의 생각대로 읽을 수 있고, 그게 곧 저마다의 이야기가 될 테니 말이다.

     


      어떤 시에서 작가의 글은 어쩐지 뫼비우스의 띠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처음에는 분명 한 문장이었으나, 이 문장은 점점 그 주변으로 뻗어나가고 확장되면서 상반된 의미를 가진 문장에 닿기에 이른다. 그러다 다시 처음의 문장으로 수렴되는 경우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다. 어떤 시는 계속되는 질문과 답의 반복 과정을 거치기도 하는데 어쨌든 시 안에는 두 가지 모습이 다 언급되기에 시를 읽는 내내 조금 더 집중해서 읽을 필요가 있었다.


    나는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결정하지 못하는 걸 결정 하고 있다. (「결정」부분)


    (...) 어느 하나도 중지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나는 매일같이 중지하는 사람이다. (...) 중지가 어떻게 중지될지 너는 아는가? 중지는 모른다. 나는 아는가? 중지는 괴롭다. 그 모든 중지를 대표해서 중지가 온다. 중지답게 온다. 나는 무척 중지했던 사람이라고 온다. 무척 중지했다가 그쳐버린 사람이 온다. 그가 와서 이 말을 그치고 있다. 그만 중지하자고 있다. (「중지하는 사람」부분)


    물방울 하나가 물방울 하나를 만나러 간다. 둘은 물이다. (...) 그럼에도 떨어지지 못하는 둘 사이를 물이 가른다. 물이 갈라놓고 있다. 물은 물 때문에 헤어졌다. 물은 물을 찾아가서 위로받고 있다. 다른 이유가 있을까? (「물」부분)


    그는 어떤 말을 하지 않고 있었는데,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를 알지 못한다. (...) 그는 내가 어떤 말을 하지 않았는지 모를 것이다. 그는 내가 어떤 말을 하면서 어떤 말을 숨기고 있었는지 모를 것이다. (「하지 못한 말」부분)

     


      결정하지 못함과 결정하는 것, 중지와 중지가 중지되는 것, 물방울과 물방울의 만남과 갈라짐 역시 물에 이루어진다는 것, 어떤 말을 하지 않고 있고 그래서 어떤 말인지 알지 못하는 것은 상대방이나 나나 되짚어보면 마찬가지인 것. 이러한 구조의 반복들.
      미술작품으로 치자면, 에셔의 <그리는 손>이란 작품이 생각나기도 했다. 에셔는 2차원의 평면에 3차원 공간을 표현해 작품을 입체적으로 보이게 하는 네덜란드 판화가이자 드로잉 화가로, 무한한 반복과 순환이 이루어지는 구조를 보여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는 손>역시 왼손은 오른손을, 오른손은 왼손을 그리며 두 손이 끊임없이 서로 맞물려 있음을 형상화한다.

     


      A면이 있고 B면이 있다. 어느 쪽을 들어도 상관없는 손이 있다. 이 손은 악수하기 위한 것. 그리고 이 손은 그것을 막기 위한 것. 어느 쪽이든 상관없으니 손을 내밀어라. 손바닥이 있고 손등이 있다. 어느 쪽이든 용도가 있고 세계가 있다. 주먹이 있고 손가락이 있다. 어느 쪽이든 얼굴을 향해 가는 손이 있다. 때릴 것인가. 찌를 것인가. 어루만질 것인가. (...) 어느 쪽으로 갈 것인가? 이쪽 벽이 있고 저쪽 벽이 있다. 맞닿아 있다. (「판결」부분)


      “찌를 것인가 어루만질 것인가.” 손은 신체의 한 부분이기도 하지만, 이와 같이 개인의 결정에 따라 그 쓰임새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악수하는 손은 인사나 화해를 의미하지만, 누군가를 때리게 되면 그건 폭력이 된다. 그리고 손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데 어떤 결과로 이르게 할지는 개인의 선택이 크게 작용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맞닿아 있는 그 모든 것에서 어느 방향으로 가면 좋을지에 대해. 부디 만족스러운 쪽으로 삶이 이어졌으면 좋겠다. 좋은 문장들이 자주 등장하는 자신의 이야기가 되기를, 그랬으면 좋겠다고 살짝 욕심내 본다.

     

  • 시어, 단어 위의 발자국들 | ic**oad | 2018.01.27 | 5점 만점에 4점 | 추천:0
    여기저기서 읽는 사람마다 강력하게 추천하는 시집이라서 읽게 됐는데, 좋은 시집이 주는 강력한 메세지를 여기서도 들을 수 있었다...

    여기저기서 읽는 사람마다 강력하게 추천하는 시집이라서 읽게 됐는데, 좋은 시집이 주는 강력한 메세지를 여기서도 들을 수 있었다 - '시는 시인이 쓰는 것'

    시인은 시를 쓰기 위해 단어 위로 수차례, 그리고 수십차례 반복해서 걷는다. 그렇게 단어 위를 오가며 남겨진 수십개의 발자국들이 단어에 새로운 질감을 부여한다.

    익숙한 단어에서 새로운 의미, 혹은 일상적인 의미에 가려진 변방의 서사가 나타나면서 하나하나의 시가 완성된다.

    물론 시인 스스로의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 기존의 단어(대체로 제목에서 지칭하는)를 비틀고 탐구해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전통적인 시인의 의무와 책임도 수행하고 있다.

    시집의 첫 시인 <지금>은 단어 하나하나, 시어 하나하나에 천착하고 탐구하려는 시인의 의지를 대표적으로 보여줬다. 시인의 싯구처럼 시집의 시를 쓰기 위해 '문을 열리고 닫히기를 몇 번이고 거듭하는' 일을 반복한다.

    시어와 시어의 주변을 반복해서 걷고, 의미의 문을 열고 닫기를 거듭해서 한 문장 한 문장이 시인만의 시로 태어나고 있다.

    p19 <내 생각>
    내 귀는 그 말을 삼키려고 아직도 열려 있고 떨고 있다. 어떤 말이 와서 쾅 하고 닫힐 때까지.

    p31 <내가 없다면>
    비와 함께 내리는 비의 전부를 받아쓸 수 없는 단 한 사람의 손이자 모든 사람의 기록으로 비가 온다. 눈이 내린다. 그럼 누가 있겠는가.

    p91 <한 문장> 
    얼마나 많은 말이 필요할까?
    이런 것들을 덮기 위해서
    덮은 것들을 또 덮기 위해서
    손을 씻고 나오는 사람도
    그 물에 손을 씻고 나오는 사람도 한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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