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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 기린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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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2쪽 | A5
ISBN-10 : 8943103816
ISBN-13 : 9788943103811
깊은 밤 기린의 말 [양장] 중고
저자 김연수,박완서,이청준,최일남,윤후명 | 출판사 문학의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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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1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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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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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 대표 작가들의 소설 미학을 엿보다!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 10인의 주옥같은 단편들을 묶은 작품집 『깊은 밤, 기린의 말』. 계간 '문학의문학' 창간호부터 지금까지 발표된 단편들 중에서 편집위원들과 주요 서점 MD들의 추천을 거친 베스트 작품들을 엄선하였다. 자폐아 가정의 절망과 희망을 담아낸 김연수의 작품 <깊은 밤, 기린의 말>, 가족애와 물신주의를 풍자한 고(故) 박완서의 작품 <갱년기의 기나긴 하루>, 우리 문단의 거목으로 작품 활동을 펼쳐온 고(故) 이청준의 마지막 단편소설 <이상한 선물>, 제15회 김준성문학상을 수상한 이나미의 작품 <마디>, 인간 구원의 문제를 섬세하게 그려낸 이승우의 작품 <한 구레네 사람의 수기>, 죽음에 대한 통찰이 빛나는 최일남의 작품 <국화 밑에서> 등이 담겨 있다.

저자소개

저자 : 김연수
저자 김연수는 1970년 경북 김천 출생. 성균관대 영문과 졸업. 1993년 《작가세계》 시 발표. 1994년 장편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로 작가세계 문학상 수상. 장편소설 《7번 국도》《?빠이 이상》《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밤은 노래한다》, 소설집 《스무 살》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나는 유령작가입니다》《세계의 끝 여자친구》 등 다수. 동서문학상, 동인문학상, 대산문학상, 황순원문학상, 이상문학상 수상

저자 : 박완서
저자 박완서는 1931년 경기 개풍 출생. 서울대 국문과. 1970년 《여성동아》로 등단. 장편소설 《목마른 계절》《그해 겨울은 따뜻했네》《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미망》《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아주 오래된 농담》《그 남자네 집》, 작품집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도둑맞은 가난》《엄마의 말뚝》《저문날의 삽화》《너무도 쓸쓸한 당신》《친절한 복희씨》 등 다수. 한국문학작가상, 이상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현대문학상, 중앙문화대상, 동인문학상, 대산문학상, 황순원문학상, 호암상, 보관문화훈장, 금관문화훈장 추서. 2011년 작고

저자 : 이청준
저자 이청준은 1939년 전남 장흥 출생. 서울대 독문과 졸업. 1965년 《사상계》 등단. 장편소설 《당신들의 천국》《흰옷》《축제》, 소설집 《별을 보여드립니다》《소문의 벽》《키 작은 자유인》《목수의 집》《꽃 지고 강물 흘러》, 《이청준 문학전집》(전25권) 등 다수.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이산문학상 수상, 금관문화훈장 추서. 2008년 작고

저자 : 최일남
저자 최일남은 1932년 전북 전주 출생. 서울대 국문과 졸업. 고려대 대학원 수료. 1953년 《문예》에 단편 〈쑥 이야기〉 추천, 1956년 《현대문학》에 단편소설 〈파양(爬痒)〉이 추천되어 등단. 소설집 《흐르는 북》《서울 사람들》《타령》《아주 느린 시간》《누님의 겨울》, 장편소설 《거룩한 응달》《숨통》《만년필과 파피루스》 등 다수. 월탄문학상, 한국소설문학상, 한국창작문학상, 이상문학상 등 수상

저자 : 윤후명
저자 윤후명은 1946년 강원도 강릉 출생. 연세대학교 철학과 졸업. 196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시 등단. 197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소설 등단. 시집 《명궁》, 소설집 《둔황의 사랑》《협궤열차》《여우사냥》《가장 멀리 있는 나》《모든 별들은 음악 소리를 낸다》《삼국유사 읽는 호텔》《새의 말을 듣다》, 산문집 《꽃》 등. 한국일보문학상,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동리문학상 등 수상

저자 : 이승우
저자 이승우는 1959년 전남 장흥 출생. 1981년《한국문학》으로 등단. 장편소설 《에리직톤의 초상》《가시나무 그늘》《生의 이면》《내 안에 또 누가 있나》《사랑의 전설》《태초에 유혹이 있었다》《식물들의 사생활》《그곳이 어디든》《한낮의 시선》 등, 소설집 《구평목 씨의 바퀴벌레》《미궁에 대한 추측》《목련공원》《나는 아주 오래 설 것이다》《심인 광고》 등 다수. 대산문학상, 동서문학상, 현대문학상, 황순원문학상 수상

저자 : 권지예
저자 권지예는 1960년 경북 경주 출생. 이화여대 졸업. 파리7대학 박사. 1997년 《라쁠륨》으로 등단. 소설집 《꿈꾸는 마리오네뜨》《폭소》《꽃게무덤》《퍼즐》, 그림소설집 《사랑하거나 미치거나》《반 고흐, 서른일곱에 별이 된 남자》, 장편소설 《아름다운 지옥》《붉은 비단보》 《4월의 물고기》, 산문집 《권지예의 빠리, 빠리, 빠리》《해피홀릭》 등.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수상

저자 : 이나미
저자 이나미는 1961년 서울 출생.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고리키 문학대학 졸업. 198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작품집으로 《얼음가시》《빙화》《실크로드의 자유인》《수상한 하루》등. 김준성문학상 수상

저자 : 조경랑
저자 조경란은 1969년 서울 출생.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199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창작집 《불란서 안경원》 《나의 자줏빛 소파》《코끼리를 찾아서》《국자 이야기》《풍선을 샀어》, 장편소설 《식빵 굽는 시간》《가족의 기원》《우리는 만난 적이 있다》《혀》《복어》, 중편소설 《움직임》, 산문집 《조경란의 악어 이야기》 등. 문학동네작가상, 오늘의젊은예술가상,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수상

저자 : 이명랑
저자 이명랑은 1973년 서울 출생. 1998년 장편소설 《꽃을 던지고 싶다》 출간 작품 활동 시작. 장편소설 《삼오식당》《나의 이복형제들》《구라짱》 등, 창작집 《입술》등 다수

목차

김연수 _ 깊은 밤, 기린의 말
박완서 _ 갱년기의 기나긴 하루
이청준 _ 이상한 선물
이나미 _ 마디
권지예 _ 퍼즐
이승우 _ 한 구레네 사람의 수기
윤후명 _ 소금창고
조경란 _ 파종
이명랑 _ 제삿날
최일남 _ 국화 밑에서

책 속으로

그런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우리는 두 개의 달처럼 어두운 가정의 한 귀퉁이를 맴돌고 있다. 그러니 우리는 기필코 밝고 환해야만 한다. -14쪽 여기 두 군데의 소아과에서 전반적 발달장애 의심이란 진단이 태호에게 떨어지고 난 뒤, 아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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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우리는 두 개의 달처럼 어두운 가정의 한 귀퉁이를 맴돌고 있다. 그러니 우리는 기필코 밝고 환해야만 한다. -14쪽

여기 두 군데의 소아과에서 전반적 발달장애 의심이란 진단이 태호에게 떨어지고 난 뒤, 아빠가 쓴 행동 지침이 있다. 우리는 이 지침을 ‘우리 가족의 역사책’에 보관했다.

─ 완치 같은 말은 잊자. 그건 너무 아름다운 말이다. 너무 아름다운 건 진실하지 못하다.
─ 구차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확하게 얘기하자. 지금 태호는 깊은 우물 속에 빠져 있다. 우리 목 소리는 거기까지 가 닿지 않는다.
─ 이 이야기는 지루할 정도로 길어질 것이다. 아마 평생에 걸친 이야기가 될 것이다. -15쪽

여러 개의 희망이라면 실현될 가능성이 많겠지만, 거기 단 하나의 희망만 남는다면 그건 돌멩이처럼 구체적인 것이 되리라. -16쪽

깨달았다. 인내심이란 뭘 참아 내는 게 아니라 완전히 포기하는 일을 뜻했다. 견디는 게 아니라 패배하는 일. -20쪽

“이 자리에서 고백하는 말이지만, 우리 아들은 마음이 닫힌 아이입니다. 아무리 큰 목소리로 사랑한다고 말해도 그 말들은 우리 아들에게 가 닿지 않습니다. 제게 말들이란 얼마나 무기력한 것인지 모릅니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말들은 외롭고 슬픕니다.” -35쪽
_ 김연수 <깊은 밤, 기린의 말> 중

도깨비장난으로 생긴 돈을 도깨비한테 도로 빼앗기지 않으려면 땅을 사는 게 수라는 게 시어머니의 믿음이었다. 너희들도 어미 말 허투루 듣지 말고 잘 들어 둬라. 도깨비는 변덕스러워서 재물을 주기도 잘하지만 뺏기도 잘한단다. 귀찮다고 아무데나 부리고 간 재물을 돌려 달라고 나타나면 저기 있다고 재물하고 바꾼 땅덩이를 가리키면, 그 땅 네 귀퉁이에다 말뚝을 박고 거기다가 줄을 매고 밤새도록 영치기 영차 땅덩이 떼 가려고 용을 쓰다가 새벽에 지쳐서 가 버리고 며칠 밤 그러다 만다더라.

노인네들이 식탐도 많고 예상했던 것보다 양도 큰 것에 놀랐다. 헌 부대에 곡식이 더 많이 들어간다는 옛말을 실감케 했다. 눈치 봐서 잘 잡숫는 것을 접시가 넘치게 덜어다 드려도 순식 간에 없어졌다. 갈비는 물론 노인네들이 잡숫기 어려운 대게나 가재도 미처 채워 드리기 전에 어찌나 잘 잡숫는지 아무리 뷔페라지만 너무 자주 드나들며 맛있는 것만 담아 오는 게 눈치가 보일 지경이었다. 당신들도 좀 움직였으면 좋으련만 처음 한 접시만 손수 덜어 오고 앉은 채 꼼짝 않고 맛있는 걸 마음껏 즐기시는 걸 보니 아무리 비싸도 돈이 안 아까울 것 같았다.

세미가 들어오고 있었다. 딴 계집애들처럼 나풀대는 초미니스커트를 입고 굽이 10센티나 될 것 같은 구두를 신고 모델처럼 또박또박 우아하게 걸어 들어왔다. 한때 며느리였던 여자
와 마주 앉는다는 건 모르는 사람끼리 합석하는 것보다 더 어색했다.
_ 박완서 <갱년기의 기나긴 하루>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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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박완서ㆍ이청준ㆍ최일남ㆍ윤후명ㆍ이승우 권지예ㆍ이나미ㆍ조경란ㆍ김연수ㆍ이명랑 ‘우리 시대 대표 작가’10인의 베스트 작품집! 사람과 세상에 대한 눈썰미와 내공이 빛나는 근래 보기 드문 완성도 높은 소설 미학! 계간 『문학의문학』 ...

[출판사서평 더 보기]

박완서ㆍ이청준ㆍ최일남ㆍ윤후명ㆍ이승우
권지예ㆍ이나미ㆍ조경란ㆍ김연수ㆍ이명랑
‘우리 시대 대표 작가’10인의 베스트 작품집!

사람과 세상에 대한 눈썰미와 내공이 빛나는
근래 보기 드문 완성도 높은 소설 미학!


계간 『문학의문학』 창간호부터 3년 넘게 발표돼 온 ‘우리 시대 최고 대가들과 중견 작가들의 주옥같은 단편들’ 중 편집위원들과 4대 주요 서점 MD들의 추천을 거친 베스트 10편만을 엄선해 묶은 <대표 작가 작품집>이 출간되었다.

수록 작가로는 박완서, 이청준, 최일남, 윤후명, 이승우, 권지예, 이나미, 조경란, 김연수, 이명랑 등 리스트만으로도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대가에서부터 묵직한 중견 및 신진 작가들이 대거 참여했다. 즉, 국내외를 아우르며 작품성과 대중성 모두를 획득한 명실공히 ‘우리 시대 대표 작가’들의 문학성 높은 빼어난 단편들로 구성된 근래 보기 드문 작품집이 될 것이다.

특히 『문학의문학』 창간호(2007. 가을호)에 실린 이청준 소설가의 <이상한 선물>은 작고 전 마지막 발표한 유작이 되었으며, 2011년 1월 22일 작고하신 한국문학계의 대모 박완서 선생의 <갱년기의 기나긴 하루>(2008. 가을호) 또한, 2007년 《친절한 복희씨》(작품집) 이후 고인이 남긴 단 3편(<갱년기의 기나긴 하루> <빨갱이 바이러스> <석양을 등에 지고 그림자를 밟다>)의 유작 가운데 하나로, 주제 또한 ‘가족애와 물신주의를 풍자’한 귀한 작품으로 오랫동안 추억될 의미 깊은 단편이 될 것이다.

오랜 세월 축적된 연륜과 체험에서 비롯된
그윽한 소설적 내공과 인문적 향기!

▶ 추천사

박완서 씨의 〈갱년기의 기나긴 하루〉. 참으로 기묘하고 다행하게도 이 작품은 지루하지도 따분하지도 않습니다. 너무도 요란하고 신바람조차 날 정도. 대가급 박씨의 솜씨. 겉으로는 영락없는 청춘의 글쓰기인데 내면에는 고도의 지적 전략 전술이 감춰져 있는 글쓰기. (…) 이 게임을 지켜보는 우리 관객은 또 얼마나 즐거운가. 고도의 두뇌 싸움 구경이니까. 더구나 그 두뇌 싸움의 전략 전술이 우리의 일상적 삶 속에서 까맣게 잃어가는 고상한 인간적 법도(세련성)이고 보면 교훈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으니까.
_ 김윤식(문학평론가ㆍ서울대 명예교수)
최일남 작가의 <국화 밑에서>는 근래 읽은 가장 완성도 높은 소설이다. 여든에 가까운 노작가의 역작을 통해 나는 문학에서 연륜과 세월, 그리고 오랜 시간 동안 다져온 사람과 세상에 대한 눈썰미와 내공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죽음과 시체, 화장(火葬)을 둘러싼 풍속이나 다양한 지식의 향연은 이 소설을 읽는 즐거움의 커다란 부분이다. 폭넓은 독서에서 배어든 인문적 향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오랜 세월 동안 축적된 연륜과 체험에서 비롯된 그윽한 소설적 내공과 박람강기(博覽强記)의 소설 미학, 고색창연한 언어 감각이 성공적으로 버무려진 이 작품은 그 자체로 우리 시대의 소설적 귀감으로 대접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_ 권성우(문학평론가ㆍ숙명여대 교수)

김연수의 <깊은 밤, 기린의 말>. 자폐아의 증상이 5년 동안 얼마나 이 가족을 절망으로 몰아넣었는가를 말하는 방식이야말로 작가 김씨가 힘준 곳. 자폐아란 무엇인가. 인간이기에 앞서 동물급이지요. 어째서? 인간의 언어가 불통이니까. 인간의 그다움이 언어인데 그 언어가 불통인 이런 동물이 인간으로 될 수 있는 방도란 무엇인가. 기린도 곰도 아닌 인간되기. (…) 어떻게 해야 자폐아를 인간의 수준에로 다시 이끌어 올릴 수 있을까. 이 물음에서 작가 김씨는 썩 민첩하군요. 인간이란 언어 사용자라는 사실. 그 언어 사용 중 가장 은밀한 것이 시(詩)라는 것. 그런데 이 시의 언어보다 더욱 은밀한 것이 또 있다는 것. 바로 ‘보이지 않는 희망’을 이야기하는 로마서 8장 24절이지요.
_ 김윤식(문학평론가ㆍ서울대 명예교수)

조경란은 상징을 부리는 데 능란한 작가이다. <파종>에서도 조경란의 그런 능력이 확인된다. 제목인 ‘파종’부터가 상징이다. 뿌리 뽑힌 존재의 안간힘 다한 뿌리내리기의 시도. 땅에 몸을 붙이고 납작 엎드려 겨울을 견디는 시금치의 상징이 바로 옆자리에 푸르르다.
_ 정호웅(문학평론가ㆍ홍익대 교수)

『문학의문학』에 발표될 때마다 최고의 절찬과 뜨거운 감동을 받았던 소설 미학의 정수, 드디어 출간!

『문학의문학』은 2007년 창간된 동화출판사(문학의문학)의 문학 계간지이다. 조정래 작가의 베스트셀러 《허수아비춤》을 연재하면서 큰 이슈가 되었고, 명실상부 한국의 대표 문학잡지로 그 입지를 공고히 하였다. 창간호부터 우리 문단의 유수한 작가들의 작품을 수록하며 문단의 뜨거운 관심을 받은 바 있고, 장편소설 공모 등을 통해 인재 발굴에도 앞장선 바 있다.
『문학의문학』이 창간된 지 약 3년여 만에 지금껏 발표됐던 단편소설 중에서 진수만을 엄선하여 작품집을 묶게 되었다. 작고하신 이청준, 박완서 작가의 유작을 비롯하여 각종 문학상을 수상하며 독보적인 위치를 확립한 권지예, 이승우, 조경란 작가는 물론, 최근 한국 문단의 가장 주목받는 작가로 떠오르는 김연수 소설가, 유머와 풍자가 빛나는 웅숭깊은 명문장으로 작품성과 문학성은 물론, 문단 안팎의 모국어 장인들로부터 아낌없는 찬사를 받고 있는 최일남 선생 등, 말 그대로 원로와 중견 등 내로라하는 언어의 연금술사들이 펼치는 천의무봉한 상상력의 향연이 될 것이다.

모국어의 연금술사들이 펼치는 천의무봉한
상상력의 향연!

▶ 김연수 _ <깊은 밤, 기린의 말>

탁월한 감성과 깊은 통찰의 작가 김연수 신작!
자폐아 가정의 절망과 희망을 담아내며 단편소설의 한 전범을 보여 준다!

소설 속 아이들은 동물원에 갔던 기억을 회상하면서 그날이 부모가 자신들을 버리려 했던 날임을 깨닫는다. 내성적 성격의 쌍둥이 자매와 자폐아 태호를 낳은 뒤 엄마는 좌절하고 그에 대한 돌파구로 시를 쓰기 시작하지만, 아이들은 엄마의 시가 점점 난해해진다며 엄마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 가족이 우연한 기회에 애견센터를 통해 강아지 한 마리를 얻게 된다. 마음이 닫혀 버린 태호가 유독 동물원에서 본 ‘기린’이라는 이름에만 반응하자, 가족들은 강아지 이름을 ‘기린’이라 짓는다.
깊은 우물 속에 빠진 듯 세상과 소통 불능인 태호가 유독 시각 장애를 앓고 있는 기린(강아지)과 의사소통을 시작하면서 이 가정에 따스한 불씨 하나가 되살아난다. 어머니는 자폐아를 키우는 어려움을 딛고 시인으로 등단하면서 자신의 중학시절부터 소망해온, 잃어버린 꿈에 한발 다가가며...... 절망 속에서 희망을 퍼올리는 법을 배운다. 아이들의 눈으로 본 가족의 균열과 화합의 메시지를 놀랍도록 섬세한 필치로 그려내고 있는 수작이다.

▶ 박완서 _ <갱년기의 기나긴 하루>

故 박완서 선생의 유작 단편소설!
가족애와 물신주의를 농익은 청춘의 글쓰기로 풍자한 수작!

<갱년기의 기나긴 하루>는 노작가의 내공이 엿보이는 소설이다. 노령에도 불구 작가의 투혼이 빛나는 작품이고 그의 문학 세계가 여전히 빛나고 있음을 방증하는 작품이다. 애석하게도 이 작품집 출간 준비 중에 박완서 선생이 타계하였고, 우리는 더 이상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없게 되었다. 일반 독자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박완서 선생의 유작 단편소설로, 그 가치가 더욱 소중하다 하겠다.

▶ 고부간의 게임론 _ 김윤식(문학평론가ㆍ서울대 명예교수) - <문학사상>(2008. 11월)

박완서 씨의 〈갱년기의 기나긴 하루〉. 제목에 주목할 것. 서두에 이렇게 적혔군요.

오늘 온종일 내가 무슨 일에 붙잡혀 있어야 하는지 최소한 남편은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출근하려는 남편에게 슬쩍 운을 뗀다는 게, 여보 나 왜 이렇게 울화가 치밀고 얼굴이 화끈거리지, 했더니 그가 한다는 소리가 갱년긴가 보군. 그래 갱년기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화상이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지가 여자에 대해 뭘 안다고. 의학적인 답변으로는 나 지금 갱년기가 맞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팔십 노인들이 모여 앉아 갱년기 타령을 하는 것을 참아내야 할 걱정으로 아침부터 우울증에 빠져 있는 아내에게 그건 할 소리가 아니지.

네 가지 정보가 담겨 있지요. (A) ‘나’가 생리적 갱년기에 든 여자라는 것. (B) 출근하는 제법 근사한 남편이 있다는 것. (C) 생리적 갱년기와는 다른 정신적 갱년기도 있다는 것. (D) 오늘은 그 ‘정신적 갱년기’ 패거리의 시중을 들게 되어 있다는 것. 생리적 갱년기만 해도 지루하고 따분한데, 정신적 갱년기까지 넘보아야 한다면 그 얼마나 따분하고 지루하랴. 기나긴 하루일 수밖에. 그러나 참으로 기묘하고 다행하게도 이 작품은 지루하지도 따분하지도 않습니다. 너무도 요란하고 신바람조차 날 정도. 대가급 박씨의 솜씨. 노련함이나 세련성과는 담 쌓은 청춘의 글쓰기인 까닭. 박씨 표현으로 하면 ‘속에서 열불이 나’는 글쓰기인 까닭. 그런데 속에서 열불이 나는 글쓰기의 특징은 무엇인가. 이렇게 물을 때 박씨의 창작 방법론에 닿게 됩니다. 속에서 열불이 날 때 이를 내면화할 수도 있고 혼자 끙끙 앓아 병들 수도 있고, 세상과 등질 수도 있지만, 그 열불과 맞서 싸우는 쪽에 박씨의 글쓰기가 서 있습니다. 이에는 이, 주먹에는 주먹식의 글쓰기라고나 할까. 어떤 시각에서 보면 수다스러울 수밖에. 그러나 여기에는 박씨 특유의 고도의 전략이 스며 있어 놀랍습니다. 겉으로는 영락없는 청춘의 글쓰기인데 내면에는 고도의 지적 전략 전술이 감추어 있는 글쓰기. 이를 게임론으로 보면 선명해집니다.
어떤 게임도 규칙이 있기 마련. 이 규칙을 침범하지 않는 한도에서 결사적일 것. 이번 작품을 게임론으로 읽으면 어떠할까. 적어도 이 작품에는 두 가지 게임이 벌어져 있지요. (A) ‘나’와 시어머니 간의 게임이 그 하나. 지성과 감성 그리고 권위까지 갖춘 이 굉장한 구미호 같은 시어미와 맞서 게임을 벌이고 있는 ‘나’는 또 얼마나 굉장한가. 시어미의 전략 전술이 오묘하면 오묘할수록 이에 맞서는 ‘나’ 또한 얼마나 굉장한가. 그러니까 피장파장. 무승부일 수밖에. 이 게임을 지켜보는 우리 관객은 또 얼마나 즐거운가. 고도의 두뇌 싸움 구경이니까. 더구나 그 두뇌 싸움의 전략 전술이 우리의 일상적 삶 속에서 까맣게 잃어가는 고상한 인간적 법도(세련성)이고 보면 교훈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으니까.
다른 게임의 하나인 (B)는 어떠할까. 이번엔 ‘나’와 며느리 세미와의 게임. 그런데 이 게임은 ‘사이비 게임’일 수밖에. 어째서? 세미는 ‘나’의 아들과 이혼했으니까. 관객인 우리에겐 재미가 있을 이치가 없지요. 기껏해야 젊은 세대 풍속도이거나 세상 고발 또는 한탄에 지나지 않는 것. 게임의 재미란 진짜 시어미와 진짜 며느리 사이에만 가능한 법. 그게 게임의 규칙이니까. 이혼한 며느리란 이 규칙에 위반되는 것. 진짜 게임일 수 없는 것.
비평적 포인트. 고부간의 게임에서 무승부를 기록한 ‘나’가 이혼한 전 며느리 세미와의 게임에서 여지없이 참패하여 기진맥진한 장면을 남편은 이렇게 묘사했군요. ‘누가 업어 가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코 골며, 아, 아, 간간이 신음했다’라고. 그러나 남편이 ‘나의 꿈속’을 들여다보지 못했다고 단언함으로써 이 요란한 소설이 끝납니다. 대체 ‘나의 꿈속’은 어떠했을까. 관객인 우리는 이렇게 추측해 볼 수 없을까. 하나는 지옥 풍경. 다른 하나는 보살도. 유황불에 시어미도 세미도 처넣기 또는 연꽃 위에 시어미도 세미도 함께 올려놓기. 중요한 것은 이 중간쯤이 아니라는 것.

▶ 이청준 _ <이상한 선물>

故 이청준 작가의 마지막 선물! 가장 완벽한 소설 쓰기의 결정체!

<소문의 벽> 《당신들의 천국》등 우리 문단의 거목으로 작품 활동을 펼쳐온 이청준 작가가 남긴 마지막 단편소설이다. 2008년 이청준 작가는 지병으로 별세하였다. 이청준 문학 연구자들과 독자들에게 커다란 의미를 가지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한 동네가 사연을 만들고 그 사연을 잇기 위해 살았던 일화를 들으며 입은 웃지만 눈은 시리다. 그건 한 마을을 지키기 위한 공동의 노력이다. 이청준 작가가 독자들에게 영면에 들기 전에 선물한 <이상한 선물>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우리 모두의 노력-한 마을을 지키기 위해 모두가 알고 있지만 모른 척하는 이야기들은 공동체가 주는 진짜 소설이다.

▶ 신화의 수준으로까지 깊어진 6ㆍ25의 민담화 _ 김윤식(문학평론가ㆍ서울대 명예교수)

이청준 씨의 소설엔 유독 서두가 중요하오. 그야말로 뜸 들이는 방식을 취하는 만큼, 양파로 치면 맨 껍데기 층에 해당되는 것. 이로부터 겹겹으로 싼 글쓰기에는 양파와는 달리 알맹이가 있기 마련. 있되 아주 황금 조각으로 있기 마련. 이번 작품의 그 황금 조각은 어떤 것일까. 세 가지 점이 지적되오.
(1) 씨자형(氏子形) 얘기라는 것. 〈황기태 씨〉를 내세웠다는 것. 책임을 작가가 지지 않고 황기태에게 맡기는 수법. (2) 보림사를 들러 옛 고향 찾아가기. (3) 날궂이 하는 위인을 내세웠다는 것. 문제는 ‘날궂이 하는 인물’에로 좁혀졌소. 이상하달까, 부정적인 인물을 두고 날궂이 하는 위인이라 부른다면 황기태 씨는 어느 편일까. 예순을 넘어 대단치도 않은 지방 공직에서 물러나 절간 사진이나 찍으러 다니는 황기태 씨는 날궂이 하는 인물이기는커녕 극히 범속한 인물인데도 민담의 주인공처럼 날궂이 하는 인물로 분류되며, 더구나 긍정적으로 평가된 곡절은 무엇일까. 바로 참주제가 깃든 황금 부분.
독학으로 보통고시 합격. 중하위 공무원으로 시작, 도청 사무관까지 승진한 황기태 씨를 그의 고향에서는 최고의 출세 인물로 친다는 것. 그런데, 마을이 황기태 씨에게 마을이 지켜온 최고의 선물을 주었다면 어떠할까. 그 선물이란 고향의 최고 값진 것. 서당에서 사용하던 벼루였다는 것. 아이들 공부용의 원점, 공부 곧 출세니까. 황씨가 최고의 출세자이니까. 그런데 정작 그 벼루란 6ㆍ 25에 행방불명되었다는 것. 바로 이 대목이 작가의 노회한 솜씨가 깃들인 곳. 정작 마을이 황씨에게 준 것은 숫돌이었던 것. 벼루의 실물이 마음에 없는 만큼 그것이 바깥에 있다고 해야 온전한 법. 숫돌이지만 그것을 벼루로 알고 간수할 수 있는 인물이 바로 범생이 황기태 씨라는 것. 숫돌=벼루란 깨침의 경지에서는 불교식으로 하면 불이법문(不二法門)이라는 것.
비평적 포인트. 이 작품엔 6ㆍ 25가 언급되지만 별다른 구체성을 갖지 않습니다. 〈지하실〉(2005)에서 압도적으로 제시했으니까. 벌써 작가 이씨에 있어 6ㆍ25란 민화나 신화 수준으로 깊어지고 있었다는 것. 장편 《신화를 삼킨 섬》(2003) 이후의 일이지요.

▶ 이나미 _ <마디>

제15회 김준성문학상 수상작!
실연과 상처를 딛고 새롭게 마디를 새기는 아름다운 ‘홀로서기’!

이나미 작가는 이 작품 <마디>로 제15회 김준성문학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소설쓰기의 진수에 대해, 소설이란 무엇인가를 진검 승부해 간 작품으로, 이야기꾼으로서의 존재 증명에 성공한 수작이다. 강사 탈락과 실연이라는 상처를 딛고 삭발을 감행하며, 다기진 새출발을 옹골지게 다짐하는 주인공을 통해, 중견 작가의 내면 풍경을 오롯이 엿볼 수 있는 성찰적 주제가 눈부시다.

▶ 더 이상 버리지 않을 ‘나’ _ 서경석(문학평론가ㆍ한양대 교수)

이나미 작가의 <마디>는 스스로를 옭아매고 있던 것들로부터 벗어나려는 40대 여성의 이야기이다. 익숙한 주제로 느껴질지 모르겠다. ‘나란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 올바르게 사는 것일까’라는 고전적 주제에 해당하며, 강요된 삶의 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90년대 소설들의 자유로운 여성 주인공이 상상되기 때문이다. 독서 과정 속에서 우리는 이런 예견들이 대체로 정확함을 확인하며 그 ‘익숙한’ 주제에 공감한다.
그 대강의 내용은 이러하다. 주인공 ‘나’는 그간의 삶의 여러 곡절들이 만들어낸 현재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며 그 상황을 극복하는 어떤 결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마침내 자신을 구속하는 현실적인 굴레들을 벗겨내고 새로운 삶으로 내쳐가기 위해 ‘삭발’을 감행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 40대 여인을 삭발로 내몬 삶의 곡절이란 실연과 실직이다. 무뎌져 왔던 사랑의 감정을 촉발시켰던 한 남성은 ‘나’의 절친한 동료와 관계하며 ‘나’를 배신한다. 늦게 얻은 인연이라 일주일간 밥 한 술 뜨지 못할 만큼 그 실연은 충격적이었다. 그 즈음 강사로 다니던 음악 대학에서 실직한다. 2년 단위로 계약하던 강사 자리를 다섯 번이나 재계약했으면 특혜에 해당한다는 전임교수의 발언과 지도교수의 무관심은 모멸감을 불러일으킨다. ‘너무 구차하지 않은가’ 라는 생각이 치밀어 올랐다. 숨이 막힐 지경에 다다르자 ‘나’는 ‘삭발’을 결심하게 된 것이다.
먼저 충격 받을지 모를 노모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준비 작업으로 미용실에서 머리를 잘 가꾸고 사진관에 가서 기념사진을 찍어두려 한다. 이어, 목욕을 하고 낯선 미용실에서 삭발한다. 삭발이란 세속적 욕망을 끊고 청정수행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라는 불가의 생각을 떠올린다. 삭발은 의외로 수월했고 숨구멍이 트임을 느낀다. 이미 학교를 떠나 음악학원을 차린 선배에게 실직 위로 전화를 받고는 함께 꽃구경 가기로 약속한다. 꽃구경은 그간 바쁘게 앞만 보고 뛰어온 ‘나’의 삶에 대한 위로이자 반성이다. 나무도 전지 작업이 필요하듯 인간도 가지를 쳐내는 아픔을 이겨내야 제대로 성장하지 않겠는가. 불혹의 40대로 접어들며 ‘내’가 내린 삶의 깨달음이다. 이렇게 읽다 보면 이 작품의 주제는 분명하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대한 40대 여성의 성찰적인 깨달음인 것이다.

▶ 권지예 _ <퍼즐>

작가의 지적 순수성과 문학적 감수성이 돋보이는 빼어난 감각!

<뱀장어 스튜>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우리 문단에 이름을 공고히 한 권지예의 작가의 단편소설이다. 모성이라는 숙명적 문제와 그것이 거세됐을 때의 갈등 구조를 섬세한 필치로 치밀하게 묘사해 낸 문학적 성취가 돋보이는 소설이다. 전처의 딸을 키우며 살아가는 한 여인이 거듭되는 낙태와 유산을 반복하면서 절망에 빠지는 모성 양상을 고도의 조탁된 언어로 풀어냈다. 작가는 이 풀리지 않는 갈등을 ‘퍼즐’이라고 명하며, 마지막 인생의 퍼즐 조각을 찾아내고자 한다.

▶ ‘들키지 않고 완전히 소멸되고 싶었던 여인’의 얘기
_ 김윤식(문학평론가ㆍ서울대 명예교수)

권지예 씨의 〈퍼즐〉. 결혼 18년 만에 남편도 딸도 몰래, 또 시어머니도 몰래 감쪽같이 그러니까 ‘들키지 않고 완전히 소멸되고 싶었던 여인’의 얘기. 무슨 사연이 있었기에 세상에서 완전히 소멸되고 싶었을까.

시어머니는 임신 10주 전후에 태아의 성별을 가장 빨리 알 수 있는 융모막 검사를 강권했다. 태아 성별 감별만을 위한 검사는 명백한 불법이었지만, 전처소생 딸은 하나 있으니 아들만 하나 얻으려는 속전속결하는 게 현명하다는 게 시어머니의 지론이었다. (……) 융모막 검사 결과, 두 번은 딸이었다. 결과를 통보받고 나면, 선택은 하나였다. 기껏 11주밖에 안 된 딸을 인공 중절시키는 데 대해 남편과 시어머니는 태연했다. 시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산부인과에서 간단히 처치했다. 악몽을 꾸었다고 생각했다.

5대 독자 집안에 시집 온 여인이 있다. 그 집안에는 전처소생 딸이 있다. 그러니까 아들을 낳아야 하는 강박관념에 시달릴 수밖에. 씨받이 신세인 셈. 지극히 한국적 통속성이 아닐 것인가. 더욱 가관인 것은 아들만을 낳기 위해 시어머니와 남편의 강요로 태아 융모막 검사까지 해서 두 번씩이나 낙태했고 세 번째 역시 그러했다. 아들로 판명된 세 번째 경우도 바로 그 태아 감별 검사로 말미암아 실패한 것. 이 현대판 씨받이 여인이 마침내 폐경기를 맞았다면 어떻게 될까. ‘들키지 않고 세상에서 완전히 소멸되고 싶음’의 곡절이 여기에서 왔다.

(A) 한때 퍼즐에 빠진 적이 있었다. 내 또래의 여자들은 그 나이가 되면 종교나 불륜에 빠진다고 한다. 종교를 통해서 구원을 받고, 불륜을 통해서 오르가슴을 얻는다면 퍼즐 또한 만만치 않은 카타르시스를 준다고 나는 믿는다. 참다가 누는 오줌이 더 시원하듯이, 100피스 퍼즐부터 시작해서 1000피스 퍼즐까지, 조금씩 난이도를 높이면 만족감은 더해갔다. 화룡점정. 마지막 순간에 유일무이한 단 하나의 조각을 그 자리에 꿰어 맞출 때의 그 성취감이란!

그 지적 분위기가 여지없이 작품 전체에 울려 퍼지고 있는 형국. 퍼즐이란 무엇인가. 완벽함의 대명사인 것. 하나라도 빠지면 무의미한 것. 지적 조각, 두뇌의 문제인 셈. 인생엔 ‘완벽함’이 없기에 더욱 부각되는 것.

▶ 이승우 _ <한 구레네 사람의 수기>

인종과 차별의 벽을 뛰어넘는 인간 구원 문제를
이보다 더 섬세하고 감동적으로 그려낼 수 있을까!

구레네 사람 시몬이 주인공이다. 시몬은 장사꾼이고 돈이 되면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살고 있다. 큰아들 이름은 알렉산더, 작은 아들 이름은 루포다. 원래 장사꾼에게 대목인 시기지만 아들과 예루살렘에 올라가기로 약속을 했다. 시몬은 알렉산더와 함께 유월절 행사를 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왔다. 이곳에서 시몬은 나사렛에서 온 사나이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자신이 사람의 아들이라고 하는 자에 대한 소문을 듣고 직접 보러 성전으로 간다. 그 성전에서 상인들을 향해 쓴 소리를 하는 그 자와 눈이 마주친 시몬은 묘한 기운에 휩싸인다. 갈릴리에서 어부들을 불러 제자를 삼은 그 자의 나와 함께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라는 말이 시몬의 잠자리를 뒤숭숭하게 한다. “나와 함께 십자가를 지고…….” 그리고 그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를 하다가 병사에게 잡혀갔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를 만나러 간 시몬은 그곳에서 다시 그와 마주친다. 그가 말한 ‘나와 함께 십자가를 지고’라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의 제자란 자도 그를 부정했는데.
예수의 십자가를 대신 짊어진 사람, 시몬의 시선으로 본 유월절 예수의 행적이 담겨 있는 단편소설이다. ‘깜둥이 놈’이라는 차별받는 장사치에 불과한 그가 예수가 던진 말을 곰곰이 생각하고 깨닫게 되는 행보가 아주 쉽게 담겨 있는데, 그 속에서 우리는 잘 알려지지 않은 성경의 인물을 자세히 만나게 된다.

▶윤후명 _ <소금창고>

존재의 근원을 찾아가는, 기시감으로 충만한 환상적 소설!

작가에게 있어 <소금창고>는 아름다운 환상이면서 문학의 모태이기도 하다. 작가는 ‘소금 창고’를 찾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우리에게 존재의 근원을 찾는 행위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은 일상적 삶이 아닌 근원적 삶의 의미를 찾는 행위라고 말할 수 있다.
윤후명, 그는 산업화 시대를 맞아 아직도 ‘외로움과 그리움을 찾아 황폐한 터전을 헤매는 낭만적 예술가’의 한 사람이다
_ 유재엽(문학평론가)

▶ 소금창고에서 같이 살자고 했던 그 여자, 그 여자는 어디에도 없다!

주인공 ‘나’는 협궤열차가 지나는 몇 도시의 사람들의 단체의 행사에 참석해 달라는 초청을 받는다. ‘나’는 지난 한 시절이 실려 있는 열차를 타고 흔적을 더듬어볼 수 있는 기회를 망설이지 않고 수락한다. 인천의 동막에서 시작한 여행은 도시화로 인해 많이 변한 지역의 현재를 보게 하지만 추억을 되새기게 한다. 나문재가 우거졌던 동막, 조개껍데기와 염전이 있던 오이도는 그 옛 모습을 잃었다. 그러나 시화호 호수 가운데 무인도가 아직 남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희망을 느낀다. 그제야 자신이 카메라에 저장해온 소금창고 그림을 들여다보는데 한 여자가 귀찮게 따라붙는다. ‘나’는 소중한 사람과 동죽조개 칼국수를 처음 먹었던 기억을 되살린다. 도통 그 소중한 사람이 누구였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소래에 도착해서 옛 소금창고를 찾아가서 나는 옛 추억의 사람들 속에 묻혀 있는 한 여자를 떠올린다. 행사가 끝나서야 귀찮게 따라붙던 여자를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 조경란 _ <파종>

소설적 상징을 부리는 데 능란한 조경란 작가의 산뜻한 가족 소설!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 등 우리 문단의 굵직한 문학상들을 섭렵하면서 우리 소설계를 대표하는 여류 작가로 우뚝 선 조경란 작가의 단편 <파종>.

사유의 깊이와 인생의 비의를 담아내는 직조 기술이 날로 무르익어가는 조경란 작가의 <파종>은 무심히 송곳니를 작살처럼 상대의 몸속을 후벼 파듯 쿡쿡 찔러대는 우리 시대 가족들의 자화상을 상처와 연민 가득한 시선으로 보듬는다. 그를 통해 더 한층 성숙해지는 내적 자아와 가족 공동체의 새로운 파종을 지켜보게 한다.

▶ 이명랑 _ <제삿날>

비인간적이며 몰가치적으로 변해가는 세태를
신랄하게 꼬집는 능숙한 이야기꾼!

《삼오식당》등으로 발랄하고도 재치 있는 글쓰기를 선보인 이명랑 작가의 신작 단편소설이다. 망자들의 영혼에 얽힌 우리네 가족들의 인생 이야기를 액자식 이중 구조로 절묘하게 짜맞춰간 실험적 소설이다.

▶ 다른 세대와의 불화, 또는 이기적 세태의 극한
_ 김종회(문학평론가ㆍ경희대 교수)

이명랑 작가의 <제삿날>은 경제적 이익을 미시적으로 따지며 책임을 벗어나려는 소시민적 비열을 그 시발점으로 한다. 이 소설은 두 가족과 그 가족 내부의 인적 구성원들이, 각기 어머니의 병원비 및 간병인비를 두고 서로 책임을 회피하는 비열한 사태를 매우 시니컬하게 그리고 있다. 작은 단락별로 스토리텔러를 달리하면서 그 발화자의 의중을 직선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을 통해, 상황의 전체적인 모습을 마치 퍼즐 조각 맞추듯 점진적으로 완성해 간다.
그 이야기의 한가운데 있는 어머니와 할머니, 두 과부는 소설의 마지막에 이르러 기막힌 운명의 모습을 함께 공유한 사연 깊은 인물들임이 밝혀진다. 과거 신산한 시절을 함께 보내며 남남이면서도 한집에서 가족처럼 살아온 이들은, 서로 공통된 비극적 가족사의 주인공들이다. 그러한 사건의 일치와 심정의 연대가 이들을 강력한 정동적 유대로 결속해 왔으나, 그것은 그 당사자들의 문제일 뿐 자식들에게는 그다지 상관없는 일이 된다. 자식들은 아무도 모르고 있지만, 실상에 있어서 이들은 모두 두 과부의 친자식들이 아니다.
서로 다른 세대와의 가치관 차이나 그것을 부양하는 사회적 환경, 사소한 이익에 모든 것을 거는 이기적 세태나 그것을 북돋우는 숨겨진 진실 등은, 매한가지로 오늘날 우리 삶의 배경이 얼마나 비인간적이며 몰가치적인가를 보여 주는 소설적 바로미터들이다.

▶ 최일남 _ <국화 밑에서>

고수의 예봉이 돋보이는 단편 미학의 정수!
최일남 선생의 혜안이 빛나는‘메멘토 모리’에 대한 웅숭깊은 통찰!

▶ 연륜과 내공 _ 권성우(문학평론가ㆍ숙명여대 교수)

최일남 작가의 <국화 밑에서>는 근래에 내가 읽을 수 있었던 가장 완성도 높은 소설이다. 올해로 여든에 가까운 이 노작가의 역작을 통해 나는 문학에서 연륜과 세월, 그리고 오랜 시간 동안 다져온 사람과 세상에 대한 눈썰미와 내공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이 소설은 주인공이 하루에 두 군데 장례식장을 방문하여, 상주와 대화를 나누거나 과거를 추억하는 장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대화와 과거에 대한 추억은 주로 장례, 죽음, 시체, 염, 화장한 후의 뼛가루 등의 장례 풍속에 관한 것이다. 가령 다음 대목을 보자.

그렇지. 지지난번에도 유가족들 사이에 끼어 심장병으로 죽은 친구의 입관식을 지켜보았는데 칠십 노인의 사안(死顔)이 어쩌면 그렇게 뽀얗지? 화장 빨 덕이 크겠지만 생시 때 저리 가라였다구. 숨을 죽이고 남편과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던 미망인과 아들딸의 눈이 환해지더만. 흐느낌을 멈추고 입을 감쌌던 손바닥을 조용히 풀며 지극히 편안한 사안에 마음을 놓은 기색이 역력했다네.

위의 대목에서 볼 수 있듯, 죽음과 시체, 화장(火葬)을 둘러싼 풍속이나 다양한 지식의 향연은 이 소설을 읽는 즐거움의 커다란 부분이다. 가령 레닌의 아내 크룹스카야가 레닌 시신의 영구 전시를 반대한 사실을 로버트 서비스의 《레닌 전기》에 기대 말하는 대목이라든가, 화장한 뼛가루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해 장폴 뒤부아의 장편소설 《이성적인 화해》를 예로 들어 언급하는 대목이나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에 등장하는 죽음과 장례의 모습을 소개하는 대목들에서는 폭넓은 독서에서 배어든 인문적 향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종합병원 영안실이 장례식장으로 대중적으로 사용되기 이전의 장례 풍속과 같은 반 친구인 봉수네 가족을 둘러싼 유년의 풍속을 묘사한 대목도 죽음과 연관된 세목을 얘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겹기까지 하다.
<국화 밑에서>를 읽는 또 하나의 즐거움은 최일남의 절묘하고 웅숭깊은 언어 감각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칙살스럽다’ ‘듬성드뭇’ ‘께복젱이’ ‘눈밑 살주머니’ ‘헤실바실’ ‘고릿적 얘기’ 등의 순우리말과 토착어가 <국화 밑에서>에서 절묘하게 사용되고 있다. 소설가를 우리말의 넓이와 깊이, 아름다움을 위해 자발적으로 헌신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면, 최일남은 그 영예로운 대열의 앞자리에 기꺼이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고색창연한 토착어를 자주 사용한다고 해서 작가 최일남의 현실 감각이 고루한 세계에 머물러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이 소설은 이즈음의 문화적 추세나 사회 변화에 대해서도 대단히 적극적이고 민감하게 수용하고 있다. 가령 일본 영화 〈오꾸리비리도〉가 언급되는 장면이나, 손상된 주검을 복원하는 특수 처리 기능을 담당하는 엠바머(embalmer)가 대화 소재로 등장하는 대목은 작가가 지금 이 시대의 장례 풍속이나 현대 문화에 대해 만만치 않은 정보를 지니고 있음을 인상적으로 보여 준다.

<책속으로 추가>
말을 하고 나서 영감은 기태 씨 대신 네가 한번 말해 보라는 듯 상 한쪽에 앉아 말없이 시중만 들고 있는 조카아이 쪽을 건너다보았다. 하니까 녀석은 영감보다 외려 한술을 더 뜨고 나섰다.
“당숙님 이야기야 한마디로 이 동네 전설이지요. 당숙님은 누가 뭐래도 이 동네 샛별이여요.”
기태 씨로선 할 말을 잊을 지경이었다. 한데다 영감은 마지막으로 못을 박듯이 그를 어르고 들었다.
“헌다고 지니지도 않은 물건 일로 애먼 덤터길 써 왔다고 날 너무 원망하진 말게. 오늘은 내 자네한테 진짜 물건을 전해 드릴 모양이니께. 이 보자기 속 물건 말일세…….”
_ 이청준 <이상한 선물> 중

비로소 나를 옭아매고 있던 모든 사슬을 끊은 느낌이다. 홀가분하다. 삼손은 머리를 끊어 괴력을 잃었지만 나는 숨구멍을 발견했다. 닫힌 문 대신 다른 쪽 문고리를 잡았다. 불가에선 세속적 욕망을 상징하는 무명초를 끊고 구도의 대열에 들어서서 청정 수행을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삭발을 한다고 했다.
_ 이나미 <마디> 중

한때 퍼즐에 빠진 적이 있었다. 내 또래의 여자들은 그 나이가 되면 종교나 불륜에 빠진다고 한다. 종교를 통해서 구원을 받고, 불륜을 통해서 오르가슴을 얻는다면 퍼즐 또한 만만치 않은 카타르시스를 준다고 나는 믿는다. 참다가 누는 오줌이 더 시원하듯이, 100피스 퍼즐부터 시작해서 1000피스 퍼즐까지, 조금씩 난이도를 높이면 만족감은 더해 갔다. 화룡점정. 마지막 순간에 유일무이한 단 하나의 조각을 그 자리에 꿰어 맞출 때의 그 성취감이란! 그 전율이란! 퍼즐에 집중하는 동안은 웬만해선 중간에 쉬질 않았다.

단 한 조각의 마지막 퍼즐 조각을 완전하게 맞추기 위해 퍼즐 게임은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생은, 생의 에너지는, 결핍을 채우려는 불완전한 욕구로 허덕일 뿐이다. 그게 인생과 퍼즐판의 차이다.

경미한 우울증은 어쩌면 세탁의 마지막 단계에 넣는 섬유 유연제와도 같은 것인지 모른다. 여고생 때의 풀 먹인 날선 칼라를 견딜 이유가 갱년기의 삶에 있을까. 삶에 대해 결기가 빠지고 난 인생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굵은 소금으로 숨죽인 배추의 목적은 명확하고 단순하므로. 단지 김치가 되어 소멸될 운명만 남았으므로. 나는 그렇게 숨죽여 살아왔다.

씨가 있는 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닌 존재의 슬픔을…… 한세상 지나며 씨를 내지 못하고 꽃이 진 내 자신의 몸을…… 이제는 한련화 꽃잎처럼 선명한 피꽃을 내 몸에서 더 이상 피울 수 없다. 생리 혈이 나오지 않은 지 5개월이 넘었다. 한번도 아이를 낳아 보지 못한 여자의 몸이 메말라 어느새 서서히 숨이 끊어지듯 경도가 끊어져 버렸다.

순간,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나는 자리를 박차고 뒤꼍으로 달려갔다. 돌로 쌓은 옛 우물이 보였다. 옛 우물의 통나무 뚜껑은 아귀가 꼭 맞게 닫혀 있었다. 완벽했다. 마치 아내가 한때 그토록이나 몰두했던 마지막 퍼즐 한 조각처럼.
_ 권지예 <퍼즐> 중

그 사람을 처음 보았을 때, 마침 지중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그의 길고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뒤로 날리고 있었는데, 나는 그의 몸뚱이까지 날아가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만큼 야위고 허약해 보였다. 거기다가 서른세 살이라는 나이에 비해 좀 늙은 것 같았고, 턱없이 크고 깊은 눈은 퀭한 동굴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아득함을 느끼게 했다. 그것이 갈릴리 출신의 선지자에 대한 나의 첫인상이었다.

병사들이 재촉했다. 나는 다리에 힘을 주고 몸을 일으켰다. 그때, 그 사람이 힘들게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지친 표정, 고통이 음각된 남자의 얼굴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그리고 그의 눈…… 고통과 탈진에도 불구하고 놀랍게 평화로운 빛을 내뿜고 있는 그 사람의 눈…… 그것은 흙탕물 속에서 찬연한 아름다움을 토해 내는 연꽃만 같았다. 그 사람의 눈이 내 눈을 더듬어 자신의 눈에 맞추었다. 내 온몸이 그의 신비스런 눈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소리가 멈추고 시간이 정지했다. 세상은 눈부시게 고요했다. 나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의 시선이 나를 결박했다. 그 시간이 얼마나 길었는지 나는 모른다. 어쩌면 지극히 짧은 찰나인 것도 같고 영원과도 같은 시간이 흐른 것도 같았다. 그가 눈빛을 거두지 않은 채로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손을 내밀어 내 손을 잡았다. 그 사람의 따뜻한 손바닥 안에서 내 손 은 경련을 일으켰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 순간에, 나는 눈앞이 환해지는 경험을 했다. 놀라울 정도의 확신이 찾아왔다. 그와 ‘십자가를 함께’지기 위해, 그 일을 하기 위해 나는 이 험하고 가파른 언덕길을 따라왔던 것이다.
_ 이승우 <한 구레네 사람의 수기> 중

왜? 어쨌든 순간이 마지막 휘발되기 전에 갈피 지어 차곡차곡 쟁여 둠으로써 추억을 발효시킨다. 소금창고에는, 기억을 갈무리하듯 시간을 갈무리하는 곡두라도 살고 있다고 믿고 싶었다. 그래서 그 옆을 지나갈 때면 어둠 속에서 지난 일들을 들려주는 두런거림이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남에게는 들리지 않는 말을 자기만 듣는 것이 사랑이었다. 내 사랑은 어둡고 숨겨진 장소에 깃들어 새로운 숨결을 기다리고 있어야 했다. 소금창고 속 소금이었다.

그것이 어떤‘병적 현상’에 기대려는 행동이라 해도 좋았다. 만약에 기시감이란 게 우리를 다른 세계의 환상으로 끌어가는 힘이라면, 없어진 소금창고를 볼 수도 있는 것이리라. 신기루를 보는 것과는 달랐다. 신기루란 애당초 없는 것, 소금창고는 애당초 있는 것이다. 애당초 없는 것과 애당초 있다가 없는 것은 전혀 다르다.
_ 윤후명 <소금창고> 중
길이도 굵기도 제각각 다르지만 모두 뾰족하고 단단한 송곳니를 갖고 있는 녀석들이지요. 그 송곳니로 때론 무심히 상대를 찌르기도 하고 자신을 쿡 찌르기도 합니다. 바다코끼리를 보다가 식구들을 떠올렸다면 그건 바로 저 송곳니 때문일 거예요. 다만 우리는 찌를 때마다 좀 더 오래, 몸속 깊이 서로의 송곳니를 작살처럼 쑤셔 넣었거든요. 대단치는 않습니다. 한때 그런 적이 있었다는 거지요.

한 번 떠났다가 다시 들어와 살게 된 부모의 집은 이제는 떠나는 것이 영원히 어려운 일처럼 느껴집니다. 이따금 어디 똑똑한 전세라도 하나 얻지 그러냐 하던 아버지도 언젠가부터는 아무 말도 하질 않아요. 하긴 따로 살아야 할 이유 같은 것도 희미해진 지 오래입니다.

자동차 사고로 한날한시에 죽은 남편과 아이를 화장하고 산을 걸어 내려오던 날이었어요. 문득 걸음을 멈추고는 바람이 불어오는 쪽을 바라보며 아버지가 한 말은 이랬습니다. 참 잘 끝났다. 밑도 끝도 없는 말이었지요. 어쩐지 셋이 같이 있다 혼자만 살아남은 나를 비난하는 말처럼 들려 들고 있던 막대기로 나 자신을 푹 찌르고 싶어지더군요.

시금치가 명아주과라는 풀을 아는 사람입니다. 뽑아서 던져 놓으면 마디에서부터 뿌리를 내려 자라기 시작하는 풀. 나는 시금치에도 꽃이 핀다는 사실을 말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뒤따라가요. 맥주병 모양의 안경을 쓰고 있어서 그런지 술을 마신 것도 아닌데 발뒤꿈치가 들리고 헛발을 딛고 있는 느낌입니다. 그동안 허공을 날고 있었던 게 아니라 이 세계에서 자꾸만 미끄러지고 있었던 것일까요. 아무려나 지금은 집으로 갑니다.
_ 조경란 <파종> 중

“아줌니, 저랑 살아유.”
누구보다도 먼저 달려 나와 어머니의 보따리를 받아 들던 할머니에게 어머니는 같이 살자고 했다. 어머니가 왜 같이 살자고 했는지, 왜 우리가 할머니와 같이 살아야 하는지 나는 예전에도 몰랐고, 마흔이 넘은 지금도 모른다. 그저 어머니가 그렇게 해야 된다고 하니까, 어머니가 자꾸 내 등을 떠미니까 나는 둘째를 데리고 마을회관으로 갔다.
“할머니, 우리랑 같이 살아유.”
_ 이명랑 <제삿날> 중

지금 이 자리가 바로 그런가. 더불어 한솥밥을 먹으며 청춘의 끝물을 지지고 볶던 생각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새록새록 기억은 어떤 회한이나 부담을 동반하는 수가 많지만 어렴풋한
기억은 무책임하게 누리는 맛이 괜찮다.
아무리 그렇기로 들이당짝 기성품 사회가 어떻고 이일장이 저떻고 언설을 농할 건 뭐냐.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인데 일방이 너무 많이 나가면 다른 일방은 당황하기 쉽다.
_ 최일남 <국화 밑에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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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

회원리뷰

  •     우선 이 책은 예스24의 댓글이벤트에 당첨되어 받은 책으로 쓰는 서평임을 밝힌다...
     
     
    우선 이 책은 예스24의 댓글이벤트에 당첨되어 받은 책으로 쓰는 서평임을 밝힌다. 이 책의 서평을 써야 할 의무는 없었다. 서평단에 선정된 것이 아니라 순수한 이벤트에서 받은 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처럼 대가들의 문향을 마음껏 느끼며 문학의 즐거움을 선물한 책에 대한 고마움으로 이 글을 쓴다.
     
    앞서 적은 것처럼 이 책은 리뷰를 써야 한다는 부담이 없는 책이었다. 그로 인한 편안한 마음과 함께 최근 들어서 바쁜 일정이 이어지고 있었으므로 책을 받은 지 한 달이 넘도록 펼치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지난 주말부터 읽기 시작해서 4일 만에 독파를 한 것이다.
     
    책에는 8명(박완서, 이청준, 최일남, 윤후명, 이승우, 권지예, 이나미, 조경란, 김연수, 이명랑)의 작가들이 쓴 8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박완서, 이청준, 최일남 등 익히 알고 있는 작가들도 있었지만, 생소한 이름도 있었다. 그러나 작가의 유·무명은 의미가 없었다. 나는 모든 작품을 흥미 있게 읽었으므로…. 여러 편의 단편이 실린 작품집을 보면 ‘00걸작선’등의 카피를 볼 수 있는데, 이 책이야 말로 그런 제목을 붙이기에 적절한 책이었다. 작품 하나하나가 각각의 특색이 있고, 그 작가를 떠올리게 해주었다.
     
    여기서는 이청준 작가의 『이상한 선물』에 대한 느낌을 써보겠다. 그의 작품은 학창 시절에 『이어도』에서 진한 감동을 느낀 적이 있으며, 『우리들의 천국』과 『서편제』등을 통해서 익히 알고 있었다. 특히 『서편제』는 영화로도 많은 감명을 받았었다.
     
    『이상한 선물』은 멀지 않은 과거의 어느 향촌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작품을 읽는 내내 나의 어린 시절의 향수를 떠올렸다.
     
    주인공인 황기태 씨는 시골에서는 나름대로 출세를 한 인물이다. 초등학교만 졸업한 그는 독학으로 고입 검정고시와 대입검정고시에 합격한 뒤 보통고시까지 패스했다. 군청의 5급직에서 출발한 뒤, 도청의 3급 사무관에 이른 인물이다. 불세출의 위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의 고향에서는 큰 인물로 여기는 처지이다.
     
    그런 황기태 씨에게 고향의 좌장이 찾아와서 벼루를 선물로 주는 것이다. 그것은 보잘것없는 물건이지만, 그 마을 사람들은 입신양명의 정기를 준다고 생각하는 보물이었다. 그 마을에서 전설적인 인물인 황기태 씨가 그것을 보관해야 한다는 것이 좌장의 논리였다.
     
    황기태 씨는 거절했다. 자기는 그 정도로 뛰어난 인물이 아니므로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그러자 좌장이 들려준 예화는 다음과 같았다.
     
    흉년이 들면 부잣집에서 쌀을 훔쳐서 가난한 사람의 집에 넣어주었다는 천태산이라는 신출귀몰한 그림자 도둑, 도깨비로부터 신기한 힘을 받아서 밤길을 무서워하지 않아서 도깨비 할배로 불린 방씨 성 가진 영감 등. 황기태 씨도 어린 시절부터 들었거나 알고 있는 인물들이다. 그러나 실재로 그런 도둑은 없었고, 방씨 성 가진 영감의 힘도 과장되었다는 것이다. 다만 신화를 믿고 싶은 마을사람들이 그렇게 믿었고, 해당 인물들도 자신이 그런 신화를 갖고 있는 것으로 가장하고 살아갔다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이 불세출의 천재로 믿고 있는 황기태 씨 역시 마을사람들의 믿음을 위해서 그런 신화를 지닌 인물로 살아가야 한다는 논리였다.
     
    이 글을 읽으면서 문득 어린 시절의 향수가 떠올랐다. 선친의 고향에 학문이 깊어서 의학과 주역까지 통달했다는 문중 어른이 있었다. 그 어른은 마을의 환자들이 찾아왔을 때 위중한 환자일 경우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지금은 약을 먹을 필요가 없고, 한 대엿새 있다가 다시 오시게.”
     
    그 어른이 말한 날 하루 이틀 전에 그 환자는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 등이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다. 그 어른에게 우리 어머니는 너댓 살 된 나의 평생운을 봐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한다. 그러자 이런 대답을 했다고 한다.
     
    “아직 어린데 뭐. 한 5~6년 있다가 데려오슈. 그 때 내가 잘 봐 드릴 테니. 조카댁, 이 얘 잘 키우슈. 우리 문중을 빛낼 상이야.”
     
    그 때 우리 어머니는 기분이 몹시 나빴다고 한다. 내가 그 전에 죽을지 모른다는 악담처럼 들렸다는 것이다.
     
    그런 나는 초등학교 2학년인 아홉 살 때 늑막염이 걸려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난 것이다. 어머니께서는 생전이 이 말씀을 여러 번 하셨다. 그러나 어머니의 속내는 보통 사람이 아닌 그 어른이 우리 문중을 빛낼 인물로 나를 지목했다는 것을 믿고 싶은 신화가 아닐까? 그 어른이 정말 그렇게 뛰어난 예지력을 지니고 있었는지도 알 수 없고, 나에 대한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을 들은 사람도 우리 어머니밖에 없다. 자식에 대한 기대가 어머니에게 그런 신화를 믿게 했는지도 모른다. 나의 현재 모습은 문중을 빛낼 위인과는 거리가 멀고, 어린 시절에 큰 병 한두 번 앓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며, 내가 큰 인물이 될 것이라는 말도 의례적인 덕담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이 책에는 독자에게 다양한 입장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작품들이 실려 있다. 책을 읽으면서 이런 의문이 들었다. 저작권 등 여러 문제가 있을 텐데 어떻게 대가들의 작품을 한 곳에 모을 수 있었을까? 그 의문은 책의 말미를 보고 풀게 되었다. 이 작품들은 모두 문학계간지인 『문학의 문학』에 실렸던 것들이다. 그러므로 이 작품들에 대한 일정 지분이 출판사에 있었나 보다. 아무튼 독자의 입장에서는 여러 대가들의 작품을 한 번에 읽을 수 있게 해주었으니 고마울 뿐이다.
     
    책장을 덮으면서 느낀 궁금증은 이 책의 제목이 왜 『깊은 밤, 기린의 말』일까 하는 점이다. 대부분의 단편집은 그 책에 실린 작품 중에 어느 하나를 선택해서 책의 제목으로 한다. 그런데 이 책에는 『깊은 밤, 기린의 말』이란 작품이 없다. 그러나 아무려면 어떻겠는가? '상서로운 짐승인 기린이 깊은 밤에 들려주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될 테니….
  • 인정합니다. 제가 약간 유별나다는 사실을. 책을 읽을 때, 상당히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으로 읽는다는 사실을. 남들이 보면 인생 참 피곤하게 산다고 느낄 수도 있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
    인정합니다. 제가 약간 유별나다는 사실을. 책을 읽을 때, 상당히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으로 읽는다는 사실을. 남들이 보면 인생 참 피곤하게 산다고 느낄 수도 있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어떤 이는 저에게 ‘활자 중독증’이라는 진단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어떤 점에서는 타당하고, 또 어떤 점에서는 과분한 진단입니다. 일단 제가 그런 진단을 받을 만큼 책을 많이 읽지는 못하다고 느끼니까요.
     
    먼저 하는 일이 글을 쓰고 읽고 고치고 다시 고치는 직업이기에 글에 대한 묘한 강박증이 있다는 사실은 인정합니다. 식당엘 가서도 벽에 붙은, 혹은 메뉴판에 붙은 음식 이름과 설명, 음식의 유래 등등을 읽으면서 띄어쓰기와 오타를 찾고 있는 저를 발견합니다. 뭡니까, 이게.
     
    또 지금은 그나마 상당히 호전됐다고는 하지만, 잡지를 읽을 때면 표지부터 시작해서, 광고 하나하나 목차 하나하나를 전부 읽고 나서야 다음 페이지로 옮길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양심적으로 광고는 읽지 않습니다만, 이것도 뭡니까.
     
    때문에 때로는 문장을 읽는 것이 아닌 텍스트를 읽어나가고 있는 저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상당히 안 좋은 부작용인 셈이죠. 하지만, 분명 단언컨대 적어도 소설을 읽을 때에는 다른 모드로 들어갑니다.
     
    그 다른 모드는 다름 아닌 ‘받아들임’입니다. 무언가 책에서 잘못되고 부족하고 어색한 부분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글을 받아들이는 것이죠. 뭐, 어차피 제가 문학작품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할 수 있는 깜냥도 없거니와, 무엇보다 소설을 그런 불순한 자세로 읽으면 천벌을 받는다는 어느 소설가의 준엄한 경고(!)가 기억나기 때문에, 그냥 있는 그대로 읽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깊은 밤, 기린의 말》은 한 문장, 한 편을 그야말로 아껴가며 읽은 책입니다. 수록된 작품들도 그렇거니와, 작가들의 내공과 깊이가 절로 느껴지는 책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우리 곁에 없는 박완서, 이청준 작가의 작품과 김연수, 이명랑 등 비교적 젊은 작가, 그리고 최일남, 윤후명과 같은 깊은 연륜을 가진 작가의 작품까지. 글들의 성찬이었습니다.
     
    작품들의 내용을 소개하는 것은 매우 불순한 행위라 사료되는 까닭에 담지 않겠습니다. 다만 각 작품에서 받은 느낌이랄까요. 그 정도는 말해도 되겠지요?
     
    김연수의 〈깊은 밤, 기린의 말〉은 분명 슬픈 이야기임이 분명한데도 어떤 발랄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뭐라고 할까, 단어들이 톡톡 튀더라고요. 《대책없이 해피엔딩》을 읽은 후여서 그런지, 일단 인상은 좋습니다.^^
     
    박완서 선생님의 〈갱년기의 기나긴 하루〉는 중년, 노년 문학의 매력을 한껏 뽐내고 있습니다. 왠지 범접할 수 없는 삶의 연륜도 느껴지고요. 쓸쓸하면서도 무덤덤함이 저는 참 좋습니다. 최근에 선생님의 마지막 작품집 《기나긴 하루》를 아껴두고 있습니다.
     
    이청준 님의 〈이상한 선물〉도 매우 즐거운 소설 읽기였습니다. 아직 선생님의 작품을 많이 읽은 편은 아니지만, 선생님 특유의 아련함이 참 좋습니다. 이나미 작가의 〈마디〉, 권지예 작가의 〈퍼즐〉도 인상 깊은 작품이었습니다.
     
    제가 이 책에서 가장 감동을 느낀 작품은 최일남 작가의 〈국화 밑에서〉입니다. 모르겠습니다. 예전부터 이런 문장, 문체, 쓸쓸함을 참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깊은 삶의 성찰과 농담이 어우러지는 모습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작가의 역량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승우의 〈한 구레네 사람의 수기〉, 윤후명의 〈소금창고〉, 조경란의 〈파종〉, 이명랑의 〈제삿날〉 모두 즐거운 소설 읽기였다고 생각합니다.
     
    전 여전히 소설은 먼저 읽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그 안에 담겨진 내용이 얼마나 위대하고 아름답고 애정하다 해도 재미가 담겨 있지 못하면 결국 다음 페이지를 넘길 수 없을 것만 같습니다.
     
    그런 저의 어리석고 독단적인 기준으로 보면 이 책은 상당히 성공한 것이 아닐까, 이 역시 혼자 어리석게 판단해 봅니다. 그렇습니다. 소설 읽기는 언제나 즐거운 일입니다.
  • 깊은 밤 기린의 말 | id**ori77 | 2011.06.08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깊은 밤 , 기린의 말 은 너무나 예쁜 제목이었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의 작가 김연수는 이렇듯 예쁜 제목을 세상에 내어놓았...
    깊은 밤 , 기린의 말 은 너무나 예쁜 제목이었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의 작가 김연수는 이렇듯 예쁜 제목을 세상에 내어놓았다. "아빠와 엄마는 우리를 동물원에 버리려고 한 적이 있었다"라는 끌리는 첫문장을 던져주면서. 자폐아 동생이 있는 쌍둥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가족구성원들은 아프고 상처입었다기보다는 평범해보인다. 인간적인 고뇌와 누구나 생각으로는 한번쯤 해 봤을법한 일들을 풀어놓으며 우리에게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든다. 글의 끝부분에 기린이라 이름붙여진 개를 되찾으러 가는 아이들의 순수한 모습을 덧붙여놓고.

     그와 비슷하게 경성사범 출신의 똑똑한 시어머니와 이혼하고도 당당한 신세대 며느리 사이에 어중간하게 끼여있는 여인의 넋두리는 얼마전 타계한 박완서 작가의작품이다. 갱년기의 기나긴 하루 라는 제목으로, 작가의 기존 스타일에서 크게 벗어남 없이 평탄하게 읽어나가면 되는 그런 작품이었다. 다만 앞으로는 그녀만의 글을 읽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 슬프다면 슬픈 일이랄까. 

    <문학의 문학>대표작가 작품집이라는 타이틀 아래 10명의 작가들이 뭉쳐 낸 책 속에는 고전적인 느낌을 주는 글도 실려 있다. 가장 좋아하는 한국소설인 [당신들의 천국]을 집필한 이청준 작가의 이상한 선물인데,선바우골에서 심지연이라는 신통방통한 벼루를 얻게되나했더니 속임수였더라 라는 식의 마치 고전소설에서의 일장춘몽같은 신기루이야기가 짧게 실려 있었다. 무언가 미스테리한 구석을 기대했었는데 기대는 빗나갔지만 대가의 작품이라 짧은 단편도 쉬이 지나칠 수 없어 꼼꼼히 읽어내려간 소설이었다. 

    그에 반해 권지예 작가와 이승우 작가, 조경란 작가의 작품은 눈에 확 띄는 재미를 보여주고 있었고 세 작가의 작품은 각각의 스타일로 반짝반짝 빛나고 있어 그들만의 단편집을 읽는 것같은 착각마저 들었던 작품이었다. 좀 더 길었으면...이라는 생각마저도 잘라내게 만들 딱 알맞은 길이감과 쉼없이 읽어나가게 만드는 속도감이 마음에 들었던 단편들이었다. 

    먼저 권작가의 소설은 사라진 여자의이야기로 시작된다. 100피스~1000피스에 이르기까지 퍼즐홀릭인 여자는 금치산자다. 미쳐서가 아니라 미친 사람으로 몰려가는 여인의 인생을 바라보며 그녀가 빈집 길고양이들과 다를바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전처소생의 딸도, 아들만 필요해서 매번 11주된 뱃속 아이를 중절시키게 만든 시어머니의 5대독자 아들도 그녀의 진정한 가족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녀는 숨바꼭질을 통해 스스로 사라졌다. 퍼즐은 제목과 달리 맞춰가는 인생이 아닌 어딘가 흘려져버린 조각같은 인생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서글픈 일이다. 

    아프리카계 남자가 보러간 사람은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인물 중 하나인 나사렛 예수였다. 그는 선지자를 만나러 갔다가 시간을 잘못택해 베드로가 스승을 세번 모른척 하는 현장도 목격했고, 심지어는 그 대신 십자가를 짊어지고 언덕을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만났고 그로 인해 자신의 인생이 이전과는 달라졌음을 깨닫게 되는데서 한 구레네 사람의 수기는 끝이난다. 정말 그날, 그 현장에서 누군가는 이랬을법한 드라마틱한 요소가 가득했던 소설인채로.

    최근 [복어]라는 소설로 주목하고 있던 조경란 작가는 역시 스토리텔러였다. 가족 안에서 잔잔하면서도 큰 파도의 깊이를 느끼게 만드는 작가만의 매력을 잔뜩 부풀려놓아 읽는 즐거움을 저절로 느끼게 만든다.  자동차사고로 남편과 아이를 동시에 읽은 언니는 대학행정실에서 학생들에게 등록금 독촉전화를 하는 삶을 살고 있다. 별로 탈출구가 없어보이던 삶에 동생의 사고는 전환점이 되어 주었다. 도쿄에 사는 동생의 살림을 잠시 맡기위해 떠나는 그녀의 보따리를 붙들고 늘어진 사람은 나이든 아버지였는데, 이전에 그가 어떤 가장이었는지는 모르나 함께 떠나 도쿄를 누비고 다니는 모습 속에는 권위적이거나 카리스마있는 가장의 모습은 쏘옥 빠져있었다. 늙은 아버지에 대한 애틋함과 가족으로서의 자신을 다시금 되짚어보게 만드는 힘을 전달해주는 강인한 느낌이 있는 단편이었다. 역시 조경란 작가는 계속 주목해볼 작가 중 하나로 꼽아두게 만들만큼 마음에 드는 이야기였다. 파종은.

    마지막으로 제삿날은 가장 요즘 읽은 몇몇 소설에서도 언급되었던 신고려장 같은 내음이 물씬 풍겨나왔는데, 의외의 반전이 있어 재미를 톡톡히 살리고 있다. 도리라는 것이 통상적으로 어디까지를 뜻하는지 범위를 가늠할 수 없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을 것이다. 두 늙은 과부가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했다. 두 아들과 며느리들은 어머니를 간병하는 것은 물론 오랜세월 함께 살아온 할머니이 간병도 탐탁치 않게 여기고 있었다. 떠넘길 수만 있다면 두 노인네를 어딘가에 떠넘기고 싶은 것이 진심이었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 일치감치 할머니를 아내를 얻으면서 내다버렸던 할머니의 아들 또한 어떻게하면 그들에게 자신의 어머니를 지금껏처럼 마지막까지 짐지워 내버릴 수 있는지 고민중이다. 자식들의 뇌구조 속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하는 생각들이 이 사회가 떠안고 있는 병폐처럼 느껴져 마음한구석이 급 우울해졌고 제 부모를 떠넘기는 그들의 파렴치함에 치를 떨어야만했다. 반려동물과 단 1년을 살아도 가족이라는 마음의 울타리가 쳐지는 마당에 오랜시간 보호자였던 부모를 짐짝처럼 여기는 자식들의 이야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질탄받을만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겠다. 

    하지만 이야기는 복선을 가지고 있었다. 그 재미는 제목에서부터 찾아낼 수 있다. 제삿날. 대체 두 할머니는 누구의 제삿날을 챙기기 위해 나갔다가 사고를 당했던 것일까. 비밀처럼 독자에게만 알려주는 이야기 속에는 안그래도 자식들을 버리려는 아들들에겐 절대 알려져서는 안될 과거사가 숨겨져 있었다. 두 어머니 다 제 자식들에겐 친어머니가 아니었다는 사실! 그래서 그들 몰래 매년 그들 생모들의 제사를 할머니들이 챙겨왔다는 것! 또한 처음 어머니들이 만난 인연이 한 곳에 몰래 묻힌 두 여인 때문이었다는 것! 끝까지 독자만 알아야할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 반전의 재미는 유주얼서스펙트급이 되어 소설이 단편이라는 사실마저 잊게 만든다. 

    김연수, 박완서, 이청준, 이나미, 권지예,이승우, 윤후명, 조경란, 이명랑, 최일남 총 10명의 작가가 털어놓는 짧은 이야기들은 하나의 주제가 아니라 제각각인 이야기지만 그 속의 재미만큼은 공통분모처럼 여겨진다. 유머러스하거나 해학적이 아니어도 이야기는 충분한 재미와 감동을 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대가들의 필체에서 찾아내본다.

  • 깊은 밤, 기린의 말 | pl**you9 | 2011.04.26 | 5점 만점에 4점 | 추천:0
    우리나라 대표 작가 10인의 단편 모음집.   특별히 문학에 조예가 깊지도, 관심이 많지도 않은 나였기에 사...
    우리나라 대표 작가 10인의 단편 모음집.
     
    특별히 문학에 조예가 깊지도, 관심이 많지도 않은 나였기에
    사실 이름을 알만한 작가는 두명정도 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 읽고 난 지금도 어떤 글이 어떤 작가가 쓴 거 였지는 아리까리 하다.
     
    단편의 매력은 무엇일까.
    단연 짧은 길이 에서 오는 편의성이라고나 할까.
    참 편했던게, 넉넉한 시간을 잡아두고 감정선을 계속 살려서 읽어야 진정 몰입이 되는 장편과 달리
    약속장소로 가는 지하철에서 단박에 한편정도 후루룩 읽어내려가는 바람에
    글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읽을 수 있다는 점.
     
    그리고, 하나 하나 열어보니, 마치 선물상자 같다고나 할까
    각각 장인이 한껏 멋을 부린 과자 10가지를 맛보는 것 같았다.
    한편 한편이 끝나면서 잔잔한 여운과 함께
    다음 과자는 어떤 맛일까 궁금해지는 느낌.
    그리고 놀랄정도로 빠르게 이 이야기에서 저 이야기로 풍덩 빠져버리게 되는 흡입력.
    그런 속도감. 글 하나하나 이야기를 떠나서, 단편 모음집이 주는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몇 몇 작품을 소개하자면
     
    소설집의 제목이기도 한 <깊은 밤, 기린의 말> -김연수
    처음엔 도대체 시점이 뭔가, 판타지 소설인가 하는 느낌에 살짝 갸우뚱 했지만,
    이내 결론으로 갈수로 안타까움으로 탄식하게 했던 작품.
    자폐아 아들을 둔 부모의 모습을 어린 누나의 시각으로 풀어나갔다.
    세상과의 소통이 없는 아들과 그런 아들이 유일하게 교감하는 눈먼 강아지 '기린'
    아들의 변화된 모습에 기뻐했던 엄마가 기린이 눈이 멀었다는 사실을 알았을때
    기린을 다시 돌려줄수 밖에 없었을 심정이.. 가슴이 아프군..
     
    <퍼즐> - 권지예
     
    스산하리만큼 서늘한 기운이 감돌던 소설.
    죽은 새, 검은 고양이..
    평범하게 살던 가족에게 닥치는 스산함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가족이 살아온 은밀하고 아픈 가족사의 모티브일 뿐이었다.
    전처의 딸을 자식처럼 키우면서
    정작 자신은 세차례나 유산을 할 수 밖에 없었던..
    '한세상 지나며 씨를 내지 못하고 꽃이 진' 기구하고 기막힌 한 여인의 삶.
    하필 또 우물에 빠져 자살하는 장면이라니,
    우물은 온갖 원혼이 서리는 장소인데... 끝까지 한스럽고 음습하구나.
     
    <한 구레네 사람의 수기> - 이승우
     
    처음엔 여기가 어디고 언제이고 화자가 누구인지 헷갈렸다.
    그런데 예수가 십자가를 질때의 시점으로, 그 십자가를 대신 진 시몬의 시점으로 이야기는 진행되고 있었다.
    무언가 사람을 끄는 힘. 그 힘에 이끌려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구레네 사람, 시몬.
    일단 설정 자체가 신기했고, 성경에는 문외한인 나는
    예수의 십자가를 누군가 대신 지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단편소설 맛깔난다.
    여러 작가들이 모여 있으니
    문체며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이며 접근이며 모두 각양각색이라.
    아기자기 하고 사랑스런 단편 모음집이다!!!!
  • 깊은밤 기린의말 | hi**06 | 2011.04.25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깊은 밤 기린의말>을 통해 우리나라 대표 작가님들을 만나게 되어서 너무 기쁨니다. 고인이된 박완서님,이청준님,최...
    <깊은 밤 기린의말>을 통해 우리나라 대표 작가님들을 만나게 되어서 너무 기쁨니다.
    고인이된 박완서님,이청준님,최일남님,윤후명님,이승우님,권지예님,이나미님,조경란님,김연수님,이명랑님
    우리나라 대표 작가들의 작품이어서 그런지 한작품작품마다 각자 개인의 작가의 특성과 개성이 나타나있습니다.
     
     
    단편선들이라 각자의 개성을 가지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을 한권에 읽을수있다는 장점이있습니다.
    단편이라 어느정도 되지도않았는데 벌써 끝맺음이 되어 황당스럽기도 했음니다만 새로운 맛을 느낄수있었습니다.
    깊은밤 기린의 말을 읽고 가족간의 사랑을 느낄수있었고, 갱년기의 기나긴하루을 읽고 소통의 문제를 깨달을수있었습니다.
    이상한 선물을 읽고 소중히 여겨야할 가치를 알수있었고, 마디를 읽고 세월속 잃어가는 자신을 알게 되었으며,
     퍼즐을 읽고 진정한 행복을 깨닫게 되었습니다.한구레네 사람의수기,소금창고, 파종,제삿날,국화밑에서 등
    제목도 친근한 것 .향수를 불러일으킬만한것들이많았습니다.
    책의 내용은 짧지만 감동은 긴작품이 단편인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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