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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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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0쪽 | 규격外
ISBN-10 : 1170281281
ISBN-13 : 9791170281283
무라카미 하루키는 어렵다 중고
저자 가토 노리히로 | 역자 김난주 | 출판사 책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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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2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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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잘읽을게요 감사합니다 5점 만점에 3점 kacro5*** 2019.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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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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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이분하는 문학관, 거기에 돌을 던져주자 2017년 2월 일본 서점가에 하루키 바람이 다시 분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1Q84》 이후 무려 7년에 본격 장편 《기사단장 죽이기》를 출시했기 때문이다. 출간 시 제작 부수만, 총 130만부를 찍은 이번 신작은 하루키 브랜드가 폭발력을 갖고 귀환했음을 시사한다. 하루키 앞에 불황은 없다.

그러나 『무라카미 하루키는 어렵다』의 저자는 하루키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다. 오히려 해외에서 큰 인기를 거머쥠과 동시에, 일본 국내에서 그의 문학을 진정으로 논의할 기회가 사라져버린 사실에 주목한다. 우리가 그를 ‘스타 작가’로만 인식하는 동안 정작 놓쳐버린 문학의 진정한 면모를 이야기하며 새로운 감상의 전환을 시도한다. 성공한 작가, 유명 인사의 사적인 이야기는 접어두고 문학적 측면에 초점을 둔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에 대한 진정한 작가론이 펼쳐진다.

이 책은 하루키가 달성한 문학의 실질을 가늠하고자 한다. 하루키의 데뷔작에서부터 여러 유명 장편과 단편은 물론이고 소설가로서 새롭게 시도했던 논픽션, 여러 대담과 인터뷰, 그리고 해외 수상 소감까지 짚어가며 작품들을 시기별로 구분하고 명료하게 작품세계를 소개한다. 비평의 성격을 띠는 글이지만 《69》라는 소설로 잘 알려진 또 다른 무라카미인 무라카미 류와의 비교, 아쉬웠던 아쿠타가와상 심사평, 3권이 출간되면서 오히려 미진한 느낌을 준 《1Q84》에 얽힌 이야기 등은 흥미롭게 읽힌다.

저자소개

저자 : 가토 노리히로
저자 가토 노리히로는 문예평론가. 와세다대학 명예교수. 고단샤 논픽션 상, 고바야시 히데오 상 선고위원. 1948년생으로 도쿄대학 문학부 불문과를 졸업했다. 1985년 데뷔작 〈아메리카의 그늘〉이라는 비평을 통해 이름을 알렸다. 1997년 신초 학예상을 받았고 1998년 이토세이 문학상 평론 부문에서 수상했으며 2004년 구와바라 다케오 학예상을 받았다. 현대문학, 사상사, 정치, 역사 인식에 대해 폭넓게 발언하고 있으며 국내에 번역된 책으로 《무라카미 하루키 1Q84 어떻게 읽을 것인가》(공저) 등이 있다.

역자 : 김난주
역자 김난주는 경희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을 수료했으며 쇼와여자대학에서 일본 근대문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 번역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결정적 계기였으며 데뷔작도 하루키의 《일각수의 꿈》이다. 이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973년의 핀볼》, 《노르웨이의 숲》,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걸작선》(전5권) 등 하루키의 작품 다수를 번역했다. 이외에 히가시노 게이고, 요시모토 바나나, 에쿠니 가오리 등의 작품들을 번역했고 최근작으로 《기린의 날개》, 《무코다 이발소》, 《목숨을 팝니다》, 《바다의 뚜껑》, 《백야행》 등이 있다.

목차

시작하며_ 야구모자를 쓴 문학?

부정성의 행방 1979-1987

1장 획기적인 데뷔작
긍정적인 것을 긍정하는 것
벤야민의 ‘새로운 천사’, 그리고 바람의 노래

2장 싸우는 소설가 | 초기
중국을 향한 눈길
가난한 사람들과 작은 이웃
‘우치게바’로 죽은 사람에 대한 관심

3장 개체의 세게 | 전기
소비사회의 도래
부정성에서 내폐성으로

자석이 작동하지 않는 세계에서 1987-1999

4장 쌍의 세계 | 중기
연애소설의 탄생
역사 기술 쪽으로

5장 시대와의 알력 | 전환기
1995년이 태도 변화
무라카미 하루키, 무장 해제되다

어둠 속으로 1999-2010

6장 아버지 또는 아버지에 준하는 이와의 갈등 | 후기
더 작게, 더 멀리
환유와 이계와 ‘전체적인 유’
아직 다 쓰지 못한 이야기

맺으며_ 거대한 주제와 조그만 주제
후기_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옮긴이 후기_ 버티기 혹은 밀어내기를 넘어서

책 속으로

지금 일본 문학계는 그를 배제할 이유가 없어 두 팔 벌려 맞이하려 하지만, 이는 무라카미 작품의 문학적인 힘에 의해 종래의 사고방식과 문학적인 가치 기준이 달라져 일본 문학계 스스로가 변화한 결과가 아니었다. 요컨대 패기를 잃은 일본 문학계 전체가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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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일본 문학계는 그를 배제할 이유가 없어 두 팔 벌려 맞이하려 하지만, 이는 무라카미 작품의 문학적인 힘에 의해 종래의 사고방식과 문학적인 가치 기준이 달라져 일본 문학계 스스로가 변화한 결과가 아니었다. 요컨대 패기를 잃은 일본 문학계 전체가 무라카미 작품의 인기와 상품성에 무릎을 꿇은 것이라 하겠다. 불만을 품었던 무리들이 투덜거리면서도 승복한 것이다. 이 때문에 무라카미의 작품이 정말 국내외의 다른 고급한 문학 작품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힘이 있는지, 있다면 그것은 어떤 힘인지를 따져보는 문학적 견해의 나눔의 ‘장’, ‘기회’ 또는 그 ‘권위’가 사라지고 말았다.
이는 절반은 비평의 후퇴를 의미한다.
_〈야구모자를 쓴 문학?〉

왜 명백히 재능과 자질 면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를 능가했으며 《코인로커 베이비스》로 그를 의기소침하게 만들었던 무라카미 류가 아니라, 보다 작은 두 번째 태풍이라 받아들여졌던 무라카미 하루키 쪽이 일본을 대표하는 소설가로 우뚝 선 것인가? 그 연원이 데뷔작에 이미 밝혀져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_〈긍정적인 것을 긍정하는 것〉

그들은 무라카미가 ‘젊게 치장하고’ 대중적인 인기는 있지만 지식인들과 문학자들 사이에서는 존경받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 말은 즉 무라카미의 문학에 부정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뜻이다. 아마도 스스로는 자각하고 있지 않겠지만 그들은 1980년을 전후한 시기에 아쿠타가와상 심사위원을 맡았던 일본의 소설가들과 마찬가지로 그 점이 불만이었던 것이다.
_〈벤야민의 ‘새로운 천사’, 그리고 바람의 노래〉

열쇠는 폭력과 죽음과 섹스에 있다. 이 세 가지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들어가 통과해서 어떻게 ‘전쟁의 기억’에 도달하고 ‘반전(反戰)과 비전(非戰)의 의지’로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인가? 지금 나는 《태엽 감는 새 연대기》가 일본인들의 전후 ‘저승 순례’의 선구적 예라고 생각한다.
_〈역사 기술 쪽으로〉

《1Q84》 BOOK 3이 끝난 지금, 간단하게 말해서 이런 질문이 남는다. 그렇다면 정의를 따라 살인을 저질렀던 자는 그 정의에서 벗어났을 때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가?
무라카미가 《해변의 카프카》에서 ‘세계에서 가장 손상된 존재는 어떻게 회복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부딪혔던 것처럼, 여기서는 세계를 뒤흔드는 이런 질문에 봉착해 있다. 그리고 나는 이에 답하는 곳까지 가지 않으면 무라카미는 이 소설을 다 썼다고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_〈아직 다 쓰지 못한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의 새로운 책이 나오면 읽게 된다. 그러고는 어떤 자극을 받아 글을 쓴다. 그 축적이 이런 결과를 낳은 것이다. 그렇게 부지런하거나 인내심 많은 독자가 아닌 나로서는 이처럼 지속적으로 읽게 되는 소설가, 특히 동시대의 소설가는 드물다.
_〈무라카미 하루키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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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순문학가와 베스트셀러 작가 사이의 기묘한 고독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은 ‘야구모자를 쓴 문학’, ‘젊은 취향의 문학’에 불과한가? “문학을 이분하는 문학관에 돌을 던져주자” 2017년 2월 24일, 불황으로 그늘졌던 일본 서점가에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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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문학가와 베스트셀러 작가 사이의 기묘한 고독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은
‘야구모자를 쓴 문학’, ‘젊은 취향의 문학’에 불과한가?

“문학을 이분하는 문학관에
돌을 던져주자”

2017년 2월 24일, 불황으로 그늘졌던 일본 서점가에 정말 오랜만에 활기가 넘쳤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1Q84》 이후 무려 7년 만에 내놓은 본격 장편 《기사단장 죽이기》가 출시된 날이었다. 출간 시 제작 부수만 본다면, 총 130만 부를 찍은 이번 신작은 총 70만 부 찍은 《1Q84》 때보다 하루키 브랜드가 훨씬 큰 폭발력을 갖추고 귀환했음을 시사한다. 하루키 앞에 불황은 없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세계적인 메가 셀러 작가라는 점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 책 《무라카미 하루키는 어렵다》는 더 이상 그런 틀에서 하루키를 바라보기를 거부한다. 오히려 해외에서 큰 인기를 거머쥠과 동시에, 일본 국내에서 그의 문학을 진정으로 논의할 기회가 사라져버린 사실에 주목한다. 일본 문학계 전체가 무라카미 작품의 인기와 상품성에 무릎을 꿇었고, 그래서 그의 작품이 다른 고급한 작품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힘이 있는지 따져볼 수 없게 된 점을 지적한다. 그리고 이는 절반은 비평의 후퇴를 의미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몇 년 전 참석했던 어느 심포지엄에서 받은 충격이 이 책을 쓴 동기가 되었다고 밝힌다. 거기서 만났던 한국과 중국 등 이웃 나라의 걸출한 문학자들이 무라카미 하루키를 거의 읽지 않고 있다는 점, 심지어 그의 작품을 대중에 영합한 젊은이 취향의 문학, 양질의 엔터테인먼트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여기고 있는 실상을 접한 것이다. “문학을 이분하는 문학관, 거기에 돌을 던져주자.” 저자는 이런 모티프를 발판으로 하루키가 지닌 문학가로서의 이미지를 새롭게 하고자 했다. 무엇보다 하루키 팬들 이상으로, 현대 지식인과 문학가에게도 하루키가 중요한 존재임을 알리고 싶다는 마음을 전한다. 한마디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학은 다가서기도 이해하기도 그렇게 쉽지 않다, 가볍게 보아선 안 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어렵다는 것이다.
하루키의 문학적 성취를 돌아보는 일이 새삼스럽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기존 문학계로부터 여전히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억압의 구조’에서 자유롭지 못한 무라카미 하루키. 이 책은 우리가 그를 ‘스타 작가’로만 인식하는 동안 정작 놓쳐버린 그의 문학의 진정한 면모를 이야기하며 새로운 감상의 전환을 시도한다. 성공한 작가, 유명 인사의 사적인 이야기는 접어두고, 오로지 문학적 측면에 초점을 둔 깊이 있고 절묘한 작가론이 펼쳐진다.

“너무나 행복한 작가론”
“모든 작품이 단단히 납득할 수 있는 형태가 된다”

저자는 무라카미 하루키에 관한 글을 많이 쓰기로 정평이 나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아주 진지하게 하루키가 달성한 문학의 실질을 가늠하고자 하며, 하루키의 인기를 장기간 경시하던 문학계와 달리, 그가 나쓰메 소세키와 다자이 오사무에게서나 볼 수 있었던 놀랍고도 폭발적인 문학적 성취를 보여주었다고 평한다.
데뷔작에서부터 여러 유명 장편과 단편은 물론이고 소설가로서 새롭게 시도했던 논픽션, 여러 대담 및 인터뷰, 그리고 해외 수상 소감까지 하나하나 짚어내면서 그 속에서 작품들을 시기별로 구분하고 보다 명료하게 그 작품 세계를 소개한다. 그때그때 하루키가 무엇을 토대로, 어떻게 써왔는지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있다.
비평의 성격을 띠는 글이지만 딱딱하고 어렵지 않다. 중간중간 꽤 흥미롭게 읽히는 내용들이 많다. 예를 들어 국내에 《69》라는 소설로 잘 알려진 또 다른 무라카미인 무라카미 류와의 비교, 아쉬웠던 아쿠타가와상 심사평, 3권이 출간되면서 오히려 미진한 느낌을 준 《1Q84》에 얽힌 이야기, 인터뷰어로서 평범한 사람들을 취재하고 다녔던 또 다른 하루키를 이야기하는 부분 등이다. 이외에 기존 근대문학의 바탕을 이루던 ‘부정성’의 개념을 하루키가 어떻게 넘어섰는지, 그리고 이것이 아쿠타가와상 심사에서 어떻게 작용했는지 등등 저자의 다양한 통찰이 엿보인다.
이 책은 하루키 자신과 사회의 거리에도 주목하고 있다. 그에 관한 비평에서 이미 여러 번 회자된 바 있는 ‘디태치먼트’와 ‘커미트먼트’라는 개념을 여러 작품에 따라 자세히 설명하고 있으며, 하루키 문학의 전반적인 흐름을 이 두 키워드를 통해 통사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이로써 사회와 인간에 대한 작가의 시선이 언제 어디에 머물렀는지, 또 작가 하루키가 어떤 방향으로 성장해왔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하루키는 2017년 신작 《기사단장 죽이기》에서 난징 대학살을 언급했다는 이유로 우익 세력으로부터 거센 공격을 받기도 했는데, 그처럼 역사를 기술하는 태도에는 어떤 배경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짐작할 만한 대목들이 눈에 띈다.
그의 엄청난 인기에 비해 국내에 소개된 비평은 별로 많지 않다. 이 책은 어느덧 칠순을 앞두고 있는 이 영원히 ‘젊은’ 작가를 이전보다 훨씬 폭넓은 시선으로 만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 역시 어쩌면 ‘무라카미 하루키는 어렵다’고 말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거대한 주제란?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바라는 것

이 책은 온전히 칭찬만 하고 있지는 않다. 최근 몇 년 전부터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로 떠오른 무라카미 하루키. 저자는 하루키가 그런 상을 받게 되는 날이 온다면, 그가 《체르노빌의 목소리 ― 미래의 연대기》를 쓴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나 《고해정토》를 쓴 이시무레 미치코에 필적할 만한 일에 착수했을 때일 거라고 말한다. 이어 2013년에 쓴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에 대해서는 큰 주제와 작은 주제가 이어지지 않고 있다며 아직 큰 주제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소견을 전한다. 독자로서, 평론가로서 하루키가 좀 더 큰 주제에 접근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저자의 바람은 계속 이어진다. 가능하면 앞으로도 신봉자들의 울타리 밖으로 나가주었으면 좋겠고, 상처 입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일본의 소설가들과도 대등한 대화를 나누기를 바란다고 조언한다. 또 일본 문학계와 ‘화해’하기를 권하고 어리석은 비평가들의 조소를 받아보는 것도 좋지 않겠느냐고 덧붙인다. 하지만 이 관록 있는 문예평론가가 전하는 이야기를 읽다 보면, 책 곳곳에서 하루키를 향한 애정과 응원이 절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 소설가에게는 변변한 비평적 대응이 현저하게 부족하다. 달짝지근한 ‘순풍’에 질식할 것만 같은 작가이니 가끔은 이런 매정한 바람을 맞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상당히 터프하고 총명한 소설가이니 오히려 환영해주지 않을까?”
이 책은 하루키를 아는 독자, 모르는 독자, 좋아하는 독자, 질색하는 독자 모두가 똑같이 공평하게 읽을 수 있는 소중한 한 권의 책이 될 것이다.

★ 일본 아마존 독자평 ★

“중립적인 관점에서 쓰인 읽을 만한 무라카미 하루키 비평.”
“너무나 행복한 작가론. 놀라울 정도로 많은 작품을 정중하고 섬세하게 읽어내 해석하고 있다.”
“야구모자를 쓴 문학이 뭐가 나쁜가.”
“저자의 손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모든 작품이 단단히 납득할 수 있는 형태가 된다. 꽤 재미있는 분석이다.”
“작품들을 시대별로 굵직하게 분류한 것이 설득력 있다. 그때그때의 시대에 그가 어떻게, 무엇을 토대로 써왔는지 매우 깔끔하게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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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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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라카미 하루키는 어렵다 | mi**j | 2018.04.03 | 5점 만점에 3점 | 추천:0
    무라카미 하루키는 트렌드의 세련된 첨단을 넘어 이제는 거장의 반열에 들어선 작가이다 뉴욕 타임즈 선정 올해의 소설 10 에 ...

    무라카미 하루키는 트렌드의 세련된 첨단을 넘어 이제는 거장의 반열에 들어선 작가이다

    뉴욕 타임즈 선정 올해의 소설 10 에 선정되고 해외에 광범위하게 번역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루키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은 자의식이 예민한 , 이를테면 나 책 좀 읽고 나 좀 지적(知的)이에요 하는 사람에게는 불가능하거나 적어도 불편한 일이다

    한국의 유종호 같은 비평가는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읽어보았더니 아무것도 들어 있는 게 없던 소설이었다고 대충 비슷한 이런 말을 했었다

    이해한다 유종호씨 나이가 몇 살이신가


    그러나 비평가가 공정하고 엄격한 비평을 한다고 생각하는 그런 일반인의 오인에 스스로 구정물을 끼얹는 자폭을 종종 자주 보아 왔기에 그리 놀랍지도 않다

    유종호씨가 X - 세대를 거쳐온 적이 있기나 하던가 전공투로 세상의 끝을 경험한 일본 단카이 세대에 속하기나 했던가

    한국의 문학비평계의 전설이라는 김현도 어느 책에서 쟝 그르니에를 폄하하는 인신공격성 글을 쓴 적이 있다

    이 책은 사후에 그의 일기 형식의 독서에세이 책으로 묶여 나온 책이다

    내게는 아무리 대단해 봤자 블랑쇼에 미치지도 바슐라르에 미치지도 못하는 김현이 아무리 블랑쇼나 사르트르나 바르트 만 못한 쟝 그르니에라고 하더라도 그렇게 시기심이 언뜻 언뜻 보이는 훼폄의 가치평가를 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스러웠고 참 사람이란 다면체구나 하는 희미한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한국의 비평계는 품앗이로 서로 서로 잘 아는 문인들에게 결혼식 축사처럼 주례사 칭찬을 해서 전반적으로 한심하고 타락한 평론을 쓰레기처럼 양산한 건 이미 오래전 자타공인의 사실이다


    유종호씨가 보기에나 '상실의 시대'가 다 읽고 나니 아무것도 없다고 느낄 만한 소설이지 80년대와 90년대를 보낸 한국의 세대들에게는 그 소설 속의 질감들과 사물들에게 스며진 분위기는 이미 일본만의 것이 아니라 국경을 넘어선 공감의 아이콘들이다

    그리고 어찌 도스토예프스키와 카프카가 무게잡던 시절과 신과 공산주의와 아버지가 부재한 이 소비만이 남은 시대와의 공기의 질과 그 격차를 같이 무게를 단단 말인가

    독일에선 요즘 니체를 읽지 않는다고 한다

    독일의 젊은 여대생이 캄보디아에 왔을 때 역시 같이 캄보디아에 왔었던 김용옥과의 대화에서 한 말이다 도올의 저서에 나온다

    고전이 아무리 위대해도 당대의 현실을 가장 잘 포착한 쟝르가 현재에선 가장 중요한 법이다


    그러니 하루키가 그토록 진지한 척 하는 비평가들에게 외면당하는 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이 참담한 문제는 역시 국경을 넘어서 이미 독일에서는 90년대 어느 해에 TV 문학토론프로그램 - 부럽다 여기 독일 ! 북프로그램도 아니고 TV 문학토론프로그램이 있다니 - 에서 하루키의 소설이 패스트푸드 같은 문학이냐 아니냐로 격론이 벌어졌고 생방송이었다는 걸로 기억하는데, 뭐 하루키 에세이에 나와 있으니 언젠가 다시 읽다 보면 또 그 대목을 마주치게 되겠지 , 생방송 도중에 하루키 문학을 반대하는 패널이 분노에 휩싸여 녹화장을 퇴장하는 초유의 사태까지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 독일의 어느 교수의 말에 의하면 , 대충 기억나는 대로 옮겨 보면 , 하루키를 읽는다는 것은 풍요로운 현재의 소비사회를 향유한다는 것으로 우리 고도자본주의사회의 당대를 포착한다는 것이다


    결코 이 평가도 호의적인 것이 아니다

    단순한 당대의 향락과 번영 속의 세련된 취미와 자본주의적 기호 속의 그늘이라는 관점이다







    나도 언젠가부터 하루키를 읽으며 싫증이 났다고 해야할까 그의 소설적 깊이에 대해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었다

    아울러 여러 가지 불만들이 생겼다

    그의 소설은 왜 불륜이 늘 나올까 늘 왜 에피쿠로스적 모습들이 보일까 그리고 그리고 또 또 ...


    무엇보다 여러 가지 현상에 머물기만 하고 깊은 곳으로 들어가지 못한다는 그의 '깊이'에 대한 의심은 다른 불만들보다 더 그를 회의적으로 보게 만들었다

    내가 유종호씨나 가지던 의심과 반감을 가지게 되다니 !

    나도 이젠 늙어가는 건가


    그러나 이런 나의 의문부호같은 질문은 사실 일본국내의 평론가 뿐만 아니라 독자들 사이에서도 그리고 그의 작품이 번역되는 해외에서도 이미 시작되었고 불만으로 늘 찬반의 입장표명의 전쟁이 되기까지 한 모양이다


    이 작은 비평집은 그 양도 소략(疎略)하고 진지하지 못한 문장들로 엄격한 격식 없이 말하고자 하는 대로 들려주듯 쓴 하루키 비평집이다


    그러나 그 내용은 하루키의 독자라면 싫어하든 좋아하든 특히 그의 전작품을 읽어 본 나같은 독자에겐 매우 중요한 연구서이다

    자신있게 내가 추천할 수 있다 내가 아무런 존재도 아니지만

    이 비평서를 쓰기 위해 저자가 기울인 시간과 노력 그리고 그 노력이 있기 까지의 치열한 관심과 그에 따랐을 애증은 감탄스럽기까지 하다

    실로 하루키의 모든 작품을 그것도 이리 저리 종횡으로 분석하고 합치고 검토하지 않았으면 결코 이런 결과물이 나올 수 없는 수고와 정성이 들어 있다

    예를 들면 하루키의 초기단편걸작을 말할 때 꼭 드는 <중국행슬로보트>에 있어서의 다층적인 의미를 말한 대목이나 그동안 무엇을 말하는지 주제조차 몰랐던 단편 <뉴욕 탄광의 비극>을 학생운동의 공허감 뒤의 상실감과 비애라고 아주 적확하게 해부한 대목등은 정말 감동했다

    이리 꼼꼼히 정성스럽게 읽는 비평가도 다 있구나 !

    2006년 쯤에 나온 장편 <어둠의 저편>이 사실은 초기단편 중국행 슬로보트의 먼 후일 하루키 자기자신의 화답가와 같은 수미상관형 성질의 작품이란 걸 알았을 땐...


    그동안 본격문학의 외연이나 외형 혹은 외양에서는 볼 수 없었던 엔터테이너적인 요소

    단지 이것만이 하루키를 가벼운 '야구 모자를 쓴 소설가'로 부르는 원인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차후 연구가 진행되었으면 한다





    내가 말하고 싶은 바는 하루키를 읽을 때 흔히들 생활의 감각,경쾌하고 세련된 조크,쿨하기 이를데 없는 라이프 스타일의 구가 등으로 인식을 하고 그것을 기대하는데


    사실 나는 이 책이 쓰여지기 전부터 하루키는 은근히 어려운 작가다라고 생각한 선지자(?)였던 팬이다

    늘 등장하는 칸트,베르그송,라신 이런 지적 거인들의 저작물들 이름과 그 용어들은 하루키가 얼마나 그것들을 자신 나름의 것으로 씹어 소화시켰느냐는 둘째로 치더라도 상시로 그런 지적 덩어리의 페이지를 열람해왔다는 증거이고 또 에세이에서조차 심심찮게 외국 학술 용어들이 튀어 나올 만큼 그의 지적 관심분야와 지식의 양은 엄청나고 방대하다

    더군다나 그리스 신화나 칼 융이 배경지식으로 사용되었다고 짐작되는 해변의 카프카 같은 소설이나 수많은 기호와 알레고리로 이루어진 그의 문학체계는 실로 놀라운 점이 있어 그를 두고 상징의 마법사라고 부르는 연구서도 - 당연히 이 때는 하루키 찬성파겠지만 - 나올 정도이니





    그랬던 나와 생각이 같은 저자의 저서를 읽어서 나온 동감과 공감의 고민과 소회로서의 공유뿐만 아니라 하루키의 안티팬이라고 해도 읽고 나면 동의할 수 밖에 없는 객관적인 정립된 의견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이 저서를 높이 평가하고 싶다



     







     

  • 아뭏든을 아무튼으로 | su**ell | 2017.05.23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아뭏든'이라는 부사가 아무런 논리적 근거도 없이 '아무튼'으로 바뀌었던 건 1989년의 일이다. 나는 그 이전에 한글 철자를...

    '아뭏든'이라는 부사가 아무런 논리적 근거도 없이 '아무튼'으로 바뀌었던 건 1989년의 일이다. 나는 그 이전에 한글 철자를 배웠던 세대이니만큼 '아뭏든'을 한동안 버리지 못한 채 번번이 '아무튼'을 '아뭏든'으로 쓰곤 했다. 내 머릿속에서는 '아뭏든'을 '아무튼'으로 잘못 썼다가 호되게 손바닥을 맞았던 어렸을 적 기억이 생생하게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초등학교로 다시 돌아가 철자부터 다시 배울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아무튼.

     

    나의 기억이 맞다면 나는 '아무튼'이라는 단어에 대해 전혀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던 시기에 하루키를 만났을 것이다. '전혀'라고 하면 약간의 어폐가 있을런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때 내가 읽었던 하루키의 작품은 <노르웨이의 숲(당시에는 상실의 시대)>이었다. 그동안 일본 소설에 대한 나의 무지와 편견으로 인해 일부러 멀리 했던 것에 대한 후회가 1톤쯤 밀려오게 했던 작품이었다. 그 이후로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이름은 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고 그의 작품이라면 출간되는 족족 죄다 구해 읽었다. 확실히 그의 작품에는 기존 작가들과 구별되는 '뭔가'가 있었다.

     

    "애당초 일본의 근대에서 순문학과 대중문학을 분류하는 기준은 이 부정성의 유무, 문학이 부정성에 의해 구동되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1979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가 예고했던 것이 2, 3년 지나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변화의 바람으로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p.93)

     

    문예평론가이자 와세다대학 명예교수인 가토 노리히로의 작품 <무라카미 하루키는 어렵다>를 읽으면서 나는 하루키 소설에서 내가 느꼈던 '뭔가'를 이제서야 찾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무라카미 하루키를 처음 만났던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 줄곧 그의 작품을 읽어오면서도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렇게 다르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었던 그 무엇인가를 이제서야 조금 알게 되지 않았나 싶다.

     

    하루키의 팬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겪었음직한 공통의 경험이 있다. 소위 교양과 격식을 중시하는 모임에서는 자신이 하루키의 팬이라는 사실을 숨기게 된다거나 대화의 주제로 하루키의 작품을 거론하지 않는다는 게 그것이다. 대중에게 하루키의 소설이 다른 어느 소설가보다 인기가 있다는 것도, 다른 어느 소설보다 압도적인 판매량을 보인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지만 그게 다라고 폄훼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하루키는 그저 대중에 영합한 젊은이 취향의 문학, 대중의 기호를 반영한 상업적인 소설만 쓰는 인기영합주의 작가일 뿐이다. 그러나 그들이 하루키의 작품을 읽지 않음은 물론 정작 하루키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저자의 결험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나 보다. "문학을 이분하는 문학관, 거기에 돌을 던져주자."는 모티프로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하니 말이다. 하루키를 무시하거나 폄훼하는 현대 지식인과 문학가에게도 하루키가 중요한 존재로 각인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책이 쓰였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는 아무 의미가 없어도 자기 행동의 기준을 통해 사회 풍조에 물들지 않는 모습을 유지하는 것은 모럴의 부정성이 가사 상태에 있는 시대에 그나마 그 부정성을 살아남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될 것이다. 무라카미는 바로 이 점에서 이 시대의 저항의 가능성을 찾아내려고 했다. 저항의 디태치먼트, 이것이 내가 여기서 맥심이라고 하는 것이다." (p.116)

     

    저자는 하루키가 소설가로 등단했던 시점부터 현재까지 중요한 시기별로 나누어 매우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평론가로서 때로는 깊고 전문적인 설명과 상징물에 빗댄 표현들이 많지만 하루키 소설을 좋아하는 애독자라면 이런 비유들이 오히려 반가울지도 모르겠다. 하루키가 썼던 많은 소설들을 이 한 권의 책에서 비교하고 분석하며 서로를 연결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루키 소설의 특징 중 하나인 각각의 소설이 어떻게든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하며 하루키 자신은 소설가로서 어떻게 발전해왔는가를 살펴보는 일은 하루키 팬의 한 사람으로서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무라카미는 카탈루냐에서 앞선 내용과 같이 말한 후 '손상된 윤리와 규범의 재생'은 우리 모두의 일이지만, 언어에 관련된 자들도 관여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을 것이라면서 새로운 윤리와 규범을 새로운 언어와 연결하는 것, 그리고 거기에 생기에 찬 새로운 이야기의 싹을 틔워 키워가는 것이 자신들의 일일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p.255)

     

    오늘은 고 노무현 대통령의 8주기 추도식이 있었던 날이다. 생방송으로 중계되는 봉하마을의 추도식 현장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찔끔 눈물을 흘렸었다. '정의와 선을 추구하고 이상을 잃지 않으며 불합리한 것에는 노라고 하는 것이 효력을 잃은 시대라면, 최소한 자신의 개인용 규칙을 만들고 엄수하는 것이 세상의 니힐리즘에 물들지 않기 위한 저항의 요새가 된다.'는 말이 가슴을 울린다.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을 지나오면서 우리는 '불합리한 것에는 노라고 하는 것이 효력을 잃은 시대', 말하자면 전체주의와도 같은 구시대적 유물 속에서 살았다. 자포자기의 니힐리즘에 저항하기 위해 사람들은 각자의 규칙을 만들고 소중히 지켜왔던 게 아닐까. '아뭏든'을 온전히 '아무튼'으로 받아들이기까지 과거의 기억을 지우는 수많은 노력들이 있었다는 걸 나는 안다. 우리에게는 결코 지울 수 없는 기억들, 결코 지워서는 안 되는 기억들이 너무 많다. 지금의 대통령에게 지워진 짐이 너무 크다. 아무튼.

  • 무라카미 하루키는 어렵다 | mn**tn | 2017.04.30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학교 다닐 때 어느 교수님께서 강의 도중 책(경제학)의 몇몇 대목을 짚으며 그러시던 게 기억 납니다. "이 설명은 잘못된 것이...
    학교 다닐 때 어느 교수님께서 강의 도중 책(경제학)의 몇몇 대목을 짚으며 그러시던 게 기억 납니다. "이 설명은 잘못된 것이고, 심지어 용어 번역조차 바르지 않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에게 기초를 가르칠 때, 다소의 왜곡을 감수하고 뭔가를 전달하는 편이 그나마 나을지, 아니면 아주 원칙대로 꼬장꼬장하게 학습자의 힘들고도 힘든 각성을 유도하는 정석을 걷게 할지는, 선택이 쉽지 않다." 만약 전자의 선택이 무조건 옳다고 믿는 쪽이라면, 어려운 내용도 무조건 쉽게(왜곡되든 말든) 풀어 주는 게 최고의 미덕으로 여길지 모르겠습니다. 어려운 것도 쉽게 설명해 줘야 할 판에, "가뜩이나 쉽고 재미있는 것"을 오히려 어렵게 꼬고 든다면, 그런 작업이 과연 환영받을 수 있을지는 물어보나마나입니다. 책 제목이 더군다나 <...는 어렵다>라면 더욱 그렇죠.

    그런데 이 책은 제목과는 달리, 1) 하루키의 작품 중 알쏭달쏭했던(그런 게 뭐가 있었을까 싶어도 이 책을 읽고보니 문제가 그리 간단치 않았다 싶더군요) 대목들에 대한 작가론적, 역사적 해석을 시도한다든가, 2) 독자들은 엄청 환영해도 동료 작가(물론 까마득한 선배들을 포함)나 평론가로부터는 "버터 바른 상업적 치장"이라며 홀대, 폄하되었던 하루키의 작품 세계를, "그들이 이제는 받아들일 수 있게끔" "심각하고 본격적인 해석"을 시도하는 내용이더군요.

    어려운 걸 쉽게 풀어내는 작업이 결코 쉽지 않지만, 그저 감성적으로 상쾌해질(혹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공감을 해 주고 지나칠) 내용에다 일일이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만만치 않게 어려울 텐데, 하루키의 작품에다 하루키스럽지 않은 심각한 비평 용어로 옷을 입힌 걸 보니(사실은 벗기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당혹스럽다가도 재미있어집니다. 당혹스럽다는 건 "내가 예전에 끌렸던 하루키가 정말 그런 모습 그런 의도였을까" 하는 생경함이 아마도 그 이유일 텐데, 하긴 끌리는 걸 언제까지나 미지의 영역에 남겨 두는 것보다 한번쯤은 정색하고 "분석"해 보는 작업도, 차라리 독자(우리 자신)의 성숙을 위해 의미 있을 수 있습니다.

    아예 이런 번거로운 생각도 (하루키의 독자답게?) 떨쳐 내고 나면, 저자(비평가) 가토 노리히로 선생이 하루키의 개인사를 짚어 가며 그 숨은 의도를 자기 나름대로 재구성하는 대목이 그저 재미있을 수 있습니다. 비평 용어를 몰라도, 정말 하루키의 팬이라면 그 느낌이 딱딱한 외피를 깨고 바로 접수되는 "텔레파시"를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게 가능한가? 독자 하기 달렸습니다. 읽고 나서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저자께서 꽤 열린 마음의 소유자이고, 하루키 말고도 여러 당대의 일본 작가들에 대한 비평을 시도하는 분이지만, 하루키에 대한 든든하고도 순도 높은 애정을 품고 있다는 점입니다. 애정의 방향을 공유하고 밀도까지 비슷하다면, 한 마디를 던져도 그 말이 품은 의미 열 개가 얼마든지 접수 가능합니다.

    저자는 하루키의 활동 시기를 크게 세 단계로 나눕니다. 1979~ 87, 1987~99, 1999~2010이며, 하루키의 팬이라면 저 연도의 구획이 대강 무엇을 기준으로 이뤄졌는지 책을 펴 읽기 전부터 눈치챌 수 있을 겁니다. 각 시기는 "부정성의 행방", "자석이 작동하지 않는 세계에서", "어둠 속으로" 등의 제목이 붙었습니다. 제 느낌으로는 저 거창한 세 개의 어구보다, 각론(저자는 각 시기를 다시 2, 3개의 구간으로 나눕니다)에서 등장하는 "디태치먼트", "내폐성", "맥심(칸트식 개념입니다)", "폴리티컬" 같은 개념어들이, 하루키 문학의 핵심 개성과 은밀한 무의식 등을 속속 잘 짚어낸다 싶었습니다.

    제가 특히 공감한 건 제1기, 2기(이 책 저자의 기준)를 향한 분석입니다. 이념의 대립이 청춘기 지성을 족쇄처럼 억압할 때 이미 역사의 향방이 다른 쪽으로 고비를 틀었음을 알고 초연한 듯 쿨한 듯 개인의 내면으로 시선을 집중하면서도 감각의 쾌락("청춘이 자신의 특권을 누리는 건 죄가 아님")에 몰입하는 듯, 그러면서도 스스로 정한 원칙은 지키는 내향성(책에서는 "내폐성"이란, 보다 강도 높은 용어를 씁니다) 따위가, 특히 그런 조류가 자신의 청춘기를 휩쓴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많은 어필을 했을 거란 분석이죠. 여기서 저자는, 안 어울릴 것 같으면서도 은근 그의 작품에 깔린 "역사성"에 대해 주목합니다. 한국뿐 아니라 중국에서도 널리 공감을 얻는 비결이 있다면, 일본인으로서의 죄의식이나 초국적성의 청춘적 방황 같은 게 도처에 향수처럼 뿌려져 있다는 건데, 저자가 서문에서 특히 최근 고조되는 동아시아의 긴장된 정세를 언급하는 것도 깊은 사려가 깔려 있습니다.

    사실 하루키의 문학은 엔터테인먼트 장르로도 분류하기 어려운 게, 모든 작품이 읽기에 말쑥하고 똑떨어지는 경쾌한 내러티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일부 건방진 독자들이, 그의 작품세계라면 아주 익숙하고, 마땅히 이러겠거니 여기는) 어떤 경로로부터 크게 이탈합니다. 한국에서는 당시 알 수 없었으나, 이 점 관련 "대체 뭐냐", "쓰다 만 것 아니냐" 같은 항의를 적잖게 듣고, 편집진도 (벌써 거물이 된 그에게) 문의를 하기도 했다는군요. 이때 하루키는 "(그런 점들을 혹은 의도를) 이해하려면 (나의 시대에는) 오래 걸릴 것" 같은, 어찌 보면 정말 그답지 않은 고답성을 드러내기도 합니다(물론 아닙니다만). 저자는 "왜 우리 독자들과 비평가들이 별도의 이해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이 책을 통해 몇 가지 시론(프레임)을 제시하는 거죠. 이 시도들이 정말 작가 하루키의 내심과 일치한다면, 이제 (책 제목대로) "하루키는 (알고보니 정말로) 어려웠다"가 되는 겁니다. 물론 모르고 지나친 게 알고 보니 어려웠음을 깨달았다면, 깨달은 그 순간부터는 더 이상 어려운 게 아니죠.

    저자는 평단과 작가들이 모두 하루키를 폄하할 때 거의 혼자서 그를 옹호하던 스탠스를 보이기도 했고(이 때문에, 그의 표현을 빌리면, "역시 버터바른 치장형 평론가군" 같은 평가를 받았다고 합니다), 반면 (이제는 하루키의 작가적 위상을 거의 누구도 의심하지 않게 된 후인) 최근 몇 년 동안엔 오히려 하루키에 대한 과격한 비판을 시도하다 매체 편집자에게 주의를 받기도 했다고 합니다. 남들이 모두 예스라고 할 때 노를 외치기는 어느 조직, 직역에 속한 누구에게도 쉽지 않은데, 그만큼 확고한 신뢰와 분명한 공감에 이르렀기에, 소신 있으면서도 분명한 개성이 깃든 보편타당한 패러다임(그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요?)까지 제시할 수 있는 것 아닐지요. 이 책, 한 번만 더 읽고 나서, 지금까지 읽었던 하루키의 작품이 어떻게 달리 보이는지 책장에 꽂힌 모든 그의 책을 다시 만나는 여행을 떠나봐야겠습니다. 위대한 정신은, 즐겁고 예사로운 말투 속에 진짜 진리를 심어 주는 게 그의 진짜 성취가 아닐까 합니다.
  • 하루키의 책은 읽어본적이 별로 없다. 너무 유명한 사람의 책은 무슨이유인지 별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 소설을 ...

    하루키의 책은 읽어본적이 별로 없다.

    너무 유명한 사람의 책은 무슨이유인지 별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내 취향의 문제이기도 했다.

    내게 필요한 전문서적이나 에세이, 자기계발 도서들만 읽다가 이렇게 편식을 하는 것은 좋지 않은 듯 해 하루키를 처음 접한 것은 색채가 없는 [다자키스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처음 읽게 되었다. 너무나 유명한 작가의 책이지만 제목은 유명한 느낌이 들지 않아서 선택했다. 그리고 내용은 재미있었다.

    처음 읽으면서 모두 이해된 것은 아니지만 하루키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그리고 두 번째 읽게 된 책은 과제로 인해 읽게된 [노르웨이의 숲]이었다.

    일단 많은 사람들이 10대 혹은 20대에 읽었고 그때 당시 많은 이슈를 일으켰던 책인 듯 했다. 처음 읽은 느낌은 일단 재미있었다. 그리고 연애소설이라고 했지만 배우고 있는 과목특성상 다른 관점으로도 볼 수 있는 책이었다. 단순히 연애소설이라고 보기엔 많은 것을 담고 있었다. 그것이 하루키가 의도적으로 담으려고 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이 책은 하루키에 대한 글을 많이 쓰기로 정편이 난 일본 평론가인 가토 노리히로가 쓴 글이다. 대중의 환호와 달리 소위 학자 등 고급한 지식층에서 가벼이여겨진다는 시각에 대해 말하고 있다. 나는 하루키의 글을 잘 모르지만 모르기 때문에 사실 비평이든 뭐든 하기는 어렵다. 이 책은 하루키의 책들을 비평가의 시각으로 분석해 놓았다.

    이번 과제를 하면서 느꼈던 것은 작가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누군가가 그렇게 해석하면 그 작품은 엄청난 작품이 될 수 도 있다는 것이다. 작가인 하루키 자신이 그냥 연애소설이라고 말했던 [노르웨이의 숲]이 많은 것을 담고 있는 작품으로 재조명 받을 수 있는 것도 어쩜 그 소설 안에서 다른 해석을 했기 때문이 아닐까? 어찌 보면 꿈보다 해몽이라고나 할까?

    무라카미 하루키는 어렵다고 했는데 이 책은 더 어렵다. 그냥 내 자신이 하루키의 책을 보고 느껴지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읽고 해석하면 되는데 이 책을 접하고 나니 더 어렵게 만 느껴진다. 하지만 이 책에서 언급되고 있는 하루키의 많은 작품들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이가 분석해 놓은 것의 한 토막을 읽는 것이 아니라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을 읽고 직접 작품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키의 책 중 읽은 거라고는 두 권밖에 없으니 이 책이 이해될 리가 없다. 나중에 하루키의 작품들을 읽고 난 후 이 책을 다시 읽으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할 것도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주 긴 시간이 걸릴 것 같다.

    하지만 하루키의 책을 거의 빼놓지 않고 읽은 사람이나 하루키책을 좋아하는 사람, 혹은 하루키에 대한 오해를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읽어볼만 한 책일 듯하다.

    7년 만에 대형신작으로 다시 우리에게 나타난다고 하니 이번에는 읽어봐야겠다.

  •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은 다가서기도 어렵고 이해하기도 쉽지 않다고 결코 가볍게보아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들을 한다.그의 작품이 어...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은 다가서기도 어렵고 이해하기도 쉽지 않다고 결코 가볍게
    보아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들을 한다.
    그의 작품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기에 과연 그러한 평가가 내려져 있는지는 그의
    작품을 읽어 보지 않는다면 알수도 없고 판단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 세계와 일본 문학계에서 매겨지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상에 대해 폄훼된 일련의 과정들을 속속들이 밝히고 있으며 신인에게만 주어지는
    '아쿠타가와상'의 응모와 심사에 관련된 전통적 가치관에 기반을 둔 심사위원들의
    무지를 적나라하게 파헤치는 기염을 토해내기도 한다.
    그렇지만 문학에서 소설의 위상이라는것도 어떤 방식으로든 평가되기 마련이고 그에
    걸맞든 걸맞지 않든 평가될 뿐이다.
    시대적으로든 문학사적으로든 새로움에 대한 기대치는 언제나 존재하지만 그에 만만치
    않게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가치관에 기반을 둔 기대치 역시 무시할 수 없다는 점은
    어느 분야이건 있기 마련임을 이해할 수 있으면 좀더 이 책의 저자가 주장하는 부분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도 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 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무라카미 류의 초강력 태풍 뒤에
    찾아 온 작은 태풍으로 지칭되지만 일본을 대표하는 순문학의 대표작으로 선정되는
    기염을 토하게 된다.
    과연 무라카미 류의 작품이 아닌 하루키의 작품이 순문학의 대표적으로 자리한 그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긍정의 긍정을 자각하고 부정의 부정에 비애감을 녹여 넣은
    작품으로 기존 전통적 가치에 기반을 둔 사회에 반하는 새로운 가치관으로 신분제의
    타파와 가부장적 권위에 대해 초월적 의식을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새로운 시대 곧 근대문학의 시작을 알리는 효시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그의
    작품이 순문학의 대표적 작품이라는 사실을 새삼 높게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하루키의 작품 개체, 쌍,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등 그의 작품세계에서도 여전히 긍정의
    긍정 인식과 부정의 부정에 대한 비애감은 고스란히 담겨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세계가 어렵다고 말하지만 그의 작품세계에 대한 농밀한 조명을
    선독 한 후 맞이하는 하루키의 작품에 대한 인상은 월등히 수월하고 작가의 의도하는
    바를 쉽게 이해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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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품의 불량에 의한 교환, A/S, 환불, 품질보증 및 피해보상 등에 관한 사항은 소비자분쟁해결 기준 (공정거래위원회 고시)에 준하여 처리됨

- 대금 환불 및 환불지연에 따른 배상금 지급 조건, 절차 등은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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