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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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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3쪽 | A5
ISBN-10 : 8996416606
ISBN-13 : 9788996416609
헐버트 중고
저자 김동진 | 출판사 참좋은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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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7월 8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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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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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도 한국을 사랑한 선교사 헐버트의 삶을 되새기다! 국제금융가 김동진의 한국의 문명화에 헌신한 『파란눈의 한국혼 헐버트』. 1886년 조선 제풀포에 첫 발을 내디딘 이후 20여 년간 한국에서 살면서 교육자, 한글학자, 역사학자, 선교사, 그리고 독립운동가로서 한국의 문명화를 위해 헌신한 헐버트의 일생을 다룬 평전이다. 한국에 대한 사랑을 품고서 일본에 맞서 고종 황제의 밀사로 활약을 펼친 헐버트가 노래하는 구한말의 대서사시를 듣게 된다. 세계에 한글의 우수성을 소개할 뿐 아니라, 아리랑을 채보하는 등의 일화도 담아냈다. 특히 1905년 을사늑약을 저지하고자 미국 제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고종 황제의 친서를 전달하는 임무를 맡는 등 헐버트가 조선의 독립을 위해 미국에서 펼친 활동을 세세하게 밝히고 있다.

저자소개

저자 : 김동진
저자 김동진은 국제금융계에서 크게 활약하면서도 헐버트 정신을 우리 민족이 꼭 이어가야 하며 특히 헐버트의 삶이야말로 우리 젊은이들이 본받아야 할 본보기의 삶이라는 확신 속에서 1999년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를 발기한 이래 헐버트 후손을 초청하는 등 헐버트 기념사업에 정진하고 있다.
1997년 IMF 외환 위기 때는 국제 채권단 대표로 활동하였으며, 2003년 외자 유치 공로로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 저자는 1978년 미국의 케미칼은행(Chemical Bank)을 필두로 국제 금융기관에서 30여 년간 근무하였다. 체이스맨햇턴은행(Chase Manhattan Bank) 한국 대표, 제이피모간체이스은행(JPMorgan Chase Bank) 한국 회장, PCA투신운용(주) 대표이사, 외환은행 부행장, SC제일은행 부행장 등을 지내는 등 국제금융계에서 크게 활약했다. 현재 유리치투자자문(주) 회장이며 서울과학종합대학원(ASSIST) 겸임 교수 이다. 아울러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회장을 맡고 있다.

목차

1부 운명적 만남, 조선
아름다운 영면
미지의 세계를 찾아
구한말과 외국인들
인격이 승리보다 더 중요

2부 문명화의 선구자
육영공원에서 싹튼 한국 사랑
최초의 한글 교과서
근대 교육의 초석을 놓은 계몽주의자
참 크리스천
YMCA를 창립한 Y운동의 중심인물

3부 헐버트가 노래한 한국혼
한글 사랑의 표상
아리랑을 세계의 노래로
언론인이자 저술가
불세출의 역사학자
한민족의 독창성과 잠재력을 발견

4부 독립운동으로 승화한 헐버트의 한국 사랑
독립운동의 힘, 정의와 사랑
을사늑약 저지를 위한 고종 황제의 특사
일본의 횡포에 맞서는 헐버트의 인간애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와 특사 헐버트
선택과 운명
미국에서도 독립운동을 이어가
고종은 무능한 군주였나?

5부 내탕금의 진실
고종 황제가 내린 소명
예치금을 도둑맞는 고종
내탕금을 찾기 위한 분투
내탕금은 돌려받아야 한다

6부 헐버트 정신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하노라”
인간 헐버트
헐버트가 남긴 교훈

-헐버트 후손과의 교류
-헐버트 정신 이어가기

-책을 마치면서
-헐버트의 일생
-근대 개화사 연표
-참고 문헌 및 자료
-찾아보기

책 속으로

출판사 서평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황제의 밀사 헐버트(Homer B. Hulbert)가 노래한 구한말의 대서사시 - 전기(傳記)이자 역사서요 교양서 ...

[출판사서평 더 보기]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황제의 밀사
헐버트(Homer B. Hulbert)가 노래한 구한말의 대서사시
- 전기(傳記)이자 역사서요 교양서


일본이 탈취해 간 고종 황제 내탕금의 전모를 최초로 밝힌다.
헐버트(Homer B. Hulbert)란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전문 역사가들마저도 헐버트의 참모습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이 책은 조선의 개화 물결 속에서, 그리고 구한말 우리가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기는 과정에서 역사의 한 축을 담당했던,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문명화의 선구자이자 독립운동가인 미국인 헐버트(1863-1949)의 일생을 다룬 일대기이자 역사서이며, 교양서이다.

헐버트는, 조선 정부가 최초로 설립한 서양식 교육 기관인 ‘육영공원(育英公院)’의 교사가 되기 위해 1886년 7월 4일 조선 땅 제물포에 첫발을 내디딘 이래 20여 년 동안 한국에 살면서 교육자, 한글학자, 역사학자, 언론인, 선교사, 독립운동가로서 한국의 문명화와 주권 수호를 위해 크게 헌신하였다.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특사 파견 사건 이후 일제의 박해로 미국으로 돌아간 헐버트는 미국에서 서재필, 이승만 등과 함께 1945년 해방이 될 때까지 독립운동에 매진하였다. 1949년 광복절을 기해 이승만 대통령의 초청을 받고 한국에 환국한 지 일주일만인 1949년 8월 5일 청량리 위생병원에서 서거했다. 그는 생전에 《AP 통신》 기자에게 말한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하노라(I would rather be buried in Korea than in Westminster Abbey).”라는 소원대로 현재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묻혀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헐버트 서거 다음 해인 1950년 3월 1일 그에게 건국공로훈장 태극장을 추서하였다.

한국의 문명화와 한국학 개척에 기여

- 선교사
헐버트는 1893년 감리교 선교사가 되면서 감리교 출판부인 삼문출판사를 책임 맡았다. 그는 동대문교회 담임목사를 지냈으며 노량진교회의 설립 예배를 인도하였다. 그는 아펜젤러, 언더우드를 도와 우리나라 개신교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으며, 1887년 언더우드와 함께 우리나라 개신교 최초의 세례를 행하였다.

- 우리나라 근대 교육의 초석을 놓은 위대한 교육자
헐버트는 조선에 도착하자마자 교육을 조선의 가장 시급한 과제로 꼽았다. 그는 육영공원 교사, 한성사범학교 교장, 관립중학교(현 경기고등학교 전신) 교사 등을 역임하면서 교과서 시스템을 정착시키는 등 우리나라 근대 교육의 초석을 놓았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이 주권을 빼앗기자 ‘한국의 살길은 교육뿐’이라며 한국인들에게 교육에 전념하여 나라의 주권을 되찾을 것을 호소했다. 헐버트는 또 학교교육을 넘어 모든 백성이 골고루 교육을 받아야 한다며 국민교육을 주창하였다. 그는 1903년 YMCA 창립총회 의장으로서 YMCA 탄생의 주역이었다.

- 한글학자이자 한글 사랑의 표상
헐버트는 1889년 지리, 사회 총서인 《사민필지》라는 우리나라 최초의 순 한글 교과서를 저술하여 육영공원에서 교재로 썼다. 그는 한글을 현존하는 문자 가운데 가장 우수한 문자 중의 하나라고 정의하였으며, 또한 조선인들에게 어려운 한자 대신 쓰기 쉬운 한글을 애용할 것을 주창했다. 그는 1892년 <한글(The Korean Alphabet)>이라는 논문을 필두로 한글에 관한 수많은 논문을 발표하였고,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를 인류사에 빛나는 업적으로 보았다. 그는 또 1세기 훨씬 전부터 국제적인 신문 및 학술지에 한글의 우수성을 소개하였다.

- 민족 혼 아리랑을 최초로 채보
헐버트는 1896년 구전으로만 전해오던 아리랑을 우리나라 최초로 채보(採譜)하여 논문으로 발표함으로써 아리랑이 오늘날 세계의 노래가 되는 단초를 열었다. 그는 ‘아리랑은 한국인들에게는 쌀과 같은 존재다.’라며 아리랑에 대한 한국인들의 정서를 정확히 파악했다. 아울러 그는 군밤타령도 오선지에 채보하여 발표함으로써 우리나라 음악사에 양악보 시대를 가져오면서, 전래 민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독립운동가로서의 활동

- 고종의 침전에서 불침번을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 이후 헐버트는 언더우드 등과 함께 시해 위협에 시달리던 고종을 보호하기 위해 고종의 침전에서 불침번을 섰다. 이 책은 1895년 11월 27일 춘생문 사건 당일 헐버트 일행이 고종을 보호하는 장면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새로운 역사 기록이라 할 수 있다.

- 을사늑약 저지를 위한 고종 황제의 대미 특사
고종 황제는 1905년 을사늑약을 저지코자, 미국의 26대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자신의 친서를 전달하는 특사로 헐버트를 임명하였다. 헐버트는 1905년 11월 미국을 방문하여 미국 조야에 조미수호통상조약에 따라 미국이 일본의 보호 통치 음모를 저지시켜 줄 것과 일본의 침략주의를 막아달라고 호소하였다. 이 책은 헐버트의 미국에서의 활동을 우리나라 최초로 세세하게 밝혔으며, 당시 고종 황제가 을사늑약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 일본의 횡포에 맞서는 헐버트
헐버트는 러·일 전쟁 직후 박해받는 한국인들을 위해 일본에 대항하였으며, 한국인들은 일본인들에게 부동산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헐버트에게 부동산 등기문서를 들고 와 헐버트 명의로 이전해 달라고 요청하기까지 했다. 헐버트는 이토 히로부미 통감에게 한국인들에게 공정한 재판이 보장되면 자신은 일본 비난을 중지하겠다고 타협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1907년 일본 궁내부 대신이 우리나라 국보인 개성 부근에 있는 경천사 10층 석탑을 고종 황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탈취해가자 헐버트는 현장에 가서 사진을 찍어 국제적 신문에 고발하며 석탑 반환을 촉구하였다. 후일 석탑은 돌아왔으며 현재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 세워져 있다.

- 미국에서 서재필, 이승만 등과 함께 독립운동을 계속
헐버트는 1907년 여름 일본의 박해로 한국을 떠나 미국에 정착하면서 한국인들을 격려하고, 국제적으로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면서 1945년 해방이 될 때까지 독립운동을 계속적으로 이어갔다. 이 책은 헐버트가 3·1 만세운동 직후인 1919년 8월 <한국을 어찌할 것입니까?(What about Korea?)>라는 제목의 진술서를 미국 상원에 제출하면서 일본의 잔학상을 고발하고,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였음을 최초로 밝히고 있다. 헐버트는 이 진술서를 위해 공증까지 하였다. 저자는 이에 대한 자료를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서 입수하여 이 책에서 사진과 함께 제시했다.

일제가 탈취해 간 고종 황제
내탕금을 돌려받아 고종 황제의
100년의 한을 풀어줘야 한다


이 책은 1903년 고종 황제가 상하이에 있는 덕화은행(독일계 은행)에 독일화 510,000마르크를 금괴와 일본 엔 화로 예치하였으며 이 돈을 1908년 일본이 탈취해갔음을 우리나라 최초로 밝혔다. 이 돈은 당시 대한제국의 총세입의 1.5%나 되는 돈이다. 오늘날의 가치는 연리 10%로 100년을 계산하면 약 2조원이 된다. 국제금융인인 저자는 이 책에서 덕화은행장이 써준 예치금 영수증, 통감부 외무총장이 독일 측으로부터 돈을 받고 써준 영수증 등 실체적 증거를 제시하며 내탕금의 예치 과정, 고종 황제가 헐버트에게 내탕금을 찾아오라고 위임하는 경위, 일본이 예치금을 탈취하는 과정, 헐버트의 내탕금을 찾으려는 분투, 해방 후 우리 정부가 이 사실을 헐버트로부터 접하고 취한 행동 등을 소상하게 밝혔다. 40년 동안 이 돈을 찾으려고 동서분주한 헐버트는 생전에 이승만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에서 한국은 이자까지 합쳐서 꼭 돈을 받아내야 한다고 울분을 토했다.
저자는 CEO 출신답게 증거 자료와 함께 이 문제를 객관적으로 세밀하게 파헤쳐 내탕금 문제의 모든 의문점을 해소하였다. 지은이는 내탕금에 대한 근거 없는 여러 설을 일축하며 이 문제를 흥밋거리로 보아서는 아니 되며, 민족정기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회장이기도 한 저자는 이 문제는 새로운 한·일 문제로서 헐버트가 소원한대로 이자까지 합쳐서 돌려받아야 하며 경술국치 백년을 맞아 고종황제와 헐버트의 100년의 한을 풀어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은이는 이 문제에 대해 김영일 광복회장과 김삼열 (사)독립유공자유족회장과 협의하였으며 두 분은 일본이 탈취해 간 내탕금에 대해 흥분을 감추지 못하면서 소송을 해서라도 기필코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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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

회원리뷰

  • 2013년 아이들과 도보관광으로 양화진 외국인 묘역을 다녀왔습니다. 많은 외국인 선교사들의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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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아이들과 도보관광으로 양화진 외국인 묘역을 다녀왔습니다. 
    많은 외국인 선교사들의 무덤 중에 왠지 기억에 남았던 헐버트 묘비였습니다.
    왠지 이유는 분명하지 않았지만 그 이름만은 뇌리에 명확히 남았습니다.
    2017년 설 연휴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러 서가를 옮겨 가는 도중 '파란 눈의 한국 혼, 헐버트' 책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황제의 밀사'라는 부제목에 더욱 관심이 갔습니다.
    최근 서울역사박물관의 '스코필드 박사'에 대한 기획전시를 관람하며 34번째 
    민족지도자라는 뜻을 다시 깨우치며 헐버트는 어떤 일을 했는지 책으로 만나봅니다.

    갑신정변 이후 민족의 교육혼을 깨우기 위해 미국에서 3명의 교사를 초빙합니다.
    '육영공원"이라는 근대식 학교를 세우고 고관과 양반 자녀를 특별히 입학시켜 미국인 교사 3명에게 교육을 받게 합니다. 최초의 학교라는 명분으로 고종이 직접 시험을 주관하며 궁궐에서 시험도 치르게 됩니다. 이때 3명의 교사 중 한 명으로 조선에 온 헐버트.
    황후 시해 사건이 발생하자 신변의 위험을 느낀 고종은 외국인 선교사들의 불침번 속에서 기나긴 밤을 보냅니다. 
    3인 1조로 불침번을 당번으로 궁궐을 지킨 헐버트.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미국에 알리기 위해 고종의 특사 자격으로 루스벨트를 만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한 외국인.
    그는 미국의 가쓰라-테프트 밀약을 모른 채 미국을 설득하기 위해 상원의원, 미국 정부, 대통령을 쫓아다니지만 실패하고 맙니다.

    이준, 이상설, 이위종 3인을 헤이그 특사로 알고 있지만, 4번째 특사인 헐버트에 대해 모르고 있습니다.
    고종의 친서와 특사증을 가지고 제일 늦게 한국을 떠난 헐버트. 
    일제는 헐버트가 특사 자격을 가지고 만국평화회의장에 들어갈 것을 우려해 그에 대한 감시를 철저히 합니다.
    그 때문에 이준 열사는 일제의 눈을 피해 한국을 빠져나갑니다.
    만국평화회의장에서 일제의 방해로 회의장에 입국하지 못한 3명의 특사를 대신해, 언론을 통해 대한제국의 억울함을 폭로합니다. 
    이 때문에 고종이 강제 폐위되고 특사 3명에 대한 일제의 궐석 재판으로 사형과 무기징역이 선고됩니다.
    이들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일제의 만행과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강연을 통해 세계에 알립니다.
    또한 언론을 통해 루즈벨트의 만행을 폭로하며 조국보다 더 대한제국을 사랑한 그.

    죽음을 무릅쓰고 다시 한국 땅을 밟은 헐버트.
    일제의 끊임없는 감시를 피해 을사늑약 당시 참정대신이었던 한규설을 만나 당시 상황에 대해 취재를 합니다.
    또한 비밀리에 고종이 중국 상하이 독일계 덕화은행에 예치한 내탕금 $200,000을 찾아달라는 특사 자격을 위임받습니다.
    일제에 의해 강제 폐위된 고종은 그 돈으로 독립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헐버트를 통해 인출을 원했습니다.
    헐버트가 상하이에 도착하여 예금을 인출할 당시, 그 돈은 이미 조선통감부에 지급된 후였다.
    예금의 인출은 고종에게만 지급하겠다던 독일 은행장의 사인과 예치증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헐버트는 미국으로 건너가 변호사를 선임하여 이들과 소송을 진행했지만, 2차 세계대전으로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시간만 흘러갔다.
    1945년 해방을 맞고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헐버트는 그가 특사로 위임받아 소지하고 있던 증거들을 이승만에게 인계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외교교섭으로 내탕금의 존재를 알렸지만, 신생 정부의 미숙 때문인지 유야무야되었다.

    1949년 7월 29일, 86세의 노인이 된 헐버트는 이승만의 초청으로 다시 한국 땅을 밟습니다.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하노라" 마치 유언처럼 자식들에게 말했던 헐버트.
    그 말이 현실이 되어 한국 땅에 밟은지 8일 만인 1949년 8월 5일 청량리 위생병원에서 순국하였습니다.
    그의 묘는 양화진 외국인 묘역에 이승만 대통령과 이시영 부통령과 3부 요인이 참여한 가운데 사회장으로 치러졌습니다.
    그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외국인 최초로 건국공로훈장 태극장을 수여하였습니다.

    아마도 제가 헐버트를 기억하고 있는 것은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하노라" 구절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묘비 중앙에 '헐버트 박사의 묘'로 한글로 새긴 것은 김대중 대통령이라고 합니다.
    원래는 이승만 대통령이 새길 예정이었지만 한국전쟁과 하야로 인해 새기지 못하고 빈 공간으로 놓여있다가, 사연을 알게 된 김대중 대통령이 친필로 새겨 넣었다고 합니다. 
    조국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외국인, 고종을 도와 조선의 독립을 세계에 호소한 헤이그 특사, 헐버트.
    그분의 뜻을 기리고 나라를 더욱 사랑해야겠다는 다짐을 해 봅니다.
  • 파란눈의 한국혼 홀버트 | ti**n082 | 2012.12.11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파란눈의 한국혼 헐버트   ...
    파란눈의 한국혼 헐버트
     
    김동진 지음/ 참좋은친구 출간/ 2010.08.23.
     
    역사를 잊고 사는 민족은 아픈 역사를 되풀이 할 것이다. 지금부터 100여 년 전 대한제국은 열강들의 힘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갓 먹잇감으로 전락하고 있었다. 고종황제는 기울어가는 제국을 살리고자 노력했지만 결국 우리나라는 일본의 야욕 앞에 나라를 지키지 못했다. 이러한 사실은 과거이지만 현재이기도 하다. 대한제국의 멸망과 국권을 빼앗기고 한일합방의 치욕 속에서 우리 민족이 어떻게 살았는지, 그 결과가 지금에도 많은 문제의 출발점이 되었다. 정치, 경제, 문화, 의식, 언어에도 일본제국주의의 잔재가 무서우리만치 녹아들어 있다. 그래서 지난 100년 전의 사실이 우리에게 너무나 큰 영향을 주고 있다. 대한제국은 왜 멸망했는가? 미국에서 건너온 파란 눈의 이방인 헐버트는 <대한제국멸망사>에서 다음과 같이 진단하고 있다.
    첫째, 지배 계급의 부패였다. 헐버트는 한국의 멸망이 일차적으로는 내재적 모순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는 관찰사가 5만 달러에 매관되고 현감이 5백 달러에 거래되는 현장을 바라보면서 이 나라의 장래는 결국 패망으로 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정작 민생을 괴롭히는 것은 이러한 매관의 연쇄 현상으로 나타나는 아전의 횡포였다. 이것은 결국 민심의 이반으로 연결된다는 것이 그의 전망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 것은 왕실과 그 주변의 지배 계급이 문명 진보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함으로써, 명치유신 이후 미완성된 자본주의의 모순을 타개하기 위해 정한론으로 무장한 일본대륙론자들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명치유신 이후 착검과 특권이 박탈된 사무라이들이 그들의 살길을 찾아 서구의 문물과 관료 제도를 받아들이고 있을 때 조선의 지배 계급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채 주자학적 중화사상에 안주하면서 세계의 대세를 읽지 못했다. 대원군의 쇄국이 당시로서 일말의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좀 더 유연하게 서세동점에 대처하면서 자신의 정책을 변용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물론 당시에 이러한 보수파에 대항한 개화파가 있었지만 그들은 일을 너무 조급하게 서둘렀다. 그들은 지금이 아니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now or nothing)는 조급함에 사로잡혀 있는 분별없는 젊은이들(ill- advised youngmen)이었다. 그들의 진심이 아무리 순수한 것이었고 우국 적이었다고 하더라도 김홍집과 어윤중이 저자거리에서 돌멩이에 맞아 죽는 것을 바라보면서 헐버트는 그들이 난세에 살아남는 지혜를 갖추지 못 했음을 안타까워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본심과는 달리 그들이 친일적 성향을 보인 것은 그들의 경륜이 익지 못했음을 의미하며 이러한 민중적 정서는 일차적으로 그들이 책임져야 할 문제라고 헐버트는 생각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모든 내재적 모순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대한제국이 멸망한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외재적 요인 즉 미국의 무신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헐버트의 입장이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미국은 한국과 국교를 맺은 최초의 서방 국가이며 그 조약에서 미국은 한국의 안전과 이익을 존중하겠노라고 약속했다. 한국은 자신의 독립이 유린될 때에는 이를 막아 줄 수 있는 국가로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미국에게 구원을 요청할 권리를 갖는다는 말을 수없이 되풀이했다. 그러나 한국민에게 환난이 닥쳐오고 그토록 되풀이하던 공언이 순수한 것이었음을 입증했어야 할 무렵에 미국은 그토록 약삭빠르게, 그토록 차갑게, 그토록 심한 멸시의 눈초리로 한국민의 가슴을 할퀴어 놓음으로써 한국에 살고 있는 점잖은 미국 시민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이제 망국의 낙조가 비치는 대한제국의 지도자와 국민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는 자신의 민족이 자신을 정복한 민족과 대등하게 될 때까지 자기 민족의 교육에 전념해야 하며 순수한 인간성을 무기로 하여 일본인들이 한국에 대하여 느끼고 있는 멸시를 상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충고로 글을 끝맺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교육이 국가흥망의 열쇠이며 민족의 자존을 회복하는 것이 지도자의 책무라는 것은 변함없는 교훈으로 남아 있다(주간조선, 1999).
     
    멸망해가는 조국의 현실을 바라보며 울분에 젖은 많은 선각자들과 함께 파란 눈의 이방인, 헐버트도 우리나라를 위해 많은 역할을 했다. 김동진의 <파란눈의 한국혼 헐버트>를 읽고 깊은 감동과 함께 부끄러움이 밀려오는 것은 왜일까? 23살의 젊은이가 이 땅에서 헌신한 헐버트의 일대기를 통해 그의 숭고한 박애정신은 우리가 본받아야 할 것이다. 일본에 항거하고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에서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황제의 밀사, 헐버트를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그의 삶과 정신을 교육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이다.
    우리에게 남긴 헐버트의 정신과 사상은 무엇인가?
    첫째, 그는 한국학의 대가이자 민족주의자였다. 우리 민족의 역사와 문화의 진정한 가치와 성공 잠재력을 발견하고 한민족에게 긍지를 심어주었다. 그는 한글을 열심히 공부하여 우리말의 우수성을 일찍이 깨닫고 한글로 된 책 <사민필지>를 출간하여 교과서로 사용하였다. 또한 구전되어 오던 아리랑을 채집하여 악보로 만들었다. 그는 우리 문화를 위대하게 여겼고, 타민족의 주권을 불법으로 강탈한 강대국의 침략주의에 일생을 두고 투쟁하였다.
    둘째, 그는 위대한 교육자이자 계몽주의자였다. 특히 그는 교육을 통해 한민족의 발전을 이루고자 노력했다. 육영공원의 교사로 취임하여 근대교육의 도입에 남다른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는 학교교육뿐만 아니라 국민교육을 중시하였다. 청소년들에게 교육의 장을 제공하고, YMCA를 창립하는 등 국민 계몽운동에 앞장섰다.
    셋째, 그는 정의를 실천하는 평화주의자였다. 헐버트는 국경을 초월하여 모든 나라에 자유와 평화가 정착되기를 바라는 평화주의자이자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는 정의의 실천가였다. 일제의 침략주의에 분연히 맞섰고 자신의 모국인 미국의 비도덕적 외교정책에도 반기를 들었다.
    넷째, 그는 원칙을 지키는 합리주의자였다. ‘편법은 원칙을 이기지 못한다(Expediency must always yield to principle). 라는 좌우명으로 일관된 가치관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일관된 가치관 속에서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로 실용을 추구하는 합리주의자였다.
    다섯째, 헐버트는 박애주의자였다. 그는 한국을 사랑했을 뿐 만 아니라 모든 계층의 한국인을 사랑했다. 남녀를 구분하지 않았고, 귀천을 따지지 않으면서 박애주의를 실천하였다.
    여섯째, 헐버트는 명예와 신의를 중요시하였다. 한성사범학교가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자 정부에 학교 개량을 건의하였다. 헤이그 특사 파견사건 이후 미국으로 돌아가자 한국 일은 포기하라는 주변의 권유에도 그는 한민족과 고종황제의 신의를 저버릴 수 없다며 미국에서 특사 정신을 이어갔다.
     
    헐버트가 그렇게도 완수하려고 했던 고종황제의 내탕금이 이미 일본에게 지급되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그는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1986년 23살의 나이로 한국의 제물포에 도착한 이후 63년 만에 86세의 노구를 이끌고 1949년 7월에 우리 땅을 다시 밟았지만 일주일 후 1949년 8월 5일 한 평생 사랑했던 한국 땅에서 운명하였고 한강 변의 양화진에 고이 잠들어 있다.
    헐버트의 고귀한 한국사랑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하여 1999년에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를 발족하였다. 헐버트박사를 기념하는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후손들과도 유대관계를 갖고 헐버트의 한국사랑에 대한 감사의 뜻을 이어가고 있다.
  • 파란눈의 한국혼 헐버트 | am**715 | 2012.12.02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헐버트’라는 이름만 알고 있었던 내게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황제의 밀사’라는 저자의 헐버트라는 사람에 대한 표현이 유독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평소 한국역사에 대한 무지함이 부끄러우면서도 막상 역사에 관한 책들을 쉬이 선택하지 못하는 내게 이 책은 어쩌면 하나의 도전이기도 했다. 책 표지를 펼치자 책날개에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하노라”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호머 헐버트(Homer Bezaleel Hulbert, 1863~1949), 과연 그는 어떤 삶을 살았던 인물이었을까? 나도 모르게 책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저자는 책머리 글에서 이 책을 저술한 목적을 분명히 밝히고 있었다. 인간 헐버트가 누구인가를 밝히는 데 중점을 두었으며, 그의 삶을 재조명하여 헐버트 박사를 세상에 알리는 것.   ...
    ‘헐버트’라는 이름만 알고 있었던 내게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황제의 밀사’라는 저자의 헐버트라는 사람에 대한 표현이 유독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평소 한국역사에 대한 무지함이 부끄러우면서도 막상 역사에 관한 책들을 쉬이 선택하지 못하는 내게 이 책은 어쩌면 하나의 도전이기도 했다. 책 표지를 펼치자 책날개에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하노라”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호머 헐버트(Homer Bezaleel Hulbert, 1863~1949), 과연 그는 어떤 삶을 살았던 인물이었을까? 나도 모르게 책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저자는 책머리 글에서 이 책을 저술한 목적을 분명히 밝히고 있었다. 인간 헐버트가 누구인가를 밝히는 데 중점을 두었으며, 그의 삶을 재조명하여 헐버트 박사를 세상에 알리는 것.
     
    역사서에 약간의 부담감을 가진 나로선 어쩌면 이 책을 선택한 것이 내게 역사공부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갖게 했다.
     
    그가 이룬 업적이 너무 방대해서 그것을 모두 요약하기는 힘들기에 내가 특히 감동 받았던 부분을 언급하며 이야기 해보려 한다. 처음 이 책을 골랐을 때보다 책을 읽으면서 점점 더 헐버트라는 사람이 궁금해졌고, 그에 대한 존경심까지 생기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나를 놀라게 했던 것은 그의 한글사랑이었다. 그는 내한 초기에 의사소통을 위해 한글을 배웠으나 후에 한글을 심도 있게 연구하여 한글학자가 되었다. 또 한글에 관한 수많은 논문을 발표하였을 뿐만 아니라 한글의 기원에 관한 책도 썼다. 그는 한글을 200개가 넘는 다른 문자와 비교해 보았다면서 ‘어느 문자도 문자의 단순성과 소리를 표현하는 힘의 일관성에서 한글보다 더 나은 문자는 없었다’라며 ‘한글이 현존하는 문자 가운데 가장 훌륭한 문자 중의 하나임에 틀림없다’라고 한글을 정의했다.
    이 부분을 읽으며 나는 과연 한글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요즘 우리 사회는 너무나 무분별하게 영어 단어를 한글로 표기하여 한글은 파괴되어 가고 국적 없는 단어가 범람하고 있다. 특히나 외국어 공부에 대해서는 엄청 강조하면서도 마치 공기에 대한 고마움을 모르고 살듯이 한글의 편리성과 우수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한글은 함부로 대하는 것은 아닌지 한번쯤 돌아보게끔 했다.
     
    그리고 그가 내게 일깨워준 다른 가르침은 나라사랑에 대한 마음이었다. 지금의 나라 사랑은 헐버트가 활동했던 구한말과 같이 나라를 잃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아니지만 나라 사랑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필요하다. 아무리 지구촌이 장벽을 허문다 해도 나라는 나를 존재케 하고 나의 민족적 정체성을 지켜주는 유일한 보호막이다. 자기 나라와 자기 민족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타민족과 타 문화를 사랑할 수 있겠는가? 저자가 던진 이 질문에 나는 조금 부끄러워졌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역사에 대해서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았던 그간의 내 태도에 대해서 반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을 읽은 것을 계기로 헐버트가 저술한 한국사를 먼저 읽으며 한국역사에 대해 제대로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떠들썩하고 요란스럽게 나라 사랑을 외쳐댈 필요는 없다. 먼저 자신의 본분을 다하면서 나라의 품격을 올리는데 솔선수범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작은 것부터 실천해 나가야 할 것이다.
    글을 마치며, 구한말은 우리나라 근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역사적 전환점이었으며 우리의 운명을 뒤바꾼 회한의 시대였다. 그리고 이어서 그 시절 활동한 서재필, 이승만, 김구, 주시경, 안창호, 이상재 등 한국인 선구자들을 주로 떠올린다. 그분들 외에도 많은 외국인이 열정을 다하여 구한말의 근대화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개화의 시작과 함께 이 땅을 밟은 외국인 교육자, 의사, 선교사들의 역할은 이 땅의 근대화를 위한 중요한 한 축이었다. 1880년대 중반부터 선교사, 교육자들이 이 땅을 밟기 시작했으며, 많은 외국인이 미지의 땅 조선에 서양문물을 접목하면서 우리나라 근대화에 공헌하였다. 이들 중 유난히 눈에 띄는 사람이 헐버트다. 그는 교육자, 한글학자, 역사학자, 언론인, 선교사, 그리고 독립운동가로서 유달리 이 땅에서 폭넓게 활동하였다. 그는 특히 심도 있게 한국 역사와 한민족을 탐구하여 우리 민족에게 긍지를 불어넣었을 뿐만 아니라, 구한말 주권 수호 운동의 한 축을 담당하면서 오늘날까지 역사의 증인이 되고 있다. 우리는 그들의 활동도 우리의 역사와 똑같이 소중하게 보존하고, 그들의 공과를 가려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그렇다고 그들을 특별한 손님으로 대접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이 땅에서 호흡했던 외국인들의 공과를 우리나라 사람과 똑같은 잣대에서 객관적으로 평가하여, 그들의 공적에 걸맞은 감사를 표하고, 그들이 남긴 훌륭한 정신을 기억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예를 다하는 민족으로, 보은은 아는 문화민족으로, 그리고 성숙한 세계시민으로 국제사회에 인식됨으로써 국가 인지도가 한층 더 높아질 것이다. 이 책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읽게 되기를 바란다.
  • 파란눈의 한국혼 헐버트 | kk**dam | 2012.11.25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이토록 한국을 사랑하고 한국을 위해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았던 헐버트(Homer B. Hulbert)란 인물에 대해서 ...
    이토록 한국을 사랑하고 한국을 위해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았던 헐버트(Homer
    B. Hulbert)란 인물에 대해서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니 정말 이상한 일이다. 책을
    읽는 내내 전율이 일었고 안타까웠고, 경악을 금할수가 없었다. 그가 남긴 사진
    속에서 우리나라의 옛모습과 생활상을 보고, 그가 남긴 글에서 당시 역사적인 상황
    들을 들여다보게 되다니. 어떻게 외국인임에도 한국인 못지않게 이렇게 한국의 모든
    것을 아끼고 사랑할 수 있었을까. 구한말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기는 과정에서 역사의
    한 축을 담당했던, 문명화의 선구자이자 독립운동가인 미국인 헐버트의 일생을 다룬
    일대기를 통해서 그 당시 긴박했던 우리의 역사와 여러가지 사건들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매우 세세하게 우리나라 풍속과 생생한 삶의 모습을 담았다. 더불어 많은
    유적과 우리 선조의 생활상에 대한 사진도 수록하여 구한말의 시대 상황을 매우
    가까이서 들여다보는 느낌을 갖게 한다.-169
    헐버트는 운명처럼 코리아란 나라를 알게 되었고, 결국 우리나라에 왔으며, 평생을
    우리나라를 위해 많은 일을 하였다. 그는 교육만이 나라를 지키고 문명사회를 만들
    수 있다며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국제적인 신문 및 학술지에 한글의 우수성을
    소개하였고, '사민필지'라는 우리나라 최초의 순 한글 교과서를 저술하여 육영공원에서
    교재로 썼으며, 구전으로만 전해오던 아리랑을 우리나라 최초로 채보하여 논문으로
    발표하였다. 또한 고종을 지키기위해 고종의 침전에서 불침번을 서기도 했고, 박해받는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일본에 대항하였으며, 고종 황제는 을사늑약을 저지코자,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자신의 친서를 전달하는 특사로 헐버트를 임명하였다. 일본의
    박해로 어쩔수 없이 한국을 떠나 미국에 정착하고서도 국제적으로 한국의 독립을 호소
    하면서 독립운동을 계속적으로 이어나갔다. 또 고종 황제가 헐버트에게 내탕금을 찾아
    오라고 위임하였고, 국보인 경천사 10층 석탑을 고종 황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탈취해가자 헐버트는 국제적 신문에 고발하며 석탑 반환을 촉구하여, 돌려받는데 많은
    공헌을 하였다. 이토록 일일이 열거하기에 끝이 없을만큼 열정적이었고 끈기를 보여준
    헐버트의 활약에 감동했고 감사한 마음뿐이다.
    한국과의 운명적인 만남, 고종 황제와 특별한 인연을 가졌던 헐버트는 20여 년
    동안 한국에 살면서 교육자, 한글학자, 역사학자, 언론인, 선교사, 독립운동가로서
    우리나라에 크게 헌신하였다.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특사 파견 사건 이후 일제의
    박해로 미국으로 돌아가야 했던 헐버트는 미국에서 서재필, 이승만 등과 함께
    독립운동에 매진하였다. 그리고 1949년 광복절을 맞아서 이승만 대통령의 초청을
    받고 한국을 떠난지 40년 만에 환국하였지만 안타깝게도 얼마 후, 병원에서 영면에
    들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문화, 언어를 지키기 위해, 독립을 위해 노력하고 몸을
    아끼지 않았던 많은 사람들 속에 파란 눈의 헐버트가 함께 있었다.

  • 헐버트를 존경하게 됐다 | ev**rock | 2012.06.19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헐버트 선생님이라고 해야하나....뭐라고 해야하나.   솔직히 백범 김구 선생님 책을 읽었을 때 보다 그 감동이 ...
    헐버트 선생님이라고 해야하나....뭐라고 해야하나.
     
    솔직히 백범 김구 선생님 책을 읽었을 때 보다 그 감동이 더 하다.
     
    몰랐기 때문일까? 그의 존재를....아니 어렴풋이 들어는 봤겠지.
     
    대한민국 교육과정을 이수했으니까.
     
    가장 큰 의문은 그는 미국인이라는 것이다.
     
    한국에 매력을 느낄 수는 있지만, 한 평생, 한국인보다 한국인과 한국을
     
    더 아끼고 위하고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을까?
     
    그가 이룬 업적에 대해 이제 갓 눈뜨기 시작했는데 그를 두고 이러니 저러니
     
    내가 얘기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닌 것 같다.
     
    다만, 앞으로 헐버트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양화진에 있다는 헐버트의 묘를 꼭 찾아가 보려한다...
     
    사민필지, 대한제국흥망사 꼭 접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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