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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문은 힘이 세다(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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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9쪽 | 양장
ISBN-10 : 8964361601
ISBN-13 : 9788964361603
천자문은 힘이 세다(양장본 HardCover) [양장] 중고
저자 김근 | 출판사 삼인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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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월 3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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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시리즈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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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문은 힘이 세다』는 저자 김근 교수가 2003년에 출간한 『욕망하는 천자문』의 틀을 바탕에 두고 그 내용 중 많은 부분을 새로 써서 펴내는 책이다. 책의 머리말에 따르면 『천자문』은 “단순한 아동 독서물이 아니라 그 이상의 가치와 영향력을 가진 명실상부한 고전”이며 “세계와 인생을 읊은 장편 서사시이고, 그 콘텐츠는 중국 고전 작품들을 망라해 다시 쓴 것이어서 동아시아의 전통 사상이 그대로 압축돼 있”(6쪽)는 풍요로운 텍스트다.

저자소개

저자 : 김근
인천에서 태어나 자라나고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했다. 이어 그곳 대학원에서 창석蒼石 이병한 선생의 지도 아래 문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버클리 대학에서 연구교수를 역임했고, 계명대와 한양대 중어중문학과 교수를 거쳐 서강대 중국문화 전공 교수로 정년퇴임을 했다. 교수 재직 시절에는 주로 언어와 이데올로기, 특히 권력으로서의 문화에 관한 논문을 많이 썼다. 지금은 노원교육복지재단 이사장으로 봉사 생활을 하면서 『동아시아를 만든 중국 고전 명시명문 100선』을 집필 중에 있다. 지은 책으로는 『한자는 어떻게 중국을 지배했는가』, 『욕망하는 천자문』, 『한시의 비밀』, 『한자의 역설』, 『예란 무엇인가』, 『유령의 노래를 들어라』 등이 있으며, 역서로 『여씨춘추 역주』, 『설문해자통론』 등을 펴냈다. 이 외에 『한부漢賦의 문학적 주체성에 대한 재조명』 등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목차

책머리에

1부 문자로 다시 만드는 세상
2부 사람을 지탱하는 기둥들
3부 왜 수양을 해야 하는가
4부 권력이 숨기고 드러내는 것
5부 지식인의 신화와 현실
6부 중국 중심주의의 지리학
7부 세상을 다스리는 기술
8부 소외를 견디는 지혜
9부 일상의 이데올로기
10부 몸은 타서 없어져도

책 속으로

-과학은 분류에서부터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분류는 과학적 접근에 매우 중요한 방법이다. 한자를 배우면 사물을 이해할 때마다 이 분류 행위가 저절로 이루어지므로 이를 반복하다 보면 궁극적으로 과학적 사유에 익숙해질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

[책 속으로 더 보기]

-과학은 분류에서부터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분류는 과학적 접근에 매우 중요한 방법이다. 한자를 배우면 사물을 이해할 때마다 이 분류 행위가 저절로 이루어지므로 이를 반복하다 보면 궁극적으로 과학적 사유에 익숙해질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자를 일찍부터 교육시키면 총명해진다는 속설은 전혀 근거 없는 말은 아니다. 다만 한자는 한 사물이 지닌 수많은 속성 가운데 그 일부만을 이미지를 통해 이해시키기 때문에 그것을 자칫 그 사물의 고유한 특성으로 고착시킬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사물의 다양한 측면을 볼 시각들을 제한할 수 있어서 한자체계가 형성한 세계관을 벗어나 다른 세계를 상상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점도 아울러 알아야 한다. (95~96쪽)

-덕행이 덕행으로 남으려면 덕의 위상을 무화無化시켜야 한다. 이를테면, 우리는 흔히 이웃을 도와주는 등 적선을 하고 나면 가슴이 뿌듯해지면서 보람된 일을 했다고 매우 만족하게 여긴다. 바
로 이 지점에서 앞서 말한 초자아의 유혹이 작동함으로써 분열은 시작된다. 이 분열을 방지하려면 가슴 뿌듯하게만 여길 게 아니라 오히려 이런 기분을 느끼도록 적선의 기회를 제공해준 그 이웃에게 감사한 마음과 아울러 부채 의식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위상이 이웃과 같아지면서 덕행이 분열되지 않은 상태로 기억되는 것이다. 이것이 또한 중용의 원리이기도 하다. (251쪽)

-효를 바탕으로 한 자기 유사성의 구조는 체제 유지에 매우 효과적이었으므로 자연스럽게 우리 사회의 모든 조직에 그대로 적용돼왔으니, 여기서 생겨난 윤리적 덕목이 바로 효의 변형인 의리義理였다. 이러한 체제는 우리 사회에 작은 임금들을 구석구석에 만들어내고 지위를 누리게 해주었다. 이것이 분봉分封으로 체제를 유지하던 주나라 봉건 체제와 무엇이 다른가? 사회가 새로운 변혁을 요구할 때도 이 구조만 적절히 분열시키면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 즉 권위의 자리에 있는 ‘봉건 영주들’인 기득권층과 원로 또는 ‘어르신’이라 불리는 노인들에게 그들의 위상 변화를 슬그머니 걱정해주면서 권위를 제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 사회 조직의 곳곳에 박혀 있는 그들이 자발적으로 연대해 ‘아랫것들’을 단속하게 되는데, 이것이 우리 사회에서 구체제가 유지되는 비결이다. 따라서 이 자기 유사성의 구조를 탈피하지 않는 한 봉건 관념은 사라지지 않고 민주주의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273~274쪽)

-군자로 숭배받는 사람도 인간인지라 언젠가는 인간의 냄새를 풍길 때가 있다. 그러면 이웃과 대중들은 벌떼처럼 일어나 너도나도 성토한다. 숭배의 그늘 뒤에 숨었던 사람들의 처지에서 자신의 허물이 덩달아 들통났다는 분노도 작용했겠지만, 군자의 위선을 성토함으로써 나 자신은 여전히 선함을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라캉은 자아가 거울로 인해 생긴 것이므로 진정한 주체(S)와는 분열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군자도 분열되어 있기는 마찬가지이므로 겉과 속이 일치할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인간의 이러한 보편적인 속성을 인정해야 인간을 함부로 신화적으로 만들어서 그와 내가 함께 망가지지 않는다. (315쪽)

-동네 할아버지들이 느티나무 아래서 해주신 이야기에 의하면 마을의 공적비들은 원님들이 가고 나서 세워주는 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원님들이 부임할 때 동네 원로들이 미리 공적비를 새겨서 보여준 다음에 잘 보관했다가 퇴임할 때 세운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공적의 내용과 비의 재질에 따라 원님의 통치 행태가 어떠했을지는 굳이 묻지 않고도 알 수 있을 것이다. / 그런데도 후세에 글과 글씨가 좋다고 해서 찬사를 듣는다면, 원님과 그의 비위를 맞춰준 원로들의 눈치를 보면서 평생 착취만 당하며 살았던 백성들의 진실은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원님과 원로들
은 자신을 드러낼 미디어인 글과 비석을 독점했기 때문에 스스로를 미화할 수 있었지만 아무것도 없는 백성들은 자신들을 어떻게 했을까? (360쪽)

-아무리 피를 나눈 형제라도 개인은 어디까지나 개인이고 또 환원될 수 없는 타자이다. 이러한 타자들을 ‘기氣’라는 형이상학적 개념으로 개인 간의 경계를 허물고 또 줄기와 가지에 비유하는 방법으로 동일화하면 결국 타자성他者性은 무화無化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서 ‘동同’ 자는 다양한 ‘입’(口)들을 ‘하나’(一)의 이데올로기로 ‘덮어버리는’(?) 무차별적 동일성이 되도록 유혹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지枝’ 자도 그 우측 방인 ‘지支’ 자가 암시하듯이 대나무 하나가 홀로 떨어져 나온 타자인데도 변에 있는 ‘나무’(木) 때문에 ‘가지’라는 주변적이고도 종속적인 위치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통제된다. 이렇게 형제 관계를 ‘기’로 설명하고 또 나무에 비유함으로써 형제는 형이상학적 의미를 과도하게 부여받음과 아울러 밖의 타인들과 명확히 구별된다. 따라서 형제이기 이전에 개인이라는 타자성이 형제 속으로 흡수됨으로써 정체성을 갖지 못한 개인은 형제 밖의 다른 사람과 형제적 관계를 가질 기회가 원초적으로 박탈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382~383쪽)

-그러므로 벗에게 고언을 할 때에는 이 구절의 문자들이 지시하는 바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절차탁마切磋琢磨’가 구슬에 상처를 내지 않도록 극히 조금씩 깎아나가는 과정이듯이, 그리고 벗을 각성시킬 때 상처를 주지 않는 ‘대나무 침’(箴)으로 찌르듯이, 친구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간언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때 벗을 비판하고 또 비판의 근거로 제시하는 규범이라는 것도 ‘신체로 잰 듯한 것’(規)이어야지 자로 잰 듯이 정의로운 것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정의는 용서보다는 심판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399쪽)

-동서양을 막론하고 품위 있는 고전 음악에서는 북이나 징과 같은 타악기는 최대한 억제한다. 왜냐하면 북이란 사람의 감정을 극도로 흥분시키는 악기이기 때문이다. [......] 그러나 아무리 점잖은 연회라 하더라도 흥을 내기 위해 타악기를 쓰고 싶은 것이 사람의 욕망이다. 타악기의 쾌락을 즐기고자 하는 이 무의식적 욕망이 투사된 것이 ‘고슬鼓瑟’이라는 어구로 보인다. 비파를 타는 행위는 ‘탄彈’ 자를 쓰는 것이 보통인데 굳이 ‘고鼓’ 자를 쓴 것은 북이 일으키는 쾌락을 즐기고 싶은 욕망이 이 글자를 통해 의식 위로 올라오고 싶었기 때문이리라. 다시 말해 ‘고슬鼓瑟’은 ‘고鼓’ 자가 비록 ‘북을 두드리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할지라도 목적어가 ‘비파’인 이상 ‘비파를 타다’라는 의미로밖에는 해석할 수 없으므로, 그 동사 자리에 마음 놓고 금기의 ‘고鼓’ 자를 가져다놓을 수 있었다는 말이다. (476~477쪽)

-우리는 이른바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이라는 말을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겨왔지만, 이것도 사실은 중국이 우리에게 결핍을 심어주기 위해 만들어낸 책략적인 말일 뿐이다. 왜냐하면 ‘동방예의지국’이란 우리에게 아무리 훌륭한 문화가 있다 해도 그것은 동쪽 변방에 있는 나라가 중국을 모방했을 뿐이라는 궁극적인 한계를 지정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은 문화의 근본이 될뿐더러 옳고 그름의 기준을 제공한다는 이데올로기가 저절로 만들어진다. (644쪽)

-‘부不’ 자의 자형은 ‘새가 하늘(一)로 날아올라가 내려오지 않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옛날에는 술잔에 날개 장식을 달았는데, 이는 새가 날아다니듯이 쉬지 말고 술잔을 돌리라는 의미였다. 또한 ‘배杯’ 자는 ‘등 배北=背’ 자와 같은 음으로 읽히는데, 이는 술잔은 같이 놓여 있으면 안 되고 항상 서로 등지고 떠나야 한다는 뜻을 나타낸다. 즉 서로의 술잔이 쉬지 않고 각자의 입 쪽으로 날아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827쪽)

-우리에게 ‘밝은 것’이란 밝은 결과를 위해 과정상에서 희생된 ‘어두운 것들’에 의해서 지탱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재벌들의 자랑스러운 고속 성장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저임금과 하청업체 사장들의 눈물이라는 어두움이 지탱하는 것이고, 금메달리스트들의 화려한 국위 선양은 빛도 못 본 채 저변만 받쳐주다 사라져간 무명 선수들의 땀과 눈물로 유지되는 것이다. 태양은 아무리 빛이 강렬해도 밤에까지 영향을 미치려 하지 않을 뿐 아니라, 밤의 어두움에 힘입어 자신의 빛을 지탱하지 않는다. (9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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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여전히 살아 있는 천자문, 어떻게 읽어야 할까? 우리 시대의 눈으로 읽는 천자문, 천자문을 통해 본 우리 시대와 인간 『천자문』이 중국을 만들었다 『천자문은 힘이 세다』는 저자 김근 ...

[출판사서평 더 보기]

여전히 살아 있는 천자문, 어떻게 읽어야 할까?
우리 시대의 눈으로 읽는 천자문, 천자문을 통해 본 우리 시대와 인간

『천자문』이 중국을 만들었다

『천자문은 힘이 세다』는 저자 김근 교수가 2003년에 출간한 『욕망하는 천자문』의 틀을 바탕에 두고 그 내용 중 많은 부분을 새로 써서 펴내는 책이다. 『천자문』과 익숙하지 않은 세대를 위해, 앞선 책의 빈 곳을 메우고 생각을 진전시켜 써낸 새로운 교양서다.
알다시피 『천자문』은 지금부터 1,500여 년 전, 중국 양나라 무제의 명에 따라 주흥사周興嗣가 편찬했다고 알려진 한자 학습서다. 저만큼 오랜 세월 동안 이 책은 중국은 물론이고 우리 사회에서도 최고의 한자 교육 교재였다. 그러나 『천자문』은 단순한 한자 학습 교본을 넘어 중국인들뿐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행동과 무의식을 빚어내고 단단하게 만드는 막중한 역할을 해왔다는 것이 『천자문은 힘이 세다』의 출발점에 자리 잡은 문제의식이다. 책의 머리말에 따르면 『천자문』은 “단순한 아동 독서물이 아니라 그 이상의 가치와 영향력을 가진 명실상부한 고전”이며 “세계와 인생을 읊은 장편 서사시이고, 그 콘텐츠는 중국 고전 작품들을 망라해 다시 쓴 것이어서 동아시아의 전통 사상이 그대로 압축돼 있”(6쪽)는 풍요로운 텍스트다. “이 텍스트가 이제 막 글을 읽기 시작한 학동들에게 주입되다시피 읽혀왔으므로 우리 사회에서도 그 정신적 영향력은 거의 절대적이었다. 우리에게 오래도록 반복되는 행위들이 어디에서 기원하였는지를 알고 싶으면 『천자문』에서 그 답을 대부분 찾을 수 있을 정도”(6~7쪽)라고 저자는 적는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또 『천자문』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그런 역할을 감당했는가. 저자는 『천자문』의 모든 구절을 꼼꼼하고 섬세하게 읽어나가면서 이를 밝혀낸다.
『천자문은 힘이 세다』의 『천자문』 독해는 먼저 여기 등장하는 낱낱의 한자들의 어원과 의미를 자세히 뜯어보는 데서 시작한다. 그 방법 중 하나는 갑골문甲骨文, 금문金文, 소전小篆 같은 고문자古文字의 모양을 통해 해당 한자의 유래를 추적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한자의 발음(또는 字音)에 기대어 그 뜻을 헤아려보는 또 다른 방법도 동원된다. 즉 한자가 지닌 성聲과 운韻(이를테면 ‘동녘 동東’ 자의 ‘dong’이라는 독음에서 ‘d’는 성, ‘ong’는 운에 해당한다)에 주목하여, 어느 한자가 다른 한자들과 맺는 쌍성雙聲 관계(‘동東’과 ‘덕德’처럼 두 글자의 성이 같은 경우)와 첩운疊韻 관계(‘동東’과 ‘홍紅’처럼 두 글자의 운이 같은 경우)를 실마리 삼아 어원과 의미를 찾아내는 방법이다. 아무런 관련이 없는 줄 알았던 한자들이 이 쌍성·첩운의 마법 같은 그물망에 걸려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있음이 드러날 때의 재미, 발견의 기쁨을 독자들은 『천자문은 힘이 세다』를 읽는 동안 놓칠 수 없을 것이다.
그와 같은 그물질을 통해 『천자문』에 담긴 글자와 문장의 의미가 물 바깥으로 떠오르면, 저자는 그것들을 넓은 맥락 안에 펼쳐놓고 들여다본다. 넓은 맥락이란 한자를 탄생시키고 갈고 닦은 중국의 오랜 역사이며, 멀쩡히 푸른 하늘을 『천자문』을 따라 검다고(천지현황天地玄黃, 하늘과 땅은 각각 검고 누르다) 익혀온 우리의 역사이고, 그 둘을 아우르며 넘어서는 보편적인 인간의 삶이다. 이렇게 살필 때 한자가 드러내고 또 숨기고 있는 가치관과 믿음, 편견의 얼개가 노출된다. 저자는 먼저 ‘권력’이라는 렌즈를 들고 그 얼개에 다가간다. 곧, 문자文字가 어느 개인과 집단이 제 필요와 욕망에 따라 세운 규율과 질서를 어떻게 정당화하는지, 다른 한편 그 규율과 질서에 지배당하는 자들을 어떻게 밀어내고 소외시키는지에 초점에 두고 『천자문』을 읽어낸다.
예를 들어 ‘여모정렬女慕貞烈 남효재량男效才良’(여자는 지조가 곧고 굳음을 흠모하고 남자는 재사才士와 현인賢人을 본받는다)이라는 구절을 보자. 저자는 고대 한문에서 문장을 만들 때는 남존여비男尊女卑의 관념에 따라 남자, 또는 남자에 해당하는 단어가 앞에 놓이는 것이 일반적인데도 굳이 ‘여女’를 앞에 둔 점에 눈길을 준다. 정렬, 곧 ‘지조를 지키는 일’에 남녀가 있을 수 없겠지만 그 일은 따로 여성에게 맡겨 앞장세우고, 남자에게는 그 뒤에 가서 ‘재주 있는 선비’(才)와 ‘현명한 인재’(良)를 본받는 일을 할당해주는 이 문장의 짜임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이 구절의 ‘량良’ 자는 앞에 나온 대구들에서 압운押韻해온 ‘방方’·‘상常’·‘상傷’ 등의 글자와 같은 운韻으로 맞춰야 한다는 논리에 따라 여성을 앞의 출구로 보내 ‘정렬’의 의무를 맡게 하고 남성은 뒤의 대구로 피할 수 있는 훌륭한 핑계가 된다”(191쪽). 그러니까 거칠고 어려운 임무는 남에게 넘기고 자신은 우아한 역할과 지식을 독점하는 것을 합리화하는 차별 이데올로기, 부당한 권력의 작동이 여기서 포착되는 것이다.
이러한 예는 물론 여성에 대한 남성, 백성에 대한 임금, 어린아이에 대한 어른, 소수민족들(중국이 보기에는 ‘오랑캐’)에 대한 중국의 우위와 지배를 당연하게 여겼던 봉건 사회의 질서를 반영한다. 그러나 이 구절은 그러한 질서를 지극히 자연스러운 듯이 서술함으로써 그 질서를 사실상 만들어내는 기능을 동시에 수행한다. 이는 곧장 『천자문』 전체에도 해당하는 이야기다. 『천자문』은 해와 달과 별의 움직임에서부터 정치와 경제의 운영, 사람다운 도리와 윤리, 겨자와 생강, 나귀와 노새에 이르기까지 인간을 둘러싼 온갖 사물과 제도와 습속, 즉 세계 전체에 관해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세계는 ‘있는 그대로의 세계’가 아니라 중국의 특정한 가치관과 연루된 문자에 의해 선별적으로 편집된 세계다. 그런데도 그 편집된 세계는 교과서의 형태로 거듭 읽히고 학습되는 가운데 사람들이 묵묵히 수납하고 따라야 할 규범적 세계로 자리 잡는다. 인공적인 것이 ‘자연’으로 올라서는 셈이다. 이렇게 보면, 중국이 『천자문』을 낳았지만 거꾸로 『천자문』이 중국을 만들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천자문은 힘이 세다』가 “사물이란 언어에 의해 창출”(50쪽)된다거나 “고대 중국의 세계는 문자에 의해 축조·유지”(109쪽)되었다고 말하는 이유, 그리고 이 책의 1부에 ‘문자로 다시 만드는 세상’이라는 제목이 붙은 까닭이 여기에 있을 터다.

고전 (거슬러) 읽기의 모범을 보이다

그렇다면 인공 지능의 시대라는 21세기에, 그것도 (저자가 곳곳에서 설득력 있게 이야기하는 대로) 봉건주의의 폐해에 오래 발목을 잡혀온 우리가 남의 나라 옛적 봉건 사회의 교과서를 왜 여전히 기웃거려야 할까. 말할 나위 없이 봉건 시대와 중국의 울타리 안에 갇힌 전언(message)과 가르침이 『천자문』의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전부이기는커녕, 저자에게 『천자문』은 시공간의 제약을 넘어 인간이라는 종족에 대해 무수히 많은 것을 말해주고 생각케 하는 ‘욕망의 텍스트’다. 사람은 왜 권력을 갖고 싶어 하는가? 어째서 그토록 타인에게 인정받는 것을 갈구하고 이름(名)에 집착하는가? 그러면서도 때로는 왜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한적한 곳에 파묻혀 유유자적하기를 고대하는가? 『천자문』이 욕망의 텍스트인 것은 인간의 저 다채롭고 때로는 서로 충돌하는 욕망들을 함축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러하지만, 그 욕망을 통어하고 인도하기 위해 옛 사람들이 궁리해낸 중용中庸, 예禮, 오상五常(사람에게서 흔들려서는 안 되는 다섯 가지 정신적 기둥인 인仁·의義·예禮·지智·신信) 같은 이념적 지침들이 흩뿌려져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천자문』에 담긴 인간적 욕망이 현대를 사는 우리의 욕망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면, 그리고 그 욕망에 대응하려 고안된 윤리적 방책들이 오늘에 와서 쓸모없어졌다고 함부로 말할 수 없다면, 『천자문』을 우리 시대의 문제들과 대결하기 위한 길잡이나 연장으로 활용할 가능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천자문은 힘이 세다』가 공들여 하고 있는 작업이 바로 그것이다. 곧 『천자문』이 던져놓은 화두를 우리 시대의 여건 속에 끌어들이고, 한편으로는 원래의 가르침을 거슬러, 다른 한편으로는 그 맥락을 넓혀서 사유와 성찰을 펼치는 일이다. 예컨대 남의 단점을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망단피단罔談彼短’의 당부를 거슬러 “단점들을 말하는 사이에 우리는 진실을 경험하게 된다”(209쪽)는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이 전자의 경우다. 그런가 하면 과거의 엘리트들이 백성을 불쌍히 여겨 폭군을 토벌했다는 ‘조민벌죄弔民伐罪’의 맥락을 확장해서, 기득권을 버린 채 대중과 함께하려는 지식인들이 대거 사라져버린 우리 사회의 현실을 살핀 뒤 민중이 “스스로 진실과 마주하는 역량을 길러야 한다”(124쪽)고 말하는 데로 나아가는 대목은 후자의 방향을 대변하는 예가 될 것이다. 이러한 작업의 과정에서 돋보이는 것은 『천자문』의 시대와 우리 시대를 연결하고 거기서 솟아나는 쟁점들을 찾아 해석하는 솜씨의 정교함과 생각의 깊이다. 그 점에서 『천자문은 힘이 세다』는 고전에 대한 비판적 독서, 또는 고전의 결(grain)을 거스르고 맥락을 확장하여 그 작품에 새로운 의미를 주는 책읽기의 한 본보기라고 하기에 모자람이 없어 보인다.
그러므로, 『천자문』이 단순한 한자 학습서가 아니었듯이 『천자문은 힘이 세다』는 예사로운 천자문 해설서와 격을 달리한다. 이 책의 장점은 『천자문』에 대한 심층 해석에 그치지 않고 그 책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되는 동양 및 서양 사상의 정수와 만나는 경험을 제공한다는 데서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천자문은 힘이 세다』는 공자, 장자, 맹자, 묵자 등의 사상을 적절한 문맥에서 끌어들이고 그것들을 서구의 현대적 사유(『천자문』을 욕망의 텍스트로 대하는 시각에 걸맞게, 이 책이 자주 참조하는 것은 욕망과 언어의 이론가 자크 라캉의 작업이다)와 순탄히 어우러지게 만드는 흥미로운 사례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런 사상 편력이 현학이나 박식함의 과시로 빠지지 않는 것은 선학들의 생각을 동시대의 사회와 인간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자원 이외의 용도로 쓰려는 욕심이 저자에게 없기 때문이다. 타인들의 생각을 향해 나아가는 길은 언제나 저자 앞의 현실로 돌아오기 위한 길이다. 그 결과 “냉정한 돈의 논리를 숭상하는”(165쪽) 신자유주의가 주도하는 시대의 화사한 외양과 그 뒤에 깔린 어둠을, 치열하되 독단에 흐르지 않고 실사구시적으로 응시하는 한 지식인의 두터운 사유를 담은 책이 우리에게 주어졌다. 학자들이 아닌 일반 독자들을 위해 쓴 책이어서 어렵지 않게 읽힌다. 저자의 중후한 문체 틈새로 문득 모습을 비치는 풍자와 아이러니도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을 더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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