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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독립자금을찾아서
  • 교보손글쓰기대회 전시
  • 손글씨스타
  • 세이브더칠드런
  • 교보인문학석강
  • 손글씨풍경
출신
| | 141*211*35mm
ISBN-10 : 1190492369
ISBN-13 : 9791190492362
출신 중고
저자 사샤 스타니시치 | 역자 권상희 | 출판사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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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 28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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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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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나라에서 나는 태어났다” 2019 독일도서상 수상작
독일문화원 소셜 번역 프로젝트 선정작

현재 가장 성공적인 독일어권 작가로 인정받고 있는 사샤 스타니시치의 2019 독일도서상 수상작 《출신》이 독일문화원의 소셜 번역 프로젝트(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한 한국 중국 인도 이란의 아시아 4개국 동시 번역 프로젝트) 포함, 전 세계 11개국 언어로 번역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에서 제일 먼저 출간됐다. 보스니아 전쟁을 문학적으로 묘사한 첫 장편소설 《군인은 축음기를 어떻게 수리하는가》가 데뷔작 최초로 독일도서상 최종 후보로 선정되고 14년이 흐른 지금, 작가는 중유럽의 정치적 변화가 자신과 가족의 삶에 끼친 영향을 다룬 자전적 소설 《출신》으로 현대 디아스포라 문학의 정점에 올랐다.

“사샤 스타니시치는 뛰어난 스토리텔러다. 이 소설의 모든 문장 이면에는 손에 넣을 수 없는 ‘출신’의 역사가 담겨 있다. 스토리텔링의 동력이기도 한 이 역사는 조각, 픽션, 스토리의 가능성들로 하는 놀이로서만 손에 잡힐 뿐이다. 작가는 위대한 상상력을 독자들에게 선사하며 연대기, 현실주의, 형식적 명료성의 관습들로부터 독자들을 해방해준다. 또한 풍부한 위트로 역사 왜곡가들의 내러티브에 대항해 자신의 스토리를 선사한다. 계속해서 새롭게 이야기되는 현재의 모습을 그려내는, ‘조상들의 영혼이 깃든 자화상’으로서 이 작품은 현대 유럽의 행로를 담은 소설이 된다.” _독일도서상 심사평에서

저자소개

저자 : 사샤 스타니시치
Sasa Stanisic
1978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소도시 비셰그라드에서 태어났다. 1992년 보스니아 전쟁이 일어나자 무슬림인 어머니와 세르비아계인 아버지와 함께 고향을 탈출해 독일 하이델베르크로 이주했다.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에서 독일어와 독일 문학을 공부했고, 2004년에는 독일 문학에 관한 논문으로 독일어가 모국어가 아닌 학생들의 학문적 성취를 기리는 위르겐 프리첸샤프트 상을 받았다.
2006년 첫 장편소설 《군인은 축음기를 어떻게 수리하는가》가 발표되자 독일 평단은 그 언어적 신선함과 문학적 깊이에 뜨거운 반응을 보이며 독일 문학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킨 새로운 자산이라는 평과 함께 스타니시치의 등장을 반겼다. 이 소설은 데뷔작으로서는 최초로 독일도서상 후보에 올랐으며, 지금까지 32개국에서 번역되었다. 2018년 동명 소설을 무대화한 연극이 츠카구치 토모 연출로 한국에서 공연되기도 했다.
2015년 〈슈피겔〉 베스트셀러 《축제 전야(Vor dem Fest)》로 다시 한번 독일문학상 후보에 올랐고, 이 작품으로 라이프치히 도서전 상을 수상했다. 2017년 단편집 《덫을 놓은 자(Fallensteller)》는 라인가우 문학상과 슈바르트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2019년 자전적 장편소설 《출신》으로 독일도서상을 수상하며 독일 문단의 대표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역자 : 권상희
독일 빌레펠트 대학에서 언어학, 독문학, 역사학을 전공하고 석·박사학위를 받고,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정부의 리제-마이트너 포닥 과정에 선정되어 연구와 강의를 했다. 현재 홍익대학교 초빙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옮긴 책에 《타인의 삶》 《과거의 죄: 국가의 죄와 과거청산에 관한 8개의 이야기》 《기린은 왜 목이 길까?》 《머나먼 섬들의 지도: 간 적 없고, 앞으로도 가지 않을 50개의 섬들》 등이 있다.
2018년 TOLEDO 교류기금, 2017년 보슈재단과 베를린 문학 콜로키움의 번역가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통해 번역 활동의 지원을 받았다.

목차

할머니와 소녀 * 9
외국인청에 보내는 편지 * 10
1991년, 축구 경기, 나 그리고 전쟁 * 16
2009년, 오스코루샤 * 25
낯선 곳에서 길을 잃다, 어둑한 불빛 속의 시간 동굴 * 48
축제! * 52
시골집 거실 바닥에서 나는 삐걱거리는 소리 * 59
할머니와 군인 * 73
키우는 양들에게 달리는 법을 가르치는 미로슬라브 스타니시치 * 78
악센트 부호가 등장하는 이름 * 82
미완성 작품 * 88
뗏목꾼은 수영할 줄 알아야 하는가? * 98
할머니와 왈츠 * 109
정의, 충성, 인내 * 119
혼혈 * 126
파시즘의 종말, 민족해방 * 130
할머니와 티토 * 137
신발 상자 속, 서랍 속, 코냑 속에 남아 있는 페로 할아버지의 흔적 * 140
무심해 보이는 무장한 할아버지 * 143
할머니와 결혼반지 * 151
북극에 한 걸음 더 가까이 * 153
그레첸이 묻는다 * 156
어머니는 커피를 마시며 담배 피우는 걸 좋아한다 * 159
하이델베르크 * 165
독일어를 구사하는 브루스 윌리스 * 178
결박된 양손 * 187
매달아라! * 189
1993년, 슈바르츠하이데 * 194
극사실적 그림 * 200
나는 슬로베니아인 * 205
오크들이 몰려오기 이전의 성에서 * 212
나중에 무슨 일을 할 생각이야? * 215
강어귀에 집결한 ‘출신’ * 227
할머니와 리모컨 * 232
하이마트 박사 * 236
미친 짓을 저지르다 * 239
서로 경청하기 * 241
손님들 * 245
말치레(1987년, 손님) * 255
할머니, 그리고 ‘여기서 나가자’ * 259
어린양들 * 262
아랄 문학 * 268
보이테크가 에메르츠그룬트 마을 바닥을 어떻게 포복했는지 들어봤어? * 273
1994년, 사교성 * 276
풀리아주의 루체라에서 온 피에로 * 279
좋지 않은 경기력 * 284
잡동사니 이야기들 * 289
아버지와 뱀 * 297
할머니는 복숭아를 먹으면서 무덤 파는 인부에겐 아무것도 권하지 않는다 * 301
네 머리 위로 생생한 날갯짓 소리가 들려올 것 같다 * 304
할머니의 생신 * 314
청소년 릴레이 경주 대회 * 316
집이라는 곳에 있어본 적이 없는 우리 가족 * 321
무하메드 할아버지와 메즈레마 할머니 * 324
할머니와 칫솔 * 328
기차가 올지도 몰라 * 333
어떻게든 삶은 계속된다 * 340
항상 아무도 없다는 거요 * 346
2018년, 오스코루샤 * 353
양지는 달고 음지는 쓰다 * 360
모든 나날들 * 378
당신은 당신이 기억하길 바라는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 * 380
에필로그 * 388

용의 보물 * 393

감사의 말 * 475
인용 출처 * 476

옮긴이의 말 * 477

책 속으로

이 이야기는 기억이 소멸되는 시점에서, 짧은 시간에 사라져버린 한 마을에서, 망자들의 현존에서 시작되었다._40쪽 내가 아는 사람 중 남아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떠나기로 마음먹었을 때 원래 가려던 곳에 도착한 사람은 몇 안 된다. 어느 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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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기억이 소멸되는 시점에서, 짧은 시간에 사라져버린 한 마을에서, 망자들의 현존에서 시작되었다._40쪽

내가 아는 사람 중 남아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떠나기로 마음먹었을 때 원래 가려던 곳에 도착한 사람은 몇 안 된다. 어느 한 곳에 정착해서 행복해하는 사람도 드물다. 그 사람들은 쉴 새 없이 도망치는데, 때론 그 어떤 무엇으로부터, 때론 실존적 존재로부터 도망친다. 이처럼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건 때론 무거운 짐 같고, 때론 선물 같기도 하다._86쪽

어머니의 몸은 아버지 곁에 있었지만, 그 외 나머지는 자기만의 세계와 공포에, 나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공포에, 그리고 이후 일어날 일에, 작별 후에, 지금 현재에, 미래에 빠져 있었다. (…) 얼마 후, 우리는 살아서 무사히 도시를 빠져나갔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 우리의 삶에서 빠져나왔다._164쪽

우리 모두의 고향은 우연에 의해 탄생한다._166쪽

목적지도 없이, 아직 거리 이름도 강 이름도 모르는 세상을, 우리 이름조차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이리저리 걸어 다녔다. 이곳엔 우리를 이해하는 사람도, 우리가 이해하는 사람도 없었다._167쪽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편견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또 공격적이고 야만스럽고 불법적이지 않은 태도로 사람들을 대하는 법을 배웠다. 알뿌리와 싹, 다른 식물에 붙어사는 식물. 엄밀히 말하자면, 본의 아니게 살고 싶은 곳에서 살 수 없는 우리는 어디에 있든 늘 하던 대로 행동하면서 계몽 의식을 고취시키고 있었다._211쪽

어머니는 사람이 많이 모인 장소에서 처음으로 나를 지켜볼 수 있어서 눈물이 났는지 모른다. 집에 있는 나를, 유고 사람들 사이에 있는 나를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서, 어쩌면 뭐든 할 수 있다는 내 자신감에, 또 그것을 해내고 그 대가로 박수갈채를 받고 있어서, 태어나 처음으로 양복을 입어서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아니면 당연한 일이라곤 별로 없는 우리의 삶에서 이 모든 것이 어떤 의미와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는 게 슬퍼서 그냥 눈물이 났는지 모른다._288쪽

나의 반항은 일종의 적응이었다. 독일에서 이민자로 살아가야 하는 방식에 걸었던 기대에 적응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의식적으로 그 방식을 거부한 것도 아니었다. 나의 반항은 출신의 숭배뿐 아니라 민족적 정체성에 대한 환상을 거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소속감은 지지했다. 나를 원하고 내가 있고 싶은 곳에서는 소속감을 갖고 싶었다._295쪽

전쟁이 끝나고 내가 처음으로 비셰그라드를 방문했을 때, 사람들로 꽉 찬 그 도시는 실업자가 넘쳐나는 절망적이고 공격적인 세상이었다. 나는 옛 고향으로 돌아온 게 아니라, 새로운 곳에 처음 온 듯한 느낌이었다._351쪽

많은 일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 민족의 규범을 고집하는 것도, 달달한 팝콘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또 출신에 지위가 수반되는 점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름을 내걸고 싸움터에 나가 싸울 준비 태세를 갖추고 있다는 점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_3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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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정체성과 기원, 상실과 인간애에 관한 아름답고 가슴 뭉클한 질문과 대답들 소설은 2018년 3월 치매에 걸린 크리스티나 할머니 이야기와 그로부터 10년 전 화자인 나, 사샤 스타니시치가 독일 국적을 취득하기 위해 쓰는 자필 이력서 이야기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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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과 기원, 상실과 인간애에 관한
아름답고 가슴 뭉클한 질문과 대답들

소설은 2018년 3월 치매에 걸린 크리스티나 할머니 이야기와 그로부터 10년 전 화자인 나, 사샤 스타니시치가 독일 국적을 취득하기 위해 쓰는 자필 이력서 이야기로 시작해 2018년 11월 할머니의 장례식으로 끝난다.

아니, 끝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세상을 떠났다. “나냐?” 할머니가 로가티카 요양원에서 숨을 거두기 전에 남긴 마지막 이 말은 자기 자신과 나에게, 그리고 그 누구에게 한 말이 아니었다. (…) 부모님의 아들, 조부모님의 손자, 증조부모님의 증손자, 유고슬라비아의 아들인 나는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우연히 독일로 피난을 왔다. 아버지, 작가, 이야기 속 등장인물, 이 모든 게 나일까? _438쪽

자필 이력서를 쓰면서 시작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 기억을 잃어가는 할머니와 함께 조상들의 마을로 동행하며 묻게 된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질문,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면서 다시 생각하게 된 ‘이 모든 게 나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여정이 이 작품이다.

고향은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야기의 소재죠, 라고 나는 덧붙인다. 할머니, 우리 할머니 크리스티나가 기억을 잃어가기 시작할 때 나는 기억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_86쪽

1992년 14세 때 보스니아 내전을 피해 독일 하이델베르크로 온 난민 출신의 화자에게 ‘출신’이란 “한번 입으면 영원히 입고 있어야 하는 옷 같은 것” “재능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약간의 운이 들어 있는 능력”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완전히 변해버린 고향 비셰그라드에서의 기억들과 사라져가는 조상들의 마을 오스코루샤에서의 이야기들과 새로운 나라 독일 하이델베르크에서의 체험들을 조각조각 수집하고 맞춰가면서 화자는 ‘출신’을 “계속해서 새롭게 이야기되는 현재의 모습”으로 재정의하게 된다.

비셰그라드는 빗속에 서 있는 병원에 대해 어머니가 들려주는 장소고, 술래잡기를 하듯 온 거리를 부산하게 뛰어다는 곳이고, 손가락 사이에 꽂힌 연약한 솔잎이고, 심한 냄새가 나는 할머니 집 계단실이고, 썰매타기고, 학교고, 전쟁이고, 지나간 과거였다, 반대로 독일의 하이델베르크는 도피처고 새 출발을 위한 장소였다. 거긴 불확실한 시절과 사춘기를 보내고 경찰의 검문을 받고 첫사랑을 하고 남이 쓰다 버린 가구를 주워 오고 대학을 다니고, 또 언제부턴가 반항적 자의식에 빠져 “난 할 수 있어!”라고 외쳐대던 곳이었다._84쪽

그리하여 화자에 따르면, 1991년 내전 발발 직전 아버지와 함께 관람했던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팀과 독일 바이에른 팀의 전설적인 축구 경기, 수많은 여름날(할아버지 할머니가 무도회장에서 만난 어느 여름날, 어린 자신이 물에 빠져 죽을 뻔한 어느 여름날, 독일 메르켈 총리가 국경을 개방한 어느 여름날, 어머니와 함께 하이델베르크로 도망쳐 온 어느 여름날), 고학력자였던 부모님이 육체노동을 하고 재활용 쓰레기 가구를 주워 와 살아야 했던 궁핍한 난민 생활, 아랄 주유소 친구들과 전설적인 아랄 문학, 치매에 걸려 기억을 잃어가는 크리스티나 할머니, 우주비행사가 되고 싶어 러시아로 간 자고르카 이모할머니, 공산주의자 페로 할아버지, 콩으로 점을 쳐주는 영화광 네나 외할머니, 열차 제동수 무하메드 외할아버지, 수영을 못하는 드리나강의 뗏목꾼, 마르크스주의 연구자였으나 이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을 착취당하는 강사, 우유를 좋아했던 나치 독일군 장교, 독일의 낭만파 시인 아이헨도르프와 뿔뱀… 때로는 씁쓸하고 슬프게, 때로는 유쾌하고 재미있게 묘사되는 이 모든 에피소드와 사람들이 모두 ‘출신’인 것이다.

시간의 경계를 넘나들며 망각에 맞서 계속해서
새롭게 창조해가는 열린 세계가 곧 출신이자 역사

소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나라에 대한 향수가 흐르는 가운데 때로는 일화적이고 때로는 사색적이다. 머리 셋 달린 용이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잠시 세상에 되돌려주는 일화가 등장하듯 공상적이기도 하다. 작가에게 허구의 글쓰기란 현실을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강들이 말을 하고 증조부모님이 영생하는 세상”을 그리는 등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허구의 세계는 우리의 세계가 아니라 하나의 독특한 세계를 그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 내가 만들어내는 허구의 세계는 창작, 인지, 기억으로 이루어진 열린 체계로, 이 체계는 실제로 일어난 일에 맞닿아 있다고. _28쪽
작가는 세상을 떠난 이들, 지금 여기의 삶에서 사라진 이들, 작별을 고한 이들을 망각에서 건져낸다(“그날 밤에 잊힌 사람은 아무도 없다”). 유고슬라비아의 붕괴와 함께 온 가족이 전 세계로 흩어져 살고(“우린 한 번도 집이라는 곳에 있어본 적이 없잖니”) 있지만, 이제 화자에게 고향이란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야기”로 변화했으며, ‘출신’이라는 것은 하나의 선을 따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고 수많은 길과 지류, 가능성과 비현실성의 가지들로 구성된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결말 또한 읽는 이의 선택에 따라 달라진다(“다음 이야기는 순서대로 읽지 말라!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지 당신이 결정하고, 당신 자신의 모험담을 그려보라”).

“훌륭한 이야기라는 건, 예전 우리 드리나강 같은 걸 두고 하는 말이지. 거칠고 폭이 넓은 강, 끊임없이 흐르는 강물. 그리고 드리나강을 풍성하게 만드는 그 많은 지류와 강가로 밀려드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강물. 드리나강도 많은 이야기도 하나가 될 수 없고, 드리나강에도 많은 이야기에도 후퇴란 것이 있을 수 없지. (…) 내가 바라는 건 결국 우리 모두 목적지에 도착하는 거다.” _448쪽

■ ‘소셜 번역 프로젝트’에 대하여

주한독일문화원 주최로 2017년부터 시작된 ‘소셜 번역 프로젝트Social Translating Project’는 새로운 방식의 문학 번역이다. 아시아 각국의 번역가가 한 편의 독일어 소설을 자국어로 번역하면서 메모, 질문, 동영상을 올릴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에서 만나 의견을 교환하며 작업을 진행한다. 즉, 소설 전문을 작가 및 다른 번역가들과 함께 읽어나가면서 소통하고 토론하며 문제를 해결하고, 이를 통해 작품 속에 숨은 작가의 의도와 작품 내용을 한층 더 정확히 이해하는 과정을 거치므로, 번역의 완성도를 질적으로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이러한 소셜 번역 과정을 거쳐 완성된 번역서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서울 국제도서전 등에서 독자들에게 동시에 소개되고, 작가와 번역가들의 무대가 마련되어 작업 과정에서 발생한 다양한 에피소드를 독자들과 공유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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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중해와 흑해 사이에 있는 발칸 반도는 고대부터 유럽과 아시아 대륙을 연결하는 전략적 요충지다. 이곳에는 종교와 문화가 다양한...

    지중해와 흑해 사이에 있는 발칸 반도는 고대부터 유럽과 아시아 대륙을 연결하는 전략적 요충지다. 이곳에는 종교와 문화가 다양한 민족들이 살고 있는 만큼 갈등이 그치지 않아 유럽의 화약고라 불렸다. 작가가 소설 속에 이야기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수도 사라예보 남서쪽 모스타르에는 오스만제국이 보스니아를 지배할 때 술탄 쉴레이만의 명에 따라 건설한 스타리 모스트다리가 있다. 이 다리 아래 네베르트 강이 흐르고 다리의 양쪽에 이슬람교를 믿는 보스니아와 카톨릭을 믿는 헤르체고비나가 있다. 서로 다른 종교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대홍수, 그들의 문화를 침범하는 새로운 문명과 이방인의 세력, 세계대전에도 다리는 무너지지 않았다. 민족간에도 균열이 생기지 않았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이반 안드리치는 그의 저서 드리나강의 다리에서 다 민족이 서로 공존하고 위기를 극복한 유고의 역사를 건재한 다리를 통해 이야기한다. 또한 이반 안드리치는 서서히 다가오는 도화선인 민족주의의 물결을 걱정한다. 그의 믿음은 지금껏 버텨온 스타리 모스트다리가 자신이 사랑하고 아끼는 나라를 지켜줄 것이라 믿었다. 이반 안드리치는 1975년에 사망한다. 1991년 서로 화합이 불가능한 유고슬라비아는 전쟁의 도가니속으로 빠져가고 스타리 모스트다리는 1993119일 포화속에서 드리나강 밑으로 가라앉는다.

     

    떠나온 자들의 말, 이별, 그리움이 묻어나는 이야기들로 전개된 출신. 작가는 과거의 기억을 회상하며 여든살이며 동시에 11살인 할머니의 기억을 더듬어 잊혀지는 유고슬라비아의 기억를 우리에게 되돌려 주고 있다. 축구를 좋아하고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작가는 극심한 민족주의로 인한 내전과 분쟁속에서 목숨의 위협을 이 나라를 떠나라는 지시를 받는다. 작별 인사 한마디 남기지 못하고 떠나온 자신을,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선생님과 친구들에 대한 미안함을 어렴풋이 기억하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느낀다. 낯선 땅에서 낯선 사람으로 적응하며 살기 위하여 자신의 출신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하이델베르크를 도피처로 삼는다. 다른 나라에서 지식인이 아닌 가혹한 노동자로 살아가는 부모님, 추방 중에 트라우마를 겪게되는 동료, 떠나온 자들의 힘든 사연을 보며 자신의 출신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한 번 입으면 영원히 입고 있어야 하는 옷 같은 거죠 그건 저주에요! 아니면 약간의 운이 들어 있는 능력이랄 수 있어요. 재능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장점과 특권을 만들어내는 능력 말이죠.”

    타민족에 대한 편견과 감당할 수 없는 차별 앞에 떠나온 자들은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고 궁금한 점을 물어보지 않는다. 침착함과 용기가 필요할 것이기에. 그래서 그들은 더 이상 그곳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작가는 할머니와 가브릴로 노인과 함께조상들의 영혼이 깃든 공동묘지를 찾아가 정체성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이야기를 쓴다. 조상과 후손에 얽힌 이야기를. 무덤과 상차리기, 망령의 이야기를. 그 이야기들은 남아있는 자들에게 전달될 것이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의 길은 나를 먼 세계로 이끌었고,

    나는 내 운명을 쫓아갔지,

    내 마음에 너를 품고서

    넌 항상 내게 소중했어,

    내 사랑하는 고향이여,

    유고슬라비아! 유고슬라비아!

     

    내전이 종식되자 스타리 모스트를 복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유네스코와 각국의 지원을 받아 200161일부터 다리의 복원이 시작됐다. 잠수부들은 파괴된 후 강에 수장된 다리의 파편들을 건져 올려 1088개의 석재 파편을 꼼꼼히 재배치했다. 2004723일에 재건되었고 전쟁의 상처를 기억하며 전쟁과 평화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 서로의 고향을 묻는 이유는 단순했다. 적과 아군을 구분하자는 이유, 그것 말고...

    서로의 고향을 묻는 이유는 단순했다. 적과 아군을 구분하자는 이유, 그것 말고는 다른 이유가 없는 듯했다. 대한민국이라는 좁은 땅덩어리에서 영남과 호남으로 대표되는 극한적 대립은 말할 것도 없고, 실재하는 전쟁에 의해 70여 년의 세월 동안 분단국가로 살아온 또 다른 이름의 고향, 남한과 북한. 그리고 실향민이라는 이름의 디아스포라. 어쩌면 그것은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모국에서 살아가면서도 마음속의 모국을 잃어버린, 간절히 가고 싶어도 다시는 갈 수조차 없는, 모국을 떠나온 그 어느 나라의 국민보다 못한, 그야말로 디아스포라가 아니지만 가장 비극적인 디아스포라이기도 한 그 이름은 실향민. 나는 몇 년 전 속초의 아바이마을에서 만난 주름살 가득했던 어느 노인을 생각하며 이 소설을 읽는다.

     

     "복잡한 문제군요! 어디서 왔냐는 말이 암시하는 바가 뭔지부터 따져봐야 해요. 분만실이 위치한 언덕의 지리적인 위치를 암시하는지, 마지막 진통이 시작되는 순간에 머물고 있는 나라의 국경을 암시하는지? 부모님 혈통인지? 유전자, 조상, 방언인지? 어떤 관점에서 보더라도, 출신이 창조물이라는 건 변함이 없어요! 한번 입으면 영원히 입고 있어야 하는 옷 같은 거죠. 그건 저주예요! 아니면 약간의 운이 들어 있는 능력이랄 수 있어요. 재능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장점과 특권을 만들어내는 능력 말이죠." (p.44)

     

    우리는 세계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보스니아 내전을 기억한다. 19924월부터 199512월까지 있었던 유고슬라비아 전쟁 중에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서 일어난 국제적인 무력 충돌 말이다. 치열했던 전투와 무차별적인 도시 폭격, 인종 청소, 집단 강간과 대학살 등으로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던 끔찍했던 전쟁. 소설 <출신>은 그 오래전 기억과 맞닿은 채 현재와 미래가 뒤섞인다. 유고슬라비아 출신이면서 지금은 독일인으로 살고 있는 저자의 현재가 그러한 것처럼. 그리고 장담할 수 없는 미래가 또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는 것처럼.

     

    보스니아 내전이 터졌을 때 작가는 부모님과 함께 독일로 이주했다. 작가는 치매를 앓다가 2년 전 세상을 뜬 자신의 할머니를 회상하며 '우리 할머니 크리스티나가 기억을 잃어가기 시작할 때 나는 기억을 수집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할머니가 서서히 기억을 잃어가던 그 시점에 작가는 난민 신분에서 벗어나 독일 국적을 취득하기 위한 자필 이력서를 쓰면서 자신과 연관된 오래전 기억을 수집해야만 했던 것인데 그것은 어쩌면 잃어버린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는 작업인 동시에 지구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자신의 모국 유고슬라비아에 대한 작은 추도이자 헌사일지도 모른다.

     

    시간의 연속성 위에 드문드문 공란을 남겨둔 채 파편처럼 이어지는 기억. 작가는 전쟁이 발발하자 어머니와 함께 세르비아에서 헝가리로, 크로아티아를 넘어 독일의 하이델베르크로 도피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들을 세르비아 국경까지 무사히 인도한 후 비셰그라드로 돌아갔다. 그렇게 반년 동안 할머니를 돌보셨던 아버지. 그 후 아버지도 독일행을 택했지만 유고슬라비아에서의 신분은 모두 잃었다. 조국 유고슬라비아에서는 정치학자였던 어머니도, 경영학자였던 아버지의 신분도 한낱 과거로 남았을 뿐 독일에서 어머니는 큰 세탁 공장에서 뜨거운 수건에 묻혀 살았고, 독일어를 하지 못했던 아버지는 공사판을 전전할 뿐이었다. 이마저도 불안불안하게 이어오던 부모님은 인종 청소가 자행되는 비셰그라드로의 추방을 염려하여 1998년 미국 플로리다로 이주했다. 그리고 미국 연금 생활자 신분이 된 지금 부모님은 크로아티아에 살고 있다.

     

    작가 역시 독일에서의 삶이 순탄치 않았다. 작가로서의 삶을 끝없이 '증명'해야만 했고, 이방인인 자신으로 인해 토착민인 주변의 독일인들이 불편해하지 않도록 '모든 규칙'을 상기해야만 했다. 그러나 이방인으로서의 부당한 대우와 편견을 통해 가족들은 오히려 사람들을 좀 더 편하게, 부드럽게 대하는 방법을 배웠다. 의도된 것은 아니지만 자신들의 '출신'으로 인해 고단한 삶을 살았지만 자신들과 같은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처지를 십분 이해하게 되었던 셈이다. 그리고 치매를 앓는 할머니로 인해 비셰그라드에서 그녀가 누렸던 행복했던 삶을 기억 속에 저장하게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비셰그라드 출신이라는 이유가 부당한 차별과 불공평한 대우의 시발점이었다면 할머니에게는 행복의 원천이자 지금의 불행을 잊게 하는 행복의 방부제였던 셈이다.

     

    '한 번 입으면 영원히 입고 있어야 하는 옷 같은 것''출신'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의식의 자유로운 흐름처럼 전개되는 소설 속에서 '출신'은 어느새 '계속해서 이야기되는 현재의 모습'으로 바뀐다. 과거에 대한 회상과 주변 인물의 일화가 모여, 그 모든 과거와 현재가 끝없이 소통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출신'이 형성되고, 흐르는 세월과 함께 끝없이 창조된다는 것이다. 속초에서 만난 북한 출신의 어느 노인이 그랬던 것처럼 한 사람의 과거는 오롯이 과거 자체로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내가 쓰는 이야기의 결말 부분에 다음과 같은 문장이 쓰여 있다. '나의 반항은 일종의 적응이었다.' 독일에서 이민자로 살아가야 하는 방식에 걸었던 기대에 적응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의 반항은 출신의 숭배뿐 아니라 민족적 정체성에 대한 환상을 거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소속감은 지지했다. 나를 원하고 내가 있고 싶은 곳에서는 소속감을 갖고 싶었다. 그런 소속감과 함께 우리의 가장 작은 공통분모는 '충분하다'였다." (p.295)

     

    지나온 삶이 한 번 지운 일기장처럼 희미해지는 날이면 나는 아바이마을에서 만났던 어느 노인을 떠올리곤 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공통분모로 그와 나의 희미한 기억들이 위치도 정해지지 않은 이 땅의 어느 곳 한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그저 든든해지곤 했다. 나의 기억이 그에게도 닿아 나처럼 든든했으면 하는 바람이 없지 않았다. 할머니의 행복했던 기억이 작가에게 든든했던 것처럼.

  • 출신 | ae**rmo | 2020.03.30 | 5점 만점에 2점 | 추천:0
     우리는 모두 어디에서 왔을까?  나 역시도 지금까지 무수한 사람들에게 고향과 출신에 대한 질문을 받았는데...

     우리는 모두 어디에서 왔을까?

     나 역시도 지금까지 무수한 사람들에게 고향과 출신에 대한 질문을 받았는데그때마다 내가 듣기에도 애매모호한 답변을 해왔었다어려서부터 일찍이 독립을 한 뒤 잦은 이사를 다녔던 나로서는 늘 고향에 대한 의문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것을 뿌리라고 말하기엔 깊이가 없었고 그리움과 소속감이 한없이 얕았다.

     소설 출신은 다소 낯선 인칭 변화로 내겐 사뭇 어색하게 읽혔다. 초반엔 갈피를 잃었고 후반은 의아해서 여러 번을 다시 읽어본 후에야 이내 타협점을 찾고 일부분 수긍할 수 있었다.

     사샤와 가족들은 나라를 그리고 고향을 잃었다. 다신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이 상실감을 내가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그들의 추억이 담긴 장소의 부재로부터 오는 그리움의 크기를 과연 가늠할 수 있을까?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나라의 국민, 생존을 위해 세계 각국으로 뿔뿔이 흩어져 살아가는 사람들. 최근까지도 세계적인 이슈가 되는 난민 문제가 이 소설을 통해서 새삼 피부에 와닿았다.

     그들은 이방인을 바라보는 차가운 시선을 견뎌가며 타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각자의 방법으로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어느 곳도 고향과 같은 따스함은 없고 언제 다른 곳으로 추방당할지 모르는 불안감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사샤의 부모도 고향에선 꽤나 인정받는 지식인들이지만 나라를 잃은 후엔 고된 노동이 아니면 살아나갈 수 없다는 현실을 금세 받아들인다. 그렇게 자식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고 희생하는 모습에 속이 상했고 그 책임감의 무게를 짐작할 수 없어 더욱 안타까웠다.

     현재 우리는 저마다의 이유를 가지고 고향을 떠나와 타지에서 혹은 타국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이방인들에겐 크나큰 위안이 된다.

     Home, 고향이라는 곳이 주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끈끈한 유대의 의미. 비셰그라드 사람들에게 마음이 가득 실린 위로를 보내고 싶은 짙고 어두운 밤이다.

  • 출신 | sh**sc21c | 2020.03.29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

     

    우리를 이곳저곳으로 이끈 달콤쌉쌀한 우연들이 출신이다.(p.89)

     

    사람들과 아무 상관 없는 소속감이 곧 출신이다.(p.89)

     

    어디 출신이든 잘못된 출신은 없었다.(p.133)

     독일도서상 2019 수상작 <출신>을 만나보았다. 보스니아 출신 작가 사샤 스타니시치의 자전적 소설이다. 유고연방의 해체와 함께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조국을 탈출한 난민 가족이 독일에 정착하기까지의 아픔과 고난을 고스란히 볼 수 있다. 작가 사샤 스타니시치의 자전적 이야기와 함께 작가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허구의 이야기가 조화를 이루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난민으로서, 소수민족으로서 겪어야 했던 아픔과 슬픔을 담백하게 풀어가고 있다.

     

    그런데 소설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어둡지 않다. 아마도 치매에 걸려 아픈 과거를 조금씩 상실해가는 크리스티나 할머니의 유쾌한 일상이 위트 있게 그려진 까닭인듯하다. 이 이야기는 기억이 소멸되는 시점에서, 짧은 시간에 사라져버린 한마을에서, 망자들의 현존에서 시작되었다.(p.40) 소설은 주인공 사샤가 어느 순간 크리스티나 할머니의 기억 속에서 잊고 지내던 자신의 '출신'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씩 찾아가면서 시작한다. 조부모와 외조부모 그리고 증조부모까지 자신의 기억 속에 없는 이야기들을 크리스티나 할머니를 통해서 접근한다. 하지만 문제는 조금씩 심해지는 할머니의 치매다. 그래서 이야기가 진실인지 허구인지 알 수 없다. 그 점이 이 소설을 더 재미나게 접할 수 있게 하는 것 같다.

     

    사샤는 독일에서 작가의 길을 걷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남보다 더 치열한 삶을 살려니 자연스럽게 가족에 신경 쓰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잊고 지내던 어린 시절 부모님의 희생에 대한, 고생에 대한 고마움을 크리스티나 할머니와의 과거 여행에서 되찾게 된다. 자신의 조국에서는 대학 교육까지 받은 엘리트였지만 독일에서는 노동자의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부모님에 대한 고마움은 자신의 '출신'에 대한 생각을 더 깊게 만든다. 사샤 자신의 경험담과 자신의 조상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낸다. 소설이라기보다는 편안한 자전적 에세이를 보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과거와 현재를 수시로 오가는 까닭에 긴장감은 잠시도 놓을 수 없었다. 편안함 속에 묘한 긴장감이 숨어있다.

     

    유고 연방의 해체 과정에서 인종, 종교 간의 대립이 격화되어 내전으로 이어지고 결국 많은 아픔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 소설은 그 중심에 있었던 한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서 시대적인 아픔과 사회적인 고통을 보여주고 있다. 사샤가 자신의 '출신'을 알아가는 동안 할머니는 조금씩 자신의 '출신'을 잃어버린다. 사샤의 이야기가 주된 이야기지만 다른 이들의 이야기도 들려주고 있어서 한 편의 소설이 아니라 여러 편의 소설을 만나 본 듯한 느낌을 준다. 겪어보지 못한 난민이라는 '출신'의 아픔과 슬픔을 간접적으로 접할 수 있는 감동적인 책이다.

     

    잔잔한 흐름의 끝에 또 다른 이야기「용의 보물」이 등장한다. 그런데 또 다른 이야기는 아니다. 이 소설의 결말을 다양한 버전으로 만날 수 있는 재미난 '선택'이다. 크리스티나 할머니와의 만남이 아쉬워서 였을까? 작가 사샤는 주인공 사샤와 함께 독자가 결말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내가 사샤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그 선택에 따라 정말 다양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 우연한 선택도 작가가 말하는 '출신'일듯싶다. 우연한 선택이 만들어내는 흥미로운 '출신'을 만나보기 바란다.

  •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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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나라 유고슬라비아에서 태어난 작가 사샤 스타니시치의 자전적 소설. 열네 살 때 전쟁을 피해 독일 하이델베르크로 이주한 작가는 현재 가장 성공적인 독일어권 작가로 인정받고 있다고 한다. 그는 이 작품으로 2019년 독일 최고의 문학상인 독일도서상을 수상했다.

     

    나의 가족은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살고 있다. 유고슬라비아와 함께 나의 가족도 갈기갈기 찢겨져 이제 하나가 될 수 없다. 내가 출신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이러한 이질적인 것과도 관련이 있다.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장소를 결정하는 데에도, 가족이 있는 곳에 결코 함께 살지 못하는 데에도 이 이질성이 오랜 세월 영향을 끼쳤다. (88)

     

       유고슬라비아는 유럽 동남쪽 발칸반도 서부에 있었던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이다. 1945년 성립되었던 유고슬라비아는 1990년대부터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마케도니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세르비아, 몬테네그로로 분리 독립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소설은 서른 살이 된 화자인 나, 사샤 스타니시치가 독일 국적을 취득하기 위해 외국인청에 낼 자필 이력서를 쓰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는 조각난 유고슬라비아처럼 뿔뿔이 흩어진 과거의 기억들을 그러모아 자신이 살아온 이력을 정리하려 애쓴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떠올리게 된 그는 그 해답을 찾기 위한 긴 고민을 시작하게 된다.

     

    근데 이 모든 것이 내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증조부님의 우물물을 마셔본 나는 독일어로 그 우물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우물물은 내가 짊어질 필요 없는, 이 산이 떠안고 있는 같은 맛이 났다. 또 어떤 것이 어떤 사람의 소유라는 주장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같은 맛도 났다. 아니, 그렇지 않다. 차가운 우물물은 물맛이 났을 뿐이다. (47)

     

       출신이란 과연 무엇일까? 태어난 장소? 조상에게 물려받은 혈통? 언어를 배우고 성장한 나라? 많은 사람들이 별 생각 없이 남들에게 어디 출신이냐는 질문을 한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리 간단하게 대답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출신에 대해 고민하면 할수록, 화자의 머릿속은 점점 혼란에 빠진다. 그는 심란한 마음을 안고 증조부님이 살던 마을 오스코루샤에 찾아간다. 그는 거기서 자신의 근원을 느껴보려 하지만, 평범한 물맛이 나는 우물물처럼 특별할 것 없는 감상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오스코루샤가 그에게 별 감흥을 주지 못한 것처럼, 비셰그라드도 마찬가지였다. 그곳은 그가 유년 시절을 보낸 곳이지만 이제는 완전히 변해버렸다. 그는 결국 조상들의 땅에서도, 떠나온 고향에서도, 새 출발을 한 독일에서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다.

     

    나의 반항은 출신의 숭배 뿐 아니라 민족적 정체성에 대한 환상을 거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소속감은 지지했다. 나를 원하고 내가 있고 싶은 곳에서는 소속감을 갖고 싶었다. (295)

     

       화자는 자신에게 소속감을 주는 것은 특정 장소가 아니라 그의 삶을 함께해온 사람들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 친구들, 친척들……. 그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삶에 엮여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에피소드 형식으로 풀어놓는다. 정치학자였던 어머니가 어쩌다 세탁 공장에서 일하게 되었는지부터 경영학자였던 아버지가 공사판에서 일하게 된 사연, 배우였던 외삼촌이 신문배달부를 거쳐 어릿광대가 된 사연, 우주비행사가 되고 싶었던 이모할머니가 염소 한 마리만 데리고서 마을을 떠나 소비에트연방의 첫 우주비행사로 선발되기까지의 이야기 등 시공간을 넘나드는 파란만장한 인생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우리를 이곳저곳으로 이끈 달콤쌉쌀한 우연들이 곧 출신이다. (89)

     

       화자는 그 모든 에피소드들과 사람들이, 그들과 자신의 인생을 이곳저곳으로 이끈 모든 우연과 사건들이 전부 자신의 출신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는 출신이라는 것이 하나의 정해진 선을 따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알아낼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닌, 쉼 없이 갈라지고 뻗어나가는 인생의 경로와 가능성들로 매순간 새롭게 구성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낸다. 소설의 마지막 챕터는 그 길이도 내용도 읽는 이의 선택에 따라 매번 달라지도록 되어 있다. 얼마 남지 않은 페이지를 앞뒤로 이리저리 넘기다가 을 본 순간, 작가가 재정의한 출신의 의미를 마음깊이 짐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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