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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운 마음(양장본 HardCover)
192쪽 | 양장
ISBN-10 : 1196595232
ISBN-13 : 9791196595234
고마운 마음(양장본 HardCover) [양장] 중고
저자 델핀 드 비강 | 역자 윤석헌 | 출판사 레모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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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 19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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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시리즈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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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세계대전 당시 유대인인 자신을 숨겨준 부부.
하지만 그들을 찾을 수가 없다…!
과연 미쉬카 할머니는 그들을 만나 고마운 마음을 전할 수 있을까? 델핀 드 비강은 픽션의 힘을 이용해 현대 사회를 관통하는 주제들에 대해 강렬한 메시지를 전하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소설가이다. 『고마운 마음』은 작가가 삼부작으로 기획한 인간관계에 대한 짧은 소설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이다. 2019년 3월 프랑스에서 출간된 이후 25만 부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델핀 드 비강의 인기를 다시금 확인시켜 주었다. 전작인 『충실한 마음』이 상처 입은 열두 살 아이를 중심으로 몇몇 인물을 통해 ‘충실함’의 다양한 모습을 조명했다면, 『고마운 마음』은 실어증으로 고통받는 팔십 대 노인의 마지막을 되돌아보며 ‘고마움’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실어증으로 고통받는 미쉬카 할머니를 중심으로 마리와 제롬이라는 두 젊은이의 대화와 독백으로 이루어진 소설이다. 어린 시절 조울증을 겪는 엄마 때문에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했던 마리는 이웃에 살던 미쉬카 할머니의 호의로 그 시절을 살아낼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후에 사고로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미쉬카 할머니는 마리의 옆을 지켰다. 어느새 세월은 두 사람의 관계를 뒤바꿔 놓았다. 이제는 마리의 보살핌을 필요로 하게 된 미쉬카 할머니는 마리에게 병원에 자주 찾아오지 말라고 말하지만, 마리는 할머니에게 느꼈던 고마운 마음을 저버릴 수가 없는데….

저자소개

저자 : 델핀 드 비강
1966년 파리 근교 불로뉴 비앙쿠르에서 태어났다. 프랑스 현대 문단을 대표하는 소설가로, 몇 편의 시나리오를 쓰고 직접 영화를 감독하기도 했다. 여론조사 기관에서 마케팅 담당으로 일하며 2001년 루 델비그(Lou Delvig)라는 필명으로 거식증 체험을 담은 자전적 소설 『배고픔 없는 날들 Jours sans faim』로 데뷔했다. 이후 2005년 『귀여운 남자들 Les jolis gar?ons』을 실명으로 발표하며 작가로서의 입지를 다져나가다가, 2007년 발표한 『길 위의 소녀 No et moi』가 프랑스를 비롯한 전 세계에서 성공을 거두며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선다. 2011년 어머니의 자살을 목격하고 써 내려간 자전적 소설 『내 어머니의 모든 것 Rien ne s'oppose ? la nuit』으로 문학성과 대중성을 획득하며 동시대 프랑스 최고 작가 대열에 합류하고, 2015년에는 『실화를 바탕으로 D'apr?s une histoire vraie』로 르노도상을 수상하며 문단의 확고한 지지를 얻게 된다. 2018년에는 『충실한 마음Les loyaut?s』을, 그리고 2019년에는 『고마운 마음Les gratitudes』을 발표하며 인간관계에 대한 짧은 소설을 매년 한 편씩 출간하고 있다. 총 열권의 소설로 프랑스 내에서만 30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으며, 전 세계 40여 개국에 번역 출간되었다.

역자 : 윤석헌
한국외국어대학교 불어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불문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파리 8 대학에서 조르주 페렉 연구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옮긴 책으로는 호르헤 셈프룬의 『잘 가거라, 찬란한 빛이여...』, 크리스텔 다보스의 『거울로 드나드는 여자』, 아니 에르노의 『사건』, 델핀 드 비강의 『충실한 마음』, 조르주 페렉의 『용병대장』 (근간), 앙드레 지드의 『팔뤼드』 (근간) 등이 있다.

목차

한국의 독자들에게 5
고마운 마음 15
옮긴이의 말 184

책 속으로

첫 문장 - 하루에 몇 번이나 고맙다고 말하는지 한 번쯤 생각해본 적 있나요? 살면서 몇 번이나 진정으로 ‘고마워요’라고 말했는지 한 번쯤 생각해본 적 있나요? 마음에서 우러나온 고마움을. 감사와 사의 그리고 은혜를 말로 표현했는지. (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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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문장 - 하루에 몇 번이나 고맙다고 말하는지 한 번쯤 생각해본 적 있나요?

살면서 몇 번이나 진정으로 ‘고마워요’라고 말했는지 한 번쯤 생각해본 적 있나요? 마음에서 우러나온 고마움을. 감사와 사의 그리고 은혜를 말로 표현했는지. (16)

몇 분이 지나 누군가 간식을 가지고 들어온다. 조그만 빨대가 달린 조그만 사과 주스, 그리고 조그만 비닐에 싸인 조그만 빵. 아이들 놀이방의 것과 똑같다. 이런 것들이 할머니를 기다리고 있어요, 미쉬카 할머니. 짧은 보폭, 깜박 졸기, 조그만 간식거리들, 짧은 외출들, 짧은 방
문들. 작아지고 축소되었지만, 완벽하게 규정된 삶. (40)

‘아니, 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하지? 정말 우리 모두를 기다리는
게 이런 걸까? 한 명도 예외 없이? 재앙을 피할 수 있는 우회로나 갈림길, 혹은 샛길 같은 것이 없을까?’ (49)

나는 그들 목소리의 떨림을 정말 좋아한다. 그 허약함. 그온화함. 그들의 뒤바뀐 말들, 막연한 말들, 방황하는 말들, 그리고 침묵을 정말 좋아한다. (50)

미쉬카 할머니, 저는 두려워요…… 제가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제가 아이를 가질 수 있을지 말이에요. 끝까지 해낼 수 없을까 무서워요. 제가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게, 아니면 제
의지와 상관없이 무언가가 만들어지는 게 두려워요. 저주나 운명같이, 어둠 속에, 추억 속에, 핏속에, 세계의 역사 속에 무언가가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이요, 그것에 맞서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언가 말이에요. 무슨 말인지 아세요? 그리고 제게 충분한 사랑과 인내, 관심이 있을까요? 제가 아이를 키우고, 아이를 안아주고, 아이를 돌볼 수 있을지 어떻게 알겠어요? 제가 아이에게 말을 할 수 있을지, 중요한 것들을 알려줄 수 있을지, 커다란 미끄럼틀에 올라가고, 혼자서 길을 건너게 둘 수 있을지요, 그리고 아이가 필요할 때 제가 손을 내밀 수 있을까요? 해야만 하는 것을 저는 어떻게 알게 될까요? 아이를 사랑하지 않을까봐, 아이를 너무 사랑할까봐, 제가 아이를 아프게 할까봐, 아이가 저를 사랑하지 않을까봐 두려워요.” (84-85)

“처음으로 다른 누군가를 관심을 가지고 보살폈어. 나 말고 다른 사람 말이야. 그게 모든 것을 바꾸더라, 알겠니, 마리야. 다른 사람 때문에 두려울 수 있어,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 때문에. 그래도 그건 정말 큰 행운이란다.” (89)

미쉬카 할머니를 만나러 갈 때면, 나는 그곳 사람들을 관찰한다. 아주 나이 든 사람들, 중간쯤 나이 든 사람들, 많이 나이 들지 않은 사람들. 가끔 그들에게 묻고 싶어진다. 아직도 누군가와 포옹을 하세요? 누군가 당신을 두 팔로 안아주나요? 언제부터 다른 사람의 피부가 당신의 피부 속으로 들어오는 접촉을 하지 않았나요?
늙음, 내가 정말 늙을 때를 상상하면, 40년 혹은 50년 후 내 모습을 떠올려보려 하면, 가장 고통스럽고, 가장 참기 힘든 생각은 누구도 나를 가까이 하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신체적인
접촉이 조금씩 혹은 갑작스럽게 사그라드는 것. 어쩌면 욕구도 더는 똑같지 않을지도, 오랫동안 굶었을 때처럼 육체는 쪼그라들고, 오그라들고, 마비될지도. 그렇지 않으면 배고픔을 호소할 때와는 반대로, 그 누구도 듣고 싶어 하지 않을 것 같아 소리 없이 참을 수 없는 비명을 내지를지도. (103)

내가 졌다. 나는 그 사실을 안다. 나는 이렇게 상황이 확 달라지는 지점을 안다. 그 원인은 모르지만, 결과만은 가늠한다. 싸움에서 졌다. 그렇지만 포기해서는 안 된다. 절대 그럴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더더욱 나빠질 것이다. 끝없이 추락할 것이다. 싸워야만 한다. 단어 하나 하나. 필사적으로. 아무것도 양보해서는 안 된다. 자음 하나, 모음 하나도. 언어가 없다면, 과연 무엇이 남을까? (114-115)

나는 언어치료사다. 말과 침묵, 말해지지 않은 것들과 일한다. 수치심과 비밀, 회한과 일한다. 부재와 사라진 기억들, 그리고 이름, 이미지, 향기를 거쳐 되돌아온 기억들과 일한다. 나는
어제와 오늘의 고통과 일한다. 속내 이야기들과. 그리고 죽는다는 두려움과 함께. 이런 것들이 내가 다루는 일이다. (126)

그런데 계속 나를 놀라게 하는 것, 심지어 경악하게 하는 것, 때로는 숨이 멎을 정도로 놀라게 하는 것 ─ 십 년도 넘게 이 일을 한 지금도 여전히 ─ 은 바로 어린 시절 고통이 지속된다는 점이다. 세월이 흘렀음에도 생생하게 타오르는 흔적. 그것은 지워지지 않는다. (126)

나이가 든다는 것은 잃어버릴 줄 아는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매주, 아니 거의 매주 새로운 손실과 손상, 손해를 입는 것이다. 이게 내가 이해한 바이다. 그리고 이득이 되는 것을 적는 칸에는 이제 아무것도 실려있지 않다. (...) 아침에 안 되는 것은 저녁에도 안 되고, 아예 되지 않는다. 끝없이 익숙해진다. (...) 영원히 가지리라 생각했던 것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새로운 조건에 맞추는 것이다. 새로이 조직하는 것이다. 없이 하는 것이다. 고집을 부리는 것이다. 잃어버릴 것이 이젠 하나도 없는 것이다. (144)

때로는 상실이 남긴 허무를 책임져야만 한다. (148)

그런데 아시잖아요, 말들은 상처를 입혀요. 욕설, 모욕, 빈정거림, 비난, 질책은 흔적으로 남아요. 지워지지 않아요. 뭐든 판단하려 들고, 약점만 찾던 시선. 협박. 이런 것들은 상처를 남긴다고요, 정말로요. 그러고 나면 저 자신에게 신뢰를 가지기가 어려워요.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가 힘들어요. (173)

“미리 알아야만 한다고요. 사람들이 죽을 때에요. 그게 그들의 선택이든 아니든요, 상관없어요. 어쨌든 그건 그 사람들 문제고요. 편지든, 경고장이든, 문자메시지든, 음성메시지든, 이메일이든 뭐든 받아야만 한다고요.” (177)
“맞아요, 결국엔 고통스럽다고요. 매번 우리는 무언가를 말할 수 있는 시간이 있을 거라 생각해요. 그런데 갑자기 너무 늦어버리죠. 보여주기만 하면, 과장스러운 몸짓만으로도 충분할 거라 생각해요. 그런데 사실은 아니에요, 말을 해야만 해요. 할머니가 그토록 좋아하시던 단어로. 말을 해야 해요. 중요한 것은, 말이라고요.” (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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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현대인의 고독과 상처를 보듬는 작가 델핀 드 비강의 ‘인간관계에 대한 짧은 소설’ 시리즈 그 두 번째 이야기 2019년 3월 출간 이후 25만 부 판매 현재 프랑스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 델핀 드 비강은 데뷔작인 『배고픔 없는 날들』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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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의 고독과 상처를 보듬는 작가
델핀 드 비강의 ‘인간관계에 대한 짧은 소설’ 시리즈 그 두 번째 이야기

2019년 3월 출간 이후 25만 부 판매

현재 프랑스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 델핀 드 비강은 데뷔작인 『배고픔 없는 날들』부터 ‘인간관계에 대한 짧은 소설’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현대 사회의 문제들, 특히 연약하고 고독한 현대인들의 모습을 작품 속에 조명하고 있다. 작가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품고 있는 고독과 상처를 예리하게 들추어 그대로 독자들에게 보여주면서도, 그 시선은 따뜻함을 잃지 않는다. 주변인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따뜻하고 예리한 시선은 프랑스 사회를 넘어 전 세계의 공감을 이끌어내며 40여 개국에 번역 출간되었다.

“분명 우리 안에 있고, 때로는 우리를 지배하기도 하지만,
제대로 자각하지 못하는 마음에 대해 고민해 왔어요.”

2018년부터 매년 한 편씩 발표하는 ‘인간관계에 대한 짧은 소설’ 시리즈는 이러한 작가의 세계관이 집약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한 인터뷰에서 작가는 삼부작을 기획한 계기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저는 분명하게 우리 안에 있고, 때로는 우리를 지배하기도 하지만, 제대로 자각하지 못하는 마음에 대해 고민해 왔어요.” 그 마음은 사람과 사람을 잇는 보이지 않는 끈이 된다. 델핀 드 비강은 복잡하지만 고독한 현대 사회에 촘촘하게 엮여 있는 그 끈들을 꺼내 보여준다.
첫 번째 소설 『충실한 마음』에서는 상처 입은 열두 살 아이를 중심으로 가정폭력이나 정서적 아동학대와 같은 묵직한 주제를 들춰낸다. 두 번째 소설 『고마운 마음』은 요양병원에서 고독하게 삶의 최후를 기다리는 노인을 중심에 내세운다. 첫 번째 소설이 가족 구성원 간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며 독자에게 삶을 돌아볼 수 있게 이끌어주었다면, 두 번째 소설에서는 나이 듦, 늙음이라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고마운 마음이란, 타인에게 빚지고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그 빚을 소중한 관계의 형태로 여기는 것입니다.”

『고마운 마음』은 실어증으로 고통받는 미쉬카 할머니를 중심으로 마리와 제롬이라는 두 젊은이의 대화와 독백으로 이루어진 소설이다. 삶의 마지막 순간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독자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소설이리라 속단할 수도 있겠지만, 『고마운 마음』은 세 명의 인물들 주변을 내내 맴도는 애정과 연민 덕분에 슬프지만은 않다. 프랑스 주요 언론들이 하나같이 『고마운 마음』을 ‘눈이 부시게 아름답다’라고 평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매력 때문일 것이다. 델핀 드 비강은 명석하고 집요하게, 삶의 마지막 순간의 억눌리고 우울한 세상을 정확하게 선택한 단어들로 표현한다.

어린 시절 조울증을 겪는 엄마 때문에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했던 마리는 이웃에 살던 미쉬카 할머니의 호의로 그 시절을 살아낼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후에 사고로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미쉬카 할머니는 마리의 옆을 지켰다. 어느새 세월은 두 사람의 관계를 뒤바꿔 놓았다. 이제는 마리의 보살핌을 필요로 하게 된 미쉬카 할머니는 마리에게 병원에 자주 찾아오지 말라고 말하지만, 마리는 할머니에게 느꼈던 고마운 마음을 저버릴 수가 없다. 그리고 인내와 헌신, 선의를 품고 있는 제롬이 있다. 요양병원에서 만난 언어치료사 제롬은 미쉬카 할머니의 실어증을 최대한 늦춰보려 애쓴다. 그러나 좋아질 수 없음을 인지한 미쉬카 할머니는 언어치료보다는 제롬과 사적인 대화를 이어가기만을 바란다. 그리고 제롬이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받았던 상처를 어떻게든 보듬어보려 한다.

한편 미쉬카 할머니에게는 죽기 전에 꼭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2차 대전 당시 유대인인 자신을 숨겨주고 3년이란 시간 동안 아무런 대가 없이 돌봐준 부부를 찾아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그런데 그 사람들의 이름만 겨우 알 뿐, 알고 있는 정보가 너무 없다. 마리를 통해 신문에 광고를 해보지만, 그들의 생사조차 확인하기 힘들다. 미쉬카 할머니는 그들을 만나 고마운 마음을 전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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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

회원리뷰

  •     그러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바로 그 가을날이 왔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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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바로 그 가을날이 왔다.

    그전에는 괜찮았다. 그 이후에는 더 이상 괜찮지 않았다.

     

    미쉬카 할머니는 예전 신문사에서 교정 교열을 보았다.

    단어는 그녀의 생활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더 이상 단어들이 떠오르지 않았다.

    말이 멈추고,

    발이 멈추고,

    생각이 멈추고,

    마음이 멈춘다.

     

    모르겠어요. 그런데 느껴져요. 빠져나가는 게.... 빠져나가요.

     

     

    그녀가 그토록 오랫동안 다루었던 단어들이 그녀를 빠져 나가고 있었다.

    적절한 말을 찾지 못하고, 비슷한 발음으로 대체 되고, 어떤 것은 도저히 떠올리지 못하는 시간들.

    상실의 시간이 이런 걸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술술 빠져나가고 있는 내가 가진 가장 큰 무엇.

    남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는 단어들.

    나이 들어서 얻을 수 있는 당연한 것들.

    그래서 미쉬카는 악몽을 꾼다.

     

    이런 것들이 할머니를 기다리고 있어요, 미쉬카 할머니. 짧은 보폭, 깜박 졸기, 조그만 간식거리들, 짧은 외출들, 짧은 방문들.

    작아지고 축소되었지만, 완벽하게 규정된 삶.

     

     

    요양원에 보내진 미쉬카에겐 마리가 있다.

    결혼도 안하고 아이도 없었던 미쉬카 곁에 이웃집 소녀였던 마리가 있었다.

    어린아이에게 편안한 안식처가 되어 주었던 미쉬카.

    너무 일찍 상실의 아픔을 맛보고 있던 마리에게 그녀는 곁을 내어 주었다.

    예전에 누군가가 미쉬카에게 그랬던 것처럼.

     

    선행은 세대를 건너서도 이어진다.

    미쉬카에서 마리에게로.

    미쉬카는 점점 빠져나가는 말과 생명 사이로 오래전의 사람들을 찾는다.

    나치의 손아귀에서 자신을 맡아 주었던 젊은 부부. 그 부부에게 미쉬카는 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나는 언어치료사다. 말과 침묵, 말해지지 않은 것들과 일한다. 수치심과 비밀, 회한과 일한다. 부재와 사라진 기억들, 그리고 이름, 이미지, 향기를 거쳐 되돌아온 기억들과 일한다. 나는 어제와 오늘의 고통과 일한다. 속내 이야기들과.

    그리고 죽는다는 두려움과 함께.

    이런 것들이 내가 다루는 일이다.

     

     

    제롬은 언어치료사다.

    요양병원에서 일하는 걸 천직으로 여긴다.

    말을 잃어가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주고, 그 말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다.

    그들의 말을 그는 녹음한다.

    그들이 가고 나도 그 말들은 그에게 남아 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잃어버릴 줄 아는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매주, 아니 거의 매일 새로운 손실과 손상, 손해를 입는 것이다. 이게 내가 이해한 바이다.

    그리고 이득이 되는 것을 적는 칸에는 이제 아무것도 실려있지 않다.

     

     

    요양원에서 이루어지는 미쉬카와 제롬의 만남.

    미쉬카와 마리의 만남.

    그리고 미쉬카의 꿈.

     

    짧지만 응축된 감정들이 행간 사이사이를 꽉 채우고 있다.

    미쉬카, 제롬, 마리 사이를 오고 가며 이야기가 끝났을 때 감정이 꽉 차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에 대해 맹렬하게 생각하고 있는 나 자신을 깨닫게 된다.

     

    완벽하지 않은 세 사람은 그 완벽하지 않음으로 서로에게 의지처가 된다.

    서로를 품고 가게 되는 마음들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계속 나를 놀라게 하는 것, 심지어 경악하게 하는 것, 때로는 숨이 멎을 정도로 놀라게 하는 것 - 십 년도 넘게 이 일을 한 지금도 여전히 - 은 바로 어린 시절 고통이 지속된다는 점이다. 세월이 흘렀음에도 생생하게 타오르는 흔적. 그것은 지워지지 않는다.

     

     

    노인들의 모습에서 그들의 젊은 시절을 유추해보면서도 제롬은 그들이 어릴 때 입은 상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걸 깨닫는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어른으로 살아가면서도, 노인이 되었음에도 어린 시절의 상처는 되돌아오는 부메랑 같다.

    제롬 역시도 그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책을 읽기 전에는 단순히 말에 대한 고마움을 이야기하는 걸로 생각했다.

    공기처럼 늘 곁에 있어서 그 고마움을 깨닫지 못하는 말.

    전작 [충실한 마음]처럼 이 고마운 마음 역시 읽고 나서도 정리되지 않은 마음들이 허공 속에 맴돌았다.

     

    나는 고마움이라는 마음을 얼마나 가지고 살고 있을까?

    보이는 고마움이든, 보이지 않는 고마움이든, 표현된 고마움은 과연 얼마나 될까?

    단순히 고마운 마음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누군가 내게 해준 모든 행동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었다.

    충실한 마음을 앞에 두고 생각이 많았다면, 고마운 마음을 앞에 두고는 어딘가로 흐르는 마음을 따라잡기 힘들었다.

    철썩이는 파도처럼 감정들이 끊임없이 밀려온다.

     

    프랑스어로 읽을 수 있다면 더 많은 걸 얻을 수 있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마다 쓰이는 언어의 차이로 원작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다 옮길 수 없어서 번역자도 답답했을 거라는 생각도 했다.

     

    미쉬카의 말이 제롬과 마리에게 이어진다.

    그 의미는 그녀를 아끼고, 알았던 두 사람만의 은어가 될 것이다.

     

    "그냥요."

    "거마워요."

     

    나의 미래를 엿보는 기분으로 내내 읽었다.

    선명하게 그려지는 모습들이 언젠가 내게도 닥칠 일이라는 걸 알려주는 거 같다.

    제롬과 마리가 미쉬카를 대하는 그 마음들처럼 나도 그럴 수 있을까?

    언젠가 내게도 제롬과 마리가 곁에 있을까?

     

    고마운 마음.

    이 마음이 지닌 의미를 살아가면서 깨우칠 거 같다.

    앞으로. 계속...

     

     

     

  • 눈부시게 아름다운 소설 | sd**702 | 2020.03.15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처음에는 쓸쓸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 진심을 다한 마음을 받아 본 사람들, 그리고 그 마음을 되돌려 주는 ...

    처음에는 쓸쓸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 진심을 다한 마음을 받아 본 사람들, 그리고 그 마음을 되돌려 주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너무나 환했다. 르 몽드가 왜 눈부시게 아름다운 소설이라 했는지 알 것 같다. 


    소설 속 세 명의 등장인물인 미쉬카 할머니, 마리, 제롬은 이야기가 되지 못한 서로의 이야기를 찾아내어 기억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만든다. 삶의 순간들마다 크고 작게 마음에 자국을 냈던 일들이 언어로 표현될 때, 그것은 비로소 고개를 들고 존재를 드러내며 개인의 역사가 된다


    어둠 속에서 등불이 되어 준 그들의 이야기에서 주목한 것은 사람 사이의 관계, 결국 마음을 전하는 일이었다. 곤란에 처한 이에게 기꺼이 내미는 손, 마음을 주고 받고 또 그것을 잊지 않는 마음, 누군가에게 한 발 다가서는 용기는 서로의 세상을 구한다. 비단 소설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고마움을 표현한다. 마음을 전하는데 있어서 제롬과 미쉬카 할머니의 왈츠는 나에게 최고의 장면이었다. 제롬의 귀에 들리는 자크 브렐의 음악을 유튜브로 틀어 놓았다. 점점 빨라지면서 페이드 아웃하는 음악을 들으며 사라지는 것이 음악 뿐임이 아님을 직감할 때, 책장을 쉽게 넘길 수 없었다. 사생활을 존중받고 싶어하고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기 싫은 그녀이기에 존엄을 지키기 위한 그만의 방식으로 할머니는 조금이나마 자유롭고 홀가분 했을까.


    마지막에 마리와 제롬이 만나 ‘미쉬카 할머니의 언어’로 대화하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할머니의 삶을 존중해 주는 사람들의 대화였다. 앞으로 그들은 불운했던 시절을 일별하고 인생에 먹구름이 낄 때마다 미쉬카 할머니가 마음에 켜 둔 등불을 기억하며 살아갈테지. 


    말을 잃어가는 미쉬카 할머니를 보며 언어가 없다면 무엇이 남을까 독백하지만 어떤 마음은 언어 보다도 강력하다. 말들은 사라져도 마음은 여전히 머물고 여기서 또다른 마음을 이어줄테니까. 나도 할머니의 마음을 조금 빌려야겠다. 애틋하지만 고맙고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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