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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스의 교환
444쪽 | 규격外
ISBN-10 : 116094668X
ISBN-13 : 9791160946680
칭기스의 교환 중고
저자 티모시 메이 | 역자 권용철 | 출판사 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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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22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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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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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제국의 등장은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다. 몽골족은 정복을 통해 수많은 제국들과 왕국들을 휩쓸어버렸고, 역사상 가장 큰 단일 제국을 만들었다. 그들은 전근대 세계에서 가장 파괴적인 세력이었지만, 그들이 이룬 ‘팍스 몽골리카’는 상인과 선교사들이 유라시아를 가로질러 교류하게 했고 광대한 영토 안의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삶이 안정되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 책은 몽골의 정복이 세계의 변화를 위한 촉매였음을 교역, 전쟁, 행정, 종교, 전염병, 인구 변화, 문화 교류 등 다양한 측면에서 검토한다. 그리고 이런 거대한 변화를 ‘칭기스의 교환’이라고 일컫는다. 이는 역사학자 앨프리드 크로스비가 콜럼버스의 항해 이후 신대륙과 구대륙에 일어난 급격한 사회 변동을 지칭한 ‘콜럼버스의 교환’이라는 용어를 변형한 것이다. 제국이 분열하고 그 힘이 쇠퇴했을 때조차도 몽골의 영향력은 지속되었다. 칭기스 칸의 성취가 이끈 변화로 콜럼버스는 칸의 땅으로 향하는 항해에 나섰고, 중국은 300년 만에 통일을 맞이했다.

몽골 제국사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티모시 메이는 제국의 형성과 분열, 그 후의 변화를 포괄적으로 검토하며 몽골 제국의 유산에 대한 장기적인 관점을 보여준다. 몽골 제국 이후 세계는 완전히 달라졌으며, 이전보다 상호 연관성이 훨씬 더 커졌다. 진정한 의미의 세계화가 시작된 것이다.

저자소개

저자 : 티모시 메이
2004년 위스콘신-매디슨대학교에서 「정복과 통치의 기술자들: 몽골 제국의 등장과 팽창, 1185-1265년The Mechanics of Conquest and Governance: The Rise and Expansion of the Mongol Empire, 1185-1265」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몽골 병법The Mongol Art of War』(2007), 『몽골의 문화와 풍습Culture and Customs of Mongolia』(2009) 등을 통해 몽골의 군사 제도와 무기 체계 및 문화와 습속을 소개했으며, 다양한 분야 연구자들의 최신 연구 성과를 담아 편찬한 몽골 제국사 사전 『몽골 제국: 역사 백과사전The Mongol Empire: A Historical Encyclopedia』(2016)의 책임 편집자로 활약했다. 최근 『몽골 제국The Mongol Empire』(2018)이라는 몽골 제국사 개설서를 출간하는 등 학술 저작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가 읽을 수 있는 교양서도 꾸준히 출간하는 열정적인 연구자이다. 현재 노스조지아칼리지&주립대학교 인문대학 교수로 재직하며 중앙유라시아, 중동, 유목민의 역사를 연구 및 강의하고 있다. 이 책 『칭기스의 교환』은 티모시 메이의 2012년 저작 『The Mongol Conquests in World History』를 번역한 것이다.

역자 : 권용철
1983년 경기도 구리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 사학과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고려대학교 강사로 재직하고 있고, 번역 기획 공동체 ‘창窓’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원대 중후기 정치사 연구』, 『중세 동아시아의 해양과 교류』(공저)가 있고, 원 제국 및 고려의 역사에 관한 논문 10여 편을 썼다. 옮긴 책으로는 『몽골족의 역사』, 『만주실록 역주』(공역), 『돈황학 대사전』(공역), 『선역 속자치통감장편』(공역), 『킵차크 칸국』이 있다.

목차

서론
역사 연구와 문제들 | 이론적 관심사

1부 촉매가 된 몽골의 정복

1장 몽골 제국의 형성
칭기스 칸의 성장 | 제국의 확장 | 우구데이 | 구육과 섭정들 | 뭉케

2장 제국의 분열
대칸의 제국 | 일 칸국 | 차가다이 칸국 | 주치 칸국

3장 1350년의 세계: 글로벌 세계
계승자들, 그리고 세계는 어떻게 변화했는가? | 오래 지속된 몽골의 영향력 | 몽골의 이미지

2부 칭기스의 교환

4장 팍스 몽골리카와 교역
칭기스 칸과 초기의 접촉 | 우구데이와 카라코룸 | 오르탁, 공위와 복위 | 분열 이후

5장 새로운 전쟁 방식
십자군과 중동에 끼친 영향 | 델리와 인도 | 동유럽 | 동아시아와 화약 | 현대의 전쟁

6장 몽골의 행정
몽골 행정의 구조 | 세금 징수 | 칭기스의 교환에서 몽골의 행정

7장 종교와 몽골 제국
기독교 | 이슬람교 | 불교 | 결론

8장 몽골족과 흑사병
카파와 흑사병 | 세계에 끼친 영향 | 몽골 제국에 끼친 영향

9장 이주와 인구의 추세
몽골리아 | 장인, 기술자와 예능인 | 중국과 식민 | 투르크화

10장 문화 교류
사상 | 예술 | 음식 | 물품 | 결론

미주
용어 해설
왕조의 계보
참고문헌
감사의 말
옮긴이 후기
색인

책 속으로

테무진, 전쟁의 방식을 바꾸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몽골의 전쟁 방식이 변화하기 시작했음을 보게 된다. 공격을 감행하기 전에 테무진은 놀랄 만한 명령을 내렸다. 자신이 명령을 내릴 때까지는 아무도 약탈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전통적으로 유목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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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무진, 전쟁의 방식을 바꾸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몽골의 전쟁 방식이 변화하기 시작했음을 보게 된다. 공격을 감행하기 전에 테무진은 놀랄 만한 명령을 내렸다. 자신이 명령을 내릴 때까지는 아무도 약탈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전통적으로 유목민 군대는 적진에 다다르면 약탈을 감행하여 획득한 것들을 말에 싣기 바빴다. 침입과 공격의 주요 목적은 적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부를 축적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테무진은 전쟁을 감행하는 새로운 이유를 찾아냈다. 그것은 바로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부족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그는 전리품에 빠져들기 전에 적에 대한 완벽한 승리를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현대의 관찰자들이 상식으로 여기는 지혜를 깨달았던 것이다. - 45~46쪽

세계 정복이라는 개념
몽골이 세계를 정복할 것이라고 인식하기 시작한 때는 우구데이의 통치 시기였다. 세계 정복이라는 개념이 칭기스 칸 시기부터 있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지만, 사실 칭기스 칸의 행동은 세계 정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칭기스 칸의 목표는 정주 문화를 지배하는 것보다는 외부의 위협에서 몽골리아를 보호하려는 쪽에 가깝기 때문이다. 정주지대를 습격하고 조공을 강요하는 것은 몽골리아를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되었고 경제적으로도 이익이었다. 그러나 우구데이는 여기서 더 나아가 정복이라는 개념을 강화하여 칭기스 칸과 그의 후계자들이 세계를 정복하는 것은 하늘이 정한 운명이라는 믿음을 북돋았다. - 67~68쪽

정주 세계의 황제이자 유목 세계의 칸이었던 쿠빌라이
쿠빌라이는 스스로를 중국 황제라고 가정하는 것이 중요함을 알았지만, 결코 중국어를 배우지 않았다. 그에도 불구하고 쿠빌라이는 두 세계(유목민 세계와 정주민 세계) 모두 중시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중국식 왕조 이름인 원元과 책력冊曆을 받아들였다. (중략) 황제 쿠빌라이는 자신의 정체성에 중국적 요소를 다 포용하지는 않았다. 중국식 관료제를 어느 정도 유지했지만, 몽골의 행정은 대체로 비한족(몽골족, 위구르족, 페르시아인, 중앙아시아인 등)이 담당했다. 중국 관료들은 쿠빌라이를 유교에서 이상적이라 말하는 현명한 군주의 모습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맡은 역할을 수행했지만, 제국의 실질적인 운영은 몽골식 행정으로 이루어졌다. 쿠빌라이는 선조들을 기리기 위한 사당과 공자를 추도하기 위한 사당을 둘 다 만들어서 이러한 이미지를 뒷받침했고, 학자들에게 이전 왕조들(금과 송)의 역사를 집필하게 하는 관행을 그대로 따랐다. - 85~87쪽

‘이란’이라는 개념의 부활
일 칸국의 소멸이 낳은 많고 다양한 계승자들은 일 칸국의 여러 측면을 받아들였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해 보이는 것은 이란Iran이라는 개념이 부활했다는 사실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페르시아 문화는 일 칸의 후원 아래에서 번성했다. 페르시아 문화를 즐기고, 제국의 분열 이후 격렬한 전쟁으로 국경이 강화되면서 ‘이란’이라는 명확한 개념이 등장했다. 일 칸국이 이란보다 더 거대했던 것은 분명하지만, 이란이라는 개념이 일 칸국 시기에 굳어졌을 뿐 아니라 일 칸국이 멸망한 이후에도 계속되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계승자들이 권력을 확립하고 유지하는 데 몽골의 혈통, 정치적 개념, 상징, 관습들이 여전히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에 일 칸국의 수도 타브리즈Tabriz는 정통성의 공간으로 남았다. - 121쪽

우구데이의 상업 진흥 정책
우구데이는 재위 기간 동안 금괴와 은괴부터 직물에 이르는 사치품을 저장하기 위한 창고는 물론이고, 세금으로 거둔 곡물을 저장하기 위한 곡물창고도 설립했다. (중략) 유목사회는 물품을 취득하더라도 항상 주변으로 이동시켜야 했기 때문에 장기간에 걸쳐 많은 양을 모으거나 보관한 적이 별로 없었다. 우구데이는 몽골의 궁정으로 모여드는 물품의 양을 관리 및 체계화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이를 관할할 정부 부처를 새로 만들었다. (중략) 우구데이가 창설한 또 다른 제도는 바로 얌yam, 즉 역참 체계였다. 칭기스 칸이 이미 초보적인 형태를 만들었던 것 같지만, 우구데이는 이를 확대해서 제국의 다른 부분들과 연결시켰을 뿐만 아니라 역참의 효율성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도 만들었다. (중략) 마지막으로 그는 주요 도로를 일상적으로 왕래하는 순찰대를 확대했다. 이들은 교역로의 안전을 확보했을 뿐만 아니라 어떤 물품이 상단을 통해 오고 있는지를 칸에게 보고하기도 했다. (중략) 그의 과도한 소비는 카라코룸에 국제 교역을 가져왔다. 가져가는 물건이 무엇이든 운송비를 결제한 이후 그 가치의 2배를 받게 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 어떤 상인이 카라코룸으로 가는 모험을 마다하겠는가? - 171~175쪽

무기의 변화, 휘어진 칼의 확산
몽골은 또한 무기의 실제 선택과 전술의 운용이라는 측면에서 중동의 전쟁을 바꾸어놓았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휘어진 칼이 널리 퍼져 나간 것이다. 이런 일은 다른 곳에서도 나타났지만, 휘어진 칼이 중동 전역과 전 세계의 기병대에서 선호하는 무기가 된 것은 몽골의 성공 덕분이었다. 이러한 경향은 13세기에 나타나기 시작해 16세기가 되면 휘어진 칼을 도처에서 볼 수 있게 된다. 처음에는 휘어진 칼이 투르크족의 도래와 함께 동쪽에서 전해져왔어도 다른 집단들은 직선으로 뻗은 형태의 검을 여전히 선호했다. 그러나 몽골족이 도착하고 수 세기가 지난 뒤에는 이것이 기마 전사들을 위한 거의 유일한 무기가 되었다. 휘어진 칼은 말을 탄 채로 행하는 공격을 완벽하게 만들었다. 기마병이 말을 탄 상태에서 적을 베고 뒤이은 행동까지 수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직선 형태의 검은 적을 베는 공격에서는 그리 효과적이지 못했고, 오히려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는 공격에 더 적합했다. 휘어진 칼로는 적을 내리치면서 계속 말을 탈 수 있었지만, 직선 형태의 검은 목표물에 꽂혀버리거나 공격자에게 충격을 주어 균형을 잃거나 무기를 놓치게 했다. - 205~206쪽

현대의 전쟁에 미친 몽골의 영향
탱크와 항공기의 출현은 빠르게 이동해서 깊숙이 쳐들어가는 몽골의 전쟁 방식을 재현할 수 있는 기동성을 만들어냈다. 영국 장교 리델 하트B. H. Liddell Hart는 탱크와 기계화 보병을 결합한 대형을 개념화하여 주력 부대보다 앞서 독립적으로 작전을 수행할 수 있게 했다. 이처럼 기동성 있는 타격대는 적의 통신과 보급선을 차단하여 적군을 무력화했다. 몽골에 대하여 그랬던 것처럼 적들은 단지 대응만 할 수 있을 뿐 공격적인 조치는 취할 수 없었다. (중략) 소비에트의 종심전투 방식은 군대를 집결시키는 적의 역량을 훼손하여 적들이 대응만 하고 공격적인 행동은 취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몽골의 목표를 공유한 것이다. (중략) 안토니아가 레인저부대에 있는 동안 그레인지 대령은 “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 아래에서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용기, 인내심, 의지, 능력 그리고 연대 안의 모든 지휘관들의 잠재력을 시험하기 위해 고안한 것으로, 지휘관들은 이 프로그램의 통과 여부로 평가했다. 그는 (칭기스) 칸의 지휘를 받는 대부분의 엘리트 전사들이 전투 준비를 위해 견뎌야 했던 혹독한 훈련을 프로그램의 모범으로 삼았다. 그리고 이것을 ‘망고다이Mangoday’라고 불렀다. - 225~231쪽

몽골 행정의 원천, 케식
중앙 행정의 궁극적인 원천은 케식keshik(칸의 친위대와 집안의 하인들)으로부터 나왔다. 이는 전근대 세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방식으로, 군사 지도자의 동료들이 행정 관청의 수장이 되는 것이었다. (중략) 케식의 구성원 대부분은 전투가 치러지는 동안 대체로 칸의 진영과 가족을 지켰다. (중략) 군 지휘관들과 복속한 지배자들은 자신의 아들과 아우를 케식에 복무하도록 파견했는데, 이렇게 되면 칸이 그들의 목숨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인질이 되는 것이었다. 동시에 칸은 이 사람들을 알고 그들의 성향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래서 만약 어떤 지도자가 칸의 바람을 따르지 않으면, 칸은 그를 왕좌에서 끌어내리고 대신 자신과 개인적인 유대를 형성하며 케식에서 훈련받은 친인척을 왕좌에 올릴 수 있었다. (중략) 칭기스의 교환이라는 맥락에서 이 제도는 몽골 이후의 세계에 중요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칭기스 가문의 제왕들이 유라시아로 퍼져 나갈 때 칭기스 혈통의 권위와 칭기스 가문만이 칸의 칭호를 사용할 수 있다는 개념을 유지해주었다.

몽골의 종교적 관용
여기서 우리가 해야 할 합리적 질문은 몽골은 왜 제국이 분열되고 나서야 세계 종교로 개종했는가이다. 그리고 왜 불교와 이슬람교였는가? (중략) 첫째, 그들은 하늘로부터 세계를 정복하라는 명을 받았다고 믿었다. 텡게리즘의 개념은 강력한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독교의 신, 무슬림의 알라, 하늘 혹은 신성한 영혼 등 다른 모든 개념은 텡게리로 교묘하게 흡수될 수 있었다. 이것이 두 번째 논점으로 이어진다. 그들은 같은 신을 숭배했기 때문에 종교적 이유로 누군가를 박해할 이유가 없었다. 종교적 관용이 드물었던 시기에 몽골이 모든 종교에 놀라울 정도로 관용적이었던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중략) 셋째, 이슬람교와 기독교로는 굳이 개종을 할 이유가 없었다. 몽골 군대는 자신들에게 적대하는 모든 것을 파괴했다. 이러한 종교들이 전략적인 이점을 제공해줄 것 같지도 않았다. 몽골은 이 종교들을 박해하지 않았지만, 한 명의 신만 숭배해야 한다는 설명은 몽골을 개종으로 이끌기에 전혀 설득력 있는 논의가 아니었다. (중략) 몽골은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 그들은 몽골의 정체성이 종교적 정체성에 흡수되어
버린 기독교도, 무슬림, 불교도가 아니라 무슬림 혹은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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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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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정복 이후 세계는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미국의 역사학자 앨프리드 크로스비는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상륙하면서 신대륙과 구대륙의 동물, 식물, 사상, 문화, 기술, 병원균 등이 상호 전파되어 급격한 사회 변화를 초래한 것을 ‘콜럼버스의 교환Columbian Exchange’이라고 표현했다. 이 책의 저자 티모시 메이는 이를 차용해 몽골의 정복이 세계사에 초래한 획기적인 전환을 ‘칭기스의 교환Chinggis Exchange’이라고 부른다. 몽골은 동아시아에서 유럽에 이르는, 흑해 초원과 러시아에서 인도 및 중동에 이르는 역사상 가장 큰 단일 제국을 형성하여 군사 분야의 혁신, 국제 무역, 세계 종교의 확산, 기술과 사상의 전파, 전염병의 창궐과 같은 전 세계적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흔히 칭기스 칸과 몽골의 세계 정복은 무자비한 파괴와 살육, 역사의 퇴행처럼 여겨지지만, 사실상 근대 세계를 열어젖힌 모든 변화는 유라시아의 양극단을 연결한 몽골의 성취에서 비롯했다. 세계사의 핵심적인 분기점으로 여겨지는 ‘콜럼버스의 교환’조차도 ‘칭기스의 교환’이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학문 연구에서 ‘위대한 인물’이라는 개념을 고려하는 것은 최근의 경향과 거리가 있지만, 진정으로 위대한 남성 혹은 여성이 때때로 나타나 세계를 극적으로 변화시키거나 최소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길로 역사를 이끌 수 있다는 생각을 우리는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한다. (중략) 물론 칭기스 칸이 이 모든 것을 계획했다는 식으로 곡해해서는 절대 안 된다. 실제로 나는 칭기스 칸이 제국을 원했다는 점조차도 확신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가 몽골리아를 통치하는 일에 꽤 만족했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그의 성취는 다른 사람들을 자극했고, 군대에 시동이 걸리자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중략) 칭기스 칸이 사망한 후 수십 년, 심지어 수 세기가 지난 뒤에도 그의 그림자는 예전의 제국과 그 너머에 드리우고 있었다. 만약에 세계를 몽골 제국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본다면, 그 사이에 세계가 매우 달라졌으며 상호 연관성이 훨씬 더 커졌음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 28~29쪽

저자는 역사 서술에서 한 사람의 역할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는 일의 위험성을 경계하면서도 이 거대한 변화의 시작이 칭기스 칸의 정복 전쟁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그런 관점에서 1부에서는 몽골 초원의 미약한 세력이었던 보르지긴 몽골족이 칭기스 칸이라는 지도자를 만나 유라시아 세계를 통합하기까지의 과정과 칭기스 칸 사망 이후 후계자들에 의해 제국이 원 제국, 일 칸국, 차가다이 칸국, 주치 칸국이라는 4개의 영역으로 분리되고 이후 더 많은 계승 국가들로 분열되는 양상을 압축적으로 서술한다. 4개의 칸국은 각 지역의 환경과 조건에 기반하여 발전하는 가운데서도 몽골 제국의 유산이라는 공통분모를 느슨하게 유지했다. 몽골이 남긴 상징과 통치 구조를 활용해 정권의 정통성을 확보했고, 몽골이 닦아놓은 안전한 교역로를 통해 사람과 물자, 종교와 사상, 기술과 문화를 이동시켰다. 이 통합된 세계에 대한 경험은 이후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완전히 다른 삶의 조건을 마련했다. 먹는 음식, 입는 옷, 믿는 신은 물론 삶의 반경과 타자에 대한 인식도 확연히 달라졌다. “먼지가 가라앉은 이후 세계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변화했고, 결코 예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었다.”(5쪽)
1350년을 전후하여 4개의 칸국이 약화되고 더 작은 정치체들로 분열하는 과정에서도 몽골 제국의 유산은 면면히 이어졌다. 몽골의 정체성을 계승하든 부정하든 어떤 세력도 몽골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심지어 20세기 이후에도 러시아, 몽골, 중국, 일본 등이 뒤얽힌 국제 정치에서 칭기스 칸의 소유권을 둘러싼 반목과 갈등이 거듭되었고, 서구에서는 대중문화의 소재로, 몽골과 중국, 중앙아시아의 신생 독립국들에서는 민족 정체성의 상징으로 칭기스 칸을 끝없이 호출하고 있다. 12세기 후반부터 현재까지 유라시아의 동쪽 끝에서 서쪽 끝에 이르는 광대한 영역에서 벌어진 지구적 차원의 역사를 단 하나의 키워드로 정리한다면, 그 자리에는 아마 칭기스 칸이 놓일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2부 칭기스의 교환’에서는 그것이 단지 수사적 차원의 표현이 아니라 교역, 전쟁, 행정, 종교, 질병, 이주와 인구 변화, 문화 등 인류 삶의 모든 영역에 속속들이 영향을 미친 진정한 전환점이었음을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언택트 시대에 읽는 최초의 연결된 세계사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전 세계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 동아시아에서 일어난 일이 동시에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의 문제이기도 한 ‘글로벌 세계’에 대한 감각이 새삼 두드러지는 가운데, 그 모든 연결을 중단해야 하는 ‘언택트untact’라는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는 중이다. 강도 높은 언택트가 요구되는 이유는 그만큼 우리가 서로에게 깊숙하게 연결된 콘택트contact의 시대를 살아왔기 때문이다. 개인 단위에서뿐만 아니라 지역과 국가 단위에서도 우리는 불가분의 관계로 엮인 하나의 세계를 이룬 채 살아왔다. 이 책은 세계가 비로소 하나로 연결된 역사를 써 나가기 시작한 그 출발점에 관한 이야기이다.
몽골 제국은 유례없이 광대한 제국을 건설하고 그 내부를 촘촘히 이어나갔다. 역참 제도를 통해 교역로의 안전과 편리함을 보장하고, 통행료와 세금을 줄이고, 효율적이고 장기적인 행정 기구를 설치하자 상인뿐만 아니라 선교사, 군인, 기술자, 예능인, 노예와 피난민들이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질러 이동하기 시작했다. 세계는 점점 더 낯선 이들을 만나는 데 익숙해졌고, 서로 다른 것들이 뒤섞이는 풍경을 어색해하지 않게 되었다. 각지에 흩어져 살던 사람들의 삶이 긴밀하게 연결되면서 이른바 ‘세계화’의 시대가 열렸다. 그러나 바로 그 연결성 때문에 흑사병이라는 파괴적인 질병이 순식간에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갔고, 전 인류가 삶의 토대가 흔들리는 압도적인 경험을 했다.
몽골 제국이 촉진한 흑사병의 전파와 그 영향을 지금 이 시점에 읽는 일은 무척이나 의미심장하다. 몽골 초원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흑사병이 몽골 제국이 구축한 교역로를 따라 중동과 유럽에 전해지고, 이후 급격한 인구 감소를 초래해 세계 각지의 경제 구조가 바뀌고, 의학이 발전하고, 교육과 신앙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모습은 코로나19 이후 전 세계가 맞닥뜨린 충격과 변화의 흐름과 상당히 흡사하다.

일부 직업은 이제 여성을 받아들였다. 실제로 14세기 후반과 15세기 중반에 맥주와 에일 생산에서 여성이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장원에서는 작물을 심고 수확하는 데에 노동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임금 노동이 증가했다. (중략) 교육에도 변화가 생겼다. (중략) 일부 대학들은 단지 학생 수 부족으로 문을 닫았다. 다른 한편 흑사병 이후 부유한 후원자들이 지역 학생들을 수용하기 위해 새로운 대학을 건립했다. 학생들은 주로 해당 지역 출신이었기 때문에 국제 통용어에 대한 필요성이 줄어들었고, 이로 인해 라틴어보다는 지방 언어 사용이 크게 늘었다. (중략) 교회는 죽은 성직자를 대체할 새로운 목사들을 임명해야 했다. 너무 급하게 목사들을 대체하다 보니 때때로 교육을 제대로 못 받은 목사들이 생겨났고, 라틴어나 올바른 예식을 모르는 이들도 있었다. 예배에서 지방 언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늘어났고 이단의 견해도 증가했다. (중략) 이 기간에 르네상스뿐만 아니라 종교개혁의 뿌리가 일부 형성되었던 것이다. - 303~307쪽

흑사병으로 인해 유라시아 대륙 전체가 초토화되었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은 달라진 삶의 조건을 받아들이고 그 위에서 다시 끊어진 길을 이어나갔다. 몽골 제국이 건설한 하나의 연결된 세계가 낱낱이 황폐화된 이후 재건되는 과정은 언택트 시대 이후를 상상하기 어려운 우리에게 의미 있는 통찰을 제공할 것이다.


군사 기술부터 상업, 행정, 종교, 문화에 이르기까지
몽골 제국사의 전 영역을 아우르는 통합적 서술

이 책의 저자 티모시 메이는 몽골 제국사 연구의 고전이자 표준으로 여겨지는 『몽골족의 역사The Mongols』를 쓴 데이비드 모건의 제자로, 몽골의 초기 군사 전략과 전술을 분석하여 제국의 급속한 팽창 과정을 밝힌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몽골의 전쟁 기술을 비롯하여 문화와 풍습을 다룬 여러 권의 책을 저술하고, 몽골 제국사 사전의 책임 편집자로 활약하면서 몽골 제국사의 전 영역을 아우르는 세계적인 연구자로 성장했다. 이 책에서 그는 전쟁사 전문가로서 자신의 장기를 발휘해 제국의 확장을 가능케 한 몽골족 특유의 전술과 전략, 무기의 발전과 전파, 여러 전투의 경과를 상세히 서술하고 그 유산이 현대의 전쟁에까지 미친 영향을 구체적 사례를 들어 언급한다. 나아가 몽골 제국이 성립 초기부터 분열 이후 계승 국가 시대에 이르기까지 세계화의 촉매로서 했던 역할을 분야별로 풍부하게 제시한다. 대부분의 중앙유라시아사 연구자들이 언어의 한계 때문에 특정 지역에 국한된 연구에 그치는 데 반해 저자는 모든 지역과 영역에 걸친 변화를 장기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통합적 서술을 시도했다.

올슨의 연구는 중국과 페르시아의 정치적, 문화적 교류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중앙아시아, 러시아, 흑해 초원 일대의 몽골 제국에 관한 분석은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었다. 이 작업을 시도한 학자가 바로 티모시 메이이고, 그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중략) 저자는 한문과 페르시아어 이외에도 수많은 언어로 기록되어 있는 자료들과 기존의 연구 성과를 두루 참고하여 몽골 제국의 영향이 유라시아 세계 곳곳에 일으킨 변화를 생생하게 서술했다. 그의 폭넓은 묘사를 통해 우리는 13~14세기의 몽골 제국이 단지 잔인한 침략자였던 것이 아니라 ‘세계제국’의 건설자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중략) 이 책은 몽골 제국과 세계사의 긴밀한 연관을 분석할 수 있는 서술의 틀을 제공하고, 다양한 주제를 제시하여 세계 학계에서 그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다. - 433~434쪽, 「옮긴이 후기」 중에서

그동안 몽골 제국의 역사를 ‘세계사’라는 관점에서 접근한 저작이 제법 소개되긴 했지만, 대부분은 중앙아시아사, 유목 제국의 역사, 동서 문명 교류사라는 큰 틀에서 쓴 책이거나 인류학이나 지리학, 종교학, 예술사 등 인접 학문에서 나온 성과물이었다. 이 책은 전공자가 쓴 본격 몽골 제국사로 몽골 제국과 관련하여 논의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주제를 담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의 출간을 계기로 몽골 제국사에 진입하고자 하는 일반 독자는 물론 이 분야에서 좀 더 다양한 주제를 개발하고 더 나은 분석 틀을 얻고자 하는 연구자들도 유용한 통로 하나를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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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

회원리뷰

  • 칭기스의 교환 | in**u72 | 2021.01.29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어려운 책일거라는 기대에 신선한 내용, 전문적 내용, 학술적 내용이 많지 않을까 하여 내심 서평으로 부담스러웠던 책이다. 몽골...

    어려운 책일거라는 기대에 신선한 내용, 전문적 내용, 학술적 내용이 많지 않을까 하여 내심 서평으로 부담스러웠던 책이다. 몽골 세계제국이라는 과거의 영광과는 별개로 지금은 다소 역사 등과 연관된 것이 아니라면 나와는 관계없는 이야기로 치부하고 마는 요즘의 몽골이다. 그렇지만 역사분야 관심에 더해 오늘날 이미 회자되는 세계화, (몽골 이전의 세상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규모와 결합의 세계적) 네트워크에 대해 깊게 들어가보면 몽골의 침략과 정복에 기인한 세계화와 네트워크는 몽골제국이 세계사에서 등장과 그 역할과 비중은 절대 빼놓고 설명될 수는 없다.

     

    이러한 전제와 부연한 설명으로 많은 이 분야의 역사학자들은 몽골의 역사를 논하기 시작하고 그 중요성을 강조하곤 한다. 앞서 얘기했듯 <칭기스의 교환>은 크게 무겁지는 않지만 학술서 양식도 갖춘 책이기 때문에 책의 내용이 본격 시작되기에 앞서 저자 티모시 메이 교수는 책 서두에서 말한다. 책이 출간될 시점에 몽골제국과 세계화의 영향과 그것의 세계사적 의의라는 이 분야의 현재 일정 이루어진 연구의 학문적 성과와 앞으로 더 활발히 연구가 요구되는 주제와 분야 등을 종합적으로 언급하며 독자를 책 속으로 안내한다.

     

    보통 이런 학술서 또는 전문적 연구서는 이 분야를 전공했거나 오랜 기간 해당 분야에 견문을 넓혀온 그런 독자가 아니라면 이런 책을 어떻게 접근할지 내지는 마땅한 독서방법을 못찾는 경우도 간혹 있다. 본인 또한 그 중 한 명이다.

     

    책 초반은 예전에 중학교 때 영화감상부 써클에서 야외학습으로 영화관에서 '칭기즈칸'을 봤던 영상과 기억이 이미지가 되어 많이 떠올랐다. 칭기스 칸(테무진)의 어린 시절은 정말 (주관적 표현이지만) 야생과 고난, 시련의 시간이었다. 흔히 말하는 영웅이 겪는 통과의례, 시련의 연속, 생사를 넘나드는 고난인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영웅은 세계적으로 그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대제국을 이룩하는 초석을 놓게 되며, 역사에 길이 남게 된다.

     

    책은 1부~3부, 미주, 용어해설, 왕조의 계보, 참고문헌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언제든 몽골과 관련한 주제, 예컨대 전쟁사에서 새로운 강력한 전쟁술(방식)의 등장 같은 내용, 전염병 흑사병, 동서양의 문화교류 등 특정 주제를 찾아보기가 쉽도록 내용이 배치, 나열되어 있다. 책 체계가 잘 잡혀있어 재독하기에도 원활한 구성과 편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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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에 들어가며

    몽골이라는 단어는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기 때문에 모호하다. 그들의 역사가 방대한 시공간에서 일어났으며 역동적이었기 때문이다. ‘몽골족이라는 개념이 실존하는걸까? ’ ‘몽골의 경계가 유동적이었는데 어떻게 역사를 서술할까?’ 이러한 의문들은책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풀렸다. 그 중 하나의 답을 미리 말하자면, 몽골족이라는 개념은 칭기스칸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서문에서 저자는 몽골 몽골리아(지명), 몽골족국가로서의 몽골세계제국으로서의 몽골로 구분한다이를 염두에 두면 혼란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지리적인 배경

    중앙아시아는 남쪽으로는 높은 산맥북쪽으로는 툰드라와 경계를 이룬다수평적으로는 삼림(타이가), 스텝사막으로 나눌  있다.

    수평의 양단에는 정주민과 맞닿는다. 동쪽은 한국중국서쪽은 러시아이란을 경계로 한다

    중앙아시아는 대략 현재의 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내몽골티베트위구르내몽골에 걸쳐있다.

     

     

     

    (문구  지도 <권력과 >에서 편집하여 인용)

     

     

     

     

    1 몽골제국의 형성

    요제국의 멸망 이후 몽골리아는 혼란에 빠져 있었다몽골족은 분열되어 있었고 금나라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이수게이 바하두르는 보르지긴 몽골족의 지도자로대를 이은 원한을 가진 타타르족에 의해 우연히 암살된다

     아들이었던 테무진은 어머니 후엘룬의 리더쉽으로 성장한다테무진의 경력은이복형 벡테르를 살해하는 것으로 시작한다벡테르가 후엘룬과 혼인한다면 테무진의 아버지가 되어 권력을 독차지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후환을 제거한 것이었다이는 유목민의 관습을 어긴 것이었기 때문에 테무진은 타이치우트 씨족의 습격을 받고포로로 잡혀간다

       간신히 탈출한 테무친은 케레이트족의 토그릴  (이수게이와 의형제였음) 후원을 받는다하지만 대를 이은 원한으로 메르키트족의 습격을 받고약혼자부르테도 납치된다. (부친 이수게이가 메르키트족의 약혼자였던 후엘룬을 납치했었음토그릴은 휘하 장수였던 자무카를 보내 후엘룬을 구출하였다테무진은 자무카의 휘하에서 경력을 쌓아갔지만 얼마  갈등으로 그와 결별한다.

     

    카리스마와 적절한 전술로 급속히 성장한 테무진은 1185년에 친족들에 의해 보르지긴 몽골 칸으로 선출된다. 1187년에 달란 발주트에서 자무카에게 패배한  금으로 망명한다하지만 자무카의 잔인한 행동으로 테무진은 세력을 회복할  있었고 금방 초원으로 복귀한다

    1197년에는 테무진은 금나라의 타타르족 공격에 호응하여 주요한 역할을 수행했다이후 메르키트족나이만족과 싸워 이겼고, 1200년에는 몽골족의 고향인 오논-케룰렌  유역의 지도자가 되었다. 1201~1202년에는 구르칸으로 선출된 자무카패배시키고달란 네무르게스에서 타타르도 격퇴하여 동부 몽골리아를 석권하였으며, 1203년에 케레이트족을 습격하여 중부 몽골리아를 지배하였다. 1204년에는 차키르마우트에서 나이만족메르키트족자무카를 수적우세를 극복하고 패배시켜 몽골리아 전체의 지도자가 되었다

    1206 쿠릴타이에서 테무진은 칭기스칸이라는 칭호를 받는다또한 적대적인 부족의 지도자들을 완전히 배제제거하고자신의 일족을 중심으로 권력을 재편하였으며하막 몽골 울루스(단일한 몽골국가)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칭기스칸은 경제적인 목적으로 몽골리아 북쪽의 반유목민인 호인 이르겐(삼림에사는 사람들오이라트부랴트키르기즈) 복속시킨  곧바로 서하를 공격한다.

    서하는 초원에서 도망친 유목민 지도자들을 보호하였는데, 망명자들은 칭기스칸스스로도 잘 알듯  위협이었다기동성을 강점으로 여러 도시들을 함락시키며1209년에는 수도 중흥을 포위한다공성전에서  소득을 얻지 못했지만 서하가 피보호국이 되기를 청하자 물러난다

    1211 1212~1214, 1214년에는 3차례에 걸쳐 금나라를 침공하여 수도인 중도까지 함락한다금나라는 혼란에 빠졌고 변절자들과 반란자들이 계속하여 나타났다.


    한편 몽골 서쪽에서는 제베수베데이가 메르키트족 잔당을 추격하며 부족들을 복속시키고 있었다급속히 팽창한지 얼마   호레즘의 무함마드 2세와도 조우전을벌이기도 하였다.

     1218 칭기스칸이 보낸 상인들을 호레즘의 오트라르 총독이 간첩으로 몰아 처형하였다. 1219년부터 호레즘은 침략당한다무함마드 2세는 모친과의 갈등으로 군의중추였던 캉글리족을 제대로 지휘할  없었다결국 서쪽으로 도주하다 무함마드 2세는 병사한다그의 아들 잘랄 앗딘은 절벽에 뛰어내려 몽골족의 포위를 뚫었고 인도중동에서 세력을 규합하여 몽골에 지속적으로 저항하였다칭기스칸보다 운이없었던  영웅은 결국 몽골에 패해 도주하다 쿠르드족 농민에게 살해당한다

    호라즘을 멸망시킨 제베수베데이는 1211년에는 코카서스, 1223년에는 칼카강(러시아투르크족 대패)까지 진출한다.

     

    칭기스칸은 1223년에 반기를  서하를 다시 침공하였고, 1227년에 서하의 수도를 공략하던 중 낙마의 후유증으로 사망한다

    그의 삼남 우구데이가 쿠릴타이에서 칸으로 선출되었다그는 칭기스칸의 사업을이어 나갔다칭기스칸은 몽골리아의 보호자적인 성격이 강했지만 우구데이칸은 세계의 정복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었다금나라는 멸절되었고 서쪽의 수베데이바투(주치의 아들) 리그니츠 전투에서 폴란드독일튜턴기사단 연합을 격파했고모히 전투에선 헝가리의 벨라 4세의 기병대를 섬멸하였다하지만 우구데이칸의 사망으로 철수한다.

     

    우구데이의 비인 섭정 투레게네의 모략으로 아들인 구육을 칸으로 선출한다구육과 개인적으로 사이가 나빴던 최연장자였던 바투는 자신을 무시하고 쿠릴타이를 개최하자 적대감을 보인다구육의 급사로 전쟁은 피할  있었다.

    이후 톨루이주치 가문의 쿠데타를 통해 툴루이 가문의 뭉케가 적법한 칸으로 인정받는다뭉케칸은 위협적인 차가다이우구데이 가문의 후손을 숙청하였고 제국의앞선 섭정시기에 발생한 부패 문제를 척결한다 남송과 중동에 진출하였다섬서사천 방면과 악주 방면에서 남송을 공략하였고훌레구의 지휘하에 아바스 칼리프조를 파괴하였다남송원정 도중 뭉케칸이 사망하였다.

     

     

      2 제국의 분열과 소멸

    몽골의 후계자 규정은 칭기스칸 일족일 것만을 요구하였다이는 계승권자들이 자신의 실력을 통해 권력을 쟁취하게 유도하였다세계제국 몽골 시기에는 내전이 거의 없었지만 점차  빈도가 늘어나 결과적으론 몽골이 잘게 찢어지는 원인이 된다.

     또 먼 후대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정통성 문제와 결부되어 칸을 참칭한 지도자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기치기도 하였다.

     

    뭉케의 사망으로 그의 형제였던 아릭부케와 쿠빌라이 사이에 내전이 벌어진다쿠빌라이가 이겼고 그는 대도(베이징) 천도원을 개창하였다기존의 수도였던 카라코롬은 위치상 중국대륙 통치에 불리하였고 다른 경쟁자인 카이두의 영향이 미쳤으며식량 공급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중동에는 홀레구 후손중앙아시아에는 차가다이(칭기스칸의 차남) 후손유럽근처에는 주치(칭기스칸의 장남) 후손이 지배하고 있었다비록 쿠빌라이의 천도로 세계제국 몽골의 의미가 축소되었지만 여전히 몽골제국들은 연결되어 있었다멀리 떨어진 지역의 황금씨족(칭기스칸의 후손) 자신의 영지에서 수입을 얻을  있었다 원이 중국의 관습을 따랐지만 몽골의 방식을 고수하였다.

     

    원나라는 1320 이후에는 일족 간의 내전과 국경분쟁이 일상화되었다. 남방의 한족의 불만에도 적절히 대응하지 않았다결국 홍건적의 반란으로 황제였던 토곤 테무르는 몽골리아로 돌아간다

     이후 아릭부케의 후손과 쿠빌라이의 후손들이 서로 피를 흘리며 싸웠다초원에는 여전히 칭기스칸의 관습이 확고하게 남아 있었다황금씨족이 아닌 에센의 경우실력을 가졌음에도 칸을 자처했다가 암살당한다.

     

    훌레구의 일칸국은 차가다이 칸국킵착 칸국맘루크 왕조와 적대적이었고수시로 전쟁을 벌였다이를 타계하기 위해 원에 협조적이었고 유럽세력과도 제휴하려하였다맘루크 왕조에 대해 종교적인 우위를 가지기 위해 이슬람으로 개종하였고페르시아식 관습을 받아들였다.

    일칸국에 의해 이란(페르시아)’ 개념이 확립됐고파괴된 바그다드를 대신해 타브리즈가 정통성이 있는 도시로 인정받았다이후의 국가들도 몽골의 통치구조상징을 차용하였으며 몽골과 관계되었음을 강조하였다예를들면 오스만은 크림에서아나톨리아로 이주한 아타만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오스만은 초기에는 몽골의여러 제도를 적극 활용하였다고 한다. (비록 콘스탄티노플 점령과 맘루크 왕조 정복으로  다른 정통성을 확보하였고 칸을 자칭하지는 않았지만사파비 제국도 일칸국과 관계를 맺고  몽골적인 영향을 받으며 성장하였다. 투르크족임에도 페르시아라는 개념을 이용하였다.

     

    차가다이 칸국 역시 내전으로 점철되었다  우구데이의 손자인 카이두와 쿠빌라이의 후원을 받는 바락의 전쟁이 중요하였다결국 바락의 아들 두아가 최종적으로 승리하여 우구데이 계열을 배제하고 차가다이의 계승을 확립하였지만 외부와의전쟁과 내전은 계속되었다. 1331~1334년에는 왕족들이 이슬람으로 개종하였는데보수적인 초원 몽골인들의 불만을 산다결과적으론 차가타이 칸국에서 실력을 키운티무르에 의해 해체되어 이름만 존속한다.

     

    북아시아에서 동유럽까지 지배한 주치 칸국은 유목민의 특성을 가졌으면서도 교역과 도시를 중시하였고 이슬람을 믿었다. 이러한 특성으로 16세기까지도 러시아에 큰 위협이 되었던 것 같다.

    이들은 다른 칸국처럼 3개의 협력적이지만 반독자적인 세력으로 나누어져 있었다아크 오르다쿠케 오르다알탄 오르다는 각각 볼가강 동쪽~카자흐시베리아볼가강 서쪽에 분포하였다알탄 오르다는 Golden horde라는 뜻이며 칸국의 가장 중요한초원지대를 차지하고 있었다.

    주치칸국은 외부와 복잡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일칸국과 분쟁을 겪었고맘르크왕조비잔틴 제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으며북쪽의 러시아를 종속시키고 있었다자니벡의 짧은 치세(1340년대) 흑사병이 유행했으며 오르다 간의 계승 분쟁이일어나 나라가 거의 분해되었다권신 마마이가 권력을 장악했으며칸국의 군대는쿨리코보에서 러시아에게 대패한다

    주치칸국의 황족이었던 톡타미쉬는 티무르의 후원을 받아 모스크바의 독립을 저지하였으며 아제르바이잔을 차지하였다하지만 한미한 가문 출신의 티무르의 밑에있을  없었던 톡타미쉬는 그와 대결하였지만 결국 실패하였다. 1480년에 모스크바는 완전히 독립하였고, 1502 주치 가문은 공식적으로 사라진다이후에 카잔 칸국아스트라한 칸국크림 칸국으로 존속하며 러시아와 전쟁을 벌인다.

     

     2 칭기스칸의 교환

     

     

    교역

    보석이 가득  황금 항아리를 운반하는 처녀도 제국의 끝에서 끝으로 위협없이다닐  있었다.’  세계제국 몽골 시기 교역로의 안전함을 나타내는 말이다실크로드는 몽골리아와  떨어져 있었는데 어떻게 상업이 번영할  있었을까?

     전통적으로 몽골리아의 유목민은 중국과 밀무역조공무역을 하거나 약탈을 통해필요한 물건을 획득하였다칭기스칸은 소수의 무슬림 상인과 적극적으로 공생관계를 맺었다상인과 대화를 통해 필요한 정보를 얻었고물건에 정당한 값을 지불하였으며 상단에 투자하였다상인들은  여정에서 필요한 물건을 사고 팔며 몽골까지이동하였다몽골에선 의도적으로 물건들을 대량 소비하였는데이는 상인에게 매력이었다상인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카락친(호위병) 제공하였다호레즘과 전쟁 역시 상인을 살해하여 몽골 교역의 안정성을 뒤흔들었기 때문에 일어났다.

     

    우구데이칸은 카라코롬을 건설하였다카라코롬에는 몽골 귀족들의 보물창고가가득 했으며 많은 수공업자들이 귀족들을 위해 물자를 생산했고 온갖 나라에서 외국인들이 체류하였다 상업적(또는 군사적) 목적으로 사막지역에 우물을 건설하였고역참(yam) 순찰부대를 설치하였다뭉케  이후의 칸들도 상업을 장려하였다.


    주치칸국은 흑해중동북아프리카이탈리아와 교역하였으며 발트해와도 남북으로 교역하였다일칸국은 타브리즈에서 중동지중해중앙아시아인도양과 연결되었다.

     

    새로운 전쟁 방식

     몽골군은 기마궁수에 기반한 단일한 전술을 사용하였다고 한다복합궁을 들고 몰이사냥처럼 기동하며 화력을 적에게 투사하였다정찰포위치고 빠지기심리전기만에 능하였고 적의 지휘부를 제압하는 것을 중시하였다.

     점령지에서 강제적자발적으로  기술자들이 제작한 투석기는 야전이나 공성전모두에 사용되었다몽골이 사용한 만도는 기병도로서 전세계에 확산된다.

    화약은 동아시아에서의 전투에만 제한적으로 사용되었다일본 공략에는화약 무기가 사용된 증거가 있다. 반면 중동에서는 사용된 기록이 없다. 전장에서 화약을 사용하기에는 단점이 많았기에 사용되지 않았음을 추론할 수도 있다. 중국에는화약 재료를 수급할  있지만  외의 지역에선 원료의 산지를 찾기가 어려웠외부에서 운송하기도 까다로웠다. 화포는 무거웠고 화약은 취급하기 까다로웠다. 화포는 17세기 후반이 되어서야 야전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그 이전에는 불편을 감수하며 도입할 유인이 없었다예외적으로 화약제국이라 불리는 오스만사파비러시아 등은 화기를 적극 활용하였는데 이유는 유목민과 정주민 양쪽을상대해야 했기 때문이다.  어쨋든 몽골에 의해 화약이 확산된 것은 사실이다.

    동유럽의 루시공국은 몽골을 모방하였다  가장 성공적이었던 모스크바 공국은 18세기 중후반까지도 초원의 전쟁에서 간접적(코사크인타타르인칼미크인 )으로 기마궁수를 활용하였다.


    저자는 몽골의 영향을 현대로 확장한다리델하트풀러의 몽골 연구가 현대전의기원이 되었고러시아의 투하쳅스키의 종심작전 이론 역시 몽골의 영향을 받았다는것이다 증거로 <몽골족의 전술과 중앙아시아 민족>이라는 코사크 기병전술의 책이 러시아 제국~붉은군대에 사용되었다는 점을 든다게다가 투하쳅스키를 숙청하고 탱크 군단을 해체한 스탈린을 무함마드 2세에 비유한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정당하지 않다먼저 소련은 세계 최대 규모의 전차를 보유하고 있었고 전차 군단을 해체한 것은 단순히 1차대전으로 회귀한 것이 아니라 전간기의 분쟁(겨울전쟁스페인내전 )에서 전차가 효과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늦었긴 하지만 독소전쟁 직전엔 다시 군대를 원래대로 재편하고 있었다둘째투하쳅스키가 직접 몽골의 전술에 영향을 받았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부족하다러시아의 군사발전은 서쪽 방면을 중심으로 발전하였다단지 코사크 전술에 관한 책이 연구대상이 되었다는 점만으로 몽골의 영향을 단언하기 어렵다소련에는 2차대전까지 기병대가 존재하였고, 이들의 활용을 위해 연구되었을 수도 있다. 예를 들면 1920년대 중앙아사아의 반란을 제압할 때도 효과적이었다.

     

     몽골의 행정

    칸은 전지전능하지만 선출직이다칸과 일족들은 오르도(궁정막사) 가지는데자율성을 가지면서 칸에게 복종한다개인적으로 몽골의 특징  가장 눈에 띄는 점은이들이 인적자원을 통해 제국을 운영했다는 점이다몽골이 밍간(천호제)으로 조직된 것은 유명하다칸의 친위대인 케식은 복속한 지역의 고관의 형제나 자손도 복무하게 하여유사시에 반란을 일으킨 친족을 대체한다케식은 평소에는 칸의 시중을들며 비천한 일을 한다개인적인 관계로 칸과 유대를 맺고 충성을 담보받으며칸은이들의 능력을 파악했다가 적절한 임무에 투입한다임무가 끝난  다시 케식으로복귀한다.

     

    맑은 고딕";">흑사병

    흑사병은 초원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청결하지 않은 유목민들이 사냥한 포유류에는 벼룩이 살고 있었고 교역로를 통해 결국 중국중동유럽에 전파된다. 1343 무역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주치 칸국은 크림반도의 카파를 포위한다흑사병은 동쪽에서  상인이나 군인들에 의해 칸의 진영에 유행한다불결한 시신을 투석기로 카파 성내로 투척하여 처리한다당황한 상인들은 배를 타고 항구 탈출하였고유럽 곳곳에 퍼뜨리며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중국중동에서의 흑사병은 제국을 뒤흔들었다정부의 권위가 붕괴하였고유목민이 감소하여 피정복민에 대한 통제력이크게 줄었다특히 행정을 인적 자원에 의존했기 때문에 이는 치명적이었을 것이다교역이 급감하였고 기술자들이 사망하였다결과적으로 분열된 몽골제국은 사라지거나 더욱 잘게 쪼개졌다.


    맑은 고딕";">총평

    책을 읽기 전에는 분량이 적어서 괜찮을까 걱정하였는데읽고 나선 몽골이라는주제를 개괄적이고 알차게 다루고 있음 느꼈다. 4칸국에 대해서도 각각 공평하게 지면을 할애하고, 교역전쟁행정제도종교흑사병문화교류 등을 종합적으로  다루고 있다

    저자는 서문에서 몽골의 영향을 과장하면  됨을 강조하듯이 몽골의 유산을 지나치게 강조하지 않는다소위 후계국가들 대해서도 단순한 영향력 이상으로 비약하지는 않는다다만 현대의 군사적 영향을 서술한 부분에서 흠이 보여 아쉬움이 크다.

     편집 측면에서도 번역이 매끄럽고 일관성이 있다몽골제국 이후의 유라시아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반드시 읽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같이 만한 책

    <상상의 왕국을 찾아서>: 칭기스의 교환보다 앞선 시기의 초원의 역사를 다룸.

     

    <권력과 >: 유라시아를 7 권역으로 나누어 칭기스칸 이후의 세계를 포괄적으로설명.

     

    <중앙유라시아의 역사>

     

    <새로운 러시아의 역사>

     

    <유럽 이전의 아시아>: 관념적으로 쓰여 있어 어렵지만 이슬람에서 중국까지 방대한시공간을 이전과 다른 독특한 관점으로 서술.

     

    2020. 7.13 맞춤법 및 문장 일부 수정


     몽골은 다양한 영토에서 활동하였기 때문에 그들을 묘사한 삽화도 화풍이 다양하다.


     본 서평은 부흥카페의 이벤트에 응모하여 작성하였습니다.

     

     

  • 칭기스 교환 | km**s326 | 2020.08.21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그 동안 몽골 제국에 관한 책은 대부분 정복전쟁이나 정치와 같은 부분에 치중한 책이 대부분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티모시...

    그 동안 몽골 제국에 관한 책은 대부분 정복전쟁이나 정치와 같은 부분에 치중한 책이 대부분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티모시 메이가 쓰고 권용철이 옮긴 이 책은 기존의 책과는 많은 부분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세계화적인 관점을 가지고 몽골 제국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다. 이 책이 몽골 제국의 정복 과정이나 전투 그리고 정치에 대하여 다루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세계화적인 교류의 관점에서 몽골 제국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매우 흥미로운 점이다. 몽골 제국에 대하여 보다 색다른 관점을 가지고  알고 싶은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   1. 최근 아주 흥미로운 도서가 출판되었습니다. 제목은 [칭기스의 교환: 몽골제국과 세...

    mongol1.jpg

     

    1. 최근 아주 흥미로운 도서가 출판되었습니다. 제목은 [칭기스의 교환: 몽골제국과 세계화의 시작]입니다. 역사학자 티모시 메이가 저술한 책으로, 국내에서는 몽골사 전문가 권용철 씨가 번역했습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몽골과 중앙유라시아 역사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어나서 관련 책들이 다수 출판되고 있는데,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과거 중앙유라시아 역사의 신이라 불린 김호동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별명이 호동 칸이라고 하죠)를 필두로하여 몽골제국 관련 책들이 다수 출판되었는데, 이에 다른 신진 학자들도 대중적인 교양서를 다수 출판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출판된 것들만 해도 러시아를 지배한 [킵차크 한국(the Golden Horde)]을 집중적으로 다룬 책이 있고, 또는 몽골제국이 붕괴하면서 탄생한 후계국가들, 그리고 이들이 어떻게 몽골의 유산을 이어받았는지를 설명하는 [몽골제국의 후예들]이라는 책도 출판되었습니다. 이 흐름 중에서 출판된 가장 최신의 도서가 바로 [칭기스의 교환]입니다. 

    2. 먼저 제목은 정말 섹시하게 잘 지은 책인 거 같습니다. 몽골제국이 세계에 어떤 임팩트를 주었나와 같은 진부하기 짝이 없는 문장을 사용하기 보다 저자는 이런 클리셰를 피하기 위해 일부러 [칭기스의 교환]이라고 명명했다고 합니다. 그는 콜럼버스의 교환(Columbian Exchange)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하는데, 적절한 표현인 것으로 보입니다. 콜럼버스의 교환이란, 말과 병균이 신대륙으로 건너가고 토마토 감자 코코아 같은 작물들이 구대륙으로 넘어가는 일련의 사건들을 포괄하는 말로, 세계사의 전환점이 되었다는 것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저자는 몽골 세계제국이 콜럼버스의 교환만큼이나 세계사에 큰 분기점이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저자가 제기한 또 한 가지 지적사항이 있는데 굉장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몽골제국은 세계제국이었고, 몽골제국에 대한 기록은 몽골어는 물론 위구르어, 페르시아어, 아랍어, 슬라브어, 티벳어, 중국어(한문) 등 굉장히 많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어느 한쪽 사료에만 의존하여 몽골제국을 해석하는 것은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최근 학계에서는 각 분야의 전문가, 가령 동아시아의 원나라 전문가, 페르시아 및 중앙아시아 전문가, 러시아 및 유라시아 전문가 들 간의 협업으로 몽골제국을 보다 입체적이며 포괄적으로 조망하려고 하는 시도가 있다고 합니다. 

    4. 본 책의 1부는 몽골제국의 탄생과 팽창에 대한 일반적인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칭기스칸이 누구였는지, 그가 어떻게 주변 부족들을 북속시켰는지, 그의 후계자들이 어떻게 중동을 정복하고, 중앙아시아를 정복하고 또는 유럽 앞마당까지 진출하였는지 등을 서술하는데, 이 부분은 아마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대부분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들일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부분인데, 몽골제국이라는 국가가 아직 생소한 독자에게는 분명 중요한 인트로일 것입니다.

    5. 이 책의 강점은 2부에서 설명하고 있는 몽골제국의 경제, 무역, 행정, 종교 등 실제로 칭기스의 교환이 이루어지는 부분입니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경제에 대한 관념]입니다. 몽골의 칸들은 칭기스칸 본인부터 시작해서 상업에 대해 실용적인 관점을 갖고 있었고, 상인들을 우대하였습니다. 약간 과장에서 말하자면 오늘날 국가들이 해외자본유치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듯이 몽골의 칸들은 상인들을 계속 끌어들이고자 노력했고, 동서를 상인들의 카라반에 [개인재산으로 투자]했다고 합니다. 특히 우구데이 칸은 상인들에게 높은 값을 쳐주면서 그들의 물건을 시중가보다 높게 쳐주면서 구매했다고 하는데, 꽤 놀라운 일입니다. 동아시아적 관점에서 보자면 국왕에게 [개인재산]이란 게 없고, 국왕이 상인으로부터 물건을 구매하거나 또는 대출을 받는다는 개념 자체가 없는데, 몽골의 군주들은 그런 점에서 오히려 서양의 군주들과 비슷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물론 나중에는 국가권력과 일부 대상인들이 결탁하여 독점상인으로 군림하여 여러 폐단이 나타났다고 하는데, 어쨌든 꽤나 신선한 에피소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6. [사유재산] 관련 또 한가지 재미있는 점은 이러한 관념이 심지어 내전이 벌어졌을 때도 유지되었다는 점입니다. 몽골제국이 분열하고 칸들이 서로 전쟁을 벌일 때조차, A 칸국에 있는 칸은 B 칸국에 있는 자기 재산에서 나오는 수입을 계속 제공받을 수 있었고는 반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를 들자면 한국과 일본이 전쟁을 벌인다고 해도 한국인의 재산이 일본에서 압류당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과 같은 일이죠. 

    7. 몽골제국의 행정 또한 인상깊은 부분입니다 왜냐하면 몽골인들은 어느 한 민족에 의존하지 않고, 다양한 민족들을 등용하여 행정을 꾸렸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처음 제국으로 부상했을부터 제국의 행정은 몽골인이 아니라 거란인 황족 야율초재가 도맡았습니다. 여담이지만 거란은 본래 키타이라고 발음하는데, 요나라 때부터 대제국을 이룩해 북중국을 지배했던 민족입니다. 그래서 키타이가 곧 중국을 의미하게 되는 말이 되었고, 러시아를 포함한 슬라브어권에서는 중국을 여전히 키타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참고로 홍콩의 캐세이퍼시픽(Cathay Pacific)항공의 Cathay도 키타이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이러한 기조는 쿠빌라이 칸 시대까지 이어졌고, 그는 중원을 정복한 이후에도 많은 수의 색목인을 통해 제국을 다스렸습니다. 베네치아인 마르코폴로도 그 중 한명이었죠. 그리고 쿠빌라이가 건설한 도시 칸발리크(Khanbaliq)는 무슬림이 건설한 도시였고, 한족은 이를 대도(大都)라고 불렀으며 이는 후일 북경이 되었습니다.  

    8. 몽골제국은 한편 종교적으로 상당히 개방된 제국이었습니다. 그들은 칸의 권위를 위협하지 않는 선에 그 어떤 종교도 수용했습니다. 이슬람, 기독교(네스토리우스파, 그리스정교회, 로마가톨릭 등), 불교 등. 심지어 각 교파의 사제들을 불러 어느 신앙이 가장 우월한지 토론하게까지 했다고 합니다. 결국 최종적으로 몽골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고 몽골인들의 영적 구심점이 된 것은 티벳불교였지만, 쿠빌라이 시대까지만 해도 기독교 또한 꽤나 세력을 형성할 수 있었습니다. 재미있는 부분인데, 의외로 몽골제국 상층부의 귀족부인들 중 적지 않은 수가 기독교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기독교에 호의적인 관심을 보인 칸들도 종종 있었고, 쿠빌라이 또한 칸발리크(북경)에 주재한 프란치스코회 소속의 로마가톨릭 선교사에게 자네의 신앙이 그렇게 좋은거라면 선교사 100명을 한번 보내오라라고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비록 그러한 파견은 성사되지 않았지만, 오늘날 북경에 최초의 로마가톨릭관구가 생긴 것은 쿠빌라이 치세 때였습니다. 그리고 당시 가톨릭 선교사들은 신약성서를 위구르어(또는 위구르문자 - 당시 몽골인들은 위구르문자를 사용)로 번역했는데, 북경에 거주하는 사람이 위구르어로 성서를 번역한다는 것은 당시 북경에서는 위구르어가 국제어(lingua franca)였다든지 또는 한족을 상대로 커뮤니케이션을 할 필요가 없었다든지 등의 이유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10.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몽골제국의 탄생은 세계사의 탄생이었습니다. 역사상 처음으로 유라시아 전체가 하나의 교통망으로 연결되어 물자와 사람이 그 어느 때보다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었고, 새로운 발명들 또한 아주 짧은 시간에 한쪽 끝에서 반대쪽 끝가지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것이 화약과 나침반 등이죠. 그리고 세계 전체를 조망하는 역사를 탄생시켰는데, 몽골제국의 궁중역사가 라시드 웃딘은 [집사]라는 역사서를 저술하였고, 여기에는 몽골의 역사뿐만 아니라 몽골이 정복한 무수히 많은 민족들의 역사까지, 심지어 가보지도 못한 서유럽의 역사까지 망라하려고 했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아르메니아에서 투르크인들과 몽골인들을 상대한 아르메니아계 가톨릭 귀족은 훗날 프랑스 파리에 건너가 프랑스어로 [동방의 역사]를 저술하였고 중국(키타이), 돌궐, 호레즘, 쿠마니아, 인도, 페르시아 등 14개국의 역사를 포함했을뿐만 아니라 몽골의 역사도 포함하였고, 마지막으로 서유럽과 몽골의 동맹을 통해 성지를 다시 탈환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몽골세계제국, 우리나라와도 사실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고려왕국과 고려국왕의 위치가 무엇이었고, 세계사적 관점에서 고려의 역할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 칭기스의 교환 | yj**o | 2020.07.24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이 책을 한줄로 평가한다면 몽골역사에 대한 서구학계의 연구사를 총괄하여 볼 수 있는 좋은 개론서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 전문...

    이 책을 한줄로 평가한다면 몽골역사에 대한 서구학계의 연구사를 총괄하여 볼 수 있는 좋은 개론서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 전문역자가 작업을 한 덕분에 책에서 크게 오해할 만한 오역도 찾아볼 수 없어 책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이 책은 서장을 포함하여 총 11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3달 정도에 나눠서 진행되는 대학교 수업을 생각하면 저자는 이 책을 일종의 교안으로 작성하였지 않나 생각이 들 정도로 각 장의 분량과 내용들은 한 시수 정도로 잘 짜여져 있다.

     

    서장은 몽골사에 대한 연구사적 전개를 요약하여 저술하고 있다. 이미 2012년 출간 당시의 약사이니 지금 최신의 학계 동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한자문화권의 사료를 주로 접하고 있는 한국인의 입장에서 서양에서는 어떤 사료들을 보고 연구하고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1~3장은 몽골제국에 대한 정치적 연대기를 요약하여 다루고 있다. 칭기스칸에서부터 그 직계 후손들, 나아가 몽골제국으로부터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수많은 이후-국가들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의 장점은 이러한 연대기적 서술에 지나치게 몰입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적당한 수준의 분량으로 몽골제국의 정치적 전개과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어 시공간적 광범위함에서 오는 압박을 상당히 덜어내고 있다.

     

    4장은 무역, 5장은 전쟁사적 영향, 6장은 행정, 7장은 종교, 8장은 유례없던 흑사병의 유행과 관련된 논의, 9장은 인구사적 변화, 10장은 문화교류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각 장들의 충실성은 논외로 하고, 구대륙과 신대륙 사이에서 있엇던 콜럼부스의 교환에 비견할 만한 구대륙 내에서의 칭기스의 교환이 세계사에 과연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해서 저자가 다루고자 한 주제의 범위는 매우 광범위하다. 그 나름의 이유도 충실하다. 각 주제들이 포괄하고 있는 영역들은 전사회적이며, 각각의 부분에서 어떠한 변화들이 동반되었는지도 이해하기 쉽게 서술되어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아무래도 제일 중요한 경제적 교역과 그에 수반된 문화교류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피상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 아쉽다. 분량상의 제약과 더불어 저자가 접할 수 있었던 사료의 언어적 한계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제목인 칭기스의 교환이 주는 울림에 비해서 정작 교환의 내용이 지나치게 요약되어 있다는 느낌을 감출 수 없다.

     

    그럼에도 저자의 서술이 매우 인상적인 부분이 있다. 콜럼부스의 교환에 따른 신세계와 구세계의 교환은 결과적으로 신세계의 정치체제의 완전한 파괴로 귀결되었다. 그러나 칭기스의 교환의 결과는 어떠했는가? “가장 하부 단위의 측면에서 본다면, 몽골 지배하의 아르메니아와 만주에서 일어난 일들은 같지 않았다. 몽골 정부가 본래부터 유연하여 문화적, 지역적 차이를 수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p.254) 범아시아적 상부구조를 설치하면서도 몽골제국은 제국적인 획일화된 행정체제는 수립하지 못했다. 각 지역적 자치성의 위에 상부구조물을 설치했을 뿐이었다. 이러한 정치적 통합의 결과, 정복이 빨랐던 만큼 그 하부구조는 유지되었다. 그렇다고 칭기스의 정복이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상부구조에 따라 하부구조 또한 재편되었으며, 지역적인 한계를 넘어서 여러 새로운 정치적 구조물들이 옮겨 다녔다. 군사조직, 칭기스의 혈통에 기반한 정치적 정당성, 효율적인 무역관리체계들은 칭기스칸과 그 후예들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오랜 시간 영향을 미쳤다. 그것들이야말로 진정한 칭기스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한가지 이 책에서 다루지 않은 주제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면, 그것은 칭기스칸의 파괴가 가져온 환경사적 영향에 대한 것이다. 질병-인구의 측면에서 다루고 있는 부분은 분명 유의미하지만, 칭키스칸의 정복이 함축하고 있는 중세 환경사적 영향력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 부분이 소략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본 서평은 부흥 카페 서평 이벤트(https://cafe.naver.com/booheong/195304)에 응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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