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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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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9*188*27mm
ISBN-10 : 8932035636
ISBN-13 : 9788932035635
빛의 과거 중고
저자 은희경 |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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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 3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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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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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이라는 필터를 거쳐 오늘, 나의 이야기가 되는 그때 그 시절의 이야기! 은희경의 장편소설 『빛의 과거』. 《태연한 인생》 이후 7년 만에 선보이는 장편소설로, 깊이 숙고해 오랫동안 쓰고 고쳐 쓴 작품이다. 갓 성년이 된 여성들이 기숙사라는 낯선 공간에서 마주친 첫 다름과 섞임의 세계를 그려냈다. 기숙사 룸메이트들을 통해 다양하며 입체적인 여성 인물들을 제시하고 1970년대의 문화와 시대상을 세밀하게 서술한다.

2017년, 중년 여성 김유경은 오랜 친구 김희진의 소설 《지금은 없는 공주들을 위하여》를 읽으며 1977년 여자대학 기숙사에서의 한때를 떠올린다. 같은 시공간을 공유했으나 전혀 다르게 묘사된 김희진의 소설 속 기숙사 생활을 읽으며, 김유경은 자신의 기억을 되짚는다. 기숙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룸메이트다. 타의에 의해 임의로 배정된 네 명이 한 방을 쓰는데, 임의의 가벼움에 비해 서로 주고받는 영향은 터무니없이 크다.

국문과 1학년 김유경의 322호 룸메이트는 화학과 3학년 최성옥, 교육학과 2학년 양애란, 의류학과 1학년 오현수다. 최성옥과 절친한 송선미의 방인 417호 사람들(곽주아, 김희진, 이재숙)과도 종종 모이곤 한다. 1977년의 이야기는 3월 신입생 환영회, 봄의 첫 미팅과 축제, 가을의 오픈하우스 행사 등 주요한 사건 위주로 진행된다. 김유경의 서사가 굵직하게 이어지는 사이사이, 322호와 417호의 룸메이트인 일곱 여성들의 에피소드도 다채롭게 전개된다.

김유경은 말더듬증이라는 약점 때문에 자신의 욕망을 내리누르며, 말과 행동이 필요한 순간 입을 다문다. 회피를 방어의 수단으로 내세우면서 자신을 끊임없이 세상의 어중간한 어디쯤에 위치시키려 한다. 한편 누군가는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다. 무리에 휩쓸리지 않고 번거로움을 감수하며 취향을 조용히 발전시키는 오현수, 남을 끌어내려 항상 주인공이 되길 바라는 김희진, 그와 비슷하지만 남의 눈이 아니라 무엇보다 자신의 욕구 충족이 중요한 양애란이 그렇다.

지향점과 실제의 삶에 괴리가 심한 사람도 있다. 최성옥처럼 자신이 선택한 남성에 의해 그 괴리가 발생하기도 하며, 끊임없이 다른 사람을 자신의 입맛에 맞추어 교정하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매사 주요하게 지적했던 바로 그 지점에서 발을 헛디뎌버리는 곽주아 같은 경우도 있다. 그들은 치졸하고 나이브하며, 소탈하기도 섬세하기도 하다. 선량하고도 얄미우며 까칠하면서도 유약하다. 마치 오늘의 우리처럼. 회피를 무기 삼아 살아온 한 개인이 어제의 기억과 오늘을 넘나들면서 자신의 민낯을 직시하여 담담하게 토로하는 내밀한 문장들은, 삶에 놓인 인간으로서 품는 보편적인 고민을 드러내며 우리 자신을 바라보게 한다.

저자소개

저자 : 은희경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소설 「이중주」가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타인에게 말 걸기』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상속』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중국식 룰렛』, 장편소설 『새의 선물』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그것은 꿈이었을까』 『마이너리그』 『비밀과 거짓말』 『소년을 위로해줘』 『태연한 인생』이 있다. 문학동네소설상, 동서문학상, 이상문학상, 한국소설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이산문학상, 동인문학상,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했다.

목차

2017
1977―3월, 4월
1977―5월, 6월, 7월
2017
1977―9월, 10월, 11월
1977~2017

책 속으로

그녀에게는 사람을 대할 때 미묘한 권력관계를 만드는 습성이 있었다. 끊임없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관계의 자장磁場을 만들어내고 우월감과 피해 의식을 번갈아 써가며 그것을 정당화했다. 거기에는 증인이 필요했다. 결국 나로 하여금 위성처럼 그녀의 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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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는 사람을 대할 때 미묘한 권력관계를 만드는 습성이 있었다. 끊임없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관계의 자장磁場을 만들어내고 우월감과 피해 의식을 번갈아 써가며 그것을 정당화했다. 거기에는 증인이 필요했다. 결국 나로 하여금 위성처럼 그녀의 궤도를 따라 돌며 그녀라는 일방적이고 변덕스러운 광원을 반사하도록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 그녀가 만들어내는 전도되고 돌발된 상황은 마치 단조로운 여정에 가로놓인 과속방지턱처럼 내 인생에 작은 잡음을 만들며 짧게나마 그것을 변속했다. 그녀가 나의 가장 오래된 친구인 것은 어쩌면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녀가 속도를 떨어뜨릴 때의 반동으로 나는 흔들렸으며 그때마다 내가 회피해왔던 것들이 그녀에게로 가서 어떤 파국을 맞이하는지 목도하는 기분이었다. 계속해서 다음 권이 출간되는 문제집 시리즈를 풀어가듯 주어진 생을 감당하며 살아왔을 뿐이지만 어느 순간 나는 그녀에게서 나의 또 다른 생의 긴 알리바이를 보았던 것이다. (‘2017’, pp. 12~13)

여전히 나는 무력하고 방어적인 회색 지대에 갇혀 있었다. 나 자신이 실망스럽고 그러다 보니 의욕이 없어 방치하게 되고, 결국 해야 할 것을 제대로 못 해 무력감에 빠지고, 무력감은 쫓김과 불안을 낳고 그래서 자신감을 잃은 끝에 제풀에 외로워지고, 그 외로움 위에 생존 의지인 자존심이 더해지니 남들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하고, 그러자 곧바로 소외감이 찾아오고, 그것이 또 부당하게 느껴지고, 이 모든 감정이 시간 낭비인 것 같아 회의와 비관에 빠지는 것, 그 궤도를 통과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이른바 청춘의 방황만이 아니었다.
지난 두 달 동안 나는 내 앞의 문을 열지 못하고 번번이 과거의 나로 굴러떨어지곤 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세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 세계의 부당한 규율에 복종했던 미성년 그대로였다. (‘1977―3월, 4월’, p. 86)

모범생들은 눈치를 본다. 문제를 낸 사람과 점수를 매기는 사람의 기준, 즉 자기를 어디에 맞춰야 할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정답을 맞히려는 것은 문제를 내고 점수를 매기는 권력에 따르는 일인 것이다. 그렇게 그저 권력에 순종했을 뿐이면서 스스로의 의지로 올바른 길을 선택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모범생의 착각이다. 그 착각 속에서 스스로를 점점 더 완강한 틀에 맞춰가는 것이다. 다행히 나는 진짜 모범생은 아니었다.
나는 부모와 고향을 떠나는 순간 거짓 순종과 작별할 생각이었다. (‘1977―5월, 6월, 7월’, pp. 116~17)

그녀에게는 그 시절 내가 겪어야 했던 방식과는 전혀 다른 ‘다름’과 ‘섞임’의 세계가 있었다.
그 시

절 우리에게는 수많은 벽이 있었다. 그 벽에 드리워지는 빛과 그림자의 명암도 뚜렷했다. 하지만 각기 다른 바위에 부딪쳐 다른 지점에서 구부러지는 계곡물처럼 모두의 시간은 여울을 이루며 함께 흘러갔다. 어딘가에 도달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때 우리 모두는 막연하나마 앞으로 다가올 시대는 지금과 다를 거라고 믿었다. (‘2017’, p. 193)

고향 친구들은 만나고 싶지 않았다. 만나면 으레 듣게 되는 변했다거나 변하지 않았다는 말, 둘 다 싫었다. 예전에 알았던 익숙한 풍경 모두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저만치 멀어져 있는 것 같았다. 아니 내가 그곳으로부터 밀려났거나 겉도는 느낌이었다. 고향도 아니고 고향이 아닌 것도 아니었으며 집도 아니면서 집이 아닌 것도 아니었다. […]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불현듯 깨달았다. 첫사랑의 죽음에는 애도 기간이 필요 없다. 나에게 그 여름은 주인공이 죽어버려서 더 이상 뒷얘기가 중요하지 않게 된 비극의 에필로그 같은 것이었다. 아니 주인공의 죽음과 상관없이 비극에는 에필로그가 필요 없다. 잊는 것만이 완전한 애도이다. 스무 살 나의 여름과 함께. (‘1977―9월, 10월, 11월’, pp. 233~34)

비관은 가장 손쉬운 선택이다. 나쁘게 돌아가는 세상을 저항 없이 받아들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에너지가 적게 소모되므로 심신이 약한 사람일수록 쉽게 빠져든다. 신체의 운동이 중력을 거스르는 일인 것처럼, 낙관적이고 능동적인 생각에도 힘이 필요하다. 힘내라고 할 때 그 말은 낙관적이 되라는 뜻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낙관과 비관의 차이는 쉽게 힘을 낼 수 있는지 아닌지의 차이인지도 모른다. 역설적인 점은 비관이 더 많은 희망의 증거를 요구한다는 사실이다. 어둡고 무기력하게 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비관을 일삼는 사람이야말로 그것이 깨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래서 자신 같은 비관론자도 설득될 만큼 강력한 긍정과 인내심을 요구하게 되고, 결국 유일하게 그 희망을

줄 수 있는 사랑하는 사람을 괴롭히게 된다. (‘1997~2017’, pp. 320~21)

종종 내가 왜 이처럼 비관적인가 생각해볼 때가 있다. 어떤 일이든 내가 주도하기를 피해 비껴서 있다 보니 누군가의 처분을 기대하는 입장이 되게 마련이다. 그런데 그 누군가를 미리부터 불신하거나 혹은 내게 호의적이지 않을 거라고 단정해버리는 건 또 왜 그럴까. 혹시 지금까지 나를 왜곡시킨 힘들을 폭력이라고 생각하기보다 피할 수 없는 부당함이라고 받아들여버리는 비겁함이 세상에 대한 비관으로 나타나는 것인가.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수동성이야말로 비관보다는 낙관의 도움을 바라는 태도일 텐데 말이다. (‘1997~2017’, p. 329)

어차피 우리는 같은 시간 안에서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들이었고 우리에게 유성우의

밤은 같은 풍경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 책에서 말하듯 과거의 진실이 현재를 움직일 수도 있다. 과거의 내가 나 자신이 알고 있던 그 사람이 아니라면 현재의 나도 다른 사람일 수밖에 없다. (‘1997~2017’, p. 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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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어떤 시간은 다르게 적힌다 당신에게도 있는, 그런 기억을 만나다 “누구도 과거의 자신을 폐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편집하거나 유기할 권리 정도는 있지 않을까.” 한국 문학의 빛나는 고유명사, 은희경의 신작 『빛의 과거』가 출간되었...

[출판사서평 더 보기]

어떤 시간은 다르게 적힌다
당신에게도 있는, 그런 기억을 만나다

“누구도 과거의 자신을 폐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편집하거나 유기할 권리 정도는 있지 않을까.”

한국 문학의 빛나는 고유명사, 은희경의 신작 『빛의 과거』가 출간되었다. 『태연한 인생』(2012) 이후 7년 만에 선보이는 장편소설로 깊이 숙고해 오랫동안 쓰고 고쳤다. 2017년의 ‘나’는, 작가인 오랜 친구의 소설을 읽으면서 1977년 여자대학 기숙사에서의 한때를 떠올린다. 같은 시간을 공유했지만 서로가 기억하는 ‘그때’는 너무나 다르다.
은희경은 갓 성년이 된 여성들이 기숙사라는 낯선 공간에서 마주친 첫 ‘다름’과 ‘섞임’의 세계를 그려낸다. 기숙사 룸메이트들을 통해 다양하며 입체적인 여성 인물들을 제시하고 1970년대의 문화와 시대상을 세밀하게 서술한다. 무ㄱ엇보다 회피를 무기 삼아 살아온 한 개인이 어제의 기억과 오늘을 넘나들면서 자신의 민낯을 직시하여 담담하게 토로하는 내밀한 문장들은, 삶에 놓인 인간으로서 품는 보편적인 고민을 드러내며 독자 자신을 바라보게 한다. 그렇게 ‘그때 그 시절’의 이야기는 ‘은희경’이라는 필터를 거쳐 ‘오늘, 나’의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각자의 인생 속에서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감독이 됩니다. 그리고 관계하는 세계를 우리 자신의 눈으로 연출합니다. 내가 다른 감독의 작품 속에서 나도 모르게 주인공에게 상처를 입히는 조연으로 활약했던 순간이 대체 몇 번이나 있었을까, 이 책을 덮으며 저는 결코 알 수 없을 저의 필모그래피를 조용히 가늠해보았습니다. 신요조(책방 무사)

“자기 몫의 삶을 살아내고 있을” “안 보이는 대다수”의 서사를 되살려낸 이 소설을 다 읽고 나면 다소 쓸쓸한 질문이 남는다. 그 많던 여성 대학생들은 모두 어디로 간 걸까. 그들이 꾸던 꿈은 어떤 자취를 남기며 사그라들었을까, 혹은 피어났을까. 차경희(고요서사)

은희경을 읽는다는 것은 언제나 한국 현대 여성의 목소리를 듣는 일이다. 나와 닮은 목소리를 드디어 만나 그이의 차분하지만 낯설고 독보적인 말에 과녁처럼 관통당하는 일이다. 정세랑(소설가)

은희경이 1970년대 말 서울 어느 여자대학교 기숙사 이야기를 썼다고 하면 다음과 같은 기대를 품는 것은 당연하고 정당하다. 첫째, 당대의 정치적 공기와 문화적 풍속도를 생생하게 복원해낼 것이다. 둘째, 여성의 경험적 진실에 충실한 ‘입사 이야기’의 전형을 보여줄 것이다. 셋째, 또렷한 젠더 렌즈에 포착된 한국 근대성의 성별을 폭로할 것이다. 넷째, 적절한 관념어와 압착된 구문으로 대상을 틀어쥐는, 악력握力 넘치는 문장이 매력적일 것이다……
그리고 이변은 없다. 이번에도 우리의 기대는 어김없이 충족된다. 신형철(문학평론가)

그때 그 여자들,
사적이며 공적인 ‘나’의 이야기
이야기는 중년 여성 김유경이 오랜 친구 김희진의 소설 『지금은 없는 공주들을 위하여』를 읽게 되며 시작된다. 대학 동창인 그들은 “절친하다거나 좋아하는 친구라고는 말할 수 없”고 “끊어진 건 아니지만 밀착될 일도 없”는, 어쩌다 보니 가장 오랜 친구가 된 묘한 관계다. 같은 시공간을 공유했으나 전혀 다르게 묘사된 김희진의 소설 속 기숙사 생활을 읽으며, 김유경은 자신의 기억을 되짚는다.
기숙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룸메이트다. 타의에 의해 임의로 배정된 네 명이 한 방을 쓰는데 ‘임의’의 가벼움에 비해 서로 주고받는 영향은 터무니없이 크다. 국문과 1학년 김유경의 322호 룸메이트는 화학과 3학년 최성옥, 교육학과 2학년 양애란, 의류학과 1학년 오현수다. 최성옥과 절친한 송선미의 방인 417호 사람들(곽주아, 김희진, 이재숙)과도 종종 모이곤 한다.
1977년의 이야기는 3월 신입생 환영회, 봄의 첫 미팅과 축제, 가을의 오픈하우스 행사 등 주요한 사건 위주로 진행된다. 김유경의 서사가 굵직하게 이어지는 사이사이, 322호와 417호의 룸메이트인 일곱 여성들의 에피소드도 다채롭게 전개된다. 그들은 각자 “성년이 되어가는 문으로 들어가” “낯선 세계에 대한 긴장과 혼란과 두려움 속에서 자기 인생을 만들어”간다(2016년 작가 인터뷰). 김유경은 말더듬증이라는 약점 때문에 자신의 욕망을 내리누르며, 말과 행동이 필요한 순간 입을 다문다. 회피를 방어의 수단으로 내세우면서 자신을 끊임없이 세상의 어중간한 어디쯤에 위치시키려 한다. 한편 누군가는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다. 무리에 휩쓸리지 않고 번거로움을 감수하며 취향을 조용히 발전시키는 오현수, 남을 끌어내려 항상 주인공이 되길 바라는 김희진, 그와 비슷하지만 남의 눈이 아니라 무엇보다 자신의 욕구 충족이 중요한 양애란이 그렇다. 지향점과 실제의 삶에 괴리가 심한 사람도 있다. 최성옥처럼 자신이 선택한 남성에 의해 그 괴리가 발생하기도 하며, 끊임없이 다른 사람을 자신의 입맛에 맞추어 교정하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매사 주요하게 지적했던 바로 그 지점에서 발을 헛디뎌버리는 곽주아 같은 경우도 있다. 그들은 “치졸하고 나이브”(「작가의 말」)하며, 소탈하기도 섬세하기도 하다. 선량하고도 얄미우며 까칠하면서도 유약하다. 마치 오늘의 우리처럼.

여러 문학평론가가 언급하듯, 한국 문학이 어떤 ‘인물’을 통해 인간과 인간의 근원적인 고민을 드러낸다고 할 때 많은 경우 그 ‘인물’ 앞에는 은연중 (남성)이라는 괄호 속 함의가 있었다. 여성들은 문학 속 ‘(남성) 인물’에 젠더를 교차해 자신을 이입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여성의 경험에 중실한 입사 이야기initiation story”(신형철)인 『빛의 과거』는 여성들의 다양한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내면서 이입의 거리를 좁힌다. 그렇기에 “은희경을 읽는다는 것은 언제나 한국 현대 여성의 목소리를 듣는 일”이 된다. “나와 닮은 목소리”(정세랑)로 쓰인 이 소설을 읽고 나면 내 얼굴과 닮아 있는 소설 속 그들의 안부를 묻게 되는 것이다. “그 많던 여성 대학생들은 모두 어디로 간 걸까”(고요서사 차경희).

지금 눈앞에 도착한 기억의 빛
‘미지를 통과해 이제야 내게로 도착한 빛이었다’
『빛의 과거』에는 1970년대의 정치?문화적 시대상이 뚜렷하게 드러나 있다.
그때 학생들은 독재 정권에 맞서 전단을 돌리고 어용 총장 임명에 항의해 검은 리본을 달았다. 학생운동을 하다 구속 ? 구금되는 일이 다반사였다. 김유경은 치열하게 투쟁하지 않지만, 매사에 튀지 않고 나서지 않으며 한 발을 빼는 그의 삶의 방식 역시 돌고 돌아 시대 상황과 맞닿아 있지 않을까. 김유경이 ‘모범’ 혹은 ‘평범’이라는 태도를 걸치기 시작한 큰 원인은 말더듬증이다. 군사 훈련을 연습하는 수업인 고등학교 <교련> 시간에 구령 외치기를 강요당하고부터 말더듬증 트라우마가 강화된 것으로 미루어보면, ‘회피’라는 수동적 처세 방식은 오롯이 김유경 개인의 나약함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닐 듯하다. “훈육과 세뇌에는 탈출구가 없다.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바뀔 수도 없으며, 끝없이 반복되는 그 틀의 궤적에 부딪히고 상처입고 위축되며 계속해서 눈치껏 나를 속이며 살아야 하는 걸까”(p. 245).
어길 수 없는 명령이 주어지고 그에 따르지 못하면 마땅히 불이익을 당해야 했던 시대의 폭압은 소설 곳곳에 공기처럼 배어 있는데, 지방 도시 출신인 김유경이 고속버스터미널에 귀향 표를 예매하러 갔다가 허탕을 치고 돌아왔을 때의 경험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정수리 위로 대나무 장대가 수평으로 빠르게 왔다 갔다 하며 머리통이 솟아오르지 못하도록 위협했다. 조금이라도 허리를 폈다가는 노인이든 어린아이든 가리지 않고 머리통을 맞아야 했다. 그들이 아무 이유도 없이 위치를 바꾸라고 명령하면 군대에서 기합을 받듯이 무릎걸음으로 움직였다”(pp. 243~44).

한편, 풍부하게 묘사된 문화적 풍경은 이 소설을 읽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맛동산과 인디안밥과 티나크래커, 밀감’을 차려놓은 입사 환영식에서부터 ‘알릿사’ ‘롯데’ ‘베르테르’ 같은 세계문학 속 남녀 주인공 이름을 적어 미팅 파트너를 정하는 방식, 카세트플레이어로 듣던 에프엠 방송 「밤과 음악 사이」와, ‘대학가요제’ ‘싱어롱 다방’ ‘음악감상실’, 찻집 <로터리 다방><가무>, 경양식집 <세실>, <은파여관> 등 시대를 대표하는 고유명사들을 포함한 은희경 특유의 세심한 ‘디테일’은 그 시대를 직접 겪은 독자들에게는 물론이고 겪지 못했던 이들에게도 <응답하라> 시리즈를 보는 듯한 사소하고 정겨운 기쁨을 느끼게 해줄 것이다. 휴대전화가 없던 그때 아침부터 저녁까지 2백 명 넘는 기숙사생의 연락을 책임지던 ‘귀한 전화’에 나만을 위한 연락이 걸려오는 일이 얼마나 절실했는지 온전히 전해지는 것은 은희경 문장의 힘 덕분이다.
1977년 발사된 보이저호에 실린 디스크에는 “혹시나 만날지도 모르는 외계 생명체를 위한 지구의 자기소개서”(p. 161)가 들어 있다. 세계 각국의 언어로 된 환영 인사말, 당시 유행하던 노래와 보들레르의 시, 지구의 사진 등이 포함된 이 음반의 이름은 ‘지구의 목소리’다. 인간에게서 떠나 가장 멀리까지 간 보이저호에 실린 ‘지구의 목소리’처럼, 『빛의 과거』를 기억을 되짚으며 오늘의 나에게 안부를 묻는 은희경이 기록한 ‘어제의 목소리’라고 불러볼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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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

회원리뷰

  • 1970년대의 여기숙사 | hs**9 | 2020.04.12 | 5점 만점에 3점 | 추천:0
    '「빛의 과거」는 1977년에서 2017년까지, 한 기숙사에서 만난 여성들의 미묘한 관계를 통해 우리 사회의 '다름'과 '섞임...

    '「빛의 과거」는 1977년에서 2017년까지, 한 기숙사에서 만난 여성들의 미묘한 관계를 통해 우리 사회의 '다름'과 '섞임'이 어떻게 탄생하였는지를 다룬다...

    은희경을 읽는다는 것은 언제나 한국 현대 여성의 목소리를 듣는 일이다. 나와 닮은 목소리를 드디어 만나 그이의 차분하지만 낯설고 독보적인 말에 과녁처럼 관통당하는 일이다.'

    '은희경이 1970년대 말 서울 어느 여자대학교 기숙사 이야기를 썼다고 하면 다음과 같은 기대를 품는 것은 당연하고 정당하다. 첫째, 당대의 정치적 공기와 문화적 풍속도를 생생하게 복원해낼 것이다. 둘째, 여성의 경험적 진실에 충실한 '입사 이야기'의 전형을 보여줄 것이다. 셋째, 또렷한 젠더 렌즈에 포착된 한국 근대성의 성별을 폭로할 것이다. 넷째, 적절한 관념어와 압착된 구문으로 대상을 틀어쥐는, 악력 넘치는 문장이 매력적일 것이다.'

    이 소설에 대한 추천의 글이다.

    글쎄...

    위와 같은 내용이 소설 속에 나오기는 하지만, 중심된 사상이라고 생각치 못했다. 그저 독재 정권 시기의 여대 기숙사 생활을 조금은 볼 수 있었다는 것 뿐. 은희경의 소설에서 이렇게 방관자적 입장을 느껴본 글이 있었을까 싶다. 이 소설은 감정 이입이 쉽지 않고, 주변에서만 맴돌 뿐, 글의 중심으로 쉽게 다가가질 못했다. 내가 집중해서 깊이 있게 읽질 못해서 그런 것이겠지만, 남자와 여자라는 입장의 차이, 시대적 환경의 차이 때문에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여러모로 아쉬움이 많이 남는 소설이다.

  • 아이들과 자주 하는 보드 게임 중에  '뱀 사다리'라는 게임이 있다. 주사위 두 개를 굴려서 나온 수 대로 ...

    아이들과 자주 하는 보드 게임 중에  '뱀 사다리'라는 게임이 있다. 주사위 두 개를 굴려서 나온 수 대로 말을 이동하는데, 중간에 사다리를 타면 몇 칸을 위로 훌쩍 올라가기도 하고, 뱀 머리가 나오면 몇 칸을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기도 한다. 그 게임을 하다 보면 주사위를 잘 굴리는 능력이 있어도, 초반에 빨리 점수를 얻는 것도 다 소용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게임판에선 어느 것 하나 예측할 수 없기에. 흡사 인생의 축소판처럼 느껴진다. 이 책을 덮을 무렵, 그 '뱀 사다리' 게임이 생각난 건 우연이 아닐 테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 미래에 대한 불안을 감추고 시간을 낭비했던 청춘의 흥청거림. 소설은 1977년도를 배경으로 했지만 이 책의 주인공들 못지않았던 2007년도의 나의 비틀거림 또한 떠올랐다. 

     

    사실 은희경 작가님의 이름은 익숙하지만 책을 읽어볼 기회가 없었다. 어떤 때는 자기 계발서에 빠져, 어떤 때는 호러에 빠져, 무수히 많은 우연으로 스쳐 지나가다 또한 우연으로 내 손에 든지 이틀 만에 깨달았다. 내 취향이다! 섬세한 감정 모사와 세상을 보는 삐딱한 시선에 어느새 매혹되어 있었다.

     

    소설은 1977년과 2017년이 교차되며 진행한다. 동시에 소설 속 현실과 김희진의 액자소설 '지금은 없는 공주들의 위하여'가 교차되며, 주인공인 김유경의 시선과 김희진의 시선 또한 교차되며 복잡하게 진행된다. 전체적인 화자는 김유정이다. 그녀는 대학 동창이자 지금은 소설가인 김희진과 의도치 않게 오랜 교제를 이어오고 있다. 희진이 대학 기숙사 시절을 바탕으로 한 소설을 출간하고 사인회에 어느 여인이 어머니의 유품이라며 사인을 받으며 사건이 시작된다. 유경은 소설에서 자신의 기억과 희진의 기억이 매우 다른 데에 당혹감을 느낀다. 322호실과 417호실에서 자신은 외톨이였다는 희진의 서술에 유정의 반박이 교차한다. 이 소설이 유경의 시선에서 진행되기에 독자는 그녀의 말을 먼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계속 교차되는 시선 속에 소설 후반부로 가며 어쩌면 이것도 진실이 아닐 수 있음을, 이것조차 또 다른 왜곡된 기억일 수 있음을 의심하게 된다. 

     

    그 서술 사이사이 작가는 그 시대의 폭력을 맛깔나게 버무려 놓는다. 교련과 박정희 정권 타도를 외치며 학생들이 데모를 하던 시절, 폭력은 그렇게 외부뿐만 아니라 내부에서도 행해졌다. 그 시대의 청춘 대다수는 그걸 무기력하게 목도할 수밖에 없었다.


    "고등학교 때의 가방 검사가 떠올랐다. 대피훈련이라며 불시에 학생들을 모두 운동장에 집합시킨 뒤 교사들이 빈 교실을 돌면서 여고생들의 가방을 뒤지곤 했었다. 소지품 검사라는 명목으로 학생들을 학교의 감시 체제 아래 굴복시키려는 폭력적 이벤트였다. 압수품 속에 끼어 들어간 생리대 한 개를 마치 더러운 물건이라는 듯 손가락 끝으로 집어 높이 들면서, 자기 물건이면 나와서 찾아가라고 말하던 중년의 남자 선생이 떠올랐다. 그의 음흉하고 득의양양한 웃음은 학생들에게 존중받을만한 개인의 영역이란 허용되지 않는다는 경고이자 조롱이었으며 그것은 충분히 효과를 거두었다. 그때의 오싹함이 생생히 되살아났다."(71p)

    <br />

    "나는 맞은편 본관 건물에 무심히 시선을 두고 있었다. 강의를 마치고 건물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학생들 사이에 청소 아줌마의 모습이 보였다. 분필가루가 두텁게 압착된 칠판지우개를 들고 나와 터는 중이었다. 순식간에 흰 가루가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뿌옇게 허공을 덮었다. 학교 복도에서 저런 걸 입에 물고 벌을 받던 게 오래전의 일만 같았다.
    그렇다고 멀리 떠나온 것 같지도 않았다. 여전히 나는 무력하고 방어적인 회색 지대에 갇혀 있었다. 나 자신이 실망스럽고 그러다 보니 의욕이 없어 방치하게 되고, 결국 해야 할 것을 제대로 못해 무력감에 빠지고, 무력감은 쫓김과 불안을 낳고 그래서 자신감을 잃은 끝에 제풀에 외로워지고, 그 외로움 위에 생존의지인 자존심이 더해지니 남들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하고, 그러자 곧바로 소외감이 찾아오고, 그것이 또 부당하게 느껴지고, 이 모든 감정이 시간 낭비인 것 같아 회의와 비관에 빠지는 것, 그 궤도를 통과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이른바 청춘의 방황만이 아니었다."(86p)

     

    소설은 그렇게 얽힌 기억 속에서 의외의 결말을 향해간다. 개인적으로 결말이 지나친 반전 같아 조금 아쉬웠지만 인생은 뱀 사다리 게임처럼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것. 어쩌면 그게 진짜 우리 삶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이전에 한 문예지에서 작가님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이 소설이 참 쓰기 어려웠다고, 이 소설을 완성하느라 10년이 걸렸다는 이야기였다. 우리가 기억하는 과거와 그 속의 다른 인물이 기억하는 과거와의 괴리는 얼마큼일까. 우리는 다른 이를 어떻게 평가하고 또한 나는 어떻게 평가받고 있을까. 작가의 고민이 이 소설에 담담하게 녹아 있었다. 

  • 빛의 과거 - 은희경 | ma**ella83 | 2020.02.29 | 5점 만점에 4점 | 추천:0
     [사회심리학]을 쓴 심리학자 데이비드 마이어스는 사람에겐 누구나 이기적 편향이 있다고 말한다. 이기적 편향...

     [사회심리학]을 쓴 심리학자 데이비드 마이어스는 사람에겐 누구나 이기적 편향이 있다고 말한다. 이기적 편향이란 잠재적 편견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사고하는 습관이다. 사람은 스스로를 꽤 나쁘지 않은, 괜찮은 사람이라 믿고 자신의 약점이나 악한 면은 외면하거나 무시하여 자신을 미화한다. 은희경 작가는 신작 [빛의 과거]에서 이기적 편향을 중력 삼아 각자의 궤도를 돌고 있는 별들의 세계, 우리라는 우주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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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 style="line-height: 1.8;"> </p>  [빛의 과거]는 1977년 청파동 여대의 기숙사 풍경과 그때 함께 생활했던 대학 동문들의 노년을 그린 소설이다. 세상을 바꾸려는 청춘들이 대학가에서 몸부림을 치는 와중에도 기숙사 안은 견고했다. 또래의 다른 여자들이 공장에서 미싱을 돌리고 있을 때 대학에 입학하여 화장이니 옷차림, 민주주의나 성평등을 관심사로 삼았던 그들은 진정 공주들이었다. 가장 아름다운 나이, 뜨겁고 빛나는 청춘을 보내고 있던 그들은 대학 밖의 혼란한 상황엔 적당히 무심한 상태로 남편감을 찾기 위한 데이트나 졸업 후 진로에 매달렸다. 화학과 3학년 최성옥, 교육학과 2학년 양애란, 의류학과 1학년 오현수, 최성옥과 절친한 송선미와 그녀의 룸메이트인 곽주아, 이재숙 등이 주요 인물로 등장하고 1학년 김유경이 화자가 되어 이야기가 진행된다. 유경은 긴장을 하면 말을 더듬는 소극적인 인물이다. 자기 감정과 욕구에 충실해 본 적이 없는 유경의 얌전함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고 그 이기적 편향을 신랄하게 꿰뚫어 본 또 다른 공주가 있었으니, 바로 김희진이다.
     희진은 함께 기숙사 생활을 했던 인물들을 모티프로 소설 <지금은 없는 공주들을 위하여>를 쓴다. 유경은 희진이 쓴 첫 작품을 뒤늦게 읽어보며 자신의 청춘을 반추하는데, 희진이 작품 속에 그린 기숙사 인물들과 유경이 기억하는 인물들은 마치 다른 인물인 듯 너무나 다르다. 유경은 시니컬하고 욕망에 충실한 희진의 눈에 비친 그때의 자신을 회상하며  대학교 1학년이었던 그때로부터 현재까지의 자신의 삶을 다른 각도에서 해체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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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차피 우리는 같은 시간 안에서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들이었고 우리에게 유성우의 밤은 같은 풍경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 책에서 말하듯 과거의 진실이 현재를 움직일 수도 있다. 과거의 내가 나 자신이 알고 있던 그 사람이 아니라면 현재의 나도 다른 사람일 수밖에 없다.
    책 335쪽 
     

      
     이기적 편향은 어쩌면 생존의 본능과 연결되는 기능일 수도 있겠다. 자신의 약함과 악함으로부터 가장 상처 받는 건 자기 자신이니 우리는 어떻게든 이 상처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려 한다.
     유경은 첫사랑에 빠져 있던 그때를 두고 ‘자신이 가장 예뻤던 때’라고 회상한다. 그토록 빛이 났던 그 시절이건만 그때 자신의 행동과 내렸던 선택, 이런저런 일들 속에서 느꼈던 온갖 감정들을 40년 뒤에 뒤돌아보면서 비로소 유경은 발견한다. 빛의 과거, 빛의 뒤로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를. 자신의 약함과 악함으로부터 도망쳤던 유경과 그런 타자들을 비웃으며 이용하는 희진, 그리고 빛이 필연적으로 동반하는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이런저런 한계와 타성 속에서 억눌려 살아가야 했던 수많은 공주들은 이제는 이 세상에 없는 별이 되어 그 빛만을 밤하늘에 남겨두었다.

     

     독자는 각양의 공주들에게서 때로는 자신을, 때로는 지인의 얼굴을 본다. 빛을 받아 하얗게 도드라지는 부분만을 나의 삶이라고 인식하며 살아가는 건 이 책의 공주들 뿐 아니라 독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빛의 그림자까지 들여다보며 살기에 시간은 너무나 빠르고 우리의 정신은 그리 강하지 못하니까. 이기적 편향이란 사람이 자신의 약점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쌓게 되는 성곽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 희진이 그토록 신랄하게 조롱했던 공주들을 변호해본다. 더불어 나라는 빛의 과거 속에, 약하고 악한 나를 간직하고 있을 누군가에 대한 변호도 덧붙인다. 결국 우리 모두는 이 정도의 변호가 불가피한 사람들이니 서로서로 봐주자는 긍휼한 마음으로.

     

    빛의 과거 표지와 날개 꼭지 (1).jpg

     

     은희경 소설가는 제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인 [새의 선물](1996년 출간)의 에필로그에 이런 말을 썼다. ‘상처를 덮어가는 일로 삶이 이어진다.’ 불완전한 인간들의 세계는 불완전하다. 우리는 다 자기 빛에 눈이 멀어 스스로는 보지 못하는 허세, 욕망과 이기심을 지니고 살아간다. 소설이라는 현미경으로 해체해 보면 우리의 실상은 다 비슷비슷하게 누추하고 민망하고 그런 법이다. 그러니 관계가 조각나고 삶이 섬처럼 떠돌지 않으려면 우리는 적당히 상처를 덮어가야 한다.
     인간에 대한 환상과 긍정을 부수는 은희경 소설의 마력은 이 작품 [빛의 과거]에서도 여전하다. 환상과 긍정이 부서진 후에는 그럼 무엇이 남는가? 이 책의 결말에서 유경은 다 부서진 과거의 잔해를 저벅 저벅 밟고서도 희진을 좋아하지도 경멸하지도 않는 관계의 궤도를 유지한다. 부서지지 않기 위해 적당한 거리를 둔 채 상처를 덮어가는 일로 이어지는 삶에 대한 은희경 소설의 냉소 역시 여전하다.


     

     

  • 빛의 과거 | jm**35 | 2020.01.04 | 5점 만점에 4점 | 추천:0
    빛의 과거는 은희경 작가가 7년만에 출간한 장편소설이다. 나는 처음으로 읽어보는 은희경 작가의 소설이다. 빛의 과거라는 소...

    빛의 과거는 은희경 작가가 7년만에 출간한 장편소설이다.

    나는 처음으로 읽어보는 은희경 작가의 소설이다.

    빛의 과거라는 소설은 기숙사 룸메이트인 일곱명이 주인공이다.

    각자 다른 나이의 여자 일곱명의 이야기가 책에 담겨 진행된다.

    다양한 등장인물이 등장하는 영화나 드라마가 재미있던데 소설도 마찬가지로 재미가 있다.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하면 다양한 관계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더 재미있어지나보다.

    1977년이라는 과거를 배경으로 해서 조금 낯설었다.

    2000년대에서 산지 너무 오래되었나보다.

    벌써 2020년이니 20년이면 오래되긴했다.

    그래서그런지 1900년대가 오래된 과거 같았다.

    그래도 과거의 이야기라 점점 익숙해지고 반가웠다.

     

    그때의 감성이 느껴져서 좋았다.

    은희경 작가님의 다른 책도 시간과 기회가 된다면 읽어보고 싶다.

     

  • 빛의 과거 | dd**juni12 | 2019.12.30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소개해드릴 책은 '빛의 과거(은희경 저)'입니다. 은희경 작가는 제가 좋아하는 소설가 중에 한 분이기도 한데요. 한 ...

    소개해드릴 책은 '빛의 과거(은희경 저)'입니다. 은희경 작가는 제가 좋아하는 소설가 중에 한 분이기도 한데요. 한 이십년도 더 되었죠. 초등학교 친구가 읽어보라고 '새의 선물'을 건네주고 나서부터 팬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양귀자 작가의 '원미동 사람들' 처럼 성장소설의 전형이지 않았나 싶네요. 그 이후로 은희경 작가의 신작이 나오면 간간이 사서 읽어보았습니다. 그 중에서 '마이너리그'가 기억이 남네요.                         

     

    이번 소설도 성장소설이라고 봐야할 듯 싶네요. 1977년 여대 기숙사를 배경으로 2017년의 현재와의 병치 구조로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소심한 주인공 김유경, 아마도 작가의 경험이 물씬 담긴 인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1977년 그 시절의 시대상과 그 시대의 여성의 정체성을 의미심장하게 하지만 재밌게 풀어나가는 소설이었습니다. 애엄마가 옆에서 뭐가 그렇게 재밌냐구 하면서 지금 거실에서 읽고 있는 책이 바로 이 책입니다.

    이 책에 나오는 주요 인물중에 나 김유경과 소설가 김희진은 2017년에도 종종 연락하면서 자신들의 기숙사 시절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같은 과거지만 서로 기억하는 내용은 다른, 영화 라쇼몽부터 유구히 이어져온 간주관성이 발현된 것이겠죠. 그러면서 둘은 계속 연락을 하게 되겠죠. 그 때를 추억하기 보다는 그때는 그랬었지 하면서 기억의 한장을 넘기는 것일 겁니다. 저 역시도 20년 아니 30년 후에 오늘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요. 좋은 기억, 나쁜 기억이 있을테지만 이미 그때는 부질없는 기억의 한 편린에 지나지 않을 겁니다.

    - 여러 사람과 공유한 시간이므로 누구도 과거의 자신을 폐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편집하거나 유기할 권리 정도는 있지 않을까.

    - 비판은 가장 손쉬운 선택이다. 나쁘게 돌아가는 세상을 저항 없이 받아들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에너지가 적게 소모되므로 심신이 약한 사람일수록 쉽게 빠져든다. 신체의 운동이 중력을 거스르는 일인 것처럼, 낙관적이고 능동적인 생각에도 힘이 필요하다. 힘내라고 할 때 그 말은 낙관적이 되라는 뜻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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