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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종교를 위한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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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8쪽 | 규격外
ISBN-10 : 8952769082
ISBN-13 : 9788952769084
눈먼 종교를 위한 인문학 중고
저자 김경집 | 출판사 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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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 1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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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외형 상세 미선택 낙서 미선택 얼룩 미선택 접힘 미선택 낙장(뜯어짐) 미선택 찢김 미선택 변색 미선택 제본불량 미선택 부록있음 [중고 아닌 신간입니다.]

2.내형 상세 미선택 낙서 미선택 얼룩 미선택 접힘 미선택 낙장(뜯어짐) 미선택 찢김 미선택 변색 [출간 20130610, 판형 152x223(A5신), 쪽수 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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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눈먼 종교를 위한 인문학- [중고 아닌 신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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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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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종교를 위한 인문학』은 종교가 세상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종교를 걱정하는 현실을 향한 인문학적 성찰을 담은 책이다. 인문학자의 성서 읽기는 무엇이 다른지 무조건적인 텍스트 추종을 넘어 밝은 눈으로 성경을 다시 만나본다.

저자소개

저자 : 김경집
저자 김경집은 인문학자이자 작가. 대학에서 영문학을, 대학원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가톨릭대학교 인간학교육원에서 인간학과 영성 과정을 맡아 가르쳤다. 가르친 지 스물다섯 해를 채우고, 스스로의 약속대로 학교를 떠나 해미에 내려가 책 읽고 글 쓰는 일에 몰두하며, 인문학아카데미와 지역문화운동의 디딤돌을 마련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책탐》(2010년 한국출판평론상 수상), 《나이듦의 즐거움》, 《생각의 프레임》, 《생각의 인프라에 투자하라》, 《완보완심》,《위로가 필요한 시간》, 《마흔 이후, 이제야 알게 된 것들》, 《지금은 행복을 복습하는 시간》 등이 있고, 함께 쓴 책으로 《거북이는 왜 달리기 경주를 했을까》, 《생각하는 십대를 위한 철학 교과서, 나》 등이 있으며, 《어린왕자, 그 두 번째 이야기》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목차

들어가는 말_ 신자가 깨어야 교회가 바뀐다
일러두기

1 새로 읽는 성경
예수의 탄생을 외면했던 사람들
무엇이 진짜 명예로움인가
하느님나라의 비유를 잘못 해석하면 ‘비’겁하고 ‘유’치해진다
유혹은 산들바람처럼 불어온다
예수 기적의 진짜 의미
열두 제자가 내려놓은 것
예수는 페미니스트였다
포도밭 일꾼과 품삯 이야기의 숨은 뜻
가진 것을 모두 털어넣는 충성심보다 중요한 것
교회를 신전이 아닌 시장으로!
무엇이 참된 우정인가
치유의 기적? 측은지심부터 배워라!
오병이어의 기적에 담긴 진짜 의미
신앙 이전에 도덕적 우월성을 가져야
골수 로마 앞잡이가 나무 위에 올라간 이유
무엇이 나를 진정 행복하게 하는가
기도, 하려면 제대로 하자
부활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2 한국 기독교인과 기독교 사회에 던지는 제언
어두운 시대, 최소한의 양심은 어디에
왜 한국 교회는 보수주의에 안주하는가?
맺는말 참된 그리스도인의 지평+

책 속으로

우리는 예수 탄생의 참된 의미도, 동방박사들과 목동들이 찾아온 이유도 전혀 모르는 청맹과니일 뿐이다. 그런 눈과 마음으로 아무리 복음서를 읽은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억압받고 고통을 겪으며 부당하게 착취당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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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예수 탄생의 참된 의미도, 동방박사들과 목동들이 찾아온 이유도 전혀 모르는 청맹과니일 뿐이다. 그런 눈과 마음으로 아무리 복음서를 읽은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억압받고 고통을 겪으며 부당하게 착취당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이들이 조금이라도 제 목소리 내고 권리를 주장하면 사회를 교란시킨다느니 교묘하게 정치 세력화한다느니, 혹은 아예 빨갱이라느니 하면서 외면하고 억압하지는 않는지 꼼꼼하게 살펴봐야 한다. 심지어 교회마저 그런 못된 짓에 가담하고 있지는 않은지 잘 살펴봐야 한다. 부당하게 해고된 노동자들이 사망하고 자살해도, 집과 땅을 빼앗긴 사람들이 절규하고 옥상에서 뛰어내려도 눈 하나 깜빡거리지도 않는 냉혈한 우리에게 과연 아기 예수가 찾아올까? 아니, 설령 우리에게 찾아온다 해도 제대로 맞을 수나 있을까? 더 나아가, 그가 예수인지 알아보기는 할까? ㆍ 1부 새로 읽는 성경_ 예수의 탄생을 외면했던 사람들 p.35

흔히 가난 구제는 나라도 할 수 없다고들 말한다. 하물며 나 혼자 마음으로 그걸 할 수는 없다. 함께 모인 공동체도 감히 그걸 할 수 없다고 체념한다. 그러나 마음까지 그렇게 닫아둬서는 안 될 일이다. 적어도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고통받는 일이 있다면 그건 삼가고 꺼릴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좀 더 넓게 생각해보자. 나라도 구제할 수 없는 가난을 교회가 구제할 수는 없을지 모르지만, 그 마음을 공유하고 실천하려 하는 게 진정한 믿음이다. 그래야 예수를 따른다고 믿는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야 한다. 나라도 하지 못하는 가난 구제라고? 아니, 교회니까 해야 한다. 그건 그저 쌀 몇 말 부어주고 라면 두어 상자 건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과연 우리의 교회공동체가 그런 문제에 대해 단순히 선언적으로 말고 실천적으로 다가가본 적이 있는가? 내가 산 땅과 아파트가 쑥쑥 오르는 건 기쁜 일이지만, 그것 때문에 다른 누군가가 큰 상처와 고통을 받고 있다면 기꺼이 그 혜택을 거부하고 정당한 만큼만 누리겠다는 약속을 할 수 있어야 한다. ㆍ 1부 새로 읽는 성경_ 예수 기적의 진짜 의미 pp.106~107

해방의 복음은 권력자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것이 필요한 사람들은 바로 억눌린 사람, 멸시받는 사람, 고통받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그 시대에 가장 많은 피억압자는 누구였을까? 다름 아닌 여자들이었다.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오로지 여자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모든 차별과 억압을 감당해야 했다. 그 악습은 지금도 여전히 남아 있다. 그리고 아직도 많은 여성들이 마르타와 같은 생각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상태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마리아는 복음의 의미를 깨달아 스스로 올바른 선택을 했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만큼 성숙해졌지만, 마르타는 그렇지 못했다. ㆍ 1부 새로 읽는 성경_ 예수는 페미니스트였다 p.137

과부에게 렙톤 두 닢은 전 재산이자 하루 혹은 한 끼니의 생계비용을 뜻할 것이다. 아마도 힘겹게 폐지를 모아서 번 하루의 일당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누군가에게 자선을 구해서 얻은 건지도 모른다. 그녀가 그 돈을 헌금궤에 넣으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내가 가진 걸 몽땅 바쳤으니 더 큰 복을 주십시오’ 그랬을까? 아마 남들은 저리 많은 돈을 내는데 자신은 고작 푼돈 두 냥밖에 내지 못해서 ‘손부끄러워’했을 것이다. 정말 중요한 건 그 마음이다. 강요한 것도 아니다. 부자들처럼 과시할 일도 아니다. 그렇다고 자신의 봉헌금이 적다고 부끄러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저 손이 부끄럽다는 소박하고 겸손한 마음뿐이었다. 예수가 그 과부를 칭찬한 것은 가진 것을 몽땅 털어넣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손부끄러운 마음이 아닐까? (…)그런데 자꾸만 ‘가진 것을 몽땅 털어넣는’ 충성심만 강조하고 있지는 않은지, 혹은 아예 노골적으로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지 궁금하다. ㆍ 1부 새로 읽는 성경_ 가진 것을 모두 털어넣는 충성심보다 중요한 것 p.165

세례자 요한은 어떤 의미에서 마지막 ‘예언자’였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교회에 예언자는 없고 제사장만 있는 듯하다. 예언자가 서 있어야 하는 곳은 광야다. 외롭고 고통스러운 곳이다. 제사장은 교회를 지배한다. 그는 권력과도 친밀한 관계다. 그래서 가끔은 그 권력의 부스러기를 맛보는 경우도 있다. 그 맛에 길들여져서 제사장 역할만 하려는 이들이 이 나라 이 교회의 지도자를 자처한다. 많은 신자들을 거느린 대형교회의 힘을 과시하면서 말이다. 그런데도 입으로는 세례자 요한을 떠들어댄다. 그들에게 세례자 요한은 그저 세례라는 통과의례(?)를 만들어준 선구자에 불과할 뿐이다. 아무리 아니라고 부인해도 스스로 예언자의 고난을 자청하지 않는 한 그런 비난에서 온전히 빗겨날 수는 없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는 천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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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인문학자의 눈으로 본 성서, 그리고 한국 기독교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 사람들로 붐비는 지하철에 불쑥 나타나 이렇게 외치는 사람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들은 정말 그런 식으로 복음이 전해진다고 생각하는 것일...

[출판사서평 더 보기]

인문학자의 눈으로 본 성서, 그리고 한국 기독교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 사람들로 붐비는 지하철에 불쑥 나타나 이렇게 외치는 사람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들은 정말 그런 식으로 복음이 전해진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종교 인구는 55.1%(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2013년 1월 발표)이다. 흔히 사람을 처음 만나면 직업, 나이 다음으로 종교를 물을 만큼, 우리 중 대다수는 비록 열렬한 신자는 아닐지라도 종교를 갖고 있는 편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종교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하지만 종교, 특히 다수를 차지하는 기독교가 우리 사회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종교가 세상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종교를 걱정하는 현실이다. 이 책《눈먼 종교를 위한 인문학》의 저자 김경집은 그 원인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근본주의와 교조주의에 대한 지나친 집착, 지나치게 성직자 중심적인 교회, 여전한 서구 중심주의적 사고가 문제라는 것이다. 특히 저자는 성경의 “‘유연한’ 초시간적 초공간적 의미와 역할을 지닌 비유를 엉뚱하게 ‘절대불변의’ 초시간성과 초공간성으로만 해석하는 설교나 강론이 무슨 제 역할을 하겠는가? 문자주의 혹은 축자주의라고 하는, 문자를 그대로 따라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이 비유마저 문자나 이념의 선언으로 그대로 받아들이는 건 참 안타까운 일”이라며 이를 경계한다. “깊은 뜻과 배려로 이루어진 비유를 어설픈 논리와 비논리적 비약으로 마음대로 해석”한다면 “그것이야말로 혹세무민”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먼저 인문학자의 눈으로 성경을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 기독교 사회를 바라본다. 무조건적인 텍스트 추종을 넘어 밝은 눈으로 그 참뜻을 깨달을 것을 제안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성경은 대부분 비유로 이루어졌다. 저자는 예수의 비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의외로 너른 시야와 근거 있는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바로 인문학적 사고가 필요한 것이다. 저자는 오랜 세월 쌓아온 신학적 지식과 인문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예수 탄생부터 오병이어의 기적까지 언뜻 이해할 수 없었던 복음서의 비유를 문맥과 상황을 통해 재구성하여 오늘날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타당한 해석을 내놓는다.
저자는 이렇게 복음서를 읽어가면서 “적지 않은 기존의 교회지도자들이 지나치게 편협하게 혹은 잘못된 도그마에 의존해서, 또는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우리에게 복음서를 가르쳤음을 분명히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또 이렇게 덧붙인다. “나와 학생들이 함께 복음서를 읽으면서 자유를 느낀 것은 단순히 우리들만의 심리적 위로나 합리화는 아니었다고 확신한다. 덧붙여 그저 평범한 평신자인 내가 이렇게 읽고 생각하는 것이라면 이것이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이라고 여겨진다.”
이러한 방식의 성서 읽기를 통해 성경의 참뜻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기를, 나와 이웃, 사회 전체를 좀 더 이해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인문학자의 성서 읽기는 무엇이 다른가
인문학자란 현실에 발을 딛고, 세상을 그리고 우리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이다. 우리가 인문학을 공부하는 이유는 지식의 경계를 확장하고, 편견을 없애며,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다. 그런데 성경을 볼 때 종교적 믿음의 눈을 걷어내면 앞뒤가 맞지 않거나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보인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저자 김경집은 실천적 해석과 영성적 성찰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시도한다.
먼저 잘 알려진 ‘포도밭 일꾼과 품삯’ 이야기에서 시작하자.

“어떤 포도밭 주인이 일꾼을 얻으려고 이른 아침에 나갔다. 거기서 일꾼을 데려오면서 품삯을 한 데나리온으로 정했다. 그리고 아홉 시쯤 또 가서 다른 일꾼을 데려왔다. 그도 품삯을 한 데나리온으로 정했다. 열두 시와 오후 세 시쯤 또 다시 일꾼을 데려오면서 같은 품삯을 정했다. 오후 다섯 시쯤 또 나가 보니 여전히 사람들이 있었다. (…) 주인은 그들도 포도밭으로 데려갔다. 날이 저물어 주인이 나중에 온 사람부터 품삯을 주는데 처음 온 사람에게도 똑같은 삯을 주었다. 그러자 맨 먼저 온 사람이 따졌다. (…) 그러나 주인은 품삯은 자신이 정한 것이니 따질 일이 아니라고 일축했다.”(본문 153쪽)

우리는 흔히 이 이야기를 뒤늦게 온 일꾼은 나중에 교회 나온 사람이라며 먼저 교회에 다녔다고 해서 천당 가는 게 아니라는 뜻으로 알고 있다. 반면 문자 그대로 읽어낸다면 포도밭 주인의 처사는 불공정하고 불합리하게 느껴진다. 저자는 이 포도밭 주인의 판단에는 분명 대화에 나타나지 않는 깊은 속뜻이 담겨져 있을 것이라 말한다. 그에 따르면 문제의 핵심은 품삯으로 주었던 바로 그 ‘한 데나리온’이다. 저자는 이렇게 해석한다.
“데나리온은 로마의 은화로 1데나리온의 무게는 3.8그램이며, 통상 일꾼들의 하루 품삯이었다고 한다. 요즘 식으로 해석하면 그것은 바로 최저임금 혹은 최저생계비와 어금버금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까 포도밭 주인이 모든 일꾼들에게 똑같이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지불한 것은 노동 단위 시간당 얼마라는 효율성을 근거로 한 셈법이 아니라 누구나 최소한 생계는 해결해줘야 한다는 상징적 비유다. 그렇다면 포도밭 주인이 모든 일꾼들에게 무조건 같은 품삯을 주었다는 데에 방점을 찍을 게 아니라 가장 늦게 온 사람에게도 삶의 방편은 마련해주었다는 데에 초점을 맞춰야 이 비유의 참뜻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자칫 엉뚱한(?) 해석으로 신자들에게 더욱더 교회에 충성해야 한다며 윽박지르기 전에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다음은 ‘오병이어의 기적’이다. <요한의 복음서>에 따르면 바로 ‘어떤 아이가’ 보리빵 다섯 개와 작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다고 되어 있다. 저자와 함께 상상력을 발휘해보자.

“사람들은 예수가 배를 타고 가는 걸 보고 여러 동네에서 뛰어 나와 따라갔다고 했다. 그 사람들이 먹을 걸 들고 뛰어갔을 리 없다. 당연히 빈손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스승 예수가 먹을 걸 찾아보라 하니 제자들이 사람들에게 물었을 것이다. ‘누구 먹을 것 가지고 있는 사람 있소?’
당연히 없었다. 그런데 어떤 꼬마가 달랑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내밀었다. 꼬마가 혼자 왔을 리는 없고 아마도 엄마 손에 이끌려 왔을 것이다. (…) 그러니까 그건 두 모자母子의 저녁거리였던 셈이다. ‘작은’ 물고기 한 마리씩 먹고 빵은 세 개와 두 개로 나눠 먹으려 했을 것이다. 그런데 모자는 먹을 걸 찾는 제자들에게 주저하지 않고 그걸 내놓았다. 왜 그랬을까? (…) 예수의 복음을 듣고 얻은 희망과 기쁨이 물고기 두 마리와 빵 다섯 덩이를 기꺼이 내놓도록 했던 것이다. 아이의 엄마는 복음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들었다. 그리고 실천했다. (…) 오병이어의 기적은 바로 그렇게 시작된 사건이다. 내 소유에 집착하지 않고 기꺼이 내놓은 것은 복음을 듣고 변화한 그녀의 삶과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그게 바로 기적이다. (…) 이 기적은 우리에게 또 다른 기적을 실천하라고 가르치는 아주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예수의 축원 혹은 초자연적인 힘만으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많은 사람들이 먹고도 남을 만큼의 엄청난 양이 될 수 있었을까? 물론 그건 예수의 초월적 능력에 의해서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바로 우리의 실천으로 가능한 일이라고 믿는다. 비록 보잘것없을지 모르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 나보다 더 가난하고 굶주린 사람들에게 기꺼이 베풀기 위해 서로 십시일반 내놓을 때, 그 기적은 가능한 일이 아닐까?”

이것이 바로 인문학자의 성서 읽기다. ‘그 어떤 교조에도 휘둘리지 않으며, 인문학적 성찰을 바탕으로 부당한 권위에 도전할 수 있고, 신학적 프레임에 갇히지 않은’ 저자 김경집의 성경 읽기다. 이 책《눈먼 종교를 위한 인문학》은 종교를 떠나 인류 최대의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인 성경을 하나의 텍스트로서 이해하는 또 하나의 방식을 보여준다.

가나안(안 나가)인 10만 시대,
한국 기독교 사회에 던지는 인문학자의 제언

모두가 힘들다고 아우성인 시대, 어디든 기댈 곳을 찾는 시대다. 많은 사람이 종교를 필요로 하지만 정작 종교는 그들의 그늘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쉬는 신자’ ‘소속 없는 신앙인’ ‘가나안(안 나가)인’이 100만에 이른다(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4월 발표)는 것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기독교 내외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때, 이 책의 저자 김경집은 먼저 교회가 신앙 이전에 도덕적 우월성을 회복할 것을 제안한다.
다시 성경으로 돌아와 ‘착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떠올려보자. 사막 한복판에서 강도를 당해 쓰러진 유대인이 있었다. 그런데 사회지도층인 사제와 레위 사람은 그를 보고서도 외면했다. 반면 사마리아 사람이 ‘가엾은 마음이 들어’ 그를 구해주었다. 이를 두고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세제나 레위 사람은 영양가 없는(?) 일은 하지 않았을 사람들이다. 이 두 사람은 바로 ‘교회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사마리아 사람은 자신의 시간과 비용을 부담하면서까지 강도당한 불쌍한 사람을 구해주고 보살펴줬다. (…) 이 사람은 이른바 ‘교회 밖의 사람’이다.” (본문 234쪽)
“그를 업신여긴 사제나 레위 사람에겐 그런 사랑이 없었다. 말로는 율법서에 있는 이웃 사랑을 떠들었지만 정작 그들에게 이웃은 나와 같은 편이거나 나와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이었던 거다. 그 모습은 바로 지금 우리의 모습, 우리 교회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말로는 예수를 떠들어대면서 정작 그 사랑은 실천하지 않는 편협한 우리의 모습 말이다. 게다가 그 착한 사마리아인들을 몰아내고 다그치고 있는 모습으로. 부당하게 해고된 노동자,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청년, 죽으라고 일해서 지금 누리는 풍요의 바탕을 마련했지만 이제는 철저하게 외면받는 외롭고 가난한 노인들이 바로 길에서 강도를 만난 그 사람이 아닌가? 내가, 교회가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반의 반 만큼이라도 그 이웃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가?” (본문 236쪽)

저자 김경집 역시 그리스도인이다. “6남매 가운데 홀수 형제는 개신교 신자이고 짝수 형제는 가톨릭 신자인 매우 특이한 집안이다. 특히 둘째 누이는 수녀이고 나의 바로 위 셋째 형님은 감리교회 목사이다.” 저자는 자신의 이러한 환경이 종교적 포용성을 길러주었다고 확신한다. 덕분에 종교를 넓고 다양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한 평범한 신자의 자기 반성이다. 복음서를 읽어 내려가며 성경 ‘말씀’대로 살아가지 못한 자기 자신에 대한 반성 말이다.
또한 저자는 인문학자로서 종교의 유무와 종파의 차이를 떠나 인생의 근본적 문제에 질문을 던진다. 그에 따르면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생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내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이 세상에서 내가 죽고 나면 또 다른 세상이 있을 것인가?” 같은 살아 있는 한 언제나 던지게 되는 질문들에 대해 종교는 근본적이고 때로는 초월적인 해답을 모색한다. 저자가 ‘자유로운 개인’으로서의 영성을 마련할 것을 강조하는 이유다.
이 책에서 저자가 분명하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것이다. “예수가 금지한 것을 예수의 이름을 팔아서 하지 말라!” ‘종교가 사회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종교를 걱정하는 시대’ 밝은 눈으로 성경을 보고 실천해야 한다. 그렇게 신자들이 변해야 교회도, 사회도 변한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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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리뷰

  • 눈먼 종교를 위한 인문학 | ys**5636 | 2013.08.31 | 5점 만점에 4점 | 추천:0
     대한민국은 개화기부터 들어온 개신교의 수가 날이 갈수록 늘어만 가고 있다.예수 그리스도의 인류에 대한 사랑과 헌신 ...
     대한민국은 개화기부터 들어온 개신교의 수가 날이 갈수록 늘어만 가고 있다.예수 그리스도의 인류에 대한 사랑과 헌신 그리고 구약과 신약성서의 쓸모있는 구절과 말씀들이 신도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교인의 수와 교세의 확장은 날로 커져만 가고 있다.소위 우후죽순과 같이 늘어만 가는 개신교회의 수는 정령 한국이 기독교의 왕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종교의 자유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문이지만 유독 기독교의 교인들,교회수가 팽창되어 가는 배경은 과연 무엇인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카톨릭교회에서 1965년 제2차 바티칸공의회 선언이 반포되고 공의회 정신인 화해와 용서,그리고 토착화 정신 등에 맞춰 교회가 쇄신하는 계기를 맞았다.(중략)한국 교회는 1965년 2월 성서위원회를 설립하고,1968년 2월 교황청 성서위원회와 세계성서공회연합회가 공동 작성한 성격 번역 원칙을 기본으로 대한 성서공회와 세계성서공회연합회가 공동 작성한 성경 번역 원칙을 기본으로 대한 성서공회와 '신.구약성서번역공동위원회'를 구성했다. - 본문 -
     
     그 결과 신약성서,구약성서를 번역해 합본하여 발간할 수 있었던 것은 시대적 사오항에 대해 한국의 신구교회가 대승적으로 의기투합하여 이루어낸 놀라운 역사이고 교회일치운동과 토착화라는 각 교회의 시대적 소명이 맞물려서 성서를 같이 번역하고 함께 사용하기로 한 것은 대단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기독교,카톨릭교 등이 하느님에 대한 용어를 하나님 내지 하느님으로 부르는 차이점도 있다.현재 한국에 분포되어 있는 기독교는 성공회,정교회,침례교,장로교,복음교회,통일교회 등 다양한 교파가 있다.이들 교파는 누구를 중심으로 신앙의 중심을 삼을 것인가가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지만 기독교인들이 열정적으로 선교하고 심방을 다니며 교인들을 끌어 들이려는 적극적인 행동에 가끔은 놀랍고 의아스럽기만 하다.이렇게 교회수와 교인들이 날로만 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아직도 교인수와 교회수가 부족해서 그러는가,아니면 교세를 넓혀 교인수도 늘리고 물질적인 부를 목표로 삼는 것은 아닌지 등을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인간의 나약함과 맑은 영혼,죽음을 평안하게 맞이하고자 하는 인간의 심성을 기복하고 치유하려는 것이 신앙의 목적은 아닐까.그런데 내가 갖고 있는 교회의 이미지는 많이 부패하고 혼탁해져만 가고 있다.특히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북에서 넘어온 개신교 세력들은 자유주의를 신봉하면서 정권과 결탁하기도 하면서 종교적 자유,교세확장을 꾀해왔던 것이 사실이다.교인들은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그의 행적을 본보기 삼아 진실된 신앙생활을 해나가야 하는데 기독교의 지도부들이 돈과 권력에 혈안이 되어 양적인 수를 불려 나가기만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나라를 무엇에 견주며 무엇으로 비유할 수 있을까? 그것은 겨자씨 한 알과 같다.땅에 심을 때에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더욱 작은 것이지만 심어놓으면 어떤 푸성귀보다도 더 크게 자라고 큰 가지가 뻗어서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된다.(마르 4:30~32)
     
     
    성스럽고 고귀한 종교가 돈과 물질로 오염되고 본래의 취지인 복음전파 및 메마른 백성들의 영혼을 구원하는데에 기독교의 본래 취지임에도 불구하고 지도부들은 극히 보수적이고 경직된 교조주의를 흔들림없이 밀어 부치고 있는 것이다.요근래 각종교가 서로의 교의의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상생해 나가려는 취지 및 움직임에 적극 환영하는 바인데 불교에서 말하는 팔정도(八正道)는 기독교의 교의를 떠나 되새겨 볼 만한 말씀이다.그것은 올바로 보고,올바로 생각하고,올바로 말하고,올바로 행동하고,올바로 목숨을 유지하고,올바로 부지런히 노력하고,올바로 기억하고 생각하고,올바로 마음을 안정하는 것인데 현재 기독교의 지도부에서 행하고 있는 부패현상은 그 수위를 넘어 사회적인 문제로까지 대두되고 있다는 점에서 심히 유감스럽기만 하다.
     
     사회가 혼탁하고 위기에 처해 있을 때에는 종교가 사회의 등불이 되고 파수꾼이 되어 주어야 한다.정권,권력과 결탁하여 이러한 혼탁,위기를 방조하고 모르쇠로 일관해 나간다면 종교의 참뜻은 사라지고 하나의 허상과 같은 무가치적인 존재로 비쳐질 수가 있다고 본다.개인과 사회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진실로 종교의 자애로움을 내밀고 구원해 줄 수 있는 참된 용기와 용단이 필요할 것이다.특히 경제위기가 심화되어 가는 시점에서 김경집저자가 지적하는 한국 기독회계의 문제점,모순을 들춰내면서 기독교의 본래의 목적과 취지에 맞춰 나아갈 것을 주문하고 있기에 어떠한 종교에 몸담고 있더라도 되새기고 잘못된 부분을 개전의 계기로 삼아야 마땅하다는 생각을 한다.


  •     편협한 시각의 한국 기독교에 던지는 인문학자의 일침 - 눈먼 종교를 위한 인문학 _ ...

     
     
    편협한 시각의 한국 기독교에 던지는 인문학자의 일침 - 눈먼 종교를 위한 인문학 _ 스토리매니악
     
    이런 말이 좀 우습기는 하지만, 나는 종교와는 꽤나 맞지 않는 사람이다. 어릴 적에는 남들 다 간다는 교회도 들락거려 봤고, 이런저런 이유로 절에도 다녀봤으며,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미션 스쿨에도 잠깐 다닌 적이 있다. 어떻게 보면 그 누구보다 종교에 심취할 기회가 많았음에도 그 어떤 종교도 내 가슴의 두꺼운 철판을 뚫지 못했다.
     
    '왜 그렇냐'는 질문에는 답할 많이 많기도 하고 또 없기도 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가장 표면적인 이유는 '의심'이었던 것 같다. 막연히 종교 그 자체에 대한 의심이라기 보다는, 같은 존재 같은 성인을 추앙하면서 그 대상을 섬기고 따르는 방식이 제각기 다른 데에 큰 의문을 품었던 것 같다. 물론 그 방식이 조금씩 다를 수 있다는 것은 충분히 수긍하는 바지만, 자기들만의 방식이 절대 옳고, 자기들과 다른 방식은 절대 틀리다는 그 절대적 집착이 종교에 대한 불신을 갖게 하지 않았나 싶다.
     
    위의 내 생각은 모든 종교에 공통적으로 적용되긴 하지만, 특히 기독교 사회에 대해 더 큰 실망이 있음을 이야기해야겠다. 이는 단지 나만의 생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많은 비종교인들이 기독교를 우려 섞인 시선으로 보고 있고, 그들의 지나친 절대주의에 실망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저자 또한 기독교 사회를 우려 섞인 시선으로 보고 있는 이 중의 한 명이다. '근본주의와 교조주의에 대한 지나친 집착, 지나치게 성직자 중심적인 교회, 여전한 서구 중심주의적 사고' 같은 원인을 저자는 오늘날 기독교 사회의 문제로 보고 있다. , '유연한 의미와 역할을 지닌 성경' 말씀을 지나치게 문자 그대로 따라야 한다는 지금의 기독교 사회의 행태에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인문학자의 눈으로 본 성경과 기독교는 그야말로 내가 그간 기독교에 대해 느꼈던 바를 속 시원히 짚어주는 내용이었다. '무조건적인 텍스트의 추종'이 아니라 넓은 시야와 근거 있는 상상력을 통해 그 참뜻을 이해할 것을 저자는 거듭 제안하고 있다. 이 책의 내용이 바로 그 부분에 맞추어져 있다.
     
    저자는 이를 복음서의 내용을 짚어가며 설명한다. 하나하나의 내용이 갖고 있는 본래의 참뜻을 저자 나름의 인문학적 시각으로 풀어내고, 이런 것이 지금의 기독교 사회에서 어떻게 왜곡되어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그 어떤 편협한 종교적 시각에도 휘둘리지 않으며, 갇힌 프레임이 아니라 열린 프레임으로 성경을 바라보는 그의 방식이 지금의 기독교 사회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를 아주 극명히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저자의 해석 또한 비판 받을 내용이 있을 것이고, 절대적으로 옳지는 않다. 저자 또한 이 점을 분명히 이해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한 인문학자가 풀어낸 성서의 내용이 아니다. 바로 그가 접근한 방식이 중요한 것이다. 지금의 기독교 사회가 안고 있는 부조리함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는가에 대한 하나의 대안인 것이다. 내가 비록 종교에 대해 특히 기독교와 성경에 대해 깊이 있는 이해와 지식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을 위한 종교라면 그 종교가 어떤 품과 시야를 갖고 있어야 하는지 정도는 안다. 개인이 이해 못하는 품과 시야라면 그것을 과연 종교라 부를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면 어쩌면 당연한 말이겠지만 말이다.
     
    저자가 걱정하는 기독교 사회는 좀 더 열린 시야를 가질 필요가 있고 좀 더 실천적이어야 한다. 점점 외골수로 빠지는 지금의 기독교 사회가'사회를 걱정하는 종교'로 거듭나기 위해 변화할 것도 주문한다. 저자의 견해에 적극 공감하고 지지를 표한다. 이 책 하나로 금방 바뀌지는 않겠지만, 이 책의 내용과 같이 지금의 기독교 사회가 좀 더 개인에 다가가고 좀 더 포용력을 가지기를 기대해 본다.
     
     
     
  • 우리 속담 가운데는 '장님'에 대한 것이 많다. 그 가운데 '장님 코끼리 만지기'란 속담에는 재밌는(?) 일화도 따라&nb...
    우리 속담 가운데는 '장님'에 대한 것이 많다.
    그 가운데 '장님 코끼리 만지기'란 속담에는 재밌는(?) 일화도 따라 붙어있다.
    대략 적어보면 장님 넷이 모여 코끼리를 만지는 데, 하나는 코를, 하나는 귀를, 하나는 다리를, 하나는 꼬리를 만지고는 서로 코끼리는 '이렇다'고 말하더라는 것이다.
     눈 밝은 사람이 그 모습을 보면 과연 무슨 말을 했을까?
     
     이 책의 제목이 의도하는 바는 위의 속담으로 대략 이해할 수 있었다.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라는 말. 이 문장을 발견했을 때 내가 생각한 건 "다섯 번째 '장님'의 견해가 있다는 말 아냐?"하는 거였다.
     엉뚱해도 어쩔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해 버렸으니.
     
     기독교는 정말 많은 신자를 보유한 종교다. 그리고 그 결속과 결집력에 있어 따를 종교가 없는 압도적인 종교이기도 하다.
     
    아는 건 없지만 아는 범위 안에서 늘어놓아 보기로 한다.
    밖에서 볼 때, 가톨릭과 개신교, 그 안에서도 기독교 감리교, 기독교 장로교, 개신교, 침례교, 예수교 감리교, 예수교 장로교는 사실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통일교, 여호와의 증인, 또 뭔가 많은데 그런 분류가 조금 다르게 느껴질 뿐이다. '영생교'니 다미선교니 하는 교단들도 뉴스가 아니었다면 영원히 모르고 살았을 지도 모른다.
     
     무엇이 그들을 그토록 여럿으로 보이게 했을까.
    '보이게 한' 것일까? 아니면 '여럿인 것'일까?
    솔직히 내겐 전혀 상관 없는 일인 데다, 아무래도 좋은 일이기에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도 그저 '시간 낭비'에 불과할 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가끔은 정말 알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들 간의 '본질적 차이'는 뭔가?
     
     이 책의 저자는 기묘한 가족력을 갖고 있다.
    둘째 누나는 '수녀'이고, 셋째 형은 목사로 재직하고 있다고 하는 거다.
    겉보기에는 무슨 문제가 있을까 싶지만, 가톨릭과 개신교의 골이 결코 얕지 않다는 것을 조금만 알게 된다면 과연 어떻게 해서 그들은 '가족'을 회복했을까, 종교적 견해의 차이를 '극복'했을까 하는 궁금증도 이는 거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궁금증을 해소해 주기 위해 적은 것이 아니니 크게 연연하지는 말기로 한다.
     
     저자의 이야기로 처음 알게 된 것이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가 우리나라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거기에 세계 50대 교회 중 20개가 한국에 있다는 사실도 말이다. 저자는 우리의 민족적 정서와 발전 과정에서 기독교의 '기복적'인 면이 강하게 작용했다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였다.
     유일한 신인 '하나님' 혹은 '하느님'이 우리를 보우하시어 나라의 발전과 위기의 극복을 도와 줄 것이라는 믿음이 '바닥'에 있던 사람들에게 큰 의지가 되었을 거라는 맥락이다.
     하지만 저자가 이야기하는 '문제'는 그런 것이 아니다. 그 문제는 좀 더 깊고, 어렵다.
     
     책은 '인문학자의 눈'으로 본 '성서'를 이야기하고 있고, 저자의 가족 가운데 목사와 수녀가 있음을 들어 '중립적'일 것이라는 전제 하에 견해를 풀어가는 것처럼 보이고 싶어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저자는 충분히 '종교적'이고, 거기에 지식인 다운 '진보적'인 견해를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으면서, 어느 정도는 경제 '상위자'의 시선도 갖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저자는 중립을 지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도 느껴졌다. '신자'인지 아닌지 불분명한 존재가 주류 종교를 논한다는 것부터가 많은 용기를 필요로 했을 것이다. 가족 가운데 각각의 종교의 신자가 있음은 큰 위안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이런 문제에 대해 가장 날카롭게 반응할 사람들이 바로 가족이 아니던가.
     
     결국 이 책은 '용기있는 한 학자'의 이야기로 읽을 수 밖에 없어진다. 비꼬거나, 뒤틀어 읽을 필요도 없다. 그저 적힌 것을 읽고, 자신의 견해를 고치든, 단단히 하든, 버리든 하는 자기 반성이 있으면 될 뿐이다.
     
     이 책은 종교가 없는 사람이 읽어도 상관 없겠지만(관심이 있다면),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읽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부디 내게 "사탄아 물러가라!"는 말은 하지 말아주길 부탁한다.)
     많은 신자들이 자신이 '다니고 있는' 교회와 자신들과 다른 '교파'의 사상의 차이를 거의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저 맹목적으로 뭔가를 '구하면', 그것을 '준다'하니 다닌다는 것이다.
     이른 바, '맹목적'으로 '왕복 운동'을 하고 있을 뿐이란 거다. 더 나쁜 건 어떤 것들이 '주입'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느님 혹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주어지는 '말씀'을 지키고, 전파하는 것을 그저 '하라고 하니까' 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도대체 뭘까?
     
     책 속에서 주로 이야기하는 건 성경에서 보인 '기적'과 '계명'들에 대한 '조금 다른' 해석들이다. 아마 이 책을 '보수 교회'의 지도자들이 읽는다면 당장 '심판' 이야기부터 꺼내지 않을까 걱정될 만큼 '파격적'인 해석도 있다. 하지만 그 지도자들이 저자를 '심판'대에 세운다면 그건 그 말이 '틀렸기' 때문이 아니라,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들의 이야기와 다르기 때문에 '현혹'하고, '유혹'하고, '시험'한다는 죄목으로 심판할 게 분명하다.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젓기도 하며 읽었지만 다 읽고 나서 생각한 건 다시 '장님 코끼리 만지기'였다.
    네 명의 장님에서 최근에 눈이 먼 다섯 번째 장님이 더해진 것이나 다름 없을 지도 모른다는 '의문'이었다.
     
     알랭 드 보통의 저서 가운데는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라는 책도 있다. 내가 느끼기에 이 책에서 언급하는 몇 가지는 알랭 드 보통의 견해와 상당 부분 일치한다. 믿고 싶은 것을 믿는 것부터 시작해, 순수한 종교적 열의가 아니라 '필요'에 의한 종교라는 것까지 많은 것이 닮아있다. 하지만 이것은 '신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들도 믿고 싶은 걸 믿고, 자신의 '필요'에 의해 종교를 갖는 일이 적지 않다는 거다.
     
     결국 웃음만 나는 이야기다.
    성경을 제대로 해석해줄, 메시아, 예수는 우리 곁에 없다. 가장 가까이서 가르침을 받았던 제자들도 수천 년 전에 죽어 세상에 없다. 남겨진 건 오랜 시간을 거쳐오며 해석되고 고쳐진 '불완전한' 성경 뿐이다. 그래서 이걸 누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교파가 갈리고, 다툼이 일어나는 거다. 그래서 쓴 웃음만 지을 수 밖에 없는 그런 지금이 있을 뿐이다.
     
     이 책은 성경의 해석을 바로잡아주기 위해 쓴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책을 던지며 '이단'이라고 외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야 할 것이다.
     상대적 관용, 믿음과 신앙의 진정한 의미, 종교의 존재 의의에 대한 좀 더 근원적인 '성찰'의 시간을 가질 것을 권하고 있는 것이다.
     
     종교는 결코 편협해서는 안될 '어떤 것'이다. 어떤 종교도 갖고 있지 않은 나라도 "네 이웃을 사랑하라"거나 "죄 없는 자 먼저 치라"는 말 정도는 들어봤다. 그것은 커다란 사랑을 의미하는 '가르침'이었다. 위기와 위험을 함께 극복하는 '지헤'였다.
     미움을 위한 가르침이 아니었고, 시기와 질투를 위한 계명이 아니었으며, 배제와 처벌을 위한 성경이 아니었다.
     
     세계는 넓어지는 동시에 축소되어 가고 있다. 세계화와 함께 지역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개방과 동시에 폐쇄가 일어나고 있다.
    굶주리는 세계가 있는가 하면, 넘쳐나는 세계가 있다. 오랜 평화가 권태를 부른 세계가 있는가 하면, 단 한 순간의 평화가 소원인 세계가 있다.
     
     세상은 이토록 일그러져 있다. 사랑이 넘치는 세계라면, 이해와 관용이 가득한 세계라면 이 현실을 어떻게 이해시키고 설명할 수 있겠나.
    멀리 볼 것도 없이 우리 나라에서도 수 많은 불평등과, 불관용, 몰이해가 만연해 있음을 알 수 있다.
     나와는 다른 타인의 생각을 용납하지 못하는 편협함도 그 하나다.
     
     저자는 '기독교', '성경'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지만 그 이야기는 '우리 사회'의 이야기 이기도 하다.
    누가 옳고 그르고의 문제가 아니다. 모두가 눈이 멀어있다면 누가 무슨 말을 하든 그것이 무슨 결정적 차이가 있겠는가?
    결국 힘의 논리, 다수의 논리, 주류의 논리가 되어버리지 않겠나.
     
     생각하자. 그리고 한 번 더 생각하자.
  • 눈먼 종교를 위한 인문학 | da**da87 | 2013.07.12 | 5점 만점에 4점 | 추천:0
    내가 교회를 간 기억은 초등학교 3학년 때였던 것 같다.  아니, 어쩌면 더 일찍부터 다녔는지도 모르겠다. 7살...
    내가 교회를 간 기억은 초등학교 3학년 때였던 것 같다. 
    아니, 어쩌면 더 일찍부터 다녔는지도 모르겠다.
    7살 때 교회 부설 어린이집에 며칠 다니다 말았던 기억이 남아 있고, 초등학교 3학년 때 일기장에
    주일학교 이야기가 나온 걸로 미뤄 짐작할 때 더 어렸을 때부터 교회를 다니지 않았나 추측할 따름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광주로 전학을 오고 중학교 1학년때부터 아버지의 권유로 본격적으로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우리 집은 아버지가 워낙 열심이셔서 온 가족이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는데,
    오빠가 중,고등부 회장을 맡게 되면서 나도 적극적으로 교회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성가대활동을 하고 수요예배, 주일예배, 부흥회등을 쫓아다니며 열심이긴 했지만
    늘 마음 한 구석엔 내 부족한 믿음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난 늘 스스로를 사이비 신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교회에 같이 다녔던 1년 위의 선배 언니를 롤모델로 삼고 있었다.
    그 언니와는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 연락이 끊겼었는데 내가 아픈 뒤로 연락이 닿게 되었다.
    그럴거라고 예상했듯이 목사님과 결혼하여 목회활동을 하고 계셨다.
    내가 병원에 입원하고 있었던 몇 개월동안 매일 병원에 와서 성경말씀을 들려 주셨고,
    퇴원 후 몇 년 뒤에 다시 연락이 닿았을 때 성경공부를 하고 싶다는 내 말에 먼 거리를 목사님과 함께
    일주일에 한 번씩 오셔서 좋은 말씀을 전해주고 가셨다.
    일 년동안에 신약성경만 3,4번 통독을 했는데 그동안 모르고 있었던 신약에 대해 알게 되어 무척 재미있었던
    일 년이었다. 하지만 내 몸이 다시 안 좋아지면서 성경공부를 그만두게 되었다.
     
    성경공부를 하면서 늘 목사님께 했던 질문들이 있었다.
    매 번 같은 질문을 해도 싫은 내색하지 않고 친절하게 알려주셨던 목사님 내외분께 죄송하게도 여전히
    난 이해되지 않은 부분이 많았다.
     
    그런데 이 책에 내가 궁금해하고 이해할 수 없었던 내용들을 저자도 같은 질문을 하고 내가 설득당할 수
    있을만한 대답을 해주었다.
     
    가나안 혼인 잔치에서의 기적, 포도밭 일꾼과 품삯이야기의 숨은 뜻, 왜 포도밭 주인이 일찍 온 사람이나
    늦게 온 사람이나 마찬가지로 똑같은 품삯을 지급했는지, 어떤 관점에서 해석해야 하는지,
    예수가 원했던 삶은 무엇이었는지, 진정한 기적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이미 교회를 다니고 있는 사람이라도 꼭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 종교와 역사를 따로 설명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역사를 보더라도 많은 부분이 종교와 관련이 있는 것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만큼 종교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와 관심이 적지 않고 생활에 깊게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러나 종교로 인하여 과거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다고 설명하기에는 좀 그런 부분이 없지 않아 있지만 세상을 살아가면서 좋은 일을 한다고 해서 그 무리에 좋은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안에는 취지를 이용하여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서 나쁘게 이용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어떤 일을 하던 본인이 그것을 순수하게 그리고 판단하면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특정 수준의 지식과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어느 정도는 이 책이 그런 니즈를 충족시켜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무조건 옳다고 하기 전에 한 번 정도 의문을 가지고 그 본질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성당은 다니지만 무늬만 세례명을 가지고 있지 신앙심을 가지고 살아본 적이 없다. 우리나라에는 정말 많은 교회가 있다. 동네의 산에 올라가보면 정말 많은 십자가를 볼 수 있다. 기독교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그 안에 많은 계열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잠시 일본에 갔을 때는 통일교와 같은 해외에 가서 세력을 넓힌 일명 이단 계열도 볼 수 있었다. 매체를 보면 종교계에서 일하는 분들이 상당히 많은 부를 축적한 것을 볼 수 있다. 수많은 신도들이 내는 성금을 가지고 사리사욕을 챙기는 분들도 상당히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그렇지 않은 분들도 많을 것이다. 책을 보면 성경에 대한 이론과 과거부터 지금까지 기독교가 발전하는 과정 또한 간략하게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저자 나름대로의 모순을 발견하고 이를 논리적으로 잘 설명을 해주고 있다. 과연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해서는 본인들이 판단할 문제이기 때문에 이를 잴 수 있는 근거들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것은 받아들이는 입장에 따라서 많은 호불호가 갈리지 않을까 생각을 해본다. 책의 제목과 같이 한 번 정도는 종교에 대해서 인문학의 기준을 적용하여 냉정하게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은 어떨까 하고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을 하였다. 세상의 일에 대하여 의문을 가지고 대하는 것은 비단 종교에 국한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종교와 역사를 따로 설명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역사를 보더라도 많은 부분이 종교와 관련이 있는 것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만큼 종교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와 관심이 적지 않고 생활에 깊게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러나 종교로 인하여 과거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다고 설명하기에는 좀 그런 부분이 없지 않아 있지만 세상을 살아가면서 좋은 일을 한다고 해서 그 무리에 좋은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안에는 취지를 이용하여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서 나쁘게 이용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어떤 일을 하던 본인이 그것을 순수하게 그리고 판단하면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특정 수준의 지식과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어느 정도는 이 책이 그런 니즈를 충족시켜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무조건 옳다고 하기 전에 한 번 정도 의문을 가지고 그 본질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성당은 다니지만 무늬만 세례명을 가지고 있지 신앙심을 가지고 살아본 적이 없다. 우리나라에는 정말 많은 교회가 있다. 동네의 산에 올라가보면 정말 많은 십자가를 볼 수 있다. 기독교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그 안에 많은 계열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잠시 일본에 갔을 때는 통일교와 같은 해외에 가서 세력을 넓힌 일명 이단 계열도 볼 수 있었다.
    매체를 보면 종교계에서 일하는 분들이 상당히 많은 부를 축적한 것을 볼 수 있다. 수많은 신도들이 내는 성금을 가지고 사리사욕을 챙기는 분들도 상당히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그렇지 않은 분들도 많을 것이다.
    책을 보면 성경에 대한 이론과 과거부터 지금까지 기독교가 발전하는 과정 또한 간략하게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저자 나름대로의 모순을 발견하고 이를 논리적으로 잘 설명을 해주고 있다. 과연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해서는 본인들이 판단할 문제이기 때문에 이를 잴 수 있는 근거들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것은 받아들이는 입장에 따라서 많은 호불호가 갈리지 않을까 생각을 해본다.
    책의 제목과 같이 한 번 정도는 종교에 대해서 인문학의 기준을 적용하여 냉정하게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은 어떨까 하고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을 하였다. 세상의 일에 대하여 의문을 가지고 대하는 것은 비단 종교에 국한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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