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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을 위하여 (새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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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8쪽 | A5
ISBN-10 : 8996870609
ISBN-13 : 9788996870609
김수영을 위하여 (새책) 중고
저자 강신주 | 출판사 천년의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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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23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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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책 깨끗하고요 서비스 도서도 감사합니다 5점 만점에 5점 kimy*** 2020.07.10
17 오래된 책이라 그런지 책등이 갈라져버렸지만... 책 상태 자체는 좋아서 제본해서 잘 써보겠습니다. 정성스러운 메모도 감사합니다! 5점 만점에 5점 myrist*** 2020.07.03
16 잘 받았습니다. 부자되세요~~~ 5점 만점에 5점 zims*** 2020.06.27
15 굉장히 만족스럽습니다. 포장상태와 상품의 질이 매우 양호합니다. 가장 만족스러운건 수필로 쓴 자그마한 편지와함게 책 두권을 서비스로 보내주셨습니다. 매우 감동받았습니다. 5점 만점에 5점 sons*** 2020.06.16
14 새 책처럼 깨끗합니다. 5점 만점에 5점 ozaki*** 2020.06.09

이 책의 시리즈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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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을 읽는 것은 자유를 읽는 것이다! 우리의 첫 시인이자 마지막 시인, 김수영의 서러운 리얼리즘 『김수영을 위하여』. 시인이자 혁명가였고, 진정한 인문정신의 소유자였던 김수영을 인문학자 강신주가 자신의 이야기를 덧입혀 읽어 내려간 책이다. 김수영에게 시인이란 자기만의 목소리를 내며 자유를 살아 내는 이를 뜻했기에, 김수영을 읽는 것은 자유를 읽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은 시인으로 오해 받았지만 사실은 강력한 인문정신의 소유자였던 김수영을 통해 한국 인문학의 뿌리를 찾는다. 김수영이 죽은 지 50여 년이 지난 지금, 그가 도달한 인문정신 근처에도 다다르지 못한 우리의 현실을 바라보며 진정한 자유와 인문정신을 보여주고자 했다. 김수영의 인문정신을 제대로 읽어 낼 때 우리는 비로소 현실의 억압을 극복하고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저자소개

저자 : 강신주
저자 강신주는 사람을 사랑하는 철학자. 그는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자신의 벌거벗은 몸과 직면하라고 말한다. 사실 우리는 알몸 곳곳의 상처와 흉터, 군살이 너무나 적나라해서 차라리 외면하려고 한다. 그래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정직해지라는 그의 말과 글은 불편하다. 그러나 불편함을 감수하고 일단 알몸에 직면하고 나면 당당해진다. 우리를 지배하거나 우리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대상과 맞서 싸우고, 누구도 흉내 내지 않은 나만의 목소리로 살아 내면 삶은 충만해지기 때문이다. 강신주는 우리가 가면을 벗고 ‘벌거벗은 나’로서 자신과 타자를 진정 사랑할 수 있도록 이끈다. 결국 그가 주는 불편함은 행복을 가져다준다. 그는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자 하는 이들의 셰르파다.

목차

(본책) 우리 인문학의 자긍심 김수영을 위하여
머리말
프롤로그 김수영을 아는가, 자유를 아는가

1부 시인을 위하여
1장 인간적이거나 인문적이거나
2장 전쟁의 가르침과 사랑의 상처
3장 시인, 영원한 자기 배반자

2부 사람을 위하여
4장 가장 구체적이어서 가장 단독적인 것, 시
5장 공통된 중심이 부재한 사회를 꿈꾸다
6장 언어의 숙명과 시인의 소명
7장 자기 힘으로 도는 팽이가 되어라

3부 자유를 위하여
8장 행동을 낳는 생각을 하다
9장 자유를 살아 내다
10장 불온함은 긍지다

에필로그 굿바이! 김수영
편집자의 말
참고문헌
김수영 연보 및 본문 수록 작품 발표시기

책 속으로

출판사 서평

그것은 자유를 찾기 위해서의 여정이었다 가족과 애인과 그리고 또하나 부실한 처를 버리고 포로수용소로 오려고 집을 버리고 나온 것이 아니라 포로수용소보다 더 어두운 곳이라 할지라도 자유가 살고 있는 영원한 길을 찾아 나와 나의 벗이 안심하고 살...

[출판사서평 더 보기]

그것은 자유를 찾기 위해서의 여정이었다
가족과 애인과 그리고 또하나 부실한 처를 버리고
포로수용소로 오려고 집을 버리고 나온 것이 아니라
포로수용소보다 더 어두운 곳이라 할지라도
자유가 살고 있는 영원한 길을 찾아
나와 나의 벗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현대의 천당을 찾아 나온 것이다
─김수영, <조국에 돌아오신 상병포로 동지들에게> 중에서

진창에 뿌리 내린 거대한 인문정신을 읽다
우리의 첫 시인이자 마지막 시인, 김수영의 서러운 리얼리즘

1. 한 편의 시가 한 편의 철학이 되다, 우리 인문정신의 뿌리 ‘김수영’
― 이 책이 말하다


19세기 프랑스에는 자본주의라는 거대 구조를 파고드는 철학자 벤야민이 있었다. 그는 인간이 자본에 억눌리고 잠식되는 현실을 깨부수고자 당시 자본주의 최첨단의 도시였던 파리에 침투했다. 그는 거대 구조의 바깥에서 이를 적당히 관조하는 철학자에 머무르지 않았고, 현실에 침투하여 구조를 직시하는 글을 썼다. 결국 그는 강력한 인문학자로 남는다. 그런데 우리 곁에 그와 같은, 아니 그에 비할 수 없이 강력한 인문정신의 소유자가 있었다. 시인 김수영이다. 그는 참여 시인이나 모더니스트 시인으로 오랫동안 오해되어 왔다. 그러나 김수영은 시인이자 혁명가였고, 진정한 인문정신의 소유자였다. 이 책은 그를 바로 보고, 곧추세우는 책이다.
자유가 억압되는 순간, 우리는 직감적으로 안다. 인간으로 살기 위해서 이 억압을 벗어나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언론사 파업, 총선, 막말 논쟁 등 모든 현재적 쟁점 한가운데 ‘자유’가 서 있다. 권력이라는 거대 구조가 자유를 누르고 있는 지금-여기. 그래서 이 책은 우리 사회의 중심에 놓인다. 김수영은 평생 시인이 되려고 했고, 시인으로 살고자 했던 사람이다. 그런데 그에게 시인이란 자기만의 목소리를 내며 자유를 살아 내는 이를 뜻했다. 그래서 우리가 김수영을 읽는 것은 곧 자유를 읽는 것이다. 그는 죽는 날까지, 한시도 쉬지 않고 남루한 삶을 직시하고 불화를 일으키며 현실을 극복하고자 애썼다. 그리고 그 모든 고민과 과정을 시로 남겼다. 그는 그렇게, 이 땅에 처음으로 자유를 뿌리 내렸다. 각자의 목소리가 자유롭게 삶을 울릴 때 세상은 온통 시끄럽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자유는 방종을 부른다는 교훈 아래, 기득권자의 눈치를 보며 숨죽이고 산다. 김수영의 인문정신을 제대로 읽어 낼 때 우리는 비로소 현실의 억압을 극복하고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김수영을 위하여》는 우리 사회에 침투하여 자유를 뿌리 내리려는 책이다. 이 책을 시작으로, 그가 내린 뿌리는 거대한 나무가 되어 우리의 두 번째 시인, 세 번째 시인을 낳을 것이다.

자유는 고독한 것이다. 그처럼 시는 고독하고 장엄한 것이다. 내가 지금 ― 바로 이 순간에 ― 해야 할 일은 이 지루한 횡설수설을 그치고, 당신의, 당신의, 당신의 얼굴에 침을 뱉는 일이다. 당신이, 당신이, 당신이 내 얼굴에 침을 뱉기 전에. 자아 보아라, 당신도, 당신도, 당신도, 나도 새로운 문학에의 용기가 없다. 이러고서도 정치적 금기에만 다치지 않는 한, 얼마든지 ‘새로운’ 문학을 할 수 있다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정치적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개인의 자유도 인정하지 않는다. ‘내용’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형식’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시여, 침을 뱉어라> 중에서

2. 철학자 강신주가 ‘자기 이야기’를 하다
― 이 책에서 듣다


《김수영을 위하여》는 강신주가 본격적으로 자기 지향점을 드러내는 책이다. 즉 철학자로서 인문정신이라는 날카로운 잣대를 들이대며 ‘자기 이야기’를 써 내려간 책이다. 이 책은 시인 김수영을 이야기하지만 결코 문학비평서가 아니다. 민족주의 시인으로 오해 받았지만 실은 강력한 인문정신의 소유자였던 김수영을 통해 한국 인문학의 뿌리를 찾는 철학서이다. 다시 말해, 1960년대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한 이 땅의 자유와 인문정신에 대한 강신주의 철학적이고 문학적이며 인문적인 고백록이다.
김수영이 죽은 지 50여 년이 지났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도달한 인문정신 근처에도 다다르지 못했다. 반공이 국시는 아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누구든 ‘반공포로’가 될 위협에 휩싸여 남루하게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강신주는 이런 현실을 정확하게 직시한다. “정권을 공격하면 김일성으로 상징되는 북한 정권을 지지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악몽으로부터 우리는 아직 깨어나지 못했다”고 말이다. 여전히 방송통신심의원회와 같은 정부의 검열 기관이 미풍양속을 미명으로 버젓이 활동을 하고, 정치적 반대자에 대해 ‘좌빨’이나 ‘친북’이란 용어가 인터넷 등에서 반공의 칼날로 사용되는 우리의 삶에는 ‘가짜 자유’만 있다. 그는 허용된 자유는 기만적인 자유라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체제가 마련한-허용된- 자유를 따르는 순간 우리는 체제가 요구하는 대로 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진정한 자유’가 아니다. 그래서 그는 자유가 짓뭉개진 진창 같은 땅에서 힘겹게 자유를 살아 낸 시인 김수영을 통해 진정한 자유정신, 즉 강력한 인문정신을 말한다.

1960년 10월 6일 김수영은 그다운 시를 한 편 쓴다. 정치 권력이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데 사용하는 ‘적과 동지’의 논리를 폭로한 <김일성만세>라는 시다. 그는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남한 사회가 사실은 자유가 부재한 사회라는 사실을 멋지게 보여 준다. (…) <김일성만세>를 발표했다면, 그는 1968년 교통사고로 죽기 전에 권력에 의해 교살되었을 것이다. 분명 이 시를 보고 김수영이 김일성을 숭배하는 좌익 지식인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직도 우리는 그만큼 남루하다. (…) 잊지 말자. 김수영이 북한에 살았다면 ‘이승만 만세’나 ‘박정희 만세’를 외쳤을 시인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본문 <10장 불온함은 긍지다> 중에서

3. 저자와 편집자가 같이 서다
― 이 책을 보다


‘불온’이란 키워드를 통해 인문학의 주요한 정신과 본질을 제시한 김수영이 한국 인문학의 핵심적인 인물이라는 것을 직감한 철학자 강신주. 이 책은 지은이의 힘 있는 글쓰기와 편집자의 열망이 합쳐져서 완성되었다. 그 이야기를 책의 전면에 드러낸 이유는 김수영의 자유정신을 살려내는 책을 그 정신을 최대한 반영하는 형태로 완성해내기 위해서였다. 이 책 자체가 지은이와 편집자가 각자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며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담아내는, 즉 자유정신을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책이 되게끔 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 책이 자기 자신을 잃고, 자유를 잊은 이들에게 진정 힘이 되기를 바랐다. 사람들이 삶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데에 김수영이 등불과 같은 존재가 된다면, 이 책은 그 등불을 찾는 지도 같은 책이 되도록 말이다. 따라서 《김수영을 위하여》는 민족주의 시인이나 참여 시인으로서 편협하게 읽혀 온 김수영의 시가 제자리를 찾아 김수영이 그저 김수영으로 읽히길 바라고, 강신주다운 인문적인 글이 강신주 자체로 읽히길 바라고, 그리하여 독자 모두가 그저 자기 자신이 되길 바라는 저자와 편집자의 꿈이 담긴 책이다.

김수영은 김수영이려고 발버둥 친 시인이다. 이처럼 그는 자기 자신을 너무나 사랑하고 긍정한 시인이다. 그가 자신을 자신으로 살지 못하도록 만드는 일체의 것에 저항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자신을 사랑하려면 자신을 부정하는 모든 것과 맞서 싸울 수밖에 없으니까. 정치권력이나 자본주의는 노골적으로 우리를 지배하려고 하고, 일상의 도처에서 우리를 길들이고자 기회를 엿본다. (…) 이 책의 편집자는 《김수영 전집》 1981년 판을 내게 구해주면서, 책 안쪽에 이런 말을 썼다. “사포처럼 살갗을 도려내는 일상의 적들과 싸우느라…… 얼마나 아팠을까, 그사람.” 정확한 지적이다. 적과의 불쾌한 동거, 그리고 적과의 끝없는 전투! (…) 그는 사포에 갈린 듯한 상처투성이의 몸으로, 때로는 신음처럼 때로는 소망처럼 시를 써 내려갔다. 끝이 없는 싸움이었다.
─본문 <에필로그 김수영을 아는가, 자유를 아는가> 중에서

경찰에게는 한 마디도 못하면서 갈비탕집 주인에게만 고래고래 소리치는 내가 비겁해서 서럽고, 사랑하지 않는 마누라와 자식을 핑계로 함께 살아서 서럽고, 월급 주는 이에게 바른 소리 한 번 못하고 굽실거려 서럽고, 바라는 게 있어서 비쩍 마른 가을 거미처럼 늙어가는 내가 서럽다. 김수영이 느낀 서러움이다. 우리네 생활인이 겪는 서러움과 같다. 같은 서러움이지만 다른 서러움이다. 우리는 서러워서 자본 신(神), 종교 신, 권력 신에 기대지만, 김수영은 자신에게 기댔다. 그리고 시를 썼다. 시는 자유고, 혁명이고, 그 자신이었으니까. 김수영은 사회주의자도, 모더니스트도 아니다. 그저 자유를 바랐다. 자유에는 이념이 없다. 오직 사람뿐이다.
─<편집자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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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

회원리뷰

  • 김수영을 위하여 | su**est | 2014.05.07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지금까지 내가 알고있던 시인 김수영에 관한 것은, 민족시인이며 현실참여시인 그리고 풀이라는 유명한 시.  그게 다...
    지금까지 내가 알고있던 시인 김수영에 관한 것은, 민족시인이며
    현실참여시인 그리고 풀이라는 유명한 시.  그게 다였다.  그리고
    가끔 볼 수 있는 무표정한 흑백사진 한 장.
    따로 시집을 읽은 적도 없고, 다른 책에서 간혹 언급되는 시인 신동엽
    과의 비교.
    강신주 작가의 책을 고르면서 우연히 이 책을 만났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는 내가 알지 못했던 시인 김수영에 관한 많은 것이 있다.
    그에 대해 내가 알고있다 생각했던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고 새롭게 받아
    들여야 할 만큼 내겐 충격이다.
    오로지 '자유'라는 한 가지 화두를 안고 이 세상을 살았던 시인이기에
    그의 시나 산문에는 어김없이 자유라는 정신이 들어있다.  어쩜 이렇게
    한가지 생각을 굳게 가지고 살 수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다.  유난히 불우
    했던 결혼생활 그리고 혁명과 독재가 엇갈리며 나타났던 이 사회, 그 속을
    살았던 시인은 그렇기에 자기 자신을 더욱 똑바로 붙잡을 수 밖에 없었는
    지도 모른다.  여차하면 자신의 불운에 또한 시대의 격랑에 휩쓸려 갈 수
    밖에 없는 가운데 '자유'의 정신을 꼿꼿하게 외치자니 그는 참 외로웠을
    것 같다.  자신만의 제스추어로 살아가는 것, 시인은 그것을 자유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그런 자유를 얻기위해 시인이 생각하고 실천
    했던 것들을 상세히 그려낸다. 
    이 책의 부제는 '우리 인문학의 자긍심'이다.  책을 읽기 전에는 긴가민가
    했던 부제의 내용이 이제는 확실히 내게 각인되었다.
    이제 그의 시와 산문을 새롭게 만날 차례다.
  • 김수영을 위하여 | ok**h | 2013.05.30 | 5점 만점에 4점 | 추천:3
    지난번 강신주와 지승호의 대담집 <강신주의 맨 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 리뷰에서 최소한 <철학vs...
    지난번 강신주와 지승호의 대담집 <강신주의 맨 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 리뷰에서 최소한 <철학vs철학>과 <김수영을 위하여> 이 두 저작은 꼭 읽어보겠다고 했는데, 그 시작은 바로 이 책입니다. 책도 제법 두껍고 내용도 쉽지는 않지만, 삶의 이야기여서 그랬을까요? 왠지 모르게 빠르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이 저에게 던진 두 가지 화두가 있습니다. 하나는 '스타일' 이고 다른 하나는 '경험'입니다. 먼저 스타일에 대해서 입니다.
     
    시인, 또는 예술가는 외부 사태를 관찰하고 이를 표현함으로써 자기 이해에 이르려는 사람입니다. 인과관계를 설명하려는 자연 또는 사회과학자들과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이는 비단 예술가들에게만 해당되는 건 아닌 것 같고, 뭔가를 표현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모두 필요한 것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낯설음, 관찰, 문학적 표현. 
     
    안타까운 것은 오늘날에는 이런 것들이 많이 없어졌다는 사실입니다. 분야를 불문하고, 진지한 성찰 없이 무슨 일만 발생하면 분석하려고 들고, 그것마저도 시의성이 중요해지면서 분석틀 또한 어느정도 정형화 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인문학, 특히 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매번 새로운 것이 나올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하는 것이죠. 책은 그 출발이 '낯설음'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가 쓰고 싶었던 자신에게 철저한 글, 즉 시가 어떻게 친절할 수 있겠는가. 다른 장르의 글과 달리 시는 자신이니까 쓸 수 있는 글, 가장 원초적이고 직접적인 글이다. 시를 읽는 것은 당연히 나와는 다른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있는 타인의 속내와 그 삶을 읽는 것이다. (45 페이지)
     
    현재 자신이 떠 있는 위치마저도 매번 거부하면서 낮섦의 감각을 가능하게 하는 자유의 마음이다. 잊지 말자. 사태를 낯설게 바라볼 수 있는 거리감을 유지하지 못하는 순간, 다시 말해 익숙해진 의미망에 사로잡히는 순간, 우리는 사태와 하나로 붙어 버리고 만다. (54 페이지)
     
    시이고, 사랑이고 이러한 낯설음을 통해 자기 스타일을 확보하지 못하는 것이 곧 비극이라고 할 수 있겠죠.  
     
    사랑에 성공한 사람들의 제스처를 흉내 내려는 사람은 사랑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 비록 남의 제스처로 사랑의 시작에는 성공했을지라도,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는 계속 남의 제스처를 흉내 내야만 하기 때문이다. (104 페이지)
     
    그런데 김수영의 경우 온 몸으로 눈길을 만들어 내는 동시에 이미 만든 눈길으로 계속 지워야만 한다. 자신이 앞사람이 만든 길로 가지 않고 자신의 길을 만드는 것처럼, 뒷사람도 자신만의 길을 만들도록 격려하는 것이 시인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163 페이지)
     
    그 다음은 경험에 대해서 입니다. 핵심은 어떤 일을 '겪은 것'과 '당한 것'을 구분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전자는 사전에 충분히 인지를 하고 내 의지에 의해 능동적으로 그 사태를 헤쳐간 것이고, 후자는 느닷없이 닥친 그 사태속에 잠시 머물다 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핵심은 사전 인지와 능동성인데, 이는 깨달음, 더 나아가는 '내가 변하는 것'의 차이로 나타나게 됩니다.
     
    김수영은 하나의 시를 쓰고나서 어김없이 자신을 변화시켜갑니다. 즉, 시가 하나의 경험으로 마무리가 됩니다. 이것이 그가 일관되게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진정한 경험이 어때야 하는지를 처절하게 가르쳐주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구름의 파수병>을 통해서는 기존의 통념과는 다른 시각을 추구하고,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를 쓰고는 사회세력에 대한 자신의 비겁함을 반성하고는 당당함과 강인함을 획득합니다. 그리고 <죄와 벌>을 쓰고는 진정한 사랑과 미움에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 성찰하고 아내 김현경에 대한 인식을 다잡게 되죠. 시란 본디 가볍게 쓸 수 있는 것이 아닌줄은 알지만 이를 온몸으로, 인생 그 자체를 통해 보여준 시인은 김수영이 유일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과 시를 통해 보여주는 인생의 고민이 결국 언어 이전의 고통일 것이고요.
     
    온실 속의 꽃을 노래하든 온실 바깥의 폭풍우를 찬미하든, 시인이라면 새로운 언어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법이니까. 하지만 당당한 자유인으로서는 고통을 감당하지 않는다면, 언어에 대한 고통은 단지 지적인 유희에 지나지 않는 것 아닐까. 김수영이 당시 문단의 시인들에게 "'언어'에 대한 고통이 아닌 그 이전의 고통"을 요구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 였다. (308 페이지)
     
    시를 통해 자아, 사랑, 예술비판, 이념, 정치를 아울러 담담하게 자신만의 스타일로 풀어낸 표현한 인문정신이 표본이 김수영이라는 시인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이제 다음에는 김수영의 운문과 산문을 좀 읽어봐야겠습니다.   
     
    PS
    이 외에도 책을 읽으면서 뽑아본 구절 몇 가지 덧붙입니다.
     
    들뢰즈 이전의 서양형이상학 전통에서는 일반성과 특수성 개념의 구분이 핵심이었다. 예컨데 인간이란 개념이 일반성이라면 ... 이 경우 강신주나 김서연 혹은 김수영은 일반성에 포섭되는 특수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일반성과 특수성의 도식이 가장 극적으로 적용되는 사례가 자본주의다. 사람이나 사물이 모두 돈으로 구매 가능한 상품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 들뢰즈는 지배와 위계의 논리를 근본적으로 극복하려고 했다. ... 이런 고민이 응결되어 나온 개념이 바로 '단독성'이다. 이것은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개체성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모든 개체나 사건들이 다른 것과 교호나 불가능하다면, 이들은 어떻게 서로 관계 맺을 수 있을까? 그래서 들뢰즈는 일반성과는 다른 보편성의 원리를 제안한다. 그것은 지극히 단독적인 것만이 보편성도 확보할 수 있다는 원리이다. (116~117 페이지)
     
    참여파 시는 프롤레타리아 시로 전락할 위험성이 농후하고, 반대로 예술파 시는 사이비 난해시로 전락할 가능성에 노출된다. 프롤레타리아 시나 사이비 난해시로 전락하는 것을 막는 방법인 무엇인가? 내용만을 추구하는 사람에게 형식으로 살리라고 충고하거나, 형식만을 강조하는 사람에게 내용도 성찰해야만 한다고 주문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내용과 형식 중 어느 한쪽에 치우치는 이유는 시인의 선천적이거나 후천적인 기질탓이기 때문이다. 섬세하지만 나약한 시인은 아무래도 순수시를 쓰기 쉽고, 반대로 강하지만 투박한 사람은 참여시를 쓰기 쉽다. 그러니 시를 쓰면서 전자의 경우는 점점 강인함을, 후자는 점점 섬세함으로 얻어 가고자 하면 된다. 이것이 김수영의 근본 입장이다. "제각기 가진 경향"을 긍정하면서 내용이나 형식에서 모두 자유를 충족하는 시를 쓰려고 노력하면 된다는 것이다. (337 페이지)
  •   대선을 삼일 앞두고 열린 후보 간의 마지막 토론을 바라보며 한참을 웃었다. 개그콘서트보다도 더욱 재미있다는 평이...
     
    대선을 삼일 앞두고 열린 후보 간의 마지막 토론을 바라보며 한참을 웃었다. 개그콘서트보다도 더욱 재미있다는 평이 나올 정도로 웃음보가 연신 터져 나왔는데, 그 끝맛은 씁쓸하면서도 텁텁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자에게서 전혀 느낄 수 없었던 치열함. 삶이 오로지 진지함만으로 구성되는 것은 아니라지만, 이 즈음 해서 그리운 이름이 하나 있어 외쳐본다.
    1968년 6월 16일. 그날은 시인 김수영이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날이다. 교통사고였지만 언제나 깨어있고자 안간힘을 썼던 시인의 생전 모습을 고려했을 때 국가나 권력에 의한 사망이었다 하여도 전혀 이상치 않았을 것이다. 교과서에도 실렸던 그의 시 <풀>을 통해 저항정신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보았을 터. 하지만 그 삶을 좀더 깊이 살펴보면 그의 문학에 깃든 모든 것이 곧 그의 삶으로부터 비롯되었음을 깨닫게 된다.
    삶을 대하는 태도가 느슨해질 때마다 김수영을 읽었고, 내 삶이 나를 배반하는 것 같을 때마다 김수영을 찾았다고 저자는 말했다. 취업을 걱정한 부모의 배려(?)로 공대를 졸업한 저자는 그리하여 철학을 공부하고 글 쓰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그런 그가 뒤늦게 김수영에게 고별사를 날리다니 조금은 이상했다. 하지만 김수영의 진면모를 아는 자라면 아류 김수영이 되는 것을 철저히 거부해야만 할 의무가 있었다. 김수영으로부터의 독립은 곧 김수영 정신을 실현하는 것이었다. 제2 의 김수영이 되길 거부함으로써 비로소 김수영의 저항정신을 닮을 수 있음을 알았기에 다소 시릴지라도 저자는 이별을 택했다.
    홀로서기. 그것은 김수영이 평생을 통해 실천해온 바였다. 일제로부터의 해방이 핑크빛 미래를 보장해주지는 않을까 기대가 없진 않았지만, 현실은 녹록치가 못했다. 전쟁이 터졌고 위정자들은 제 안위를 위한 독재를 꿈꿨다. 그 시대엔 누구나 그러했겠지만 김수영의 삶은 시대의 불행을 고스란히 껴안은 표본과도 같았다.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그는 자유의 가치에 눈을 떴다. 어떠한 말을 해도 폭력의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는 그 곳에서 허락되는 것은 오로지 침묵뿐이었다. 시인은 자신의 예민함을 잠재워가며 생(生)을 추구했다. 가족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살아 돌아간 곳에 아내는 없었다. 사랑 없이 함께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점은 어떤 고독보다도 더욱 깊은 상처를 시인에게 남겼다.
    그 와중에도 그는 온몸으로 시를 썼다. 머리나 가슴을 사용하지 않고 몸을 사용한 그의 시는 내게 유난히도 투박하게 다가왔다. 그도 그럴 것이 글자수를 인위적으로 맞추어 가며 아름다워 보이려 드는 시도를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를 제외한 많은 시인들이 외적인 무언가에 집착했다. 시대의 혼란을 외면하고자 문인이 되었다는 속설이 난무했을 정도로 그들이 쓴 시에서는 현실이 느껴지지 않았다. 문학은 현실참여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저 세상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것으로 흡족해 할 지어다! 많은 작가들이 이를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따랐다. 김수영도 한때는 그와 같은 길로 빠져들 뻔했다. 박인환 등 모더니즘 시인들과 합동시집을 내기도 했다. 그 상태를 답보했더라면 오늘날 김수영에 대한 평은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기부정을 시도했다. 일종의 변증법마냥 스스로를 부정함으로써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나아갔다. 서정주와 김춘수, 나중에는 이어령까지 시대와 현실을 외면한 작가들을 호되게 비판했다. 그들과 같아지지 않기 위한 성찰을 끊임없이 했기에 그의 시는 날카로울 수밖에 없었다. 집 안에 거미줄을 친 거미의 메말라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가 느꼈을 아픔을 어느 누가 공감할 수 있겠는가. 어지럽지만 넘어지지 않기 위해선 계속해서 뱅글뱅글 돌아야만 하는 팽이의 숙명에 대해 그 누가 이야기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김수영은 그 모든 것을 해냈다.

    ‘김일성만세’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정치의 자유라고 장면(張勉)이란
    관리가 우겨 대니

    나는 잠이 깰 수 밖에

    이는 김수영이 1960년 10월6일 쓴 <김일성만세>라는 시다. 여전히 이 시는 모두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무언가를 갖추었다. 뿌리 깊은 반공을 건드린 탓이다. 만일 김수영이 북쪽에 속했더라면 이 시에서의 ‘김일성’은 ‘이승만’이나 ‘박정희’가 되었을 것이다. 자유를 꿈꾸는 그에게 이는 당연한 일이다, 그 사실에 대해서 심도 있게 곱씹어 본 적 없는 우리 사회였기에, 아직 김수영을 위한 공간은 어디에도 마련되지 못했다. 시인의 불운을 함께 끌어안은 그의 처 김현경 님은 지난해 자택에 시인을 위한 전시 공간을 꾸몄다.

    지난해 업무차 도봉산엘 갔었다. 한때 시인이 닭을 키우며 살았던 곳에는 생뚱맞게 닭볶음 요리를 다루는 음식점이 하나 있을 뿐이다. 인근에 시비가 있어 이 곳이 김수영과 연관이 있음을 알려주지만 여느 문인과는 다른 길을 걸은 이를 추모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우리 모두가 각종 금기를 뛰어넘어가며 조금 더 불온한 삶을 살게 된다면, 그리하면 달라지려나. 대선을 며칠 앞둔 시점에서 가슴을 쥐어뜯으며 웃다 보니 김수영, 그 이름이 오늘따라 더욱 그립다.

  •   대선을 삼일 앞두고 열린 후보 간의 마지막 토론을 바라보며 한참을 웃었다. 개그콘서트보다도 더욱 재미있다는 평이...
     
    대선을 삼일 앞두고 열린 후보 간의 마지막 토론을 바라보며 한참을 웃었다. 개그콘서트보다도 더욱 재미있다는 평이 나올 정도로 웃음보가 연신 터져 나왔는데, 그 끝맛은 씁쓸하면서도 텁텁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자에게서 전혀 느낄 수 없었던 치열함. 삶이 오로지 진지함만으로 구성되는 것은 아니라지만, 이 즈음 해서 그리운 이름이 하나 있어 외쳐본다.
    1968년 6월 16일. 그날은 시인 김수영이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날이다. 교통사고였지만 언제나 깨어있고자 안간힘을 썼던 시인의 생전 모습을 고려했을 때 국가나 권력에 의한 사망이었다 하여도 전혀 이상치 않았을 것이다. 교과서에도 실렸던 그의 시 <풀>을 통해 저항정신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보았을 터. 하지만 그 삶을 좀더 깊이 살펴보면 그의 문학에 깃든 모든 것이 곧 그의 삶으로부터 비롯되었음을 깨닫게 된다.
    삶을 대하는 태도가 느슨해질 때마다 김수영을 읽었고, 내 삶이 나를 배반하는 것 같을 때마다 김수영을 찾았다고 저자는 말했다. 취업을 걱정한 부모의 배려(?)로 공대를 졸업한 저자는 그리하여 철학을 공부하고 글 쓰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그런 그가 뒤늦게 김수영에게 고별사를 날리다니 조금은 이상했다. 하지만 김수영의 진면모를 아는 자라면 아류 김수영이 되는 것을 철저히 거부해야만 할 의무가 있었다. 김수영으로부터의 독립은 곧 김수영 정신을 실현하는 것이었다. 제2 의 김수영이 되길 거부함으로써 비로소 김수영의 저항정신을 닮을 수 있음을 알았기에 다소 시릴지라도 저자는 이별을 택했다.
    홀로서기. 그것은 김수영이 평생을 통해 실천해온 바였다. 일제로부터의 해방이 핑크빛 미래를 보장해주지는 않을까 기대가 없진 않았지만, 현실은 녹록치가 못했다. 전쟁이 터졌고 위정자들은 제 안위를 위한 독재를 꿈꿨다. 그 시대엔 누구나 그러했겠지만 김수영의 삶은 시대의 불행을 고스란히 껴안은 표본과도 같았다.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그는 자유의 가치에 눈을 떴다. 어떠한 말을 해도 폭력의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는 그 곳에서 허락되는 것은 오로지 침묵뿐이었다. 시인은 자신의 예민함을 잠재워가며 생(生)을 추구했다. 가족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살아 돌아간 곳에 아내는 없었다. 사랑 없이 함께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점은 어떤 고독보다도 더욱 깊은 상처를 시인에게 남겼다.
    그 와중에도 그는 온몸으로 시를 썼다. 머리나 가슴을 사용하지 않고 몸을 사용한 그의 시는 내게 유난히도 투박하게 다가왔다. 그도 그럴 것이 글자수를 인위적으로 맞추어 가며 아름다워 보이려 드는 시도를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를 제외한 많은 시인들이 외적인 무언가에 집착했다. 시대의 혼란을 외면하고자 문인이 되었다는 속설이 난무했을 정도로 그들이 쓴 시에서는 현실이 느껴지지 않았다. 문학은 현실참여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저 세상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것으로 흡족해 할 지어다! 많은 작가들이 이를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따랐다. 김수영도 한때는 그와 같은 길로 빠져들 뻔했다. 박인환 등 모더니즘 시인들과 합동시집을 내기도 했다. 그 상태를 답보했더라면 오늘날 김수영에 대한 평은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기부정을 시도했다. 일종의 변증법마냥 스스로를 부정함으로써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나아갔다. 서정주와 김춘수, 나중에는 이어령까지 시대와 현실을 외면한 작가들을 호되게 비판했다. 그들과 같아지지 않기 위한 성찰을 끊임없이 했기에 그의 시는 날카로울 수밖에 없었다. 집 안에 거미줄을 친 거미의 메말라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가 느꼈을 아픔을 어느 누가 공감할 수 있겠는가. 어지럽지만 넘어지지 않기 위해선 계속해서 뱅글뱅글 돌아야만 하는 팽이의 숙명에 대해 그 누가 이야기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김수영은 그 모든 것을 해냈다.

    ‘김일성만세’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정치의 자유라고 장면(張勉)이란
    관리가 우겨 대니

    나는 잠이 깰 수 밖에

    이는 김수영이 1960년 10월6일 쓴 <김일성만세>라는 시다. 여전히 이 시는 모두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무언가를 갖추었다. 뿌리 깊은 반공을 건드린 탓이다. 만일 김수영이 북쪽에 속했더라면 이 시에서의 ‘김일성’은 ‘이승만’이나 ‘박정희’가 되었을 것이다. 자유를 꿈꾸는 그에게 이는 당연한 일이다, 그 사실에 대해서 심도 있게 곱씹어 본 적 없는 우리 사회였기에, 아직 김수영을 위한 공간은 어디에도 마련되지 못했다. 시인의 불운을 함께 끌어안은 그의 처 김현경 님은 지난해 자택에 시인을 위한 전시 공간을 꾸몄다.

    지난해 업무차 도봉산엘 갔었다. 한때 시인이 닭을 키우며 살았던 곳에는 생뚱맞게 닭볶음 요리를 다루는 음식점이 하나 있을 뿐이다. 인근에 시비가 있어 이 곳이 김수영과 연관이 있음을 알려주지만 여느 문인과는 다른 길을 걸은 이를 추모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우리 모두가 각종 금기를 뛰어넘어가며 조금 더 불온한 삶을 살게 된다면, 그리하면 달라지려나. 대선을 며칠 앞둔 시점에서 가슴을 쥐어뜯으며 웃다 보니 김수영, 그 이름이 오늘따라 더욱 그립다.

  • 공교롭게도‘단독성(Singularuty)'에 대한 서로 다른 의미접근을 한 두 권의 책을 읽게 되었다. 그 하나는 자유의 ...
    공교롭게도‘단독성(Singularuty)'에 대한 서로 다른 의미접근을 한 두 권의 책을 읽게 되었다. 그 하나는 자유의 진지한 가치를 말함으로써 삶의 온전함을 말하는 이 책이고, 다른 하나는 『싱글라리티』라는 표제로 들뢰즈가 말한 단독성의 의미가 완전히 야만적으로 사용된, 즉 자유를 억압하는 소비주의의 극한적 방법론을 말하기 위해 이 담론을 끌어댄 책이다. 인문학적 담론이 우리의 삶에서 왜 필요한가를 자문(自問)할 때 그것은 “사회의 문제에 실천적 전망을 제공”하는 것이고, “사회가 가진 치명적 결함을 발견하는 데” 유용한 지적바탕을 마련해주기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이것이 이렇게 사용되지 않고 사회의 문제나 결함을 은폐하거나 그것들에 영합하여 인간의 보편적 삶의 가치를 훼손하며 자유를 구속하는 것으로 이용된다면 나는 그것을 폭력적이고 야만적이라고 말 할 것이고, 그러한 자들에게 침을 뱉을 것이다.
     
    반면에 저자 강신주가 시인 김수영을 자신의 삶으로부터 분리하고 이제 자기만의 진지한 삶을 가꾸기 위한 첫 걸음을 위한 이별식이라 할 수 있는 이 책이 개별자의 단독성을 말하는 것은 그래서 자유의 가치를 더욱 새롭고 진지하게 이해하도록 돕는다. 담론의 사용이 지성적으로 사용되는 그 실천적 현장을 목격하게 되는 것이고, 진정한 지식인의 세계와 마주하는 기쁨을 얻게 되는 것이다. 야만을 봄으로써 지성의 빛이 훨씬 명료해졌다는 얘기이다. 나로서는 이 우연한 두 책의 읽기가 다행스러울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제 더욱 온전한 단독자로서의 삶을 치열하게 시작할 저자의 자유를 향한 실천에 조용한 응원을 보낸다.
     
    1. 검열에 찌든 정신
     
    아마 많은 한국인들이 자신들은 자유의 지대에 살고 있다고 말 할 것이다. 그것은 자신들의 자유가 방해받거나 억압되어 있다는 자각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어떤 한계에 부딪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자신도 모르게 경계 지어진 영역에 길들어져 순응하는 데 안주하고 있는 까닭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요즘에 벌어지는 마녀 사냥하듯 개인의 신념에 대한 무차별적 공격을 가하는 거대 보수언론 권력과 수구 정치권력의 행태에서는 어떠한 자유도 발견 할 수 없게 된다. 얼마 전까지 권력에 저항하면 빨갱이로 몰아세우던 것이 종북이란 표현으로 화장하고 이 땅에는 단하나의 이데올로기만 존재 할 수 있다고 사람들을 몰아세우고 있는 것이다. ‘자유’란 무엇인가? 다양한 신념이나 이념이 들어 설 수 없는 곳이 과연 자유의 지대일까?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이들 권력들은 더 이상 존중하지 않고 있다. 오직 자신들의 이념만이 옳다고 강변한다. 이들과 다른 신념을 말하면 사회에서 곧바로 매장되게 된다. 입을 달싹거리지 못하고 비겁하게 움츠러든다.
     
    권력이‘허용한 자유’만이 자유라는 논리이다. 권력이 허용하지 않은 자유를 발설하거나 행동하면 바로 서슬시퍼런 억압이 시작된다. 그러니 이런 체제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검열한다. 그리곤 스스로 자유에 어떤 경계를 친다. 체제가 그어놓은 줄 안의 자유 속에 안주하면서 자유의 지대에 살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책의 첫 머리를 장식하는 “김일성 만세...”로 시작하는 김수영의 시(詩)에 갑자기 서늘하게 굳어버린 청중들의 표정처럼 획일화된 이념의 장막에 갇혀있는 자신들을 자각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오늘의 우리들 초상이다.
    시인 김수영은 이처럼 허용된 자유를 자연농원의 동물처럼 자유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깨워낸다. 스스로 자신의 정신을 검열하는 불완전한 자유에 안주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2. 단독성(Singularuty)에 대해서
     
    “인간은 자유를 가로막는 저항에 맞서 자신의 자유를 관철하는 존재이다.” 온전히 자기만의 삶을 살아내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이 사람이란 얘기이다. 이것이 억압되면 우린 제대로 된 삶을 지속해 나갈 수 없게 된다. 무엇으로든 테두리로 제한 된 것들 속에서 철저히 자기 고유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직 단독적인 삶을 살아내는 것이야말로 현재의 영원성을 담보할 수 있는 것이다. 김수영은 이것을 통찰해 냈다. 자기만의 삶을 살아내고 그것을 자기만의 스타일로 표현 할 수 있는 사회를 꿈꾸었던 그는 단독성의 가치를 찾아낸 것이다. 온 몸으로 삶과 부딪히면 세상의 모든 쾌와 불쾌를 감당해야 하고 그럼으로써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명료하게 자각할 수 있게 된다. 온 몸으로 직면할 수밖에 없는 저항에 직면할수록 단독성을 자각하게 되는 것이다.
     
    싱글라리티, 단독성은 그래서 자유의 경계를 자각하게 하고, 오직 자기만의 몸짓으로 겪어낸 것이기에 타인과의 공감을 가능하게 한다. 그것은 그만의 고유한 것이기에 새롭고, 철저한 자기이해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에 어떤 일반성과도, 특수성과도 다른 보편성을 지니게 된다. 어떠한 것에도 종속되지 않는, 경계로 규정되지 않는 독특성 말이다.
    김수영은 치열하게 이 단독성을 추구한 시인이다. 자신의 단독적인 표현을 찾기 위해 교육과 습관이란 고질적인 무의식적 유산조차도 떨쳐내려 했고, 허용된 자유라는 사회가 공유하는 삶의 규칙과는 다른 규칙을 보여주려 노력했다. 아마 이러한 그의 단독성의 추구가 많은 오해를 낳았던 모양이다.
     
    단독성을 추구하는 것은 권력이 그어놓은‘허용된 자유’를 넘나드는 것으로 보였을 테고, 이것으로 김수영은 자유의 모양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그에게 빨갱이, 민족주의, 참여파 시인이란 딱지를 붙이는 오류들을 저질렀으니.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꿈꾸게 하는 시, 자유를 관철시키려는 시인이 쓴 시는 당연히 과거에 생각지도 못했던 시적 형식을 만들어 냈고, 내용을 만들어 냈던 것은 당연한 귀결일 터이다. 무지하고 탐욕스러우며 비겁한 무리들이 얼마나 그에게 철퇴를 내려치고 싶었을까? 터무니없는 범주화, 규정화, 패거리들의 오류와 기만들. 자유를 말하는 것, 허용된 자유라는 이기적 실체를 드러내는 것이 권력에게는 불온한 것이고 두려웠을 것이다.
     
    3. 모든 사람들이 시인이 되는 사회
     
    시인은 단독성을 추구하는 자이다. 새로운 삶을 살아내려는 정말의 피와 땀이 어린 진지한 치열함을 가져야 하는 자이다. 팽이처럼 누구의 도움도 없이 스스로 도는 힘을 회복하려는 자이다. 그래서 외롭고 서러운 과정이다. 자유란 이처럼 두려움과 슬픔이란 난관을 관통해야 하는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나만의 삶을 살아낸다는 것이 현실의 상황 속에서 쉬운 일이겠는가? 타협해야하고 공통된 무엇에 규정되고 틀 지워져야만 살아 갈 수 있는 것이 소시민의 현실이다. 더구나 허용된 자유의 한계를 직면하고 분노했을지라도 권력에 저항의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외면하고 피해가는 것이 미덕이라고까지 생각한다.
     
    조금 나아가 관념에서나 자유를 이해하곤 마치 최선을 다한 것인 냥 거들먹거린다. 실천으로서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머리로서 주어진 조건을 지적 조작으로 새롭게 하려하거나 자신의 정서적 반응에만 주목하면서 말이다. 아내 김현경을 우산대로 때리곤 자신의 나약함, 이기심을 바라보는 김수영의 통렬한 시선에서 현실에 주저앉아 자기 삶을 주도할 용기를 내지 않는 나약함과 비겁함에 물든 내 찌든 몰골을 본다. 불편함, 불쾌감에 대한 응시, 그것을 직면해야만 그 상황을 벗어나려는 몸부림, 정말의 의지가 작동되는 실천의 현장을 보고 부끄러워지는 것이다.
     
    또한 옳음과 그름은 생각의 차원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요, 오직 구체적인 삶을 살아낼 때 비로소 자신의 생각이 옳은지 확인할 수 있다는 실천적 의지와 온 몸으로 삶을 살아내는 단독자로서의 다양한 목소리를 내야만 시가 될 수 있듯이 종교, 자본, 권력의 힘을 떨쳐내고 온전한 자유, 현실에서의 자유를 추구할 때 비로소 그 무수한 다양함들이 정작 우리의 문화와 민족, 인류의 발전이 되는 것임을 다시금 확신하게 된다. 한 사회의 문화에 하나의 이데올로기만 존재해야 한다는 거대 언론과 자본 권력의 주절거림이 우리의 자유민주주의를 억압된 사회로 퇴행시키고 있는 오늘, 민주주의는 외적인 제도나 형식이 아니라 사람들의 자유정신이 확보되어야 가능한 것이며 이를 위해 단독성의 실천을 말하는 김수영 시인의 빛과 그림자를 담아낸 인문학자 강신주의 글에 어떤 긍지와 고마움을 갖는다. 한국인 모두가 시인이 되는 그날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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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자
문사철
판매등급
우수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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