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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질서의 지배자 마오쩌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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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쪽 | A5
ISBN-10 : 8971843934
ISBN-13 : 9788971843932
무질서의 지배자 마오쩌둥 중고
저자 조너선 D. 스펜스 | 역자 남경태 | 출판사 푸른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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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0월 24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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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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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가장 강인하고 불가해한 지배자의 일대기. 마오쩌둥은 현명한가 하면 무지하고, 잔인하다 싶으면 로맨틱하고, 실리적인가 하면 순진한, 다면적인 인물이었다. 날카롭고 명쾌한 필치로 마오쩌둥이라는 현대의 황제와 그가 살았던 혼란의 시대를 탁월하게 개괄했다.

저자소개

목차

1. 후난의 아이
2. 배움을 찾아서
3. 신문화를 주창하다
4. 당에 뛰어들다
5. 열성적인 농민 운동 조직가
6. 고난의 대장정
7. 지도자의 이미지 창출
8. 권력의 획득
9. 백화제방과 대약진 운동
10. 참담한 실패
11. 문화대혁명
12. 타고 남은 재

책 속으로

출판사 서평

역사상 가장 강인하고 불가해한 지배자, 마오쩌둥의 일대기 1893년 12월 26일, 후난성의 초라한 농촌 마을에서 태어난 마오쩌둥(毛澤東). 그에겐 특별한 재능도 그럴듯한 배경도 없었다. 그가 가진 것이라고는 넘치는 열정과 굳은 의지, 그리고 성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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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가장 강인하고 불가해한 지배자, 마오쩌둥의 일대기
1893년 12월 26일, 후난성의 초라한 농촌 마을에서 태어난 마오쩌둥(毛澤東). 그에겐 특별한 재능도 그럴듯한 배경도 없었다. 그가 가진 것이라고는 넘치는 열정과 굳은 의지, 그리고 성실함뿐이었다. 그런 그가 분열과 혼란의 늪에 빠진 중국을 새로운 모습의 나라로 만들었다. 그러나 사회 개혁과 경제 발전에 대한 마오쩌둥의 찬란한 꿈을 무참히 꺾어버린 것은 바로 그 자신이었다.
미국의 저명한 중국사학자 조너선 D. 스펜스는 지금까지 ‘난세의 영웅’ 또는 ‘희대의 거짓말쟁이’라는 식의 극단적 평가를 받아온 마오쩌둥을 좀더 객관적이고 냉정한 눈으로 바라보려 한다. 《무질서의 지배자 마오쩌둥》에서 스펜스는 어린 시절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마오쩌둥의 삶의 궤적을 총체적으로 조망한다. 기존에 출간된 마오쩌둥의 전기 또는 자서전은 대부분 그가 에드거 스노에게 구술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그래서 때로 의도적이든 아니든 간에 어떤 일이 일어난 때라든가 그 일의 진실에 대해 모호하게 언급하고 넘어가거나 잘못 기록된 것이 있었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객관적인 전기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저자 스펜스는 이 책을 통해 마오쩌둥이 어떻게 위대한 지도자의 신화를 만들었는지, 또 어떻게 그토록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었는지 그 의문을 풀고자 한다.

그는 어떻게 자신의 신화를 그토록 오래 유지할 수 있었나?
마오쩌둥의 신화의 비밀은 남다른 성실함과 열정, 때로 폭력을 불사하는 과단성, 뛰어난 용병술, 개인적인 카리스마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활동 영역을 넓히는 사람이었고, 대규모 파업을 성공시키는 등 전문적인 직업 혁명가로서도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그가 본격적으로 지도자로서 자신의 이미지를 창조하기 시작한 것은 대장정 기간부터였다. 그때 그는 일반 병사들과 똑같이 힘겨운 장정 기간을 버텼고, 대내외에 자신의 소박한 생활을 공개하여 존경받는 지도자의 이미지를 만들어나갔다. 또 그는 자신의 부족한 점(예컨대, 당 내에서 이론적인 사상 토론이 벌어질 때 제대로 대처할 수 없는 미숙함)을 보완하기 위해 적재적소에 인재를 기용할 줄 알았다. 그의 곁에는 언제나 충성스런 참모진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측근이 자신을 위협할 세력으로 성장하는 것은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
오만하게 느껴지는 자신감도 마오쩌둥의 신화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였다. 그는 중국 민중이 대부분 의지가 약하고 변화의 고통을 감내하려는 의지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민족을 위해 자신이 대신 생각하고 결정하는 불가능한 위업을 이루려 했다. 그는 전지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이 되고자 했고, 실제로 그렇게 군림했다. 한마디로 그는 민주적이고 포용력 있는 지도자라기보다 두려움과 개인숭배를 통해 군림하는 황제에 가까웠다.

혁명가이기 전에 인간이었던 사람
이 책에는 마오쩌둥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수많은 자료들이 인용되고 있어 더욱 흥미롭다. 시를 좋아하고 고전을 즐겨 읽던 감수성 풍부한 청년의 모습, 사별한 첫 번째 부인을 향한 애틋한 그리움, 변덕스럽고 고집 센 성격, 개인적인 친분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인간적인 모습 등이 그가 직접 쓴 일기와 메모, 편지, 여러 편의 시를 통해 잘 드러나고 있다.

한 권으로 읽는 20세기 중국사
저자는 중국사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19세기 말부터 1960년대까지 현대 중국의 역사를 간명하게 보여준다. 청나라의 멸망에서 신해혁명, 국공 내전, 중일 전쟁, 문화대혁명에 이르기까지 중국 현대사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사건들이 마오쩌둥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한 인간의 삶을 바꾸는, 또 그 한 사람으로 인해 놀라운 전환점을 맞게 되는 역사의 물길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과거 지향적인 문화적 취향을 가졌으며 정치적으로 왕조 시대의 황제처럼 군림하려 했던 마오쩌둥이 끝까지 무산자 계층을 중심에 두는 유토피아를 꿈꾸었다는 사실은 얼핏 모순처럼 느껴진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가 뒤섞여 있는 나라, 개방은 하되 정치 개혁까지 나아가지는 않는 나라, 중국. 이 책에 나타나는 마오쩌둥의 모습은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중국, 중국인의 특징을 대변하는 듯하다. 21세기 중국을 좀더 잘 알고 싶다면 현대 중국을 디자인한 마오쩌둥과 그의 시대에 대해 먼저 알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무질서의 지배자(Lord of Misrule)
무질서의 지배자 : 영국에서 중세 후기와 튜더 왕조 시대에 크리스마스 연회를 주재하던 사회자. 평민 또는 군주의 노예 중에서 선발되었다. 연회장에서 왕처럼 행동했으며, 연회 참가자들도 장난으로 그를 왕처럼 떠받드는 시늉을 했다.

나는 마오쩌둥이 가장 익숙하게 여긴 무대가 질서의 정반대, 즉 무질서의 세계였다고 간주한다. 중세 유럽에서는 대귀족의 가문들이 ‘무질서의 지배자’를 발탁하는 것이 관례였다. …… 중국의 철학자들도 신분 역전의 역설을 즐겼는데, 거기서 비롯되는 지혜와 수치심이 허식을 막아주고 직관적 깨달음을 주기 때문이었다. …… 마오쩌둥은 고대 중국 철학자들의 그러한 통찰들을 완벽하게 소화하여 서구의 사회주의 사상에서 끌어낸 요소들과 결합시키고, 그렇게 결합시킨 두 요소를 이용해 ‘무질서’라는 한정된 개념을 크게 확장한 뒤 그것을 장구한 격변의 모험 속에 끌어들였다. 그것은 가공할 업적이었다. ― 머리말에서

♧ 본문 소개

1. 후난의 아이 1893~1912
고향인 후난성에서 보낸 마오쩌둥의 어린 시절. 청일 전쟁과 서태후의 정권 장악부터 신해혁명으로 중화민국이 건설되기까지 당시 중국의 어지러운 정세가 긴박하게 펼쳐진다.

마오쩌둥이 앞날이 뻔한 농토와 가족을 떠난 것은 젊은 아내의 죽음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더 깊은 충동, 이를테면 넓은 세상에 관한 지식이 사오산 마을에 흘러 들어왔다든가 하는 계기가 있었던 것일까? 훗날 마오쩌둥은 그 무렵 사촌이 전해준 어떤 책의 영향이었다고 말했는데, 그것은 나중에 그가 중국 역사 소설들과 더불어 으레 언급하는 책들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 사촌이 준 책은 그전까지 마오쩌둥이 많이 읽었던 소설들과는 전혀 다른, ‘풍요로운 시대에 대한 경고’ 즉 ‘성세위언(盛世危言)’이라는 제목의 책이었다.
― pp. 19에서

2. 배움을 찾아서 1912~1918
당시 중국은 중화민국과 군벌들이 공존하는 어지러운 상황이었다. 이 시기에 마오쩌둥은 창사사범학교(후난 제1사범학교)에 입학하여 양창지 교수와 만나게 되고 그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는다.

(창사사범학교 시절) 마오쩌둥은 중국 전통 문화에 대한 당당한 자부심을 배웠지만, 폭넓고 깊이 있는 백과사전적 지식은 배우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사립학교의 학자들에게서 몇 년 동안 배운 젊은이들과 동등한 수준으로 글을 쓰거나 논쟁을 하지는 못했다. 또한 이후 평생 동안 마오쩌둥은 시에 관심이 많았으며, 혁명적 격변이 일어나는 매우 험난한 시기에도 전통적인 시를 짓곤 했다. 물론 문학 교사들이 준 영향도 대단히 컸지만, 마오쩌둥의 지적 세계에 가장 깊은 영향을 미친 사람은 사회과학 교사인 양창지였다. 마오쩌둥은 나중에 이렇게 회상했다. “양창지 선생은 이상주의자였고 고결한 도덕적 품성을 지닌 분이었다. 그는 자신의 윤리를 철석같이 믿었으며, 학생들에게도 정의롭고, 도덕적이고, 고결하고, 사회에서 쓸모가 있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쳤다.” ― p. 44~45에서

3. 신문화를 주창하다 1918~1920
여기서는 교사, 서적상, 사업가로 활동하던 시기의 마오쩌둥을 만나게 된다. 그는 낡은 인습과 후난성의 부패한 군벌을 비판하는 기사를 쓰고 학생 시위를 조직하는 등 활발히 활동한다.

중국은 현재 빵과 자유와 평등을 부르짖는 혁명의 와중에 있지만, 마오쩌둥은 그것이 반드시 ‘폭탄의 혁명 혹은 피의 혁명’일 필요는 없다고 썼다. 또한 일본은 가장 악한 국제적 억압자이므로 그는 불매운동과 학생 및 노동자의 파업으로 일본에 맞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인민 대중’ - 교육을 받지 못한 보통 사람들 -을 교육해야 하며, 그들의 정신이 샹강의 폭보다도 넓어져서 ‘물 밀 듯 쏟아져 들어오는 세계의 물결’을 수용해야 한다. ― pp. 64~65에서

4. 당에 뛰어들다 1920~1922
1920년 11월 국제 공산당 조직인 코민테른의 지원으로 중국 공산당이 세워진다. 마오쩌둥은 공산당에 입당해, 후난에서 노동 조합을 지휘하고 사회주의 사상을 전파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당시 마오쩌둥에게는 흥미로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아버지의 전횡적인 성격에 그토록 거세게 저항했고, 부르주아적 결혼의 족쇄를 증오하고 경멸하면서 자유 연애에서 기쁨을 찾았고, 학교를 무척 싫어하고 두 번 다시 학교에 가려 하지 않았고, 언제나 정신의 자유를 추구하고 성장과 변화의 기회를 꿈꾸었던 그 스물여덟 살의 젊은이가, 일찍이 그가 만난 어느 누구의 명령보다도 공산당의 규율과 통제를 기꺼이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 p. 94에서

5. 열성적인 농민 운동 조직가 1922~1927
이 시기에 마오쩌둥은 수만 명 노동자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직업적 혁명 조직가로서 활동 영역을 넓힌다. 그리고 군벌을 축출하기 위한 북벌이 시작된다.

공산당과 국민당의 통일전선은 1925년 쑨원이 암으로 사망한 뒤에도 제대로 유지되고 굳건해지는 듯 보였다. 1925년 중반에는 중국을 침략하는 제국주의 열강에 맞서 대대적인 민중 운동이 벌어졌다. 영국군이 자국인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시위하는 중국 민간인들에게 총격을 가한 사건이 계기가 되었다. …… 마오쩌둥도 통일전선의 요구에 따라 농촌의 농민 세력을 규합하여 북벌에 참여했다. 이윽고 1926년 8월에 국공합작군은 창사로 밀고 들어갔다. 그해 가을 그들은 남아 있는 후난성의 군벌들을 물리치고 양쯔강에 이르렀다. ― pp. 109~110에서

6. 고난의 대장정 1927~1935
공산당이 세력을 넓히는 결정적 계기가 된 사건, 대장정이 시작된다. 국민당 군대의 추격을 받게 된 마오쩌둥은 홍군을 이끌고 몇 년 동안 계속 근거지를 이동하며 험난한 행군을 계속한다.

대장정은 훗날 공산주의 역사에 위대한 업적으로 기록되지만, 진행되던 당시에는 죽음과 고통의 악몽 같은 행군이었다. 거대한 행군 대열은 온갖 장비, 당의 서류, 무기, 통신 장비 등에다 그 밖에 새 근거지를 세우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은 모조리 장시에서 챙겨온 탓에 무척 거추장스러웠다. 느릿느릿 진군하는 대열이 장시성 북부의 샹강을 건널 무렵 국부군의 야포와 항공기가 무자비하게 공격한 탓에 행군 대열의 부상자들 가운데 절반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그들이 정확히 어디로 가고 있는지, 혹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한ㄴ지조차 합의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행군은 멈추지 않았다. ― p. 130에서

7. 지도자의 이미지 창출 1936~1945
대장정을 마친 공산당은 1936년 가을 옌안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마오쩌둥은 당내에서 지도권을 차지하게 된다.

1943년 무렵 마오쩌둥 ‘숭배’라 부를 만한 현상이 처음으로 옌안에 출현했다. 그 해 5월 마오쩌둥은 전에 아무도 가지지 못했던 두 가지 새로운 직함을 받았다. 공산당 중앙위원회 주석과 정치국 의장을 동시에 겸임하게 된 것이다. 공산당의 총비서는 이제 중국은 ‘강력하고 위대한 혁명가로서 시련을 이겨낸’ 진정한 지도자를 가지게 되었다고 선언했다. 이로써 마오쩌둥은 모든 혁명적 역사의 중심으로서 입지를 굳혔다. 장차 중국 인민들은 “마오쩌둥 동지의 사상으로 무장하고, 마오쩌둥 동지의 방식을 이용하여 당내의 (잘못된) 사상을 일소해야 할 것입니다.” 모든 당 지도자들도 그와 비슷한 찬양을 받았다. 마치 온건파의 목소리는 완전히 사라진 듯한 분위기였다. ― p. 155에서

8. 권력의 획득 1945~1953
1945년 8월, 일본이 패망한 후 공산당은 부패한 국민당 정부를 몰아내며 파죽지세로 세력을 확장하였고, 마침내 1949년 10월 1일 마오쩌둥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을 선포한다. 그는 스탈린과 만나 원조를 요청하는 등 새 국가 건설에 매진한다.

(1949년 12월 중소 회담 당시) 마오쩌둥에게 스탈린은 결코 녹록치 않은 인물이었다. 그는, 소비에트 혁명의 아버지이자 소련의 전제적인 중앙 권력과 경찰 기구를 창설한 레닌의 절친한 동료였으며, 독일의 침공을 받은 호된 시절에 소련 국민들의 길잡이이자 스승이었고, 전후 소련의 세력을 동유럽까지 확장시킨 지도자였다. …… 한편 스탈린에게 마오쩌둥은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가 보기에 마오쩌둥은 독학으로 공부한 강인하면서도 미숙한 인물이었고, 소련의 공식 정책에 걸핏하면 정면으로 대립하는 정치 노선을 추구하는 지도자였다. 그러나 마오쩌둥은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회담에서 승리했으며, 아주 여유롭게 처신했다. ― pp. 168~169에서

9. 백화제방과 대약진 운동 1953~1958
1953년 한국전쟁이 휴전으로 마무리된 후, 마오쩌둥은 소련의 경제 개발 계획을 모방해 경제 재건 운동에 나선다. 그는 대규모 협동 농장식 농업을 통해 유토피아의 꿈을 실현하려 한다.

대약진 운동을 백화제방, 백가쟁명의 연장으로 간주하면서 마오쩌둥은 중국의 앞길에 이제 굶주림이란 없다고 선언했다. …… 마오쩌둥은 이미 공산주의의 싹이 발아했다고 말했다. 일찍이 마오쩌둥이 국공 내전기에 동굴에서 살던 때처럼 고된 노동과 훈련은 모든 사람을 건강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의사는 그저 연구에만 종사하게 된다. 정신노동이 육체노동과 결합되고 교육이 생산과 융합된다. …… 새 사회에서는 도덕도 발전하므로 일체의 지휘나 감독이 필요 없다. …… 그의 말을 들은 사람들의 심정이 어땠는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어쨌든 아무도 반대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대약진 운동은 대단히 무모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1958년 후반에서 1959년까지 국가의 기본 정책이 되었다. ― pp. 201~202에서

10. 참담한 실패 1958~1960
대약진 운동은 엄청난 홍수와 기근이 연이어 닥치면서 참담한 실패로 마무리된다. 이것은 마오쩌둥이 점점 더 현실에서 멀어지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건 중 하나였다.

이 시기에 가장 희한한 일은, 마오쩌둥의 마음 한구석에 자신이 이끌고 있는 노선에 대한 깊은 회의가 자리잡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가 좋아하고 믿는 사람들이 대약진 운동의 일환으로 시골에서 일하는 고생을 면하게 해달라고 청탁해올 때면 그는 선뜻 편지를 보내 면제해주곤 했다. …… 하지만 그에게는 또한 대약진 운동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을 용납할 수 없는 측면도 있었다. 이와 같은 심각하고 위험스러운 모호함은 당의 고위층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모두 혁명의 베테랑이었고 사회 조직과 경제 계획을 해본 경험이 풍부했지만, 백화제방과 대약진이라는 모험에 관해서는 성과를 확신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조국의 발전을 도모하고 자신의 경력을 보호하는 일에 일로매진하면서도 무모한 사태의 추이를 저지하기 위해 결정적인 행동에 나서지는 못했다. ― p. 215에서

11. 문화대혁명 1960~1966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고통으로 몰아넣은 문화대혁명이 일어나다. 그는 문화대혁명을 노골적으로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 환경을 때맞춰 만들었다.

문화대혁명에서 무차별적 폭력으로 희생된 사람의 수는 정확히 셀 수 없지만, 수백만에 이를 것으로 추측된다. 살해된 사람들도 있었고 자살한 사람들도 있었다. 불구가 되거나 평생토록 치유되지 못할 정신적 상처를 입은 사람들도 있었다. ……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소장한 예술품을 부수고, 홍위병의 손에 들어갈 수 있는 가족 사진, 일기, 편지 등을 모두 불태우거나 찢어버렸다. 또한 홍위병들 간의 싸움도 빈번하게 벌어졌고, 때로 죽음을 부르기도 했다. …… 그러나 톈안먼의 연단 위에서 광장을 가득 메운 채 환호하는 붉은 깃발과 붉은 책자들을 내려다보며 천천히 손을 흔드는 그 자그마한 인물은 흐느껴 울고 있는 충직한 사람들의 마음에 스쳐 지나가는 회한을 거의 인식하지 못했다. ― pp. 245~246에서

12. 타고 남은 재 1966~1976
1972년, 마오쩌둥은 생애 마지막으로 미국과의 화해라는 중대한 결정을 내린다. 건강을 회복하지 못한 그는 1976년 9월 9일, 정치국원들과 주치의가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둔다.

그는 자신이 해낸 일을 두 가지로 꼽았다. 하나는 장제스와 수십 년 동안 싸워 마침내 그를 타이완의 ‘그 작은 섬’으로 몰아낸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오랜 항전 끝에 ‘일본을 그 조상들의 고향으로 돌려보내고’ 쯔진청에 입성한 것이었다. 그것이 위대한 업적이라는 데 반대할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문화대혁명은 어땠을까? 이 혁명에서 그는 지지자를 거의 얻지 못하고 무수한 반대자만 만든 게 아닐까? …… “혁명이 완전히 실패한다면 다음 세대에 어떤 일이 일어나겠소? 엄청난 피바람이 몰아치겠지. 그럼 당신들은 어떻게 대처하겠소?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
― pp. 264~265에서



♧ 저자 및 역자 소개

저자 조너선 D. 스펜스(Jonathan D. Spence)
1936년 영국에서 태어나 윈체스터대학과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수학했다. 1959년 예일대학교에 입학, 1965년에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의 중국 역사학계를 대표하는 학자로, 현재 예일대학교에서 중국사를 가르치고 있다. 1994년에는 중국 난징대학교의 명예교수로 임명되었으며, 구겐하임 상과 맥아더 연구상을 수상했다. 이 책 《마오쩌둥》에서 그는 날카롭고 명쾌한 필치로 마오쩌둥이라는 현대의 황제와 그가 살았던 혼란의 시대를 탁월하게 개괄하고 있다. 《현대 중국을 찾아서》, 《강희제》, 《칸의 제국》, 《천안문》, 《왕 여인의 죽음》, 《마테오 리치, 기억의 궁전》을 비롯하여 중국 역사에 관해 여러 권의 책을 썼다.

역자 남경태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인문학의 대중화에 관심을 두고 역사와 철학에 관한 책들을 저술하고 번역하고 있다. 《한국사 X파일》, 《한눈에 읽는 서양철학》, 《종횡무진 한국사》, 《종횡무진 동양사》, 《종횡무진 서양사》 등을 썼으며, 《사람의 역사》, 《위대한 CEO 엘리자베스 1세》, 《살육과 문명》, 《시간의 발견》, 《트로이, 잊혀진 신화》, 《구텐베르크 혁명》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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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리뷰

  • 인간 마오쩌둥.. | so**000 | 2009.07.13 | 5점 만점에 4점 | 추천:0
      마오쩌둥의 태생에서부터 그가 사망하기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다.. 드라마틱한 구성과 짧은 분량 덕분에 지루하지...
     

    마오쩌둥의 태생에서부터 그가 사망하기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다..

    드라마틱한 구성과 짧은 분량 덕분에 지루하지 않았다..

    논리보다는 많은 사료에 기반을 둔 덕분에 생생했던 것이리라..


    마오는 엄청난 독서가였다고 한다..

    그리고 가정형편이 어려워 거의 모든 이론 및 지식을 독학으로 익혔다..

    그리고 자신의 나라를 만들기 위해 많은 독서에서 얻은 지식을 기반으로..

    자신의 이론을 만들어 내기에 이른다..

    역경을 딛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만을 본다면..

    실로 엄청난 인물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이렇듯 마오라는 인간에 초점을 맞췄다..

    인간으로서의 마오쩌둥..

    그래서 책에 대한 부담감이 적었고 덜 골치 아팠으리라..

    역사적인 논란을 아직도 이끌고 있는 마오쩌둥..

    그에 대한 평가가 아직까지 양극화를 달리고 있는 것을 보면..

    그는 분명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간에 결코 평범한 인물이 아닌 것이다..


    혹자들은 ‘희대의 거짓말쟁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모순의 자체’라고도 한다..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사가들의 임무이다..

    난 그저 이 책을 읽고 인간으로서의 마오를 느꼈을 뿐이다..


    타이슨의 어깨에 마오의 문신이 있다고 한다..

    정기적이진 않지만 타이슨은 중국을 방문하기도 한다..

    그가 말하는 마오는 ‘마오주의’와 같은 신비로운 것이 아니다..

    자신도 마오와 같이 어릴 적 가난한 삶을 살았으며..

    그것을 극복하고 성공이라고 할 수 있는 인생의 기반을 다질 수 있었던 계기 중 하나가..

    마오라는 한 인간으로서의 투쟁이었다고 한다..

    절망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자신이 처한 환경을 탓하지 않고..

    노력과 인내로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던 것이다..


    마오는 이처럼 중국의 신화를 만들어낸 인물이다..

    여러 사가들이 이러쿵저러쿵해도 난 마오를 사랑한다..

    그가 펼친 여러 긍정적인 혹은 부정적으로 평가받는 정책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마오를 동경한다..

    내가 존경하는 인물 중 하나인 ‘체 게바라’ 역시 이와 같은 맥락으로 동경하는 것이다..


    마오는 살아서는 중국의 신화와 같은 존재였다..

    지금 중국의 신화를 벗기기 어려운 것은..

    그가 이미 죽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신화의 주인공인 마오는 이미 죽은 채 아직 살아있다..

    그러니 어찌 사가들의 손에 그가 살고 죽을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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