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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 생활문화사: 197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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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6쪽 | 규격外
ISBN-10 : 8936473077
ISBN-13 : 9788936473075
한국현대 생활문화사: 1970년대 중고
저자 김성보 (기획) | 출판사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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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월 3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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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잘읽을게요 감사합니다 5점 만점에 3점 kacro5*** 2019.11.15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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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우리네 삶 이야기!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10년 단위의 4권의 책으로 구성된 「한국현대 생활문화사」 시리즈는 정치적 격변과 세계사적 혼란 속에서도 꿋꿋하게 삶을 이어온 우리들의 부모님, 삼촌·이모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각 권은 ‘크게 본 OOOO년대’에서 시대를 개관하고, ‘그때 동아시아는?’으로 동시대 중국과 일본의 상황을 들여다보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미시적으로 다룬 생활문화사들을 거시적이며 비교사적인 맥락에서 파악하고자 한 것이다.

‘1970년대’는 “잘살아보세”와 “비상사태”의 사이에서 ‘조국’과 ‘가족’을 위해 살아갔던 1970년대의 삶과 문화를 깊이 있게 들여다본다. 1970년대는 내내 거창한 구호가 지배했다. 또한 1970년대는 내내 ‘비상사태’였다. 미래에 대한 기대만큼이나 안 되는 것, 포기해야 했던 것도 많았던 시대인데 왜 어떤 사람들은 1970년대만을 그리워할까? ‘박정희 신화’만큼이나 중요한 ‘박정희 시대를 살아간 이들의 신화’를 읽는다.

저자소개

저자 : 김성보 (기획)
기획위원 김성보는 연세대학교 사학과 교수. 연세대학교 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저서로 『남북한 경제구조의 기원과 전개』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북한 현대사』, 주요 논문으로 「남북국가 수립기 인민과 국민 개념의 분화」 「1960년대 남북한 정부의 ‘인간개조’ 경쟁」 등이 있다.

저자 : 김종엽 (기획)
기획위원 김종엽은 한신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사회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저서로 『연대와 열광』 『에밀 뒤르켐을 위하여』 『우리는 다시 디즈니의 주문에 걸리고』 『左충右돌』 『시대유감』 『87년체제론』(편저) 등이 있다.

저자 : 이혜령 (기획)
기획위원 이혜령은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HK교수. 성균관대학교 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저서로 『한국 근대소설과 섹슈얼리티의 서사학』 『검열의 제국』(공저), 주요 논문으로 「해방(기): 총 든 청년의 나날들」 「친일파인 자의 이름」 등이 있다.

저자 : 허은 (기획)
기획위원 허은은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교수. 고려대학교 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논문으로 「유신시대 학생, 모의 수류탄을 던지다」 「1970년대 박정희 정부의 총력안보체제 구축과 학교의 역할」 「동아시아 냉전의 연쇄와 박정희정부의 ‘대공새마을’ 건설」 등이 있다.

저자 : 홍석률 (기획)
기획위원 홍석률은 성신여자대학교 사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저서로 『분단의 히스테리』 『통일문제와 정치·사회적 갈등』 『박정희시대 연구』(공저), 주요 논문으로 「4월혁명과 이승만 정권의 붕괴과정」 「5·16쿠데타의 원인과 한미관계」 등이 있다.

목차

기획의 말: 역사는 인간이 만들어나간다

크게 본 1970년대: 불신의 시대, 일상의 저항에서 희망을 일구다

유신시대 학교와 학생의 일상사
여고생들의 집단농성 에피소드? | 새로운 국민상을 강요하다 | 국가에 의한, 국가를 위한 학교 | 검열받는 학교, 동원되는 학생 | 학생들의 소리, 그들의 지향 | 민주화의 진전과 군사동원 체제의 해체

산업전사에서 민주투사까지, 도시로 간 여공의 삶
앵두나무 처녀와 영자의 전성시대 | 수출전사와 산업전사, 일하면서 싸운다 | 생존을 위한 투쟁과 소외 | ‘공순이’의 소비와 문화, 일상생활 | 새로운 삶, 새로운 세상을 향한 움직임

새마을운동과 농촌 탈출
구조조정에 내몰린 농민, 난민이 되다 | 국가 하사품 시멘트로 시작된 운동 | 청와대와 마을회관의 직통 연결 | 정신일도 하사불성, ‘정신혁명’과 새마을 교육 | 농민, 민족의 아바타가 되다 | 농민의 살림살이는 정말 나아졌을까? | 농민에서 호모 에코노미쿠스로

문화계, 획일주의에 맞선 저항의 우회로
‘민족문화’의 창조와 문화적 획일주의 | 퇴폐와 불온을 불허한다 | ‘관변언론’이 될 자유 | 통기타와 고고춤, 장발과 미니스커트

고도성장기 서민의 체감경제
성장의 시대, 불황을 외치는 대기업 | 석유파동과 서민 생활의 고통 | 15원 만원버스에 목숨 건 서울살이 | 강남 개발과 부동산 열풍 | 소비사회의 도래와 욕망의 정치

안방극장과 대중의 문화생활
가정의 근대화, 안방극장의 탄생 | 가족 여가의 공유와 차이 | 텔레비전 공화국, 무엇을 보고 즐겼는가? | 텔레비전 시대 그후 30년, 디지털TV의 도전

사랑방 좌담회와 바람몰이, 그리고 지역 대결
대의민주주의 도입과 박정희 정권의 선거 | 부정선거의 ‘근대화’ | 기울어진 경기장, 뒤집힐 수도 있는 경기장 | 강력한 여당에 맞서는 야당의 바람몰이 | 여당의 조용한 선거와 사랑방 좌담회 | 고개 드는 지역 대결 정치구도

북한의 대중운동과 음악정치
‘「피바다」 근위대’ 대장 리춘섭 | ‘「피바다」 근위대’와 ‘「꽃파는 처녀」 근위대’ | 극장과 작업장의 경계 상실 | 뮤지킹과 감정 훈련 | 김정일부터 김정은까지의 음악정치

강반석과 김정숙을 본받아
“헌신적 노력으로 수령의 위업을 받들어” | 북한 여성, 이중역할의 의미와 배경 | 혁신적 노동자 길확실로부터 강반석으로 | 혁명적 어머니, 강반석과 김정숙 | 양성평등 정책의 굴절과 변형

그때 동아시아는?
일본: 고도성장을 넘어 선진국으로
중국: 마오쩌둥 시대의 종언

책 속으로

출판사 서평

시대와 삶을 함께 읽는다! 동시대 삶과 문화의 깊이를 더한 ‘한국현대 생활문화사’ 삶의 향기를 품은 이야기로서의 역사, 『한국현대 생활문화사』(전4권)가 오늘날 우리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된 한국현대사를 바라볼 새로운 렌즈를 제시한다. 19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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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 삶을 함께 읽는다!
동시대 삶과 문화의 깊이를 더한 ‘한국현대 생활문화사’


삶의 향기를 품은 이야기로서의 역사, 『한국현대 생활문화사』(전4권)가 오늘날 우리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된 한국현대사를 바라볼 새로운 렌즈를 제시한다.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10년 단위 4권의 책으로 펴내는 ‘한국현대 생활문화사’ 시리즈는 정치적 격변과 세계사적 혼란 속에서도 꿋꿋하게 삶을 이어온 우리들의 부모님, 삼촌ㆍ이모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적어도 1950년대부터 1980대까지의 당대를 직접 겪은 이들의 역사가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지금껏 한국현대사는 정치적 격변에만 주목해 서술되어왔다. ‘한국현대 생활문화사’는 정치사를 포함해 동시대인의 삶에 영향을 끼친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의 모든 요인을 주목해 그 안에서의 삶의 양상들과 변화를 포착하기 위해 노력했다. 기획부터 집필까지 총 3년의 시간 동안 영화ㆍ음악ㆍ스포츠ㆍ음식 문화 등 생활문화 분야부터 농업ㆍ전쟁ㆍ경제ㆍ북한ㆍ민중운동 등의 역사학계의 주류 분야까지 다양한 각 분야 32명의 필진이 참여해, 정치사 위주로 쓰여진 통사를 넘어서는 새로운 관점의 한국현대사 교양서를 선보이기 위해 공을 들였다. 역사가 창조되는 공간으로서의 생활문화 영역, 이 공간에서 다채롭게 펼쳐지는 인간들의 행위,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주체의 등장과 변화를 다각도로 조명하며 한국현대사를 풍성하게 재구성했다.
‘한국현대 생활문화사’는 현대사를 단지 지난날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 시대를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당대사’로서 주목한다. 당대의 여러 생활문화사적 변화들을 하나하나 짚으며 오늘날까지 우리 삶에 깊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과거의 흔적을 실감나게 재현해냈다. 독자들은 그간 정치사 위주로만 접했던 한국현대사 곳곳에 배어 있는 ‘우리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함께 읽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20~30대부터 60~70대까지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라면, 서로가 서로의 시대를 깊이 이해하고 공감하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산업전사의 피땀부터 미디어스타의 웃음까지
‘잘살아보세’와 ‘비상사태’의 경계를 살다


『한국현대 생활문화사 1970년대』는 “잘살아보세”와 “비상사태”의 사이에서 ‘조국’과 ‘가족’을 위해 살아갔던 1970년대의 삶과 문화를 깊이 있게 들여다본다. 1970년대는 내내 거창한 구호가 지배했다. “잘살아보세”를 외치는 새마을운동에 도시나 농촌 할 것 없이 분주했고, 중동 건설 붐과 강남 개발 붐에 온 국민이 들썩였다. 학생들은 밥은 혼ㆍ분식으로, 생활은 군대식으로 철저하게 국가의 관리를 받았다. 어른들도 다르지 않았다. 머리카락은 길면 안 되고, 치마는 짧으면 안 되었으며, 이유 없이 결석ㆍ결근을 해서도 안 되었다. 또한 1970년대는 내내 ‘비상사태’였다. 북한의 도발에 맞서 향토예비군을 만들고, 학생군사훈련 강화를 강력히 추진했다. 유신체제를 반대하는 대학생, 월급을 받지 못해 시위를 벌인 배고픈 여공은 이유 막론하고 모두 빨갱이로 몰아세웠다. 미래에 대한 기대만큼이나 안 되는 것, 포기해야 했던 것도 많았던 시대인데 왜 어떤 사람들은 1970년대만을 그리워할까? ‘박정희 신화’만큼이나 중요한 ‘박정희 시대를 살아간 이들의 신화’를 읽는다. 한국뿐만 아니라 북한 생활문화의 주요한 변화상도 2개의 장으로 비중 있게 다루어 남과 북을 함께 살펴볼 수 있게 했다. 북한에서 음악이 어떤 대접을 받고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북한 여성들은 어떤 삶을 꾸려갔는지 등 지금껏 우리가 접하기 어려웠던 북한 사람들의 삶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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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

회원리뷰

  • 1961년 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는 1970년대에는 자신의 생이 다할 때까지   자신이 천황이 되기 위한 유신 ...

    1961년 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는 1970년대에는 자신의 생이 다할 때까지

     

    자신이 천황이 되기 위한 유신 헌법 개정으로 독재의 정점을 이루는 시기다.

     

    60년대에 이어 70년대의 학교 풍경은 더 참혹해 졌다.

     

    병영문화로의 이행이 이 시대에 더 고착화 됐음을

     

    멀리 갈 필요도 없이 매일 출석하는 교실에서 목격해야만 하는 시대였다.

     

    현대의 교육은 이미 그 저열한 한계를 드러낸 지 오래되었지만

     

    입시를 넘어 고시까지 사설 학원들이 하이에나 떼 마냥

     

    학원생들의 주머니를 털어가는 상황은 70년대 고착화 된 인격 말살 교육이 원흉이다.

     

    군사정권시대에 억압적 교육을 받은 세대들이 자신들을 교육시키던 교사들의 잘못을 알지 못한 채

     

    이를 그대로 답습한 결과 학교, 군대, 회사에서 인격의 존중과 타인에 배려는 온데간데없고

     

    계급, 직책, 근속 년수나 나이와 같은 유치한 숫자 놀음으로 밑에 있는 이들을 도구화 시키는

     

    악질적인 일본식 급장놀음이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저서에서 당시 학교의 모습을 묘사한 대목을 보면

     

    박정희의 세뇌 교육은 북한의 김일성, 독일의 히틀러나 소련의 스탈린과 견줘 봐도

     

    엄청나게 심혈을 기울였음을 알 수 있다.

     

    현재에도 여전히 안보장사로 명목을 이어가고 있는

     

    영남 지방 기반의 새누리당이 취하는 전략의 요지는

     

    이미 박정희 시대부터 그 지리멸렬한 악습이었으며

     

    일국의 대통령이라는 직함은 그저 표기하는 직책에 불과했지

     

    그는 절대 왕정의 군주나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학교의 외관은 물론이고 복도 교실에 항상 반공 교육 표어를 비치해

     

    북한에 대한 적개심을 키우고 모든 교과서에 있다시피 한 국민 교육 헌장’,

     

    국가 경제를 명목으로 재벌들이 푸짐하게 식도락을 즐기는 동안

     

    교사들이 학생들의 도시락을 일일이 검사하며

     

    쌀밥을 싸온 학생의 사상이 불량스럽다는 등의 국가 폭력은

     

    박정희가 자신이 추구하는 목표에 학생들은 얌전히 따라야 하는 사병에 불과했다는 걸 보여준다.

     

    고등학생들의 교련 교과목의 경우 입대도 하기 전 군부대에 입영해야하는 불상사를 겪었어야 했고

     

    예나 지금이나 전쟁인 입시 준비도 힘든 상황에서

     

    학교에 등장하는 몹쓸 예비역 장교들의 린치까지 감내해야 하는 고충이 뒤따랐다.

     

    대량 생산체제로 이행되는 70년대에는 단순히 박정희가 군대식으로 밀어붙인

     

    경제5개년 개발 계획의 청사진만 강조되면 절대 안 된다.

     

    현재 한국의 모습은 독재자 박정희의 추진력보다

     

    이를 현장에서 실현시킨 근로자들의 몫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여공들의 희생이 이 때 부각되었고 경제 기적이라는 이면에

     

    여공을 포함한 노동자들의 인권유린문제가 붉어지기 시작했다.

     

    전태일이 근로 기준법 책자를 들고 분신을 하며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하지만

     

    여전히 한국 근로자들의 전반적인 근무 여건은 개선의 여지가 없다.

     

    수당 없는 야근에 단합이라는 명목으로 회식을 강요하는 문화에

     

    동일한 일을 하면서도 비정규직이라는 계층적 소외감으로

     

    여전히 전태일이 분신하던 시대에서 오히려 더 악화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정규직이라는 신분적 안전성을 획득한 이들이

     

    비정규직이라는 동일한 신분의 노동자들을 고용주와 동일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끔찍한 세태는

     

    노동자간의 연대와 화합을 저해하고 정규직들의 고용주를 향한 지나친 충성화로

     

    노조 설립을 차단시키고 근로자로서 누려야 할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데 심각성이 있다.

     

    70년대의 산업 현장에도 동일하게 박정희가 추구한 병영 문화가 이식된 폐해가 존재하는 것이다.

     

    몸이 부서져라 고생하고 심지어 목숨까지 걸어가며 일한 근로자들도

     

    박정희의 사병이나 마찬가지다.

     

    노조를 결성 하는 건 노동자들의 권리 쟁취와 존엄성을 보존하는 게 아니라

     

    빨갱이사상을 답습하는 반동행위요 국가 경제의 생산성을 저해하는 분열행위다.

     

    여기에도 근로자들의 인격과 존엄성은 없다.

     

    국가를 위한 부품이요, 제물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박정희가 집권한 시대에도 특권층들은 정치를 제외한 각 분야에서

     

    온갖 특혜와 자유를 누리며 살았지만 경제적인 약자와 학생들은

     

    박정희가 부리는 말들 밖에 안 됐던 시대로

     

    두 번 다시 박정희 같은 인물이 정권을 잡으면 안 된다는 처절한 교훈을 제공한다.

     

    인격을 말살하고 국가를 들먹이며 개인들을 말살시키는 건

     

    이념의 정당성을 떠나 인간에 대한 예의문제로

     

    이게 경제발전이라는 과실에 가려 드러나지 않는 병폐가 되면 안 된다.

     

    잘 살아보세라는 노래로 촉발된 농촌의 새마을 운동

     

    국가 주도의 농촌 개혁이 박정희 독재의 영향력을 쉽게 확대 재생산 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았음을 서술한다.

     

    박정희가 추구하고 강조했던 경제적 성과는 나아지지 않았다.

     

    근본적인 농업 생산량의 고민과 농민들의 생활을 개선하는데 초점을 맞추지 않고

     

    농촌의 초가집이나 기와집을 강제로 헐고

     

    시멘트에 슬레이트 지붕의 현대식 주택을

     

    현대 대도시의 성냥갑 고층 아파트처럼 지어준 게 새마을 운동의 외부 모습이다.

     

    당시 농촌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는 데 비해 공무원이 증가했다는 지표는

     

    박정희가 농민들도 자신의 사병으로 여겼다는 증거다.

     

    지시한 작물을 심지 않고 잘못된 작물을 심은걸 공무원들이 권력놀음으로 무참하게 짓밟고

     

    깡패 마냥 농민들을 협박했다는 대목은

     

    박정희가 농촌을 자신의 권력기반 영역 내에서 학교, 군대보다

     

    더 쉽게 지배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줬다.

     

    우선 농민들의 전반적인 학력 수준이 낮고

     

    현대와 같이 교통, 통신이 발달되지 않은 곳이라

     

    외국의 퇴폐문화(박정희 기준으로)가 유입될 가능성이 낮아

     

    박정희는 농촌을 국가의 가치를 보존하는 곳으로 지정하고

     

    역시나 지속적인 세뇌와 주민 사이에도 서로 감시하는 체제를 두고

     

    과학적인 생산방법을 보급하는 게 아니라 농민들을 부품처럼 여겨 생산량을 경쟁시키는 정책으로

     

    여기에서도 누누이 얘기하지만 참여 주체인 농민들의 의지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도농향도 현상이 심화되는 시대에 그렇게나 안보를 좋아하는 박정희는

     

    식량에 대한 전략적인 관점과 가치에 대해서는 완벽하게 무지했다고 볼 수 있다.

     

    근본적으로 농촌의 생산량도 노동인구가 풍족해야 유지되고 늘어날 텐데

     

    노동가능인구가 중앙집권국가의 수도인 서울로 죄다 향하는 마당에

     

    이를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지시만 있으면 다 된다는 맹신으로

     

    농촌을 그저 자신의 권력이 강하다는 걸 과시하는 장으로만 취급했던 것이다.

     

    일상을 지배한 박정희가 대중문화 또한 가만히 놔둘 리가 없다.

     

    60년대에도 전위적인 작가들의 영화가 몰상식한 군인 정신에 난도질 당 했다고 했듯

     

    70년대에도 그런 흐름은 계속 된다.

     

    70년대 대중음악을 소재로 한 고고 70’에서 사람의 자연스런 감정을 억압하고

     

    밴드 음악을 하고 사회를 문란하게 했다는 죄목으로

     

    청년들은 고문실로 끌려와 고문을 당하고 긴 머리가 싹둑 잘리며

     

    박정희의 충견인 경찰들의 궤변을 얌전히 듣고 있어야만 하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박정희 본인은 여인들을 농락하고 쾌락을 충족시켰으면서

     

    일반인들의 경우 남자들의 장발과 여성들의 치마 길이를 단속하는 저열한 모습을 보여줬다.

     

    박정희가 보인 모습은 한 치의 정당성도 없다.

     

    행위 자체의 정당성도 없지만

     

    이를 지시한 당사자 본인이 문란하고 적나라한 욕망을 충족시키면서

     

    대중에게는 그런 욕망을 실현시키는 걸 죄악시 했다는 건

     

    현재까지 고위급 장관 후보자들이 청문회에서 범죄 사실이 밝혀졌어도

     

    뻔뻔스럽게 그래서 나만 했니?’라고 인상 쓰는 적반하장과 동일하다.

     

    박정희가 대중문화에 손을 대는 건 독재자의 유치한 권력 놀음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니라

     

    자신 스스로가 정당하게 권력을 획득하지 못했다는 열등감에 기반한 행동이다.

     

    친일파이자 기회주의자인 박정희는 가요나 영화에서 창작자의 의도와 다르게

     

    자신이 심리적으로 열등한 권력 찬탈을 상징하는 듯한 구절이나 대목, 장면이 나오면

     

    당연히 심기가 불편했을 거고 자신의 덜 떨어진 모습을 보이는 데 질색했을

     

    그가 대중문화를 가위질 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을 거다.

     

    창작자들은 독재자 한 개인의 열등감 탓에 경제적 타격보다도

     

    예술가로서 자신의 재능들이 사장되어야 하는 불행을 맞이함으로써

     

    전반적으로는 문화계가 획일화 되는 아주 끔찍한 병폐를 낳게 됐다.

     

    부동산 불패라는 한국의 비극적 소득수단이 모습을 드러내는 때도 1970년대다.

     

    이미 이 때부터 한국은 토건 마피아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하던 시대로

     

    토지의 사유화가 야기한 천민자본주의의 병폐가 이미 이때 도래했다고 보면 된다.

     

    한국이 현대에도 여전히 병영국가의 모습을 유지하는 데는

     

    어딜 가나 보이는 고층 아파트들의 살벌하고 끔찍한 풍경이 대변한다.

     

    주변 환경과의 조화는 고려하지 않은 채 효율성만을 따진 건축의 대량생산품인 아파트는

     

    건축을 통한 재벌들의 재산 축적과 주거 문제를 현재까지 사적 영역으로 국한시킨

     

    끔찍한 참상을 대변하는 흉물이다.

     

    부동산 정보를 안 자와 알지 못한 자의 소득 격차가 나날이 증가하고

     

    부에 따라 새로운 자본주의의 계층이 등장하며

     

    정당하지 못한 부의 획득으로 상류층이 된 이들이 정계까지 진출해

     

    시민을 대변한다는 말도 안 되는 현상이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농촌에서 상경한 근로자들의 근로 여건은 최악인 상황에서

     

    근로 소득으로 살기는 1970년대도 현재와 다르지 않았다.

     

    뼈 빠지게 일해야 하는 근로자들은 만원 버스에 압사당하는 고통을 참고

     

    일터로 향해 온갖 굴욕을 견뎌가며 쥐꼬리 월급으로 연명하는 생활 속에서

     

    부정축제와 권모술수로 불로소득을 얻은 이들의 모습은 자괴감을 들게 했을 것이다.

     

    현대에도 이런 모습은 전혀 나아진 것이 없다.

     

    지자체가 실시되고 있다지만 여전히 중앙집권국가인 한국에서

     

    서울로 향하는 경로는 점점 증가추세다.

     

    자동차 도로, 지하철, 고속철도는 이해관계가 떨어진 건축사들에게 일감을 제공해줘서

     

    한국은 1365일 공사장 아닌 곳이 없을 정도이고

     

    급행이라는 지하철 노선엔 편안함 대신 신속함을 택한 노동자들이

     

    압사의 고통을 참고 인상 쓰면서 어찌할 수 없는 회사의 노예나 부품 신세를 한탄하며 한 숨을 쉬며

     

    생계라는 근본문제 하나만을 바라보며 견디고 있다.

     

    박정희의 망령이 현재까지도 지속되는 모습을 보면

     

    4년 전 박근혜를 당선시킨 한국의 모습은 트럼프를 당선시킨 미국보다도 더 끔찍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TV의 대중화는 당시 대중들의 일상생활이 급격하게 변하는 모습을 포착한다.

     

    앞선 네 개의 장과 달리 이번 장에서는 TV의 보급이 사회에 끼친 영향과

     

    이로 인해 달라지는 가정의 풍경과 대중들의 의식 구조에 초점을 맞춘다.

     

    TV를 통한 선전, 선동도 여전했겠지만 TV의 보급은

     

    당시에 폭 넓은 정보를 얻는 창구였음은 두 말할 나위가 없으며

     

    라디오가 담당했던 역할을 이어받아 시각적인 매체로서의 영향력이 증대되던 시기였다.

     

    박정희가 유신을 위해 발악을 하던 모습은 이승만의 부정선거를 연상시키며

     

    권력을 향한 저열한 인간의 모습에 절정을 이룬다.

     

    1971년 선거에서 현재까지 문제가 되고 있는 지역주의가 대두됐다.

     

    흔히 호남과 영남지방이 사이가 안 좋게 된 게 고대 백제와 신라 때 부터라고 하지만

     

    이는 박정희 체제가 낳은 국정 교과서 중심 역사 교육의 폐해에 불과할 뿐이다.

     

    박정희는 자신을 압박했던 김대중을 압박하고 제거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호남 지역민들을 빨갱이 정책을 수호하는 김대중을 지지하는 반동분자로 낙인찍고

     

    이에 선동당한 영남 지역민들이 박정희를 향한 애정을 투표로서 보답하면서

     

    자신의 권력 기반을 쌓아 나갔다.

     

    박정희의 농간 전에 지역주의라는 것도 모르던 호남과 영남사람들은

     

    독재자의 권력놀음에 현재까지 그 앙금을 제거하지 못했지만

     

    불행 중 다행스럽게도 2016년 총선엔 영남지방 일부에서 여당 새누리당이 아닌

     

    야당 더불어 민주당 의원들이 당선되는 기적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폐해를 극복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 것으로 보인다.

     

    북한 수령인 김정일이 영화광이라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영화 애호가인 매니아를 넘어서 영화가

     

    통치수단의 한 방편이라는 걸 진작 알아차린 독재자다.

     

    여기에 덧붙여 음악과 무대공연과 같은 대중문화 전반이 인민을 일치단결 시키고

     

    통치를 용이하게 한다는 것도 파악했다.

     

    60년대에 근로자들의 일터와 생활공간의 일치로

     

    가족적인 분위기를 구성해 생산성을 높인 것처럼

     

    북한은 대중문화의 적극적인 활용과 지속적인 주입으로

     

    사상교육에 매진하는 성향을 보인다.

     

    남한의 박정희가 말 안 들으면 단속이라는 매질을 하고

     

    심할 경우 남산으로 끌고 가 고문을 한 폭력적인 성향을 노골화 시킨 것과 달리

     

    김일성과 김정일은 일체의 외부 문화를 차단시키면서

     

    인민들에게 획일적인 문화를 세뇌시키는

     

    다른 양상의 전체주의화 전략을 사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북한의 대중문화 전략이나 남한의 대중문화를 향한 탄압은

     

    동일하게 다양성을 박멸하고 획일성을 복 돋는다는 점에서 비극적이다.

     

    북한의 식량난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여전히 전쟁의 야욕을 버리지 못하고 정권이 붕괴되지 않는 상황은

     

    주민들 뼛속까지 각인된 주체사상의 인장이 여전히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기 모습이 이를 대변한다.

     

    김일성의 모친 강반석과 부인 김정숙이 등장하는 1970년대 북한 여성들의 모습은

     

    60년대 길확실에서 퇴조한 모습을 보여준다.

     

    60년대 노동 생산성을 향상하는데 남녀차별이 완화되었다면

     

    70년대 북한의 경제가 상당히 나빠진 이후에는

     

    여성의 역할이 가부장적인 권위에 의해 축소되고 퇴보되었다는 얘기다.

     

    전통이라는 핑계로 현모양처가 강조된 상황이라는 것이다.

     

    주체적이고 자립적인 여성상이 남성의 부속물로 전락하는

     

    여권 신장의 방향이 일시에 후퇴했다.

     

    성차별이 강화된 사회는 경직성 탓에 역동적으로 바뀔 수 없다.

     

    북한은 경제의 후퇴와 사회상의 후퇴라는 이중고로

     

    이 때부터 점점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남한보다 퇴보하는 경향을 보인다.

     

    1964년 동경 올림픽을 개최한 일본은

     

    1970년대에는 자신들이 그토록 원하던 탈아입구에 성공한 듯 보인다.

     

    두 번의 중동 석유 파동을 통해 석유에 덜 의존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오사카 만국 박람회를 개최한 일본은 경제적 수치로 보면

     

    극동의 한국과 중국이 절대 넘볼 수 없는 신경지에 도달한 국가였다.

     

    중산층이라는 대중의 다수를 이루는 계층이 등장했고

     

    탄탄한 경제 상황 속에서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퇴보를 보이며

     

    전업주부가 증가한 시기라고 했다.

     

    소매상인 구멍가게를 폐점시키는 대형마트도 일본에서 아시아 최초로 등장했고

     

    일본은 바야흐로 물질적인 부족함 없는 서구적인 자본주의 국가 대열에 올라선 시기였다.

     

    중국은 문혁이라는 급격한 운동의 시대로 공산당 내에서

     

    권력이 마오쩌둥에서 덩샤오핑으로 넘어가는 시대였다.

     

    일당 독재의 사회주의 국가에서 국가 원수에 오르기 위한 정쟁은

     

    민주주의 다당제 국가 못지않게 치열했다.

     

    마오쩌둥이 중국의 공산당의 정착에 힘쓴 인물이라면

     

    덩샤오핑은 인민들의 삶의 질인 경제에 대해서는 유연한 태도를 보여

     

    이 두 인물은 보수와 진보로도 볼 수 있겠지만

     

    덩샤오핑이 경제 이외에 정치에 관해선

     

    기존 지도자들과 동일한 자세로 일관한 모습은 바람직해 보이진 않는다.

     

    덩샤오핑이 집권한 이후 중국의 경제성장은 엄청난 기세로 한국과 일본을 위협했다.

     

    중국은 가까운 한국과 일본 이외에도 세계의 공장으로서 공산품 대부분을 생산하며

     

    이 생산시설의 폐쇄는 세계경제의 동반 붕괴라고 하더라도 과언이 아니게 됐다.

     

    1970년대는 박정희가 아예 한국을 자신의 황국으로 만들기 위해 발악하던 시대였으며

     

    현재에도 꾸준히 야기되고 있는 문제인 교육, 근로, 주거, 복지 등이

     

    왜 이지경이 될 수밖에 없는지 그 원흉을 발생시킨 시대다.

     

    이런 역사의 교훈을 등한시한 결과 4년 전 괴물의 딸내미를 당선시켰고

     

    한 달 전엔 괴물의 딸이 자신의 선친으로부터 독재라는 통치도 배우지 못한 채

     

    무당 손에 놀아난 꼭두각시에 불과했음을

     

    일부 정신병자들인 보수단체 구성원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알게 됐다.

     

    19791026일 괴물은 처단됐으나

     

    그가 남긴 망령과 저주는 괴물의 자손인 딸이 승계했고

     

    한국에서 살아가는 99%가 자존심과 자부심 없이 살아야 한다는 슬픈 운명에 빠지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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