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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문제적 인간 12)(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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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8쪽 | 양장
ISBN-10 : 1187064173
ISBN-13 : 9791187064176
레닌(문제적 인간 12)(양장본 HardCover) [양장] 중고
저자 로버트 서비스 | 역자 김남섭 | 출판사 교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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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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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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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은 독보적인 마르크스주의 이론가였으며, 전투적인 당 조직가였다. 광적인 독서가이자 작가였던 레닌은 하루도 쉬지 않고 글을 써서 독자들을 설득하고, 적들에 대한 분노를 선동하고, 혁명의 전망을 눈앞에 그렸다. 로버트 서비스는 혁명가이자 사상가이자 정치가로서 레닌의 삶을 하나로 통합하여 한 인간으로서 레닌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굳게 잠겨 있던 러시아 중앙당 문서고에서 입수한 자료를 토대로 삼아 레닌의 삶을 꼼꼼히 살피며 레닌이라는 다이너마이트를 세계적인 차원으로 폭발시킨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기폭제도 탐색한다.

저자소개

저자 : 로버트 서비스
저자 로버트 서비스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 역사학 교수. 러시아 근현대사 권위자이며 특히 혁명사 연구에서 일가를 이루었다. 서구 학계와 평단에서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킨 야심찬 연구 성과를 끊임없이 발표해 왔다. 그의 저작은 철저히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냉정한 분석을 앞세우는 연구 태도, 방대한 자료 조사, 간결하고 힘이 넘치는 문체로 수많은 독자를 사로잡았다.
1947년에 태어나 케임브리지 대학 졸업 후 에섹스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교환 연구원으로 옛 소련 레닌그라드 대학에서 공부했으며, 영국 킬 대학 교수를 지냈다. 1998년부터 옥스퍼드 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영국학술원 특별 정회원이다. 대표작으로 러시아 혁명의 주역인 레닌, 스탈린, 트로츠키의 삶을 냉정하고 거침없는 필치로 쓴 전기 3부작과 공산주의의 역사를 다룬 《코뮤니스트(Comrades)》가 있다.

역자 : 김남섭
역자 김남섭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기초교육학부 교수. 러시아 역사를 전공했고, 주요 관심사는 스탈린 시대의 소련 역사이다. 최근에는 냉전 시대 소련 사회 연구에도 힘을 쏟고 있다. 주요 저서로 《러시아의 민족 정책과 역사학》(공저), 《세계의 과거사 청산》(공저) 등이 있고, 《실패한 제국》, 《속삭이는 사회》, 《코뮤니스트》, 《20세기 러시아 현대사》, 《소련 경제사》, 《러시아사 강의》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목차

머리말 프롤로그 - 신격화와 악마화를 걷어낸 인간 레닌 1부 부르주아 반란자 1장 뿌리-유대인과 루터파 2장 명석한 두뇌 1870년~1885년 3장 반역자 집안 1886년~1887년 4장 퇴학당한 법학도 1887년~1888년 5장 변호사 혁명가 1889년~1893년 6장 혁명의 중심으로 1893년~1895년 7장 시베리아 유형 1895년~1900년 2부 볼셰비키 이론가 8장 망명자-《무엇을 할 것인가?》1900년~1902년 9장 볼셰비키와 멘셰비키 1902년~1904년 10장 ‘피의 일요일’과 러시아 귀환 1905년~1907년 11장 파리 망명 1908년~1911년 12장 전투적 논쟁가 1912년~1914년 13장 패전을 위한 투쟁 1914년~1915년 14장 고독한 투사 1915년~1916년 3부 ‘10월 혁명’ 지도자 15장 2월 혁명과 4월 테제 1917년 2월~4월 16장 임시정부와의 투쟁 1917년 5월~7월 17장 변장과 도피 1917년 7월~10월 18장 권력 장악 1917년 10월~12월 19장 포위된 혁명 1917년~1918년 겨울 20장 브레스트리톱스크 조약 1918년 1월~5월 21장 내전 속으로 1918년 5월~8월 4부 혁명 수호자 22장 전쟁 지도자 1918년~1919년 23장 전시 공산주의 논쟁 1919년 4월~1920년 4월 24장 실패한 ‘혁명 전쟁’ 1920년 25장 신경제정책 1921년 1월~6월 26장 강박증과 죽음의 공포 1921년 7월~1922년 7월 27장 스탈린이라는 문제 1922년 9월~12월 28장 레닌의 유언 1923년~1924년 에필로그 - 레닌 숭배와 스탈린주의 주석 참고문헌 레닌 연보 옮긴이 후기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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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격화와 악마화를 걷어낸 인간 레닌 레닌은 혁명을 요구한 많은 지식인 중 한 명이었다. 당시 정치ㆍ경제 구조는 그에게 참을 수 없이 불쾌했다. 사회적 위계도 역겨웠다. 그가 보기에 러시아에서 합의에 의한 발전의 기회는 매력이 없었다. 레닌은 로마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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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격화와 악마화를 걷어낸 인간 레닌
레닌은 혁명을 요구한 많은 지식인 중 한 명이었다. 당시 정치ㆍ경제 구조는 그에게 참을 수 없이 불쾌했다. 사회적 위계도 역겨웠다. 그가 보기에 러시아에서 합의에 의한 발전의 기회는 매력이 없었다. 레닌은 로마노프 왕조와 구러시아를 증오했다. 그는 새로운 러시아, 유럽 국가로서 러시아, 서구화된 러시아를 원했다. …… 그러나 레닌은 서구도 변화하기를 원했다. 자본주의 질서 전체를 쓸어버릴 전 유럽 규모의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야 했다. 동시에 그는 러시아와 다른 지역에서도 자신이 보기에 후진적이며 억압적인 현상들을 단호히 일소하고자 했다. - ‘프롤로그’ㆍ21~22쪽

혁명가 레닌은 어떻게 탄생했나?
레닌에게 영향을 끼친 것은 마르크스주의자만이 아니었다. 얼마 전에 우리는 레닌이 19세기 말 러시아 농업 사회주의 테러리스트들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게 되었다. 사실 마르크스주의와 인민주의가 극과 극인 양 둘 중 하나를 선택할 필요는 없었다. 두 사상은 겹치는 부분이 많았다. 그러나 레닌에게 영향을 준 사상 중에는 우리에게 덜 익숙한 다른 것들도 있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 이래 레닌이 어릴 때 읽은 책들은 그에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 레닌은 마키아벨리와 다윈의 사상도 공부했다. 또 우연히 접한 지인들의 사상 역시 설사 그들이 마르크스주의에 적대적이라 할지라도 받아들였다. …… 마르크스주의야말로 레닌 사상의 기본 요소였으나, 그 상당 부분은 다른 요소들과 결합함으로써 더욱 탄탄해질 수 있었다. - ‘프롤로그’ㆍ29~30쪽

교양 있는 부르주아 집안의 아이
‘구’러시아, 즉 농민들, 농촌 관습, 폭음, 무지, 자의적 통치, 사회적 복종과 세습적 특권의 러시아는 그들 눈에 매력이 없었다. (레닌의 부모인) 일리야와 마리야는 그런 낡은 전통들을 제거하고 싶어 했다. 그들은 근대성을 지지했으며, 러시아가 서구 여러 나라와 좀 더 유사해지기를 원했다. 일리야와 마리야는 1860년대의 개혁들이 사회를 변화시키기를 바랐다. 울리야노프 부부는 진보, 계몽, 질서, 청결, 복종, 위계제, 격식을 믿는 사람들이었다. …… 일리야 울리야노프와 마리야 울리야노바는 ‘교양 있는’ 러시아인이었다. 그들은 애국자였다. 그들은 ‘근대적’이고 ‘유럽적’이고 ‘서구적’이고 ‘계몽된’ 사회를 건설하기를 원했다. 레닌은 그런 부모의 아들이었다. - 1장ㆍ63, 64쪽

블라디미르 울리야노프(레닌)는 어린 시절 버릇을 잃지 않았다. 연필은 여전히 (무섭도록) 날카롭게 깎여 있었고, 책상은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다. 블라디미르는 책상을 매일 치웠다. 또 그는 낭비를 몹시 싫어했다. 여백이 있는 편지를 받으면 빈 부분을 오려서 간수했다. 블라디미르는 돈을 쓰는 데 신중했고 (동생인) 드미트리에게 서적 판매상한테 속지 말라고 경고했다. 블라디미르는 항상 단정한 필기체로 글을 썼다. 그에게 혁명가 동료들에게서 볼 수 있었던 ‘보헤미안’ 스타일의 태만은 없었다.
- 6장ㆍ176~1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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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무오류의 지도자’인가, ‘냉혹한 독재자’인가? 신격화와 악마화의 틀을 걷어낸 인간 레닌을 만난다 레닌은 교양 있는 부르주아 집안의 아들이었다. 헌신적인 장학관으로서 세습 귀족 지위에 오른 아버지와 자식들의 교육에 열성적인 어머니가 이룬 가정은...

[출판사서평 더 보기]

‘무오류의 지도자’인가, ‘냉혹한 독재자’인가?
신격화와 악마화의 틀을 걷어낸 인간 레닌을 만난다


레닌은 교양 있는 부르주아 집안의 아들이었다. 헌신적인 장학관으로서 세습 귀족 지위에 오른 아버지와 자식들의 교육에 열성적인 어머니가 이룬 가정은 계몽주의 가족의 모범이었다. 라틴어, 그리스어 같은 고전 교육이 중심이었던 김나지야에서 레닌은 과정 내내 모든 과목에서 언제나 만점을 받는 탁월한 학생이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에 다니던 형이 차르 암살 음모에 연루되어 교수형을 당한 후 이 명민한 학생은 마르크스주의 혁명가의 길로 들어섰다.

레닌은 비범한 인물이었다. 레닌은 독보적인 마르크스주의 이론가였으며, 전투적인 당 조직가였다. 광적인 독서가이자 작가였던 레닌은 하루도 쉬지 않고 글을 써서 독자들을 설득하고, 적들에 대한 분노를 선동하고, 혁명의 전망을 눈앞에 그렸다. 오직 혁명을 위해 살아온 그는 정치적 소수파에서 시작해 10월 혁명의 지도자가 되었고, 내전을 승리로 이끌어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을 지켜냈다. 레닌이 없었더라면 러시아 혁명은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레닌은 복잡한 인물이었다. 레닌은 절제가 몸에 밴 사람이었지만 인간 폭탄이기도 했다. 그가 분노를 토해내면 모두 두려움에 떨었다. 레닌이 연단에 서면 청중은 꼼짝 못했다. 당 대회는 거의 레닌의 승리로 끝났다. 레닌에게는 무자비하면서도 사람을 고무시키는 지도자의 재능이 있었다. 계몽주의와 진보, 과학을 믿었지만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혐오했다. 정치적 전위와 지도력의 필요성을 강력히 지지했으며, 독재와 공포 정치를 정당화했다.

레닌을 둘러싼 모든 의문에 답하는 치밀하고 압도적인 전기

로버트 서비스는 혁명가이자 사상가이자 정치가로서 레닌의 삶을 하나로 통합하여 한 인간으로서 레닌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굳게 잠겨 있던 러시아 중앙당 문서고에서 입수한 자료를 토대로 삼아 레닌의 삶을 꼼꼼히 살피며 레닌이라는 다이너마이트를 세계적인 차원으로 폭발시킨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기폭제도 탐색한다. 레닌의 어린 시절과 그가 받은 교육이 그의 정치적 삶에 얼마나 깊이 영향을 끼쳤는지 새로운 시각으로 밝혀내며, 그를 지지한 가족들과 민족적, 문화적 배경의 중요성도 강조한다.

서비스는 레닌을 무결점의 사상가, 정치가, 인도주의자로 채색해 온 소련의 공식 해석을 반박한다. 트로츠키가 제시한 레닌상, 즉 레닌이 죽기 직전에 독재, 계급 전쟁, 공포 정치와 절연하고 공산주의를 개혁하려 했다는 의견도 부정한다. 레닌이 좀 더 오래 살았더라면 소련은 인간의 얼굴을 한 공산주의 사회의 꿈을 이루었을까?

최초의 성공한 사회주의 혁명, ‘10월 혁명’의 주인공 레닌의 가장 엄정한 전기

영국 옥스퍼드 대학 역사학 교수인 로버트 서비스는 러시아 혁명과 소련 역사 연구의 대가이다. 그는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의 세 주역인 레닌, 스탈린, 트로츠키의 전기를 연이어 발표했다. 세 권의 전기 중 첫 번째 책인《레닌》은 서비스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주었다. 소련 중앙당 문서고에 봉인되어 있던 레닌에 관한 모든 기록들을 자료로 삼아 완성한 이 레닌 전기는 전체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부르주아 반란자는 레닌의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을 다룬다. 1870년 정교회 신자인 장학관 아버지와 루터파 신자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블라디미르 일리치 울리야노프(레닌)가 태어났다. 레닌의 부모는 둘 다 비러시아계 혈통이었다. 아버지 쪽은 러시아계로 볼 만한 근거가 없으며 어머니 쪽에는 확실히 유대인의 피가 흘렀다. 근대 계몽 사회를 꿈꾸었던 교양 부르주아 부모는 자식들의 교육에 전력을 다했고, 아이들도 모두 열정과 야심을 품고 최고의 성적을 거두었다. 김나지야에서 가장 뛰어난 학생이었던 레닌이 혁명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황제 암살 음모에 연루된 형이 처형된 이후였다. 반체제 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대학에서 퇴학당한 후 가까스로 변호사가 되었으나 레닌의 삶의 방향은 러시아 구체제의 몰락에 맞춰져 있었다. 초기에 인민주의에 보이던 관심은 얼마 지나지 않아 마르크스주의로 옮겨 갔다. 확고한 마르크스주의자가 된 레닌은 혁명의 중심인 상트페테르크부르크에서 율리 마르토프와 함께 노동계급해방투쟁동맹을 결성하지만 곧바로 체포되어 시베리아로 유형을 떠난다. 뒤에 레닌과 마르토프는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의 두 주역으로서 각각 볼셰비키파와 멘셰비키파를 이끈다.

제2부 볼셰비키 이론가에서는 17년간의 유럽 망명 시기를 다룬다. 3년간의 유형 생활을 마친 레닌은 1900년 취리히로 떠난다. 논쟁작 《무엇을 할 것인가?》를 발표하면서 ‘레닌’이라는 가명을 혁명가 세계에 각인하고, 러시아 사회주의의 선구자 플레하노프와 치열한 논쟁을 벌이면서 레닌은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 볼셰비키 분파의 지도자가 된다. 이 시기에 그는 취리히, 런던, 파리 등지를 오가며 망명 생활을 하면서 뛰어난 조직가이자 이론가로서 혁명 조직을 만들고 동료 사회주의자들과 혁명의 길을 놓고 논쟁을 벌였다. 그러던 중에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전쟁에서 자국 정부를 지지하고 나선 독일사회민주당을 비롯한 사회주의자들과 반전을 주장하는 사회주의자들 간에 분열이 일어난다. 레닌은 러시아의 패전을 주장하고, ‘유럽 내전’이라는 구호를 내걸며 고독한 시절을 보낸다.

제3부 ‘10월 혁명’ 지도자는 1917년 2월 혁명부터 10월 혁명 과정에서 보인 레닌의 결정적인 역할을 자세히 살핀다. 2월 혁명이 발발해 로마노프 왕정이 붕괴하고 임시정부가 들어선 러시아에 돌아온 레닌은 임시정부 타도와 유럽 사회주의 혁명을 내세운 <4월 테제>를 발표한다. 이 낯선 주장은 처음에는 당내에서도 지지를 받지 못했지만 레닌의 확고한 의지는 결국 볼셰비키를 설득하는 데 성공한다. 임시정부와 벌이는 투쟁 과정에서 레닌은 타협 없는 길을 제시했는데, 그것은 바로 무장 봉기를 통한 권력 장악이었다. 1917년 10월 25일 볼셰비키는 무능력한 임시정부를 무력으로 공격해 권력을 장악한다. 새 정부인 ‘인민위원회의’ 의장이 된 레닌은 혁명 이후 투표로 성립한 제헌의회를 강제로 해산하고, 독일과 브레스트리톱스크 조약을 맺어 위기 속에 전쟁을 끝내지만 나라는 내전 속으로 빠져든다.

제4부 혁명 수호자에서는 혁명 이후 혼란 속에서 국가 체제를 갖추어 가며, 나라 안팎에서 밀어닥친 신생 국가의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을 다룬다. 내전을 승리로 이끈 레닌은 혁명을 유럽으로 확장하기 위해 ‘혁명 전쟁’이라는 명분으로 폴란드 침공을 감행하지만 폴란드 군대에 패하고 만다. 혁명 확산 여부와 사회주의 국가의 방향을 두고 당내에서는 논쟁이 끊이지 않는다. 트로츠키와 전시 공산주의 논쟁을 벌인 레닌은 이후 노동자반대파와 민주집중파를 비롯한 여러 분파들을 통제한다. 위기는 계속되어 혁명에서 중요한 지지 세력이었던 수병들이 민주주의를 요구하며 봉기(크론시타트 봉기)를 일으키고, 레닌은 봉기를 무력으로 진압한다. 이후 어려워진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자본주의적 요소를 가미한 신경제정책을 도입한다. 그 무렵부터 레닌의 건강은 급속도로 악화된다. 요양과 복귀를 반복하면서 마지막까지 국가 정책 결정에 참여하기를 고집하던 레닌은 후계자 문제에서 자신이 서기장으로 삼았던 스탈린을 위험하다고 판단해 비밀 유언을 작성하였으나 이미 권력을 장악한 스탈린을 제거하지는 못한다. 1924년 1월 21일 레닌은 54년의 생을 마쳤다.

인간 레닌을 만나지 않고서는 러시아 혁명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

레닌은 특출한 인물이었다. 그는 볼셰비키라는 공산주의 분파를 창설해서 당으로 키웠으며, 그 당은 1917년 10월 혁명을 일으켰다.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가 선포되었고, 이 국가는 온갖 곤경을 이겨내고 살아남았다. 소비에트 국가는 세계의 극좌 사회주의자들에게는 횃불이었고 보수주의자, 자유주의자, 다른 사회주의자들에게는 암초였다. 레닌이 해석한 마르크스주의는 절대적 권위를 지닌 경전이 되었다. 소련의 공산주의 모델(일당 국가, 이데올로기 독점, 전투적 무신론, 공포 정치)은 전 세계로 전파되어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었다. 공산주의는 1989년 동유럽에서, 1991년 말에는 소련에서 해체되었다. 레닌보다 공산주의 체제의 발전과 수립에 더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레닌은 역사를 만들었다. 1917년 <4월 테제>에서 레닌은 당의 권력 장악 전략을 기초했다. 10월에 레닌은 권력을 잡아야 한다고 고집했다. 1918년 3월에 레닌은 브레스트리톱스크 조약을 맺음으로써 독일의 러시아 침공을 피했다. 1921년에 레닌은 신경제정책을 도입해서 인민 반란으로 소비에트 국가가 궤멸하는 것을 막았다. 레닌이 이러한 전략적 변화를 이끌지 않았더라면 소련은 결코 건국되지도 못했고 자리 잡지도 못했을 것이다.” - 프롤로그에서

역사적 인물로서 레닌은 오랜 세월 동안 숱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인간 해방을 꿈꾼 순결한 혁명가였는가, 권력에 굶주린 정치인이었는가? 피에 굶주린 독재자였는가, 인도주의자였는가? 그가 혁명으로 이루려 한 것은 공포로 유지되는 전체주의 사회였는가,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였는가? 로버트 서비스는 극단적으로 상반된 평가를 받는 레닌이라는 인간의 삶을 꼼꼼하고 철저하게 추적해서 혁명가 레닌과 인간 레닌을 함께 이야기한다.

“레닌은 일부 극단적인 숭배자나 혐오자들이 주장하듯이 전지전능한 신도, 무자비한 악마도 아니었다. 그는 러시아 제국의 억압에 분노하여 낡은 체제를 무너뜨리려 했던, …… 우리와 같은 한 명의 인간이었다. 서비스의 이 역작이 레닌을 ‘인간화’함으로써 러시아 혁명을 좀 더 역사적으로 이해하는 데 부디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 ‘역자 후기’에서

레닌에 관한 기록들은 은폐되어 있었다. 소련이 해체되기까지 70여 년간 레닌의 공식 이미지와 어긋나는 문서와 비망록들은 중앙당 문서고에 봉인되었다. 그리하여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 공산주의 진영에서 레닌은 전지(全知)의 혁명 성인이 되었다. 이론가, 선전가, 당 조직가로서 레닌은 ‘무오류의 타고난 천재’로 그려졌다. 혁명가, 동지, 남편으로서 레닌의 인간성은 찬양되었고, 당 지도자, 정부 수장, 정치인으로서 레닌의 천재성은 환호받아야 했다. 1991년 문서고가 개방되던 날 로버트 서비스는 비밀 문서들을 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후에 레닌 가족의 서신과 회고도 살펴볼 수 있었다. 신화의 베일에 싸여 있던 인간 레닌의 삶을 시대를 배경으로 하여 구체적으로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레닌주의 이데올로기는 10월 혁명의 기원과 결과를 이해하는 데 핵심이며, 그 시대에 일어난 사건들에 레닌이 끼친 영향은 결정적이었다. 서비스는 레닌이 당과 국가에서 권위주의를 최소화하려 했다는 주장을 반박한다. 볼셰비키당이 대단히 민주적이었다는 주장도 반박한다. 레닌이 죽기 직전에 독재, 계급 투쟁, 공포 정치와 절연하고 공산주의를 개혁하려 했다는 주장도 부정한다.
레닌의 제도적 유산은 막대했다. 인민위원회의를 만들고 제헌의회를 해산했다. 체카를 창설했으며, 독재와 공포 정치를 정당화했다. “독재는 거창한 단어이다. 그리고 거창한 단어를 쉽게 바람 속으로 내던져서는 안 된다. 독재는 철의 권위이고, 그 권위는 착취자와 훌리건 모두를 억압하는 데 신속하고 무자비할 뿐만 아니라 혁명적으로 대담하다.”(레닌, 1918년 4월) 서비스는 레닌이 더 오래 살았더라면, 레닌이 스탈린을 해임했더라면 훨씬 인간적인 사회주의가 만들어졌을 거라는 흔한 역사의 가정을 단호히 부정한다. 소비에트 국가의 틀을 세운 사람은 레닌이었으며, 스탈린은 레닌의 유산을 이어받아 실행한 후계자였음을 보여준다.

10월 혁명, 마르크스-레닌주의,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은 다른 어느 누구보다도 레닌에게 그 존재를 빚졌다. 레닌이 전시의 혁명 러시아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건설한 것은 재생산될 수 있는 고안물이었다. 레닌은 자신의 건축 계획을 수출하고 싶어 했고,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의 회원 정당들이 모스크바에서 개발된 이데올로기와 조직 원리를 따라야 한다고 규정했다. 기회가 주어졌더라면 레닌은 자신의 모형을 혁명적 공산주의 국가들에 적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제는 레닌의 후계자인 스탈린에게 떨어졌다. 게다가 레닌주의 모형은 중국, 북베트남, 쿠바의 마르크스주의 혁명가들에게도 유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어떤 종류의 나라가 공산화되고 있는지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산업 국가이며 국민들이 문자를 해득할 수 있었던 가톨릭 국가 체코슬로바키아도, 농업 국가이며 국민들이 문맹이었던 북베트남도 공산화되었다. 레닌주의가 도입된 방식은 침략부터 현지의 공산주의 정치 선동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그 결과는 동일했다. 레닌은 바로 이런 이유로 책임질 것이 많다. - ‘에필로그’에서

가장 차분한 방식으로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레닌 전기

서비스는 강박적이고 명민하고 완고한 한 인간의 비현실적 삶을 솜씨 있게 묘사해냈다. 레닌 전기들은 레닌을 성인 혹은 악마로 묘사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가 비판적 역사관을 넘어 주제에 접근한 것이 아닌지 의심하지만, 충실히도 서비스는 레닌을 어느 한쪽에 치우쳐 묘사하지 않는다. - Gary Younge, The Guardian

서비스의 이 훌륭한 전기는 레닌을 연구한 기존의 모든 전기를 대체한다. 역사학, 심리학, 인류학, 지식사회학과 정치 이론이 결합되어 있는 이 책은 근대 급진 혁명 지도자 연구의 좋은 본보기이다. 서비스는 레닌을 향한 공감과 반감이라는 감정과도 거리를 유지하며,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에서 그의 삶과 사상이 어떻게 발전했는지 공들여 추적한다. - Tsuyoshi Hasegawa, Journal of Interdisciplinary History

서비스의 저작은 블라디미르 울리야노프(레닌)의 성격, 태도, 지성, 무자비함, 그리고 중요성에 관한 모든 의문에 답한다. 서비스가 언급한 것처럼, 역사를 이끈 우연들만 아니었다면 레닌은 무명의 망명자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왜 그렇게 되지 않았는지에 관한 문제는 이 탁월한 전기 전체에서 솜씨 있게 논의된다. - Gilbert Taylor

레닌이 이끈 10월 혁명이 진정으로 마르크스주의적인지는 좀 더 근본적이고 논쟁적인 문제이다. 스탈린이 레닌의 진정한 후계자인지도 중요한 문제이다. 볼셰비즘 창시자에 관한 평가를 시작하는 가장 좋은 지점에 영국 역사학자 로버트 서비스의 저작이 있다. 이 책은 그가 일생을 바친 주제로서, 레닌의 정치적 삶을 꼼꼼하게 조명한 연대기이다. - Martin Malia, The New York Review of Books

명쾌한 서술, 예리한 비평, 생생한 일화가 가득한 전기. 특히 많은 저술들이 실패한 부분인, 레닌이라는 인간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는 데 성공했다. - S. A. Smith, Sunday Telegraph

공산주의 러시아 설립자에 대한 빈틈없는 전기이다. 서비스는 기존의 레닌의 이미지에 살을 붙이고 감정을 더한다. 레닌은 삶 자체가 정치였으나, 서비스는 레닌의 인간적 측면을 완전히 드러냈다.
- Herald Shukman, The Times

이 놀라운 책의 장점은 레닌의 개인사, 그의 모든 저술에 대한 설득력 있는 분석, 그리고 혁명 시기 러시아의 광범위한 정치적, 사회적 환경의 광범위한 재구성까지, 이 모두를 조화시키는 작가의 능력이다. - Richard Overy, Literary Review

지금껏 쓰인 것 중 가장 신뢰할 만하며 가장 균형 잡힌 레닌 전기이다. 또한 가장 차분한 방식으로 가장 두렵게 만드는 저작이다. 공산주의가 남긴 무시무시한 유산의 근원을 깊이 추적하는 중요한 연구이다. - Kirkus Review

[책속으로 추가]
혁명의 중심으로
울리야노프는 정치를 위해 살았다. 1895년 9월 29일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온 그는 자신이 만난 사람들에 관한 희소식을 가져왔다. 도중에 울리야노프는 빌뉴스와 모스크바, 오레호보주예보에 잠시 들렀다. 울리야노프는 각 지역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연계를 맺었다. 울리야노프는 베를린의 만스타인 거리에 있는 한 장인이 자신을 위해 만든 이중 바닥의 노란 가죽 가방을 들고 여행했다. 그는 동지들을 위해 많은 불법 서적을 몰래 들여왔다. 그러나 국경을 넘는 일은 생각만큼 성공적이지 않았다. 세관 관리들은 울리야노프의 정체를 알았지만 그의 가방을 수색하지는 않았다. 오흐라나가 울리야노프를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뒤쫓아가 그의 동지들의 이름을 알아내도록 하기 위해 일부러 수색하지 않은 것이 거의 확실하다. - 6장ㆍ181~182쪽

평생의 동지, 나데즈다 크룹스카야
울리야노프가 결혼을 결심한 동기는 그리 명확하지 않다. …… 몇몇 설명은 둘의 관계가 처음에 매우 미적지근했다는 사실에 거의 병적으로 기뻐했다. 그들은 레닌이 감정적으로 둔하다는 것을 암시하기 위해 이 사실을 이용한다. 그러나 최근에 확보된 증거는 이런 설명이 문화적 편견이 가득한 것임을 보여준다. 문제의 핵심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정열적으로 서로에게 빠지는 낭만적 사랑을 블라디미르와 나데즈다 어느 쪽도 열망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 그 둘은 서로 충분히 좋아하고 마음에 들어 했으며, 가까운 장래에 서로 같이 일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 7장ㆍ200, 201쪽

《무엇을 할 것인가?》 - 사회주의 정당의 원리와 행동 강령
러시아 제국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본격적으로 블라디미르 울리야노프를 주목하게 된 것은 《무엇을 할 것인가?》를 통해서였다. 울리야노프는 책자에 N. 레닌이라고 서명했고, 그때부터 모든 사람이 그를 주로 ‘레닌’으로 알게 되었다. …… 울리야노프(이제부터 그를 부를 이름으로는 레닌)는 당의 내부 조직에 관해 몇 가지 명백한 원리를 내놓았다. 레닌은 비밀 정당을 원했다. 오흐라나를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려면 어떻게 비밀 정당이 아닐 수 있겠는가? 레닌은 규율 있고 중앙 집중화된 당을 원했다. 로마노프 왕조 러시아에서 달리 어떻게 당이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레닌은 기본 이데올로기와 전략이 통일된 당을 바랐다. 각 정당이 당시 등장하던 다른 당들과 자기 당을 구분하려면 어떻게 그러지 않을 수 있겠는가? - 8장ㆍ238, 239쪽

레닌과 볼셰비키
볼셰비키는 무자비한 무리였다. 그들은 혁명을 수행하고 반혁명 세력에 맞서 싸워야 할 것이라고 예상했으며, 자신들이 프랑스 혁명에서 로베스피에르와 그 동맹자들이 발전시킨 폭력적 방식을 삼가야 할 이유를 알지 못했다. 볼셰비키는 냉정하고 자신만만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러시아 제국 정부를 전복하는 데에서 필수적 역할을 수행한다면, 이후 정치적ㆍ경제적 이득을 확보하는 과업에서 없어서는 안 될 긴요한 존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의 목표는 차후에 있을 혁명 통치에 참여하는 것이어야 했다. 레닌은 그들의 깊은 속내를 드러낸 구상을 자유롭게 표명했다. - 10장ㆍ290~291쪽

패전을 위한 투쟁
레닌은 유럽의 군사 갈등이 ‘부르주아적이고 제국주의적이며 왕조적’이라는 데 마르토프와 의견이 같았고, 둘 다 독일사회민주당이 어처구니없게 행동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레닌은 우선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러시아의 모든 민족의 노동 계급과 근로 대중의 관점에서 볼 때, 차르 군주정의 패전이 그나마 덜 나쁜 쪽일 것이다.” 마르토프는 ‘제국주의’ 정부들을 마구잡이로 비난했다. 레닌은 이 정도로 충분하지 않았다. 조건부이기는 했지만 그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독일과 러시아의 전쟁에서 독일의 승전을 환영하기를 원했다. 이것은 어떤 ‘제국주의자 집단’보다 다른 ‘제국주의자 집단’을 더 좋아하는, 그런 지적인 강박이 없는 사람이 보기에는 이상한 주장이었다. - 13장ㆍ379쪽

고독한 투사
1880년대의 마르크스주의자들 중 겨우 몇 사람만이 제1차 세계대전 무렵에 여전히 살아서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레닌은 그들 중 한 명이었고, 그의 내적 확신은 자신이 정치가로서 해 온 활동에 의문을 제기할 어떤 압력도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 레닌은 역사가 자기편이라고 믿었다. 혹은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레닌은 자신이 역사의 편에 서 있다고 생각했다. 레닌은 한 차례 심각한 우울을 겪었으나 일시적이었다. 레닌은 자신이 함께하든 자신이 없이든 결국은 유럽 사회주의 혁명이 발생하리라는 것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 레닌은 그의 정치적 활동을 주시하던 소수의 사람들에게, 걸핏하면 싸우고 평정심을 잃은 유토피아주의자로 보였다. 그러나 레닌은 걱정하지 않았다. 레닌은 계속 로마노프 군주정이 전쟁의 희생자가 될 공산이 크다고 단언했다. - 14장ㆍ396, 397쪽

전투적 지도자
레닌은 일반적으로 보았을 때 뛰어난 연설가가 아니었다. 여전히 ‘r’을 정확하게 발음하지 못했기 때문에 레닌의 발음은 불완전했다. 연설하는 과정에서 리듬을 타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이런 단점은 청중들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정반대였다. 연단에서 드러나는, 땅딸막하고 말쑥하지 못한 어색한 모습은 레닌이 열정과 의지력을 지닌 인물이라는 인상을 전달했다. 공공 집회에서 레닌이 말하는 바를 정확히 알아듣기는 종종 힘들었지만, 청중들은 연설의 정확한 내용만큼이나 그들이 본 인간, 즉 인민의 대의를 위해 연설하는 비타협적이고 전투적인 지도자의 모습에도 끌렸다.
- 16장ㆍ447쪽

레닌은 활자의 정치가였다. 레닌은 마르크스주의 학자로 변신한 뛰어난 김나지야 학생이었고, 비밀 당을 창설하는 데 가장 훌륭한 도구는 신문(<이스크라>)이라는 이론을 러시아 마르크스주의자들을 위해 개발했다. - 16장ㆍ449~450쪽

《국가와 혁명》
레닌은 ‘자유’와 ‘민주주의’ 같은 단어를 경멸적 어감을 담아 사용했다. 그는 입법ㆍ행정ㆍ사법 당국 사이의 권력 분립 같은 개념을 비웃었다. 레닌은 공적 생활 자체도 혐오했다. 그는 사회주의 혁명이 사회를 ‘정치 공작’에서 사회 구성 요소를 ‘관리’하는 쪽으로 움직이기를 기대했다. 그에게 ‘의회주의’는 더러운 것이었다. 그러므로 레닌은 정당들 사이의 경쟁을 고취한다거나, 문화적 다원주의를 펼친다거나, 다양한 사회 소수자들의 이익을 옹호하는 것을 싫어했다. 개인으로서 시민의 권리는 그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 《국가와 혁명》은 자유민주주의적 가치에 기반을 둔 통치의 장점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실망스러운 저작으로 여겨져 왔다. 이는 어느 정도까지는 사실이다. 그러나 더 나아간 분석도 가능하다. 즉 이 책이 보편적인 시민의 자유를 주목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거기에 반대하는 명확하고 고의적인 선동을 담고 있다고 인정해야 한다. - 17장ㆍ488쪽

장막 뒤의 전략가
혁명 이후 소련에서는 10월 혁명에 관해 영화를 제작했고 소설을 썼으며 노래를 불렀고 심지어 발레로도 상연했다. 사실상 이 모든 작품을 통해 레닌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가 유포되었다. 이 작품들에서 레닌은 주먹을 치켜들고 입을 힘주어 다물고 있으며 턱에 수염을 기른 모습이었다. 사실 1917년 10월 25일, 바로 그 역사적인 날에 레닌은 짧게 연설했을 뿐이었다. …… 통상적인 설명과 달리, 레닌의 존재는 대회 연사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장막 뒤의 전략가이자 격려자로서 그 가치가 있었다. 그리고 이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레닌은 혁명의 성공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 18장ㆍ511~512쪽

독재와 폭력
레닌은 이원론적으로 자신의 전략을 설명하기 좋아했다. 레닌은 위로부터의 혁명과 아래로부터의 혁명을 동시에 원했다. 독재도 원했고, 민주주의도 원했다. 레닌은 권위주의적 강제와 해방을 목표로 삼았다. 1917년에 집필된 그의 저술들은 이러한 양극단을 결합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러한 이원론을 가지고 놀았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레닌은 인민위원회의의 권위를 강제하는 데 맹위를 떨쳤고 어떤 것도 자신이 가는 길을 가로막지 못하게 했다. 설득 대신 강압이 점차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레닌은 지시하고 명령했으며, 노골적인 국가 테러를 비롯해 폭력의 사용을 승인했다. - 18장ㆍ522쪽

지도자 숭배
1918년 8월에 레닌 암살 기도가 일어난 후, 레닌에 대한 정치적 숭배를 시도하는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지노비예프는 레닌 전기를 썼다. 레닌에 관한 글이 당과 정부 신문들에 등장하고 포스터가 나붙었다. 붉은 군대의 트로츠키를 제외하면 어느 볼셰비키도 레닌처럼 개인적으로 칭송받지 못했다. 레닌의 이미지는 인류의 적들을 몰락시킬 사심 없는 지도자였다. 당 저술가들은 레닌을 러시아의 진정한 아들이자, 물질적 개선을 위해 싸우는 투사, 계몽과 평화의 투사로 묘사했다. 레닌은 ‘소비에트 구세주’로 보였다. 그에게는 초인적 능력이 있다고 여겨졌다. 레닌의 생존은 기적으로 서술되었고, 저술가들은 기적에 대한 언급을 전투적 무신론과 어떻게 조화시킬지 설명하려 애쓰지 않았다.
- 23장ㆍ632쪽

스탈린이라는 문제
평소 레닌은 어떤 종류의 도덕률에도 코웃음을 쳤다. 그러나 마음속 깊이 레닌은 낭만적인 사람이며 혁명 신봉자였다. 마르크스주의자라면 부아가 치밀어도 해서는 안 되는 몇 가지 일이 있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마르크스주의에 헌신해야 하고, 그들의 사상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투사여야 하고 말로써 서로 공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레닌은 그들이 상호 불만을 해결하기 위해 주먹질을 해야 한다는 발상은 아주 싫어했다. …… 그루지야 공산주의 지도부를 어떻게 취급했는지에 대해 레닌이 알게 된 모든 것이 한 가지 사실을 암시했다. 그것은 바로 스탈린이 당내에서 권위주의적 국수주의를 향한 움직임을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스탈린 자신이 그루지야인이라는 사실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스탈린은 러시아 제국주의자처럼 행동했는데, 이는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 27장ㆍ735쪽

레닌의 후계자
레닌은 자신이 갑자기 죽을 수도 있고, 그래서 유산을 남기고 싶으면 일종의 정치적 유언을 작성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했다. 유언을 작성하려면 레닌은 자신의 후계자(혹은 후계자들)로 누구를 추천해야 할지 곰곰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 혁명에 대한 레닌의 우려가 커졌다. 여전히 대외 무역과 비소비에트 공화국들에 관한 두 가지 정책에 몰두하던 상황에서, 스탈린에 대한 정치적 적의가 덧붙었다. 또 레닌에게는 국내 억압을 유지하는 것이 우선 순위였으나 동료들이 이런 생각을 계속 공유해줄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허약해지고 열에 시달리던 레닌의 눈에는 정치국에서 합의된 정책들이 서서히 파괴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 27장ㆍ736~737쪽

레닌 숭배와 스탈린주의
러시아와 세계의 역사에서는 레닌이 없었더라면 나타나지 않았을 중요한 전환점들이 있었다. 레닌은 사건과 제도, 실천, 기본 태도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이 점은 당시 사실로 느껴졌고,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도 대부분의 평론가들은 똑같이 느꼈다. 레닌은 볼셰비키 분파를 수립했다. 레닌은 《무엇을 할 것인가?》, <4월 테제>, 《국가와 혁명》을 썼다. 레닌은 집권 전략을 세밀하게 고안했고, 반드시 권력을 장악할 수 있도록 애썼다. 10월 혁명뿐만 아니라 브레스트리톱스크 조약과 신경제정책도 레닌의 영향이 없었다면 없었을 것이며, 소비에트 체제는 재빨리 역사의 쓰레기통으로 사라졌을 것이다. …… 레닌이 없었다면 러시아에 어떤 극좌 정당도 존재하지 않았으리는 주장은 이상할 것이다. 그러나 소비에트 일당 유일 이데올로기 국가가 레닌이 없더라도 탄생했으리라고 가정하는 것은 똑같이 어리석은 생각일 것이다. - ‘에필로그’ㆍ783쪽

레닌이 권력을 잡고 명성을 얻은 것은 그가 가족, 교육, 이데올로기, 나라의 상황이라는 행운, 그리고 그에 못지않은 행운으로서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개성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레닌은 이 행운이 자신을 위해 유리하게 작동하도록 만들어야 했다. 레닌은 이 점을 이해했다. 레닌은 전반적인 정치적ㆍ경제적 상황이 좋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혁명이 그냥 발생하지는 않는다고 계속 분명히 밝혔다. 혁명은 만들어져야 했다. 그리고 혁명을 만드는 데는 리더십이 필요했다.
- ‘에필로그’ㆍ7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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