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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의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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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규격外
ISBN-10 : 8994054774
ISBN-13 : 9788994054773
간디의 진리 중고
저자 에릭 H. 에릭슨 | 역자 송제훈 | 출판사 연암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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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3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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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외형 상세 미선택 낙서 미선택 얼룩 미선택 접힘 미선택 낙장(뜯어짐) 미선택 찢김 미선택 변색 미선택 제본불량 미선택 부록있음 [중고 아닌 신간입니다.]

2.내형 상세 미선택 낙서 미선택 얼룩 미선택 접힘 미선택 낙장(뜯어짐) 미선택 찢김 미선택 변색 [출간 20151130, 판형 152x223(A5신), 쪽수 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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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간디의 진리 [중고 아닌 신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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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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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의 삶을 역사심리학적으로 재조명한 에릭 H. 에릭슨의 퓰리처상 수상작 “모든 인간은 유년기로부터 왔다”라는 발달심리학의 기본 전제에 역사학과 정신분석을 접목시키고자 일관되게 노력한 에릭 H. 에릭슨은 간디의 자서전을 비롯해 방대한 양의 참고자료와 증언을 토대로 간디의 생애를 재구성했다. 따라서 이 책은 간디와 인도인들에 대한 역사심리학적, 사회심리학적 연구서인 동시에 그의 자서전에 대한 해설서로도 읽힐 수 있다.

이미 간디의 자서전을 읽어본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해 자서전의 내용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될 것이다. 아울러 생애사와 심리 분석을 씨실과 날실 삼아 간디라는 인물에 대한 총체적인 접근을 시도한 저자의 방식은 간디의 대명사가 된 아힘사(비폭력), 사티아그라하(진리 추구) 그리고 브라마차리아(금욕)를 이해하는 데에도 똑같이 유효할 것이다.

전작인 《유년기와 사회》 그리고 《청년 루터》를 통해 역사심리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저자는 이 책에서 간디의 중년을 심층적으로 다루었는데, 이로써 그의 연구는 유년기와 청년기에 이어 중년기를 다루는 연작의 성격을 띠게 된다. 에릭슨은 이 책으로 퓰리처상과 전미도서상을 수상했다.

저자소개

저자 : 에릭 H. 에릭슨
저자 에릭 에릭슨(Erik H. Erikson)은 인간의 심리사회적 발달 8단계와 정체성 위기라는 개념으로 잘 알려진 에릭슨은 1902년 프랑크푸르트에서 생부가 확실하지 않은 가운데 유대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 세 살 때 어머니가 유대인 소아과 의사와 재혼하면서 성이 홈부르거로 바뀌었으며, 유대인의 특징을 발견할 수 없는 외모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정체성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중등 교육을 마친 후 미술을 공부하려다 포기하고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독서와 사색에 몰두했다. 비엔나의 정신분석학연구소에서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딸 안나 프로이트의 도움으로 1927년부터 6년간 정신분석을 연구했으며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아동 정신분석 분야에서 명성을 쌓았다. 공식적인 학위가 없었음에도 UC 버클리에서 종신교수직을 제안 받았고 1960년부터 은퇴할 때까지 하버드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이 밖에도 여러 대학과 병원, 연구소에서 임상 치료와 연구를 병행하였다. 저서로는 『유년기와 사회』, 『청년 루터』, 『정체성: 청년과 위기』, 『생애 주기의 완성』, 『간디의 진리』 등이 있다. 『간디의 진리』로 1969년 퓰리처상과 전미도서상을 수상했다. 심리학의 관심을 인간의 심리성적 발달에서 심리사회적 발달로 돌리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으며, 심리학을 문화인류학과 역사학에 접목시키는 시도로 이후 심리학의 연구방법에 큰 영향을 끼쳤다. 현대 발달심리학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그는 1994년 사망했다.

역자 : 송제훈
역자 송제훈은 서울에서 태어나 한양대학교 영어교육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서울 원묵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청소년과 젊은이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책을 옮기는 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유년기와 사회』, 『옥토버 스카이』, 『아버지의 손』(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 『내 이름은 이레네』, 『러셀 베이커 자서전: 성장』(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추천도서) 등을 번역했다.

목차

옮긴이의 글
서문

프롤로그 사건의 반향
제1장 인도: 첫 만남
제2장 아메다바드의 세미나
제3장 규정하기 어려운 사건

제1부 질문
제1장 증인들
1. 자서전 2. 생존자들
제2장 맞수
제3장 네 명의 노인들

제2부 과거
제1장 유년기와 청소년기
1. 모니야와 어머니 2. 모한과 아버지 3. 저주 4. 모한다스와 나쁜 친구
제2장 서약에서 소명까지
1. 내적 인간과 외적 인간 2. 소액사건 법원의 아르주나 3. 유일한 사람
제3장 가장(家長)
1. 중요 인물 2. 보잘것없는 인물 3. 평화의 도구 4. 선언

제3부 사건
제1장 사적인 편지
제2장 예언자
1. 왜 아메다바드여야 했는가? 2. 4중의 파탄 3. 대결 4. 정면 돌파
제3장 동지들과 반대자들
1. 사라바이 남매 2. 샨케를랄 반케르 3. 마하데브 데사이 4. 아들들과 추종자들
제4장 사건의 재구성
제5장 여파
1. 사티아그라하 운동가와 군인 2. 환자와 마하트마

제4부 진리의 지렛대
제1장 종교적 인간
제2장 도구
1. 전략 2. 의식(儀式) 3. 통찰
에필로그 바닷가를 향한 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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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진면목을 보고 싶은 이는 임페리얼 뉴델리 같은 최고급 호텔을 빠져나와야 한다. 올드 델리(Old Delhi)에서 마주치는 인파는 아시아만의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범람하듯 쏟아져 나와 빠른 물살처럼 지나간다. 한 시간만 걸어보면 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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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진면목을 보고 싶은 이는 임페리얼 뉴델리 같은 최고급 호텔을 빠져나와야 한다. 올드 델리(Old Delhi)에서 마주치는 인파는 아시아만의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범람하듯 쏟아져 나와 빠른 물살처럼 지나간다. 한 시간만 걸어보면 체형이 우아하거나 구부정한, 활력이 넘치거나 병이 든 모든 부류의 남녀노소를 마주치게 된다. 누구든 익명의 군중을 잠시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막연한 건강상의 위험을 감지할 수 있으며, 관광객들이 다니는 길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거의 적대적이라 할 만한 생물학적 환경과 관습을 목격할 수 있다. 어떤 이는 이러한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인도인들의 개인적, 국가적 운명을 다시 들여다볼 것이고, 어떤 이는 간디의 영향력이 사라지고 영국인들이 떠난 이후 생겨난 진공 상태에서의 혼란(또는 누군가의 표현대로라면 “격동”)을 주목할 것이다. 하지만 많은 인도인들의 따뜻하고 쾌활한 표정과 친절한 몸짓만으로도 이방인은 다시 숨을 고르게 되며, (이방인이라면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노상 방뇨와 배변조차 인도인들의 순박함을 보여주는 증거로 보이게 된다. 우리는 인도에 도착하기 며칠 전 갈릴리 호수에서 수영을 했고 밤에는 호숫가를 산책했다. 그곳은 몇 마디 말로 어부들의 마음을 움직인 한 남자의 흔적이 완고한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세대를 내려오며 기억되는 곳이다. 나는 그 갈릴리 사람과 델리에 묻힌 깡마른 인도의 지도자가 가지고 있는 유사성을 다시 한 번 떠올렸다. 두 사람의 공통점을 나타낼 수 있는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현존성일 것이다. 그것은 오로지 조용히 귀 기울이는 이에게만 들리는 강력한 침묵의 현존이다. -23쪽

힌두교 신자들의 생애 주기에서 분명한 제1단계는 안테바신(Antevasin), 즉 도제식 교육과 진로 탐색의 시기이다. 이 시기는 각 개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계급에 할당된 기본적인 기능을 습득하고 부모에 대한 맹목적 애착을 공인된 교사(guru)에게로 옮길 것을 요구하는데, 이는 각자의 운명과 인격을 실제적 기능과 특별한 인물에게 뿌리내리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것은 우리가 취학 연령의 아이들에게 기본적인 자신감을 키우도록 하고 청소년기를 자기 자신에게 충실한 느낌을 얻는 원천적 시기로 이해하는 방식과 매우 흡사하다. 힌두교 신자들이 성숙기 단계에서 추구해야 할 목표로 여기는 것은 다르마(dharma)이다. 이는 스스로의 선택뿐만 아니라 전생에서의 삶에 의해 결정되는 일생의 과업이다. 다르마는 매우 개인적인 문제인 동시에 우리가 정체성이라고 부르는 것만큼이나 그 경계가 명확하다. “다른 사람이 성취한 훌륭한 다르마보다 (설령 불완전할지언정) 자신만의 다르마를 얻고 자신만의 다르마 속에서 죽는 것이 낫다. 타인의 다르마는 위험을 가져다준다. -44쪽

간디는 『자서전』 또는 『나의 진리 실험 이야기』로 불리는 책의 집필을 1925년에 시작했다. 그 즈음 간디는 인도의 일부 소작농과 노동자들은 물론이고 남아프리카에 체류하는 인도인들에게 지도자로 부상해 있었다. 사실 그는 이미 최초의 전국적 시민 불복종 운동을 이끌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이 무렵 일종의 정체기를 맞고 있었다. 지도자로서의 첫 시기가 1922년 아메다바드의 재판으로 일단락된 것이다. 그는 6년형을 선고받았지만 감옥에서 보낸 기간은 이보다 훨씬 짧았다. 수감 중 급성 충수염에 의한 입원으로 가석방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결코 가벼운 형량을 원치 않았던 그가 6년형이라는 선고를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겼지만) 구속력 있는 것으로 받아들였으며, 이 때문에 원래의 형기가 끝날 때까지 스스로를 영국의 죄수로 여겼다고 추정할 만한 근거가 있다. 이 시기에 그는 영국 정부에 대한 공격을 눈에 띄게 자제했으며 대신 인도의 내부 여건을 개선하는 데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수감 중에 이미 인도의 민중이 시민 불복종을 감당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판단했으며 자신이 이끈 위대한 과업을 사실상 중도에 철회했다. 이로써 그는 이중의 비난에 직면하게 되었다.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준비도 되지 않은 봉기로 이끌었다는 비난과, 성공과 실패가 판가름 나기도 전에 그들을 저버렸다는 비난이 그것이다. 이 시기에 그가 육체적, 정신적으로 쇠약해졌음은 당연한 일이다. 1921년 11월의 봄베이 폭동 직후 C. F. 앤드루스는 그를 “마치 죽음의 골짜기를 막 지나온 사람처럼 초췌하고 야윈” 모습으로 묘사했다. -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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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책속으로 추가 청소년기의 모한다스는 한때 자신의 유별난 성격에 대해 절망ㅡ후일 그의 반복적인 우울함의 원형이 되는ㅡ한 적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어린 모니야가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의식,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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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으로 추가

청소년기의 모한다스는 한때 자신의 유별난 성격에 대해 절망ㅡ후일 그의 반복적인 우울함의 원형이 되는ㅡ한 적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어린 모니야가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의식,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으리라는 높은 개연성을 놓쳐서는 안 된다. 임상적 관점에서 우리는 간디의 고백으로부터 그가 불합리한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사실만 주목할지 모른다. 하지만 마하트마는 거기에 주저앉지 않았다. 그는 실험을 했다. 그가 수치심과 의심, 죄의식과 열등감을 강조한 (대부분의 인도인들은 이러한 표면적인 모습을 여과 없이 받아들였다고 생각된다) 것은 모두 그 실험을 위한 것이었다. 그는 그러한 감정들에 도전했고 승리를 거두었다. 우리는 남다른 아이라면 그런 도전을 하기 마련이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모든 아이가 그와 같은 도전을 한다. 다만 남다른 위대함은 대부분의 아이들이 잃고 마는 것을 스스로 확증하며 간직할 수 있는 능력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자신들을 시험하는 아이에게 그의 부모가 보여준 여유와 이해심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아이의 실험에서 이따금 엿보이는 사디즘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았다. 자신만만한 태도나 섬세한 분별력 같은 조숙함의 특질이 타고난 성격과 아직 맞물리지 못하고 있을 때 아이는 주도성과 호기심을 갖는다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갖기 쉽다. 그런 점에서 모니야는 부모를 잘 만난 것 같다. 어쩌면 그의 유일한 좌절은 너무 이른 시기에 자신만큼이나 고집이 센 소녀와 결혼을 한 것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131쪽

모한의 13세와 15세 때의 모습을 보여주는 세 장의 사진이 있는데, 모니야의 이미지보다 이때의 모습이 마하트마 자신이 묘사한 청소년기의 모습에 (그리고 이 묘사에 토대를 둔 다른 사람들의 설명에) 더 잘 맞는 것 같다. 하지만 사진 속의 모한은 마하트마 자신이 이야기한 그 옛날의 소년보다 더 반듯하고 훨씬 말쑥한 모습이다. 바르지만 뻣뻣하지 않고, 수줍음이 많지만 소극적이지 않으며, 총명하지만 책에 파묻히지 않은, 의지가 굳지만 고집불통은 아닌, 감각적이지만 무르지 않은, 그래서 본질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하지만 그것이 없이는 설명되지 않는 통일성을 가지고 있는, 그런 소년을 누가 묘사할 수 있으며 누가 “분석”할 수 있겠는가ㅡ 우리는 그러한 소년과 아버지의 관계가 어떠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마하트마는 사춘기의 혼란 속에서 아버지를 간병하면서도 자신의 도리를 다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짓눌려 있었기 때문이다. 일부 역사학자와 정치학자들은 이를 정신분석학적으로 쉽게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문제의 핵심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어떻게 한 사람을 위인인 동시에 신경증 환자로 만들었느냐가 아니라, 어린 시절의 공상을 현실로 만드는 데 필요한 독창성과 재능이 자신에게 있음을 깨달은 한 젊은이가 다른 사람들을 옭아매고 있는 콤플렉스를 어떻게 다루었느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프로이트의 이론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프로이트는 보통 사람들의 행동을 제어하는 양심(부모와 사회에 의해 내면화되는 개인의 의식으로, 프로이트는 양심의 근원인 초자아와 자아 사이의 긴장이 죄책감으로 표현된다고 보았다ㅡ옮긴이)에 대해 주로 기술했을 뿐, 비범한 인물들이 예외적이고 독자적인 행동을 할 수 있었던 요인은 설명하지 않았다. (이것은 어쩌면 모세에 대한 프로이트의 내밀한 동일시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프로이트는 꿈을 통해 무의식이 내적 콤플렉스를 지배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에 만족했지만, 그 자신의 꿈을 이해하게 해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깊이 파고들지 않았다. 그는 도덕성의 개념처럼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139쪽

마하트마는 자서전에서 그에게 큰 인상을 남긴 신화와 연극을 언급한다. 그중 어느 유랑극단이 공연한 종교극에서 “슈라바나가 양어깨에 걸머진 대나무 바구니에 눈먼 부모를 태우고 순례를 하는 장면”이 그에게 지울 수 없는 인상을 남겼다. 그는 그러한 모습을 본받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속절없이 슈라바나는 숨을 거두고, “아들의 죽음 앞에 통곡하는 부모의 비통한 모습은 지금도 뇌리에 깊이 박혀 있다. 그 장면에서 나온 곡조가 내 심금을 울렸고 나는 아버지께서 사주신 아코디언으로 그 곡을 연주하곤 했다.” 이를 오늘날의 시각으로 아버지보다 강해지고 싶다는 소망을 간디가 감정적으로 부정한 것이라는 해석을 하는 이도 있겠지만, 우리는 프로이트조차 오이디푸스의 주제는 의식의 차원에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개념을 이해하고 있다는 이유로 그것을 의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고대로부터 오늘날까지 한 개인이 자신의 전 존재로 겪는 문제를 너무 쉽게 다루는 것이다. -147쪽

모한다스의 어린 신부는 성적 요구의 강도와 빈도, 만족도가 실제로 어떠했든 그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힌두교 문화에서 여자가 당연히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하지만 모한다스는 자신의 은밀한 마술로 그녀를 끌어들이려 애쓰는 동안 난생 처음 (그리고 많은 이들의 판단으로는 평생) 만만찮은 상대를 만났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녀의 고집과 존엄성은 약해질 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결혼 초 그녀는 신체적으로 남편보다 강했을 뿐만 아니라 고집도 세서 글을 가르치려는 남편의 끈질긴 노력에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훗날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지만 끝내 글을 제대로 읽고 쓰지 못했다. 피아렐랄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녀는 “말 한마디로 아픈 곳을 찌르는 데 천재적이었으며…… 언제든 그로 하여금 무력감을 느끼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피할 수 없는 희생의 삶에 조금씩 굴복하게 되었다. 샨케를랄이 노년에 접어든 그녀에게 좋은 옷을 입고 싶은 여자의 욕심이 생길 때는 어떻게 했느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의 길을 선택하는 겁니다. 나머지 길은 다 잊어야죠.” 하지만 그녀는 남편과의 내밀한 결혼 생활에 대해ㅡ간디의 고백으로 사람들이 알고 있는 내용조차ㅡ결코 입을 열지 않았다. 우리가 마하트마의 고백을 통해 알고 있는 내용은 아우구스티누스주의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다. -150쪽

1888년 9월 모한이 배ㅡ당시에는 50일이 걸린ㅡ를 타고 영국으로 출발했을 때 그는 카티아와르 촌뜨기에 불과했다. 문화와 행정의 중심지로 가까이에 있는 아메다바드조차 그는 영국으로 떠나기 1년 전 대학 입학 자격시험을 응시하기 위해 가본 것이 처음이었다. 정부의 학비 지원을 받기 위해 포르반다르의 행정관을 만난 것이 그로서는 영국인과의 공식적인 첫 만남이었다. 사실 그는 영자신문을 읽어본 적도 없었다. 봄베이를 처음 구경한 것도 영국으로 떠나기 직전 유학에 대한 특별 허가를 받기 위해 그가 속한 상인 계급의 원로들을 만나러 갔을 때의 일이다. 그의 당당한 태도는 원로들보다 오히려 모한 자신이 놀랄 만한 일이었다. 이것은 그에게 생존ㅡ이를테면 정체성의 생존ㅡ의 문제였던 것이다. 당시 그의 내면에서는 앞선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고 새로운 기회에 눈을 뜨기 위해서는 반항이 오히려 더 높은 차원의 순종이 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그 내면의 목소리가 힘을 얻도록 하기 위해 그는 우선 중요한 금기들을 지키기로 다짐했다. 모든 금기들 중에서도 육식이 가장 중요한 문제로 여겨진 것은 육신의 생존과 정신의 파멸이라는 양면성의 중심에 그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178쪽

언뜻 보아도 자서전과 젊은 간디의 진술 사이에는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들이 있다. 1891년, 채식주의자들을 주요 독자층으로 하는 어느 간행물과 가진 인터뷰에서 이 젊은 법학도는 영국에 온 이유를 묻는 질문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야망!”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나이가 든 마하트마는 런던 도착 이후 그가 경험한 유혹들과 도덕적 승리 그리고 실패를 서술하는 데 열 개의 장(章)을 할애한 뒤에야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열한 번째 장을 시작한다. “내가 영국에 간 목적, 즉 변호사 자격을 얻기 위한 과정에 대해서는 아직 이야기하지 않았다. 이제 그 얘기를 간략하게 해볼까 한다.” 그는 학업에 대한 자신의 관심을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한 다음 이렇게 그 장을 끝맺는다. “나는 시험에 합격했고 변호사 면허를 얻어…… 하지만…… 나는 스스로 변호사로서 자격을 갖추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런 인물은 자신이 다른 누군가로부터 중요한 어떤 것을 배웠다는 사실은 결코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혼자서 깨달은 것에 대해서는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공을 돌린다. 하지만 이와 같은 모순들도 그 나름으로는 “모두 진실”이기 때문에,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개념적 수단을 가지고 그러한 모순에 담겨 있는 심리적 진실을 파악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라 하겠다. -182쪽

청년 간디는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를 할 때 불안 발작(anxiety attacks)을 보이는 경우가 있었는데, <베지테리언(Vegetarian)>은 그와의 인터뷰를 실은 기사에서 “다소 불안해” 보이는 그의 모습을 묘사하기도 했다. 실패로 돌아간 그의 첫 연설은 그가 처음으로 다수의 청중 앞에 자발적으로 나섰다는 점에서, 그리고 연설 내용에 그를 가장 괴롭히던 요소가 들어 있었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할 만하다. 채식주의 협회의 회장은 피임을 공공연하게 옹호한 어느 회원(앨린슨 박사)을 제명하기 위해 간디가 속해 있는 위원회에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했다. 이때 청년 간디는 협회의 목적이 “채식주의의 권장에 있지 어떤 도덕 체계를 전파하는 데 있지 않다”는 입장을 대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훗날 자신의 추종자들을 하나로 묶은 간디의 목표 지향적 태도가 일찍이 발현된 예라고 할 수 있다. 간디가 금욕 이외의 인공적 피임에 찬성하지 않았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간디는 그 의사가 채식주의 협회 밖에서 한 활동은 협회가 관여할 바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그는 다시 한 번 불안 상태를 겪었고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주장을 다른 사람에게 대신 읽도록 했다. 그 의사는 결국 제명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마하트마는 “나는 첫 번째 싸움에서…… 지는 사람의 편에 섰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기록했다. -188쪽

한 사람에 대한 임상 기록을 정리하면서 정확히 어느 지점에서 공통적인 강박 증상이 끝나고 어디에서 개별적 의식(儀式)이 시작되는지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그 개인의 준비와 집중력이 새로운 에너지를 방출하면서 다른 사람들로부터도 그에 상응하는 에너지를 끌어낼 수 있을 때, 처음에는 일반적인 강박 증상으로 보이던 것이 나중에는 풍요로운 상호관계로 이어지는 통로가 될 수도 있다. 간디는 의식을 만드는 것에 능한 사람이었다. 어머니에 대한 간디의 동일시가 갖는 정치적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다. 바푸(“아버지”라는 뜻의 호칭)라 불린 그의 모성적 측면은 특정 부류의 추종자들을 끌어 모았으며 대중으로부터 독특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마치 자신의 내부에 새로운 모체(母體)를 만들어 스스로 인도 자체가 된 것 같았다. 하지만 이러한 열매는 그가 아버지의 꼬장꼬장한 성품과 상인(Bania)의 실용주의를 결합시킨 뒤에야 맺어질 수 있었다. 그의 모성적 측면에 녹아 있는 양가감정은 그의 전체 이미지와 생애를 바라보는 대중의 양가감정에 큰 영향을 끼쳤지만 다른 한편으로 민주주의적 평등의식과 산업 시대의 합리적 경영에 거대한 방해 요인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199쪽

1897년 말, 그는 우아한 사리(sari) 차림의 아내와 파르시 전통 의상을 입은 (남편을 잃은 누이의 아들을 포함한) 아이들과 함께 인도를 출발했다. 그는 남아프리카에서 자신의 특별한 경험과 교육을 기반으로 변호사 업무를 새롭게 시작할 참이었다. 그런데 말쑥한 (그 유명한 터번 덕분에 눈에 잘 띄는) 차림의 이 변호사는 더반 항에 도착하자마자 성난 무리로부터 린치를 당할 위기에 처해 있었다. 일이 그렇게 된 사정은 이러하다. 인도에 머무는 동안 그는 연설과 팸플릿을 통해 남아프리카에서 인도인들이 당하고 있는 고통을 자세히 이야기함으로써 여론을 들끓게 했다. 사실 그의 발언 내용은 남아프리카에서 사람들 앞에서 하던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이번에는 주요 언론이 세계 각지ㅡ남아프리카를 포함한ㅡ에 그의 발언을 전하면서 과장과 왜곡을 덧칠했다는 점이 달랐다. 이 때문에 그는 하룻밤 사이에 남아프리카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이자 가장 증오스러운 인도인이 되었다. 게다가 그가 타고 온 “쿨리 배”에는 정원을 초과할 정도로 많은 “쿨리 이민자들”이 타고 있었는데 때마침 입항한 또 한 척의 배에도 인도인들이 만원을 이루고 있었다. 이 상징적인 장면이 백인들에게는 간디가 자신이 헐뜯고 비방한 나라에 자국민들을 이끌고 침략을 하는 모습으로 비쳐졌다. 더반 항만 당국은 당시 인도에서 발생한 페스트를 문제 삼아 그 두 척의 배에 3주간 입항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선상에서 열린 성탄절 행사에서 간디는 만일 린치를 당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선장의 질문에 그들을 용서하게 되기를 바란다고 대답했다. 곧 그에게 성탄절의 감상을 증명할 기회가 주어졌다. 입항 허가가 내려진 뒤 간디는 나탈 법무상의 조언에 따라 가족들을 먼저 하선시키고 자신은 배에 남아 있었다. 하지만 결국 그는 배에서 내렸고 그를 발견한 무리가 달려들어 그를 집단 구타하기 시작했다. 이때 경찰서장의 아내 알렉산더 여사가 그의 목숨을 구했다. 그녀는 경찰 병력이 도착할 때까지 (여성이 갖춘 의상의 일부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결코 손을 대서는 안 되는) 양산을 펼쳐 간디를 보호하며 적어도 그의 얼굴에 주먹이 날아드는 것을 막아주었다. 경찰은 그의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는 지인의 집까지 그를 호위했다. 그런데 간디가 상처를 치료받는 동안 그의 거처를 알아낸 무리가 다시 몰려들었다. 그들은 집 앞에서 그의 신병을 넘길 것을 거세게 요구했다. 경찰서장 알렉산더 씨는 현관문 앞에 버티고 서서 이따금 “사과나무에 교활한 간디의 교수형을”이라는 노래를 무리와 함께 부르며 시간을 벌었고, 간디는 그 틈을 타서ㅡ가족들의 안전을 위해 그가 동의했으리라 믿어지거니와ㅡ경찰복 차림으로 뒷문을 빠져나갔다. (머리에 쓰는 것과 관련된 그의 독특한 역사는 이때에도 계속되었다. 그는 경찰 헬멧 대신 숄로 감싼 양철 냄비를 머리에 뒤집어썼다.) 마침내 경찰서장이 간디가 집을 빠져나갔음을 알리며 무리의 몇몇 대표자에게 직접 집 안을 둘러보게 했을 때 그들 모두는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며칠 후 간디가 경찰의 보호를 받고 있는 동안 그의 발언을 왜곡했던 언론사가 정정 보도를 했고 이로써 간디는 더 이상 해를 입지 않게 되었다. 영국 정부의 식민성 장관은 그에게 폭력을 휘두른 용의자들의 체포를 지시했지만 간디는 자신이 알고 있는 용의자들의 신원을 끝내 밝히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나탈 주민들의 존경을 받게 되었다. -228쪽

1915년 1월 중요한 인물을 맞이하기 위해 특별히 비워진 부두에 발을 내려놓은 순간부터 간디는 인도의 불행과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중년의 성숙한 사람이라면 자신이 맡은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분명히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맡게 될 일과 맡을 수 있는 일에 대한 계획도 확고히 가지기 마련이다. 그는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 위치에서 자신만이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일에 관심을 갖는다. 우리는 지금부터 간디가 모든 면에서 자신의 위치를 어떻게 공고히 다졌는지 살펴볼 것이다.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그는 고위관리들이 그를 예우하기 위해 마련한 “눈부시게 화려한” 환영식에 “카티아와르 촌뜨기”의 옷차림으로 나타났다. 그는 관리들 앞에서 구자라트어로 연설을 하며 “사티아그라하의 일면”을 보여주었다. 그는 모니야에게나 어울릴 법한 거친 말로 관리들을 꾸짖었지만 그 어조에는 자신이 한 말을 목숨을 걸고서라도 실행하는 사람의 진정성이 담겨 있었다. 청중의 반응은 “동포들 앞에 나의 신식 사고를 대담하게 꺼내놓는 것을 주저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해주었다.” 그는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는 당분간 몸을 낮추고 있으라는 고칼레의 조언을 마지못해 받아들였다. 하지만 개혁을 위한 자신의 프로그램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을 주저하지는 않았다. -331쪽

간디는 무엇보다도 먼저 언어라는 요인을 강조했다. 구자라트어를 사용하는 인구는 인도 전체 인구의 10분의 1에 미치지 못하지만 그들은 그의 동족이었다. 그에게 자유인의 첫 번째 요건은 어린 시절에 익힌 언어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후일 간디는 인도의 심각한 언어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효용이 없고 수용이 불가능한 제안을 했지만 이론적으로는 그가 옳았음이 분명하다. 이후 그에 버금가는 열의와 추진력을 가지고 인도의 언어적 딜레마에 접근하는 지도자가 없었기 때문에 오늘날 인도의 상황이 더 나빠졌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간디는 진리의 사도로서 개인적인 본보기를 통해 민중으로 하여금 국가적인 불행에 눈을 뜨게 만드는 일을 할 수 있었을 뿐이다. 대부분의 공무와 일상의 많은 영역이 부자연스럽고 변형된 영어 아니면 의도한 의미의 근사치밖에 전달하지 못하는 수많은 방언에 의해 이루어지는 곳에서 진리는 불명료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이 자신이 “진정으로” 의도하는 바를 말하려고 할 때 그것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불필요해지는 것도, 영국인들이 인도인들에 대해 정직하지 못한 성향을 “타고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도 모두 그러한 사실에서 비롯된 것이다. -336쪽

간디는 남편보다 아내가 “더 훌륭한 사람”이라며 암발랄을 놀리기 좋아했다. 그럴 때마다 암발랄은 빙긋이 웃어보였다. 간디와 관계를 맺은 사람들 중 그들의 가정사와 사생활에 영향을 미치려는 간디의 노력(과 실패)에도 우정을 오래 이어간 이들은 농담 속에 가시가 있는 간디의 말을 마치 작위를 받듯이 받아들였고 그의 농담을 한결같이 잘 기억했다. 간디는 자신의 동지가 되기보다 끝내 반대자로 남은 사람들을 늘 존중했다. 간디와 암발랄 가운데 한 사람은 마하트마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두 사람은 서로를 대등한 존재로 인정했다. 사실 간디는 자신을 특별한 인간으로 떠받들려는 시도를 항상 유머로 무산시켰다. 그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만일 내가 나 자신을 위대한 영혼, 즉 마하트마라고 인정해버리면 그것은 다른 이들을 하찮은 영혼으로 인정하는 꼴이 됩니다. 그런데 하찮은 영혼이라니요? 그런 표현 자체가 모순입니다.” -396쪽

간디는 샨케를랄을 만났을 때 그의 특별한 재능과 사티아그라하 운동가로서의 잠재력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우리는 샨케를랄의 개인사를 살펴봄으로써 그가 어떻게 간디의 동지가 될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샨케를랄은 1889년 봄베이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집안ㅡ같은 하위 카스트에 속한 백여 개의 비슈누교도 가문 가운데 하나인ㅡ는 보수적이고 매우 종교적인 가풍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우리는 매일 목욕을 마치고 신께 경배를 드렸고 절을 올린 다음에는 염주를 굴리며 기도를 바쳤다”고 했다. 아버지가 은행에서 일했기 때문에 그의 가족은 윤택한 생활을 했다. 그러나 어린 소년에게는 그만의 인생 문제가 있었다. 그는 누나만 일곱 명을 둔 막내였다. 그의 아버지는 하나뿐인 아들이 누나들에게 군림하도록ㅡ아들이 하나이거나 막내인 집안에서는 드물지 않은 일이었다ㅡ부추겼고 아들이 분노를 표출하는 것도 귀엽게 받아주었다. 아침 기도를 마치면 아버지는 가장 먼저 아들을 찾았다. 힌두교도에게 아들이란 영원불멸의 고리였기 때문에 줄줄이 딸만 일곱을 낳은 뒤에 얻은 이 아들은 그에게 더할 수 없이 소중했다. 그 덕분에 어린 샨케를랄은 특별한 힘을 누릴 수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몇몇 누이들이 결혼을 앞두고 심적 고통을 겪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남다른 갈등을 겪기도 했다. -401쪽

1918년 3월 15일에 시작된 단식은 그가 평생 동안 “죽을 각오로” 결행한 열일곱 차례의 단식 가운데 최초의 것이었다. 훗날 마하트마가 단식을 하는 동안 인도 전체는 숨을 죽였고 모든 도시는 어둠 속에 있는 그와 함께하기 위해 저녁에도 램프의 불을 밝히지 않았다. 그때부터 오늘날까지 비록 충동이나 앙심에 의한 것일지언정 수많은 이들이 마하트마의 행동을 본보기로 삼아왔다. 그러므로 그가 최초의 단식을 하게 된 동기가 무엇이며, 나중에 이 단식을 후회한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렇지만 목숨을 건 단식이 “순수한” 결단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러한 결단은 당면한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과, 그것을 위해 죽겠다는 결심의 역설적인 조합에서 생겨나기 때문이다. 이는 어떤 신조를 위해 죽음으로써 부끄럽지 않게 “사는” 것을 가능케 한다. 순교자 역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되 결국에는 다른 누군가로 하여금 자신을 처형하도록 강요하는데, 이처럼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다는 결정은 특이하면서도 모호한 층위에 속해 있다. -473쪽

투쟁을 이끌 활동가들의 선발과 준비는 종교적 분별력과 관례에 따랐다. 시민불복종 운동에 참여할 사람들은 24시간의 단식을 통해 그들 자신이 정화되었음을 확실히 보여주어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법안이 통과되는 즉시 투쟁을 시작하겠다는 최후통첩을 총독에게 전달했다. 계획된 시민 행동은 모든 상점의 문을 닫는 것으로 정해졌다. 작은 상점들과 노점들, 행상들의 수레 사이에서 약동하는 사회생활을 일시에 정지시킨다는 점에서 이것은 일상의 성격을 완전히 바꾸어놓는 것이었다. 특히 인도에서 일요일은 회교도나 힌두교도 모두에게 원래 휴업일이 아니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하르탈은 롤래트 법에 대한 불복종만 천명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투쟁을 이끈 위원회는 소금세(salt tax) 법과 금서에 대한 법 등 즉각적으로 불복종의 대상이 될 법들을 지목할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간디와 반케르는 당국의 허가 없이 <사티아그라히(Satyagrahi)>라는 제호의 신문을 발행할 예정이었다. 또한 거리에서는 금서를 판매할 예정이었다. 이 금서들 중에는 케말 파샤(Kemal Pasha, 터키의 초대 대통령으로 독립전쟁의 영웅이자 국부로 추앙 받는 인물ㅡ옮긴이)의 생애를 그린 책과 러스킨의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를 간디가 고쳐 쓴 책, (플라톤이 쓴 『소크라테스의 변론과 죽음』을 간디가 개작한) 『어느 무저항 불복종주의자의 이야기』 그리고 “매사추세츠의 스승”이라 불린 헨리 소로가 지은 『시민의 불복종(The Duty of Civil Disobedience)』의 요약본이 포함되어 있었다. 마하트마ㅡ이제 간디는 스스로를 그렇게 칭했다ㅡ는 봄베이의 시위에 참가했고, 이를 보도한 <봄베이 크로니클>은 시위에 나선 그의 의도가 무엇인지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524쪽

아메다바드 파업 당시 간디는 48세였다. 즉 마하트마는 중년이었다. 그는 이듬해에 인도의 국부(國父)로 부상했는데, 이는 중년의 삶이 내가 생산력(generativity)이라는 용어로 포괄한 인간의 보편적인 욕구와 능력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더욱 큰 중요성을 띤다. 나는 이 단계에 도달한 모든 남녀는 이제까지 돌봐온 사람들과 자신들이 해온 일들을 돌아보고 현재 시점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명확히 규정하며 앞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한 계획을 스스로 세울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위대한 지도자는 자기 자신은 물론 다른 많은 이들을 위하여 새로운 선택과 새로운 책무를 구상한다는 것도 분명하다. 그는 이와 같은 선택과 책무를 강한 열의, 강력하면서도 유연한 에너지, 놀라울 정도의 독창성 그리고 자신의 관심을 그 시대에 투영할 수 있는 능력으로부터 얻어낸다. 그리고 동시대인들은 그의 설득력 있는 행동을 통해 그의 관심이 시대의 절박한 필요로부터 “자연스럽게” 표출된 것이라고 믿게 된다. 과거에 실제로 일어난 일들 가운데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만 연구할 수 있는 역사학자들 중에서도 그러한 의견에 동의하는 이들이 있다. 다만 간디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인도가ㅡ훨씬 좋아졌으리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ㅡ그리 나빠지지 않았으리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실제로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당대의 다른 인물들과 비교해볼 때, 간디와 그의 “내면의 목소리”는 기분에 따라 달라지는 경우가 많았고 신비주의적인 경향이 강했으며 이념적으로 일정한 양식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간디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일관되게 지적하는 것은 바로 그에게 일관성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어떤 때는 사회주의자 같다고 비난을 받다가 이내 지나치게 보수적이라고 비판을 받았다. 평화주의자와 광기에 휩싸인 군국주의자, 국가주의자와 “지방자치주의자”, 무정부주의자와 전통의 신봉자, 그리고 서구적 행동주의자와 동양적 신비주의자라는 엇갈린 평가가 그를 줄곧 따라다녔다. 종교인의 면모와 자유주의자의 성향을 모두 가지고 있었던 그는 심지어 무신론자의 무신론 속에서도 신을 볼 수 있다고 말할 정도였다. -536쪽

나는 지금껏 절반은 남성이고 절반은 여성인 것에 자부심을 느낀, 그리고 생물학적 여성보다 더 모성적이기를 열망한 정치 지도자가 간디 이외에 누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이것은 철저하게 개인적인 욕구와 민족적인 성향이 합쳐진 결과이기도 하다. 원시적인 신모(神母) 신앙은 인도인들의 종교적 성향에 가장 깊이 그리고 가장 널리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마간랄의 죽음으로 깊은 슬픔에 빠진 간디는 그를 기리는 추모비에 “남편을 잃은” 심경을 글로 새기기도 했다. 샨케를랄은 옥중에서 자신에게 아침에는 기도를 하고 낮에는 물레를 돌리라고 하는 간디에게 이렇게 말했다. “가장 고약한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박대하는 것도 선생님께서 저를 대하시는 것보다는 나을 겁니다.” 간디는 (샨케를랄의 말에 동의하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나중엔 나에게 감사하다고 할 겁니다.” 여성적 표상이 그에게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 것 같다. 물론 전통적으로 여성의 일로 인식되던 물레질ㅡ그것이 과거에는 어떤 성격이었고 전국적인 카디 운동에서는 또 어떤 성격을 띠었든지 간에ㅡ에 대한 간디의 각별한 애착에 대해서는 수군거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간디는 이를 순순히 인정함으로써 사람들의 구설에 대응했다. 그는 자신이 절반은 여성이기를 열망한다고 당당히 밝혔다. 그는 처칠이 벌거벗은 탁발승에 대해 경멸조로 말했을 때에도 자신은 가능한 한 벌거숭이에 가까워지기를 바란다고 되받아친 바 있다. 확실히 그는 일종의 승화된 모성주의를 완전한 인간의, 그리고 종교적인 인간의 긍정적인 정체성의 일부로 보았다. 공공연한 남근숭배는 그에게 혐오스러울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없어도 되는 것으로 여겨졌다. 물론 대부분의 남자들은 신이 주신 그러한 기관을 거부하는 것이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어떤 면에서는 불경하기까지 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성적 자기부정에 어떤 병적인 요소가 개입되어 있으리라는 의심을 버리지 않는다. 심리적 자기거세(self-castration)에 대한 의심은 무기의 포기를 남성성의 포기로 여기는 오랜 남성적 성향과도 쉽게 연결된다. 여기에서 간디는 다시 한 번 예언자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기계화된 미래에서 남성성의 호전적 모델이 지닌 가치의 상대적 하락은 양성의 보다 자유로운 상호 동일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545쪽

나는 간디로 하여금 아메다바드를 사건의 무대로 선택하도록 이끈 현실의 지형을 스케치해보려고 노력했다. 암발랄과 아나수야가 엮여 있는 상황의 특별함은 물론이고 마하트마 개인의 과거와 문화적 전통에서 비롯된 강박이 그 현실을 구성했다. 후일 간디가 이 출발점을 부정하려 한 것은 다른 곳이 더 적합한 출발점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간디는 늘 어떤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숨을 고르는” 시간을 갖고는 했다. 당시 방직 노동자들의 입장이 옳다는 것은 통계에 의해서도 드러나 있었고 정치적, 경제적으로 파급력이 큰 사안의 성격상 대중의 관심도 높은 편이었다. 아메다바드에서 목표는 임금의 35% 인상이었다. 이는 노동자들에게는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사용자로서는 감내할 만하며 여론도 수용할 수 있는, 그리고 상징적으로 타협이 이루어지기에도 적절한 인상폭이었다. 결국 목표는 달성되었다. 그러나 그 목표는 극적인 수단이 덜 사용되었다 해도 달성될 수 있었을 것이고 모든 상황은 공장 게시판과 지역 신문에 알려지는 정도로 종결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사실 더 큰 목표는 투쟁에 참가한 이들이 자기 자신(명예)과 다른 모든 사람들(협력) 그리고 공동의 신(진리)과의 관계를 새롭게 설정할 수 있었듯이, 더 넓은 지역과 전국적인 규모에서 이를 적용할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그것은 본듀런트가 규칙, 행동 원칙 그리고 체계적인 단계 같은 용어로 요약한 엄격한 조건을 갖추어야 했다. 여기에서 나는 몇 가지 사실을 추론할 수 있다. -560쪽

1930년 5월 타고르는 <맨체스터 가디언(Manchester Guardian)>지에 유럽은 아시아에서 이미 도덕적 신망을 잃었다는 글을 당당하게 기고했다. 그는 마하트마를 칭송하며 한때 허약했던 아시아가 “예전에 우러러보던 유럽을 이제는 내려다보게 되었다”고 말했다. 내가 이해한 대로라면 간디는 아마 이를 달리 표현했을 것이다: 아시아는 이제 유럽을 똑바로ㅡ위나 아래로가 아니라ㅡ쳐다볼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이 이를 행할 수 있는 모든 곳 에서 상호 인식이 자리 잡게 될 것이다. -6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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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

회원리뷰

  • 사티아그라하 | js**jy | 2015.12.21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마하트마 간디... 국민학교 때부터 정말 많이 들어오던 이름이다. 그러나 막상 그에 대해서 좀 깊이 아는 것이 있었느냐면?...

    마하트마 간디...

    국민학교 때부터 정말 많이 들어오던 이름이다.

    그러나 막상 그에 대해서 좀 깊이 아는 것이 있었느냐면?

    글쎄다.

    이 책은 에릭슨의 퓰리쳐 수상작이다.

    간디가 죽은 후 10여 년만에 지어진 책이다.

    여느 전기와는 달리 심리학적 분석으로 다가선 것이 특색이라고날 할까?

    모든 성인들의 양면성은 늘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그런 인간으로서의 약점이랄 수 있는 그런 면 때문에 성인으로서의 강점이 더 부각되는지도 모른다.

    간다의 약점이라면 본인의 성공을 위한 가족들의 희생 강요가 아마 가장 많이 부각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떻단 말인가?

    그 사람은 그런 면을 다 커버하고도 남을 인도의 성인(마하트마)로 거듭 난 것을.

    이 책은 그의 전생애를 꼼꼼히 짚어보지는 않는다.

    그 대신 간디와 직접적으로 교류했던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하면서 그의 삶을 하나씩 파헤친다.

    남아프리카에서 등록증 불태우기와 집단 공동생활촌 결성...

    그리고 한참을 건너 뛰어 인도로 귀환한 후의 비폭력무저항 운동 전개.

    그 말이 인도어로 사타아그라하라고 한단다.

    말이 쉽지 비폭력 무저항을 무기로 독립을 쟁취한 사람이 과연 있을까?

    사실 당시 전세계적인 분위기가 식민통치를 끝내던 시점이긴 하지만 간디의 노력은 그 과정을 상당히 앞당겼으리라 본다.

    우리나라에는 그에 필적할 만한 인물이 있었던가 생각해본다.

     

    동시에 리처드 아텐보로의 영화 간디를 보았다.

    3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에 우선 질린다.

    몇 번을 봤지만 사실 집중해서 본 적이 별로 없는 듯한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번에는 제대로 보았다.

    책의 내용과 흡사하게 전개되는 것 같다.

    라이프지의 불멸의 여성 종군 기자 마거릿 버크 화이트 역을 맡은 캔디스 버겐이 인상적이다.

    사실 생애 마지막 간디의 사진을 찍은 사람은 알리 까르띠에 브레송이었지만...

    책을 보고 영화를 본 느낌은 이 영화는 책에서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는 생각.

    아텐보로는 이제 고인이 되었지만 그의 이 영화는 영원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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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자
스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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