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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밭에 버려진 감자처럼
| 규격外
ISBN-10 : 8979735243
ISBN-13 : 9788979735246
풀밭에 버려진 감자처럼 중고
저자 강성은,김언,김참,김형술,박대현,유지소, 정익진, 조말선, 허만하 | 출판사 전망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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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 1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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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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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밭에 버려진 감차처럼』은 부산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허만하, 김형술, 정익진, 유지소, 조말선, 김참, 김언 등 모더니즘 계열의 시를 쓰는 〈세드나〉 동인이 중심이 되어 만든 부정기 간행물이다. 그동안 발간한 책도 그랬지만 이번 작품집도 문학잡지와 동인지의 중간적 성격을 띠고 있는 다소 독특한 성격의 책이다. 〈세드나〉가 작품집을 발간한 계기는 첫 작품집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부산에 유독 모던한 시를 쓰는 시인이 많은 반면 서자 취급을 받는 서러움을 털어 보고자 한 것”이기도 하지만 기존의 문학 판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책’을 만들어보자는 의욕에서 비롯된 것이다.
〈세드나〉는 2010년 『기괴한 서커스』 출간을 시작으로 2년 간격으로 『살구칵테일』, 『순진한 짓』, 『셰익스피어 헤어스타일』을 출간해 왔는데, 이번에 나온 『풀밭에 버려진 감차처럼』은 이례적으로 4년 만에 나왔다. 이번 책은 동인들의 시 34편과 산문 7편을 수록하고 있으며, 동인들의 글 외에 빙하기를 배경으로 한 일가의 몰락을 독특한 상상력과 문체로 표현하고 있는 강성은의 환상적 소설 「두 자매 이야기」, 김혜순 시인의 시 「미리/귀신」을 바탕으로 육친의 죽음을 철학적으로 사유하고 있는 문학평론가 박대현의 비평적 산문 「문 열어 보지 마라」를 수록하고 있다.

저자소개

저자 : 강성은
2005년 ≪문학동네≫ 등단. 시집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 『단지 조금 이상한』, 『Lo-fi』. 2015년 ≪더 멀리≫에 단편소설을 발표한 후 느리게 소설을 쓰고 있다.

저자 : 김언
1998년 ≪시와사상≫ 등단. 시집 『숨쉬는 무덤』, 『거인』, 『소설을 쓰자』, 『모두가 움직인다』, 『한 문장』, 『너의 알다가도 모를 마음』. 시론집 『누구나 가슴에 문장이 있다』 출간.

저자 : 김참
1995년 ≪문학사상≫ 등단. 시집 『시간이 멈추자 나는 날았다』, 『미로여행』, 『그림자들』, 『빵집을 비추는 볼록거울』.

저자 : 김형술
경남 진해생. 1992년 ≪현대문학≫ 등단. 시집 「타르초, 타르초」 외 다수. 산문집 『그림, 함참을 들여다보다』 외 다수.

저자 : 박대현
문학평론가. 『우울한 것의 추락』, 『혁명과 죽음』, 『황홀한 아파니시스』 외.

목차

세드나 SEDNA

I n t r o
김 참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다

n o v e l
강성은 두 자매 이야기

p o e m
김 언 내 언어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다 외 4편
김 참 바람에 펄럭이는 빨래들 외 4편
김형술 이모들 외 4편
유지소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 외 4편
정익진 헤나 타투 외 4편
조말선 토르소는 옷걸이입니까 외 4편
허만하 풍경 외 3편

p r o s e
김 언 자화상 몰두하기, 실패하기
김 참 술의 맛
김형술 노래의 풍경
유지소 모월 모일
정익진 그리고 맨체스터 바이 더 씨
조말선 병렬적인 하루
허만하 일기의 문학성
박대현 문 열어 보지 마라

책 속으로

내 언어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다. 당연히 오해하고도 있다. 당연히 생략하거나 삭제하거나 누락한 것도 있다. 심지어 왜곡하거나 과장하는 것도 있는데, 그렇다고 내 언어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달라지는 것은 세계다. 억울하더라도 세계다. 짐작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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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언어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다. 당연히 오해하고도 있다. 당연히 생략하거나 삭제하거나 누락한 것도 있다. 심지어 왜곡하거나 과장하는 것도 있는데, 그렇다고 내 언어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달라지는 것은 세계다. 억울하더라도 세계다. 짐작하겠지만 그 또한 세계의 언어다. 나의 언어는 나의 언어답게 크고 넓은 세계를 다 감당하기 위하여 그보다 크고 넓은 세계의 언어를 다 포용하고 있다. 허용하고 있으며 남용하는 것도 괜찮다. 오용이 안 될 이유가 무엇인가. 이용할 만큼 이용하면서 세계는 나의 언어에 순응한다. 너무 순응해서 따로 말을 시키지 않아도 바짝 엎드리는 흉내를 낸다. 컹컹 짖는 흉내도 낸다. 반가워서 꼬리라도 흔들어야 믿겠는가. 그것은 개다. 내 언어는 충분히 훌륭한 개를 키우고 있다. 수십 마리도 넘게 키웠지만 어느 하나 제대로 말을 하는 개는 아직까지 없다. 내 언어를 듣고 있는 개는 내 언어를 듣고서 태어난 개이고 내 언어를 듣고서 죽을 때까지 개로 성장하다가 처분될 것이지만, 내 언어는 그조차도 보살피지 않고 떠난다. 개를 떠나고 개가 된 언어를 떠나고 떠나서는 할 말을 다시 찾는다. 그러면 모든 것을 이해했다는 듯이 받아주는 언어가 있다. 모든 것을 용서한다는 듯이 다독여주는 언어도 있다. 물론 개의 이빨처럼 물고 늘어지는 언어도 당연히 있다. 당연히 이빨에 물린 자국도 있다. 그걸 빼내려고 노력했던 온갖 헛수고의 흔적도 지워지지 않고 여기까지 따라붙는다. 여기가 어딘가? 거기가 너의 집이다. 들어갈 때마다 웅크리고 들어가야 하는.
-김언, 「내 언어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다」

그가 트럼펫을 부는 동안 비가 내렸다. 바람이 불었다. 까마귀들이 날아갔다. 구름이 흘러갔다. 해가 졌다. 어두워졌다. 그가 트럼펫을 부는 동안 자전거가 지나갔다. 오토바이가 지나갔다. 창문이 열렸다. 담배 피우는 입술이 나타났다. 그가 트럼펫을 부는 동안 회색 도마뱀 한 마리 나무에 올랐다. 누군가 창문을 조금 더 열었다. 뜨거운 바람이 흘러들어왔다. 그가 트럼펫을 부는 동안 매미가 울었다. 선풍기가 돌아갔다. 찌개가 끓어 넘쳤다.
-김참, 「트럼펫」

이모가 건널목을 건너옵니다. 걸음걸이만 봐도 알 수 있지요. 커다란 바구니를 머리에 이고서도 거침없이 당당한 저 팔자걸음은 절대 이모 아닐 수가 없지요.

걸음 따라 춤추는 이모의 바구니에서 바다가 출렁이고 물고기가 튀어오르고 싱싱한 해초 비린내가 사방으로 흩어집니다. 얼른 뛰어나가 바구니를 받아들어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몸이 움찔, 걸음이 주춤,

이모는 힘이 셉니다. 팔힘도 세고 목힘도 세고 목소리 누구보다 크고 우렁찹니다. 이모가 입을 열면 뜨거운 김을 뿜는 증기기관차가 달려나오고 새끼 줄줄이 거느린 오리 떼 그 뒤를 따르고 흰 거품 문 암소가 쉭쉭 흰 눈을 뜨고 머리를 숙인 채 돌진합니다.

여자가 저리 기가 쎄니 자식을 일곱이나 낳고 키워 출가를 시켰지 나 같으면 어림 반푼어치도 없다 하모 택도 없다카이

엄마는 종종 귓속말로 이모를 흉보지만 이모는 엄마보다 무섭습니다.

엄마처럼 대충 넘어가 주는 법 절대 없습니다. 똑바로, 똑부러지게, 경우 바르게 몬 사나, 로 시작하는 잔소리 폭탄을 쏟아 붓습니다. 이모한테 걸리면 뼈도 못추립니다. 말로도 힘으로도 이모를 당할 사람 근동에 없지요.

나이 들어 이모 얼굴 안 보고 사니 편합니다. 이모 아픈데 병문안도 안 오냐는 고함소리를 전화기 너머로 들어도 늙은 이모는 이제 별로 겁이 안 납니다. 봉투에 지폐 달랑 몇 장 넣어서 부치고 룰루랄라 이모 따위는 잊어버립니다. 늙고 병든 호랑이는 별로 안 무서워, 안 무서워 주문을 욀라치면

어김없이 이모는 쳐들어옵니다. 흔들거리는 링거 병 앞세우고 폐지를 가득 담은 손수레를 끌며 목발을 짚은 채로도 팔자걸음 여전히 당당합니다. 이모의 발걸음 따라 춤추는 손수레에서 바람은 일어서고 숲은 흔들리고 흰 날개를 펼친 새들 들판 가득 흩어집니다. 햇빛과 구름과 비바람을 거느린 채 이모님들 보무도 당당하게 오늘도 건널목을 건너옵니다.
-김형술, 「이모들」

검은색 모자를 쓴 사람이 지나갑니다 우리 집을 지나고 수도사업소를 지나고 우리 집을 지나고 중앙타일을 지나갑니다 검은색 잠바에 검은색 가방을 둘러멘 사람입니다 우리 집을 지나고 대성철물을 지나고 우리 집을 지나고 미래철학관을 지나갑니다 고개를 반쯤 숙이고 지나갑니다 미래철학관에서 힐끗, 뒤를 돌아보고 갑니다 검은색 신발은 낡은 구두 같기도 날렵한 운동화 같기도 합니다 우리 집을 지나고 백조세탁소를 지나고 우리 집을 지나고 칠성슈퍼를 지나갑니다 출근하는 사람의 걸음처럼 빠르기도 하고 퇴근하는 사람의 걸음처럼 느리기도 합니다 우리 집을 지나고 미래철학관을 지나고 우리 집을 지나고 대성철물을 지나고 우리 집을 지나갑니다 검은색 장갑에 검은색 마스크를 쓴 사람이 지나갑니다 고개를 반쯤 숙이고 지나갑니다 뒤에 오는 사람을 먼저 보내고 지나갑니다 우리 집을 지나고 중앙타일을 지나고 우리 집을 지나고 수도사업소를 지나고 우리 집을 지나갑니다
-유지소, 「내가 잠든 오전 세시 사십사 분」

피부 속에 사는 것들,
독거미가 목덜미 위로 기어 다니고
소녀의 배꼽에서 사타구니 속으로
방울뱀 한 마리 미끄러진다.

악순환처럼 피어오르는 꽃으로,
더는 살고 싶지 않은 늑대의 몸짓으로
너를 유혹한다.

내 무릎 속에 박힌 너의 눈동자와

너의 쇄골 속에 박힌 부엉이의 눈

나이가 들면 문신까지 늘어진다,
라는 말을 듣고 쿡, 웃었다.
쪼개진 하트를 향해 날아가는
화살도 휘어지고 웅장했던
신전의 기둥도 무너져 내렸다.

두 마리의 용이 내뿜었던 불길
지루한 한숨으로 바뀌었다.

욕탕의 수면 위에 죽은 금붕어가
둥둥 떠다닌다.

코뿔소가 전속력으로 달려와 내 가슴을 파고든다.
여자 친구의 입술이 내 팔뚝 속에서 노랠 불러요.

나도 콧노래 흥얼대며
겨드랑이에 둥지를 튼 새를 날려 보냈어요.
불량스러웠죠.

기린 세 마리는 열두 개의 창살
수많은 커튼콜을 뒤로하고
굴레를 벗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살갗 속의 지느러미 때문인지
피부가 꿈틀거립니다.
나를 어루만져 주세요. 문질러주세요.
날 쉽게 지울 순 없을 거예요.
-정익진, 「헤나 타투」

복도는 텅 비어 있다. 텅 비어있는 복도는 무슨 소리가 나는지 모른다. 복도의 소리는 자꾸 변한다. 복도의 소리는 이것이다 저것이다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 복도는 제 소리를 들어보기 위해 귀를 텅 비워둔다. 하이힐이 지나가면 복도는 하이힐 소리가 제 소리인줄 안다. 슬리퍼가 지나가면 복도는 슬리퍼 소리가 제 소리인줄 안다. 속도가 지나가면 복도는 제 소리가 무척 빠르다고 느낀다. 비명이 지나가면 복도는 비명소리가 제 소리인줄 안다. 속삭임이 지나가면 복도는 잘 들리지 않는지 귀를 바짝 갖다댄다. 복도는 제 소리가 무슨 소리인지 알고 싶은 날 텅 비어 있다. 온통 텅 비운 귀가 되어서 제 소리를 들으려고 기다린다. 아무 소리도 없이 귀를 열고 제 소리가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어떤 날은 하이힐 소리가 비명을 지르며 재빨리 뛰어갔으므로 복도는 몹시 곤혹스러운 기분에 사로잡힌다. 복도에 침입한 비둘기 한 마리 때문에 공황장애에 빠진 남자*보다 더 곤혹스러운 기분에 사로잡힌다. 어떤 날은 우르르우르르 개구쟁이들이 뛰어 들어오다가 뛰어나가곤 하는 통에 복도는 제 소리의 정체를 혼란스러워한다. 복도는 귀를 기울일 수가 없다. 무언지 알 수 없는 소리들로 텅텅 울려대기 때문에 복도는 귀를 툭툭 털어버리고 싶다. 복도는 그만 귀를 닫을까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개구쟁이들이 몰려 나가버리자 복도에는 텅 빈 복도의 귀만 남아 있다. 여전히 귀를 기울이고 있는 복도만 남아 있다.
-조말선, 「복도」

봄눈 녹듯
응어리가 풀리는 때
가장 먼 것이 찾아왔었지.
어머니
손길처럼


나는 한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지.
-허만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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