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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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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6
ISBN-10 : 8960531596
ISBN-13 : 9788960531598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양장본 HardCover) [양장] 중고
저자 박경리 | 출판사 마로니에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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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 22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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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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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의 작가 박경리의 인생 이야기를 담은 유고시집! 박경리 유고시집『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2008년 5월에 타계한 소설가 박경리가 마지막 순간까지 펜을 놓지 않고 남긴 39편의 시를 모아 엮었다. 미발표 신작시 36편과 타계 전에 '현대문학' 4월호에 발표한 3편을 묶고, 한국의 대표적 화가 김덕용의 정감어린 한국적 그림을 더했다.

박경리는 이 시집을 통해 자신이 걸어온 길을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39편의 시에는 그녀의 유년의 기억, 가족에 대한 기억, 문학 후배들을 위하는 마음, 자연에 대한 존경, 말년의 생활 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또한 사회에 관한 시들지 않는 관심과 잘못된 세상에 대한 꾸짖음도 엿볼 수 있다.

이 유고시집은 박경리의 문학적ㆍ사회적 관심의 방향과 깊이를 잘 보여준다. 그녀는 평생 토지를 껴안고 세상과 부딪히며 살아오면서 깨달은 인생의 진리를 생생한 시어로 풀어놓는다. 박경리의 유년시절과 생전 모습이 담긴 사진 30여 장을 책의 마지막에 수록하였다. [양장본]

저자소개

저자 : 박경리
박경리
1926년 10월 28일(음력) 경상남도 통영에서 태어났다. 1945년 진주고등여학교를 졸업하였다. 1955년에 김동리의 추천을 받아 단편 「계산計算>과 1956년 단편 「흑흑백백黑黑白白>을 《현대문학》에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왔다. 1962년 장편 <김 약국의 딸들>을 비롯하여 <시장과 전장>, <파시波市> 등 사회와 현실에 대한 비판성이 강한 문제작들을 잇달아 발표하여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특히 1969년 6월부터 대하소설 <토지土地>를 집필하기 시작하여 26년만인 1994년에 완성하였다. 현대문학 신인상, 한국여류문학상, 월탄문학상, 인촌상 등을 수상하였다. 시집으로는 <못 떠나는 배>, <도시의 고양이들>이 있다.

그림 김덕용
김덕용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및 동 대학원 동양화과를 졸업하였으며, 국립 현대미술관, 박수근 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는 한국의 대표적 작가이다. 화가는 작품을 통해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인간의 숙명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림은 손재주나 머리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고,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힘주어 이야기하는 화가다.

목차

1. 옛날의 그 집
산다는 것
옛날의 그 집
나의 출생
여행
홍합
바느질
천성
일 잘하는 사내
산골 창작실의 예술가들
우주만상 속의 당신

인생

2. 어머니
어머니의 모습
어머니
어머니의 사는 법
친할머니
외할머니
이야기꾼

3. 가을
사람의 됨됨이
바람
농촌 아낙네
어미소
히말라야의 노새
한밤중
가을
영구 불멸
안개
비밀

연민

4. 까치설
까치설
회촌 골짜기의 올해 겨울
소문
모순
마음
확신
현실 같은 화면, 화면 같은 현실
핵폭탄

책 속으로

서문 어머니가 마지막 순간까지 펜을 놓지 않고 남아있는 모든 기운을 사르면서 남기신 39편의 시를 모아 책으로 묶었습니다. 비우고 또 비우고 가다듬고 가다듬는 어머니의 마음을 읽어가면서 슬프고 슬프고 또 슬펐습니다. 늘 단정하고 엄숙한 모습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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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어머니가 마지막 순간까지 펜을 놓지 않고 남아있는 모든 기운을 사르면서 남기신 39편의 시를 모아 책으로 묶었습니다. 비우고 또 비우고 가다듬고 가다듬는 어머니의 마음을 읽어가면서 슬프고 슬프고 또 슬펐습니다. 늘 단정하고 엄숙한 모습으로 책상 앞에 앉아서 글 쓰시던 어머니, 어머니는 언제나 변함없이 수십 장, 수백 장의 파지를 내시면서 하나의 작품을 완성 시키셨습니다. 그러나 이번 시들은 그다지 고치지도 않으시고 물 흐르듯 써 내셨습니다. 언제나 당신에게 가장 엄격하셨으며 또 가장 자유인이기를 소망하셨던 어머니의 모습이 여기 마지막 노래로 남았습니다. 불꽃같은 정열로, 분노로, 사랑으로 생애를 사셨고 한 땀 한 땀 바느질하시듯, 수놓으시듯 정성으로 글을 쓰셨습니다. 글쓰기를 통하여 삶을 완성하시고 죽음도 완성하셨으니 평안 하소서!
마지막으로 유고 시집을 엮어 주신 마로니에북스 대표님께 감사드립니다.

- 김영주

<옛날의 그 집> 중에서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나를 지켜 주는 것은
오로지 적막뿐이었다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서는

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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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박경리의 인생 이야기를 담은 유고시집 생명에 대한 경외심과 삶의 회한, 그 옛날 고통과 절망의 나날에서 길어 올린 삶의 깊이와 희망 그리고 깨달음을 이야기하는 박경리의 시에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한국의 대표적 화가 김덕용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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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의 인생 이야기를 담은 유고시집

생명에 대한 경외심과 삶의 회한, 그 옛날 고통과 절망의 나날에서 길어 올린 삶의 깊이와 희망 그리고 깨달음을 이야기하는 박경리의 시에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한국의 대표적 화가 김덕용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정감어린 한국적 그림을 더한 유고시집.

“희망을 잃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남 몰래 시를 썼기 때문인지 모른다”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는 지난달 5일 타계한 소설가 박경리1926~2008의 미발표 신작시 36편과 타계 전에 발표한 신작시 3편 등 총 39편의 시와 화가 김덕용의 그림을 모아 엮은 것이다.
박경리는 39편의 시를 통해 나지막한 목소리로 우리에게 자신이 걸어온 길을 이야기하듯 들려준다. 그 시에는 유년의 기억「나의 출생」「홍합」등, 어머니 등 가족에 대한 기억「어머니」「친할머니」「외할머니」「이야기꾼」등, 문학 후배들을 위하는 마음「산골 창작실의 예술가들」, 자연에 대한 존경「농촌 아낙네」「안개」등, 말년의 생활 「옛날의 그 집」「밤」등등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리고 그녀의 사회에 관한 시들지 않는 관심과 잘못된 세상에 대한 꾸짖음「사람의 됨됨이」「까치설」「소문」등 또한 엿볼 수 있다.
이 시집에 그림을 그린 김덕용은 현재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대표적 한국 화가다. 그는 자연의 숨결이 살아있는 나무판을 캔버스삼아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김덕용은 시간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 나뭇결에 우리의 어머니, 누나, 동생 같은 인물을 매우 정겹게 묘사하고 아련한 추억을 간직한 우리의 고풍스러운 정물을 따뜻하게 표현한다.
박경리는 1988년 출간한 시집 <못 떠나는 배> 서문에 “견디기 어려울 때, 시는 위안이었다. 8·15해방과 6·25동란을 겪으면서 문학에 뜻을 둔 것도 아닌 평범한 여자가 어려운 시기를 통과하여 살아남았고 희망을 잃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남 몰래 시를 썼기 때문인지 모른다.”고 썼다. 이 시집에 소개되어 있는 39편의 시에는 박경리의 진솔한 인생이 녹아 있어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살아 있는 느낌을 준다. 박경리는 녹록하지 않은 80평생을 토지를 껴안고 세상과 부딪히며 살아오면서 깨달은 생생한 인생의 진리를 시인의 말로 바꾸었다. 그리고서야 박경리는 참으로 홀가분하게 이 세상과 이별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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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

  • 김민경 님 2011.02.03

    희망을 잃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남몰래 시를 썼기 때문인지 모른다.

회원리뷰

  •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박경리 유고시집 마로니에북스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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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박경리 유고시집

    마로니에북스 2015

     

    삶은 흔적을 남긴다. 의도적으로 남기진 않을지라도 삶의 중요한 발자국 마다 흔적이 남도록 되어 있다. 그렇다고 흔적을 남기는 목적으로 살아가게 되면 많은 것이 위선적 삶이 될 수 있다. 주어진 삶은 환경을 초월하여 기쁨으로 살아야 한다. 누군가에게 남겨진다는 개념이 아닌 자기 주도적인 삶을 성실히 살게 되면 누군가에게, 특히 가족들에겐 더할 나위 없는 좋은 흔적이 된다. 인류는 그 흔적을 따라 오늘 여기까지 문명의 발전은 거듭되어 왔다. 처음부터 길은 존재하지 않았다. 누군가 그곳을 가고 그 다음 사람이 다시 그곳을 반복해서 갈 때 길은 만들어진 것이다. 과거에는 길이 없어서 고민을 했다. 내 젊음을 어디에 바쳐야 할지 수많은 밤을 지새우며 울기도 하며 벗과 함께 고민을 나누었다. 현대인들은 길이 너무 많기 때문에 고민한다.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 시대에 살면서 오히려 문명의 번화한 숲에서 길을 잃게 된다. 그래서 누군가의 흔적을 따라야 한다. 공인된 사람이라면 더할 나이 없겠지만 그래서 한 사람이 걸어간 그 길을 반드시 따라야 한다. 그 길은 누가 뭐래도 어머니가 걸어가셨던 흔적을 따르는 것이다.

     

    한 시대에 문인으로서 큰 획을 그으신 박경리 선생님의 유고시집에 마음의 봇짐 하나를 내려놓는다. 그의 흔적을 따라 생애를 동행한다. 그 역시 어머니의 위대하면서 유일한 흔적 앞에 목 놓아 울었다. 세상에 존재했던 수많은 어머니는 본질적 길을 자녀에게 제시해 왔다. 자식은 오직 그 길을 좋든 싫든 따르도록 되어 있다. 그것이 창조의 법칙이다. 어머니의 길 앞에 서면 아쉬움뿐이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자식은 불효자가 된다. 불효해서가 아닐 것이다. 자식이 한 것에 비하면 어머니의 그 무한대의 사랑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기 때문일 것이다. 어머니의 사랑 앞에 떳떳하고 당당할 수 있다는 자체가 정말 불효자일 것이다. 작은 물 한바가지, 그것이 어머니를 향한 사랑이었다면 어머니의 사랑은 바다 같은 사랑이기에 한 바가지의 물은 늘 작기만 하고 불효하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저자 역시 고인이 되신 어머니를 삼십 여 년 동안 생전에 그리워하셨다. 꿈속에서 어머니를 찾아 헤맨다. 그러나 만나주지 않으시는 어머니 앞에 불효자임을 고백하고 있다.

     

    어머니” (pp57-58)

     

    어머니 생전에 불효막심했던 다는

    사별 후 삼십 여 년

    꿈속에서 어머니를 찾아 헤매었다

     

    고향 옛집을 찾아가기도 하고

    서울 살았을 때의 동네를 찾아가기도 하고

    피난 가서 하룻밤을 묵었던

    관악산 절간을 찾아가기도 하고

    어떤 때는 전혀 알지 못할 곳을

    애타게 찾아 헤매기도 했다

     

    언제나 그 꿈길은

    황량하고 삭막하고 아득했다

    그러나 한 번도 어머니를 만난 적이 없다

     

    꿈에서 깨면

    아아 어머니는 돌아가셨지

    그 사실이 얼마나 절실한지

    마치 생살이 찢겨 나가는 듯했다

     

    불효막심했던 나의 회한

    불효막심의 형벌로서

    이렇게 나를 놓아주지 않고

    꿈을 꾸게 하나 보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요리사는 어머니이며 미의 기준도 어머니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누구도 예외일 순 없을 것이다. 저자 역시 어머니의 모습을 이렇게 그리고 있다. “새집 처녀는 적삼 하나만 갈아 입어도 / 서문안 고개가 환해진다 / 어머니 처녀 시절에 / 동네 사람들이 했다는 말을 / 막내 이모가 들려주곤 했다.” (p50 어머니의 모습) 삶은 어머니의 흔적을 따라야 한다. 의도적이지 않을지라도 누군가 내 삶을 들여다 볼 때 어머니를 닮았다는 소리를 듣게 된다. 내 인생 역시 그러하다. 어머니의 흔적은 그 어디에도 찾을 수 없다. 어쩌면 반백 동안 어머니를 꿈속에서 찾아 해매고 있는지도 모른다. 야속한 어머니는 한 번도 꿈속에서 조차 내 작은 손을 잡아 주지 않으셨다. 어떠할지라도 어머니의 흔적이 있기에 오늘 나로써 존재할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깨끗하고 순수한 사랑의 본질의 힘, 그 사랑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 간다.

     

    인생은 때 묻지 않았던 그 숭고한 흔적을 따라 나이가 들어간다. 나이 드는 것이 때론 두렵기 까지 한다. 나이가 먹어 늙는 것 보다는 책임감 때문일 것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속사람의 크기는 육체의 늙음과 반비례해야 한다. 사도 바울도 늙음에 대한 예찬을 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고후4:16) 겉 사람 육체는 늙도록 창조되었다. 사람마다 늙어 가는 속도의 차이는 있지만 늙지 않은 방부제 육체는 존재할 수 없다. 육체는 후패할지라도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는 것이 보편적 인간이 누려야 하는 행복이다. 나이 드는 것이 후회롭고 개탄할 일이라면 그것은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그의 정신이 미숙아시기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p16) 그렇다. 늙는 것은 편안한 것이고 다음 생을 준비하는 것이기에 행복 그 자체여야 한다. 그래서 사람은 젊었을 때 보다는 늙어서 더 아름다워 지는 것이며 성숙해 지는 것인가 보다.

     

    흔적을 따라 오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다. 두려울 것도 없다. 길 없던 시절에 이미 나를 품은 그 사랑은 외롭게 길을 만들어 내 인생에 흔적을 남겨주었기 때문이다. 흔적을 따르는 인생은 어찌 보면 여행을 해야 하는 나그네의 삶이다. 삶은 정착된 여행자이다. 한 곳에 뿌리를 내리면서 생각은 온 세상을 두루 다녀야 하는 여행자이다. 그러다 삶의 터전을 벗어나 타 지역으로의 여행이 이뤄질 때는 생각이 답습한 그 길을 걷게 된다. 글을 쓰는 사람은 다른 직업군에 비해 여행을 많이 하는 편이다. 실제적 여행을 하지만 상상의 여행을 더 많이 하게 된다. 저자 역시 시대의 획이 되신 문인이면서 실제적 여행 보다는 생각의 여행을 많이 하셨다.

     

    여행” (pp 23-25)

     

    나는 거의 여행을 하지 않았다

    피치 못할 일로 외출해야 할 때도

    그 전날부터 어수선하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어릴 적에는 나다니기를 싫어한 나를

    구멍지기라 하며 어머니는 꾸중했다

    바깥 세상이 두려웠는지

    낯설어서 그랬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나도 남 못지 않은 느그네였다

    내 방식대로 진종일 대부분의 시간

    혼자서 여행을 했다

    꿈속에서도 여행을 했고

    서산 바라보면서도 여행을 했고

    나무의 가지치기를 하면서도

    서억서억 톱이 움직이며

    나무의 살갗이 찢기는 것을

    그럴 때는 여행을 했고

    밭을 맬 때도

    설거지를 할 때도 여행을 했다

     

    기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혹은 배를 타고

    그런 여행은 아니었지만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끼는

    그런 여행은 아니었지만

    보다 은밀하게 내면으로 내면으로

    촘촘하고 섬세했으며

    다양하고 풍성했다

     

    행선지도 있었고 귀착지도 있었다

    바이칼 호수도 있었으며

    밤 하늘의 별이 크다는 사하라 사막

    작가이기도 했던 어떤 여자가

    사막을 건너면서 신의 계시를 받아

    메테르니히와 러시아 황제 사이를 오가며

    신성동맹을 주선했다는 사연이 있는

    그 별이 큰 사막의 밤하늘

     

    히말라야의 짐진 노새와 야크의 슬픈 풍경

    마음의 여행이든 현실적인 여행이든

    사라졌다간 되돌아오기도 하는

    기억의 눈보라

    안개이며 구름이며 몽환이긴 매일반

    다만 내 글 모두가

    정처 없던 그 여행기

    여행의 기록일 것이다

     

    마음의 여행은 글로써 남겨진다. 그 흔적은 푸근한 사람이 풍겨내야 할 향기이기도 하다. “어쩌다가 글 쓰는 세계로 들어가게 되었고 / 고도와도 같고 암실과도 같은 공간 / 그곳이 길이 되어 주었고 / 스승이 되어 주었고 / 친구가 되어 나를 지켜 주었다.” (p33) 내 인생 역시 한문인의 흔적을 따라 여행을 한다. 그의 남겨진 발자취는 한발자국도 버릴 것이 없는 아름다운 그 자체이다. 누군가 내 발자취를 따르려 한다면 그렇게 느껴질까 내 자신의 속내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게 된다. 누군가의 흔적을 따라 내 것이 되게 하는 것은 결국 내 영혼을 위한 거룩한 몸부림이다. 그 흔적을 공부하는 것은 내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 위한 최소한의 영적 예의를 갖추는 것이다.

     

    내 영혼이

    의지할 곳 없어 항간을 떠돌고 있을 때

    당신께서는

    산간 높은 나뭇가지에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내 영혼이

    뱀처럼 배를 깔고 갈밭을 헤맬 때

    당신께서는

    산마루 헐벗은 바위에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내 영혼이

    생사를 넘다드는 미친 바람 속을

    질주하며 울부짖었을 때

    당신께서는 여전히

    풀숲 들꽃 옆에 앉아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p41, 우주 만상 속의 당신)

    (하략)

     

     

  • 비워두기, 내려놓기. | pa**b | 2016.02.04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박경리 선생님의 책은 언제나 옳다. 진중하고, 진정성 있으며 이 시집 역시 선생님의 체취를 담뿍 담고 있는 시집이었다. &...

    박경리 선생님의 책은 언제나 옳다.

    진중하고, 진정성 있으며 이 시집 역시 선생님의 체취를 담뿍 담고 있는 시집이었다.

     

    지하철에서 선생님의 시집을 읽다가, 하필 내려야 할 곳을 놓쳐 한참을 돌아서야 내렸다.

    약속이 없기도 했지만 평소에 워낙 시간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이 존재하던 나로서는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꾹꾹 눌러쓴 그 텍스트에서 느낄 수 있었던 선생님의 온기를,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유고시집에서는 선생님이 직접 옆에서 이야기 해주듯이,

    생을 마감하며 담담하게 이야기해주는 느낌을 받았다.

    선생님의 살아온 흔적을 고스란히 정면으로 보여주고 있는 이 시집.

     

    내가 선생님의 책의 서평을 첫 서평으로 남기는 것이 이리도 유의미할 수 가 없다.

     

    선생님의 새로운 글을 볼 수 없겠지만, 남아있는 선생님의 책들을 읽으며,

    한국문학을 조금 더 사랑하고, 또 사랑해야지.

  •     얼마 전 박완서 작가의 마지막 산문집이라는 <세상에 예쁜 것>을 읽었다. 거기에...
     
      얼마 전 박완서 작가의 마지막 산문집이라는 <세상에 예쁜 것>을 읽었다. 거기에는 박경리 작가에 관한 이야기가 잠깐 나와있었다. <토지>는 고등학교 때부터 '나중에 시간 나면 읽어야지.' 결심했지만, 지금껏 살면서 시간을 내기가 힘들었다. 장편에 대한 부담감때문이리라. 하지만 이 책은 유고시집이다. 짧은 시로 되어있다면 당장이라도 시간을 내서 읽을 수 있을거란 생각에 읽게 되었다. 그리고 생각 이상의 만족스런 마음으로 책장을 덮는다.
     
     박완서 작가의 수필집을 읽을 때도 그랬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도 '함부로 글을 쓰는 내 젊은 날'에 대한 부끄러움에 숙연해진다. 나름 변명하자면 읽었던 책이 잘 기억이 나지 않아 기록하는 차원에서 서평을 쓰는 것이라며 한껏 가벼운 마음으로 자판을 두드리기는 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깊이가 다른 느낌을 누군가의 글을 읽고 받을 때에는 글 쓰는 사람들은 역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한 번 읽겠다고 결심한 <토지> 또한 읽게 되면 분명 내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 시들에는 박경리 작가의 삶이 들어있다. 글을 읽다보면 어떤 분위기에서 생활했으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느껴진다. 시를 읽는 감동을 더해주는 것은 함께 실린 그림이다. 잔잔한 분위기의 느낌 좋은 그림 덕분에 이 책이 정말 마음에 든다. 책장에 두고 언제든 다시 꺼내 읽고 싶은 책이다.

  • 뉘엿뉘엿 해가 넘어갈 무렵 나는 버스를 타고 하동 어딘가를 달리고 있었다. 밀려오는 졸음에 눈이 감기려는 찰나에 가이드는 ...

    뉘엿뉘엿 해가 넘어갈 무렵 나는 버스를 타고 하동 어딘가를 달리고 있었다. 밀려오는 졸음에 눈이 감기려는 찰나에 가이드는 어딘가를 가리키며 저 곳이 소설 토지의 무대가 된 장소라 말했다. 지리산과 섬진강에 둘러싸인 아늑한 장소를 가득 채운 푸른빛은 대지주 최 참판의 몰락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따금 부는 바람에 일렁일 따름이었다.

    사람은 떠났지만 글은 남았다. 박경리 선생의 소설 ‘토지’는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만났었다. 교과서에 수록된 글들은 입시에 충실하려면 읽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일종의 의무감에 취해 읽었기에 읽었으나 읽은 게 아니라 말해도 무방한, 그런 독서를 당시 난 했었다. 기억이 나는 건 격동의 근현대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을 사람들에 대해 내가 느꼈던 안쓰러움뿐이었다. 아마도 그 시절엔 대개가 그리 살았을 것이다. 그나마 재산이라 부를 만한 게 있는 이들은 나은 편이었을 터이고, 그렇지 않은 대다수의 사람들은 시름시름 앓는 것을 운명으로 여기며 살았을 것이다. 작가의 소설은 그런 의미에서 완전한 창조물이 아니었다. 그녀는 소설을 통해 어쩌면 제 인생을 노래했는지도 모른다. 1920년대에 태어난 그녀의 삶 역시 순탄치만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나고 나면 뛰어넘을 수 없을 것만 같던 굴곡도 평지가 되어버리는 법인지, 말년에 다다른 그녀는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말을 하였다. 그리고 머지않아 정말로 육신의 무게감을 벗고 자유로운 길을 떠났다. 직업 작가로서 생활한 시간에 비해 그렇게까지 많은 작품을 남기지는 않은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뒤늦게 시를 접하며 그녀를 가까이 느꼈다. 그녀가 남긴 서른아홉 편의 시를 한데 모아 유고시집을 엮은 것이다. 평소 수십, 수백 장의 파지를 양산하며 하나의 작품을 완성시키고는 했다는데, 이번 시집은 별다른 탈고의 과정을 거치지 아니 했단다. 제 뜻대로 행해도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바가 없다는 나이는 지천명(知天命)인데, 문학적으로 그 수준에 도달했던 게 아닐까를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고치고 또 고치어도 마음에 들지 않는 우리네보다 한참을 앞섰던 셈이다.

    나이가 들면 기억은 최근의 일보다 오랜 과거의 것들로 가득 찬다고 들었다. 그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유고 시집을 통해 나는 그녀가 그리움을 느끼는 대상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변화무쌍한 세상 힘에 밀려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게 변화했을 고향 그리고 아무리 불러도 대답 없는 그 이름 ‘어머니’. 일부러 시를 쓰려 안간힘을 쓰지 않아도 되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모든 것은 아름다운 시가 되어 그녀의 가슴을 적시었을 것이다. 마음이 시키는 대로 적어나간 그 시를 통해 이제는 내가 그녀의 눈을 하고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눈도 한쪽은 백내장이라 수술했고 / 다른 한쪽은 / 치유가 안 된다는 황반 뭐라는 병 / 초점이 맞지 않아서 / 곧잘 비틀거린다 / 하지만 억울할 것 하나도 없다 / 남보다 더 살았으니 당연하지 (‘산다는 것’ 중에서)


    아무리 오래 살아도 아쉬움이 남는 게 삶이라 하였거늘, 그녀는 욕심에 가까운 애착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예전 같지 않은 몸에도 ‘남보다 서 살았으니’ 괜찮다 말하는 그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것은 삶도 죽음도 초월한 듯한 마음의 평온이었다. 급기야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옛날의 그 집’ 중에서)이라며 나이듦을 긍정하는데, ‘그녀의 연배가 된다면 나에게도 그와 같은 평온이 허락될까?’를 조심스레 나는 물었다. 아마도 이는 젊은 시절의 거센 파도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낸 자에게만 허락되는 강단일 것이다.

    타고난 강인함은 제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인 듯했다. 그녀의 기억에 따르면 어머니는 ‘얼굴 윤곽이 너무 뚜렷했으며 / 쌍꺼풀 진 큰 눈에 / 의미를 담은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고 / 그 눈에서 눈물이 쏟아질 때도 / 왠지 나는 그것이 슬퍼 보이질 않았다 / 그만큼 어머니는 현실적인 사람이었다’ (‘어머니의 모습’ 중에서). 그런 모습을 일컬어 ‘미인’이라 하는 이들도 있었던 모양이다. 애써 정을 억누르며 주어진 삶을 살았던 그 모습은 강한 어머니의 표상이었겠지만, 저자에게는 ‘회색 세루 치마와 저고리’로 멋을 낸 어색한 모양새가 더 기억에 남았던 것도 같다. 하지만 꿈에서나 그리는 것은 엄연히 존재하는 게 아니었기에 ‘꿈에서 깨면 / 아아 어머니는 돌아가셨지 / 그 사실이 얼마나 절실한지 / 마치 생살이 찢겨 나가는 듯했다’(‘어머니’ 중에서)고 그녀는 고백한다. 그 아픔이 평생 지속되었다면, 삶이 길다 하여 마냥 환호성을 지를 수는 없었을 거다. 고통이 극심한 말기 환자들이 죽음을 평온으로 인식하며 절규하는 모습과 이상하리만치 오버랩이 되면서, 어느 쪽이 더 아플지를 조심스레 가늠해보게 만드는 대목이다.

    반면 마지막 장은 다소 의외다 싶은 시들로 채워졌다. 아무리 과거가 아름다워도 현실을 외면한 채 지난날에 갇혀 지낼 수는 없는 게 사람이다. 애써 떨쳐낸다 하여 사라지진 않겠지만, 앞선 시들을 통해 아름다움을 노래하던 시인은 달갑지 않은 현실에 대해서도 읊기를 주저치 않았다. 모두가 바삐 사는 오늘날 ‘까치설이라는 게 아직 있기나 한가’를 묻는다. ‘불 땐 굴뚝에 연기가 아니 나고 / 불 안 땐 굴뚝에 연기가 나는 / 마술 같은 일들이 진행중’(‘소문’ 중에서)이고, ‘현실 같은 화면, 화면같은 현실 / 종이장 같은 현실’(‘현실같은 화면, 화면 같은 현실’ 중에서)로 인해 혼란스럽다. 모든 것을 파괴하는 핵무기가 ‘승리의 금과옥조’이자 ‘죽음을 지배한다는 것’(‘핵폭탄’ 중에서)이 되어버렸으니, ‘가엾은 넋들은 지상에 넘쳐흐르고 / 넋들의 통곡이 구천을 메우나니’(‘넋’ 중에) 말해도 이상할 게 전혀 없다. 세상이 이리도 끔찍한데 그럼에도 글을 써야만 한다면, 인생이 아무리 ‘소풍’이라 할지라도 어여 그 소풍을 끝내고 팠을 것이다. 죄다 버리고 자유롭게, 비록 어디로 떠나가는지 알지 못할지라도...

    말미에는 작가의 생전 모습을 담은 사진이 여러 점 수록되어 있다. 정녕 먼 길을 떠났던가. 익숙한 모습에 가슴을 쓸어내린다. 글이라도 남았으니 참 다행이다. 

  • 버리고 갈것만 남아서.. | sa**all66 | 2012.07.09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비록 어줍잖긴 하지만,그분,오래오래 우리곁에 계셔서 읽고 또읽은 소감을 적어볼텐데. 그러지 못해서 이제 나도 뒤란으로 돌아가...
    비록 어줍잖긴 하지만,그분,오래오래 우리곁에 계셔서 읽고 또읽은 소감을 적어볼텐데.
    그러지 못해서 이제 나도 뒤란으로 돌아가 풀이라도 쥐어뜯으며 마음을 숨겨야할가보다
    이분이 쓴시,고백과도 같은 시.대부분은 독백이고,속내를 좀체 드러내지 않을것같은
    그런분의 속내가 이 시집에 알알이 들어와 있어
    책장이 펄럭펄럭 넘어가지 않는다
    외할머니에대한 회상은 그 짧은 몇줄 시행으로 그분의 평생이 다 드러나지고
    감정을 간질이는 그런 싯구는 없어도 흘겨 읽지못할 내용들이 대부분이라
    그속에서 다시 어른을 만나게 된다.
    그분은 살아낸 삶이 다 소설같은,시같은 삶이어서
    읽는이에겐 크나큰 가르침이 되기도 하지만,그런 생을 살아야 했던 당신은 얼마나 고달팠을까.
    나름 짐작할 뿐이다
    일잘하는 사내를 얻어 살고 싶어하시던 분.
    그분은 소설속의 시속의 어떤분일까를 짐작하며 읽는것도 또다른 독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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