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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
268쪽 | | 151*214*22mm
ISBN-10 : 1156121299
ISBN-13 : 9791156121299
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 중고
저자 김서령 | 출판사 푸른역사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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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 29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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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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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가고 한 문장이 지다”
김서령이 남긴 영롱한 ‘인생 레시피’

빛나되 눈부시지 않은 ‘서령체’
이 책은 한 문장가가 세상에 흩뿌린 마지막 광휘이고, 한편으로는 그를 위한 기념비이기도 하다. 지난해 10월 세상을 떠난 김서령이 그간 음식과 관련해 썼던 글을 그러모은 그의 투병 막바지에서였다. 문학평론가 염무웅 선생의 말씀대로 “보석처럼 반짝이는 조각글”이 흩어져 사라져 가는 것을 막기 위해 시작된 편집은 그러나 안타깝게도 김서령의 인간 됨됨이를 그리워하고 김서령의 글을 아끼는 이들을 위한 일종의 유고집이 되고 말았다.
해서 통상적인 ‘머리말’ 대신 그의 글 중 한 편이 앞자리를 차지한 파격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 눈여겨보기를 당부하고 싶은 것은 김서령의 글 자체이다. 형용사 하나 허투루 쓰지 않는 그의 글솜씨는 ‘서령체’라 불릴 정도로 자기만의 빛깔을 빚어내서다. 《여자전》 등 그의 전작들이 글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서 많은 아낌을 받은 이유다.
염무웅 선생은 그의 글을 두고 “읽을 때마다 예민한 감각과 풍부한 어휘와 생생한 비유에 감탄했고 글이 만들어내는 삶의 진실에 전율 했어요”(7쪽)라고 했다. 그러면서 “안동 지방 양반가의 내실 풍속과 사랑채 역사를, 그들만의 독특한 언어와 감정세계를 속속들이 알고 손에 잡힐 듯 묘사하는 작가를 이제 우리 문학은 어디서 찾아야 하나요”라고 아쉬워했다. 자청해서 추천사를 써준 심리기획자 이명수 선생도 “당대의 문장가란 수식을 넘어서는 치유적 힘이 그녀의 글에 있었다”고 추모하면서 “내밀한 끌림이 있고 읽으면 단정해지고 맑아졌다. 문장이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글의 모든 것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김서령을 통해 알았다”고 고백했다.
그만큼 한 꼭지도 버릴 수 없고, 한 구절도 흘려보내기 아까운, 일단 한 편만 읽는다면 놓을 수 없는 음식 에세이, 그 이상의 에세이이다. 또한 잊혀져가는 고향의 정취를 되살려낸 일종의 풍물지이기도 하고, 삶의 지혜가 얼비치는 인생론이기도 하며 빛나되 눈부시지 않은 문장 전범이고 한 책이다.

저자소개

저자 : 김서령
칼럼니스트, 안동 출생. 경북대 국문과 졸업. 한때는 국어 교사였다가 남의 이야기 듣기를 즐겨 급기야 사람을 만나 얘기 듣는 것을 직업으로 삼게 됐다. 지금은 사라진 잡지 《샘이 깊은 물》에서 인터뷰의 매력에 눈 떠 인터뷰 칼럼을 주로 썼다. 향토색 짙은 우리말을 마침맞게 구사하는 그의 글은 단아하고 그윽하면서도 생기발랄하고 영롱해서 많은 이들이 우리 시대 문장 중 일절로 꼽았다. 수년간 투병한 끝에 2018년 10월 영원한 자유를 찾아 떠났다. 펴낸 책으로는 《여자전》, 《안동 장씨, 4백년 명문가를 만들다》, 《김서령의 家》, 《김서령의 이야기가 있는 집》, 《삶은 천천히 태어난다》, 《참외는 참 외롭다》 등이 있다.

목차

아름다운 사람 김서령

먼저 한 꼭지_외로움에 사무쳐봐야 안다, 배추적 깊은 맛을
* ‘철철문장’ 상의 할매의 ‘보단지 타령’

책을 내며_옛 부엌의 아침과 저녁들이 앞다퉈 떠오르니
* “편차고 하다 맛을 베레뿐다”

1부 아득하거나 아련하거나

어머니의 마술, 콩가루 국수
*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슴슴한
엄마의 레시피를 귓전으로 흘려들었다
내 제사상에는 호박뭉개미만 있어도 될따
그 순간 생에 감사했다
콩 간 데 에미 손 간데라
무언가 고프고 그리운 이들에게 찔레 순 맛을
여름 더위 물렀거라, 야생 취나물 무침
삶이 ‘삶은 나물보다’ 못할 리야
* 고요한 시간 겸허한 마음으로
입이 굼풋하믄 좋은 소리가 안 나오니, 군입거리
백석이 그리도 좋아하던 가자미
* 야위어서 푸르른 가자미 한 토막
육개장과 하수상한 토란의 만남

2부 고담하거나 의젓하거나

‘명태 보푸름’의 개결한 맛이여
* “상미하게” “이식하시게”
슴슴한 무익지, ‘니 맛도 내 맛도 없는’
* 손님상엔 꿀 넣은 ‘약지’
달콤함을 옹호한다
수수 조청 고던 날 저녁
* 수수는 수수 몫이, 내게는 내 몫이
봄의 맛, 햇장 타령
* 콩나물밥에 달래 간장!
수박의 5덕德을 찬讚하노라
* 겨울 수박은 수박이 아니다
새근한 ‘증편’의 색깔 고운 자태라니
‘난젓’, 물명태와 무가 빚어낸 싱그러운 단맛
샤또 오 브리옹도 흥칫뽕! 정향극렬주
두견주 한잔 받으시라
* 한겨울 사랑방에 핀 꽃, 안동 다과상
순하되 슬쩍 서러운 갱미죽
* 가을 새벽, 홀로 차를 마시며

3부 슴슴하거나 소박하거나

팥소 든 밀가루떡, ‘연변’을 아시나요
들큰 알싸, 먹을수록 당기는 집장
쑥국 한 그릇에 불쑥 와버린 봄
* “님은 쑥을 캐겠지”
* 나의 〈오감도〉
* 쑥을 뜯으며 엄마를 생각하다
그 노랗고 발갛던 좁쌀 식혜는 어디로 가버렸나
* ‘식혜 르네상스’ 유감
* 안동 ‘알양반’은 안동식혜를 꺼렸다
덤덤하나 반가운 맛, 감자란 놈
* 아버지가 못내 잊지 못한, 그 제주 고구마
밤에 보늬가 있는 까닭
물고기잡이 인술 이야기 둘
끝내 다 못 쓴 간고등어 이야기

편집 후기_한 사람이 가고 한 문장이 지고

책 속으로

생속의 반대말은 썩은속이었다. 속이 썩어야 세상에 관대해질 수 있었다. 산다는 건 결국 속이 썩는 것이고 얼마간 세상을 살고 난 후엔 절로 속이 썩어 내성이 생기면서 의젓해지는 법이라고 배추적을 먹는 사람들은 의심 없이 믿었던 것 같다(17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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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속의 반대말은 썩은속이었다. 속이 썩어야 세상에 관대해질 수 있었다. 산다는 건 결국 속이 썩는 것이고 얼마간 세상을 살고 난 후엔 절로 속이 썩어 내성이 생기면서 의젓해지는 법이라고 배추적을 먹는 사람들은 의심 없이 믿었던 것 같다(17쪽).

고춧가루가 겸허했다면 부빈 고추는 도도했다. 맑은 국엔 수더분한 촌아낙처럼 어물쩡한 고춧가루가 아니라 귀부인처럼 쌀쌀맞고 도도한 부빈 고추를 써야 제 격이었다(25쪽).

이기심과 탐욕과 분노와 공포 같은 걸로 흐려진 인간성의 밑바닥에 가라앉은 선하고 고운 그 무엇, 썩은 감자 속에서 길어 올리는 매끄러운 녹말 같은 그 무엇, 어쩌면 인仁이거나 사랑이거나 자비라도 불러도 좋을 그 무엇, 바로 그것을 대면할 수 있는 가장 가깝고 너그러운 장소가 저 산꼭대기 선방이나 성균관의 명륜당이 아니라 부엌이라고 나는 확실히 믿는다(30쪽).

엄마가 내 입에 깨소금국수 한 오라기를 넣어준다. 부드럽다. 고소하다! 나는 눈을 뜨지도 않고 그 맑고 히수무레하고 수수하고 슴슴하고 조용하고 의젓하고 살뜰한 것을 씹는다. 그리고 꿀컥 삼킨다(50쪽).

밥이 부르륵 끓어오를 때쯤 베 보자기를 깔고 그 위에 별의별 이파리와 열매를 얹는 것이 여름 밥솥의 풍경이다. 우선 아까 딴 호박잎을 얹고, 숭덩숭덩 썬 애호박을 얹고, 길쭉한 가지를 얹고, 밀가루 묻힌 풋고추를 얹고, 콩가루 묻힌 부추를 얹고 들깻잎, 콩잎을 켜켜이 있는 대로 얹었다. 밥물이 잦아들면 그것들도 따라서 익었다. 가루 묻힌 것은 각자 알맞은 양념장에 무치고 이파리 찐 것은 그냥 접시에 담아 쌈으로 먹었다(58쪽).

‘늙은 호박’은 보통명사다. ‘익은’이 아니라 ‘늙은’이란 관형어가 이토록 원숙하고 의젓한 의미로 통용되는 예가 호박 말고 또 있을까. 늙은 오이가 ‘노각’으로 대접받기도 했지만 호박과는 견줄 바가 못 됐다. 원래 호박은 곡식이 아니라 채소다. 그러나 늙은 호박을 채소라고 부르는 건 영 난처하다. 일단 늙기만 하면 호박은 곡식과 비슷한 대접을 받을 수 있었다. 채소가 곡물의 단계로 격상한 것이니 그건 단연 시간의 힘이었다(61쪽).

흰 사발에 담겨 검은 소반 위에 올려진 한 그릇의 냉잇국, 그것은 우주 운행의 질서를 함축하는 상징이었다. 한 숟갈 입안에 흘려 넣으면서 우리 식구들은 아아, 신음했다. 봄, 봄이 오는구나. 암만 추워도 머잖아 봄이 오는구나……(74쪽).

엄마는 찔레 맛을 ‘배릿하다’고 말했다. 배릿하다는 것은 아직 제 맛을 찾지 못한, 모든 어린 것들의 맛이다. 어리고 여린 것들이 굳고 거친 것들을 순화하고 정화한다. 그러려고 해마다 봄은 오고 해마다 찔레는 돋는다(79쪽).

이튿날은 삶은 나물이 마르기 좋도록 봄볕이 다글다글 내리쬐었고 바람결엔 종일 취의 향기가 화르륵 화르륵 날아다녔다. 세상에 꽃이란 꽃은 있는 대로 피어 삶은 취나물 검은 가닥들 위로 새암하듯 하얗게 내려앉았다(81쪽).

아침저녁 빈소에 상식상을 지어 바치는 시어른 삼년상이 끝나고 여든이 됐을 때 고모는 내게 말하셨다. “야야 살아보니 인생이 참 허쁘다.”(87쪽)

“입 가진 군정(사람)들이 모이면 어예든동(어떻든) ‘군입거리’가 있어야 해. 입이 굼풋하믄(궁금하면) 좋은 소리들이 안 나와!”(91쪽)

형태가 드러나지 않을 만큼 결이 고와야 하지만 젓가락으로 집히지 않아서는 안 된다. 혀 위에서 녹아들어야 하지만 가루가 돼서는 안 된다. 짜지 않아야 하지만 싱거워도 안 된다. 고소한 향이 풍겨야 하지만 기름기가 입에 걸려서도 안 된다. 그게 보푸름이 앉아 있어야 할 정밀한 좌표였고, 그 지점을 가장 섬세하게 맞출 줄 아는 사람이 엄마였다(108쪽).

사랑에 손이 오신 기척에 나면 소금 단지에 오래 묻어놔 짜디짠 고등어를 얼른 물에 담가 소금기를 빼냈다. 싱싱하지 않으니 구울 수는 없고 무를 깔고 쪘다. 고등어는 상에 올리고 안식구들은 고등어 기름이 인색하게 배어든 무를 아껴 베어 물었다. 그 황홀한 맛을 어디다 비할까(112쪽).

무와 콩을 길러낸 척박한 땅에 비치던 은은한 햇볕과, 땅속 깊이 인색 하나 달디 달게 숨어 있던 지하수와, 눈물이 돌 것 같은 겸허와, 수도승같이 맑은 인내와, 텅 빈 밭이랑 위로 불어오는 바람결 같은 가난과, 그 가난과 짝을 이룬 꼿꼿한 자부와 자존심이 슴슴한 익지 맛 안에 모조리 담겨 있었던 것만 같다(121쪽).

정성, 거기에 대해 나는 할 말이 너무도 많아졌다. 젊어서는 주변에 널려 있는 하염없는 정성들을 비웃었다. 나는 남들에게 저렇듯 헛된 정성을 바치는 사람이 되지 않겠다고 다짐하기까지 했다. 나이든 지금은 우습게도 정반대가 되었다. 인간이 제 안에서 뽑아낼 수 있는 최대 가치는 정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145쪽).

햇장은 흡사 봄에 부는 바람결이었다. 묵은 매화 등걸에서 막 개화한 매화송이였다. 그런 아취를 가진 장이었다. 햇장을 뜨다 고개를 돌리면 장 단지 위로 매화 꽃잎이 휘리릭 날아와 앉았다. 날이 더 길어지면 솔[松]에도 아련하게 꽃이 피었다. 송화는 더욱 적극적으로 낙화해 제 가루를 장 단지 위에 노랗게 흩뿌렸다(151쪽).

가을이 되어, 햇살과 바람 속에 서서 그 푸른 무를 한 입 와사삭 깨물어 먹는 일, 그런 순도 백 퍼센트의 기쁨이 또 있을까. 사람은 그런 순수하고 완벽한 순간에 영원에 닿는다. 그런 순간을 만끽하는 이들만이 우주와 생명의 비밀스런 뜻을 포착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177쪽).

생각해보면 나는 오래전부터 ‘말없이 반짝이고 글썽이는 것들’에 매혹돼왔다. 반짝이지 않거나 글썽이지 않거나 말이 없지 않거나 하면 내 마음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반짝이는 것은 재주이고, 글썽이는 것은 슬픔이고, 말없는 것은 수줍음 혹은 고요라고 할까? 아름다움의 개념을 왜 그런 쪽으로 규정했던지 스스로도 해명할 길은 없다(196쪽).

조약과 깨꾸리는 제사를 위해 시루떡 위에 괴는 ‘웃괴이’ 떡이고, ‘미리지’는 순전히 맛을 즐기기 위해 손으로 밀어 만드는 매끄러운 흰 떡이다. 그런 떡들의 이름 또한 나는 오랫동안 잊고 살았고 제 이름조차 잊어버린 내게 그런 떡들이 나타나줄 리도 없었다. 연변과 조약과 깨꾸리 대신 핫케익이니 피자니 카스테라니 도넛들이 널렸으니 굳이 그것들이 그리울 리도 없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이름을 부르지 않아서 그리운 것을 몰랐을 뿐이었다(208쪽).

깔끔한 것, 해말간 것, 투명한 것, 무언지 얄팍한 것, 은근히 냉정한 것, 그리고 살짝 인색한 것, 그것이 내가 직면한 서울적인 것이었다. 서울식혜는 딱 거기 적당한 음료였다(221쪽).

분이 팍신 나게 삶은 감자 한 알을 입에 넣는다. 이 맛을 설명할 단어가 내 어휘사전에는 없다. 달지도 않고 고소하지도 않다. 새콤한 것도 향긋한 것도 아니다. 반가운 맛이라는 게 있다면 그쯤에 가깝다. 안락하고 반갑고 무언지 추억이나 근원 정서를 불러일으킬 것 같긴 한데 굳이 찾아내자면 그저 덤덤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2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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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슬쩍 서러운 고향의 맛에 대한 헌사 배추적에 관한 추억이 그렇다. 달고 살짝 고소하고 은은하게 매콤한 겨울 배추에 밀가루를 묻혀 구워낸 ‘배추적’은 무슨 맛일까. 밤마실 온 마을 처녀들과 아지매, 할매들이 겨울 밤 입이 궁금할 때 한 두레 구워 먹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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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쩍 서러운 고향의 맛에 대한 헌사
배추적에 관한 추억이 그렇다. 달고 살짝 고소하고 은은하게 매콤한 겨울 배추에 밀가루를 묻혀 구워낸 ‘배추적’은 무슨 맛일까. 밤마실 온 마을 처녀들과 아지매, 할매들이 겨울 밤 입이 궁금할 때 한 두레 구워 먹던, 지금은 낯선 그 음식 말이다. 밍밍하고 싱겁지만 ‘깊은 맛’을 가진 배추적의 맛은 생속을 가진 이들로선 제대로 알 수 없으리라. 헛헛한 속을 달래주던 배추적은 어디서 맛볼 수 있을까.
햇볕을 실컷 받고 천천히 여문 쌀알을 다시 낮은 열로 뭉근히 익힌 후 오래 묵은 간장을 똑똑 끼얹어 먹는 갱미죽은 어떤가. “아무 것도 안 넣은 흰죽, 입안의 아픈 부분을 순하게 따스하게 다정하게 어쩌면 슬쩍 서러운 듯도 하게, 상처에 바르는 연고처럼 솨르륵 도포하던 그것!”(188쪽) 아플 때 엄마가 동솥에 끓여주던 그 옛날의 흰죽을 떠올리는 이는 행복하리라.

스러져가는 옛 것에 보내는 연서
음력 오뉴월에 담가 먹던 찹쌀 술 ‘정향극렬주’가 간신히 명맥만 이어가고 있다. “무슨 무슨 블루 라벨이니 송로버섯향이 난다는 샤또 오 브리옹이니 등 이름난 술을 웬만큼은 마셔봤다. 아아, 그러나 300년 전 정향극렬주, 정성이 진주처럼 녹아든 그 술에 비한다면 다만 싱겁고 머쓱할 뿐”이란다. 곁에 이런 술을 두고도 우린 와인과 사케의 목록만을 주워섬긴다니!(183쪽)
“짜지 않지만 간이 맞고 달지 않지만 들큰하고 맵지 않지만 알싸한 이런 장이, 슴슴하고 덤덤하고 쿰쿰하고 은은한” 집장에 대한 ‘증언’도 있다. 콩과 보리와 쌀을 발효시켜 가루를 내고 엿기름을 부어 꺼룩한 즙이 생기게 한 뒤 고추씨 가루를 얹고 무와 가지, 버섯 등 건더기를 넣은 집장은 ‘밥도둑’이어서 이를 언급하지 않고 넘어가는 것은 결례고 폭력(209쪽)이라는데 이를 어디 가서 맛볼 것인가.

웅숭깊은 삶의 지혜로 그득한 인생론
조율이시, 대추?밤?배?감이라 해서 조상께 제사를 드릴 때 기본으로 올랐던 밤의 속껍질 보늬에서도 삶의 교훈을 길어낸다. “곶감이란 형태로 가공되어 겨울을 나고 대추가 쪼글쪼글 마른 채 겨울을 난다면 밤은 수분이 사라지면 존재 이유까지 위협받잖아요. 겨우내 제사상에 올라가려면 몸을 보늬로, 야문 껍데기로 무장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면서 “매사 입장 바꿔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니깐요. 그래야 세상의 전체 구도가 보이지 않겠어요?”(253쪽)란 깨달음을 설파한다.
넌지시 “범사에 감사하라”는 귀띔도 한다. 지은이 엄마 이야기다. “공중에 휘날리는 복사꽃 이파리가 좋아 그 순간 생에게 감사했다. 천지가 이토록 고우니 인간으로 태어난 것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71쪽) 그 엄마가 “시조모와 시조부, 홀로된 시어머니와 어린 시동생 둘, 그들의 음식 수발과 옷 수발과 한 해 열세 번이나 지낼 제사를 홀로 감당해야할 운명을 목전에 둔” 신행길에 서 있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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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

회원리뷰

  • 혀끝을 맴도는 그리움 | qu**tz2 | 2020.09.06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집밥은 담백하다. 건강엔 좋을지 모르나 강렬함은 2% 부족하다. 삼시세끼 집밥을 먹다 보면 배달음식이 당긴다. 각종 조미료로 ...

    집밥은 담백하다. 건강엔 좋을지 모르나 강렬함은 2% 부족하다. 삼시세끼 집밥을 먹다 보면 배달음식이 당긴다. 각종 조미료로 얼룩진 음식이 가히 몸에 좋을 리 없음을 잘 알면서도 달고 짜고 때로는 맵기까지 한 음식이 주는 유혹을 떨쳐내기란 쉽지가 않다.

    늘 준비된 밥, 누군가가 차려주는 식탁 앞에 앉아 왔다. 내 손으로 직접 상을 차리고 밥과 국을 퍼 담는 일은 먼 미래의 일이 되리라 막연히 여기고 있다. 생각을 이리 하는 와중에도 시간은 흐른다. 어제보다 오늘 내가 느끼는 불안은 더욱 크다. 아마도 내일은 그 정도가 더욱 증대했을 것이다. 태어난 생명체는 모두 무(無)로 향한다. 현재진행형인 많은 것들과 마찬가지로 나의 일상도 언젠가는 소멸하기 마련이다. 

    배추적. 앞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배추야 누구나 다 아는 바다. 적은 대체 무엇일까. 생선전, 고기전 할 때의 그 ‘전’일 거라 홀로 짐작했다. 숱한 재료를 놔두고 굳이 배추를 지져 전으로 만들어 먹는 삶이란 대체 무얼지. 고향이라는 단어가 무색하지만, 내 출신 지역인 서울에서는 굳이 시도치 아니 할 류의 음식인지라 의아했다. 첫맛은 아려도 씹으면 씹을수록 올라오는 단내를 떠올려 보려 안간힘을 쓰기도 했다. 먹을 만하므로 먹는 것이리라는 설명이 나에겐 필요했다. 

    처음 나의 시선이 향한 건 책의 앞날개였다. 안동 출생. 명망 높은 권세가들의 출신 지역이라 들었다. 지금도 안동에 가면 하회마을을 비롯하여 여전히 꼿꼿함을 유지 중인 옛 양반댁들을 다수 접할 수 있다. 형식이 내용까지 규정한다는 건 비단 미디어에만 귀속되는 바가 아니어서, 고풍스러운 한옥에서 오래도록 살다 보면 없던 예의도 차리게 되지 싶다. 마구 뛰어놀기에는 여러 모로 조심스러운 고택이라면 그에 부합하는 고급스러운 음식들을 내어놓을 것만 같았다. 

    이어서 저자의 이력을 잃다가 다시 한 번 난 주춤했다. ‘2018년 10월 영원한 자유를 찾아 떠났다’는 대목에서였다. 눈 부비고 애써 바라보아도 만날 수 없는 영역으로 이미 저자는 떠났다. 뒤늦게 찾아 본 기사에 따르면 오랜 기간 투병생활을 한 끝에 떠났다고 했다. 평균 수명 80을 훌쩍 넘기는 시대에 무엇이 그리도 급했던 걸까. 삶이 꼭 축복은 아니라지만 못내 아쉬웠다. 더는 새로운 기록이 생성되지 않을 것이다. 아직 읽은 책이 없으므로 하나둘씩 이제부터라도 읽기 시작하면 된다지만, 그를 통해서만 접할 수 있는 무언가에 대한 기대감을 접어야만 한다는 사실이 서글펐다. 

    그의 언어는 안동의 언어였다. 바야흐로 국가와 국가 간 경계마저도 희미해지는 시대다. 안동의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찾아 타 지역으로 이동했을 것이요, 오래도록 그 지역에서 유지되어온 귀한 것들을 이어받을 젊은층의 존재는 한없이 귀하다. 저자의 글에 등장하는 많은 언어가 낯설었는데, 왠지 머지않아 소멸하리라는 불안감이 감돌았다. 표준어와 사투리를 마치 무 자르듯 가르고, 오로지 서울말만을 구사하며 살아온 나로서는 언어에 깃든 풍성함을 따라잡기가 힘들었다. 기록을 남긴 이도 말했다. 부모 세대가 떠나면서 언어 또한 가져가 버린 거 같다고, 자신은 일종의 사명감을 갖고 기록할 수밖에 없었다고. 

    사람들은 글을 평면으로 인식한다. 흰 종이 위에 아무리 글씨를 아로새긴들 입체감까지 담아내기란 힘들다. 허나 이번 글은 달랐다. 익숙 잖은 안동어(!)가 눈에 어느 정도 익을 무렵부터는 등장한 음식의 맛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다. 재료 자체는 낯설지가 않았음에도 대체 어떤 맛을 묘사하고 있는 건지 짐작이 가질 않아 가슴을 쳤다. 다채로움과는 거리가 먼 서울이다. 왕궁이 있다 한들 그들만의 세상이요, 대부분은 그저 그런 음식으로 연명하며 살았음이 분명하다. 그게 아닌 다음에야 서울음식이라 하였을 때 설렁탕이 언급될 리가 없다. 설렁탕은 누구나 원하던 때 맘껏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결코 아니었다. 모두가 함께 먹었다고는 하나 만드는 주체가 따로 있어 적절한 시기를 잘 포착해야만 했다. 물론 조선시대의 신분제도가 안동에선 예외였을 리 없다. 더구나 같은 양반 신분이어도 남녀를 철저히 구분해 사고했던 게 성리학 사회의 방식이었다. 귀한 곶감은 남성들에게 내어준 여성들은 손을 바삐 움직이며 감 껍질을 질겅였다. 곶감을 먹을 수 없으므로 행한 대체 행위였지만, 감 껍질이 품은 달콤 쫄깃함으로부터 적잖이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등장했다. 궁금증 해소를 위해 감 속을 버리고 껍질을 씹어볼 용기는 나지 않았다. 왠지 우리 시대에는 부적절한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었다. 내 세상과 저자의 세상은 그토록 달랐다.

    올해도 나의 엄마는 지인에게서 고추가루를 구입했다. 나이 들어 한껏 귀찮아진 몸놀림을 자제하고자 점점 더 많은 음식을 시장의 도움을 받아 조달하고 있기에, 고추가루 구입 소식이 살짝 반갑기까지 했다. 무색무취로 여겨온 서울음식이지만 내 부모 세대가 조금 더 나이 들고 나면 이 또한 그리움이 되겠지 싶다. 머리로는 아니어도 몸은 갈망하는…


  • 이 책은 한 문장가가 세상에 흩뿌린 마지막 광휘이고, 한편으로는 그를 위한 기념비이기도 하다. 지난해 10월 세상을 떠난 김서...

    이 책은 한 문장가가 세상에 흩뿌린 마지막 광휘이고, 한편으로는 그를 위한 기념비이기도 하다. 지난해 10월 세상을 떠난 김서령이 그간 음식과 관련해 썼던 글을 그러모은 그의 투병 막바지에서였다. 문학평론가 염무웅 선생의 말씀대로 “보석처럼 반짝이는 조각글”이 흩어져 사라져 가는 것을 막기 위해 시작된 편집은 그러나 안타깝게도 김서령의 인간 됨됨이를 그리워하고 김서령의 글을 아끼는 이들을 위한 일종의 유고집이 되고 말았다. 해서 통상적인 ‘머리말’ 대신 그의 글 중 한 편이 앞자리를 차지한 파격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 눈여겨보기를 당부하고 싶은 것은 김서령의 글 자체이다. 형용사 하나 허투루 쓰지 않는 그의 글솜씨는 ‘서령체’라 불릴 정도로 자기만의 빛깔을 빚어내서다. 《여자전》 등 그의 전작들이 글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서 많은 아낌을 받은 이유다. 염무웅 선생은 그의 글을 두고 “읽을 때마다 예민한 감각과 풍부한 어휘와 생생한 비유에 감탄했고 글이 만들어내는 삶의 진실에 전율 했어요”(7쪽)라고 했다. 그러면서 “안동 지방 양반가의 내실 풍속과 사랑채 역사를, 그들만의 독특한 언어와 감정세계를 속속들이 알고 손에 잡힐 듯 묘사하는 작가를 이제 우리 문학은 어디서 찾아야 하나요”라고 아쉬워했다. 자청해서 추천사를 써준 심리기획자 이명수 선생도 “당대의 문장가란 수식을 넘어서는 치유적 힘이 그녀의 글에 있었다”고 추모하면서 “내밀한 끌림이 있고 읽으면 단정해지고 맑아졌다. 문장이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글의 모든 것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김서령을 통해 알았다”고 고백했다

  • 입맛이 가장 보수적이라고 한다. 어지간해서는 달라지지 않고 어려서 먹은 맛을 잊지 못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나이가 들면 달...

    입맛이 가장 보수적이라고 한다. 어지간해서는 달라지지 않고 어려서 먹은 맛을 잊지 못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나이가 들면 달라지는 속성도 있다. 나 또한 두 번 입맛이 변했다. 시골에서 자라 구수한 고향 맛을 고집할 수도 있었지만 도시로 나오면서 도시의 맛을 따랐다. 고향의 맛은 자연스레 촌스런 맛으로 취급되어 잘 먹지 않았다. 그러다가 삼십대 후반에 유기농 식단으로 바꾸고 고기를 먹지 않았다. 그러기를 십여 년 하다 보니 점차 고향의 맛을 찾게 된다. 고향의 맛을 떠났다가 돌아간 셈이다. 나이가 먹은 것도 한 요인일 것이다. 아직도 도시의 맛에 길들여진 측면이 있지만 고향의 맛으로 조금씩 돌아가고 있다.

    김서령은 문장가로 알려졌지만 마음씀씀이가 웅숭깊다. 특장점이라는 인터뷰도 인터뷰이에 대한 깊은 애정에서 비롯한 문장들이라서 깊은 공감과 감동을 끌어낸다. 어머니와 고모와 할매들 같은 고향 여성들이 만들고 즐긴 맛을 다룬 이 책도 작가의 특장점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작가도 나와 같이 고향의 맛을 떠났다가 돌아갔다. 비슷한 시대를 산 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경험일 것이다. 작가 또한 고향을 떠나 “도시적, 인공적인 것이 현대와 세련이란 허울로 나를 잡아끌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렇지만 결국 고향의 맛으로 돌아와 차근차근 눈물겹게 알려준다. 그이의 고향인 안동으로 달려가 안동 여성들이 입에 넣었던 맛을 음미하고 싶게 한다.

    이기심과 탐욕과 분노와 공포 같은 걸로 흐려진 인간성의 밑바닥에 가라앉은 선하고 고운 그 무엇, 썩은 감자 속에서 길어 올리는 매끄러운 녹말 같은 그 무엇, 어쩌면 인仁이거나 사랑이거나 자비라도 불러도 좋을 그 무엇, 바로 그것을 대면할 수 있는 가장 가깝고 너그러운 장소가 저 산꼭대기 선방이나 성균관의 명륜당이 아니라 부엌이라고 나는 확실히 믿는다. (30쪽)

    정성, 거기에 대해 나는 할 말이 너무도 많아졌다. 젊어서는 주변에 널려 있는 하염없는 정성들을 비웃었다. 나는 남들에게 저렇듯 헛된 정성을 바치는 사람이 되지 않겠다고 다짐하기까지 했다. 나이든 지금은 우습게도 정반대가 되었다. 인간이 제 안에서 뽑아낼 수 있는 최대 가치는 정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145쪽)

    콩나물밥이다. 겨울의 칙칙하고 무던하고 진지한 콩나물밥과는 천양지차로 다른 밥이었다. 쾌활하고 칼칼했다. 산뜻하고 경박했다. 엄마는 달래를 많이 캐지 않았다. 아니 달래가 제 어린 뿌리를 많이 캐 가게 놔두지를 않았을 것이다. 손등에 두어 줄 붉게 긁힌 상처를 얻은 엄마는 개선장군처럼 간장에 다래를 듬뿍 썰어 넣었다. 수선화의 구근 같은 둥근 뿌리와 미삼 같은 발 뿌리도 한 올 버리지 않고 다져 넣었다. 아아, 달래! 매웁고 풋풋하고 새침한 달래, 이웃의 가시나무를 충돌질해 엄마 손등을 얄밉게도 긁어버린 달래! 그렇지만 달래의 알싸하고 청량한 향기는 우리 식구들의 겨울을 화들짝 깨워놓았다. (155쪽)

    분이 팍신 나게 삶은 감자 한 알을 입에 넣는다. 이 맛을 설명할 단어가 내 어휘사전에는 없다. 달지도 않고 고소하지도 않다. 새콤한 것도 향긋한 것도 아니다. 반가운 맛이라는 게 있다면 그쯤에 가깝다. 안락하고 반갑고 무언지 추억이나 근원 정서를 불러일으킬 것 같긴 한데 굳이 찾아내자면 그저 덤덤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237쪽)

  • 김서령이 남긴 '조선 엄마의 레시피'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 / 김서령 지음 / 푸른역사 그리움이 있는 책이...

    김서령이 남긴 '조선 엄마의 레시피'
    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 / 김서령 지음 / 푸른역사


    그리움이 있는 책이다.

    미안함과 원망이 함께 하는 책이다.

    입맛을 돋우는 맛있는 추억이 있는 책이다.

    사람들 살아가는 이야기다.

     


    '엄마'라는 단어가 포함된 모든 기억과 추억중에서 가장 자주 떠오르는 것은 '음식(엄마가 해 준, 엄마가 좋아한)'이다.


    대강 기억나는 것만 적어볼까?
    만두, 김치, 쑥떡, 장조림, 육회, 해장국, 석박지, 물김치, 동치미

    나물, 김밥, 국수, 된장찌개, 청국장, 짜장면, 냄비밥, 동그랑땡

    어리굴젓, 쫄면, 우무, 불백, 홍합탕, 순대, 보리밥, 돼지갈지, 고등어김치조림 등등 


    배추적은 아버지의 음식이었다.
    엄마는 아버지 입맛에 맞추려 많은 노력을 하였으나, '엄마 배추적'의 맛은 '할머니 배추적'의 맛과 비슷하다가 최대치였고 한계였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아버지가 아주 어릴 적 돌아가셨다.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 산골짜기, 가난하고 가난했던 그 때.....
    아버지가 먹었던 배추적은 어떤 맛이었을까?
    76살의 할아버지가 된 아버지에게 배추적은 어떤 의미일까? 


    그 '니맛도 내맛도 없는' 배추적을 굳이 왜? 김치부침개나 해물파전도 있는데.....

    예전에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은 조금 이해된다.

    나의 엄마가 아무리 애를 썼어도 당신의 엄마가 해준 것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적당히 좋고 맛난 음식을 사 먹기도 하고, 해 먹기도 한다.
    당연하지만 엄마가 해 준 것 만큼은 아니다.
    이제는 절대 맛 볼 수 없는 엄마의 음식....

     

    연탄불에 소금도 안 뿌리고 가볍게 구운 김 대강 찢어 밥 얹고 손으로 꾸욱 움켜 잡으면 손가락 자국이 선명했던 엄마의 김밥
    밥상에는 김밥과 간장뿐...

    김밥을 먹기보다 주물럭 주물럭 놀기 바쁜 아들과 딸을 바라보던 엄마의 그 두 눈.... 

     

    친구들이 지금도 이야기하는 엄마의 만두, 그토록 칼칼하면서 부드러운 만두소라니...

    만두 좋아하는 아들을 위해 엄마는 '아들의 냉장고'에 만두의 부재를 허락한 적이 없었다.

     

     


    내일은 두 번째 맞는 엄마의 기일이다.
    자식 키워봐야 소용 없다고.. 왠만한 거 다 사서 하라는 아들 보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본다고 하는 며느리이자 아내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내일 시장에서 장 볼때 아버지 좋아하시는 메밀전을 꼭 사서 생색을 좀 내어야겠다. 

     

    지는 목련과 피는 벚꽃을 보며 엄마 생각한다.

     

    사랑해요.. 미안해요..

     

    *엄마는 1951년 음력 5월 4일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에서 1남 6녀 중 막내로 태어났고 2017년 음력 3월 11일 돌아가셨다.

     안동의 말이 경산의 말과 유사한 부분이 있어 책 속 엄마의 말은 남다르게 다가왔다.   
     

    *밑줄 모음
    -아픔은 사람을 사무치게 만든다. 그리고 사무침은 사람을 의연하게 만든다.
    -저녁에 뭘 해 먹노? 한때 우리 엄마의 최대 고민이었다.
    -젖은 고추를 절구에 드글드글 갈아서 넣그라. 그래야 열무김치가 씁쓸해지지 않는데이.
    -엄마 몫은 대충 썬다. 고울 필요도, 고를 필요도 없어 그냥 숭덩숭덩 썰어버린다.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슴슴한
    -호박잎쌈은 된장찌개가 있어야 하느니라.
    -사랑마당은 넓었고 내 마음은 막막했고 그 사이로 문득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진달래꽃 화전
    -세상에 꽃이란 꽃은 있는 대로 피어 삶은 취나물 검은 가닥들 위로 새암하듯 하얗게 내려앉았다.
    -냉동실 문 앞에 하염없이 서 있다. 허쁘다는 말은 기쁘다와 슬프다와 고프다와 아프다를 다 녹여 비벼놓은 말이다. 삶이 '삶은 나물'보다 못할 이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다 사라져버렸을 리야. 냉동실 문을 잡고 삶과 죽음의 어처구니 없을을 생각하는 날.
    -잊었던 관형어들이 새삼 그립게 떠오를 때.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우리 감정과 입맛은 매우 예민하고 정교하게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 오래 그리워하다 맞닥뜨리는 것과 무시로 아무렇게나 부딪치는 것과는 정서의 작동하는 부위가 다를 수밖에
    -입맛을 잃어 쓸쓸한게 아니라 그토록 공들인 음식을 아무도 만들어내지 않는 시절이 쓸쓸하다.
    -사람은 저마다 생김과 생각이 다르지만 응애 하고 울다가 꼴깍 하고 죽는다는 것, 그걸 나는 아홉 살 겨울에 이미 정확하게 숙지했다.
    -그 정성이 일상으로 구현되는 것이 음식이고 그 음식의 본질은 기본이 바로 장이다.
    -부엌용품 사이즈가 예전에 비해 말할 수 없이 작아져버렸다. 대가족을 잃는다는 것은 관계와 경험의 폭이 왜소해 질 뿐 아니라 일상의 모든 사이즈를 줄여놓은 측면이 있다.
    -여름이 오고 우리집 부엌에서 일주일에 한두 번 수박 갈라지는 "쩍-" 소리에 이어 아이들의 "야~"하는 환호가 들릴 때 인생은, 온갖 누추와 남루에도 불구하고 예찬할 가치가 충분하다.
    -그 외의 것은 모조리 덤이다.
    -아아 정향극렬주, 그리운 너의 술잔에 아름다운 정향극렬주를 붓는다.
    -나는 지금 냉이 뿌리 내음을 뭐라고 말할지 적절한 말을 찾지를 못하겠다.
    -아름다운 것은 윤리적이다. 아름다운 것은 인간의 마음을 열리게 만든다. 아름다운 것들은 시간의 침식을 이긴다. 아름다운 것에 감응할 수 없을 때 인류는 황폐해질 것이다.
    -찐감자 한 접시에는 문명이 개입할 틈이 없다.
    -가난하고 순박했던 시절 사람들은 돌멩이나 바람결처럼 단순하고 어질었다고 말하면 거짓이겠지만 때로 그 시절의 덤덤하고 구수한 사람들이 몹시 그리울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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