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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2쪽 | 규격外
ISBN-10 : 8932008485
ISBN-13 : 9788932008486
광장/구운몽 중고
저자 최인훈 |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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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2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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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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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의 문제소설로 평가받는 장편소설. 이데올로기와 사랑이라는 문제에 맞닥뜨려 제 3국을 택했으나 끝내 자살의 길을 택했던 석방포로 이명준. 한 지식인의 외로운 자기 성찰을 밀실과 광장의 대비를 통해 묘사한 작품이다.

저자소개

목차

1. 서문
2. 광장
3. 구운몽
4. 초판해설, 사랑의 재확인
5. 신판해설, 다시읽는『광장』

책 속으로

출판사 서평

책 속 한 문장

회원리뷰

  • [지식인의 서재:문학평론가-정과리교수님]    저에게 서재는 공방입니다. 4가지 뜻으로 그 이름을...

    [지식인의 서재:문학평론가-정과리교수님]
     

    2.jpg


     

    저에게 서재는 공방입니다. 4가지 뜻으로 그 이름을 생각했는데요. 제가 그런 생각으로 책도 낸 적이 있습니다. 여기 이 책이 <문신공방>이라고 그래서 '글과 몸이 공방하는 곳이다.'라고 하는 건데 이 공방은 워낙 '둥근 공' 자에다가 둥그렇고 원과 사각형을 합쳐놓은 거예요. 원과 사각형이 하나로 합쳐질 수가 없잖아요. 왜냐하면, 원은 잘 아시겠죠. 파이를 통해서 면적이 계산되기 때문에 절대로 사각형이 되지 않거든요. 근데 원과 사각형이 하나로 되는 게 아마 제가 책을 통해서 추구하고자 하는 어떤 이상의 상당히 은유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공방의 세계를 추구하는 어떤 작업실로서의 의미로써 공방. 뭔가를 만드는 곳. 그래서 서재이고 또 그것을 독수공방하듯이 혼자서 하기 때문에 서재야말로 혼자서 들어와 앉아서 일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그런 의미에서 또 공방이고 또, 바로 그런 불가능한 꿈을 추구한다는 그러니까 원과 사각형이라는 불가능한 꿈을 추구하기 위해서 제가 이 세상의 모든 책들과 씨름을 해야 되기 때문에 공격하고 방어한다는 뜻에서 공방입니다. 그런 4가지의 뜻에서 공방이라고 생각합니다.

    정과리
    • 직업 문학평론가
    • 출생 1958년 (대전광역시)
    • 소속 연세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 학력 서울대학교 대학원 불문학 박사
    • 수상 2005년 제13회 대산문학상 평론부문
      2000년 제45회 현대문학상 평론부문
    • 저서 <감염병과 인문학>, <문명의 배꼽>
      <1980년대의 북극꽃들아, 뿔고둥을 불어라>
      <들어라 청년들아> 외 다수

    독서는 자기를 북돋아주는 양질의 즐거움

    책 읽기를 좋아하는 분들에게 드리는 말씀으로는 '책을 읽으려면 책을 즐기는 게 제일 좋다.'라고 이제 말씀드릴 수밖에 없고요. 그럼 '책을 어떻게 즐기느냐'라고 하는 건데 그건 생각만 바꾸면 됩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을 했어요. 수업 시간에 학생들한테도 그런 얘기를 하는데 우리의 삶이라고 하는 것의 가장 기본적인 것은 먹고 자는 겁니다. 자기의 존재를 보호하고 계속 유지시키는 거죠. 또 하나는 자기의 자손을 번식시키는 겁니다. 그러니까 종족 본능이죠. 그래서 이런 자기 보호와 종족 보존 본능은 인간의 본능에 속하는 거고 모든 생명의 본능에 속하는 겁니다. 그런데 인간은 어떻게 하다 보니까 거길 이제 넘어서서 조금 더 이상적으로 살아보려고 애를 쓰게 됐어요.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건 다 설명을 못 드릴 테고 근데 이 단순한 차원의 생존의 삶과 자기가 이상적으로 살고자 하는 삶 사이에는 간극이 있습니다. 이 간극 때문에 우리는 굉장히 고민하고 애를 쓰고 자기가 정말 이상적으로 살고자 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그걸 찾아 한참 헤맵니다.

     

    근데 그게 잘 안 되니까 자꾸 이것저것 찾아 헤매는 게 우리의 그 보통 삶의 가장 일반적인 모습이거든요. 근데 대개 그런 것들을, 우리에게 움직이고 있는 것은 쾌락의 세계입니다. 즐거움이 있어야 되죠. 근데 그 즐거움은 아주 극단적인 경우에는 가령 뭐 도박에 빠진다든가 혹은 뭐 성적 쾌락에 빠진다든가 뭐 이런 것도 있는데요. 근데 그 우리가 다다르지 못한 이상적 삶과 아주 단순한 차원의 생존의 삶 사이에 있는 거는 모두 다 똑같은 겁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해요. 그러니까 즐거움은 꼭 거기에만 있는 게 아니라 책 읽기에도 있을 수 있고 혹은 밥 먹는 거에도 있을 수 있고 혹은 어떤 그 아무도 추구하지 않지만, 자기만이 추구하는 그 어떤 세계에 대해서도 있을 수가 있어요. 그러니까 그걸 책으로 옮겨 놓기만 하면 됩니다. 이 즐거움이 발생하는 장소를 책으로 옮겨놓기만 하면 돼요. 물론 이제 책에서 즐거움이 발생하기가 쉽지 않죠. 쉽지 않지만, 그걸 자꾸 개발하면 됩니다. 그렇게 편하게 생각하시면 돼요. 그러니까 도박을 해서 얻는 쾌감이나 책에서 얻는 쾌감이나 쾌감은 똑같습니다. 다만, 질이 좀 다르죠. 도박을 해서 얻는 쾌감은 자기 파괴적이라면 책에서 얻는 쾌감은 자기를 북돋아주고 더군다나 타인을 생각하게끔 하고 굉장히 좋은 쾌감일 수 있습니다.

     

    책 읽기와 책 쓰기의 자연스러운 순환

    책을 열심히 읽게 되면요. 자연히 책을 쓰게끔 됩니다. 그게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디지털 문화하고 근본적으로 다른 겁니다. 디지털 문화는요. 사용하다가 재미있으면 계속 사용하고 싶어지거든요. 그러나 무얼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은 그 디지털 문화를 만들고 싶어하는 거는 아주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왜 그러냐 하면 디지털 문화는 기본적으로 생산 알고리즘과 수용 알고리즘이 완전히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그래요. 그리고 잘 아시겠지만, 컴퓨터 프로그래밍은, 프로그래밍 자체 소스는 도대체 알 수 없는 이상한 기호들로 돼 있습니다. 근데 그 기호들을 조합해 놓으면 너무나 화려한 동영상이 앞에 펼쳐지거든요. 그래서 그걸 만드는 자와 그걸 향유하는 자는 완전히 분리되어 있어요. 그 작업 자체가. 그래서 이 디지털 문화는 향유할 수 있지만, 그걸 생산하는 데는 아주 특별한 별도의 훈련이 필요로 해집니다. 그런데 책은 그렇지가 않아요. 쓰는 게 곧 읽는 겁니다. 책은 문자로 쓰고 문자로 읽습니다. 그래서 책은 책을 읽는 기쁨이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쓰고 싶은 충동이 생기게 마련이고. 그리고 책을 쓰는 것과 읽는 것 사이에 항상 그 뭐랄까, 순환 같은 게 이루어지게 됩니다.

     

    정과리 문학평론가가 말하는 좋은 작가

    작가라는 게 정말 작품 쓰는 사람이죠. 글쓰기와 자기 삶이 하나로 일치하는 사람 그걸 김수영 시인은 말년에 <시여, 침을 뱉어라>라는 글에서 '시는 온몸으로 쓰는 것이다.'라고 했거든요. 근데 말 그대로 그냥 온몸으로 쓰는 그런 작가가 제일 좋은 작가라고 생각을 하는데 글을 읽어 보면 압니다. 글을 읽어 보면 저 돈 벌려고 썼구나. 아니면 정말 여기에 자기 몸을 다, 자기의 온 정신을 던져 가지고 자기를 완전히 내던져서 새로운 하나의 세계를 만들었구나. 그럼으로써 자기의 진을 다 빼버렸구나. 그런 게 보이는 그런 작가가 있고 또 그렇거든요. 저는 이제 그런, 그런 작가를 원하는 거죠.

     

    문학평론가의 배아가 만들어진 순간

    제가 '문학평론가로서 정말 행복했다.'라고 생각하는 건 '좋은 선생님을 만났다.'라는 것. 제가 고등학교 때 문학을 하고 싶었는데 부모님이 절대로 안 된다고 하셔서 이 문학 쪽, 저희 때는 계열로 뽑았습니다. 그쪽으로 진학을 못 했었어요. 근데 그때 고등학교 때에는 사실 국문과를 가고 싶었었죠. 대학교 들어와서 다시 도서관에 있는 책들을 가져다가 막 읽어보니까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그때 발견한 거예요. 대전 시골, 대전 뭐 시골은 아닙니다만. 뭐 어쨌든 이 촌놈이 그 안에서 읽던, 교과서 범주에서 읽던 책하고 서울에 올라와서 도서관에서 새로 책을 읽으니까 이건 완전히 다른 세계였던 거예요. 너무 그게 황홀해서 그 하여튼 뭐 이것저것 뭐 닥치는 대로 주워서 읽었는데 문학 쪽으로는 저에게 큰 감동을 줬던 게 무엇보다도 김현 선생님의 글이었어요. 근데 김현 선생님이 불문과에 계셨거든요. 그때쯤 되니까 제가 대학교 1학년 지나고 나서 2학년 때 과를 선택하게 되었는데 그때쯤 되니까 제가 두뇌가 커져가지고, 머리가 커져서 부모님 말씀을 안 들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서 이제 불문과를 과감히 선택을 했고 또 부모님도 그걸 받아주셨거든요. 근데 그때 불문과를 선택하게 된 것은 다른 건 아니고 제가 '불문학을 하겠다는 것보다는 김현 선생님에게 가서 문학을 배워야 되겠다.'라고 생각을 했던 것이고 그것이 결국은 저를 문학평론가로 만드는 아주 가장 최초의 어떤 배아가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고 할까요? 그랬습니다. 그래서 지금 제가 김현 선생님을 못 만났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문화를 성찰하는 비평적 활동의 활성화가 필요해

    지금 제일 큰 문제는 우선 저기 디지털 문명이 너무 급속도로 발달하고 있는데 그 과정 속에서 그 옛날의 낡은 문화가 거기에 적응을 못 해서 도태되고 있는 현상인데 그중에 책이 지금 그 안에 포함되어 있거든요. 이 디지털 문화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자기반성 장치가 없다는 거예요. 자기반성 장치는 오직 책을 통해서만 나올 수가 있고, 그걸 내장하고 있는 유일한 문화가 문자 문화입니다. 책의 문화인데. 바로 그런 것 때문에라도 디지털 문화가 자기반성 장치를 외부적으로라도 장착을 하려면 책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해요.

     

    지금 웹 쪽의 문화라고 하는 것은 다분히 향락 지향적인 그러면서 자기 성찰적인 어떤 그 부분이 많이 생략되어 있는 향락 지향적인 문화거든요. 그래서 그 향락적인 문화를 이 성찰적인 문화와 빨리 결합시키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을 해요. 그 웹툰이라든지 혹은 뭐 웹상에서 일어나는 이런 굉장히 대중 친화적인 어떤 그런 이야기들, 소설들 그런 것들도 충분히 그 나름대로 활성화되고 해야 되는데 그것이 지금 성찰적인 활동과 단절되어 있는 것은 굉장히 심각한 문제거든요. 그래서 그걸 하려면 외부적으로는 원래 그런 성찰적인 활동을 하던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책 문화와 그것이 만나야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 웹 문화가 돌아다니는 걸 하나하나 점검해주는 그 평론가들이 있어야 됩니다. 문화평론가들이…

     

    근데 우리나라는 문화평론가들이 지극하게 부족합니다. 굉장히 심각한 문제 중의 또 하나예요. 만화 평론가도 없고. 혹은 TV 드라마를 평론하는 평론가도 없고 무용 평론가도 제대로 된 분을 만나기가 어렵고 뭐 전부 그래요. 그냥 소개는 합니다. 소개는 하지만, 실제로 평론이라고 하는 것은 비판적으로 접근을 해서 이것이 왜 의미가 있는가를 부각시켜 주고 더 나은 길은 무엇인가, 한계는 무엇이고 그래서 더 나은 길은 어디인가. 이런 거를 계속 모색하는 게 평론이거든요. 그런 것들을 해야만 그 문화가 제대로 발전을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소비되고 말거든요. 그게 지금 굉장히 심각한 문제 중의 하나죠. 한편으로는 이 책이 빨리 그 웹 안으로 들어가서 웹 문화와 책문화가 결합되는 길을 자꾸 찾아야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웹 문화 자체 내에서 스스로 이걸 점검하고 성찰할 수 있는 이 비평적 활동이 활성화되어야만 합니다.

     

    문학평론가를 꿈꾸는 이들을 위한 조언

    문학도 그렇고 뭐 모든 예술이 다 그렇습니다만, 글쓰기도 그렇고 글 읽기도 그렇고 모든 것에는 어떤 그 층이 있다고 저는 생각을 해요. 층은 저 아래에서부터 차근차근 밟아서 올라가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1층에서 2층으로 2층에서 3층으로 천천히 올라가는데 그래서 한 3층, 5층, 10층 정도 올라가면 자신이 어렸을 때 읽고 느꼈던 어떤 문학에 대한 취향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근데 저는 그걸 이제 여러 가지 방식으로 여러 단계를 거쳐서 그걸 스스로 겪었던 것 같아요. 겪었기 때문에 문학평론을 공부하는 분들에게 덕담이라고 할까 권유라고 할까 하는 게 있다면 끊임없이 그런 자기계발의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거죠. 그리고 절대로 작품을 해설하는 걸로 만족하지 말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작품과의 대화를 제대로 하려면 자신이 작품을 다 알지 못합니다. 작가들이. 그래서 작품의 우리가 차마 아직 다 읽어내지 못한 부분들이 언제나 있을 수가 있어요. 그래서 작품과의 대화를 하려면 계속 자기의 문학적인 감수성이 개발되지 않으면 안 되거든요. 그래서 이 문학적인 감수성을 끝없이 개발하는 걸 게을리하지 말라고 그렇게 말씀드리고 싶네요.

     
    지금 한국 사회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

    지금 한국 사회가 제일 필요로 하는 건 조금 더 차분해져야 된다라는 거고요. '차분해진다.'라고 하는 거는 이렇게 말씀드릴 수도 있겠는데요. 꼭 자기가 생각한 것대로 세상이 나타나는 건 아니다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상대방을 자기가 어떻게 생각하든 굉장히 다양한 상대방이 있는데, 타인들이 있는데 '이 타인들의 세계와 자기의 세계가 한꺼번에 일치할 수 있다.'라는 믿음은 환상에 불과합니다. 계속 타인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되고 우리한테 제일 부족한 게 그거거든요. 타자에 대한 이해가 굉장히 부족하다는 거. 그러니까 그런 것을 통해서 나와 타인이 서로 한 공간에서 산다는 것의 의미를 찾아내는 게 사실은 우리가 그 더불어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거거든요. 그리고 더불어 삶의 의미를 찾아낸다면 그것이 가령 우울증이라든지 혹은 뭐 이 산다는 것의 어떤 그 허망함 뭐 그래서 자살 충동 그리고 '굳이 이렇게 살기 힘든데 애를 낳아야 되나'라고 하는 출산에 대한 거부 이런 것들을 스스로 납득해서 그걸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저는 생각을 해요.

    물론 그거는 정책적인 뒷받침이 항상 있어야만 됩니다. 아무것도 보장해주지 않는데 애만 낳으라고 그러면 어떡합니까? 저는 프랑스 같은 경우가 훌륭한 사회라고 생각하는데 80년대 인구가 계속 줄다가 그 후에 지금 인구가 늘고 있거든요. 근데 그렇게 된 가장 중요한 동기는 뭐냐 하면 애를 낳으면 무조건 생활비를 주는 겁니다. 왜 안 주죠? 난 그게 너무 이상해요. 지금은 전 세상 사람들이 다 알고 있어요. 인구가 엄청난 힘이라는 걸 우리도 지금 빨리 1억 이상의 인구를 확보해야만 어떤 그 세계화의 움직임 속에서 나름대로 역할을 할 수 있을 건데 그러려면 인구가 힘이면 그 인구를 생산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큰 생산력을 발휘한 겁니까. 그럼 거기에 대한 보장을 해 줘야지요. 전 생활비 다 줘야 된다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아이 셋만 낳으면 아무 일도 안 해도 충분히 아이 클 때까지 먹고 살 수 있게끔 만들어 주면 전 낳을 거다. 왜 안 낳겠어요? 다 낳는다고 생각을 해요.

     

    세계 속 한국문학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노력

    이제 2000년대 이후에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제가 외국에 나가서 뭐 조금 살아보고 그러니까 제일 어려운 문제가 한국문학을 사람들이 전혀 알고 있지를 못하다는 거였어요. 1990년대부터 시작을 해서 유럽 쪽으로는 그 한국문학의 외국어로의 번역이 시작이 되었고. 그리고 그때 이문열, 이청준 이런 분들이 알려지기 시작했거든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독자들은 한국문학에 대해서 거의 알고 있지 못한 상태예요. 그래서 제가 '그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라는 것 때문에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하게 되었는데. 그래서 가령 뭐 2013년 가을에서 2014년 여름까지 제가 프랑스 엑상프로방스에 있었습니다만, 그때 1년 동안에 르몽드 지에서 한국문학에 관한 소개가 딱 1건밖에 없었습니다. 근데 그 1건도 어떤 그 특정한 작가에 대한 소개가 아니고 여러 작가의 단편들을 가져다가 모아놓은 그 단편집에 대한 소개였어요. 전 그게 왜 그것이 소개되었는지 전혀 그 이유를 모를 정도로 그렇게 소개가 됐는데요.

    근데 가령 일본 같은 경우에는 일본의 그 지금 꽤 이제 중견작가죠. 시마다 마사히코 같은 양반 책이 번역이 되면 바로 그대로 르몽드 지에서 상당히 비중 있게 다루거든요. 그리고 얼마 있다가 그 소설이 곧바로 문고본으로 다시 바뀌어서 대중적으로 많이 팔리기도 하고 이러는 상황이에요. 그래서 중국이나 일본이라고 하는 굉장히 큰 어떤 문학 세계가 이 동북아시아에 있기 때문에 그런지는 모르지만, 그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지금 한국문학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상태입니다. 한때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베트남 문학보다도 한국문학은 거의 존재하고 있지 않아요. 그리고 제가 프랑스의 서점 사람들이 한국문학 책에 관해서 얘기하는 걸 간접적으로 들었는데 서점 사람들이 한국문학 책에 대해서 가지는 제일 곤란한 문제가 중국이나 일본 책들은 가지고 있으면 독자들한테 이건 이런 책이다라고 자기들이 소개할 수 있는 그런 자료가 있답니다. 정보를 이미 갖고 있고 머릿속에 개념이 딱 들어온대요. 근데 문제는 한국문학은 일단 물건이 들어왔을 때 이 물건을 가지고 어떻게 팔아야 될지 개념이 안 잡힌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제일 심각한 문제는 가령 신경숙 씨의 작품과 김중혁 씨의 작품과 김영하 씨의 작품과 이승우의 작품과 이런 작품들이 전부 단품으로만 들어오는 거예요. 이것이 통째로 한국문학으로 묶이지가 않는 겁니다. 그리고 서점 직원들은 '이걸 어떻게 묶어야 되느냐?'라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근데 결국 이 얘기는 한국문학이라고 하는 하나의 이 문학 세계를 세계문학 내에 우리가 위치시키는 데에 그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다라는 얘기가 되거든요. 그러니까 지금 개별 작가들의 작품은 그냥 세계의 어떤 그 특수한 문학 작품이 하나 왔다. 이 정도지 그것이 그 한국문학이라는 이름 하에서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어떤 그 특수한 문학 세계. 새로운 문학 세계. 이렇게 이해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거죠. 그래서 그 문제가 빨리 시급히 해결돼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고 제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세계문학의 은하 안에 한국문학이라고 하는 그 하나의 별을 어떤 식으로 궤도를 잡아주느냐 그것이 제일 큰 저의 과제가 될 것 같습니다.

     

    (지식인의 서재 '정과리 편'은 정과리 님의 개인 연구실에서 촬영했습니다.)


    4.jpg

    내 인생의 책

    [한국문학의 위상:김현著]

    워낙 초판본은 이것보다 약간 큰 크기의 책인데요. 김현 선생님이 쓰신 <한국문학의 위상>이라고 하는 책입니다. 이 책은 한국문학과 문학일반, 문학일반에 대한 어떤 그 굉장히 김현 선생님 특유의 어떤 그 성찰을 담고 있고 워낙 김현 선생님의 문체가 유려하고 또 일반 독자들이 읽기에 굉장히 좋을 만큼 알기 쉽게 쓰셨기 때문에 독자들이 지금 읽어봐도 굉장히 좋은 책이라고 생각을 해요. 이 책은 저의 문학 수업 시절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던 책이고. 제가 문학평론가로 처음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입선을 했을 때 선생님이 제게 책을 선물하셨는데요. 바로 그 선물하신 책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의 그 일종의 보물 1호에 해당하는 그런 책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김수영전집]

    이 책은 김수영 시인이고요. 제 동기들, 제 친구들 책도 소개할 수 있지만, 일단은 선배들 것부터 먼저 하겠습니다. 김수영 시인은 저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시인 중의 하나고 1976년에 <거대한 뿌리>라고 하는 그 김수영 시집이 민음사에서 김현 선생님 편으로 나왔었는데 그때 제가 보고 큰 충격을 받았었고 그 이후에 민음사에서 <김수영 전집>이 시와 산문 두 권으로 나왔습니다. 근데 뭐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정말 그 온몸으로, 온몸으로 작품을 쓰고 그 작품을 통해서 세계와 대화하고 세계와 씨름한 그런 시인입니다. 그래서 김수영 시인이 1968년에 돌아가시고 1970년부터 부각이 되기 시작하면서 1980년대쯤 오면 한국 최고의 시인처럼 모든 후배 시인들, 후배 후학 연구자들이 추앙하기 시작했는데 그래서 80년대 말쯤 가면 이미 정상에 다 올라가 계셨어요. 그래서 제가 '이제 내려오셔야 되는데'라고 생각을 했는데 아직도 안 내려오고 계세요. 지금 30년째 계속 그 태산의 정상에서 지금 노닐고 계시는데. 어쨌든 그만큼 대단한 힘을 가지고 계신 분이고 그분의 시집. 전집입니다.

     

    [광장:최인훈著]

    이 책은 <광장> 최인훈 선생님의 <광장>입니다. 최인훈 선생님의 <광장>이고 이 한국인들의 어떤 그 뭐랄까 세계의 한 시민으로서의 자기에 대한 고민을 처음으로 실천적 행동의 관점에서 내던진 그걸 제기했던 최초의 작품이거든요. 저기 우리가 이제 그런 얘기를 합니다. '소설의 기본적인 주인공의 문제적 개인이다.'라고 하는데 한국소설에서 문제적 개인이 최초로 등장한 예가 이 <광장>의 이명준이라고 저는 생각을 해요. 이 <광장>은 소위 그 자아에 문제, 시민으로서 산다는 게 무엇인가. 그리고 이데올로기와 나를 합치한다는 것, 나 사이의 이 간극과 합치는 무엇인가. 그리고 더 나아가서 최인훈 선생님이 늘 책에서 쓰셨습니다만, 젊은 사람이 해볼 만한 딱 두 가지 일이 있는데 그게 하나는 사랑이고 또 하나는 혁명이라고 그랬습니다. 그 사랑이냐 혁명이냐라는 걸 고민하게끔 해주는 그런 책입니다.

     

    [당신들의 천국:이청준著]

    그다음에 네 번째로 이청준 선생님의 그 <당신들의 천국>입니다. 소록도의 나환자들을 다루고 있는 이 책은 소록도 나환자와 그들을 이 갱생의 삶으로 이끌어 가는 그 원장 사이의 어떤 갈등과 화해 혹은 협력, 혹은 싸움. 이런 것들을 다룸으로써 한국사회의 어떤 그 정치적인 알레고리로 작용하기도 한 책입니다. 한국사회에서 어떤 그 독재, 그러니까 정부 주도형의 개발 독재가 우리에게 여러 가지 경제적인 풍요를 가져다 줬지만, 그 대가로 우리한테 여러 가지 정신적인 억압을 또한 하기도 했고 우리를 여전히 정신적인 어떤 천민성에 여전히 남아 있게끔 하는 그 요인이기도 했거든요. 그런 문제, 그러니까 지배와 피지배의 문제. 그래서 자유와 사랑의 관계, 이런 것들을 아주 깊게 성찰하게끔 해주는 그런 책입니다. 그래서 이 책, 이청준 선생님의 책이죠.

     

    [사랑의 단상:롤랑 바르트著]

    이 책은 저에게 제가 문학 공부를 할 때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프랑스 비평가 중 한 분입니다. 롤랑 바르트라고 하는 분이고요. 이 롤랑 바르트의 그 전집의 1권을 지금 제가 들고 있습니다. 이 분은 소위 그 구조주의 문학 비평의 제일 대가인 분이시죠. 그 안의 핵심이 되는 분이었고. 1960년대 70년대에 굉장히 큰 어떤 파장을, 영향을 끼치고 계셨고 그리고 지금도 이분의 구조적인 분석의 정교함. 그다음에 이분의 문체가 엄청나게 아름다워요. 그래서 이 분의 글쓰기의 섬세함. 그리고 세계를 바라볼 때 굉장히 색다른 안목. 그러니까 시각이 항상 달랐습니다. 다르게 보는 것들 그런 것들로 완전히 채워져 있고 충만한 그런 비평 텍스트를 가지고 있는 분입니다. 이 분의 책은 지금 한국에 여러 가지 단권들로 많이 번역이 되어서 그중에 뭐 말씀드리자면 그 김희영 선생님이 번역하신 <텍스트의 즐거움>이라든지 그다음에 사랑 담론 단편이라고 번역할 수 있는 건데 지금 어떻게 번역돼 있는 건지 모르겠는데, 사랑에 관한 아주 짧은 담론들을 모아 놓은 인기 있는 책입니다. (<사랑의 단상>으로 번역됨) 그런 걸 보면 이 롤랑 바르트의 문체의 섬세함. 이 문체를 꿰뚫고 지나가는 이 분의 안목의 새로움. 동시에 분석의 정교함. 이런 것들을 한꺼번에 느낄 수가 있습니다.

  • 광장 리뷰 | be**6693 | 2014.06.18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광장이라는 소설은 우리에게 아주 친근하다. 고등학교 문학교재에 수록되어있고 수능과 모의고사에 자주 나오는 지문이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시절엔 단편적인 부분을 보고 광장을 이해했다. 교과서에서는 이명준은 그저 남북에서 광장을 찾지 못하고 배에서 투신자살을 하는 모습만을 보여줄 뿐이었다. 뿐만 아니라 광장의 의미도 문제집에 나와 있는 대로 달달 외울 뿐이었다. 지금 다시 책을 읽어보니 광장의 의미는 ‘인간적인 교감이 이루어지는 자유로운 공간’ 이라는 해석이 가장 적절한 것 같다. 남한은 교감은 이루어지나 자유롭지 못한 공간, 북한은 자유로운 공간은 존재하지만 인간적인 교감이 이루어지지 않는 공간으로 어느 곳도 진정한 광장은 존재하지 않고 그 일부분만 충족시킬 뿐 소설 속에서 이상적인 공간으로 남게 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북에서 인간적인 교감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잠시나마 이명준은 북에서 은혜를 만나게 된다. 은혜와 사랑을 하면서 인간적인 교감을 할 수 있게 되고 이명준은 은혜를 통해 광장을 찾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영구적인 광장은 아니었다. 이명준이 생각하는 광장은 과연 세상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일까? 어쩌면 이명준 이기 때문에 광장을 찾을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광장은 사람마다 해석하기 나름이고 책을 읽어봤다면 반드시 한번쯤은 생각해 봐야할 문제이다. 광장의 의미를 내 삶에 접목시켜 이해해 보니 반드시 ‘인간적인 교감이 이루어지는 자유로운 공간’만은 아닌 것 같다. 책에서 나와 있는 것과 같이 광장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고 존재한다 하더라고 상당히 많은 것들이 복합적으로 맞물려 있어야 하고 영원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내 삶의 광장의 의미는 바로 ‘가족의 사랑’이다. 광장을 읽다보면 이명준은 가족의 사랑을 받지 못한 채 너무 오랜 기간을 마음을 닫은 채 밀실에서 살아왔다. 이명준이 인간적인 교감을 가족을 통해서 채워나갔다면 자신이 생각하는 진정한 광장을 찾을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생각이 얼마 전 나의 경험을 통해서 문득 들게 되었다. 얼마 전 기흉에 걸려 24시간 동안 홀로 응급실에 누워있었다. 오랜 시간동안 밥을 한 끼도 먹지 못하고 그저 링겔만 꽂은 채 정신을 놓지 않으려 노력하며 누워있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내가 아프다는 것을 알려주었지만 바로 나를 찾아와 주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가족만은 나를 간호해주러 오셨다. 4시간이라는 오랜 시간이 걸릴지라도 주저 없이 가족만큼은 나를 보러 와주셨다. 어머니가 나의 손을 잡아주셨을 때 타지에서의 홀로 아픔을 견디고 있던 나의 서러움이 씻겨 내려가고 비로소 나는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고, 살아있음을 느꼈다. 나는 그때서야 누구보다 나를 아끼고 생각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곳이 바로 광장이고 현실적이면서 이상적인 공간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
    광장이라는 소설은 우리에게 아주 친근하다. 고등학교 문학교재에 수록되어있고 수능과 모의고사에 자주 나오는 지문이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시절엔 단편적인 부분을 보고 광장을 이해했다. 교과서에서는 이명준은 그저 남북에서 광장을 찾지 못하고 배에서 투신자살을 하는 모습만을 보여줄 뿐이었다. 뿐만 아니라 광장의 의미도 문제집에 나와 있는 대로 달달 외울 뿐이었다. 지금 다시 책을 읽어보니 광장의 의미는 인간적인 교감이 이루어지는 자유로운 공간이라는 해석이 가장 적절한 것 같다. 남한은 교감은 이루어지나 자유롭지 못한 공간, 북한은 자유로운 공간은 존재하지만 인간적인 교감이 이루어지지 않는 공간으로 어느 곳도 진정한 광장은 존재하지 않고 그 일부분만 충족시킬 뿐 소설 속에서 이상적인 공간으로 남게 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북에서 인간적인 교감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잠시나마 이명준은 북에서 은혜를 만나게 된다. 은혜와 사랑을 하면서 인간적인 교감을 할 수 있게 되고 이명준은 은혜를 통해 광장을 찾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영구적인 광장은 아니었다. 이명준이 생각하는 광장은 과연 세상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일까? 어쩌면 이명준 이기 때문에 광장을 찾을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광장은 사람마다 해석하기 나름이고 책을 읽어봤다면 반드시 한번쯤은 생각해 봐야할 문제이다.
    광장의 의미를 내 삶에 접목시켜 이해해 보니 반드시 인간적인 교감이 이루어지는 자유로운 공간만은 아닌 것 같다. 책에서 나와 있는 것과 같이 광장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고 존재한다 하더라고 상당히 많은 것들이 복합적으로 맞물려 있어야 하고 영원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내 삶의 광장의 의미는 바로 가족의 사랑이다. 광장을 읽다보면 이명준은 가족의 사랑을 받지 못한 채 너무 오랜 기간을 마음을 닫은 채 밀실에서 살아왔다. 이명준이 인간적인 교감을 가족을 통해서 채워나갔다면 자신이 생각하는 진정한 광장을 찾을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생각이 얼마 전 나의 경험을 통해서 문득 들게 되었다. 얼마 전 기흉에 걸려 24시간 동안 홀로 응급실에 누워있었다. 오랜 시간동안 밥을 한 끼도 먹지 못하고 그저 링겔만 꽂은 채 정신을 놓지 않으려 노력하며 누워있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내가 아프다는 것을 알려주었지만 바로 나를 찾아와 주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가족만은 나를 간호해주러 오셨다. 4시간이라는 오랜 시간이 걸릴지라도 주저 없이 가족만큼은 나를 보러 와주셨다. 어머니가 나의 손을 잡아주셨을 때 타지에서의 홀로 아픔을 견디고 있던 나의 서러움이 씻겨 내려가고 비로소 나는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고, 살아있음을 느꼈다. 나는 그때서야 누구보다 나를 아끼고 생각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곳이 바로 광장이고 현실적이면서 이상적인 공간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 광장 | lo**g00d | 2013.06.06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
    광장은 전쟁시대의 한 젊은이의 이야기다. 그 안에 작가의 깊은 사고가 녹아있다. 현 재와 너무 다른 세계여서 그럴까 나는 명준의 생각들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명준은 대단하고 심각한 생각들을 하면서 이상을 좇는 듯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관념적으로만 현실을 바라보고 절망하기 일쑤다. 여자를 무시하진 않지만 어려운 동물이라고 생각한다며 여자에 대해 쿨한 척 하지만 한 여자와 잠자리 한번 가지지 못했다고 속상해 하는 보통의 청년의 모습도 보인다. 혼란스러운 시대가 한 젊은이를 환멸에 빠지게 하고 사랑에서만 희망을 얻을 수 있게 했을까? 평범하게 살고 싶어 했던 명준에게 광장은 왜 버거웠을까?
     명준은 철학과 4학년 학생이다.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는 행방불명 되어 어릴 적부터 아버지 친구이신 은행청장 댁에 얹혀 산다. 그 집에는 영미와 태식이 있다. 명준이 좋아하는 4조 반짜리의 아늑한 맛이 있는 방이 있다. 광장에는 세 명의 여자가 등장한다. 세 명의 여자의 옷차림이 눈에 들어왔다. 영미가 등장한 첫 장면은 드레스를 입고 있는 모습이다. 영미는 파티를 좋아하는 부잣집 딸이다. 부족함 없는 집에서 신식 문화를 즐기며 살지만 명준이 보기에는 부잣집 자녀답지 않게 털털하고 착한 여인이다. 그의 오빠 태식은 사치스럽지는 않으나 영미와 마찬가지로 부족함 없이 자란 대학생이다. 그리고 두 번째 여인 윤애가 있다. 윤애는 저고리에 고무신을 신은 조선시대의 여인이다. 윤애는 명준을 좋아하는 듯 보이나 조선시대 여인답게 보수적 이여서 명준에게 몸을 주지 않는다. 명준은 윤애와의 일과 더불어, 형사에게 취조 당한 일 등의 이유로 별로 바랄 것 없었던 남을 떠난다. 북으로 간 명준은 아버지에게 살가움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다 은혜를 만나게 된다. 은혜는 머리며 옷차림이 화려하다고 나와있다. 명준은 그런 은혜를 배우 혹은 무용수라고 단번에 알아 챈다. 국립극장 무용수인 은혜는 명준의 연인이 된다. 여자에 대해 쿨한 척 하던 명준은 은혜가 모스크바에 공연을 간다 하자 토라진다. 그러나 군에 입대해 간호사로 입대한 은혜를 보자 얼었던 마음이 사르르 녹아 내린다. 전쟁 상황에서 명준이 찾은 3m 지름의 반달모양 굴에서 은혜와 도피 아닌 도피를 한다. 그러다 전쟁 통에 은혜가 죽고 명준은 전쟁포로가 된다.
     소설 속 이야기는 명준의 의식의 흐름에 따라 진행된다. 전시 상황에서의 명준은 많은 고민과 사색을 하며 그 와중에 사랑을 한다. 사상의 대립의 시대는 현대의 내가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것들이 많았다. 실제로 광장을 두 번이나 읽었지만 명준의 생각은 그저 넘어가고 이야기만 읽은 부분이 많다. 그 시대의 사상에 대해서는 이해가 어려우나 명준이 품었던 광장에 대한 생각들은 와 닿는 것이 많다. 명준은광장에서 졌을 때 사람은 동굴로 들어간다라고 말한다. 광장에서의 싸움은 북적임 속에서 너무 외롭다. 군중 속의 고독이라고 하지 않는가? 명준은 스스로에게 한 뼘의 광장과 한 마리의 벗을 원했다그러나 한 뼘 되는 곳에 한 마리의 벗이 있는 곳은 광장이 아니라 동굴이다. 아늑하고 어려움 없고 두려움 없는 광장은 없는 것이다. 싫어도 나가 싸워야 하는 곳이 광장인 것이다. 평범한 삶을 원한 명준은 중립국을 택하여 많은 것을 망상 하다가 결국 자살한다. 평범한 삶이 쉽지 않은 것은 혼란의 전시시대나, 현시대나 마찬가지 인가 보다. 열심히 공부하고 취업 준비하는 요즘 젊은이들 중에 부귀영화를 꿈꾸는 자가 몇이나 될까? 그들 중 빌게이츠 같은 인물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자가 몇이나 될까? 원대한 꿈을 꾸는 자들이 적은 것도 문제이지만, 평범한 꿈을 꾸는 자들이 행복하게 살 수 없는 시대는 더욱 더 불행한 시대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그 불행한 시대 때문에 명준처럼 자살하는 젊은이들이 현 시대에도 많은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아무리 시대를 원망한다 할지라도 그렇게 쉽게 끝낼 수 없는 곳이 우리가 살고있는 광장이다. 쉽게 끝내고 싶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간다. 당연한 말이고 손발이 오글거려서 하기 싫은 말이지만 어쨌든 우리는 살아간다. 드넓은 광장에서 끊임없이 사람들과 어깨를 부딪치며 어디론가 걸어간다. 부채의 넒은 데서 점점 안으로 우리는 걸어간다. 그러다 패배하면 명준의 말대로 동굴로 들어간다. 그렇게 광장에서 살아간다.
     
  • 광장 | im**337 | 2012.06.17 | 5점 만점에 4점 | 추천:0
     말로 표현하기 굉장히 애매한 상황과 감정일 때가 있다. 무언가를 찾는데 결국...
     말로 표현하기 굉장히 애매한 상황과 감정일 때가 있다. 무언가를 찾는데 결국에 찾지는 못하고 불안할 때, 마음의 안정을 간절히 가지고 싶을 때가 있다. 대학교에 가기위해, 미래를 기대했던 고3때, 대학에 합격 후 가졌던 희망찬 계획과 미래, 나의 꿈은 어디로 갔는가? 나는 지금 사람들, 인간관계에 얽매어 한 학기를 보냈다. 그로 인해 나는 가끔 혼란을 겪곤 한다. 이게 진정 내가 바라던 대학생활이며 사회생활일까?
     이 책은 남중국해를 배경으로 했으며 해방 후에 좌절과 힘든 삶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 글의 주인공 이명준은 중립국을 택한다. 남한, 북한 그 어디에서도 광장을 발견하지 못했다. 결국 이명준은 바다에서 투신자살을 하고 만다. 은혜와 뱃속에 있었을 딸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이명준은 진정 자신만의 광장을 찾은 것일까?
     광장은 무엇인가? 이상적인 공간, 사람들이 모이는 곳, 유토피아 일 것이다. 책을 읽으며 나는 나의 경험들이 떠올랐다. 나는 이명준처럼 무엇인지 모르겠고 불안하고 외로운 기분이 들 때 방문을 잠그고 혼자 있어보기도 하였고 사람들이 많은 모임에 참석해 술자리를 가지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도, 저기도 그 어느 곳에서도 내가 생각하는 광장을 찾지 못했다. 그렇다고 내가 생각하는 광장이 거창하고 완벽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내가 지금 찾고 있는 광장이 무엇인지 모르겠고 복잡하고 불안할 뿐, 그뿐이다.
     이 책 중간에 이명준이 눈을 떴을 때 혼자임을 묘사한 구절이 있다. “고개를 돌려 방안을 살핀다. 아무도 없다. 방문은 휑하니 열려있다. 그는 귀를 기울였다. 잇닿은 방에서도 아무 기척이 없었다. (중략) 이름없는 울림이었다. 이어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 울림은 자꾸 부풀어 갔다. 구르는 눈덩이처럼, 가까운 소리를 제 몸에 붙이면서 커간다. 그 커다란 덩어리에 자신을 얹으려 해보았다. 그러나 야릇한 일이다. 여느 것은 다 거둬 모으면서, 홀로 이명준이란 알맹이 만은 자꾸 튕겨 버리는 것이었다. 기를 쓰면서 매달렸다.” 항상 누군가와 함께였는데 혼자가 될 것만 같은 이명준이 기를 쓰며 매달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물론 누군가에게 직접적으로 매달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심리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나도 가끔은 작은 상자안에 갇혀있는 기분이 들 때가 있었다. 그렇다고 누가 나를 이해해주고 위로해주면서 상자에서 꺼내주길 바라지는 않았다. “그냥 날 지켜봤으면 좋겠어. 나를 이해해주고 위로해달라고 하지 않을게. 내가 나를 이해하고 위로해서 상자를 부수고 나올 수 있는지를 지켜봐줬으면 좋겠어.” 라는 생각을 했고 나는 실제로 나의 친한 친구에게 부탁을 한 적이 있다. 그런 복잡함과 불안함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해보고 싶었고 그러한 고민은 나 자신을 이해함의 결과로 나 스스로가 선택을 내리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심리묘사가 잘 되어있는 책이다. 이명준의 심리를 담백하지만 미묘하게 자세히 되어있다. 그냥 아무생각 없이 읽으면 안되는 책인 것 같다. 나름대로의 해석을 하며 읽어야 하는 책일 것이다. 그래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나는 광장을 고등학교 때에 이어 두 번째로 읽었다. 고등학교 때 문학선생님께서 가끔은 내가 이 책을 읽을 때도 지루할 때가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 느낌을 예전에도 느꼈지만 이번에는 그 때와는 다른 지루함을 느꼈다. 그 전보다는 훨씬 이해도가 높아짐을 느낀다. 책을 읽으며 나의 경험들이 떠오르고 왠지 모르게 그 심리를 파악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깊어졌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덮을 때 멍해짐은 여전하였다. “내가 정확히 무슨 내용을 읽었지?”라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생각에 잠겼다. 어찌보면 지루하다 할 수 있을 만큼 무덤덤한 소설인 것 같다. 하지만 나에게 생각을 할 시간을 주는 소설이다. 남과 북을 왔다갔다하며 진지한 자신의 삶에 대해 고민하는 이명준을 보며 나도 나의 삶의 방향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책을 덮은 후 ‘책 다 읽었다!’라는 말과 함께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진지한 고민과 생각을 많이 하게 해주는 ‘광장’에 고마움을 표한다.
  •      한 시절 <광장(廣場)>은 꼭 읽어야할 독서목록이었다. 그 시절, 남북문제와...
     
       한 시절 <광장(廣場)>은 꼭 읽어야할 독서목록이었다. 그 시절, 남북문제와 한 인간의 이데올로기적 정체성을 다룬 문제작으로서 금지서적과 해금서적의 경계선에 <광장>이 있었다.
        '자기가 속한 사회적 환경과 그 속에 존재하는 세포로서 한 인간이 적응의 부조화에서 오는 부조리(不條理)를 다룬다. 20세기의 가장 큰 사회사상적 이데올로기였던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의 테두리가 결국 한 인간을 부조리하게 만들고 파멸로 유도하기도 한다는 사회참여적 소설이다.'라는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느낀 점이다. 

       소설의 내용을 간략하게 적으면 다음과 같다.
       해방 후 만주에서 주인공 이명준은 귀국한다. 그러나 그의 생각처럼 남한생활은 쉽지 않았다. 어머니가 죽자 이상적 사회주의자 아버지가 자진 월북한다. 혼자 남은 그는 아버지 친구 분의 도움으로 철학과 대학생이 된다. 그러나 그는 현실부적응형 관념주의자로 빠지고 월북한 아버지의 과거행적으로 인해 많은 괴로움을 당한다. 그에게 남한은 민주주의를 외치는 부조리의 사회일 뿐 이상향이 아니다. 그는 새로운 이상향을 찾아 월북한다. 그러나 그가 찾아간 북한은 이미 남한처럼 허위와 기만이 가득 찬 공산주의일 뿐이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인민군 정치보위부 장교로 서울에 온다. 그는 연합군의 포로로 잡히고 포로교환 시 남한도 이북도 아닌 중립국을 선택한다. 그리고 인도로 가는 뱃길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한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광장(廣場)이란 소설은 이데올로기에 대한 좌절과 절망을 주제로 하고 있다. 주인공은 자신을 서있게 해줄 진실한 광장을 찾아 헤매지만 결국 그런 광장은 없다는 것이 작가가 <광장>이라는 단어로 압축해서 설명한다. 즉, 유토피아란 세상의 어디에도 없다.
       이 소설은 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외침만 있지 진정한 민주주의도 사회주의도 없는 남북한의 모순을 배경으로 한다. 소설이 세상에 나온 지 오십년이 지났고 몇 개국을 제외하고는 공산주의 국가는 이미 종말을 고했다. 그리고 자유주의는 신경제 논리를 만나 신자유주의가 이미 자리를 잡았다. 경제가 우선하는 신자유주의의 물결에 민주주의가 비집고 들어가는 형국으로 점차 변해가고 있다.

        서두가 길었지만 이 소설은 작년 황장엽 선생이 타계했을 때, 잠깐이나마 나에게 소설 속의 현실과 현실 속의 현실을 비교하는 시간을 갖게 해줬다. 소설에서 본 황장엽이라는 느낌이 분명 있었다.

        “한반도에 전쟁을 막으러 왔다.”고 일성을 고하며 자유대한의 품에 안겼던 황장엽 선생이 졸(卒)하셨을 때 문득 <광장>이 생각나서 다시 꺼내 읽었다. 세상에 책은 많지만 다시 손이 가는 책은 그리 흔치않다. 그렇게 <광장>은 내 서고에서 이십년 이상이나 쉬고 있다가 나의 손때를 다시 받아들이게 되었다.
       다시 펼쳐들면서 북한의 정치이데올로기인 주체사상(主體思想)의 산파였지만 북한의 세습적 폐쇄적 사회주의에 혐오를 느껴 남한으로 망명길에 오른 황장엽, 그가 <광장> 속의 주인공 이명준과 겹쳐 보였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그 느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1997년 2월인가 그가 남한으로 망명길에 올랐을 때 남북한은 엄청난 파장에 휩싸였다. 그는 이미 북한사회의 정치 이데올로기의 정신적 수호자였고 서열 13위의 인물이었다. 그의 망명은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나 정부 여당, 그리고 북한에 호의적인 야당 정치인들과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반신반의를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그가 입국한지 수개월 후 한국은 IMF로 갔다. 그리고 북한을 대하는 한국의 태도는 바뀌기 시작했다. 그게 바로 황장엽 그에게 운명이라면 운명이랄까! 남한은 그에게 광장을 허락하지 않는 길목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다음 해에 청와대에 입성한 김대중 대통령은 ‘햇볕정책’을 국시(國是)로 삼아 남북한 해동에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해동의 분위기가 봄을 맞이하기 시작하자 황장엽, 그는 이제 김대중 정부에 걸림돌로 천대를 받기 시작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 모두 감시의 카메라를 벗어나기 힘들었고 언론의 통제를 받으며 정권과 살얼음을 걸어갔다. 차돌같이 단단한 용모에 라이터돌 같은 그의 눈빛이 드디어 2000년 11월 폭탄선언에 돌입했다.
      국가정보원이 자신의 모든 행동과 말에 족쇄를 채운다고 비판하고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에 대해 강렬한 비난을 가했다. 그리고 남한은 북한의 ‘수령(首領)절대주의(絶對主義)’를 전혀 모른다고 자기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더 나아가 그는 본인이 주체사상(主體思想)을 버리지 않았음을 밝히고, 다만 김일성 김정일 부자가 주체사상을 정권유지를 위한 개인의 우상화 작업과 영달을 위해 역이용했고 그 결과  본인이 당했다는 입장도 변함없이 고수했다. 그리고 미국과 한국의 강력한 연대를 주장했다. 
       그는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북한에서 권력 서열에서 밀리자 가족까지 버리고 온 사람’ ‘남북화해의 훼방자’ 등등 온갖 욕을 먹어야 했다. 북한의 주체사상을 두둔했던 좌익들까지도 그에게 손가락질했다. 그 때도 잠시 최인훈의 <광장>이 나의 뇌리를 스쳐지나갔었다.
       소신 있는 그의 언행으로 말미암아 그는 죽을 때까지 거의 가택연금 상태로 지내야만 했다. 언론은 한동안 그를 의도적으로 보도대상에서 제외시켰다. 항상 노무현정부와  각을 세웠던 언론사들도 그에 대한 보도는 자제했다. 그리고 그는 타계했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광장>을 다시 읽으며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이 남한의 부조리한 민주주의 현실에 대한 불만감으로 북으로 가듯, 황장엽 선생은 북한의 변질된 사회주의와 세습화의 전술이 되어버린 주체사상에 미련을 버리고 남한을 찾는 모습이 떠올랐다.
       이명준이 들어간 북한은 더 이상 사회주의는 없고 공산당원이라는 신귀족만 존재하는 세계였고, 황장엽이 본 남한은 ‘햇볕정책’에 눈이 부셔 눈앞에 있는 북한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사회였다.
       사회주의에도 환멸을 느낀 이명준은 제3국을 택하다 자살로 일생을 마감했고, 입에 재갈이 물린 황장엽 선생은 남한에서 자기의 뜻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심장마비로 세상을 하직했다.
       <광장>의 이명준과 황장엽, 둘은 남북한 어디에서도 그들이 설 자리를 찾지 못했다. 둘 다다 그들이 속한 사회적 환경에 적응하기에 심리적 사상적 내부 갈등이 너무 깊었다. 둘 다 유토피아를 찾아 길을 나섰지만 가는 길은 절망의 디스토피아였다. 그들에게는 그들이 서있을 광장(廣場)이 없었다. 그저 그들에게 광장은 하늘에 있는 무지개일 뿐이다.
       나는 이명준에게서 황장엽을 느꼈고, 황장엽에게서 이명준을 보았다. 소설 속 현실과 현실 속 현실이 비슷한 점이 많다. 둘 다다 파랑새를 찾아서 숲속만 헤매다 한 많은 세상을 살다 간 것 같아 한숨으로 책을 덮었다. 그러면서 저자의 또 다른 수작<회색인>이 <광장>과 서로 불가분의 관계임을 확실하게 알았다. 아직 <회색인>은 다시 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한참 전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한다. <광장>이 한 인간을 둘러싼 사회적 상황과 자기 갈등이라면, 다만 기억으로 추측하건데 <회색인>은 내면의 갈등에서 갈등 안으로 파고드는 작품이라 기억된다. <회색인>을 통해 사르트르의 '지식인을 위한 변명'을 문학적으로 이해 했었다. 
     
       이제 북한의 김씨 왕조가 삼대 째 자리를 잡나보다. 김정은이 보위?(寶位)에 올랐다. 아직도 이 시대에 왕조사회가 존재한다는 모순은 또 어떤 부조리의 조화인지 모르겠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새 왕조가 설립되고 삼사 대쯤 지나면 붕괴나 안정의 기로에 서있게 된다. 이제 북한도 두길 중 한길로 갈 것 같다. 19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까지 공산주의 체제는 붕괴했다. 역사에서 이렇게 빠르게 동시 다발적 체제붕괴는 없었다. 이제 중국 쿠바 북한만 남았다. 우리는 같은 민족이지만 정말 지독한 놈들하고 국경을 맞대고 산다.
     
       삼대(三代)가 세습되는 마당에, 한국에서 우클릭하는 사람들도 내가 왜 우클릭을 하는지 자신의 진정성을 물으며 나를 떠나 대승적 차원에서 한 번 더 생각해야하고, 좌클릭하는 사람들도 내가 왜 정말로 좌클릭하는 것이 옳은지 본인과 사회와 국가를 위해 심려해야할 시간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은 나와 우리 모두, 그리고 그들의 후손을 위한 자유광장(廣場)이 돼야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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